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파치노의 뉴욕 광시곡
- 감독
- 알 파치노
- 제작년도
- 1996
- 출연
- 알 파치노, 위노나 라이더, 알렉 볼드윈
한국영상자료원에서 3년째 ‘사사로운 영화 리스트’와 그 중 한 작품에 관해 쓰는 ‘사사로운 영화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고민을 좀 했다. 지난 한 1년 간 웨인 왕 감독의 < 커밍 홈 어게인 Coming Home Again >이라는 영화에 어쩌다 익세큐티브 프로듀서로 참여하게 됐기 때문이다. 괜히 자기 영화 홍보하는 것 같을 것 같았다. 그런데 당연히 올해 나에게 이보다 더 사사로운 영화는 없다. 솔직히 ‘홍보라고 해 봤자’라는 생각도 든다. <커밍 홈 어게인>은 9월 토론토 국제 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 부문에서 월드 프리미어 한 후로 각처의 영화제 초청과 언론의 호평을 받고는 있지만, 각처의 수입사와 배급사에서는 지금까지 고사하는 상황이니 뭐…… 그래, 그냥 주제에 맞게 ‘사사롭게’ 쓰자. 지금 다른 영화 얘기할 머리 상태도 안 된다는 것도 인정하자. 거의 1년 간 내가 사는 서울과 감독님이 계시는 샌프란시스코의 시차 17시간을 두고 일하다 보니 심각한 수면 부족으로 (면역성은 물론이요) 뇌세포도 많이 상한 것 같다. 한창 후반작업 중일 때는 거의 잠 고문을 당하는 것 같았다. 아마 관타나모 같은 데서 나 보고 테러리스트라고 고백을 하라고 부추겼더라면 당연히 아님에도 불구하고 “방해 없이 8시간만 쭉 자게 해주세요” 하면서 테러리스트를 자처했을 법한 정신적 누더기 상태가 됐다. (문제는 내 본업이 ‘스크린 인터내셔널’ 아시아 부국장이자 한국 통신원이라는 것 – 그러잖아도 낮에는 아시아 일을, 저녁에는 런던 본사와 소통을, 아주 늦은 밤에는 새벽 잠이 없는 감독님이 샌프란시스코에서 깨셔서 하루 일을 시작하는 식이었다. 급한 불 끄고 해놓을 수 있는 연락은 일단 다 취해놓고 서울 시간 새벽 5~6시쯤 지쳐서 ‘그만!’ 하고 외치고 서너 시간 자던가 말던가 하고 다시 일과를 시작하는 식이었다.) 아무튼 처음으로 돌아가서 얘기해볼까 한다. 웨인 왕 감독을 만난 건 작년 이맘때 ‘사사로운 영화’ 원고를 쓸 때 즈음, 도쿄 필름엑스 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을 같이 하면서였다. 아마 심사위원으로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 정도로 허심탄회하게 영화와 커리어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과 느낌들을 깊이 공유하고 논의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감독님이 연출하신 예술영화도 좋고 할리웃 대중영화들도 다 뭔가 결이 다른 데가 있어 좋아요”하는 정도의 말쯤은 했었겠지만, 영화제 카타로그에 내 약력이 나온 걸 보고 한때 LJ 필름이 CJ 엔터테인먼트와 합병했을 때 글로벌 프로젝트팀 프로듀서였다는 것에 대해 감독님이 추가 질문을 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심사를 같이 하다가 밥도 같이 먹고 리셉션도 같이 가고 하면서 그냥 저냥 얘기하다 “왜 프로듀싱을 계속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때 기획개발에 일조는 해도 과연 이 영화들이 나를 꼭 필요로 하느냐, 필요로 한다 쳐도 내가 몇 년 동안 그 영화에 110%를 바쳐도 보람이 느껴질까 하는 두 가지 질문을 하다가 ‘스크린 인터내셔널’ 한국 통신원 자리가 열려서 원래 하고 싶기도 했던 기자 일을 택했다”고 했다. 그게 2005년이었는데, 그 사이 출판업계 상황이 한창 안 좋아진 것도 당연하지만, 나란 인간에게 뭔가 긍정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분도 감지하셨을 것 같다. 요즘 영화인을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웨인 왕 감독의 < 스모크 Smoke >’(1995)는 제 인생의 영화예요!”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물론 할리웃 최초로 아시아계 미국인 주인공을 두고 대중적 인기를 얻은 < 조이 럭 클럽 Joy Luck Club >(1993)이나 제니퍼 로페즈와 레이프 파인즈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 러브 인 맨하탄 Maid in Manhattan >(2002)으로 웨인 왕 감독을 알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도 그 영화들 다 좋아한다. (특히 <러브 인 맨하탄>은 비슷한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 로맨틱 코미디로 따지자면 더 유명한 < 노팅 힐 Notting Hill >(1999) 보다 여러가지 면에서 낫다 생각한다. 