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상
- 감독
- 김일란, 조혜영
- 제작년도
- 2005
- 출연
- 양희이모
필자가 속해있는 단체인 ‘성적소수문화환경을 위한 모임 연분홍치마’(이하 연분홍치마)의 여섯 번째 다큐멘터리 프로젝트의 마무리를 앞두고 있다. 다큐멘터리 < 노라노 >. 이 작업은 지금까지 연분홍치마가 해왔던 작업과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매우 달라서, 때때로 도전이나 실험이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였다. 다소 과장된 표현이지만 제작과정에서의 도전이나 실험이라는 느낌은 실존인물이자 어느 정도 대중적 인지도가 있는 인물을 재현하고자 할 때 많은 감독들이 만나게 되는 고민의 한 측면일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연분홍치마 작업이자, 필자가 프로듀서로 참여한 작업이지만 <노라노>를 이 공간에서 소개하려고 한다. 이 작업에 프로듀서라는 역할로 참여하면서 때때로 연분홍치마의 첫 번째 프로젝트이자 필자의 첫 번째 (공동)연출작이었던 < 마마상, Remember me this Way >(2004, 이하 마마상)라는 작업이 떠오르곤 했다. 물론 <마마상>과 < 노라노 >라는 작업을 통해 접근하고자 했던 두 여성은 계급, 직업, 시대, 사회적 자원, 제작진과의 관계 등 거의 모든 것이 다른 여성이었다. < 마마상 >의 주인공인 신○○ 씨의 경우, 1946년생으로 17살에 미군 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성산업에 유입되어 `broken english`를 익히고 그것을 기반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자신의 성적 가치가 하나의 ‘상품’으로서 더 이상 유통되기 어려워지면서, 마마상이 되었다. 마마상은 업주를 대신하여 성매매 여성들을 관리하고 업소에서 벌어지는 온갖 궂은일은 도맡아 하는 일종의 ‘중간 포주’이다. 제작진은 신○○를 ‘이모’라는 호칭으로 부르며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 노라노 >의 주인공이신 노라노 씨의 경우, 1928년생으로 굉장히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일본군 장교와의 17살에 결혼을 했지만 19살에 이혼을 했다. 그 이후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와서 ‘최초의 패션 디자이너’로서 한국 대중문화에 다양한 영향을 미쳤다. 더군다나 제작진들은 노라노 씨에게는 언제나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였다. 너무나도 다른 이 두 여성의 삶을 그리고 있는 다큐멘터리의 제작과정은 그 두 여성의 다른 삶만큼이나 차이가 있었다 (지금도 역시 신○○의 경우, 그 이름을 공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에 대해 긴장감을 갖는 반면에 노라노 씨의 경우, 그 이름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녀들의 얼마나 다른 삶을 살고 있는지가 드러난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서, 이 두 다큐멘터리의 제작과정은 익숙한 질문을 비틀어 제시하여, 새롭고 섬세한 답을 요구하는 것만 같았다. 하나는 실존 인물의 생애를 다루는 다큐멘터리의 장르적 어려움에 관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여성들의 ‘나이 경험’이 한국사회 성별 체계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 그리고 나이 듦이 가져오는 변화가 갖고 있는 함의에 대한 질문들이었다. 우선 특정한 삶을 살고 있는 실존인물의 생애를 담고자 할 때, 현존하는 주인공과 제작진 사이에는 주인공의 삶을 바라보는 (혹은 해석하는) 관점에서 차이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 차이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다큐멘터리의 제작과정은 물론이거니와 그 결과물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정한 인물의 삶을 통해 사회적 이슈를 전달하는 이야기방식을 채택한 모든 다큐멘터리 작가들이 그러하듯이, 인물의 삶에 대한 존중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그러한 삶을 가능하게 했던 조건으로서의 사회적, 역사적 구조를 제시하고자 노력해왔던 것 같다. 