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송해
- 감독
- 심우섭
- 제작년도
- 1979
- 출연
- 권귀옥, 이기동, 배삼용, 김희갑, 전숙, 이승현, 이현경, 김애경, 정애자, 영아, 김광태, 주일몽, 유명순, 이백, 한다영, 박철민
앞선 여성코미디언 약사 1에서는 박옥초와 백금녀의 영화에서의 활약을 살펴보았다. 악극단의 스타였던 박옥초가 영화로 무대를 옮기고 난 뒤 70여 편의 영화에서 개성 있는 조연과 단역을 맡아 신 스틸러가 되었다면, 백금녀는 확실한 자신만의 코미디 콘텐츠를 가지고 주연과 비중 있는 조연을 맡았던 경우였다고 볼 수 있다. 이 글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여성 코미디언들은 영화보다는 라디오, TV 등 여타의 매체에서 더 돋보이는 활약을 하였거나, TV에서의 스타성을 가지고 영화로 영역을 넓힌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195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에 이르는 코미디영화 전성기에 남성 코미디언들이 주인공 자리를 당당히 차지하는 동안, 백금녀를 제외한 대부분의 여성 코미디언들은 조연이나 단역 이상의 역할을 맡지 못했다. 이들은 악극단의 전성기와 라디오 시대를 거치며 눈부신 활약을 했으나 흥행 시장이 영화를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주변화 되었거나 영화를 건너뛴 채 쇼 무대에서 TV로 이동하여 스타덤을 이어갔다. 물론, 코미디의 영역 자체에서 여성들은 대체로 남성들에 비해 좁은 입지를 가져왔던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특히 가부장제 하의 젠더 규범에서 여성성은 “겸손함과 어여쁨”으로 규정되어 왔기 때문에 “광대짓 하기나 바보짓 하기”는 여성들의 행동으로 부적절하게 여겨져 왔다. 즉, 여성이 코미디 발화의 주체가 되는 것은 “문화적으로 결정된, 이상적인 여성 행위에 대한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1) 우리나라뿐 아니라 영미권이나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로 코미디 산업의 모든 영역에서 오랫동안 남성들이 지배적인 것이 일반적 2) 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코미디 산업에서 남성의 우세가 보편적인 현상이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살펴본다 하더라도, 한국 코미디영화와 여성코미디언의 관계는 여전히 문제적인 측면들을 내포하고 있다. 첫 번째, 195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까지 한 해에 평균 10편 이상의 코미디영화가 제작되었고 이 기간 동안 코미디언을 주인공으로 하는 코미디언코미디가 50여 편 가까이 제작되었던 상황에서, 여성 코미디언이 주연배우로 출연하는 영화는 매우 드물었다. 단편적인 무대 코미디나 만담, 쇼 등에서는 동등하게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었던 여성 코미디언들은 거의 대부분의 코미디영화에서 조연이나 단역에 머물렀다. 두 번째, 코미디영화 속 여성 재현의 문제이다. 프로이트는 두 남성 사이의 농담에서 여성의 역할이 “적대적이고 성적인 공격의 대상” 3) 이라고 규정한 바 있는데, 1950-1970년대 한국의 코미디영화 속 여성들 역시 대체로 프로이트적 규정 안에서 유형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1960년대 후반 코미디영화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남자식모>, <남자와 기생>, <남자미용사> 등을 떠올려보면 이 영화들이 매우 남성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시선으로 여성 캐릭터들을 그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이른바 ‘남자 시리즈’ 속 여성들은 남성들에 의해 ‘교화’되어야 할 대상이자 남성 주인공의 사회적 성취와 더불어 주어지는 ‘성적 보상’으로 객체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코미디영화의 여성 주인공은 대부분 미모가 두드러지는 젊은 여성 배우들이었고, 여성 코미디언들은 외모로 웃음을 담당하는 조연이나 단역으로 역할이 한정되었다. 이런 점에서 백금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코미디영화의 존재는 매우 이채로운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한국의 코미디영화 안에서의 여성 코미디언들의 문제적 위치와 재현 양상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코미디 배우들의 존재는 영화에 활기를 불어 넣어주었고 제한된 영역 안에서나마 다양한 웃음의 코드들을 만들어내었다는 점에서 기억되어야 한다. 이들은 박옥초와 백금녀 만큼의 존재감을 드러낸 영화 스타였다고 할 수는 없어도, 무대에서 혹은 TV에서 매우 강렬한 웃음을 만들어 내었던, 우리 시대의 코미디언들이었다. 가장 먼저 언급할 사람은 고춘자(1922-1995)이다. 고춘자는 장소팔과 함께 콤비를 이루어 1950-60년대 만담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인물이었다. 고춘자와 장소팔의 활약은 e-영상역사관에 남아 있는 몇 편의 문화영화, <내고향 좋을시고>와 <민요잔치> 등을 통해서 찾아볼 수 있다. 고춘자는 활동 초기에는 장소팔, 후기에는 김영운과 짝을 이루어 대화만담과 민요만담 등의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구축했다. 영화 출연은 콤비였던 장소팔에 비해서도 훨씬 뒤늦은 편이었다. 장소팔은 <여성 코미디언 약사> 1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공처가>(김수용, 1958)에서 백금녀와 함께 주연을 맡아 출연한 기록이 있는데, 고춘자의 경우에는 196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단 한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김화랑 감독의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1965)가 그것인데, 여기서 고춘자는 장소팔과 함께 실명 그대로의 만담가로 단역 출연했다. (그림1)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김화랑, 1965) 포스터. 포스터 가운데 컬러사진으로 실린 인물은 안경쓴 서영춘과 김희갑, 그 밑이 구봉서. '쥐’라는 글자 바로 왼쪽이 황정순, 황정순 왼쪽으로 두 번째가 고춘자이다. 다음으로는 백금녀를 벤치마킹하여 등장했던 여성 코미디언들이 있다. 가장 비슷한 시기에 활동을 시작했던 것은 오천평(1943- )이었는데, 오천평의 본명은 장정숙으로 오천평이라는 예명 자체가 그의 캐릭터를 대변해주었다. 박영한 작가의 『머나먼 쏭바강』의 한 대목을 보면, 베트남전에 참전한 군사들을 위문하러 갔던 위문 공연단의 공연을 보면서 한 병사가 저 기막히게 잘 하는 여자가 누구냐고 질문하자, 바로 오천평이라고 대답하면서 ‘자네는 TV도 안 보나’라고 반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오천평은 1970년대 TV에서 ‘기막히게 잘하는’, 누구나 알 수밖에 없는 유명 연예인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영화에서 오천평은 그 존재감이 TV에서만큼은 크지 않았다. 오천평이 출연했던 첫 영화는 이규웅 감독의 코미디 <치마바람>(1967)이었는데, 여기서 오천평은 주인공 김지미와 계원들이 놀러간 바닷가에서 마주친 여성으로, 서영춘과 함께 ‘역할전도’ 코미디를 선보였다. “밴드! Love Portion Number 9!”이라고 소리치며 무리 안으로 뛰어든 오천평은 서영춘과 말싸움을 하다가 서영춘을 어깨에 둘러메고 바닷물에 내팽개친다. 바닷물에서 정신을 잃은 서영춘을 다시 어깨에 메고 모래사장으로 돌아온 오천평은 서영춘의 배를 누르고, 서영춘의 배에서는 물과 함께 물고기들이 튀어나온다. 만화적 상상력을 보여주며 폭소를 유발하는 이 장면은 백금녀-서영춘 콤비 코미디를 차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오천평은 이 영화에서 백금녀의 역할을 이어 받아 서영춘과 대구를 이루는 코미디를 보여주었다. (그림2) <치마바람>(이규웅, 1967)의 한장면. 가운데 하얀 가운 차림의 김지미, 그 오른편 뒤쪽으로 오천평과 서영춘, 그 앞쪽으로 김지미에게 오른팔을 두른 사람이 도금봉이다. 