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블린 슬레이어 –고블린즈 크라운–
- 감독
- 오자키 타카하루
- 제작년도
- 2020
- 출연
- 우메하라 유이치로, 오구라 유이
웹소설 원작 애니메이션의 유행 근래에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유행하는 장르라고 하면,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소위 ‘이세계(異世界)물’을 들 수 있다. 그것도 그냥 이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고전적인 이세계물(현재의 지구 및 우리가 사는 우주와는 다른 세계, 말하자면 판타지 세계[ex. <반지의 제왕>]이거나 다른 우주나 엄청난 먼 미래를 그린 SF 세계[ex. <스타 워즈>]를 다룬)이 아니라 (주1) , 주인공이 ‘현실 세계’에 있다가 이세계로 가는 형태의 작품이 유행하고 있다. 현실 속에서 이세계로 간다는 내용은, 원래부터 소위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라 불리우는 스토리텔링의 기본 구조에서는 아주 일반적인 형태다.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란 주인공이 자신이 사는 세계(집, 나라 등)를 떠나 다른 세계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구조를 가진 스토리를 뜻한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성장’하기 때문에, 일종의 성장소설이란 측면도 갖고 있다. 이런 작품이라면 가까이는 < 나니아 연대기 >(앤드류 아담슨, 2005)도 있을 것이고, 더 거슬러올라가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있겠으며, 실은 단테의 <신곡>도 바로 현실 세계에서 이세계로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인 것이지 않은가. 또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나 구약성경의 요나 이야기, 메소포타미아의 설화 <길가메시 서사시> 등도 전부 이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의 구조를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지금 유행하고 있는 이세계물은 이세계에 갈 뿐 현실 세계로 돌아오지 않는다고도 볼 수 있다. 다만 아직 완결이 나지 않아서 못 돌아온 것일 수도 있고, 또 현실로 돌아오는 작품도 있기는 하다.) 라이트노벨 원작 애니메이션이 유행했던 1990~2000년대까지는, 예를 들어 <슬레이어즈>(애니메이션은 1995년부터)라든지 <마술사 오펜>(애니메이션은 1998년부터)을 비롯한 ‘판타지 세계’를 그린 작품이거나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 시리즈(애니메이션은 2000년),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애니메이션은 2006년부터), <듀라라라!>(애니메이션은 2010년부터), <내 여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애니메이션은 2010년부터)에 이르기까지 현대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 많았다. 이세계로 가는 작품이 없었던 것은 물론 아니지만(앞서 언급했던 정도까지 서양의 고전이 아니더라도, 일본에도 1971년 <전국 자위대>를 비롯하여 이세계나 과거의 시간대로 ‘가는’ 작품은 많이 있었다) 2010년대 웹소설의 유행 이후로는 이세계물이 워낙 많아졌기 때문에 훨씬 더 특징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소설을 발표한다는 것이 주류화된지가 워낙 오래 된(1990년대 초반 PC통신 시절로까지 거슬러올라간다) 한국에서는 소위 ‘이고깽’(이세계로 간 고등학생이 깽판을 치는 내용)이라 하여 현대인이 이세계에 가서 활약한다는 내용은 일본 웹소설의 유행보다 훨씬 앞섰다. 일본에서도 학생이 이세계로 가는 것은 애니메이션 <성전사 단바인>(1983년)이나 소설 <황금박차 - 이차원 기사 카즈마>(1988년) 등 많이 있었지만, 그와는 별개로 인터넷에서 발표되는 작품에 이세계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한국이든 일본이든 오래 전부터 반복되는 유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표적인 ‘이세계물’이라면 게임 속의 세계로 가는 <소드 아트 온라인>과 <로그 호라이즌>, 게임형의 판타지 세계로 가는 <Re: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세계 생활>이나 <오버 로드>, 밀리터리 취향의 세계(?)