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자식들
- 감독
- 송종훈
- 제작년도
- 2009
- 출연
- 채경수, 최유진, 김정은, 이상하
< 꼬방동네 사람들 >은 1982년 5월 개봉하여 1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당해 흥행 4위에 오른 1) , 배창호 감독의 데뷔작이다. 이 영화는 < 바람 불어 좋은 날 >( 이장호 , 1980)에서 시작하여 < 우묵배미의 사랑 >( 장선우 , 1990)에 이르는, 노동자 개념으로 포괄되지 않는 소외계층을 포착한 1980년대 영화의 계보에 놓인다. (2) 그리고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이원세 , 1981), < 어둠의 자식들 >(이장호, 1981)과 함께 1980년대 초 도시 빈민을 다룬 ‘사회물’ 또는 ‘리얼리즘’의 대표작으로 꼽히기도 한다. 이 영화가 제작된 1980년대 초는 시민의 피를 밟고 집권한 신군부 정권이 민심을 달래기 위해 그 동안 규제되어 왔던 컬러TV방송을 허가하고, 스포츠와 문화 육성을 표방하는 등 선심성 정책을 편 시기다. 1970년대에 텔레비전 드라마 시대가 열리면서 불황에 빠진 영화산업은 컬러TV방송으로 인해 한층 더 수심이 깊어졌다. 그럼에도 분명히 1970년대와는 다른 시대의 기운이 저류하고 있었고, 박정희 정권기의 영화 검열 제도가 온존하는 가운데서도 영화계는 돌파구를 모색한다. 이때, 1960년대 중반 이후 이중검열 속에서, 용공 또는 외국에 보이기 부끄럽다는 이유로 금기시되었던 ‘가난’이 적극적으로 재현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1976년부터 발이 묶였다가 4년 만에 활동을 재개하게 된 이장호 감독이 <바람 불어 좋은 날>과 <어둠의 자식들>로 그러한 작업을 시작했다. 배창호는 바로 이 두 영화의 조감독이었고, <어둠의 자식들>의 원안자였던 이동철(본명 이철용)이 <꼬방동네 사람들>의 원작자이기도 했다. 1970년대 수기 붐에 이어 1980년대 초에는 도시 빈민의 삶이 그 계층 출신의 생생한 증언으로 서술되는 책이 주목을 받는다. 1980년에 이동철이 구술하고 황석영이 정리하여 출판한 『어둠의 자식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이듬해에는 아예 이동철 작(作)으로 『꼬방동네 사람들』이 출간되는데 또 베스트셀러가 된다. 여세를 몰아 1982년에는 『오과부』가 출간되었고, 이는 < 과부춤 >(이장호, 1983)의 원작이 되었다. 정리하자면 그때까지 들을 수 없었던 목소리에 대중이 귀기울이고, 영화가 그것을 재현하는 가운데 ‘가난한 사람’이 당당하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짧은 시대가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꼬방동네 사람들>은 원작의 전반부에 등장하는 「검은 장갑」을 각색한 것이다. ‘검은 장갑’은 손에 흉터가 있어서 검은 장갑을 끼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는, 명숙이라는 기구한 여자의 이야기다. 원작에서는 어쩌다 보니 ‘두 서방’을 갖게 된 이 여자의 사연을 담담하고 간결하게 서술한다. 영화에서는 원작의 여러 일화 중 이 스토리를 전경화시켜 꼬방동네 사람들의 모습이 후경에 펼쳐지는 가운데 주인공 명숙이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멜로드라마로 장편화했다. 명숙( 김보연 )은 십대에 김주석( 안성기 )이라는 청년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그가 일반적인 회사원인 줄 알고 결혼했는데 알고 보니 소매치기였다. 주석은 소매치기를 하다 체포되어 구속되고 명숙은 임신한 몸으로 그를 기다린다. 그러나 전과자라는 이유로 무고하게 수감되기도 하고,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홧김에 남의 물건에 손을 대기도 하면서 주석의 전과가 느는 동안 명숙은 지쳐간다. 그리고 주석이 감옥에 있을 때 어린 아들을 데리고 떠난다. 