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사무소 2-3
- 감독
- 스즈키 세이준
- 제작년도
- 1963
- 출연
- 시시도 조, 가와지 타미오, 사사모리 레이코, 가네코 노부오
* 이 글에는 < 암살 >( 최동훈 , 2015) 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만희 감독의 < 암살자 >를 기억했던 것은 최동훈 의 < 암살 >을 보면서였다. 유사한 제목에서 연상되기도 했지만, 꽤 이상한 설정이라 여긴 쌍둥이의 등장이 흥미를 끌었던 탓이다. 서스펜스 효과보다는 역사의 반복, 실패의 서사적 논리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더블(짝패)의 운동. 안옥윤( 전지현 )은 자신이 암살하는 대상이 아버지이며, 쌍둥이 동생이 자신과 반대의 삶을 살고 있다는 이른바 거울의 형상과 마주한다. 영화의 중심인물인 염석진( 이정재 )이 그런 거울 논리의 왜곡된 현실태라 말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는 친일파의 암살을 기도했고, 그 반대편의 자리에서 이제는 독립 운동가들을 검거하고, 해방이 되고서는 경찰의 요직을 차지하며, 최종적으로는 해방 전에 내려진 지령에 따라 암살된다. 변혁을 기도했던 자가 그들의 적대자를 닮아간다면 혁명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안윤옥은 거울을 깨뜨리지만 염석진은 닮아간다. 거울과 더블의 논리는 배반과 실패의 서사다. 이 서사에는 거대한 인물(우리가 종종 위인이라 부르는 이들)에의 추종과 그만큼의 질시, 적대감이 뒤따른다. 염석진이 보이는 분열증적 행동과 초조와 긴장은 이런 복잡한 상황을 반영한다. 경우는 다르지만, 이만희 감독의 < 암살자 >를 떠올렸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암살자>의 내러티브를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은데, 가령 당시의 검열과 누락된 장면들이 있기 때문이다. 내레이션이 들려주는 꽤 교훈적인 말들(영화가 시작할 때 나오는 “죽이고 또 죽인 자를 죽이고, 급기야는 그마저도 죽어가야만 했던. 누구를 위해 죽이고, 죽어야만 했던가. 그 참혹상을 폭로한다”는 말의 진위여부)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라는 다른 문제도 있다. 이 영화를 언급하는 글이 많지 않은 것도 그런 판단의 주저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대체로 이 작품은 그의 졸작으로 치부되고 있다. 하지만 암살자가 살인 행위보다(암살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전개된다)는 표적을 제거하기 위해 가는 느릿한 운동들, 과거를 떠올리는 플래시백과 양식화된 화면들, 그리고 ‘암살자가 죽는다’는 예정된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나타나는 제의의 과정들이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고도의 수법과 양식이 돋보이는 영화들로, 조심스럽게 이 영화에 매너리즘이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내용보다 형식과 기교가 두드러진, 장르의 고전적 균형보다 파괴와 변형을 거듭하는 양식이다. 60년대 후반의 사회적 위기, 영화에 미친 파국이 이런 표상형식에 표출됐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주 미세하게 어떤 동시대성의 움직임이 여진처럼 이 작품에서 감지된다고 생각하는데-손쉽게 떠올리자면 비슷한 시기에 나온 장 피에르 멜빌의 < 사무라이 >나 스즈키 세이준의 < 살인의 낙인 > 등을 떠올릴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더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언급한 장황한 훈고조의 내레이션에 이어 부감 쇼트로 원탁 위로 담배 연기가 피어오르는 장면이 보인다. 이상한 장식무늬 원형 탁자(원형은 이 영화에서 반복해 등장하는 형상이다. 나중에 암살자들에게 살해되는 소년의 보트가 그리는 원형의 운동이 그러하다. 이는 암살자가 암살하고, 또 암살된다는 나쁜 폭력의 반복을 형상화하고 있다 생각한다), 뿌연 담배 연기, 어두컴컴한 방, 여기서 출몰하는 유령들처럼 사람들이 자리에 모이기 시작한다. 암살을 지시하는 대표는 음성적 존재로, 단지 목소리만 들릴 뿐 화면에서 비가시화 되어있다. 그는 일종의 마부제 박사다. 사람들의 목소리 또한 영상과 일치되어 있지 않아(대체로 이 시기의 더빙영화들이 그러한데, 이 영화는 특별히 영상과 소리의 불일치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목소리들이 어두컴컴한 방안을 부유하는 인상을 준다. 어두운 방, 텅 빈 화면, 피어오르는 연기, 부유하는 목소리. 고도로 양식화된 표현이다. 이들은 신탁통치를 반대하며 당에서 탈당한 남호천 장군을 새벽이 오기 전에 암살할 계획이다. 암살자로 장동휘 가 지목된다(그는 이름 없이 암살자로만 불린다). 그가 탁월한 암살자이자, 9년 전 그가 살해한 피살자의 딸을 양육하는 부담을 떠안고 있는, 이른바 인간적 결함(암살자에게 인간성이 있다는 것이 치명적 약점이라 설명된다)이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원탁의 바깥, 창가에 서서 회의가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는 두 인물이 보이는데, 그 한 명은 당원 1호( 남궁원 )이며 다른 한 명은 2호( 오지명 )다. 이들은 거울을 마주하는 것처럼 좌우대칭의 화면으로 분리되어 보인다. 1호가 암살자를 만나는 장면 또한 앞서의 장면처럼 1호와 암살자의 목소리만 떠돌 뿐, 보이는 것은 뒤쪽으로 창문이 있는 어둑한 방 내부와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뿐이다. 마찬가지로 이는 어두운 방camera obscura이다. 우리는 역사가 아니라 어떤 시학과 마주한다. 암살자는 내켜 하지 않는데, 이유가 특별하다. “죽음 앞에 비굴하지 않은 자가 있다고 생각하나?” 이번 표적이 남호천 장군이라는 말에야 암살자는 비로소 의욕을 내비친다. 그가 죽음 앞에서도 겁먹지 않은 유일한 ‘위대한 인간’이기 때문이다(이어 다소 설명적인 플래시백이 전개된다. 이 영화에는 두 개의 플래시백이 직선적 시간에 반복의 시간을 기입하는데, 그 첫 번째 플래시백이 자정을 알리는 시계 소리에 맞춰 그를 암살하러 갔던 실패한 순간이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이번 임무는 비굴한 모습을 보이지 않던 ‘위대한 인간’을 살해하는 그의 마지막 여정이다. 나중에 우리는 두 번째 플래시백으로 그가 남호천 장군 앞에서 고문을 당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설명이 부족한 장면이지만, 암살자는 죽음에 직면한 타인의 표정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결정적 순간이 그러므로 특별하다. 일종의 노스페라투처럼 암살자는 죽음을 기꺼이 기다리는 ‘위대한 인간’과 마주한다. 장군은 자신을 ‘위대한 인간’이라 칭하는 추종자들의 환대를 부질없는 것이라 말한다. 암살자와 희생자의 만남은 이상한 거울 관계다. 암살자는 ‘위대한 인간’에 비추어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비굴한 모습을 파괴하려 들고, 장군은 자신이 불러온 폭력의 반복(말하자면 신화)을 암살자의 손을 빌려 끝내려 한다. 암살은 (반복의) 죽음을 종결짓는 행위다. 암살자 또한 죽는다. 한 명의 죽음은 역사의 문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암살자의 죽음은 또한 예술적 문제다.
이래도 괜찮은 것일까, 라는 염려가 먼저 들 때가 있다. 치코, 하포, 그루초 마르크스 삼형제의 난동극에 가까운 < 오페라의 밤 >을 처음 보았을 때는 어리둥절할 지경이었다. 부글부글 거리더니 점점 넘쳐나기 시작한다. 나중에는 급기야 걷잡을 수 없게 넘쳐날 때 그걸 가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마치 햄릿 같은 말투로 기꺼이 찬사를 바쳤다. B급인가, 아방가르드인가, 여기서 영화의 장치들이 고스란히 창자를 내보인다. 하지만 이걸 보고 심미주의를 느끼는 자들만이 천국에 들어설 것이다. 아아, 천국이라니. 착란과도 같은 반란. 유희와도 같은 실험. 하지만 나는 이런 영화들을 너무 빨리 보기 시작했다. 이런 과잉의 영화들의 계보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정말 미친 듯이 찾아보기 시작했다. 만찬의 영화. 그런데 그 만찬은 (롤링 스톤즈의 앨범 제목을 빌려 부르자면) ‘거지들의 만찬’(Beggar’s Banquet)이다. 나는 이 행복한 표현을 긍정의 의미로 사용하는 중이다. 영화의 운동에 부여한 난처하리만큼 불편한 포만감. 갑자기 화면은 일시적으로 두뇌의 활동을 정지하고 육신과 감각, 팔과 반경거리, 사방을 둘러보는 눈, 허우적거리는 동선, 길을 잃어버린 것만 같은 발과 제한적인 공간, 그 안에서 영화의 모든 기호가 결국 주어진 세계-내-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게 만들고야 만다. 그런 다음 카오스가 기다리고 있다. 마치 도미노처럼 무너지기 시작할 때 그들이 쓰러트리는 것은 반대로 점점 더 속도를 더해간다. 여기서는 오로지 영화가 허용한 모든 것을 현실에서야 어찌되었건 잠시뿐 일지라도 법칙을 무시하고서라도 허용한다. 영화만의 선언. 말 그대로 이 안으로 들어오면 위반을 긍정한다. 영화는 세계와 너무 가까이 있어서 그 바깥으로 나가버리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해진다. 종종 이 결정이 영화를 우스꽝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해버리는 영화들이 있다. 그래서 세계를 비현실로 만들어버릴 때 갑자기 세계 자체가 영화라는 이미지가 되어버린다. 여기서는 몸으로 버텨야 한다. 물론 모든 희극영화들은 폭력 안에서의 웃음이다. 버스터 키튼의 필사적인 질주. 찰리 채플린의 곡예와도 같은 방어술. 웃음이 아니라면 이들의 악전고투를 차마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두 개의 전통으로부터 톱니바퀴처럼 갈려 나온 서로 다른 운동의 수없는 변주들. 하지만 토키영화가 시작하자 영화 안에서의 기계적인 활동들은 일시적으로 멈추는 것만 같았다. 대신 말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영화 안의 기호들로 이루어진 서로 다른 차원의 이미지의 행성들은 안정을 얻는 것처럼 서서히 자기 자리를 잡으려 들었다. 하지만 그 중에는 거슬러 올라가는 영화들이 나타났다. 닥치는 대로 열거하자면 그 중에는 프랭크 타쉬린(과 제리 루이스), 스즈키 세이준, 러스 메이어, 로저 코먼, 존 워터스, 그리고 (....)