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배드
- 감독
- 피에르 꼬팽, 크리스 리노드
- 제작년도
- 2010
- 출연
- 미란다 코스그로브, 데이너 게이어, 러셀 브랜드, 스티브 카렐, 켄정, 크리스튼 위그, 대니 맥브라이드, 윌 아넷, 제이슨 세걸, 태연, 서현
2014년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의아한 기사를 하나 접했다. 몇 번이고 눈을 비비며 이 내용이 정말 사실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하는 기사였다. 글을 기고한 아미드 아미디(Amid Amidi)는 카툰 부루(Cartoon Brew)라는 웹매거진의 출판인이자 편집장이며, 「픽사의 예술: 25주년 The Art of Pixar: 25th Anniv.」을 비롯하여 다수의 애니메이션 책을 집필한 저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가 설마 터무니없는 얘기를 기사화할 리는 만무하겠고. 어쨌든 이 기사의 내용이 한 치의 착오도 없는 사실이라면 애니메이션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꽤나 기운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니, 분기탱천해야 마땅하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자, 서두는 일단 여기서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 기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아카데미 선정위원단이 애니메이션에 무관심하다는 공공연한 비밀이 이번 아카데미 장?단편 애니메이션 부문 수상작 선정에 참여한 투표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입증된 셈이라는 것이다. 할리우드 리포터(The Hollywood Reporter)는 올해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 수상작을 선정하는 투표에 참여했던 7명과 익명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그들의 인터뷰 내용이 한 마디로 가관이다. 참고로 아카데미 어워드 파이널 후보작과 수상작은 아카데미 회원들의 투표에 의해 선정되는 시스템이다. 다음은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 수상작 투표에 참여했던 7명의 아카데미 회원들과의 영문 인터뷰를 번역한 내용이다. 응답자 1: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에 오른 후보작들은 하나도 보지 못했고, 난 정말이지 여섯 살 이후로는 애니메이션에 대한 흥미도 잃었다. 6살짜리 아들 녀석이 나를 극장으로 끌고 갔을 때도, 녀석을 혼자 극장에 앉혀놓고 밖으로 나와 줄곧 통화를 해댔다. 응답자 2: < 겨울왕국 >은 대단한 작품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 슈퍼배드 2 >를 더 선호하지만, 후보작 전부를 본 것이 아니라서 투표는 하지 않았다. 응답자 3: 대부분의 후보작들을 보지 못했지만, <겨울왕국>은 재치 있고, 영감을 주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 겨울왕국 >을 선택했다. 응답자 4: < 겨울왕국 >에 한 표를 던졌고, 나머지 작품들에 대해서는 논의조차 없었다. 솔직히 말해, 애니메이션 부문이 없더라도 <겨울왕국>은 분명 실사영화 부문에서도 쉽게 후보작으로 선정될 만한 작품이라 생각한다. 응답자 5: 후보작 모두가 좋은 작품들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투표를 포기했다. 응답자 6: 다른 사람들의 의견처럼 나 역시 < 겨울왕국 >이 가장 대단한 작품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이 작품에 한 표를 행사했다. 응답자 7: 어떤 후보작들도 보지 못했다. 그래서 투표를 포기했다. 물론 인터뷰에 응한 익명의 선정위원들의 행태가 아카데미 선정위원회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그렇다면 더 큰 일이겠지만). 그러나 작품조차 제대로 보지 않고 투표를 한 사람이나, 자신의 한 표를 저렇게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나, 양쪽 모두에게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할리우드에서 실사영화보다 박스 오피스에서 더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장편 애니메이션에 대한 대접이 이 지경인데, 하물며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은 이들에게 얼마나 더 찬밥신세를 당하고 있을지 가히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몇 년간 아카데미 어워드 선정단이 보여준 애니메이션을 바라보는 인식과 태도는 이처럼 무관심과 푸대접이었다. 아카데미의 수상 결과를 맹신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 작품을 바라보는 바로미터가 되어 왔었는데, 이제 이런 나의 믿음은 이 불성실하고 냉소적인 선정단의 태도에 의해 산산조각이 났다. 수상 결과를 두고 < 겨울왕국 >을 폄하할 의도는 전혀 없다. 그렇지만 전 세계 극장가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작품 이외에 다른 장편 애니메이션 후보작들이나 단편 애니메이션 역시 아카데미 회원들에 의해 제대로 리뷰가 되어 공정하게 평가를 받을 기회가 주어져야 마땅하다. 아~ 그런데 아쉽게도, 이것이 애니메이션을 바라보는 그들의 현주소라는 사실이 자꾸 머릿속에서 되새김질을 하고 있어 씁쓸할 따름이다.
