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nbinews]신입생 환영회
- 제작년도
- 2011
“(밀레니엄 세대가) 성인기에 이르는 과정은 지연되고 있을 뿐 아니라 극단적인 경제 구조 조정, 심대한 문화 변동, 깊은 사회 불평등 때문에 근원적으로 파괴되고 있다.” 1) 사회학자 제니퍼 M. 실바는 미국의 밀레니엄 세대 100명을 인터뷰를 통해 연구한 저서 『커밍 업 쇼트』에서 위와 같이 적고 있다. 물론 2010년대 미국의 청년들과 2020년대 한국의 청년들을 일대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리스크풀링(Risk-pooling)이라는 사회안전망의 축소,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 산업 노동계급의 쇠락, 급속한 문화 변동 2) 등 실바가 꼽은 문제점은 지금의 한국에도 충분히 적용 가능하다. 『커밍 업 쇼트』의 국내 서평들은 88만원 세대, N포세대, 흙수저, 헬조선 같은 단어들을 사용해가며 국내 청년의 상황을 책의 내용과 비교하고 있다. 미국의 청년들이 그러한 것처럼, 한국의 청년들 또한 독립, 취업, 결혼, 육아 등 전통적으로 성인기라 여겨지는 단계에 접근하는 것이 지연되고 있다. 이는 수준미달(Coming Up Short)의 개인들 때문이 아니라 수준미달의 사회와 제도 때문이라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분석이다. 더 나아가 실바는 성인기가 “극적으로 새롭게 상상되고” 있다며, 전통적인 성인기의 지표들 대신 다양한 방식으로 경험한 “고통의 치유를 성인 정체성의 기반” 3) 으로 삼고 있다고 주장한다. 홍다예 감독의 < 잠자리 구하기 >(2022)는 입시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은 불안에 관한 고백이다. 고3이었던 2014년 입시생활에 관한 다큐멘터리 < 시발 .>(2014)을 시작으로 <개새끼>(2016), <관종쓰레기>(2018) 등으로 이어지는 감독의 필모그래피의 연장선상에 놓인 작품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하나의 고백으로 시작한다. 감독은 고3 시기 학교에서 마주한 잠자리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창밖으로 나가려 하지만 반복해서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히던 잠자리는 결국 떨어져 죽었다. 감독은 자살을 위해 찾은 한강 다리 위에서 그 잠자리를 떠올렸다고 고백한다. 대학은 지긋지긋한 입시생활의 탈출구로 여겨짐과 동시에 학생들을 구속하는 유리벽이기도 하다. <잠자리 구하기>는 “대학에 간다는 것”의 의미를 끊임없이 되새긴다. 대학에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며, ‘어른’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감독과 친구들은 반복되는 실패와 좌절을 경험한다.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하고, 재수생활을 하고,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음에도 또다시 좌절을 경험한다. 대학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이야기하던 말들은 허상이었음이 드러난다. 대학에 간다는 것은 성장이 아니라 새로운 불안의 시작임을 깨닫는다. 자신을 규명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학생들은 성적과 대학의 이름으로 자신을 정의하기 시작한다. 각자의 상황을 토로하는 친구들과의 대화는 절망과 불안을 토해낼 뿐 아무런 논의도 서로에 대한 공감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잠자리 구하기> 속 친구들은 서로의 불안을 직관적으로 이해하지만, 그것을 서로 해소해줄 수 없다. <잠자리 구하기>는 < 공부의 나라 >(2015)와 같은 다큐멘터리처럼 입시 제도를 분석적으로 비판하는 영화가 아니다. 고3, 재수생, 대학 신입생, 20대 중반인 현재 등 다양한 시간대의 모습이 계속하여 교차되는 영화의 형식은 ‘입시’와 ‘대학생활’이라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지도 않다. 더 나아가, 이 영화는 그러한 불안을 떨쳐내고 마침내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는 성장담도 되지 못한다. 감독 자신은 이 영화를 “20대 청년의 인류학적 반(反)-성장 보고서” 4) 라 말하고 있다. “잘 지내지 못한다는 고등학교 친구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다.”라는 시놉시스가 무색하게, 이 영화는 결국 편지를 부치지 못했다는 고백을 포함하고 있다. 