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평양
- 감독
- 양영희
- 제작년도
- 2006
- 출연
- 양선화, 양건화, 양영희
재일 교포 2세인 양영희 감독이 < 디어 평양 >(2005)과 < 굿바이 평양 >(2011)에 이어 < 수프와 이데올로기 >를 개봉하면서 가족 3부작을 완성했다. <디어 평양>이 조총련계 간부로 일한 부모님, 특히 일제식민지, 한국전쟁, 냉전이라는 탈식민적 역사를 통과하며 자신의 신념을 형성해온 아버지와 그의 행보를 향한 양가적 감정을 다뤘다면, <굿바이 평양>은 평양에 사는 조카 선화를 중심으로 그들 가족의 일상을 친밀하게 보여준다. 최근작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홀로 남은 어머니의 사적 역사를 다룬다. 세 영화는 양영희 감독이 그의 가족을 이해하기 위해 만든 사적 영화인 동시에 남북한과 일본을 둘러싼 탈식민적 역사에 대한 정치적 영화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영화는 다채로운 감정들로 가득 차 있다. 양영희 감독은 고집스럽고 냉철한 카메라로 거침없이 가족의 친밀한 초상을 그려낸다. 그의 카메라는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는 가운데서도 가족들을 역사 속 한명의 주체로 인정하며 그 선택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 양영희 감독의 부모는 제주도에서 태어났지만 각기 다른 이유로 일본에 와 결혼하고 오사카에 정착했다. 양 감독의 아버지는 일본의 차별을 온 몸으로 체감했고, 그때 재일 조선인들에게 관심 갖고 지원을 해준 북한의 편에 서게 된다. 그리고 조청련 간부로서 당시에는 경제적으로 남한보다 더 나았던 북한으로 세 아들을 보낸다. 양영희 감독도 어린 시절 조총련계 학교에서 조국 북한에 충성해야한다는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양영희 감독은 성인으로 성장하고 부모에게서 독립하면서 아버지와 사이가 멀어지게 된다. 그리고 오빠들을 북한에 보낸 아버지를 원망한다. 오빠들이 북한에서 잘 사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어 평양>은 아버지에 대한 애증과 적응에 힘들어하는 오빠들에 대한 애상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양영희 감독은 끈질기게 아버지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아버지는 비극적 역사의 한복판에 있었고 그때마다 자신과 가족에게 최선으로 여겨지는 선택을 해왔다. 평양은 이전에는 자신의 신념의 기반이 있는 곳이었지만 이제는 가족들이 사는 장소로 고향 같은 곳이다. 양영희 감독은 어쩌면 카메라를 매개해 아버지를 비로소 이해한다. 아버지도 카메라가 있고 나서야 자신이 무슨 마음으로 그러한 선택을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표현한다. 카메라의 매개는 가족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장치가 되며, 여러 감정이 실린 가족들의 얼굴은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을 이해하는 단초가 된다. <굿바이 평양> 역시 북한을 다룬 어떤 영화보다도 더 친밀하고 애틋하며 솔직한 카메라를 매개해 교육받고 공인된 얼굴 이면의 다른 북한 주민들의 얼굴을 포착한다. 관객들은 모두 선화가 자신의 꿈을 이루길 열렬히 응원하게 된다. 마지막 작품인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고집스러운 아버지와 자신 사이에서 그리고 일본과 평양의 가족을 뒤에서 묵묵히 지원했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어머니는 자신의 신념을 따르는 데 몰두했던 아버지 대신 가족 경제를 도맡아 오다시피 했다. 양영희 감독은 제주 출신인 어머니가 일본에 건너오게 되고 조선국적을 택하게 된 이유를 듣게 된다. 어머니가 조선국적을 택한 건 단순히 아버지를 따른 것이 아닌 그의 선택이었다. 어머니는 십대 시절 제주 4.3사건을 겪게 된다. 그녀의 약혼자를 포함해 친척과 동네 사람들이 ‘빨갱이’로 몰려 학살당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녀는 당시 어머니가 살던 일본으로 동생들을 데리고 목숨을 걸고 밀입국해 오사카로 넘어오게 된다. 어머니는 한국 사람이라면 치가 떨렸다고 말한다. 그것은 신체에 각인된 분노와 불안이다. 그래서 딸인 양영희 감독에게도 4.3 사건에 대해 오랫동안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양영희 감독은 그제야 어머니가 자신의 세 아들을 북한으로 보내고 조총련 간부로 오래 일하고 나이 들어서까지 자신의 생활비를 쪼개 돈과 선물을 평양에 있는 가족으로 보내는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들과 조카 선화 모두 한국 근대사의 비극 속에서 최선의 결정을 내리며 용감하게 생존해온 것이다. 