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하는 도시와 농촌
- 감독
- 안창복
- 제작년도
- 1972
많은 사람들이 김수용 감독에게 문예영화의 대부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그만큼 그는 문학작품을 각색한 영화를 많이 만들었고, 그 성취 또한 뛰어났다. 그러다보니 인구에 회자되는 그의 대표작들은 대부분 문예영화들이 차지하고 있다. 더불어 김수용 감독은 한국에서 가장 많은 영화를 만든 감독으로도 고영남 감독에 이어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품세계는 멜로, 코미디, 드라마를 비롯, 심지어 국책영화까지 실로 다양한 장르가 혼재하고 있다. 이토록 다양한 그의 필모그래피의 정글에서 60년대 창작의 황금기에 발표된 혈기왕성한 예술세계에 경탄했고, 70년대 후반 < 야행 >, < 화려한 외출 >, < 웃음소리 >등에서 보여준 스타일 실험에 감탄했다. 하지만 대표작들이 뿜어내는 아우라의 틈바구니에서 주목 받지 못하고 기억에서 사라진 몇 몇 작품들을 통해 받았던 감동은 짙다. 1980년 작품 < 하얀 미소 >가 바로 그 영화들 중의 하나다. 젊은 날의 금보라와 김영철이 주연으로 출연하고, 이혜숙의 앳된 미모를 새삼 느껴보고, 조금 더 눈썰미가 있다 싶으면 단역으로 출연하고 있는 최종원의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는 덤이다. < 하얀 미소 >는 정규학력을 인정받지 못했던 전수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70년대 후반 대세였던 하이틴 영화의 모양새로 만든 작품이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채 판타지와 코미디로 점철되고 말았던 하이틴 영화들과는 달리 이 영화는 당대 한국사회의 폐부를 직시한다. 당시 한국사회는 국가적 경제성장에 한창 열을 올리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경제적 약자를 보듬을 수 있는 사회적 제도에 대한 의식이 부족했다. 그러다보니 이런 아이들의 문제를 단순히 개인의 열등감에서 비롯된 반항심으로 축소해 단순화시키려는 경향이 있었다. 즉, 사회적 책임을 개인에게 묻고 있다는 것이다. < 하얀 미소 >는 명문대학을 졸업했지만 다리를 절고 있다는 이유로 정규학교로 발령받지 못하고 전수학교에서 교편을 잡게 된 유선희 선생( 금보라 )과 반항아 권투선수 김종팔( 김영철 )의 스토리를 중심에 두고, 학교라는 공간과 같은 반 아이들의 이야기를 씨줄과 날줄로 엮으며 당시 한국사회의 문제였던 가난과 열등감, 차별의식을 보여준다. 김수용 감독은 전수학교 뒤로 서울시가지를 배치시키지만, 그 빌딩숲은 그들에게 희망을 꿈꾸게 만들진 못한다. 오히려 서울이라는 공간으로 대표되는 한국이라는 사회는 그들에게 폭력적이다. 그래서 그들은 서울이라는 공간에 무관심하다. 석래명 감독의 < 고교얄개 >가 가난한 호철( 김정훈 )의 옥탑방 문밖으로 보이는 빌딩숲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 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방식이다. 하이틴 영화가 동세대의 관객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아마도 막연하다 할지라도 내일에 대한 희망을 꿈꿀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수용 감독은 막연한 희망 대신 그 희망 속에 감춰진 사회의 비정함을 먼저 보길 원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내일에의 희망을 저 너머에 있는 어딘가가 아니라, 지금 발 딛고 있는 이 땅위에서 피어 올리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전수학교 아이들의 스토리는 리얼리티로 다가오게 된다. 그렇게 김수용 감독은 젊은 관객들에게 희망을 판타지가 아닌 살아있는 현실로 제시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멋지게 시각화하고 있다. 나는 그 어떤 외국의 유명한 영화에서도 < 하얀 미소 >에 등장하는 해바라기만큼 아름답고, 예쁜 해바라기를 보지 못했다고 감히 생각한다. 비토리오 데 시카의 영화에 등장했던 그 압도적인 해바라기 숲도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몇 포기의 해바라기의 아름다움엔 비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이런 장면이다. 정학을 맞은 종팔이 교도소에 있는 아버지를 면회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본. 몇 포기의 해바라기는 바로 종팔의 순수함을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집에는 유선희 선생이 해바라기 같은 미소로 종팔을 기다리고 있다. 종팔은 비로소 열등감과 패배감 대신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종팔이 선생을 배웅하는 버스정류장 장면에서 질서 없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해바라기 꽃은 어떤 컴퓨터 그래픽도 절대 만들어낼 수 없는 감성을 향기 대신 풍기는 명장면이다. 그야말로 희망을 이야기하는 가장 멋진 미장센 중의 하나다. < 하얀 미소 >는 김수용 감독이 심혈을 기울인 문제작들 틈바구니에서 잠시 호흡을 위해 쉬면서 툭 던져놓은 작품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흥행에도 대참패를 했고, 그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렇게 잊혀진 작품 속에서 진주를 발견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다. 다만 한 개인의 맑은 심성에 기대어 사회적 모순을 극복하고자 하는 감독의 관점은 역시 시대의 검열이 심어놓았던 한계였던 것일까? 아니면 김수용 감독의 세계관인 것일까? 우리는 어쩌면 이런 작품들 속에서 진정한 감독의 무의식과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금보라 김영철 이영호 이대로 감독 김수용 각본 정지영 촬영 안창복 음악 강근식 미술 김유준 편집 김희수 1980년 95분 칼라 판매원 한양비디오프로덕션 영상도서관 배가번호 00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