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엄마
- 감독
- 계장혁
- 제작년도
- 2017
- 출연
- 이지현
플로리다 프로젝트란 1965년 디즈니가 테마파크 건설을 위한 플로리다주 올랜도 부동산 매입계획에 붙인 가칭이다. 그렇게 지어진 디즈니월드는 여전히 성업 중이지만 가족 단위 투숙객을 겨냥한 인근 저렴한 모텔들은 2008년 경기침체 이후 극빈층의 임시거주지로 용도가 변경됐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형편이라 안정된 주거를 확보하지 못하고 남의 집에 얹혀살거나, 차에서 먹고 자거나, 모텔에 주 단위로 투숙하는 소위 ‘숨은 홈리스’(Hidden Homeless) 현상이다. 숀 베이커 감독의 < 플로리다 프로젝트 >는 192번 국도 주변 퇴락한 모텔 매직 캐슬을 로케이션으로 삼아, 디즈니 월드 지척에 살면서도 디즈니 월드와 가장 멀리 떨어진 세계에 속하는 여섯 살 소녀 무니(브루클린 프린스)와 친구들의 여름을 지켜본다. 아직 10대 티를 벗지 못한 엄마 핼리(브리아 비네트)는 하루 38달러의 방값과 다음 끼니가 어디서 나올지 모르는 처지다. 그러나 말썽쟁이 무니에게 알록달록한 모텔 동네와 기념품 가게들은 신나는 놀이터고 교육의 부재는 무한한 자유다. 소녀는 관광객에게 잔돈을 얻어 소프트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일이 하나도 슬프지 않다. 엄마끼리 친구인 아래층 스쿠티(크리스토퍼 리베라), 이웃 퓨처랜드 모텔에 새로 이사 온 잰시(발레리아 코토)와 삼총사를 이룬 무니는 어른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부류의 꼬마다. 자동차 창에 침 뱉기 게임을 하고, 관계자 외 출입 금지 구역에 들어가 두꺼비 집을 내리고, 일광욕하는 아줌마를 놀리며 뛰어논다. 말할 나위 없이 한 발 떨어져 보면 아이들의 일상은 위험투성이다. 국도에는 자동차가 질주하고, 수풀에서는 악어가 나올지도 모르고, 공사가 중단된 주택단지에선 뭐가 떨어질지 모른다. 수상한 취향의 뜨내기 아저씨가 노는 아이들 주변을 어슬렁거리기도 한다. 무니의 매일은 여름 캠프처럼 즐겁지만, 엄마 핼리는 생계를 점점 위험한 방법에 의지하게 되고 이는 여름의 파국으로 이어진다. 보호자들이 돈을 버는 사이 본의 아니게 모텔 아이들의 안위를 챙기는 역할을 맡은 사람은 매직 캐슬의 관리인 바비(윌렘 데포)다. 관광 모텔이 빈민 레지던스로 변하면서 모텔 매니저인 그는 업무 내역에도 없는 ‘생활주임’ 노릇을 한다. 투숙객들은 그에게 불평을 늘어놓으면서도 의지한다. 숀 베이커 감독은 이 사내를 가부장적 시혜자로 만들지 않는다. 모텔 주인의 피고용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명백히 인식하면서도 무니 모녀가 최악의 상태에 떨어질까 반사적으로 경계하는 바비는 수호천사도 선한 사마리아인도 아니고 그저 다른 인간의 곤경에 감응하는 인간이다. 모녀를 염려하지만 도울 길이 무망하다는 점에서 그는 관객의 대리자이기도 하다. < 플로리다 프로젝트 >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 중 하나는 부산한 일과를 마친 그가 어스름을 바라보며 담배에 불을 붙일 때 찾아온다. 바비가 첫 연기를 작은 한숨처럼 내쉬자 모텔 복도 외부 등이 일제히 들어오는 순간은, 이 남자가 ‘매직 캐슬’을 지키는 소박한 마법사임을 말하는 매직 아워다. 바비는 관객의 대리자일 뿐 아니라, 사회 주변부에서 겨우 생존을 이어가는 인물들을 이야기하는 영화에서 감독이 택한 윤리적 포지션도 암시한다. 