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게돈
- 감독
- 이현세
- 제작년도
- 1995
- 출연
- 최불암, 이병헌, 윤소라, 이정구, 설영범, 이선영, 강희선, 김병관, 박상일, 이봉준, 장승길, 김태응, 성선녀, 조진숙, 송연희, 이대원, 서문석, 김준, 한호웅
한 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장편 작품을 보고 있었다. 피와 폭력, 욕설 등 표현의 수위가 제법 높은 작품이었는데 두 그룹의 가족 관객이 눈에 띄었다. 감독이 상영 전 가벼운 경고(?)를 했지만 작품이 중반에 이르도록 요지부동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한쪽의 아이들은 잠시 극장을 나간 듯했으나 이내 다시 돌아왔고, 다른 가족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두 가족 모두 상영의 중간에 자리를 떠나긴 했지만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른이 보기에도 자극적인 내용이 담긴 작품임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이들의 입장을 제지하지 않은 주최 측이나 한참 동안 아이들과 영화를 감상한 부모들이 너무 무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나 보는 움직이는 그림이 잔인해 봤자 얼마나 잔인할까 싶었던 걸까. 이것이 현재 애니메이션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각을 보여주는 한 예가 아닐까 싶다. 애니메이션은 자유로운 소재와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는 영상의 한 장르로 어린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러나 국내 TV, 극장에서 상영되는 애니메이션만 봐도 대부분 어린이를 타깃으로 하고 있다. 더군다나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경우 할리우드 유명 스튜디오의 작품이 아니고서는 오후 시간에 보기조차 쉽지 않다. 그러나 정작 해외에서는 다양한 장르, 타깃층을 대상으로 한 한국 작가들의 장, 단편 애니메이션들이 호평을 받고 있다. 단편은 이미 2000년대부터 한국 작가들의 작품들이 주목을 받아 왔다. 올해만 해도 세계 5대 애니메이션 중 하나인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과 자그레브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정다희 감독의 < 의자 위의 남자 >와 정유미 감독의 < 연애놀이 >가 각각 대상을 수상하며 독창적 예술성을 지닌 작품으로 세계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장편 역시 이성강 감독의 < 마리 이야기 >와 성백엽 감독의 < 오세암 >이 안시에서 2002년, 2004년 대상을 거머쥔 바 있다. 최근에는 연상호 감독의 < 돼지의 왕 >, 안재훈 , 한혜진 감독의 < 소중한 날의 꿈 >, 이대희 감독의 < 파닥파닥 >, 장형윤 감독의 <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 등이 국산 장편 애니메이션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 국산 애니메이션이 꾸준하게 그리고 묵묵히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단편은 영화제라는 특정한 공간에서만 즐길 수 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고 장편은 < 블루시걸 > < 아마게돈 > < 원더풀 데이즈 > 등 과거의 예에서 알 수 있듯 화제성에 비해 부진한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이는 철저히 상업 논리에 따르는 국내 거대 배급사들이 아동을 타깃 삼지 않은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 돼지의 왕 >은 첫선을 보인 부산국제영화제에서 3관왕을 차지하며 매진 행렬을 기록하고 언론의 집중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극장 확보의 한계에 부딪히며 손익 분기점을 넘지 못했고, <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는 청소년, 여성 타깃의 감성적인 작품임에도 흥행을 위해 국내 시장의 애니메이션 주요 수요층인 가족 관객 중심의 홍보를 선택해야 했다.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한 해외 애니메이션들도 픽사나 드림웍스, 디즈니 등의 작품 외에는 관객들의 관심을 모으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다양한 장르를 자랑하는 일본 애니메이션도 수요가 일부 마니아에 국한돼 있는 형편이다. 반면 할리우드의 대형 스튜디오들은 <겨울왕국> 처럼 막대한 자본의 힘을 바탕으로 가족 관객을 타깃으로 한 뛰어난 퀄리티의 영상과 어른들까지 사로잡을 수 있는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으로 자신의 브랜드를 확실히 각인시키며 전 세계 관객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물론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한 디즈니, 픽사의 작품 퀄리티를 따라잡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전형성을 지닌 할리우드의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더욱 폭넓은 관객층이 즐길 수 있는 힘 있는 스토리와 개성으로 자신만의 매력과 울림을 가지고 있는 국산 창작 작품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을 즐기고 그 진가를 느낄 수 있는 기회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 앞에서 편견의 벽은 높기만 하다. 