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쉬 래드: 트롤의 숲
- 감독
- 미켈 브라에네 산데모세
- 제작년도
- 2017
- 출연
- 베비에른 엥게르, 에일리 하보, 매즈 소요가드 피터센, 앨런 하이드, 가드 B. 에이드스볼드, 엘리아스 홀멘 소렌센
일본에는 B급 영화의 전통이 선명하다. 메이저영화사가 아닌 소규모의 영화사에서 만들어낸 영화들을 주로 칭하지만 불황이었던 1970년대에는 도에이, 니카츠, 신도호 등의 메이저에서도 기묘한 영화들을 양산했다. 이시이 테루오의 <공포기형인간> <망팔무사도>와 스즈키 노미후리의 <도쿠가와 섹스 금지령> <성수 학원> 같은 ‘불량성감도’영화를 만든 도에이가 선두였다. 그중에서도 도에이의 여반장 시리즈와 공포여자고교 시리즈, 사소리 시리즈 등은 ‘핑키 바이올런스’라고 불렀다. ‘불량’ 여자들의 세계를 그린 야하고 폭력적인 영화들이었다. 80년대에 V시네마로 이어진 B급영화의 전통은 지금도 <라이브>와 <데드스시>의 이구치 노보루, <헬 드라이버>와 < V 소녀 대 F 소녀 >의 니시무라 요시히로 등의 감독들에 의해 이어지고 있다. 미츠다케 쿠란도의 < 건 우먼 >은 일본 B급 영화의 흐름에 놓인 영화다. 벌거벗은 여인이 등장하여 잔인한 살육을 벌인다. 제목만 보았을 때는, 여성의 팔에 총을 장착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 이블 데드 > 시리즈의 애쉬처럼 팔에 전기톱을 단 소녀가 등장하는 <머신 걸>이라는 영화도 있었고, 팔에 사이코건을 달고 싸우는 우주해적 코브라도 있다. <건 우먼>의 일본 제목은 ‘여체총(女?銃)’이었다. 그런데 여체가 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여체에 총을 집어넣는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비디오드롬>에서 제임스 우즈가 배에 총을 집어넣는 장면이 있다. 그 몽환적인 장면이 실제로 가능하다면 어떻게 될까? 이렇듯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만 이상한 몽상처럼 흘러가는 괴이한 영화가 <건우먼>이다. 재벌의 아들인 하마자키는 수많은 여성을 강간, 살해했다. 그에게 아내를 잃은 의사 마스터마인드는 복수를 하기 위해 인신매매 조직에서 마유미를 데려온다. 마약중독에서 벗어난 마유미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적을 제압할 수 있도록 사격과 격투술을 배운다. 미국으로 도망 온 하마자키는 늘 보디가드에 둘러싸여 있다. 유일한 기회는 더 룸이라 불리는 곳이다. < 호스텔 >의 그곳처럼, 부자들이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파라다이스 혹은 지옥. 시체애호증인 하마자키는 더 룸에서 변태적 욕망을 해소한다. 보디가드가 따라가지 못하지만 마유미도 무기를 가져갈 수 없고, 경비에게 무기를 빼앗아도 지문 인식이기에 사용이 불가능하다. 벌거벗은 채 시체로 위장해 들어가야 하는 마유미가 총을 가져갈 방법은 단 하나다. 몸을 갈라 총을 집어넣고는 다시 꿰매는 것이다. < 건 우먼 >은 시종일관 비장하다. 그들이 처한 상황, 그들이 하는 행동 모두가 처절하다. 그러나 현실을 연상시키는 리얼리티는 없다. 지극히 과장된 상황과 연기만이 있다. 마유미의 스토리를 들은 킬러가 말한다. “그거 일본 만화에나 나오는 거잖아. 뤽 베송 영화나.”영화 속 캐릭터조차도 딱히 현실이라고 믿지 않는 상황이지만, 그들은 언제나 최선을 다한다. 마유미가 자신의 몸을 갈라 총을 꺼낸 후 버틸 수 있는 시간은 22분이다. 그 이상이면 출혈 과다로 죽게 된다. 점점 몽롱해져 가는 상황에서, 온몸을 적신 피가 유니폼이 된 마유미가 악당들과 격투를 벌이는 장면은 박력이 넘친다. 적을 바라볼 때의 마유미의 눈은 강렬하게 불타오른다. 