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명미상(순종황제 인산)
- 제작년도
- 1926
<질투>(한형모, 1960) 촬영 현장, 한형모 감독의 뒷모습 (박승배 촬영감독 기증) 한국영화의 '퀴어함'이 장르나 소재, 영화사적 순간 등에 반영되는 양상을 분석합니다. 감독 한형모 는 1950년대 한국 영화에서 대중성과 통속성에 있어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동시대 유명 감독들 신상옥 , 이만희 , 김기영 , 유현목 같은 자기만의 고유한 주제의식이나 미학을 가진 작가로 평가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는 여성 인물을 매개해 대중이 쉽게 매혹될 만한 선정적인 스펙터클을 전면에 내세우고 장르적 오락성을 중점에 두면서도, 결말에서 여성 인물에 대한 순치와 처벌의 서사를 통해 보수적인 도덕성을 거스르지 않는 통속 영화들로 이름을 날렸다. 그렇기에 한형모의 작가성에는 늘 매혹과 순응, 현대와 전통이라는 모순된 단어들이 함께 붙게 된다. 감독 데뷔작이자 최초의 반공영화인 < 성벽을 뚫고 >(1949)와 한국전쟁 중 제작된 다큐멘터리 <정의의 진격>( 1부 1951, 2부 1952)을 제외하고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여성이 주인공인 멜로드라마,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이 다수를 차지한다. 촬영감독으로 영화 경력을 시작했던 만큼 그의 작가성으로 기술적 유려함, 다양한 장르를 결합시키는 능력(첩보+멜로, 로맨스+코미디, 멜로+뮤지컬 등)을 언급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여성 주인공에 대한 이중 의식이다. 전후 혼란 때문에 오히려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했던 1950년대에 한형모 영화의 여성 주인공들은 얼핏 보면 당대 가장 진취적인 여성들의 샘플처럼 보인다. (좌) <운명의 손> 중 마가렛/정애 / (우) <여사장> 중 요안나 <자유부인> 중 오선영 첩보멜로물인 < 운명의 손 >(1954)의 주인공 마가렛/정애는 북한 간첩이자 ‘양공주’로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 어느 쪽에도 포섭되길 거부하고 개인의 욕망을 끝까지 추구한다. < 자유부인 >(1956)의 오선영은 교수 남편이 있지만 경제적 욕망과 결혼제도 바깥의 성적 욕망을 동시에 드러낸다. 이후에도 스튜어디스인 < 순애보 >(1957)의 인순부터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출판사 사장인 < 여사장 >(1959)의 요안나, 산부인과 의사인 < 남성 대 여성 >(1959)의 윤송희, 유도 유단자인 < 언니는 말괄량이 >(1961)의 안순애까지 여자 주인공들은 경제적 독립 속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삶을 살아갈 만한 직업과 사회적 위치를 갖고 있다. 세련되고 도시적인 삶을 살아가는 여자 주인공들의 생활 묘사에서 ('남성혐오'를 포함한) 성적 욕망의 적극적인 표현, 서구문화의 소비, 자본주의 상품에 대한 갈망은 구분되지 않는다. 이러한 전문직 여성의 라이프스타일 혹은 자유분방하고 당당한 개성은 당대 여성 관객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형모의 영화는 일관되게 서사적으로 이들을 결국 순치시키고 처벌하며 가부장제 안으로 복귀시키는 결말을 갖는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하나같이 타락하거나 병적인 인간상으로 그려지며, 가부장의 그늘을 거부하는 경우 살인, 강간, 사기 등에 위협적으로 노출된다. 시대적으로 앞서간 여성 인물을 스크린에 가시화한 반면, 그만큼 처벌하고 순치시키는 과정도 선정적이고 폭력적으로 그려냈던 이중적 태도야말로 그의 작가성이라고 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현대적 여성의 매혹적 스펙터클은 길고 디테일하게 묘사되는 반면(사실 관객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바로 여성 주인공이 화려하게 전시되는 영화적 순간들이기 때문에), 순치의 과정은 서사적 비약이라고 느껴질 만큼 짧고 급작스럽게 그려진다는 것이다. 