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자
- 감독
- 고영남
- 제작년도
- 1976
- 출연
- 황인식, 최유리, 진봉진, 김기주, 조재성, 박동룡, 마도식, 조영수, 김영인, 김기종, 권일수, 정형진, 조대건, 조성구, 정규영, 노사강, 장춘언, 이석구, 나갑성, 안진수, 박부양, 최성규, 임생출, 한명환, 김일, 한주열, 손영순, 박병기, 곽무성, 장일식, 박희진, 최재호, 주일몽, 고옥화
< 대괴수 용가리 >(1967)는 한국영화에서 거의 처음으로 우주적 시점이라고 할만한 것을 보여준다(정확히 말하자면 <대괴수 용가리>가 등장하던 그해 동시도착한 < 우주괴인 왕마귀 >와 함께). 검은 화면에 반짝이는 별, 카메라의 긴 패닝, 이윽고 보이는 푸른 별 지구. 이곳은 우주이다. 곧이어 정체불명의 대규모 폭발을 조사하기 위해 신혼여행지에서 차출된 우주비행사 광남이 지구에 대한 조망 속에서 사건의 발생 장소(핵실험이 일어난 장소)를 정확히 찾아내고, 버섯구름과 그것이 불러일으킨 거대한 지면의 균열을 목격한다. 한편 이 균열에서 시작된 움직이는 지진, 괴지진의 발생지점과 이동경로는 서울에 차려진 괴지진대책본부의 대륙 지도에 투명하게 드러난다(이 지도는 한쪽 면을 가득 채운 유리에 그려져 있다). 중국 서북부(영화에 명시되기는 오비리아라는 가상의 대륙)에서 발생한 괴지진은 황해도를 지나 시시각각 남하해오고, 휴전선 부근에서 솟아나 판문점을 부순다. 괴지진의 정체가 밝혀진다. 용가리의 현현. 이윽고 용가리는 인왕산에 우뚝 솟아 전모를 드러내고 중앙청과 서울시민회관, 서울시청과 남산에 이르는 서울의 중심부를 초토화시키고 급기야 한강다리를 파괴한다. <대괴수 용가리>의 이 지정학적 상상력은 이 영화를 한국전쟁과 그 결과 형성된 이 분단국가의 강렬한 냉전적 상상력의 우화로서 읽게 만들기에 충분해 보인다. “6.25 전쟁 때 북한군 침공의 육로 코스 그대로” 1) 를 밟고 있는 용가리는 이를테면 “괴수 김일성”과 유사해 보인다. 2) 1967년의 시점에 중국 서북부에서(이 지역은 중국이 1964년과 67년에 원폭과 수폭실험을 행하고 있는 장소이다) 발생하여 거듭되는 남하를 거쳐 판문점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서울을 파괴하는 괴수라니! 그런데 이 괴수는 한국영화사 안에서 예외적 형상이지만, 피폭괴수물이라고 할 수 있을 일종의 ‘공통’ 장르의 소산이기도 하다. 만약 이 공통 장르라는 관점에서 이 영화를 본다면, 용가리라는 형상이 지닌 공통성과 특수성은 무엇이며 그것은 각각 어떤 것을 의미하는 걸까? 잘 알려져 있다시피 <대괴수 용가리>는 동시기의 일본 괴수영화 <대괴수 가메라>(1965)로부터 포맷과 기술을 빌려왔다. <대괴수 가메라>는 당시 도호의 고지라 시리즈에 대항하여 다이에이가 시도했던 괴수영화였다. 고지라 시리즈의 1960년대적 전회에 발맞춰 보다 아동친화적인 성격을 띄고 있던 이 시리즈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1960년대 중후반 다이에이의 달러박스로 기능하였다. 오해하지 말 것. 나는 지금 <대괴수 용가리>가 일본 괴수영화의 일종의 아류작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영향관계가 보여주는 바는 피폭괴수물이라는 장르에 내재된 공통성에 다름 아니다. 참고로 말하자면 <대괴수 용가리>는 당시 일반적인 한국영화보다 훨씬 고가로 해외시장에 팔렸으며, 일본을 거쳐 이런 류의 B급 영화들을 만들어내고 배급한 대표적인 프로덕션 중 하나였던 AIP(American International Pictures) 배급으로 1969년이라는 빠른 시기에 미국의 지역 방송국 채널에서 방영되었다. Yongary, Monster from the Deep 이라는 제목으로 공개된 이 영어 버전은 현재 남아있는 <대괴수 용가리>의 유일한 완전판이기도 하다. 과연, 1950, 60년대 미국과 일본의 흥행장에는 방사능 피폭괴수라고 할만한 것들이 범람하고 있었다. 