오천평의 영화 속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나는 스틸 사진은 임권택 감독의 1969년 코미디영화 <신세 좀 지자구요>에서인데, 이 스틸사진에 찍힌 오천평의 모습은 실제 영화 속에서는 찾을 수 없다. (그림3) <신세 좀 지자구요>(임권택, 1969)의 오천평 정면 스틸 사진. 그러나 이 영화에서 오천평 등장하는 장면을 실제 존재하지 않으며, 아마도 편집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밖에 오천평이 등장했던 영화로는 <공주님의 짝사랑>(최은희, 1967), <가요반세기>(김광수, 1968), <남정임 여군에 가다>(김화랑, 1968), <타잔 한국에 오다>(김화랑, 1971), <삼일천하>(신상옥, 1973), <청춘25시>(이기영, 1973), <나의 인생고백 제2탄>(심우섭, 1975), <관광대행진>(이명식) 등이 있는데, <공주님의 짝사랑>에서는 철없는 공주 남정임 때문에 골탕을 먹는 정상궁 역을, <남정임 여군에 가다>에서는 남정임과 함께 입대하여 훈련을 받는 계모임의 일원 역을, <타잔 한국에 오다>에서는 배삼룡을 사랑하는 뚱순이 역을 맡아 웃음을 유발했다. 오천평의 출연작 중 가장 이질적인 작품은 <삼일천하>였는데, 이 영화에서 오천평은 궁녀 혁명가 ‘고대수’로 열연하여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등장한 고대수(오천평)는 괴력을 가진 여성으로 등장하여, 굶주린 평민 남성들을 상대로 거친 액션신을 벌이고 이어 등장한 변수(박노식)에 의해 각성한 뒤 개화당을 도와 혁명을 이끄는 인물 중 하나가 되었다. 이어지는 고문과 탈주, 그 뒤 거리에서 백성들의 돌에 맞아 비장한 최후를 맞게 되는 고대수 역은 오천평의 뛰어난 연기력과 색다른 연기의 지평을 보여줄 수 있는 주요작이다. (그림4) <삼일천하>(신상옥, 1973)의 한장면. 굶주린 평민 남성들이 궁중에서 나온 음식들을 버리려는 궁녀 고대수(오천평)에게 덤벼들자 이들을 제압하는 장면. 이후 고대수는 각성하고 혁명에 동참한다. 오천평의 뒤를 잇는 ‘뚱순이’ 캐릭터로 가장 성공적인 커리어를 써 나갔던 배우 중 한 사람은 최용순(1946-2000)이었다. 최용순 역시 영화보다 TV에서 더 존재감을 드러냈던 배우였다. 1969년 KBS 탤런트 공채로 시작하여 각종 TV 코미디에서 인기를 모은 최용순은, 이후 브라운관에서의 인기를 바탕으로 영화에 진출한 경우였다. 영화에 많이 출연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최용순은 탄탄한 연기력과 귀염성 있는 외모로, 결혼과 연애 서사 코미디에서 주, 조연을 맡곤 했다. (그림5) <나의 인생고백 제2탄>(심우섭, 1975)의 한 장면. 결혼 후 본가에 온 최용순과 그의 부모. 오천평은 이 영화에서 최용순은 엄마로 등장했다. 사진 중간이 오천평, 오른쪽 최용순 현재 한국영상자료원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최용순은 <산에 가야 범을 잡지>(이형표, 1969)를 시작으로, <팔도 며느리>(심우섭,1970), <나의 인생고백 제2탄>(심우섭, 1975), <너는 여자 나는 남자>(김응천, 1979), <서울은 여자를 좋아해>(남기남, 1987)까지 총 6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그림6) <팔도며느리>(심우섭, 1970)의 한 장면. 최용순은 김지미, 사미자, 여운계 등과 함께 김희갑의 팔도며느리 중 한 사람으로 등장했다. 맨 왼쪽부터 최용순, 사미자, 김지미 (그림7) <잘했군 좋았군>(고승호) 포스터. 가운데 부분 왼쪽 원안에 파란색 치마 한복을 입은 여성이 최용순이다. 그 중 <나의 인생고백 제2탄>은 당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었던 배삼룡을 주인공으로, 최용순이 상대역을 맡았다. 배삼룡과 최용순을 투 톱으로 내세운 이 영화는 35세의 노총각 배삼룡이 최용순과 결혼한 뒤 벌어지는 여러 가지 소동을 그렸다. 순진한 노총각 배삼룡은 최용순을 만나기 전에 이미 그의 부모와 섣부른 약속을 한 터라 어쩔 수 없이 결혼하게 된다. 신혼 첫 날 밤부터 왕성한 식욕과 성욕을 과다 노출하는 최용순의 캐릭터는 노골적으로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여성이며, 또한 이를 통해 자신의 코미디를 연출한다. 예컨대, 끝없이 음식을 먹는 장면이나 배삼룡에게 억지로 섹스를 강요하는 장면은 웃음을 유발한다. 최용순이 출산으로 인해 집을 비웠던 사이에 배삼룡은 치정에 얽힌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오해를 받게 되는데, 모든 문제가 갑자기 해결되는 순간에 아기를 안고 등장한 최용순은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면서 앞으로는 ‘좋은 아내’가 되겠다는 다짐을 늘어놓는다. (그림8) <나의 인생고백 2탄>(심우섭, 1975)의 한 장면. 신혼여행 첫 날 밤의 배삼룡과 최용순. <나의 인생고백>에 등장하는 최용순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지만, 과다한 식욕과 성욕의 소유자로 단순화되고 대상화된다. 그것은 무엇보다 이 영화 자체가 남성주인공의 시점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또한, 신체적 우위를 내세운 최용순의 욕망은 항상 즉각적으로 충족되는 듯 보이지만, 실상 그것은 일방향적이고 일시적인 충족에 불과하다. 배삼룡이 끊임없이 새로운 여성을 욕망하고 최용순을 벗어나고자 하기 때문이다. 배삼룡이 진심으로 가정으로 돌아가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는 것과 동시에 최용순은 ‘좋은 아내’가 되기를 약속한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여전히 그들 사이의 완전한 결합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 아이까지 업은 배삼룡과 군것질을 하면서 지나가는 최용순의 대조적인 모습이 엔딩씬으로 제시되는 것이다. (그림9) <나의 인생고백 2탄>(심우섭, 1975)의 한 장면. 신혼 첫날밤부터 식욕과 성욕을 과다노출하는 최용순의 모습이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장면 중 하나이다. 1970년대 초에 만들어진 <나의 인생 고백 2탄>은 최용순이라는 인기 TV 코미디언과 당대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었던 배삼룡을 스크린으로 불러 왔지만, 최용순의 연기력이나 매력을 전혀 끌어내지 못했다. 그런가하면, 배삼룡은 항상적 우울증을 가진 사람처럼 무기력하고 고독한 캐릭터로 그려졌다. 다소 엉뚱하고 바보스러운 ‘비실이’ 캐릭터를 전혀 반영하지 못했고 그에 따라 이 영화의 매력은 반감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이 영화는 건장한 신체를 가진 여성 코미디언을 활용하는 가장 손쉽운 방식을 택하여, 스테레오 타입을 강화시켰다. 한국 영화 산업 자체의 위기를 겪게 되는 1970년대를 거치며 코미디영화들은 1960년대 코미디들이 주었던 동일시의 위안이나 전복의 쾌감을 줄 수 없는, 기묘한 웃음의 코드들만 남긴 채 사라져갔다. 그밖에 김희자(1934~ )는 1950년대 후반 HLKZ-TV 코미디 프로그램의 유일한 여성 고정출연자였는데, 서영춘과 함께 무대에 올라 빠르게 주고받는 코미디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는 입담을 자랑했다. 그 역시 1950년대 악극단에서 데뷔하였고 TV코미디로 큰 인기를 누렸다. 김희자는 세 편의 영화에 출연했던 기록이 있다. <선화공주>(최성관, 1957), <우리강산 차차차>(박구, 1971), <관광대행진>(이명식, 제작년도 미상)인데, 세 편 모두에서 주요 배역을 담당했던 것 같지는 않다. 그 중 김희갑과 함께 출연했던 <선화공주>, <관광대행진>의 경우, 현재 남아 있는 자료를 통해서는 김희자가 어떤 역을 맡았는지 확인이 불가능하며, <우리강산 차차차>의 경우에는 단역으로 출연한 김희자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림10) <우리강산 차차차>(박구, 1971) 맨 오른쪽 김희갑 옆에서 춤추는 이가 김희자, 김희자 옆에는 백금녀가 보인다 . 이순주(1942~ )는 쇼 무대와 라디오의 전문 여성 MC로 활약했으며 주로 TV 코미디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이순주는 <강산에 노래싣고 웃음싣고>, <생활의 명랑화>, <팔도노랭이>, <당나귀 무법자>, <타잔 한국에 오다> 등 5편의 영화에 출연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중 <팔도노랭이>는 <팔도강산>의 아류작 중 하나로, 김희갑과 박옥초가 부부로 등장하여 결혼한 일곱 딸들을 방문하는 이야기가 전반적인 구성이다. 이순주는 코미디 콤비인 송해와 함께 넷째 딸 부부로 등장하여 비교적 비중 있는 역할을 소화했다. <당나귀 무법자>에서는 서영춘과 사랑을 나누는 술집 여성인 단역을 맡았다. (그림11) <팔도노랭이> 포스터. 