너무나 비현실적이지만 마유미가 펼치는 액션은 에너지가 넘쳐 보는 사람을 들끓게 한다. 물론 이런 류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만 마유미도, 마스터마인드도 모든 것을 걸었다. 마스터마인드는 마유미를 각성시키기 위해 많은 이를 죽였다. 때로 무고한 이도. 하지만 마스터마인드는 말한다. ‘복수를 끝내고 나면 나는 지옥으로 갈 거야.’자신이 나락으로 빠질 것을 알면서도 복수를 해야만 할 때가 있다. 마유미는 그의 도구로 시작했지만, 기꺼이 자신의 의지로 킬러가 된다. < 건 우먼 >의 영상도, 음악도, 마유미를 연기하는 아사미도 모두 70년대의 ‘핑키 바이올런스’를 연상시킨다. ‘핑키 바이올런스’는 단지 여성을 관음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았다. 남자를 압도하면서 그녀들은 자신을 지키고, 자신의 길로 나아간다. <건 우먼>의 마스터마인드도 그런 말을 한다. “남자는 피의 1/3만 흘려도 죽지. 여자는 2/3을 잃어도 아직 살아 있어. 신은 남자보다 여자를 정교하게 만들었어.” 마유미를 보고 있으면 <여수 701호 사소리>를 비롯해 ‘핑키 바이올런스’의 그녀들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누드모델로 시작한 아사미는 AV 배우와 영화배우를 겸업했다. 그러다 만난 이구치 노보루 감독에게 ‘핑크 바이올런스’의 여배우들을 닮은 마스크라는 말을 들었고, 주로 미소녀 스타일을 보여줬던 아사미는 점차 액션계열 배우로 이미지를 바꾸게 된다. 2009년에는 AV를 은퇴했고 <고스 로리 처형인> <헬 드라이버> <데드 스시> < 아이언 걸 > 등에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 건 우먼 >을 만든 1973년생인 미츠다케 쿠란도 감독은 고등학교 때 단신으로 미국에 건너가 대학교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졸업 후 미국에서 방송과 영화판에서 일하다가 2004년 <몬스터즈Monsters Do not Get to Cry>로 감독 데뷔를 한다. 영화에 뛰어든 계기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격돌Dual>과 미스미 겐지의 < 아들을 동반한 검객 >였다고 한다. 2008년에는 스승으로 여기는 오카모토 키하치에게 바치는 <사무라이 어벤져>의 주연, 각본, 연출, 제작을 했다. 2013년 작인 <건 우먼>은 유바리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고, 2015년 일본영화감독협회 신인상 후보에 올랐다. <사무라이 어벤져>에서 검, <건 우먼>에서 총을 다룬 미츠다케 쿠란도는 신작인 < 가라데 킬 >에서는 인간의 육체를 무기로 쓰고 있다. 미츠다케 쿠란도는 미국에서 영화를 공부했으면서도 지극히 일본적인 영화를 만든다. 그것도 B급의 잔혹하고 뒤틀린 영화를. 그걸 일본에서는 ‘에로 그로 넌센스 & 바이올런스’라고도 한다. 말도 안 되는 조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에로틱 그로테스크 넌센스’는 1930년대 일본에 형성된 오랜 전통이다. <에로틱 그로테스크 넌센스>를 쓴 미리엄 실버버그의 말에 따르면 ‘에로 그로 넌센스라는 말은, 정당 정치에 대한 고발이나 거리에 팽배한 호전적 분위기를 무시한 채 감각적 쾌락이 빚어내는 퇴폐에 심취한 것처럼 보였던 데카당트로 표현되는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건 우먼 >이 그렇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런 전통이 100여 년 가까이 흐르면서 ‘저패니즘 익스트림’으로 변형되었고 확장되었다. <건 우먼>은 그런 전통의 연장선에 놓인 기묘한 영화다.
