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소현씨를 울렸나
- 감독
- 이길우
- 제작년도
- 2018
- 출연
- 하정민, 임선우, 권서인, 김지은, 조하나, 이지수, 오기찬, 박부건, 김혜영, 김수아, 박세정, 양준명, 차재이, 김세정, 손문영, 정승은, 최보민, 김민찬, 공인실
<폭싹 속았수다> 중 (사진: 한겨레 /© 넷플릭스) 올 한 해 TV와 OTT를 통해 공개된 시리즈들을 필자의 시선으로 바라봤습니다. 관심을 끌어모은 화제작부터, 스쳐 지나갔지만 돌이켜 볼 만한 문제작들까지 정리합니다. 며칠 전, 12.3 비상계엄 이후 1년을 돌아보는 다큐멘터리를 보는데 눈물이 났다. 그 시간을 통과할 때는 미처 감각하지 못했는데, 지나고 보니 우리가 모두 참으로 위험한 시간을 지나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 내란 사태를 수습하느라 사회 전체는 긴장 상태에 놓여 있었다. 정치뿐 아니라 경제 상황 역시 불안정했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과 씨름하느라 많은 이들이 ‘각자의 내란’을 견뎌야 했다. 그래서였을까. 2025년의 시리즈에는 유난히 어려운 시절을 버티며 살아낸 이들의 이야기, 그중에서도 가족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가 눈에 띄었다. 버틴 사람들의 이야기 올해 가장 많은 이들이 언급한 드라마는 < 폭싹 속았수다 >(김원석/넷플릭스)가 아닐까? <폭싹 속았수다>는 거친 바다를 온몸으로 견뎌낸 해녀, 광례( 염혜란 )에게서 시작한다. 광례와 딸 애순( 아이유 · 문소리 ), 손녀 금명(아이유)으로 이어진 모녀 3대는 한국 현대사를 가로지르며 각자의 방식으로 삶의 파도에 맞선다. 인생을 사계절에 빗댄 이 이야기에는 해녀 공동체의 연대, 애순과 관식( 박보검 )의 풋풋한 사랑, 그리고 모두의 생애를 지탱한 가족애가 가득 담겼다. <폭싹 속았수다> 속 인물들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삶의 과제를 감당하며 버텼다면, <태풍상사>(이나정, 김동휘/tvN)의 태풍( 이준호 )은 1997년 IMF 외환위기라는 경제적 폭풍을 견딘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불어닥친 회사의 위기 앞에서 태풍은 직원들을 신뢰하며 열정적으로 회사를 지키고 살려낸다. <태풍상사>는 마치 ‘국난’을 극복하듯 회사를 되살리는 이야기인 동시에 “가장 평범한 곳부터” 도려내졌던 IMF 시대를 살아낸 보통 사람들의 얼굴도 놓치지 않는다. 태풍이 청년 사업가로 성장하던 IMF 시기, 낙수( 류승룡 )는 치열한 취업 전쟁을 뚫고 대기업에 입사한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탄탄대로를 걷던 그는 어느새 명예퇴직 대상자가 된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조현탁/JTBC)는 사회의 중심축에서 밀려난 중년 세대의 현실을 생생하게 포착한다. 사회적 ‘쓸모’가 사라졌다는 자각과 거듭되는 실패 앞에서 낙수는 모멸감과 상실감, 불안 속에서 흔들리며 우울과 공황을 겪는다. 이 시리즈는 중년의 위기를 유머와 애잔함으로 감싸며, 낙수가 가족의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상) <폭싹 속았수다> 중 (사진: 한겨레 , PD저널 / © 넷플릭스) (하) <태풍상사>,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중 (사진: tvN , JTBC ) 여성들의 세계, 더 넓어지다 가족을 중심으로 한 시리즈 너머, 여성을 생애사적·사회적 이야기로 확장한 시리즈도 눈에 띄었다. < 은중과 상연 >(조영민/넷플릭스)은 은중( 김고은 )과 상연( 박지현 ), 두 여성의 30년에 걸친 관계를 따라가며, 서로를 사랑하지만 미워하기도 하고,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배신도 하는 등 서로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여성들의 복잡한 관계를 밀도 있게 그린다. 