이 포함되어 있다. 이 영화들은 희극의 장르 안에서도 좀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신세 좀 지자구요 >는 거의 아슬아슬하게 그 전통의 자락에 기대어 선 영화이다. 나는 어떤 경로를 통해서 갑자기 임권택 이 이 계보에 합류하게 되었는지 잘 설명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 이전에 그런 영화를 만든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기에 오랫동안 머문 것도 아니다. 그는 잠깐 동안, 정말 잠깐 동안 머문 다음 재빨리 빠져나갔다. 1969년을 임권택은 그 자신이 막다른 골목에 몰린 시기라고 설명하곤 했다. 하지만 반대로 나는 이 시기에서 갑자기 임권택의 영화들이 자유로워졌다는 인상을 받곤 한다. < 몽녀 >의 몽환적인 산책. < 황야의 독수리 >의 무국적 풍경. < 속눈썹이 긴 여자 >의 조명이 넘쳐나는 실내. <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나린다 >에서 보여준 상실의 멜랑꼴리. 그리고 < 둘째 어머니 >의 황당무계할 정도로 긴 마지막 시퀀스. <신세 좀 지자구요>는 이 사이에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사라진 칸막이들. 고정적인 문법을 따른 안정된 선을 버리고 갑자기 생겨난 쇼트의 난반사들. 무언가 길을 잃어버린 것만 같은 이상야릇한 새로운 습관들. 나는 여기서 임권택의 이전 장면들에선 본 적이 없는 영화적 습관을 발견하곤 한다. 나는 지금 그걸 이 시기의 영화를 건드릴 때마다 일일이 열거하는 중이다. 물론 그때 임권택은 주어진 상속의 전통 바깥으로 나가면서 갑자기 자신이 전락했다는 느낌을 받았을 지도 모른다. 게다가 시장에서 점점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의 끝에 가 불현듯 나타났다는 것을 셈에 포함시켜야 한다. 구先生 미셸 시몽, 시인 천상병 처음 < 신세 좀 지자구요 >를 보았을 때는 종잡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주인공 구先生은 임권택 의 영화중에서 가장 이상한 인물이다. 어쩌면 한국영화 속에서 다시 만나기 힘든 주인공이다. 구태여 다시 한 번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나는 이런 인물을 미셀 시몽의 천의무봉에서나 찾을 수 있다. 장 르누아르의 < 물에서 건진 부뒤 씨 >와 장 비고의 < 라탈랑트 >에서 거의 같은 역할을 해낸 이 이상한 인물. 선과 악의 경계 바깥에서 종잡을 수 없게 살아가는 사람. 장 조레스가 암살당하고 인민해방 전선이 실패로 돌아간 다음 나타난 무정부주의적인 삶을 구가했던 이상한 보헤미안들. 구태여 여기에 더해야 한다면 (자끄 타티가 만들어낸) 윌로 씨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둘은 정치적으로는 의미가 다르다) 이런 주인공을 떠올린 이유가 있다. 난처한 주인공, 번번이 추적의 선을 끊어버리는 것만 같은 행각. 그런데도 아무렇지 않게 마치 자기 법칙이 있다는 듯 이리저리 옮겨간다. 나는 자료를 뒤져야했다, 그리고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유레카. 이제는 알겠다. <신세 좀 지자구요>의 주인공 구先生의 모델은 시인 천상병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성립된다. 아마도 시인 중의 시인, 그 스스로 시인의 삶을 살아간 마치 봉황의 깃털과도 같았던 사람. 누군가에게 배우기도 전에 처음부터 그가 시를 쓰면 읽는 사람을 움직였다. 김춘수 시인에게 발견된 재능. <신세 좀 지자구요>를 둘러싸고 약간의 설명을 덧붙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설명을 읽기 전에 불행했던 시인 천상병의 위대하고 가냘픈 시를 먼저 읽어주기 바란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이 영화의 원작이었던 문화방송 드라마 <불청객>을 보지 못했다. 이 드라마는 친구들 집을 아무 거리낌 없이 동가식서가숙했던 천상병 시인의 기인 행각을 보면서 소재 삼아 그의 친구 중의 한 사람이자 극작가였던 신봉승 이 대본을 썼고 1966년에 방영되어 그해 가장 인기 있는 드라마의 한 편이 되었다. 나는 원래 드라마에 천상병 시인의 삶의 향기가 얼마나 배어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신봉승의 인터뷰에 따르면 거의 대부분 자신과 친구들이 겪었던 이야기로 매회를 이어갔다고 한다. 그 후 <방 좀 빌립시다>로 준비되었던 이 영화는 <신세 좀 지자구요>로 제목이 바뀌어서 삼 년 후에 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원작 드라마 각본을 영화를 위해서 신본승 자신이 각색을 했는데 이상하게도 구先生이 시인이라는 설정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처음부터, 그러니까 드라마 대본에서부터 없었던 것일까) 다만 고향에서 올라온 갈데없는 독신 중년으로만 소개하고 있다. 구先生은 계속해서 언젠가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는 고향에 돌아갈 생각이며 (그러므로 영화의 엔딩은 구先生이 고향에 내려가는 것으로 끝난다) 거기서 잘못된 사랑을 했으니 이제는 결혼을 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 한다. 하지만 그가 어떤 잘못된 사랑을 했는지, 왜 그는 고향을 떠나야만 했는지, 그리고 여기서 다시 삶을 살아볼 생각을 왜 하지 않는지, 아무리 기다려도 끝날 때까지 더 이상 어떤 설명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심지어 나중에는 이 모든 고백이 거짓된 핑계가 아닐까, 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어쩌면 구봉서 가 연기하는 구先生의 어디에서도 시인 천상병의 그림자 자락을 붙들지 않았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구봉서가 훌륭한 희극 연기의 대가이기는 하지만 여기서 그는 천상병의 천의무봉한 자유와 거의 사회적으로 파문당하기 직전까지 몰렸을 때조차 거기서 재난에 가까운 사건 사이를 가볍게 지나쳐가면서 그 모든 것이 우리 모두의 상상을 뛰어넘는 시적인 사유의 행위라는 것을 펼쳐 보이지 못한다. 그저 과장된 개그의 제스처, 우스꽝스러운 표정. 그러나 천상병 시인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1967년 7월 14일 ( 윤이상 , 이응로를 간첩으로 몰아붙인) 동백림 (북한 대남공작단)사건에 연루되어 중앙정보부에서 모진 고문을 받은 다음 세상에 돌아와 ‘그 날은 새’라는 시를 썼다. 고문 후유증으로 내내 고통을 받았고 1971년에는 행적이 묘연해지자 동료 문인들이 유고시집을 발간했지만 길거리에 쓰러져 행려 취급을 받고 서울시립병원 정신병동에 갇혀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가까스로 다시 세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면서도 시인 천상병은 무거운 가난을 등에 짊어지고 계속해서 자신이 새가 되고 싶다는 시를 썼다. (시집 “새”) 세상이라는 도면에 대한 서로 다른 관측법. 누군가는 그걸 그 안에서 두리번거리며 바라볼 때 누군가는 상공비행해서 내려다 볼 것이다. 아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무언가 여기에는 신비로운 모험이 사라져버렸다. 구先生의 기행은 드라마 안에서 시종일관 전혀 설득되지 않으며 그러면서 점점 더 기괴해져가기만 한다. 무엇보다도 구先生에게서 세속 바깥에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의지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는 다른 목적을 지닌 삶, 거기서 그를 비루한 현실 속에서조차 구해내는 고귀한 목표의 겸손함, 그때 어떤 수단도 그를 굴복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지 못한다. 나는 그게 신봉승이 (어떤 이유에서) 포기해버린 것인지, 아니면 임권택이 삭제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여기 남아있는 것은 구先生의 기행 뒤에 숨겨져 있는 고독함뿐이다. 어쩌면 천상병 시인의 기인과도 같은 삶은 결국 고독함이라고 이해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구先生이 마담과 함께 한밤중에 데이트하는 장면의 우울함은 갑자기 이 희극 영화 바깥으로 완전히 빠져나오는 것만 같은 속도로 바뀐다. 종종 전체적인 균형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만 같은 이 영화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간단하게 무시하면서 지나치지 못하는 것은 이런 씬에서 무언가 사무치는 것만 같은 정서가 거의 유령처럼 출몰한 다음 수없이 부스러기처럼 잘게 쪼개져버린 이 세계의 한 순간을 멈춰 세우기 때문이다. 이재명(우)과 아내(좌) 구先生과 마담 보영 세진 먼저 KMDb 에 소개된 줄거리의 정정. “ 구봉서 와 김희갑 은 절친한 사이다. 그래서 갈 곳이 없는 봉서는 희갑의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다. 그러자니 자연히 희갑의 부부간에는 싸움이 자주 일어난다. 그때마다 봉서가 화해시킨다. 어느 날 봉서가 산 복권이 당첨이 된다. 그리하여 봉서는 희갑의 어려운 사정들을 해결해 주고 남은 돈을 가지고 고향으로 간다.” (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K/02010 ) 구봉서와 김희갑이 절친한 친구 사이로 나오는 건 사실이고 그 집에 머무는 것도 맞지만 그런 다음은 영화와 상관이 없다. 그러므로 할 수 없이 다시 한 번 이야기를 복기할 수밖에 없다. 지방에서 올라온 구先生(구봉서)은 누군가의 집에서 쫓겨난 다음(영화의 첫 장면) 겨울 거리를 배회하다가 술집에서 옛 고향 고등학교 동창 이재명(김희갑)을 만난다. 갈 데 없는 구先生은 뻔뻔하게 이재명의 집에 쳐 들어와 방 한 칸을 차지하고 그냥 머물면서 아침 겸상에 용돈까지 받아 챙긴다. 이재명의 아내( 도금봉 )은 어이가 없지만 체면 때문에 참고 딸 보영( 전양자 )은 재미있게 생각하고 식모( 안인숙 )은 그저 어쩌지, 어쩌지, 할 뿐이다. 이재명은 감원 대상자 명단에 매번 자기가 속하면서 전전긍긍하는 중이고, 구先生은 낮에는 다방에 나가 마음에 둔 마담( 조미령 )과 하릴없는 시간을 보내고 밤이면 이재명의 집에 다시 쳐들어온다. 그런 와중에 구先生은 시종일관 사고만 치고 이재명 부부로서는 점점 참기 힘든 상태가 된다. (갑자기 여기서부터 인물관계가 뒤엉키기 시작하지만 정작 영화를 볼 때는 문제가 안 된다) 마침 딸 보영이 다니는 회사의 전무가 이재명이 다니는 회사 과장( 양훈 )의 아들( 이철 )이고 그는 이재명의 딸 보영과 결혼하고 싶어 한다. 