불안 속에 놓여 있는 감독은 친구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을 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다만 부치지 못한 편지를 이 영화로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때문에 이 영화는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촬영된 감정을 유일한 진실로서 제시한다. 홍다예 감독과 친구들이 입시 과정에서 어떠한 실패와 성공을 경험했는지는 그저 그들이 경험한 사실의 기록으로서 제시될 뿐이다. <잠자리 구하기>가 제시하는 기록은 입시라는 과정 속에서 경험한 사실들의 진술이 아니라, 8년이라는 시간 동안 누적된 감정들이다. 자기 파괴적이라 느껴질 정도로 날것의 감정들을 파헤치고 공개함으로써 자신의 반-성장을 고백한다. 이는 원하던 대학에 진학했음에도 여전히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는, 끝없이 성장기에 머무를 뿐 성인기에 도달할 수 없는 청년의 초상이기도 하다. 대학 진학이라는 지표는 여전히 강력한 성인기의 지표임과 동시에, 너무나도 추상적이라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장벽이다. 반-성장을 고백하는 또 한 편의 다큐멘터리가 있다. 푸른영상에서 제작한 이효진 감독의 < 가단빌라 >(2022)다. 이 영화 또한 감독 자신의 자살사고를 고백한다. 흑백 화면의 작은 공원에서 시작한 이 영화는 한 빌라의 문을 열고 들어가 빌라 꼭대기의 집으로 향하는 카메라의 이동에서 시작된다. 그곳은 이효진 감독이 26년을 살아온 공간이다. 이어지는 장면 속 내레이션은 14살 때 부모를 대신해 빚쟁이들의 전화를 받으며 자라왔고, 그렇게 10여 년간 이어진 불행 속에서 자살충동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감독은 불행 속에서 살아온 할머니 또한 자살을 생각했을지 궁금해 카메라를 들었다고 영화 속에서 밝히고 있다. 감독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하지만, <가단빌라> 속 대부분의 푸티지에서 감독의 목소리는 삭제되어 있다. 할머니나 어머니 등과 감독이 대화하는 장면에서 감독의 말은 사운드에서 지워진 채 자막으로만 처리되어 있다. 이 영화에서 감독은 카메라 뒤로 자신을 잔뜩 숨긴 채 가족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이효진 감독은 ‘손녀’이자 ‘딸’로서 할머니와 어머니 앞에 서 있지만, 목소리를 지움으로써 온전한 관찰자의 위치로 물러나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이효진 감독의 모습은 가끔씩 등장하는 내레이션으로, 흑백 화면의 영화 속 몇 안 되는 컬러 화면의 홈비디오 영상으로만 등장한다. <가단빌라>는 할머니를 비롯한 여성 가족구성원들의 일상을 관찰한다. 이 일상에는 부동산과 돈의 문제를 두고 격앙된 목소리로 싸우는 가족구성원들의 모습 또한 포함되어 있다. 내레이션이 아닌 이효진 감독의 목소리가 등장하는 몇 안 되는 순간 중 하나는 화가 난 할머니가 칼을 드는 장면이다. “할머니 칼 들었어”라는 감독의 말은 감독이 자신의 목소리를 삭제함으로써 결심한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배반하며, 자신에게 내포된 불안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가단빌라>는 가족이 왜 싸우는지, 어떤 역사를 가지고 살아왔는지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부동산과 돈의 문제가 전면화되는 다른 작품, 이를테면 마민지의 < 버블 패밀리 >(2016)와 같은 작품들이 IMF를 비롯한 국가적, 사회적 사건들을 끌어오고 뉴스화면 등을 차용하며 가족과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적극적으로 해설하는 것과 대비된다. 다만 관객들은 어렴풋이 그 문제들을 짐작할 수 있다. 대가족의 생계와 함께 육아와 가사노동까지 책임져야 했던 할머니의 과거, 딸의 기여를 무시하고 아들에게 먼저 이익을 물려주려는 할머니의 태도, 끊임없이 재산을 ‘날려먹음’에도 반성하지 않는 집안의 남성들. 한국 특유의 부동산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이 영화의 내부에서 맴돌고 있지만, 이효진 감독의 카메라는 그곳에 집중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집안의 남성들을 거의 담아내지 않는다. 종종 프레임 속에 들어오기는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할머니와 어머니의 말속에서 등장할 뿐이다. 이 영화는 집안을 말아먹고 감독에게 불안감을 심어준 가장 큰 이유가 되는 인물들을 담아내지 않는다. 오히려 감독 자신과 비슷한 위치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온 여성 가족구성원에게 주목한다. 