이 쟁점을 갖고 가볍게 한판 붙을 자신은 있다. 잠 좀 자고 뇌세포가 회복되고 나서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왕 감독 영화 중에 제일 좋아하는 건 <천년의 기도 A Thousand Years of Good Prayers>와 그 작품과 짝으로 만들어진 <네브라스카의 공주 Princess of Nebraska>다. 중국계 미국인 작가 리이윈의 원작을 영화화 한 작품 두 편인데, 2007년 하와이 국제 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으로 나란히 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는 걸 감독께 말씀 드렸었다. 그래서 그러셨나? 한국계 미국인 이창래 작가의 자전적인 글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한 편 만들고 있다고 귀띔해주셨다.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이창래 작가의 <생존자 The Surrendered>나 <영원한 이방인 Native Speaker>, <가족 Aloft>, <척하는 삶 A Gesture Life> 등의 베스트셀러 소설은 아니고, 저명한 <더 뉴요커 The New Yorker> 잡지에 실렸던 단편 에세이 같은 것을 원작으로 한 것이다.) 그때 동경 오기 전에 며칠 만에 찍고 가편집본을 만들고 있는데 한 번 보겠냐고 하셔서 당연히 영광이라 했다. 영화제가 끝나고 얼마 후, “나에게 아주 개인적인 영화”라는 간단히 말씀 한 줄 적고 스크리너 링크가 든 이메일을 보내오셨다. 색보정이나 사운드 등등 후반작업은 하나도 안된 가편집본이었지만 너무 좋았다. 위암을 앓는 엄마를 간호하기 위해 월 스트리트의 좋은 직장을 그만 두고 샌프란시스코 고향집으로 돌아온 아들 ‘창래’의 이야기였다. 창래는 자라면서 엄마가 늘 - 특히 미대륙을 횡단해 있는 엑서터 기숙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 해주던 갈비며 전, 잡채 등의 한국 전통 요리를 죽어가는 엄마에게 배우면서 마지막 섣달 그믐날 가족 식사를 준비하기도 한다. 위암 말기의 엄마는 씹어서 삼켜도 바로 토해낼 수밖에 없는 단계에 이르렀음에도 아들은 자기가 차린 음식을 엄마가 먹어주길 바라는 것이 인상적이기도 했다. 창래 역에는 <트와이라잇 Twilight>에 개구장이 십대로 나왔던 저스틴 전 (Justin Chon)이 다 자라서 나왔고, 엄마 역에는 주로 연극계에서 활동 하고 <그레이 아나토미 Grey’s Anatomy> 등의 테레비젼 드라마 조연으로 출연했던 재키 정 (Jackie Chung)이 절제된 명품 연기를 했다. <커밍 홈 어게인>은 죽어가는 부모를 간호 하면서 희생하기도 하고, 음식을 배우면서 소통을 하기도 하는, 그저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 동안 쌓여있었던 가족 간의 갈등도 회상으로 나오고, 억울하다 싶을 정도로 아직은 젊은 엄마를 잃을 것을 당면한 자녀의 자기중심적인 잔인함도 깃들여 있다. 그래서 더욱 현실적이다. 이런 일을 겪어보지 않거나 이타적으로 착하기만 한 사람이라면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마 심사위원을 함께 하면서 그토록 많은 이야기들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냥 간단히 “잘 봤습니다.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하고 말았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더 자세한 피드백을 솔직히 드려야 예의일 것 같았다. 그래서 고백했다. 위의 얘기를 하면서 친척 중에 항상 명절 때 손수 모든 요리를 하시고 아이들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시던 한 분이 암으로 돌아가셨을 때 옆에서 봤던 가족들의 모습들, 고통 속에서 죽음을 당면한 본인이 어떨 지에 대한 생각보다 자기가 곧 직면할 상실감을 감당 못하고 행동하는 것 같은 모습들, 당시엔 납득할 수 없어 긴 세월 상처로 남아있었던 것이 치유되는 것 같았다는 걸 말씀드렸다. 그리고 영화 속 한국계 미국인들의 모습도 좋았다고 말씀드렸다. 한국인인데 한국에서 나서 살기만 한 한국인과는 좀 다른 행동과 반응을 하는 것을 영화에서 보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나도 어렸을 때 미국에서 한 8년 자라면서 봤었던 이들이 스크린에 살아나오는 것 같기도 했다. 작은 예를 들어, 가정 방문한 교회 아줌마들의 성경찬송과 H-라인 스커트와 브로치 – 너무 전형적으로 익숙했다. 