여기에 과장의 아내와 계장( 서영춘 )까지 나서서 결혼을 재촉하지만 보영에게는 이미 마음을 둔 남자가 있다. 그 남자는 구先生 단골 다방의 마담의 아들 세진이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아들에게 딸을 줄 수 없다는 이재명 아내는 만일 청혼한 과장 집보다 혼처가 훌륭하다면 결혼을 승낙하겠다면서 부모 상견례를 하자고 제안한다. 마담은 구先生에게 하루만 성공한 남편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여기에 과장집 식구들에 계장까지 모여 지켜보고 있다. 자, 여기까진 아무래도 좋다. 임권택 은 여기서 두 세계 사이에 모호하게 머문다. 하나는 세계 안에 머무는 영화이다. 모든 것은 세상의 법칙을 따르고 그 안에서 인물들은 반복적으로 고통 받고 점점 찌그러진다. 가장에게 끊임없는 감원의 협박. 근처에서 맴도는 가난. 회사 안의 위계질서에 따른 부당한 요구의 반복. 위협받는 순수한 사랑. < 신세 좀 지자구요 >의 인물들은 대부분 여기에 머문다. 다른 하나는 세계 곁에 있는 영화이다. 영화는 거기서 세상의 법칙이 금지한 바깥으로 나와 만일 영화가 허용한다면 무엇이든지 할 준비가 되어있다. 구先生의 탈선. 하지만 수 많은 사고를 만들어내도 그는 언제든지 그 자신도 알지 못하는 법칙에 의해 항상 구원받는다. 문제는 두 영화가 하나의 세계 안에 공존할 때 생겨난다. (나는 두 세계가 하나의 영화 안에 공존한다, 고 쓰지 않았다) 기괴한 예. ( 서영춘 ) 계장은 ( 양훈 ) 과장과 아들 혼사 문제를 놓고 계획을 짜다 말고 갑자기 그 유명한 만담을 한다. “산에 가야 범을 잡고 강에 가야 고기를 잡지,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컵이 없으면 못 마십니다, 돈 내고 돈 먹기, 시작해야 부자 되지 어서 어서 오세요...(그리고 한참 더)” 이 만담은 서영춘 이 텔레비전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백금녀 와 함께 이중창처럼 라임에 맞춰 노래하듯이 외우는 구절이며(그래서 이 만담이 시작되면 아이들은 합창하듯이 따라했다) 레코드로 출반되었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신세 좀 지자구요>에는 백금녀가 출연하지 않아 서영춘 혼자 이 만담을 하는데 (혹시나 하고 기다리던 장기자랑이 마침내 시작해서 반갑기는 하지만) 너무 갑자기 등장해서 어리둥절해진다. 하지만 내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이때 ‘사이다 송’ 만담을 하는 서영춘의 얼굴을 극단적인 왜곡 상태로 만들어(fish_eye_wide_lens)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 씬은 누구라도 보는 사람을 꺼림칙하게 만든다. 우스꽝스럽기는커녕 무언가 잘못 작동되기 시작한 인형이 재롱의 동작을 취하면 취할수록 원래의 목표를 벗어나 제멋대로 움직이면서 이제는 수명이 다해버린 음울한 실체를 드러내는 것만 같은 인상을 자아낼 때 우리의 고개를 돌리게 만든다. 틀림없이 이 장면은 웃기 위해서 찍은 씬이다. 서영춘은 언제나처럼 약간 넋이 나간듯한 표정을 만든 다음 고개를 갸우뚱 거리면서 자기의 차례가 돌아오자 외운 것을 반복하는 기계처럼 구절을 반복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미 그 자체로 인격으로부터 분리되어 하나의 모델이 된 채 추상화된 자동기계 인형이 된 서영춘을 다시 한 번 굴곡 된 이미지로 만들어버릴 때 거기엔 우리가 개입할 코믹한 환상의 여지가 사라진다. 왜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이때 내가 보는 것은 괴로운 현실과 더 괴로운 환상이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는 방식이다. 임권택은 희극이 고통으로부터 잠시 동안 우리를 구하는 것이라는 통념적인 생각과는 반대로 두 개의 고통을 전시한다. 하나는 물론 억압에 의지해서 버티는 현실이고 다른 하나는 억압이 사라지자 통제가 불가능해져버리는 환상이다. 둘 사이를 분리하는 경계는 여기서 그렇게 분명한 것이 아니다. 종종 그 둘은 서로의 자리를 바꾸기도 한다. 하지만 일단 인물들은 현실이 무너져 내리듯 홀연히 비현실의 장막 안으로 들어서면 추상적인 미결정의 이미지에로까지 다가간다. 이때 이미지는 히스테릭하게 웃기 시작한다. 나는 여기서 이미지가 웃는다고 썼다. 이미지가 웃기 시작할 때 일그러진 화면은 육체를 침공하듯이 뒤집어쓴 다음 그것을 통해 고통을 전시한다. 나는 그 뒤에 무언가 숨어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그 뒤는 그저 공허한 텅 빔이 전부이다.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점점 더 히스테릭해지는 이미지는 대신 할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자신을 감추기 위해서 자기 스스로 자멸해버리듯이 스스로를 일그러뜨리며 웃기 시작한다. 그때 일그러지면서까지 웃는 이미지는 무엇을 얻고 싶어 하는 것일까. 물론 대답은 환상의 불만족이다. 왜냐하면 여기는 또 다른 고통의 왕국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 히스테리가 만족을 얻게 된다면 이미지를 둘러싼 영화의 기호들은 갑자기 도착적인 기능을 시작할 것이다. 그건 임권택이 바라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걸 바라기 시작할 것이다. < 천년학 >의 마지막 장면은 분명히 그러했다) 아직은 고통에 머물러야 한다. 이때 임권택의 희극은 웃음이 고통이라는 이상한 역설에 빠진다. 언젠가 내게 말했다. “거 참, 이상하게도 나는 코미디가 안 되는 거예요” 나는 대답할 수 있다. 아니요, 코미디가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웃음이 고통에 머물러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영화에서 웃음은 고통스러운 감정의 경련입니다. 송해 와 박시명 장소라는 쇼트의 하부구조. 이 히스테리의 경기장이라고까지 부르고 싶은 절정은 (내가 줄거리를 정리하다말고 잠시 중단한 이후의) 마지막 시퀀스 전부이다. 무대는 고급 제과점. 이재명과 그의 아내, 딸 보영은 지금 다방 마담과 그 아들 세진과 (결혼을 해야 할지 말 지를 결정하기 위한) 서로간의 부모 상견례를 위해 여기 나와 앉아있다. 제과점은 1960년대 한국영화에서 상견례 장소로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장소 자체가 특별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트에서 찍은 것이 분명한 이 장소는 이제까지의 장면들에 비해서 지나치게 밝고 화사한 느낌으로 설계되어 있으며 약간 비현실적인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이때 이 경기장을 처음 작동시키는 이미지 벡터는 주문을 받으려고 테이블을 오가는 두 명의 점원, 그런데 마치 쌍둥이 로봇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송해 와 박시명 이다. 영화에서 처음 등장하는 두 사람. 서로가 거울에 비친 것처럼 행동하면서 한편으로는 서로가 서로의 동작을 보완하는 개그는 물론 송해와 박시명 콤비의 발명품이다. 이때 이 둘이 주문을 받으러 가는 손님은 이재명 가족의 테이블이 아니라 영화에 처음 등장한 (그녀 자신을 ‘뚱보 여성’ 코미디언 백금녀 와 구별하기 위해 지은 예명인) 오천평의 테이블이다. < 신세 좀 지자구요 >에 차례로 등장하는 코미디언들의 열거 방식은 이 영화가 종종 예능 프로그램 방식으로 연출되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나는 이 대목에 돌아올 때마다 다소 무례한 상상을 해보게 된다. 그때 영화산업은 추락하고 있었다. 충무로의 수많은 재능들이 방송국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방송국은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서 경험이 있는 연출자와 촬영, 조명, 편집, 혹은 이미 얼굴이 알려진 스타들과 안정적인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들이 필요했다. 한국영화는 이중의 검열 속에 관객들에게 거리의 죽은 개 취급을 당하면서 구경거리로서도 버림받고 있었다. 재빨리 대중들은 스크린을 버리고 모니터 앞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1969년의 이야기이다. 그때 방송국은 안정된 직장이었다. 임권택 은 <신세 좀 지자구요>를 연출하면서 종종 텔레비전 스튜디오에서 진행하는 것만 같은 실험을 할 때가 있다. 그 목표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물론 그 실험이 예외적인 것은 아니다. 로셀리니를 시작으로 (그의 교훈에 따라) 에릭 로메, 자크 리베트, 고다르, 필립 갸렐, 외스타슈, 라이너 베르너 파쓰빈더, 헤어초크, 벤더스로 이어지는 수 없는 텔레비전과의 모험이 있다. 시네-텔레비전이라고 세르주 다네가 명명했던 시기. 레지스 드 브레는 좀 더 과감한 예언을 했다. 결국 관객은 시청자의 감각을 갖게 될 거예요. 그 말을 빌려서 나는 우리 시대의 관객에 대해 말하고 싶다. 영화관객은 스마트폰 유저의 감각을 갖게 될 거예요. 하지만 임권택의 실험은 미학적이라기보다는 실용적인 관점에 따른 것이다. 그것이 앞으로 다가올 미디어의 잡종교배에 따른 방법의 탐구인지 아니면 그 자신이 방송국으로 옮겨갈 것을 염두에 둔 테스트인지는 (당연히 내가) 알 수 없다. 경기의 시작. 마치 우회를 하듯이 오천평의 테이블을 거쳐서 송해 와 박시명 은 이재명과 아내, 그리고 딸이 앉은 테이블로 간다. 물론 오천평은 경기장의 새로운 벡터를 더할 것이며 지금은 단지 자리를 차지하고 자기의 순서를 기다리는 중이다. 이재명의 아내는 신랑댁이 시간에 늦는다면서 툴툴 거리고 있지만 딸은 아직도 3분이나 남았다고 대답한다. 그때 저편에 ( 양훈 ) 과장과 아내, 아들( 이철 ), 계장( 서영춘 )이 이미 자리를 잡고 감시하듯이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그들이 왜 온 것일까. 대답은 단순하지만 기괴하다. 최후의 클라이맥스를 준비하기 위해서. 그러나 그것은 영화에서는 성립되지 않는 대답이다. 만일 그러기 위해서라면 그들은 이재명 테이블로부터 시선 바깥에 숨어있거나 (이 영화가 희극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변장을 하고 나타나야 할 것이다. 그들은 지금 다른 집안의 상견례에 개입하는 중이다. 그런데 이재명의 테이블에서는 마치 이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 일종의 양해를 받은 시선의 차단. 혹은 관객과의 약속. 간단하지만 지나치게 간단해서 기형적인 배치. 