이 영화들은 지독히도 닮은 패턴을 고집하는데 시작은 항상 동일하다. 지구 어디선가 핵실험이 있고 방사능에 피폭된 거대 생명체가 등장한다. 이를테면 거대한 개미떼(<뎀! Them!>(1954)), 거대한 독거미(<타란튤라 Tarantula>(1955)), 거대한 문어(<놈은 바닷속으로부터 왔다 It Came from beneath the Sea>), 거대한 메뚜기(<비기닝 오브 디 엔드 Beginning of the End>(1957)), 거대한 파충류 등등. 이 괴수들은 한결같이 도시로 향하고, 그들의 습격으로 도시는 초토화된다. 이런 식의 피폭 괴수영화의 시작은 1953년 레이 해리하우젠의 스톱모션으로 완성된 거대 공룡 리도사우르스가 등장하는 < 심해로부터 온 괴물 The Beast From 20000 Fathoms>이었다. 이 영화의 성공은 곧 무수한 피폭 뮤턴트들을 양산해내는 기폭제가 되었다. 그리고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괴수들 중 가장 성공적이고 지속적이며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어낸 것은 일본의 <고지라 ゴジラ>(1954)였다. 2016년의 <신 고지라>에 이르기까지 28편의 시리즈를 낳은 이 영화는 모스라, 가메라, 라돈, 킹기도라 등의 수많은 일본산 괴수들이 출몰하게 될 특촬영화라는 하나의 장르를 만들어냈다. <고지라>의 성공은 일본 내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 영화의 영어 편집 버전은 미국과 유럽에서 또한 흥행에 성공했으며, 그 여파는 1960년대까지 이어졌다. <고지라> 이후 일본 괴수영화는 미국과 유럽에서 가장 잘 팔리는 일본영화가 되었고, 고지라는 서구에서 성공한 일본산 서브컬처의 첫 번째 ‘캐릭터’가 되었다. 이 장르의 역사를 상기해보건데, <대괴수 용가리>라는 피폭괴수물은 약간의 지체를 두고 이곳에 도착한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가 등장하던 당시 미국의 피폭괴수물은 이미 그 장르적 사이클을 소진했다. 일본의 경우 ‘고지라’ 시리즈는 1960년대 이후 극적인 성격전환을 거쳤다. 무시무시한 파괴의 괴수 고지라는 <킹콩 대 고지라 キングコング対ゴジラ>(1962)에서 외래의 것(킹콩)에 대항하는 내셔널한 것으로서 자리매김되었으며(고지라는 일본 국회의사당 꼭대기에서 미녀를 희롱하는 킹콩과 맞서 싸운다), <3대괴수 지구최대의 결전 三大怪獣 地球最大の決戦>(1964)에 이르러서는 우주 최강의 괴수 킹키도라에 맞서 지구를 구하는 정의의 사도, 아이들의 ‘친구’로 변모하였다. 이 피폭 괴수영화들이 1945년 이후 핵이 초래한 ‘불안의 시대’의 산물이라는 것은 자명해 보인다. 이 영화들의 등장 이전까지 유일한 괴수영화였던 <킹콩>(1932)이 원시의 섬에서 온 거대 유인원이 뉴욕을 초토화시킴으로써 제국-문명-도시가 식민지-야만-원시에 대해 갖는 공포와 불안을 상징화하는 것이었다면, 1950년대산 피폭괴수 영화들은 핵의 공포를 시각화한다. 이들은 바다 혹은 강 위로, 사막에서, 산꼭대기에서 불현듯 나타나는데, 이 급작스러운 출현이야말로 핵의 위협의 편재성(omnipresence)에 관한 시각적 대응이라고 할 만하다. 동시에 이 괴수가 각각의 개별국가의 영토 내로 들어와서 구체적인 장소를 점유할 때 그 장소의 역사성과 현재성이 불현 활성화된다. 이를테면 제국, 식민지, 전쟁, 냉전의 현재. 종종 이 영화들에 관한 해석이 개별국가의 역사적 상흔과 관련될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여기에서 기인한다. 이를테면 <고지라>에 관한 비평들에서 고지라가 전전의 공습(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폭탄 폭격까지를 포함하여)을 감행하는 미군이자 그곳에서 죽어간 수많은 ‘전쟁의 사자’들의 망령으로 해석되고 있는 것은 장소의 역사성이 이 폐허의 풍경 위에 과거와 현재라는 두 개의 시간대를 겹쳐놓기 때문이다. 