로 가는 <유녀전기>, 판타지 세계로 가는 <무직전생>이나 <전생했더니 슬라임이었던 건에 대하여>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이 중에는 이세계로 가는 과정에서 주인공이 엄청난 능력을 얻게 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고 그냥 이세계로 가기만 할 뿐 어느 정도 수련과 노력을 해서 주인공이 성장하여 적절한 능력을 갖게 되는 경우도 있다. 전자는 일본에서 ‘난 강해――!(오레 츠에에에)’물이라고 부르는데, 한국에서도 전통적으로 대본소용 판타지소설 중 일부를 가리키는 소위 ‘양판소’(양산형 판타지 소설의 약칭)물에서도 ‘먼치킨’이라 불리운다. 노력없이 강한 주인공 비단 웹소설 원작이 아니더라도 이런 먼치킨형 주인공, 즉 ‘노력없이 강한 주인공’은 21세기에 접어들면서부터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에서 특징적으로 많이 등장하고 있다. (물론 이 역시도 21세기 이전에 그런 주인공이 없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만화잡지 「소년 점프」의 인기 만화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는 2014년부터 연재를 시작했고 2016년부터 애니메이션이 방영되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미도리야 이즈쿠. 특수한 능력을 갖고 있지 못했지만 어떤 기회를 통해 무척 강한 능력을 손에 넣은, 어떻게 보면 무협소설에서 ‘기연’을 얻는 주인공만큼이나 주역스러운 설정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미도리야 이외의 주요 인물 중에, 정형적이라 할만큼 ‘고전적 주인공’의 특징을 가진 캐릭터가 두 명이나 나온다. 소꿉친구였던 라이벌 바쿠고와, 새롭게 만난 라이벌 토도로키다. 오만한 성격에 다혈질처럼 보이는 바쿠고, 냉정한 성격이면서도 부모님 때문에 비틀린 의지와 고민을 갖고 있는 토도로키. 미도리야는 토도로키의 사정을 듣고서는 그에게 “만화였다면 주인공이다”라는 ‘메타 발언’(정작 주인공은 미도리야니까)을 하는 장면도 나온다. 만약 과거였다면 주인공은 바쿠고이거나 토도로키였을 텐데, 2010년대의 소년만화 독자들은 더 이상 단순한 고전적인 형태의 ‘주인공 캐릭터’에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이지만, 이미 2010년대의 젊은이들은 대개 ‘보릿고개’나 ‘전쟁’, ‘공해병’이나 ‘진폐증’을 겪을 일이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오히려 그들에겐 ‘자살’이나 ‘왕따’가 더 가깝게 느껴질 것이고 괴로운 병이라면 ‘아토피’라든지 ‘공황장애’, ‘백신 거부주의로 인한 홍역’ 같은 것일 수 있겠다. 게다가 이런 상황이 된 것이 21세기 이후의 일인 것만도 아니라는 말이다. 지역적 차이는 있겠으나 사실 이미 1990년대에도 픽션 속에서 ‘열혈 주인공’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한국에서도 <열혈강호>나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은 1990년대 초반에 등장해 있었고, 순정만화에서도 비슷한 변화를 볼 수 있었다. 일본만화에서도 1980~90년대의 주인공들, 예를 들어 손오공·사쿠라기 하나미치·미츠하시 타카시·우에스기 타츠야(앞에서부터 <드래곤볼><슬램덩크><오늘부터 우리는><터치>)는 그 이전 1960~70년대 ‘근성물’에 대한 안티테제로 등장했던 주인공 인물형이다. 또 같은 시대의 켄시로·사에바 료(<북두의 권><시티 헌터>) 등은 ‘난 강해――!’물에 그대로 해당될만큼 ‘처음부터 강한 주인공’이다. 물론 이런 작품과 캐릭터를 무조건 ‘노력없이 강한 주인공’이라고 할 수는 없다. 맨처음 언급한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만 하더라도 2010년대 작품 중에서는 오히려 드물게도 나름대로 ‘노력을 하는’ 주인공이었다. 하다못해 <시티 헌터>의 사에바 료도 끊임없이 사격 연습을 하는 장면이 작중에 나오고, <드래곤볼>에서 손오공은 여러 스승들에게 수업을 받거나 강한 중력 하에서 수련을 하는 등 충분한 노력을 보인다. <슬램 덩크>에서도 사쿠라기 하나미치는 전형적인 ‘노력없이 강한’ 척을 해야 하는 불량 학생 출신이었음에도 나중에는 농구라는 스포츠를 인정하면서 ‘풋내기 슛’을 연습하여 이기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이런 모습들은 작품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한 장치 정도일 뿐, 아무리 그렇더라도 후대에 거의 희화화될만큼 말도 안되는 ‘노력(?)’