마치 “이런 끔찍한 집안에서 살아남은 비결이 무엇인가요?”라며 묻는 것처럼. 영화의 제목인 ‘가단빌라’는 감독이 거의 평생을 살아온 집이다. 동시에 "집을 지어 성공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한다"는 할머니의 말처럼 자본주의적 성공의 지표이고, “삼촌이 말아먹을 수 있는” 투자가치를 지닌 상품이자, 욕설과 고성이 오가는 싸움터이다. 가단빌라라는 공간에 담긴 한 가족의 역사와 정동, 수준미달의 사회와 제도가 만들어낸 집이라는 전쟁터는 반-성장을 추동한다.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가단빌라의 평면도 위로 가족의 사진을 오버랩시키는 장면은 영화가 담아낸 반-성장의 근원을 갈무리하고 있다. <잠자리 구하기>와 <가단빌라>의 반-성장 서사는 그것을 기록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잠자리 구하기>의 마지막에서 홍다예 감독은 물에 빠진 잠자리를 나뭇가지로 건져 올려 구해낸다. <가단빌라>는 흑백의 이미지를 담아내는 카메라 뒤에 숨어 있던 감독이 다시금 목소리를 내고 푸른색 하늘을 담아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두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모종의 결심이 담겨 있다. 혹은 그 모든 것을 견디고 자신이 아직 버티고 있다는 증거로 각자의 영화를 제출해낸 것만 같다. 실바의 말을 다시금 빌리자면, 두 영화는 “과거로 돌아가 (정신적) 병리 현상의 숨겨진 원천을 찾고, 타인들과 의사소통하면서 겪은 고통의 이야기에 목소리를 부여하고, 해방되고 독립된 자아를 형상함으로써 과거를 극복” 5) 하는 것이다. 실바가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마크 피셔는 『커밍 업 쇼트』의 논의를 확장하는 글 [반-치료]에서 실바의 분석이 "치료 서사는 더 이상 제도에 의지해 개인을 뒷받침하고 보살필 수 없는 세계에서 의미를 부여해 주는 유일한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이며, “치료 서사의 확산은 의식 고양 운동이 야기한 분자 혁명을 억누르고 개인화한 한 방식” 6) 이라 덧붙이고 있다. 두 영화가 각각 보여주는 우정의 붕괴와 가족의 파괴는 한 개인과 한 가족의 실패라 치부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두 감독은 그럼에도 살아있고 그럼에도 살아가며 카메라를 들고 자신과 친구들, 가족들을 찍는다. 두 영화는 그 실패 속에 놓여 있는 개인(들)에 집중하고, 각 개인이 놓인 상황에 관한 분석보단 감정의 기록을 택함으로써, 그 이면에 있는 사회와 제도를 생각하게끔 한다. 실바는 “이들이 성인이 된 이야기는 여전히 전개 중이며 이들의 미래는 아직 다 쓰이지 않았다.” 7) 며 책을 마무리한다. <잠자리 구하기>와 <가단빌라>는 90년대에 태어났고 2010년대에 성인이 되었지만 2020년대까지 성인기를 지연시키고 있는 이들의 고통스러운 일기장이다. 이제 그 일기의 이면을 상상하고, 두 영화의 마지막이 내미는 손을 잡을 차례다. *** 1) 제니퍼 M. 실바 「커밍 업 쇼트」, 문현아, 박준규 옮김, 리시올, 2020, 32p. 2) 제니퍼 M. 실바, 같은 책, 38~38p. 3) 제니퍼 M. 실바, 같은 책, 33~35p. 4) 이우빈, "JeonjuIFF #2호 [인터뷰] 20대 청년의 반성장 보고서, '잠자리 구하기' 홍다예 감독", 씨네21, 2022, 출처: www.cine21.com/news/view/?mag_id=100062 . 5) 제니퍼 M. 실바, 위의 책, 50~51p. 6) 마크 피셔, "반-치료", 박진철 옮김. https://playtime.blog/2020/10/22/반-치료/ 7) 제니퍼 M. 실바, 위의 책, 284p.
본 게재글은, 17-19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한 한국영화박물관 교육 프로그램 ‘청소년을 위한 영화 글쓰기 키트’의 최종 과제입니다. 영화는 소설가 존 디디온의 한 문구로 시작한다. “캘리포니아의 쾌락주의를 논하는 자는 새크라멘토에서 크리스마스를 지내 봐야 한다.” 시작부터 이야기가 펼쳐질 곳이 얼마나 지루한 곳인지 알려주는 이 영화에는 모든 것을 지루해하는 여자애가 등장한다. 기찻길 옆 낡은 주택에서 엄마, 아빠, 오빠 그리고 오빠의 여자친구와 살고 있는 이 여자애의 이름은 ‘크리스틴’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관객은 이 여자애의 이름이 ‘크리스틴’이라는 것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 크리스틴이 자신을 ‘레이디 버드’라고 부를 것을 계속해서 강조하기 때문이다. 뮤지컬부 오디션에서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에 왜 인용부호가 붙였냐는 질문에 “제가 스스로에게 지어준 이름이거든요. 저에게 제가 준 거예요.”