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
- 감독
- 테리 리 코커
- 제작년도
- 2018
- 출연
- 루이스 커크, 클라우디아 그레이스 맥켈, 마이클 맥켈, 스티븐 복서, 놀린 코미스키
홀로코스트 영화는 윤리적 재현과 관련해 오랫동안 아방가르드의 위치를 점해왔다. 미학적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던져졌고 홀로코스트 영화들은 이에 자의적, 타의적으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절멸이라는 끔찍한 폭력을 구체적으로 시청각화 하는 것은 어떠한 효과를 낳는가, 인과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폭력을 서사화할 수 있는가, 목격자가 없거나 말하기 힘든 경우 (예를 들면, 가스실) 증언과 기억은 어떻게 기록될 수 있는가, 과거는 어떻게 현재와 대화를 나누고 기억을 상속할 수 있는가, 트라우마의 고통 속에 놓인 생존자들의 증언은 어떠한 형식으로 가능한가, 관객들의 동일시와 공감은 어떤 강도로 이끌어 내는 것이 적절한가, 피해자·가해자·조력자·제삼의 목격자 들 중 어떤 시점을 선택할 것인가 등. < 밤과 안개 >(알랭 레네, 1955), <카포>(질로 폰테코르보, 1960), < 소피의 선택 >(알란 J. 파큘라, 1982), < 쇼아 >(클로드 란츠만, 1985), < 쉰들러 리스트 >(스티븐 스필버그, 1993), < 인생은 아름다워 >(로베르토 베니니, 1997), < 사울의 아들 >(라즐로 네메스, 2015), < 조조 래빗 >(타이카 와이티티, 2019) 같은 대표적 작품들을 거쳐 오며 각 질문과 관련해 새로운 미학적 선택이 쟁점화 되었고 역사적으로 홀로코스트 영화는 이전 영화와의 비교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무언가 새로운 영화적이고 윤리적인 미학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이 홀로코스트 영화들에는 있을 수밖에 없다. 관객들 또한 이전 영화와 관련된 쟁점을 인식하고 그에 근거해 영화를 보게 된다. 따라서 모든 홀로코스트 영화는 내외적으로 이전의 영화들을 적극적으로 매개하고 참조하는 미디어 고고학적 상태에 놓인다. 마틴 에이미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조나선 글레이저가 감독한 < 존 오브 인터레스트 >(2023) 역시 그러한 강박 속에 놓여있다. 영화는 새로운 위치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것을, 시각화 한다. 이제까지의 홀로코스트 영화가 수용소 및 피해자를 다양한 방식으로 가시화하는 선택을 했다면(평화로운 전원의 풍경과 다를 바 없는 기념관이 된 전후의 수용소를 보여준 <밤과 안개>, 방관자였던 폴란드 주민들의 변명을 듣고 있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를 화면에 담는 <쇼아>, 흐릿한 포커스 아웃과 좁은 주관적 시야의 제한적인 시각을 통해 목격의 의지를 영화화 했던 <사울의 아들> 모두를 포함할 수 있다), 글레이저 감독은 수용소가 아닌, 수용소 소장의 사택과 가정생활을 탐색한다. 아우슈비츠강제수용소 소장인 루돌프 회스(크리스티앙 프리에델)는 가족들과 함께 수용소 높은 담장 밖 바로 옆에 위치한 빌라에 거주하고 있다. 루돌프 회스는 아내인 헤트비히 회스(산드라 휠러) 그리고 다섯 아이들과 함께 단란한 가족을 꾸리고 있는 다정다감한 가장이다. 루돌프는 큰 아들에게 직접 승마를 가르쳐주고 잠 못 들고 집안을 돌아다니는 막내딸에겐 <헨델과 그레텔> 동화를 읽어준다. 그는 아내에겐 책임감 있고 유머러스한 남편이기도 하다. 헤트비히 역시 집안을 건사하고 정원을 아름답게 꾸미며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데 열정적이다. 전쟁 기간 동안 계급적 상승을 이뤄낸 회스 부부는 열심히 ‘일’한 대가로 얻어낸 것에 큰 자부심과 애착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수용소가 아닌 사택과 그 주변의 목가적인 풍경만을 집요하게 보여준다. 물론 그렇다고 담장 너머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 화장터 굴뚝의 연기와 냄새, 강물을 따라 흘러들어오는 재를 막을 수는 없다. 영화의 제목인 ‘관심/이익 지역’은 나치에 의해 몰수된 수용소 주변 토지를 일컫는다. 