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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로 푸는 한국영화사 미스터리] 에바(EVA), 시네마테크에 타라!
한국영상자료원의 '영화인 구술사' 시리즈를 바탕으로, 자료가 없어 실체를 알기 어렵던 사건과 인물,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인의 입을 빌려 흥미진진하게 전달합니다. 박: 애니메이션영화제 했었을 때, 아까 <에반게리온> 얘기했었지만. <에반게리온>이나 < 공각기동대 >, 뭐뭐 < 에스카플로네 > 이런 거 했었거든요. 근데 잘 됐었어요. [1] 해당 구술채록문을 읽다 보면, “아까 <에반게리온> 얘기했었지만”이라는 말에서 이상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말이 나오기 이전까지 구술에서 단 한 번도 < 에반게리온(新世紀エヴァンゲリオン) >(안노 히데야키, 1995)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여기서 말하는 ‘아까 한 이야기’는 인터뷰 사이 잠시 쉬는 시간 동안 나눈 대화를 말하는 것이다. 구술담당자로서 인터뷰에 참관하면서 구술자의 이야기를 듣다가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이 생기면 이렇게 쉬는 시간에 살짝 물어보곤 한다. 그리고 당시 구술자에게 <에반게리온>에 대해 물어본 것은, 내가 에바팬이라거나 그래서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 이유는 이제부터 천천히 풀어갈 것이다. 닫힌 영화, 열린 영화제 사실 광주 ‘ 영화로 세상보기 ’ 운영자였던 박상백 구술(2024년 10월 17일 진행) 이전에 그와 관련된 재미난 이야기를 들은 바 있었다. 황: 일본영화 같은 경우는, 사실은 광주 기획을 좀 본따고 그랬는데. 광주 ‘영화로 세상보기’에서 그때 돈을 막 많이 벌었더라고요. 한: 재패니메이션으로? 황: 그래서 액정도 바꾸고. 이게 그때 ‘소년 탐정’인가? <에반게리온> 시리즈. 저는 뭐 내용도 아직도 모르는데, ‘야, 저런 매니아층이 또 있구나.’ 그래서. 저희도 해보니까 아닌 게 아니라 사람이 꽤 오더라고요. [2] 대전 ‘ 씨네마떼끄 컬트 ’의 운영자였던 황규석 (2024년 6월 29일 인터뷰 진행)에게서 이 이야기를 듣고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에반게리온> 상영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라는 사실보다도 ‘저런 매니아층이 있다’라는 깨달음에 있었다. 이러한 관객층을 지금의 관점에서 그냥 ‘오타쿠(オタク)’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에반게리온>이 등장했던 시기만 해도, 국내에서는 ‘오타쿠’에 대한 뚜렷한 사회적 인식도 없었고, 특정 애니메이션 작품에 대한 열렬한 지지층의 활동이 눈에 띄지도 않았었다(존재는 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적어도 외연적으로는 드러나지 않고 있었다). 따라서 구술자가 이들을 ‘저런 매니아층’이라고 표현한 데에는, 어느 정도 오늘날 재패니메이션 ‘오타쿠’에 대해 사후적으로 형성된 느낌도 내재되어 있다. 그러나 어쨌든 이 사후적인 인식을 제외하더라도 평소 이상의 어떤 관객층들이 <에반게리온> 상영 당시 몰려왔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들은 누구이고 왜 여기 왔을까? 정: 제 세대뿐만 아니라 바로 윗세대들도, 제 바로 다음 세대들도 너무나 보고 싶었던 영화가 있었어요. 너무나 보고 싶었던 영화. 일본영화. … 유학을 가지 않으면 그건 접할 수가 없는 거니까. 사실은 프랑스영화・독일영화에 대한 갈증보다 일본영화에 대한 갈증이 훨씬 컸어요. [3] 한: 혹시 그런 건 없었나요? 선호하는 영화 통계 같은 거. 조: 있었죠. 한: 아, 있었어요? 조: 네. 일본영화, 뭐 (사이) 제일 많이 봤던 영화가 아마 < 러브레터 >. 수입되기 전에. 그리고 피터 잭슨 < 데드 얼라이브 >, < 천상의 피조물 > 이런 게 공식적으로 소개 안 됐었거든요? … 되게 압도적으로 피터 잭슨 영화하고 일본영화하고 미국의 인디영화들, 이런 영화들이 사람이 많이 왔었어요. [4] 영화평론가 정성일 과 1990년대 문화학교 서울 의 운영자로 일했던 조영각 은 당시 시네마테크를 찾아오는 관객들은 근본적으로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영화를 보고 싶다는 욕구를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 당시에 한국 극장에서는 보기 힘든 프랑스영화, 독일영화, 미국의 인디영화들을 실제로 보고 싶다는 마음도 강했지만, 이 영화들이 수입자유화와 함께 쏟아지는 미국영화들 속에서 틈새를 찾아 소규모의 예술영화전용관들을 채울 때조차도 들어오지 못했던, 원천적으로 수입 자체가 금지되어 있던 일본영화, 그리고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욕구는, 그것이 문화적・심리적 거리가 가까울수록 더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기에 시네마테크의 운영자들의 근원적인 고민 역시 있었다. 