그런데 그들이 주는 익숙한 기독교적 위안에 전형적으로 착한 한국인 아들처럼 묵묵히 받아들이기만 하지 않는 창래의 반응이 신선하고 좋았다. 캐스팅도 대사도 연기도 너무 훌륭해서 아빠로 나오는 존 리 (John Lie)가 처음 나와서 “창래야” 하는 순간부터 이 인물이 누군지 파악이 될 정도였다. 아마도 나름 미국 사회에서 많은 학생들이나 후배들에게 권위가 있으나 집에서는 라면 하나 못 끓여먹는 한국 남자 어른. 이런 심각한 감정적인 위기에 대처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한국 남자 어른. 한때 이문세 노래 하나로 불륜이 걸렸음에도 계속 학자적인 ‘썰’을 푸는 한국 남자 어른. (코미디가 아님에도 이 영화에서 제일 코믹한 인물이기도 하다.) 누나로 나오는 크리스티나 줄라이 김 (Christina July Kim)도 화면에 나오는 순간부터 완벽한 인물 재현을 한다. 한국에서 커리어를 꾸리다가 비행기 타고 날라와 엄마의 치료를 끊겠다는 결심을 반대하며 항상 자기 보다 총애를 받던 남동생에게 편들어 달라고 설득하는데 실패하는 딸. 곧 비행기 타고 가부장제의 나라에 돌아가서 또 진급을 투쟁하듯이 찾아나서야 하는 한국계 미국인 여자. 딱 아는 사람 같았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 났더니 감독님과 <커밍 홈 어게인>의 국제 영화제와 시장에서의 난점과 가능성에 대해 논의를 하게 됐다. 아마도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와 또 공감하지 못할 사람도 많을 것이라는 점도 공유했다. 절제된 표면 밑에 깊은 감정들이 흐른다는 점이 강점이지만, 절제성 때문에 폭넓은 대중성을 갖기 힘들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것도 얘기 했다. 거의 모든 장면이 (실제 프로듀서 도날드 영의 돌아가신 할머니 댁이었던) 한 아파트 안에 이루어진다는 점도 이 작품을 ‘체임버 피스’라고 좋게 말할 수 있으나 ‘스펙타클’하지 않다고 흠 잡을 수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얘기 했다. 그리고 나중에 어떤 수입사에서 얘기 한 것처럼, ‘겉모습은 한국인인데 내용은 보통 사람들이 이런 데서 기대하는 한국적 멜로나 신파가 아니어서 마케팅하기 애매하다’는 평도 예상 했으나, 어쨌든 세계에 퍼져 있는 디아스포라가 있는데 스크린에 다양한 한국인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좋았다는 것도 얘기했다. 결론적으로 작품에 대한 신뢰와 가능한 한 많은 사람과 만나게 해주고 싶다는 바램을 공유했다. 통화가 끝나갈 무렵, 감독님은 익세큐티브 프로듀서 크레딧을 받고 일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나는 이미 본 촬영이 끝난 작품에 뒤늦게 합류하면서 그런 크레딧 받는 것도 부담스럽고, 아직 기자 일을 포기할 수 없으니 ‘어쏘시어트 프로듀서’나 ‘공동 프로듀서’ 또는 ‘컨설턴트’ 같이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을 만한 크레딧을 차라리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씀 드렸다. 그렇게 합의하고 전화 끊은 후 이메일 몇 번 더 주고 받으면서 샌프란시스코 팀은 추가 씬 촬영과 후시녹음 등을 한 후 새로운 편집본을 보내왔다. 이번엔 간단히 "언짢아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익세큐티브 프로듀서 크레딧에 네 이름을 넣었다”는 한 줄이 들어간 이메일에 스크리너 링크가 왔다. 솔직히 좀 곤란한 건 사실이었으나 웨인 왕 감독 같은 거장이 분명 다른 프로듀서들과 논의 끝에 결정해서 크레딧에 넣었을 것을 알면서 거기에다 대고 뭐라 말하겠는가? "영광입니다. 크레딧에 부합하게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엮인 거다. 그 후로 후반 작업에 의견을 내는 일 외에 크게는 이문세 ‘옛사랑’ 노래 판권을 구하는 일, 국제 세일즈사를 구하는 일, 영화제 출품을 돕는 일 등을 맡게 됐다. (‘스크린 인터내셔널’에다간 편집장에게 양해를 받았다. 리뷰를 쓰고 에디팅 하는 동료들은 기사가 완성 되고 나서야 내가 이 영화에 참여했다는 걸 알게 됐다. 솔직히 리뷰에 대한 걱정은 안 했으나 마지막 순간에 ‘이 동료는 작품이 마음에 안 들면 가죽을 벗겨 회를 치는데’ 하는 노파심이 살짝 든 건 사실이다. 나중에 영화를 너무 잘 봐주고 좋은 평 써줘서 고맙다고 했더니 ‘네가 관여한 작품인지 몰랐다’며 진정 놀라는 모습이 재미있기도 했다.) <커밍 홈 어게인>은 9월 토론토 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 할 때 여러 호평을 받았고 심지어 평론가 중의 한 명이 기자 시사 나오면서 트위터에 ‘눈물을 양동이로 들고 나오느라 동료 기자들에게 사과해야만 했다’는 식의 트윗을 남기기도 했다. 