이들은 이 지역을 사택으로 사용하는 등 경제적 이익(interest)을 취했다. 이 영화에서 수영장과 아름다운 정원이 딸린 한껏 꾸며진 사택은 그 경제적 이득, 시각적 관심이 된다. 어떤 이미지의 관심 혹은 이익은 다른 이미지의 무관심/피해를 대가로 한다. 회스 부부는 바깥과 타자를 절멸시킨다. 가해자 가족의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은 수용소에 대한 철저하고 적극적이며 의식적인 무관심 혹은 비가시성과 교환된다. 이것이야말로 이미지의 정치경제이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가해자 일인이 아닌 그의 가족생활을 다루는 실내극이라는 점에서 이전에 가해자들을 주인공으로 했던 다른 영화들과도 변별된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이 영화는 젠더의 정치학이 된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아우슈비츠강제수용소에서 유태인 절멸 계획을 짜고 지휘한 루돌프 회스 만큼이나 그의 아내 헤트비히 회스를 주인공의 자리에 놓고 그녀의 선택과 행동을 상세하게 묘사한다. 그러면서 영화는 멜로드라마의 가족극, 혹은 < 잔느 딜망 >(샹탈 아커만, 1976) 같은 페미니스트 예술영화들이 실내 건축학을 통해 가족의 정치경제학을 영화적으로 전경화 했던 것처럼 집안과 그에 딸린 목가적 풍경, 그리고 그 안의 사람들의 동선이 끊임없이 시각적이고 경제적인 관심/이익의 교환체계에 놓여있음을 각인시킨다. 헤트비히는 루돌프에게 수동적으로 딸려 있는 부수적 이해관계자가 아니다. 헤트비히는 수용소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 정확히 알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모른 척하고 무관심한 채 유태인들의 죽음을 대가로 자신의 가족의 이익을 선택한다. 루돌프가 집안 거실에 앉아 가스실과 화장터 건축과 운영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만들어낼지, 즉 어떻게 사람들을 빠른 시간 내에 가능한 많이 살해할지에 대한 계획을 사업체로부터 듣고 논의할 때, 그리고 지상에서는 담장으로 가로막혀 있지만 지하에는 비밀통로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줄 때, 가족의 단란함을 포함해 중상층 가족이라는 계급적 유지가 근본적으로 집단학살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끊임없이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가해 행위와 결과로부터 그들 자신을 분리하려 한다. 루돌프의 청결에 대한 강박, 매일 밤 모든 방의 전등을 끄고 문단속을 하는 반복 일상, 외화면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화면 안을 가득 차게 보여주는 정원의 꽃의 클로즈업 쇼트들, 침대에 누워 부부가 함께 회상하는 이탈리아 휴가, 유태인 수용수의 모피코트 주머니 속 립스틱까지 꼼꼼하게 챙기면서 유태인들의 유품이 쌓여있는 장소를 ‘캐나다’로 부르는 철저함, 정원의 꽃 이름, 주변 숲의 새 이름을 자식들에게 알려주고 기억하게 하기 등. 신체, 시각, 언어, 사유의 차원 모두에서 깔끔하게 집단학살을 분리해 내려 한다. 하지만 헤트비히와 카메라의 보지 않으려는 회피, 혹은 적극적 무관심은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음에서 비롯된다. 이 모든 디테일, 안락과 아름다움은 학살에 기반 한다. 화장된 피해자들의 뼛가루로 키워낸 탐스러운 꽃들처럼 말이다. 그러나 완벽한 무관심, 외면은 불가능하다. 앎은 단순히 정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앎은 신체적이고 환경적이다. 소리, 빛, 냄새, 물의 흐름을 모두 통제할 수는 없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 대사들은 종종 J 또는 L 컷으로 편집된다. 앞 쇼트의 대사는 뒷 쇼트로 흘러넘치고, 뒷 쇼트의 대사는 앞 쇼트에 선재한다. 복도, 창, 문, 하늘, 강은 거부할 수 없는 신체적 앎이 통제를 벗어나 흘러 다니는 통로이다. 헤트비히는 일을 하느라 자신과 독일 장교 부인들의 앞을 지나가고 창 밖에서 일하고 있는 유태인 하녀와 하인들을 무시한다. 이들은 쇼트와 쇼트, 프레임 안과 밖을 사운드와 함께 넘나든다. 