가족에 대한 이해는 곧바로 역사에 대한 이해가 된다. 영화는 어머니가 4.3 사건을 기억해 내고 구술하는 상황과 양영희 감독이 결혼하게 될 일본인 남편 카오루를 맞이하고 둘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병행해 보여준다. 가족이 되고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딸이 결혼하길 바랐지만 일본인 사위는 안 된다고 했던 어머니는 어떤 거부감도 없이 카오루를 친절하게 받아들이고 카오루는 그런 어머니를 알뜰히 보살핀다. 엄청난 양의 마늘이 들어간 어머니의 삼계탕에 반한 카오루는 그 비법을 전수받는다. 어색함과 이념적 차이, 역사적 장벽은 깊고 따뜻한 국물 속에서 녹아내린다. 양영희 감독은 3부작을 통해 ‘가족’이란 무엇인가, 가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가족 사이의 갈등과 차이를 어떻게 대면할 수 있을까를 질문한다. 어머니가 사위 카오루를 받아들였다고 해서 일본의 차별을 다 이해하고 용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4.3 재단이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러 왔다고 해서 자신의 애인과 친척들을 위협하고 죽였던 한국을 모두 용서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제야 자신이 4.3사건 2세대라는 것을 알게 된 양영희 감독도 어머니를 완전히 이해하기란 어렵다. 심지어 어머니는 얼마 후 노환으로 알츠하이머에 걸려 기억을 잃어간다. 그 옆에는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어머니의 슬픔과 분노, 불안을 포착하려는 양영희 감독의 카메라가 있다. 제주 4.3 기념관을 방문해서도 어머니는 제주에서의 기억을 제대로 떠올리지 못한다. 그의 얼굴은 피곤하고 때때로 무표정하다. 그러나 양영희 감독은 어머니에게 말 걸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기록하는 것이 그의 시선이라는 것도 숨기지 않는다. 어떤 면에선 카메라가 지나치게 밀어붙이고 집요해 고독하다는 느낌도 든다. <디어 평양>과 <굿바이 평양>을 개봉한 후 양영희 감독이 방북금지를 당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실제로 타자를, 특히 가족을 이해하려는 카메라는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 이해하려는 노력에 있어서는 ‘꺾이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 그것이 아무리 지루하고 고통스럽고 때로는 외면당한다 해도 말이다. 그렇게 양영희 감독의 카메라는 영웅적인 면모를 띤다. (관련글) 1. 소진과 이상한 기운 - <아워 바디>(2018), 2021.04.23. 2. 의심의 씨앗과 취약한 영웅들 - <도희야>(2013), 2021.05.21. 3. 여름밤 초록색 전구불빛이 가만히 당신을 응시할 때 - <남매의 여름밤>(2019), 2021.06.18. 4. 당신의 안녕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 - <내가 죽던 날>(2019), 2021.07.16. 5. 피해와 가해의 알레고리 - <소리도 없이>(2019), 2021.08.13. 6. 돌봄의 정동 - <우리집>(2019), 2021.09.10. 7. 유년과 재난 - <벌새>(2018), 2021.10.22. 8. 목격의 시간 - <휴가>(2020), 2021.11.19. 9. 한평생 이야깃거리가 된 삶을 찢고 나온 웃음소리 -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2019), 2021.12.17. 10. 이름을 불러 닿는 시간 - <윤희에게>(2019), 2022.01.14. 11. '혼자'의 정동 - <혼자 사는 사람들>(2021), 2022.03.15. 12. 억압의 체제와 닫혀있는 여자들의 세계 - <궁녀>(2007), 2022.04.13. 13. 소원성취, 환상, 실재 사이의 어딘가에서 - <팬지와 담쟁이>(2000), 2022.05.18. 14. 몫과 값 그리고 경계물 - <82년생 김지영>(2019), 2022.06.24. 15. 실종의 감각과 징크스의 미학 - <오마주>(2022), 2022.07.21. 16. 레즈비언 편집술, 혹은 시계가 된 여자 - <연애소설>(2002), 2022.08.19. 17. 탐정-엄마의 각성하는 모성 - <비밀은 없다>(2016), 2022.09.16. 18. 시간과 정념의 지층을 찾아서 - <누에치던 방>(2018), 2022.11.04. 19. More or Less - <모어>(2021), 2022.12.09. 20. 이름을 지우고 살아남기 - <안나-감독판>(2022), 2023.01.09. 21. 우리에겐 따뜻한 국물과 유머가 필요하다 - <수프와 이데올로기>(2021), 2023.02.07. 22. 아직 끝나지 않은 - <미망인>(1955), 2023.03.10.