특히 남자들이 엄청 울었다는 반응이 기억난다. 상영 전에 왕 감독이 “내가 할리웃 영화 만들 때 스튜디오 관계자들이 편집의 속도를 점점 급하게 가자고 다그쳤었다. 잠시라도 관객이 숨을 들이쉬거나 생각을 할 수 있는 겨를을 주지 못하게 강요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나도 숨쉬는데 어려움을 신체적으로 겪게 됐다. 의사한테 가보니 요가를 해보라고, 숨쉬는 법을 배우게 될 거라고 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만들 때 관객이 숨을 쉴 수 있고, 각자 인생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만들었다”고 했다. 등장 인물들뿐 아니라, 그들의 환경, 소품들을 찬찬히 들여다 보며 호흡하고 생각할 겨를을 많이 주는 영화다. 아시아 프리미어는 10월 부산 국제 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에서 하게 됐다. 그런데 마지막 후반작업에 너무 많은 것을 쏟아 부으시고 토론토에서 두 번 상영과 관객과의 대화를 하시고 여러 언론과 인터뷰를 한 끝에 집에 돌아가신 왕 감독은 발병해 결국 부산에 못 오셨다. 솔직히 프로모션 측면에서 말하자면 재앙 같았다. 부산 영화제 24년 역사에 갈라 상영 때 감독이 안 나타난 일은 우리 영화가 처음이었다. 항상 젊게 사시는 왕 감독이 1949년생이라는 걸 이때 상기했다. 그래도 명품 연기를 한 재키 정이 임신중임에도 보석 같이 나타나서 부산 상영 때 ‘가족 영화인데 남편과 아들과 곧 태어날 아들과 함께 부모의 나라인 한국에 와서 상영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말을 하면서 관객들을 사로 잡기도 했다. 남편은 <커밍 홈 어게인>의 중요한 조연으로도 나온 루이 오자와 장치엔 (Louis Ozawa Changchien)이다. 곧 아마존 프라임에 나올 <헌터스 Hunters>’이라는 아카데미상 후보자였던 조던 필 (Jordan Peele)이 제작하고 알 파치노 (Al Pacino)가 나오기도 하는 나치 추적 시리즈에서 볼 수 있게 될 배우이기도 하다. (여담이지만 그들에게는 당연히 그렇고 나름 프로덕션과 영화제 입장에서도 큰 일이었기에 뱃속 아기가 몇 주 빨리 나오면서 부산에 계획보다 오래 머물게 됐다는 점을 안 쓸 수 없다. ‘부산 국제 영화제 1호 베이비’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부산에서의 많은 일은 프로듀서 스쿨에서 배운 적이 없는, 간단히 줄여 말하자면 파란만장한 여정이었다 하겠다.) 그리고 유럽 프리미어는 11월 말, 에스토니아의 탈린 블랙 나이츠 영화제 경쟁부문에서 했다. 여기 다녀오느라 이 원고가 좀 늦어진 점이 없지 않아 있다. 혼자 가서 영화를 소개하고 관객과의 대화를 하는 등등 일정을 마치고 (버스로 4시간 반, 비행기로 50분 가량 떨어진) 같은 발트해 3국의 하나인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 있는 친구 집에 가 있는데 “만세! 빨리 탈린으로 돌아와”라며 우리 영화 리챠드 웡 (Richard Wong) 촬영감독이 최고 촬영감독상을 타게 됐다는 소식을 이메일로 받았다. 빨리 미국에 있는 리챠드한테 비디오 인사를 만들어 달라고 하고, 얼른 탈린으로 돌아와 대리 수상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영화 속 촬영은 현재 시점의 장면들은 다 “객관적”이고 안정적인 와이드 샷으로 찍었고, 회상 장면은 다 조금씩 흔들리는 핸드 헬드로 가까이 다가가 찍었다. 색깔도 회상 장면들은 조금 더 따뜻하게 했다. 거의 모든 장면이 첫 테이크였던 것도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일 것이다. 어쨌든 탈린 블랙 나이츠 영화제 경쟁부문은 <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Four Weddings and a Funeral >(1993) 마이크 뉴웰 (Mike Newell) 감독이 심사위원장을 맡았고, 심사평에 “우아한 미니멀리즘으로 스토리의 긴장과 드라마를 이미지로 표현하고, 물리적으로 그리고 은유적으로 좁은 공간을 통해 프레이밍하여 인물들의 절망을 신중한 눈으로 옮기고, 영화 촬영 예술이 어때야 하는지 대담한 비전을 전달하는 능력”을 높이 사 시상한다고 했다. 스펙타클한 영화는 아니다. 그래도 “영화 촬영 예술이 어때야 하는지 대담한 비전을 전달한다”고들 한다. 시장성이 어떻던 간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고 앞으로도 받을 수 있을 영화라 생각한다. 사사로운 내 생각이다.
