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란
- 감독
- 이황림
- 제작년도
- 1989
- 출연
- 김구미자, 임성민, 박영규, 진희진, 김종민, 이백, 강상용, 신찬일, 박중훈
에로 팬들에게 1990년대 초는 애매한 시간이었다. 1988년 유진선 감독의 < 매춘 >을 정점으로 한국의 에로티시즘 영화는 확실히 하향곡선을 그렸고, 이후 < 애마부인 > < 산딸기 > < 변강쇠 > < 빨간 앵두 > < 뽕 > 등 굵직한 프랜차이즈들이 속편을 쏟아냈지만 태작이 대부분이었다. < 사방지 >(송경식. 1988)나 < 애란 >(이황림. 1989) 등 주목할 작품도 있었지만 대세를 막을 순 없었다. 다행히 하향세의 반대편에 에로 비디오가 급성장하고 있었지만 아직 < 젖소부인 바람났네 >(김인수. 1995) 같은 압도적 작품은 도착하지 않았다. 이 틈새에 등장한 이상한 에로 사극 한 편이 있었다. 1993년 여름에 개봉된 양병간 감독의 <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이하 <무쓰물>)다. 여기서 ‘양병간’이라는 이름이 왠지 익숙하다고 느끼셨다면… 맞다. 8년 전 < 무서운 집 >(2015)이라는 저예산 호러를 내놓은 바로 그 감독이다. <무서운 집>의 거친 페티시즘과 느닷없이 몰아치는 분위기의 정서적 근원이 궁금했던 관객이라면 <무쓰물>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현장의 양병간 감독과 배우 김문희. 양 감독은 1950년생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영화계에 들어와 연출부 생활을 했고 1985년에 < 피조개 뭍에 오르다 >로 데뷔했지만 검열로 인해 만족스러운 작품이 되진 못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는 8년 만에 나온 두 번째 작품으로 파격적인 에로 사극이고, 다음 해 미스터리 멜로인 < 태양 속의 남자 >(1994)를 연출했다. 이후 20년 가까운 공백을 딛고 내놓은 저예산 호러 <무서운 집>(2015)은 컬트로 평가 받고 있다.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썼지만, <무쓰물>은 조선 시대 설화집 『고금소총』에 수록된 ‘귀봉변괴’(鬼棒變怪)가 원작이다. ‘귀신 들린 방망이의 이상야릇한 일’이라는 뜻으로, 도깨비가 던져 준 양물(陽物), 요즘으로 치면 ‘딜도’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何用物耶)라는 주문을 접하면 건장한 남자로 변해 눈 앞에 있는 여성과 성교를 한다는 판타지 스토리다. 감독은 이 매력적인 소재를 각색하는 과정에서 두 편의 에로 정전을 끌어왔다. 바로 <변강쇠>(엄종선. 1986)와 <뽕>(이두용. 1986)이다. <무쓰물>은 전자의 ‘과장된 성적 표현’과 후자의 ‘마을을 휩쓰는 섹스 스캔들’이라는, 한국 사극 에로의 가장 중요한 장르 관습을 결합한다. 클리셰를 이용한 안전 장치인 셈인데, 흥미로운 건 이 영화가 클리셰를 따르는 방식이 아니라 그것을 지키는 척하면서 위반하고 뒤집는 태도다. 김문희와 이미지의 캐스팅은 이 영화의 중요한 성공 요인이다. 1960년대 동갑이던 두 배우는 이 영화에서 노련하면서도 섹슈얼한 연기를 해낸다. 이미지는 아쉽게도 2017년 5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주인공은 한 과부(김문희)와 오 과부(이미지)다. 독수공방을 벗어날 수 있게 정인을 점지해 달라고 매일처럼 폭포수 밑에서 정화수 떠놓고 빌던 한 과부는 어느 날 우연히 집 마당에서 양물을 줍는다. 무심코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라는 혼잣말을 하자, 갑자기 상의를 탈의하고 한쪽 다리는 걷은 건장한 사내(이상일)가 나타나 한 과부에게 달려들고, 마을에 지진이 날 정도로 거대한 스케일의 방사가 치러진다. 나무 막대기에서 11단 변신을 통해 정인으로 변하는 남자 덕에 한 과부의 얼굴엔 화색이 돌고, 이를 수상하게 생각한 오 과부는 그 비밀을 알게 되고, 양물을 훔친 오 과부도 놀라운 경험을 한다. 이후 양물은 마을을 돌아다니게 되고, 결국 여인들과 함께 그 요술 방망이는 관아에 끌려가게 된다. 