가운데 김희갑을 중심으로 왼편 위에서부터 세 번째, 구봉서, 서영춘 다음이 이순주, 그 밑이 안인숙. 오른쪽 맨 밑이 백금녀이다. 김희자와 이순주의 예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195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상대역 여성들이 박옥초와 고춘자에서 김희자와 이순주로, 거의 20살 차이가 나는 젊은 세대로 바뀌는 동안에도 여전히 남성 코미디언들은 취직과 결혼이 지상과제인 ‘청춘’ 주인공의 역할을 맡을 수 있었다. 그리고 1970년대 초에 주로 활동했던 여성 코미디언들은 주로 단역을 맡으며 영화에서 큰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1970년대 초를 마지막으로, 한국영화사에서 코미디영화 제작은 더 이상 호황이 아니었다. 매우 드물게, 이전 작품들의 리메이크가 만들어졌고 심우섭, 이형표 등의 감독들만이 1년에 한 작품 정도로 코미디영화 제작의 맥을 이어가는 형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여성 코미디 배우들의 입지는 또 다시 변화한다. 배연정과 권귀옥이 등장하면서 여성 코미디언에 대한 코미디 의존도가 높아졌다고 볼 수 있는데, 이들은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면서 다시 한 번 여성 코미디언들의 존재를 영화 속에 각인시켰다고 볼 수 있다. 배연정(1952- )은 1969년 가수로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다가 1971년 MBC 공채 코미디언 1기로 정식 데뷔하였다. 당시 MBC의 간판 코미디 프로그램이었던 <웃으면 복이와요>에 김희자의 대타로 출연하였다가 스타덤에 오르기 시작했으며, 1973년 TBC로 옮기면서 배일집과 함께 ‘고전유머극장’을 통해 스타가 되었다. 이들은 ‘코미디계의 신성일, 엄앵란’으로 불리며 1970-80년대 TV 코미디의 전성기를 누렸다. 4) 배연정 역시 TV에서의 인기를 업고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는데, 1970년대 말부터 약 10년간 총 7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1970년대 후반과 80년대는 주지하다시피 한국영화의 침체기였고, 특히 코미디영화의 암흑기였다. 이 시기 배연정이 출연했던 영화들은 1960년대 코미디영화의 대표적인 감독이었던 심우섭, 이형표가 자신들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들에서 배연정은 코미디영화의 주연배우 혹은 비중 있는 조연배우로 등장했다. 출연작은 <마음 약해서>(심우섭, 1979), <난 모르겠네>(심우섭, 1980), <형님먼저 아우먼저>(심우섭, 1980), <청춘을 뜨겁게>(심우섭, 1981), <얼굴이 아니고 마음입니다>(이형표, 1983), <여자가 더 좋아>(심우섭, 1983), <전설철인 키매랑>(은희복, 1989) 등의 7편이다. 이 중에서 배연정을 주연으로 한 <난 모르겠네>는 태권도 유단자인 말괄량이 배연정의 연애와 결혼을 다룬 로맨틱 코미디였다. 미모와 연기력을 겸비했던 TV 스타 배연정은 여성 코미디언으로는 처음으로 ‘청춘 코미디’, 즉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을 맡을 수 있었다. 이 영화는 배연정의 매력을 바탕으로 한 일인 쇼에 가까운 작품이었다. 동양재벌 사장 딸이지만 태권도와 유도 유단자인 동자(배연정)는 아버지가 정해준 신랑감 후보들을 모두 물리치고 쥐포장수로 변장하고 있었던 병태(장고웅)와 사랑하게 된다. 설정부터 결말까지, 이 영화는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한국 버전이라고 볼 수 있을 듯하다. (그림12) <난 모르겠네>(심우섭, 1980) 포스터. 위편 왼쪽에서 태권도 자세를 취하고 있는 바지 입은 여성이 배연정. 이후의 출연작에서 배연정은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하여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다음 작품이었던 <마음 약해서> 역시 서영춘, 구봉서, 배삼룡, 이기동, 임희춘 등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TV 코미디의 남성 스타들과 배연정, 권귀옥 등의 여성 코미디 스타들을 총 출동시켜 얽히고 설킨 연애담을 보여주는 청춘 코미디였다. 배연정은 까다로운 ‘올드 미스’로, 권귀옥은 결혼상담소 소장 서영춘의 딸이자 ‘조사부장’으로 등장했다. (그림13) <마음약해서>(심우섭, 1973) 포스터 가운데 안경 쓴 구봉서의 얼굴 왼쪽이 임희춘이고, 그 옆에 임희춘과 결혼하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배연정이다. 구봉서와 임희춘 바로 밑이 이기동과 권귀옥이다. 마지막으로, <여자가 더 좋아>는 김기풍 감독의 동명의 영화(1965년)의 리메이크로, 원작은 여장남자 코미디의 열풍을 불러왔던 서영춘의 출세작이었다. 이 전설적인 영화의 리메이크작이었던 1983년 <여자가 더 좋아>에서 배연정은 여장남자 식모인 장고웅으로 인해 곤란을 겪는 주인집 며느리 역할을 맡았다. (그림 14) 1965년의 전설적인 코미디영화 <여자가 더 좋아>의 리메이크 작인 1983년 <여자가 더 좋아>에서 배연정은 여장남자 식모 장고웅의 잔소리, 장고웅에게 반한 남편 주병진 때문에 괴로움을 겪는 며느리 역을 맡았다. 권귀옥(1950~ )은 MBC 탤런트 공채2기로 1970년 데뷔한 이후 코미디언으로 전향하여, 1973년부터 <웃으면 복이 와요>에 출연하면서 인기를 얻었다. 이기동과 함께 ‘땅딸이와 늘씬 미녀’로 활약했던 권귀옥 역시 TV 코미디로 전국적 인지도를 올리고 난 뒤 영화로 진출한 경우였다. 그가 출연했던 영화는 총 4편으로 <나에게 조건은 없다>(강대선, 1971), <시집갈래요>(이상언, 1974), <마음약해서>(심우섭, 1979), <아리송해>(심우섭, 1979) 등이었다. 이 중 코미디언으로 전향하기 전에 출연했던 <나에게 조건은 없다> 한 편을 제외하고 나머지 세 편은 코미디영화들인데, 권귀옥은 <아리송해>의 주연을 맡아 이기동과의 콤비 연기를 영화로 옮겨 보여주었다. (그림15) <아리송해>(심우섭, 1979) 포스터. 포스터 가운데 권귀옥. 권귀옥의 트레이드 마크인 표정 연기와 ‘늘씬 미녀’라는 별명에 어울리는 몸매를 부각시킨 포스터이다. 이 영화는 <초우>(정진우, 1964)의 설정을 빌어와 가정부 정옥(권귀옥)과 운전사 두만(이기동)의 가짜 연애, 그리고 가수로 성공하는 정옥의 성장담을 담았는데 무엇보다 권귀옥의 매력에 기댄 영화였다. 주인집 가족들과 대등한 관계를 맺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당당한 ‘식모’ 역할은 당시 영화 속에서 하층계급 여성을 그리는 방식과는 상당히 다른 것이었으며, 권귀옥 코미디의 성격을 잘 드러내 주는 장치로 활용되었다. 이 영화를 끝으로, 권귀옥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1980년 결혼과 함께 배우 생활을 그만두었다. 지금까지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활발하게 활약했던 여성 코미디언들의 영화에서의 활약상을 대략적으로 살펴보았다. 고춘자, 박옥초와 같은 조연급 출연자들부터 백금녀, 오천평, 최용순과 같이 건장한 신체를 가진 코미디언들이 맡았던 역할들, 이순주, 배연정, 권귀옥 등 미모를 앞세운 코미디언들이 보여줄 수 있었던 코미디의 스타일은 매우 다른 것이었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개성을 코미디의 원천으로 삼아 확실한 자신들의 영역을 구축했고, 그 결과 다양한 스펙트럼의 코미디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여성들의 역할이 매우 제한적이었던 한국영화 코미디사에서 이들이 구축했던 캐릭터와 웃음의 방식들은 시대적 한계와 함께 다시 한 번 더 논의되고, 좀 더 기억되어야 한다. 1) Kott hoff, Helga, “Gender and Humor: The State of the Art”, Journal of Pragmatics 38(1), Elsevier B.V, 2006, p.12. 2) Inger-Lise Kalviknes Bore, “(Un)funny Women: TV Comedy Audiences and the Gendering of Humour”, European Journal of Cultural Studies, no.13(2), Sage Publications, 2010. 3) 지그문트 프로이트, 『프로이트 전집 6.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 임인주 옮김, 열린책들, 2007(4쇄), 129쪽. 4) “[문화] 오랜만입니다. 배연정씨가 걸어온 길”, 『문화일보』, 2012. 5. 11.