우선 미국 영화에서 거의 재현되지 않는 극빈층 아웃사이더의 삶과 그들의 생활공간, 그들이 매일의 빵을 얻는 지하경제는 숀 베이커 감독이 줄곧 이끌리는 소재다. 2012년 작 < 스탈렛 >은 샌 페르난도 밸리의 백인 포르노 배우가 노년의 여성과 맺는 우정 이야기였고 바로 전작 < 탠저린 >은 매춘으로 먹고사는 트랜스우먼 친구 둘의 크리스마스이브를 그렸다. 이와 같은 소재에 접근하면서 숀 베이커 감독은 외부자로서 취하기 쉬운 분노나 동정의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내려다보지 않고 옆자리를 지키며 그들의 삶에 내재한 아름다움과 어두움을 그대로 파악하고자 한다. 궁핍한 삶에서 방점은 궁핍이 아니라 궁핍이라는 조건을 수반한 삶에 있어야 한다고 숀 베이커의 영화는 믿는다. 예컨대 < 플로리다 프로젝트 >의 도입부에는 무니가 침을 뱉은 차의 주인이 따지러 오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내키지 않는 투로 무니의 손목을 끌고 간 엄마 핼리는 피해자 아주머니와 벌 받는 아이들을 구경하다가 아주머니도 처지가 딱해진 딸 대신 손자를 키우고 있음을 알게 된다. 담배를 나눠 피는 두 여자 사이에는 어느새 미묘한 유대감이 형성된다. < 플로리다 프로젝트 >는 “이 아이들을 보라!”는 계고의 메시지와 거리가 멀다. 숀 베이커의 시나리오와 카메라는 가난한 어린이의 가난에 집중하는 대신, 아이를 아이답게 만드는 환희와 활력을 놓치지 않는다. 동시에 그들의 객관적 궁지도 직시한다. 이 과정에서 어떤 극 중 개인도 천사와 악마로 만들지 않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는, 선한 의도와 무관하게 결과적으로 절망을 착취하는 수많은 영화들이 입증한 바 있다. 핼리는 누가 봐도 훌륭한 엄마가 아니다. 부분적으로 무책임하며, 어리석은 선택도 한다. 관광객들에게 물건을 팔려고 어린 딸과 함께 호객하고, 매춘을 위한 프로필 사진 촬영을 딸과의 놀이로 만들어버리는 핼리의 행동은 충분히 우려스럽다. 그녀가 딸에게 선물하는 사치는, 좀 더 고급스런 모텔의 아침 뷔페에서 누리는 도둑 포식이다. 숀 베이커 감독은 핼리를 변호하지 않으나 이 캐릭터를 판정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핼리를 한심해 하면서도, 이 어린 엄마가 무니에게 최고의 친구이며 무니를 온 세상과도 바꾸지 않으리라는 점을 확신할 수 있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이 왔을 때 우리는 사필귀정이라는 안도감과 모녀가 헤어지는 일은 옳지 않다는 감정 사이에서 흔들린다. 영화의 최선은 때로 관객 안에 진정한 갈등을 심는 것이다. 전작 < 탠저린 >을 아이폰 5S로 스크린에 손색없이 아름답게 촬영해 화제를 모았던 숀 베이커는 ‘아이폰 감독’으로 세상에 기억되는 일을 방지라도 하듯 < 플로리다 프로젝트 >를 35밀리 필름으로 찍었다. 카를로스 레이가다스 감독의 < 사일런트 라이트 > < 포스트 테네브라스 럭스 >를 촬영한 알렉시스 사베가 카메라를 담당했다. 실제 로케이션에서 촬영된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프레임은 연보라와 오렌지, 플로리다의 환한 푸른색으로 가득하다. 혹자는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시각적 아름다움을 현실의 어둠과 배치되는 컬러의 역설에서 찾겠으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숀 베이커는 그의 인물들이 살아가는 장소의 공기를 주민의 눈으로 포착할 줄 안다. 저예산 영화 다섯 편을 만들며 세트 없이 인물의 생활공간에서 영화적 긴장을 발견해 온 경험은 그의 커다란 자산이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많은 숏은 성인의 허리께에 오는 아이들의 눈높이로, 순진한 흥분과 거기에 무심한 세상의 압도적 사이즈를 전한다. 