왈가닥 작은 아씨들
- 감독
- 쿠스바 코조
- 제작년도
- 1993
- 출연
- 마츠쿠라 하즈루, 주희, 칸나 노부토시, 김환진, 아라키 카에, 함수정, 아키모토 요스케, 설영범, 히사무라 에이코, 손정아, 이케가미 마리코, 타카야마 미나미, 유지영, 야마다 후시기, 한 케이코, 카시와쿠라 츠토무, 사토 치에, 아이카와 리카코
© 코리아씨네마 똠얌꿍, 슌사쿠, 国, 國, 纳, 陆海铃, 宍倉紗弥, 髙橋, 﨑, 𠮷野, 辻, 齋藤 < 꼬방동네 사람들 >(1982)은 배창호 감독의 데뷔작이자 “사회적 아픔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충격적인 베스트셀러” [1] 『꼬방동네 사람들』(이동철, 1981)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영화는 개봉 당시 “갖가지 사연을 안고 모여 사는 판자촌 동네 사람들의 애환을 감동으로 그려낸 작품”이라는 언론의 호평을 받았으나 [2] 실제로 이 영화가 제작되는 과정에는 상당한 우여곡절이 존재했다. “제작 신고 때부터 우여곡절을 겪고 10개월 만에 햇빛을 보게 됐다” [3] 라거나 ‘신고 접수 후 <꼬방동네 사람들>의 경우는 1백 21일 만에 수리 통보를 받아 제작에 나서게 됐다’ [4] 는 기사 등을 통해 알 수 있듯이 1980년대 초반 ‘사회적 아픔’을 다루는 영화를 제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 이유는 시대 상황 및 검열 제도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당시 모든 제작사는 시나리오와 영화 필름을 검열받아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렸다. 그렇다면 검열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신고 과정에서 가장 지적을 많이 받는 부분이 정사 장면, 외설, 비속·저속한 대사 등으로 사회적으로 말썽이 일고 있는 에로티시즘 영화가 크게 브레이크에 걸리고 있다’ [5] 는 기사는 당시 이루어지던 검열 항목을 알려 준다. 특히 에로티시즘은 주요 검열 대상이었다. 그런데 영화 <꼬방동네 사람들>은 사회적 아픔과 가난한 사람들을 재현하는 데 중심을 둔 ‘사회성’ 짙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에로티시즘 영화와는 결이 달랐다. 그러나 오히려 이 점 때문에 영화는 더욱 시련을 겪어야 했다. ‘사회성 짙은 영화’에 대해 시대는 매우 민감했고 영화는 결국 수정되어야 했다. 이는 시대가 승인하고 요청한 영화, 그리고 대중의 삶을 들여다보는 거울로서 이 작품이 새롭게 탄생하는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0년대 격동의 시대, 대중 영화가 직면한 시련 이 영화의 제작 시기는 1980년대 초반 사회적 격동의 시기와 겹친다. 1979년 10.26 사태로 박정희 정권 시대가 갑작스럽게 막을 내렸다. 그리고 채 일 년이 지나지 않아 5.18 민주화 운동이 발생했다. 이러한 변화는 사회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었다. 전두환 정권이 집권 초기 언론사 통폐합을 단행한 것이나 문화 분야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통제를 강화하고 저항운동을 폭력적으로 억압한 것은 이러한 차원에서였다. 1984년 5차 영화법 개정이 이루어질 때까지 한국영화와 영화산업 또한 이런 소용돌이 안에 있었다. [6] 이러한 상황에서 <꼬방동네 사람들>이 ‘사회 현실’을 다룬다는 게 문화 검열 주체들에게 달가울 리 없었다. 특히 원작인 이동철의 소설 『꼬방동네 사람들』은 “청계천변으로 흐르는 썩은 오물, 똥물, 악취 나는 시궁창을 코앞에 둔 채 즐비하게 늘어선 판자촌 동네” [7] 를 배경으로 성매매 여성과 소매치기, 구두닦이 등의 온갖 도시 하층민들이 모여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었다. 산업화 시기 도시 하층민이 그 존재 자체로 불안과 오염의 가능성을 내포한 ‘위협’으로 간주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정주하는 변두리가 자본주의적 삶의 양식에서 배제된 불안정, 궁핍, 무질서, 비도덕, 비윤리적인 타락한 성벽처럼 묘사되었다는 점 [8] 을 감안할 때, 영화 <꼬방동네 사람들>에서 재현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전두환 정권 수립 초기 사회 안정을 추구해야 하는 상황에서 허용될 수 없는 것이었다.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 © 코리아씨네마 이러한 점은 영화의 검열서류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원래 오리지널 시나리오는 원작 소설 속 ‘검은 장갑’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검은 장갑’ 명숙을 주인공으로 삼아 주요 인물들의 삶을 충실하게 재현했다. 