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잊을 당신
- 감독
- 양영길
- 제작년도
- 1971
- 출연
- 남궁원, 김지미, 엄현수, 윤일봉, 사미자, 최길호, 전숙, 전소정, 이철, 남소연, 이숙녀, 황백, 송미남, 이상우, 손전, 최경란
성룡의 < 취권 >(1978)은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 정무문 >(1972)으로 대표되는 이소룡 영화의 비장미는 이른바 ‘코믹 쿵푸’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 변화의 물결은 유하 감독의 < 말죽거리 잔혹사 >(2004)의 마지막 장면에 잘 드러난다. ‘아뵤~’ 하며 쌍절곤을 휘두르던 아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비틀비틀 취객 흉내를 내기 시작한 것. 이후 성룡은 < 사형도수 >(1978)까지 연달아 성공시키며 이른바 ‘소자’(小子) 장르를 굳건히 안착시켰다. 말썽만 피우던 철부지 아들이 가문의 복수를 위해 마음을 고쳐먹고 결국 승리하고야 만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이소룡의 <정무문>이 그러했던 것처럼 성룡의 <취권>도 무수히 많은 아류작들을 양산했다. 성룡 역시 <취권>을 스스로 패러디하여, 웃음보가 터져서 깔깔대며 상대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고는 결정타를 날리는 소권(笑拳)을 소재로 한 < 소권괴초 >(1979)를 만들 정도였다. < 복권 >, < 원권 >, < 소권 > 이소룡 사후 본고장인 홍콩만큼이나 수많은 ‘짝퉁 이소룡’이 등장했고, 심지어 홍콩으로 수출까지 했던 ‘세계 2위의 무술영화 생산 국가’ 한국도 그 아류의 대열에서 빠질 수 없었다. 애무와 체위를 권법에 응용하여(하지만 관객 정서와 검열문제 등으로 인해 안타깝게도 진하게 표현할 수는 없었던) 사랑을 해야 잘 싸울 수 있는 이형표 감독의 < 애권 >(1980)을 시작으로 가공할 배치기를 선보인 김정용 감독의 < 복권 >(1980)과 원숭이의 동작을 응용한 < 원권 >(1980), 성룡의 ‘소권’보다 더욱 강력하게 상대를 웃겨 버리는 이혁수 감독의 < 소권 >(1980), ‘근육질의 짝퉁 이소룡’으로 명성을 날린 거룡과 함께 한 김시현 감독의 < 매권 >(1980)과 < 뇌권 >(1983), 영상자료원에 시나리오만 남아 있고 일체의 정보가 없는 남기남 감독의 <희권>도 있었다. 이미 제목들만 나열해도 현기증이 날 정도로, 당시에는 무슨 아무개 ‘권’만 붙이면 어지간히 흥행이 되던 시절이었기에 그 경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래서 당시 「경향신문」은 “국산영화 중 가장 문제가 많은 것은 홍콩무술영화 아류와 저질유행어에서 따온 것들로 예술적 감각이나 함축성이 전혀 없다”며 “해괴하고 엉뚱한 영화제목들이 늘어만 가고 있다. 얼토당토않은 조어들이 판을 치면서 언어순화의 사회적 차원은 물론 시민들의 의식구조에도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이런 무질서한 풍토와 제살 깎아먹기 경쟁을 준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 신애권 >, < 소애권 >, < 요사권 > 졸지에 시민들의 의식구조에 악영향을 끼치는 대표 감독이 돼버렸지만, 무려 서울대 영문학과 출신의 이형표 는 < 서울의 지붕 밑 >(1961) 등을 통해 소시민의 애잔한 삶과 일상을 정감 넘치게 그려온 감독이었다. 어쨌건 그는 당시 < 애권 >의 속편인 < 신애권 >(1982), < 여애권 >(1982), < 소애권 >(1983)을 차례로 만들며 그 흐름을 주도했다. 심지어 <여애권>의 서영란과 함께 일종의 스핀오프 격인 < 요사권 >(1980)을 만들기도 했다. 역시 다른 <애권>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타락한 무도인들로 들끓던 만주를 배경으로 한 <요사권>의 포스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분홍색 하트 ♥ 그래픽과 함께) 어느 날 갑자기 무림에 나타난 홍일점! 희한한 내용, 요상한 재주, 유별난 스타일의 액션도원경!” 그러니까 만드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남들이 보기에 희한하고 요상하게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건 우리는 즐긴다!’