을 하는 1960년대 스포츠근성물이나 슈퍼로봇물인데도 작품 전반 거의 4분의 1 가까이까지 주역 로봇이 제대로 등장하지 않거나 싸우지 않고 오직 주인공이 파일럿으로서의 연습과 스파르타 훈련만을 받는다는 독특한 로봇애니메이션 <혹성로보 단가드A>(국내 방송 제목은 <날아라 스타에이스>) 같은 경우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 1980년대 중후반 이후의 작품들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력없이 강한 주인공’이라 함은 진짜로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고전 작품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덜 노력하거나 노력을 하더라도 그 노력하는 장면을 거의 그리지 않는 식으로 처리되어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길가메시 서사시> 이런 ‘노력없이 강한 주인공’의 유행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면서 “요즘 젊은이는…” 운운하는 비평도 자주 보지만, 물론 ‘요즘 젊은이들’ 때문에 그런 주인공이 유행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그런 분석의 태반이 너무 상황을 단순화시킨다는 생각은 든다. ‘노력없이 강한 주인공’은 비단 요즘 유행일 뿐만이 아니라 앞서 언급했듯 무협지에선 과거에도 자주 볼 수 있던 유형이다. 하물며 ‘이야기의 주인공’은 신화 시대로 거슬러올라가 보더라도 다들 ‘노력없이 강한’ 것 아닌가? 과거엔 그것을 혈통이나 타고난 능력(신의 아들이라느니 천손이니)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그리스로마신화나 <삼국유사>를 보아도 그런 인물은 등장하고, 앞에서 말한 <길가메시 서사시>도 그렇지 않은가. (그런 길가메시가 등장인물로 나오는 작품이 <Fate/stay night>를 비롯한 <페이트> 시리즈이다.) 따라서 이런 주인공의 유행이 비단 21세기 이후 서브컬처의 특징이란 식으로 말하기는 어렵고, 앞에서 살펴보았듯 이세계물의 유행 역시 마찬가지이다. 애시당초 어떤 한두 가지 사안을 특정 시기의 ‘특수성’으로 설명하는 담론은 대개 거기에 어긋나는 사례로 인해 금새 반박되기 때문에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그렇지만 ‘과거와 달리 21세기에만 이런 특징이 드러난다는 것은 아니’라는 전제를 단다면, 분명히 현 세대 서브컬처의 큰 유행으로서 이세계 전이와 노력없이 강한 주인공이란 흐름을 짚을 필요는 있다고 보기에 이 글을 썼다. 여기까지 판타지와 SF의 관계, 이세계물과 노력없이 강한 주인공의 유행, 라이트노벨과 웹소설에서의 이세계물이 갖는 차이, 시대에 따른 주인공상의 변화 등 간략하게나마 몇 가지 사인에 대해 다루어보았다. 이 이상의 내용은 다른 기회로 돌리겠으나, 이런 변화를 바탕에 두지 않고서는 2010년대의 만화/애니메이션 계열 서브컬처를 이해하기는 어려울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웹소설의 이세계물도 지겹다는 반응이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 적지 않기 때문에, 이 장르의 유행이 당장 없어지진 않겠으나 2020년대에는 또 다른 변화가 시작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주1) SF의 경우, 설정에 따라서는 현재의 인류가 먼 우주로 나아가 외계인을 접하거나 혹은 워낙 먼 미래가 되거나 갑작스러운 기술 발전으로 우주 전체를 누빌 수 있게 된다는 내용 등 다양한 배리에이션이 있는데, 어쨌거나 그 어느 쪽이든 ‘바로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계’와는 다른 ‘이세계(異世界)’를 그린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는 판타지와 다를 바가 없다. 작품의 방향성이 마법과 연금술이나 과학이냐 하는 차이점일 뿐. 또한 이때 ‘과학’이라고 하더라도 어차피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과학, 즉 빛보다 빨리 달릴 경우의 물리 법칙을 상상해서 만들어낸다거나 비(非)탄소계열 생명체를 상상해서 만들어내는 등 범위를 너무 벗어나는 내용을 그릴 경우를 생각해보라. 그런 SF가 마법이나 연금술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판타지라고 해도 그 세계관 내에서는 합리성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 작품도 많고, 그렇기에 완전히 동떨어진 상상만의 판타지 작품은 판타지라는 장르 안에서도 여러 단계로 구분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서구권을 대표하는 SF잡지의 제목이 <The Magazine of Fantasy & Science Fiction>였던 것 아니겠나. (그나마도 1949년 창간 당시의 잡지 이름은 <The Magazine of Fantasy>였다. 2호 때부터 ‘Science Fiction’이 추가된 것이다.)
