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구역
- 감독
- 심재훈
- 제작년도
- 2021
- 출연
- 이상원, 연제형
얼마 전 한국영상자료원의 창립 40주년 기념 공연작 < 이국정원 >을 볼 기회가 있었다. 무대에 1958년 한홍합작 영화 <이국정원>의 화면이 보이고 배우들이 이 화면에 맞춰 더빙하는 모습을 재연하는 공연이었다. 재치로 좌중을 쥐락펴락하는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와 노래도 탁월했고 연주자들의 유려한 음악도 근사했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현장에서 영화 속 소리들을 만들어내는 폴리디렉터의 활약이었다. 후시녹음이 일반적이던 시기, 성우와 음향효과맨이 스크린을 보며 녹음하던 심야의 녹음실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물론 배우의 입 모양조차 잘 보이지 않는 너덜해진 러시필름도 아니고 밤샘 녹음 중 피워대던 담배로 연기 자욱한 공간은 아니지만, 말로만 듣던 영화의 마지막 공정을 대면하는 일은 근사했다. 심재훈 음향감독의 2009년 구술 내용을 실감할 수 있는 현장이었다. 무대에서 스크린으로, 음향감독의 길로 들어서다 심재훈 선생은 연극으로 시작해 영화, 방송을 넘나들며 활동한 음향감독이다. 1928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났고 경성사범학교에 재학 중이던 1947년 육촌인 유치진 선생의 다급한 부탁으로 극협의 연극 <자명고>의 음향을 맡으며 그의 음향 인생이 시작되었다. <마의 태자>(유치진), <뇌우>(유치진), <햄릿>(이해랑), <처용의 노래>(유치진) 등에 참여하며 1950년대 후반까지 극협(신협)의 음향감독으로 활동했다. 공연한 작품들, 피난지 대구에서 셰익스피어의 번역극으로 대성공을 거둔 이야기, 동인제로 수입을 배분하던 운영 방식 등 극협(신협)의 역사 또한 들을 수 있었다. 그가 영화음향으로 활동의 폭을 넓힌 때는 1950년대 중후반 영화 제작 편수가 늘기 시작할 무렵이다. 영화음향 일 또한 신상옥 감독의 추천과 이강천 감독의 부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첫 영화는 < 격퇴(우리는 이렇게 싸웠다) >(이강천, 1956)로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전투 장면이 많은 작품이었다. 총소리를 종류별로 나눈 뒤 각각의 숫자를 세고 그 숫자만큼의 소리를 녹음하고, 고개 숙이는 군인들 위로 떨어지는 모래 소리까지 세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믹싱 과정에서 모래 소리는 잘려 나갔다. 포탄 때문에 떨어지는 모래를 피하는 군인의 행동이라는 인과관계를 설명해주는 소리였지만 아쉽게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때로는 감독의 과욕이 좋지 않은 결과를 낳기도 했다. < 초설 >( 김기영, 1958)에는 불도저가 판자촌을 부수고 사람들이 울부짖는 장면이 있는데, 그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꼼꼼한 성격의 김기영 감독은 화면에 보이는 모든 장면의 소리를 만들어 넣기를 원했다. 결국 여러 소리가 겹쳐져 대사를 알아들을 수 없는 혼란스러운 장면이 만들어지고 말았다. 열악한 환경에서 쌓아올린 열정의 기록 그는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음향은 현실감을 만들어내는 분석적이고 창조적인 작업이라 피력했다. 1950년대 음향 디스크가 없어 연극에 필요한 폭파음을 내기 위해 마그네슘 전선을 이어 터뜨리다 사고를 당하기도 했고, 녹음실에 마이크가 하나밖에 없어 성우와 같은 마이크를 사용해야 했고, 필름 값이 비싸 사운드필름을 반으로 잘라 쓰며 오직 두 번의 녹음 기회밖에 없는 긴장 속에서 일했다. 어려운 조건에서 단련된 음향전문가인 그는 연극과 영화뿐 아니라 방송에도 필요한 전문 인력이 되었다. 1960년대 민간 방송사들이 개국할 때 모두들 그에게 러브콜을 보낸 것이다. 1961년 MBC라디오방송국에 들어갔지만 음향에 대한 방송국 측의 인식 부족으로 퇴사하고 신필름 전속으로 서울과 안양의 녹음실을 오가며 일하다 1963년 개국한 동아방송에 입사해 라디오방송의 음향감독으로 활동한다. 물론 입사 뒤에도 안양, 정릉, 만리동, 청맥 등 영화녹음실을 다니며 영화음향 또한 맡아 했다. 영화 더빙은 낮 시간에 방송국에서 일하는 성우들의 스케줄을 고려해 주로 야간에 이뤄졌기에 가능했다. 그간 쌓아온 실력은 동아방송국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영화는 화면이라는 기준이 있고 특히 합작으로 만들어진 홍콩, 대만 무협활극영화의 음향을 넣을 때는 홍콩이나 대만에서 녹음된 소리를 기준으로 작업해야 했기 때문에 구술자의 분석과 판단이 개입될 여지가 적었다. 그는 무협영화에서 무겁고 둔탁한 칼 소리를 넣은 것을 아직까지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라디오방송은 영상이라는 기준 없이 오로지 소리로만 이미지를 만들어내야 하기에 구술자의 능력이 더 많이 발휘될 수 있었다. 그 결과는 바로 동아방송의 다큐멘터리 드라마 <제2차 세계대전>이다. 이 작품으로 그는 1973년 제1회 대한민국방송상 제작지원상을 수상한다. 그리고 1975년부터 2007년 은퇴하기까지 방송음향에만 전념한다. 그의 구술이 독특한 점은 소리를 설명하다보니 다양한 의성어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성어에는 해당 소리에 대한 그의 평가가 포함되어 있다. 그는 1950년대 한국영화에서 “다그덩” 닫히는 문소리를 좀 더 세련된 “찰카닥” 때로는 “통” 하는 소리로 다양화했다. 할리우드 영화의 “찰카닥” 하는 문소리가 “다그덩” 보다 더 세련됐다는 맥락이 언급되지만 구술자가 내는 소리 자체에 이미 소리에 대한 평가가 들어 있다. 1960,70년대 홍콩 대만 활극영화 속의 “자앙 자앙 장” “타앙 타앙 탕” 하는 칼소리에도 이미 대장간 소리라 질색하는 그의 평가가 담겨 있다. 구술에 대한 연구와 채록이 지속될수록 구술채록문 즉 활자를 중심으로 한 재현과 분석의 한계를 언급하는 주장이 제기되는데 소리가 특히 중요한 그의 구술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듯하다. 음향을 매개로 연극, 영화, 방송이라는 매체의 역사를 넘나드는 그의 구술은 중요한 사적 자료가 될 뿐 아니라 말과 소리라는 구술의 본질을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중요하고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