그러나 숀 베이커는 특정 스타일에 고착하는 감독은 아니다. 존재감이 엷고 기동성 높은 스마트폰 촬영으로 비전문 배우의 거침없는 연기를 따라잡고 부추겼던 <탠저린>과 대조적으로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주의 깊은 블로킹과 프레이밍이 만들어 낸 숏으로 지지된다. 어린 배우들로부터 의도한 결과를 끌어내는 데에 실용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뇌관인 무니 역 브루클린 프린스의 연기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널리 회자될 터라 여기서는 말을 아끼기로 한다.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공개된 후 프린스와 자주 비교되는 대상은 최연소 오스카 여우주연상에 후보 지명됐던 <비스트>(2012)의 크반자네 왈리스인데 왈리스가 아이로서 존재를 그대로 카메라 앞에 드러내는 연기를 했다면 브루클린 프린스의 그것은 타고 난 배우의 철저히 리허설 된 연기다. 이런 영악한 속성이 스스로를 세상의 주인공으로 믿고 화려한 ‘퍼포먼스’를 벌이는 무니라는 소녀의 성격과 조화롭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내내 관객을 이끌고 무니의 세상을 기웃거리고 뛰어다니던 < 플로리다 프로젝트 >는 마지막에 이르러, 마치 지금껏 한 번도 달리지 않았던 것처럼 달려나간다. 질주인지 비상인지 구분하기 힘든 이미지 앞에 떨면서 나는 딱 한 가지만 잊지 않으려고 했다. 예술이 세계를, 예술가가 지금 이곳에서 살아가는 동료 인간을 염려하고 사랑하는 좋은 방법을 아는 영화를 방금 봤다는 사실을.
#1 자식 키우기 한 남자가 비스듬히 누워 포르노를 보고 있다. 엄마는 과일을 깎아 아들에게 가져온다. 포르노에 열중인 아들은 먹기 싫다는 제스쳐를 취한다. 그래도 하나 먹어보라는 엄마는 포크로 과일을 찍어 아들의 입에 가져간다. 귀찮다는데 왜 그러냐며 과일을 집어 던지는 아들. 엄마는 섭섭하다. #2 부쩍 커버린 아이 아들은 게이다. 남자친구와의 오럴섹스에 열중인 아들의 방을 훔치는 엄마. 행위에 열중인 아들과 친구에게 다리를 들어보라고 하지만 그들에게 엄마는 안중에도 없다. 열심히 닦고 방을 나가자 본격적인 섹스가 시작된다. #3 두 어른 엄마는 자해를 했다. 상의를 모두 벗어 가슴이 그대로 드러난 엄마의 상체에는 칼로 그은 큰 상처가 있다. 울고 있는 엄마에게 아들은 화를 낸다. #4 어린 엄마, 늙은 자식 자해로 인해 자리에 누운 엄마에게 아들은 과일을 깎아 준다. 이제야 기분이 좋아진 엄마. 자신만 먹기 미안했는지 아들에게 과일을 권한다. 그러자 아들은 화를 내며 과일을 집어 던진다. 위의 장면들 1997년 제4회 서울단편영화제에서 우수상을 수상하며 알려진 <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 >의 내용은 상기에 적시한 그대로다. 달리 이 영화의 내용을 전달할 방법이 없어 저렇게 썼다. 이 영화는 아들이 포르노를 보고 남자친구(영화의 주인공은 물론 남자다)와 오럴섹스를 하는 환경 속에 ‘엄마’를 끼워 넣는다. 아들의 기이한 행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평범한 엄마가 하듯 과일을 먹이려 하고, 방을 훔치는 엄마의 행동이 충돌을 일으켜 ‘대체 이게 뭐냐’는 호기심을 자아낸다.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극단적인 상상. 혹은 갈 데까지 간 짓궂음. 이미지도 이러한데, 대사는 물론이거니와 앰비언스(환경음)까지 모두 삭제한 채 음악만이 흐르고 있어 관객에게 ‘이래도 견딜 수 있을까?’