라고 말하는 ‘레이디 버드’의 모습은 무척 당차지만 그 뒤 이어지는 노래와 댄스는 조금 우스꽝스럽다. 그렇다. 레이디 버드는 사실 조금 우스꽝스럽다. 말과 행동은 왠지 과장되어 있고 튀는 행동만 골라서 하는 것 같다. 애초에 새 몸통에 자신의 얼굴을 붙인 포스터로 학생회장에 출마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고급 주택이 자신의 집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장면이나 수녀 선생님 차 뒤에 “방금 예수님과 결혼했어요.”라는 푯말을 붙이는 종류의 장면들을 보다 보면 레이디 버드 혼자서 펼치는 1인 코미디쇼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이런 과장된 행동들은 레이디 버드가 ‘모든 것을 지루해 하는 여자애’인 것과 관련이 있다. 그건 영화의 초반 장면부터 확인할 수 있다. “재미있는 일이 생기면 좋겠어.” 대학 탐방을 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레이디 버드가 엄마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러자 엄마는 레이디 버드의 ‘의지 없음’을 지적하고 그것은 모녀 사이의 대화가 대게 그러하듯 곧 말싸움으로 번진다. 레이디 버드는 결국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내린다. 이 장면은 우리의 주인공이 얼마나 발칙한 고등학생인지 보여준다. 엄마에게 지지 않기 위해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릴 정도라니. 또한 이 장면은 레이디 버드는 지루함을 기꺼이 참아주는 캐릭터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화면이 전환되고 가톨릭 미사에 팔에 붕대를 감은 채 설렁설렁 임하는 주인공을 보며 우리는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새크라멘토, 가톨릭 학교, 잔소리 하는 엄마 등 레이디 버드를 둘러싼 것들이 얼마나 지루한지 말이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레이디 버드가 지루한 모든 것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야기이다. 뮤지컬 반에 들어가고 첫 연애를 하고 엄마 몰래 뉴욕에 있는 대학에 지원하는 과정들은 바로 레이디 버드의 ‘지루함’ 때문에 일어났다. 첫 남자친구를 사귀고 첫 섹스를 하고 베스트 프렌드 대신 잘나가는 새 친구를 사귀어보려는 시도들이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그러나 영화는 여타의 성장 영화들처럼 도망침의 결말에 주목하지 않는다.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도망치는 과정이다. 그 과정은 완벽하지 않고 실수투성이이다. 프롬 때 입을 드레스를 고르러 가서 엄마는 레이디 버드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네가 항상 완벽한 모습이기를 원했어.” 레이디 버드는 이렇게 대답한다. “이게 나의 완벽한 모습이라면?” 영화는 완벽하지 않은 십대를 탓하지 않는다. 오히려 완벽하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고 이야기한다. 성장의 과정에서 우리 모두는 미숙하다. 이 영화가 레이디 버드라는 캐릭터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결국 이러한 성장의 속성이다. 크리스틴이 직접 지은 ‘레이디 버드’라는 예명도 꽤나 상징적이다. 실수투성이인 사랑스러운 주인공은 아직 알을 깨고 나오지 못한 데미안의 새 이미지라던가 날아오르기 연습을 하는 아기새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영화가 다루는 불완전성은 엄마와 딸의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둘의 관계는 묘하다. 서로를 가장 증오하면서도 가장 사랑한다. 서로가 완벽한 존재이기를 원하지만 가장 불완전하다. 과장해서 말한다면 이 영화는 레이디 버드의 성장 영화이기 전에 모녀가 주인공인 영화이다. 둘의 이러한 기묘한 관계는 초반 자동차 장면에서부터 드러난다. 대학 탐방에서 돌아오던 날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를 들으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다가도 곧바로 사소한 말다툼을 하는 관계. 구제 옷가게에서 티격태격하다가도 괜찮은 드레스를 발견하자 바로 표정과 말투가 밝아진다. 앞서 영화가 크리스틴 혼자 펼치는 1인 코미디극 같은 느낌을 준다고 이야기했었다. 초반에 받았던 그 느낌은 후반으로 갈수록 옅어진다. 가장 큰 이유는 관객이 ‘레이디 버드’ 너머의 것들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레이디 버드를 둘러싼 친구, 엄마, 아빠 등의 이름의 관계들, 누구나 인생에서 한 번쯤 경험할 만한 순간들이 그것이다. 