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 트리거
- 감독
- 앤디 시다리스
- 제작년도
- 1988
- 출연
- 존 아프레, 구지 쿡크, 스티브 본드, 도나 스피어, 호프 마리 카톤, 해럴드 다이아몬드, 로베르타 바스크, 로드리고 오프레곤, 브루스 펜홀, 신시아 브림홀
누군가의 사진첩을 들여다보는 것은 언제나 흥미롭습니다. 소소한 일상의 흔적과 기억이 담긴 사진첩 속에서 그 누군가는 영화 한 편의 주인공이 됩니다. 사진첩의 주인공은 자신만의 독특한 감성으로 재미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죠. 그렇다면 한국영상자료원이 소장한 ‘어느 영화인의 사진첩’에서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많은 영화인들이 소중하게 간직했던 그 사진첩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단계는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며, 두 번째 단계는 영화평을 쓰는 것이며, 세 번째 단계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라는, 프랑스 누벨바그 시네마의 거장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이 유명한 말은 한국의 수많은 시네필에게 영화 사랑 정도를 측정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주1 영화를 사랑하는 것이 반드시 영화 창작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영화 창작 욕구가 없다고 영화를 사랑하는 것이 부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의 영화 사랑 정도가 트뤼포가 말한 저 세 단계 중 어느 경지에 있는지 재본 적이 있지 않을까? 게 중에는 실제로 영화 창작의 꿈을 펼치는 이가 있을 것이고, 영화에 관한 글 혹은 영상을 쓰거나 만드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저 영화 보는 즐거움을 온전히 누리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사랑의 정도를 단계로 매겨 고수와 하수로 평가할 일은 사실, 아니다. 영화를 사랑하는 각자의 방식이 있을 뿐, 정해진 단계란 있을 수 없다. 트뤼포가 말한 세 단계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걸으며 영화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이도 있다. 이 글에서 소개할 ‘사진첩’의 소장자, 고(故) 홍영철(1946~2016) 선생이 바로 그런 분이었다. 그도 처음에는 여느 영화팬과 마찬가지로 영화 보는 걸 즐기는 것에서 시작했다. 그러다 그는 영화에 관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고, 이윽고 자신이 모은 자료들을 정리하며 영화사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20대 초반, 영화를 즐겨 보면서 입장권을 버리지 않고 모았다. 포스터와 신문광고 같은 것을 함께 모으다 보니 재미가 있더라. 그러다가 체계적으로 자료를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971년이다. 영화에 빠지면서 그에 대한 정보를 접하려 했지만 어려웠다. 변변한 자료집 하나 없었으니. 그래서 처음부터 내가 이것을 해야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시작했다. - “ 한국 영화사 연구가 홍영철에게 ‘영화도시 부산’의 길을 묻다 ”, 《부산시보 부산이라 좋다》, 2014. 8. 25. 1946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전쟁 때 피난으로 부산에 정착했다. 젊은 시절, 영화를 즐겨 보며 입장권을 모으던 데서 시작해, 영화 포스터와 스틸, 전단 등 영화와 관련된 자료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직접 카메라를 들고 부산의 여러 영화관을 돌아다니며 극장 간판 사진을 찍었고, 영화관에 대한 자료를 모았다. 1971년부터 본격적으로 수집을 했다고 하니, 2016년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꼭 45년 동안 수집한 자료의 양은 실로 어마어마할 것이다. 당연히 그는 자료를 수집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수집한 자료들을 정리해 『한국영화도서자료편람 1925~1990』(한국영상자료원, 1991)과 『부산영화 100년』(한국영화자료연구원, 2001), 『부산근대영화사: 영화상영자료 1915~1944』(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편, 산지니, 2009), 『부산극장사』(부산영상위원회·한국영화자료연구원 엮음, 부산포, 2014) 등의 책을 편찬했다. 그리고 2017년, 홍영철 선생의 유족은 그가 반평생을 넘게 수집한 자료들을 부산시에 기증했다. 자료의 원본은 부산시 부산영화체험박물관에서 보존·관리하기 시작했는데, 2019년에 한국영상자료원은 부산시 부산영화체험박물관과 업무협약을 맺고 일부 자료를 디지털 복사본의 형태로 기증받았다. 한국영상자료원이 이번에 공개한 “ 영화 수집가 홍영철 소장 일제강점기 영화 사진 컬렉션(부산시 부산영화체험박물관 기증) ”은 바로 이들 자료 중 일제강점기 영화 사진을 정리해 해제를 덧붙인 것이다. 