독일 장교 부인들이 유태인의 소지품을 어떻게 나눠가졌는지, 그들이 어떻게 끌려갔는지에 대한 농담을 하는 부인들의 대화는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창과 문 너머로 집 안에서 일하는 유태인들의 몸에 흘러 들어간다. 동시에 수용소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 또한 막지 못한다. 잠시 머물다 간 헤트비히의 엄마, 유태인 하녀들, 그리고 딸까지 모두 그 소리를 듣지만 회스 부부는 적극적으로 듣지 않는다. 관심지역은 적극적 무관심 지역을 통해 만들어 진다. 이 영화는 신체적 앎 그리고 알면서도 행하는 악의 적극성이 어떻게 회스 부부에게서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글레이저 감독이 마지막에 루돌프 회스의 구역질 장면을 넣은 것도 이 신체적 앎에 근거한다. 그들은 알면서도 행한 것이다. 당연히 이 앎은 반성이나 죄책감이 아니라 자기 합리화와 적극적 무관심으로 이른다. 사진: "Jon obeu inteoreseuto", IMDb ( 좌 , 우 ) 홀로코스트 이후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에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그의 말은 집단학살과 관련된 예술에 있어 주요한 윤리적 테제 중 하나로 언급되어 왔다. 가해 집단이 피해자와 동일한 인간 종에 속한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끔찍한 일이 일어난 이후 어떻게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글레이저는 여기서 이 지침을 한번 뒤집는다. 그렇다면 절멸이 일어나고 있는 중에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이란 무엇일까? 혹은 정말로 서정시를 쓰는 건 불가능한 것일까? 헤트비히의 정원에는 꽃 하나하나 벌레 먹지 않고 탐스럽게 피어 있다. 영화의 대부분에서는 카메라가 거리를 두고 건조한 관찰의 태도를 취하지만 헤트비히가 키워낸 꽃만은 마치 자연 다큐멘터리의 관습적 연출을 보듯 탐스럽게 클로즈업으로 정성들여 포착한다. 그것의 즉각적 아름다움에 이의를 제기하긴 어려울 것이다. ‘평화로운’ 집 주변의 목가적 풍경처럼 말이다. 그러나 관객들은 곧 그 클로즈업 바깥에서 꽃의 비료로 쓰이는 것이 소각장에서 태워진 분골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보이지 않는 프레임 바깥과 내부는 끊임없이 교환되고 연결된다. 마찬가지로 루돌프가 다정한 아버지로서 동화책을 읽어주는 바깥에서 시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집단학살의 꼼꼼한 계획, 유태인 여성에 대한 성착취를 행하고 있는 루돌프는 끔찍하게도 가정적인 부성을 동시에 수행한다. 더 정확하게는 그의 부성은 가해 행위 위에 기반해 있다. 그러면 시와 노래는 어디서 가능한가? 글레이저는 수용수들을 돕기 위해 사과를 노역장에 몰래 숨겨놓는 폴란드 소녀를 적외선 카메라로 애써 보여주며 증명하려 한다. 소녀의 이미지를 드러내고 그것을 보려는 태도는 흐릿한 쿠키더미를 찾아가는 작업이다. 나 혹은 우리의 관심/이익 영역이 아닌 바깥을 보려는 태도, 효율성이나 성과가 아닌 다른 가치를 돌보려는 태도, 타자의 존재는 교환할 수 없거나 나눌 수 없음을 인지하는 태도, 내장지각에 가까운 신체적 앎을 회피하지 않고 응시하는 태도, 실내와 목가가 얼마나 정치경제적인지를 인식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더 중요하게는 글레이저 감독이 아카데미 수상소감에서도 밝혔듯이 오늘날 시가 가능하려면 이스라엘 혹은 홀로코스트 바깥을 봐야 한다. 가자지구에서 홀로코스트라는 역사적 피해자였던 이스라엘이 어떻게 또 다른 민족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집단학살하며 가해자고 되고 있는지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팔레스타인의 이미지가 더 필요하다. 사진: " Jon obeu inteoreseuto ", IMDb 조혜영(영화평론가) l 영화적 순간들을 공유하고자 글을 쓴다. 영상문화 기획연구 단체 ‘프로젝트38’ 연구원, 『원본 없는 판타지』(2020), Mediating Gender in Post-Authoritarian South Korea (2024) 등 공동 집필.
