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릿 통합검색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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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88개
정확도 순 필터
영화정보
스피릿 오브 원더 : 소년 과학 클럽
- 감독
- 안노 다카시
- 제작년도
- 2001
스피릿
- 감독
- 캘리 애즈버리, 로나 쿡
- 제작년도
- 2002
- 출연
- 맷 데이먼, 제임스 크롬웰, 다니엘 스터디, 초퍼 버넷, 제프 리보, 존 루바노, 리차드 맥고너글, 맷 르빙, 아담 폴, 로버트 캐잇, 찰스 네이피어
수집자료
스피릿 오브 원더 VOL 1
- 매체규격
- DVD
- 상영시간
- —
- 자막
- —
- 보관위치
- —
스피릿 오브 원더 VOL 2
- 매체규격
- DVD
- 상영시간
- —
- 자막
- —
- 보관위치
- —
스피릿 오브 원더 VOL 1
- 매체규격
- DVD
- 상영시간
- —
- 자막
- —
- 보관위치
- —
스피릿 트래블러(Spirit Traveler)-Playing The Hits Form The Motor City
- 매체유형
- CCT 콤팩트카세트
- 연주시간
- 55:37
쥬얼(JEWEL)-스피릿(SPIRIT)
- 매체유형
- CCT 콤팩트카세트
- 연주시간
- 54:12
FILM MUSIC OF HANS ZIMMER VOL.2
- 매체유형
- CD
- 연주시간
- —
월레스와 함께 달나라 여행을…TV 애니메이션 ‘풍성’
- 실물구분
- 아날로그
- 매체유형
- 기사/스크랩
- 보관위치
- —
アメリカン·スピリット
- 실물구분
- 아날로그
- 매체유형
- 도서
- 보관위치
- —
제 16회 미 인디펜던트 스피릿 상 후보 발표
- 실물구분
- 아날로그
- 매체유형
- 기사/스크랩
- 보관위치
- —
콘텐츠
[초이스]재난 영화
음악과 영화를 좋아하는 나는, 음악을 다룬 영화(꽤 많다)나 영화를 다룬 음악(적지만 있다)에 항상 관심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이 두 가지를 한 곳에 담으려는 시도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하다. 요구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영화가 이미지의 교차를 통해 의미를 획득해가는 과정이라면, 음악은 악기들의 소리를 모아 의미를 해체하는 과정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음악을 다루는 좋은 영화의 경우 뮤지션의 자전적이 이야기이거나, 다큐멘터리인 경우가 많다. 그것은 전적으로 영화의 영역에서의 일이다. ‘음악적인 영화’를 만드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따라서 음악을 영화에 종속시킬 때만이 그나마 괜찮은 음악 영화가 나오곤 한다. 두 형식의 공존을 통해 뭔가 만들어보려는 시도는 대충 실험영화에서나 있는 것 같다. 나는 실험영화를 잘 알지도 못하고 흥미도 없다. < 재난 영화 >는 이렇다 할 야심이 보이지 않는 영화다. 한국대학교 록 동아리 ‘우락부락’에서 만난 요한과 지연, 최현은 갈수록 줄어드는 신입생 유치를 위해 대중적인 분위기로 변해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들은 동아리를 나와 본인들만의 밴드를 하기로 마음을 먹고 지연과 친한 선배가 운영하는 스튜디오를 찾아가 연습을 한다. 이들이 하고자 하는 음악은 ‘슈게이징’. 하지만 선배의 부탁으로 한 번, 두 번 도와주었던 모 밴드의 공연에 자꾸 끌려다니게 된다. 영화의 첫 장면, 요한은 세미 정장 차림에 우쿨렐레를 들고 있는 최현과, 마라카스를 들고 원피스를 입은 지연에게 도저히 못 해먹겠다며 뛰쳐나간다. 그리고 이 장면은 플래시백인 중간을 지나 마지막 장면과 이어진다. 단편영화라면 단시간에 ‘승부’를 보는 것이 지상과제다. 관객의 뒤통수를 때리든가(세면 셀수록 좋다), 분위기로 제압하든가(압도할수록 좋다), 그도 아니면 아예 막 나가서 어처구니라도 쏙 빼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 재난 영화 >는 약간의 개그 외엔 욕심을 내지 않는다. 심지어 이야기도 매우 뻔하다. 그럼에도 난 이 영화가 가진 취향이 마음에 든다. 