오히려 낮은 퀄리티와 비슷비슷한 내용의 아동 타깃의 애니메이션이 쏟아지고 있는 극장가에서 동급으로 취급되기에 십상이다. 이러한 현실에서도 국내 감독들은 변화를 위한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홍덕표 감독의 성인을 위한 국내 최초의 VOD 전용 애니메이션 < 발광하는 현대사 >, 현대 문학을 애니메이션으로 오롯이 옮겨낸 안재훈 감독의 <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 > 등 최근 선보이고 있는 작품을 통해 본 한국 애니메이션은 작품들의 실패를 딛고 다양성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 마당을 나온 암탉 >이란 작품 그 자체에 대해서는, 최근 개봉작인데다 또 다른 이들이 많이 논할 것이기 때문에 굳이 여기서 자세히 다룰 생각은 없다. 필자는 스스로를 ‘평론가’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내용에 대해 공적인 자리에서는 운운할 생각도 없다. 그런 글은 블로그나 트위터를 통해 간단하게 발표하는 정도로 하고, 이 글에서는 좀 더 다른 방향에서 <마당을 나온 암탉>에 관해 생각해보았다. ■ 개인적인 소회 < 마당을 나온 암탉 >의 시사회장에서 우연히 한 언론사 기자와 만났다. 벌써 10년 전에, 대한민국 만화대상의 심사위원으로 같이 반나절 내내 심사를 하면서 처음 만난 분인데 그 인연으로 간간히 취재를 당하기도(?) 하고 가끔은 내 쪽에서 인터뷰를 하기도 하는 사이다. 그 분은 <마당을 나온 암탉>을 보고 어땠냐고, 꽤 괜찮지 않냐고 물어왔다. 작품을 보면서 상당히 만족하고 있던 나는, 조금 과장해서 지난 10년간 본 국산 극장 애니메이션 중에서는 가장 만족스럽게 본 것 같다고 답했다. 작품을 본 직후였기에, 특별히 어떤 이유를 찾기 보다는 그냥 바로 떠오른 답이 그것이었다. 그런데 그 코멘트가 기사화되었다. “근 10년 동안 발표된 한국 극장 애니메이션 중에도 최고”라고 평했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약간 설명을 덧붙여야 할 것 같아, 이 기회를 빌어 글을 써본다. 1967년 < 홍길동 > 이후 한국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는 벌써 44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에 비하면 아직 작품수가 적겠지만, 사실은 한국만큼 오랜 기간 많은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든 나라도 달리 많지 않다. 하지만 그런 반면에 1980년대까지의 고전적 작품들 이후 한동안 극장에서 애니메이션 개봉이 멈춘 적도 있었다. 1994년 < 슈퍼 차일드 >와 < 블루 시걸 >의 개봉으로 다시금 극장에서 애니메이션 개봉이 시작된 시점에는, <블루 시걸> < 붉은매 > < 헝그리 베스트 5 > < 아마게돈 > 등 기존의 ‘어린이용’이라기보다는 ‘청소년용’(<블루시걸>은 성인용이었지만)에 가까운 작품이 이어진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 2011년 현재까지 17년간 여러 작품이 개봉되었다. ■ 미션 임파서블 하지만 90년대 PC통신, 2000년대 블로그나 트위터 등 인터넷에서 모이는 ‘애니메이션 마니아’를 만족시킬 수 있는 작품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TV애니메이션 중에서는, 대중성에서는 물론 매니아들에게도 평가가 나쁘지 않은 작품이 있었다. 당장 필자만 해도 작년에 이 자리에 썼던 < 달려라 하니 >(1988)와 같은 작품은 매우 재미있게 보았다. 최근에도 마니아들이 개별적으로 만족스럽게 생각하는 작품은 그래도 꽤 존재한다. 그에 반해 극장용 애니메이션에 대해서는 애니메이션 팬들의 평가가 전반적으로 높지 않았던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TV를 틀기만 하면 무료로 방영되는 TV애니메이션’과 달리, 자발적으로 시간을 내어 극장까지 달려가서 티켓을 구입하여 보아야 하는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경우, 당연히 그에 따르는 ‘기대치’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애니메이션의 경우 최근에는 아무 극장에서나 다 개봉하는 것도 아니고, 소위 ‘퐁당퐁당 상영’으로 상영시간에 맞추기도 쉽지 않다.) 웬만큼 잘 만들었더라도, 연출이나 캐릭터, 혹은 성우 연기 등의 몇몇 부분에서 미숙한 점이 보이면 바로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조건인 것이 바로 극장용 애니메이션이라는 세계다. 