그러나 문화공보부 산하 공연윤리위원회는 “전체적으로 서민 생활을 절망적으로 표현하고 있고 도박 등 사회악을 합리화하여 구체적으로 묘사함으로써 공서 양속과 사회 질서를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서민층 묘사에 있어 가급적 훈훈한 인정미를 부각시키고 착한 의지로 살아가는 모습에 역점을 둠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구체적으로는 “비속한 대사가 많고 가정(사회) 윤리 저해 장면, 소매치기 장면, 도박 장면, 사기 장면” 등이 문제가 되었다. [9] 결국 시나리오는 대폭 개작되었다. 이후 신고한 시나리오는 “공서 양속과 사회 질서를 저해할 우려가 있는 부분은 전체적으로 삭제”했다. 대신 “비록 고난과 역경의 현실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결코 불의에 타협치 않고 밝은 내일을 향해 참되게 살아가려 노력하는 그들의 착한 의지와 인정이 넘치는 삶의 현장을 영상으로 옮김으로써 원작 소설이 주는 어두운 이미지를 밝게 승화시켜 사회 계몽적인 작품을 제작했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10] <꼬방동네 사람들> 심의서류 “극영화 제작신고에 대한 회신” 중 그러나 이러한 노력도 충분하지 않았다. 공연윤리위원회는 “전체적으로 서민 생활의 부정적인 면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으며 가정 윤리(순결성)를 저해할 우려가 있다”라고 판단, 또다시 제작사에 개작을 요구했다. 문제 장면으로 제시된 “가정윤리(순결성) 저해 장면, 청소년의 건전한 생활 태도 함양 저해 장면, 사회 비리 고발 장면이 전체 장면 126씬 중 29%인 36씬”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11] 대대적인 개작을 요청한 것이다. 결국 제작사는 “시나리오를 전체적으로 재검토, 대폭 순화하여 계도적인 작품으로 개작”해야 했다. 이로써 공연윤리위원회로부터 “서민 생활의 부정적인 장면 묘사를 절제하고 가정 윤리를 저해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하는 한편” 몇 가지 문제 장면을 삭제하는 조건으로 제작을 허가받기에 이른다. [12] 요컨대 시나리오 개작 과정은, 비교적 소설 원작에 충실했던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계몽’과 ‘사회 정화’라는 주제 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내도록 바꾸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계몽의 내용은 영화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재현되었는가. 1980년대가 요청한 서민 가족의 삶 영화 <꼬방동네 사람들>의 시나리오 개작과 영화 제작 과정에서 변화된 부분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빈민촌을 배경으로 살아가던 마을 사람들의 삶이 대거 축소되는 대신 검은 장갑 명숙( 김보연 )과 그녀의 전남편이자 아들 준일( 이재진 )의 아버지인 주석( 안성기 ), 그리고 현 남편이자 살인자인 태섭( 김희라 )이 주축이 된 가족 이야기가 극의 중심을 차지한다. ‘배감독이 당초 원작이 지닌 강한 사회성과 패기의 메시지를 그대로 영화화하려 했으나 공연윤리위원회로부터 네 차례나 개작 지시를 받아 다소 감상적으로 굴절된 느낌’ [13] 이라고 평가한 것도 가족 이야기가 애정 관계와 얽히면서 영화 속에 두드러지게 재현된 점과 관련된다. 둘째, 오리지널 시나리오에서는 검은 장갑 명숙이 홀로 주석의 아이와 빈민촌에 남는 걸로 끝난다. 그러나 영화에서 검은 장갑보다 더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는 것은 주석이다. 영화는 주석이 과거 소매치기였던 삶을 청산하고 가족을 책임지는 가부장으로 거듭나도록 한다. 가령, 영화에서 ‘가족 사진’을 고이 간직한 채 명숙과 준일 주변을 맴돌고 “남자한테 가정이란 자기 몸보다 중요한 거야”라고 말하며 명숙에게 기회를 달라고 간청하거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꼬방동네를 떠나는 명숙과 준일을 자신이 운전하는 택시에 태우는 주석의 모습 등은 소설과 오리지널 시나리오에는 없는 새로운 장면들이다. 이로써 영화 <꼬방동네 사람들>은 당대 정권이 승인하고 요청했던 서민 가족의 모습을 보여 주는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 코리아씨네마 실제로 1960년대부터 1980년대로 이어지는 근대화 과정에서 남성은 가족을 이끄는 권위의 상징이자 사회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산업 역군이었다. 주석은 그러한 현실 가부장의 문화적 판본이었다. 