여름이 늘 그렇지만, 블록버스터 사이에 쏙쏙 박힌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들의 전쟁이 또 시작되고 있다. 엄청난 제작비를 들인 3D 장편 애니메이션들이 전면전은 비켜가면서 매달 한두 편씩 극장에 투하되는 상황이다. 지난 5월 말 선제공격을 감행한 드림웍스의 < 드래곤 길들이기 >에 이어 7월 1일 < 슈렉 포에버 >이 개봉했고, 7월 22일과 29일엔 차례로 팬층이 두터운 두 편의 일본 애니가 아이들을 노린다. `명탐정 코난` 시리즈의 새 극장판 < 명탐정 코난 : 천공의 난파선 >과 < 도라에몽 : 진구의 인어 대해전 >이다. 정식 개봉작은 아니지만, 7월 15일부터 열리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선 ‘건담 특별전’이 열린다.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 극장판의 걸작들을 8편 만날 수 있다니 ‘오덕’은 아니지만 흥미로워 보인다. 8월엔 픽사의 전설을 이어갈 < 토이 스토리 3 >, 린타로 감독의 3D 애니메이션 < 요나요나 펭귄 >이, 9월까지 가면 < 아이스 에이지 > 시리즈를 만들었던 블루 스카이의 < 슈퍼배드 >가 있다. 그 와중에 일본 현지에선 지브리 스튜디오의 신작 <더부살이 아리에티>가 7월 17일 개봉한다. 애니메이션 명가들이 거의 여름을 찜쪄 먹을 기세. 그런데 가만히 이 리스트를 쳐다보면 눈길을 끄는 게 있다. 감독들의 크레딧 때문이다. 개봉했거나 대기중인 애니메이션들 속에서 세월과 성장, 변화가 보인다. 먼저 < 드래곤 길들이기 >의 경우 8년 전 <릴로 앤 스티치>라는 걸작을 만들었던 크리스 샌더스와 딘 데블로이스가 연출을 맡고 있다. 드림웍스는 디즈니 출신의 이 두 감독을 데려와서 그동안 말발로 시건방을 떨던 기조를 버리고, 서사와 3D의 만남을 성공적으로 완성시켰다. 활력은 있으나 품위는 없었던 유머를 개조했다고 할까. 구관이 명관. 오랫동안 숙련돼온 장인들의 기술과 경험이 발휘된 측면이 있다. 70이 다 되가는데 아직도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게 신기한 린타로 또한 노장 투혼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에선 세대교체와 색다른 변화의 흔적이 역력하다. < 슈렉 포에버 >의 경우 < 듀스 비갈로 > < 스카이 하이 > 등 실사 코미디 영화를 연출했던 마이클 미첼이 감독을 맡고 있다. 하기야 < 인크레더블 > < 라따뚜이 >의 감독인 픽사의 브래드 버드가 실사영화 < 미션 임파서블 4 >의 연출을 맡는다니 그 반대도 가능할 일. 코미디에 강한 실사 감독의 기용은 정체된 시리즈의 탈출구를 찾으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효과가 있었는지, <슈렉 포에버>는 제 무덤을 파던 < 슈렉 3 >때보다 나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2편 이후 11년만에 개봉하는 < 토이 스토리 3 >에선 픽사의 세대교체가 눈에 띈다. 연출을 맡은 리 언크리치는 < 토이 스토리 2 >와 < 몬스터 주식회사 > < 니모를 찾아서 >의 공동 감독 출신. 재탕, 삼탕이라는 비난이 있긴 해도 <토이 스토리 3>는 픽사의 간판 브랜드인데, 여기에 꾸준히 양성해온 내부 인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은 꽤 부럽다. 픽사 내부에서 훈련과 경험을 축적, 계승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 아이스 에이지 > 시리즈로 픽사, 드림웍스와 함께 할리우드 애니의 ‘빅 3’를 구성해온 블루 스카이의 신작 < 슈퍼배드 >는 프랑스 애니메이션 감독을 영입, 새로운 기운을 수혈하려 애쓰는 중이다. 90년대 초부터 이미 미야자키 하야오 이후의 세대교체를 고민해온 스튜디오 지브리는 최신작 <더부살이 아리에티>의 연출을 36살의 젊은 감독 요네바야시 히로마사에게 맡겨 화제가 됐었다. 96년에 지브리에 입사, 애니메이터로서는 < 모노노케 히메 > 때부터 미야자키 하야오와 일했던 요네바야시는 지브리의 거대 재앙이었던 <게드 전기>의 미야자키 고로(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에 비하면 훨씬 기대 받고 있다. 미야자키가 좋아했던 영국의 아동문학 <마루 밑의 소인들>이 원작이고, 지브리 특유의 캐릭터 디자인이 여전한 까닭에 얼마나 신선할 지는 미지수지만, 지브리의 정신을 이어가는 방식의 하나로 보이긴 한다. 세대교체와 노장투혼은 월드컵에만 있는 게 아니다. 모든 분야에서, 특히나 가장 크리에이티브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의 경우 꼭 필요하다. 전통을 이어가는 유명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들의 거대 경연장에서, 우리는 너무 단발성 기술력에 의존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할리우드나 일본의 스튜디오 시스템을 맹신하는 건 아니지만, 분명히 배울 건 있다. 눈에 불을 켜고 3D만 쫓아다니지 말고, 정신과 경험을 이어받을 수 있는 애니메이션 문화를 육성하는데 돈 좀 쓰면 안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