사또(홍성민)는 양물을 뜨거운 물에 끓이기도 하고 불 속에 넣기도 하지만, 끄떡없다. 결국 단두대를 통해 절단하려는 찰나, 변신이 이뤄지며 등장한 사내는 한 과부를 번쩍 들어 안고 늠름하게 걸어간다. 한 과부가 치성 드리는 장면. 사극에 흔히 등장하는 클리셰지만, 바위와 폭포수가 만들어내는 교묘한 미장센은 분출하는 성욕에 대한 메타포처럼 느껴진다. <무쓰물>은 한국의 극장용 에로 사극 끝물에 등장한 전복적 텍스트다. ‘판타지 에로 사극’이라 부를 수 있는 이 영화는 그 환상성을 토대로, 에로 사극에서 여성에 대한 양대 억압 기제였던 ‘은장도’와 ‘열녀문’ 이데올로기를 뒤집는다. 절개를 지키기 위해 은장도로 자결하겠다며 욕망을 억압하고, 가부장제에 순응한 대가인 열녀문을 하사 받기 위해 역시 욕망을 억압해야 했던 조선 시대 사극. 이 장르가 항상 그 욕망의 경계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통해 긴장감을 만들어냈다면 <무쓰물>은 그 제약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억압 같은 게 있었어?”라고 반문하듯, 이 영화에 등장하는 마을의 아낙네들은 열녀문을 하사 받은 양반댁 마님이든, 여염집의 과부댁이든, 어엿한 남편을 둔 유부녀든, 갑자기 마을에 찾아 든 양물(과 그것이 변한 사내)에 광적인 집착을 보이며 집단적 욕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영화 초반부 어느 양반집 마님이 외간남자를 취한 후 관계가 끝나자 하인들을 시켜 먼 곳에 내다 버리는 설정이 등장한다. 조선 시대 하류층의 수절 과부가 노총각이나 홀아비를 납치하는 일(이른바 ‘보쌈’)이 있었다곤 하지만, <무쓰물>은 상류층 여성의 원 나잇 스탠드를 과감하게 영화 첫 장면에 배치하며, 이 영화는 유교적 세계관에서 상당 부분 이탈해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양물이 변신한 사나이도 흥미롭다. 일반적인 에로 사극의 돌쇠가 산발 스타일의 순수남이라면, <무쓰물>의 사나이는 상투를 틀었고 항상 상의를 탈의한 상태로서 한쪽 바지는 허벅지까지 걷었다. 헝크(hunk, 덩치가 크고 섹시한 남자) 스타일에 결혼한 남자의 징표인 상투가 있는, 변형된 남창(gigolo) 이미지다. 원 나잇 스탠드와 지골로. <무쓰물>은 이러한 요소를 통해 1980년대 에로 사극과 결별한다. 양물은 11단 변신을 거치며 사나이로 변한다. 돌쇠가 아닌, 헝크이자 지골로 이미지를 지녔다. 이 영화에서 또 한 번 놀라게 되는 건 비역질에 대한 묘사다. 양물은 성적 대상의 성별을 가리지 않고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라는 주문에 반응하고, 사나이는 눈 앞에 보이는 존재를 무조건 범하는 터미네이터 같은 존재인데 스님이나 사또도 피해가지 못한다. 특히 관아에서 사또와 이방이 비역질을 당하는 대목은 “찢어졌구만!”이라는 고통 섞인 대사와 함께 한국 사극에선 접하기 힘든 설정이다. 종교와 정치에 대한 반역적 메타포라고 확대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성적 표현의 수위 만으로도 <무쓰물>은 선을 넘는다. 여기서 <무쓰물>은 애너크로니즘(anachronism)을 통해 확실하게 탈주한다. 번역하면 ‘시대 착오’ 정도가 될 애너크로니즘은 조선 시대 배경 영화에 고려 시대 의상이 등장하는 정도의 고증 오류 수준이 아닌, 좀 더 파격적인 방식으로 <무쓰물>에 확실한 인장을 남긴다. 마을 전체가 양물의 광풍에 휩싸이자, 음란함을 다스리는 음무제(淫撫祭)가 치러진다. 이 장면에서 일반적 사극이라면 무당의 굿판이 벌어지겠지만, <무쓰물>은 놀랍게도 동네 여인네들이 모여 캉캉 춤 추는 장면을 보여준다. 음무제의 캉캉 춤과 해피 엔딩. 이 영화는 사극 장르를 경쾌하게 해체한다. 감히 말하건대 한국영화에서 이런 파격은 없었고, 이외에도 강인구의 전자 음악(그는 <무서운 집>에서도 음악을 맡았음)이나 길로틴의 등장 등은 <무쓰물>의 장르 해체적 성향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사나이가 한 과부를 안고 어디론가 가는 대목은 한국 사극에선 좀처럼 만나기 힘든 해피 엔딩이자 감동의 피날레다. 부디 두 사람, 행복하시길.