왜 한국의 (인디, 메이저를 통틀어) 음악을 다룬 영화에선 모두 모던록(이라고 부르고 대개는 뽕짝에 가까운)만 하는가? 왜 가죽 재킷을 입고 록 스피릿을 외치는 인간들이 마이크 앞에만 서면 록발라드(라고 불리는 이상한 타령조의 노래)만 주야장천 부르는가? 이 영화엔 그게 없다. 흔한 이야기와 생소한 음악의 결합. 연출자는 흔한 영화를 만드는 척하면서 자신의 취향을 넌지시 들이민다. 최현과 지연이 처음 만나는 동아리 연습실에서 들리는 ‘밤섬해적단’의 ‘해치’, 언급되는 ‘슈게이징’이라는 장르,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 흐르는 ‘우리는 속옷도 생겼고 여자도 늘었다네’의 ‘멕시코행 고속열차’는 그간 어떤 영화에서도 차용하지 않았던 장르이며 곡들이다. 가끔 이런 영화들이 있다. 별다른 면은 없는 것 같은데, 몇몇 취향이 눈길을 사로잡는. 음악영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조금 다른 걸 보고 싶다는 생각은 늘 있어왔다. < 재난 영화 >가 그런 부분을 채워준 영화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걸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그냥 ‘제대로’ 만들겠다는 욕심 없이, 감독은 슬며시 자신의 취향을 내밀고 있다. 누군가는 알겠지 뭐. 아니면 말고. 나로선 ‘음악 영화’라는 이름을 걸고 청춘이니 인생이니 따위 소리를 늘어놓다가 죽도 밥도 안 되는 것보다는(음악도 후진 경우가 많다.) 이쪽이 훨씬 마음에 든다. P.S : 이제는 스타가 된 임지연 과 변요한 의 초기작이다. P.S 2 : 나는 최대한 여러분이 집에서 볼 수 있는 영화를 소개하려고 한다. 이 영화는 유튜브를 통해 볼 수 있다.
[비장의OST]축제 (임권택, 1996)
“흔히 말하는 노인들의 치매증이라는 것은 자신이 살아온 지난날의 생애를 오늘에서 옛날로 다시 한 번 거꾸로 살아가는 일이었다. 노모가 이미 사십여 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찾으실 때는 두 분이 한참 새살림을 일구고 있을 무렵으로, 시어머니 저녁상 걱정을 할 때는 당신이 갓 시집오신 젊은 새색시의 시절로, 그리고 옷 보퉁이를 싸들고 집을 나서실 때는 시집도 오기 전의 그 아득한 처녀 적으로... 그렇듯 자꾸 옛날로 돌아가고 계신 때문이다.” 영화 오프닝에 흘러나오는 작가 이준섭의 내레이션은 영화 내 관통하는 그의 동화 「할미꽃은 봄을 세는 술래란다」 속 이야기와 맞물리며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를 되새기는 중요한 화두로 다가온다. 한국인의 가족과 고향에 대해 그리며 장례라는 의식을 통해 변해가는 현대인의 초상과 남겨진 자들의 심리를 두런두런 펼쳐내는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정갈한 풍취가 있다. 이미 거장으로 우뚝 솟은 임권택 감독의 이 작은 소품은 그의 다른 작품들처럼 묵직하고 올곧은 만듦새를 보여주진 않지만, 기록영화 같은 리얼함과 액자식 구조 속에 자리한 동화극을 병치시키며 색다른 반향과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 축제 >는 죽은 자를 보내기 위한 한마당이자 산자를 단합하기 위한 살풀이로 임권택 감독의 한국적인 시선이 무엇보다 잘 나타나는 영화다. 축제, 할미꽃은 봄을 세는 술레란다 임권택 감독의 < 축제 >는 소설과 영화가 같이 기획되었다. < 서편제 >의 원작을 담당하기도 한 소설가 이청준 과 의기투합해 임권택 감독은 서로 같으며, 서로 다른 영화와 소설을 완성해냈다. 기둥 골자는 비슷하다. 치매를 앓던 어머니가 돌아가시며 고향을 찾은 유명작가 이준섭이 전통 장례 준비를 하며 겪는 일들을 가감 없이 담고 있다. 홀로 노모를 모시던 형수의 시원섭섭함과 작가 자신이 직접 모시지 못한 데서 오는 죄책감, 냉대를 견디다 못해 가출한 이복 조카의 등장과 작가를 취재하러 온 기자, 쉴 새 없이 쏟아져 오는 문상객들까지 다양한 인물들과 각종 사연이 충돌하는 이 공간(과 기간)을 통해 현재 대한민국 사회를 단적으로 조망하고자 한 셈이다. 두 장인들의 시각과 매체에 따른 차이가 부분부분 드러나지만, 그럼에도 온갖 갈등이 부딪치고 소동이 일어나며 화합하고 용서하는 자리로서 장례식을 축제로 바라보는 본령만큼은 일치한다. 