신소림사 주방장
- 감독
- 리건
- 제작년도
- 2012
충무로는 1980년대로 넘어오면서 장르적 지형도의 변화를 겪는다. 크진 않았다. 하지만 몇 가지는 기록할 만하다. 먼저 여전한 장르는 멜로드라마와 액션이었다. < 미워도 다시 한번 >( 정소영 , 1968) 류의 신파 멜로는 꾸준히 만들어졌다. 합작(혹은 위장 합작)을 통한 무협 액션 영화도 왕성했다. 합작과는 무관하면서도 ‘중국식 제목’을 단 한국영화들, 그러니까 < 무림오걸 >( 김시현 , 1979) < 애권 >( 이형표 , 1980) < 소림사 주방장 >( 김정용 , 1981) 같은 영화들의 러시가 이뤄졌고, < 협객 시라소니 >( 이혁수 , 1980) 같은 전통적인 ‘따찌마리’ 액션도 이어졌다. 사라진 장르도 있었다. 호러가 대표적이다. 메이저 장르는 아니었지만 근근이 명맥을 이어오던 한국 공포 영화는 1980년대 중반에 자취를 감추었다. 그 부활을 목격하기 위해선 1998년 < 여고괴담 >( 박기형 )까지 10년 넘게 기다려야 했다. 새로 생긴 장르도 있었다. 아동용 SF 액션이다. 지금 보면 조잡하기 그지없는 특수효과로 점철된, ‘우뢰매’ 시리즈(1986~93)나 ‘별똥왕자’ 시리즈(1987~88)는 1980년대의 발명품이었다. 마지막으로, 변형된 장르가 있다. 일종의 진화라고 해도 좋을 거다. 1970년대 ‘얄개 영화’는 1980년대에 연령대를 조금 높여서 < 대학얄개 >( 김응천 , 1982)로 다시 태어났고, < 오성군 한음군 >( 박호태 , 1988) 같은 영화로 이어지기도 했으며, 1989년 <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 강우석 ) 이후엔 사회적 이슈와 결합되어 1990년대 초를 장식했다. 1. 토속 영화의 조짐이 보였던 < 심봤다 > 2. 1985년에 나온 < 뽕 >은 토속 영화의 분기점이 되는 작품으로, 이후 컬트로서 추앙받는다. 3-4. 정윤희 가 주연을 맡았던 <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왼쪽)와 <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오른쪽). 자연 속에서 파라다이스를 즐기던 순수한 남녀는 외부자에 의해 그곳을 침범 당하고, 결국 여자 주인공은 죽음을 맞이한다. 1980년대에 또 하나의 ‘변종’이 있다면 흔히 ‘토속물’ 혹은 ‘향토물’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연상케 하는 제목으로 지칭되던 그 영화들이다. 이 글에선 ‘토속 영화’라는 명칭으로 통일할 이 영화들은, 거칠게 정의 내리면 이른바 ‘문예영화’가 에로티시즘을 만난 결과다. 1970년대까지 검열의 수위 안에서 원작 소설을 표현했다면, 1980년대엔 과감해졌다. 과거 이미 만들어졌던 정비석 의 『성황당』, 이효석 의 『분녀』, 나도향의 『물레방아』 등은 ><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 정진우 , 1981) < 산딸기 >( 김수형 , 1982) < 물레방아 >( 조명화 , 1986) 등으로 좀 더 에로틱하게 재등장했고, 김유정 의 『땡볕』 『떡』 등도 소환되었다. 그러면서 문예영화의 범주를 벗어난, 다소 유명하지 않은 작가의 소설을 각색하거나 창작 시나리오를 토대로 한 토속 영화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영화들은 (주로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에로티시즘 사극과 구분되어야 한다. 토속 영화는,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토속 에로티시즘 멜로드라마는 사극이 지니는 유교적 세계관에서 벗어나며, 시대 배경은 식민지 시기 농촌이나 어촌이다. 공통점도 있다. 1980년대 토속 영화와 사극은 한국영화에서 여성에게 가장 가혹했던 장르였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처참한 지경에 이르며 죽음에 이르는 여성들의 영화. 그들은 마치 세상의 모든 모순을 떠안아야 하는 것처럼 보였고, 당시 외국에서 한국영화 특별전이 열리면 서구 관객들은 “한국영화는 왜 그렇게 여자를 때리느냐”고 항의성 질문을 던질 정도였다. 1. < 산딸기 >의 한 장면. 