이런 것들을 보다 보면 레이디 버드의 모습에 내 모습이 겹쳐 보이기 시작한다. 그만큼 이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는 보편적인 우리의 이야기다. 진솔함을 느끼게 되는 데는 이 영화의 시선도 한 몫 한다. 이야기 전개를 화려하게 비틀고 이끌어 나간다기 보다는 어떤 관찰자가 그저 담담히 성장의 순간을 목격하는 것처럼 보인다. 때문에 후반부에서 영화는 1인 코미디극에서 진정성 있는 다큐멘터리로 변모한다. 끝까지 영화는 어떤 대단하거나 놀라운 순간을 통해 성장을 축복하려 하지 않는다. 완벽은 이 영화의 종착지가 아니다. 대신 새크라멘토의 풍경처럼 소박하고 천천히 그녀가 성장했음을 알린다. 첫 시퀀스에서 엄마와 딸의 대화 장면을 통해 영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압축적으로 보여줬던 것처럼 마지막 시퀀스에서도 레이디 버드에게 있어 ‘지루함’의 대상에서 ‘그리움’의 대상인 것들을 나열해 보여준다. 교회와 부모님, 새크라멘토 말이다. 신입생 파티에서 술에 취해 깨어난 다음 날 아침, 레이디 버드는 뉴욕의 낯선 거리를 배회한다. 그러다 발길이 향한 곳은 그토록 지겨워했던 교회였다. 교회에서 나온 레이디 버드는 엄마, 아빠에게 전화를 건다. “엄마, 아빠, 저에요. 크리스틴.” 레이디 버드가 크리스틴이 되는 순간이다. 그녀는 아빠에게 양해를 구하고 엄마에게 할 말을 이어간다. “엄마도 새크라멘토 도로를 처음 달릴 때 감상에 젖었어? 말해주고 싶었어. 모든 건물들이 정겹게 느껴졌거든.”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 했던 새크라멘토와 엄마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이 드러난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비로소 그것을 그리워하게 될 때, 이것이 바로 영화에서 조명하는 성장의 순간이다.
강근식 구술을 통해 보는 1970년대 한국영화의 새로운 흐름 주지하다시피 1970년대 한국영화에서 가장 주목받고 연구가 많이 이루어진 분야는 <별들의 고향>(이장호, 1974)과 <바보들의 행진>(하길종, 1975) 등으로 대표되는 영상시대의 영화들일 것이다. 이들의 영화는 시대를 반영하는 대표적인 영화들로 1970년대 한국의 정치‧사회적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보여줄 뿐만 아니라 스타일의 측면에서도 새로운 인력의 구성을 통해 기존의 한국영화와는 구별되는 다양한 형식을 시도하며 시대의 흐름과 변화를 보여주었다. (그림1) <별들의 고향>(이장호, 1974) 포스터 (그림2) <바보들의 행진>(하길종, 1975) 포스터 특히 이 영화들은 1970년대 각광받기 시작한 다양한 대중문화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1960년대와는 달라진 새로운 청년세대의 등장을 강조하였다. 한국영화에서 새로운 세대의 등장은 매 시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1950년대에는 <자유부인>(한형모, 1956)에서 이민이 연기한 춘호가 전쟁 직후 미국문화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아프레게르’ 세대를 보여주었고, 1960년대에는 <맨발의 청춘>(김기덕, 1964)에서 신성일과 엄앵란이 연기한 두수와 요안나가 4.19 이후 새롭게 등장한 방황하는 ‘청춘’ 세대를 보여주었다. 이 영화들은 흥행 면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한국영화산업의 변화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별들의 고향>에서 안인숙이 분한 경아와 <바보들의 행진>에서 신인 신분으로 파격적으로 기용된 윤문섭, 하재영과 아역배우 출신의 이영옥이 연기한 병태, 영철, 영자는 이들 세대와는 또 다르게 구별되는 새로운 세대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바로 세계적인 청년문화의 중심에 놓여있던 히피 세대의 등장이었다. <별들의 고향>과 <바보들의 행진>의 음악을 담당했던 강근식이 “히피 감성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고, 서양의 그것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고 생각했다”고 해도 세계적인 유행은 다양한 대중문화의 흐름을 타고 한국의 콘텐츠에 녹아들었다. (그림3) <별들의 고향>(이장호, 1974)의 문오와 경아 (그림4) <바보들의 행진>(하길종, 1975)의 병태와 영자 다양한 분야에서 새롭게 유입된 인력들은 1970년대를 대표하는 이 영화들의 이야기, 연출의 스타일 그리고 음악에서 대중문화를 향한 젊은이들의 열망에 부응하는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강근식은 이와 같은 한국영화의 새로운 흐름에 합류한 대표적인 음악인이었다. 