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사정
- 감독
- 조일준
- 제작년도
- 2017
- 출연
- 지은서, 김광석, 우진영, 이장미
“방송에서 죽음을 다루고 싶어요.” 무려 30년 동안 많은 아이들에게 사랑받은 ‘피클스 아저씨의 인형극장’을 이끈 피클스 아저씨는 갑자기, 주시청자인 아이들에게 ‘죽음’을 알려주고 싶다고 말한다. 이렇게 상상해볼까? 색종이 한 장으로 어린 시절을 알록달록 채워준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 선생님이 어느날 빨간색 종이를 접어 시체를 만들자고 한다면 그걸 보는 부모와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다른 건 몰라도 부모들의 항의 전화가 끊기질 않을 거다. 어린이 프로그램이라고 하면, 세트장은 검은색보단 핑크색 계열이 어울리고 음악은 돈 얘기나 욕이 들어간 랩보단 동요가 흘러나오는 게 정상으로 보인다. 여기에 기분이 우울해지는 목소리 톤보다는, 듣는 것만으로도 운동장으로 뛰쳐나가야 할 것 같은 뽀미 언니의 하이 레벨 톤도 필수! 귀여운 단발 스타일을 한 피클스 아저씨 역시 노래하는 인형을 통해 아이들에겐 꿈과 희망을, 어른들에겐 잊고지낸 동심을 찾아준다. 모두가 바라는 그대로… 그런 피클스 아저씨는 어째서 어린이 프로그램의 금기인 ‘죽음’을 다루고자 했던 걸까. 나는 그 점이 흥미로워 <키딩>을 밤새서 보고 말았다. 마지막 화를 막 끝낸 시점에, 난 알아버렸다. ‘죽음’을 다루기 좋은 매체는 영화도 드라마도 아닌 어린이 프로그램이라는 걸. 그 이유를 설명하기에 앞서 가볍게 <키딩>의 흐름을 살펴보려고 한다. 짐 캐리가 연기하는 피클스 아저씨는 오랜 시간동안 아이들에게 사랑받아온 TV 프로그램 진행자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선한 영향을 끼쳤냐면, 거리에 주차된 차량을 훔친 강도들은 부품 하나하나를 팔려고 하다가 피클스 아저씨의 친구, 우쿨래리(사실은 피클스가 연주하는 악기)를 발견하곤 분해된 차를 재조립해서 그대로 되돌려 놓는다. 강도에게도 건드릴 수 없는 절대 선이 ‘피클스 아저씨’인 것. 이렇게만 설명하면, 피클스 아저씨는 무슨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같지만 그에게도 어른들의 세상이 존재한다. ’인형극장’ 프로덕션 사장이자 피클스의 아버지 셉은 동심을 더 많은 돈으로 바꾸고 싶어하고, 프로그램 밖에서 제프로 살아가는 어른 피클스는 아내와 이혼한 돌싱으로 누구보다 외롭게 홀로 살아가고 있다. 한마디로 그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어린이 프로그램 진행자인 ‘피클스’이자 행복한 가정을 지키기 못한 어른 ‘제프’. 동시에 그 둘은 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키딩>의 주요 이야기는 그 둘 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하는 인물 ‘제프’ ‘피클스’를 따라 진행된다. 그걸 지켜보는 게 이 작품의 묘미. 이쯤에서 다시 떠올리게 되는 질문. 피클스 아저씨는 왜 ‘죽음’을 다루려고 하는 걸까? 그냥 하던대로 하기만 해도 유명토크쇼에도 출연하고, 피클스 인형도 잘 팔수 있는데 말이다. 원래 어른이 된다는 건 새로운 도전보단 가진 걸 지키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닌가. 혹시 제프에겐, 반드시 ‘죽음’을 다뤄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닐까? 그게 뭘까. 정해진 시간, 정해진 주제에 따라 ’피클스 아저씨의 인형극장’은 방송된다. 오늘 주제는 벌써 몇 번이나 반복해서 다룬 아름다운 색. 얼마나 지겨웠는지 제프는 아버지 셉에게 “색깔에 관한 방송을 또 해야 해요? 하늘이 파란색인 건 애들도 안다”고 말하지만 1억 1200만 달러짜리 가치를 지닌 피클스 아저씨를 지키기 위해 사장 셉은 제프의 제안을 단박에 거절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 “네 안에 두 사람이 있어. 한 명은 피클스 아저씨. 다른 한명은 제프야. 별거 중인 남편이자 슬픔에 잠긴 아버지.” 아- 차, 현실을 사는 제프에겐 쌍둥이 아들이 있는데 한 명을 교통 사고로 잃어버린 것. 이 글을 쓰면서도 놀란 건 나조차 죽음을 ‘죽었다’라 표현하지 않고 ‘잃어버렸다’고 우회해서 표현했다는 사실이다. 나름 어른이 된 나조차 죽음은 이토록 어색하다. 그러니, 평생을 아이들과 소통해온 어른 제프에게 죽음은 얼마나 낯설었을까? 게다가 다른 누구의 아이도 아닌 자기 자식의 죽음은 그가 하는 모든 것들을 서투르게 만들었을 것이다. ’제프’와 ‘피클스’ 사이에서 혼란에 빠진 한 아버지가 바로 그 증거. 제프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고, 피클스는 현실의 슬픔을 해결하지 못한 채 아이들을 마주할 수가 없다. 그건 거짓말이니까. 거짓말을 하는 어른은 나쁘다고 가르치고 있으니까. 자, 이런 상황에서 제프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식을 잃은 슬픔을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딱 하나다. 