이 컬렉션에는 1923년 하야카와 고슈(早川孤舟)가 연출한 < 춘향전 >부터 1944년 방한준 감독의 < 거경전 >까지,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제작된 극영화 70여 편의 스틸 132점이 디지털 파일의 형태로 소장되어 있다. 그런데 이 중에는 언뜻 영화 스틸 같아 보이지만 영화 스틸이 아닌 것도 섞여 있다. 사진 속에는 그 유명한 영화 < 아리랑 >(1926)의 감독이자 배우로도 인기 많았던 나운규 가 등장하고, 그와 함께 <아리랑>에서 열연을 펼친 배우 남궁운 과 주인규 가 출연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사진들은 심훈 이 1926년 11월 9일부터 12월 16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한 영화소설 「탈춤」의 스틸이다. 극의 한 장면을 실사(實寫)로 촬영한 스틸인데 영화가 아닌 소설의 스틸이니, 그렇다면 ‘소설 스틸’이라고 하는 게 좀 더 정확할까? 그런데 잠깐만! ‘소설 스틸’이 무슨 말이냐고? 문자를 존재의 수단으로 삼는 ‘소설’이라는 장르에 시각 요소가 핵심인 ‘스틸’이라는 용어가 붙은 합성어가 말이 되냐고? 하신다면…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 잠시, 1920년대 중반에 등장한 ‘ 영화소설 ’이라는 문화현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10년대까지 ‘영화 관람의 시대’를 보낸 식민지 조선의 영화계는 1919년 < 의리적 구토 >를 시작으로 본격 영화를 만드는 시대를 맞았다. 이와 함께 영화의 대중적 인기도 날로 높아졌다. 이를 반영이나 하듯, 1920년대 중반부터 여러 신문은 연재 소설에 삽화 혹은 연출된 사진을 수록하고, 여기에 ‘영화소설’이라는 표제를 달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이 ‘영화소설’이 일련의 공통된 양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기왕의 신문 연재 소설과 다른 특별한 양식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보다 당시 신문들이 앞다투어 사용한 ‘영화소설’이라는 표제에는 나름의 마케팅 전략이 숨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영화소설을 문학 장르가 아닌 ‘문화현상’이라 언급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선에서 처음으로 ‘영화소설’이라는 표제를 달고 신문에 연재된 것은 김일영의 「삼림의 섭언」이라는 작품으로, 이는 《매일신보》를 통해 1926년 4월 4일부터 5월 16일까지 총 7회에 걸쳐 연재되었다. 1920년대는 조선총독부가 문화통치의 일환으로 민간 신문 발행을 허용했던 때로, 1910년대까지 총독부 기관지로 독주했던 《매일신보》는 이제, 1920년에 창간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의 민간 신문과 경쟁해야 했다. 이런 배경에서 1926년에 《매일신보》가 처음 도입한 ‘영화소설’은 당시 영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신문 판매 부수로 견인하려는 전략이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외일보》 등도 잇달아 ‘영화소설’이라는 표제를 단 작품들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주2 영화소설을 신문 마케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은 《매일신보》에 「삼림의 섭언」이 연재되고 약 6개월 후, 《동아일보》에 연재된 「탈춤」(1926. 11. 9.~12. 16., 총 34회 연재)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동아일보》는 「탈춤」 연재를 시작하기 하루 전, 다음과 같은 홍보 기사를 게재했다. 사진: " 창작 영화소설 탈춤(예고) 심훈 작 ", 《동아일보》, 1926. 11. 8., 3면 심훈의 「탈춤」을 “조선서 처음되는 영화소설”이라고 홍보하고 있지만, 이미 수개월 전 ‘영화소설’이라는 표제를 달고 연재된 작품이 있기에, 이는 당연히 사실이 아니다. 이 홍보 기사에서 방점을 찍어 주목할 부분은 따로 있다. 기왕의 신문 연재 소설과 다를 바 없이 삽화를 수록했던 최초의 영화소설 「삼림의 섭언」과 달리, 「탈춤」은 “매일 삽화 대신으로 미려한 실연 사진”을 수록한다는 점이다.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차용했을 ‘영화소설’이라는 표제에 대해 최초라는 타이틀은 다른 신문 다른 작품에 뺏겼지만, 《동아일보》는 처음으로 소설에 “실연 사진”을 도입하는 차별화 전략으로 신문 독자들에게 영화 관람 못지않은 기대감을 심으려 했을 것이다. 비로소 그 실상이 공개된 「탈춤」의 스틸은 화려한 캐스팅마저 자랑했다. 연재 첫 화의 스틸에는 같은 해 공개돼 화제를 모았던 영화 <아리랑>의 감독이자 스타 배우 나운규가, 또 같은 해 < 장한몽 >(이경손, 1926)의 심순애 역으로 스타 반열에 오른 김정숙 을 안고 비장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이어지는 회마다 차례로 공개된 스틸에는 <아리랑>에서 현구 역으로 큰 인기를 끈 배우 남궁운과 악역 연기의 일인자로 정평이 난 주인규가 등장했다. 스틸 캐스팅만으로도 당대 소설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데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다. 