특히 아버지 없이 방황하는 준일의 모습이 영화 속에서 유난히 강조되는 이유는 주석의 윤리적 책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다. 가부장으로서 주석에게는 준일을 훈육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태섭이 살인의 공소시효 만료를 앞두고 자수하기 위해 떠나는 것도 주석 가족의 삶이 사회적 안정과 질서의 초석이 될 수 있도록 한다. 이로써 영화는 1980년대 사회 안정과 근대화를 겨냥하는 계몽적인 가족 영화로서 대중과 만나게 된다. 한편, 당시 이루어진 문화 검열 과정에서 언급되지는 않았으나 관심을 가질 만한 부분이 있다. 바로 영화 속 빈민촌과 아파트의 풍경이다. 사실상 공간이 영화 속에서 가족 이야기에 영향을 미칠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설 원작에서 드러나듯이 도시의 변두리 빈민촌은 더 이상 밀려날 데가 없는 도시 서민들의 생존을 결정짓는 중요한 장소였다. 소설만큼은 아니지만 영화 속에서도 서민들이 살아가는 변두리 빈민촌의 풍경은, 가까운 거리에 들어서 있는 아파트의 모습과 대비되어 주변화되고 가난한 사람들의 현실을 시각화했다. 나아가 ‘이러한 대비적 장면은 그 자체로서 이미 도시 공간의 구조와 그 이면에 내재되어 있는 사회 구조의 모순을 드러냈다.’ [14] 그런데 당시 아파트가 근대화의 상징이었다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따라서 주석을 중심으로 새롭게 꾸려질 가족에게 멀리 보이는 아파트는 어쩌면 그들이 당도할 미래의 안락한 가족 공간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아파트’와 ‘빈민촌’의 선명한 대비는 양가적인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작가 황석영은 소설 『꼬방동네 사람들』의 ‘발문’에서 이 작품을 두고 작가 이동철이 스스로 판자촌에서 살아오는 동안 겪고 본 자기 동네 사람들의 삶을 담담하게 엮어낸 것이라고 말했다. [15] 당대 삶의 현장성을 획득했던 소설은 출판 시장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영화는 달랐다. 배창호 감독의 야심에 찬 데뷔작은 사회 안정에 도움이 안 되는 문화 생산물로 여겨졌다. 영화는 집단 대중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매체였던 만큼 다른 문화예술에 비해 엄격한 관리가 필요했다. 따라서 당대 문화 계몽은 현실의 모순이나 불합리를 드러내기보다는, 일반 대중이 공감할 만한 서민 가족의 삶을 통해 근대화의 욕망을 환기하는 것에 가까웠다. 게다가 영화 속 메시지는 근대화의 긴 터널을 통과하던 대중의 욕망과도 공명하는 데가 있었다. 따라서 영화 <꼬방동네 사람들>은 1980년대 근대화를 위해 문화적 에너지를 공급했던 영화의 역할과 대중 욕망의 양상, 그리고 문화 제도를 전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라는 점에서, 현재에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 코리아씨네마 *** [1] “사회의 아픔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충격적인 베스트셀러 현암사가 이 시대의 양심에 호소하는 세 권의의 장편소설!”, 《경향신문》, 1981. 9. 28. [2] “새로운 메시지 담은 3편의 영화”, 《동아일보》, 1982. 7. 23. [3] “<꼬방동네 사람들> 제작 완료 기구한 운명 헤치는 여인 그려”, 《경향신문》, 1982. 7. 15. [4] “제작자협 당국 영진공 불황 타개 간담회 ‘영화 제작 행정 규제 융통성을...’”, 《경향신문》, 1982. 5. 3. [5] 위의 글. [6] 김동호 외, 『한국영화 정책사』, 나나출판, 2005, 258~259쪽. [7] 이동철, 『꼬방동네 사람들』, 현암사, 1981, 7쪽. [8] 김원, 『박정희 시대의 유령들』, 현실문화, 2011, 107쪽. [9] 한국영상자료원 소장 심의 서류 참조. [10] 한국영상자료원 소장 심의 서류 참조. [11] 한국영상자료원 소장 심의 서류 참조. [12] 한국영상자료원 소장 심의 서류 참조. [13] “새로운 메시지 담은 3편의 영화”, 《동아일보》, 1982. 7. 23. [14] 정태수, 「1980년대 한국 영화에서의 생산의 공간(1980-1987)」, 『글로컬 시대의 한국영화와 도시 공간Ⅰ(1980-1987)』, 박이정, 2018, 28쪽. [15] 이동철, 앞의 책, 372쪽. 한영현(세명대학교 교수, 영화연구자) l 한국영화사에 관심을 가지고 주로 전후 영화 작품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한국영화학회 편집위원과 학술이사, 《현대영화연구》 편집위원, 영상문화지평연구소 편집위원장 등 역임. 『냉전의 시대, 유랑하는 타자들: 한국 영화에 나타난 타자성의 문화 정치』(2022), 「생명⋅기술⋅공간의 삼중주: 봉준호 감독 <미키17>(2025)을 중심으로」 등 집필. 『글로컬 시대의 한국영화와 도시공간』(2018) 등 공동 집필.