그중에서도 상연을 단순한 ‘빌런’이 아니라 결핍과 외로움이 빚어낸 인물로 끝까지 이해하려는 시선이나, 성소수자인 상학( 김건우 )의 죽음과 안락사를 선택한 상연의 죽음을 “내가 있어도 되는 세상”을 갖지 못한 존재들의 죽음으로 연결하는 감각이 인상적이었다. <미지의 서울>(박신우, 남건/tvN)은 일란성 쌍둥이, 미지와 미래( 박보영 )의 ‘삶 교환’을 중심으로 청년 세대의 불안과 고립, 직장 내 괴롭힘, 비정규직 차별, 장애와 성소수자 문제를 복합적으로 짚는다. ‘마론제과’ 무기계약직 여성들의 이야기 <달까지 가자>(오다영, 정훈/MBC)와 아파트에서 발생한 사건을 추적하는 여성들을 중심으로 전개된 <살롱 드 홈즈>(민진기, 정현남/ENA)는 가족의 확장된 형태로서 여성들의 우정과 연대를 보여준다. < 피라미드 게임 >(박소연/TVING)과 < 선의의 경쟁 >(김태희/U+TV)은 여고 내 계급과 폭력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미지의 서울>, <폭싹 속았수다>, <견우와 선녀>(김용완, 정우식/tvN), <첫, 사랑을 위하여>(유제원, 함승훈/tvN) 등 모녀 관계를 통해 여성의 생애를 입체적으로 조명한 작품들도 눈에 띄었다. 현대극뿐 아니라 시대극 역시 여성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옥씨부인전>(진혁/JTBC)은 조선시대 노비로 태어나 양반 마님이 되어 ‘변호사’로 활약한 구덕이( 임지연 )를 중심으로 계급, 여성 차별, 성소수자, 아동·약자 착취 문제 등을 녹여내 ‘조선판 인권 선언문’과 같은 역할을 했다. < 애마 >(이해영/넷플릭스)는 1980년대 충무로를 배경으로, 에로 영화 전성기의 포문을 연 영화 < 애마부인 >(정인엽, 1982) 촬영기를 극중극 형태로 재현하며 ‘남성적 응시’에 맞선 여성들의 연대를 메타 비평적으로 풀어낸다. 여성의 성적 욕망을 부정하던 1980년대 시골 마을에서 성인용품 판매를 하게 된 여성들의 이야기인 <정숙한 세일즈>(조웅, 김미진/JTBC)와 1990년대 버스 안내양들의 우정을 담은 <백번의 추억>(김상호/JTBC)은 그간 주목받지 못한 여성의 역사를 복원해, 가부장 사회에서의 여성 억압의 문제, 노동과 우정의 연대기를 보여준다. (상) <은중과 상연>, <미지의 서울> 중 (사진: MBC /© 넷플릭스, tvN ) (하) <애마>, <백번의 추억> 중 (사진: 넷플릭스 , JTBC ) ‘보편성’이라는 이름의 한계 이렇게 여성들의 이야기가 다양하고 폭넓게 등장했음에도 ‘가족’ 바깥을 상상하게 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폭싹 속았수다>를 여성 서사로도 볼 수 있지만, 결국 부모 세대와 가족의 이야기로 수렴된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또한 낙수의 아내 하진( 명세빈 )이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하지만, 시리즈는 결국 “김부장 이야기”, 즉 가장을 이해하고 북돋우며 가족애로 회복에 이르는 데 집중했다. <태풍상사>도 마찬가지다. IMF로 일자리를 잃거나 불안정한 노동에 배치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보여주지만, 이런 이야기는 로맨스 서사에 묻히고 만다. 이런 한계에도 이 시리즈들은 ‘보편성’을 가진 좋은 이야기로 회자됐다. K-드라마의 보편성이란 여전히 ‘아버지’ 중심의 가족 서사라는 게 재확인된 셈이다. 이런 특징은 결국 세대, 노동, 차별 등 사회 구조적 문제로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낸다. 이른바, ‘여성 서사’라 불리는 드라마에서도 극소수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가족 다양성, 가족 너머의 서사를 온전히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흐름을 어떻게 봐야 할까? 『페미니즘 리부트』(2017)에서 영화평론가 손희정이 IMF 이후 영화의 여성 재현에 관해 지적했듯, IMF 이후 또 다른 위기의 시대를 통과하는 지금, 이런 흐름은 가족이라는 안전하고 효율적인 이데올로기를 작동시켜 ‘위기의 시대’를 손쉽게 통과하려는 징후가 아닐까.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태풍상사> 중 (사진: JTBC , tvN ) 그런데 흥미롭게도, 가족과 연대로는 포착되지 않는 또 다른 층위의 이야기들도 있었다. 가족주의로는 설명할 수 없는 폭력, 사회가 방치하고 묵인해온 구조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들이다. 그 ‘사이코패스’들은 무엇을 보여주었는가 올해 시리즈의 또 다른 흐름은 < 하이퍼나이프 >(김정현/디즈니+)의 소시오패스 의사 세옥( 박은빈 )을 비롯해 사이코패스 성향의 인물들이 전면에 등장했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단지 반사회적 인물로 등장했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 그 재현을 통해 무엇을 드러내고 질문했는가에 있다.