할리우드 기획물의 변화하는 한 축을 가늠하고 싶다면 배우 ‘멜리사’들의 행보를 관찰해 봐도 좋겠다. 먼저 멜리사 맥카시. < 내 여자 친구의 결혼식 >(2011)에서 친구 들러리로 활약할 때만 해도 플러스 사이즈 배우가 가진 익숙한 코믹이 적중한 정도라 생각했다. < 스파이 >(2015)에서 마치 본처럼 종횡무진 하는 CIA 요원이 되어 액션을 구가할 때는 그 위력이 점점 실감됐다. 급기야 < 고스트버스터즈 >(2016)에서 여성 헌터로 활약하는 모습에 이르면 이제 이 배우가 가지 못할 길은 어디일까 싶다. 맥카시를 보고 있노라면 플러스 사이즈라고 사이드로 밀려나는 법이 없다. 오히려 때로 귀엽고, 때로 도발적이며, 때로 과격한 맥카시 본연의 코드를 전면에 내세운 기획이 끊이질 않는다. 관객의 반응이 있는 이상, 배우의 영역은 지금보다 더 넓어질 게 확실하다. 멜리사 버글랜드는 그런 의미에서 앞선 멜리사의 전철을 밟는 호주 출신의 배우인데, < 렉시의 행복 레시피 >로 들어가자면, 먼저 버글랜드를 좀 알아가는 것도 좋겠다. 버글랜드는 2011년도부터 방영되어 인기를 얻고 있는 미드 <위너스&루저스>에서 플러스 사이즈의 귀여운 캐릭터 ‘제니 그로스’로 사랑받기 시작했다. 제니처럼 실제로도 플러스 사이즈인 그녀는 “스칼렛 요한슨처럼도, 샤를리즈 테론처럼도 생기지 않았지만, 작품을 통해 이상하고 웃긴 내 모습을 오히려 사랑스럽고 귀엽게 봐주는 이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더 이상 그녀가 배우 활동을 하며 날씬하지 않다는 이유로 이 업계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걸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버글랜드의 인기를 감지한 할리우드 에이전시 ‘언타이틀드 엔터테인먼트’가 발 빠르게 계약을 맺었는데, 이곳은 마돈나, 애쉬튼 커쳐, 힐러리 스웽크, 다니엘 데이 루이스, 나오미 왓츠, 자레드 레토, 페넬로페 크루즈 등이 소속된 전도유망한 곳이기도 하다. < 렉시의 행복 레시피 >는 앞서 말한 버글랜드의 사랑스럽고 귀여운 코드들을 적극 활용해 만든 로맨틱 코미디다. 이 영화는 캐나다 버전의 < 브리짓 존스의 일기 >라는 수식이 잘 어울린다. B&B를 운영하는 서른 살 렉시 아이비는 성격도 꽤 괜찮고, 요리도 수준급인데 연애가 잘 풀리지 않아 고민 중이다. 여동생 결혼 준비로 집안은 분주하고, 투숙객인 커플은 밤새 섹스를 하느라 삐걱거리는 탓에 외로운 렉시의 밤잠을 설치게 한다. 맞춘 결혼식 드레스는 작아서 수선을 해야 할 판이고, 결혼식에 같이 갈 파트너가 없어서 엄마한테 닦달을 당하는 것도 괴롭다. “백마 탄 왕자님은 그만 좀 기다려”라는 친구의 충고에 “자전거 탄 왕자님이야”라고 정정할 정도로 그녀의 이상형은 자전거 탄 훈남. 그러던 어느 날 기적처럼 자전거를 타고 온 미남자가 도착해 며칠 묵어갈 방을 구한다. 렉시가 사는 캐나다 노바스코샤의 아름다운 전원 풍경을 담으러 이곳에 온 자유로운 영혼의 사진작가 애드리안(조나단 소우사)이다. 물론 < 브리짓 존스의 일기 > 속 ‘마크 다아시’같은 완벽하고 친절한 남자가 나타난 판에, 그녀의 속을 사사건건 긁는 ‘다니엘 클레버’가 없으면 심심할 거다. 이 경우에는 물새는 B&B의 지붕을 고쳐주러 온 친구의 친구인 남자 조스(아론 폴, < 브레이킹 배드 >의 그 아론 폴이다)가 얄미운 클레버다. 오랜만에 완벽한 이상형을 두고 핑크빛 멜로를 꿈꾸는 렉시에게 더러운 신발을 신고 마룻바닥을 저벅저벅 밟아 다니고, 땀내 나는 데다 능글맞은 조스는 지붕만 수리만 끝내면 사라져 줘야 할 눈엣가시다. 하지만 영화는 조스가 ‘처한’ 위치를 완벽하게 활용하는데, 연일 계속되는 지붕 수리 도중, 본의 아니게 조스가 렉시의 실수들을 유독 많이 보게 되고, 그녀의 귀여움에 눈을 뜨게 만든다는 것이다. 가령 렉시가 혼자 흥에 겨워 막춤을 추는 것 같은 장면들이나, 애드리안과 겪는 온갖 민망한 순간들을 모두 지켜보는 순간들. 한창 판타지에 빠져든 렉시의 연애가 엉망진창 산산조각이 나는 사건이 전개되는데, 결혼을 앞둔 동생과 푹 빠져버린 애드리안이 눈이 맞았다는 청천벽력이 그 시작이라고 할까. 블루베리 케?이나 크림 뷜레 같이 렉시가 만든 수준급의 요리들이 사건의 사이사이를 연결하는 윤활유가 되지만 이 영화에 ‘음식=힐링’이라는 공식을 적용하긴 힘들다. 그러니 트렌디한 음식 영화 같은 제목 대신, 이 영화의 원제인 ‘상대적인 행복’이란 뜻을 가진 ‘Relative Happiness’를 끄집어 내보는 게 더 어울리지 싶다. 