이강천 의 < 피아골 >(1955)은 반공법 위반으로 상영이 금지되었던 최초의 영화다. 더불어 반공법을 위반한 최초의 반공영화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형용모순의 수사는 <피아골>을 설명하는 데 있어 턱없이 모자란 표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영화의 흥미로운 면모를 살피는 데 있어서는 얼마간 유효해 보인다. 당시 이 영화는 빨치산을 인간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상영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특히 마지막 장면이 논란이 되었는데, 주인공 애란( 노경희 )이 지리산을 내려와 공허한 몸짓으로 백사장을 걸을 때, 그녀가 남한사회로 귀순할지 피아골로 다시 오를지 목적이 불분명해 보인다는 이유서였다. 제작자는 이후 영화 마지막에 태극기 장면을 삽입했고, 개봉된 영화에선 지친 애란의 모습 위로 휘날리는 태극기가 디졸브 되며 이야기가 끝난다. 위풍당당하게 휘날리는 태극기가 당대에는 중요한 표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시각에서 보면 마지막 태극기만큼 이 영화에 어울리지 않는 장면이 없다. 내막을 모른 채 마지막 장면을 맞더라도, 이물감이 강하게 느껴져 억지로 끌어온 장면이라는 걸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피아골>은 반공영화이기 이전에, 휴전 후 지리산 피아골에 잔류한 소수 빨치산을 세밀하게 그린 탁월한 인물화다. 여는 반공영화와는 달리 이 영화엔 남한군이나 경찰이 등장하지 않는다. 또한 관념적인 이데올로기의 대립에 서사를 할애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영화가 관심을 두는 건 피아골에 갇힌 빨치산의 생태계와 죽음에 가까워 가는 인물들의 절박한 생존기, 무너져 가는 이념 속에서 얼룩져 가는 인물들의 초상에 있다. 멀리서 날아오는 총탄과 포탄의 피해로 아가리( 이예춘 ) 부대의 대원들은 쓰러져 가지만, 그들에게 더 큰 공포는 지리산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는 일이다. 나약한 인물들을 지탱하고 있던 이데올로기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점차 자리를 잃어가고, 각자의 신념은 견지한 당성의 강도와는 상관없이 무너져 가며, 인물들을 저마다의 회의와 모순과 광기 속으로 빠져든다. 이를테면 대장 아가리는 부대의 규율을 어긴 자들을 잔혹하게 처치하면서도 스스로는 비밀스럽게 규율을 어기며 자기모순에 빠져있고, 부대원들이 보급투쟁을 하러 부락에 내려간 사이 고요한 사찰에 홀로 남아 과오에 대한 죄의식으로 분열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의 비서인 애란 역시 당성이 강한 인물로 그들이 반동분자로 명명한 이들에게 잔혹하긴 마찬가지지만, 그녀를 지지하고 있는 건 신념과 함께 빨치산의 규율을 지킴으로써 돌아갈 고향도 없는 자신의 운명을 피아골에 결부시키는 일이다. 이들과 마찬가지로 부대의 간부이지만, 영화 시작부터 혁명투쟁에 회의하고 있는 철수( 김진규 )는 부대의 잔혹한 행위들을 은밀하게 거부하면서도 무력하기 그지없는 표정들로 얼룩져 가는 인물이다. 외에도 부대원들은 서로 짝을 이뤘다 배신하기를 거듭하며 불안한 공동체의 마지막 모습을 아로새긴다. 사실 그들의 초상 속에 반공메시지가 스며들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초상 하나하나를 구체적으로 그리며 이데올로기의 작동 시스템에 잠식당한 인물들의 항변에 이처럼 귀 기울이는 작품도 영화사에 흔치 않았다는 점을 부인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피아골>은 탁월한 인물화기도 하지만, 심리의 풍경화이기도 하다. 영화는 간혹 넋을 잃고 바라보게 만드는 유려한 움직임과 리듬으로 인물들 사이에 흐르는 감정을 세밀히 묘사한다. 