* 본 영화글은 한국영상자료원 강좌 <‘영화+글’ 시리즈 3: 영화 비평 쓰기> 과제 선정작입니다. < 피닉스 >는 한 쌍의 커다란 눈에서 출발한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넬리(니나 호스)는 다친 얼굴에 붕대를 칭칭 감고 돌아온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그녀의 커다랗고 퀭한 눈뿐이다. 차를 타고 베를린에 돌아갈 때나 얼굴에 성형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을 때 넬리의 눈은 끊임없이 두리번거린다. 그 눈은 바라볼 곳을 찾지 못해서 섬뜩한 느낌을 준다. 넬리는 곧 바라볼 대상을 찾아낸다. ‘피닉스’ 클럽에서 일하는 남편 조니(로날드 제르펠드)를 찾아낸 후로 그녀의 시선은 조니만을 향한다. 한 군인이 그녀에게 담배를 권하고 몸을 만질 때에도 넬리는 아랑곳없이 조니만 보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만을 바라보고 다른 모든 것은 삭제하는 눈. 넬리의 눈은 그녀의 사랑이 맹목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사랑은 끈질기지만 그것을 떠받치는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친구 레네(니나 쿤젠도르프)와 여관 주인의 말은 조니가 넬리를 배신했다는 가능성을 제기하지만 넬리는 믿지 않는다. 그녀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무엇을 보고 있는가?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다. 넬리의 눈은 죽은 자의 눈이다. 조니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이름을 물어보았을 때 넬리는 ‘에스더’라고 답한다. ‘에스더’는 전쟁 전에 넬리와 찍은 사진이 남아 있는 유대인 친구로 레네가 뒤적이는 사망자 목록에 올라 있다. 넬리는 스스로 죽은 자의 이름을 붙이고 망자의 시간을 산다. 조니 또한 이상한 시간대에서 살고 있다. 넬리는 예전처럼 남편을 조니라고 부르고 싶어 하지만 그는 그것을 고집스럽게 거부한다. 그의 이름이 조니였던 과거는 그의 발목을 잡고 현재를 살지 못하게 만든다. ‘요하네스’라는 딱딱한 이름 아래 자신을 닫아건 조니는 그의 집에 있는 잠긴 서랍을 닮았다. 그 서랍은 넬리에 관한 물건들을 담고 있는데 조니가 허락할 때만 열린다. 넬리가 서랍을 열려고 하자 조니는 화를 낸다. 한밤중에 넬리를 깨우더니 서랍에는 돈이 없다며 그녀를 도둑으로 몰아세운다. 넬리가 빨간 드레스를 입고 머리를 염색한 채 자신이 넬리임을 증명하려 드는 장면에서도 조니는 수상하게 행동한다. 그는 잠깐 과거를 본 듯 넋을 잃지만 곧 넬리에게 걸음걸이가 이상하다고 핀잔을 준다. 과거에 대한 조니의 거부는 넬리의 사랑만큼 끈질기고 수상하다. 넬리가 조니에게 수용소에서 겪은 일, 수감자들이 “기둥에 둘러섰던 방식”을 단 한 번 말하는 장면이 있다. 넬리는 읽은 이야기라고 얼버무리지만 조니의 얼굴은 대번에 일그러지고 그의 눈은 다른 곳을 향한다. 그는 수용소와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싫다. 그 이야기는 그가 대면하지 못하는, 부인을 죽음으로 보낸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 수용소에서 돌아온 넬리는 조니가 직감적으로 맡을 수 있는 죽음의 냄새를 풍겼을 것이다. 조니는 넬리가 살아돌아온 부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녀는 그에게 과거를 상기시킨다. 그때마다 조니는 열심히 도망간다. 조니와 넬리는 각자의 이상한 시간대에 자리잡고 연극을 시작한다. 그들이 함께했던 시간은 한 조각씩 되돌아온다. 넬리가 좋아했던 여배우, 함께하던 산책, 자주 찾던 공원의 둥근 벤치. 과거의 조각들은 그러나 믿을 만한 하나의 그림으로 모이지 못한다. 과거를 보여주지 못하고 넬리의 사랑을 신빙성 있게 만들지 못하며 무엇보다 현재를 구성하는 데 실패한다. 조니와 넬리의 연극이 어딘지 의심스러운 이유는 그들 사이에 깊은 골이 패여있기 때문이다. 그 골은 시대가 남긴 균열이고 두 개인 사이의 시차이다. 