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비상망
- 감독
- 전우열
- 제작년도
- 1974
- 출연
- 한용철, 여수진, 오경아, 최성, 이해룡, 김남일, 김무영, 최창호, 한국남, 박동용, 권오상, 심상현, 이강조, 최석, 한명환, 최재호, 서정웅, 최민규, 조영준, 유화춘, 김청
< 동경특파원 >( 김수용 , 1968)은 첩보 스릴러의 외양을 하고 있지만, 첩보 영화 특유의 극 중 정보량 배분 및 지연 등을 통한 관객과의 밀당에 주력하지는 않는다. 스파이와 스파이의 표적 대상과 스파이의 적 등이 등장하여 서로 간의 정체를 의심하고, 관객들도 이들 간의 관계와 속셈을 계산하며 기대를 충족시키거나 배반하면서 극적 재미를 만드는 것이 첩보영화의 관건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이 서스펜스, 즉 관객이 등장인물보다 많은 정보를 알고 있어서, 등장인물에게 닥칠 상황에 대해 긴장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는 등장인물 A보다는 관객이 많은 걸 알고 있었지만, 등장인물 B보다는 적게 알고 있기 때문에 A와 B가 함께 등장하는 장면에서 관객이 추측과 기대와 그 기대의 반전 등을 마주하게 되는 재미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앞서 얘기했듯이 <동경특파원>은 등장인물 간 그리고 인물과 관객 간 정보 제공량의 편차 및 조합을 적절하게 운용하기보다는, 대체로 건너뛰거나 생략하기 때문에 의혹과 추리 사이에서 긴장을 태우며 집중해야할 지점이 흐려진다. 이 작품이 소재로 삼은‘재일조선인 북송사업’은 상업적으로 영화화하기에는 힘겨운 역사적 현실이었을 것이다. 1959부터 1984년까지 재일조선인과 그 가족들(일본 배우자 포함) 약 9만 여명이 북한으로 향했다. 한국은 북송 반대 입장이었지만 일본과 한국의 수교는 1965년에야 이루어졌고, 실질적으로 일본에 있는 동포들의 한국행을 추진하지는 못했다. 일본에서 가난과 차별에 힘들어하던 이들은 다른 삶을 꿈꾸며 북송선에 올랐으나 돌아올 수 있는 배편은 없었다. 그리하여 북송사업 이후 재일동포들에게는 북한과 일본 사이의 이산가족이 생겨났다. 재일조선인 소녀 안나( 여수진 역)는 일본 니가타 항에서 북송선에 오른 어머니와 헤어지고, 배를 탔는지 안탔는지 행방이 묘연한 오빠를 찾기 위해 한국 기자( 윤양하 역)와 동행한다. 기자는 북송 문제를 취재한 자료들을 도난당한 후, 정체불명의 차에 치여 사망한다. 한편 도쿄에 있는 기자의 아내 지숙( 윤정희 역)이 운전하던 차에 누군가 뛰어들어 교통사고가 나는데, 최완배( 김성옥 역)라는 자가 나타나서 부상자를 병원으로 옮겼다더니 이내 죽었다고 한다. 최는 사후 처리를 도맡는다며 지숙에게 계속 접근하고, 자수를 원하던 지숙은 점차 최와 함께 사건을 은닉한 처지가 되어 한 패가 된다. 여기에 안나와 지숙이 함께 살게 되는 한편, 지숙과 최를 협박하며 안나와의 데이트와 돈을 요구하는 남자( 신성일 역)가 나타난다. 그리하여 지숙, 최, 안나는 묘한 운명공동체가 되어, 남자의 협박에 대응하느라 돈을 주고 억지로 데이트에 응해주다가 일본을 떠나 한국으로 간다. 이들은 지숙의 아버지인 남 교수( 김동원 역) 댁에서 가족처럼 지내지만 밤중에 최와 안나는 몰래 나가 아지트 건물로 향한다. 안나는 오빠의 소식을 안다는 최로부터 어떤 지시를 받고 있는 듯하다. 결혼 준비를 하게 된 지숙과 최에게 남자가 또다시 나타나 협박하고, 최의 뒤를 밟던 남자는 아지트에서 폭행·감금당한다. 마침 최로부터 오빠가 평양에 있다는 미덥잖은 말을 듣고 실의에 빠진 안나가 남자를 풀어주고, 남자는 남 교수에게 예비 사위인 최가 사실은 남 교수가 월남할 때 신의주에 두고 온 아들 남지완이라는 사실을 익명으로 알린다. 이 사실을 모르는 최가 남 교수에게 총을 겨누며 납치를 꾀하자 남 교수는 자신이 아버지임을 밝히고 자수를 권하지만 최는 듣지 않는다. 인천에서는 최의 간첩 일행이 남 교수와 안나를 배에 태워 납북하고자 하는데, 위기를 알리려던 안나가 간첩의 총에 맞고 남 교수 부인도 아들인 최를 붙잡고 오열하다가 총에 맞는다. 이에 최는 총부리를 돌려 간첩에 맞서고, 그때 국군들이 나타나 간첩 일행을 일망타진한다. 