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변영주/SBS)의 연쇄살인범 이신( 고현정 ), < 친애하는 X >(이응복, 박소현/tvN)의 사이코패스 아진( 김유정 ), < 당신이 죽였다 >(이정림/넷플릭스)에서 남편을 살해하는 희수( 이유미 )와 그의 친구 은수( 전소니 ), < 자백의 대가 >(이정효/넷플릭스)의 모은(김고은) 등 폭력을 행하거나 살인을 저지른 반사회적 여성들을 통해 아동 학대, 가정폭력, 성폭력을 묵인하는 가부장제와 권력의 문제를 드러낸다. 이 시리즈들은 반사회적 선택이 개인의 선택이나 비정상적 일탈이 아니라 사회가 만든 산물임을 보여줬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품은 초반의 기세와는 달리, 후반부에는 장르적 쾌감이나 개인에 대한 처벌로 귀결되며 구조 비판의 힘을 잃었다. 그 결과 폭력은 사회의 문제로 제시되지만, 변화의 책임은 다시 개인의 파멸이나 응징으로 환원된다. 2010년대 이후 빈번하게 등장한 ‘사적 복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이다.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 <자백의 대가> 중 (사진: SBS , 넷플릭스 ) 결국, 살리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2025년 시리즈를 회고하다가 ‘돌봄’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폭싹 속았수다>의 해녀 공동체가 서로를 살피고, <태풍상사>의 태풍이 직원들을 신뢰하며 회사를 지켜내고,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에서 가족이 함께 위기의 시간을 견디고, < 다 이루어질지니 >(안길호/넷플릭스)에서 마을 사람들이 사이코패스인 가영( 배수지 )을 사랑으로 키워내는 것. <미지의 서울>에서 미래가 딸기 농원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신을 추스르고, <첫, 사랑을 위하여>에서 골수암에 걸린 효리(최윤지)가 꽃 농사를 짓는 보현(김민규)을 만나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고, <폭군의 셰프>(장태유/tvN)에서 지영( 윤아 )이 음식으로 사람을 살리고, < 내가 죽기 일주일 전 >(김혜영, 최하나/TVING)에서 이미 죽어 저승사자가 된 람우( 공명 )가 생기를 잃고 사는 첫사랑 희완( 김민하 )를 살리고, <견우와 선녀>에서 곧 죽을 운명에 처한 견우( 추영우 )를 무당인 성아( 조이현 )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살리는 것. 이 모든 장면의 공통점은 어떤 대상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이야기라는 점 아닐까? 그래서인지 올해 시리즈에는 유난히 식물을 키우는 설정이 자주 등장했다. 식물을 정성껏 가꿀 뿐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서로의 곁을 지켰다. 올해 시리즈는 ‘죽이는 것’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끊임없이 ‘살리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연대라는 이름으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가족주의라는 안전한 이데올로기에 기대고, 그것을 넘어서려 애쓰면서 2025년 시리즈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선택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문제는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돌봄과 버티기만으로는 구조를 바꿀 수 없다. 가족 간의 사랑을 앞세우고, 개인의 파멸로 끝나는 응징은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흐릿하게 만들고, 더 나은 세계를 향한 상상력의 시계를 좁게 한다. <애마>에서 희란( 이하늬 )과 주애( 방효린 )가 “각자의 링” 위에서 싸우며 “다시 돌아오지 않을“ 세계로 나아갔듯, 지금 우리에게는 낡은 세계로 회귀하지 않으면서 “미래를 앞당기는” 이야기들이 필요하다. <미지의 서울> 중 (사진: tvN ) 오수경(드라마평론가) l 인간과 사회에 관심이 많아 문학을 전공했고, 신앙인으로 살고 있으며, 드라마를 들여다본다. 여러 매체에 칼럼 기고. 『을들의 당나귀 귀 』(2019) 공동 집필, 『드라마의 말들 』(2022) 집필.