둘이 함께했던 시간과 현재 사이에 넬리 혼자 수용소에 간 시간이 있다. 심연과도 같이 무시무시한 입을 벌리고 그 시간은 둘 사이에 누워있다. 조니를 보지 않으면 넬리는 수용소에서 지낸 시간을 보아야 한다. 그것은 넬리와 수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혔다. 예를 들어 레네는 넬리에게 짧은 편지를 남기고 자살한다. 죽은 자 ‘에스더’로 살기를 포기한다면 넬리는 그 상처를 오롯이 안고 걸어가야 할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한다. 넬리의 눈은 그래서 조니를 찾아내기 전에 세상을 불안하게 떠돌았던 것이다. 영화는 그런 넬리를 기다린다. 그 기다림은 넬리와 레네가 차를 타고 베를린에 돌아오는 첫 장면에서 이미 드러난다. 카메라는 넬리의 다친 얼굴 대신 그녀를 바라보는 군인의 얼굴을 비춘다. 그의 놀란 표정에서 우리는 넬리가 심하게 상처입었다는 것을 수 있다. 영화는 우리에게 상처를 직접 보여주지 않듯이 넬리에게 얼른 상처를 마주하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과거를 똑바로 보고 현재를 살라고 명령하지 않는다. 대신 넬리를 거짓 안에 잠시 머물게 한다. 조니가 쓴 연극 안에 살게 두는 것이다. 연극을 할수록 넬리와 조니 사이에 파인 골은 더 깊게 벌어진다. ‘살아 돌아오겠다’는 넬리의 편지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둘 사이는 눈에 띄게 어색해진다. 넬리가 “누군가는 (수용소에 대해) 물어볼 것”이라고 말할 때 그 ‘누군가’는 조니일 것이다. 넬리는 그가 수용소에 대해 물어보기를 바란다. 조니에게 실망할수록 넬리는 과거와 진실에 가까이 다가간다. 여관 주인과의 대화에서 조니가 그녀를 밀고했다는 가능성이 등장한 후 넬리는 나치에게 붙잡혔던 배로 간다. 그녀는 마치 뱀이 들어있는 상자를 여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문을 연다. 그 문과 함께 냉혹한 과거가 끼익 하고 열린다. 넬리는 힘겹게 과거와 마주보고 있다. 넬리와 조니 사이에 벌어진 시간의 골이 처음 터져 나오는 것은 조니가 넬리의 팔에 새겨진 수감자 번호를 건드리려 할 때다. 넬리는 조니에게 처음으로 저항한다. 그녀는 죽음의 시간으로서의 과거를 온몸으로 겪었다. 넬리를 후벼판 과거는 흉터가 되고 그녀의 살이 되었다. 수감자 번호를 건드리는 것은 과거를 지우면서 현재를 부정하는 일이다. 넬리의 살아있는 살과 육체, 즉 생生을 부정하는 일이다. 조니의 구상과 달리, 생은 아우슈비츠에서 겪은 죽음을 부정하면서 돌아오지 않는다. 붉은 드레스를 입고 구두를 신은 채 춤추듯이 살아돌아오지 않는다. 생은 넬리에게 기차 소리로 온다. 연극 속에서 기차역은 넬리가 생존자로 귀환하는 세레모니의 배경이다. 기차가 달려올 때 넬리는 깨어난다. 죽은 레네의 편지를 읽는 장면에서 기차 소리는 처음 들린다. 넬리가 알 수 없는 표정을 띈 창백한 얼굴을 들었을 때 거대한 검은 기차가 연기를 뿜으며 지나간다. 그녀가 이혼 서류를 읽는 장면에서도 기차 소리가 등장한다. 조니가 ‘이혼을 통보한다’는 문장이 기차처럼 숨막히게 달려오고 초시계 소리가 더해진다. 넬리가 새로운 날을 맞을 때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넬리는 홀로 두 번 기차를 맞이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새로 태어나기 위해 넬리는 노래해야 한다. 그녀는 전쟁 전에 가수였지만 선뜻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조니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면 자신이 그의 부인이라는 사실을 손쉽게 증명할 수 있을 것인데 그러지 않는다. 그것은 영화가 노래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넬리와 레네가 함께 밥을 먹는 장면에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이 듣는 ‘Speak Low’는 영어로 된 노래이다. 레네는 독일 노래는 듣지도 부르지도 못하겠다고 말한다. 독일어로 말하면서 노래는 안 된다니. ‘노래’는 말과 다르다. 