한국영상자료원에 제출한 10편의 나의 영화 목록은 자료원이 제시한 기한 내에 속하되‘극장에서 본 영화들’을 기준으로 했으며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이유들까지 작동한 결과 작성된 사실상 위부터 아래로의‘순위별’이며, 그러므로 최고의 영화는 홍상수 의 < 자유의 언덕 >이다. 다만 나는 내게 훨씬 복잡하고 중요한 영화여서 좀 더 오래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느끼는 <자유의 언덕> 대신 지금 이 자리에서는 리산드로 알론소의 < 하우하 >에 관하여 쓰기를 택했다. 나로서는 최상의 것 대신 최적의 것을 택한 것인데, 어떤 목록의 제시 이후에 그 목록에 관한 해명의 글이 요구되는 자리라는 점에서 최적의 예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특히 하나의 경험이 계기가 됐다.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 하우하 >를 본 몇몇 동료들은 내게 물어오곤 했다. “이 영화의 무엇이 좋았는가?” 올해 칸 영화제에서 <하우하>를 보고 난 뒤 내가 이 영화를 영화제 최고의 작품으로 꼽았기 때문일 것이다. 비교적 최초로 강력하게 호감을 표방한 자의 구체적인 의견이 궁금했던 것 같다. 더하여 그 질문은 대개 두 가지 반문을 괄호 안에 포함하고 있었다. 이 영화의 무엇이 좋았는가(그다지 좋지 않던데?), 이 영화의 무엇이 좋았는가?(좋은 것 같기는 하지만 무엇이 좋다고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던데?). 나는, 면밀하고 치밀하다 해도 사실상 이런 종류의 질문에 대한 화답으로는 거의 무용한 어떤 적극적 반론(나는 이만큼 정확하다) 혹은 작품과의 대면에서 발생한 불안정한 감각적 전압을 견디고 표현하는 지난한 과정은 회피한 채로 기존의 참조적이며 이론적인 용어들에 기대어 짐짓 우월한 지위를 점유한 척 하는 과시주의적 거드름(나는 이만큼 알고 있다)을 피우는 대신에, 거칠지만 솔직하고 미완적인 비평적 화답의 한 방편으로서 내가 이 영화를 관람하며 겪어 나간 순간순간 마다의 감각적 체험의 추이 자체를 복기하고 싶어졌다(나는 이만큼 느꼈다). 작품과 나 사이의 감각의 전압을 혹은 내가 작품에 빠져든 침잠의 상태를 할 수 있는 한 기록해보고 싶어진 것이다. <하우하>를 관람한 이들을 주요 대상으로, 설득 대신 수기를 택한 것이다. <하우하>를 보지 못한 독자들의 경우라면 상당한 난독증을 겪을 것이 예상되는데도 어쩔 수 없이 이런 방식을 택하게 됐다. <하우하>라는 영화 장면들의 흐름을 따라, 그 장면들을 보며 떠올랐던 나의 거칠고 정돈되지 않은 단상의 수준과 순서를 그대로 드러내며, 그러니 당연하게도 어떤 부수적이며 탈 맥락적인 또 다른 단상들의 개입까지도 허용하며, 그것들이 이 글의 구성에도 반영되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애석하게 부산에서는 일정상 영화를 다시 보지 못했으므로 기억의 흐릿함과 부정확함이라는 무능까지 포괄하면서, 그 체험의 시간을 돌아보려 한다. 처음, 보다 제목이 < 하우하 >였다(부산영화제에서의 상영 제목은 < 도원경 >이었는데, 이 제목을 듣자마자 멋진 번역이라고 무릎을 쳤다. 모국어로서 이보다 더 근사하게 의역하기란 어려울 것 같다. 이 제목은 앞으로도 유용될 만한 높은 가치가 있다. 그럼에도 혼선을 무릅쓰고 지금 구태여 <하우하>라고 적은 데에는,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마주했을 때 이와 같은 제목으로 인식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특히 감독이 영화의 제목에 관하여 했던 어떤 말이 기억에 남아서다.“무엇보다‘하우하’라는 단어의 소리가 주는 느낌이 좋았다. 뭔가 인디언들의 지명처럼 들리기도 하고 이국적이면서도 불가사의한 것 같고, 처음 이 단어를 접했을 때부터 그 오묘함에 완전히 빠져 버렸다.”(씨네21,957호). 알론소의 이 말은 중요한 것 같다. 단지 작명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이 영화의 연출에 관한 감독의 어떤 감각성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뜻의 제목이 아니라 소리의 제목이며 기의의 제목이 아니라 기표의 제목이고 해석의 제목이 아니라 감각의 제목이다). 심신이 지쳐가던 칸 영화제 중반 즈음, 사물함을 열어 보니 이 영화의 전단지가 들어 있었다. 포스터를 보는 순간 잠시 멍해졌다. 어두운 밤 혹은 새벽, 검은 대지의 지평선 너머로 푸르스름한 별과 빛이 보이고 가까이에는 기도하는 것인지 절망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제복을 입고 칼을 찬 채 눈을 감고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비고 모르텐슨의 모습이 보였다. 포스터의 이미지만 보고도 이 영화와의 교감은 예감됐다. 그런 포스터들이 있다. 영화의 홍보가 전부인 것이 아니라 그 영화의 성질을 일견 담아내어 미리 느끼도록 하는 포스터들. 예컨대 홍상수 영화의 포스터는 내 느낌에 정확히 < 밤과낮 >부터 그런 중요한 존재물 혹은 일종의 부수적 예술 행위로 급상하였다. 가령 <밤과낮>의 포스터가 그렇다. 반바지를 입고 계단을 내려오는 어느 여자의 하반신, 계단 아래에 쪼그려 앉아 걸레질을 하다 말고 그걸 올려다보는 어느 남자의 어색한 자세와 시선, 그런데 그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담고 있는 저 불가사의한 분위기가 그렇다. 그런 불가사의한 분위기의 일종을 <하우하>의 포스터를 보며 느꼈다. 알론소의 전작들에 솔직히 그다지 큰 애정과 기대가 없는 편이었던 나는 어떤 막연한 기대에 부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극장에 들어섰고 첫 장면을 마주하자 그 즉시 전율이 일었다. 1.33:1의 화면비 안에 놓인 인물들의 정확한 자리 혹은 우아한 형상이 그 전율을 일으켰다. 나는 첫 장면에서 이미 이 영화에 관한 호불호가 갈린다고 확신한다. 이 장면을 아름다움의 성취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름다움을 가장한 위악적 제스처로 규정할 것인가, 나는 전적으로 전자라고 받아들인 관객이다. 알론소는 이 영화를 1.85:1로 촬영했으나 후반 작업 중 지금과 같은 화면비로 바꾸었다고 말한 바 있는데, 화면비를 바꾼 다는 건 컬러로 찍은 뒤에 흑백으로 바꾸는 것만큼이나 대단히 위험하고 모험적인 결정이다. 그런데 이 위험한 모험은 적어도 이 영화에 관한한 옳았던 것 같다. 1.85:1의 <하우하>가 아름다울 리 없다고 나는 짐작한다. 화면비는 단순히 화면의 크기나 모양이나 비율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형상과 화면이 서로 맺고 공유하고 결탁하여 일으키는, 이 말이 어쩌면 착란에 해당할지라도, 지각적으로는 밀도의 문제라고 나는 늘 느낀다. 화면비는 구도의 문제가 아니라 밀도의 문제인 것이며 어떻게 얼마나 채워져 있는가의 느낌의 문제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첫 장면, 바위위에 앉아 있는 아버지와 딸의 장면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딸은 카메라 쪽을 바라보고 앉았고 아버지는 뒤로 돌아 앉았다. 인물들은 정중앙의 정확한 자리에 꽉 차 있었다. 아름답게 꽉 차 있었다. 그들의 몸은 화면 안에서 중대한 권위와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화면의 모서리에서부터 그들 몸 까지 이어지는 어떤 거리와 여백 그리고 정중앙을 점유하고 있는 그들 몸의 밀도의 팽팽함 때문에, 나는 아직 감동의 원인을 찾아내기도 전에 감동부터 먼저하고 있었다. 