그 후 꼬방동네에 자리 잡은 명숙은 강태섭( 김희라 )이라는 건달을 만나 살림을 차리고 반찬가게를 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출감 후에 택시운전사가 된 주석이 우연히 명숙을 발견하여 찾아온다. 그는 명숙에게 함께 떠나자고 하고 안 된다면 아들만이라도 달라고 조른다. 태섭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서 명숙을 가운데 둔 두 남자의 갈등이 격화한다. 결국 태섭이 과거에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자수하러 가는 길에 주석을 찾아가 명숙을 부탁하는 것으로 갈등은 봉합된다. 혈연과 가부장 질서에 순응하는 쪽으로 이야기가 귀결되는 것은 당시 대중들이 기대하는 무난한 결말이었을 것이며 멜로드라마의 전형적인 해결방식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이러한 결말이 영화에 시종일관 흐르는 민중 신학의 가르침과 맞물리며 도덕성을 확보한다. 태섭에게 살인죄를 부과하여 자수하게 하는 것이나 주석이 아버지로서의 자격을 갖춘 인물로 묘사되는 것은 원작에는 없던 설정이다. 여기에는 이미 각색자의 윤리적 판단이 전제되어 있으며 결말이 예비된다. 명숙은 주석과 재결합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문제가 되는 것은 태섭의 속죄 여부다. 태섭이 끝까지 악인으로 남아 체포되어 간다고 해도 멜로드라마의 결말로서는 안 될 게 없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를 속죄케 하고 공소시효가 이틀 남은 시점에서 자수하게 만든다. 이는 마지막에 길게 삽입되는 “이 마을에 살고 있는 병든 자들이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라는 공목사( 송재호 )의 설교에 맞닿는 것이다. 공목사가 설교하는 가운데 술에 절어 살던 ‘길자’( 김형자 )가 개과천선하여 흰옷을 갈아입고 나타나는 것 또한 태섭의 행동과 동궤에 놓인다. 다시 말해 이 영화의 멜로드라마적 비계는 인간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빈민 계층을 연민과 계도의 관점에서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선과 조응한다. 한국영화사에서 이러한 낭만적인 도덕성이 눈에 띄게 부상했던 시기는 두 번 있었는데 하나는 1960년대 초였고, 다른 하나는 1980년대 초였다. 전자의 경우 근대적 가부장 질서와 손잡으며 공권력의 강화로 이어졌다면, 후자에서는 민주적 저항운동의 단초가 되었다. <꼬방동네 사람들>은 1980년대 초 그러한 영화들 중에서 가장 따뜻하고 화해로운 이상을 품었던 영화였다. 현재의 관점에서 진부하게 다가올 수도 있는 이상적 가치나 도덕성이 이 영화에서 여전히 빛날 수 있는 것은 소외계층의 활력을 통해 그것을 구현했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놓인 인물이 바로 명숙이다. 당시 일반적인 멜로드라마의 주인공과 달리 명숙은 자신의 마음에 솔직하게 주동적으로 행동한다. 그녀는 주석이 소매치기라는 것을 알고 난 이후에도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꿋꿋이 그를 기다린다. 그러다 옥바라지가 힘겨워지자 주석을 찾아가 사랑하지만 지쳤다며 떠나겠다고 당당히 말한다. 명숙이 주석에게 이별을 통보한 날 김영동의 ‘조각배’가 깔리는 가운데 아이를 들쳐 업고 황량한 길을 걸어가는 장면은 참으로 절절하다. 그러한 정서를 유발하는 것은 우선 명숙의 신산한 처지에 기인하나, 그것이 보다 핍진한 감동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까닭은 그녀 행동에 배어있는 주체적 배려와 진정성에 있다. 결말부에 이르면 그녀의 이러한 성격이 더욱 오롯하게 드러나며 영화의 압권을 이룬다. 그녀는 아이의 양육권을 주장하는 주석에게 일갈한다. “정말 당신네 남자들 왜 이러는 거예요? 내 아일 가지고 무슨 권리로 당신네 마음대로 하는 거예요?”라고. 그리고 태섭에 의해 남편을 잃고 ‘팔자가 꼬여’ 아비가 다른 네 명의 아이를 낳아 기르게 된 여인에게 명숙은 반찬가게 판 돈을 내어준다. 