물레방앗간은 토속 영화에서 반복되는 핵심적 공간이다. 주로 비밀스러운 정사가 이뤄지는 그곳에선 종종 여성의 운명이 결정된다. 2. < 산딸기 >의 엔딩. 명준과 분녀는 고향으로 돌아온다. 명준은 말한다. “그래 저 학들처럼 천년만년 살자.” 토속 영화는 ‘새’의 상징을 자주 사용한다. 정진우 감독은 <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 <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를 만들었고(< 백구야 훨훨 날지 마라 >(1983)까지 묶어 ‘새 3부작’), < 여자의 성 >에서 별녀는 어릴 적 숲에서 죽어가는 새를 데리고 와 살리는데, 그 가련한 새는 이후 별녀의 삶을 상징한다. 그리고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 산딸기 2 > <여자의 성>은 모두 새 소리를 섹스의 신호로 사용한다. 3. < 숲속의 바보 >는 토속 장르에 ‘백치 여인’ 캐릭터를 끌어왔다. 4. 문예 영화는 1980년대에 토속 영화의 방식으로 변형되어 지속된다. 사진은 김동인 원작의 < 감자 > 그 시작을 살펴보면 1970년대 말에 조짐이 있었다. 선두 주자는 정진우 감독이었다. 이은성 작가의 시나리오를 토대로 한 < 심봤다 >(1979)는, 문예 영화의 톤이 짙긴 했지만 이후 등장할 토속 영화 트렌드를 예견케 했고, <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가 이어졌다. 결정타는 김수형 감독의 1982년 작 < 산딸기 >였다. 안소영 - 선우일란 - 강혜지 - 소비아 로 주연 여배우의 변화를 겪으며 1994년 6편까지 이어진 이 토종 프랜차이즈는 토속 영화의 얼개를 만들었다. < 산딸기 > 1편을 보자. 화전민 마을에 분녀( 안소영 )가 산다. 한가위 마을 잔치 때 취바리 탈을 쓴 누군가에게 겁탈당한 분녀는, 그 주인공이 마을 청년 명준( 임동진 )이라는 걸 알게 된다. 노다지를 찾아 만주로 떠난 명준을 분녀는 기다린다(안소영과 임동진은 같은 해 < 애마부인 >( 정인엽 , 1982)에서도 공연했고, 여기서도 안소영은 (감옥에 간 남편) 임동진을 기다렸다). 마을 남자들은 호시탐탐 분녀를 노리고, 급기야 자기들끼리 싸우다 두 명이 죽는다. 이에 ‘남자 잡아먹는 X’라며 마을에서 쫓겨나게 된 분녀는 가마 주인(남궁원)을 따라 읍내로 가 술집 작부가 된다. < 산딸기 >는 토속 영화의 핵심 구조를 제시한다. 바로 이분법이다. ‘시골 vs. 도시’라는 구도 속에서 토속 영화는 여러 대립항들을 만들어낸다. 아직 물물교환이 익숙한 ‘촌’이 있다면, 그 반대편엔 ‘장터’라는 공간으로 상징되는 ‘돈’의 세계가 있다. 마치 서부극의 ‘자연 vs. 문명’ 구도처럼 토속 영화는 두 세계의 충돌 속에서 전자의 붕괴를 보여준다. 산속이나 섬에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농사를 짓거나 고기를 잡거나 약초를 캐며 살아간다면, 양복을 입은 외부인들(여기엔 종종 일본 순사가 가세한다)은 그 공동체를 위협하는 것이다. 여기서 위협의 대상은, 그 마을에서 가장 아리따운 젊은 여성이다. 그러나 그녀는 진실한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수많은 남자들에게 음험한 욕정의 대상이 되고, 결국 도시로 끌려가 어울리지 않는 짙은 화장을 한 채 술과 몸을 팔게 된다. 이 구도는 < 여자의 성 >( 문여송 , 1985) < 산딸기 3 >( 김수형 , 1987) < 옹기골 뽕녀 >(김수형, 1987) 등에서도 정확히 반복되는, 토속 영화의 전형적인 스토리라인이다. 여기서 같은 해에 나온 또 한 편의 영화를 주목해야 한다. 장미희의 연기가 빛을 발하는 < 숲속의 바보 >( 박용준 , 1982) 다. 이 영화는 토속 영화의 여성 캐릭터를 완성한다. 바로 ‘백치 여성’의 등장이다. 