근래의 평화적 분위기가 반가울 수밖에 없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 남북대결의 상처와 전쟁의 두려움이 컸던 것과 비례한다. 특히 그 중심에는 분단이 빚어낸 가장 큰 비극, 한국전쟁의 고통이 자리한다. 1950년 6월 25일 전쟁 발발부터 3년 넘게 지속된 전쟁은 막대한 피해를 남겼다.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고 거리를 떠돌게 된 수많은 고아의 발생 역시 그 중의 하나였다. 당시 남한에서만 대략 5만여 명 이상의 고아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전쟁 초기, 전황 대처는커녕 도망가기 급급했던 이승만 정부가 남겨진 아이들까지 챙길 리 없었다. 먼저 나선 것은 미군을 위시한 유엔군과 외국원조단체였다. 이들은 고아원을 세우고 고아들을 거두었다. 하지만 인도적 차원 못지않게 ‘공산주의에 희생된 불쌍한 고아’와 ‘이들을 보살피는 미군과 유엔군’의 이미지 획득 역시 중요한 기제였다. 공산진영과의 물리적 전투뿐만 아니라 각종 선전전과 이미지 대결까지 치열히 전개되는 전방위적 전쟁 속에서, 전쟁고아는 미군의 선정을 드러낼 최적의 대상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역사영상융합연구팀에서 한국영상자료원과 협력 아래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을 통해 수집한 < ORPHANS IN KOREA >라는 영상을 살펴 볼 수 있다. 이는 1950년대 미국의 대외선전을 담당하는 미국공보원(USIS : UNITED STATES INFORMATION SERVICE)에서 제작한 8분 39초 영상으로, 한국전쟁 당시 고아들과 이들을 돌보는 유엔군, 미군의 모습을 담고 있다. 영상은 한국전쟁 중의 수많은 피난민 행렬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하지만 장면은 빠르게 전환하여 행렬에서 낙오된 아이들과 이들의 부상을 치료하고 식사를 주며 함께 어울리는 유엔군과 미군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고아가 된 아이들은 처음에는 잔뜩 경계심을 갖는 표정을 보이다가, 점차 해맑은 웃음을 드러낸다. 한국전쟁 중의 피난 행렬 유엔군이 주는 식량을 얻어먹는 어린이 다친 아이에게 약을 발라주는 유엔군 구조한 아이와 눈을 마주치며 함께 밥을 먹는 유엔군 자신을 돌봐주는 유엔군에게 웃음을 보이는 아이 이후 영상에는 대내외에 잘 알려진 미군의 고아 구출 선행 사례가 담겨있다. 우선 1.4후퇴를 맞아 서울과 인천에 버려진 고아들을 비행기에 실어 제주도로 이송했던 경우다. 당시 미군 제5공군 군목 블레이스델(R.L. Blaisdell)이 고아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한다고 호소했고, 미국 공군 헤스(Dean E. Hess) 소령이 이에 호응하며 상부로부터 ‘아동공수작전’을 허가 받아 고아 약 1천여 명을 제주도로 피난시켰다. 그리고 본 영상을 통해 당시의 고아 수송 현장과 제주도 내 시설에 수용된 아이들의 생활을 확인할 수 있다. 제주도에 도착한 비행기에서 고아들을 내리는 미군 제주도로 피난시킨 고아들을 찾은 딘 헤스 소령 손을 흔들며 미군에게 인사하는 제주도 고아원의 아이들 이어서 영상은 미군 선행의 또 다른 유명 사례인 부산 ‘행복산보육원’을 비춰준다. 행복산 보육원은 미군 제8군 소속 매키언(Clifford G. McKeon) 대위가 전쟁고아들을 위해 1950년 11월 부산시 아미동에 세운 고아원이었다. 1952년 매키언의 미국 귀국 이후에는 한국 정부로 이관되어 국립으로 운영되었다. 영상 속의 행복보육원 아이들은 진지하게 바느질을 배우거나 신나게 율동을 추고 있다. 