말하자면 여기서는 통상적인 영화의 약속이라고도 할 수 있는 포르(Fort)-다(Da)의 원근법이 성립되지 않고 있다. 혹은 마치 연극무대처럼 진행된다. 임권택 은 두 집단 사이의 시선을 다시 나눌 필요가 있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앙상하리만큼 드러난 인물들의 노출. 붙들어 매어놓은 것처럼 한 화면 속에 앉아있는 의자 위의 인물들. 그런데도 그렇게 해도 여기서는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이 장소는 영화의 법칙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임권택이 이따금 비영화적인 배치에 이끌릴 때 만들어내는 블록의 구성에 대해서 난처함을 느낄 때가 있다. 지금이 그 순간 중의 하나이다. 세 개의 테이블. 이재명 가족이 기다리는 테이블과 오천평이 혼자 앉아있는 테이블과 과장 가족과 계장이 훔쳐보는 테이블. 마치 기계처럼 돌아가는 순서가 이어진다. 이제 소개가 끝나자 (조미령) 마담과 아들 세진이 제과점에 들어선다. 마담은 믿는 구석이 있다는 듯 도도하게 다가와 이재명 테이블의 의자에 앉고 그 기세에 눌려 ( 도금봉 ) 아내는 약간 주눅이 들었다는 듯 맞이한다. 다시 돌아가기 시작하는 홀의 서빙. 송해 와 박시명 점원이 다가와 오렌지 주스 주문을 받는다. 잔의 주문 숫자를 영어로 세면서 거기에 자기들의 숫자까지 슬쩍 더한 다음 (그런데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다) 돌아간다. 마지막 등장인물. 말하자면 완결된 숫자. 이 장소에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마담의 남편 자리에 구先生이 약간 거만한 자세로 나타난다. 모습이 가관인 것은 카이저수염을 달고 거기에 중절모를 쓰고 이 자리에 나온다. 물론 구先生도 누구를 만나러 이 자리에 자기가 불려나왔는지 이미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구先生은 능청맞은 얼굴로 마치 처음 보는 사람들인 것 같은 제스처를 취하면서 인사를 한다. 이때 이재명과 그 아내, 딸 보영은 그가 구先生이라는 것을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 나는 이미 이 시퀀스의 약속에 대해서 설명했다. 하지만 그 변장한 모습 때문에 알아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구先生이 쓰고 나온 모자는 원래 이재명이 가장 아끼는 비싼 모자이며 눈치 없는 식모가 그만 구先生이 필요하다는 말에 냉큼 내다줬다가 아내로부터 야단을 맞은 것인데, 바로 그 모자를 쓰고 나왔는데도 알아보지 못한다. 좀 더 간단하게 자기 모자를 쓰고 나온 상대방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내가 주목하는 것은 이재명의 가족들이 구先生의 모습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이야기) 안에서 서로 약속한 생활의 기호들에서조차 누구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중의 장님 효과가 있다. 몹시 망설이면서 이재명의 아내는 “혹시 구先生님 아니세요?”라고 묻지만 모자를 벗고 (뒤집어쓴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는) 대머리(모양의 가발)을 보여주자 금방 실례했다고 사과한다. 이야기는 납득할 수 있는데 전개 방식은 ( 임권택 답지 않게) 전혀 납득할 수 없게 진행된다. 사실 이 장면이 드라마로 우리에게 불러일으키는 긴장은 구先生의 변장이 들키느냐 마느냐에 있다. 이중의 역할. 마담의 남편의 자리이자 구先生이라는 역할. 구봉서 라는 배우, 드라마가 불러일으키는 긴장. 여러 개의 진동판을 동시에 건드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허약한 약속. 여기서 그 정체를 들키게 된다면 이 모든 노력은 허사가 된다. 이때 우리는 이 약속을 좀 더 밀고 나갈 필요가 있다. 좀 전에 한 말을 수정하고 싶다. 희극의 진정한 약속은 여기서 그 정체를 들키게 된다면 이 모든 노력은 허사가 된다, 라고 전제를 던진 다음 그것을 기어이 들키게 만들어서 소동을 만드는 것이다. 전형적인 포르-다 게임. 이때 눈속임은 이중으로 배치된다. 이야기 안의 인물들은 속지만 이야기를 보는 우리는 절대 속지 않는다. 우리가 속는 것은 절대 속지 않는다고 가정된 약속 그 자체의 배신이다. 당신은 이 상황이 1969년에 만들어진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희극 영화이며, 게다가 텔레비전에서 영향 받은 분장이라고 가볍게 지나치고 싶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잘못 붙잡은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지금 구先生의 외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주인이 알아보지 못하는 모자라는 기호를 질문하는 중이다. 종종 어떤 기호들은 마치 침점과 같아서 이야기 안의 시간을 파고 들어가기 시작한다. 나는 이 문제가 보기와 달리 그렇게 단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임권택은 이미지의 재현이 약속에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재현 자체가 대상의 뿌리와 관련지어야 한다고 믿는 연출자이다. 그건 < 두만강아 잘 있거라 >에서부터 그러했다. 그런 다음 임권택이 연출한 1960년대의 사극을 볼 때마다 그가 어떤 순간에는 과도할 정도로 그 뿌리의 안에서 영화가 살아가야한다는 믿음을 밀고 나가는 것만 같은 인상을 받을 때를 발견하곤 했다. 그는 어느 순간 그게 왜 거기에 있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놓고 이미지의 자리에 대한 내기를 벌이곤 했다. 영화는 그에게 재현될 때 그 안에 대상의 뿌리가 체화되고 시간이 종합되는 장면을 보는 것이라는 어떤 믿음의 일관성으로 진행되었다. 나는 그걸 < 길소뜸 >에서 무시무시한 심정으로 지켜보았다. < 신세 좀 지자구요 >를 만들던 해에 임권택은 < 황야의 독수리 >를 연출했다. 이 시기의 임권택은 매우 빠른 속도로 자기 영화의 어느 부분들이 무너져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 같을 때가 있다. 그래서 종종 어떤 영화들은 임권택의 영화들 안에서 완전히 고립된 것처럼 보일 때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여기서 무언가 재현의 이미지들은 단절되고 스스로 이야기 안의 인물들의 기호들이 산산조각 나는 것만 같은 소리를 듣는다. 갑작스러운 사고. 여기서 괴상한 장면이 연출된다.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손님 오천평의 주문을 받고 핫 케익 10장을 구운 접시와 주스를 담은 쟁반을 들고 나오다가 그만 송해 와 박시명 은 서로 부딪쳐서 그걸 바닥에 떨어트려 접시는 나뒹굴고 컵은 깨지고 핫케이크는 바닥에 떨어진다. 그때 갑자기 기적이 벌어진다. 놀라지 말 것. 영화 화면이 거꾸로 돌아가면서, 말하자면 카메라 필름을 되감으면서(rewinding_shooting), 바닥에 떨어졌던 케이크와 주스 잔과 접시가 바닥에서 위로 날아올라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온다. 물론 간단한 테크닉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영화의 기계장치가 고스란히 드러나면서 드라마의 리듬은 산산 조각나버린다. 혹은 완전히 작동을 중단하게 된다. 차라리 어리둥절한 중단. 이 순간 영화는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이동해버린다. 무언가 이 쇼트는 이 갑작스러운 리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처럼 보인다. 마치 이 순간에 대한 알리바이를 준비하기라도 하듯이 구先生은 먹을 것을 보면 식탐을 주체하지 못한다는 설정이 반복되었다. 이를테면 양주병에 바꿔 넣은 화장품 스킨로션 한 병을 모두 마시고 화장실을 몇 차례이고 반복해서 드나드는 장면. 이때 임권택 은 구先生의 복통을 배가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는 장면과 마치 폭격기의 폭음과도 같은 과장된 사운드를 결합시켜서 보여주었다. 이번에는 주스를 보자 구先生은 지금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마치 맥주를 마시기라도 하듯이 그걸 벌컥벌컥 마신다. 그때 이들과 아무 상관없는 오천평은 자신이 주문한 핫케이크를 다른 테이블에서 혼자 정신없이 먹기 시작한다. 두 개의 테이블. 하나의 장소, 새로운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테크닉. 영화는 그 둘을 반복해서 서로 오가면서(cross_cutting) 마치 둘 사이에 어떤 관계라도 있다는 듯 보여준다. 물론 둘 사이에는 아무 연관성도 없으며 또한 드라마도 생겨나지 않는다. 강제적인 매듭. 사회적인 태도를 포기하고 본능에 충실하겠다는 듯한 동물적인 제스처. 오로지 그 둘의 관계는 탐식의 광란에 가까운 속도 이외에 어떤 연관성도 없다. 여기까지 드라마를 쫓아왔다면 당신은 중얼거릴 것이다. 이래도 괜찮은 것일까. 그리고 이 말은 내가 맨 처음에 했던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연쇄반응이 일어난 것만 같다. 그런데 그 반응은 이제 이 운동이 완전히 이야기 바깥으로 나갔음을 알린다. 거의 제멋대로 작동하기 시작하는 신체들. 마치 그 주인들이 통제를 상실하기라도 한 것처럼 카메라가 대상을 건드리면 그 부위가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기라도 하는 것만 같다. 구先生과 오천평이 각자의 테이블에서 각자의 음식에 매달리자 과장 가족과 계장이 앉은 테이블에도 진동이 온 것처럼 보인다. 이때 이걸 바라보던 ( 서영춘 )계장이 마치 이미 프로그램이 되어있는 인형이 두 사람의 탐식에 반응을 보이기라도 하듯이 물고 있던 담배를 뱉어내자 그게 날아가 ( 양훈 ) 과장의 입에 꽂힌다. 사라진 삶의 법칙. 그걸 (양훈) 과장이 다시 뱉어내자 그게 아내의 코에 가서 박힌다. 거의 서커스와도 같은 동작. 물론 여기서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훈련받은 연기자들의 묘기가 아니라 영화의 기계적인 트릭이다. 오로지 영화라는 기계의 작동. 그걸 아내가 다시 콧바람으로 불어내자 그게 날아가 다시 (서영춘) 계장의 입에 꽂힌다. 질세라 그걸 다시 뱉어내자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벌려 ( 이철 ) 아들이 받아먹는다. 이 개그는 사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이야기와 아무 상관도 없으며, 심지어 이재명 가족과 마담 가족 간의 상견례의 어떤 내용과도 상관이 없다. 