복희( 장미희 )는 다소 지능이 떨어지는, 영화 제목 그대로 ‘숲속의 바보’인데, 이후 수많은 토속 영화들은 핸디캡을 지닌 여성 캐릭터를 통해 이 장르가 지닌 ‘원시성’ ‘본능성’ ‘순수성’ 등을 드러낸다(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진 않지만, 그런 점에서 말 못 하는 수련( 정윤희 )이 등장하는 <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 정진우 , 1981)도 토속 영화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 캐릭터의 계보는 < 불새의 늪 >( 고응호 , 1984)의 봉은( 원미경 ), < 여자의 성 >의 별녀( 최선아 ), < 소금장수 >( 김대진 , 1988)의 냉이(천은경) 등으로 이어지며, 그들은 섹스에 대한 ‘원초적 본능’의 소유자로 등장한다(< 불새의 늪 >에서 화가 종훈( 마흥식 )은 봉은에게 ‘수성’(獸性), 즉 ‘짐승 냄새’가 난다고 이야기할 정도이며, <여자의 성>의 뭍에서 온 침입자 억수( 독고영재 )는 “잠자리가 뛰어난 여자거든!”이라며 별녀에게 집착한다). 1-2. < 산딸기 2 >(왼쪽)와 < 물레방아 >(오른쪽)의 선우일란 과 마흥식 . 두 배우는 토속 영화의 간판스타였다. 3. 문여송 감독의 히로인이었던 < 여자의 성 >의 최선아 . 4. < 산딸기 >의 김애경. 무당 캐릭터는 토속 영화의 핵심적 조연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테마는 바로 ‘근친적 설정’이다. 문명 이전의 상태에 대한 메타포일까? 심의 때문에 진짜 혈연적 근친 관계를 내세우진 못하고 유사 근친 관계를 설정하긴 하지만, 많은 토속 영화들이 근친적 관계를 내세운다. < 숲속의 바보 >의 복희는 남매처럼 함께 사는 머슴 만복( 김동현 )과 관계를 맺고 아이를 낳는다. <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에서 최 영감( 황해 )은 고아인 수련과 문영( 최윤석 )을 키우는데, 혈연은 아니지만 남매처럼 자란 그들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 여자의 성 >의 별녀는 데릴사위로 온 거무( 이구순 )와 남매처럼 지내다가 결혼한다. < 소금장수 >의 덕만( 김추련 )도 엉겁결에 맡아 딸처럼 데리고 다니는 냉이와 부부적 관계를 맺게 된다. < 화녀촌 >( 김기 , 1985)는 이 분야에서 독보적이다. 종섭( 이영하 )은 상처한 후 산에서 어머니( 김지영 ), 처제 정분( 최현미 ) 그리고 딸과 살아간다. 그는 형제나 마찬가지인 옆집 친구 덕만( 나기수 )의 아내( 이상숙 )와 관계를 맺어 아이를 낳는데, 덕만 내외가 갓난아이를 남긴 채 마을을 떠나자 처제를 아내처럼 받아들여 그 아이를 키우며 산다. 근친적 관계 이외에도 토속 영화는, 도시와 문명이 반대편에서,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이며 본능적인 모습들을 클리셰로 드러낸다. 대표적인 것만 간추려 보겠다. 1. 수시로 목욕을 한다 모든 토속 영화엔 꼭 이 장면이 있다. 여성 캐릭터들은 숲속의 계곡이든 강가든 폭포 아래든 수시로 목욕을 한다. 그리고 반드시 그들을 엿보는 남성의 시선이 있다. 많은 사건들이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2. 언제 어디서든 정사를 한다 낮이든 밤이든, 집이든 물레방앗간이든 들판이든 숲이든 개울가든 옥수수밭이든, 그들은 정사를 한다. 그리고 이 광경 역시 누군가의 시선에 의해 들킨다. 3. 껄떡대는 건 죄가 아니다 욕정의 도덕률이 무너진 상태에서, 마을에게 가장 아름다운 여성을 가운데 놓고 많은 남정네들이 치근대는 건 토속 영화에서 전혀 비윤리적인 일이 아니다. 그들은 겁탈을 해서라도 여자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 유부남/유부녀 여부는 중요하지 않으며, 이것은 < 뽕 >( 이두용 , 1986)과 <떡>( 김수형 , 1988)의 세계관이기도 하다. 4. 무당을 조심하라 무당이든 박수든, 토속 영화에서 ‘무속인’은 빠지지 않는다(< 불새의 늪 >에서 봉은은 아예 무당의 딸로 그녀와 관계를 맺으면 급살 맞아 죽는다). 그들은 마을에서 가장 성적으로 문란한 존재이며, 권위를 내세워 음모를 꾸민다. 5. 여성은 거래된다 사극이 여성을 대 잇기의 수단으로 여기거나 정절을 강조하며 억압했다면, 토속 영화는 상품처럼 거래한다. 그 배경엔 남성의 어리석은 물욕이 도사리고 있는데, 서너 명 만 모이면 반드시 투전판을 벌이는 그들은 노름빚을 갚기 위해 딸을 팔아 먹고(< 산딸기 3 >), 여자는 몰래 몸을 판다(< 물레방아 >). 