일견 명숙이 태섭을 대신해 속죄하는 듯하지만 결코 관습적인 속죄양으로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그녀의 행동은 소외계층의 연대이자 여성의 연대로까지 의미화될 만한 결단으로 다가오는데, 이는 이 영화가 당시 다른 영화들과 변별되는 지점이다. 아울러 이 영화에 특별출연한 공옥진 씨의 역할 또한 주목을 요한다. 공옥진 씨의 춤과 노래는 사람을 모이게 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줌으로써 공동체의 활력을 추동한다. 그런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녀는 마을의 소문을 실어 나르고 사건에 결정적인 계기를 만드는 ‘짹짹이 아줌마’를 연기하여 영화 서사에도 활력을 부여한다. 모자라 보이고, 주책없으며, 오지랖 넓어서 갈등을 조장하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그녀의 모습은 이 영화가 재현하고자 했던 소외계층의 표상이다. 가난과 빈민이 카메라의 중심에 놓이는 일은 빈민운동이 조직화되는 1987년 이후에는 오히려 점차 사라져 간다. 서울의 판자촌이 철거되면서 아파트가 들어서고, 성매매 업소들이 폐업되어 주변으로 밀려나면서 상업적 극영화에서는 그러한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실제로 빈민의 모습은 아파트가 숲을 이루는 도시에서 은닉되며 대중의 눈에서 멀어져 가기도 했다. 또한 ‘민중의 시대’가 저물고 전 세계적 자본주의화로 치달으면서 대중이 ‘가난’을 보고 싶어 하지 않게 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이제 행정적 검열이 아닌 자본의 검열이 도시 빈민의 재현을 배제하게 된다. 이후 그들을 포착하고 문제 삼는 일은 다큐멘터리가 주로 담당해왔다. < 상계동 올림픽 >( 김동원 , 1988)부터 < 공동정범 >( 김일란 · 이혁상 , 2016)에 이르는 역사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1) 「통계로 본 올해의 영화가」, 『동아일보』, 1982.12.15.,12면. 2) 이용철, 「꼬방동네 사람들」, 한국영상자료원 편, 『한국영화 100선』, 한국영상자료원, 2015, 138-139면. 3) 「‘꼬방동네 사람들’, 전국서점 현지조사 베스트셀러 1위」, 『경향신문』, 1981.9.24.,12면. >> 꼬방동네 사람들 VOD 보러가기 <<
<뽕>을 이야기하자면, 1980년대라는 시대를 먼저 말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다. 그런 질문이 나올 법하다. 무릇 대개의 영화는 시대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지 않느냐고. 물론 그렇지만 <뽕>을 비롯해 그 당시 나온 일군의 장르 영화는 1980년대라는 토양 아래 만들어졌고, 놀랍게도 1980년대가 끝나고 1990년대가 시작되면서 곧 사그라졌다. 1920년대 나도향이 쓴 동명의 원작이 1980년대의 관객에게 왜 그렇게 사랑받았는지 이야기하려면, 나는 어쩔 수 없이 1980년대의 영화들과 분위기에 대해 떠올려야만 한다. 혹자는 신군부정권이 국민들을 회유하기 위해 시도했던 ‘3S정책’을 말한다. 즉, 3S 중 ‘섹스’와 ‘스크린’이 만난 결과물이란 것이다. 확인된 문건이나 증거는 없으나, 사실이 그러하다는 것은 그 시대를 거쳐 온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는 바다. 수치적으로도 보아도 1980년대의 영화 문화는 암흑에 가깝다. 한국영화와 외국영화를 막론하고 홍보용 간판에 걸리는 영화 가운데 많은 수는 성애물이었고, 거리에는 언제나 그런 영화들의 포스터가 붙었다 떨어져 나가곤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영화가 어마어마한 흥행 성적을 기록한 것도 아니다. 그나마 극장을 찾는 관객들의 발걸음을 붙잡는 정도, 딱 그 정도의 흥행을 유지하는 수준이었다. 흔히 성애물이라 불리는 영화들 중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라 해봐야 수십만 관객이 다였다. 