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
- 감독
- 박상호
- 제작년도
- 1969
- 출연
- 최은희, 신성일, 유미, 이수련, 김학, 이경아, 어윤길, 석금성, 강계식, 박상익, 고설봉, 김신재, 김명자, 윤난성, 문미봉, 박부양, 임운학, 장욱, 이정애, 김기범, 지계순, 나정옥, 박선경, 김기주
< 오마주 >는 신수원 감독의 다섯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신수원 감독은 < 레인보우 >로 2010년 장편데뷔한 후 올해까지 거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영화를 만들어왔다. 장편영화를 개봉하지 않은 해에는 옴니버스 영화, 텔레비전 단막극, 다큐멘터리를 연출하며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영화연출에 전념해 왔다. 한국영화에서 성별과 나이를 막론하고 이만큼 생산적인 감독은 드물 정도다. 데뷔작인 <레인보우>는 교사를 하다 그만두고 서른아홉의 나이에 첫 장편영화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감독지망생 지완(박현영)의 좌충우돌을 그린 자전적인 영화다. <레인보우>는 저예산 독립영화였던 만큼 크게 흥행을 하지는 못했지만 여러 영화제에 수상을 하고 비평적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배급사가 제공한 줄거리에 따르면 <레인보우>는 최악의 상황에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도전을 멈추지 않는 재기발랄하고 따뜻한 “응원”의 성장영화이자 음악영화다. 물론 이 설명은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의 진정한 매력은 전형적인 성장영화를 넘어선 ‘근본 없음’과 지리한 일상에 느닷없이 침투하는 ‘날 것의 폭력’을 응시하고 그려낸 데 있다고 본다. 오래 전 태백의 한 미디어센터에서 <레인보우> 공동체 상영과 토크를 진행한 적이 있다. 평일 낮이었던 탓인지 대부분의 관객이 노년층이어서 낯선 독립영화 스타일과 영화감독의 장편 데뷔 이야기에 공감을 해줄까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그 우려는 기우였다. 관객들은 영화계의 맥락을 잘 알지 못하면서도 주인공 지완의 고생담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코미디로 즐겼다. 특히 모든 시도가 엎어지고 지완이 친구인 조감독과 함께 바닷가를 지나다 우연히 마주친 영화현장에서 지인의 부탁으로 ‘행인3’으로 출연하는 장면에서는 예상을 넘어선 박장대소가 나왔다. 마지막 즈음에 나오는 이 장면은 영화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다. 지인인 감독은 그냥 지나가기만 하면 된다고 했지만 막상 연기가 시작되자 만취한 남자를 연기한 배우는 느닷없이 행인인 지완의 뺨을 때린다. 만취한 남자: 아줌마 어디가? 어디 가냐고? 행인3(지완): 몰라요. (만취한 남자가 행인3의 뺨을 때린다) 감독은 지완의 리액션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계속 NG를 부르고 지완은 열 번에 걸쳐 뺨을 맞는다. 바스트 쇼트으로 반복되는 열 번의 뺨 맞는 장면은 지완의 움찔하는 신체반응과 매우 사실적인 사운드로 관객들의 몸도 오그라들게 만든다. 지완은 열 번째에 이르자 마침내 참지 못하고 “아프잖아! 그렇게 뺨을 때리고 그래. 그렇게 만만해 보여. 내가 그렇게 우습냐고. 나도 때리면 아프다고.”라고 폭발하며 행인의 존재감을 보여준다. 이 순간 일상과 판타지, 현실과 연출, 카메라 앞과 뒤, 스크린 안과 밖의 경계가 급격히 무너져 내린다. 신수원 감독 특유의 비린내 나는 날 것의 폭력은 거리를 지우고 포장을 벗겨버린다. 그것은 현실의 은유라기보다는 직접적인 직유이고 관객들은 스크린 위의 폭력을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듯이 반응한다. 지완의 친구인 조연출은 “맞으니까 좋냐? 이 매저키스트, 또라이야. 어디가 그렇게 가고 싶었냐.”라고 웃으며 말한다. 이 말은 관객들에게도 적용된다. 자학적인 폭력은 지완과 관객 모두에게 이상한 카타르시스의 순간을 만들어낸다. 