고지라와 용가리가 미국의 피폭괴수에 비해 훨씬 더 역사적 기억의 활성화와 관련되어 있는 것은 간단히 말해 도쿄와 서울이라는 장소가 전쟁의 장소였기 때문에 그러하다. 이를테면 <심해에서 온 괴물>의 리도사우르스가 뉴욕을 공격할 때, 그 풍경은 어디까지나 미래시제의 일에 불과하지만(미국 본토에서 전쟁은 없었다는 점을 상기하자), 폐허가 된 도쿄와 서울의 풍경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동시에 불러온다. 따라서 이 일본과 한국의 괴수들이 역사적 기억 자체가 가지고 있는 훨씬 더 다의적인 복잡성과 연결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게다. 피폭괴수는 두 개의 테크놀로지컬한 계보를 가지고 있다. 미국의 괴수들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다면(리도사우르스로부터 시작되는 저 수많은 피폭괴수들의 위대한 창조자는 레이 해리하우젠이다. 그는 <킹콩>의 창조자 윌리스 오브라이언의 수제자였다) 일본의 경우, 모형을 만들고 이를 사람이 뒤집어씀으로써 해결하는 방식, 즉 수트형 괴수로 이를 구현하고자 했다. <고지라>의 제작자들이 대규모 자본의 노동집약적 산물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포기하고 수트형 괴수로 전환 가능했던 이유는 일본에, 특히 <고지라>를 만들어내고 있는 영화사 도호(東宝)에 축소된 공간 및 사물의 구현, 즉 미니어처와 이것들의 정교한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조정 기술의 풍부한 집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1941년 진주만 공습 이후 일본 전쟁 프로파간다가 해군의 대규모 공중전 재현으로 넘어갔을 때 이를 가능케 한 것은 바로 미니어처와 조정 기술이었다. 1942년 진주만 공격 1주년을 기념해서 만들어진 <하와이 말레 해전 ハワイ・マレー沖海戦>은 이 기술의 놀라운 성과를 유감없이 과시하였다. 1500평방미터의 수영장에 6백분의 1의 미니어처를 통해 재현된 진주만 공습은 전전 일본 최대의 공중 스펙터클을 선사했으며, 대동아공영권 최대의 히트작이 되었다. 이 실제를 방불케하는 스펙터클을 창조해내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 것은 이후 고지라의 창조자가 될 츠부라야 에이지(円谷英二)를 필두로 한 도호의 특수촬영 기술진들이었다. 전전 일본 해군 프로파간다 영화의 기술적 역량 속에서 만들어진 <고지라>는 미니어처에 기반한 ‘리얼’한 공간을 창출하는데 성공함으로써 괴수의 무시무시한 난동을 실감나게 그릴 수 있었다. 이 순간에 발명된 수트형 괴수와 미니어처 촬영은 일본 피폭괴수와 미국 피폭괴수를 결정적으로 차이지운 핵심 표상이라고 할만한 것을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 스톱모션의 움직임은 수트형 괴수, 인간의 동작이 배어나올 수밖에 없는 고지라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에 비해 간헐적이고 단속적이며 부자연스럽다. 유인원(킹콩)에서 파충류(리도사우르스)로의 이동이 낳은 지평, 그 형상이 보유하는 인간으로부터의 거리만큼 더 배타적인 타자성의 영역으로 이동해간 이 형상의 ‘낯섬’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인간적 움직임과의 거리에 의해 배가된다. 킹콩의 직접적인 후예로서 리도사우르스는 비록 단독의 거대괴수이지만 그 타자성의 측면에서 보자면 여타의 군집 괴수들, 이를테면 개미, 거미, 메뚜기 등과 그리 다르지 않다. 또 일본 특촬 괴수들의 눈동자가 강조된 눈은 이들로부터 어떤 ‘감정적’인 것을 유추하도록 만든다. 종종 그들은 화를 내거나 두려워하거나 슬퍼하거나 당황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이 인간적인 특징이야말로 고지라에게 그토록 다양한 의미가 부여되는 이유일 것이다. 