는 그들만의 B급 공감대가 있었던 것이다. '흙바람 몰아치는 만주 비슷한 곳' 신나는 도입부 음악과 함께 < 애권 >이 시작하면 “1940년, 흙바람 몰아치는 만주 비슷한 곳”이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국경지대의 성문이 등장한다. 만병통치약을 파는 약장수가 등장해 사기를 치고, 주인공 황석불( 강용석 )은 그들을 꼬나본다. 이때부터 뻔한 컨벤션과 장난스런 키치의 미학이 폭발하기 시작한다. 분명 남한산성 어디일 텐데 사람들이 버젓이 중국옷을 입고 국경을 넘나든다. 주변에서 꿀차와 번데기를 파는 아줌마를 즉석 캐스팅했는지, 뽀글뽀글 싸구려 파마머리를 한 아줌마가 주인공의 활약상을 지켜보며 “어머! 어머!” 하는 과도한 리액션까지 선보인다. 그때 ‘이 약을 먹으면 칼도 배를 뚫지 못 한다’는 얘기에 석불이 “내가 한 번 해 보겠소”라는 얘기와 함께 약장수의 배를 칼로 찌른다. 하지만 약장수가 배에 두툼한 책을 숨겨놓은 것을 알게 된다. “내가 예전에 < 황야의 무법자 >라는 영화를 봤는데 배에 솥뚜껑이 있더라구!”라며 느닷없이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 영화의 실제 장면을 느닷없이 언급하는 황당함이란! 바로 ‘스파게티 웨스턴’의 장대한 시작을 알렸던 셀지오 레오네의 <황야의 무법자>(1964)에서 솥뚜껑을 방패삼아 총을 맞아도 아무렇지 않았던 장면이, 시대와 국경을 넘어 한국의 ‘김치 무협’ 영화에서 패러디됐다고나 할까. 바로 석불은 죽은 아버지의 원수 옥달평을 찾아 만주로 온 것이다. 옥달평은 돈벌이가 목적인 살인 무술대회를 열어 무림을 어지럽히는 장본인이다. 강직한 일도관의 청담사부( 이강조 )는 옥사부에게 ‘무도는 마음부터 닦는 것’이라 충고하지만, 청담사부의 눈 밑에 짙게 드리워진 다크 서클은 그가 곧 살해될 것임을 암시한다. 그렇게 무림은 옥사부의 세상이 된다. 하지만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찾아간 스승 화삼유( 배수천 )는 술주정뱅이 폐인이 돼 있다. 그래도 석불은 화삼유의 딸 쇼냥( 윤상미 )이 마음에 들어 그들과 함께 지내게 된다. 한편, 옥달평은 예정대로 무술대회를 개최하려 하고 전국 각지에서 (누가 봐도 용인 민속촌으로 보이는) 흑룡여관으로 고수들이 몰려든다. 그중에는 ‘흐르는 별’이라 불리는 유성(遊星)권의 달인도 있다. 헤어스타일부터 동작까지 ‘짝퉁 성룡’이라 할 수 있는 석불은 아버지의 원수를 찾는 와중에도 ‘작업’을 포기하지 않는다. 늘 책을 가까이 하는 쇼냥의 마음을 얻기 위해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 운운하며 “저도 시를 참 좋아합니다”라고 접근한다. 쇼냥이 들고 있는 책을 향해 ‘마음의 양식’이 아닌 “책은 양식의 마음이죠”라는 썰렁한 대사까지 서슴지 않는다. 나중에 적들과 싸울 때는, 적의 무기를 피해 조롱하면서 “삐빠빠룰라~ 멀리 기적이 우네~”라며 이은하의 ‘밤차’를 부르기도 한다. 만주를 배경으로 아무리 포스트모던하게 시공간을 뒤섞었다지만 잠시도 ‘자투리 개그’를 쉬지 않는다. 그저 보다 보면 자연스레 적응되는 경지까지 가게 되니, 그냥 마음 편히 당대 오락영화의 능청스런 풍경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석불이가 놈에게 잡혔소. 내일 구하러 가야겠소. 사랑해 주시오.' 좀 다른 얘기지만, 남기남 감독의 < 영구와 땡칠이 >(1989)의 도입부를 기억하는가. 닫힌 문을 배경으로 성우가 “어린이 여러분, 우리 함께 영구를 불러보기로 해요. 하나, 둘, 셋! 영구야~ 목소리가 너무 작아요. 자, 다시 한 번 불러볼까요? 하나, 둘, 셋!”이라 말하고 어린 관객들이 일제히 “영구야~”하고 부르면 심형래가 문을 열고 나타났다. 그러니까 관객과의 인터랙티브를 시도하는 그런 의도적인 조악함이 당시에는 별로 어색하지 않았다. 굳이 브레히트의 소격효과를 들먹이고 싶진 않지만, 원래 그것은 원본이라 할 수 있는 < 취권 >에서도 빠지지 않는 설정이었다. <취권>에서 성룡의 스승인 소화자(원소전)도 마지막 대결에 느닷없이 “영화에서 이런 중요한 장면에 내가 빠질 수 없지!”라고 외치며 등장했으니까. 게다가 술병을 달고 사는 화삼유는 누가 봐도 소화자를 패러디한 것 아닌가. 1~6번 순서로 편집되어있는 애권 의 다양한 권법들 하지만 알고 보니 화삼유는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 폐인 행세를 한 것이었다. 석불이 악당들에게 잡혀 가자 “석불이를 구하러 가야겠소. 