마치 이영자 와 신동엽 , 컬트멤버들이 나란히 앉아 일반인들의 고민을 상담해주는 토크쇼 <안녕하세요>에나 나올법한 사연처럼, 고상한 엄마, 우아한 언니, 아름다운 동생에게 주눅 들어 살았던 렉시는 모든 게 무너지는 순간, 자신이 이상적으로 바라보던 그 ‘아름다운’ 관계들이 그리 완벽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 렉시의 행복 레시피 >는 전작 <비트 다운>(2012)을 비롯해 코믹 영화를 꾸준히 만들고 있는 여성감독 딘느 폴리의 영화로 뭐 그리 별스럽지도 않거니와 다소 뻔해 보이기까지 한 소소한 로맨틱 코미디지만, 앞서 말한 버글랜드의 능청맞고 귀여운 면모가 주는 재미가 크다. 극의 초반, 동생 결혼식용 피로연 드레스 생각에 그래도 살을 좀 빼볼까 TV를 보며 요가를 따라 하던 렉시가, 금새 포기하고 TV를 끄고 먹을 걸 먹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다. 시작은 플러스 사이즈의 미운 오리로 하되 끝은 각고의 노력으로 체중감량을 해 백조가 되는 판타지는 이 영화에는 없다. 렉시가 날씬한 집안 누구와도 다르게 혼자 플러스 사이즈인 것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도 애초 없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렉시의 몸무게는 그대로 유지되며, 그러니 렉시는 가장 코믹한 순간에도, 가장 로맨틱한 순간에도 ‘그녀인 채’로 승부를 볼 뿐이다. 뭣보다 < 브리짓 존스의 일기 >의 르네 젤위거가 브리짓을 연기하기 위해 엄청나게 체중을 불렸다가, 연이어 < 시카고 >(2002)를 찍기 위해 트레이너의 훈련 아래 혹독하게 체중감량을 해야 했던 그 고통을 <렉시의 행복 레시피>의 주연배우는 겪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건 2001년에 시작된 <브리짓 존스의 일기>가 시리즈를 거듭해 <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 >(2016)로 나오기까지 지난 십 수년간 일어난 이 업계의 괄목할 만한 변화다. 그녀가 맥카시와 견주어 얼마나 성장할지 모르겠지만, 트레이드마크인 빨간 머리와 예쁜 프린트가 가미된 귀여운 스타일의 패션을 소화하는 렉시처럼, 버글랜드 역시 그 자체로 의미 있는 배우로 영역을 만들어 나가길 바란다.
처음 본 슬래셔 영화는, 중학교 때 국도극장에서 본 < 13일의 금요일 >이었다. < 오멘 >과 < 엑소시스트 > 아니면 < 월하의 공동묘지 > 등 이미 보았던 공포영화에서는 귀신이나 악마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등장했다. <13일의 금요일>은 달랐다. 분명히 사람인 누군가가 정글칼이나 도끼 같은 것으로 마구 난도질한다. 액션영화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정도가 심했다. 섬뜩했다. 물론 1편에는 제이슨이 나오지 않는다. 어린 제이슨이 나오기는 하지만 회상이고, 꿈이다. 그러니까 사이코패스가 대량살인을 벌이는 액션영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2편으로 이어지며 진짜 제이슨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시리즈가 거듭되면서 제이슨은 초자연적인 존재가 된다. 번개를 맞아 무덤에서 되살아나고, 물속에 아무리 오래 있어도 죽지 않는 불로불사의 존재. 슬래셔 영화의 원조라 할 존 카펜터의 < 할로윈 >에 나오는 살인마 마이크 마이어스는 처음부터 악마였다. 존 카펜터는 마이어스가 순수한 악의 존재라고 말했다. 그를 쫓는 사람들은, 그의 가족조차도 어느 순간 알게 된다. 트라우마나 구체적인 이유가 있어서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님을. <할로윈>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알프레드 히치콕의 < 사이코 >는 현실에서 가능한 이야기였다. 어머니에게 학대를 받다가, 어머니가 죽은 후 자신의 내부에 어머니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던 비극. 그가 왜 ‘사이코’가 되었는지는 최근에 만들어진 드라마 < 베이츠 모텔 >에서 상세하게 그려낸다.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는 왜 어머니를 무서워하면서도 사랑할 수밖에 없었는지. 