파란만장한 ‘나’의 가족사, 아니, 아직 애도되지 못한 죽음, 해결되지 않은 상처, 여전히 진행 중인 역사 앞에 ‘나’의 카메라를 들이미는 행위에는 어떤 소망이 함축되어 있을까. 카메라는 현실에서는 응어리졌던 ‘나’의 저 깊은 슬픔을 과연 감당해낼 수 있을까. 카메라는 현실에서 내가 도저히 가늠할 길 없었던 그들의 심정을 단 한 순간이라도 헤아릴 수 있을까. 그 오랜 시간 ‘나’의 눈이 외면해온 시간들을 카메라의 응시로 과연 얼마나 껴안을 수 있을까. < 디어 평양 >에 이어 < 굿바이 평양 >에서도 양영희 감독은 일본과 북한을 오가며 그 사이 어딘가에서 흩어진 채 살아온 자신과 가족들의 삶을 찍는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15살에 일본으로 건너온 아버지는 오사카에서 어머니를 만나 결혼을 했다. 조총련계 간부가 된 아버지는 1970년대에 고작 십 대였던 아들 셋을 북한으로 보냈고, 양영희 감독은 오빠들과 떨어져 홀로 유년기를 지냈다. 북한에서 가정을 꾸리고 사는 오빠들을 위해 어머니는 30여 년간 온갖 생필품들을 비롯해 결혼자금, 생활비 등을 보냈다. 아버지의 선택과 신념을 받아들이지 못한 양영희 감독은 <디어 평양>에서 그 아버지에게 카메라를 돌려 끈질기게 질문하고 결국 아버지는 미약하게나마 스치듯이 진심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감독은 아버지를 받아들인다. 여기에 화해 혹은 치유라는 표현을 쓰는 건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을 이 가족사의 상처를 제3자의 시선으로 성의 없이 봉합하는 일이 될 것이다. 다만 감독은 적어도 자신이 처한 이해 불가능한 현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실패가 예정되어 있을지라도 아버지의 자리에 서 보려고 애쓰고 있다. <굿바이 평양>에서 그녀는 이제 평양 가족들의 자리, 특히 자신을 똑 닮은 어린 조카 선화의 자리에 서보려고 한다. 둘째 오빠의 두 번째 결혼에서 태어난 선화는 5살이 되던 해에 엄마를 여의고, 오빠는 곧 세 번째 결혼을 한다. 양영희 감독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 어떤 이데올로기적 억압이나 삶의 조건에 영향을 받지 않고 밝고 영특하게 자라는 선화를 보며 부러움과 고마움을 느낀다. 양영희의 카메라는 영화 속 그 어떤 인물보다도 선화에게 다가갈 때, 가장 활기를 띠고 친밀해지며 거리를 의식하지 않는다. 선화가 ‘수령님’에 대한 시낭송을 할 때조차, 선화의 생기, 혹은 그 생기로움을 바라보는 감독의 즐거운 시선은 이념의 엄숙하고 딱딱한 무게로부터 자유롭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오빠들을 카메라에 담을 때, 우리는 “음악과 커피를 사랑하는 큰 오빠는 북한으로 온 후 우울증에 시달려왔다”는 식의 덤덤한 내레이션을 들을 수 있을 뿐, 도무지 그 오빠들의 속내를 들여다보기 어려우며, 거기 드리운 그림자를 피하지 못한다. 감독이 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알지 못한다. 대신 우리는 < 굿바이 평양 >을 보는 동안, 이 영화는 침묵에 더 많은 것들이 담겨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를테면 큰 오빠의 공허한 얼굴이 카메라에 빗겨가는 순간, 선화가 감독과 대화를 나누다 갑자기 카메라를 꺼달라고 말하는 순간, 아버지가 감독이 요청하는 노래를 부르지 않고 한참을 눈을 감고 있던 순간(감독은 그때, “아버지 무슨 생각 해요?”라고 묻지만 우리는 그의 대답을 듣지 못한다.)에 우리는 말이 결코 닿을 수 없는 회한, 갈등과 같은 마음의 돌기들을 떠올린다. 이 비극의 역사를 몸소 살아낸 이들의 저 복잡하고 아린 속을 우리는 끝내 만질 수 없으며 카메라도 더 파헤치려고 하지 않는다. 삶이 있고 그 삶을 버티게 했던 신념이 있었고, 그 신념으로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삶의 외로운 층위들이 있었고, 그리고 결국 죽음을 피할 길은 없다는, 지극히 추상적이지만, 어찌할 수 없이 수용해야만 하는 어떤 이들의 삶의 고독한 행로를 그저 무력하게 짐작할 수 있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