자신의 또다른 분신 ‘피클스 아저씨’를 통해 아이들을 만나 죽음을 설명하는 것. 이제 피클스 아저씨가 굳이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죽음’을 다루려고 한 속사정을 알게 됐다. 여기까지만 알고 봐도 <키딩>은 한 인간의 내면을 현실과 방송으로 분열시키고, 다시 융합하는 과정을 통해 보는 이의 마음을 치유하게 만드는 좋은 작품이다. 보고 나면, 누구나 내 의견에 동의할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여기엔 제프와 피클스를 연기하는 짐 캐리의 얼굴도 무시할 수 없다. 과거엔 끼 많은 배우였지만, 지금은 주름 사이로 이야기까지 담아낼 줄 아는 배우가 되버렸다. 짐 캐리가 연기한 피클스 아저씨 얼굴만 봐도 치유가 되는 느낌이니까. 여기까지 담아낸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근데, <키딩>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앞서 나는 ‘죽음’을 다루기 좋은 매체는 영화도 드라마도 아닌 어린이 방송 프로그램이라는 말을 했다. 실제로 죽음을 다룬 어린이 프로그램을 본 적은 없기에 부득이 ‘피클스 아저씨의 인형극장’을 예로 설명해야 함을 이해해주시길. 일단, 죽음이 무엇일까? 파스칼이나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신이 죽는다는 명확한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죽음에 대해선 무엇 하나 아는 게 없다고 했다. 이처럼 똑똑한 어른도 죽을 때까지 모르는 게 ‘죽음’이라는 거다. 그런 ‘죽음’을 도대체 제프는 어떻게 피클스 아저씨로 빙의해서 아이들에게 설명한 걸까? ‘제프’와 ‘피클스’ 사이에서 오락가락한 그는 급기야 머리카락을 밀어버린 뒤 소아병동에 있는 한 아이를 찾아간다. 뇌종양 수술때문에 머리카락 일부를 잘라낸 아이에게 피클스는 고속도로처럼 시원하게 뚫린 두피 표면을 만지게 한다. 보기엔 흉한 것이 만지고 나니 별 게 아니다. 이윽고 수술로 인해 비어버린 자신의 두피를 만지는 아이. 아이는 웃는다. 이처럼, 아이들이 ‘죽음’을 미리 만져볼 수 있다면 죽음이라는 고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다음 피클스 아저씨는 셉에게 말한다. “이번 시즌엔 사라진 것들에 대해 다루려고요. 머리카락처럼요.”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하는 건, 제프는 피클스를 통해 자식의 죽음을 받아들이려고 한다는 것. 제프는 사장 셉에게 “우리만의 특별한 방식으로 죽음을 다루지 않으면, 아이들 모두에게 비극적인 일이 생겼을 때 아무 일도 없었던 척하라는 셈이 된다’는 말을 하고 있지만 실은 그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자식을 한순간에 잃은 현실의 제프는 아무 일도 없었던 척하며 TV 속 피클스로 살고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제프는 죽음을 미리 만져볼 수 없지만, 피클스는 가능하다. 피클스 아저씨는 여러 인형 친구들이 있는데, 그 중하나가 심장을 표현한 쿵쿵이다. 마냥 귀여운 쿵쿵이가 고통스러워하자 피클스 아저씨는 단 번에 그걸 쭈욱 뽑아버린다. 피클스는 쿵쿵이를 만지며 방송을 보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이 고통엔 이름이 있어” 이 짧은 순간을 다시 살펴보고 싶다. 심장을 상징하는 쿵쿵이를 뜯어내는 순간, 인간은 죽는다. 그 ‘죽음’에 동반되는 고통. 피클스는 이젠 멈춰버린 심장을 만지며, 이 고통에 이름을 붙여주려고 한다. 나는 살면서 고통에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우리는 고통스러울 때 무언가를 말하고 싶지 않는가. 단지 그걸 표현해도 되는 지 모를 뿐인 거다. 제프가 고통스러운 건 그때문이고,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 하는 것도 그 아픔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 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프면 아프다고 표현하라고 말하는 어른도, 어린이 방송 프로그램도 많아지면 좋겠다. 밝은 색이 아니라 어두운 색을 칠해도 좋다고 말하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그걸 뒤늦게 알게된 제프가 피클스를 통해 우리에게 말한다. “애들이.. 심장이 있던 곳에, 느끼는 감정을 표현 못 하는 건 두려운 일이에요” 비록 작품 속 어린이 프로그램이지만, 어른이든 어린이든 집에서 <키딩> 속 ‘피클스 아저씨의 인형극장’을 봤으면 좋겠다. 단언컨데 이것보다 더 좋은 교육용 드라마를 본 적이 없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키딩>은 청소년 관람 불가로 분류됐고 그 말은 아직 피클스 아저씨가 바라는 (아이들에게 ‘죽음’을 소개할 수 있는) 세상은 <키딩>에서도, 현실에서도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극장에서 일한다고 하면, 많은 이들이 “영화 많이 보겠다”며 부러워한다. 