<찬실이는 복도 많지> 중 영화에 대해 쓰고 말하는 사람들이 영화와 비평 사이에서 고민해온 시간을 들려줍니다. 그러다가 떠오른, 한국영화에 대한 감상도 꺼내봅니다. 영화의 위기라는 수사가 익숙해진 지금, 영화 비평 그리고 영화 비평지의 지속 가능성 역시 요원한 것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햇수로 5년간 총 17권의 책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연말연시가 두렵다. 새해가 밝아 오면 그해에 다룰 영화들을 독자들 앞에 선보여야 하는데, 영화관에 가는 일조차 드물어진 시대에 영화 비평을 읽는 일이 쉬울 리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독자들을 만족시키고 안정적인 판매량을 담보하며 업계의 사정 또한 해치지 않는 작품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에 가깝다. 그 과정에서 내가 꼭 다루고 싶은, 혹은 꼭 다루어야 한다고 여겨 온 작품이 누락되는 경우는 그야말로 허다하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 일을 하는 걸까, 이 일은 영화 산업의 어디쯤에 놓여 있는 걸까? 영화를 업으로 삼는 삶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김초희 감독의 < 찬실이는 복도 많지 >(2019)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예술영화 PD로 일하던 찬실( 강말금 )은 영화 인생 내내 따르던 지 감독( 서상원 )이 사망한 후 망연자실한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속세(?)를 떠나온 찬실은 영화 없이 여생을 보낼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 과정에서 소피( 윤승아 )와 김영( 배유람 ), 하숙집 할머니( 윤여정 )와 장국영( 김영민 )을 만나는 찬실은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치열한 삶의 양식 또한 마주한다. 그리고 결국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이의 삶과 관계가 우선하는 가운데, 영화도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니까 그게 뭐 허는 사람이냐고.” 지 감독의 죽음 이후 찬실은 달동네에 위치한 하숙집에 숨어든다. 어느 날 그곳의 주인 할머니는 찬실에게 어떤 일을 했었냐고 묻는다. 찬실은 허둥대며 영화 PD가 하는 일을 설명하려 하지만, “그러니까 그게 뭐 허는 사람이냐고”라는 퉁명스러운 답변만이 되돌아올 뿐이다. 조금 우습게도 나는 이 장면을 보며 찬실과의 동질감을 느꼈다. 나의 가족과 친구들은 여전히 내가 하는 일을 잘 모른다. 나를 만날 때면 ‘너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거냐,’ ‘언제 옳게 된 직장을 잡을 거냐’고 묻는다(‘옳게 된 직장’이 어떤 직장인지는 잘 모르겠다). 질문을 받은 나는 영화와 비평을 둘러싼 이런저런 일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같은 영화를 수십 번 보고, 그 영화에 대해 해야 할 이야기들을 구조화하고, 그것을 멋지게 써낼 수 있는 필자들과 소통하고, 그들이 쓴 글을 보기 좋게 다듬어 독자들 앞에 내어놓는 일이라고. 종국에는 찬실처럼 멋쩍게 웃으며 “저도 이제 잘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하게 되지만 말이다. 프리즘오브 33호 《작은 아씨들》을 제작하며 “프리즘오브 작업은 어떤 영화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이 일을 하다 보면 개인적 취향으로 인해 다루고 싶지 않았던, 혹은 비평적 측면에서 논할 지점이 적다고 생각했던 작품을 선정하게 되어 곤란할 때도 있다. 하지만 한 영화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돌려 보고, 그에 대한 수많은 말들을 뒤적이다, 그것을 사랑하는 이들과 소통하고 있자면 그 영화의 사랑스러운 부분들이 자연스레 떠오르기 마련이다. 또한 그 작품이 내가 살아가는 이곳, 누군가가 살아온/살아가는/살아갈 저곳과 얼마나 깊이 맞닿아 있는지도 깨닫게 된다. 그러니까 나는 영화 비평을 엮어 책으로 만드는 일을 통해 영화에 대한 숱한 이들의 사랑을, 그리고 영화가 일종의 유기체라는 사실을 확인하곤 하는 것이다. “영화는 숫자가 아니야, 별 하나 별 두 개도 아니야.” 김영과 찬실 새 영화의 크랭크인을 앞두고 고사를 지낸 지 감독은 술에 흠뻑 취해 말한다. “영화는 숫자가 아니야, 별 하나 별 두 개도 아니야.” 이런 지 감독과 오랜 시간 작업해 온 찬실은 자신을 알아주는 이 없는 생활 속에서 지독한 외로움을 느끼며 김영과의 로맨스를 꿈꾼다. 하지만 김영은 오즈 야스지로가 아닌 크리스토퍼 놀란을 좋아한다 말하고, 찬실은 경악한다. 나도 한때 지 감독, 그리고 찬실과 같은 생각을 가졌던 적이 있다. 영화에는 숫자 따위로 가치를 매길 수 없으며, 돈 같은 것에 얽매여 비평을 써서는 안 되고, 예술영화가 대중영화보다 더 ‘옳은’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애당초 예술영화란, 대중영화란 무엇인가?) 그러나 누군가에게 영화는 숫자고, 누군가에게 영화는 별 하나, 별 두 개다. 누군가는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누군가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를 좋아한다. 때에 따라 영화를 숫자로 평가할 수도 있는 거고, 삶이 필요로 하기에 돈을 위해 비평을 쓸 수도 있는 거다. 물론 그것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소 아이러니하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프리즘오브의 편집장직을 맡은 후 이와 같은 생각을 갖게 되었다. 나는 상당히 내향적인 사람이다. 요즘 말로 하면 ‘대문자 I’랄까. 처음 편집장 자리를 제안 받았을 때 막연히 나의 천직일 것이라 예상했던 이유 중 하나는 방에 틀어박혀 내가 좋아하는 영화만을 파먹을 수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영화 비평지 편집장은 오히려 그와 정반대에 놓여 있는 직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매 호 다른 필자들과 소통하고, 인터뷰이를 만나고, 독자(의 반응)와 마주해야 하는 일이 산재해 있었다. 