그는 일본문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고, 미국영화와 미국음악에 오롯이 영향을 받은 전후 세대를 대표하는 대중문화예술인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재즈와 사이키델릭 사운드에 영향을 받은 음악적 취향은 이들 영화를 동시대 세계적으로 유행한 영화와 음악 등의 대중문화 콘텐츠와 연관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지점을 만들어놓았다. 이렇듯 강근식을 비롯하여 당대 청년 세대에게 호응을 받은 소설가 최인호, 음악인 이장희, 송창식 등의 대중문화예술인들이 이장호, 하길종 감독 등과 협업으로 만들어낸 이 영화들은 특정 개인에 의한 예술작품이 아니라 1970년대 대중의 열망을 가장 적확한 방식으로 보여준 대중문화의 결과물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강근식의 프로필은 시대를 읽어내는 데 매우 유용하고도 흥미로운 지점을 제시한다. 청소년 시절, 역사의 큰 분기점인 4.19와 5.16을 겪고, 1960년대 중후반에는 미국음악에 심취해 학내 밴드로 음악활동을 시작하고, 1970년대에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한 음악살롱에서 프로 음악인으로 성장하며 상업영화와 상업광고음악계까지 진출한 그의 음악 프로필은 1960~1970년대 변화하는 대중음악뿐만 아니라 대중문화 전반의 흐름까지 살펴보는 데 일조한다. 특히 1970년대 TV산업의 확장과 성장으로 동반 성장한 광고산업과 이에 따른 하위문화의 번성이 기존의 한국영화산업에 직‧간접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지 가늠해보는 데 유용한 구술이기도 하다. 강근식의 구술을 통해 살펴볼 수 있는 1970년대 대중문화의 또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은 ‘매체의 넘나듦’이다. 이 시기 영화와 TV 그리고 공연이 서로 영향을 받으면서 기존의 무대와 영화의 영향관계 내에서 활동한 기성세대와는 또 다른, 새로운 유형의 멀티 엔터테이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소설가 최인호의 영화작업이 그러하며 (최인호는 자신의 원작이나 각색 영화에 항상 카메오 출연을 하기도 했으며 <걷지말고 뛰어라>(1976)를 직접 감독하기도 했다), 강근식을 비롯한 이장희, 송창식 등의 음악인들 또한 본업인 음악작업 외에도 영화음악과 광고음악을 넘나들면서 음악적 영향력을 확장했다. 이것은 영화사적으로는 TV 산업의 성장으로 기존의 한국영화산업이 급격히 쇠퇴한 단점으로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매체의 경계에 영향을 받지 않는 새로운 세대들이 등장함으로써 매체 간의 영향이 다각화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따라서 밴드음악과 영화음악 그리고 광고음악이 모두 포괄되어 있는 강근식의 구술은 1970년대의 대중문화를 이해하는 데 하나의 길잡이가 될 수 있다. (그림5) <바보들의 행진>(하길종, 1975) 최인호 출연 장면(아래 왼쪽) ‘평생 음악인’ 강근식의 음악이야기 이 부분은 『영화천국』Vol. 60에 실린 「구술로 만나는 영화인: 청춘의 음악 만들어낸 영원한 청년 음악인」을 수정·보완했다. 강근식은 1946년 평양 출생으로 한국전쟁 때 월남해 탄광촌인 강원도 상동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오락거리라고는 아무 것도 없던 환경에서 기타를 치던 형님들과 나무에 그린 피아노 건반으로 연습하는 누이를 보며 음악을 배웠다. 가수 활동을 하던 삼촌 손인호는 때때로 악극단 활동에 얽힌 무대 이야기를 해주었다. 변변한 악기 하나, 제대로 된 음반 한 장 없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둘러싸여 생활한 덕에 그는 평생 음악을 업으로 하는 예술가가 되었다. (그림6) 홍대강당에서 이루어진 5인조 밴드 홍익캄보의 첫 공연. 왼쪽에서 두번째 기타연주자가 강근식. (그림7) 밴드 홍익깜보 시절 신입생 환영회. 가운데 기타연주자가 강근식 홍익대학교 도예과 재학 시절 학내 밴드인 홍익 캄보의 기타리스트로 음악 활동을 시작한 강근식은 ‘TBC 전국 남녀 대학생 재즈페스티벌’에서 수상하며 본격적인 음악인의 길로 들어섰다. 수상 후에는 당시 가장 인기 있던 음악프로그램 <TBC 쇼쇼쇼>에도 출연할 만큼 유명인사가 되었다. 이후 1970년대 청년문화를 대표하는 다양한 음악의 산실이라 부를 수 있는 오리엔트프로덕션 소속 뮤지션으로 활동하며 <이장희와 동방의 빛>, <조동진>, <현경과 영애>를 비롯한 다수의 음반 작업에 참여했다. <이장희와 동방의 빛>의 기타리스트로 이화여자대학교 강당에서 공연을 할 때는 디자이너 앙드레김이 직접 무대의상을 제작해줄 정도의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그림8) TBC 전국 남녀 대학생 재즈페스티벌 공연 사진. 2회 연속 그랑프리를 수상하였다. 