신수원 감독은 <레인보우>를 만들면서 지완의 간절한 바람을 이루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내용은 지난한 실패의 과정만을 담는다. 이로써 ‘성취’와 ‘실패’는 구분되지 않고 서로 엉키게 된다. 근본 없음과 느닷없는 폭력은 신수원 감독의 이후 장르영화들뿐만 아니라 최근작인 <오마주>에서도 도드라지는 특징 중 하나이다. <오마주>에서는 여자들이 만든 창작물들은 빈번히 실종되며 연속성을 갖지 못하고, 여성 창작자들은 뿌리 없는 자기 욕망과 쓸모의 근거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근본 없음은 자유로움을 줄 수도 있지만 또한 때때로 생존을 힘들게 만들며 심지어는 자기 존재에 대한 파괴적인 상황을 야기할 수도 있다. <오마주>는 지완(이정은)과 친구인 프로듀서 그리고 남편과 아들로 구성된 가족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레인보우>의 자전적 세계관을 고스란히 가져온다. 지완은 이제 조금 더 나이가 들고 세 번째 영화 ‘유령인간’을 개봉했다. 흥행은 너무나 어렵고 그래서 첫 번째 영화만큼 그 이후의 영화 만들기도 녹록치 않다. 여전히 ‘성취’와 ‘실패’가 얽혀있다. <레인보우>에서 시나리오가 잘 써지지 않는 가운데 뜬금없이 개미의 환영을 마주했던 것처럼 <오마주>에서도 지완은 갑자기 ‘되’와 ‘돼’가 헷갈리며 시나리오의 진도를 뽑아내지 못한다. 장편데뷔가 <레인보우>의 미션이었다면, 이제는 영화계에서 생존하기가 목표가 된다. <레인보우>에서처럼 남편과 아들은 지완의 창작 작업을 막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전폭적으로 이해해 주지도 않는다. 그는 외롭고 막막하다. 여전히 기댈 곳이 없는 상황, ‘근본 없음’이 그의 뿌리가 된다. 오랜 동반자였던 프로듀서도 영화를 그만둬야겠다고 하는 상황에서 지완은 과연 영화를 계속 만들 수 있을까? 만들어야 할 동기는 무엇일까? 지완이 따라갈 수 있을 만한 선례가 있는가? 심란한 상황에서 지완은 영화박물관에서 1960년대 활동하던 여성 감독 홍재원의 새로 발굴된 영화 프린트에서 사운드가 소실된 장면의 복원을 위한 연출을 의뢰받는다. 지완은 사운드 복원을 넘어서 아예 사라진 장면의 프린트를 찾아내기 위해 홍재원 감독의 주변인들을 찾아다니며 그의 흔적을 쫒는다. 그러는 동안 지완이 사는 아파트의 주차장에서 자살한 여자의 사건을 알게 되고 한참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는 옆집 여자가 실종되었을 수도 있다는 의심을 품게 된다. <오마주>에 등장하는 1950-60년대 영화계에서 활약한 여성 삼인방 홍재원과 박남옥 감독 그리고 이영희 편집감독의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다. < 여판사 >는 한국영화사에서 두 번째 여성감독으로 기록된 홍은원의 데뷔작이다. 실제로 신수원 감독은 <레인보우> 개봉 이후 MBC에서 창사기획 특집으로 <여자만세>(2011)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박남옥 감독과 홍은원 감독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한다. 홍은원 감독은 약 12년 간 스크립터, 편집, 조감독으로 일하다 1962년 <여판사>로 데뷔를 하게 된다. 이 영화의 프린트는 유실되었다가 2015년 발굴되어 복원되었다. 하지만 일부 장면의 사운드가 온전치 않은 상태였다. 한국 최초의 여성 판사였지만 1961년 서른셋의 나이에 타살인지 사고인지 알 수 없는 이유로 갑자기 사망한 황윤석의 실제 이야기를 소재로 삼은 영화였다. 이 영화는 “홍일점 여판사에 홍일점 여감독”이라는 광고카피를 달고 있었던 만큼, 1960년대 각자의 직군에서 거의 유일했던 여성 전문직업인들을 연결짓는다. 여성 감독들에게는 끊임없이 텍스트 안과 밖을 연결 지으려는 시도가 스스로도 그리고 타인들에게서도 보인다. 이것은 때로 창조적 자양분이 되기도 하고 또 때로는 독이 되기도 한다. 박남옥 감독이 < 미망인 >(1955)으로 장편데뷔한 후 차기작을 연출하지 못했던 것과 달리, 홍은원 감독은 세편의 장편영화를 만든다. 그러나 나이 들어서도 계속 영화를 연출하고자 했던 바람은 이어지지 못했다. 