매혹적 스펙터클을 만들어 내는 긴 시간 동안 독립적이고 자유분방한 여성들은 사회의 성차별과 가부장제의 부당함을 논리적으로 설파하게 된다. 그러다가 갑작스럽게 자신을 죽여 달라고 요구하거나, 남편의 물리적 힘이 약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후 갑작스럽게 현모양처로 돌변하고, 자신의 욕망을 모두 헛된 꿈, 허영으로 환원한다. 영화도 그들이 자진해서 죄를 고백하고 가부장제가 지정한 자리로 재귀한다는 것이 영화 내적으로 설득력이 없을뿐더러 그저 감독 자신의 혹은 기성 사회의 바람일 뿐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현재 프린트가 남아있지 않아 영화를 확인할 수 없는 < 질투 >(1960)는 이와 같은 한형모의 작가성이 순도 높게 구현된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현대성은 동성애이다. 동성애는 영화의 가장 선정적이고 호기심 갖게 하는 마케팅 포인트이자 결국은 교정되고 처벌받아야할 대상이다. 당시 신문광고에 실린 영화의 포스터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실려 있다. “이성애의 공포가 동성애로 변한 것은 세계적인 풍조일까?” -《동아일보》 1960. 5. 25. “동성연애서 엉크러지는 일대의 질투, 국제무대에 파문을 던질 최고 이색편!” -《경향신문》 1960. 5. 7. 두 번째 문구가 적혀있는 포스터가 1960년 5월 22일자 《동아일보》에도 실려 있다. 즉 동성애를 세계적이고 국제적인 유행과 동시대성으로 연관시키며 선정적인 호기심을 부추긴다(유명한 여성 동성애 영화 두 편, 오드리 햅번과 셜리 맥클레인 주연의 < 아이들의 시간 >(윌리엄 와일러, 1961)이 1961년 할리우드에서, 로미 슈나이더 주연의 < 제복의 처녀 >(게자 본 라드바닐, 1958)가 1958년 독일에서 개봉했다). 동성애는 이 영화의 세련된 차별점이다. <질투>는 한국영화사에서 영화제작과 개봉이 확인된 최초의 레즈비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한형모의 다른 여성 주인공들처럼 이 영화의 재순 역시 주장이 분명하고 자기 욕망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는 여성이다. 한형모는 배우 문정숙에게서 톰보이 기질 혹은 여성의 남성성을 포착하며 <질투>와 <언니는 말괄량이>에 연이어 출연시킨다. 문정숙 이 맡은 재순과 안순애는 모두 부치 레즈비언 혹은 남성성을 드러내는 여성으로 볼 수 있다. 두 영화 모두 그 이유를 '남성혐오'에서 찾는다. 특히 <질투>의 재순은 한국전쟁 당시 강간을 당하고 병적으로 남성을 증오하게 되었다고 대사 속에서 기술된다. 입양된 동생인 금이( 전계현 )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사랑, 즉 동성애는 독자적 욕망일 수 없으며 필히 이성애의 대체제로만 가능하다. 여성 동성애는 '남성혐오'의 병적 증상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모두 재순이나 금이 등 여성 인물이 아닌, 집안의 가부장인 오빠 재수와 정신과 의사의 해석일 뿐이다. 오히려 금이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분명히 표현하는 재순은 과거의 일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는다. 재순은 그저 금이를 사랑할 뿐이며, 그것이 폭력적 집착일지라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금이를 위할 선택을 할뿐이다. 금이에 대한 사랑과는 별개로 이성애 결혼과 남편에 순종하는 아내의 역할을 강요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재순은 여성에게 결혼이 왜 부정적인지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재순은 오빠의 아내인 남이( 김신재 )에게는 “난 여자가 남성의 노예가 돼서 하루 종일 그 봉사만을 위해서 산다는 것이 행복하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데요”라고 한다. 