여기서 자연 속에서 사는 여성 캐릭터들은 장터를 통해 문명을 접하고, 동동 구리무와 박하 분과 손거울의 유혹 앞에 종종 마음을 연다. <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에서 김 주사( 최봉 )도 그렇게 순이( 정윤희 )에게 접근했다. 그렇게 유혹에 넘어간 여자들은 결국 유린당한다. 1 . < 화녀촌 >의 근친적 결말. 2. 토속 에로에선 그 어떤 곳에서도 정사가 벌어진다. 사진은 < 소금장수 >의 옥수수밭 3. 남자들이 셋 이상 모이면 투전판이 벌어진다. 사진은 < 산딸기 2 > 4. 여성은 결국 술집 작부가 되며, 그곳에서 번 돈은 남자의 노름 밑천이 된다. 사진은 < 산딸기 2 > 토속 영화는 1980년대 중반을 넘어가며 서서히 변주되고 확장된다. 하명중 감독의 리얼리즘적 접근이 두드러지는 < 땡볕 >(1985)과 < 태 >(1986)도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며, 변장호 감독의 < 감자 >(1988)나 임권택 감독의 < 아다다 >(1988)는 문예 영화에 좀 더 가까운 케이스일 것이다. 여기서 이두용 감독의 < 뽕 >(1986)은 토속 영화를 새로운 국면으로 이끈다. 원작이 나도향의 소설이라는 점에서 문예 영화의 전통을 잇고 있으면서, <뽕>은 기존 토속 영화가 지녔던 신파적이며 비극적이고 운명적인 멜로드라마의 톤을 걷어낸다. 베테랑 이두용 감독은 능수능란하게 영화를 조절하며 끌고 가는데, 심각하거나 진지하지 않은 톤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에로티시즘을 표현할 때도, 절박하거나 경직되지 않은, 여유 있는 태도를 보여준다. 유머로 포장되어 있긴 하지만, 사실 < 뽕 >의 꽤 논쟁 지점이 있는 영화다. 안협네( 이미숙 )는 마을의 매춘부이며, 그녀에 대한 동네 남정네들의 음험한 시선을 영화는 자연스레 합리화한다. 여기서 안협네라는 캐릭터가 다른 건 육체관계에서 일종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점이다. 이전 토속 영화들이 ‘겁탈당하는 여성’을 보여준다면, <뽕>의 안협네는 철저히 거래하는 여성이며 원치 않는 남자는 거절한다. 같은 해에 나온 < 변강쇠 >( 엄종선 , 1986)의 ‘옹녀’( 원미경 )가 강한 성적 능력으로 위협적 존재가 된다면, 안협네는 유혹적이면서도 주체적이며 현실적이다. < 뽕 > 이후 토속 영화는 약간 변화를 겪는다. < 옹기골 뽕녀 > 같은 유사 제목 영화가 나왔고, 나도향을 비롯해 김유정 , 계용묵, 김동인 등 토속 영화의 재료로 삼기 좋은 작가들의 소설이 대거 각색되었다. 흥미로운 건 김수형 감독의 < 떡 >이다. 김유정 의 원작을 옮긴 이 영화는 <뽕> 이후 토속 영화(와 사극)의 트렌드가 변했음을 보여준다. 간단히 말하면 <떡>은 ‘<뽕>+< 변강쇠 >’이다. 마을 남자들은 (그녀가 유부녀임에도 불구하고!) 점례( 선우일란 )를 넘본다. <뽕>의 안협네 같은 존재인 셈. 그런데 점례와 관계를 맺는 남자들은 에너지를 완전히 빨려 버린다. ‘옹녀’인 셈이다. 흥미로운 건 결말인데, <뽕>에서 안협네의 남편 삼보(이무정)를 통해 암시만 되었던 독립운동가 콘셉트가 <떡>에선 명확하게 제시된다. < 산딸기 >나 < 뽕 >은 이후 프랜차이즈를 이루며 1990년대까지 이어졌지만(<뽕>은 최근 < 뽕 2014 >( 공자관 )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토속 에로는 대체적으로 1980년대 말에 수명을 다하고 만다. 이것은 에로 영화가 1988년 올림픽 이후 수그러들었던 것과 궤를 같이하며, 이 시기 한국의 에로틱한 영상 콘텐츠는 극장에서 비디오 시장으로 급속하게 중심 이동을 했다. 짧지만 강렬했던 토속 에로의 흐름.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와 기획영화가 등장했던 1990년대에 살아남기엔, 그 정서의 우울함과 여성관의 한계는 너무 치명적이었다. 그 한계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뽕>이 최근까지도 명맥을 잇고 있는 건, 어쩌면 그 반증일지도 모르겠다.