영화로 치면 정말 암울한 시간이었다. 1980년대의 성애물은 그 안에서 다시 몇 가지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유럽산 성애영화나 스릴러에서 영향을 받은 정체불명의 심리물이었다. <애마부인>(1982)으로 전설을 쓴 이 장르는 여성의 야릇한 심리를 소재 삼아 수많은 아류를 쏟아냈다. 직접적으로 유럽영화의 영향 아래 만들어진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1982) 같은 영화가 있었는가 하면, <무릎과 무릎 사이>(1984), <여자 여자>(1985) 따위의 괴상한 심리드라마도 시도되었다. 둘째는 사회적 메시지에 성애물을 결합한 유였다. <어둠의 자식들>(1981), <백구야 훨훨 날지 마라>(1983) 등으로 명맥을 이어가다 1980년대 후반 <매춘>(1988) 시리즈로 폭발한 장르다. 셋째가 <뽕>이 포함된 토속 성애물이다.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1981),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1981), <어우동>(1985) 등의 엄청난 성공에 힘입어 소소한 흥행세를 이어간 이 장르는 그 아래로 문예물과 해학물로 다시 나뉜다. <반노>(1982), <자녀목>(1984), <씨받이>(1987), <감자>(1987)>가 전자라면, <변강쇠>(1986), <어울렁 더울렁>(1986), <가루지기>(1988),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1993) 등이 후자의 대표작들이다. <뽕>(1985)의 경우는 다소 특이하다. 굳이 분류하자면 전자에 속하겠으나 이 영화의 영향으로 후자의 영화들이 터져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계 정보로는 십여만 명을 동원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이는 당시의 부실한 통계 수준을 입증할 따름이다. 개봉관의 성공에 이어 재개봉관으로 내려간 뒤에도 영화의 흥행은 멈추지 않았고 여주인공을 맡은 이미숙의 얼굴이 간판에 그려지지 않은 군소극장이 드물 정도였다. 그 정도가 오죽하면 모 영화잡지에서 ‘(극장 간판마다 그려진 이미숙의 얼굴 가운데) 과연 어떤 게 진짜 이미숙 얼굴이냐’를 주제로 기사를 냈을까 싶다. <뽕>의 성공이 1980년대를 성애물의 시대로 만드는 데 한 역할을 했지만, 다시 본 <뽕>에는 그 시기의 싸구려 성애물과 구분되는 지점이 있음 또한 분명하다. 1980년대 성애물의 가장 큰 문제는 남성과 여성을, 섹스 외에는 세상사에 별 관심이 없는 짐승처럼 그려놓았다는 데 있다. 남성은 여성의 몸만 봐도 흥분하고, 여성은 남성의 육체가 다가오면 달아오른다는 식이다. 그런 까닭에 이야기의 개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남녀의 눈빛을 클로즈업한 뒤 베드신을 연출하면 그만이었다. 싸구려 성애물이 하도 많이 만들어지니까, 그런 장면들만 기대하고 영화를 보러 다니는 관객도 적지 않았다. 예술영화나 독립영화 같은 건 별세상처럼 논의되던 시절이었다. <뽕>의 인물과 이야기는 달랐다. 근대 이전의 남성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편 삼보(이무정 분)나 삼돌(이대근 분)과 달리, 안협집(이미숙 분)으로 불리는 여성은 노동과 재화를 연결 지을 줄 아는, 그리고 그것을 통해 독립적인 삶을 도모하는 근대적인 인물이다. 어쩌면 안협집은 1980년대 성애물에서 육체적 굴레에 얽매이지 않은 유일한 인물일 것이다. 남편 삼보가 역마살을 핑계로 노름에 빠져 허구한 날 바깥을 돌아다니는 탓에, 그녀는 자신의 몸 하나로 세상을 버텨나가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자본이나 도구가 없는 그녀로서는 반반한 얼굴로 몸을 파는 것을 노동으로 치환하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그런 까닭에 그녀는 소위 육체적 매력을 따질 겨를이 없는 터, 재화가 없는 상대방에게는 절대 몸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육체적 관계는 곧 돈이나 쌀에 가늠하는 재화를 의미한다. 