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살해 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
- 감독
- 남기웅
- 제작년도
- 2000
- 출연
- 이소윤, 김대통, 정은경, 김아람, 황필수, 배수백, 김호경, 양혁준, 박동현, 라익범, 노익현, 라만길, 황병일, 이동수, 조동규, 유준자, 박철구, 김주복
영화미술은 영화의 시각적인 톤앤매너(Tone&Manner)를 제시하고 구현하는 작업이다. 미술감독(프로덕션 디자이너)이 영화의 톤앤매너를 정하면 미술팀은 그 콘셉트에 맞추어 진행하게 된다. 공간의 구조는 어떻게 할 것이며, 공간의 분위기는 어떠해야 하고, 그것에 맞게 사물을 어떻게 배치할지까지 고민해야 한다. 미술팀은 프리프로덕션 과정에서 콘셉트 스케치, 세트디자인, 공간디자인, 그래픽디자인, 소품의 디자인까지 화면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디자인을 하며, 그 후엔 디자인을 실제로 구현해 줄 세트팀, 소품팀과 작업을 공유하고 디자인에 맞는 결과물이 나올 수 있도록 감리과정을 진행하게 된다. 프로덕션 기간 중에는 구현된 공간에 콘셉트에 맞는 소품을 배치, 세팅하는 작업 즉, 세트 드레싱을 진행한다. 이렇게 완성된 공간에서 촬영이 시작되는데, 여기서 끝이 아니라 촬영 중에도 미술적인 부분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며 현장 진행을 한다. 이것이 미술팀의 작업의 대략적인 과정이다. 영화 안의 공간마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된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영화 안의 공간은 스튜디오 세트, 오픈 세트, 로케이션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로케이션의 여건이 여의치 않거나 로케이션에서 구현할 수 없는 공간일 경우 대부분 스튜디오 세트에서 촬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외부 환경에 세트를 만드는 경우를 오픈 세트라고 하며, 이 두 가지는 영화에 맞게 구조를 만들고 디자인을 하기 때문에 맞춤 신발처럼 꼭 맞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정확한 콘셉트의 구현과 외부 방해 요소가 없어 빠른 촬영을 돕기도 한다. 반면 로케이션은 콘셉트에 맞는 장소를 섭외해서 촬영하는 것을 말한다. 공간을 그대로 쓸 수 있는 곳도 있지만 변경이 가능하다면 좀 더 영화에 맞게 덧붙이거나 일부 변경을 해서 공간을 디자인한 후 사용하기도 한다. 로케이션은 실제 공간이기 때문에 구조가 정해져 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영화에 부합하는 로케이션 특유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트디자인이라는 과정이 없이 바로 데코디자인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와 같이 로케이션에서 공간을 어떻게 얼마나 변형을 할 것인가, 또는 어떠한 방식으로 데코를 할 것인가, 그로 인해 이 공간이 얼마나 시나리오의 상황에 부합하는가를 설정하는 것이 바로 디자인의 시작이다. 결국 스튜디오 세트, 오픈 세트, 로케이션에서 세트디자인의 과정은 부분적으로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지만, 공간의 데코레이팅은 동일한 과정으로 진행된다. 물론 이에 대한 모든 결정은 효율성의 고려에 대한 결과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공간이 정해져 있다고 해도 그 공간에 적합한 가구의 선택, 동선에 알맞은 배치 그리고 어떤 디자인의 소품이 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결정. 이 모두는 공간 분위기를 판가름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무척이나 중요하다. 이 작업을 위해서 미술팀은 큰 가구부터 작은 연필 하나까지도 스타일, 모양, 색상 등을 콘셉트에 맞추어 결정하고 알맞은 위치에 배치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다. 예를 들어 호러 영화의 드라큘라 집에 핑크색 레이스 커튼을 넣었다고 생각하면, 그 커튼으로 인해 호러의 분위기가 깨지고 공간의 분위기도 달라질 것이다. 