자, 가렛 에드워즈의 < 고질라 >를 보면서 ‘쇼와 고질라’와 ‘헤이세이 고질라’의 전통을 언급하며 유년기의 추억이 귀환한 듯 기뻐하는 평들이 딱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는 것부터 먼저 언급하며 이 글을 시작해야겠다. 그러니까 말이다. 어째서 고질라가 유년기와 청년기의 추억일 수가 있지? 쇼와든 헤이세이든 내가 극장용 고질라를 처음으로 본 건 2000년대 이후였다. 가만 생각해보니 나에게 진정한 첫 번째 고질라 영화는 롤랜드 에머리히의 < 고질라 >였던 것 같다. 이미 할리우드에서 다시 매만져진 일본인들의 전통을 목격한 뒤, 그걸 토대로 다시 일본인들의 전통을 거슬러 올라 머릿속에 입력시켰다는 이야기다. 문방구의 꽃,「괴수대백과」 만약 고질라가 내 안의 아주 미묘한 덕심을 살짝 건드리긴 했다면, 그건 오로지 80년대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던 「괴수대백과」 덕분이다. 이걸 기억하는 세대가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80년대 문방구에서는 한국에 전혀 소개된 바 없는 일본 애니메이션과 특촬물에 대한 번역본 해설지를 팔았다. 그게 또 어쩐 일인지 모르겠지만 꽤나 인기가 있었다. 나 역시 「괴수대백과」의 열렬한 팬이었다. 고질라와 가메라와 모스라와 킹기도라와 메카 고질라의 사진들을 보면서 언젠가는 저것들을 진짜 스크린 속에서 보고 싶다는 열망을 품었다. 그 열망은 십여 년 뒤에나 겨우 DVD를 통해 이루어졌다. 마치「‘건담대백과」로 접한 <기동전사 Z건담>을 십수 년 뒤에나 카피본으로 겨우 (그것도 중간중간 더 이상 성인에게는 온전히 통하지 않는 과장된 감상주의를 감내해가며) 목도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나에게 ‘괴수물’을 처음으로 스크린에서 본 게 언제냐고 묻는다면, 고질라나 가메라 대신, 입에서 꺼내는 즉시 살짝 웃음이 터지는 제목을 굳이 꺼내야만 한다. 그렇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30대 중후반에서 40대 초반이라면 기억할 < 비천괴수 >라는 제목 말이다. < 비천괴수 >는 60년대 신상옥 , 나봉한 같은 감독의 연출부를 거쳐, 한국과 홍콩 합작영화가 쏟아지던 시절 성룡, 홍금보가 출연한 <용호문>(1975), < 사대철인 >(1977) 등 무협 영화를 만들었던 김정용 감독의 영화다. 합작영화 시절이 막을 내리고 한국영화의 암흑기가 도래한 80년대 초반, 그는 < 소림사 주방장 >(1981)이나 < 무림 걸식도사 >(1982)같은 코믹 무협영화들을 만들었다. 낯설다고? 80년대 토요일 낮에 당신은 TV로 이 영화들을 본 적이 있을 거다. 하여간 그는 90년대 후반까지도 조형기가 임화수를 연기하는 < 충무로 돈키호테 >(1999)같은 싸구려 영화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30여 년 동안 영화를 만든 이 남자의 필모그라피에서 가장 무시무시하게 격정적인 B급 영화가 바로 이 한국형 괴수물 <비천괴수>다. 뭔가 대단한 영화일 것 같다고? 확실히 대단하다. 여러 가지 의미로 말이다. 이야기는 아주 간단하다. 공룡이 여전히 살아있다고 믿는 김 박사(왜 그 시절에는 다 김 박사인가!)가 실종된다. 잡지사에 근무하는 강 기자는 박사를 찾아 어느 작은 해안 도시로 간다. 알고보니 김 박사는 딸과 함께 숨어서 공룡의 존재를 여전히 찾아 헤매고 있다. 강 기자는 이러저러해서 김 박사의 가정부로 취직을 한다(왜? 이것이 바로 진정한 기자정신이다!). 그리고 이러저러한 끝에 괴수가 부활해 인간들을 침공하기 시작한다(공룡이라더니 왜 괴수냐고? 그걸 나에게 물어봐야......). < 비천괴수 > 스틸 홍보물 당대의 국민학생들에게, 아니 적어도 내가 살던 지방 항구도시의 유년들에게, < 비천괴수 >는 센세이셔널한 블록버스터였다. 소문이 퍼지자 거의 주변 모든 학교의 아이들이 이 영화를 보러 갔다. 