칼 드레이어의 후기 영화를 볼 때 이런 벅찬 경험을 종종 하게 된다. 내용의 전개와 무관하게 저 인물들의 밀도 높은 육체성이 화면에서 차지하고 있는 어떤 중대한 아름다움으로서의 권위와 지위가 그 감동적 경험의 요인이 되곤 하는 것이다. 물론 이 점은 성공적일 때에만 그러하다. 예컨대 자비에 돌란이 < 마미 >에서 과감하게 선택한 1:1의 화면비는 유효하지 않거니와 치장에 가까워서 영화 내의 밀도를 허투루 만들어버린다. <마미>의 화면비 선택은 형상을 그 화면안에‘어떻게 채울 것인가’하는 지점이 아니라 화면의 양 옆을‘얼마나 잘라낼 것인가’하는 것에 치중한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잠시 1.85:1의 화면비를 구사하는 대목에서야 <마미>는 가장 아름다운 화면을 보유하게 된다. 알론소가 <하우하>의 화면 네 모서리를 둥글게 구부려 놓은 건 물론 디자인적 발상인 것 같다. 누군가는 이걸 싫어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젠체하는 장난 짓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둥근 곡선을 이 영화가 현실 안에서 비현실을 껴안는 자세로서 갖춘 우아한 시각적 은유 또는 이 영화가 19세기를 배경으로 한 동화가 되기 위해 갖추었어야 할 충분히 필요한 시각적 보충물로 받아들였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화면의 조건과 배경에 얼마간 눈이 익숙해지자 그리고 아버지와 딸의 육체를 벗어나자 이제 파타고니아의 드넓은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것은 SF영화가 세계의 어떤 기원을 강조하려 할 때마다 선택하는, 시간이 무화된 지리적 풍경이다. 하지만 나의 감탄의 다음 대상이 그 광대하며 원시적인 풍경은 아니었다. 오히려 좁은 실내 장면을 보며 두 번째 감탄사를 뱉었다. 아버지와 딸이 머무는 작은 텐트 안 장면이다. 많은 사람들은 <하우하>를 보고 나서 존 포드의 < 수색자 >를 거론했다. 대표적으로 내가 칸 영화제 베스트 리스트를 청탁했던 평자 제임스 콴트는“형언하기 어려운, 알랭 레네가 연출한 것 같은 <수색자>”라고 <하우하>를 묘사했다. 충분히 공감할 만하지만 그건 <하우하>의 내용에서 기인한 감상이다. 공감할 순 있지만 내가 이 영화에 매혹된 이유는 아니다. <하우하>를 보며 내가 존 포드를 심각하게 떠올린 건 어느 한 대목인데, 딸을 찾아 나선 아버지라는 이야기 전개 과정에서가 아니라, 딸이 떠나기 전 아버지의 잠자는 모습을 우두커니 보는 장면의 특정한 앵글에서였다. 그때 아버지와 딸을 각각 나눠서 찍고 있는 카메라, 거기서 느껴지는 어떤 기이한 애환과 존엄함이 문득 존 포드의 어떤 장면들의 무드를 떠올리게 한 것이다. 존 포드 영화의 앵글은 서사적으로 중요한 국면이 아닌 순간들에서조차 어떤 애환과 존엄함의 분위기를 엄중하게 품고 있는 경우들이 많다. 지금 당장 해명하기는 어렵지만 연달아 특정한 장면들이 떠올랐다. <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의 첫 장면과 <러틀리지 상사>에서 병사가 전장에서 호각을 불기 위해 화면 중앙에 우뚝 서 있던 그 장면들이 그 때 문득 스쳐 지나갔다. 그 인물들을 찍어내는 앵글을 마주했을 때 느꼈던 어떤 존엄함과 애환이, 서사적 흐름과 무관하게 닥쳐오곤 했던 그 무드가 딸이 아버지를 두고 떠나려 하는 그 순간에도 문득 내게도 느껴진 것이다. 그렇게 좁은 실내의 앵글이 별안간 존 포드를 상기시키며 흥분의 상태로 나를 몰아간 것이라면, 떠나간 딸을 찾기 위해 아버지 군너가 텐트를 걷고 외부로 나가자 이번에는 거기 버티고 있던 빛과 색들이 나를 쓰러뜨렸다. 딸은 젊은 남자와 함께 막사에서 도망쳤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딸을 찾아 나서려 한다. 그가 쓸쓸하게 제복을 주워 입고 칼을 차고 천막을 걷고 나와 맞은 그 새벽의 빛과 색 때문에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모든 것이 어둠과 빛의 교차였고 모든 색은 자기들의 원색을 생생하게 유지하고 있었으며 그로써 이 슬프고 힘겨운 순간에조차 영화는 도발적이었고 도취적이었다. 하늘은 짙은 청록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풀들은 녹색이었다. 저 멀리 산과 대지는 아직 칠흑같이 어두운 검정색이었고 덩그러니 놓인 텐트는 하얗고 하얀 흰색이었으며 텐트 옆의 모닥불은 주황색으로 활활 타고 있었고 그 옆에 갈색과 붉은 색이 반반씩 섞인 제복을 입은 이 사내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많은 영화를 촬영해 온 촬영 감독 티모 살미넨이 촬영을 맡았다는 사실은 그 뒤에 알게 되었다. 칸 영화제에서 내가 본 영화들 중 여기에 견줄만한 빛과 색의 마술을 부린 작품은 토미 리 존스의 < 홈즈맨 >(촬영 로드리고 푸리에토)과 예시카 하우스너의 <아모레 포르> 단지 두 작품뿐이다(촬영 마틴 쉴라츠). 우리는 오즈 야스지로가 미루고 미룬 끝에 선택한 아그파 필름의 저 냉랭하고 음험한 색이 그의 영화에서 어떤 기이한 영화적 인상을 불러일으키는지 알고 있다. 더러 누군가는 아키 카우리스마키가 오즈 야스지로에게 바쳤던 과장된 헌사를 기억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특히나 존경의 이유로서 오즈 영화의 그 붉은 색을 거듭 찬미했다. 그러한 특별하고 특정한 빛과 색의 효능이 <하우하>에도 있었다. 평론가 켄트 존스도 <하우하>를 보고 유사하게 느꼈던 것 같다. 그는 이 영화의“거의 모든 이미지가 색과 빛의 모험이며 어떠한 외양적 술수나 조작도 없이 마네의 천부적인 색의 가치를 수행해내고 마는 많은 대목들이 있다”고 찬사를 보냈다. 그러므로 이 새벽 이후에 이어지는 장면들이 오랫동안 낮 장면들이라는 사실은 내게 중요해 보인다. 이후에 군너는 쏟아지는 햇볕 아래 드넓은 대지를 대책 없이 해매고 돌아다니게 된다. 인상주의 화폭안에 담긴 듯 했던 강렬한 빛과 색은 이제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도래하기 전까지 잊히고, 한동안은 오직 백주 대낮의 태양 아래 쓰러지기 일보 직전으로 걸어다니는 군너의 처량한 여정뿐이다(문득, 정말 낮장면만 한동안 계속됐던가 의심이 든다. 내가 기억하고 있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 글은 이러한 기억과 망각의 활동까지도 포함하고 있으니, 그에 근거하여 계속 전개해보려 한다). 그러니 빛과 색에서 받았던 나의 감동은 그의 허무하고도 피로한 움직임과 동선에 기인하여 또 다른 축으로 옮겨와 있었다. 군너의 움직임과 동선은 이 영화의 화면비율과 또 다른 긴장의 국면에 놓이기 시작했다. 예컨대 그는 거의 매번 수평으로 움직이는 법 없이 수직 혹은 대각선으로 화면을 질러 다녔다. 수평과 수직의 동선이 이론적으로 어떤 인지적 차이를 가져오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거의 정사각형의 화면을 오르내리락 반복하는 그의 움직임이 갑갑하고 무용해서 더 피곤해 보였던 건 사실이다. 무료하기는커녕 손에 땀을 쥘 정도의 긴장감으로 넘쳐나는 장면들의 연속이었다. 군너의 반복적이고 지난하고 피곤한 물리적 여정이 그러한 긴장감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 물리적 여정은 지겹거나 단순하지 않다. 예컨대 군너의 그 한 낮의 여정은 파트 1과 2로 교묘하게 나뉜다. 파트 1, 군너는 말을 타고 딸을 찾아 다닌다. (그러다 딸과 함께 도망친 젊은이 코르토가 혼자 죽어가는 것을 발견한다. 딸의 행방은 묘연하다. 군너의 근심은 더해진다. 