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 스트리트 파트 1: 1994
- 감독
- 리 자니악
- 제작년도
- 2021
- 출연
- 질리언 제이콥스, 애슐리 주커만, 세이디 싱크, 에밀리 브로브스트, 샬린 아모이아
사진: Marry Ellen Mark, “ Apocalypse Now ”, IMDb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과거에 만난 작품과 그로부터 얻은 영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 지옥의 묵시록 >(1979)은 당시 일본 개봉 제목 ‘地獄の黙示録’을 그대로 활용해 번역되었으나, 원제 ‘Apocalypse Now’는 사실 ‘바로 지금 이곳이 지옥’ 또는 ‘지금 이 순간이 세상의 종말’이라는 처연한 고발, 좌절, 참회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개봉한 지 무척 오랜 시간이 흘렀고(감독 확장판(Redux, 2001)을 기점으로 해도) 이후 직접적 영향을 받은 수작들이 여럿 등장했음에도, 여전히 ‘탁월한 전쟁 영화 중 하나’ 정도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지옥의 묵시록>은 걸작이라는 평가를 넘어 문명과 야만, 이성과 광기, 그리고 예술과 역사-현실의 경계를 짓이기는 정교하며 무자비한 실험이다. 이 영화는 내게 전쟁의 잔혹함을 넘어, 소리와 이미지가 어떻게 관객을 사로잡고 내면의 심연을 드러낼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그리고 이는 음악을 비롯한 창작 작업의 범위를 넘어 내 삶 전반에 깊이 스며들었다. 영화는 문명의 야만을 파헤쳤다고 평가받는 조셉 콘래드의 소설 『어둠의 심연(Heart of Darkness)』(1899)을 기반으로 하지만, 식민 시절 콩고에서 베트남 전쟁으로 배경을 치환한 단순한 서술적 흐름에 기대지 않는다. 몽환적인 편집과 공간을 압도하는 사운드 디자인, 그리고 음산하게 폭발하는 음악들이 혼재하며 관객을 전장의 무질서 속으로 밀어 넣는다. 스무 살 무렵 친구의 강권으로 이 영화를 보았을 때, 나는 처음으로 영화를 통해 감각적으로 압도되는 경험을 했다. 특히 록 밴드 더 도어스(The Doors)의 <The End>(1967)가 흐르는 오프닝 시퀀스에서, 불타는 정글 위를 비행하는 헬리콥터 프로펠러 소리와 주인공 윌라드 대위(마틴 쉰)가 머무는 숙소 천장팬의 움직임이 하나의 악보처럼 맞물릴 때, 나는 영화 속에서 음악이 보조적 역할을 하는 배경음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심리적 공간을 창조하는 도구임을 깨달았다. 불타는 정글과 헬리콥터, 천장팬, 그리고 윌라드 대위가 겹쳐지는 영화 초반부 영화 속 서사의 시작점인 커츠 대령(말론 브란도)은 니체적 의미에서 초인적 인물로 그려진다. 영화 전체를 기준으로 무척 적은 분량인 그의 대사는 한 음절 한 음절이 묵직한 무게를 공유하며 관객을 사로잡는다. “공포는 얼굴을 가지고 있지. 그러니 공포와 친하게 지내야 해(Horror has a face... and you must make a friend of horror.)”라는 그의 읊조림은 전쟁터의 참혹한 현실만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원적 한계를 암시하며 질문한다. 영화에서 음악은 영상의 보조재가 아니라 핵심으로 자리하며 인물들의 심리, 이념, 광기를 대변한다. 헬리콥터 부대가 민가를 향해 무차별적 공격을 퍼붓는 유명한 장면에서 흐르는 바그너의 <발퀴레의 기행(Ride of the Valkyries: Prelude to Act III)>은 단순한 감정 고양의 장치가 아니라, 전쟁 자체를 하나의 장엄한 스펙터클로 완성하며 폭력에 대한 고발과 창작-예술의 경계, 동시에 오락 산업으로서의 영화라는 뒤엉킨 모순적 현실마저 깨진 거울마냥 선연하게 드러낸다. 커츠 대령, <발퀴레의 기행>이 흐르는 전투 장면 (사진: "Apocalypse Now"( 1 , 2 , 3 ), IMDb) 모임 별은 지난 25년간 소속이 없는 독립적인 밴드이자 브랜딩/디자인 스튜디오로 활동해왔다. 우리 팀은 분명 통상적인 영화음악 감독은 아니지만, < 고양이를 부탁해 >(정재은, 2001)에 참여한 이후 꾸준히 학생 영화, 실험 영화, 저자본 영화 작업들에 참여해 왔다. 가능한 상업적 시스템에 기대지 않고 독자적인 방식으로 활동하기 위해 애써온 우리에게, <지옥의 묵시록>의 제작 과정에서 감독과 출연진, 스태프가 함께 만들어낸 예측 불가능성의 미학과 실험 정신은 여전히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다. 