시네마테크를 찾는 관객들이 원하는 것이 한국사회로부터 ‘닫힌 영화’들 이기 때문에, 이들의 자료 확보와 상영 활동은 불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한: <러브레터>는 처음에 어느 쪽에서 구하셨어요? 곽: (목소리를 낮춰서) 어디서 구했을까요? 어디서 구했을까. [5] 후지이 이츠키 스트레이트 플러쉬! 조: 영화를 보려면 무조건 회원가입을 해야 돼요. 그게 저희 문턱이었고. 저희는 그렇게 운영해야지 여기가 안전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사실 불법이잖아요. 비디오를, 영화를 트는 게 심의를 받은 것도 아니고 우리도 저작권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회원제라는 규정을 만든 거고. … 그런 규칙들이 있어서 내부 결속력은 되게 탄탄했던 반면에 다른 데서 보기에는 “좀 폐쇄적이다” 이런 얘기들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6] ‘회원제로 운영되는 폐쇄적 시네마테크를 통해 극장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영화들을 본다’라는 것이 어쩌면 ‘특권’처럼 읽힐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정반대였다. 음지화된 공간에서 불법적인 방법으로 들어온 작품을 보고 있다는 사실, 즉 ‘ 모두 함께 모여 허락되지 않은 것을 보고 있다 ’라는 비밀(?)은 시네마테크를 찾는 관객들의 소속감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이들의 응집력을 높이는 것이 하나 더 있었다. 개인용 컴퓨터 통신전용망을 이용해 취미와 관심이 같은 사람 또는 전문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정보를 교환하거나 토론을 벌이는 개인용 컴퓨터 통신동호회들이 많이 결성돼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동호회 회원들은 시간을 정해놓고 특정 주제에 대하여 온라인 토론을 벌이는 외에도 전자게시판 기능을 이용, 알리고 싶은 소식을 회원 모두에게 공개하거나 공동 자료실을 만들어 쓰고 있다. - “PC통신 동호인 모임 활발”, 《한겨레》 1990. 8. 14. 8면 기사 “이 영화가 < 미져리 >보다 무섭다는 ‘ PC통신 ’을 보셨습니까?” (《조선일보》 1994. 6. 10. 18면 광고) 1990년대 초 PC통신 이 본격적으로 국내에 도입되면서,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났다. 사실 이 새로운 공간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시켜주고 정보를 준다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김: ‘이제 그런 영화들이 인정받는 세상이다’ 이런 부분에 대한 어떤 각인? 취향을 드러내게 되는 거죠. … 팬과 마니아라는 거에 대한 나의 소속감 ? 그게 굉장히 컸던 거 같아요. [7] 이 온라인 공간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을 더욱 공고히 하는 동시에,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영퀴’를 풀면서 소속감을 다져갔다. 이러한 소속감이 커질수록, 각자의 취향은 숨기거나 혼자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와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이 생겨났고, 그렇게 자신들이 보고 싶은 영화를 어디에 가면 볼 수 있는지 정보를 공유하며 시네마테크로 자연스럽게 모이게 되었다.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나는 쉬는 시간을 빌어 구술자 박상백에게 ‘영화로 세상보기에서 <에반게리온>을 상영했을 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왔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많은 관객을 동원할 수 있었는지’를 물었다. 그는 본 인터뷰 때 이야기한 것처럼 그 시기가 “닫힌 시대이기는 했지만 좀 알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다 알려져 있던 것들”이었고, 소문만 무성한 그 ‘화제작’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을 뿐이라고 겸손하게 답했다. 그리고 덧붙여 ‘왜 <에반게리온>에 당시 관객들이 그토록 열광했다고 생각하냐’라는 질문을 이어 했고, 이에 대해 “<에반게리온>은 이야기할 거리가 많은 작품이라 당시 시네필뿐만 아니라 많은 대중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답했다. 