또한 지리산의 견고한 바위와 유약한 풀잎들 사이, 그리고 사물들이 드리우는 그림자 속에 인물들을 배치시키며 그들의 복잡한 심리를 형상하고 있다. 이를테면 영화는 철수와 마음을 나누는 소주( 김영희 )가 지대 본부로 소환되기 전까지 철수와 소주 그리고 철수를 연모하는 애란 사이에 흐르는 감정을 세심히 어루만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세 인물 사이의 감정적 기류를 아리고도 아름답게 표현한 장면이 있다. 소주가 대장 아가리에게 겁탈 당한 후 이어지는 장면들에서다. 숙소 안의 상황을 모르는 철수는 대장에게 보고할 사항이 있어 아가리의 숙소 앞에서 잠시 기다리고 철수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던 애란은 어느새 그의 곁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대장의 명령을 받은 철수는 먼저 자리를 뜨고, 숙소 앞에 남아있던 애란은 시간차를 두고 나오는 대장과 소주의 매무새를 보고선 소주가 당한 일을 얼핏 눈치 챈다. 그러나 그녀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않는다. 다만 숙소의 모퉁이를 지나가는 소주를 애란이 조용히 따르고 카메라 역시 둘의 움직임을 유유히 따를 뿐이다. 철수와 소주와 애란이 차례로 숙소 모퉁이를 지나갈 때 세 인물 사이에 흐르는 애정과 질투와 환멸과 연민의 감정은 그런 마음을 억누르고 있는 표정과 고요한 움직임 사이에서 아릿하게 미동한다. 그리고 소주가 떠난 밤, 부락으로 보급투쟁을 나서는 대원들의 모습은 나뭇잎들이 드리운 그림자로 인해 얼룩지거나 건물들이 드리운 짙은 그림자 속에 묻히곤 한다. 출구 없는 암담한 운명이 그들을 자꾸만 어둠 속으로 밀어 넣고, 영화는 그들의 불안과 회의와 광기의 현장을 무섭도록 고요하게 비춘다. 이 영화를 반공영화로 보아야 한다면, 이들의 잔혹함과 광기를 치밀하게 그려서가 아니라, 이들의 침묵 속에서 저 홀로 청명한 소리를 내고 있는 계곡의 물소리가 더 깊이 울리기 때문일 것이다. 대립된 이념에 아우성치지 않고 침묵 속에 새어나오는 신음을 첨예하게 그린 <피아골>은 어느 한 범주에 몰아넣기에는 품이 넓은 영화다. >> 피아골 VOD 보러가기 <<
표현주의적인 세트에서 시작하는 도입부부터 강렬하다. 주인공 이시목( 이예춘 )은 전시회를 찾았으나 작품은 하나도 없고 휑하다. 그런 가운데 어딘가에서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들려오는데, 그곳에 유일하게 걸려 있는 사별한 아내 애자( 도금 봉 )의 초상화에서 소리가 난 것이다. 의문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 그림의 얼굴은 마치 얼음 녹듯 녹아내린다(여기서 첫 번째 충격!). 이윽고 한 남자가 그를 차에 태워 어딘가로 데려간다. 바깥에는 마치 좀비처럼 몰려다니는 귀신들이 쫙 깔려 있어 달아날 수도 없다(여기서 두 번째 충격!). 그렇게 도착하자, 또 다른 낯선 남자가 등장해서는 “잘 오셨습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하니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그러다 초상화의 주인공인 여자가 나타나고 두 번째 낯선 남자의 등에 칼을 꽂고 유유히 떠나간다. 시목은 그걸 침대 아래에 숨어 뛰어오르는 여자의 발만 본다. 사람이라고 하기엔 모든 동작이 이상하다. 그리고 고양이의 실루엣이 은은하게 비친다(여기서 세 번째 충격!). 맞다, 그녀는 고양이다. 고양이 귀신이다. 한국 장르 영화 팬들에게 이용민 감독의 < 살인 마 >(1965)는 단연 ‘발견’의 영화다. 이미 발견된 지가 오래되어 이런 표현을 덧붙이는 게 다소 민망하긴 하지만, 어쨌건 < 살인마 >는 많은 평자들이 ‘동양과 서양의 괴담이 뒤섞인 한국 공포영화의 초기 대표작’으로 수없이 얘기해왔다. 앞서 얘기한 도입부는 10분 동안 여러 인물이 등장하고, 공간 또한 쉴 새 없이 바뀌며 군더더기 없이 꽉 짜여 진행된다. 낯선 남자의 차에 엉겁결에 올라탄 주인공의 두려움에 이입되어 그야말로 정신없이 휩쓸려간다. 그 속도감과 박력이 어마어마하다. 