넷플릭스에서 이탈리아의 자동차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그것이 등장하던 순간, 깜짝 놀랐다.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경찰차의 차종이 람보르기니 우라칸 스파이더라는 모델의 스포츠카였기 때문이다. 차 한 대의 가격이 3-4억 원 이상 나간다는 값비싼 스포츠카에서 내린 경찰은 다큐 제작진에게 뭘 놀래느냐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러면서 경찰은 스포츠카, 아니 경찰차 트렁크에 실린 구급상자 시스템을 보여주며 자신들은 난폭 운전자들을 쫓는 일 외에도 (이렇게 비싼 차니까) 위급상황 발생 시에 헬기보다 더 빠르게 응급처치를 도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날씨가 안 좋아 헬기가 뜨지 못해도 차는 질주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비싼 차니까) 법이 인정한 질주 가능한 경찰차라니, 묘한 매력이 느껴졌다. 역시 페라리와 람보르기니의 나라답다. 한 가지, 한국 못지않게 이탈리아 역시 경찰차의 디자인 색상이 예쁘지 않다는 점이 눈에 밟혔다. 아무튼 현실에선 경찰차가 가장 눈에 띄지만 영화를 볼 때는 경찰차에 아무런 관심이 가지 않았다. 반면에 범죄자들의 차량은 디자인과 색상이 캐릭터와 맞물려 하나의 성격이나 태도를 나타내주는 잣대로 평가하곤 했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서 도미닉(빈 디젤)이 타는 닷지 차저와 브라이언(폴 워커)이 타는 토요타 수프라의 차종 자체가 그들의 캐릭터를 대변했듯 말이다. <히트>에서 LAPD 빈센트 반장(알 파치노)이 무슨 차를 타고 다니는 지가 그리 중요한가? 기억도 잘 안 난다. 참고로 이 글을 쓰려고 일부러 찾아보니 1992년형 포드 크라운 빅토리아 LX 모델이었다. 미국 내 웬만한 택시와 경찰차는 대부분 이 모델이 공급된다. 도미닉의 입장에서 깔보자면 무개성 보급형인 것이다. 내 눈을 사로잡은 경찰차 <블루스 브라더스> 경찰차 그런데 영화를 보다가 유독 경찰차에 꽂힌 적이 있다. 존 랜디스 감독의 1980년 작 <블루스 브라더스>를 보던 중이었다. 망나니 제이크(존 벨루시)는 교도소에서 출소하던 날, 형제인 엘우드(댄 애크로이드)가 경찰차를 몰고 나타나자 대뜸 “이 똥차의 출처는 어디냐?”고 따져 묻는다. 그가 끌고 나온 낡은 경찰차는 1974년형 닷지 모나코로 엘우드는 경찰 공매에 나온 낡은 중고차, 즉 경찰이 쓰다 버린 차를 돈을 주고 주워 타고 온 것이었다. 차체의 앞뒤 모두 넓은 직사각 형태라 위에서 내려다보면 옛날 회수권 비율의 직사각형이 떠오른다. 1970년대에 주로 만들어 보급했던 이 모델은 4문 세단의 중형차로 전륜 구동에 넓은 무게감을 강조하는 형태로 디자인된 경찰차였다. 엘우드는 이 차가 “경찰 엔진에 경찰 타이어, 그리고 경찰 서스펜션을 겸비한, (석유 파동 이후 적용된 차체 규제가 적용되기 이전 모델이라) 일반 휘발유로도 잘 나가는 차”라고 자랑한다. 사실 이 낡은 닷지 모나코가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제이크와 엘우드 형제가 이 차를 몰고 시카고 시내를 누비고 다니면서 벌이는 황당한 모의 때문이었다. 자신들이 자라온 고아원이 밀린 세금 5,000달러 때문에 건물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그들은 돈을 구해보겠다며 밴드를 결성해 콘서트를 연다. 요주의 인물로 찍힌 망나니 형제가 도시를 휘젓고 다니니까 영문을 모르는 경찰들은 그들이 무슨 범법을 저지를지 몰라 그 뒤를 바짝 뒤쫓는다. 영화 후반부, 두 형제가 경찰을 따돌리고 공연장에 도착하기 위해 벌이는 추격 장면은 당시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블록버스터 범죄 영화 규모의 카체이스 액션을 선보인다. 수십 대의 경찰차가 형제를 뒤쫓다가 도로 한복판에서 서로 부딪쳐 뒹굴며 종잇장 구겨지듯 짓이겨지는 장면은 명불허전이다. 당시 SNL에서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배우 댄 애크로이드가 이 영화를 기획하면서 존 랜디스 감독과 함께 액수 불명의 엄청난 제작비를 써댔는데 스튜디오가 이를 제어하지 못하는 바람에 탄생한 명장면(?)이었다고 전해진다. <다크 나이트>(2008)에서 조커(히스 레저)가 바주카포를 날리던 지하도, 조커의 지시로 고담시 시민들이 브루스 웨인을 덮치던 고가 아래 도로 같은 시카고 시내 도로를 블루스 브라더스 형제가 십수 년 전에 이미 닷지 모나코를 타고 질주한 바 있다. 무모한 카체이스 촬영 <프렌치 커넥션> 1971년형 폰티악 르망 <블루스 브라더스>의 경찰차에 사로잡혔다는 것은 정작 경찰이 모는 경찰차에 끌린 건 아니라는 소리다. 허나 경찰이 타고 있는 차를 모두 경찰차의 범주에 넣는다면 <프렌치 커넥션>(1971)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것 같다.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에게 1972년 최연소 아카데미 감독상, R등급 최초 작품상 등을 안긴 이 영화는 뉴아메리칸 시네마 시대를 열어젖힌 영화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제작자인 필 댄토니는 지난 칼럼에서 소개한 영화 <블리트>를 제작했는데 그때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감독과 함께 기존 영화들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시도로 점철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탄생한 추격 장면은 자동차가 자동차를 추격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가 기차를 추격하는 장면이었다. 