머슴살이를 하는 삼돌은 힘과 몸을 이용해 살아간다는 점에서 안협집과 다를 바 없으나, 그는 안협집과 반대로 육체의 힘을 독립적인 삶의 바탕으로 사용하지는 못한다. 힘자랑을 하는 도입부에서 보듯 그는 자신의 힘을 노동에 바치면서도 종속된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극중 안협집이 유독 삼돌을 싫어하는 이유는 밝혀지지 않으나, 그게 논리적으로 맞다. 자신의 힘을 잘 이용하는 안협집이 그것을 자랑 이상으로 쓰지 못하는 삼돌을 바보 천치로 바라보는 게 당연하다. 안협집에 수작을 거는 삼돌의 시도는 매번 실패하기 마련이고, 그러면 그럴수록 안협집은 그를 더욱 하찮게 여기게 된다. <뽕>은 이대근이 섹스의 아이콘으로 도약하게 해준 작품이면서도 극중 그를 쓰는 방식은 정반대라는 게 특징이다. <변강쇠> 같은 이후 작품에서 이대근은 외모와 힘 하나로 수많은 여성의 구애를 받는 남성으로 분했다. 그의 소문을 전해들은 여성들은 그와 잠자리 한 번 해보겠다고 줄을 서는 장면들이 연출된다. 그런 이대근이 분한 삼돌은 <뽕>에서 내내 내쳐지는 신세를 못 면한다. 삼돌이 힘을 주체하지 못해 식식거릴수록 관객들은 더 크게 웃었다. 원작과 다르게 삼보에게 독립운동가의 뉘앙스를 입혀 놓긴 했으나, 기실 그도 무능하기는 마찬가지. 안협집이 준비해둔 노잣돈에 깨끗한 옷을 걸쳐 입고 돌아다니는 거 외에 우리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지 않았나. 삼보가 극 초반에 하는 대사 – 허기사 지금 세상에는 섣부른 사내 녀석보다 기집 편이 살기가 훨씬 나니라 - 는 어쩌면 1980년대라는 시대를 풍자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때는 박정희에 이어 사내들의 대장으로 군림한 전두환의 기세에 눌려 어지간한 사내들이 풀이 죽어 사는 시대였고, 그들의 주체 못한 힘을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풀던 시대 아니던가. <뽕>에는 그런 못난 남자들을 향한 조롱이 가득하다. 인물과 이야기만큼 빼어난 것은 이미지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이두용의 방식이다. 극의 도입부를 돌아보자. 1분25초짜리의 짤막하고 기능적인 오프닝 크레디트가 흐르고 난 다음, 마을 풍경을 배경으로 안협집이 삼보에게 따지는 목소리가 나오고, 마을 사내 두 명이 그들에 대해 말하는 모습이 삽입된다. 싸돌아다니는 남편을 흉보면서도 보약을 달이는 안협집의 날렵한 몸짓을, 갓 일어난 삼돌이 유머러스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강원도, 황해도, 평안도(안협(安峽)은 강원, 평안, 황해 삼도 품에 있는 고읍(古邑)의 이름이다.) 투전판을 놀다온 남편은 묵묵히 화투를 만지다 화투 패로 묘기를 보여준다. 새침하던 안협집은 어느새 남편의 손놀림에 빠져 신기함을 연발한다. 이번에는 철원 쪽 화투판으로 떠나려는 남편의 입놀림에 속아 그녀는 울다가도 새 옷과 노잣돈을 스스로 꺼내 놓는다. 옷을 입혀달라며 바지춤을 내린 삼보는 슬며시 아내의 얼굴을 더듬는데, 카메라는 관객을 놀리기라도 하려는 듯 마을 남자들의 힘자랑 풍경으로 훌쩍 넘어가버린다. 절구 옮기기로 힘이 세다는 걸 증명한 사람에게 식량을 내준다는 말에 마을 아낙과 남정네들의 입담이 오가고, 모두가 나자빠진 자리에 힘 센 삼돌이 엉큼하게 일어난다. 그는 한 손가락으로 코를 휭 푼 뒤 절구를 번쩍 들어 기운을 뽐낸다. 술잔치를 벌이려 흥이 난 사람들 사이로 삼보가 새 옷으로 차려입고 마을을 떠난다. 누군가 어디 가냐고 묻자 그는 “뽕 따러 가네”라고 답한다. 그 말에 사람들은 한 열로 줄 지어 “뽕 따러 가세”를 연창하며 춤을 추고, 삼보는 어느새 고개를 넘어간다. 흥겹던 사람들은 일본 순사의 등장에 일순간 수그러들고, 일을 치른 차림으로 방에 앉은 안협집은 텅 빈 고개를 멍하니 바라본다. 음악은 어느새 구슬픈 피리 가락으로 변한다. 그것이 <뽕>의 초반 10여 분 풍경이다. 스르륵 인물을 소개하고 안팎의 공간을 넘나드는 장면 아래로 분위기를 조율하는 솜씨가 과연 이두용답다. 