우리 극장처럼 기획전과 특별전을 주로 하고 상징성이 있는 극장의 경우, 그런 영화들을 남들보다 더 쉽게 접할 수 있을 거라는 부러움을 받기도 한다. 무리도 아니다. 나도 처음 입사할 땐 적어도 이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들만큼은 많이 볼 수 있겠구나 기대했다. 영화 일을 하는 사람들은 도리어 너무 바빠서 영화를 보기 힘들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알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물론 극장에서 일하는 이들은 영화사나 영화제, 영화 제작 현장의 사람들과 처지가 약간 다르다. 우리 회사는 스태프들이 영화를 보는 데에 적지 않은 편의를 제공하기도 한다. 사무실에서 몇십 걸음만 걸으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영화들을 상영하고 있다. 꼭 우리 극장만이 아니라도, 우리가 세 들어 있는 서울극장에서는 블록버스터부터 예술영화까지 온갖 개봉작들을 상영한다. 함께 세 들어 있는 사이좋은 이웃 인디스페이스에서는 멀티플렉스가 찬밥 취급하는 보물 같은 독립영화들을 전문적으로 상영한다. 그러니 이 극장에서 이 지리적인 위치를 잘만 활용하면, 그리고 내가 열정을 발휘한다면 서울 시내에서 상영하고 있는 영화들 중 80% 이상을 볼 수 있다. 실제로 나는 여타의 ‘평범한’ 관객들보다 많은 편수의 영화를 본다. 영화가 업이고 영화글을 쓰기도 하니 당연하다. 그럼에도 일 년에 보는 영화 편수는 해가 갈수록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내가 발휘하기만 하면’ 되는 그 노력과 열정의 크기가 문제다. 내 노력과 열정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노력과 열정만으로 메꿔지지 않는, 아니 메꿀 수 없는 조건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내가 일하는 직장만의 특수한 문제가 아니다. 한국에서 생계를 위해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안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다. 먼저 시간과 체력의 문제. 몇 년 전 선거에서 나왔던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구호가 새삼 떠오른다. 선거 슬로건으로 이런 구호가 나오고 사람들에게 그토록 회자되었던 건, 많은 이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이란 현실에 존재한다고는 하나 경험한 적은 없는 유니콘 같은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유럽의 회사나 기관들과 이메일을 주고받을 일이 많은 내 경우 원래 업무가 오후와 저녁 시간에 몰리는 특수한 사정이 있다. 대신 나는 다음 날 늦게 출근할 수 있다. 주말에 출근하면 주중 대체 휴무를 보장받고, 남자든 여자든 한 달에 하루 보건 휴가를 쓸 수 있다. 세상에 그런 꿈의 직장이 다 있냐고 놀라겠지만 있기는 있다. 다만 월급이 적을 뿐이다. 우리 극장은 비영리재단이고 비상업적인 극장이니까. 그런데 일반적인 노동자들이라고 사정이 많이 다를까. 그들은 아마 나보다 월급을 많이 받을 것이다. 대신 야근과 잔업을 당연하게 요구받고, 정작 당연한 ‘칼 퇴근’은 회사의 특별한 ‘시혜 내지 배려’의 틀 안에서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야근과 잔업에 시달리면서도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 더 적은 월급을 받는 이들도 숱할 것이다. 야근한 다음 날 늦은 출근이 용인되는 사람, 주말에 근무한 대신 주중에 대체 휴무를 보장받는 사람들의 숫자는 또 얼마나 될까. 휴일 수당도 야근 수당도 제대로 못 받는 사람들도 허다하지 않은가. 두 시간 동안 낯설고 좁고 어두운 곳에서 다수의 사람들과 함께 앉아 꼼짝 못 하고 영화를 본다는 것은 의외로 많은 집중력과 체력을 요한다. 나이가 들고 몸이 점차 노쇠해질수록 영화 관람이 요구하는 체력과 집중력이 얼마나 큰지 몸으로 실감하게 된다. 그뿐인가,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서는 영화의 러닝타임만큼의 시간뿐 아니라 극장으로, 다시 집으로 이동하는 시간, 극장에서 표를 사고 대기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하지만 2015년 통계 기준, 한국은 OECD 가입국 중 노동시간 최장 시간 2위를 자랑한다. OECD 국가 평균을 기준으로 했을 때 한국의 취업자들은 하루 8시간 기준으로 43일 더 일하는 반면 실질임금은 80% 수준이라고 한다. 영화를 볼 시간이 물리적으로도 부족하거니와, 어쩌다 시간이 난다 해도 축적된 만성 피로로 영화와 점차 멀어지는 게 지금 한국의 노동자들의 상황이다. 