영화소설 「탈춤」을 읽는 재미는 이뿐이 아니었을 것으로 보인다. 연재되는 사진 위에는 상황을 요약한 지문 내지는 등장인물의 대사가 말풍선으로 제시되었다. “영화 수집가 홍영철 소장 일제강점기 영화 사진 컬렉션(부산시 부산영화체험박물관 기증)” 속 영화소설 「탈춤」 스틸 역시 연재 당시에 다음과 같은 말풍선과 함께 실렸다. 소설을 읽고 사진을 보면서 말풍선으로 제시되는 대사로 등장인물의 목소리를 상상하는 재미까지 의도한 듯한 구성은 어느새 독자들에게 ‘진짜로’ 만들어진 혹은 만들고 있는 영화라는 생각을 들게 하지 않았을까? 특히 보통의 소설처럼 서술되던 내용이 연재 후반부에 이르러 갑자기 영화 시나리오 형식으로 제시되었을 때, 이러한 의심(?)은 더욱 짙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작가 심훈은 연재 중 불쑥 등장해, 다음과 같이 변명을 하기도 했다. 결혼식까지 하게 되기 전에 여러 가지 층절이 잇서 좀 더 세밀한 묘사를 해야 할 것이나 “스티-ㄹ”(삽화 사진)이 부족 해서 부득이 겅정겅정 뛸수밧게 업시되얏고 결혼식 장면은 전문용어만 쓰지안코 원 영화 각본을 꿈이는 체로 시험삼아 써봄니다. - " 탈춤(26) ", 《동아일보》 1926. 12. 6., 3면 그런데 작가의 이 말은 또 다른 혼란을 가중한다. 심훈은 극 중 혜경이 준상의 강압으로 그와 결혼식을 치르는 과정을 세밀하게 전개하지 못한 이유를 스틸이 부족한 탓으로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과 스틸의 주객이 전도되는 순간이다. 소설의 스토리를 뒷받침해 주는 보조 수단이 스틸이어야 하는 것이 마땅할 텐데, 이 순간부터는 역으로 소설이 스틸의 스토리를 보완하는 장치가 되어버린다. 처음부터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소설 연재가 기획된 것인지 아니면 연재하던 중에 영화화가 결정된 것인지 전후 사정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어찌 되었든 영화소설 「탈춤」은 연재가 끝난 그 이튿날, 영화 제작 소식을 전했다. 조선키네마프로덕션에서 제작할 영화 < 탈춤 >은 원작자 심훈이 각색을, 나운규가 감독을 맡을 예정이었다. 나운규를 비롯해 소설 스틸에 출연한 남궁운과 주인규가 영화에서도 그대로 출연할 계획이지만, 여배우만큼은 전격 신인으로 교체하리라고 발표되었다. *주3 그러나 영화 촬영은 예고했던 것처럼 수월하게 진행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듬해 7월, 《조선일보》는 그간의 각색 작업을 마치고 계림영화사 제작 아래 심훈이 감독을 맡을 것이라고 알렸다. 배우 역시 선정 중이라고 밝혀, 영화소설 「탈춤」 스틸에 출연한 배우들마저 전격 교체될 것임을 시사했다. *주4 그러나 영화 <탈춤>에 대한 소식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주5 대신 심훈은 1927년 9월, 자신이 쓴 시나리오 < 먼동이 틀 때 >를 촬영하며 첫 메가폰을 잡았다. 심훈의 연출 데뷔작 <먼동이 틀 때>(1927) * 공교롭게도 영화소설 「탈춤」이 신문에 연재 중이던 때에 「탈춤」 스틸에 출연한 나운규, 김정숙, 남궁운, 주인규는 조선키네마프로덕션 제작, 나운규 연출의 < 풍운아 >에도 출연했다(1926년 11월 19일 크랭크인, 1926년 12월 18일 조선극장에서 개봉). 그 때문인지 나운규가 자동차 뒤에 매달린 스틸은 훗날, 영화 <풍운아>의 스틸로 소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스틸이 영화소설 「탈춤」에 수록된 날짜(1926. 11. 15.)가 <풍운아>의 공식 크랭크인 날짜보다 나흘 앞선다는 점에서, 그 정보는 수정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 주1. 정성일에 따르면, 이 말은 일본을 경유하며 와전된 것이라고 한다. 사실 트뤼포는 ‘시네필로서 어떤 순간에 감독 혹은 비평가가 되려 했는가’라는 질문을 반추하며, 자신의 비평집 『내 인생의 영화(Les Films de ma vie)』에서 영화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첫 번째 단계는 영화를 많이 보는 것이며, 두 번째 단계는 영화관을 나서면서 감독을 적어 두는 것이며, 세 번째는 연출의 자리에 가서 내가 선택한 같은 영화를 몇 번이고 다시 보는 것”이라고 밝혔다. 정성일, 「트뤼포, 영화를 사랑한다면 이 사람처럼」, 앙투안 드 베크·세르주 투비아나, 『트뤼포 시네필의 영원한 초상』, 을유문화사, 2006, 980~981쪽. 주2. 《매일신보》의 영화소설 게재 배경 및 특징에 대해서는 배현자·이혜진, 「근대 영화소설의 처음과 끝- 『매일신보』 영화소설」, 『한국 근대 영화소설 자료집: 매일신보편 上』, 소명출판, 2019, 3~34쪽 참고. 주3. 《동아일보》 , 1926. 12. 17., 5면. 주4. 《조선일보》, 1927. 7. 23., 2면. 주5. 심훈은 “촬영을 개시하기 6일 전에 초지(初志)를 뒤집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탈춤」은 부르주아의 생활 이면을 유치하게나마 그린 것이 되기 때문에 스케일이 여간 크지가 않고 출연 인원도 엄청나게 많은 동시에 한 이천 원 한도하고 촬영비를 내게 되는 터라 그러한 여러 가지 이유로 도저히 실현시킬 수 없는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라고 회고했다. 심훈, 「『먼동이 틀 때』의 회고-조선영화감독고심담」, 『심훈문학전집 1』, 탐구당, 1966, 577쪽; 주인, 「영화소설 정립을 위한 일고- 심훈의 탈춤과 영화평론을 중심으로」, 한국어문교육연구회, 『어문연구』, 34권 2호, 2006, 267쪽에서 재인용.