확실히 <에반게리온>은 지금까지도 말도 많고 해석도 다양한, 참 어려운 애니메이션이다. <에반게리온>에 대한 세기말 관객들의 관심이 상당 부분 이 ‘해석놀이’에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에반게리온>만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시기 재패니메이션의 인기를 이끌어가는 또 다른 한 축으로는 ‘지브리 애니메이션’이 있었다. 구술자 송정환은 평택의 ‘ 시네마드리밍 ’에서 <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平成狸合戰ポンポコ) >(다카하타 이사오, 1994)을 상영했을 때 많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러왔고, 특히나 평택시민아카데미로 공부를 하러 오던 청소년들이 애니메이션 영화들을 재미있어했으며, 이에 같은 공부방에 있던 아이들끼리 상영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하고 함께 감상을 했던 일을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었다. [8] 누가 뭐래도 지브리 최고 남주는 ‘ 아시타카 ’다. (필자 개인 의견임) 뿐만 아니라, 시네마테크 운영자들은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과 호응을 한국 단편 애니메이션 쪽으로 이끌고 갔다. 지금도 사정이 크게 다르진 않지만, 단편 애니메이션의 경우 영화제가 아니면 일반 관객에게 상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극히 드물었다. 시네마테크는 자신들이 갖고 있는 전국적인 시네마테크 배급망(전국씨네마떼끄연합은 1997년 결성되었다)을 이용해, 각 지역에서 활동하는 애니메이션 창작자들의 작품을 모아 순회상영을 하거나 장편 사이에 단편 작품들을 끼워 넣어 함께 상영하는 등 프로그램을 다양화했다. 박: 그때 해외에서 들어온 독립영화하고 국내 독립 애니메이션을 붙여 가지고 긴 독립영화, 해외 독립영화 장편에 앞서서 마치 인트로를 열듯이, 국내 단편 애니메이션을 상영하고 그다음에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가 딱 이렇게 된다든가, 데이비드 린치의 < 이레이저 헤드 >를 상영하는 데 앞서서 나기용 감독의 단편이 상영된다거나, 이런 식으로 하는 시도들도 있었고. 그리고 독립영화협회하고도 좀 같이하는 활동들이 있었고. 문화학교 서울이라고 지금은 없어졌는데 거기하고 저희랑 같이 해서 상영회를 조그맣게 한다든가 이런 활동들이 더러 있었죠. [9] 손: 저기 문화학교 서울인가, 정말 하꼬방 같은 그런 극장에서. 기억나네. 완전히 다락방 같은 극장이었는데, 거기서 < 생존 > 틀고 이랬을 때 무렵이었거든요? 그러면서 교류를 하게 된 거죠. 그러니까 저는 모션&픽쳐에 있으면서 독립영화, 시네마테크 이런 쪽 하는 사람들 하고 교류가 되기 시작한 거죠. … 자체 영화제가 이런 때 서울에 있는 작품들 가져올 때도 지역 뭐 같이 해서 틀기도 하고. 그러면서 교류가 많이 일어나기 시작했죠.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시네마테크 활동하던 분들이 독립영화협회를 만들기 시작한 시기가 맞물린 거죠, 대구도 . 그래 가지고 대구에서도 원승환 이라는 친구하고 이렇게 해서 협회를 만들어보자라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 그렇게 이제 모션&픽처하고 독립영화 하는 친구들하고, 시네마테크 하는 사람들하고 이렇게 해서 ( 대구독립영화협회를 ) 만들게 되었죠. [10] <생존>(손영득, 1997)의 한 장면 물론 < 아키라 >(오토모 가츠히로, 1988)나 <공각기동대>(오시이 마모루, 1995)를 보러 왔던 관객들, <에반게리온>의 팬들, ‘지브리 애니메이션’이나 한국 단편 애니메이션을 보던 관객들이 모두 같은 성격의 관객층이라고 뭉뚱그릴 수 없다. 심지어 <에반게리온> 상영회를 보러 왔던 관객들조차도 하나의 성격을 가진 집단으로 묶을 수 없다. 개중에는 정말 <에반게리온>을 좋아하는 오타쿠도, 그저 심도 깊은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시네필도 있을 것이고, 혹은 ‘워낙 화제가 되는 작품이라니 나도 구경이나 한번 해볼까’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네마테크를 찾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너무 보고 싶지만 좀처럼 볼 수 없는 작품이 상영되는 곳 , 그런 작품을 찾는 이들이 편안하게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며 모일 수 있는 곳, 배급 경로를 찾지 못한 창작자들이 자신의 작품을 들고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곳으로서 시네마테크가 다양한 관객층을 끌어모으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관객층들이 2000년대 초반, 흔히 ‘한국영화의 화양연화’라고 이야기되는 시기를 불러오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킹덤>의 팬덤 1990년대 가장 ‘힙한’ 공간이었던 이 민간 시네마테크들은 어떻게 사라지게 되었을까. 