노래는 고통과 복수심을 잊게 하므로 레네는 그것을 경계한다. 한편 노래는 상처받은 자가 진실을 담을 수 있는 유일한 언어이다. 노래를 불러 달라는 레네의 부탁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일 때 넬리는 아직 준비가 덜 된 것이다. 다시 태어날 준비가 되었을 때 넬리는 비로소 노래한다. 노래는 섬광처럼 와서 넬리의 과거부터 현재까지 온 존재를 꿰뚫고 흔들어놓는다. 그것은 파열음이다. 한 여성의 인생에 돌아킬 수 없는 금이 그어지는 소리. 시대의 야만에 균열이 가는 소리. 노래는 폭탄보다 강력하고 수용소의 숫자보다 선명하면서 동시에 아름답다. 그것을 듣고 조니는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하니 앉아있다. 넬리는 더이상 그의 반주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연극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조니를 한 번 슥 쳐다보고 넬리는 나가 버린다. 가버린 넬리와 앉아 있는 조니. 일그러진 세계를 부수고 나간 자와 그러지 못한 자. 또각또각 발소리가 들려온다; 그것은 현재로 걸어나가는 자의 소리이다.
왕빙은 < 사령혼 >(2018)을 오랜 시간동안 비밀리에 촬영하였고 그런 다음 기습적으로 공개하였다. 여기에 이유가 있다. 이제는 알려진 대로 이 영화는 1957년에 시작된 대약진 기간 동안 우파분자로 지목되어 간쑤성 고비사막에 있는 자볜거우(夾邊溝)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사상교정을 이유로 부역하고 돌아온 다음 침묵을 강요당한 ‘인민’들을 인터뷰한 영화이다. 중국 공산당은 등 샤오핑 이후 문화혁명에 대해서는 당의 오류임을 인정했지만 그러나 사실상 파국으로 끝난 대약진 시기에 대해서는 어떤 사과도 하지 않았다. 그 말은 아직도 대약진 기간에 대해서 비판을 하는 것은 사회주의 중국 인민 공화국에서 허용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는 중국에서 공산당이 허락하지 않는 행위를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홍콩에서 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죽음을 목전에 둔 ‘인민’들은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카메라 앞에서 말했다. 비공식 기록에 따르면 저볜거우 강제노동수용소에서만 3년 동안 3만 5천명이었던 수용소 우파분자들 중에서 돌아온 사람은 600명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강제노동수용소가 중국 전역에 있었다. 대약진 운동 중에 굶어 죽거나, 맞아 죽거나. 실종되거나, 하여튼 죽은 사람의 숫자는 4,7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나는 숫자를 다시 확인했다. 왕빙은 다른 영화를 찍으면서 내내 이들을 만나러 다녔다. 왕빙에 따르면 촬영분량은 600시간에 이르고 만난 사람은 120명에 달한다고 한다. <사령혼>은 그 중에서 15명에 관한 인터뷰를 담고 있다. 상영시간은 8시간 16분이다. 그런데 왕빙은 여기에 한 가지 사실을 알려주었다. <사령혼>은 저볜거우 강제노동수용소에서 돌아온 사람들에 관한 삼부작 중에서 첫 번째 영화이다. 그러므로 나는 다음 영화를 기다렸다. 그래서 < 미(美)는 자유에 있다 >(2018)가 당연히 <사령혼> 연작의 두 번째 영화라고 생각했다. 내가 틀렸다. 이 영화는 왕빙이 미국에 가서 라스베가스 근처에 살고 있는 중국인 화가 가오얼타이(高爾泰)을 만나 인터뷰한 다큐멘터리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다소 어리둥절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왕빙은 예술가들을 인터뷰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소설가도, 시인도, 음악가도, 대중예술가도, 어떤 영화감독도 만나지 않았다. 왕빙은 노동자들, 농부들, 어란 아이들, 정신병자들, 버림받은 이들, 그저 ‘인민’들만을 만났다. 그런데 갑자기 화가를 만났다. 