그리고 또 하나, 이청춘 소설에는 없는 다른 게 있다면 바로 음악이다. 토속적이고 민속적인 김수철의 음악은 동화와 기록물, 군상극을 한데 아우르는 끈끈한 아교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김정길 과 김영동 그리고 신병하 로 이어지는 대가들과의 음악 작업으로 80년대부터 90년대 초를 헤쳐 온 임권택 감독은 <서편제>와 < 태백산맥 >에 이어 <축제>에서도 김수철을 음악적 동반자로 택했고, 그 신임에 응하듯 그는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주었다. 김수철 더벅머리에 뿔테 안경을 쓴 대학생이 거지도사와 예쁜 벙어리와 함께 고래를 찾으러 나선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면 맞다. ‘일곱 빛깔 무지개’와 ‘나도야 간다’, ‘젊은 그대’를 부르며 헤비한 기타 사운드로 깡충깡충 뛰던 모습도, ‘못다 핀 꽃 한 송이’와 ‘별리’를 찡그리며 애잔하게 부르던 모습도 맞다. 70년대 말 작은 거인으로 등장해 80년대 초 대중가요와 연기를 섭렵한 김수철은 (짧았지만 강렬한) 그 시대의 아이돌이었다.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가슴 속에 담아둔 소리에 대한 고민들과 새로운 시도를 위해 노력하고 또 변신했다. 80년대 중반 그 모든 인기를 뒤로 하고 자신이 정말 하고 싶었던 ‘소리’에 정진한 김수철은 어느새 브라운관 무대 위에서 모습을 비치기보단 그 뒤에 이름을 올리는 일이 많아졌다. 국악인을 찾아다니며 사사한 그는 본격적으로 국악 앨범을 내놓았고, TV 드라마부터 영화, 연극, 무용, 행사음악까지 다양한 범주로 활동을 넓혀가며 자신의 음악 세계를 확장했다. 86년 서울 아시안게임이나 88년 서울 올림픽 전야제 음악을 담당했고, 87년 제9회 대한민국 무용제 대상 작품 ‘영의 세계’를 작곡하는 한편, < 고래사냥 1 , 2 >와 < 두 여자의 집 >, < 성 리수일뎐 > 등 영화음악을 맡았다. 국악에 대한 그의 관심은 기타에 우리 소리를 대입한 획기적인 ‘기타산조’를 낳았고, ‘불림소리’와 ‘황천길’, ‘팔만대장경’ 등 새로우면서도 대중적인 국악 앨범들을 시도했다. 80년대 후반에서부터 90년대 초 일련의 감독들과 코리안 뉴웨이브라 불리는 < 칠수와 만수 >, < 그들도 우리처럼 >, < 개그맨 >, < 경마장 가는 길 > 등을 작업하며 영화음악가로 새삼 주목받은 김수철은 93년 임권택 감독과 <서편제>를 함께 하며 그 정점에 이르렀다. <서편제>를 통해 그간 자신이 갈고 닦은 국악 사운드를 본격적으로 영화음악에 펼쳐 보인 김수철은 <태백산맥>에서 서사적인 깊이와 상충하는 이념들, 반목과 희생의 과정들을 한국적인 소리로 승화시켰다. ‘못다 핀 꽃 한 송이’나 ‘별리’, ‘왜 모르시나’ 등 대중가요 때부터 가지고 있던 애한과 상념이 묻어나는 김수철만의 고유의 정서가 신디와 대금, 태평소, 피리, 타악 등 전통악기와 맞물리며 민족의 비극적인 잔혹사를 명징하게 드러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수철 영화음악의 백미는 <태백산맥>이라고 생각하지만, 보다 대중적이고 원숙한 기량을 뽐냈던 건 오히려 그다음 작품인 <축제>에 이르러서였다. 상대적으로 스케일이나 야심은 작았지만 소리 자체가 가진 뚜렷한 존재감이나 인상적이고 야무진 역할은 훨씬 두드러졌다. 대중가요와 국악, 동요(혹은 만화주제가)나 행사에 이르기까지 음악이라는 범주 안에서 폭넓게 활동하며 삼천갑자의 내공을 다진 덕분에 여기서 그는 뛰어난 범용성과 퓨전의 진수를 펼쳐 보였다. 그래서 흔히들 갖는 국악에 대한 편견과 난이도를 일시에 상쇄시키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테마가 눈에 띈다. 영화 자체가 뚜렷한 서사와 극적인 흐름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영화음악으로서 기능적인 역할은 다소 떨어지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효와 전통, 생과 사, 기록과 동화 사이를 적절하게 메꿔주는 김수철의 한국적인 소리들은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임권택 감독 영화의 미덕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 소리들은 현재 한국영화에서 ( 원일 을 