하지만 그때 군너는 숨어 있던 원주민에게 총과 말을 탈취당한다. 때문에...) 파트 2, 군너는 이제 터벅터벅 걸어다녀야만 한다. 그는 더 느려졌고 더 피곤해졌으며 더 절망적이다. 말과 총을 잃어 버리는 사건 하나가 끼어 들어 내러티브 구조에 일단락의 임시적 균열을 일으키자, 그의 육체의 피로도와 심리의 긴장 상태는 급속하게 훨씬 더 아득한 늪으로 빠져 들었고, 동시에 그의 움직임과 동선과 속도감의 차원에도 더 큰 변화가 아니 더 큰 절망적 분위기가 배어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묻게 된다. 도대체 이 정처없고 무력한 수색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그렇게 생각할 때쯤 문제의 털빠진 들개가 나타나 그를 한 명의 노부인에게 인도한다. 그리고 나의 감동의 정체도 그 개의 출현을 따라 서서히 다시 또 바뀌기 시작했다. 이때 중요한 것이 있다. 영화 속의 시간도 낮이 아니라 밤으로 서서히 바뀌어 가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제 다가올 장면들에서 내게 감동스러운 것은 동선도 움직임도 아닌 그 밤이며 비통한 음악의 자리이며 몸의 흔적이며 폐쇄적 공간이며 기이한 대화이며 그걸 거치자 엄습해 오는 우주적이며 상대적인 시간에 대한 멜랑콜릭함이며 현실에서 어느새 비현실로 옮겨간 시간의 차원적 전환성이었다. 예컨대 군너가 노부인을 만나게 되는 대목에서부터 그녀와 헤어져 돌아가는 대목 사이에서 그러한 것들을 느꼈다. 들개를 쫓다가 밤을 맞은 군너가 기진맥진한 채로 장검을 옆에 벗어 놓고 바위 위에 털썩 드러 누운 그 순간, 밤하늘의 별들이 무수하게 쏟아져 내렸다. 동시에 그 순간 기타리스트 버켓헤드가 연주하는 기타의 우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길고 험한 육신의 피로와 심리적 상처의 아픔을 기타의 연주가 대신 울고 있었다. 저 뒤로는 지금 일군의 별자리들이 반짝이고 있고 군너의 잠이 혼란스럽게 깊어질수록 별들은 대지를 향해 세상이 끝날 것처럼 무리지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 장면을 보며 어떤 앞선 장면을 기억해 낼 것이었다. 딸이 사라지기 직전, 영화 속 딸이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장면에서 그녀가 연인 코르토에게 했던 중요한 말이 있다. 아마도 그들이 사랑을 나눈 뒤쯤이었을텐데 풀밭의 돗자리에 앉아 딸이 코르토의 등에 새겨진 반점들을 보고 매만지며 “꼭 별자리 같다”고 말한다.“쏟아지는 별처럼 아름답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녀가 말하는 그것을 보지 못한다. 별자리 그리고 아름답게 쏟아지는 별들은 장면이 흘러 군너의 그 밤에 이르러서야 시각화 되는 것이다. 연인의 육체위에 새겨져 있던 그 아름답게 쏟아지는 별자리라는 모반에 관한 인상은, 딸을 찾는 아비가 바위 위에 지친 육신을 눕힌 그 밤에 이르러 실존의 풍경이 되어 있다. 누군가의 사랑은 누군가의 슬픔이 되었고 누군가의 등은 누군가의 하늘이 되었고 누군가의 모반은 누군가의 별자리가 되었다. 그 내부와 외부, 나와 타자, 육체와 우주의 기이한 설화적 이접이 나는 아름다웠다. 물론 이런 장면은 요설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이 요설을 과장되어서 허위적인, 단지 지나친 형식주의로서의 탐미적 자세라고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반문할 필요조차 없었다. 나 자신에게 기입되어 있던 감탄의 경험들이 깨어나는 걸 느낄수 있었다. 저 멀리 불꽃 축제가 열리고 미끄러지듯이 나아가는 자동차의 수평 움직임속에서 도노반의 <허디거디맨>이 음울하게 들려오는 < 조디악 >의 첫 장면. 바비 빈튼의 <블루벨벳>이 고즈넉하게 들려오는 가운데 정원의 한 남자가 뒷목을 짚으며 쓰러지고 풀숲의 잘린 귀로 카메라가 불길하게 이동해가던 < 블루벨벳 >의 첫 장면. 고되고 성스러우며 유머러스했던 종교적 여행길의 마지막에 이르러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 앞에 넙죽 업드려 경외를 바치는 그 순간 장엄하게 노래가 울려퍼지던 <새들의 노래>의 클라이맥스 장면. 시름에 젖은 여인이 슬로우 모션으로 국수통을 들고 좁다란 계단을 오르내리는 가운데 우베마야시 시게루의 현음악이 들려오던 < 화양연화 >의 국수집 장면. 그리고 수시로 그와 같은 순간들을 영화의 접히고 펼치는 접경지대로 사용하곤 하는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영화들. 그것들에 황홀해 한 만큼 <하우하>의 이 장면에서도 황홀했다. 그리고 영화는 나의 황홀을 뒤로 하고 또 다시 앞으로 나아 갔다. 음악과 풍경의 장면들이 지나가고 빛의 장면들이 다시 도래했다. 하지만 이 번에는 다소 다르게 돌아왔다. 군너가 동굴 안으로 들어가 노부인을 만나자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특별한 (어둠과) 빛의 효능이 이들을 감쌌는데 여기 특별하게 새로 개입해 들어온 것은 적절한 연극적 공간성이었다. 핀조명과도 같은 푸르스름한 한 줄기 빛을 받으며 군너와 노부인은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군너가 노부인에게 병정 인형을 주니 그녀가 좋아한다(군너의 딸은 그 병정 인형을 갖고 도망쳤지만 군너는 그 인형을 딸을 찾는 도중에 발견했다). 둘의 대화는 가까워졌다가도 조금씩 빗나간다. 이 노부인은 누구인가. 노부인은 군너가 잃어버린 딸의 노년의 모습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그렇게 애매해지는 사이에 어떤 사물과 제스처는 놀랍도록 다시 돌아와 자기 자리를 차지하면서 우리를 자극한다. 딸에게 그토록 중요했던 나침반과 병정 인형은 군너와 노부인 사이에서 화제에 오르고 마침내 첫 장면에서 딸이 아버지의 어깨에 살짝 고개를 기대었던 것처럼, 노부인이 군너의 어깨에 그렇게 기대며 같은 제스처를 보일 때, 마침내 나는 두 사람의 관계를 사실로서 일치짓고 확정짓는 것과 무관하게, 말하자면 사실관계와 무관하게 그 인상관계 때문에 아득한 애처로움을 느꼈다. 그리고 첫 장면에서 딸이 자신은 언제쯤 개를 가질 수 있는 것이냐고 물었던 질문을 떠올렸다. 지금의 노부인이 오로지 개를 가졌을 뿐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라는 걸 떠올렸다. 그리고 아직은 남아 있는 에필로그에서 현대의 어느 대저택에 사는 소녀가 털빠진 개를 또 한 마리 갖고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세 마리 개만이 실마리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이 즈음에 영화적 사태를 직감한다. 우리가 군너의 움직임과 동선을 좇아 다니는 동안 군너의 실종된 딸은 그녀의 삶을 살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군너가 그의 물리적 시간을 사는 동안 딸은 그녀의 서사적 시간을 살아갔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녀는 죽은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녀는 사라진 것이다. 그러니 앞에 있는 저 노부인이 군너가 그토록 찾아 해멘 그의 딸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거듭 말해도 그것은 사실 관계가 아니라 인상 관계로서 그러하다. 딸을 찾아 헤맨 군너의 시간관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그걸 가능하게 하는 시간관은 무엇인가. 