■인터넷과 단편 애니메이션 2012년 한국 문화계 최대의 화제라면 역시 가수 싸이가 발표한 곡 `강남 스타일`이 미국 빌보드 차트 7주 연속 2위(2012년 11월 8일 현재), 영국(UK) 오피셜 차트의 싱글차트 1위를 차지한 것이겠다. ( 김기덕 감독이 영화 < 피에타 >로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베네치아 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한 것도 물론 빼놓을 수 없다.) `강남 스타일`은 뮤직비디오가 유튜브에서 화제가 된 것을 계기로 전세계 수십 개국의 아이튠즈 음원 판매 상위권을 차지하며 인기를 끌게 되었는데,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이처럼 ‘로컬’한 콘텐츠가 ‘글로벌’한 결과를 가져오는 일이 많아진 것은 이제 와서 굳이 지적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물론 인터넷 시대 이전에도 그런 사례는 많이 있었고, 자국 내에서보다 번역을 통해 소개된 타국에서의 인기가 높았던 작품도 드물지 않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그런 사례는 점점 더 많아지고 있으며 평범한 개인에게도 손쉬운 기회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애니메이션 분야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본래 극장 애니메이션이든 TV 애니메이션이든, 많은 예산을 들여 여러 사람들이 제작에 참여해야 하는 산업적 시스템 기반에서 만들어지는 작품이 많다. 하지만 훨씬 적은 수의 인원, 때로는 아예 단독으로 제작되는 단편 애니메이션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 단편 애니메이션의 문제점은 러닝타임이 짧다 보니 상업적으로 발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극장 단독 상영도 어렵고 TV 방영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짧은 러닝타임 덕분에 상업적 시스템을 통하지 않고 적은 수의 인원으로도 제작할 수 있는 것이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발표의 기회가 적어진다는 이야기다. 과거에는 보통 단편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각국의 영화제에서 상영되거나 해외의 문화원 등에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실 매니아나 연구자가 아니라면 구태여 영화제나 각국 문화원에서 상영되는 단편 애니메이션을 찾아가서 보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인터넷의 발달은, 그런 단편 애니메이션을 일반 관객이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비약적으로 향상시켰다. 당장 포탈 사이트에 가보면 국내의 단편 애니메이션 작품이 유료로 업로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과거 영화제나 문화원의 상영에서는 단편 애니메이션 제작자가 금전적인 수입을 얻기가 사실상 어려웠고, 따라서 단편 애니메이션은 상을 타거나 해서 상금을 얻지 않는 이상은 거의 취미에 가까운 제작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지금도 물론 유료라고 해도 단편 애니메이션이란 한계 때문에 그리 많은 수입이 있지는 않겠으나, 그렇다고 해도 과거에 비하면 훨씬 더 쉽게 단편 애니메이션을 발표할 수 있고 그 발표를 통해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진 것만은 사실이라고 해야겠다. ■신카이 마코토의 등장 특히 인터넷은 국내에서만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그런 기회와 기반을 전세계적인 규모로 늘릴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한다. 당장 필자의 경험을 이야기해보자면, 필자가 2001년 신카이 마코토라는 크리에이터를 알게 된 것도 그런 인터넷을 통해서였다. 1990년대 일본에서는 인터넷을 통해 만화적인 일러스트를 발표하는 반 아마추어, 반 프로라고 해야할 만한 크리에이터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인터넷에 만든 본인의 홈페이지에 취미 활동으로 일러스트를 올리고, 그것을 본 출판사나 잡지사 등에서 일을 의뢰하여 반쯤 프로로서 데뷔하는 것이다. 혹은 이미 프로였던 작가도 홈페이지를 통해 다른 업무처나 새로운 일을 의뢰받는 등 활동 영역을 넓히는 데에도 인터넷은 유용하다는 사실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많은 이들이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만들어 자신의 일러스트, 만화, 소설 등의 작품을 발표하고 있었고, 그런 홈페이지를 알게 된 국내의 매니아들이 동호회 게시판 등을 통해 소개하고 있었던 것이다. 