이두용은 <뽕>의 결말부에서 도입부를 거의 정확하게 반복하며 끝을 맺는다. <뽕>을 다시 보며 깨달은 중요한 사실은, 나도향의 소설이 그런 것처럼 영화의 생명력이 전혀 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생명은 삶의 에너지에서 나오는데, <뽕>은 많은 에너지를 ‘해학’에서 찾을 수 있는 작품이다. 해학의 사전적 의미가 ‘익살스럽고도 품위가 있는 말이나 행동’인 바, <뽕>의 해학은 구수한 대사에서 나온다. 나는 한국의 판소리보다 해학이 넘치는 예술을 본 적이 없다. 서구의 오페라가 아무리 멋지다 한들, 판소리 언어의 리듬과 힘이 뿜어내는 매력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근대 이후 예술의 형태에서 사라진 판소리 언어의 매력을 그나마 느낄 수 있는 장르가 시대물이다. 1980년대 해학 시대물은 리드미컬한 언어의 맛을 충실하게 전달하곤 한다. <뽕>의 대사 연기야 두말할 것도 없다. 예를 들어 나도향의 원작에서 삼돌이가 삼보에게 안협집의 행실을 일러바치면서 했던 대사들 - "요놈의 자식아! 내 말을 좀 들어 보고 말을 해! 네 계집 험절을 모르고 댐비기만 하면 강산이냐? 이 동리 반반한 사내양반 쳐놓고 네 계집 건드리지 않은 놈이 없다. 이놈! 꼭 집어 말을 하라면 위에서 아래로 내리섬기마. 이놈, 너도 계집 덕분에 노자냥 노름밑천 푼 좋이 얻어 썼지. 그래 집이라고 오면서 볼받은 것이나마 옥양목 버선 벌이나 얻어 가지고 가는 것은 모두 어디서 나온 것으로 아니? 요 땅딸보 오리궁둥아! 아무리 속이 밴댕이 같기로. 그리고 또 들어 봐라. 나중에는 주워먹다 못해서 뽕지기까지 주워먹었다." - 도 거의 다 살아남았다. 특히 안협집과 삼돌이가 다투는 대사는 압권이다. 삼돌: 포도밭에는 왜 갔었소 그려? 안협: 남이야 어디 가고 안 가고 임자가 알아 뭐할 게여. 나 참 별 꼴사나운 소리 다 듣겠네 원. 삼돌: 아 그리 성낼 거 뭐 입습나, 아 임자 잔등에 포도가 뭉개져 있으니까두루 해보는 말이지. 어디 가서 누워 있다 왔습나. 안협: 아 남이야 어디 가 누워 있다 오든 말든 니가 상관할 게 뭐야, 어이구 참 어이구 비켜. 삼돌: 혼자 먹는 밥이 왜 이렇게 많누 그래. 누가 오기로 했나? 안협: 또 횡설수설하고 있네. 삼돌: 아이고 거 밥 냄새 좋다. 아이 그 뜸이 잘 들었나? 안협: 어이구 비켜, 이 망나니 같으니. 두 사람의 대사 연기 외에도, 양택조 같은 조연배우들이 쏟아내는 대사들은 영화 전체에 리듬과 힘을 제공한다. 따지고 보면 참 신기한 일이다. 1985년이면 전두환 정권이 살벌하던 시절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우울하지 않았던 시간이 별로 없겠지만, 전두환 시절은 특히 끔찍했던 때다. 그 시절에 <뽕> 같은 영화는 흡사 평범한 민초가 죽지 않았음을 방증했던 것처럼 느껴진다. 내 말이 과하다 싶으면 영화를 먼저 보면 될 일이다. <뽕>은 시시한 성애물이 아니다. 힘과 웃음이 살아 숨 쉬는 작품이다. # 이 장면은 꼭! <뽕>에는 많은 사랑스러운 장면이 있으나 그중 유독 좋아하는 게 하나 있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오랜만에 집을 찾아온 삼보가 안협집과 말다툼을 벌이다 손찌검을 하게 된다. 소설과 다르게 영화에서 삼보는 평소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인물이 아니라서 안협집은 코피를 흘리며 실신해 버린다. 놀란 삼보는 의사를 불러 오는데, 안협집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방을 닦다 미소를 짓는다. 그날 밤, 안협집은 흰 종이로 코를 막은 채 누워 있다. 삼보는 돌아 누운 안협집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장만 보고 누웠다. 안협집은 피로 물든 종이를 코에서 빼낸 다음 흰 문풍지를 찟어 동그랗게 말아 새로 코피를 막는다. 요즘 같으면 솜이나 티슈를 쓸 텐데, 보는 사람의 마음이 짠하다. 여리면서도 강인한 여성이 느껴지는 덕분에 나는 <뽕>에서 이 장면을 제일 좋아한다. 몇 마디로 설명을 해놓았지만 정말 말로 설명하기가 힘든 정서가 깃든 장면이다. 눈으로 직접 확인하길 바란다.