나에게는 유난히 어려운 미션이었지만 그들과 만나야만 했기에 영화와 숫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며, 세상에는 이런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도, 저런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저마다의 의미를 갖는다는 점 역시 깨달았다. “반지하도 아니고, 사각형도 아니고.” 그렇다면 다시, 나의 일은 복잡하게 맞물린 영화 산업의 톱니바퀴 속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 걸까. 프랑수아 트뤼포는 영화를 사랑하는 일에 관해 “영화를 사랑하는 첫 단계는 두 번 영화를 보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영화에 관한 평을 쓰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 이상은 없다”라고 말했다. 나의 영화 사랑은 ‘반지하도, 사각형도 아닌’ 찬실이의 방처럼 애매모호한 위치에 놓여 있다. 영화에 관한 평을 쓰는 일도 아니고, 영화를 만드는 일도 아니다(물론 영화를 보는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영화에 관한 평을 쓰는 이들과도, 영화를 만드는 이들과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트뤼포 귀신이 내 앞에 나타난다면 나의 영화 사랑은 두 번째 단계와 세 번째 단계 사이 그 어디 즈음에 놓여 있다고 말해 주지 않을까? 누군가는 ‘애매모호한’ 나의 일을 폄하할지도 모른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속 제작사 대표( 최화정 )가 “찬실이 같은 PD가 없어도 영화는 만들어진다”라며 찬실의 노고를 몰라봤던 것처럼. 하지만 나는 오늘도 누군가의 글을 읽고, 고치고, 묶는다. 내 이름을 내세우지 않지만 그 글이 더 많은 사람에게 가닿을 수 있도록 양지바른 자리를 다진다. 제작자와 비평가, 비평가와 관객, 관객과 제작자를 연결하는 것. 그것이 바로 ‘애매모호한’ 나의 일이다. 찬실이 선행하는 삶 속에 놓인 영화를 발견하였듯, 나 역시 이제는 안다. 영화와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한, 나의 일 역시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을. 프리즘오브 33호 <작은 아씨들>, 34호 <너와 나>, 특별호 <헤어질 결심>, <파묘> 안정윤(프리즘오브 편집장) l 페미니즘과 영화, 영화제 등에 관심을 갖고 그에 관한 글을 쓴다. 계간 영화잡지 《프리즘오브》 편집장. 서울여성독립영화제 집행위원.
사이버 세상에 대한 몽상 일주일 내내 밤을 샜다. 조너선 크레리의 [24/7 잠의 종말]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집에 책이 없었다. 어차피 읽을 시간도 없었다. 언제부턴가 집에서 책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책장 구석에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포털이 있는 건 아닌지 의심될 정도다. 처음에는 누군가에게 빌려주고 돌려받지 못한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에게 책을 빌려준 게 언제였더라? 정지돈에게 프랭크 커머드의 절판된 [종말 의식과 인간적 시간]을 빌려준 건 기억나는데. [유령과 파수꾼들](2018) 출간 기념으로 유운성 님과 함께 북토크를 하느라 그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아닐 수도 있고. 분명한 건 아직 책을 돌려받지 못했다는 건데, 괜찮아요 지돈 씨… 그런데 정말 그 행사는 뭐였을까? 나는 구글에 ‘유운성 정지돈 북토크’라고 쳐보았지만 내가 찾는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이라고 할까? 에이아이는 내게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사람들’과 ‘Kmdb 정지돈’이라는 관련 검색어를 제시해주었는데,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유운성 님을 뵈었을 때 조너선 크레리 책을 번역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게 떠올랐고, 세상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다만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을 뿐이다, 하는 생각도 든다. 신이 있다고 해도 아마 그것을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무언가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건 에이아이가 유일하지 않을까. 요 며칠 트위터에서 화제를 모았던 n행시 짓는 에이아이가 지은 삼행시를 보면 심증은 더 강해진다. 허공에의 질주 내가 밤을 샌 건 김쿠만과 나일선의 소설집에 해설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두 작가의 작품 모두 영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는데, ‘개들만이 안달루시아에서 산다’라는 단편으로 시작하는 나일선의 소설집에는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루이스 부뉴엘, 리차드 라우드, 앙리 랑글루아, 차이밍량, 장 뤽 고다르, 장-마리 스트로브 같은 영화인들의 이름들이 이어진다. 네이버에 검색하면 AI가 알아서 김주만이라고 정정해주는 김쿠만이라는 이름은 실은 쿠엔틴 타란티노와 이만희에게서 한 글자씩 빌려온 것이다. 어차피 돌려주지 않을 것을 빌렸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지돈 씨… 덕분에 나는 [축음기, 영화, 타자기](프리드리히 키틀러), [소리의 정치](이화진), [경성과 도쿄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정충실), [영화와 소리]와 [영화의 목소리](미셸 시옹)처럼 영화에 관련된 책들을 읽고, [글쓰기 사다리의 세 칸](앨런 식수), [음악 인류](대니얼 J. 레비틴), [사탄 박사의 반향실](루이 추데 소케이), [역사](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 [내용 없는 인간](조르조 아감벤), [아케이드 프로젝트](발터 벤야민), [미래가 사라져갈 때](자넷 폴), [레트로 마니아](사이먼 레이놀즈), [리믹솔로지에 대하여](데이비드 건켈), [소설의 이론](게오르그 루카치), [미래 이후](프랑크 베라르디 ‘비포’), [자본주의 리얼리즘](마크 피셔), [허구세계의 존재론](미우라 도시히코)처럼 영화와 큰 관련은 없는 책들을 읽었지만 원고는 쓰지 못했다. 