그것은 미국영화의 괴수들처럼 명백한 타자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관객인 우리는 그들이 결국 인간에 의해 제거되는 순간에, 그리하여 드디어 재난이 수습되고 안정이 찾아오는 순간에 안도하지만, 동시에 통쾌함보다는 마음이 상함을 느낀다. 고지라는 공포의 대상이지만, 또한 연민과 동정, 심지어 희망의 대상이다.(야마네 박사는 피폭을 ‘견뎌낸’ 고지라를 연구함으로써 ‘인류’의 미래에 공헌할 수 있지 않은가라고 짧은 희망을 피력한다). 고지라의 형상으로부터 유래된 이 양가성은 정확히 1950년대 핵을 둘러싼 강력한 프로파간다, 파괴와 절멸의 무기로서의 핵과 평화와 번영으로서의 핵이라는 저 가상적 분할선을 반영한다. 1950년대 중반 이후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의 언명 ‘평화를 위한 핵’이라는 가상은 아마도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프로파간다일 것이다. 그것은 핵 유토피아라고 할만한 것을 만들어내면서 욕망에 어필하였다. 아마도 이 지점이야말로 1960년대 이후 원전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완성되는 것과 맞물려 미국의 파괴로서의 피폭괴수가 사라진 이후에도 일본 피폭괴수가 계속해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원전국가 일본으로의 이동 속에서 특촬 괴수들은 점점 더 인간적 형질이 배가되어갔다. 심지어 이들은 가족을 건사하고(미니라), 아이를 구하고(가메라), 지구를 지킨다(고지라).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1967년의 <대괴수 용가리>는 이 순간 도달한 한국에서의 핵의 관점을 그야말로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피폭괴수의 계보 속에서 무기로서의 핵의 파괴성을 일별하는 한편, 그럼에도 그것이 능히 조절가능하다는 믿음을 설파한다. 과학입국을 선언한 한국의 어린 남자아이는 빛이 나오는 기구로 용가리를 춤추게 한다. 트위스트풍으로 편곡된 아리랑에 맞춰. 그리고 이 믿음 위에서 알다시피 이제 곧 한국 역시 원전국가로 이동해갔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은 풍요와 번영의 핵 이미지를 그 어떤 의심도 없이 수용하였다. 조절가능한 핵, 춤추는 용가리에 대한 믿음은 이곳에서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비록 1979년 스리마일섬에서, 1986년 체르노빌에서, 2011년 후쿠시마에서 파괴와 죽음의 무기/풍요와 번영의 에너지로서의 핵 사이를 긋고 있는 이 분할선이 핵 그 자체 안에서 이미 분할불가능한 것임이 그토록 파괴적으로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 1) 이영미, 『광장의 노래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가』, 인물과사상사, 2018, 119쪽. 2) 김소영, 『근대성의 유령』, 씨앗을 뿌리는 사람, 2000, 27-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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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관의 소설 『나의 삼촌 브루스 리』는 이소룡 세대에게 바치는 절절한 송가이다. 서자로 태어난 집안의 천덕꾸러기 ‘삼촌’은 그 시절의 무수한 사내들이 그러한 것처럼 이소룡을 지극히 흠모했고, ‘그가 간 모든 길을 뒤따르고 싶어 했’다. ‘삼촌’은 이소룡을 따라 무술을 연마하고 몸을 단련한다. 