프랑스에서 건너온 마약 거래 사범들을 뒤쫓던 지미는 킬러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고는 도망치는 그를 추적한다. 그런데 킬러가 기차를 타자 열차 고가 밑 도로를 마침 지나가던 시민의 차량인 1971년형 폰티악 르망(하드탑 세단)을 무작정 빼앗아 뒤쫓는다. 앞서 소개했듯, 이 장면은 촬영 현장 분위기를 알고 다시 보면 불편해서 제대로 즐기기 어려울 정도로 험난하게 촬영했다. 이 장면의 탄생 비화는 다음과 같다. 첫 제작 회의에서 제작자 필은 스태프들을 모아 놓고 “내가 지금 최고의 추격장면을 담은 영화를 기획했다.”고 자랑을 늘어놓으면서 <블리트>보다 더 멋진 추격 장면을 넣자며 허풍 아닌 허풍을 떨었다. 그런데 감독은 촬영이 시작됐음에도 추격 장면에 대해 딱히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없었다. 둘은 서로 차일피일 아이디어를 내놓길 미루다가 하루는 촬영장으로 향하면서 뉴욕 거리를 산책하는데 마침 두 사람이 걷던 도로 아래로 지하철이 덜컹거리며 지나가더란다. 길거리에는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본 제작자 댄은 자신이 평생 살아왔던 뉴욕의 고가 철도를 올려다보며 위아래로 무언가 동시에 달려나가는 추격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자동차가 기차를 쫓는 장면의 콘셉트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런데 당시 1970년대에는 지금처럼 카체이스 전문 촬영 장비인 러시안 암 같은 특수 장비가 존재하지 않을 때이고 그렇다고 차량을 개조해서 찍을 생각도 해보던 시기가 아니라 무식하게 추격 장면을 ‘진짜로’ 연출해서 찍어야 했다. 애초 이들의 연출 방향이 다큐멘터리 스타일을 추구하는 범죄 영화를 표방했기 때문에 실제로 추격하는 장면을 찍어야 한다는 사명감은 더욱 컸을 것이다. 훗날 촬영감독은 “주인공이 탄 차가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고 사람과 차 사이를 간신히 비껴가는 등의 영화 속 추격 장면은 연출된 게 아니라 전부 실제상황이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절대로 찍어서는 안 되는 방식으로 촬영한 장면이었던 것이다. 또 흥미로운 것은 진 핵크만의 스턴트 운전 대역으로 빌 힉크만이라는 스턴트 전문가가 맡았는데 바로 <블리트>(1968)에서 악역으로 등장했던 그다. 그는 이번 영화에서도 FBI 요원으로 등장해서 주인공 형사 지미(진 핵크만)의 속을 긁는 역할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는 감독이 요구하는 거의 모든 무모한 스턴트 촬영을 모두 해냈다. 무사한 게 다행이었다. 물론 사고도 있었다. 세컨드 유닛 촬영감독이 고가철도 아래쪽에서 지미 역의 배우 진 핵크만이 직접 차를 모는 장면을 찍고 있었는데 카메라는 자동차 트렁크에 있었고 엄청난 속력으로 질주 중이었다. 그런데 촬영과 무관한 일반 시민들의 차량이 옆 차선에서 같이 달리는 것을 염두에 두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차 한 대가 뛰어드니까 진 해크먼이 왼쪽으로 핸들을 급히 꺾은 것이다. 그래서 옆 차와 충돌하고 이어 다리 기둥과 부딪쳤는데 촬영감독이 그 충격으로 트렁크에서 날아가 바닥에 나뒹굴었다고. 다행히 배우도 다친 곳은 없었지만 영화 역사의 비극으로 남을 뻔한 촬영현장이었다. 또 <프렌치 커넥션>은 제작진의 영화를 향한 위험하고 무모한 도전이 캐릭터에도 반영된 흥미로운 영화이기도 하다. 극 중 지미는 프랑스 마약단을 잡기 위해 집요하게 그들을 쫓다가 거의 반 미치는 상태가 되어 동료의 죽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뒤쫓은 괴물 같은 존재가 되어간다. 그것은 범죄자의 뒤를 쫓던 캐릭터가 이성을 잃고 점점 자신이 쫓는 범죄자와 닮아가곤 하는 캐릭터를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지미가 평소 범인들을 추적할 때 타고 다니는 자신의 차가 1971년형 포드 LTD(Brougham Hardtop Sedan)인데 이 모델은 경쟁사 차량인 고급형 세단 링컨 콘티넨털에 대항하는 고급화 전략을 내세워 만들어진 차량이었다. 극 중 프랑스 마약단이 미국으로 마약을 숨겨 들어오는 수단으로 링컨 콘티넨털을 이용한다는 설정의 디테일도 이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라면 과장된 해석일까. 윌리엄 프레드킨 감독은 경찰과 범죄자, 영웅과 악당의 기준을 모호하게 제시한 <프렌치 커넥션> 이후 알 파치노가 동성애자 연쇄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형사로 분하는 <광란자>(1980), 선배 요원의 죽음에 분노해 범죄와 결탁한 조직의 치부를 드러내고자 하는 특수요원 이야기 <리브 앤 다이>(1985) 등의 영화를 통해 일관된 주제를 밀고 나갔다. 물론 이들 영화에도 우악스러운 카 체이스 장면을 빼놓지 않고 등장시켰다. 경찰차에 대해 흥미를 느꼈다면 함께 찾아보시길. 경찰차의 추격이 인상적인 영화와 반대로 경찰에 쫓기며 질주하는 악당들의 카체이스 장면이 인상적인 영화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다음 연재에서 정리할 예정이다.