그들 사이에서의 행동은 어떤 비유도 성립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각자의 테이블은 상징과 아무 상관이 없다. 우리는 세 개의 테이블을 어떻게 짝 지워야 하는 것일까. 세 개의 테이블은 가장 단순한 상태의 신체라는 운동의 작동만이 기계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이제 이 세 개의 테이블로 나뉜 기계적인 활동을 어떻게 하나로 결합할 것인가, 라는 문제가 남았을 뿐이다. 첩첩산중. 이 활동에서 어떤 작동을 중단시키고 이들을 보다 큰 범주의 새로운 운동의 경기에로 어떻게 이동시킬 것인가. 구先生은 큰 기침을 한다. 콧물을 닦으려하자 (당신도 예상했듯이) 카이저수염이 떨어져나간다. 이때 이재명과 아내는 깜짝 놀라지만 이상한 것은 그걸 보고 딸 보영이 깔깔 웃는 것이다. 사실상 구先生의 정체가 탄로 나는 순간 상견례는 파국을 맞을 것이며 보영의 결혼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마치 남의 일처럼 바라보면서 반복해서 웃는다. 이 순간 구先生이 실례했습니다, 라는 대사를 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할 말이 없다. 상황종료를 알리는 대사. 임권택 은 다시 상황을 시작해야만 한다. 그때를 기다린 것처럼 파리가 구先生의 대머리 가발에 앉는다. 이번에는 (두 명의 점원 중의 한명인) 송해 가 다가가 구先生의 머리에 앉은 파리를 잡는다고 내려치다가(물론 우리는 그 다음에 벌어질 상황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순간 긴장을 불러내는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두려운 기대이다) 그만 가발을 벗겨버린다. 그제서야 이재명과 아내는 마담의 남편(역할을 하기 위한 나온 이 사람)이 구先生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하지만 관객 중에 이 사람이 구先生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었겠는가. 여기엔 어떤 게임도 없다) 맙소사. 드라마는 사실상 여기서 가장 불편한 순간을 맞이한 것이르였?이상 해야 할 이야기는 남아있지 않다. 새로운 동선. 그때 어디선가 크림을 잔뜩 토핑한 케이크가 날아와 구先生의 얼굴에 정통으로 맞는다. 돌아보니 ( 양훈 ) 과장과 아내, 아들, ( 서영춘 )계장이 일어나서 이재명의 테이블을 향해 일제히 던지기 시작한 케이크가 날아든 것이다. (할리우드 희극장르에서) 파이던지기(라고 부르는) 액션. 파이던지기는 카오스로 달려가는 입구이다. 임권택 은 전쟁영화를 찍을 때 누가 누구를 (종종 과도할 정도로) 쏘는 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연출자이다. 하지만 자, 정반대로 여기서 임권택은 거의 고의적으로 누가 누구에게 던지는지를 알 수 없게 동선을 무시하고 (좀 더 정확하게는 넘나들면서) 서로에게 집어던진다. 혹은 누가 누구에게 던지든 상관이 없다. 순간적으로 그 자리를 피한 사람은 쓰러진 책상 밑에 모습을 숨긴 이재명의 딸 보영과 마담의 아들 세진이다. 그때 송해 와 박시명 은 재빨리 파이던지기의 동선에서 빠져나와 케이크를 맞고 기절한 오천평의 삼백만 원짜리 반지를 빼내려고 애를 쓰고 있다. 서로 관계가 없는 전체. 그저 동선의 재난이라고밖에 달리 말할 수 없는 활동. 그때 인물들은 뒤집어쓴 케이크의 크림으로 무너져 내린 형상이 되어간다. 반드시 상대방을 겨냥할 의도조차 없이 사방에서 서로 던질 때 여기에는 원칙이 없다. 그런 다음 거의 지친 그들이 서로를 향해 주먹질을 할 때 (양훈) 과장과 이재명이 서로 마주보고 있고, (서영춘) 계장과 구先生이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이들 사이의 짝은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 사이에 ( 이철 ) 아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재빨리 바깥으로 도망친다. 당신이 좀 더 예민하다면 문득 화면의 주변을 돌아볼지 모르겠다. 그렇다. 그들이 케이크를 집어 던지는 사이에 처음 시작할 때 앉아있던 다른 손님들은 아무 말 없이, 말 그대로 소리 없이, 마치 그들의 난동극에 조금이라도 방해라도 될 것 같아 자리를 피하기라도 하듯이, 흔적도 없이 화면에서 사라졌고, 그런 와중에도 카운터 저편의 제빵 셰프들은 그들이 만든 케이크를 사방에 집어던지는 동안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이, 마치 그들을 보지도 못한 듯이, 계속해서 빵을 만든다. 그러다가 구先生이 두 어머니, 이재명의 아내와 다방 마담에게 그들의 자식들에게는 그들의 기회를 주어야한다는 충고를 주고 떠나갈 때에야 비로소 돌아본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마지막 장면의 마지막 장면을 설명하는 대신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고 싶다. < 신세 좀 지자구요 >는 임권택 이라는 설명 바깥으로 나간 영화이다. 그냥 서둘러 실패작이라고 설명한 다음 빠져나오고 싶을 정도로 한편으로는 부서져나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에너지가 그 사이를 메워나간다. 처음 볼 때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예기치 않은 골격이 나타나 영화의 윤곽을 다시 설정하기 시작할 때 임권택은 거기서 무언가 혼란스럽긴 하지만 영화 안에서 끊임없이 변형을 가하려는 시도를 한다는 걸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는 이런 방식을 두 번 다시 취하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이 영화를 만들면서 무언가 모델을 찾고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는 더 이상 눈으로 만지지 않는다. 그 대신 영화 그 자체가 하나의 육체처럼 다루어지기 시작할 때 몸은 히스테리에 빠져들기라도 한 것처럼 무언가 견딜 수 없다는 듯이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려 든다. 지나치게 빈약한 장치들. 모든 것이 드러나 버린 몸. 벌거벗은 영화. 여기서 눈은 기능을 포기했고 창자가 음식에 반응하면서 영화의 장치들을 뒤틀기 시작한다. 말 그대로 배고픈 영화. 굶주린 수사학. 나는 그 사이에서 무언가 거기서 독립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 그건 리비도의 퍼포먼스이다. 이제까지 임권택을 다루면서 이상할 정도로 아무도, 정말 누구도, 한 번도 다루지 않은 질문. 나는 이 질문의 시작을 여기서부터 해볼 생각이다. (계속) 1969년 90분 컬러 2.35 감독 임권택 제일영화주식회사 각본 신봉승 촬영 장석준 조명 김진도 편집 장현수 음악 김기갑 구봉서 ... 구선생 김희갑 ... 이재명 도금봉 ... 이재명의 아내 전양자 ... 이재명의 딸, 보영 조미령 ... 마담 서영춘 ... 계장
90년대 말 다시 찾아온 한국영화의 부흥기는 많은 걸 바꿨다. 산업적인 측면에서나 제작 시스템적인 환경까지도. 그 중 하나가 바로 사운드트랙이다. < 접속 > OST의 눈부신 성공을 기점으로 한국영화음악 시장에도 상업적인 가치가 있음을 발견한 제작자와 홍보사 그리고 감독들은 저마다 음악에 대해 신경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 무렵 기존 작곡가들과는 다른 지향점과 자양분을 갖춘 영화음악가들이 등장한 것도 사실이다. 이동준 , 조성우 , 조영욱 , 한재권 , 원일 , 이재진 등 젊은 음악인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와 새로운 유행과 경향을 창조해냈다. 그 속엔 장영규도 있었다. 각종 무대 음악들과 어어부 프로젝트로 인디 씬에 독특한 충격파를 선사한 그는 아름답고 멋진 선율 뒤에 숨겨진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사운드를 찾아 자신만의 영역을 넓혀왔다. 정형화되고 규격화된 대중들의 입맛에서 벗어나 생소하지만 생생한 파격과 전위적인 혁신으로 경계를 넘나드는 음악을 들려주었다. 많은 아티스트들이 이에 매료되었고, 장선우 , 박찬욱 , 이무영 , 김지운 감독 역시 장영규의 날선 색채를 좋아했다. 그는 그렇게 다양한 감독들과 작업을 이어가며 스펙트럼을 넓혔고, 어어부 프로젝트에서 영화음악가로 점점 진화해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음반시장은 고사 상태가 되어 더 이상 영화 밖에서 한국영화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길이 적어졌지만, < 타짜 >와 < 놈놈놈 >, 그리고 아직까지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이란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 도둑들 >에 이어 2013년 여름 시즌을 뜨겁게 달군 화제작 < 은밀하게 위대하게 >와 < 감시자들 >까지 흥행작들의 음악을 담당하며 그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길이 넓어지기도 했다. 독립영화에서부터 단편, 상업영화까지 전천후로 활동하는 장영규는 현재 한국영화음악 지형도에서 중요한 위치에 서있다. 어느새 중견으로 올라선 경력도 그러거니와 꾸준한 작업량과 다양한 장르적 도전 정신, 또 복숭아라는 창작집단 체제를 통해 공동작업의 새 지평을 열어가고 있는 시도들이 무엇보다 그렇다. 그는 한국영화시장의 황금기와 부흥기에 태동한 작가주의형 영화음악가인 동시에 산업과 시스템이라는 도식적인 틀 안에서도 굳건히 살아남아 자신의 색깔을 영화에 오롯이 투영시킬 수 있는 몇 안 되는 한국영화음악의 장인이다. 단명하기 쉬운 이 세계에서 그의 지속적인 생산력과 도전적인 예술성에 대해 진지한 고찰과 물음이 필요했다. 최근 <광부화가들>이란 연극의 음악감독을 맡으셨더라고요. 아, 그건 3년 전쯤 했던 작업인데, 다시 한 번 재공연하는 거 같아요. 8월 달엔 전통음악 그룹 ‘비빙’의 공연이 있었고, 전통가곡을 부르는 이기쁨 공연에도 편곡으로 참여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영화와 연극, 공연과 밴드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시는데, 각 분야별 차이가 있을까요? 저도 차이를 생각해보는데 별 차이가 없는 거 같아요. 영화나 연극이나 뭐, 작업에 미세한 차이는 있겠지만 그런 거보다 작업을 어떤 사람하고 하느냐 그런 게 더 큰 차이인 거 같아요. 어떤 연출가와 하느냐, 어떤 영화감독과 하느냐 그런 게 중요하지 장르는 그렇게 크게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작품수가 굉장히 많으세요. 상업영화도 하시고, 단편영화나, 독립영화, 다큐도 하시고요. 