언젠가부터 비평, 평론, 해설, 뭐라고 부르건, 다른 사람들의 작품에 대해 쓰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고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 작품에 대해 말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말하지 않기. 둘. 최후의 최후까지 마감을 미루고 있다가 더는 미룰 수 없는 순간이 닥치면 눈을 감고 후다닥 써버리기. 한기 씨는 글이 안 써지면 눈을 감고 쓴대요, 언젠가 정지돈은 내게 말했고 그것은 분명 효과가 있다. 가끔(실은 자주) 내가 무엇을 쓰는지 나조차 몰라야 글을 쓸 수 있는 때가 있는 것이다. 중력을 모르기 때문에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처럼. 나는 지금 <루니 툰Looney Tunes>의 로드러너와 와일 E. 코요테의 클래식 루틴을 떠올리고 있다. 배고픈 코요테는 호시탐탐 로드러너를 노리지만 잡을 수 없다. 로드러너가 너무 빠르기 때문이다. 무슨 방법을 써도 로드러너의 발끝도 못 쫓아가던 코요테가 로드러너를 앞지르는 순간이 오는데, 그건 로드러너가 절벽 앞에서 급제동을 할 때다. 절벽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코요테는 걸음을 늦추지 않고, 로드러너를 지나쳐 허공으로 질주(Running On Empty)한다. 짧은 순간이지만 그때 코요테는 의기양양하고, 자신감에 차 있으며, 공중에 떠 있다. 자신이 공중에 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기 전까지는. 비극 주인공이 종국에 도달하는 앎은 자신의 불행을 낳은 오류에 대한 앎이었다, 라고 랑시에르는 [모던 타임스: 예술과 정치에서 시간성에 관한 시론]에서 말한다. 나는 내가 공중에 떠 있어도 절대 모를 거야. 꿈에도 모를 거야, 라고 TV를 보던 어린 나는 다짐한다. 정지돈의 말마따나 내가 “대체로 정신이 나가 있다고 할 수 있다”면 아마 내가 어린 시절의 다짐을 아직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연과 상상 1) 어제와의 이별 - 김쿠만 해설의 결말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아 괴로워하며 트위터 타임라인을 새로고침 하고 있는데 나일선의 트윗이 보였다. 언제나처럼 영화 이미지 두세 컷과 직접 찍은 책의 구절(혹은 부감으로 찍은 커피잔)의 이미지를 데쿠파주한 잠언풍의 트윗이었다. 첫 두 장은 검은 화면 위에 적힌 독일어 문장의 이미지였는데, 그 아래 “우리를 어제와 이별하게 만드는 것은 / 균열이 아니라 위치의 변화다”라는 한글 자막이 달려 있었다. 이건 어디에 나오는 거죠? 나는 나일선에게 멘션을 보냈고, 알렉산더 클루게의 어제와의 작별 시작 부분입니다, 라는 친절한 답을 받았다. 그때 나는 비로소 며칠을 끌어오던 김쿠만 해설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마지막 단락은 이렇게 시작한다. “알렉산더 클루게의 영화 < 어제와의 이별 >(1966)은 “우리를 어제와 이별하게 만드는 것은 균열이 아니라 위치의 변화다”라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그것이 김쿠만이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을 통해 하는 일이다…” 2) 메멘토 - 이번 ‘한영한사’는 시간에 대해 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영화가 시간을 공간으로 바꾸는 픽션의 한 형식이기 때문이다. 내게는 시간이 없고, 가난한 사람이 돈을 생각하듯 내가 시간을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물론 돈도 생각하고… 그런 생각으로 트위터 타임라인을 보고 있는데, 내가 지난해 12월 4일에 ‘한영한사’ 업데이트 소식을 알리며 “쇼미는 끝났지만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은 여전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지 못한 것 같네요 이번 화에서는 자비스 코커와 토니 블레어와 노엘 갤러거와 벤앤제리가 혼톨로지 음악의 리듬에 맞춰 노래합니다 그래요 뮤지컬이죠”라고 쓴 트윗을 누군가 리트윗 했다는 알림이 떴다. 뜬금없이? 이 시대를 살아가며 SNS를 하는 다른 많은 작가들처럼 혹시 내가 무슨 말실수라도 했나? 그게 지금 털린 건가? 벌벌 떨며 링크를 클릭해 ‘한영한사’ 9화를 읽었는데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대신 나는 내가 이번 화에 쓰려던 모든 것을 그때 이미 써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알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론적으로 순수한 선행 기억상실’이라는 소제목을 붙인 단락을 나는 이렇게 쓰고 있었다. 모든 것은 시간 문제다. 요즘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원고를 마감하는 것도 시간 문제고, 밀린 책을 쓰는 것도 시간 문제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우리의 영화도 마찬가지다. 돈? 물론 중요하지. 그렇지만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다. 그러니까 시간이 있기만 하다면. 시간과 관련된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시간과 관련된 문제는 또 있다. 뭘 보고 듣고 읽고 생각하건 약간의 시간만 흘러도 까맣게 잊혀진다는 사실이다. 정지돈이 말하는 몇몇 고유명사들은 나도 익히 아는 것들이었다. 나는 프리드리히 키틀러의 [축음기, 영화, 타자기]를 읽었을 뿐만 아니라 역자 유현주 선생을 모시고 출간 기념 북토크를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내용은 내개 전혀 새롭게 들렸다. 혼톨로지? 물론 알지. 사이먼 레이놀즈의 [레트로 마니아]와 마크 피셔의 [자본주의 리얼리즘](물론 혼톨로지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책은 아니지만)을 두어 번은 읽었으니까.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도 읽었다. 반쯤. 