영화가 그나마 상대적으로 적은 돈으로 누릴 수 있는 여가와 문화생활, 자그마한 즐거움이 아니라 점점 부담스러운 사치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티켓값은 어찌나 자주 오르는지. 두 번째, 소수 영화들의 스크린 독과점 현상. 10년 전에 비해 극장 수와 스크린 수는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이런 곳에 극장이 생긴다니 싶은 곳에도 대기업의 멀티플렉스가 들어선다. 번화가가 아닌 동네에 생긴 작은 극장도 최소 네 개 이상의 스크린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곳에서 상영되는 영화편수는? 어쩌다 조금 짬이 나서 동네에서 영화를 보려 하면 흥행 1, 2위라는 영화들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이런 대규모 배급을 하는 영화들, 즉 ‘와이드 릴리즈’를 하는 영화들은 지하철 배차 간격만큼의 빈도로 상영되곤 한다. 그러나 조금 다른 영화, 소위 ‘예술 영화’라 분류되는 영화가 개봉한다고 해서 상영관과 시간을 확인해 보면 영화를 보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알 수가 없는 경우가 많다. 하루 딱 한 번, 대낮 혹은 새벽에만 상영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개봉일을 놓치고 한두 주가 지난 후라면 더욱 영화 보기가 힘들어진다.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서는 연차를 내야 하거나 밤늦게 영화를 본 뒤 택시를 타고 귀가해야 하거나. 올해 초에 소위 ‘천만 감독’인 국내 유명 감독이 저예산으로 찍었다는 어느 한국 영화를 볼 때도 나는 늦은 밤 시간에 영화를 보고 집에 가기 위해 택시를 타야 했다. 어느 새 영화 비용에는 툭하면 오르는 티켓값에 택시비를 당연히 더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나마 택시를 탈 각오를 하고 영화를 보러 가는 것도 체력이 받쳐줄 때, 일이 그나마 한가할 때의 얘기지만. 그나마 다행히 집에서 가까운 곳에 멀티플렉스의 아트하우스가 있는 경우는 어떨까? 내 경우 작년까지 살던 집에서는 걸어서 15분쯤의 거리에 아트하우스가 있었다. 이사를 온 지금도 버스로 20분 정도의 거리다. 하지만 나는 이 극장을 그리 자주 찾지 않는다. 다른 극장들에 비해서는 물론이고 그 극장의 다른 상영관에 비해서도 시설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천장은 낮고 출입구는 상영관 앞쪽, 스크린 바로 옆에 하나만 있다. 엔딩 자막이 올라가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퇴장을 시작하면, 아무리 자막이 올라가는 동안 내가 영화의 여운을 곱씹고 싶어도, 아무리 일찍 퇴장을 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려 해도, 필연적으로 스크린을 가리며 나갈 수밖에 없다. 이 극장만이 아니다. 예술영화를 상시적으로 상영한다는 다른 극장에서도, 이런 영화들은 가장 좌석이 적은 상영관에 배정되고 이런 상영관은 대부분 스크린이 매우 작은 데다, 스크린과 좌석 간 최소 거리도 제대로 확보돼 있지 않다. 스크린 크기 때문에 앞좌석에 앉기라도 하면, 영화 내내 스크린에 난 구멍들을 함께 보거나 고개를 무리하게 위로 쳐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이런 영화들일수록 다른 영화들에 비해 화면의 아름다움이 비상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같은 돈을 주고, 아니 택시비까지 지불하면서도 이런 영화는 더 열악한 곳에서 더 불편한 자세로 봐야 한다. 영화가 좋아 영화 일을 시작한 지 20년이 다 되어간다. 그 사이 영화 산업의 양상도, 관람 환경도 급격하게 바뀌었다. 이제 우리나라는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가 촬영을 하러 오는 곳, 세계적인 스타들이 홍보 투어를 할 때 꼭 들르는 곳이 되었다. 남의 나라 얘기인 줄만 알았던 소위 ‘세계적인 영화제’에 한국 영화가 초청받는 일도 이젠 흔한 일이 되었고, 국가 권력이 노골적이고 직접적으로 검열을 하는 일도 외견상으로는 없어졌다. 속사정이야 어떻든 봉준호, 박찬욱 같은 감독들이 최고 스타인 데다 그들의 영화가 대흥행을 한다며 해외의 거장 감독들이 부러워하는 곳이기도 하다. 동네 곳곳에 영화관이 있고 전 세계의 온갖 영화들이 친절하게 한글 자막을 단 채 개봉을 하며, 철마다 열리는 영화제도 많고 역사도 깊어져 가고 있다. 한국영상자료원의 시네마테크KOFA 혹은 우리 극장에서, 이전에는 책에서 제목으로만 접했던 영화들을 35mm로, 혹은 디지털 매체로 손쉽게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인구 5천 만이 안 되는 나라에서 일 년에 두 편씩, 꼬박꼬박 소위 ‘천만 영화’가 나온다. 반면 어떤 영화들은, 각별한 노력을 거쳐야만 겨우 볼 수 있거나 아예 극장에서 보기 힘들다. 조금 엄살을 보태자면 ‘대기업이 운영하는 멀티플렉스들이 허락한 영화들이나 볼 수 있는 시대’라고나 할까. 어느 분야나 남들이 덜 찾는 항목에 취미나 기호가 있다면 시간과 돈과 발품과 여타의 노력을 들여야 하는 게 사실이라지만, 동네마다 극장이 널려 있고 이렇게나 많은 영화들이 개봉하는 나라에서, 어떤 영화들에는 몸을 축내가면서 지나치게 많은 시간과 돈과 특별한 노력을 들여야 한다. 이렇게 영화가 흔한 곳에서, 영화가 값비싼 사치재가 돼가고 있다.