또한 금이의 약혼자 광호의 어머니에게는 “어머니도 여자분이니까 그 점을 아실 겁니다. 우리들의 어머니나 할머니가 남성들한테 받아온 압박을 금이한테까지 당하게 할 순 없단 말이에요”라고 말하며 여성들의 동의를 구한다. 놀랍게도 서사적으로 볼 때 적대 관계에 있음에도 광호의 어머니는 “나도 그 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이라고 답한다. 적대관계에 있는 여성들의 동의마저도 얻어내며 여성들을 규합하는 재순의 말은 여성 관객들을 머리와 마음을 흔들었을 것이다. 또 금이의 장래와 관련해 재순은 “훌륭한 음악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재수는 “훌륭한 가정부인이 돼”야한다고 대치한다. 재순은 성폭력 트라우마의 증상을 보이지 않으며 남성과의 만남에서도 두려움이 없고 합리성에 근거해 이성애중심주의와 가부장제를 정확하게 비판한다. <질투> 중 재순과 이금 (박승배 촬영감독 기증) 재순은 친동생처럼 함께 자란 금이와 정서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쌓아왔으며 한 방을 쓰면서 육체적 관계도 가진 것으로 암시된다. 또한 재순의 문제가 “동성연애”냐고 재수가 묻자 금이는 긍정을 표하며, 금이의 옛 이웃 광호가 등장하며 단순한 S 언니-동생 사이에서 “동성연애”로 관계 혹은 욕망이 바뀌었음을 암시한다. 금이와 재수 사이에 이어지는 대사는 재순을 병리적 인물로 보고 있지만, 동시에 재순과 금이의 관계가 단순한 자매애나 여성적 친밀감을 넘어섰음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재차 확인한다는 점에서 통쾌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금이는 “사랑은 역시 이성에게서 느끼는 애정만이 인생을 즐겁게” 한다며 재순과의 동성애 관계와 광호와의 이성애 관계를 비교적 대등하게 놓고 비교한다. 한형모가 견지하는 선정성과 현대성, 서구의 유행에 대한 호기심과 물신화, 그리고 언제든지 순치시킬 수 있다는 가부장제적 자신감은 동성애라는 욕망을 매우 선명하고 직접적으로 가시화할 수 있게 한다. 게다가 재순의 (이해 불가능한) 동성애를 설명하려는 의도는 곧장 가부장제와 결혼제도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으로 이어진다. 관객들은 재순의 사랑에 공감하는 것을 넘어서, 혹은 그에 앞서 그의 논리에 설득당하게 되는 것이다. 재순의 질투와 집착은 지나치게 커지고 금이와 광호의 결혼을 막기 위해 살해 시도까지 간다. 재순의 폭력성은 그의 남성성의 표현이 된다. 재수와 금이는 재순을 정신병원에 입원시켜 약물치료를 통한 동성애전환치료를 받게 한다. 명목상으로는 성폭력 트라우마와 '남성혐오'를 고치는 것이라고 나오지만 결국은 동성애를 이성애로 교정하고 순치시키는 폭력이 된다. 재순의 사랑의 원인은 재순 스스로 말하듯 그저 사랑에 기인할 뿐이다. 그것이 파괴적 사랑이었다 할지라도 말이다. 이 폭력적 교정은 매우 짧은 하나의 결말 장면으로 묘사된다. 시간을 건너뛰어 급하게 마무리되는 마지막 장면에서 동성애전환치료를 ‘성공적으로’ 마친 재순은 금이와 재수, 재순을 좋아하던 영기와 의사가 모인 앞에서 “꿈에서 깬 것 같다”라고 말한다. 공격적으로 보일 정도로 말 많고 논리적이던 재순의 저 응축된 한 마디 대사는 문자로만 표현되어 있지만 공허한 눈을 목격한 것처럼 느껴진다. 병원장면은 논리와 설득력이 부재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이며 아이러니한 연극이며 그로테스크한 악몽이다. 재순은 앞의 긴 시간이 꿈이라고 했지만, 실은 병원장면이야말로 허상이자 꿈처럼 느껴진다. 한형모가 반복적으로 결말에서 여성들을 처벌하고 순치시키며 가부장제와 강제된 이성애로의 자리로 보내려는 시도는 실은 반복적으로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관객들이 결말의 보수적 안전함 속에서 주목하고 환호했던 것은 바로 ‘꿈’과 '병증'으로 취급된 동성애 욕망이기 때문이다. 조혜영(영화평론가) l 영화적 순간들을 공유하고자 글을 쓴다. 영상문화 기획연구 단체 '프로젝트38' 연구원, 『원본 없는 판타지』(2020), Mediating Gender in Post-Authoritarian South Korea (2024) 등 공동 집필.