단, 일부러 넣은 설정이라면 다르겠지만. < 걷기왕 >은 예산이 적은 영화였고 한 달 동안 촬영을 끝내야 하는 프로젝트여서 세트를 따로 지을 수 없었기 때문에 로케이션 헌팅에서 정해진 장소에 디자인과 드레싱 하는 과정으로 작업이 진행됐다. 영화의 전체적인 톤앤매너를 잡았지만 그에 맞는 공간이면서, 촬영에 용이한 환경을 가지는 장소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 가장 공간 찾기가 어려웠던 곳은 만복의 집과 학교 그리고 육상부실이었다. 만복은 강화도에 사는 여고생이다. 지역의 특성상 아파트나 연립주택보다는 전원주택에 살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공간은 그 공간에 살고 있는 인물들의 성격이나 상황 생활습관 그리고 분위기를 대변하기 때문에 가장 부합한 장소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의 설정도 가져가면서 인물의 캐릭터와 영화의 콘셉트도 가져가야 하기에, 어쩐지 황량하고 여고생보다는 할머니가 살고 있을 것 같은 우사가 있는 일반 시골집보다는 따뜻한 정서가 묻어나는 집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초반 미술 콘셉트 회의에 이러한 콘셉트에 부합한 레퍼런스 공간들을 찾아 제시했고 이를 기반으로 제작부에서 여러 장소를 헌팅한 후에 가장 만복이 살 것 같은 장소였던 한옥으로 결정되었다. 만복집 로케이션 만복집 콘셉트 스케치 만복집 결과물 마당 한켠에 자리 잡은 아치형의 창고가 있어 소순이(소)의 집으로 설정했다. 기존의 외양간과는 전혀 다른 형식이었는데, 우선적으로 콘셉트에 부합하기 위해 벽에 작화(설정된 색상을 칠하고 질감을 만들며 생활감과 세월감을 주는 작업)를 하는 것으로 계획했다. 그다음, 공간의 씬에 자연스러운 동선이 만들어지도록 소품 배치를 계획했다. 여기서 필요 없을 물건들은 제거하고 영화에 필요한 요소들을 배치하게 되는데, 그래서 기존에 있던 파라솔과 테이블은 없애고 문과 평상으로의 동선이 바로 이어지게 계획했다. 작화가 공간의 분위기를 잡아주는 첫 번째였다면, 커튼과 같은 패브릭 요소들로 미술세팅(데코레이팅)을 해서 분위기를 잡아주는 것이 두 번째 요소가 된다. 어떤 색감의 어떤 패턴을 쓰느냐에 따라 많이 달라지기 때문에 커튼을 설정하는 데에 신경을 많이 썼다. 백여 개의 원단 샘플 중에서 선택된 것이 주황색의 커튼. 마당 화단의 푸른 녹음의 색감과 반대되는 주황색을 함께 써서 공간에 색감을 풍부하게 사용하고 싶었다. 이 기회에 말하지만 < 걷기왕 >에서는 주황빛의 색감이 많이 보이는데 주황은 활동적인 에너지의 색이며 식욕의(크게 꿈을 향한 열정(욕심)으로 보았다) 색이기도 하고 강화도의 배경과 만복이 걸어 다니는 설정상 푸른 시골길이 많이 보이기 때문에 대비해서 설정한 색이기도 했다. 영화상 배경은 따뜻한 봄부터 초가을이였지만 실제 촬영은 패딩을 입고 촬영에 임해야 할 날씨였기에 푸른 녹음은 기대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집 마당 곳곳에 풀과 꽃들을 심고 화분을 가져다 놓고 대문의 담과 집에도 담쟁이 넝쿨을 설정해서 하나하나 벽에 붙였다. 추운 날씨 때문에 만복 집뿐만 아니라 이 영화 곳곳에 조화나 화분을 이용하여 계절감을 바꿔서 세팅했다. 그렇게 세팅하고 나니 비로소 생기 있는 분위기를 주는 공간이 완성되었다. 공간을 디자인하고 데코플랜을 세울 때 많이 고려하는 부분은 이 공간에 사는 인물이 어떻게 살고 있을까 상상을 하는 것이다. 공간은 그곳에 사는 사람의 취향, 성격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대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명하지 않아도 공간에서 캐릭터가 엿보여야 한다. 인물을 대변해 줄 수 있는 요소들이 한데 모여 인물과 공간을 더 견고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집에 어릴 때부터 살았던 만복의 흔적을 넣었다. 어릴 때 그린 낙서나 초등학교 때부터 만복이가 학교 과제로 만든 공작 물품들을 설정으로 집에 곳곳에 배치하고, 만복의 어릴 때 그림이 붙어있는 부분도 설정했다. 더불어 만복의 가족들이 같이 살고 있는 요소들을 배치하려고 했다. 육상부실 로케이션 육상부실 콘셉트 랜더링 육상부실 결과물(1) 육상부실 결과물(2) 육상부실 또한 건물 색감부터 바꾸며 시작했다. 