주성철(이하 ‘주’) 첫 질문은 배우 원진 에 대해 질문하고 싶다. 영화에서 원진은 청량리역 지하보도에서 과격한 액션도 선보이고, 그동안 잘 관리한 상체도 드러내고, 벽 찍고 돌고. 예전에 예광했던 원진의 모습을 보면서 “이 영화는 내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영화다”라는 느낌이 왔다. < 용의자 >는 이 배우를 아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만족시킨 것 같다. 원신연 (이하 ‘원’) 사실 공유 는 워낙 팬이 많고, 김성균 이 최근 <응답하라 1994>로 인기가 많아져 관객들이 이 둘의 격투 액션에 관심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용의자> 개봉 후 무대인 사를 다니면서 관객들의 반응을 보니 지동철(공유)과 SA1( 원진 )의 이야기에 관심을 많이 보이더라. 솔직히 액션의 퀄리티로 만 보면 아쉬운 점이 많았다. 촬영 당시 추운 겨울이었고, 청량리역에서 촬영할 때에는 장소 섭외도 어려웠을 뿐 아니라 유동인구가 많은 장소다보니 일반인 통제도 어려웠다. 3분마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서 이들이 지나갈 때 촬영할 수밖에 없었다. 섭외한 엑스트라보다 일반인이 더 많이 나왔다.(웃음) 이런 상황이다보니 액션을 구현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관객들은 액션을 액션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원진 이 맡았던 SA1 캐릭터의 변화에 대해 많은 반응을 하더라. 과거에는 아크로바틱 액션이 많았는데 현대물에서 소위 ‘고전적인’ 액션이 등장하니 그게 관객들 인상에 깊이 남은 것 같다. 더군다나 와이셔츠가 찢어지면서 몸이 드러나는데, 얼굴은 50대 중반이지만 몸은 공유 와 비슷하니(웃음) 그게 강렬했던 것 같다. 주 < 용의자 >의 액션 신만 놓고 봐도 이 배역을 탐낼 만한 다른 배우도 많았을 것 같다. 하지만 고집스럽게 과거 액션 스타를 기용한 것은 감독의 이 영화에 대한 의지 혹은 열정이 보이는 부분이다. 원진 을 캐스팅한 것 하나만으로도 감독이 이 영화를 어떻게 끌고 나가겠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원 사실 캐스팅이 쉽지 않았다. 원진 은 나에게 영웅이다. 이분은 여전히 액션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고 꿈을 이루기 위해 나아가는 분이다. 나는 예전부터, 그리고 지금도 계속 같이 작업하고 싶다. 그리고 감독으로서 액션배우라서 액션으로만 소비되는게 아니라 배우로서 같이 영화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더라. 상업영화의 시스템에서 보면 사실 ‘이 사람이 과연 연기를 잘 소화할 수 있을까?’ ‘이 정도 비중의 배역이라면 기존의 배우를 캐스팅하는게 좋지 않을까?’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감독 입장에서 관객으로부터 잊힌 배우를 기용하는 것에 대한 논리를 만들어 설득해야 했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과거 우리에게 꿈을 심어주었던 액션 주역들이 영화에 등장한다는 것은 단순히 재미를 넘어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게 나와 같은 감독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유창국 과 원진 은 액션의 대가였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이분들에게서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같은 드라마를 뽑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도 더 도전하고 싶다. 무술감독 원신연 vs 영화감독 원신연 주 감독 이전에 액션 배우, 무술감독의 경력이 있다. 이런 경력으로 미루어 이전에 작업한 < 구타유발자들 >이나 < 세븐데이즈 >보다 앞서 이 영화가 감독의 데뷔작으로 하고 싶었던 영화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원 반대다. 사실 < 용의자 >를 연출하는 것도 아직 이른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1990년 중반에 무술감독을 시작해 < 테러리스트 > 등 몇 편의 영화에서 무술 지도와 대역을 했다. 사실 먹고살기 위해서도 했지만 액션을 할 때 가장 행복감을 느꼈다. 그러면서 < 조폭마누라 >( 조진규 , 2001)의 무술감독 제의가 들어왔다. 