어서 나를 사랑해 주시오”라며 대놓고 화류계의 여자를 만나 애권을 점검하기 시작한다. ‘애무난무권’이니 ‘일심충천권’이니 ‘양인상상권’이니 하는 이름을 갖다 붙이긴 했지만, 관객이 보기에 그저 똑같이 여자 몸을 탐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아무튼 구조된 석불도 본격적으로 쇼냥과 함께 애권을 익히고, 결국 흐르는 별과 최후 대결을 벌이게 된다. 갑자기 싸우다 말고 포옹과 키스를 하려 하니 흐르는 별은 당연히 징그러워 질색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석불은 마치 적과 함께 탱고를 추듯 “이것이 바로 만주의 마지막 밤의 탱고다!”라며 애권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정체불명의 애권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흐르는 별의 마지막 대사가 압권이다. “사랑이 날 죽이는 구나~” 그렇게 먹구름이 낀 무림은 홍콩 사람들도 듣도 보도 못한 애권으로 인해 평화를 찾게 된다. 애권이 독특한 것은 그 애권의 최대 적이 체력의 감퇴도 아니요, 의지의 부족도 아닌 바로 주인공의 권태기라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 신애권 >에서는 급기야 장인인 화삼유가 복수를 위해 사위의 외도를 용인하는 장면까지 등장한다. 이제 더 이상 아내를 보면서는 애정이 생기지 않으니까 말이다. 말하자면 예나 지금이나 ‘막장 드라마’는 장르를 초월하여 존재했던 것 같다. 정말이지 기발하다고 하기에는 뭔가 어설프고 조악한, 대체 이런 현기증 나는 권법이 어디 또 있었던가. / 글: 주성철 (씨네21 기자) 강용석 배수천 이강조 윤상미 김정란 감독 이형표 각본 이일목 촬영 양영길 개봉극장 아세아극장 개봉일 1980-04-24 관람인원 61,286(서울)명
아무런 기대 없이 보던 영화가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경우가 있다. 최하원 감독의 < 절정 >이 바로 그런 영화들 중의 한편이다. 최하원 감독은 <독짓는 늙은이>외에는 요즘 관객들이 특별히 기억할 만한 영화는 없는 편이다. 하지만 그는 70년대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감독들 중의 한명이다. < 무녀도 >, < 서울의 연인 >, < 소 >, < 마지막 포옹 >, < 겨울사랑 >등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작가의 개성을 지닌 작품을 꾸준히 발표했다. 1978년 개봉된 < 절정 >은 하이틴 영화의 물결이 지나간 후 밀려들기 시작한 술집 호스티스영화의 파도속에서 제목만으로는 그렇고 그런 호스티스 영화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의외로 이 영화는 부부관계의 문제를 통해 현대인의 관계의 단절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하고 있는 완성도 있는 멜로드라마다. 여자( 김영애 )는 남편( 김희라 )의 문란한 사생활과 외도에 혐오를 느끼고 이혼한다. 그러나 곧 이혼을 후회하고 신혼 여행지에 홀로 오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우울과 방황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곳에서 그녀는 역시 결혼 생활에 문제를 겪으며 아내( 김형자 )를 자살로 몰고 간 남자( 한진희 )를 만난다.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때로는 보듬고, 때로는 할퀴며 가까워진다. 알고보니 그들은 이미 과거에 같은 날 같은 장소로 신혼여행을 왔던 인연을 가지고 있었던 것. 신혼친구라 부르며 서로에게 한자락의 존재 의미라도 찾으려고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육체가 아닌 사랑의 진실임을 깨달은 여자는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지만, 남자는 기어코 자살을 선택하고 만다. 최하원 감독은 부부 파경의 원인을 여자-아내( 김영애 )와 남자-남편( 한진희 )으로부터 공평하게 찾으려고 시도한다. 