어머니를 부활시킬 수밖에 없었는지를. 80년대의 슬래셔 영화는 섬뜩했다. 대량 살인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보고 있으면 무서우면서도 상쾌했다. 속편이 거듭되며 무섭다기보다는 즐기는 마음으로 보게 되었다. 제이슨 그리고 많이 다르지만 < 나이트메어 >의 프레디는 점점 스타가 되어 갔다. 제이슨의 하키 마스크, 프레디의 줄무늬 셔츠와 손에 달린 칼을 보는 것만으로도 환호성을 지르게 된다. 아무리 무서운 것도 익숙해지면, 그 정체를 충분히 알고 나면 친숙해진다. < 링 >의 사다코마저도 이제는, 어떤 속편에 나와도 그저 코믹하게만 여겨진다. 캐릭터는 소중하지만 공포영화의 캐릭터는 거듭될수록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런 점에서 샘 레이미의 < 이블 데드 >가 2편에서부터 코믹으로 방향전환을 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지금 드라마 <애쉬 대 이블 데드>로 이어질 수 있는 이유도 그것이다. 웃으며 즐기는 과거의 향수. 그것이야말로 컬트의 미덕이다. < 더 파이널 걸스 >를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80년대 슬래셔 영화에 혹한 적이 한 번은 있어야 한다. 그 때 열광했던 것이 지금은 창피한 일일지라도, 어렸을 때에 슬래셔 영화를 즐겨 보았다면 <더 파이널 걸스>는 보는 내내 낄낄거릴 수 있는 영화다. 맥스의 엄마인 아만다는 80년대 인기 슬래셔 영화 <캠프 블러드배스>에 출연했던 배우다. 하지만 공포영화에서 인기를 얻은 배우들이 대체로 그렇듯 잘 풀리지는 않았다. 진지한 배역을 맡고 싶지만 누구나 그녀를 스크림 퀸으로 기억한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은 맥스는 한참을 방황하다가 겨우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친구 오빠의 간절한 부탁으로 <캠프 블러드배스>의 상영회에 참석하게 된다. 컬트영화의 상영회가 그렇듯이, 등장인물이 술을 마시면 함께 마시고, 함께 라이터를 켜고, 이상한 행동을 따라 하며 웃는 사이에 사고가 생긴다. 화재가 나고 비상구로 나갈 수 없었던 맥스와 친구들은 스크린을 찢고 뒤편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그들이 나온 곳은 다름 아닌 영화 <캠프 블러드배스> 안이었다. 영화가 끝나야만 빠져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맥스와 친구들은 살인마인 빌리 머피를 유인하여 잡을 방법을 고안한다. 그 와중에 맥스는 엄마가 연기하는 낸시가 죽지 않을 방법을 생각한다. 맥스와 친구들은 영화 속으로 들어간다. 영화의 세계는 모든 것이 예정된 대로다. 하지만 즉흥 연기가 가능하듯 시나리오를 따르면서도 다른 결말은 가능하다. 80년대 슬래셔 영화를 제대로 패러디하면서도 새로운 경지에 이른 웨스 크레이븐의 < 스크림 >이 그랬듯이. 하지만 맥스와 친구들은 웨스 크레이븐이 결코 아니었고, 그들의 어설픈 계획은 어긋나기만 한다. 게다가 회상이 시작되면 그들도 함께 흑백의 과거로 돌아가야 하고, 중요한 장면에서는 갑자기 모든 동작이 슬로우 모션이 된다. 사실 아만다는 슬래셔영화에서 마지막으로 살아남는 파이널 걸스가 아니다. 아만다가 연기하는 영화 속의 낸시는 처음에 죽어버린다. 게다가 진짜 파이널 걸스였던 폴라는 엉뚱한 짓을 하다가 맥스와 친구들의 눈앞에서 요절해버린다. 맥스는 파이널 걸이 아닌 엄마를 살리기 위해 절대로 섹스를 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이미 죽어버린 ‘파이널 걸’ 대신 처녀인 자신이 살아남기로 한다. < 스크림 >이 보여준 것처럼, 파이널 걸스가 동료와 함께 살아남는 것도 가능해졌으니까.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서 코미디처럼 보이는 슬래셔 영화의 공식을 가지고 노는 < 더 파이널 걸스 >는 추억에 기댄 유희다. 기억 속의 슬래셔 영화를 가지고 온갖 농담을 던져보는 코미디 영화. 전혀 무섭지 않고, 즐겁고 유쾌하다. 단 80년대 슬래셔 영화에 얼마큼의 애정을 갖고 있는지 비례해서 즐거움과 유쾌함의 강도가 높아지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