내부 구조를 바꾸기보다는 그 안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했기 때문에 육상부실 안에 메인 공간으로 훈련하는 곳과 탈의실, 세탁실까지 자연스러운 동선이 이어질 수 있도록 설정하고 디자인에 들어갔다. 우선 시멘트벽과 합판, 샌드위치 패널로 이루어진 이 공간에 색감을 입힐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들을 모색했다. 만복이 육상부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공간과 상대적인 이질감을, 육상부가 되어서는 동질감을 부여하고 싶었다. 이를 위해 메인색상은 활동적인 에너지의 색감인 주황 색감으로 정해 육상부 내부와 육상부원에게 부여하고, 초록색 체육복을 입고 육상부실에 있는 만복이 상대적 공간과의 이질감을, 육상부가 되었을 때는 주황색 유니폼으로 동질감을 부여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는 색감을 풍부하게 쓰고자 했다. 공간의 전체적인 색감과 배치, 구체적인 소품의 종류들을 선택한 후 로케이션 드레싱을 들어갔다. 소품을 차례로 위치시키고, 소품도 설정된 색으로 다시 도색했다. 디자인을 진행하면서 색상을 많이 썼기 때문에 색감과 세팅에서 전체적인 조화와 균형을 계속 고려하면서 진행했다. 일반적으로 다른 영화에서는 색감이 도드라지지 않게 작업을 하는 편인데, < 걷기왕 >에서는 색감을 더욱 부각시키고자 했기 때문에 화면에서는 색감이 풍부하되 산만하지 않도록 조절해야 했다. 이것이 육상부실을 디자인하고 데코하는데 제일 많이 신경 쓴 부분이었다. 실제로도 운동기구들이 눈에 잘 띄기 위해 강한 색을 많이 썼는데, 영화 안에서 그것들만 도드라지지 않고 공간과 인물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보이도록 초점을 두었다. 위의 두 공간에서 계속 언급했듯 < 걷기왕 >은 색감이 풍부한 영화이고 싶었다. 어떤 그림이 완성될지 모르는 여러 색이 모여 있는 팔레트처럼 말이다. 이것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는 십 대(만복) 같기도 했다. <걷기왕>이 진행되는 방식은 만화 같은 판타지 함이 있지만 이야기는 학창시절 한 번쯤은 겪었을 현실이 있는 두 가지의 접점이었다. 그래서 두 가지가 상대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돋보이게 하듯 균형을 유지하려고 했다. 작은 예산의 영화는 각 파트가 추구한 콘셉트를 실행하고 유지하는 것이 쉽진 않다. < 걷기왕 >에서도 콘셉트를 유지하고 퀄리티를 잃지 않고 구현하기 위해 적은 인원에서 많은 일을 해내야 했고 적은 비용으로 효과를 증대시킬 아이디어가 많이 필요했다. 다른 팀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지만 촬영만 한 달 남짓인 촉박한 스케줄임에도 세트팀을 따로 꾸릴 수 없었기 때문에 중요했던 작화도 미술팀 안에서 진행해야 했다. 촬영하는 동안 미술팀의 누군가는 촬영장을 빠져나가 작화 작업을 해야 하는 일이 촬영 내내 이어졌지만 연출자를 포함한 촬영조명과 소통이 있었기에 시행착오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두 달여의 짧은 시간 동안 프리프로덕션과 프로덕션을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끝이 났다. 마냥 쉽지만은 않은 일을 해냈을 때의 성취감도 있지만 짧은 프로젝트 속에서 놓친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때의 선택과 결정이 후에도 옳았다고 생각할 수 있었으면 한다. 아쉬움도 있지만 앞으로 할 영화들이 많을 것이기에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여 중고생들과 같이 버스에서 탄다는 것은 멜로보다 하드보일드에 더 가깝다. 거침없이 터져 나오는 쌍욕과 발랄함을 넘어서 괴성에 가까운 웃음소리. 교복은 마치 예비군이 입은 군복 같은 용감함을 심어주는지 그녀들의 거칠 게 없는 에너지에 나는 주눅이 들어버리곤 한다.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려 내 중고 시절을 돌이켜보자. 중학교 시절은 무림에 가까웠다면, 고등학교 시절은 감옥과도 같았다. < 더티혜리 >를 만든 이요섭 감독도 말한다. 어느 순간부터 “담배 한 갑만 사주세요.”라고 말하는 중고등학생이 무서워졌다. 