최근 담당한 영화 < 폭설 >(윤수익, 2023)에서는 서퍼들의 몸을 때리는 차디찬 겨울 파도소리와 낡은 아날로그 신디사이저들에서 뽑아낸 극한적 소음들을, < 힘을 낼 시간 >(남궁선, 2024)에서는 클래식 기타 연주와 랜덤 알고리즘 베이스의 VST 악기 패턴들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꾸준히 작은 실험들을 수행 중이다. 귀를 사로잡는 음률 보다는 반복되는 패턴 속에 미묘하고 예측 불가능한 변화를 주어, 청자가 음악을 뚜렷이 인식하지 않는 상태로 영화 속 서사에 보다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폭설>과 <힘을 낼 시간>의 음악 (이미지 클릭) 짧지 않은 세월이 지나 돌아보니 ‘업계 표준’에서 벗어난 활동 방식과 작법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모로 부족함이 많았다. 그럼에도 오랜 기간 다양한 예술가들, 기관, 기업들과 함께 예술, 상업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던 데는, 새로운 시도들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가진 여러 실무 담당자의 고마운 배려들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우리 또한 새로이 작업을 시작하는 독립적인 젊은 예술가들과 기획자들에게 작게나마 실질적 도움이 되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하고 있고, 새삼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며 다짐한다. 코폴라는 <지옥의 묵시록>을 만들며 마주한 끊임없는 문제와 막대한 혼돈을 고스란히 작품 안에 담아내며 영화를 완성했다. 불확실성과 모순의 한복판에서 탄생한 작품은 단순한 작가의 종속물, 재현물이 아니라, 스스로 하나의 온전한 실체가 되었다. <지옥의 묵시록>이 없었다면, 내가 음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도 지금과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혹시라도 아직 영화를 감상하지 않으신 분이 있다면 1979년의 최초 개봉 버전, 2001년 공개된 리덕스(Redux), 2019년 파이널 컷(Final Cut) 중 단연 리덕스 를 추천드린다. 조태상(모임 별 작곡가, 디자이너) l 모임 별( Byul.org )은 우연히 만난 친구들의 술자리 시낭송회에서 시작되었다. 기본적으로 여전히 친한 친구들의 술모임이며,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며 녹음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들의 일상을 기록 중이다. 김경렴, 서현정, 최원겸, 황소윤, 오태경, 김수빈, 조태상, 장용석, 이선주로 구성되어 있다. 조태상은 모임 별에서 작곡과 디자인을 담당한다. 2012년 정규음반 <아편굴 처녀가 들려준 이야기>, 2017년 <밤도깨비들을 위한 선곡집>, 2019년 <주인 없는 금>, 2024년 <우리 개> 등을 발매했고, < 고양이를 부탁해 >(정재은, 2001), < 힘을 낼 시간 >(남궁선, 2024) 등의 영화에 음악 작업으로 참여했다.
2015년 ‘화룡음정 1: 데이빗 보위를 사랑한 영화들’에 이어 다시 한 번 ‘화룡음정’ 기획이 찾아왔다. 시네마테크의 다양한 기획 중에서도 이런 유형의 기획을 특히 반기는 편이다. 특정 감독이나 사조, 시대를 중심으로 한 기획이 은연중에 관객에게 학습과 존경을 요구한다면, 두루뭉술한 주제로 느슨히 묶인 잡다한 영화들의 모음은 소풍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극장을 찾아 성격이 완전히 다른 영화들의 관계를 나름대로 재배치해보는 (재)발견과 모험을 제안하기 때문이다. 각양각색의 영화를 모으느라 수급에 어려움이 있다는 치명적인 단점만 제외한다면 프로그래밍하는 입장에서도 이쪽이 조금 더 흥겹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데, 영상자료원의 프로그래머님들께서는 어떠실지. 우선 언급하고 싶은 영화는 데이빗 린 감독의 < 밀회 >다. 1년 전이었다면 이 영화를 소개하기 위해서 ‘< 아라비아의 로렌스 >를 만든 데이빗 린’과 ‘극작가 겸 연출가 겸 작곡가 겸 배우 겸 가수 노엘 코워드’를 내세우며 ‘추억의 명화’ 운운하는 이야기를 늘어놓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 캐롤 >이 나왔기 때문이지! 