심지어 이소룡은 마치 벼락처럼, 계시처럼 그의 앞에 나타나 삶의 향방을 몸소 손짓으로 가리키는데, 먼 남쪽 하늘을 가리키는 그 손가락 끝을 따라 중국집 배달부인 ‘삼촌’은 홍콩으로 가는 밀항선에 몸을 싣는다. 같은 형태의, 같은 크기의 열망을 품은 무수한 이소룡을 꿈꾸는 자들과 함께. 이소룡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홍콩의 골든하베스트와 워너브러더스는 그의 죽음으로 중단된 영화 < 사망유희 >를 완성하기 위해 이소룡 대역을 찾고 있었다. 영화 속 이소룡의 육체를 대신하는 것. 그건, 이소룡에게 매료된 수많은 아시아의 젊은 남자들의 꿈이었다. 그러나 배는 난파하고, 삼촌과 함께 꿈꿨던 자들은 홍콩 땅은 밟지도 못한 채 피로와 굶주림에 지쳐 가까스로 한국으로 돌아온다. 비록 소설 속 ‘삼촌’의 밀항선은 난파되었지만 우리는 이 꿈과 같은 일이 실제로 누군가에게 이루어졌다는 것을 안다. 본명 김태정, 예명 당룡(이 이름은 < 맹룡과강 >에서 이소룡이 분했던 바로 그 역의 이름이기도 하다)으로도 알려져 있는 이 부산 출신의 사내는 마치 삼촌이 그러한 것처럼, 혹은 같은 꿈을 꿨던 저 무수한 젊은 남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연히 < 정무문 >을 보고 이소룡과 같은 배우가 되기를 꿈꾸며 그의 모든 동작을 따라하기 위해 부단한 연마를 거듭하였다. 김태정은 다른 수많은 아시아의 경쟁자들을 제치고 <사망유희>의 대역으로 발탁되었다(이 영화의 또 한 명의 이소룡 대역은 1980년대 홍콩영화의 스타 중 하나가 될 원표였다). <사망유희> 이후 다시 한번 이소룡의 필름 푸티지를 알뜰히 활용한 영화 <사망탑>에서 이소룡의 동생으로 분한 그는 장 클로드 반담의 데뷔작이기도 했던 < 특명 어벤저 No Retreat, No Surrender >에서 이소룡의 유령 역을 맡은 것을 끝으로 ‘세계’ 영화계를 떠났다.(이 ‘국제적’ 영화인이 마지막으로 준비했던 프로젝트는 한국과 일본, 홍콩, 미국의 합작으로 이루어질 <야쿠자>라는 영화였다. 『무비스트』, 2009.6) 1970년대의 전세계적이고 지역적이었던 이소룡 붐에 대해서 익히 알고 있다고 해도, 단 한번도 부산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사나이가, 단 한마디의 중국어도 하지 못했던 자가 부산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홍콩으로 건너가 비록 한순간이나마 꿈꾸었던 바로 그 신체가 되는 이 이야기에는 여전히 기묘한 울림이 있다. 그것은 단지 이 이야기가 지독한 행운처럼 보여서가 아니다. 오히려 이 기묘함은 『나의 삼촌 브루스 리』가 보여주는 밀항선에 올라타 난파된 저 무수한 꿈들의 강도 때문에 그렇다. 그것은 부산에서 홍콩까지의 거리를 단숨에 압축시켜버릴만큼 강렬하다. 한 시기 한국의, 아시아의 젊은 남성들을 사로잡았던 이 열망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어떻게 가능한 것이었을까? 그런데 다시 말하건데 이들이 꿈꿨던 것은 배우가 아니라, 정확히 ‘이소룡 같은 배우’가 되는 것이었다. 이소룡 영화에서 진정 매혹적인 것(혹은 모방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의 신체 자체이자 그 몸의 운동이다. 매끈한 근육질의 몸, 그것이 만들어내는 동작의 디테일은 끊임없는 복기와 수련으로 가능해질 터, 이소룡 영화가 상영되는 동시상영관이야말로 이 모든 수업이 이루어지는 장소였다. 그곳은 아침에 극장에 들어가면 ‘머리가 아플 지경’이 될 때까지 하루 종일 똑같은 영화를 반복 학습하고 저녁에 되어서야 나왔던 진정 학습의 장이라 할만한 곳이었다.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일일 게다. 