라고 묻는 것 같다. 극한까지 몰아가는, 형식과 내용 면에서 굉장히 파격적인, 단편 영화가 가질 수 있는 힘을 잘 보여준 작품이었다. 연출자인 김정구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작품에서 모성의 맹목성 중 한 단면을 단순 무지하게 증폭시켜 스케치해 보기로 하였다. 그것을 위해 모성의 반대말이라고 생각되는 포르노와 폭력의 이미지를 대비시키기로 했다. 나의 저급한 상상은 모성과 포르노를 한 공간에 몰아넣고, 어쩌면 그것이 서로 어울릴 수도 있으리라는 망상에까지 이르렀다.”라고 밝혔다. 모성과 포르노라는 단어가 한 문장에 있는 것도 어색하지만, 그것이 잘 어울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이 과격한 몽상가는 이 영화로 세간에 두각을 나타낸 ‘지하창작집단 파적’의 소속이었다. 김정구를 필두로 윤영호 , 이진우 , 김일안 , 김유하 , 조성제 등의 창작자가 속해있던 이 집단은 협업을 통해 다양한 영화를 만들었다. 서로서로가 어떨 땐 연출로, 어떨 땐 스태프 혹은 배우로 참여하며 < 삼승할망 >(윤영호 감독), < GOD >(이진우 감독), < 피로 물든 세계지도 >(김유하 감독) 등 20여 편이 넘는 왕성한 창작열을 보였던 그들은 ‘파적’. 즉 ‘적막을 깨트린다’는 뜻에 걸맞게 신, 섹스, 낙태 등 금기로 치부되었던 소재를 자유롭게 다뤘다. 다른 이야기지만, 김정구 감독이 ‘장난으로’ 쓴 시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우연히 장선우 감독의 눈에 띄어 ‘한국 영화 사상 최악의 재앙’이라 불리는 어떤 영화를 출현토록 하는 씨앗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지하창작집단 파적 <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 > 이후에도 김정구 감독은 < 샴, 하드로맨스 >라는 작품으로 근친상간과 물리적으로 닿을 수 없는 남녀의 애절한 사랑의 기묘한 교차점을 선보였고, < 사자성어 >의 에피소드를 맡아 마치 인사하듯이 섹스가 대단치 않은 일인 농담 같은 세상을 그리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파적의 멤버들과 함께 만든 옴니버스 < 좀비처럼 걸어봐 >는 그간의 작업을 정리라도 하는 듯 ‘파적필름’이라는 회사까지 차려 제작된 작품이었다. 파적의 주요 멤버인 김설우 , 윤영호 , 김정구 , 김유하 (이 김유하 감독이 <말죽거리 잔혹사>를 연출한 유하 감독이라는 말이 있는데 확실한 자료를 찾지 못해 언급은 하지 않는다.) 네 명이 각자 하나씩 에피소드를 연출한 옴니버스 영화다. 그들은 이 영화 속에서 광기, 집착, 식인, 죽음 등 그간 탐구해왔던 소재들을 풀어내고 있다. 현재까지 김정구 감독의 마지막 연출작은 OCN에서 제작한 스릴러 드라마 < COMA >의 <붉을 홍> 에피소드이다. (다른 멤버인 이진우 감독은 현재 활발한 활동 중이다.) 지난번에 소개한 < 재능있는 소년 이준섭 >도 그랬지만, 1990년대 말부터 2000년 초는 한국 독립영화계의 억눌린 상상력이 폭발하는 때였다. 당시 영화 산업의 자본주의적 잠재력에 시선이 쏠리고 이에 발맞춰 재능있는 감독들이 하나둘 모습을 나타내며 한국 영화에 희망적 기운이 만발하던 때였다. 각 지자체는 너도나도 영화제를 기획하기 바빴고 뜨고 지는 감독들도 굉장히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파격적인 영화를 제작하던 ‘지하창작집단 파적’은 현재 활동은 멈춰있지만(해산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확실한 자료가 없어 멈춰있다고 썼다.) 