홍은원 감독은 <여판사> 연출을 맡으며 실제 사건이나 원작 시나리오와는 다른 결말을 원했고 수정해 연출했다고 한다. “오랜 세월을 두고 불행했던 이 나라 여성들”을 위해 법관으로서 일하겠다는 굳건한 사명감을 갖고 판사가 된 진숙(문정숙)은 시댁과 남편의 괴롭힘 속에서 결국 가부장제 체제에 굴복하고 판사를 그만두고 희생적인 며느리 역할을 맡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시어머니가 살인죄를 뒤집어쓰자 변호사로 변신해 법정에서 변론하며 공적 역할과 사적 역할을 협상하고 생존을 꾀한다. 시어머니를 비롯해 남편과 시댁은 여성이 판사로 일하는 것은 쓸모없는 일일 뿐 아니라 심지어 가족의 해체를 촉진하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대의명분이 중요한 진숙은 사적영역에서 가부장제가 요구하는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의 욕망과 존재 자체를 부정 당한다. 진숙은 자신을 억압했던 바로 그 시어머니를 살리고 가족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여성들을 도우려 했던 대의를 실천하기 위해, 변론을 통해 공적영역과 사적영역 모두에서의 자신의 가치를 재증명한다. 여성이 되고, 여성으로서 생존하는 것은 가부장제가 구분지어 놓은 경계를 허무는 일이 된다. 그런 면에서 법정의 변론 장면에서 진숙의 설명적인 보이스오버와 사건을 재구성하는 플래시백으로 명징하게 재현되는 것 그리고 그중 일부 사운드 유실된 것은 너무나 상징적이다. 홍은원 감독은 당시 여성들에게 일단 실종되거나 죽지 않고 ‘생존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수정한 시나리오의 결말에서 일단 실제 사건과 달리 진숙을 살린다. 그리고 생존 그 자체에서 그치지 않고 설사 일부 타협이 있을지라도 법관으로서의 공적영역을 되찾아준다. 그래서 <오마주>의 지완도 실종된 프린트 일부를 찾는 것과 옆집 여자의 생존을 확인하는 것이 모두 중요하다. 지완은 이제는 폐허가 된 오래된 단관 영화관에 버려진 밀짚모자에서 우연히 유실된 프린트를 찾는다. 밀짚모자의 챙을 세우기 위해 사용된 필름 조각들은 설사 영화로서 기능하지 못했을 때조차도 또 다른 사용가치를 부여받고 있었다. 지완은 왜 그렇게 유실된 장면을 찾으려했던 것일까? 실종으로 뚝뚝 끊기며 연결되지 않는 서사는 어떤 폭력을 야기하는가? 여성들이 자신의 경력에서 일이 잘 진척되지 않아 자기회의에 빠질 때 성별은 징크스가 되기도 한다. 성차별적인 사회에서 여자라는 성별이 혹시 일에 방해가 된 것은 아닐까하는 의심. 그 의심은 때때로 사실에 근거한다. 그럴 때 역사 속 선례는 그 징크스를 깨는 모티브가 될 수 있다. 홍은원 감독의 경우 영화 3편을 연출하고 더 이상 영화를 만들지 못하면서 나이 들 때까지 평생 영화를 만들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은 지키지 못했지만, 데뷔작 영화 한편을 만들고 더 이상 영화를 연출하지 못했던 박남옥 감독보다는 나아간 것이다. 홍은원 감독은 박남옥 감독, 최은희 배우/감독/제작자 같은 선배, 동료들과 함께 이것을 만들어 간 것이다. 군데군데 비어있고 희소하고 유실되어서 소재와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 같은 여성 영화사에서 여성영화인들은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회의감과 근본 없음에 빠진다. 그럼에도 그 희귀한 조각들을 우연히 발견했을 때, 특히 여전히 모자의 틀을 잡아주는 심으로 여전히 사용가치를 발휘하고 있을 때 그것은 징크스인 동시에 영화에 대한 열정을 멈추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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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e or Less - <모어>(2021), 2022.12.09. 20. 이름을 지우고 살아남기 - <안나-감독판>(2022), 2023.01.09. 21. 우리에겐 따뜻한 국물과 유머가 필요하다 - <수프와 이데올로기>(2021), 2023.02.07. 22. 아직 끝나지 않은 - <미망인>(1955), 2023.03.10.