그들은 어딘가 화나 보이고 위험해 보인다. 그들에게 하드보일드 장르라는 탈을 씌워주고, 맘껏 움직이게 내버려두고 싶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혜리는 말과 함께 주먹이 나가는 여고생이다. 혜리는 중국집 배달부 수봉이가 자신의 친구 뿅을 임신시키고 버렸다는 사실을 알고 수봉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어렵게 수봉을 찾아 시원하게 복수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녀의 주먹은 바른 방향으로 향하였을까? 영화 < 더티혜리 >는 하드보일드 탐정물의 장르를 취하고 있다. 영화가 주고자 하는 주제의식보다는 장르가 주는 재미를 더욱 탐닉한다. 혜리가 수봉을 찾기 위해 거치는 캐릭터와 배경 역시 현실성보다는 장르의 특성에 맞게 과장되어있고 미화되어있다. 하지만 이런 장치들이 불편하거나 어색하지 않고, 장르의 리듬을 즐기게 한다. 예를 들어 혜리에게 정보를 주는 오미자의 캐릭터는 도서관에 기거하며, 포스트잇으로 혜리가 알고 싶어하는 정보를 건네준다. 도서관의 미장센 역시 탐정영화에서 볼법한 음침하고,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재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수봉을 찾아 헤매는 공간도 현실적인 공간이 아닌 차이나타운으로 설정해 놓으면서 이 영화의 관람 방향을 확실히 제시한다. 또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것은 하드보일드 탐정물에서 느껴지는 위스키의 냄새보다는 달달한 캔디향이 난다는 것이다. 이는 탐정물의 클리셰를 여고생이기에 가능한 공간과 행동, 소품들로 차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의 처음과 끝은 감각적인 애니메이션으로 구성하며, 위스키 냄새로 채우지 못한 아쉬움을 채워준다. 하지만 이 영화를 장르의 테두리 밖에서 보았을 때는 자칫 소품 같은 영화로 보일 수 있다. 이는 장르영화를 단편으로 압축시켰을 때 오는 위험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장편으로 옮겨도 훌륭한 하드보일드 탐정영화가 탄생할 것 같다는 기대감을 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정물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 더티혜리 >는 충분히 가치 있는 영화다.
올해 초 이성부 시인이 세상을 떴다. (완독하지 못한) 고인의 시집 <우리들의 양식>을 꺼내 들었다. ‘광주’라는 시가 맨 먼저 눈에 들어왔지만, 그보다 다음 장에 실린 ‘10년’이라는 시에 더 마음이 갔다. ‘10년’을 거칠게 풀어 쓰면 대략 이렇다. “피로 맹세하고 피의 말로 사랑하는 길을 가르쳤”던 새벽손님이 있어, “우리는 눈 부릅떠 손에 손을 맞잡고 거리를 밀어뜨렸”다. 세월이 흘러 우리는 “뿔뿔이 흩어졌”고, “아버지가 되었으며”, “몇 번이고 굴러떨어지는 언덕의 삶”에 굴종하고 있던 어느 날, “잊어버린 새벽손님은 또 나를 찾아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을 걸었다”. 새벽손님의 급작스러운 방문에 놀란 나는 “타락한 자의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10년’은 이성부 시인이 1972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그런데 왜 ‘10년’을 읽자 이창동 감독의 < 박하사탕 > (1999)이 떠오르는 것일까. < 박하사탕 >이 거슬러 오르는 1980년 5월의 광주와 아무런 공통분모도 없는데 말이다. 아마도 시의 마지막 대목이 일깨우는 어떤 인상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나는 또 그 손님을 잊어버렸다./그리고 그 새벽은 어느 날 갑자기 죽었다고 전해졌다./겁보, 어둠, 안간힘, 짜증나는 말,/이런 것들로 뭉쳐진 나는 그 죽음을 멀리서만 바라보고 있었다. 비겁하게도/멀리서만 그 죽음의 불씨를 보고 있었다.// 시의 화자는 왜 새벽님의 죽음을 멍하게 바라보고만 있었을까. 그는 악몽처럼 찾아들던 새벽손님과의 10년을 곱씹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10년’의 새벽손님은 <박하사탕>의 기차와 유사하다. <박하사탕>의 기차는 쉬지 않고 악몽을 실어 나른다. 