박찬욱 감독의 11번째 장편영화 < 헤어질 결심 >(2022)의 제목은 주체의 ‘의지’를 강조한다. 제목의 주체는 이별을 방해하는 것에 대항해 자기 의지를 다지고 필요한 전략을 실행하고 목표에 도달하고자 한다. 제목만 보면 이 영화는 낭만적인 주체의 세계 대 자아 혹은 자율적인 이성 대 (무)의식적인 욕망 간의 투쟁으로 추정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의 실체는 정반대다. 인간중심적인 주체의 의지를 강조한 이 제목은 반전을 위한 ‘미끼’다. 실제로 영화가 강조하고 관심을 갖는 것은 인간들 사이의 정서적이고 투쟁적인 관계를 넘어, 인간과 비인간, 생물과 무생물, 인공과 자연, 물질과 비물질, 감정과 행위, 데이터와 의미, 사건과 시스템을 가로지르는 다양한 행위자들(actors)의 복잡한 배치와 네트워크이다. 그렇기에 박찬욱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이 영화와 가장 닮은꼴을 찾아본다면 < 파란만장 >(2011, 33분)일 수 있다. 이정현과 오광록 주연의 <파란만장>은 KT의 제작지원을 받아 미디어아트 작가인 박찬경과 함께 작업한 단편으로 당시 신형이었던 아이폰4로만 촬영을 해서 극장 개봉을 했다. 이 영화는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던 시점에 전문가적 역량을 어디까지 구현할 수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 제작된 캠페인 영화였다. 두 감독은 각종 취미 및 생활기계가 하나의 기기 안에 통합돼 있으면서도 휴대성과 편재성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개별 기기들의 고성능 라인에 근접하려는 목표를 세우고 있던 스마트폰을,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귀신의 시공간에 접속할 수 있는 영매의 역량으로 은유화 한다. 즉 비인간 기계와 초월적인 영적 존재 사이의 경계를 허물면서 이질적인 것들을 채널링하는 그들의 공통역량을 조명한다. <헤어질 결심>은 짐짓 ‘나’의 정체성을 허물 정도로 깊은 사랑에 빠진 두 사람, 서래(탕웨이)와 해준(박해일)의 파괴적 관계에 집중하는 전통적인 멜로드라마를 가장한다. 그러나 자아와 타자의 경계와 정체성의 “붕괴”는 인간들 사이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 시대 행위자들의 경계는 어떤 면에서 이미 ‘나’ 아닌 것에 매개되고 ‘지금-여기’ 아닌 시공간에 연결되어 있기에 이미 붕괴되어 있다. 영화는 ‘사랑’이라는 근대 사회에서 헤게모니를 갖고 있는 감정언어로 최종적으로 번역되기 이전의 현상, 즉 다층적으로 배치되고 네트워크 되어 있는 행위자들과 그들이 모이고 교차하는 마디점들(nodes)의 감각적 민족지학에 더 관심이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의지(의식의 의미화)와 감정(정동의 의미화)이 있기 전의 사건들을 관찰한다. 경찰인 해준이 졸음 방지를 위해 동료인 수완(고경표)과 통화를 하며 밤 운전을 하는 장면에 나온 대사는 인간주체의 의지를 먼저 앞세우는 습관에서 벗어난 인과관계의 전복을 보여준다. 주체로서의 ‘너랑 나랑’을 강조하는 수완에게 해준은 “잠복해서 잠 부족이 아니라 잠이 안 와서 잠복근무하는 거야”라고 말한다. 영화는 이러한 경계의 무너짐과 네트워크 현상을 강조하기 위해 의인화를 탈피한 비인간 중심의 응시를 곳곳에 배치하고 이질적 시공간을 오고가며 낯설게 사건들을 연결하는 교차편집 기술을 부각시킨다. 특히 시체와 휴대폰부터 디지털 워치, 소프트웨어, 유튜브 플랫폼, 오늘날의 영화체계, 산과 바다, 폭력적이고 잔인한 이민 체계와 가부장제까지 무생물과 비물질의 응시가 이 영화에선 탈인칭 쇼트뿐 아니라 시점 쇼트로도 작동한다. 그래서 영화는 두 사람의 관계와 감정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영화 전반적으로 매우 소란스럽다(내가 끝내 이 영화에 몰입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뿐 아니라 다종다양한 무생물 행위자들도 네트워크에 연결된 자기의 행위성을 숨기지 않기 때문이다. 시끌벅적한 눈들은 일종의 평등함을 부여받는다. ‘인간중심의 좌표를 벗어난 주체의 해체, 비인간적 주관성은 인간도 물질적이고 창발적인 세계의 질료 중 하나가 되게 만든다.’ (스테이시 알라이모) 비인간 시점은 영화사에서 여러 감독들에 의해 다양한 목적을 갖고 사용되어 왔다. 동물, 유령, 신, 사물들, 자연 풍경, 기계와 시스템은 비인간 시점을 표현해온 대표적 행위자들이다. 이 비인간-눈들은 장르적이든 그렇지 않든 대개는 친밀하고 낯선 기이함(the uncanny)의 느낌을 통해 자아와 타자, 내부와 외부,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를 흔들면서 불안정성을 만드는 데 기여해왔다. 비인간 시점의 미학적 실천은 최근 들어 한층 빈번해지고 있는데 주요하게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하나는 기후위기에 대한 발본적 성찰로 인간중심성을 해체하려는 경향이고, 다른 하나는 디지털화로 인한 물질적인 것의 재규정이다. <헤어질 결심>의 비인간 시점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사랑으로 번역된 것의 네트워크에는 두 사람의 마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인간과 비인간의 동맹이 있다. 영화는 그것을 종종 쇼트와 역쇼트를 하나의 쇼트 내에 보여주는 유사-주관적 시점으로 보여준다. 