결론을 대신하여 2024년 주제사에서 가장 핫했던 작품 < 킹덤(Riget) >(라스 폰 트리에, 모턴 안프레드, 1994)과 < 킹덤 2(Riget II) >(라스 폰 트리에, 모턴 안프레드, 1997)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를 짓고자 한다. 두 작품의 상영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은 시네마테크의 관객층이 갖는 응집력의 폭발 인 동시에 이들이 주류의 문화 안으로 흡수되는 과정 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가 개최된 이후로, 부천의 판타스틱영화제・서울여성영화제・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영화제(SICAFF) 그리고 2000년 전주국제영화제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만들어진 영화제 들은 영화팬들에게 또 다른 놀이터였다. 영화제는 ‘합법적’으로 새로운 영화를 제공했고 관객들은 그곳에서 마음껏 놀았다. 그리고 영화제에 참여하지 못한 이들에게도 신문 기사나 PC통신 동호회 등등을 통해 참석자들의 뜨거운 후기는 전해졌다. 수보다 중요한 것은 관객들의 열기. < 브레이킹 더 웨이브 >의 감독 라스 폰 트리에가 연출한 무려 4시간 반짜리 영화 <킹덤>이 대표적인 경우. 지난달 30일 자정에 열린 첫 상영에는 4백여 석 극장에 2천여 명이 몰려 급히 다른 극장을 잡아 시차를 두고 두 곳에서 상영했으며 그러고도 수백 명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 “시네마 부천, 9만 관객 갈채”, 《동아일보》 1997. 9. 6. 26면 기사 영화제가 끝난 뒤에도 <킹덤>과 심야영화 의 붐은 계속 이어졌다. 당시 <킹덤>과 심야상영을 찾던 관객 안에는 좋은 작품을 찾아 헤매는 시네필들도 있었지만, 단순히 심야상영 문화를 즐기고 그 열기에 섞이고 싶은 젊은이들도 모여들었다. 최근 들어서는 심야시사회로 일반화되는 추세.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던 예술영화의 재상영 기회 로도 그 몫을 한다. 심야상영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우선 값이 싸기 때문이다. 일반영화 한 편 값으로 서너 편의 영화를 볼 수 있는 IMF형 문화상품. 단순한 영화관람에만 그치지 않고 젊음과 영화를 매개로 한 일종의 공동체 의식을 형성한다는 것도 한 이유. 여대생 박진아 양(22)은 “영화관에 있으면 한배에 탄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전율과 긴장, 공포와 웃음으로 밤을 지샌 뒤 인적없는 새벽거리로 나설 때의 쾌감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말한다. - “값싸고 젊음・마니아 상징에 만원사례, 심야상영 신세대문화로 뿌리”, 《경향신문》 1998. 5. 29. 22면 기사 상대적으로 수도권에 비해 문화적 전파가 더딜 수밖에 없는 지역에서도 뒤늦게 <킹덤>과 심야상영을 즐기려는 관객들이 자신의 지역에 위치한 시네마테크에서의 재상영을 찾았다. 박상백은 “전라도의 모든, 이런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이 다 왔던 것 같다”라고 당시의 분위기를 표현했는데, 이런 엄청난 관객 동원은 기존 시네마테크를 찾던 시네필들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것이었다. 박: 그때 부천영화에서 이미 상영을 했었고, 필름으로. 저도 그때 가서 봤고. 열기를 봤었고. 자연스럽게 볼 수 없는 상황이 되니까 비디오테이프로 그거를 작업해서 돌았었어요 . 그래서 그거를 가져다가 이제 상영을 한 건데. … 심야 문화가 없었기 때문에 그게 또 사람들은 새로운 거에 대한 호기심이나 그런 걸 경험해보고 싶은 충동이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것들이 잘 이렇게 융합이 돼 가지고 아마 그렇게 많은 관객분들이 오시게 된 단초가 되지 않았나 싶은데. 잘되니까 다른 시네마테크에서도 했었던 걸로 알고 있고. [11] 원: 그중에서 관객들이 제일 많이 봤던 영화가 <킹덤>이라는 영화였어요. 그 영화가 97년도 부천영화제에서 매진이 되고, 그해 12월에 동숭씨네마텍에서 개봉을 했는데, 대구에는 이 영화가 내려올 일이 없다고 생각을 한 것죠. 그래서 2월쯤에 그 영화만 가지고 상영회를 했어요. 근데 어느날 배급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우리가 그 영화 권리를 가지고 있는 회사인데 무단으로 틀었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지금 재산상 손해를 이렇게 봤으니까 만나자.” … “그러면 대구에서 <킹덤>이 개봉되는데 홍보를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 을 주셨는데, … <킹덤>이라는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흥행했던 영화들하고 다르게 전국 로드쇼를 했던 영화고. 