지난 6월 21일, 로빈 하디의 < 위커맨 >는 개봉 50주년을 기념하는 4K 복원판이 영국에서 첫 월드 프리미어를 가졌다. 이후 미국 전역을 비롯한 각 국가 개봉에 이어 10월에는 현존하는 본편 3개 버전과 방대한 서플먼트 그리고 폴 지오바니와 밴드 마그넷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을 포함한 5 디스크 DVD 박스세트가 출시되었다. 동시에 <위커맨: 공식 스토리>라는 신간도 함께 출판되면서, <위커맨>은 올해 복원된 고전 중에서 가장 활발한 커리어(!)를 이어가는 히트작이 되었다. 이미 개봉 40주년을 기념한 디지털 복원판이 한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에서 상영되었던 전력을 떠올려보면, 새로운 4K 복원판에 대한 식지 않는 관심은 진정한 컬트 고전으로서 <위커맨>이 가진 위상을 다시 한번 증명해 보인 셈이다. 요란스러운 상찬과 제사에 불구하고, 컬트의 지위를 가진 대부분의 걸작들이 그러하듯 <위커맨>은 시작부터 개봉까지 쉬웠던 순간이 하나도 없었던 고난의 영화였으며, 바로 그런 이유로 말 그대로 복원과 부활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위커맨>은 < 발자국 >(Sleuth, 1972)로 유명한 작가 안소니 샤퍼가 제작사 ‘브리티시 라이언’의 당시 대표를 맡고 있던 제작자 피터 스넬 그리고 해머의 드라큘라 재생산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한 배우 크리스토퍼 리와 1967년 출간된 데이빗 피너의 소설 ‘의식(Ritual)’의 영화판권을 공동으로 구입하면서 시작되었다. 개발에 난항을 겪던 프로젝트는 당시만 해도 ‘듣보'였던 로빈 하디가 의기투합하면서 주말동안의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순식간에 하우이 경사를 중심으로 한 제대로 된 시나리오로 전개되었다. 완성된 시나리오에 만족한 스넬은 ‘저예산으로 제작할 것'이라는 조건을 붙이고 비로소 <위커맨>은 1972년 가을 크랭크인에 들어갔다. 촬영은 약 7주 가량 25개 스코틀랜드 지역 곳곳에서 진행되었지만, 정작 로케이션 중에서 진짜 섬은 한곳도 없었다. 로빈 하디는 공간의 통일성을 위해 이곳 저곳에서 찍은 장면들을 패치워크하듯 이어붙이는 작업이 오히려 흥미로웠다는 후일담을 전하기도 했으나, 가을의 스코틀랜드에서 5월 초여름의 풍경을 담아야 한다는 미션과 더불어 로케이션 중간중간 출몰하는 근대와 문명의 흔적을 피하는 촬영은 결코 쉽지 않았다. 예산 부족과 고된 촬영, 추위와 이어지는 과음으로 하우이 역의 에드워드 우드워드는 발가락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고, 윌로우 역의 브릿 에클랜드는 촬영 내내 우울증에 시달린 나머지 이후 완성된 영화를 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에클랜드는 2023년 5월 <위커맨> 50주년 특별행사에 참석하여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100분이 넘는 길이로 영화는 완성되었지만 <위커맨>의 개봉은 요원했다. 20세기 초중엽 에드가 월리스, 알렉산더 코다, 캐롤 리드 등 영국영화의 대표주자들에 의해 전성기를 맞았던 브리티시 라이언은 만성 적자에 시달리며 계속해서 주인이 바뀌던 상황이었는데, <위커맨>이 완성된 시점의 사장인 마이클 딜리는 완성본을 싫어한 나머지 영화의 개봉을 거부했다. 제작자 스넬은 딜리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칸 영화제에 완성본을 들고 가 쇼케이스를 진행하는 동시에 호텔 로비에 거대한 위커맨을 세워 홍보에 열을 올렸지만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이때 <위커맨>을 본 영화 관계자 중에는 로저 코먼도 있었는데, 드라이브 인 상영에 좋겠다고 판단한 코먼은 편집 의견을 전달하기도 했다. 결국 브리티시 라이언은 영화를 87분으로 대폭 가위질해서 먼저 개봉하여 별 재미를 보지 못한 니콜라스 로에그의 < 쳐다 보지 마라 >(Don’t Look Now, 1973)와 동시상영하는 조건으로 영화의 개봉을 허가했다. 