그런 상황에서는 그림도 최신 외국 애니메이션 못지 않게 잘 그려야하고, 카메라워크나 액션 연출도 제대로 해야 하며, 매력적인 캐릭터를 개발하고 성우 연기에도 신경써야 하며 동시에 흥행성 있는 내용과 매니아들의 기대치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을 몇십 년간 수십 작품 꾸준히 개봉한 실적을 가진 감독이나 제작사가 존재하지 않는 한국적 현실에서는 매우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야만이, 해외 작품을 통해 눈이 높아진 애니메이션 팬들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런 점들은 아무래도 꾸준히 수십 년간의 제작 실적과 경험을 가져야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인데, 팬들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실패함으로써 다음 작품을 연이어 만들어내지 못하게 되는 이유로 실적과 경험을 쌓기 곤란해진다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게 된다. 일종의 ‘불가능 미션(Mission: Impossible)’이라 아니할 수 없겠다. ■ 취향의 세계 하지만 그래도, 일부 몇몇 작품에 대해서는 호평을 해주는 팬이 생긴 작품들도 있었다. 필자만 해도 < 아치와 씨팍 >(2006)에 대해서는 호의적인 평가를 해왔다. 물론 그런 호평을 받는 작품에도 약점은 존재한다. 그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맘에 드느냐, 아니면 약점들 탓에 맘에 안든다고 말하게 되느냐는 결국 취향의 차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듯 하다. 필자의 경우엔 <아치와 씨팍>이 취향에 맞았던 것이고, 또한 올해 초 이 자리에 소개했던 < 마법천자문 - 대마왕의 부활을 막아라 >의 경우에도, 몇몇 단점도 보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는 호평을 내리고 싶은 작품이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겐 다른 몇몇 작품들이 취향에 맞았던 것이겠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 마당을 나온 암탉 >에 대한 필자의 호평도, 단순히 필자의 취향에 맞는 작품이었다고 해버리면 그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 마법천자문 >과 < 소중한 날의 꿈 >을 볼 때에도 몇몇 아쉬운 점은 있었으나 그래도 전체적으로 한국의 극장 애니메이션이 점점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느꼈던 필자로서는 이번 <마당을 나온 암탉>이 하나의 ‘정점’을 찍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앞서와 같이 약간의 과장을 섞어, 오랜만에 만난 기자에게 감상을 말했던 것이다. 개봉 후 지금까지 『마당을 나온 암탉』에 대해서 나온 기사나 감상을 보면 여전히 몇몇 분들에겐 불만스러운 점이 존재하는 듯 하다. 하지만 그것은 일정 부분 그들의 ‘취향’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나온 감상일 수도 있다. (필자도 한 명의 관객 입장에서 지금까지 그런 식의 비판을 해왔으니 그런 식의 감상을 반대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렇다면 과연 이 작품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취향’을 만족시켰는가?”라는 지점이 아닐까 한다. ■ < 마당을 나온 암탉 >에 대한 초기 반응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2011년 7월 27일, 개봉 첫 날에만 관객수가 이미 51207명에 이르렀다. 그리고 28일까지의 2일간 기록이 벌써 10만 6207명이다. 아직 개봉 첫 주말도 지나지 않았으니, 이번 주가 지나면 이보다 훨씬 높은 수치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된다. 올해 개봉된 장편 애니메이션 < 소중한 날의 꿈 >은 7월 27일 기준으로 44088명의 관객을 동원한 것으로 나온다. < 마당을 나온 암탉 >은 이미 하루 기록만으로 『소중한 날의 꿈』의 관객수를 돌파한 것이며, 2010년도에 개봉된 『 마법천자문 - 대마왕의 부활을 막아라 』의 관객수인 12만 2021명을 넘길 것도 확실시된다. 오리지널 첫 개봉 작품으로서는 국산 애니메이션 최고 흥행기록을 갖고 있는 < 천년여우 여우비 >(2007년)의 47만 1412명도 시야에 들어오고 있다. 그리고 재개봉작으로서 현재까지 한국에서 국산 애니메이션으로서는 최대의 관객동원수를 기록한 < 로보트 태권V 디지털복원판 >(2007년)의 66만 2344명 기록마저 넘을 수 있을지, 이어질 흥행의 추이에 계속해서 주목하고 싶다. (이 글이 「애니DB」 사이트에 업데이트될 시점에는 이미 그 결과가 나와 있을지도 모르겠다. 글이 올라오면 필자의 블로그에 그 결과를 써보려고 생각한다.) 아무튼 길게 적었지만,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을 단 한 가지로 압축하자면 다음과 같다. “일단 극장에 가서 각자 보고 판단하길 바란다.” 물론 각각의 개별적인 취향에는 안 맞는 작품일 수도 있겠으나, 한국 애니메이션이 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쳐 2010년대에 다다른 지점을 확인하는 의미에서라도. 또한 < 마당을 나온 암탉 >은 기본적으로 가족용 작품(반드시 아동용 작품은 아니라고 느꼈다)이었으니, 오랜만에 가족을 데리고 함께 보아도 좋을 것 같다. /글:선정우 (출판기획사 코믹팝 대표, 만화&애니메이션 아카이브 사이트 [미르기닷컴] 운영) http://mirug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