<스왈로우> ≠ 스릴러 영화? 의외로, 사람들이 가장 공포를 느끼는 것은 살이 찢기고 피가 튀는 이미지가 아니라, 내 몸속에 차갑고 날카로운 금속이 있어 어딘가에서 피가 새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일지도 모른다. 매년 여름, 호러 영화만 모아 상영하는 CGV의 ‘CAV(Cinema Adult Vacation) 기획전’에서 주목을 받은 작품은 카를로 미라벨라 데이비스 감독의 <스왈로우>였다. 그러나 막상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은 영화의 비주얼적인 공포가 부족하다며 기대 이하라는 평가를 내렸다. 심지어는, 후반부로 갈수록 몰입도가 떨어진다며, 긴장감을 스릴러의 핵심 요소라고 판단한 관객들은 <스왈로우>를 스릴러 영화로 인정하지 않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스릴러 영화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스왈로우>는 ‘싸이코 스릴러(psycho thriller)’인 셈이다. 나를 박제한 송곳을 삼켜 버리다 모든 공포의 요소는 헌터의 히스테릭한 정신 상태에서 시작된다. 헌터는 부잣집 남편과 결혼한 이후로는 호화로운 집에만 박혀 있는다. 남편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 예쁘게 화장도 하고, 인형 같은 옷을 입고, 새로운 집에 커튼은 어떤 것을 놓아야 할지 고민을 하지만 남편은 헌터의 모습에 시큰둥한 모습을 보이고 자신의 옷을 잘못 관리해 망가트린 것에 욱해 소리를 지르는 모습도 보인다. 무엇을 해도 자신은 이 집의 부속품에 불과한 느낌이 들고, 자신은 곧 아무것도 아니라는 무력감에 빠지게 된다. 그에겐 이 모든 것을 하소연할 가족도 없다. 헌터가 결혼을 할 때도, 아이를 가졌을 때도 그 큰 경사를 자신의 가족과 나누는 장면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헌터의 가정 환경에 대한 단서는 시어머니와의 대화에서 대충 알 수가 있다. 자신을 따뜻하게 대하다가도, 마치 자신의 아들을 만난 뒤로 팔자가 싹 폈다는 듯 흘리는 말은 헌터를 불안하게 한다. 모든 게 자연스럽고 완벽한 배경에 헌터만 송곳에 콕 박혀 박제가 된 것처럼, 혼자 맞지 않는 역할을 혼자 감내하는 헌터의 모습을 보며 많은 여성들이 공감하고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아이가 생겼다. 남편은 진심으로 기뻐하며 부모님께 전화를 돌린다. 자신을 정말로 사랑한다는 남편의 품에 안긴 헌터는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헌터는 이제 진정한 가족 취급을 받기 시작한다. 온 가족이 새 아기를 돌보는 건지, 아니면 그의 뱃속에 있는 아기를 돌보는 건지 모를 정도로 과분한 보호에, 헌터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다. 어느 날 우연히 본 태교 비디오에서 본 내용대로, 헌터는 결심한다. 그동안 하지 않던 것을 시도해보기로. 그렇게 헌터는 위험한 사물들을 삼키기를 시작했다. 내 아’만’ 잘 낳아도 자신들의 아기가 잘 있는지 초음파 검사를 통해 확인하려던 시댁에서는 새 아기의 뱃속에 얌전히 있어야 할 작은 생명체뿐만 아니라 어딘지 익숙하고 위험하게 생긴 하얀 이미지들이 가득하다는 걸 알고 기겁을 한다. 시부모님들이 생각해낸 결론은 딱 한 가지였다. “아이는 무사해야 해”. 그들은 정신과 상담을 다닐 것, 그리고 자신을 보호하는 도우미 ‘루아이’와 함께 집에 있을 것을 설득하기 위해 헌터를 어르고 달랜다. 집에서 혼자였던 헌터가 어느덧 모든 사람들의 관심과 감시를 받고 빠져나갈 곳은 잃는 것은 <악마의 씨>에서 악마를 잉태한 뒤 살이 무너지게 마를 정도로 이웃들의 감시를 받게 되는 로즈마리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이 역시 결혼을 했거나, 미래에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여성들이 보았을 때 공포심을 자극하는 요소가 된다. 