거기에는 「괴수대백과」에 나올 법한 괴수들이 정유시설을 파괴하고, 도시를 파괴하고, 쓰나미를 일으키고(태풍이었던가? 어쨌든.....), 하여간 모든 걸 파괴했다. 그건 그야말로 당대 한국 영화의 어떤 괴수적 절정에 다름 없었다. “「괴수대백과」 괴수들이 다 나와!” 나는 친구들에게 소리를 빽빽 질러가며 <비천괴수>를 보라고 권했다. 그렇다. 「괴수대백과」의 괴수들이 이 영화에 다 나오는 이유가 있었다. 왜냐면 이건, 알라바마주의 할매가 옆 동네 천을 하나씩 훔쳐다가 기워낸 퀼트 같은 영화였으니까. < 비천괴수 >는 80년대 한국 영화계가 얼마나 카피라이트에 대한 개념이 희박했는지에 대한 근사한 역사적 사료다. 사실상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괴수의 스펙터클은 < 울트라맨 > 시리즈의 괴수 장면들을 불법으로 가져온 것이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건 <돌아온 울트라맨>의 시고라스, 벰스타 등이고, 초기 울트라맨의 페스타도 등장한다. 그러니까 이걸 어떻게 만들었는지 한번 상상해보시라. 한국형 괴수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제작자와 감독은 아무리 원화를 팍팍 투자해도 엔화로 만든 특촬물의 퀄러티를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니 유일한 방법은 어차피 한국에 전혀 들어오지 않은 일본 특촬물의 괴수 장면들을 조금씩 떼어다가 영화 속에 삽입하는 것이었을 게다. “자, 영화의 줄거리는 코난 도일의 「잃어버린 세계」에서 따오는 거야. 공룡을 발견한 학자 이야기를 넣으면 근사하잖아? 응? 공룡이 아니고 괴수물 아니냐고? 한국 사람들은 괴수 이런 단어 잘 모르니까 일단 공룡으로 시작해. 그리고 그냥 해변 마을에 가서 배우들 데리고 도망치고 이런 거 찍은 다음에 편집하면 되는 거야. 괴수랑 사람이랑 직접적으로 컨택트하는 장면이 하나 쯤 있어 하지 않냐고? 그러면 발만 하나 만들어! 발만!” 발만! 당연히 괴수가 나오는 장면들과 실제로 찍은 인간들의 장면들은 도대체 붙을 리가 없다. 아마도 김정용 감독은 거의 제대로 된 대본도 없이 이 영화를 촬영했을 것이다. 이를테면, 괴수가 도시를 파괴하는 장면 뒤에는 옅게 미소 짓거나 좋아서 박수를 쳐대는 인간의 리액션 씬이 등장한다. 아, 혹시 이것은 지구 종말의 날을 맞이한 인간들의 광증을 표현한 몽타주인가? < 비천괴수 > 최대의 명장면은 배우 김을동 이 마을에서 아기를 둘러업고 산으로 피신을 갔다가, 둘러업고 온 것이 아기가 아니라 베개라는 사실을 깨닫고 슬프게 오열하는 장면이다. 공포에 질려서 산으로 도망쳤던 김 박사의 딸은 그 모습을 보고는 너무나도 기쁘게 웃어젖힌다. 나중에 <비천괴수>를 다시 봤더니, 이 영화의 진정한 괴수는 괴수가 아니라 김 박사의 딸이었다. 그러고보니 왜 한국형 괴수영화 속 아이들은 이토록 인간미 없는 사이코패스인가에 대한 논문을 누가 하나 써볼 법도 하다. 전설적인 < 대괴수 용가리 >에서 용가리와 춤을 추는 소년의 캐릭터와 함께 묶어서 말이다. < 비천괴수 >는 < 대괴수 용가리 >(1967), < 우주괴인 왕마귀 >(1967)로부터 시작된, 가난한 한국 B급 괴수영화의 계보도에서도 결코 진골은 될 수 없는 영화다. 두려움 없는 저작권의 테러라는 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대괴수 용가리>를 극장에서 보기에는 너무 어렸고, 레이 해리하우젠의 몬스터들은 ‘괴수’라기보다는 뭔가 좀 다른 존재였다(그리고 심형래의 < 용가리 >를 온전히 즐기기에는 지나치게 나이가 들었다). 지금 삼사십대의 한국 몬스터 영화광들에게는 <비천괴수>가 주는 어떤 미묘한 향수를 도저히 거부할 길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건 마치, < 고질라 >를 보고 싶었으나 정작 알라바마주 동네 극장에서 상영하는 샘 커츠만의 거대 ‘칠면조 괴수물’ <자이언트 클로 The Giant Claw>(1957)가 생애 첫 괴수영화가 되어버린, 지금은 예순이 넘은 미국의 어떤 괴수광 노인이 느끼는 향수 같은 것과도 비슷한 것이리라. 뭐, 그런 느낌적 느낌일 거란 소리다. 김기주 남혜경 김다혜 문태선 감독: 김정용 각본: 이문웅 개봉극장: 오스카(서울) 관람인원: 2,741명(서울)