당시 단편 < 세탁기 >(2001)를 준비할 때였다. <조폭마누라>에 참여하면 경제적으로 분명 여유가 생겼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빚을 내어 단편을 제작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당시 연출을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액션을 깊이 있게 담아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드라마 요소가 강한 영화로 감독 제안도 많이 들어왔지만 상업영화로는 < 가발 >(2005)로 데뷔했다. 그리고 < 세븐데이즈 >(2007)와 <용의자>(2013)까지 만들게 되었다. 액션이라는 장르는 여전히 나에게 보물창고이고 욕망이다. 그리고 현재 시류와는 안 맞더라도 기술적 요소만 강조된 액션, 디지털 기술로 표현되는 액션보다 몸으로 소화하는 액션을 꼭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러다가 < 용의자 >의 시나리오를 받았고, 액션이 주가 되지만 그 안에서 드라마를 보았기 때문에 연출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동철뿐 아니라 민대령( 박희순 )과 김실장( 조성하 ) 캐릭터의 감정도 관객들에게 표현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관객들이 잘 봐준 게 아닌가 생각한다. 주 < 조폭마누라 >를 거절하고 단편영화에 투신한 것은,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서 결국 연출가라는 꿈을 추구한 것이다. 원 그렇다. < 테러리스트 > 무술지도를 하면서 정두홍 감독과 처음 만났다. 그때 정두홍 감독이 나에게 “우리 액션의 길로 멋지게 가보자.”고 했는데 나는 거절했다.(웃음) 만약 내가 그때 정두홍 감독과 함께 액션을 계속했다면 나도 지금 경기도 어딘가에 집 한 채 장만했을 것이다.(웃음) 쌀도 임금님표 쌀 먹고 있을 것이다.(일동 웃음) 하지만 나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즐거움은 따로 있었던 것 같다. 내 가슴속에 가지고 있는 감정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크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직업이라기보다 나의 삶 자체인 것 같다. 주 < 세븐데이즈 >의 김윤진 , < 용의자 >의 공유 의 캐릭터는 일종의 워커홀릭이다. 그리고 <용의자> 초반에 등장하는 항공촬영이나 영화 전반에서 보여주는 도심 액션을 보면 이전 영화에 비해 액션의 강도가 무척 높다. 개인적으로 ‘촉감이 느껴지는’ 액션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이렇게 영화 속 캐릭터, 그리고 영화자체를 봐도 감독의 집요함, 전투성이 느껴진다. 개인적 성향과 유사한 면이 있나? 원 나의 개인적 성향이나 욕구가 장르를 통해 발현되는 것 같다. 감독이라는 직업은 평소 한없이 게으를 수 있지만 작업에 들어가면 그 순간만큼은 최대한 몰입해야 하는 직업이다. 나는 영화말고 다른 유희가 없다. 오늘도 여기(영상자료원) 오면서 영감을 얻기 위해 OST를 들으면서 왔다. 이게 생활이 되었다. 하지만 꼭 이런 성격이 꼭 장점은 아닌 것 같다. 이런 성격은 아마도 제도권 내에서 영화를 정식적으로 배우지 않은 것에 대한 불안감이 아닐까 한다.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면 나 자신을 용납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 열등의식은 없는데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은 있다. 이런 성격이 영화를 만드는 데 직간접적으로 표현되는 게 아닌가 싶다. 주변 사람들이 좀 쉬면서 작업하라는 조언을 많이 한다. 너무 숨 가쁘게 달리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진 더 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 용의자 >의 등장인물을 말하다 주 캐릭터 얘기를 해보자. 최근 < 용의자 >를 전후로 ‘북에서 내려온 과묵하고 초인 같은 남자’ 캐릭터가 영화에 많이 등장한다. < 베를린 >이 그렇다. 그리고 < 은밀하게, 위대하게 >처럼 다양한 양상으로도 퍼졌다. <용의자>의 지동철은 그중에서도 가장 과묵한 남자다. 이 남자를 어떻게 표현하고 싶었나? 원 지동철의 대사를 다 합쳐보면 A4 두 장이 채 안 된다. 그래도 지동철의 대사를 더 줄였어야 했다.(웃음) 영화를 만들면서 도전을 받을 때가 많다. 이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한국영화들은 너무 설명적이란 느낌이 든다. 관객 중심적으로 영화를 만들기 때문이긴 하지만 관객이 생각할 틈이 없이 너무 떠 먹여준다는 인상을 준다. 스토리나 이야기 구성은 관객들에게 친절할 수 있다 쳐도 극중 캐릭터의 감정까지 그렇게 친절히 설명해야 하나 생각한다. 