이장호 감독의 < 바람 불어 좋은 날 >(1980) 마지막 장면에서, 섀도복싱을 하는 덕배( 안성기 )의 잽은 흡사 태양을 두들기려는 듯 보인다. 때맞춰 안빈낙도의 정서를 노래한 김도향의 동명 주제가도 터져 나오지만 사실 덕배의 상황은 그리 좋지 못하다. 낯선 서울살이에서 친형제나 다름없었던 두 절친은 각각 감옥과 군대로 끌려갔다. 그 자신은 중국집 배달 일도 그만두고 전업 권투선수의 길로 나섰음에도 스파링에서조차 내내 얻어맞기만 한다. 애먼 태양에라도 화풀이를 해보려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내 카메라는 물러서고 석양은 조롱하듯 멀어진다. 못다 한 화풀이는 1년여 후를 기약해야 했다. 긴급조치와 10월 유신 시국의 1974년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던 ‘구로동 2인조 카빈 강도 사건’을 영화화하면서, 이장호 감독은 <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 >(1981)라는 강렬한 타이틀을 선택했다. 실화에 대한 감독의 해석인 이 제목 문구는 중의적이다. 그들이 쏜 것은 부도난 희망을 낳은 위선의 태양이자, 또한 사람의 이름이다. 사건의 주인공인 문도석( 이영호 )과 이종배( 박일 ) 2인조에게 있어 태양의 빛이란 만물을 평등하게 내리쬐는 축복이 아니었던 게다. 아울러 경찰에 포위된 이종배가 자살하기 전 손수 총을 쏴서 목숨을 끊은 어린 장남의 이름도 하필이면 ‘태양’이었다. 첫 번째 해석은 범인들의 대담성과 잔인성을 논하기에 앞서 그들을 낳은 사회적 맥락을 돌아보자고 말했던 박완서, 최인호(사건을 각색한 소설 『지구인』을 썼다) 등의 시각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어쩌면 영화라는 예술에 몸담고 있었던 이장호 감독은 그들을 범행으로 내몬 가난보다도, 그 가난으로 인해 좌절된 두 실존 인물의 예술적 야심에 연민을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다. 갓 1차 범행을 마친 두 캐릭터를 정식으로 소개하는 장면은 그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이종배와 문도석은 은행에서 현금을 인출해 나오던 어느 가장을 차로 납치했다가 거센 저항에 직면하자 총으로 살해한다. 그 과정에서 도로변에 있던 아기엄마 하나도 오발된 총탄을 맞아 목숨을 잃는다. 이런 급박한 상황 끝에 야산으로 도피한 범인들이건만 문도석은 기타 치며 노래를 부르질 않나, 이종배는 마치 조각을 하듯 세심하게 변장 목적으로 길렀던 수염을 면도하고 있다. 실제 문도석 또한 못 다루는 악기가 없을 만큼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고, 이종배는 미술가가 꿈이었으나 생계를 위해 극장 간판을 그려야 했다고 한다. 이렇듯 못 이룬 꿈의 상징들과 어우러져, 사람을 죽였다는 죄의식에 시달리는 도석은 자기연민에 빠지고 종배는 자기도취에 빠져 있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자신들의 범행 속보를 들으며 “대낮에 살인강도가 설치고 다니니…”라며 남 얘기하듯 중얼거릴 만큼. 범행을 후회하며 안절부절못하는 도석과 주범인 종배의 갈등은 장차 갈대밭에서의 주먹다짐으로 이어진다. 때로는 익스트림 풀 쇼트로 멀어지며 관조적으로 거리를 두는 이 싸움은 글자 그대로 이전투구다. 액션의 박진감과 타격의 쾌감은 약에 쓰려고 해도 없고, 질질 끌리는 발길질과 힘겨운 주먹질에 헐떡거리는 숨소리와 고통의 신음만 울려 퍼진다. 사회의 혜택이 닿지 않는 버려진 땅에서, 소외된 자의 분노는 또 다른 소외된 자를 향할 뿐이며, 약자들은 서로를 착취하지 않고는 생존하지 못한다. 이후 2차 범행은 이종배 단독으로 진행된다. 손을 씻고 택시 운전을 하며 살아보려 했던 문도석은 예기치 못한 교통사고 탓에 경제적 곤란을 겪다 다시 종배에게 돌아온다. 2인조가 3차 범행을 모의하는 곳은 사람이 찾지 않는 철 지난 해수욕장. 그들이 억하심정을 품고 있는 태양의 또 다른 반대말은 물인지라, 두 사람도 이 공간에서만은 자유로워진다. 하지만 파도를 타고 나아가야 할 배 한 척은 모래톱에 엎어져 있을 따름이니, 애초 그들에게 자유란 막다른 배수의 진에서나 가능한 반쪽짜리일 뿐이다. 