남자는 군 정보원으로서 동경특파원이었던 것이 밝혀지고, 병상 치료 중인 최를 비롯한 남 교수 가족은 가족 상봉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러나 최의 대사대로‘죄 없는 안나의 죽음’이 이 영화를 해피엔딩으로 만들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은 남자(동경특파원)가 안나의 묘에 참배하며, 안나의 죽음을 잊지 않겠다는 나레이션으로 마무리된다. 영화 속에서 지숙도 간첩도 국군도 모두 각자의 목적으로 안나를 이용했지만 끝내 누구도 안나에게 제대로 사과하지 못했다. 또한 안나의 죽음을 계기로 주인공의 남북 이산가족이 상봉하고 재결합했지만 안나의 가족 상봉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재일조선인을 방출하고 싶었던 일본과 그들의 경제력과 노동력이 필요했던 북한 그리고 그들의 귀환은 추진하지 못하면서도 체제 경쟁 하에 북송 저지를 펼쳤던 남한, 이들 사이에서 기만당하고 외면당했던 재일조선인들의 역사를 반공첩보영화로 소화할 수 있을까? <동경특파원>은 이 질문의 답을 알고 있는 것 같다. 엔딩을 부감으로 멀어지면서 화면 정중앙에 무덤이 자리하는 원경으로 끝낸다. 즉 일본에서 이방인으로 자라나 어머니를 북으로 떠나보내고 오빠는 찾지 못한 채, 남한 땅에 묻힌‘안나의 죽음’으로 큰 마침표를 찍는다. <동경특파원> VOD 보러가기
박노식 감독의 세계를 가장 절묘하게 드러내는 두 작품을 고르라면, 단연 < 왜? >(1974)와 < 광녀 >(1975)다. <왜?>의 경우 박노식의 영화사상 유례가 없는 엽기적 1인 2역을 볼 수 있고, <광녀>는 광녀의 기억을 되찾아주기 위한 처절한 복수의 방식이 거의 ‘광기의 연출’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다. 시작부터가 심상찮다. ‘광녀’라는 글자가 새겨지고 느닷없이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광녀일 것이다. 너무나도 친절한 텍스트와 사운드의 대위법이다. 그리고 거칠게 달리기 시작하는 트럭이 괜히 두꺼비와 뱀을 밟고 지나간다. 정말 잔인하다. 박노식 감독은 굳이 ‘이 영화는 세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무고한 살상을 감행한다. 박노식, 문오장 , 박근형 , 최성호 , 장혁 등 각자의 범인 서류를 통해 이름을 보여주는 크레딧 또한 명쾌하다. 마치 초등학생 같은 연출 스타일이지만, 오히려 그것이 이후의 광기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든다. 그것이 바로 B무비 감독 박노식의 태도다. 오프닝 크레딧(‘감독 박노식 ’은 정말 뜬금없이 나온다) 일제 강점기, 은행을 털다가 체포되어 수감된 박동식( 박노식 ) 패거리는 탈옥에 성공한다. 박노식이 연기하는 박동식은 이름에서 한 글자만 도둑질해서 바꿔치기했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도둑질에 관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어쨌건 다섯 일행 중 한 명은 돈의 행방을 알고 있다. 그들이 각자 감옥에 갇혀 있는 모습을 수평 트래킹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살짝 과장 섞어 얘기하자면 마치 자크 따띠 감독의 영화에서나 볼 법한 연극적 세트다. 세월이 무상하게도 그들 중 ‘꽃할배’ 박근형 이 연기하는 ‘광일’이 막내다. 가장 어려서 안전하다는 이유로 그는 돈의 위치를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가장 믿음직한 동식에게만 귓속말로 알려준다. 당연히 나머지 사람들은 돈의 위치를 너무나 궁금해 하고, 돈에 환장한 그들을 시끄러운 돼지들과 무려 한 쇼트로 처리한다. 박노식이 볼 때 굳이 컷을 나눌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비밀장소에 묻어둔 거액을 찾아낸 동식은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떠난다. 