크레딧 타이틀 이후 나오는 첫 씬에선 서래의 남편인 기도수의 시체의 눈 안쪽으로부터의 응시를 보여준다. 시체 내부로부터의 시점으로 인해 눈동자의 실핏줄과 망막 위를 기어 다니는 클로즈업된 개미가 보인다. 그리고 저 멀리 역쇼트에 해당하는 암벽을 오르는 해준과 수완이 한 프레임에 담기게 된다. 쇼트에 해당하는 보는 주체와 역쇼트에 해당하는 보이는 대상이 한 프레임 안에 담긴다. 그러나 이것은 전통적인 주관적 시점이 아니다. 시체를 ‘보고 있는 주체’로 설정할 수 없기 때문에 영화는 보고 기록하는 기능을 갖고 있는 기계와 같은 시스템으로 표현할 뿐이다. 해준이 그 시체를 보지만 시체 또한 해준을 보고 있다. 그 눈은 살인의 증거를 보았던 눈이기도 하고 살아있을 적에 서래를 폭력적으로 소유하고 통제하던 눈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눈이 현재 어떤 인간적인 욕망과 의지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표현은 특히 병원의 컴퓨터 모니터 화면에 띄워진 서래 몸의 멍든 사진을 보며 해준이 마우스로 이미지를 확대해 픽셀이 가시화될 때, 휴대폰으로 서래와 문자를 나누거나 녹음된 음성파일을 들을 때 두드러진다. 화면 내부로부터의 시선, 즉 시스템의 시선은 해준과 기계가 서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해준과 서래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후 이포와 부산에 떨어져 있을 때, 해준은 밤에 잠이 오지 않자 서래와 문자를 주고받는다. 서로만 아는 방식으로 농담을 할 정도로 관계가 발전해 가는 상황에서 서래가 문자를 쓰고 있는 중임을 표시하는 “…”는 해준의 마음을 동요시킨다. 그것은 기대와 설레임 등으로 언어화할 수 있다. 이 순간 카메라는 다시 휴대폰 내부로부터의 시선을 유지하며 스크린에 표시된 “…”와 휴대폰 스크린을 보고 있는 해준의 얼굴을 디졸브 시킨다. 해준은 “…”의 표현(농도, 깜박임, 지속시간 등)을 포함한 휴대폰의 문자 시스템과 동맹 중이다. 서래와 해준이 서로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번역기와 녹음기를 사용하는 설정도 마찬가지다. 번역기 사용으로 인해 둘의 표현은 문어체에 가깝거나 직설적이게 되고, 심지어 오역을 만들어 낸다. ‘마음’은 ‘심장’으로 번역된다. 사극 드라마를 통해 배운 서래의 한국어는 고풍스럽다. 해준은 서래가 ‘꼿꼿해서’ 좋다고 고백한다. 소프트웨어와 미디어의 사용은 서래를 더 ‘꼿꼿한’ 이미지로 만들어 준다. 해준과 서래가 이포에서 재회한 후, 해준은 서래가 입은 옷의 색상에 집착한다. 그 옷은 청색인가, 녹색인가. 서래를 목격한 사람들은 동일한 드레스를 저마다 달리 증언한다. 그리고 해준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진다. 이 장면은 다분히 2015년 즈음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던 드레스의 색상 논란을 염두에 둔 농담이다. 당시 같은 드레스를 놓고 흰색 바탕에 금색 줄무늬로 보는 사람들과 검은색 바탕에 파란색 줄무늬로 보는 사람들로 나뉘어 뜨겁게 논쟁을 했다. 드레스의 주변 밝기가 동일한 드레스를 다르게 보이게 한 것이다. 인간은 대상만을 떼어내 색을 판별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밝기에 맞춰 원래 색을 판별하려 한다. 뇌는 환경에 맞춰 색체보정을 하고 여러 번 보다보면 학습에 의해 색은 새로운 정보에 상관없이 고정된다. 해준은 서래를 판단함에 있어 새로운 정보가 들어올 때마다 지속적으로 조정한다. 해준은 끊임없이 정보를 찾고 주변 환경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이며, 사건이 종결되기 전까지 의미는 고정되지 않은 채 열려 있어야 한다.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는 이상 잠은 불가능하다. 심지어 해준은 꾸준하게 정보를 잘못 읽는다(서래의 몸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운다고 착각했던 것을 생각해 봐라). 오늘날의 세상에서 정보는 쉴 틈 없이 생산되고 또한 왜곡되기 때문에 세계(사건)의 종결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서래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종결하는 법을 안다. 그는 살인자다. 그는 타인뿐 아니라 자신의 삶마저 언제 끝낼지를 주체적으로 정하려 하는 이다. 서래는 주변 환경에 크게 휘둘리지 않고 욕망을 응시하는 이다. 그렇다고 비인간 네트워크를 거부하는 자는 아니다. 그는 오히려 자기가 갖고 있는 기기들을 목적에 맞게 이용한다. 스마트폰의 위치기록 기능을 정확히 알고 있으며, 그 기능을 역으로 사용해 정보를 기록하고 자신의 알리바이를 만든다. 시스템에는 구멍이 있다. 해준은 ‘사랑’이란 말을 직접적으로 한 적이 없지만 서래는 해준이 범행증거를 없애버리라고 한 말과 해준 자신이 붕괴되었다는 말을 ‘사랑’으로 번역한다. 해준이 정보 수집가라면 서래는 번역하는 사람이다. 해준이 미결자라면 서래는 종결자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상대적으로 꼿꼿한 사람이고, 스스로 소프트웨어 혹은 시스템이 될 줄 아는 사람이다. 서래는 해준이 멀리 바다에 던져버리라던 휴대폰 대신 스스로를 바다에 묻는다. 위치기록 소프트웨어에서 그의 위치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사랑의 네트워크에 구멍을 낸다. 이제 사건 혹은 의미화의 종결은 구멍으로서만 가능하다.