예술가가 되지 못한 범죄자들을 향한 감독의 연민과 감정이입은 이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 >는 호러영화 < 너 또한 별이 되어 >(1975)와 스포츠물 < 이장호의 외인구단 >(1986)과 함께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는 드물게 본격 장르 영화로도 회자되는 작품이다. 다만 < 엑소시스트 >를 비롯해 공포영화의 익숙한 관습을 적극적으로 빌려왔던 <너 또한 별이 되어>와 달리 이 작품에서 갱스터 장르는 대체로 서사의 틀로서만 기능할 뿐이다. 그런데 실화의 리얼리티와 육중한 메시지가 이끌어가던 극은 이 대목에서 뜬금없이 장르를 소환한다. 유유히 은행을 턴 후 직원들에게는 앉았다 일어서기를 시켜놓고 떠나는 강도들의 모습은 경쾌한 음악이 흐르는 흑백화면으로 묘사되었다. 고전 갱스터물의 패러디로 연출된 이 장면은 곧 이종배의 상상임이 밝혀진다. 상상은 현실이 되지 못하고 시뮬레이션의 실패는 파멸의 출발점이 된다. 음악가와 미술가가 되지 못하고 강도가 돼야 했던 것처럼, 이 종합예술 콤비의 영화적 상상력도 현실 앞에서 좌절된다. 신분이 탄로 난 문도석은 아내에게 유서를 남기고 아들과 함께 먼저 자살을 택한다. 유서의 내레이션이 흐르는 플래시백 화면, 그가 아내에게 프러포즈하던 해변의 기억 속 도석의 머리 위에는 아직 태양이 빛나고 있었다. 허나 경찰에 포위된 어둠 속 종배의 집 위로는 단죄의 벼락만이 내리칠 뿐이다. 저항을 포기한 그는 실제 이종배가 유서에서 밝힌 대로 자신이 살해한 이들의 시신 유기장소를 경찰에게 상세히 고백한 후 동반자살을 원하는 아내를 먼저 쏜다. 그리고 드디어 총구는 어린 맏아들 태양을 향한다. 겁이 난다는 아들에게 종배는 아빠의 이름을 크게 외치라고 시킨다. “이종배!”를 부르짖는 아이에게 “더 크게!”를 종용하는 그의 목소리도 덩달아 커진다. 이 대목은 이전에 등장한 바 있는 놀이터 장면의 반복이다. 술래가 된 아들 태양이 아빠가 탄 회전무대를 돌려줄 때도 부자는 똑같은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아무리 용을 쓰고 돌려봤자 회전무대는 제자리로 돌아올 뿐, 결국 지친 태양이는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주길 바랐던 후손 또한 쳇바퀴의 현실에 좌절할 것을 직감했던 종배. 아버지의 이름은 이제 죽음의 이름이 되고, 미래조차 기약할 수 없는 절망은 끝내 태양을 쏘고 만다. < 바람 불어 좋은 날 >로 흔히 리얼리즘 시대라 불리는 2기 필모그래피를 열어젖혔던 이장호 감독은 후속작으로 < 어둠의 자식들 >(1981)과 <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 >를 동시에 착수했다. 두 영화 모두에 온전한 역량을 투여할 수 없었던 감독은 <어둠의 자식들>에 힘을 싣는 것을 선택했고, 이 작품은 상대적인 저평가의 불운을 떠안아야 했다. 그러나 힘을 뺀 덕분에 오히려 과잉의 함정에 빠지지 않은 연출의 미덕은 물론, 이후 감독이 선보일 작가적 탐구의 방향성을 모두 담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작품이다. 먼저, 현실의 부조리에 대한 종교적 구원의 가능성이다. 영화의 엔딩에서 살아남은 도석의 아내( 이경실 )는 성당 신부로부터 자신이 살인자의 아들이었다는 고백을 듣는다. 이 결말은 시력(빛/태양)을 잃은 후 신에게 의탁한 안요한 목사의 실화극이자 후속작인 < 낮은데로 임하소서 >(1982)의 예고편이나 다름없다. 나아가 당대 불평등 구조의 근원을 좇아 유신 시대의 과거로 떠났던 감독은 이종배의 이력에서 중요한 단서 하나를 얻었다. 영화에서 그는 말한다. “난 어린 시절에 전쟁을 겪었다. 별의별 끔찍한 죽음을 한꺼번에 봤어. 추운 겨울 들판에다가 갓난애를 버리고 가는 지독한 여자도 있었지. 굶주림은 밥 먹는 것보다 많았어. 사흘 굶어 도둑질 안 하는 놈 봤니? 나도 태어날 때부터 강도질하려고 태어난 건 아니야.” 어쩌면 이 모든 참혹한 현실의 첫 단추를 끼운 것이 전쟁과 분단일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은, 훗날 감독의 역작인 <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1987)를 통해 완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