제외하고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사운드트랙은 35분이 채 안 되고 그것도 3개의 테마가 한 번씩 다시 변주돼 실려 있기 때문에 체감상 더 짧게 느껴진다. <서편제>에서 춘향가 중 ‘사랑가’와 ‘옥중가’, 심청가 중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는 대목’과 ‘심봉사 눈뜨는 대목’, 진도 아리랑 등 기존 국악들이 김수철의 스코어와 잘 배분돼 실려 있다면, <태백산맥>과 <축제>는 오로지 김수철의 역량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다. <태백산맥>에서 음악이 거시적으로 전체적인 맥락을 짚는 데 주력한다면, <축제>에선 보다 미시적으로 특정 장면에 특정 테마를 반복해 그 감성을 각인시키고 있다. 어머니가 등장하는 회상 씬들에선 메인테마 ‘축제’를 변주한 ‘어머니’가, 동화 속 장면에선 국악 동요풍의 ‘꽃의 동화’가, 장례 의식에선 ‘먼 길’이 사용되는 식이다. 따라 자주 반복되고 제한된 쓰임새 때문에 음악으로서, 테마가 갖는 힘은 역설적으로 커졌다. <서편제>의 메인테마격인 ‘소리길’이나 <태백산맥>의 ‘산맥’보다 <축제>의 ‘축제’가 더 명료하고 강렬하게 다가오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대금과 피리로 연주되는 이 선율은 앨범에서 네 번 반복(변주)되는데, 밝고 발랄한 톤을 유지하는 ‘축제’가 산자들의 부박한 활동성을 상징한다면, 어둡고 느려지는 ‘어머니’에선 처연하고 애잔한 장례식 본연의 모습과 망자에 대한 넋을 기리고 있다. 이 이중적인 부분이야말로 감독이 <축제>에서 노렸던 우리 장례 풍습의 면모이고, 김수철이 탁월하게 표현해낸 바였다. 그 외 마당놀이로 익숙한 배우 안병경 씨가 직접 부른 ‘꽃상여(만가)’도 수록돼 있다. 김수철은 여전히 소리를 찾아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영화 < 달빛 길어 올리기 >로 오랜만에 호흡을 맞췄고, 이준익 감독의 사극 <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으로 상업영화에서도 건재함을 알렸다. < 날아라 슈퍼보드 > 이후 오랜만의 애니메이션 <삼국쥐 전>의 음악을 담당하는 한편, 서울 빛 축제 음악이나 KBO 한국프로야구 30주년 기념음악을 담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락 스피릿을 불사르며 무대에서 밴드와 함께 펄펄 뛰고 있다. 그는 아직도 젊은 그대다. 그가 들려줄 새로운 음악이 기대된다. 축제 Track List 1. 축제 (하나) 2. 꽃의 동화 (하나) 3. 어머니 (하나) 4. 꽃상여 (만가) 소리-안병경 5. 꽃의 동화 (둘) 6. 먼 길 7. 축제 (둘) 8. 어머니 (둘)
[칼럼]크랭크 업
지난 10월 14일,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던 금요일 오후. 등촌동의 작은 아버지 댁에서 새 영화의 촬영을 마쳤다. 시집간 딸이 오랜 만에 친정에 들러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이날의 마지막 촬영 분량이었다. 섭외한 공간은 아파트 1층. 영화용 조명기를 설치하지 않고 베란다를 통해 들어오는 일광을 보조광으로 이용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건너편 아파트에 해가 걸리기 전에 촬영을 마쳐야했다.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두 모녀를 투 샷으로 잡은 장면부터 촬영이 시작됐다. 배우와 함께 대사를 정리하고 원하는 느낌을 찾는 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리허설을 마치고 슛. 테이크는 여러 번 반복됐지만 비교적 제 시간 안에 오케이 컷을 건져낼 수 있었다. 그리고 추가로 몇 장면을 더 찍었다. 컷 사인을 내고 몇몇 사람들과 짧게 눈을 마주쳤다. 네, 오케이입니다. 큰 술렁임 없이 조용히 박수를 쳤던 것 같다. 우리는 마지막 공연을 마친 유랑극단의 반복되는 일상처럼 촬영한 데이터를 옮겨 담고, 장비를 정리하고, 필요한 주변 소음을 채집했다. 나는, 아르바이트 중인 촬영감독을 대신해 카메라를 잡고 있던 자리에서 현장을 둘러보았다. 모녀 역할을 맡은 두 여배우와 스태프 두 명이 전부였다. 