이소룡이라는 이 중화권 최초의 국제 스타가 남긴 단 네 편의 영화를 어떤 일관성 속에서 포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홍콩의 골든 하베스트, 이소룡 자신의 제작사인 콩코드 픽쳐스, 할리우드의 워너브러더스가 이런저런 방식으로 관여한 그의 영화는 초국적 시장에 대한 고려 위에서 만들어졌으며 크리스 베리의 언급처럼 “인종적이며 민족적인 동맹의 광범위함”을 특징으로 하는 이 영화들을 유일하게 하나의 일관성으로 묶고 있는 것은 이소룡이라는 강력한 페르소나이다. 공장주와 싸우는 이주 노동자(< 당산대형 >), 스승의 복수를 위해 일본인에 맞서는 수제자(<정무문>), 로마에 도착한 동양인 촌뜨기(<맹룡과강>), 국제 첩보조직과 협력하는 소림사 수제자(< 용쟁호투 >). 인종과 민족과 계급에 관한 이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이소룡이라는 유려하고 아크로바틱한 근육질의 신체를 가로지른다. 게다가 웃통을 벗고 맨몸의 상체를 드러낸 채 적과 맞서는 이 몸은 그 이전의 무협영화가 견지하고 있던 문화적 의장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즉, 이 맨몸은 그 어떤 의장 없이, 오직 아시안, 젊음, 남성이라는 기호만을 남겨두고 있다. 그럼으로 이 몸은 기술과 신체의 연마를 통해 ‘무한히’ 모방 가능한 것이 된다. “로저 무어가 나오는 <007> 영화를 보면 우리가 집에 가서 흉내를 내겠어요? 그건 상상의 나라인 거고. 근데 이소룡이 발을 차는 걸 보면 내가 운동하면 저게 가능하겠구나 싶었던 거지.” 1) 김태정의 이 언급은 저 모방 가능성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보여준다. 이소룡은 당연한 말이지만 동양인 남성이다. 그는 ‘내가 운동하며 저게 가능하겠구나’ 싶은 맨몸의 격투 혹은 단순하지만 숙련이 필요한 오래된 기구(이를테면 쌍절곤)을 쓴다. 이소룡과 제임스 본드. 이는 단지 유행하는 액션 장르영화의 두 히어로를 불러온 것 이상으로 꽤나 흥미로운 대비를 보여준다. <007> 시리즈에서 당신이 기대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 시리즈가 이토록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당대 최고의 미녀들이 분하는 본드걸과 매번 새롭게 선보이는 최첨단 기구들이야말로 이 시리즈가 유지하는 매혹의 기본값이 아닐까. 본드걸을 동반한 이 백인 남성이 헤테로섹슈얼한 남성성을 과시하며 최첨단 기구를 능숙하게 다루며 자신의 능력을 과시한다면, 이소룡(과 한국, 홍콩, 대만, 태국, 필리핀 등등에서 유행했던 ‘권격영화’)은 여자들에게 관심이 없다. 그럼으로 이 동성사회적(homosocial) 영화들은 노골적으로 젊은 남성관객들에게 어필하고자 한다. 동시에 이소룡 영화와 권격영화의 몸들이 보여주는 능력은 단련된 신체를 통해서 발현된다. 요컨대, 이소룡(과 권격영화의 주인공들)은 영국 첩보원이 구사하는 세계 전략과 테크놀로지와 신사다움과 지능이 아닌 맨몸과 오래된 기구를 이용하여 다수를 상대한다. 요절한 이소룡을 둘러싼 저 열망들, 이 지역 일대의 산업화와 도시화라는 공통의 감각이 발생시킨 트랜스내셔널한 아시아적 동일성이라 할만한 것을 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시아적 열망이라고 할만한 저 열망들은 백인 남성에 대한 동양남성의 오랜 좌절과 이 좌절에 대한 상상적 극복, 남성성의 재활성화와 연결되어 있다. 미국 패권하의 아시아 남성들, 계급적 하위자들이 미국에서 온 강한 동양인 이소룡에게 매혹당한 것은 어쩌면 매우 당연한 일이리라. 동시에 최첨단 기구가 장착된 신체와 수련을 거친 맨몸의 능력이라는 이 차이야말로 세계 자본주의 내에서 제1세계와 아시아의 개발도상국에 부과된 역할 분담을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이소룡 붐이 시작된 1973년, 한국은 유신 체제에 접어들었고 그해 8월 경제기획원은 「우리 경제의 장기 전망(1972~1981)」을 발표하며 경공업 중심 산업에서 중화학공업화 정책으로의 전환을 알렸다. 1979년 박정희의 죽음으로 끝나게 될 이 개발근대화 하이모던 철권통치 기간이 홍콩-한국-대만의 권격영화들이 유행하던 시기와 겹쳐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시기 맨몸으로 상경한 산업 노동자(혹은 예비 인력들)들은 맨몸의 저 싸우는 영화들 속에서야말로 진정 신체의 어떤 이상(idea)을 발견한 것인지 모른다. *** 1) 김태정 인터뷰, 『무비스트』, 2009.6.