장 클로드 반담은 추억의 이름이다. 그 옛날 <투혼>으로 처음 만나 < 어벤저 >로 스타덤에 올랐다. 뭐 요즘에야 < 옹박 >부터 < 레이드 >에 이르기까지 온갖 리얼 액션들이 난무하는 영화계지만 <투혼>과 <어벤저>가 등장했던 당시 그런 순도 높은 리얼 액션은 진정 놀라운 것이었다. 아직 시네마테크니 예술영화전용관이니 그런 건 꿈도 못 꾸던 시절 거실에 보통 하나 있는 VHS 비디오데크로 각종 필터링 안 된 영화들을 잡탕으로 구경하던 당시 영화광들은 장 클로드 반담을 비디오로 먼저 만났다는 것에 자부심은 커녕 비디오 영화에서나 만날 수 있는 ‘B급 히어로’ 정도로만 인식했다. 주로 우리가 ‘반담이형’이라고 부르던 장 클로드 반담의 필모그래피는 그야말로 저렴했다. < 지옥의 반담 >이나 < 더블 반담 > 등 그의 이름이 영화 제목에 등장했지만 그것은 워낙에 반담이형이 액션 광들에게 인기가 많아 수입사에서 억지로 붙인 제목이었다. 그렇게 반담이형은 블록버스터 < 유니버설 솔져 >로 도약하나 했더니 역시 ‘1류’가 되지는 못하고 이후 < 페이스 오프 >를 성공시킨 오우삼의 빈약한 할리우드 데뷔작 < 하드 타겟 >이나 한동안 숀 코네리 주연의 <아웃랜드>니 < 2001:스페이스 오딧세이 >의 공식 속편 < 2010 >같은 영화들로 잘 나갔던 피터 하이암스가 커리어 하이에서 내려온 뒤의 작품 < 타임캅 >과 <서든 데스> 등 ‘괜찮은 감독의 B급 영화’로 연명할 뿐이었다. 그리고 21세기가 오자 반담이형은 급격히 잊혀졌다. 척 노리스로부터 스티븐 시갈 등 생각이 없이 액션만 달리던 ‘추억의 동작 영웅’ 중의 한 명으로 농담에나 등장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해마다 작품을 하며 <세컨드 인 코맨드>니 < 언틸 데스 >니 하는 제목들로 무의미하게 필모그래피만 늘여가고 있던 중, 2008년 드디어 ‘장 클로드 반담’이라는 그의 이름이 공식 제목으로 사용된 영화를 찍게 된다. 영화 제목이 < 장 클로드 반담 JCVD >다. 이 영화 < 장 클로드 반담 >에서 장 클로드 반담은 장 클로드 반담 역을 맡았다. 자전적인 전기 영화냐고? 아니다. 영화 속의 장 클로드 반담은 앞서 설명한 ‘한물 간 왕년의 스타 장 클로드 반담’ 역으로 등장한다. 2008년 그의 현재 모습을 그대로 연기한다. 대체 무슨 영화길래 설정이 이런 것일까. 영화가 시작되면 누가 봐도 뻔한 액션영화에서 롱 테이크로 각종 권격 액션 연기를 하는 반담을 만나게 된다. 나이는 들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주먹과 발차기를 날리던 반담은 컷을 외치는 감독에게 다가간다. 마흔일곱의 나이로 커트를 나누지 않고 통으로 찍는 것은 너무 힘들다고 항의하는 반담에게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건방지고 어린 감독은 ‘오우삼을 할리우드에 데려간 배우라고 내 영화를 마음대로 주무르려고 들면 안 되지’라고 시큰둥하게 말하며 무시할 뿐이다. 와중에 감독은 할리우드를 증오하는 듯 할리우드 간판 사진에 다트 핀을 날리고 있다. 그렇게 옛날의 영광은 물론 직업적으로도 ‘찌그러져’있는 반담은 법정으로 출두한다. 바로 딸에 대한 양육권 재판이다. 상대 변호사는 반담의 과거 영화들을 열거하며 그가 영화 속에서 폭력에 몰두했다고 몰아세운다. 반담이 출연했던 영화의 DVD들을 한 장 한 장 집어 던지면서 “차로 뭉개고, 사람 목을 조르고, 칼로 찌르고, 사타구니를 발로 차고...” 그가 행했던 연기들을 열거하며 딸을 양육할 자격이 없음을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 클로드 반담은 아직도 나이 먹은 관객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그냥 길을 걷는 중에 만난 남자들이 반갑게 인사하며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한다. 하지만 누군가 알아보기만 하지 아무도 그의 현재의 삶에는 관심이 없다. 마치 영화 < 버드맨 >의 리건 톰슨 같다고나 할까. 돈도 명예도 없는 장 클로드 반담은 은행 업무를 하는 우체국에 들르는데, 갑자기 그곳에서 총성이 울린다. 