금기에 도전하는 파격적인 영상 연출에 대해 한 번쯤은 이야기하고 싶었다. 요즘 상업, 독립 영화를 합친 영화판을 기웃거리고 있으면 왠지, 다시는 이런 사람들을 만날 수 없을 것 같아 그리운 기분이 든다. 요새는 모든 것이 계획되고 과정으로서만 가치를 인정받는 느낌이다. 모험가는 다시 나타날 것인가? 이미지로의 탐험은 이미 끝났는가?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임근아 ... 엄마 조성제 ... 아들 김일안 ... 아들의 애인 감독: 김정구 각본: 김정구 제작사: 지하창작 집단 '파적'
1996년, 우연히 기회를 얻어 대구에서 시네마테크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는 새로운 영화에 목말랐던 이들이 전국 각지에서 시네마테크를 만들고 활동을 했던 꽃같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당시의 시네마테크는 합법적인 활동이 아니었다. 뭐랄까? 영화 문화의 밑거름을 만드는 일임은 분명했지만 음지에 존재하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달까?(그래도 그때 활동들은 90년대 한국영화 문화를 더욱 성숙시키는데 크게 기여했…을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해 본다.) 그러던 97년 가을, 상상도 못한 전갈을 받았다. 정성일 평론가와 김홍준 감독이 중심이 되어 운영하던 서울단편영화제가 4회째를 맞아 전국 각지에서 고군툰투하는 시네마테크 운영자들을 초청해 영화제의 특별상의 심사를 맡기겠단다, 이름하야 `젊은 시네마테크상`. 삼성영상사업단이 주최한 서울단편영화제는 1회 최우수상 수상자 임순례 감독을 시작으로 새로운 감각의 영화인들을 발굴해냈던 당대 최고의 영화제였고, 4회 영화제에는 영화광들의 큰 사랑과 지지를 받았던 김기영 감독님과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왕가위 감독 등이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어 큰 화제를 모으고 있었다. 이런 대단한 영화제에서 심사를 한다는 것은 정말 놀랄만한 일이었다. 뭐랄까, 음지에서 양지로 초대받는 듯한 그런 느낌. 시청 앞 삼성생명 건물에 있던 `전설의` 씨넥스에서 개최된 4회 서울단편영화제의 경쟁작품들은 정말 굉장했다. 이제는 유명 감독들이 된 송일곤 , 정윤철 , 오점균 , 김지훈 , 윤종찬 , 김태용 , 민규동 , 고 조은령 등의 단편영화들이 한꺼번에 상영되었으니 오죽 했겠는가? 송일곤 감독의 < 간과 감자 >, 정윤철 감독의 < 기념촬영 >이 공동으로 최우수상을 받았고, 오점균 감독의 < 초촌면 신암리 >가 우수작품상을, 고인이 된 조은령 감독의 < 스케이트 >가 예술공헌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심사에 참여했던 `젊은 시네마테크상`의 수상작은 <기념촬영>이었다. 하지만, 영화제 내내 가장 화제가 되었던 작품은 김정구 감독의 <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 >가 아니었나 싶다. 10분에 불과한 이 영화는 당시의 어떤 한국 (독립)영화와도 비교하기 힘든 파격적인 작품으로 영화제 내내 화제를 모았다. `자식 키우기`, `부쩍 커버린 아이`, `두 어른`, `어린 엄마 늙은 자식`, 이렇게 4개의 장으로로 구성된 <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 >는 한정된 공간에서 엄마와 아들, 그리고 아들의 애인만 등장하고, 대사도 없는 꽤나 간결한 영화였다. 하지만 작품이 담고 있는 함의는 그리 간단치 않았다. 