김정용이라는 분이 계시다. 그는 많은 권격 영화를 연출해 이름을 알렸다. 6~70년대 스크린을 수놓던 수많은 액션 배우들이 그의 지시 아래 주먹을 지르고 발을 휘둘렀다. 그 명성은 무술영화의 본산인 홍콩까지 알려져 비록 공동감독이었지만 당시 최고의 스타 홍금보와 함께 < 귀타귀 2 >를 만들었다. 또 죽은 이소룡의 영상을 편집해 집어넣어 팬들의 공분을 사기도 한 한중합작영화 < 사망탑 >에 각본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는 스스로의 오리지널리티를 확보하며 걸작을 만드는 데 보다는, 당대에 유행하는 트렌드를 흡수하여 새로운 시도를 통해 인기를 끄는 타입이었다. 간단히 말하면 ‘짝퉁’이겠고 좀 더 좋게 말하면 ‘재해석’이라 말할 수 있다. 소림사를 무대로 하는 영화들이 인기를 끌자 < 소림사 주방장 >을 만들어 크게 히트를 쳤고, < 취권 >이 인기를 끌자 그는 황비홍(성룡)이 아니라 소화자(원소전)의 캐릭터를 가져와 < 무림걸식도사 >를 만들어 팬들의 뇌리에 큰 인상을 남겼다.(여담이지만, 이 영화에는 80~90년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을 책임졌던 왕룡 감독이 배우로 출연하고 있다. 그는 감독 이전에 액션 배우였다.) 특히 그의 페르소나라 불러도 좋을 만큼 많은 작품을 함께한 정진화 는 앞서 말한 작품들은 물론 < 복권 >, < 무림사부대행 > 등으로 ‘짝퉁 성룡’이 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물론 짝퉁 성룡 뿐 아니라, 짝퉁 이소룡들의 큰 형님뻘 되는 거룡, 당룡도 그를 거쳐 갔다. (이 영화들은 그나마 그의 작품들 중에서 나은 편이고, 괴작들을 찾는 팬 사이에서 더욱 유명세가 높다. 인디아나 존스와 소림 무술의 기괴한 만남 < 아라한 >, 한국보다 오히려 해외에서 더 악명이 높은 강시 무협 < 소화성 장의사 >, 얼마 되지도 않는 한국 괴수물의 재앙 < 비천괴수 > 등 대부분은 자료가 없어 볼 수 없는 ‘구전 괴작’들이다.) 오늘 소개할 < 소림십대여걸 > 역시 그런 종류의 영화다. 소림xx제자, 소림xx방 같은 영화들이 유행하자 우리의 김정용 감독은 주인공을 여성으로 바꾸어 영화를 제작한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영화에 소림사는 등장하지 않는다. 조선 여인들이 청나라에 ‘공물’로 바쳐지던, 아마도 병자호란 직후의 어느 즈음. 압록강 인근 어딘가에 위치하는 ‘성도사’라는 절에 자매가 비구니가 되기 위해 수련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들은 자신의 일가를 몰락시킨 ‘이귀’에 대한 분노를 삭이지 못한다. 이귀는 피도 눈물도 없는 청나라의 부자. 일종의 인신매매범으로 조선 여인들을 납치하여 팔아먹고, 그 과정에서 잔악무도한 짓을 서슴지 않는 악당이다. 이귀는 문화재 절도에도 관심이 많아 그의 아들인 흑풍을 시켜 성도사의 보물인 ‘황금약사여래상’을 약탈한다. 절의 주지 삼장법사는 청나라에 잡혀간 여인들 중 무예가 뛰어난 사람들이 많으니, 그들 열을 모아 함께 복수하라고 일러준다. 미후, 미사는 열 명의 여인을 모아 황금약사여래상을 되찾고 이귀에서 복수를 해줄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 헤라클레스 ’적 고난보다는, 동료를 모으고 그들이 각기 다른 스킬을 가져 도와가며 펼치는 ‘ 반지의 제왕 ’ 같은 모험담을 좋아한다. < 소림십대여걸 > 역시 그런 모양새를 갖추고 있어 꽤 재미가 있어 보였다. 그러나 이 영화가 관심은 어떻게 재미있는 그림의 다찌마리를 만들 것인가에 더 치중되어 있다. 영화의 배경을 ‘화냥년’의 배경이 된 시대로 설정하고 여자들에게 무술을 하게 만들었지만 그뿐이다. 