필자도 그렇게 해서 일본의 ‘반쯤 아마추어’인 크리에이터들의 홈페이지를 여럿 알게 되었는데, 그 당시 새롭게 알게 된 것이 바로 신카이 마코토라는 크리에이터였다. *신카이 마코토 홈페이지 http://shinkaimakoto.jp 신카이 마코토가 다른 크리에이터들과 다른 점은, 그가 홈페이지에서 발표하고 있던 ‘작품’이 일러스트나 만화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는 홈페이지에 자신이 거의 혼자 만들었다는 단편 애니메이션을 올려놓고 있었다. 5분 남짓의 짧은 내용이긴 했지만, 그가 음악을 제외하고는 스토리, 연출, 작화, 심지어 성우까지 전부 스스로 혼자서 도맡아 만들었다는 <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라는 단편 애니메이션은 충격적이었다. 그때까지 단편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국내외를 막론하고 대중적인 취향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거나 사회 비판적인 작품이 많았다. 보통 일반 대중이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것과는 동떨어졌다는 이미지가 있었다. 물론 대중적이지 않으면서도 재미있는 작품도 많이 존재한다. 필자도 1993년 독일문화원에서 열린 독일 단편 애니메이션 상영회에서 본 < Balance >란 작품을 20년이 다 된 지금까지도 기억하는데, 대중적인 취향은 아니지만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독일 출신의 일란성 쌍둥이 애니메이션 작가인 라우엔슈타인 형제가 만든 작품으로, 1989년 아카데미 단편애니메이션 상을 수상한 바 있다.) *라우엔슈타인 형제 홈페이지 http://www.lauenstein.tv 그렇지만 어쨌거나 단편 애니메이션의 상당수는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힘든 내용이 많은 편이다. 대부분이 전형적인 ‘학생 애니메이션’이라고 할까. 앞서 언급했듯이 단편 애니메이션의 제작은 거의 금전적 보답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에, 단편 애니메이션을 가장 많이 제작하는 기반은 외국이나 한국 모두 애니메이션 학과나 학원의 학생일 것이다. 주로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또한 상업적 목적 없이 제작되다 보니 단편 애니메이션은 대개 작가 자신의 내면을 그리거나 개인적인 주제 의식에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사회적 문제를 다루더라도 그 문제 의식을 타인과 공유하려는 의지, 타인이 접하기 쉽도록 일종의 ‘당의정’으로 만들려는 의식 자체가 부족한 것이다. 애초에 그렇게 만들어야 할 필요 자체가 별로 없으니 당연한 귀결이겠다. 그러나 <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는, 물론 다른 단편 애니메이션과 마찬가지로 순전히 개인적 취미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보니 신카이 마코토 본인의 취향만을 반영한 개인적 작품이긴 했으나, 많은 부분에서 일반 대중에게 공감을 갖게 하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때문에 필자도 감명을 받았던 것이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미 당시에 ‘코믹스웨이브’라는 회사에 발탁되어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도록 투자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신카이 마코토의 대중성은 인정받고 있었던 것이다. 본래 <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는 신카이 마코토가 아직 게임회사에 다니던 와중에 개인적 취미로 만든 작품이었다. 1999년에 제작하여 2000년에 발표했는데, 홈페이지에는 5분의 풀버전이 아니라 좀 더 짧은, 1분 36초의 다이제스트판이 올라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그 작품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이다. PC 소프트웨어인 포토샵(Photoshop)과 애프터이펙트(AfterEffects)를 사용해서 만들었다는 흑백 톤의 단편 애니메이션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정말 재미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에 필자는 이 작품을 국내에서 좀 더 널리 알리기 위해 한국에서 상영회를 열고 싶었다. 필자는 그 전부터 상영회를 주최했던 경험도 많았고, 마침 당시 한국 최대의 애니메이션 팬들의 동호회에서 1년 임기의 대표직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그 동호회 내부에서 상영회를 열고 싶다고 하면 충분히 허락을 받을 수 있으리라 여겼다. 