서울 상영이 대박이 터지면서 부산 상영을 했고, 부산에서도 대박이 터지면서 대구로 이제 상영이 옮아온 거고. 그게 12월이었는데 대구가 2월이니까 한 3개월 뒤에 오는 거잖아요. 그래서 서울에서 홍보가 이미 다 끝났고 지역에서 개봉할 때는 지역 언론사에 별도로 홍보를 해야 되는 필요가 생겼는데. … 또 <킹덤 2> 할 때는 아예 처음부터 ‘지역에 있는 시네클럽들, 시네마테크들하고 홍보를 같이 하자’ 라는 계획을 세웠어요. … 대구에서는 그걸 제가 했던 거고, 광주에는 뭐 광주극장에서 워낙 잘하시니까 그걸 했던 거고. 부산은 뭐 부영극장에서 잘하시니까 그랬던 거고. 대전은 이제 ‘컬트’가 그거를 하게 된 거고. [12] 대전 씨네마떼끄 컬트에서 개최된 ‘킹덤 상영회 포스터’ ※황규석 기증자료 박상백이나 원승환의 말처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킹덤>을 향한 관객들의 뜨거운 열기를 확인한 시네마테크들도 앞다퉈 <킹덤> 상영회를 추진했고, 그 열기에 동참하고, 함께 즐기고자 하는 이들이 찾아오며 시네마테크에서도 연이어 흥행에 성공했다. 이들은 이듬해 <킹덤 2>의 상영회도 추진하고자 했지만 <킹덤 2>의 정식 수입사인 KJ엔터테인먼트에서는 이 시네마테크의 불법적 상영에 제동을 거는 한편으로, 오히려 이들이 갖고 있는 지역에서의 홍보 노하우를 적극 활용하여 전국 상영을 진행했다. 그렇게 <킹덤 2> 역시 흥행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이제 시네마테크들의 입장에서는 합법적 상영 공간에 자신들의 역할을 내어줄 때가 되었음을 깨닫게 되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게 2000년대에 들어서서 일부 시네마테크 운영자들은 멀티플렉스에 자리를 빼앗긴 소극장이나 각 지역 대표 단관극장들과 손을 잡고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을 운영하거나, 자신들의 특기를 살려 독립예술영화 배급 쪽으로 자리를 옮겨 활발히 활동을 이어갔다. 그렇게 은밀한, 그래서 더 자유롭고 끈끈했던 관객들, 그리고 그들에게 아지트가 되어준 문화공간들은 사라져 버렸지만, 각 지역의 민간 시네마테크들이 남긴 유산은 여전히 한국영화 산업 내에서 여러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이들이 지역의 영화문화와 독립・예술영화 산업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자세히 알고 싶다면, KOFA컬렉션을 통해 공개된 2024년 주제사 ‘1990년대 전후 지역 영화문화의 변화와 네트워크’ 에서 직접 확인해보도록 하자! *** [1] 공영민 채록연구, 『2024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1990년대 전후 지역 영화문화의 변화와 네크워크> 1권: 정희섭・박영정・박상백・송정환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4, 217~218쪽. [2] 공영민・한나리 채록연구, 『2024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1990년대 전후 지역 영화문화의 변화와 네크워크> 3권: 이진이・원승환・황규석・강민구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4, 192쪽. [3] 공영민・한나리 채록연구, 《2023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영화문화의 변화와 사설 시네마테크의 활동> 2권: 정성일・이하영・손주연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3, 37~38쪽. [4] 한나리 채록연구, 『2023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영화문화의 변화와 사설 시네마테크의 활동> 3권: 안정숙・곽용수・조영각・김영덕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3, 188~189쪽. [5] 한나리 채록연구, 앞의 책, 101쪽. [6] 한나리 채록연구, 위의 책, 147~148쪽. [7] 한나리 채록연구, 『2023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영화문화의 변화와 사설 시네마테크의 활동> 3권: 안정숙・곽용수・조영각・김영덕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3, 224~226쪽. [8] 공영민 채록연구, 『2024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1990년대 전후 지역 영화문화의 변화와 네크워크> 1권: 정희섭・박영정・박상백・송정환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4, 295쪽. [9] 이문주 채록연구, 『한국 애니메이션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생애사 18권: 박보경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1, 69쪽. [10] 유은정・박지윤 채록연구, 《한국 애니메이션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생애사 21권: 손영득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1, 95~96쪽. [11] 공영민 채록연구, 앞의 책, 한국영상자료원, 2024, 216~217쪽. [12] 공영민・한나리 채록연구, 앞의 책, 한국영상자료원, 2024, 142~147쪽.