2021년 10월 15일 정연씨에게, 정연씨, 한국 영화를 싫어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얼마 전 물으셨지요. 평소 그랬듯 무슨 대답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한편으로는 설명하기 싫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싫은 까닭을 설명하려면 밝힐 일이 너무 많아 말로는 도저히 정리할 수 없었던 탓입니다. 그래서 글로 대답을 드리려 하지만, 이것도 매우 어중간한 대답으로 그칠 것 같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에도 싫음과 그 여파가 한국 영화와 제 사이를 가로막고 있고, 이 주제의 중대성이 제 기억과 이해력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기 때문입니다. 1) 그렇습니다, 정연씨. 제가 지금 정연씨에게 쓰고 있는 건 편지입니다. 공교롭게도 정연씨에게 처음 편지를 쓴 날이 2015년 10월 15일이더군요. 기억하시나요? 정확히 7년 만에 다시 펜을 들게 되었습니다. 7년 동안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너무 많은 것이 변해 그전과 지금을 같은 세계라고 할 수 없을 정도지만 솔직히 말하면 변하지 않은 것들도 많습니다.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정연씨는 그동안 아기를 낳고 일산으로 이사 갔으며 네 권의 책을 내고 한편의 시나리오를 쓰고 백스물두번의 토크 사회를 봤으며 담배를 끊고 살이 쪘지만 여전히 브릿팝을 듣습니다. 달라진 게 있다면 LP판으로 브릿팝을 듣는다는 사실이겠지요. 정연씨가 휴대용 턴테이블을 문보영 시인에게 선물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무슨 연유로 정연씨는 그렇게 아름다운 선물을 받은 걸까요. 문보영씨의 인상적인 에세이 <일기 시대>에는 MBTI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보영씨의 성격 유형은 INFP로 ‘열정적인 중재자’였는데 어느 날 INFJ ‘선의의 옹호자’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정연씨는 INTP ‘논리적인 사색가’이지요. 두 유형은 서로에게 부족한 점을 채워주기 때문에 잘 맞다고 합니다. 특히 비즈니스 파트너로 찰떡궁합이라는군요(참고로 저는 MBTI를 한번도 해보지 않았습니다. 너무 오만해서일까요, 너무 겁쟁이라서일까요. 어쩌면 이 둘은 같은 거 아닐까요). 아무튼, 정연씨는 턴테이블이 아까우니 LP를 들어야겠다 생각하고 시험 삼아 LP를 샀다지요.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수십년 간 들어온 브릿팝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제프 베조스는 정연씨가 주문한 New Order의 네 장의 LP판 중 두 장을 찌그러지고 우그러진 상태로 배송했지요. 그럼에도 당신의 못말리는 구매욕은 사그러들지 않았습니다. 도이치그라모폰에서 발매한 자비스 코커와 칠리 곤잘레스의 “ROOM29”를 주문했으니까요. “ROOM29”는 선셋대로의 전설적인 호텔 샤또 마몽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앨범이라고 하더군요. 자비스 코커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레코드는 영화가 인간 존재에 끼친 영향에 대한 것입니다. 저는 그 지점에 완전 푹 빠져 있어요. 2) 자비스와 칠리가 2017년에 런던 바비컨 센터에서 공연을 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정연씨, 상우씨와 바비컨 센터를 걷던 2019년의 어느 가을 날이 생각납니다. 두 사람은 점심 대신 칠리 페퍼 아이스크림을 먹었지요. “ROO29”에도 이런 제목의 곡이 있네요. “Ice Cream as Main Course.” 우연의 일치일까요? 이 모든 것이 예견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 전체가 말이지요. 사태를 다음과 같이 요약해보겠습니다. 좋아하는 음악: 브릿팝(25년째) 좋아하는 뮤지션: 뉴오더(25년째) 기록 시스템: 미니컴포넌트 -> CD플레이어 -> 아이팟 -> 스포티파이 -> 턴테이블 본질은 그대론데 실존만 바뀌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턴테이블로까지 브릿팝을 듣는 정연씨가 조금 지긋지긋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사람들이 영화를 향유하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합니다.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하는 시즌제 드라마가 저에게는 루이 푀이야드 같은 감독의 연속영화(serial film)를 연상시키기도 하니까요. 참고로 정종화 연구원은 연속영화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장편 극영화가 정착되기 이전인 1910년대 초반부터 프랑스, 미국 등지에서 제작되고 유행했다. 주로 활극적인 내용을 2권(롤) 1편으로 구성하고 그 편의 마지막에 위기일발의 장면(cliffhanger)을 넣어, 최종편이 끝나는 12, 13주부터 24, 25주 동안 관객들이 매주 영화관을 다니도록 만드는 형태다.” 3) 어쩐지 욕하면서도 < 오징어게임 > 다음화를 클릭하는 제 친구를 떠올리게 하는 설명입니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많은 것이 다르겠지만요. 하지만 정말 다를까요? 뭐가, 얼마나? 우리 몸의 모든 세포가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바뀌는데 걸리는 시간은 1년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동일한 신체를 유지하고 있는 건 시스템의 동적평형 때문이지요. 일본의 생물학자 후쿠오카 신이치는 이렇게 말합니다. 엔트로피 증대의 법칙에 항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시스템의 내구성과 구조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시스템 자체를 흐름에 맡기는 것이다. 변화란 어쩌면 이런 것 아닐까요. 질서는 유지되기 위해 끊임없이 파괴되지 않으면 안 된다. 4) 여기 질서/파괴와 관련된 또 하나의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가 편지를 주고받았던 2015년 10월, 저는 고다르가 남가주 대학에서 토론 중 한 말을 인용하며 편지의 끝을 맺었습니다. 2015년 10월 31일이 보낸 편지였지요. 그리고 7년이 지난 2021년 10월 30일, 정연씨와 저는 강릉영화제에서 “한국영화에서 길 잃은 한국사람들”을 주제로 토크를 할 예정이지요. 