남성과는 다르게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특수한 점으로 무공을 펼친다든가 하는 것도 없다. 그냥 맞짱이다. 영화의 오프닝에서는 분명 10명의 여걸이 각기 다른 무공을 펼치는 것 같은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데, 본 영화에서는 그냥 살이 쪘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좀 남자 같거나... 하는 식의 특징만 주어졌을 뿐 그다지 특별난 무공들은 없다. 사실 마지막 전투까지 진행하면서 그들은 하나씩 몸빵을 하고 퇴장하고 마는 정말이지 으악새. 그러다보니 이게 또 그 나름의 재미가 있다. 미후 역을 맡은 당시 미녀 권격 배우로 유명했던 김명아 선생이 이 영화의 반을 책임지고 있는데, 아무리 남성과 다를 바 없는 무술이라 하더라도 선천적으로 여성이 가지고 태어난 곡선이 거칠기만 한 격투 장면을 좀 더 우아하게 보이도록 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그걸 즐길 새도 없이 여기저기 실소가 터지는 장면들에서 기운이 빠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싸우기로 하고 모인 처자들이 힘들다고 도망을 가려 하자 장광설을 늘어놓는 장면 같은 게 그렇다. 심각한 얼굴을 한 미후는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우린 여자라고 방관만 해야 옳은가요. 나라가 약한 결과입니다. 나 하나만 편하겠다는 안일한 생각의 결과입니다. 죄송합니다. 제 넋두리였어요... 편히 쉬세요....” 라며 설득인지 뭔지 모를 이상한 대사를 치기도 하는 것이다. 나름대로 시대 배경을 그렇게 하고 보니, 뭔가 이야기는 만들어 넣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껴서 였을까? 어차피 도둑맞은 여래상 찾고 이귀한테 복수만 하면 되는데, 중간에 이야기가 많다. 삼장법사가 죽고, 백년사의 송월법사를 찾아가고, 이귀는 백년사의 사천왕상을 훔치려 하고, 그 와중에 여걸들 중에 스파이가 있는데다가 또 다른 여걸은 잃어버렸던 서방님을 찾기도 하고... 스토리 진행해야지 다찌마리는 채워 넣어야지 게다가 이 영화의 카피가 ‘82년은 여성 코믹 액션의 해!’ 였으니 코미디도 해야 하고... 제대로 굴러가기 참 힘든 상황은 맞는 거 같다. 그래도 권격 영화의 황금기를 보냈던 사람들인 만큼 액션은 상당히 멋진데, 김명아 와 정진화 그리고 이귀(배우 이름을 찾지 못했다)의 3인 격투장면은 상당하다. 특히 싸움의 초반에는 이귀가 자신은 장애인이라며(이런 설정이 왜 있는지 모르겠다. 조금 수세에 몰리니 벌떡 일어나 발차기를 한다) 의자에 앉아 초식을 펼치는 장면이 있는데 박력이 대단하다. 물론, 이런 이귀의 사망이 있는 줄도 몰랐던(언급도 없었다) 함정에 빠져 죽는 허탈한 것이긴 하지만. 이귀가 죽자마자 ‘감사합니다’가 떠오르며 가슴을 두 번 때리는 야속한 우성프로덕숀.. < 소림십대여걸 >은 무협영화가 조금씩 그 힘을 잃어 갈 때쯤 행해진 여러 시도 중에 하나였다. 역사적 사건에 상상력을 끼얹은 팩션의 형태를 취해보려 한 것으로 보이지만 과연 오늘도 실패다. 전반적으로 허탈한 이야기와 뜬금없는 애국심 그리고 약간의 괜찮은 다찌마리로 대충 빚어진 영화다. 감독 본인이야 안타깝겠지만(필모그라피를 봐서는 그닥 안타까울 것은 없을 듯하나) 이런 영화의 깨알 같은 재미를 찾는 나 같은 관객도 있는 법이니, 나름대로 존재의 이유는 충분한 것일지도. 김정용 감독은 이후에도 꽤 오랫동안 작품활동을 이어오다가 2001년 < 우먼 파트너 놀자 >라는 기묘한 제목의 영화를 마지막으로 현장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김명아 김해은 방희정 감독: 김정용 각본: 윤석훈 개봉극장: 아세아(서울) 관람인원: 37,288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