한해에 적게는 2~3편, 많게는 7편까지도 하시는데, 이런 다작은 앞에서 말씀해주셨던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일까요? 처음 음악을 시작했을 때는 베이스 연주자로 시작을 했다가, 연주 말고 다른 음악작업으로서 처음은 91년도에 안은미 씨를 알게 되면서 한 무용음악 작업이었어요. 그러면서 여러 장르의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 그러다보니 초반에 들어오는 일을 가리지 않고 여러 가지를 하게 되었죠. 일이 많이 없고 한가할 때는 들어오는 데로 하기도 했고, 그러다보니 여러 장르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거기서 또 사람들이 가지를 치고 나가다 보니까 같이 작업하는 동료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이지경이 됐죠. 감독님도 다양한 분들과 작업을 하셨잖아요. 박찬욱, 이무영, 최동훈, 김지운, 이재용, 민규동, 김기덕, 나홍진 등... 생각보다 또 그렇게 다양하진 않아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오래 길게 작업을 하는 거죠. 영화음악을 맡으실 때 선호하는 지점이나 방향성이 있으신가요? 시나리오를 읽거나... 읽어도 사실은 어떻게 만들어질지에 대해서 잘 모르겠어요. (웃음) 같은 내용이라도 ‘누가’ 만드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더라고요. 작업을 하실 때 감독님과 상의나 토의를 많이 하시는 편인가요? 꼭 그렇진 않아요. 오히려 그냥 만들어보고 들려주고. 음악이란 게 말로만 해선 잘 안 되는 부분들도 많아서 빨리빨리 들려주는 걸 좋아하죠. 시나리오를 먼저 받으셨을 때 작업을 시작하시나요? 예전에는 그래 왔었어요. 시나리오를 받고 데모를 만들어서, 영화 시작하기 전에 어느 정도 음악적 콘셉트를 잡아놓고. 그러고 촬영을 시작하면... 감독도 그 음악을 들으면서 작업을 하고요. 그런데 요즘에는 영화 만드는 환경이 많이 달라졌어요. 촬영이 시작된 후에 음악감독을 구하는 경우도 많이 생겼어요. 예전에는 미리 해서 어떻게 할 거냐, 그랬는데, 요즘은 심지어 촬영 끝나고 들어가는 경우도 있고, 그래서 편집본 보고 작업하는 경우도 많아졌죠. 감독님은 예전 방식이 더 좋으신 건가요? 우리나라 영화 후반작업이 굉장히 짧아요. 짧은 시간 안에 부딪힐 문제들을 미리 해결하고 가니까 (예전 방식이) 시간적으로 많이 도움이 되죠. 촬영이 다 끝나고 편집을 하다가 음악작업을 하다가도 두세 번을 뒤집는 경우가 있어요. 그건 어찌됐든 영화적으로 굉장히 마이너스가 되는데, 그걸 찍기 전에 미리 하고 가는 건 나중에 집중할 수 있는 거니까 영화에 큰 도움이 되죠. 초기 작품들을 살펴보면 ‘어어부밴드’의 연장선상의 느낌이 있습니다. 그렇죠. 그걸 (사람들이) 원했던 거죠. <반칙왕>같은 경우는 어어부에서의 그런 음악을 쓰고 싶어서 저를 데리고 온 거고요. 그때는 전 영화음악 하는 사람이라기보단 어어부가 더 먼저였으니까. 사람들이 절 찾는 이유는 어어부의 음악 색깔이었던 거죠. 시간이 지나면서 스타일이 좀 바뀌신 거 같아요. 저도 바뀌고. 제가 생각하는 것도 바뀌고. 바라보는 것도 바뀌고. 어어부도 활동을 잘 안하고. (웃음) 초반에는 그래서인지 노래나 송트랙이 많았었는데, 연주 음악 비중이 점점 높아졌던 거 같습니다. 영화도 그때랑 지금이랑 한국영화 스타일이 많이 바뀐 거 같아요. 음악 쓰는 방법도 많이 바뀌었고. 그러면서 저도 바뀐 거 같고. 영화와 함께 바뀐 거죠. 예전 작업하신 영화들이 키치적이고... 영화가 다 그런 영화들이었어요. < 철/파/테 >나 < 다세포 소녀 >, < 소년, 천국에 가다 >, < 미쓰 홍당무 >... 어떻게 보면 좀 범상치 않는 영화들인데. 사실 국내에서 이런 작품들의 음악적 대안은 장영규 감독님 말고는 없어 보입니다. 그런 스타일에 대한 고민도 있으셨나요? 그때 그 영화들이 그랬기 때문에 그렇게 작업을 했지, 제 음악에 영화를 맞춰나갈 수는 없죠. 초반 몇 작품은 그런 걸 서로 원했던 거 같은데, 그 뒤에는 영화가 그런 영화였기 때문에 그렇게 작업을 한 거고요. 요즘은.. 그런 영화들이 안 들어오고, 또 잘 안 만들어지고. <다세포 소녀>는 개인적으로 충격이었습니다. 중간에 ‘무쓸모 교가’를 들어보면 중간 중간에 반야심경이 나왔다 할렐루야가 나왔다 한국적인 음색도 들리고 종잡을 수 없는 사운드였는데요. 그런데... 원래 의도에 비하면 영화가 좀 얌전하게 나온 거 같아요. 영화보다 음악이 더 좋았던 거 같습니다. 영화는 정말 얌전한 느낌이 있었거든요. 음악도 더 막나가야 하는데 영화가 너무 얌전해서... (웃음) 저도 좀 더 얌전하게 갔어요. 사운드트랙은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재용 감독의 다른 영화 < 여배우들 >도 독특한 시도였던 거 같아요. 다큐와 허구를 섞은. 그래서 음악을 어떤 방식으로 배치하고 사용했는지 궁금합니다. 흡사 이지 리스닝 계열이나 라운지 뮤직을 떠올리게 만드는 듣기 좋은/쉬운 음악들이었는데? 그렇죠. 영화 자체가 벌어지는 공간 자체가 사진 찍는 스튜디오였고, 그런 스튜디오에서 나올법한 음악들, 사진 찍는 사람들이 그런 음악들 많이 틀어놓고 작업하고. 그런 것들을 고려했던 거 같아요. 이야기보다는 그 공간과 배우들의 분위기를 맞춰주는 음악들이었죠. 이재용 감독님과의 작업은 어떠셨나요? 이재용 감독과는 워낙 예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어요. 한 90년대 중반? 94년 다큐 <한 도시 이야기> 할 때부터, 그전부터 알던 사이여서 같이 일하면 편해요. <다세포 소녀> 의뢰 들어올 때 좀 놀라셨겠어요. 만화는 보셨죠? 네, 이걸 가야 하나 고민 좀 했었는데... (웃음) 그러고 보면 최신작인 < 은밀하게 위대하게 >도 웹툰 원작의 영화에요. 이 작품 음악은 <다세포 소녀>하고는 좀 다른 거 같은데, 좀 더 진지하고 공격적인 느낌이 났습니다. 이 영화의 경우, 원래 콘셉트는 앞의 부분이 코미디잖아요. 워낙 코미디이니까 아예 음악을 안 쓰고, 거기는 음악이 필요 없을 거 같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자신이 간첩임을 고백하는 순간부터 정색하고 음악을 쓰고 싶었는데, 웃겨야 한다는, 뒤는 흥으로 밀어붙여야 한다는 의견이 들어와서 음악도 그렇게 진행하게 됐죠. 처음 의도와는 좀 다르게 진행됐어요. 그렇다면 최근 작업하신 작업 중에서 감독님의 의도와 가깝게 된 음악은 어떤 걸까요? 영화사가 아직도 살아있는 영화의 작업들. 영화사 집의 <감시자들>, 또 최동훈 감독도 자기 영화사가 있으니까. 그런 영화사와 작업하면 투자사에서 끝까지 한 번도 안 와요. 그 음악이 어떻다 말을 안 해요. 그렇지 않고 감독이 약간 힘이 없거나, 영화사가 있어도 그냥 이름만 있는 영화사라거나, 할 경우에는 와서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믿고 따라라, 죠. <감시자들> 같은 경우는 그런 게 전혀 없었어요. 이 영화는 감독들과의 작업이었어요. 그런 작업은 즐거우시겠어요. 그게 원래 작업인거죠. (웃음) <감시자들>같은 경우는 테크노나 일렉트로닉 사운드도 강하고요. 달파란 씨와의 공동 작업이었잖아요. 영향이 좀 있었는지요? 요즘 영화가 스타일이 바뀌는 거 같아요. <감시자들> 같은 경우는 할리우드 스타일로 많이 갔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음악도 할리우드 스타일 붙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런 방식의 음악을 하게 됐어요. 선율 같은 건 거의 없고, 음악이 공기처럼 영화 전반에 계속 있으면서 흐름을 만들어주는 역할이었죠. 음악이 정말 많이 쓰였던 거 같아요. 거의 한 시간 반 음악이 나올 거예요. 공동 작업을 하시는 데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지 궁금합니다. 테마나 선율을 공유하고, 전체적인 톤도 맞추는지. 아니면 각자 다른 큐들을 맡아 진행하는지. 그렇게 큐를 나누기도 하고요. 영화마다 좀 다르긴 해요. < 달콤한 인생 >이나 <놈놈놈>같은 경우는 전체 음악이 많지만 반복되는 지점도 없고 장면마다 음악이 다 달라서 거의 곡을 같이 만들었고, <감시자들>같은 경우는 어떤 테마가 있어서 그게 10분, 20분을 끌고 가고 해서 처음 콘셉트를 잡을 때는 둘이 같이 이야기하지만, 어떤 부분을 맡으면 각자 작업하게 될 수밖에 없는 때도 있었던 거 같아요. (그럴 경우) 만들어놓고 서로 이야기하고 조율,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 거죠. 필모에서 흥행작이 늘어났어요. 흥행이 잘 되는 작품을 고르시는 건가요? 아니면 작품들을 맡았는데 흥행이 잘 된 건가요? (웃음) 아니에요. 정말 제 필모 초반 영화들은 흥행이 하나도 안됐던 영화들이었잖아요. 그랬는데... (잠시 생각) 최동훈 감독을 만나면서부터...? (웃음) 작품을 고르실 때, 어떤 관점으로 고르시나요? <은밀하게 위대하게> 같은 경우도 궁금합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같은 경우에는 감독이 정해지기 전에 먼저 제가 정해졌어요. 시작 자체가 배우와 만화 때문에 이루어진 희한한 프로젝트였죠... 일이 많이 들어와서 제가 놓고 고른다고 생각하시는데, 생각보다 그렇지는 않고요. 같이 하는 사람들과 계속 다음 작업을 같이 하거나, 했던 영화사에서 다음 작업을 의뢰받거나, 그런 경우가 많지. 찾아와서 시나리오 주고 같이 하자, 이런 건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쌓아놓고 고르는 그런 건 아니에요. (웃음) 의외의 선택도 있습니다. <나는 공무원이다> 라던가. 그 영화는 감독이 동네 친구예요. < 모피를 입은 비너스 >는? 그건... 주인공이 (어어부의) 백현진 씨였고... 조민호 감독님과는 단편부터 작업을 하셨어요. 가까운 데 살고 술 먹다 친구가 된 그런 감독이에요. 나이도 비슷하고. < 박수건달 >같은 경우는 전 굉장히 의외였습니다. 조진규 감독이 워낙 조폭물을 많이 하셨는데. 장감독님 필모를 보면 조폭코미디가 없었잖아요. 물론 이 영화도 잘 됐고요. 그죠, 제가 (조폭) 코미디는 잘 안하죠. 정말 안 할라고 했는데. 이 작품이 들어오게 돼서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생각보다 < 조폭 마누라 > 조진규 감독이 찍은 영화들이 다 잘 만들었다고 주변에서 그러더라고요. 그래도 전 이런 건 안할래, 그랬는데, 달파란 씨가 이런 것도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 하는 권유가 있었어요. 이런 것도 한번 해봐야지. (웃음) 그래서 고민하다 한 번 해보게 됐는데, 확실히 잘 맞진 않는 거 같아요. 원래 영화가 무속이나 유령 같은 부분이 나와서 판타지로 풀면 좀 재밌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콘셉트가 바뀌면서 많이 달라졌죠. 이무영 감독과는 세 작품을 같이 하셨어요. < 휴머니스트 >, <철/파/태>, < 아버지와 마리와 나 >. 음악을 잘 아는 감독님이시잖아요. 팝컬럼리스트로도 유명했던 분인데 음악적인 요구 사항이 까다롭진 않은지. 관여를 하신다던가. 