정연씨가 보내온 대본 초안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더군요. 지돈: 그러나 사람들은 한 편의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오지 않나요? 정연: 그런 점을 바꾸고 싶다. 나는 사람들이 다른 영화들을 보러 올 때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우리 에세이-필름을 보러 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것은 바뀌어야한다.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무대를 가로지르며) 그것은 단지 영화를 만드는 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지돈: 관객을 바꾸려고 한다는 말이에요?! 정연: (관객을 바라보며) 세계를 바꾸려고 하고 있다. 그렇다. 5) 저는 정연씨의 이 대본이 진담인지 농담인지, 과거에 우리가 나눈 원고-편지에 대한 단순한 패러디인지 진의를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저희에게는 몇 가지 논쟁점이 더 있지요. 정연씨는 최근 홍상수의 영화에 빠졌고 21세기 한국영화는 홍상수다 , 라고 주장하는 꿈을 종종 꾸기도 합니다. 저로 말할 거 같으면, 한국 영화에서 길 잃은 가장 큰 이유가 바로 홍상수(또는 김기덕)이며 그를 생각할 때면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해집니다. 제가 한국 영화로 진입한 첫번째 입구였던 봉준호와 박찬욱이 지금까지 든든한 이정표가 되었다면 아마 저는 길을 잃지 않았을 것입니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자리를 보며 길을 찾을 수 있는 시대의 사람이 될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어떤 별은 너무 환하게 불타 쳐다 볼 수 없을 정도고 어떤 별은 블랙홀에 흡수됐으며 어떤 별은 낙하해서 코앞을 스쳐지나기도 합니다. 길을 알려주기는커녕 우리의 행성을 박살내려는 양 말입니다. 바로 그것이 홍상수고 그러므로 저와 정연씨가 10월 말에 강릉에 가는 건 우연이 아닙니다. 홍상수의 영화에서 강릉이 어떤 장소인지 기억하시나요? < 강원도의 힘 >이 20세기 영화라는 이유로 우리의 에세이 필름에서 제외하려는 생각은 하지 마시길. < 밤의 해변에서 혼자 >에도 강릉이 나오니까요. 저는 정연씨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스트리밍 사이트에 있는 모든 홍상수 영화를 봤습니다. 영화에서 송선미 분이 김민희 분에게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을 설명하네요. “꼭 읽을 책을 사. 그래서 그 책을 깊이 만나. 정말 싸우듯이 그렇게 만나야 돼, 책하고.” 알겠죠, 정연씨? 꼭 읽을 책을 사세요. 샀던 책은 그만 사시구요. 2021년 10월 24일 정연씨에게 어제 정연씨와 리들리 스콧의 신작 < 라스트 듀얼 > GV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은 쓸쓸하기만 했습니다. 가을이라서 그런 걸까요? 지나치게 일찍 찾아온 추위 때문에 온몸이 떨려서 그런 걸까요? 저는 오늘 검색을 통해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좋은 작품에 비해 GV는 좀 아쉽더군요. 오른쪽에 계신 작가님이 이야기를 벌여놓으면 왼쪽에 계신 평론가님이 수습하고 정리하는 진행이 다소 매끄럽지 않아 그렇지 전 꽤 유익하고 좋았습니다!! - 네영카 및 익스트림 무비 자유게시판에서 발췌 보시다시피 정연씨가 또 한번 저를 구원했습니다. 정연씨가 아니었다면 GV는 수렁에 빠졌을 게 분명합니다. 저희가 처음했던 GV 기억하시나요? 빔 벤더스의 영화 < 에브리띵 윌 비 파인 >이었죠. 저희의 GV는 어느 네티즌에 의해 “올해 최악의 GV”로 선정되었습니다. 이후 더 이상의 GV 섭외는 없었죠(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지금이라도 영화 관계자 분들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저희는 운좋게 GV 계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정연씨는 과거의 오욕을 극복하고 이동진-되기를 달성한 것처럼 보입니다. 흔들림 없는 눈빛과 감미로운 목소리, 아담 드라이버의 잘생김 연기와 리들리 스콧의 의사-페미니즘에 대한 시의적절한 논평… 거리두기로 인해 구 아이맥스 관이었던 용산 CGV 4관의 거대한 스크린으로 접한 정연씨의 모습은 새로운 평론가의 탄생을 보는 듯했다고, 어느 관객은 말했습니다. 그러나 여기 또 한번 놀라운 우연의 일치가 있습니다. 2015년 10월을 가로질렀던 저희의 편지에 리들리 스콧의 이름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도 오늘과 같은 날인 10월 24일, 제가 정연씨에게 보내는 편지에 말입니다. 저는 < 마션 >을 보고 난 뒤 이렇게 씁니다. <마션>을 보니 리들리 스콧은 하수라는 저의 심증이 확증으로 굳어졌습니다. 그는 쓸개 빠진 곰처럼 굴더군요. 꼬리를 흔드는 곰이란! 과거란 대체 무엇인가요. 정연씨. GV에서 차마 말하지 못했지만, 제 마음 속에 울리는 말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합니다. 그리고 과거에 일어난 일은 언제나 지금도 일어납니다. 그 일치가 너무 놀라워서 손에 쥔 상상 속의 펜을 바닥에 떨어뜨릴 지경입니다. 아무래도 편지 따위를 쓰지 말았어야 했나 봅니다. 자기 자신한테서 벗어나질 못하니 말입니다. 사실 저는 편지를 혐오합니다. 과거의 편지에서도 내내 투덜대더군요. 편지는 21세기 최대의 가식이다, 편지를 쓰느니 돼지를 잡겠다…(이건 앨프레드 테니슨의 말입니다). 그러나 가끔 편지가 위대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유령작가 리 이스라엘의 예를 들겠습니다. 그녀는 1967년 캐서린 헵번과 스펜서 트레이시를 다룬 에스콰이어지 기사로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비타협적이고 시니컬한 브룩클린 출신 유대계 레즈비언이었던 리 이스라엘은 이후 탈룰라 뱅크헤드와 도로시 킬갈렌 같은 여성들의 전기를 쓰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됩니다. 그러나 운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그녀가 작업한 화장품 업계의 대부 에스티 로더의 책이 처참한 평가를 받게 되거든요. 그녀는 이후 긴 슬럼프와 가난, 정신적인 궁핍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런 리 이스라엘을 구한 건 편지였습니다. 1990년대 까지만해도 유명인들의 편지는 비싼 값에 거래되는 고서적 같은 물품이었습니다. 뉴욕의 서점들은 낡은 서랍에서 나온 편지를 구매하고 수집가들에게 되팔았지요. 리 이스라엘은 편지를 위조하기 시작했습니다. 