나원영과 강덕구가 번역한 마크 피셔의 글들도 읽었고, 큰 상관은 없지만 베리얼의 첫 두 앨범을 최근 LP로 구입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째서 이것들은 내게 매번 새롭게만 느껴지는 걸까… 3) 긴 복도 그렇다면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새롭게 하자, 지금껏 내가 한 번도 가져오지 않았던 레퍼런스를 가져오자, 나는 생각했고 조너선 크레리의 [24/7 수면의 종말]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집에 책이 없었다. 아무리 찾아도 책은 보이지 않았고, 책장 구석에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포털이 있는 건 아닌지 투덜거리면서 트위터 타임라인을 보고 있는데, 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과 e-flux가 연계 온라인 상영을 해서 정여름의 < 긴 복도 >를 볼 수 있다는 트윗이 올라왔다. 나는 링크를 따라 e-flux에서 <긴 복도>를 플레이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책들이 사라지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환상의 빛 김쿠만 해설, 나일선 해설, 한영한사, 그리고 정지돈 작가론까지… 4중의 마감에 시달리다 정지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내 전화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국 영화 속 싸대기 액션, 혹은 액션으로서의 싸대기에 대해서. 혹시 그건 제 싸대기를 때리고 싶다는 뜻인가요? 나는 묻지 않았다. 마감에는 여러 가지 부작용이 있는 데 그중 하나는 크고작은 피해망상에 빠지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지돈은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싸대기는 할리우드에는 없는 한국의 고유한 액션입니다. 그것의 목적은 단순히 상대를 제압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계도 나아가 계몽의 수단인 거죠. 정연씨, 모르시겠어요? 뺨을 맞으면 눈 앞에 빛이 번쩍하는 빛이 바로 계몽의 빛이라는 걸! 라이트 오브 엔라이트먼트(Light of enlightenment)! 과거에 싸대기는 부정적인 액션이었습니다. ‘아부지 뭐하시노?’라는 김광규의 대사, 그리고 이어지는 무자비한 싸대기를 떠올려보세요! 그때 싸대기는 권력의 부조리하고 억압적인 폭력을 상징했습니다. 하지만 어느새 그것은 참교육이라는 이름의 사이다가 되어버렸죠. < 베테랑 >이 천만 관객을 넘은 건 황정민이 유아인의 뺨을 때리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장면에 아트박스 사장으로 나오는 마동석을 기억하세요. 황정민에게 바통을 이어받은 마동석이 싸대기 액션의 대명사가 되어 헐리우드까지 진출한다는 사실을요! -하지만 싸대기는 김치 싸대기 아닌가요? -뭐요? -김치 싸대기요. -그게 뭐죠? -김치 싸대기라고요 지돈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그러니까 미래는 드라마다. 정서경 작가가 각본을 쓴 드라마 <작은 아씨들>의 티저 예고편을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짧은 영상을 통해 내가 파악한 바로는 가난하지만 구김살 없이 살아보려는 세 자매 앞에 어느날 700억이 든 가방이 나타나고 가질 것인가 돌려줄 것인가 고민하는 사이 사건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리게 된다는 내용인 것 같았다. 이건 드라마보다는 영화에 어울리는 시놉시스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던 기억도 난다. 그래서 의아하다기보다는 더욱 기대가 됐다. 지난 원고에서 정지돈은 맨날 보는 애들만 보면 뭐하냐, 안 볼 사람도 봐야 진짜 예술이지, 그래서 문학은 끝났고 영화는 아직 가능성이 있다, 라는 임재철 님의 말씀을 인용했다. 내 생각은 다르다. 기나긴 팬데믹을 거치며 영화 역시 이제는 보는 사람만 보는 매체가 되어 가고 있다. N차 관람러들 아니었으면 내 인생은 공허했을 거라는 박찬욱의 말을 떠올려보라. ‘그’ 박찬욱의 영화도 거듭 관람하는 팬들이 아니었으면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을 것이다. 나만 해도 그렇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영화는 거의 보지 않지만, 올해 본 드라마만 해도 벌써 <스물다섯 스물하나>(마지막 두 편은 안 봄), <우리들의 블루스>, <나의 해방일지>, <우린폭망했다wecrashed> 그리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까지. 모두 더하면 영화를 최소한 40편은 볼 수 있었을 시간이다! 마담 보바리, 그것은 바로 나다, 라고 플로베르는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바로 대중이라고 말해야겠다. 지금보다 어리고 민감하던 시절엔 나도 내 취향이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안다. 내 취향은 정확히 대중적이라는 것을, 다만 남들보다 조금 느릴 뿐. 요즘 내가 즐겨 듣는 노래는 2010년대의 히트곡들이다. 정작 그때는 그게 히트했었는지도 몰랐던…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인생) 마감 때문에 마음이 소금밭인데 홍대에 갔다.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진행하는 영화인 교육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오진우 평론가의 오디오비주얼 필름 크리틱 특강. 길지 않은 특강이었지만 오디오비주얼 필름 크리틱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특히 오디오비주얼 필름 크리틱을 직접 제작하는 사람으로서의 경험담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던 점이 특히 좋았다. 오디오비주얼 필름 크리틱의 위상이 너무 애매해서 만들다 보면 차라리 글을 열심히 쓰거나, 영화를 만들거나, 유튜버가 되거나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는 것 같은 부분이… 한국의 오디오비주얼 필름 크리틱의 역사와 현황을 일별하는 와중에 박유정의 <The Futures of Future 1>, 정여름의 <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 > 같은 오디오비주얼 필름 크리틱 작품뿐 아니라 김병규 평론가 같은 분들이 [씨네21] 지면을 통해서 이미지들과 텍스트를 병치시키며 그 자체로 오디오비주얼 필름 크리틱에 대한 스크립트가 될 수 있는 작업을 한 것들을 예로 들며 우리의 ‘한영한사’가 지나가듯 언급되기도 했다. “그리고 정지돈 작가와 금정연 작가가 연재하고 있는 ‘한국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이 있는데… 거의 유일하게 오디오비주얼 필름 크리틱을 이야기하시는 분들이죠. 