이것이 중요한데, <하우하>를 본 내가 이때쯤 직감하게 된 것은, 우리가 군너의 여정을 따라다니는 동안 실제로는 더없이 동화적이며 설화적이어서 상대적인 시간의 대지를 건너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근거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영화에서 밤 장면은 기껏해야 한 번 정도 등장한 것 같다(나는 여전히 나의 이 기억과 진술이 의심스럽다. 하지만 이 의심에 바탕해서 감상을 지속하려 한다. 며칠 밤이 등장했다 해도 사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밤과 낮의 등장 시간으로만 측량하자면 군너는 단 하루의 시간 동안 딸을 찾아 헤맨 것일 수도 있다. 이 영화는 그럴 경우 단 하루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하지만 알론소가 군너의 그 무수했던 밤들 중 오로지 어느 하룻 밤만을 특화한 것일 수도 있으니 이 영화의 시간이 하루라고 우린 단정지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럴 경우 이 영화는 하루처럼 보이도록 구성된 수많은 날들로 구성된 영화다. 물론 여기에는 군너의 변하지 않은 외양이라는 또 다른 모순점이 의도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어느쪽이건 군너가 그렇게 오래 낮의 장면들을 해메야 했던 이유 중에는, 그리고 우리가 그걸 보아야만 했던 이유 중에는, 구조적 혼돈을 통한 시간의 상대적 성립이라는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밝음과 어둠으로 계산되는, 그리고 그것때문에라도 실제로는 계산이 아리송해지는 낮과 밤의 시간의 흐름과 군너라는 인물의 동선에 따른 물리적 시간의 흐름과 그에 따른 심리적 시간의 흐름이 동화적이고 설화적인 이 영화의 상대적 시간의 빅뱅을 가능케 하고 있다. 시간의 초점을 모순되게 하고 중첩시켜 상대화하는 것이다. 더 중요한 건 알론소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점時點이 중첩된다면 시점은視點 전환된다. 그리고 시점視點의 전환을 따라 시제의 전환까지 이루어진다. 기이한 건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것이 비주얼이 아니라 보이스라는 데 있다. 노부인의 동굴을 나온 다음 군너는 힘없이 무릎을 꿇는다. 내가 포스터에서 보았던 바로 그 자세로 그는 절망한다. 내 기억으로는 바로 이때쯤 여인의 보이스 오버가 들려왔고, 군너의 저 여정을 설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번역된 영어 자막에 근거하자면) 과거형이었다. 노부인의 보이스 오버로 그렇게 이 영화의 내러티브를 정리해내자 이 영화는 갑자기 그간의 서사에서 완전히 돌아서, 군너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녀의 어떤 회상의 이야기인 것 같은, 그것도 그녀가 과거에 겪었던 회상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은, 시점 주체의 전환 및 시제의 전환이라는 인상을 갖게 된 것이다. 보이스 오버의 출현에 따른 시점視點과 주체와 시제의 변경이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영화에 그어지는 또 하나의 곡선이었다. 군너가 동굴을 빠져 나와 걷는 그때 목소리는 묻는다.“무엇이 삶을 움직이게 하고 가능하게 하는 것일까?”그리고 잠시 뒤 군너가 대지에 무릎을 꿇을 때 그 말은 한 번 더 반복된다.“무엇이 삶을 움직이게 하고 가능하게 하는 것일까?” 디졸브가 일어나 장면이 바뀌고 이 영화의 2부에 해당하는 짧은 에필로그가 등장한다. 동시대의 어느 대저택에서 어느 소녀는 잠이 깬다. 앞선 이야기는 꿈이었을까. 소녀는 개를 끌고 산책을 나가고 아버지를 만난다. 앞서 딸을 찾는 아버지 군너의 긴 수색이 있었다면 에필로그에는 아버지를 스쳐 지나간 딸의 짧은 산책이 있다. 소녀는 숲속에서 병정 인형을 줍지만 잠시 손에 쥐었다가 무심하게 호수에 휙 던져버린다. 병정 인형이 동심원의 파장을 일으키고 그 물결에 군너가 해멨던 19세기 파타고니아의 풍경이 잠시 비쳤다가 사라진다. 무엇이 삶을 움직이게 하고 가능하게 하는 것일까, 나는 생각했다. 다시, 보다 나의 두 번째 관람도 짧은 에필로그에 해당한다. 알론소의 인물들은 전작에서도 대체로 “외로운 남자들”이었다. 그들은 종종 누군가를 찾아 나서거나 향해갔고, 광대한 풍경을 혹은 폐쇄된 장소를 느리고 오래 유영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주인공의 내용적 여정에 새롭게 인위적이고 구조적으로 어떤 성질과 상태가 부여됐다는 점일 것이다. 알론소는 아르헨티나 시인인 파비앙 카사스가 쓴 시나리오에서 자신이 취하고 싶은 것들을 취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밝혔는데, 개인적인 바람을 말하자면, 알론소가 카사스와 지속적인 작업을 이어갔으면 좋겠다. 카사스가 알론소 영화의 수준을 급상시켰다고 나는 생각한다. 알론소는 전작들에서 시각적 인위와 연관된 사건의 매듭을 고안하는데 매우 불철저하거나 무관심하거나 그렇게 무관심해야만 좋은 영화라고 믿는 경우들이 많았다. < 하우하 >는 다르다. 인물과 사건의 매듭이 전체 구조에 보다 긴밀하면서도 중요한 관계를 맺으며 영화 전체의 신비로운 리듬이 배가됐다. 그의 전작들은 인위적 구조에 무관심한 대신, 앵글에 담기는 장소의 리얼한 공기의 농축에 치중했는데, 자신이 취하고 싶은 만큼 완전치 못해서 원하는 만큼 충분히 물질적이지 못하거나 얼마간 지루했다. 알론소의 영화들은 무언가 조금씩 미비했고 그걸 자신의 형식적 진지함으로 덮곤 했다. 그런데 티모 살미넨의 참여가, 카사스의 시적인 개입이 알론소의 세계를 고양시킨 것 같다. 어쩌면 동시대의 감독들을 신중하게 의식한 긍정적인 결과일 수도 있겠다. <하우하>는 확실히 알베르 세라와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영화들을 의식하고 있다. 현실에 인위적 구조를 더하여 비현실을 풍요롭게 끌어안으면서 다시 현실 쪽을 바라보게 하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이 긍정적이면서도 은밀한 모사의 성취도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더 지켜보아야겠다. 다만 어떤 영화와 닮았는가 하는 것은 중요치 않을 수도 있다. 존 포드의 서부극에서부터 빅터 시외스트룀의 어드벤처물에 이르기까지, 이 영화와 닮았다고 거론되는 수편의 영화들에 관해 나는 들었지만, 그 지적들이 중요하게 들리지 않는다. 어떤 영화와 닮았는가 지적하는 것 보다는, 어떤 영화를 느끼는 방식으로 이 영화도 느낄 것인가, 묻는 건 어떨까. 알베르 세라의 미치광이 기사와 우스꽝스러운 동방 박사들을,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주정꾼들과 길 잃은 소년들을,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승려와 군인과 요괴들을 느꼈던 감상의 방식과 흡사하게 느껴보는 건 어떨까. 이른바, 불가사의함에 관한 시적 무드의 설화 내지는 동화라고 간주하며 감상해보는 것은 어떠할까. 나는 그렇게 느꼈다. 알론소의 영화가 얼마나 더 신비롭고 도발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는 내가 확신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단지 나는 이러한 감각의 과정들을 체험하며 <하우하>에 깊이 도취되었고, 좀처럼 거기에서 깨고 싶지 않을 뿐이다.