악몽은 죽음보다 무섭다. 영호( 설경구 )는 높다란 철로 위에 올라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기차를 향해 “나 돌아갈래!”라고 으르렁거린다. 영호는 지금 신과 마지막 거래를 하는 중이다. 악몽 이전의 그날로 나를 되돌려달라, 그러지 않는다면 나는 살아도 죽은 목숨이니. 그의 절규는 영혼과 육신을 송두리째 반납할 테니, 단 한순간이라도 악몽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간절한 바람이다. 그때, 기적이 일어난다. 죽음이 영호를 덮치는 순간 시간은 멈춰 서고, 악몽의 기차는 갑자기 거꾸로 달린다. 핏발 선 영호의 눈에 야만의 시대, 환멸의 간이역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 박하사탕 >은 1999년의 봄부터 1979년 가을까지 김영호의 20년을 역으로 추적한다. 악몽의 기차는 야유회-사진기-삶은 아름답다-고백-기도-면회-소풍이라는 이름의 정거장을 지나는데, 시간의 결절점들이 불러낸 사건들은 역사(驛舍) 명이 환기하는 이미지를 배반한다. 옛 동료와의 ‘야유회’는 난장판이 되며, 첫사랑의 징표인 ‘사진기’는 팔아도 몇 푼 안 되는 고물에 불과하다. ‘삶은 아름답다’는 영호의 찬탄은 냄새나는 화장실에서 비아냥의 어조로 울려 퍼지고, 영호는 다른 여자를 품고서야 첫사랑을 입 밖으로 ‘고백’한다. 똥과 피로 더럽혀진 영호의 두 손은 ‘기도’로 씻기지 않으며, 영호를 찾아온 첫 번째 ‘면회’ 객은 싸늘한 주검이 된 여고생이다. 이창동 감독은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박하사탕의 색깔과 맛 같은 첫사랑의 순수한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시간의 역순 구조를 택했다고 말한 적 있다. 순수의 종착역에 가닿기 위한 여정의 고통은 지나온 것보다 곱절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영호가 망각의 천으로 덮어두었던 상처의 환부에는 그토록 회피하고 싶었던 과오와 책임이 종양처럼 자라나 있고, 그래서 그는 매번 기적 소리에 절뚝거린다. 영호의 발작은 1980년 5월의 광주라는 지옥문을 통과한 뒤 출발점이었던 ‘소풍’이라는 간이역에 섰을 때 가까스로 멈춰 선다. 이때의 영호는 순진한 더벅머리 청년이고, 첫사랑 순임( 문소리 )은 거짓말처럼 영호에게 말을 건다. 그렇다면 이제 영호의 모든 죄는 사함을 받았고, 그의 아픔은 말끔히 사라졌는가. < 박하사탕 >을 우리 시대의 <죄와 벌>이라고, 일단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의 순서대로 장면을 되돌려보자. 영호는 죄를 지었고, 그는 벌을 받았다. 혼자 죽기 억울해서 내 인생 망가뜨린 딱 한 놈만 쏴죽이고 싶었다지만, 어느 놈을 쏴 죽여야 할지 몰랐다고 오열할 때 영호는 이미 알고 있다. 생을 놓아야 할 이는 자신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는 죽음을 받아들이면 된다. 그런데 무슨 까닭에서 이창동 감독은 굳이 시간의 역순으로 이를 재현한 것일까. 가해자인 영호 역시 역사의 피해자였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런 식의 동정과 연민을 구하고자 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 박하사탕 >의 마지막 장면. 영호는 천변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본다. 잠시 후 그의 눈엔 그렁그렁 눈물이 고인다. 스무 살의 영호는 이때 누구를 바라보고 눈물짓는가. 마지막 장면을 첫 장면에 이어 붙여보자. 초췌하고 남루한 차림으로 철로에 올라간 영호는 여전히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고 있는가. 혹시 그의 극단적 선택은 윤리적 결단이 아닐까. 젊은 영호는 존재하지 않으며, 순수는 회복되지 않음을, 영호는 그 순간 깨달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건 비단 영호의 자각만은 아니다. 젊은 영호의 눈동자에는 강물을 내려다보는 <시>의 미자(윤정희)도 어른거린다. 미자가 투신하기 전, 황급히 맞았던 이의 이름은 아마도 ‘새벽손님’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