크리스토퍼 리는 안면이 있는 모든 평론가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해서 좌석을 빼두는 등 공을 들이기도 했다. 20세기 브리티시 호러의 대표작인 두 편의 영화가 동시상영이라는 비참한 대우를 받았다는 비극인지 아니면 두 편을 동시에 본다는 엄청난 기회였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당시 관객이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처참한 박스오피스 결과를 통해 드러났다. 어떻게든 제작비를 환수하려고 애썼던 브리티시 라이언은 로저 코먼을 비롯, 미국 배급을 위해 갖은 애를 썼지만 결국 미국 배급권은 워너 브러더스에게 헐값에 넘어갔다. 워너는 개봉 전 테스트 상영을 했지만, 버라이어티를 비롯 지면들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소규모 상영에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덕분에 <위커맨>은 순식간에 시네필 그리고 영화학도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볼 수 없는 걸작'이 되면서 컬트의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리고 1976년 할리웃으로 와 각본작업을 하던 로빈 하디는 <위커맨>의 부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워너 브러더스는 이미 미국 배급권을 단돈 2만불에 아브락사스라는 소규모 회사에 넘겨버린 상태였고, 하디는 아브락사스를 설득해서 난도질당한 <위커맨>의 부활 작업의 허가를 얻었다. 하디는 바로 피터 스넬, 앤드류 샤퍼 그리고 크리스토퍼 리에게 연락을 취했고, ‘위커맨 4인방'은 가위질 이전의 롱 버전 프린트 사냥에 나섰다. 개봉버전과 로저 코먼에게 견본으로 보냈던 오리지널 프린트를 찾아낸 하디는 결국 1977년 가을 미국에서 첫번째 디렉터스 컷이라고 할 수 있는(현재는 ‘미들 버전’이라 불리는 버전으로 4K 복원 상영본인 ‘파이널 컷’의 원형이 된 판본이다) 92분 버전의 <위커맨>이 상영되었고 결과는 큰 성공이었다. 이후 70년대와 80년대를 거쳐 <위커맨>은 숏 버전과 미들 버전이 번갈아가며 TV와 홈비디오 시장을 통해 배급되었지만, 본격적인 복원은 2001년 영화의 세계배급권을 갖게 된 스튜디오카날에 의해 시도되었다. 이 과정에서 처음 완성된 100분이 넘는 오리지널 프린트는 찾지 못했지만 현존하는 프린트와 텔레시네 버전들을 조합한 99분 버전의 ‘디렉터스 컷’이 DVD로 출시되었다. 스튜디오카날은 <위커맨>의 복원을 위해 프린트 사냥을 멈추지 않았는데, 하버드대 필름보관소에서 92분 버전의 필름 4K 버전을 입수하면서 제대로 된 디지털 복원의 신호탄을 쐈다. 로빈 하디는 페이스북에 올린 비디오 메시지를 통해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영화의 디지털 버전을 복원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는데, 복원 과정에서 하디는 섬머아일로 가기 전 경찰서 등 하우이의 일상 장면을 포함, 디렉터스 컷에 삽입되었던 장면들을 제외한 92분 버전의 복원에 동의하고 이 버전은 2013년 크리스토퍼 리가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던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이 버전이 올해 4K 복원판 상영으로 이어진 이른바 ‘파이널 컷'으로, 국내에서는 지난 7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국내 관객을 처음 만났다. 영생을 믿는다며 부활을 울부짓었던 하우이의 희생 덕분이었는지, 아이러니하게도 불굴의 4인방의 <위커맨>은 부활에 성공하여 영생을 얻은 셈이다. 영화만큼이나 흥미진진한 영화의 부활 서사때문에라도 <위커맨>은 수많은 관련서와 팬매거진을 거느린 컬트 고전이자 아리 에스터 등 현대의 감독들에게도 영감의 원천이 된 걸작이지만, 역경을 딛고도 부활할 수 있었던 영화의 저력은 전무후무한 전복적 상상력에서 나온다. 지난 10여년 간 글로벌 호러의 지배적인 서브장르로 급부상한 포크 호러 열풍과 더불어, <위커맨>은 < 심판 >(Witchfinder General, 1968), < 사탄의 피부 >(The Blood on Satan’s Claw, 1971)과 포크 호러 장르의 ‘불경한 삼위일체'라는 명성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그 중 <위커맨>은 근대 서구 문명의 이성과 기독교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과 완전한 전복을 스크린에 구현했다는 점에서 다른 두 편과 궤를 달리한다. 