1. 근대 부르주아 사회의 가장 익숙한 문예 양식이자 사회적 제도이기도 한 로맨스는 그 어원에서부터 통속 혹은 진부함(banality)을 속성으로 갖고 있다. 영화 장르로서의 로맨틱 코미디는 바로 이 진부함의 요소들을 중심으로 재미를 만들어내며 그 핵심에는 로맨스를 로맨틱한 것으로 구성하는 통속적인 조건들의 질서가 있다. 그런 점에서 로맨틱 코미디는 여느 대중 장르보다 다채로운 색깔로 채색된 풍속화로서의 지위를 얻는다. 풍속화를 보는 첫 번째 재미는 젠더관계와 계급, 몸짓과 패션, 매너와 에로티시즘 등 다양한 토픽들을 재현하는 그 표면의 이미지들에 있다. 그러나 진짜 재미는 이러한 이미지들을 배열하는 내부의 질서를 탐색할 때 등장한다. 당대의 삶을 포착하는 어느 한 순간은 무엇과 무엇이 연결되고, 그 연결에서 어떤 힘의 관계가 소묘되며, 이를 바라보는 것은 누구인가라는 내적인 질서에 의해 그 역동적인 힘을 발휘한다. 풍속화로서의 신윤복의 그림에서 그 결정적인 동인이 늘 화폭 구석에 숨어있는 관음적 구경꾼이며 그를 통한 응시가 그 소우주를 통합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점에서 이용민 의 < 서울의 휴일 >은 1950년대 한국의 흥미로운 풍속화인데 특히 풍속의 이미지들과 이를 바라보고 통합하는 응시 사이의 메워지지 않는 간격들 그리고 그로 인한 불안이라는 맥락에서 그렇다. 영화는 산부인과 의사인 희원( 양미희 )과 신문기자 재관( 노능걸 ) 커플이 겪는 휴일 하루 동안의 모험과 그 주변 캐릭터들의 앙상블이 빚어내는 에피소드의 연쇄로 전개된다. 1950년대의 여느 한국영화와 마찬가지로, <서울의 휴일> 역시 당대 한국영화를 관통하는 운동, 즉 근대적 가치의 전지구화와 1950년대의 한국이라는 로컬의 특개성이 절합되는 폭풍 안에 놓여있다. ‘프랜(plan),’ ‘에고이스트’ 등 대화에서 넘쳐나는 영어, 디올(dior) 풍의 튤립 스커트, 맥주와 호텔 라운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중산층 주부들의 요트 놀이 등 이른바 ‘서양 라이프스타일’의 품목들(commodities)을 당대 일상의 풍경 안에 빼곡히 채워 넣으면서, 영화는 3세계 포스트 식민경험에서 대중문화가 수행하는 전시(exhibition)의 전형적 양태를 보여준다. 서구화에 대한 판타지적 열망과 로컬 현실의 절합을 매개하는 이 품목들은 고전 할리우드 서사와 양식적 세련미에 대한 이용민 (그리고 1950년대 대부분의 한국 영화감독들)의 열정 안에서 그 매력을 발산한다. 후암동 살인사건의 단서를 쫓는 재관의 카 체이싱 장면이나 살인범과의 육탄 액션 장면은 (당시 열악한 제작조건을 감안했을 때) 제한적이나 다양한 카메라의 움직임과 앵글, 장식적 미장센 등의 시각적 양식에 대한 이용민의 영화적 재량과 취향을 잘 보여준다. 여기에 프랭크 카프라와 프레스톤 스터지스를 오가는 걸작 스크루볼 코미디의 꼼꼼한 참조나 (종종 서사의 흐름을 훼손할 정도로 각각의 장르적 재미가 강조되는) 로맨틱 코미디와 가족 멜로드라마, 액션과 미스터리의 혼용 등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 서울의 휴일 >의 고전 할리우드 양식은 (미리엄 한센의 말을 빌자면) 20세기 초 전지구적 영향력을 갖게 된 미학적, 산업적 규준이자 (미국적) 근대 가치 체계의 운반체인 이른바 ‘통속적 모더니즘(vernacular modernism)’의 장치로 기능한다. 요컨대, <서울의 휴일>에서 형식적 매끈함과는 거리가 먼 채 강박적으로 모방되는 고전 할리우드 양식은 로맨스를 구성하는 판타지의 품목들이 배치되는 재현의 격자, 풍속화를 구성하고 통합하는 ‘응시’의 장소다. 2. 로맨스라는 서사의 우주 안에서 응시가 통합하려는 대상은 바로 성관계다. 대중서사로서 로맨틱 코미디는 성관계를 규정하는 남근적 질서에 대한 대항하는 운동과 이를 다시 그 질서 안에 재포획하여 안정시키는 힘이라는 모순적 관계 안에서 그 재미를 만들어간다. 이른바 ‘신세대’ 엘리트 커플인 희원-재관 부부는 이러한 모순적 힘 관계를 체현하는 주인공이며, 여기에 옆집 부부나 재관의 동료 기자들, 임신한 앞집 처녀와 재관이 우연하게 만나는 ‘살짝 정신 나간 그녀’ 등 그들 주변의 인물들 역시 1950년대 한국의 서구적 근대화를 대표하는 변화 중 하나인 성관계 질서의 변화와 대항을 체현한다. 대개 여성을 중심으로 한 이 성차의 만화경은 (5,60년대 여타 한국영화에서처럼) 돈 버는 아내, 공부 많이 한 여자, 연애하다가 임신한 처녀, 남편 속이고 총각들과 ‘엔조이’하는 주부 등 ‘노는 언니들’에 노골적으로 집착한다. 요컨대, < 서울의 휴일 >의 로맨스 서사 역시 짐짓 20세기 중반 한국 로맨틱 코미디와 멜로드라마를 관통하는 욕망인 ‘즐겨라!’ 명령을 수행하는 언니들이 - 돌아와 반성하거나, 너무 즐기다 쫓겨나면서 - 그 핵심을 구성하고 있으며 이를 다시 기존의 질서 안에 통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의 마지막, 행복하게 서로를 바라보며 사랑을 확인하는 희원과 재관 위로 서울의 야경과 보름달이 장관을 이루는 이중노출 쇼트는 응시의 시각화 중에서도 가장 일반적으로 뻔뻔한 종류의 이미지다. 그런데 < 서울의 휴일 >을 흥미로운 텍스트인 것은 고전 할리우드 양식에 대한 강렬한 의지와 그 불완전한 구축, 그리고 서구 근대가치와 로컬의 경험 사이에서 메워지지 않는 구멍, 납득되지 않는 흔적으로 얼룩진 이 응시 때문이다. 영화의 플롯은 ? 이 영화가 재관의 대사를 통해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 로마의 휴일 >의 오드리 헵번-그레고리 펙 커플의 로맨틱한 휴일과는 정반대로 ? 휴일 하루조차도 함께 할 수 없는 부부의 상황에 기초한다. 특종에 눈이 멀어 아내와의 로맨틱한 휴일도 반납한 재관은 전형적인 목적지향의 히어로로, 문제의 ‘보름달 장면’에서 그가 행복할 수 있는 건 우여곡절 끝에 획득한 특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반면 ‘즐길 준비’가 다 된 희원에게 재관의 목적은 방해물일 뿐이다. 그녀의 로맨틱한 휴일은 오직 일벌레 남편을 기다리다 지친 나머지 펼쳐지는 공상 안에서만 가능하다. 공상하기를 그만둔 희원은 남편 없이 외출을 하지만. 친구들과 다과를 하고 우연히 마주친 남편 동료들과 미니 골프를 즐기고 맥주 한잔을 해도 남편이 없으니 로맨틱할 리가 없다. 영화는 ‘남편 없이 나간 아내’의 화려한 외출을 애써 지루한 것으로 만들려고 애를 쓴다. 한마디로, 희원은 놀아도 즐겁지가 않은 여자다. 그녀가 이 이상한 휴일을 행복하게 마감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우연히도 후암동 살인범 아내의 출산을 돕게 된 ‘일’이다. 결국 부부 모두 즐기라는 명령을 온몸으로 신경증적으로 거부하면서 질서정연한 남근적 일상 안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런데 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플롯 안에서 휴일 내내 어딘가 아리송해하는 희원의 묘한 표정이 자꾸 눈길을 끈다. 친구들과의 다과, 남편 친구들과의 음주라는 발랄한 장면 안에서 희원은 대사도 목적도 없는 묘한 클로즈업으로 종종 포착된다. 그녀의 표정만큼이나 그녀의 휴일이 어리둥절해지는 순간이다. 서사의 용도에 의한 정확한 그림값을 부여받는 재관과 기타 캐릭터들과는 달리, 희원을 둘러싼 이 이상한 장면구성은 고전 할리우드 양식의 불완전한 구현이라 치부하기에는 그녀의 묘한 얼굴을 지나치게 각인시키는 효과를 낳는데 이는 영화의 후반부 살인범 아내의 출산이 끝난 후 링거를 바라보는 희원의 클로즈업에서 가장 도드라진다. 웅장한 음색의 교향악 음색(그녀는 로맨틱한 휴일의 피날레를 이 연주회로 끝내고자 했다)이 깔리는 이 장편은 서사 기능으로는 턱없이 넘치고 성애적 이미지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이 곤혹스러운 무의미의 얼굴은 불쾌의 흔적, 분노의 공격 마냥 그녀의 엔조이를 허락하고 방해하고 통제하는 서사와 응시에 대한 대항하는 것 같다. 이러한 희원의 존재는 무의미로서의 ‘정신 나간 여자,’ 그리고 ‘진격의 엔조이 걸’인 옆집 주부로 인해 더욱 부각된다. 무의미로서의 분열증은 차치하고서라도, 옆집 주부는 < 서울의 휴일 > 아니 당대 한국영화에서 아마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 중의 하나임에 분명하다. 영화의 초반 희원에게 임신 3개월임을 고백하면서 ‘애가 다 뭐람, 귀찮게...“라며 불평하던 그녀는 로맨틱한 휴일을 기대하며 아내를 기다리는 남편을 저버린 채 미용실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남편 몰래 총각들과의 ‘썸씽’을 즐기다 저녁이 다 되어 귀가한다. 골난 남편을 달래 함께 외식을 즐기는 두 사람의 모습은 금슬 좋은 부르주아 부부의 교과서적 이미지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정자에서 어깨춤을 추는 남편을 귀찮다는 듯 쳐다보며 무심하게 태평가를 부르는 그녀의 얼굴은 ‘유부녀가 엔조이하기엔 정말 피곤한 세상이야’라고 푸념하는 ‘자유부인’의 완전범죄를 대변하는 것 같다. 이렇게 질서의 바깥에 선 무의미와 질서를 교란시키는 쾌락 (그리고 범죄자의 아내와 미혼모라는 주변성) 사이에서, 서구적 근대 여성 희원의 어리둥절한 얼굴은 <서울의 휴일>이라는 풍속도에 덧칠된 흔적, 통합하는 응시가 미처 통제하지 못하는 불안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