그렇지만 숨 막힐 정도로 감시가 지속되면, 어떤 사람이든 결국 일을 내고 만다. 몰래 쇠붙이 따위를 삼키려다 응급실까지 가게 된 헌터를 더 이상 되돌릴 수 없겠다고 판단한 가족은 결국 그를 정신병원에 보내고자 결정한다. 보통 여기까지 왔을 때 대다수의 관객들은 이미 보았던 수많은 여성과 정신병원이 관련된 영화들을 떠올리며 헌터가 무력하게 희생되고, 결국 아이를 낳고 버려지는 결말에 이르게 될 것을 예상한다. 그러나 바로 이 시점에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캐릭터 ‘루아이’를 개입시켜 헌터의 조력자로 만들며, <스왈로우>는 그동안 여성의 고통을 포착하는데 집중한 소위 ‘불행 포르노’를 재생산하지 않았다. 그렇게 영화는 새로운 국면에 맞이하게 된다. 과거가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란다 영화는 헌터가 생부를 찾아가는 에피소드를 통해 성폭행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선으로 이야기를 전달한다. 헌터의 출생은 평생에 걸쳐 그를 괴롭혀온 문제였다. 헌터의 문제는 정신과 상담을 통해 드러나게 되지만, 그는 ‘이미 해결된 문제’라며 언급을 망설인다. 그러나 직접 마주하지 않고는 트라우마를 해결할 수 없다. 정신병원으로 이송되기 전에 저택을 도망친 헌터가 마주한 현실은 자신의 출생 배경이 가족에게 부담이 되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가족에게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계에 내몰린 그가 선택한 것은 자신의 인생을 망가트려 놓은 생부를 찾아가는 것이다. 드디어 자신의 트라우마와 대면하게 된 헌터는 날이 서 있으면서도 두려움에 떤다. 마치 금방이라도 생부가 분노를 터트려 헌터를 해칠 것만 같은 이 순간이야말로 영화의 진정한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또다시 영화는 새로운 길을 택해 주인공에게 구원을 주고자 한다. 생부가 자신의 행동을 깊이 뉘우치고 있으며, 자신은 죗값을 치렀고,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헌터의 탄생은 저주가 아니었음을 말한 것이다. 성폭행으로 인해 태어난 딸인 헌터에게 어떻게 태어났든 자신은 중요한 존재라는 것은 그에게 가장 필요했던 말이다. 이 순간 헌터는 비로소 새로운 인생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 ‘삼키세요. 그러면 모두 끝나요.’ 영화가 이야기를 마무리하기 위해 임신 중절이라는 소재를 택한 것은 아주 전략적인 선택이다. 헌터가 임신 중절을 선택하고 그것을 진행하는 일련의 과정은 아주 간략하고 담담하게 그려진다. 게다가 그저 알약 몇 알을 ‘삼키기만’ 하면 되는 방식까지도 영화의 주제가 헌터를 비롯한 여성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그간 많은 영화들이 여성의 삶과 임신 중절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지만 타협적이거나 지나치게 강한 어조로만 이야기해 다수를 설득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스왈로우>는 여성의 생명에 있어 그 주인은 여성 자신이라는 주제를 스릴러라는 장르 영화의 문법을 빌려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데 성공했다. 영화는 크레딧이 올라가는 긴 시간 동안 헌터가 머물고 사라진 공중 화장실을 비춘다. 아니, 그곳을 들어왔다 나가는 여성들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본다. 나이와 생김새가 다양한 여성들이 헌터가 낙태를 했던 화장실 칸에 들어가고, 손을 씻고, 립스틱을 고치고 나간다. 