글쎄요, 영상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데, 뭐랄까, 영상화가 되기를 바라지만… 이루어지기는… (크흡) 모르겠습니다…” 오진우 평론가가 최근에 하고 있는 오디오비주얼 필름 크리틱 작업도 잠깐 소개했는데, 매일매일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모은 <덧 없는 이미지들>(2022)도 그렇고 아이폰으로 직접 촬영한 영상만으로 만든 <영상자료원 가는 길>(2022)도 그렇고, 다른 영화의 장면들을 직접적인 재료로 하지 않는다는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이 글을 통해 비슷한 시도를 하고 있는 중이다. 엥? 어느 부분이? 라고 되물으신다면… 한국 영화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인용)을 하지 않는다는 부분이…? (*출처: 오진우 평론가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jinu_montage/222855477268 )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지돈 씨에게, 우리가 통화한 게 화요일이던가요? 전화를 끊기 전에 제가 그랬죠. 지돈씨 걱정마세요, 10시까지 제가 김쿠만 해설 쓰고 아침 닭이 세 번 울 때까지 한영한사 원고 써서 보내드릴게요. 그러니까 와, 좋아요, 하더니 이렇게 물었잖아요. 근데 정연씨, 여태까지 그렇게 생각하고 실제로 그렇게 했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어요? 그때도 말했지만 있습니다. 최소한 한 번은, 어쩌면 두 번쯤, 생각을 백 번 했다면 그중에서… 지금은 금요일 아침이고 저는 오늘도 밤을 꼬박 새고 말았네요. 그렇지만 김쿠만 원고에 이어 이렇게 한영한사 원고도 마감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제가 그랬잖아요. 저는 무척 대중적인 사람인데 단지 조금 느릴 뿐이라고. 원고도 마찬가지에요. 저는 마감을 칼 같이 지키는 사람입니다. 단지 조금 느릴 뿐이죠… 사실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고 싶었습니다 아시겠지만 지돈씨가 좋아하는, 그리고 저도 좋아하는 요아킴 트리에의 신작을 개봉하는 날이었거든요. 게다가 트위터를 보니(이번 원고에 트위터란 말이 몇 번이나 나오는지 정말 알고 싶지도 않네요) 아트나인 9관에서 8시에 영화를 관람하는 모든 관객들에게 <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 모자를 준다고 하는 게 아니겠어요? 무척이나 예쁜 초록색 모자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극장에 가지 않았어요. 그리고 이 원고를 썼죠. 결과적으로는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나일선 해설과 정지돈 작가론 두 개만 남았으니까요. 하하. 가끔은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누구도 잘못하진 않았어요. 저도 알아요. 제가 궁금한 건, 그렇다면 왜 저는 매일 이렇게 고통을 받아야 하는 걸까요? 가끔은 정말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쓸데없는 말이 너무 길어졌네요. 하지만 너무 걱정마세요. 지돈씨 원고의 도입부는 벌써 생각해두었거든요. [롤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에 붙인 나탈리 레제의 서문의 한 구절을 인용하려고 합니다. 이런 부분이에요. 바르트가 죽었을 때 그의 타자기 위에는 스탕달에 대해 진행하던 연구의 원고 한 장이 끼어 있었고, 그 제목은 "인간은 항상 자기가 사랑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데 실패한다......"였다. 이만 총총. (*출처: 그린나래 미디어 트위터 https://twitter.com/greennaraemovie )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7) , 금정연, 2021.10.08. 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8) , 정지돈, 2021.11.05. 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9) , 금정연, 2021.12.03. 1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0) , 정지돈, 2021.12.31. 1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1) , 금정연, 2022.03.02. 1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2) , 정지돈, 2022.03.30. 1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3) , 금정연, 2022.05.11. 1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4) , 정지돈, 2022.06.10. 1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5) , 금정연, 2022.07.08. 1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6) , 정지돈, 2022.08.03. 1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7) , 금정연, 2022.08.31. 1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8) , 정지돈, 2022.10.14. 1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9) , 금정연, 2022.11.11. 2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0) , 금정연, 2022.12.07. 2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 정지돈, 2022.12.15. 2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2) , 정지돈, 2022.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