두 번째 이유는 왕빙은 중국 바깥에 머무는 중국인들을 만난 적이 없다. 마찬가지로 어떤 외국인도 만나지 않았다. 아니, 그 자신이 외국에 누군가를 찍기 위해 나간 적이 없다. 그는 항상 중국을 돌아다니면서 거기서 찍었다. 그런데 갑자기 가오얼타이를 만나기 위해서 미국 라스베가스에 갔다. 내가 왜 왕빙이 그를 찍기 위해서 미국에 갔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영화를 본 다음이다. 먼저 가오얼타이를 소개해야 할 것 같다. 가오얼타이는 화가이지만 그는 미학을 연구한 학자이며 철학을 강의한 선생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바이두(百度, www.baidu.com)의 소개에 따르면 산문수필가이며, 서예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왕빙의 관심은 거기에 있지 않다. 가오얼타이는 1935년 장쑤성(江蘇省) 가오춘현(高淳縣)에서 태어나 수쪼우(蘇洲)사범대학에서 공부했다. 1957년 7월 잡지 ‘새로운 건설(新建設)에 ’미를 논하다(論美)‘를 발표하였다. 이 글이 문제가 되었다. 가오얼타이는 지금도 변증법에 기반을 둔 이 미학에 관한 논문이 왜 문제가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오얼타이는 여기에 대해서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는 반혁명분자로 분류되었고, 사상재교육을 위해 자볜거우 강제노동수용소로 이송되었다. 가오얼타이가 간신히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1959년 우여곡절 끝에 간쑤성 박물관으로 재배치되었고, 거기서 둔황(敦煌) 문화유적 복원사업에 복무하였다. 1962년 봄, 자볜거우 강제노동수용소가 폐쇄되면서 가오얼타이는 고향으로 귀향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복권된 것은 아니다. 1966년 문화혁명이 시작되자 가오얼타이는 다시 우파분자로 고발조치 되었다. 그는 하방 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첫 번째 아내가 죽었다. 가오얼타이가 학교로 돌아온 것은 1977년 문화혁명이 끝난 다음이다. 그 이듬해 란쩌우(蘭州)시범대학에 교편을 잡았고 거기서 <미는 자유의 상징이다(美是自由的象徵)>을 썼다. 이 책은 지식인들에게 널리 읽히는 미학에 관한 저술이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989년 천안문 사태와 관련하여 가오얼타이는 136일 동안 감호소에 구금되었다. 가오얼타이는 1992년 그의 두 번째 아내와 함께 홍콩을 거쳐서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하지만 그의 딸은 중국에 남았고 미국에서 그녀의 부고 소식을 들어야 했다. 이 소개를 읽고 나면 왕빙이 왜 가오얼타이를 만나기 위해 미국까지 가야만 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왕빙은 가오얼타이가 화가이거나 유명한 미학 학자여서가 아니다. 그는 우리가 <사령혼>에 이어서 만나는 16번째 자볜거우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이다. 아니, 17번째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왕빙의 두 번째 영화 <펑밍; 중국여인의 연대기>에서 만난 허펑밍(和鳳鳴) 할머니도 (그 영화를 볼 때는 미처 셈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알게 된 것인데) 자볜거우에서의 경험을 안고 살아 돌아온 생존자이기 때문이다.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미(美)는 자유에 있다>는 상영시간이 5시간 25분이지만 단 한 번도 가오얼타이의 그림에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 인터뷰가 내내 그의 작업실 바로 옆방에서 진행되는데도 그러하다. 그리고 왕빙은 단 한 번도 가오얼타이의 창작의 과정, 그의 예술작업에 대해서 질문하지 않는다. 