그들은 다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같은 장소를 수없이 오가는 여성들을 보며 비로소 헌터가 겪었던 그 긴 모험은 비단 헌터만의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화장실 칸막이에서 쓴 눈물을 삼키고 나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치 헌터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친 얼굴로 화장실을 나가 군중 틈으로 사라졌던 것처럼, 모든 여성들이 그렇게 다시 일상을 영위한다. 헌터는 모든 여성을 대변하는 캐릭터인 것이다. <스왈로우> = 스릴러 영화! 이렇게 <스왈로우>가 스릴러 영화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영화는 여성이 은연중에 느끼고 있던, 그렇지만 표면적으로는 꺼내지 못했던 공포들을 민감하게 긁어내면서 불안감을 일으킨다. 여성의 일상 속 공포를 소재 삼아 스릴러라는 영화 장르에 맞게 스토리를 직조했다는 점에서 이권 감독의 <도어락>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여성 주인공의 트라우마를 다루고, 그것을 주인공이 극복한다는 것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제럴드의 게임>과 비슷한 결을 보이기도 한다. <제럴드의 게임>이 공개되었을 당시에도 성별에 따른 관객 평점 차이가 상당했던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는 단순한 취향의 문제를 넘어서, 관객이 새로이 제작되고 있는 서사에 공감하는지의 차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스왈로우>가 스릴러 영화가 아님을 단정 짓던 관객들에게 말을 전하고 싶다. 이제 스릴러뿐만 아니라 모든 장르의 규칙이 새롭게 변화하고 있다고.
데뷔와 함께 세 편에 출연 황정순은 해방 전 불과 열다섯 나이에 <그대와 나>(허영, 1941)의 단역으로 스크린에 처음 얼굴을 비췄다. 이향이나 이민자와 마찬가지로 어쩌다 불려나온 반짝 출연이었다. 그러나 배우로서 첫 발을 내디딘 것은 1949년 봄 우리나라 최초의 16밀리 천연색 극영화 <여성일기>(홍성기)부터였다. 친구의 오빠(송재로)를 사랑했으나 그에게 본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속세를 떠나 사회사업에 헌신하는 한국보육원 원장 황온순의 반생기이다. 그의 뒷얘기는 1.4후퇴 때 미공군 헤스 대령의 도움을 받아 전쟁고아들을 제주도로 실어 날은 록 허드슨 주연의 영화 <전송가>(1957)로 이어지지만, 황정순은 자신의 이름과 비슷한 황온순(주증녀)이 아닌 그의 친구로 나왔다. 이런 그녀에게 주연의 기회를 준 것은 장황연 감독의 <청춘행로>(1949)였다. 시댁의 학대에 시달리면서도 참고 견뎌내 끝내 행복을 얻는 며느리의 이야기로, 주선태(시아버지 역)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여성일기>에 나온 지 4개월 만이었다. 다음에는 최인규 감독의 흑산도 올 로케이션 영화 <파시(波市)>(1949)가 기다렸다. 어촌의 사내들이 즐겨 찾는 선술집 작부 김홍도 역이었다. 후배 작부(최지애)를 친동생처럼 여기면서도 돈에 팔려 다른 파시로 옮겨 가야 하는 조연급, <청춘행로>와는 전혀 다른 캐릭터였다. [사진] <청춘행로>의 한 장면 생필름을 구하기 어려워 제작비가 뛰어 오르고 여름부터 퍼진 뇌염 때문에 극장 문까지 닫히던 시기였다. 한국영화 초창기의 변사이자 배우, 해방 후 무성영화 <검사와 여선생>(1948)의 원작자이기도 한 김조성(金肇聲, 예명 춘광)도 이해 6월에 뇌염으로 사망했다. 하지만 황정순은 나라의 재난 속에서도 세 편이나 출연하는 행운을 얻었다. 30대 중반부터 시작된 노역의 멍에 하지만 불의에 닥친 6.25전란으로 그녀의 활동은 5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재개되었다. <왕자호동과 낙랑공주>(김소동, 1956)을 비롯한 <숙영낭자전>(신현호, 1956), <사랑>(이강천, 1957), <김삿갓>(이만흥, 1957), <봄은 다시 오려나>(이만흥, 1958), <촌색씨>(박영환, 1958), <어느 여대생의 고백>(신상옥, 1958), <인생차압>(유현목, 1958), <청춘극장>(홍성기, 1959) <육체의 길>(조긍하, 1959), <대원군과 민비>(유진식, 1959) 등 20여편이 그 산물이다. 