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식스나인(CH69)
- 감독
- 이정국
- 제작년도
- 1996
- 출연
- 신현준, 홍경인, 최선미, 손종호, 이태열, 박근형, 박효정, 송금식, 강미정, 허기호, 권용운, 송광수, 주종휘, 이정학, 배현주, 최민우, 유순일, 김민형, 신강호, 전정희, 장현정, 김광섭, 권진원, 구승철, 고현창
현재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서 활약하고 있는 이용관 의 영화이력이 비평가의 길에서 시작되었음을 아는 젊은 세대는 많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90년대 한국 영화비평사를 재구성하고자 할 때 우리는 이용관이라는 이름이 정확히 교통의 요충지와도 같은 위치에 놓여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다시 말해 그의 활동의 텍스트에 해당하는 비평들과 그 컨텍스트에 해당하는 저널 모두가 하나의 시대가 접히고 또 다른 시대가 펼쳐질 수 있게 해준 경첩과도 같은 기능을 했다는 뜻이다. 이용관이 비평가로서 지낸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주목 받아 마땅한 이유도 바로 그와 같은 역사성에 힘입어서다. 1980년대에서 90년대 중반까지의 한국 영화비평사는 50년대 이래로 일관되게 견지되어온 리얼리즘론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물론 지금 우리는 당시의 리얼리즘 영화비평의 존립 근거가 오직 억압적 정치권력에 대한 저항정신이었을 뿐, 그 논리적 정합성의 측면에서는 상당히 느슨했음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주류 상업영화, 구체적으로는 할리우드 영화의 장르 관습과 스타일에 대한 반감과 폄하, 유럽 예술영화 전통에 대한 호감과 지지를 골간으로 하는 50년대 이래의 리얼리즘 영화론은 90년대 중반 포스트모더니즘적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강제되기 전까지는 비교적 흔들림 없이 유지되고 있었다. 다만 90년대 한국 영화비평사가 이전 시기와 달랐던 점은 기존 리얼리즘 비평담론의 틀거리 안에 있으면서도 좀더 정교한 비평적 세공의 노력을 선보였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그것은 인상 비평에서 형식 비평으로의 전환이었다. 그리고 이용관 은 그러한 노력의 선두에 서 있었다. 이용관 의 평론작업은 계간지 『영화언어』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1989년 봄에 창간된 이 잡지의 편집진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전양준 , 정성일 , 정재형 , 조재홍 , 강한섭 , 김소영 , 박평식 , 변재란 , 신강호 , 양윤모 , 이충직 , 이정하 , 이효인 , 김영진 등, 가히 이후 한국영화계 주역들의 모임이었다. 그 속에서 이용관은 영화 텍스트의 스타일 분석에 입각한 작가주의 비평으로서 좀더 고유한 색채를 부각시켰다. 그가 『영화언어』에 처음 기고했던 글 「< 바보선언 >에서 드러나는 대안적 측면」은 그의 이러한 비평적 방향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상당히 긴 이 글에서 이장호를 한국영화에 대안을 제시해줄 수 있는 작가로 간주하면서 그 근거로서 <바보선언>의 장면 나누기, 서술구조, 장면화, 촬영법, 편집 등을 두루 검토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그는 특히 데이비드 보드웰(David Bordwell)의 분석방법론을 참조했다. 하지만 보드웰의 논의가 영화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접근을 차단하면서 온전히 텍스트의 형식적 차원이 관객과 어떠한 인지심리학적 관계를 형성하는가에 몰두했던 데 반해, 이용관의 비평적 목표는 그러한 과정을 거쳐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미학을 정착시키고자 함”이었다는 점에서 은연중 민족주의적 기미를 띠고 있었다. 아마도 그러한 경향성은 80년대를 거쳐온 세대가 보유할 수밖에 없는 시대정신의 한 단면이었을 것이다. 이후 그는 스타일 분석에 도움이 될 많은 영화이론서들을 번역하는 한편, 비슷한 방식으로 배창호 , 장선우 의 작가성에 주목했으며 임권택 의 < 장군의 아들 >과 장길수 의 <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의 형식적 타협을 비판했다. 이처럼 영화를 문학처럼 읽어내는 게 아니라 영화로서 보아내는 데 충실했던 그의 비평은 당대의 비평가 그룹에게, 또 비평가 지망생들에게 의미 있는 영향을 끼쳤다. 90년대로 접어들어 이념적 지향이 모호해진 상황에서, 영화비평이 주제비평으로 흐르는 것을 경계하면서 텍스트의 형식적 의미작용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 것은 상당 부분 이용관 의 공이었다. 그렇게 『영화언어』와 이용관은 운동 진영 출신 비평가들과 시네필 출신 비평가들에게 공존의 토대를 만들어 주었다. 한국 영화비평사에서 그토록 간명하게 자기 시대를 압축했던 평론가를 나는 이용관 외에는 알지 못한다.