예술문화 공간 연희동의 유일한 영화관: 라이카시네마
경기천년바탕체 R(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 (위 이미지 클릭 시 유튜브 영상으로 이동) 2021년, 예술문화 공간 연희동에 문을 열다 연희동은 서울 다른 지역에 비해 재건축이 빈번하지 않고 오래된 도시의 정취를 가지고 있다. 부촌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동시에 동교동, 서교동, 연남동에서 이어지는 ‘홍대권’의 끝단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재건축에 관심이 없는 오래된 저택들이 많은 탓에 급격한 상권변화나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는 일은 상대적으로 적다. 연희동에는 소규모의 갤러리가 많다. 주로 2014년부터 궁동산과 안산 자락 일대에 들어온 소규모 갤러리들은 대부분 주택가의 1층 혹은 상가 건물을 개조해 만든 건물에 들어서며 연희동 고유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되 예술적 동네의 모습을 갖춰 갔다. 라이카시네마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는 서울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문학창작공간 ‘연희문학창작촌’이 있다. 도심 속 같지 않게 바람소리와 새소리만 들리는 이 공간에서 많은 시인과 소설가들이 작품을 창작했다. 이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공방과 퍼포먼스 예술 극장 등이 연희동에 자리 잡으며 마을의 문화적인 분위기가 더 확고해졌다. 때문에 라이카시네마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연희동에 당연히 있을 법했던 것이 이제야 생겼다’라는 반응도 있었다. 연희동 최초의 극장이자 예술영화관인 라이카시네마는 2021년 1월 13일 연희삼거리 골목길 안쪽에 좌석 40석의 단관으로 문을 열었다. 원래는 2019년부터 개관을 준비했으나 코로나19로 극장들이 어려운 상황에서 개관 시기를 고민하다가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정면돌파하는 마음으로 열었는데, 오히려 젊은 관객들과 연희동 주민들로부터 호응을 받았다. 라이카시네마 정문 출입구 최초의 우주개 라이카에서 명칭을 따다 ‘LIFE LIVE LIKE’라는 이름의 개관 기획전은 첫 비행을 컨셉으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 파이널컷>(2020),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 원더풀 라이프 >(1998),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 멀홀랜드 드라이브 >(2001), 왕가위 감독의 < 화양연화 >(2000),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 멜랑콜리아 >(2011) 등 16편이 상영되었다. ‘라이카시네마’라는 이름은 소련의 우주선 스푸트니크 2호에 탑승한 최초의 우주개 ‘라이카Laika’에서 땄다. 극장이 들어서 있는 건물 이름이 먼저 지어졌고(복합문화공간 스페이스독Space Dog)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지어진 이름이다. ‘영화로 광활한 여정을 떠나자’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홈페이지에 실린 영화관에 대한 공식적인 소개 역시 ‘연희동에 불시착한 복합문화공간’이다. 라이카시네마 1층 로비 전경 스페이스독은 연희동 토박이로 오랫동안 동네에 주민들의 문화공간을 짓고 싶어 했던 이화유니폼 서기분 대표가 같은 연희동 주민인 SPDG(스페이스독) 이한재 대표와 의기투합해서 지었다. 본래 2층 주택인 부지를 허물어 4층 건물로 리모델링했는데, 1~2층은 카페, 3~4층은 공유오피스이다. 건축주는 서기분 대표이고 해당 건물의 설계부터 운영까지 스페이스독이 맡고 있다. 스페이스독 지하에 영화관이 들어온 이유는 서기분 대표와 이한재 대표 모두 오랫동안 연희동에 살면서, 연희동에 있을 법한데 없는 것 중 하나가 영화관이라고 생각했고, 예술영화나 독립영화가 이런 작은 영화관과 잘 맞을 것이라고 봤다. 영화편집숍 컨셉의 젊은 예술영화관 라이카시네마를 찾는 관객들은 주로 20대 여성들, 예술영화나 독립영화 입문자들이다. 상영 영화들에 따라 연희동 주민이나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들이 좌석을 꽉 채우기도 한다. 