엄격한 교리와 도덕률 그리고 사법제도의 규칙으로 무장한 채 아버지의 법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근대적 남성주체 하우이는 로완 모리슨의 실종을 추적하는 탐정으로서도, 순결한 총각으로서도, 무엇보다도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도 성공하지 못한 채 예상치 못한 결말을 맞이한다. 섭리라는 말로 수렴될 수 없는 자연의 동학을 긍정하는 섬머아일에서 섹스와 남근, 수확과 재생산은 하우이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타자의 질서를 구성한다. 그 안에서 당혹과 충격 그리고 어이없음과 무력함을 넘나들며 심리적 폐소상태에 놓인 하우이의 클로즈업과 영화의 절정을 향해 치닫는 메이데이의 현기증나는 의식은, 종교적 이성과 원시적 이단이라고 재단된 양립할 수 없는 두 질서 사이의 근본적인 충돌을 만들어낸다. ’이 영화는 한편의 블랙 코미디’라고 너스레를 떠는 로빈 하디의 코멘트에 충분히 고개가 끄덕이면서도 왠지 영화의 강열도를 축소시키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이유다.
언제나 그런 일이 반복되었지만, 그래서 별로 놀랍지도 않지만, 지금 약간만 검색을 해보면 거의 모든 인문사회학에 관련된 교수들, 필자들, 혹은 글을 발표할 지면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코로나 바이러스에 관한 ‘거의’ 전문가들이다. 정작 의학 전문가들은 이 바이러스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는데 사실은 이 바이러스에 관해서 거의 아는 게 없는 사람들은 앞 다투어서 전문적인 사회적 진단을 내린다. 심지어 어떤 자리에 가도 팬데믹 담론에로 귀결되는 악순환 속에서 상당히 피로하고 이제는 권태를 느낄 지경이다. 나는 여기서 내 논점을 후퇴해서 영화에 한정해서 이야기를 할 생각이다. 역시 이야기는 어떤 자리로 되돌아간다. 다만 이 자리가 좀 다른 것은 거기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영화 ‘시장’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었다. 구체적으로 (이름을 호명할 수는 없지만) 극장을 운영하거나, 영화를 수입해서 배급을 하거나, 그 영화를 홍보 마케팅을 하거나, 저예산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들이었다. 이 자리에서 들은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는 지금 시장이 죽었다, 라는 하나 마나 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이다) 하여튼 언젠가는 끝날 팬데믹 ‘이후’가 걱정된다는 누군가의 말이었다. 처음에는 무언가 상대방이 말을 잘못한 줄 알았다. 그래서 내가 극장이 텅 빈 지금이 끝나기를 바라지 않으시는 건가요, 라고 반문했다. 그러자 내게 대답했다. 극장에서 관객들이 떠나가고 있어요, 정말 문제는 코로나가 끝난 다음 그들이 돌아온다는 어떤 보장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떠난 동안 극장에서 보내는 시간을 대신할 다른 무언가를 찾아내고 거기서 재미를 찾아낼 것입니다. 코로나가 끝난 다음 새롭게 찾은 재미에 머물지 아니면 극장에로 돌아올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어요. 사람들이 여가시간에 쓸 수 있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하루 종일 노는 사람도 하루에 쓸 수 있는 시간은 24시간밖에 안 되니까요. 여기서 이 대답의 논리적 허점을 찾는 것은 요점이 아니다. 이 말에는 어떤 진실이 있다. 그건 영화를 보러 가는 건 하나의 습관이라는 사실이다. 인구 비례에 따른 관객점유율을 놓고 한국영화 시장에 관한 설명을 하면서 약간 우쭐한 말투로 영화를 선택했다는 상대적 우월의 관점을 가지고 다가간다. 