이 시기에 <사랑>으로 제1회 한국평론가협회상 최우수여우상을 받았다. 영화계에 들어와 처음 받은 상이었다. 잇따라 <인생차압>의 이중생(김승호) 부인 우씨 역으로 제2회 부일영화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사진] 황정순이 부일영화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인생차압>의 한 장면, 중앙이 배우 최남현, 우편이 유계선 <귀거래(歸去來)>(이용민)와 <박서방>(강대진)으로 시작된 1960년대는 그녀의 전성기이기도 했다. <지평선>(정창화, 1960), <주마등>(이만희, 1961), <마부>(강대진, 1961), <삼등과장>(이봉래, 1961), <서울의 지붕밑>(이형표, 1962), <한 많은 미아리고개>(엄심호, 1962), <한석봉>(이만희, 1963), <굴비>(김수용, 1963), <외아들>(정진우, 1963), <혈맥>(김수용, 1963), <성난 능금>(김묵, 1963), <잉여인간>(유현목, 1964), <육체의 고백>(조긍하, 1964), <대석굴암>(홍성기, 1964), <삭발의 모정>(강대진, 1965), <이 땅에도 저 별빛을>(김기덕, 1965), <갯마을>(김수용, 1965), <친정어머니>(김기덕, 1966), <팔도강산>(배석인, 1967), <산불>(김수용, 1967), <대원군>(신상옥, 1968), <화산댁>(장일호, 1968), <저 언덕을 넘어서>(강찬우, 1968), <부인행차>(문여송, 1969) 등 120여편이라는 양이나 질적으로 그러하다. 황정순은 이미 서른세 살 때부터 머리에 흰 칠을 하고 얼굴에 주름살을 그리며 카메라 앞에 섰다. 그보다 한 살 위인 박암의 장모 역(<인생차압>)이 그 시작이었다. 이렇게 출발한 그녀의 노역 행진은 특히 <마부>, <굴비>, <혈맥>, <갯마을>, <육체의 고백>, <산불> 등에서 빛을 내며 자신의 대표작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사진] <외아들>에 출연한 황정순, 왼편 아역 배우는 박종화(사진제공: 김종원) <마부>의 경우는 식모(수원댁)에서 마부(김승호)의 재취로, <굴비>에서는 분가한 자식들의 냉대에도 보듬어 안는 농사꾼의 아내로, <외아들>에서는 자식을 위해 온갖 역경을 견디며 살아가는 어촌 어머니로, <혈맥>에서는 과년한 딸을 술집에 보내려 ‘신고산타령’을 가르치는 노점의 주모로, <갯마을>에서는 재가한 며느리를 따뜻하게 맞아들이는 과부 시어머니로, <잉여인간>에서는 무직인 남편을 뒷바라지하며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 마른 동태에 바람을 불어넣는 억척스런 아내로, <육체의 고백>에서는 환락가에 군림하는 나이트클럽의 마담으로, <산불>에서는 마을에 숨어든 공비(신영균)와 통정하는 바람난 과부(도금봉)의 어머니로, <삭발의 모정>에서는 휴가 온 아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이기 위해 머리를 잘라 파는 가난한 군인 어머니로, <화산댁>에서는 처가살이하는 아들에게 냉대 받으면서도 사업 빚을 갚아주는 농촌 어머니로 각기 나타난다. [사진] <굴비>의 한 장면, 중앙이 배우 이빈화, 우편이 김승호(사진제공: 김종원) 초기에는 <촌색씨>, <자식복 돈복>(윤대룡, 1959), <모상>(박상호, 1960) 등의 경우처럼 연극 연기가 몸에 밴 오버액션의 경향이 있었지만, 60년대 초반 <혈맥>, <잉여인간> 등 일련의 문예영화에 출연하면서 한층 여과된 디테일 연기로 다듬어졌다. 일찍이 황정순을 <월급봉투>, <산불> 등 여러 영화에 출연시켜 그의 필모그래피를 빛나게 한 김수용 감독의 말처럼 ‘연기인에게 젊은 역과 노역의 구별이 있을 수 없지만 젊은 날 무대의 여왕이 은막의 노파로 전향’ (『주부생활』, 1969년 9월호 부록, 「영화와 스타 스토리」) 한 것은 의도와는 다른 운명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