연희동의 유일한 예술영화관으로서 지역 사회는 물론 여러 주체와의 협업에도 열려 있는데, 개관한 해에 바로 ‘2021 서대문독립민주영화제’를 개최하거나 단편 영화들을 한 편씩 상영하는 기획전을 열기도 했다. 이런 노력들로 라이카시네마는 20대 젊은 층에게는 테마가 있는 ‘영화편집숍’으로, 동네 주민들에게는 다양한 영화 체험의 장으로 사랑받고 있다. 라이카시네마의 지향점은 앞서 언급했듯 관객들이 ‘영화 편집숍’을 방문하듯이 라이카시네마를 찾기를 바라는 것이다. 좌석 수의 한계로 수익성 자체가 눈에 띄게 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지만, 지금 공간을 잘 활용해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는 게 라이카시네마의 운영 방향성이다. 애초에 공간 구성과 인테리어에 신경을 많이 썼고, 시네필이 아닌 이들에게 진입장벽을 낮추고 싶어서 영화 선정 또한 너무 어렵거나 힘든 예술영화보다는 접근이 쉬우면서도 새로운 작품 중심으로 하고 있다. 라이카시네마 상영관 입구 복도 라이카시네마의 인테리어 역시 보통의 영화관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데,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예술적 조형물들과 우주선에 탑승한 듯한 느낌을 주는 구성이다. 설계 때부터 영화관을 염두에 둔 것에서 알 수 있듯, 영화관의 설비나 공간 구성은 최고 수준이다. 서울의 예술영화관 중 유일하게 입체 음향 기술 돌비 애트모스 시스템을 도입해 영화를 상영하고 있고, 다른 영화관에 비해 넓은 좌석 배치로 관객들의 시야가 어느 자리에서도 가려지지 않고 앞좌석에 발이 닿기도 어렵다. 더불어 물과 무알콜 음료를 제외한 음식은 섭취가 불가능하다는 상영관 내 규칙까지, 영화를 집중해서 볼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을 제공한다. 라이카시네마의 상영 시간표는 매주 수요일에 업데이트 된다. 라이카시네마가 위치한 연희동을 기점으로 가까운 거리에 아트하우스 모모와 필름포럼, 롯데시네마 홍대입구 안 인디스페이스 등의 독립예술영화관들이 위치하고 있다. 2010년대까지만 해도 종로구와 중구에 밀집돼 있던 예술영화관이 서대문구, 마포구로 많이 이전되어 한국영상자료원과 함께 독립예술영화관들이 모여있는 일종의 지구가 형성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라이카시네마 상영관 내부 공간 및 운영 개요 1. 위치 :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로 8길 18 스페이스독 B1 2. 설립일 : 2021년 1월 13일 3. 대표자 : 서기분 4. 규모 : 연면적 721.26㎡ 지하1층–지상4층 5. 공간 구성 : 1관 40석(장애인석 1석 포함), 1층 로비, 2층 카페(휴업), 루프탑(정원) 6. 운영시간 : 09:30-24:00 (영화 상영시간에 따라 조정) 7. 입장료 : 평일(월~목), 주말(금~일,공휴일) 1) 성인: 평일 1만원, 주말 1만 1천원, 조조 평일 6천원, 주말 7천원 2) 대학생: 평일 9천원, 주말 1만원 (서대문구/마포구 소재대학교 재학생 1천원 추가 할인, 현장 전용) 3) 청소년: 평일 8천원, 주말 9천원, 우대 7천원, 문화가있는날 6천원 ※ 연희동 주민 1천원 할인(조조, 문화가있는날 제외, 현장 전용, 신분증 확인) 8. 구성원 : 총괄운영/프로그래머 문유정, 매표 및 청소 직원 4인 글/진행 : 김문경 사진 : 허 성 취재 일자 : 2023년 10월 12일
어나더 라운드
잔뜩 술을 마시고 아침이 되어 숙취에 시달리다 보면, 웬수같은 술을 두 번 다시 마시나 봐라, 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그러나 술을 끊는 일은 없었다. 언젠가부터는 그런 상투적인 말도 하지 않는다. 과하게 마시는 것을 피하기만 한다면, 술은 언제나 좋은 친구다. 오랜 친구와 절교하는 일은 쉽지 않다.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기만 한다면, 술은 평생 가야 하는 친구다. 술과의 적당한 관계를 조절하는 일이 아무리 어려울지라도. 토마스 빈터베르그의 < 어나더 라운드 >는 과하게 술을 마시는 청년들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덴마크에는 호수를 한 바퀴 돌면서 맥주 한 상자를 비우는 대회가 있나 보다. 호수 둘레를 뛰다가 한 병을 마시고, 토하면 한 병이 추가되고 등의 규칙이 있다. 참으로 무모하다. 열차에 탄 청년들이 병나발을 불고, 승객들에게도 술을 권하며 한바탕 놀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어리석은 난동으로 보일 짓이다. ‘젊음은 무엇인가? 꿈이다. 사랑은 무엇인가? 꿈의 내용이다.’ 키르케고르의 말이 나온 후 <어나더 라운드>가 보여주는 청년들의 음주 장면은 유쾌하다. 다음 날, 어제의 난동을 알게 된 학교에서는 이후 학생들의 음주를 금지하지만. 고등학교 교사인 마르틴은 평범하고 지루한 중년을 보내는 남자다. 같은 학교의 교사인 니콜라이, 페테르, 톰뮈도 다르지 않다. 인생의 방향은 이미 결정되었고, 새로운 길이 생기지 않을 것이고, 생의 마지막까지 변화는 없을 것이다. 그 중 마르틴의 권태가 가장 심각하게 보이기는 한다. 