(http://www.movist.com/star3d/read.asp?type=32&id=16400) (관련글) 1. 비행기의 시선, 무정한 시선 - 2021.04.30. 2. 액션영화의 한 기원, 안중근과 무협 - 2021.05.31. 3. '외팔이'의 도래, 1960년대 후반의 무협붐 - 2021.06.30. 4. 태권도 영화- 챠리 셀과 바비 김, 이국적 이름들의 행렬에 관하여 - 2021.07.23. 5. 이소룡적 신체 - 2021.08.24. 6. 김두한과 협객물, 유신 시대의 가장 안전한 쾌락 - 2021.10.01. 7. 브루스플로이테이션과 한국영화 - 2021.11.01. 8. 춤추는 괴수, 1967의 '트위스트' 용가리 - 2021.12.02. 9. 우리는 왜 그때... - 2021.12.24. 10. 용팔이, 1970년대의 과잉과 잉여 - 2022.02.24. 11. 1970년대식 섹스와 폭력, 여감방 영화와 <여수 407호> - 2022.03.22. 12. <삼국대협>, '트랜스내셔널한 어떤 고립에 대하여 - 2022.04.20. 13. '빈곤한 이미지'의 여행- <정도>/<당수태권도>와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 - 2022.05.30.
이명세 의 < M >을 보는 도중에 묘한 데자뷔가 왔다. 2007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가 어떤 면에서 1993년작 < 첫사랑 >의 영화적 환기이거나, 20년을 간극으로 둔 리바이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가만 생각해 보면 둘 다 첫사랑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거니와, 둘 다 이명세 감독의 가장 개인적인 영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르게 단언하건대 <첫사랑>은 이명세의 가장 빛나는 걸작 중 하나다. 1993년 당시 이명세 는 충무로 상업영화계의 새로운 신동이었다. 데뷔작 < 개그맨 >은 그가 배창호의 (보다 뛰어난) 수제자라는 증거였다. < 나의 사랑, 나의 신부 >(1990)는 새로운 한국영화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예언 같았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가 아니었다면 김의석 의 < 결혼 이야기 >(1992)를 비롯한 로맨틱 코미디의 물결은 생겨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갑자기 그 모든 성공을 스스로 비웃기라도 하듯 이명세는 당대의 관객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질 리가 없었을 < 첫사랑 >을 만들었다. 최종 관객은 겨우 5천 명이었다. < 첫사랑 >은 대학에 들어간 열아홉 살 소녀( 김혜수 )가 연극반 연출자( 송영창 )를 짝사랑하고, 몇 번의 데이트와 첫 키스를 한다는, 별것 없는 이야기다. 아니, 여기에는 사실 이야기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 이명세 는 첫사랑의 기억과 감정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그려 내는 데만 집중한다. 