과묵하고 말 없는 지동철을 통해서도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눈빛 하나로 관객이 더 궁금해하고, 그러면서 관객이 더 몰입하고 이해하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대사보다는 표정, 앞모습보다는 뒷모습을 더 많이 잡고 싶었다. 주 < 용의자 >는 지동철이라는 큰 줄기를 따라간다. 그리고 극중에 나오는 기자 선후배, 최경희( 유다인 )와 주 기자( 김민재 )의 관계도 눈여겨볼 만하다. 주 기자는 자신이 기자의 사명감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서서히 자아를 찾아가는 캐릭터다. 주 기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시사인>의 주진우 기자를 암시한 것인가?(웃음) 그리고 극중 기자라는 직업을 그렇게 그린 데에는 또 다른 메시지가 있나? 원 난 <씨네21> 정기구독자다.(웃음) 얼마 전 <씨네21> 기획특집 ‘기레기는 어떻게 만들어졌나?’를 봤다. 그리고 최근 에스콰이어의 신기주 기자와 인터뷰를 했는데, 기자들이 현재 기자의 세계에 대해 매우 비관적이더라. 영화에는 그냥 ‘주 기자’로 나왔지만 영화에서 이 기자의 본명은 주진웅이다. 하지만 (물론 그러시지 않겠지만)자신의 캐릭터가 영화에 등장하는 것에 대해 불쾌해할 수도 있고, 관객의 몰입도도 떨어질 수 있어서 그냥 ‘주기자’로 표현했다. 아무튼 영화에서 난 사회의 문제와 이슈를 펜으로 표현하는 기자에 대해 가감 없이 보여주고 싶었다. 주진우 기자의 책은 물론 기자들이 쓴 책을 많이 읽으며 기자에 대해 공부했다. 사실 극 중 주 기자보다 최경희(유다인)의 캐릭터가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기자상에 더 가깝다. 지금와서 밝히지만 최경희의 핵심 대사가 있었다. 사실 유다인 씨가 이 한 문장의 대사에 애착을 갖고 영화에 참여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지보다 높지 않고, 대통령보다 낮지 않은 게 거지다. 씨발!”이다. 결국 이 대사가 내가 표현하고 싶은 강도보다 세서 빠지게 되었지만 이런 성격을 가진 최경희가 내가 바라보는 이상적인 기자다. < 용의자 > vs <본 시리즈> 주 < 용의자 >를 <본 시리즈>와 비교하는 사람이 많다. 원 한국 관객들이 한국영화에 박한 면이 있다. 하지만 어떤 특정 영화에 대해서는 관객들의 배려심이 깊다. 이를테면 < 도둑들 >을 보면서 <오션스 시리즈>를 깊게 얘기하진 않잖나? 사실 < 용의자 >가 <본 시리즈>를 표절했다고 부정적으로 얘기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독립 다양성 영화가 아니고 상업영화 시스템 내에서 제작되는 영화라면 <본 시리즈>뿐 아니라 유사한 장르의 영화에 등장하는 흥행 요소들을 배치해 적절히 균형을 맞추는게 일종의 협의사항이다. <용의자> 시나리오를 처음 받고 6개월 동안 시나리오 수정 작업을 했다. 수정하면서 주인공의 감정, 정서를 많이 강조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감독이 생각하는 대로 수정 하다보니 ‘이 프로젝트(<용의자> 제작)가 무산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결국 최초 시나리오의 톤앤매너를 바꿀 순 없었다. 한국의 대중은 이런 속사정을 모르니 어찌보면 <본 시리즈>와 비교하며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어쩔 수 없었던 부분들도 있지만 앞으로 소재적으로나 장르적으로 관객들에게 좀 더 충격을 줄 수 있는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 추격 신의 경우 어떤 면에서는 <본 시리즈> 이상이라 생각했다. 기존의 한국영화 액션에서 볼 수 없었던 장면도 많이 나온다. 원 시각적 요소를 위해 준비도 많이 했고,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결론적으로 <본 시리즈>와 유사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반성을 했다. 유사한 것을 인정한다기보다 오히려 <본 시리즈> 뿐 아니라 기존의 영화들과 차별되는 전혀 새로운 것에 대해 더 고민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반성이다. 만약 <용의자2>를 만든다면 드라마가 중심이 된 액션이 될 것 같다. 액션으로만 < 용의자 >를 봤을 때 화두는 ‘액션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였다. 대부분 제작 환경이 디지털로 변했는데 그렇게 촬영한다면 실감이 안 날 것 같았다. 그래서 수소문을 해보니 액션을 실감 나게 촬영할 수 있는 장비를 보유한 분이 많았다. 다만 이분들이 그 동안 영화에 활용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예산적인 부분에서의 합의도 잘 이루어졌다. 향후 액션영화에도 많이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원신연 이 바라보는 액션영화, 그리고 액션배우 주 < 용의자 >에는 이 영화의 무술감독인 오세운 감독이 엑스트라로 등장한다. 