쉬지 않고 오직 자볜거우에서의 경험에 대해서만 물어보고 또 물어본다. 그렇다면 왜 가오얼타이를 <사령혼>에 포함시키지 않았을까. 단지 그 분량이 길기 때문에? 내 생각에 그건 (마오쩌둥의 분류에 따르면) 가오얼타이는 지식분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사령혼>에서 단 한 명도 지식분자들을 만나지 못했다. 가오얼타이는 <미적 각성>과 <미적 저항>이란 두 권의 저서가 지금도 중국 내에서 예술가들과 아카데미에서 읽히는 존경받는 저자이다. 왕빙은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그의 방법을 바꾸지 않는다. 여전히 그는 경청(敬聽)의 미학이라고 불러야 할 만한 방법으로 듣고 또 듣는다. 왕빙은 거의 질문하지 않는다. 좀 더 정확하게 영화에 그가 질문하는 순간을 남겨놓지 않았다. 일단 가오얼타이가 대답을 시작하면 그 대답의 시간 안으로 왕빙은 개입하지 않는다. 그는 카메라를 믿고 오로지 대답하는 가오얼타이를 담는 일에 집중한다. 거기에는 음악도 없고, 별다른 카메라의 위치 변화도 없고, 그렇다고 구도를 바꾸지도 않는다. 다만 두 대의 카메라를 사용해서 이따금 이 카메라로부터 저 카메라에로 옮겨갈 따름이다. 이때 이 인터뷰를 담는 것은 왜 그토록 긴급하고 중요한가. 첫째, 대약진 시대에 강제노동수용소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관한 어떤 이미지도 없다. 게다가 중앙정부의 자료들은 대부분 아직도 접근이 엄격히 금지되었으며 또한 (역사학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그 신뢰도가 매우 낮은 상태의 보고서들이다. 심지어 지방 성(省)과 현(縣)의 자료들은 그것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훈련받은 공무원들이 없었기 때문에 전혀 체계적이지 않았고 일부 수치들은 중앙정부에 보고하는 과정에서 일부 수치를 멋대로 수정하였다. 이제 남은 것은 거기서 살아 돌아온 자들의 증언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둘째, 그런데 그들이 죽어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용기를 낸 것이기도 하지만 그들에게 허락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왕빙은 서둘렀지만 가끔 인터뷰가 끝난 다음 몇 달 뒤에 장례식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사령혼>에 그런 순간들이 담겨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왕빙의 영화들을 단지 역사적 증언의 가치 때문에 소중하게 여기는 것인가. 만일 그게 전부라면 이 영화들의 가치에 대해서는 우리보다는 역사학자들의 손에 맡기는 편이 나을 것이다. 바로 여기가 우리들의 출발점이다. 우리들은 왕빙의 작업 과정에서 영화가 증언을 듣는 순간, 증인과 만나는 자리. 증언을 들으면서 증인의 증인이 되는 영화의 자리를 다시 물어볼 수 있게 되었다. 그때 영화는 자기의 존재에 대해서 질문을 시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왕빙의 영화를 보면서 배움을 구하는 것이다. 고다르는 1944년 아우슈비츠에 영화가 없었기 때문에 영화가 죽었다, 라고 말했다. 정확하게 같은 의미에서 왕빙은 영화가 1957년 자볜거우에 없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 영화의 책임을 물어보는 중이다. 접근 불가능했던 것들에게 영화가 다가가서 그들에게 증언을 할 기회를 준다는 것은 단지 기록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어둠 속에 있던 역사의 심연에서 영화가 하나의 섬광 같은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그때 영화는 자기의 존재를 역사 속에서 증명해낼 것이다. 그렇게 영화의 죽음을 한 번 더 선언하지 않기 위해서 왕빙은 생존자들의 말을 영화에 담기 위해 그들 곁에 있는 것이다. 영화는 어디에 있습니까. 네,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