지나던 경찰이 우체국 안을 보자 장 클로드 반담의 모습이 스친다. 그리고 자신을 겨누는 총구를 발견한다. 경찰은 반사적으로 상부에 보고한다. “장 클로드 반담이 우체국을 털고 있다!” 중계차들이 날아와 이 흥미로운 사건을 생방송으로 중계하고, 경찰은 인질을 잡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장 클로드 반담과 협상을 벌인다. 와중에 이 현장을 구경하고 있는 구경꾼들은 무슨 이유인지 장 클로드 반담을 응원한다. 분명히 ‘한물 간 스타가 돈이 없어 은행을 터는’ 모습에 동정심 섞인 재미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반담은 은행 안에서 인질들과 함께 뭔가 어정쩡한 상태로 머물면서 예상을 뒤엎는 스토리가 진행된다. 영화 < JCVD >는 탐라 데이비스 감독의 1990년대 은행 인질 영화 < 베스트 맨 >이나 알 파치노의 < 뜨거운 오후 >를 연상시키는 대치극으로 정체되지 않는다. 법정에서 딸이 ‘아빠가 TV에 나오면 친구가 놀린다’며 함께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거나 시시한 영화에나 출연해야 하는 반담의 현실, 알아보는 사람을 피곤해하면 바로 잘난 척을 한다며 공격받는 피로한 상황 등을 병치하며 흘러간다. 나를 포함해서 세상에서 제일 흔해빠진 ‘한정 공간 영화로 저예산을 극복하고 스토리텔링 기술을 어필하려는 데뷔 감독’의 전형적인 영화처럼 보이던 작품은 예상외로 깊은 감정들을 담아낸다. ‘퇴물 스타가 소동에 빠지는’ 영화는 앞서 말했던 <버드맨>을 비롯해 여러 차례 만들어진 아이템이다. 심지어 이 영화는 < 버드맨 >보다 7년이나 먼저 만들어졌다. 하지만 < JCVD >는 퇴물 스타가 징징대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차원을 뛰어넘는다. 장르영화적인 재미는 당연히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제 퇴물이 되어버린 왕년의 스타가 부르짖는 인생의 소회를 그린다. 도대체 이 희한하게 재미난 작품을 만든 감독은 2015년 현재 어디에 있을까. 2005년 <버질 Virgil>로 장편 데뷔한 감독 마브룩 엘 메크리는 고몽 영화사에서 만든 이 작품 < JCVD >을 통해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된다. 할리우드로 실려 간 엘 메크리 감독은 어느 한국 감독의 작품을 리메이크할 기회를 얻게 됐다. 야심 차게 각본을 완성하고 제출한 엘 메크리 감독은 스튜디오로부터 의외의 반응을 맞이한다. ‘대본이 너무 좋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당신이 아니라 마틴 스콜세지 급의 거장이 연출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여기서 교훈은 ‘할리우드에서 데뷔하는 감독이 시나리오를 지나치게 잘 쓰면 곤란하다’일까. 그렇게 해당 프로젝트의 감독직으로부터 억울하게도 하차하게 된 엘 메크리 감독은 우연하게도 ‘역시 이미 한물간’ 왕년의 대스타 브루스 윌리스가 출연하는 액션 영화를 연출하게 된다. 바로 헨리 카빌, 시고니 위버 등이 함께 출연한 < 콜드 라잇 오브 데이 >였다. 흥행에서 대실패를 하고 평가 역시 비참했다. 여기서 우리는 할리우드 밖에서 주목받아 할리우드로 입성해 첫 작품에서 망해버린 여러 감독의 이름이 떠오른다. 장 클로드 반담과 함께 했으며 바로 오늘의 이 영화에서 직접 언급되기도 했던 오우삼의 이름이 가장 먼저 머릿속을 스친다. 2012년 이후 단 한 작품도 연출하지 못하고 있는 엘 메크리 감독은 지금쯤 어떤 각본을 쓰고 있을까. 오우삼 이 결국 < 페이스 오프 >로 성공을 거둔 것처럼 와신상담의 날이 올 것일까. < JCVD >를 보고 있으면 분명히 그렇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PS. 참고로 예의 엘 메크리 감독이 감독직에서 하차했던 한국 영화의 리메이크판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