연말연시에 선풍적인 인기를 끈 토드 헤인즈 감독의 정통파 로맨스 영화에 영감을 준 작품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밀회>임은 <캐롤>의 팬이라면 다들 아실 테다. 모르셨다면 <캐롤>과 <밀회>의 결정적인 한 대목을 비교한 이 영상(클라이맥스이니 조심! : Carol X Brief Encounter)을 보시는 것도 좋겠고. 불타는 열정에 휘말리면서도 차마 눈멀지는 못하여 스쳐 지나가는 두 남녀의 ‘짧은 조우’를 시선과 몸짓과 공간으로 세밀하고 은근하게 포착해내는 연출을 보노라면 헤인즈가 무엇을 배우고자 했는지 알 수 있으리라. 한국 관객을 위한 한 가지 팁. < 밀회 >는 주인공 로라의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이 서사를 이끌고 가는 영화인데, 이 내레이션을 ‘읽는’ 데에 너무 몰두하지 않는 편이 좋다. 한국어 자막으로 <밀회>를 보고 있노라면 영상과 소리가 충분히 전달하고 있는 바를 내레이션이 굳이 언어로 풀이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있다. 실제로 내레이션이 다소 거추장스러운 대목도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기본적으로 ‘소리’라는 청각 기호로 들어야 할 내레이션을 ‘문자’라는 시각 기호로 읽어야 하는 외국인 관객의 관람 조건 때문이다. 로라의 내레이션은 단어 하나하나에 집중해서 새겨 읽기보다는 열망과 좌절에 휩싸여 끝없이 내뱉는 비탄의 한숨처럼 어조를 따라가며 흘려들을 때 더 효과를 발휘한다. 따라서 특히 로라의 내레이션이 나올 때는 자막은 잽싸게 한 번 훑기만 하고 눈과 귀를 한껏 열어두는 편을 권하고 싶다. 참, < 밀회 >는 한국영상자료원 기관지 「영화천국」 48호에 영화평론가, 감독 정성일 이 쓴 시네필 입문을 위한 100편의 영화에도 들어있다. 해당 목록을 지워나가기로 맹세하신 분들은 놓치지 마시길. < 대부> 를 만들었던 사나이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창작력을 소진시키고 만 괴물 같은 역작 < 지옥의 묵시록 >을 소개하는 건 새삼스러운 일일까? 하지만 이번 상영이 의외로 드문 기회라는 걸 강조해야만 하겠다. 2001년 코폴라가 극장판에다 49분을 추가하여 <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 >라는 감독판을 만든 이래, 한국의 여러 시네마테크나 재개봉 행사에서는 <지옥의 묵시록>을 상영할 때마다 줄곧 <리덕스>만을 상영해 왔다. 그놈의 감독판이라는 환상. 감독판에 더러 재미있는 장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몇몇 기나긴 추가 장면들은 너무 ‘의미심장’하고 지지부진하여 영화의 리듬과 톤을 망친다. 무엇보다도 영화 속의 전쟁을 지나치게 베트남전으로만 구체화하면서 섣부른 자아비판에 빠져든 탓에 도리어 의미가 축소되고 만다. 단언컨대 <지옥의 묵시록>은 202분짜리 베트남전 비판 영화일 때보다는 혼란스럽고 광기 어린 153분짜리 부조리극일 때가 훨씬 더 크고 풍성하고 재미있다. 저 유명한 ‘발퀴레의 기행’ 장면 외에도 과연 내가 관객으로서 이런 막돼먹은 광경을 지켜보는 것이 옳은 일일까 자문케 하는, 어안이 벙벙하고 불편하면서도 눈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고 매혹적인 스펙터클이 시종일관 펼쳐진다. 물론 그 스펙터클을 마냥 소비하는 영화가 아니라 매혹과 공포 속에 함께 방황하기를 청하는 영화이고. 혹시 이 기회에 문학적 교양까지 챙기고 싶으시다면 비공식적인 원작인 조셉 콘래드의 「어둠의 심연」도 챙겨두시길. 아아, 이 밖에도 위대한 소설가 스티븐 킹의 그에 못지않게 빼어난 소설가 아들 조 힐이 디즈니 사상 최고 걸작 < 판타지아 >에 바친 오마주랄지, <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로만 너무 유명하지 않나 싶어 아쉬운 루이 말 감독의 우울한 걸작 < 도깨비불 >이랄지, 구스타프 레온하르트가 바흐로 출연하여 실제 바흐가 활동했던 공간에서 고(古)악기로 바흐를 들려준다는 점에서 클래식 애호가들의 가슴을 뛰게 할 < 안나 막달레나 바흐의 연대기 >랄지, 우디 앨런이 만든 도스토예프스키에 관한 매정한 스릴러 < 매치 포인트 > 등등 수다 떨고 싶은 작품이 많으나 이미 쓰기로 한 지면을 넘어서고 말았으니, 귀 밝은 관객 여러분들께서 직접 영화와 조우하여 자신만의 이야기를 엮어주시기를 바라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