이때 이 설명이 항상 실패하는 순간은 구태여 누군가의 설명이 필요하지도 않을 만큼 보는 쪽에서 누구나 형편없는 영화라는 걸 누구나 다 아는 영화가 대중적인 성공을 거둘 때이다. (나는 지금 구체적인 제목을 열거하고 싶은 마음을 참고 있는 중이다) 반복해서 말하겠다. 하나의 습관. 술을 마실 때 그걸 마시면 다음 날 머리가 아프고 속이 쓰리다는 걸 알면서도 마신다. 하나의 습관. 그걸 보고나면 불쾌해질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보러 간다. 영화를 보러가는 습관의 이유는 서로 다른 여러 층위에서 결정되는 복합적 요인들의 카오스일 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잘 설명하지 못하는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 습관에 관한 정의를 내리는 것을 누군가 해내기는 하겠지만 아무도 설득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어떤 영화를 보러 가는 선택은 밥을 먹기 위해 식당을 고르는 것과 다른 문제이다. 영화를 보기 위해 외출했다가 중간에 마음을 바꿔 서점에 들려 시간을 보내다 올 수 있지만 밥을 먹으러 외출을 하면 식당을 바꿀 수는 있지만 밥을 먹고 돌아온다.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은 그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각자의 기술이다. 아주 가끔 이 시간 낭비가 큰 기쁨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건 얼마나 드문 경험인가) 대부분은 그 시간을 덜 지루하고 더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영화를 보러 간다. 누군가는 내게 그 시간을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자유의 권리를 느껴보기 위해서 영화를 본다고 대답했다. 우리의 논점으로 돌아오자. 그런데 그 작은 즐거움에 예기치 않게 불안이 동반하게 되었다. 당신 옆 좌석에서 누군가 기침을 할 때 갑자기 영화를 보다 중단하고 고개를 돌려 어둠 속에서 그 사람의 얼굴에 마스크가 있는지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만일 그 기침 소리가 나는 곳이 뒷좌석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당신은 자신에게 질문할 것이다. 불안을 무릅쓰고 이 작은 즐거움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운이 나쁘면 당신은 14일 동안 격리될 수도 있다. 더 운이 나쁘면, 지금의 상황은 최악의 가정까지 순식간에 당신을 데려갈 수도 있다. 이번 주말에 영화를 보러 가지 않아도 당신에게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은 그게 가장 좋은 상황이다. 안타깝게도 접촉 빈도가 높아질수록 당신이 익명의 확진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당신은 그러면 극장에서 방(room)으로 옮겨가면 되잖아요, 산업의 구심점이 이동하면서 극장이 침체하겠지만 영화 산업이 문제가 되지는 않을 거예요, 라고 냉정한 대답을 할지 모른다. 그 대답은 당신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이때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이제까지 거의 신경 쓰지 않았겠지만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정치경제학적 환경이 민주적이었다는 생각을 먼저 해야 한다. 당신은 입장료를 내면 계급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영화를 경험할 권리를 얻었다. 나는 구태여 경험, 이라는 표현을 썼다. 방으로 물러나게 되면 이제 이 민주적 기회는 사라지고 각자의 환경의 토대가 제공하는 영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환경의 토대? 누군가는 홈 씨어터에 최신 버전의 프로젝터와 스피커를 갖춰놓고 방음까지 된 방에서 스크린에 가까운 화면으로 영화를 ‘경험’할 것이다. 