이는 일방적으로 남자에게 면죄부를 주곤 했던 많은 한국영화들과는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당시의 한국영화가 여전히 여성의 육체를 함부로 대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시기였다는 것을 감안해 보면 진일보한 부분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우울과 고민에 뻐져 누워있는 여자-아내(김영애)를 쓸데없이 선정적으로 잡아내는 불필요한 앵글과 조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는 당시 유행했던 호스티스 영화와 안방극장이라 불리는 TV와 상업적으로 경쟁해야 했던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타협이었다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최하원 감독은 이런 타협의 흔적들이 영화의 완성도에 흠집을 내지 않도록 적절하게 통제함으로서 영화의 힘을 지속시키는데 성공한다. 영화가 끝나면 성적 이미지 대신 관계의 단절에 대해 고뇌하는 현대인이라는 이미지만 묵직하게 가슴에 남는 것이다. < 절정 >은 영화의 대부분을 두 사람 여자( 김영애 )와 남자( 한진희 )의 비일상적(?)적인 대화에 집중하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몇몇 씬들은 마치 연극을 보는 듯한 단조로운 느낌이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시각적으로 상당히 풍부하고 뛰어나다. 최하원 감독은 두 주인공의 심연으로 파고들기 위해 풍부한 상징성을 사용한다. 더불어 우울한 인물의 심리를 드러내는 촬영과 미장센. 극단적 조명의 활용을 통한 초현실적 장면의 삽입은 내면이 황폐화되어 있는 인물의 심리를 극단적으로 드러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물론 스토리가 선형적으로 전개되기 보다는 인물의 심리를 따라가다 보니 회상과 상상이 두서없이 드나들면서 관객의 집중력을 조금 요구하긴 한다. 그러나 이런 모든 스타일적 실험이야말로 영화 <절정>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점이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이러한 약간의 불친절함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 이렇듯 영화 <절정>을 단순히 여성용 멜로드라마의 한편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영화 속에 숨겨놓은 감독의 칼날은 무척 날카롭다. 그만큼 최하원 감독이 1968년 < 나무들 비탈에 서다 >로 데뷔한 후 10년 동안 쌓아왔던 내공과 야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느낌이다. < 절정 >은 가장 가까워야 할 부부관계의 파경이라는 소재를 우회하여 고도로 현대화된 사회에서 소통 부재로 고통을 겪고 있는 도시인들의 모습을 투영한다. 최하원 감독이 바라보는 70년대 후반 도시인의 모습은 이렇듯 내면이 공허하다. 결국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기어코 자살을 선택하고야 마는 남자( 한진희 )의 패배주의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당시의 영화를 보면 마초적 남자다움을 유난히 강조한다. 무국적 액션영화에서 남자주인공들은 비현실적이리만치 강하지만, 현실을 반영하려는 드라마 장르에서 남자는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죽음이라는 파토스로 돌진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 남자는 여자보다 나약한 존재다. 그런점에서 중요한 것은 육체가 아니라 사랑의 진실이라는 것을 깨닫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 보겠다는 결심을 하며 도시 속으로 차를 몰고 들어가는 여자는 얼마나 강한가! 내용적으로 육체보다 정신을 우위에 두려는 것. 남자와 여자의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이 돋보이지만 결국 여자에게 좀 더 자비를 바라는 것 등은 여전히 70년대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최하원 감독의 대표작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멋진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 글: 이성훈(한국영화 애호가) 김영애 한진희 김희라 김형자 감독 최하원 각본 이희우 촬영 양영길 1978년 116분 칼라 판매원 지구비디오 영상도서관 배가번호 12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