< 장군의 수염 >은 당대 문학평론가로 유명하던 이어령의 첫 동명 소설을 역시 196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인 김승옥이 각색했다. 이 영화는 신문사 사진기자인 한 남자가 죽자 두 형사가 주변 인물들을 통해 그 의문의 죽음을 추적하는 서사 구조로 전개된다. 산동네 하숙집에 살던 주인공 철훈( 신성일 )의 죽음은 일단 연탄가스 중독으로 보이지만 타살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형사( 김승호 )와 젊은 형사(김승옥)는 하숙집 주인( 정애란 )과 딸( 여운계 ), 소설가( 김동원 ), 한때 철훈과 동거했던 댄서 출신의 신혜( 윤정희 ), 철훈의 어머니( 한은진 )와 누나( 김신재 ), 동료 기자( 백일섭 ) 등 주위 사람들을 탐문하면서 그들에게서 각각 철훈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 장군의 수염 >은 마치 오손 웰스의 < 시민 케인 >을 연상시키는 미스터리 구성을 통해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라는 관념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 영화 도입부에 주인공의 죽음이 먼저 제시되고, 주변 사람들의 철훈의 과거에 대한 증언들이 그 죽음의 원인을 관객들로 하여금 조금씩 추측하게 하는 것이다. 좌익인 형이 가정을 파괴하면서 몰락한 지주의 아들이란 멍에와 어릴 적 인두 자국 흉터를 안고 어둡게 자란 철훈은 획일화되어가는 현대사회와 삶의 부조리에 대해 적응하지 못하고 아집과 망상에 사로잡혀 살다가 결국 죽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 장군의 수염 >이란 제목은 철훈이 끝내 완성하지 못한 소설의 제목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는 철훈이 중견 소설가( 김동원 )를 만나 자신의 소설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나타난다. 이 만화는 정치권력의 타락한 신경증적 놀이를 보여준다. 조국을 해방시킨 위대한 장군을 추종하는 국민은 모두 장군처럼 수염을 기르지만 주인공만은 이에 동조하지 않고 외톨이가 된다. 철훈은 자신의 소설 주인공처럼 모두가 ‘장군의 수염’을 기르는 사회에서 그 수염을 기르기를 거부하는 아웃사이더이자 현실부적응자인 것이다. 이러한 줄거리는 1960년대 군사정권의 정통성 문제를 암암리에 비판하고 독재 문제를 경계 내지 경고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 애니메이션은 신동우 화백의 형인 신동헌 의 작품으로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만화영화 < 홍길동 >(1967)과 < 호피와 차돌바위 >(1967) 등을 감독한 애니메이션의 아버지다. 철훈의 욕망과 일그러진 모습은 그의 일상과 의식을 통해 표출된다. 시대와 사회의 요구에 적응하지 못하는 그의 불안과 고독은 너무 곧고 민감한 성격 때문인지 모른다. 가령 미국에서 돌아온 정박사( 곽규석 )와 인터뷰하는 장면은 철훈의 시니컬한 면모를 보여준다. 계속 영어를 섞어가며 한국을 비하하는 말을 하는 정박사에게 비위가 상한 철훈은 “존? 메리? 웰 아 유” 하며 아이들 이름을 부르는 정박사 부인에게 “전 그만 이렇게 귀여운 애들을 부르시는 걸 개를 부르는 줄 착각을 했어요!”라며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철훈은 신혜의 발톱 깎는 소리에도 “사람들은 연필을 깎듯이 발톱을 깎고 있단 말이야! 난 그 소리가 아프게만 느껴져!”라고 말할 정도로 예민하다. 철훈의 낭만적 감성에 반했던 신혜도 결국은 그런 그에게 지쳐서 곁을 떠나게 된다. 철훈과 신혜의 고해놀이는 친구를 죽게 만든 전쟁터, 좌익이었던 형의 체포와 지주였던 아버지의 몰락 등 철훈의 아픈 가족사와 기억들을 보여준다. 신혜도 1·4 후퇴 때 순결을 잃는 치욕, 아버지 나목사( 전창근 )가 신앙 때문에 더 큰 고통과 상처를 입는 이야기 등 두 사람의 자아와 현실의 초상 이면에 암울한 시대를 살 수밖에 없었던 고통이 드러난다. 철훈은 6·25전쟁 이후 실존적 불안에 사로잡혀 있었고, 4·19 혁명으로 체제의 억압과 불의에 저항하는 개인을 대변한다. 결국 그는 실패한 혁명으로부터 상처와 환멸, 자괴감을 느끼는 자폐적 공간에 자신을 가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오랜만에 집으로 들어가는 김승호 의 모습에 깔리는 내레이션은 이 영화의 주제를 내포한다. “왜 나는 이렇게 자신을 잃고 있을까? 민완형사! 도깨비 잡는 형사! 사람들은 날 그렇게 불렀다. 그런데……. 갑자기 뛰어든 이 하찮은 사건이 나를 무너뜨리고 있다. 나는 범인을 보았다. 그는 수갑을 채울 수도 없고 법정의 피고석에 앉힐 수도 없다. 고독이라는 놈!” < 장군의 수염 >은 주제 의식의 탐구와 영화 형식적인 면에서 이만희 감독의 < 만추 >, 김수용 감독의 < 안개 > 등과 함께 한국 모더니즘 영화의 대표작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 장군의 수염 >은 당시 영화로는 드물게 서술 중심에서 벗어나 치밀한 미장센과 편집, 모노크롬과 애니메이션의 활용 등 영화적 표현과 혼란스러운 시대에 대한 비판적 묘사가 돋보였다. 그리고 어둡고 난해해서 흥행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10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기도 했고, 제7회 대종상(1968)에서 각본상과 제작상, 1969년 제5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성구 감독은 < 젊은 표정 >(1960)으로 데뷔 이후 < 길 >(1978)까지 49편의 영화를 연출했다. 그 가운데 < 장군의 수염 >을 비롯해서 < 일월 >(1967), < 메밀꽃 필 무렵 >(1968), < 지하실의 7인 >(1969) 등 주로 1960년 후반 작품들이 대표작이었고, 1978년 미국으로 이민 가면서 영화 활동을 중단했고 최근 작고했다. 이성구 감독의 아내는 김기영 감독의 < 하녀 >(1960)에서 삶을 냉소하는 듯 한 표정과 퇴폐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하녀 역할을 연기했던 이은심이다. 요즘 리메이크되고 있는 < 하녀 >에서 전도연 이 바로 이 역할을 맡아 연기한다고 하니 사뭇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