애초에 이미 인터넷 상에 오픈되어 있는 작품이니까 상영회 형태로 하든 하지 않든 얼마든지 볼 수 있었으니 허락하지 않을 이유도 별로 없었다. 상영회를 여는 이유는 오직, 한국어 자막을 넣어 한국의 애니메이션 팬들이 보기 편하게 하는 목적이었다. 자막의 제작과 자막판의 상영에도 기본적으로는 원작자의 허락이 필요한 것이니 직접 신카이 마코토에게 연락을 취했던 것이다. 그래서 신카이 마코토에게 직접 메일을 보내 그와 같은 정황을 설명하고 허락을 얻어 상영회를 열었다. 당시는 신카이 마코토가 처음 일본에서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된 장편 애니메이션 < 별의 목소리 >를 발표하기도 전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세계 최초의 신카이 마코토 상영회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 2001년 8월에는 필자가 직접 신카이 마코토를 인터뷰하기 위해 일본에 가서 만나기도 했다. 그때 이미 장편 애니메이션(<별의 목소리>)를 제작 중이었던 그는, 당시 자신이 소속되어 있던 회사인 코믹스웨이브(mangazoo.com)에서 만나자고 답변을 보내왔다. 도쿄 시부야에 있던 코믹스웨이브 회사 회의실에서 만나 <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에 대한 질문을 하며 인터뷰를 했는데, 당시 일본을 포함해서도 필자가 2번째로 인터뷰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나마 필자보다 앞서 인터뷰했다는 곳은 CG 테크닉에 관한 잡지였기 때문에 포토샵 사용법과 같은 소프트웨어 이야기였고, 신카이 마코토란 작가에게 작품에 대해 인터뷰한 것은 처음이라는 것이다. ▲신카이 마코토의 단편 애니메이션 <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 감상하기 >> http://youtu.be/8-ANtYTLMIY (c) Makoto Shinkai 필자가 인터뷰를 한지 반년이 지난 2002년 2월, 신카이 마코토는 첫 장편 애니메이션 < 별의 목소리 >를 일본의 독립영화 중심의 상영관에서 단관 개봉하며 발표했다. 그때는 자신의 작품이 그렇게까지 성공할지 몰랐었기 때문인지 그는 필자에게도 오프닝 첫 날에 이벤트를 하니까 일본에 올 수 있으면 꼭 찾아와달라는 메일을 보내주기도 했다. 그 뒤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25분 짜리 풀 디지털 애니메이션인 <별의 목소리>는 높은 완성도와 인상적인 내용으로 일본에서 엄청난 주목을 받았고, 제 6회 문화청 미디어예술제 디지털아트부문 특별상, 제 34회 성운상 미디어부문, 제 1회 신세기 도쿄국제애니메페어21 공모부문 우수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하는 등 평가도 높았다. DVD가 일본 국내에서 6만장, 해외에서 4만장 이상 판매되는 등 한국을 비롯한 각국에서도 인기를 끌었고,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신카이 마코토가 독자적인 애니메이션 제작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 작품이다. 신카이 마코토가 <별의 목소리>에서 보여준 감성은 그 이전 <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에서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 작품들이 앞서 언급한 ‘전형적인 학생 애니메이션’ 범주에서 벗어났던 것도 필자 생각으로는 신카이 마코토의 사회 경험과 회사 근무 경험 덕분이 아닌가 한다. 1973년 생인 신카이 마코토는 대학 시절부터 이미 니혼 팔콤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1995년에 정사원으로 입사했다. 니혼 팔콤은 1980년대부터 `드래곤 슬레이어` 시리즈, `이스(YS)` 시리즈, `영웅전설` 시리즈 등 다수의 PC게임을 마든 게임제작사인데, 신카이 마코토는 거기에서 `영웅전설 가가브 트릴로지`와 `이스2 이터널`(한국판도 나온 적이 있다) 등 PC게임의 오프닝 무비를 제작했다고 한다.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를 만든 것이 1999년이었으니 벌써 4년 이상이나 회사 근무를 했던 것이다. 2000년 작품 발표 시에는 이미 27세, 한국 나이라면 28세나 되는 연령이었으니 당연히 학생 수준의 인생 경험보다는 여러 가지로 생각이나 입장이 달라졌을 것이다. - 2001년 8월 필자가 인터뷰를 위해 신카이 마코토를 찾아갔던 당시에 받은 <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 팜플렛. (이 사진 촬영은 한참 뒤에 한 것이라서 배경에 <별의 목소리> 엽서와 <웃는 얼굴> DVD가 보인다.) ■인터넷을 통해 발표된 최근의 단편 애니메이션 또 한 가지 소개하려는 것은, 일본의 애니메이션학과 학생이 만든 < 후미코의 고백 >이란 작품이다.