당시에는 무대 모니터 시스템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아 밴드 공연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림9) <쇼쇼쇼> 출연 사진. 왼쪽부터 이장희, 진행자 곽규석, 강근식 (그림10) <동방의 빛> 공연 사진. 앙드레 김 선생이 맞춰준 옷을 맞춰입고 공연하였다. 이후 강근식은 1970년대 변화하는 대중문화의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기 시작했다. 1970년대 새롭게 등장한 음악인으로서, 새롭게 등장한 영화인들 그리고 광고인들과 협업하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을 것이다. 특히 음악과 영화에서 청년문화를 대표하는 오리엔트프로덕션과 화천공사의 만남으로 탄생한 <별들의 고향>과 <바보들의 행진>은 영화뿐만 아니라 음악적인 면에서도 신선한 충격과 파장을 끼쳤다. 당시로서는 흔치 않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은 이 영화들이 현재까지 회자되는 데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림11) <별들의 고향>(이장호, 1974) OST (그림12) <바보들의 행진> OST 영화음악과 더불어 그가 작업한 광고음악은 음악인 강근식을 소개하는 데 중요한 프로필이 되었다. 김세환이 부른 “부드러운 껌”(<해태껌>)과 정훈희, 윤석화 등이 부른 “열두 시에 만나요”(<부라보콘>), 지금까지도 패러디되는 “멋진 남자 멋진 여자”(<트라이>) 등은 CM송을 넘어 시대를 소환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30여 년 동안 광고음악을 창작하며 경험한 대중문화와 사회변화의 관계는 그의 구술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된다. 1970년대 충무로가 영화의 거리에서 광고의 거리로 변화하는 모습, 영화가 아닌 광고를 통해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는 모습, 광고의 종류가 식료품 위주에서 전자기기로 변화하는 모습 등은 광고를 통한 한국사회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그림13) <부라보콘> 광고 (그림14) <부라보콘> 광고 (정윤희와 신일룡이 출연한 부라보콘 광고는 시리즈로 만들어졌다) 1970년대 화천공사와 오리엔트프로덕션의 시도로 탄생한 새로운 청년영화 강근식이 작업한 영화음악은 총 13편으로 데뷔작 <별들의 고향>을 필두로 1970년대 작업한 영화가 6편(<바보들의 행진>, <너 또한 별이 되어>(이장호, 1975), <미스 영의 행방>(박남수, 1975) <걷지말고 뛰어라>(최인호, 1976)(편곡), <내마음의 풍차>(김수용, 1976)), 영화음악으로는 마지막 작품인 1986년 작 <가슴을 펴라>(최원영)를 포함해 1980년대 작업한 영화가 8편(<하얀미소>(김수용, 1980), <강변부인>(최동준, 1980), <겨울로 가는 마차>(정소영, 1981), <도시로 간 처녀>(김수용, 1981), <별들의 고향 3>(이경태, 1981), <이별없는 아침>(이경태, 1985))이다. 그중 1970년대 작업한 6편은 한국 대중문화의 시대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들 수 있다. 특히 <별들의 고향>과 <바보들의 행진>에서는 상기한 것처럼 1970년대 한국영화의 트렌드를 이끈 화천공사와 대중음악의 새로운 흐름을 선도한 오리엔트프로덕션의 협업을 주목해보아야 한다. 한국영화의 제작 시스템이 국가의 제도로 제약을 받고 있던 1970년대, 화천공사는 젊은 층을 공략하는 영화들을 통해 새로운 메이저 제작사로 등극했다. 이 영화들이 원작의 인기에 크게 힘입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각 분야에 새로운 인력을 영입해 활용한 것 또한 주효했다. (그림15) <별들의 고향>(이장호, 1974) 신문광고 (그림16) <바보들의 행진>(하길종, 1975) 신문광고 특히 음악은 기존의 영화들에 비해 현격하게 비중을 높임으로써 스타일적인 측면에서 차별화를 꾀했다. 화천공사는 도시 중심의 청년 세대에게는 절대적인 호응을 받았지만 대중 전체에게 어필했다 볼 수 없는, 밴드와 통기타를 기반으로 ‘젊은 음악’을 선보이는 오리엔트프로덕션과 협업했다. 이와 같은 시도는 이장호, 하길종, 최인호 등을 중심으로 한 인맥 기반의 우연한 기획이 아니라 영화와 음악의 협업을 통해 특정한 관객층을 공략하기 위해 세밀하게 계획된 작업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기획의 결과물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강근식이 구술에서 언급하는 <별들의 고향>의 음악살롱 장면이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가 연주되는 장면에서 관객석에 앉아있는 이들은 당시 강근식, 이장호, 최인호가 드나들었던 음악살롱 등의 아지트에 항상 자리하고 있던 대중문화예술인들이다. 