세월이 흘러 해방이 되고 서울에 돌아온 동식은 나머지 패거리들이 광일의 부모와 또 다른 일행 송노인을 죽인 후 돈을 착복한 사실을 알아낸다. 더구나 결혼을 약속했던 송노인의 딸 순옥( 여수진 )은 미쳐있다. 패거리 일당들이 순옥에게 몹쓸 짓을 한 것. 이제 돈에 미쳐버린 그 악당들을 향한 동식의 분노의 복수가 시작된다. (위에서부터)수평 트래킹, 돼지우리 밖 패거리들, 귓속말, 광녀, 송노인의 죽음, 순옥을 강간한 원숭이들, 복수의 끝은 늘 112 박노식 의 연출작들은 하나같이 일관된 흐름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아니, 감독 스스로 그러한 것을 거부하고 있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나마 < 광녀 >는 윤삼육 작가의 각본 혹은 ‘대륙물’이라는 기본적인 얼개 덕분인지, 복수극이라는 박노식 특유의 테마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그의 다른 연출작들에 비해 나름 짜임새 있는 구성을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여러 불가해한 장면들이 주는 효과는 실로 강렬하다. 지난 2011년 6월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광녀> 상영 후, 박노식 감독의 거의 모든 영화에 출연했던 원로배우 김영인 과 류승완 감독의 GV가 있었는데, 김영인이 얘기하는 박노식 감독의 세계는 명확했다. “박노식은 고증이나 서사의 연결 같은 걸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고, 오직 특정 장면의 힘과 목적만 생각했다”는 것.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까지 보여주는데 설마 몰라?’하는 초등학생 같은 연출과 ‘내가 감독이라서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어쩔 것이여?’하는 안하무인의 연출이 그 영화 안에서 마음껏 충돌할 수 있었다. 김영인 배우 GV (2011) 역시 가장 논란이 되는 충격적 장면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방식으로 광녀의 기억을 되찾아주는 장면이다. 정신분열증과 기억상실증이 절대 같은 것이 아닐 텐데, 마치 기억상실증을 치료하는 것처럼(수많은 다른 영화에서 본 것처럼,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이 재차 또 다른 충격으로 인해 원래 기억을 되찾는 경우) 광녀를 대한다. 말하자면 범인 일행 중 유일한 여자인 미화를 강간하면서 광녀가 제정신이 되는 것이다. 벌건 대낮에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영문도 모르는 관찰자까지 뒤엉켜 벌어지는 그 처참한 복수는 보기에 불편할 뿐만 아니라 ‘감독인 나만 이해하면 됐지, 굳이 관객 모두 납득시킬 필요는 없어!’ 같은 태도를 취한다. 누군가는 그저 두 눈을 감아버리고 싶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상상을 초월하는 독창적(?) 복수라 느낄지도 모른다. 어쨌건 정말 끔찍하다. (말도 안되는 방법으로) 정신이 돌아오는 순옥 1995년 출간된 박노식 자서전 「박노식 은막 43년의 고백: 뻥까오리 백작」에 따르면, 과거 학창시절 중절모를 일본말로 ‘나까오리’라 불렀는데 박노식은 까까머리임에도 하얀색 중절모를 쓰고 다녔다. 그런데 하도 ‘뻥’을 잘 쳐서 사람들이 ‘뻥까오리’라 불렀다. 어쩌면 < 왜? >와 < 광녀 >를 관통하는 그의 B무비 정신이 바로 뻥까오리 정신이다. 남들보다 튀어 보이기 위해 나까오리를 쓰고 다녔던 것처럼 뒤늦게 감독이 된 그도 무조건 남들과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가령 < 집행유예 >(1973)는 술집 웨이터 폭행사건 등 “폭행사건으로 하도 집행유예를 많이 당해서 만들고 싶었던” 영화인데, 여기서 < 대부 >(1972)에 대한 황당무계한 패러디가 나온다. <대부>에서 돈 콜레오네(말론 브란도)의 요구를 거절한 영화제작자의 침실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말 머리(그 제작자가 아끼던 말의 머리)를 넣어둬 복수한 것처럼, <집행유예>에서는 장인어른이 ‘될 뻔’ 했던 남자의 침실에 잘린 사슴 머리(역시 약혼녀의 아버지가 애지중지 집에서 기르던 사슴의 머리)를 넣어둔다. 