행복산보육원 간판 바느질을 배우는 행복산보육원 아이들 율동을 추는 행복산보육원 아이들 영상 속 고아들에 대한 미군의 따뜻한 시혜는 주한미군 제8군 사령관 밴 플리트(James A. Van Fleet) 장군의 고아원 방문 행사로 정점을 찍는다. 영상은 밴 플리트 장군과 사진을 찍고 보살핌을 받은 고아원 아이들의 환한 웃음을 클로즈업하며 마무리된다. 고아원을 찾은 밴 플리트 주한미8군 사령관 고아원 아이들의 밝은 모습 물론 영상 밖 실제 현실에서 전쟁고아들의 이러한 웃음이 지속되기란 어려웠다. 미군과 유엔군의 지원은 일시적이었다. 외국원조단체 등의 호의는 이어졌지만, 아이들에게 줄 물자를 빼돌리거나 착복하는 사건은 물론 고아원 내 학대 사건조차 빈발했다. 그나마 고아원에 머물 수 있는 아이들은 사정이 나았다. 고아원 수는 전쟁고아들을 감당하기에 역부족이었고, 많은 아이들은 거리에 방치된 채 부랑아가 되었다. 한국사회에서 고아들은 보호받기보다 사회적 문제아, 즉 ‘처리의 대상’으로 취급되고는 했다. <참고자료> 한국근현대영상아카이브 소현숙, 「전쟁고아들이 겪은 전후-1950년대 전쟁고아 실태와 사회적 대책」, 한국근현대사연구 84, 2018. 「부랑인 강제수용의 역사(4)-한국전쟁과 고아문제」 , BEMIN0R 2017.7.27.
* 글에 내용이 많이 언급되어 있습니다(스포일러 주의) 누구에게나 마음의 구멍은 있다. 고통스러운 경험 뒤에 오는 충격의 여파로 구멍은 생기기도 하고, 언제 어떻게 생긴 지도 모른 채 뒤늦게 뻥 뚫린 구멍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 크기와 연원이야 각기 다르겠지만, 마음의 구멍은 누구나 안고 가야 하는 존재의 일부일지 모른다. 하지만 점점 커져 버린 구멍에 잠식되어 쓰러지는 사람들을 볼 때나, 자신의 구멍으로 드나드는 칼바람에 한기와 통증이 느껴질 때, 고민은 시작된다. 어떻게 하면 이 구멍을 조금이나마 메울 수 있을까. 중요한 건 이때 부터다. 영화가 시작되면 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진실하지 않았어요. 그거 아세요? 제가 처음 배운 말은 거짓말이었대요. 저는 영원히 사랑받지 못할 거예요.” < 꿈의 제인 >의 주인공은 ‘소현’이라는 이름의 10대 소녀다. 영화는 그녀가 어디서 태어나 어떻게 자라왔는지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녀가 처음 배운 말이 왜 거짓말이었는지, 왜 영원히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 단언하는지 알 수 없다. 영화는 그 말이 남긴 물음표를 화두 삼아, 소현과 함께 미로 같은 길을 걸어간다. 영화는 소현이 트랜스젠더인 제인의 팸에서 살았던 전반부와, 제인이 세상을 떠난 뒤 병욱의 팸에 들어가 가혹한 삶을 사는 후반부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두 시제가 연속적으로 이어진 이야기가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각기 다른 역할로 등장하는 같은 인물, 전혀 다른 맥락으로 중첩되는 비슷한 사건과 공간 등을 통해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전체 이야기를 다시 재구성하게 만든다. 영화의 어떤 부분은 실제 일어난 일이지만, 어떤 부분은 소현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거짓말이다. 결국 그 재구성을 통해 영화의 마지막에서 마주하게 되는 건, 자기 마음의 구멍을 메우려 발버둥 치는 소현의 안간힘이다. 감당하기 힘든 현실과 자신에 대한 환멸,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소현은 ‘거짓말’이라는 자구책을 찾아냈다. 