아무래도 무술지도나 액션 경험이 많은 감독으로서 무술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원 지금도 오세운 감독과 만나면 많이 싸운다.(웃음) 나도 촬영하면서 아쉬운 부분이 많았고, 무술감독도 나에게 불만이 많았다. 그리고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무술감독의 역할에 비해 대우를 제대로 못 받는 실정이다. 영화 속에서 그들의 다양한 장기를 펼칠 수 있는 충분한 재능을 보유하고 있는데 아쉽게도 그런 시나리오가 없다. 그리고 그런 시나리오가 있어서 영화화가 된다해도 그에 맞는 금전적 보상이 되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합리한 부분이 많다. 이것은 상업영화 시스템만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무술감독들도 평소에 준비를 많이 해야 한다. 연출자가 요구를 듣고 현장에서 그 외에 3~4개의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만큼 자신감과 노하우가 축적되어 있어야 한다. 주 개인적으로 국내 무술영화의 < 어벤져스 >라고 할 수 있는, 무술 대가들이 대거 참여한 액션영화를 언젠가 꼭 보고 싶다. < 자장가 >( 원신연 , 2002)에 나오는 권성영 무술감독은 마스크도 훌륭하다. 정두홍 , 원진 … 모두가 출연하는 그런 영화 말이다. 원 정두홍 감독이나 오세영 감독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다. 류승완 감독도 그런 욕구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해보긴 했는데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영화를 만들기에 아직 이르다고 생각한다. 제도권 내에서 타협해서 장르영화를 만들기보다 무술 대가들이 그들의 재능을 내세워 자유분방하게 영화에서 표현되게 하려면 내가, 다시 말해 감독의 힘이 강해지는 게 중요하다. 그래도 언젠가 결과(흥행)에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되는 그런 영화를 꼭 한 번 만들고 싶다. (‘주’ 언젠가 꼭 만드신다니… < 어벤져스 >가 아니라 < 익스펜더블 >이 되어도 좋을 것 같다. (일동 웃음)) 얼마 전 < 세븐데이즈 >의 최영환 촬영감독이 자료를 찾다가 < 밥풀떼기 형사와 쌍라이트 >( 신우철 , 1989)을 봤는데, 거기서 대역을 했던 나를 보고 전화를 했더라. “왜 살짝 스쳤는데 두 번 돌아서 화려하게 넘어지냐!”며 면박을 주더라.(웃음) (‘주’ 그 영화는 유창국 과 원진 의 대결을 볼 수 있는 기념비적인 영화다.(일동 웃음)) 이 얘기를 한 이유는 그 만큼 여러 감독이 액션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꾸준히 준비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 용의자 >, 그 이후… 주 < 용의자 > 개봉 후 6개월이 지났다. 돌이켜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원 꼭 < 용의자 >만의 얘긴 아니다. 감독에게 자신의 생각을 마음대로 표현하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작품을 만들수록 제작 환경은 안 좋아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억압이 커진 달까? 작품을 판단하고 검토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이 작품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고민이 커지는 것처럼 말이다. 감독은 누구나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상업영화 시스템과 싸울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용의자>는 조금 불만족스러웠다. 결국 상업영화 논리에 많은 부분 양보했지만 더 많은 대중을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스스로 고민하고 반성하는 중이다. 주 < 용의자 > 엔딩이 속편을 기대하게 만든다. 원 속편은 사실 < 용의자 >를 시작하기 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필요할 것 같다. 감독이 아무리 준비되었다 해도 시나리오 등 탄탄한 설계가 중요하다. 속편에 대한 욕심도 크기 때문에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 다른 감독이 <용의자> 속편을 만드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다만 <용의자>가 프렌차이즈가 되는 것은 반대한다. 아무튼 <용의자> 이후 지동철을 계속 따라가보고 싶은 욕구가 있다. 과연 지동철은 딸이라는 것을 확인했을까? 이후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런 욕구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