이무영 감독님이요? 안 그러세요. <철/파/태>에서 공효진 과 조은지 가 부른 ‘침대의 끝’이란 노래가 좋았습니다. 어어부의 보컬인 백현진 씨의 걸걸한 노래와 달리 이런 팬시한 느낌도 있구나 싶어 놀랐어요. 그와 같은 경우는 제가 어렸을 때 그런 음악들을 듣고 자라기도 했고요. 어어부 말고 다른 쪽에 있는 저의 감성이기도 해요. 그런 감성을 좀 더 보여주세요. 굉장히 좋아하는 데 사람들이 잘 몰라서 개인적으로는 섭섭하더라고요. 영화가 좀 더 잘 됐으면... 굉장히 대중적인 노래였는데. (웃음) 그렇죠. 목소리도 통통 튀었던 걸로 기억해요. < 엔티크 서양골동양과자점 >에서 김씨&알리가 부른 ‘케?파라파이스’라는 빅밴드/재즈 스타일의 뮤지컬 시퀀스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민규동 감독님이 요구하신건가요? 뮤지컬을 하고 싶다고 해서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뮤지컬 방식으로 작업을 했었어요. 그럼에도 가장 인상적인 호흡을 보인 감독을 뽑으라면 김지운 감독과 최동훈 감독입니다. 특히 <달콤한 인생>의 경우는 스페인 시체스 판타스틱 영화제 최우수음악상 수상했습니다. 게다가 이 영화음악은 라틴 사운드였는데. 그래서 걔네들이 동양의 이상한 애들이 우리 전통음악을 가지고 이런 식으로 했구나, 그래서 기특해서 준 게 아닌가 싶어요. (웃음) 음악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달콤한 인생> 사운드트랙이 어찌 보면 최초의 느와르 액션영화음악이었는데. 작업할 때 어땠나요? 그렇긴 한데 액션이라고 생각도 못했어요. (웃음) 그 영화의 경우에는 절반을 영화 찍기 전에 음악을 완성한 상태였거든요. 어떤 식으로 갔으면 좋겠느냐 하면서 작업했던 것들이 50%정도 사용됐죠. 김지운 감독님 같은 경우 작업하실 때, 디렉팅이 많은 편이신지? 김지운 감독님 같은 경우는 음악을 끼고 사는 스타일이라 많은 음악을 들려주죠. 요즘 이런 노래 듣는데, 이런 거 재밌다. 이것저것 들려주는 걸 좋아해요. 거기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도 있죠. <놈놈놈>에는 < 킬빌 >에 나왔던 음악 ‘Don’t let me be misunderstood’가 사용됐는데, 혹시 이 음악의 대안으로 작업됐던 음악도 있었나요? ‘Don’t let me be misunderstood’의 경우는 감독님이 꽂혔던 음악이고요. 편집할 때부터 그 음악을 깔고 편집하셨던 영화에요. <킬빌>에 나왔던 음악이라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했었는데, 대안이 딱히 있지도 않았고요. 감독님의 확고한 의지도 있었고. 새로 연주하신 건가요? 네, 새로 연주한 거예요. 그 음악은 저작권만으로도 몇 천 만원이고요. 음악 자체를 모두 사버리면 비용이 두 배 정도 올라가니까, 저작권만 사고 연주를 하는 쪽이 비용을 아낄 수 있는 거죠. 이를테면 저작권료만 5천이면 판권까지 모두 사면 비용이 훨씬 올라가는 거고요. 많이 비싸요. 그런 거 보면 나도 전곡을 만들고 그만큼 못 받는데... (웃음) 음악감독님이시니까 음악에 대한 저작권도 다 해결해야 하는 건가요? 아뇨, 그런 건 제가 하진 않죠. 한곡으로도 모자를 걸요. 최동훈 감독과는 <타짜>부터 작업하셨는데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마림바와 퍼쿠션, 비브라폰과 섹소폰 등의 조합으로 변화를 준 게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보통 할리우드 겜블 영화에서도 재즈 사운드를 많이 사용하는데, 여기서는 정중동의 느낌을 살려 묘하게 동양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 처음 시작할 때, 워낙 예전 일본영화들을 좋아해서, 스튜디오가 전성시대이었던 그때 음악들을 좋아해서 그런 스타일의 작업을 언젠간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 작업을 할 수 있는 영화를 못 만났는데, <타짜>를 보자마자 이런 컨셉트에 대한 제안을 했는데 다행히 최동훈 감독도 동의를 했고, 저도 하면서 굉장히 재미있었던 작업이긴 해요. 사운드트랙을 보면 곡목이 좀 특이해요. (편집자주: <타짜>의 트랙명은 ‘marimba + tom-tom 1’, ‘tom-tom + saxphones 1’ 등과 같이 악기 구성으로 되어있는 경우가 많다.) 사실 OST를 만들고 나서 제목을 붙이는 게 정말 고역이거든요. 보통은 제가 붙이곤 해요. 생각나는 데로 붙이곤 하는데. 어떻게 보면 정말 의미 없죠. 만들 때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걸 만든 후에 붙여야 하는 거니까. 그래서 제목 붙이는 걸 좀 싫어해요. (웃음) 영화에 쓰인 한대수 선생의 ‘불나비’도 좋았습니다. 김상국 선생의 ‘불나비 사랑’을 리메이크한 건데, 이를 고른 건 누구의 아이디어였나요? ‘불나비’는 최동훈 감독이 골라온 곡이었어요. 노래방에서 배우가 부르고, 김상국 씨 목소리를 어렸을 때부터 좋아해서 써보고 싶었는데, 한대수 선생님 연락 전에 김상국 씨를 찾아 봤는데. 건강이 안 좋으셨고. 그 때가 한대수 아저씨와 친할 때여서 또 노래의 힘도 있으시니까, 그래서 작업을 하게 됐죠. 영화와도 잘 맞는 거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한대수 선생과 백현진 씨의 창법이 겹쳐 보이기도 합니다. 한대수 아저씨의 곡을 들으면서 영향을 많이 받은 거겠죠. <철/파/태>에선 두 분의 듀엣곡도 있어요. ‘구멍난 그림자’라고. 그렇죠. 한 사람이 부른 걸로 아는 사람들도 있고. (웃음) < 전우치 >의 한국적인 사운드도 인상적이었어요. ‘궁중악사’같은 트랙은 독특하고 인기도 있었습니다. 지금 작업하는 ‘비빙’과도 연관이 있을까요? 비빙은 그것보다는 많이 좀 진지해요. ‘궁중악사’는 좀 코믹한 느낌이었죠. 재미있는 상황이어서요. 궁중에서 (그런) 음악을 좋아했어요. 그렇게 만들어 본거고요. 세 단계로 변화시켰던 곡인데, 최동훈 감독도 거기서 완전히 신나는 걸 만들어보고 싶어 해서 약간 유치하지만 작업해 본 거죠. 생각보다 (음원) 다운을 많이 받아서 깜짝 놀랐어요. <전우치>의 사운드트랙 컨셉에 대해 궁금합니다. 약간 클래식 한 느낌도 나는데요. 한국적이기도 하고 혼합적이기도 합니다. 과거와 현재를 왔다 갔다 하는 영화라 두 가지를 모두 해줘야 했고요. 그 전에는 클래식 악기 사용을 별로 안했는데, 오케스트레이션 하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요. 그런데 그 영화에서는 스타일상 해야 할 부분이 있었어요. 영화에서 현악기들이 가지는 힘이 있어요. 완전히 대규모는 아니고, 오케스트레이션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처음으로 현악기 사운드를 시도해본 거 같아요. 이 영화는 주제선을 딱 하나 가지고 시작했어요. 정확한 테마가 하나 있고, 그걸 처음부터 끝까지 가져갔죠. <전우치>도 어떻게 보면 히어로 영화인데요, 히어로물 음악을 생각하신 건지요. 히어로 음악까지는 안간 거 같아요. 그랬다면 좀 달라졌겠죠? 음악이? 현대와 과거를 왔다갔다 하는 판타지에 중점을 뒀었어요. <전우치> 사운드트랙은 CD로 발매되지 않았습니다. 음원으로만 나와 있는데요. 음반 시장이 오래 전부터 잠수를 타면서 만들 필요조차 없어지기 시작했죠. 만들었으니까 그냥 내자, 이런 게 되어버리고. 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계속 고민하게 되는 거죠. 영화음악 작업을 할 때 짧으면 한 달 반 안에 완성을 하고, 길면 서너 달 사이거든요. 그 사이 영화에 쓰일 한 시간 가량의 음악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영화에 들어가서 쓰이는 건 상관없지만, 따로 떼어놓고 듣다 보면 완성도가 떨어지는 부분도 확실히 있어요. (영화의) 시간적인 제약 때문에. 그걸 그냥 (완성)했으니까 낸다는 건 잘 모르겠더라고요. 어떤 때는 몇 곡만 모아서 내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또 디지털 음원으로 내던지. 영화음악 CD를 내는 건 누가 내는 건가요? 요새는 아무도 안내죠. 예전에는 제작사나 투자사에서 돈이 되니까 냈고. 돈이 안되더라도 홍보 수단으로 냈고요. 지금은 그조차도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요. 지금은 작곡가가 진행해서 내기도 하고, 감독이 원하면 감독과 함께 진행해서 내기도 하고요. 지금은 원하는 사람도 없고 사는 사람도 없고. 그런 거죠. 그럼 최근 감독님께서 직접 진행해서 내신 경우가 있나요? 일단 <미쓰 홍당무> 같은 경우는 이경미 감독님이 정말 내고 싶다고 해서 저와 같이 돈을 내서 만들었던 경우였어요. 몇 십 만원씩 내서 300~400장 찍었어요. 그래서 자켓 디자인이 조금 허접해요. (웃음. 자켓을 살펴보더니) 아... 그래도 이건 엠넷에서 찍은 거긴 하네요. 최소 수량으로 찍은 거예요. 오히려 예전에 냈던 것들은 영화사에서 마케팅을 하고 홍보수단으로 쓰기 위해서 디자인이나 그런 부분들에 돈을 들였던 건데, 갈수록 안하게 되는 거죠. <미쓰 홍당무>에 쓰인 멕시코 음악 같은 경우는 저작권료가 얼마나 될까요? 그건 민요에요. 그래서 저작권료는 따로 없죠. 직접 녹음을 했고요. 일부러 그런 걸 찾는 거죠. 완전 저예산 영화니까 음악 제작비도 정말 적었거든요. 그런데 영화 자체가 계속 월드음악을 틀어대고 있으니, 그 선생이... 그렇다고 (월드음악을) 살 수도 없고요. 그래서 미국 쪽 음악대학 연주자들 중 멕시코 출신들을 찾아서, 그 친구들이 아르바이트로 마리아치 밴드를 하거든요. 그런 친구들을 섭외했어요. 그래서 너네들이 할 수 있는 포크송 곡목 리스트를 달라. 그런 다음 그 리스트를 받아서 감독과 함께 보고 골라서, 그쪽에서 녹음해서 보내준 거죠. 완전 초저예산으로 녹음한 거죠. 초기에는 호러 영화도 제법 맡으셨어요. 원일과 함께 했던 < 링 >을 비롯해, < 알 포인트 >나 < 4인용 식탁 >, < 여고괴담 4 목소리 >까지. < 얼굴 없는 미녀 >도 스릴러/호러 느낌도 있고요.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사운드에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호러 장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렇죠. 좋아해요 그런 소리들을. 관심도 있었고요.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몇 작품을 했었죠. <알 포인트>같은 경우는 직접 맡은 건 아니고... (편집자주: ‘복숭아’로 달파란, 방준석, 이병훈과 함께 참여했다.) <4인용 식탁>이 제가 하고 싶었던 대로 했던 그런 작품이었어요. 주목받지 못한 작품들 중에서 기억에 남는 건 어떤 작품이 있으신가요? 전 < 복수는 나의 것 > 할 때 재미있었던 거 같아요. 그 작품 할 때, 박찬욱 감독님은 영화음악이 하나도 없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주문을 했었어요. 엔딩곡만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요. 