영화는 제목대로 `모성애`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아름답게 묘사하지는 않았다. 내용은 대충 이렇다. `엄마는 아들을 사랑한다. 하지만, 아들은 엄마의 사랑을 달가와 하지 않는다. 엄마는 이런 아들을 이해하려 한다. 하지만, 아들은 더더욱 엄마를 무시한다. 결국 엄마는 자해라는 방법을 동원해 아들의 사랑을 갈구(?)한다. 그리고 아들은 엄마를 다시 사랑하게 되는데…'. 사랑을 거부하는 아들에게 엄마가 칼을 들고 자해까지 하며 사랑을 갈구하고, 그제서야 아들은 엄마의 사랑을 받아들인다는 내용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영화는 광각렌즈를 적극 활용해 기괴하고 일그러진 이미지들을 만들어내었지만, 반면 음악은 각 장마다 `미뉴에트`, `어머니와 고등어`, `물망초` 등 잔잔하고 애잔한 곡들로 선곡해 이미지와 사운드를 효과적으로 대비시키고 있었다. 이런 이질감을 통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금기시 되었던 것들을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파격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영화 내내 텔레비전에서는 포르노가 그대로 노출되고(무척이나 고급스러운 씨넥스의 대형 스크린에 영사되는 포르노 이미지!), 아들과 아들의 애인의 성기도 은근히 노출되며(게다가 둘 다 남자! 동성애?), 급기야 엄마는 다 큰 아들 앞에서 상반신을 탈의하는 까지 부도덕한 상황까지 등장한다. 당시에는 영화관에서 이런 장면들을 보는 것 자체가 매우 생경한 경험이었기에 꽤나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에 흘렀던 처철한 기타맨이 처절하게 부르는 오리지널 곡 `날 내버려둬`와 엔딩 크레딧 마지막에 등장한 [지하창작집단 '파적']이라는 생경한 제작단체 이름까지 영화는 파격, 그대로 였다. (실제로 지하창작집단 '파적'이라는 크레딧이 뜰 때, 관객의 탄성을 내질렀다!) 김정구 감독의 <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 >는 논란의 영화였지만, 결국 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심사위원들도 이 작품의 파격과 도발에 동의하고 지지했단 뜻이리라. 요즘도 가끔 이 영화를 생각할 때 마다 `젊은 시네마테크상`을 선정할 때 이 영화를 선택했다면 어땠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젊은`이라는 수식어에 맞게 파격적인 영화를 지지했으면 더 폼 나지 않았을까라는 상상. 비록 상을 주며 지지를 표명하진 못했지만,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는 그 이후 15년간 '내 인생의 독립영화'가 되었다. 여전히 기존의 표현과 상상력을 넘어서는 도발적인 영화들은 독립영화 일을 계속하게 했던 크나큰 동력이었다. 독립영화야 말로 상상력과 창의력의 장이자, 영화를 혁신해내는 장이라는 것을 스스로 표현해내는 영화들, 그런 영화들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자랑스럽다. [사족] 당시 서울단편영화제 수상작들은 삼성의 케이블채널인 캐치원 등을 통해 방영되기도 했는데, 이 작품은 포르노가 등장하는 등 당시의 사회 정서에 부합하지 못한 관계로 방영되지 못했고 수상작 비디오에도 수록되지 못했다. 하지만 2008년말 독립영화배급사 인디스토리가 창립 10주년을 맞아 자사 배급 작품 중 베스트 10을 선정하여 발매한 [인디스토리의 10주년 기념 DVD]에 수록되며 출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