이명세는 송영창이 피우는 담배 연기가 바람에 실려 창밖으로 흘러나가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선풍기와 부채를 총동원했고, 60 테이크 이상을 찍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한낮에 반짝거리는 지붕을 표현하기 위해 기와를 모두 식용유로 칠했고, 목련을 모조리 따서 세트에 달았다. 그런 이명세의 방식은 서사를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던 당시의 한국 영화계에서는 가히 도착적인 방식이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런 방식을 통해 이명세 는 < 첫사랑 >이 ‘첫사랑’이 아니라 첫사랑의 ‘기억’에 대한 영화라는 걸 분명하게 한다. 첫사랑은, 그것이 누구의 첫사랑이든 관계없이, 한 인간의 인생에서 가장 짜릿하면서도 슬픈 기억이다. 그것은 중년이 된 어느 날 신발 끈을 묶다가, 혹은 평소처럼 버스를 타고 광화문을 지나가다, 불현듯 찾아와서 심장을 두들긴다. 이명세는 자신의 기억을 토대로 첫사랑의 순간들을 마치 세밀화를 그리듯이 재현하고, 중요한 것은 이야기가 아니라 첫사랑에 빠졌던 순간의 풍광과 기억이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나는 김혜수 가 자전거를 타고 벚꽃이 날리는 거리를 내달리다가 송영창 의 창가로 부유하는 장면을 떠올리는 순간 여전히 뭔가 끓어오르는 감흥을 느낀다. 그것은 스타일과 이야기가 완벽하게 합일된, 혹은 오로지 스타일로서 온전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마술 같은 순간이기 때문이다. < 첫사랑 >은 이명세 가 ‘스타일리스트’라는 이름을 얻게 된 첫 번째 영화였고, 이명세는 같은 접근법으로 <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를 만들며 상업적인 감각과 자신의 스타일을 버무리는 데 (처음으로) 성공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가 자아내는 마법 같은 순간은 < 형사 >와 < M >에서 다시 재현되지 않았다. 이명세의 영화에 대한 접근법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개인적으로 우겨보자면, 나는 이명세 영화의 즐거움이 CG의 발전과 함께 사그라졌다고 믿는다. 여기서 내놓고 싶은 또 다른 이름은 팀 버튼이다. 팀 버튼의 몰락은 사실상 CG 발전과 함께 이루어졌다. 그의 영화는 수공예로 정성스럽게 창조한 아날로그 특수효과의 지장 속에 있었다. < 비틀 주스 >나 < 배트맨 > 시리즈, < 가위손 >과 그 이후의 영화들을 한번 비교해 보시라. 그가 자신의 수공예적 상상력을 번들거리는 CG로 재창조하는 순간 물리적인 아름다움은 처절하게 거세된다. 이명세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의 초기작들이 주는 감흥은 ‘손맛의 상상력’이라고 믿는다. 혹은 ‘손맛의 공간감’이라고 믿는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창조한 <지독한 사랑>의 세트를 한번 생각해 보라. 그 꿈처럼 가짜 같은 바닷가의 집은 CG로 재창조하는 순간 꿈이 아니라 그냥 가짜가 될 것이다. 손맛을 흉내 낸 CG 이미지가 그걸 대체하는 순간, 이명세의 스타일은 묘하게 숨이 죽어 버리는 것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이명세 의 최고작을 꼽으며 < 첫사랑 >, < 지독한 사랑 >, < 인정사정 볼 것 없다 > 사이에서 망설일 테지만, 손맛의 스타일리스트로서 이명세의 가장 순수한 절정이 <첫사랑>이었다는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한마디 붙이자면, 이명세 감독의 초기작들은 < 개그맨 >을 제외하면 DVD로 좀처럼 발매되지 않고 있다. 이건 거의 문화재 관리 직무 유기에 가까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