빛바랜 종이와 오래된 타자기를 사용해 작가나 코미디언, 배우의 문체를 흉내낸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의 끝에 어설프게 위조한 서명만 하면 작업 끝! 아무도 그녀의 위조 편지를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뿐이었죠. “도로시 파커는 역시 너무 유머러스해! 그녀의 성격이 편지에 묻어나네요.” 그러나 결국 리 이스라엘의 사기 행각은 FBI에게 적발됩니다. 리 이스라엘은 죽는 날까지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서전을 썼고 그 이야기는 영화화가 되었지요. 자서전과 영화 모두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생생히 울립니다. 편지는 내 최고 걸작이고 나는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 리 이스라엘의 편지 쓰기를 로지 브라이도티의 “변신: 되기”의 개념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요? 저는 리 이스라엘이 도로시 파커나 헤밍웨이, 노엘 카워드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편지가 되었지요. 이른바 편지-되기. 그리고 그녀의 편지는 수신자에게 배달되지 않습니다. 편지 속의 수신자는 처음부터 위조된, 가짜 수신자일 뿐이지요. 진짜 수신자는 익명의 군중이며 이 편지는 시작부터 오배의 가능성 위에서 쓰였습니다. 아즈마 히로키는 <존재론적, 우편적>에서 썼지요. “’유령’은 우리가 생각하기에 모든 시니피앙에 필연적으로 따라다니는 확률적 오배가능성, 오배될 가능성(약속)과 오배되었을지 모르는 가능성의 조합에 다름아니다.” 6) 리 이스라엘이 고스트라이터였다는 사실이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요? 제가 한국영화와 아무런 관련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에세이 필름과도 관련이 없구요. 그러나 저는 여기서 아주 간명한 하나의 방법을 배웁니다. 우리가 한국 영화의 얼굴과 언어와 불화하면서도 앞으로 계속 나아가려면, “나”를 대체해야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번에는 로지 브라이도티를 인용할 차례입니다. 되기들은 외부의 다른 타자들과 끊임없이 마주치면서, 주체를 그 자신의 한계까지 밀어붙인다. 비통일적 실재로서의 유목 주체는 자기 추진적인 동시에 이질적으로 정의되거나 외부를 향한다. 모든 되기는 소수자로, 다시 말해 그들은 필연적으로 그리고 필수적으로 고전적인 이원론의 ‘타자들’ 방향으로 움직인다. 즉, 그 과정에서 이 타자들을 대체하고 재영토화하지만 항상 일시적인 기준으로만 그렇게 한다. 7) 김홍준의 < 나의 한국 영화 >를 보라고 했던 제 말을 기억하시나요? 임재철 평론가는 폴 발레리가 “비평이 대상에 대한 것이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을 처음 인식한 사람이라고 말했지요. 우리의 에세이 필름은 더 나아가야 합니다. 나와 자기 자신 너머로, 포스트-미Post-Me, 포스트-(내)얼굴… 임재철 평론가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떠오르네요. “금정연은 영화 감독을 해야돼. 근데 마스크를 써. 얼굴을 가려. 너무 착해보이잖아.” 부디 무사히 강릉에서 뵙길 바라며. *** 1) <작가의 편지>(마이클 버드, 올랜도 버드, 황종민 옮길, 예술문화, 2021) 2) "How a mythical Hollywood hotel inspired Jarvis Cocker's and Chilly Gonzales' project about the magic of cinema", <Loud and Quiet> 3) " 연속영화와 연쇄극, 극영화의 등장 ", 정종화, KMDb 4) <생물과 무생물 사이>(후쿠오카 신이치, 김소연 옮김, 은행나무, 2008) 5) <고다르 X 고다르>(데이비드 스테릿 엮음, 박시찬 옮김, 이모션북스, 2010) 6) <존재론적 우편적>(아즈마 히로키, 조영일 옮김, 도서출판b, 2015) 7) <변신: 되기의 유물론을 향해>(로지 브라이도티, 김은주 옮김, 꿈꾼문고, 2020)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7) , 금정연, 2021.10.08. 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8) , 정지돈, 2021.11.05. 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9) , 금정연, 2021.12.03. 1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0) , 정지돈, 2021.12.31. 1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1) , 금정연, 2022.03.02. 1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2) , 정지돈, 2022.03.30. 1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3) , 금정연, 2022.05.11. 1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4) , 정지돈, 2022.06.10. 1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5) , 금정연, 2022.07.08. 1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6) , 정지돈, 2022.08.03. 1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7) , 금정연, 2022.08.31. 1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8) , 정지돈, 2022.10.14. 1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9) , 금정연, 2022.11.11. 2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0) , 금정연, 2022.12.07. 2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 정지돈, 2022.12.15. 2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2) , 정지돈, 2022.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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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수집가 홍영철 소장 일제강점기 영화 사진 컬렉션 (부산시 부산영화체험박물관 기증) | 132건 | 2026-05-27 | 2025-04-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