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화제를 모았다는 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시기의 붐을 느끼게 해주는 신카이 마코토의 경우와는 달리, 이 작품은 처음부터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YouTube)를 통해 화제를 모았다는 점이 21세기스럽다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이 작품은 2009년 11월 9일에 유튜브에 업로드되어, 현재 약 3년만에 재생수 224만을 기록하고 있다. 그 후 2012년 9월 28일에는 DVD와 메이킹북을 포함한 세트가 발매되었다. ▲이시다 히로야스를 중심으로 제작된 단편 애니메이션 < 후미코의 고백 > 감상하기 >> http://youtu.be/0QqT1P4VO30 (c) ishida hiroyasu *< 후미코의 고백 > 메이킹북 홍보 페이지 http://colorido.co.jp/fumiko 내용은 2분 22초 정도로 남자아이에게 고백한 여학생이 거절당하자 달려간다는 내용으로, 딱히 줄거리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마을에서 여자아이가 뛰어가는 것 뿐이다. 하지만 그 공간감과 역동성이 인정받아 일본의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주목을 받았다. < 후미코의 고백 >을 만든 것은, 일본 최초의 4년제 만화학과 대학으로도 알려져 있는 교토 세이카대학 애니메이션과의 이시다 히로야스를 중심으로 한 학생들이다. 2009년 유튜브와 일본의 동영상 사이트 니코니코동화를 통해 공개되어 화제를 모았고, 제 14회 문화청 미디어예술제 애니메이션부문 우수상, 2010년 오타와 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특별상, 유튜브 비디오 어워드 재팬 2009, 제 9회 도쿄 애니메어워드 학생부문 우수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이시다 히로야스는 < 후미코의 고백 >에서 감독, 작화, 배경, 3D CG, 편집, 음향을 혼자서 담당했다. 배경과 3D CG텍스처, 모델링, 작화에 다른 4명이 참가했지만 대부분의 내용을 이시다 히로야스가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카이 마코토 이후 늘어난 ‘개인 제작 애니메이션 작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시간을 달리는 소녀 > < 썸머워즈 >로 유명한 호소다 마모루 감독도 재능을 인정했다고 하고, 그런 평가 덕분에 이시다 히로야스는 올해 개봉된 애니메이션 영화 <구스코부도리의 전기>(국내에서도 <부도리 전기>란 제목으로 2013년 개봉 예정)에 대학 시절 은사이기도 한 스기이 기사부로 감독 소개로 참가했다고 한다. 이시다 히로야스는 2011년 3월 졸업 작품으로 제작한 < rain town >도 제 15회 문화청 미디어예술제 애니메이션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는 등 계속해서 화제의 젊은 작가로 주목을 받고 있다. ▲2010년도 교토세이카대학 애니메이션과 제 2기생의 졸업 제작 작품으로 만들어진 9분 55초의 단편 애니메이션 < rain town > 감상하기 >> http://youtu.be/RLAfM1RXwRs 이시다 히로야스는 1988년 생. 1973년 생인 신카이 마코토와는 15살 차이가 난다. 신카이 마코토가 본격적인 개인 애니메이션 제작자로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 1998년 eAT`98에서 특별상을 받은 때로 생각하면 2009년 유튜브에서 화제를 모은 이시다 히로야스는 11년 차를 두고 세상에 나온 셈이다. 신카이 마코토는 1998년 당시 이미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원으로 일하면서 CG콘테스트나 공모전을 통해 작품을 발표하고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공개하며 인지도를 얻었다. 2009년에 이시다 히로야스는 아직 대학 졸업도 하지 않은 학생으로서 학업의 일환으로 제작한 작품이 동영상 사이트를 통해 주목을 받았다. 이 둘의 공통점은 개인의 취미와 작가성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단편 애니메이션이란 장르에서, 본인의 의도에 충실하면서도 대중성에 대한 고민을 잃지 않은 작품을 발표하여 초기 단계에서부터 국제적인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자국보다도 한국에서 먼저 인터뷰를 시도했고 이후에도 한국의 SICAF 등 해외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 적극적으로 참가했던 신카이 마코토는 물론이고, 이시다 히로야스가 참가한 < 후미코의 고백 > < rain town >의 경우에도 유튜브에서 보면 외국인들의 감상이 많다. 이제는 단편 애니메이션도 과거에 비해 화제를 모으고 때로는 국제적인 평가를 얻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신카이 마코토로부터 이시다 히로야스에 이르기까지 지난 10년간의 변화에서 느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