자, 그런데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다. 나는 여기서 ‘남들은 말을 사슴으로 바꿨다고 해서 양심 없는 모방이라 할지 모르겠지만,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를 놔뒀으니 결코 모방이 아니다!’라고 항변하는 박노식의 환상을 본다. 그날 GV를 정리하며 김영인은 그 박노식의 매력에 대해 이성적, 논리적 분석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 ‘족보 없는 연출’이라 불렀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꿰뚫는 촌철살인의 명언을 남겼다. “박노식은 인간이 되기 이전에 배우가 되고 감독이 된 사람이다.” 박노식 여수진 문오장 장혁 감독: 박노식 각본: 윤삼육 개봉극장: 피카디리 관람인원: 12,584명
짝퉁 이소룡의 역사에서 가장 현기증 나는 대목은, 그들의 다채로운 영어이름이다. 이소룡의 ‘Bruce Lee’ 라는 원래 이름에서 ‘L’을 돌림자 삼아 이렇게나 많은 변형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다. 나훈아 로부터 너훈아, 나운하, 나운아, 나윤아, 노훈아가 파생된 것처럼 말이다. 지난 회 < 일소일권 >으로 소개한 거룡은 ‘Bruce Lei’이고, 또 다른 짝퉁 이소룡 배우들인 하종도 는 ‘Bruce Lai’, 유가영은 ‘Bruce Lau’, 장정의는 ‘Bruce Lea’, 우양은 ‘Bruce Ly’, 그리고 이번에 소개할 여소룡 은 이러한 부동산 ‘알박기’ 경쟁에 뒤늦게 뛰어든 관계로 ‘Bruce Le’라는 어딘가 이름을 짓다 만 것 같은 소심한 이름을 썼다. 물론 유가영은 이후 자신의 독자적인 활동으로 더 유명해졌고, 거룡 의 경우 ‘Dragon Lee’라는 보다 멋진 이름을 함께 사용했다. 이미 포화상태인 ‘Lee’를 리모델링하느니 굳이 ‘Bruce’라는 단어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대한남아의 기개를 보여준 신선한 발상의 전환이었다. 물론 그들은 패티김 과 패튀김이 함께 활동했던 것처럼, 이소룡이 죽기 이전부터 짝퉁으로 활동했다. 여소룡 은 수많은 짝퉁들 중 가장 진짜와 닮았던 배우다. 쌍꺼풀이 없어서 클로즈업을 하면 곤란하지만, 멀리서 보면 전혀 분간하지 힘들 정도로 체격이나 움직임이 오리지널 이소룡과 판박이다. 쉽게 말해 ‘얼굴만 가리면’ 이소룡이다. 그런데 여소룡은 한국인이 아니다. 대만 출신으로 홍콩에서 활동하던 중, 역시 홍콩으로 건너가 쇼브라더스에서 활약했던 수많은 한국 액션배우들 중 하나인 남석훈 의 눈에 띄어 한국에서도 활동하게 된 것. 이수현 주연 ‘아시아 슈퍼히어로’ 영화 <중국초인>(1975) 등에 출연했던 그는 이소룡의 < 당산대형 >(1971)의 흥행에 힘입어 나열, 진혜민 등과 함께 그 아류작인 <당산제자>(1976)에 출연했고 이후 <용문비지>(1976), <충렬정무문>(1977), < 벽력용권 >(1978) 등 주로 강홍 감독의 영화에서 짝퉁 이소룡으로 활동했다. 바로 여기서 남석훈을 만나게 됐다. 한편 <황금첩혈>(1979) 등을 연출하는 등 나중에는 감독으로도 활동했다. 화천공사가 거룡을 발굴했다면, 여소룡 은 남아진흥공사에서 만든 남석훈 의 < 속 정무문 >(1977), 태창흥업에서 만든 최우형 의 < 십자수권 >(1978) 등에 출연했다. 역시 홍콩 액션배우 진성이 함께 출연한 <속 정무문>은 단성사에서 개봉해 6만 관객을 동원했으니 제법 성공을 거둔 셈이다(영상도서관 멀티미디어석에서 VOD로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요즘 식으로 말하면,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입하지 못한 마이너리거가 한국 프로야구팀에서 와서 활동하는 경우랄까. 