그래서 엔딩곡만 만들어달라고 시작한 영화였죠. 그런데 하다 보니 뭐... 여기저기. 음악이 많이 쓰이진 않았어요. 음악이지만 음향처럼 쓰였어요. 나홍진 감독의 < 황해 > 작업은 어떠셨나요? <황해>를 작업했을 때, 나홍진 감독과는 굉장히 편했어요. 아무도 안 나타났거든요. 나홍진 감독도 굉장히 잘 받아들이는 사람인 거 같아요. 똑같은 이야기라도 음악이란 게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은 무한하잖아요. 또 원하는 게 이거라 해도 그쪽으로 가는 길도 정말 무한하고요. 근데 보통 자기가 이해한 게 이런 거고 이건 자기가 여태까지 들었던 것과 달리 익숙한 것이 아니라면 거기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고, 못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어요. 애초의 의도에 대해 똑같은 효과가 있지만요. 익숙하지 않은 걸 못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이 지금까지 어떤 걸 들어 왔는지에 대해 알고 맞춰나가야 하는 부분도 있어요. 그런데 받아들이는 사람이 가끔 있는데, 나홍진 감독이 받아들이는 편이었어요. 자신이 원하던 것은 이런 게 아니었지만, 저의 설명을 듣고 동일한 효과를 낸다는 것을 납득하면 그렇게 가요. 어쩐지 자신이 생각하는 곳 쪽으로 고집할 거 같았는데, 열려있는 분이더라고요. 편집이 개봉판, 감독판, 해외개봉판으로 이루어지면서 음악도 세 버전으로 나왔어요. 김기덕 감독과 딱 한 편 하셨습니다. < 해안선 >을 하실 땐 어떠셨어요? 후반작업을 할 때 감독님을 만날 수가 없었어요. 워낙 바쁘셔서. 그래서 음악을 만들고, 음악을 찍기 시작할 때 회의를 한 번 하고. 음악을 만들 때 회의를 해야 하는데, 너무 바쁘셔서 만날 수가 없더라고요. 믹싱도 오래 안하시고 딱 하루 하시더라고요. 믹싱할 때 만났어요. 제가 다 들어봤는데, 잘 들었다고... 하나 두 번째 곡까지는 잘 넘어갔는데, 그 다음부터는 마음이 안 맞는 거예요. 그때만 해도 김기덕 감독님은 후반작업하실 때 이미 다음 작품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셨는지 어떤 음악은 여주인공이 나오면 계속 한 음악을 갖다놓으시고 그러셨는데, 전 그렇게 생각 안하는데요, 하고 부닥치다가 그래봐야 하루밖에 안 되니까 그냥 그러다 끝났어요. 음악 작업할 때는 재미있었는데 믹싱 하는 날에 반영이 안돼서 아쉬운 면이 있었어요. 워낙 빨리빨리 하셔야 하는 분이셔서, 감독님은 별로 디테일이 중요하신 것 같지 않더라고요. 이정도면 됐구 이정도면 됐구... (웃음) 이런 이야기를 예전 인터뷰에서 했었는데 감독님이 그걸 보시고 좀 아쉬워하신 적도 있었어요. “아 그 때 잘 했는데...” 그러시더라고요. (웃음) 보통 감독님께서 음악을 만드시고 믹싱하는 날 만들어진 음악을 끼어 넣는 그런 방식인 건가요? 아뇨, 그런 경우는 거의 없죠. 음악 작업을 하는 중 감독님이 계속 오시죠. 바꿔 붙여보고, 줄여 붙여보고 그런 작업들을 하게 돼요. 최동훈 감독 같은 경우는 <도둑들> 할 때 15일 정도를 저희 집에 와서 하루에 7~10시간씩 음악을 붙여보고 그런 작업을 했었어요. 아까 예전에는 공포영화도 해보고 싶었다 하셨는데, 지금은 이런 영화가 들어왔으면 좋겠다 그런 게 있을까요? 요즘 흥행이 안 되는 영화는 아예 들어가질 않잖아요. 음... 폴 토마슨 앤더슨의 영화 같은 작품이 들어온다면 좋겠지만, 우리나라 영화계에서는 (제작이) 들어갈 수도 없을 거 같아서요. 너무 익숙한 할리우드 영화 스타일의 음악들을 해야 할 일이 점점 많이 생기는데 사실 그런 게 재미있지는 않거든요. 그렇지 않은 작업들도 좀 해보고 싶긴 해요. 그럼 단편영화나 독립영화 쪽에서 그런 감독님의 스타일을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근데 단편영화는 또 호흡이 짧아요. 뭔가 큰 걸 끌고나가긴 힘들고, 딱 하나 정도예요. 한 가지 호흡으로 딱 끝나버려요. 독립영화 중의 장편들, 그런 쪽에서 자유롭게 시도해보실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감독님께 선뜻 의뢰 드리기가 힘들 수도 있겠네요. (웃음) 어려워하더라고요. (웃음) 처음 어어부 프로젝트의 느낌이 오래가실 것 같은데, 지금은 익숙한 장르적인 음악도 하시고. 약간 타협을 하시는 건가요? 타협인 건 아니죠. 영화가 그런 걸 요구하니까 그런 음악을 하게 되는 거 같아요. 초반에는 그런 부분들을 고민했었는데 영화음악이란 게 영화를 위해서 만들어지는 거기 때문에 내 스타일이 크게 중요한 건 아닌 거 같아요. 그러다보니 그 영화에 맞는 음악을 하게 되는 거죠. 영화음악을 작업하면서 한계나 시스템에 부딪히셨던 부분이 있다면요? 아까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제작사와의 관계가 있겠죠. 그리고 작년, 올해 극장의 음악사용료 부분도 환경 요인이죠. 그게 결론이 어떻게 났죠? 결과는... 음악감독들은 거기서 제외가 됐죠. 그 자체가 굉장히 애매하긴 해요. 그 안에서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나와서 해결되기는 힘든 것 같고. 사실은 그것 때문에 저희가 손해 보는 것이 굉장히 많았거든요. 다른 쪽에서는 음악감독들이 떼돈을 벌려고 그런다, 그렇게 보기도 하고요. 그런 일이 생기면서 계약서가 굉장히 안 좋아 졌어요. 현실은 변한 게 없는데요. 변한 건 안 좋아진 계약서인거죠. 지금으로썬 변한 게 없지만 앞으로 분명히 발생될 일이라 생각하고 그걸 음악감독에게 짐을 지우는 계약서가 나오게 된 거죠. 어떤 계약서가 나오게 되었나요? 우선 저작권을 넘기라는 계약서가 처음에 오기 시작했어요. 저작권을 넘길 수는 없다. 넘기려면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주고 넘기라고 해야 할 텐데, 음악감독에게 주는 비용으로 저작권까지 달라, 하는 건 용납할 수가 없죠. 전 그래도 오래했으니까 그런 계약서를 함부로 못 내밀어요. 그렇지만 새로 시작하는 친구들은 일단 이 시장에 들어와서 일을 시작하는 게 먼저이기 때문에 그런 걸 다 포기하고라도 그런 (불리한) 계약서를 쓰게 되는 거죠. 그럼 그런 계약서를 쓰고 작업하는 분들도 계시다는 거네요? 있을 거예요. 작년부터 새로운 음악감독들이 굉장히 많이 나왔어요. 인디 쪽에서 활동하시던 분들도 많이 나오고요. 그런 이유가 불리한 계약서로도 작업할 수 있는 그런 새로운 사람들을 찾는 거죠. 그리고 어떤 대기업에서는 자기네들이 음악감독들을 모아 계약해서 스튜디오처럼 작업하겠다, 이런 형태도 생기고 있고요. 저희가 만든 곡 말고 삽입곡들이 있는데 공연권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걸 음악감독이 책임을 진다, 이런 항목도 있고요. 아직 감독님은 그런 계약서를 서명하신 적은 없는 거죠? 하지만 저작권의 어느 부분은 계속 넘겨줘야 하는 거예요. 영화음악 공연권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영화는 어쨌든 다 만들어진 다음에는 상품인 거잖아요. 극장에서 트는 거니까, 방송국에서 음악을 틀면 거기서 발생되는 비용을 내고 그런 건데, 즉, 거기서 내냐 안내냐를 결정지으면 되는 건데, 그게 아니라 이걸 누가 내느냐로 거꾸로 오게 된 거예요. 극장과 투자사가 같은 회사니까 극장은 투자사가 내게 하자, 이렇게 되고, 투자사는 제작사로 미루고. 그럼 차라리 안 받는 걸로 하면 문제가 안 되는데, 영화음악 감독이 만든 건 안 받고, 삽입곡은 받는다, 그렇게 돼버린 거예요. 이러면 되게 이상한 거잖아요. 제작자 협회나 피디 협회에서는 와서 한국영화 이렇게 힘든데, 왜 받으려고 하느냐, 그런 말도 하고요. 받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전혀 다른 이야기인데, 영화 산업 이야기를 하느냐, 극장은 돈 잘 벌고 있는데, 왜 그걸 이쪽으로 넘겨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느냐, 그렇게 하다 보니 끝이 않나요. 저작권료가 많이 들어오세요? 안 들어와요. 액수로 따지면 OST를 내서 거진 안 팔리지만, 좀 팔린 게 <달콤한 인생>, <도둑들>이에요. 그거 팔릴 때 인세가 들어오는 거 빼고는, 몇 십만 원도 안돼요. 노래방, 음원 다 합쳐서요. 저작권협회 자체가 가요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단체라 방송국과는 1년에 통으로 계약을 한 다음 거기서 사용된 음악을 정산해요. 그런데 실제로는 가요 프로그램만 정산에서 나눠주는 거예요. 방송에서 쇼프로나 다큐멘터리에서 그런 곳의 배경음악으로 영화음악이 사용될 때도 있지만, 집계가 안돼요. 그래서 다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된 거냐, 고 문의를 하면 집계를 안 한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직접 집계를 해보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화가 나서 한 달을 직접 집계해서 보내 봤어요. 그것도 나중에 알아봤더니 가요의 1/20을 주는 거예요. 집계도 안하고 비율도 1/20이고. 또 말하면 방송국에 큐시트를 내라고 했는데 안주네요, 이런 말을 하고 있고. 그런 저작권협회에서는 영화가 큰 시장이 된 거잖아요. 그래서 영화음악가들을 모아서 이야기했는데, 결국은 삽입곡들만 받아주게 된 거죠. 삽입곡에 대한 음악감독님들의 느낌이 다르겠어요. 감독님들은 또 본인이 좋아하는 특정 음악을 사용하고 싶어 하실 거잖아요. 근데 뭐... 영화마다 다른 거 같아요. 그 삽입곡이 그 영화에서 어떤 역할을 하냐에 따라 정말 필요한 삽입곡이 있는 거 같고, 감독이 그냥 좋아하는 노래, 옛날부터 쓰고 싶었던 노래를 그냥 쓰길 원하는 경우도 있고. 그런 건 이제 못쓰게 말리죠. 영화제작비에서 그런 지출을 해야 하느냐, 그런 효과가 있느냐. 그런 걸 따지죠. 하지만 써야할 곡이 있다면 쓰긴 해야죠. 좋아하시는 외국 영화음악가가 있으시다면요? 영화음악 감독 중에는 구스타보 산타올라야를 좋아해요. <이터널 선샤인>을 작업했던 존 브라이언도 좋아하고. 어렸을 때는 고란 그레고비치도 좋아 했었고요. 60년대 일본영화음악을 좋아하기도 했어요. 딱 음악가는 모르겠는데 그 당시 스튜디오에 소속된, 스즈키 세이준이나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 영화의 음악들을 되게 좋아해요. 쓰는 방식도 되게 독특했고, 자극적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당시 영화가 그랬던 거 같아요. 차기작으로 준비 중인 작품은 어떤 게 있나요? 준비하고 있는 건 배두나 주연의 < 도희야 >라는 작품이 있고요. 아직 가제인데 이도윤 감독의 <좋은 친구들>이라고. 12월 중에 촬영이 들어가는 걸로 알아요. 또 박찬욱, 박찬경 감독이 서울시에서 하는 <우리의 영화, 서울>도 준비 중이에요. 예전에 리들리 스콧이 (유튜브에서) 했던 것처럼, 서울을 주제로 일반인들이 찍은 것들을 이용해서 영화로 구성하는 작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