이들 앞에서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부르는 이는 원곡의 가수인 이장희도, OST를 부른 김세환도 아닌 가수 백호빈이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한 곡을 부르는 장면에서 여러 명의 가창자가 동시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장면은 실제 존재하는 대중문화 그룹에 가상의 가수와 극 중 인물들을 동시에 투입시킴으로써 허구와 현실을 함께 녹여내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관객은 허구의 인물들과 함께 그들의 아지트로 들어가 당대 새롭게 등장한 대중문화예술인 그룹을 직면하게 된다. (그림17) <별들의 고향>(이장호, 1974) 음악쌀롱 장면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부르는 백호빈) (그림18) <별들의 고향>(이장호, 1974) 음악쌀롱 장면 <바보들의 행진> 또한 비슷한 선상에서 파악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실제 대학생 신분인 배우들의 학교명을 광고에 활용하여 마치 이들의 실제 이야기인 것 같은 효과를 노린다. 경찰의 장발 단속을 피해 열심히 도망치는 병태와 영철의 모습이 송창식의 <왜 불러> 가사와 박자에 맞춰 편집된 장면은 이러한 효과를 배가시킨다. 이 장면은 인파 속에서 도망치는 병태와 영철과 시민들의 모습을 다양한 앵글과 교차 편집을 통해 현실감을 높인다. (그림19) <바보들의 행진>(하길종, 1975) <왜 불러> 장면 (장발단속 중인 경찰에게 붙잡힌 장면) (그림20) <바보들의 행진>(하길종, 1975) <왜 불러> 장면 (경찰을 피해 도망가는 장면) (그림21) <바보들의 행진>(하길종, 1975) <왜 불러> 장면 (경찰을 피해 도망가다 육교에 매달린 장면) 이처럼 영화의 대표적인 장면들에서 음악은 단지 배경이 아니라 영화와 관객의 거리감을 조절하는 주요 소재로 활용된다. 화천공사와 오리엔트프로덕션의 협업의 관계처럼 이 영화들의 장면 장면들은 이야기와 음악이 공동작업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두 편의 영화는 명확한 관객층을 대상으로 새로운 대중문화 콘텐츠를 시도해 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음악인 강근식 구술의 의의 강근식의 구술은 1970년대 <별들의 고향>, <바보들의 행진> 등 화천공사가 제작한 청년영화의 음악작업 배경을 확인할 수 있는 구술인 동시에 당시 청년문화를 직접 겪은 문화예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구술이다. 또한 1960년대 후반 대학생 밴드 활동과 이장희, 송창식, 조동진 등의 음악을 작업한 오리엔트프로덕션(사장 나현구)의 작업 방식과 회사의 분위기, 대중문화예술인과의 관계도 살펴볼 수 있는 구술이다. 말하자면 강근식 선생의 구술은 일본문화의 영향을 받지 않고 미국문화의 영향을 받아 새롭게 등장한 1960~1970년대 젊은 대중문화예술인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구술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그의 이력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광고음악의 역사를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대략적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는 구술이기도 하다. (그림22) 쎄시봉의 현장. 왼쪽 아래에 안경낀 사람이 이백천. 이백천은 쎄시봉에서 '대학생의 밤'을 기획하였다. 더불어 음악활동에 영향을 준 대중문화의 경험과 초기 문선대의 공연 모습도 주목해보아야 할 부분이다. 1975년 첫 번째 대마초파동에 얽힌 뒷이야기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강근식은 이 사건에 엮여 고초를 받은 당사자로서 당시 대마초가 불법으로 지정되기 전후의 과정과 어느 날 갑자기 연행되어 물고문을 받고 정신병원에 수감된 상황을 상세히 묘사하고, 이 일로 인생의 목표 설정이 많이 변해버린 것을 담담하게 소회하기도 한다. 그리고 밴드음악부터 영화음악, 광고음악까지, 평생을 음악 ‘일’을 해온 백발의 노신사는 현업에서 은퇴한 후 다시 기타를 잡았다. 평생 음악과 함께한 음악인 강근식의 모습은 이제 무대 위 ‘기타리스트 강근식’으로 만나볼 수 있다. (그림23) 강근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