역사 수업에서 했던 말을 또 하고, 진도를 잊어먹고, 엉뚱한 소리를 한다. 학생들이 단체로 문제제기를 하면서 심각한 위기에 몰린다. 마르틴의 인생에는 아무 열정이 남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니콜라이의 생일, 함께 술을 마시던 네 명의 남자는 의기투합한다. 심리학을 가르치는 니콜라이는 새로운 학설을 알려준다. 인간의 혈중 알콜은 늘 부족한 상태이기에, 알콜 농도 0.05%가 되면 보다 창의적이고 활발해진다는 것이다. 막다른 길에 몰린 마르틴은 술을 마시고 수업에 들어간다. 그러니 정말로 달라진다. 열정적으로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학생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해진다. 가정에서도 적극적이고, 활기차고, 다정해진다. 소원했던 아내와의 관계도 훨씬 좋아진다. 니콜라이, 페테르, 톰뮈도 마르틴의 길을 따른다. 적당히 학생들을 가르치고, 어떤 문제가 있어도 그저 귀찮아서 외면했던 과거와 달라진다. 적극적으로 학생들의 상황에 개입하고,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네 남자의 변화, 활약상은 그야말로 놀랍다. 하지만 영화가, 그래서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되지 않는다. 오히려 비극이 예정되어 있을 것이다. 그정도는 누구나 예감한다. 모든 이익, 행복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한때 덴마크는 세게에서 가장 술을 많이 마시는 나라였다. 지금은 러시아나 한국이 더 많이 마신다고 한다. 술에 대해서는, 우리도 세계 어느 나라보다 잘 알고 있다. 워낙 술을 많이 먹는 인간이 많다 보니, 주취 감경이라는 비합리적인 법률까지 존재할 정도다. 술을 마시고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렀으니 벌을 감해준다는 것이다. 강제로 술을 마신 것도 아니고, 자기가 즐거워 마신 술에 취해 타인에게, 사회에 해악을 끼쳤는데 왜 죄를 용인해주는 것일까. 자신의 행복을 위해 술을 마셨고, 그로 인해 타인에게 죄를 지었다면 스스로 갚아야 한다. 술에 지나친 관용이나 애정을 주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술의 긍정적인 효과에 도취한 마르틴과 친구들 역시 가혹한 결과를 맞는다. 술은 적당히 먹으면 약이고, 과하면 독이다. 모든 상황이 좋아지자, 더 좋아지기 위해 그들은 술을 더 마신다. 과음을 한 탓에 학교에서 실수를 하고, 더 마시다 기억까지 잃어버린다. 감정을 멋대로 발산하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마르틴의 아내는 떠나버리고, 톰뮈는 직장을 잃는다. 당연한 결과다. 욕망의 끝은 언제나 파멸이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고, 모든 상승은 언젠가 속절없이 낙하한다. <어나더 라운드>는 결론을 말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세상의 법칙 같은 것은 없다. 누군가는 평생 혈중 알콜농도 0.05%를 유지하며 흥겹고 열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비참하게 인생을 포기할 수도 있다. 어디에도 정답은 없다. <어나더 라운드>는 네 명의 친구들이 걸어가는 길을 담담하게 따라갈 뿐이다. 1995년, 라스 폰 트리에와 함께 도그마 선언을 주도했던 토마스 빈터베르그의 <어나더 라운드>는 순수하다. 지나친 의미 부여가 없고, 치밀하게 상징을 파고들지도 않는다. 관습적으로 인물들을 나열하지도 않는다. 익숙한 것으로 여겨지는 일상을 느슨하게 따라가면서, 결국은 빛나는 성찰의 순간을 던져준다. 희망도, 절망도 함께 껴안는다. 도그마 선언은 희미하게 지워졌지만, 빈터베르그는 여전히 정갈한 눈으로 인생을 바라본다. 마지막 장면, Scarlet Pleasure의 "What A Life"가 흐르면서, 한때 재즈 발레를 배웠다는 마르틴이 춤을 춘다. 그들이 가르친 학생들이 서로 졸업 축하를 하는 흥겨운 거리 풍경 속에서, 한동안 멀리 했던 술을 다시 마시며 춤을 춘다. 마르틴은 춤에 빠져들어 격정적으로 몸을 움직인다. 톰뮈는 죽음을 선택했고, 마르틴은 안정된 생활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마르틴이 더 옳은 선택을 했다거나, 운이 좋았기 때문이 아니다. 자연은 때로 가혹하게 벌을 내린다. 아무 죄가 없어도, 아무리 성실하고 선하게 살았어도 감내해야만 한다. 술 때문이 아니라, 운명이 그들을 서로 다른 길로 이끌었다. 술은 하나의 선택일 뿐이다. <어나더 라운드>는 취한다는 것의 매혹을 너무나 아름답게 표현한다. 동시에 빠져들 수 있는 지옥의 구렁텅이까지. 모든 것이 인생이고, 무엇이 어느 순간 나에게 다가올지는 알 수 없다. 매 순간 생각하고, 매 순간 선택하며 나아갈 수밖에. 그러니 때로 취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취해야만 한다. <어나더 라운드>의 매순간이 그렇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