극영화 작업을 하기엔 부족한 인원이었지만, 21회 차의 기간 동안 큰 어려움 없이 촬영을 마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제작을 결정하기까지 마음이 어수선했다. 일단 수중에 제작비가 없었고, 영화의 주 무대가 되는 집도 곧 이사를 가야했기 때문에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희망을 걸었던 제작지원 프로그램에도 떨어졌다. 이제 남은 결정은, 찍거나 혹은 미루거나. 하지만 그럴 때가 있다. 조건이 허락되지 않더라도 시기를 놓치지 않고 찍고 싶은 영화가. 이 영화도 결국 그런 의지로 진행된 것 같다. 말하자면 인디펜던트 스피릿. 정리를 마치고 홍대 인근의 중국집에서 뒤풀이를 했다. 크랭크 업 며칠 전, 프로듀서를 맡은 아내와 제작비를 정산하면서, 쫑파티 비용을 조금 줄일 수 있다면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작은 감사의 표시라도 할 수 있겠다는 계산이 나왔다. 알량한 씀씀이를 부리는 건 아닐까, 걱정도 했지만 풍족하지 못했던 현장을 돌이켜보면 거창하게 쫑파티를 하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는 손으로 꼭꼭 눌러 쓴 편지와 은행에서 찾은 새 지폐를 봉투에 담았다. 잠시 뒤, 지방에서 일을 마치고 온 촬영감독도 합류했다. 우리는 촬영을 하면서 겪은 일화를 안주 삼아 술잔을 채웠다. 우리 나이도 비슷한 데 말 놓죠! 취기가 오른 여배우가 맞장구를 친다. 그래,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내외하더라도. 테이블 위에 놓인 쟁반 개수를 세며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을 때쯤 주문하지도 않은 탕수육이 나왔다. 중국집 주인은 옆자리에 앉아 있던 손님이 전부 다 계산하고 떠났다는 말을 전했다. 식당에 들어와 여배우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던 남자 배우. 뜻하지 않은 선물. 말하자면 쫑파티의 기적. 우리도 준비한 선물을 꺼냈다. 보잘 것 없지만 받아주세요. 정말로 수고하셨습니다. 끝까지 잘 마무리 할게요. 그리고 다음에는 돈도 되고 흥행도 좀 되는 영화를 만들어보겠다고 호기를 부렸다. 내일이면 또 촬영을 해야 할 것만 같다. 작업이 끝나면 매번 비슷한 기분을 느낀다.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 다들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겠지. 배우들은 차기작이 결정될 때까지 지루한 시간을 견뎌야 하고, 나와 스태프들은 다시 생계형 아르바이트를 시작해야 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 대부분은 상업영화 현장을 떠나왔다. 더 이상 생활을 유지하기가 어려웠고 무엇보다 영화 만드는 재미를 잃어버렸다. 말단 스태프로 수년 씩 버티다가 영화판을 떠나간 내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누구에겐 영화가 정말 꿈으로 남았다. 아내와 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다짐한 것이 있다.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이 착취당한다는 느낌을 받지 않고 창작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현장을 만들어 보자. 때로는 열악한 환경의 독립영화가 배우와 스태프에게 더 가혹한 희생을 요구할 때가 있다. 하지만 영화도 결국 사람의 이야기를,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만들고, 그것을 다시 사람에게 보여주는 일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 아닐까. 내가 좋아하는 포르투갈의 감독 페드로 코스타는 심지어 ‘만드는 과정이 전부’라고 말했다. 2차로 자리를 옮긴 야외 카페에 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영화를 만들면서 지난여름을 함께 보낸 이 사람들과 내가 모두 잘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