이후 시목은 화가로부터 애자의 초상화를 받게 되는데, 그 초상화를 집에 가져온 이후부터 집에 괴이한 일이 연달아 발생한다. 오래전 죽은 애자가 나타나 아이들을 잡아가고, 어머니 허 씨( 정애란 )에게는 고양이의 혼이 씌어 이상한 행동을 한다. 심지어 재혼한 아내 혜숙( 이빈화 )은 애자의 혼령에게 처절하게 죽임을 당한다. 초상화가 이 모든 사건의 화근이라고 생각하고 없애버리려고 할 때쯤, 화가의 일기를 통해 아내와 애자와 자신의 가족에게 벌어진 비극의 전모를 알게 된다. 한국영화감독협회가 기획하고 영화평론가 김종원 이 대표 필자로 참여하여 국학자료원에서 펴낸 『한국영화감독사전』에서 이용민 감독은 “일본대학 예술과 영화부를 졸업한, 촬영감독 출신의 영화감독으로서 1960년대를 대표하는 공포영화 감독”으로 소개되고 있는데, 그 스타일에 대해서는 “토속적 소재를 바탕으로 해서 정통적 공포영화를 연출했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제주도의 풍물을 촬영한 다큐멘터리 < 제주도 풍토기 >(1946)로 영화 작업을 시작했고 최은희 , 김승호 , 김진규 , 구봉서 , 김희갑 등 당대 최고의 스타들이 총출동한 코미디영화 < 맹진사댁 경사 >(1962)로 큰 흥행을 거두기도 했지만,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공포영화였다. 액션 영화 하면 정창화 감독을 떠올리듯 공포영화 하면 이용민 감독이었다. 사람의 피를 마시는 악의 꽃을 이용해 한을 푼다는 < 악의 꽃 >(1961)을 비롯해 시네마스코프의 미장센이 돋보이는 < 지옥문 >(1962), 무려 결혼 첫날 밤 아내의 기이한 행동에 남편이 심장마비에 걸려 죽는 < 무덤에서 나온 신랑 >(1963), 이예춘 과 도금봉 이 다시 만난 < 목 없는 미녀 >(1966) 등 제목만으로도 그 필모그래피는 으스스하다. 일본에서도 그 실력을 인정받았던 촬영의 대가 이용민 감독은 바로 이 공포영화 장르에서 다양한 카메라 워크와 특수촬영 등 발군의 실력을 과시했다. 무엇보다 영화 내적으로도 < 살인마 >는 소복을 입은 전통적 ‘여귀’가 등장하는 가운데 ‘흡혈’과 같은 외래적인 요소를 녹여낸 하이브리드한 솜씨가 눈에 띈다. 제작된 시대를 감안하면, 억지스럽다기보다 오히려 세련되게 느껴진다. 드라큘라가 십자가를 무서워하듯 염주를 무서워하여 불교에 의해 퇴치된다는 설정도 독특하다. 또한 시어머니에게 고양이가 ‘빙의’하여 손자들의 얼굴을 혀로 핥을 때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다. 게다가 거기에는 고부 갈등과 처첩 갈등이 한데 엮여 있고, 김기영 감독의 < 하녀 >(1960)를 떠올리게 하는 부르주아 가정 내부의 뒤틀린 욕망까지 숨어 있다. 『근대성의 유령들-판타스틱 한국영화』를 쓴 김소영 교수에 따르면, 1960년대 공포영화의 주 관객층이 ‘시어머니의 인가를 받아 외출을 시도한 동네 아주머니 부대’였다는 사실에 입각해, < 살인마 >의 경우 압도적으로 여성 관객이 많았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또한 『월하의 여곡성-여귀로 읽는 한국 공포영화사』에서 백문임 교수는 “희생자인 며느리가 생전에는 조신하고 얌전했다가, 원귀가 된 이후에는 가공할만한 욕망을 전면적으로 드러내는 괴물이 된다”며 “< 살인마 >는 평화로운 가정의 안주인인 ‘(본)처’라는 존재를 더 이상 순응적인 존재로 그리지 않음으로써 가족에 대한 기존 관념을 와해시킨다”고 쓰고 있다. 더불어 “가장 충격적인 설정은 바로 40대의 시어머니가 자기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감히’ 발현할 뿐만 아니라, 외간 남자와의 애정 행각을 은폐하기 위해 며느리를 살해한다는 점”이라고도 덧붙인다. 어쩌면 장르를 초월해 당대 가장 도발적인 영화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복해서 볼 때마다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처럼 < 살인마 >는 형식과 내용 양면에서 한국 장르영화사(史)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