소현의 거짓말은 진실을 감추기 위함이 아니라, 점점 커져가는 마음의 구멍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한,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내기 위한 일종의 안간힘인 것이다. 영화의 서두에 던져진 소현의 말은 그녀가 자기 마음의 구멍을 어떻게 메우며 살아왔는지에 대한 일종의 자기 고백이다. 그리고 자신의 안간힘이 결국 미봉책이 될 것임을 그녀도 이미 알고 있다. 가출 팸의 아빠로 나오는 병욱 역시 마찬가지다. 팸의 권력을 쥐고 있는 그는 얼핏 소현의 반대지점에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럴듯한 미사여구와 폭력적인 방법을 교대로 써가며 가출 팸을 완벽히 통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병욱 역시 소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이다. 그의 위선과 권위적 행동들 역시 소현의 거짓말과 방법만 다를 뿐 근원은 같다. 결국 지수의 죽음을 분기점으로 그는 급격히 무너지고, 인정욕구에 목마른 연약한 존재였을 뿐인 자신의 밑바닥을 들킨 순간 친구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어릴 적 어미나 또래 고양이들과의 함께 뒹굴며 생활해온 고양이는 ‘배움’의 경험을 통해 날카로운 이빨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습득한다. 공격을 위해 무는 강도와 애정 표현을 위해 무는 강도가 어떻게 다른지 아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배움이 없는 고양이가 행하는 애정의 스킨쉽은 상대방에겐 기피와 공격의 대상으로만 느껴질 뿐이다. 소현과 병욱, 그리고 아이들은 너무 일찍 홀로 되었다. 오직 생존을 위해 살아온 그들에겐 본능적인 인정욕구만 있을 뿐 배움의 기회가 없었다. 적당한 시기에 올바른 배움이 체화되었을 때 사람은 인위적인 노력을 애써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관계에 녹아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그 시기를 놓쳤을 때 악순환의 굴레에 빠질 수 있다. 마음의 구멍이 커지고 그 커진 구멍을 메우려는 노력이 오히려 구멍을 더 크게 만드는 악순환. 그래서 어쩌면 소현은 ‘영원히 사랑받지 못 할 거’라는 예감을 했는지 모른다. 그런 소현에게 제인이 나타난다. 소현은 제인으로부터 ‘UNHAPPY’ 라 각인된 손목 도장을 받는다. ‘UNHAPPY’라는 이름의 혜안. 그 짧은 스침을 통해 소현은, 배움의 기회가 다시 올지 모른다는 마지막 희망을 품게 된다. 그 간절함이 결국 실현됐는지, 그냥 상상으로 그쳤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마지막 장면에서 제인을 바라보는 소현의 얼굴은 그 눈빛과 미소만으로도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결국 마음의 구멍은 완전히 메울 수 없다는 것. 그 구멍을 껴안은 채 평생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런 체념이 오히려 삶의 동력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어쩌면 소현은 이미 자신도 알고 있는 그 배움을 제인에게 다시 확인받고 싶었을지 모른다. 배움의 시기를 놓쳐버린 존재들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그 방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