누군가는 같은 영화를 반지하 방에서 노트북으로 볼 것이다. 두 개의 경험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기서 두 계급 사이의 극장이라는 교집합의 경험이 사라지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논점이 부동산으로 옮겨올 때 당신은 더 이상 이 상황 앞에서 강 건너 불구경하는 냉소적 태도를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이 간극에 놓여있는 모순은 영화를 하찮은 문제로 만들어버리는 우리 세상의 한복판에 놓여있는 논쟁의 장소이다. 나는 너무 멀리 가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 간극의 모순에 시간이 부여되면 연쇄 고리가 만들어진다. 모순은 어느 순간에 멈추는 법이 없다. 이것이 이 세계의 원리이다.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던 관객들은 자신의 상대적으로 하찮은 경험 속에서 노트북에 최적화된 기쁨을 내어줄 시간 낭비의 기술에로 눈을 돌리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면 영화는 부르주아들의 문화 일부가 된다는 뜻인가요? 그렇게 질문한다면 아직도 당신은 순진한 것이다. 이 관객들이 옮겨가기 시작할 때 영화라는 상품을 유기적으로 구성하는 자본의 축적과정은 빠른 속도로 해체되기 시작할 것이다. 아마도 상대적 잉여가치를 놓고 여러 가지 대응이 모색되겠지만 한계에 부딪힌 상품은 임금과 노동 사이에서 시장에서의 자신의 가치를 놓고 재조정 국면을 맞이할 것이다. 나는 그냥 단순하게 따라가는 중이다. 물론 이 과정이 이렇게 간단할 리가 없다. 여기서 멈추어야 할 것 같다. 그러면 당신이 반문할 것이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요? 나는 그날 그 자리에서 그 걱정에 대한 위로는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가 아니라 아마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라는 긍정을 한 다음 우리들 앞에 다가온 변화에 우리들도 변해야 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가 대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영화는 생각보다 짧은 시간 안에 시장 안에서 자신의 성격을 바꿀 지도 모른다. 물론 영화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영화는 다시 한번 영화라는 이름의 다른 그 무엇이 될지 모른다. 나는 될 것이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건 위험한 단정이다. 하나의 가정. 하나의 가능성, 그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준비. 영화의 역사는 끊임없이 자신을 다시 한 번 재정의 내리는 과정이었다. 물론 이것은 개념의 위기에서 멈추지 않고 시장의 위기로 모습을 드러낸 다음 구체적이고 (당신이 어느 자리에 있느냐에 따라) 폭력적인 위기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가정에 대해서 말하는 중이다) 여기서 가장 나쁜 태도는 위기를 구경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위기가 요구하는 대로 생각하고 그런 다음 시장이 요구하는 대로 순종할 것이다. 우리는 위기를 먼저 긍정하고 (달리 무슨 방법이 남아있는가?) 긍정 안에서 위기를 의심해야 한다. 우리는 진짜 위기와 위기를 이용하려는 가짜 위기를 구별해내야 한다. 우리들은 오직 진짜 위기 앞에서 영화의 새로운 변화를 환영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아마도, 아마도 그렇게 해서, 새로운 영화 앞에 나타나게 될 새로운 관객에게 당신은 누구십니까, 라고 질문할 준비를 해야 한다. 여기가 하나의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한 번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