지금껏 한국 액션배우들이 홍콩으로 ‘수출’되기만 한 것으로 알지만, 그런 반대의 역사도 있었던 것이다. <십자수권>은 최우형 감독의 데뷔작으로 홍콩, 대만 등지로도 수출되어 <사망마탑>(死亡魔塔)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다. 그는 나름 ‘정통’ 무술영화를 만들려고 했던 감독으로 < 사형사제 >(1982), < 여걸 청나비 >(1983) 등을 만들었으며 < 기문사육방 >(1983)의 경우 유일하게 영상도서관 멀티미디어석에서 VOD로 관람 가능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쉰 살이 되기 전에 세상을 떴다. < 십자수권 >에서 여소룡 은 독립운동을 하다 죽은 한국인의 아들로 나온다. 그리고 돈에 팔려간 누이동생을 찾아 군벌들이 일본과 내통하여 혼란스러운 중국 땅에 나타나, 부패 군벌이 주관하는 무술대회에 출전한다. 한국식 ‘만주 웨스턴’ 장르에 < 용쟁호투 >(1973)와 < 사망유희 >(1978)가 적당히 뒤섞인 이 이야기에서 여소룡을 두고 이소룡과 가장 닮았다고 말하는 건, 바로 노란색 트레이닝복 ‘간지’가 그와 무척 흡사했기 때문이다. < 일소일권 >의 거룡의 노란색 트레이닝복, 혹은 역시 거룡이 출연했던 <쾌권괴초>(1979)에서 장일도가 입었던 노란색 트레이닝복이 지나치게 굵은 옆줄로 인해 동일시를 방해했다면, 여소룡은 정말 비슷하다. 하지만 같은 의상이라도 홍콩의 도심이 아닌 한국의 용인 민속촌을 배경으로 삼았기에, <속 정무문>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자와 눈 내리는 민속촌을 거닐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은 다소 어안이 벙벙하다. 그나마 <십자수권>은 <사망유희>의 마지막 액션신이 펼쳐지던 5층 구조를 그대로 모방했기에 나름 실감나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런데 오리지널보다 더 강한 볼거리를 액션을 선보여야 한다는 강박 때문인지, 한 층에서 만난 정체불명의 고수는 수십 마리의 뱀을 내던지며 그 뱀으로 목을 조르며 싸우는 기괴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액션 연출이 뛰어나건 어쨌건 간에 어쩔 수 없는 B급의 향기랄까. 그럼에도 다른 짝퉁 이소룡 영화들과 차별점을 갖는 부분이라면, 역시 ‘흑형’과의 대결이다. 사실 이소룡이 < 용쟁호투 >에서 실제 가라데 고수이자 배우인 짐 켈리, < 사망유희 >에서 카림 압둘 자바 등 흑형들과 싸우는 장면은 꽤 중요한 이미지다. < 십자수권 >에서 다채로운 권법을 사용하고 화려한 돌려차기를 구사하는 흑형과의 대결은 꽤 볼만하다. 가령 <쾌권괴초> 등에 등장했던 흑인 배우는 단지 구색 맞추기였을 뿐, 너무나 어이없는 무술 동작으로 실망만 안겨준 것에 비하면 상당한 퀄리티다. 이렇듯 왠지 서오릉으로 추정되는 장소에서 노란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중국인 여소룡 과 머리에 두건을 두른 흑형이 쿵푸 대결을 벌이는 기묘한 풍경에 괜히 숙연해진다. 오른쪽 칼을 든 사람이 양사 더 숙연해지는 이유는 당당한 체구의 배우 양사 때문이다. < 용쟁호투 >(1973)에서 이소룡과 대결을 펼쳤던 그는 < 십자수권 >에서는 여소룡 과 싸웠고, <쾌권괴초>에서는 장일도와 싸웠다. 급기야 < 용재강호 >(1986)에서는 이소룡의 아들 브랜든 리와도 싸웠다. 말하자면 이소룡과 그의 아들, 그리고 그의 아류들과도 다 싸웠다. B무비이기에 가능한 설정일 텐데, 세상 어디 그런 배우가 있을까. 또 하나, ‘백옥과도 같은’ 피부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미모로만 따지면 개인적으로 역대 한국 여배우 중 세 손가락 중 한 명으로까지 꼽고 싶은 여수진의 존재다. 박노식 의 < 광녀 >(1975)에서 박노식의 연인이었고, < 폭력은 없다 >(1975)에서 박형사(박노식)가 오랫동안 지켜봐온 광일(원선)의 연인으로도 등장한다. 그야말로 이런저런 B무비에서만 활동하다 사라졌던 안타까운 배우다. 여수진 여소룡 감독: 최우영 각본: 허진 개봉극장: 청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