또한 인물에 대한 정보나 사회적 이슈를 전달함에 있어 스토리텔링에 대한 구성적 고민을 흥미롭게 해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 마마상 >의 경우, 미군 기지촌을 중심으로 지속되어 온 성매매 메커니즘의 역사와 그 메커니즘의 일부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한 여성을 이야기할 때, 중간매개인 ‘마마상’이라는 이라는 직업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이 전체 내터티브나 표현형식과 어떻게 맞물리게 해야 할지 (어설프지만) 공들여 고민했었던 기억이 있다. 조금 풀어 말하자면, 신○○ 씨 스스로가 생각하는 마마상으로서의 삶과 제작진이 바라보는 신○○ 씨의 마마상으로서의 삶은 분명히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차이에 주목하면서 그것이 갖는 의미들을 찾고 그것을 다큐멘터리의 중요한 이야기로 담으려고 노력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번 < 노라노 >의 주인공인 ‘노라노’ 씨의 경우는 그 차이에 대한 질문이 조금 까다롭게 던져졌다. 노라노 씨처럼, 이미 사회적으로 알려졌으며 자신의 성과에 대해 이미 일정한 평가를 내리고 있는 인물이라면 그 차이에 대한 긴장은 다층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었다. 사회적으로는 ‘어떤 집단’에게, ‘어떤 이미지’로, ‘얼마나’ 알려져 있는가(혹은 반대로 ‘어떤 집단에게 잊혀졌는가’라는 질문도 가능하다). 주인공 스스로는 ‘자신의 이미지’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가(혹은 타인이 인식하는 이미지와 자신이 설정하는 이미지 사이의 간극을 인정하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답을 하는 과정은 주인공과의 소통인 동시에 다큐멘터리의 구성적 측면에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다른 한 측면에서, 제작진들은 여성들의 ‘나이 경험’에 대해서 각별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개별 여성들은 계급, 성 정체성, 세대, 결혼 여부 등 여러 조건이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구체적인 조건 속에서 지배적인 생애 주기와 다양한 방식으로 경합하며 ‘나이 듦’을 경험한다. 그러나 <마마상>과 < 노라노 >의 두 주인공은 지배적인 여성의 생애 주기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것은 평생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도 혹은 나이와 무관하게 살아가는 것도 아닌, 의미화가 필요한 지점이 있었다. 그 두 여성의 삶은 젊은 몸이 쇠락하는 늙음도 아니고, 생식력을 잃어버리는 여성성의 쇠퇴도 아니며, 그리고 일할 수 있는 노동력의 상실만으로도 이해될 수 없는, 다른 ‘나이 듦’의 표현을 필요로 하는 삶이었다. 아마도 그것은 가부장제와 이성애 중심적인 사회에서 변칙적인 삶을 살고 있는 여성의 삶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였다. 특히 이성애 남성들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변칙적인 삶을 살아온 여성들의 ‘나이 경험’은 두 여성의 경제적 계급적 차이를 넘어서는 것으로 보일 정도로 유사한 점이 있었다. 성매매 여성과 패션 디자이너. 여성주의 활동가로서 이 두 여성의 삶이 만들어 놓은 여성의 ‘나이 듦’에 관한 질문에 답을 찾아보고 싶었다. 프로듀서로서 < 노라노 >라는 작업에 참여하면서 이러한 고민들을 할 수 있었던 것이 무엇보다 큰 의미로 다가온다. 물론 이러한 고민들은 다큐멘터리 <노라노>의 핵심적인 이야기라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러한 고민들을 하게 된 것은 현재 필자의 위치가 어느새 생물학적 ‘나이 듦’과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의 ‘나이 듦’을 의식하는 과정을 지나고 있기 때문일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은 <노라노>의 김성희 감독에게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이제 곧 <노라노>가 관객들을 만나게 된다. 감독의 바람처럼, 이 다큐멘터리 <노라노>가 많은 여성 관객들에게 규범적인 ‘노년’을 넘어, 자신의 ‘나이 듦’을 상상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가난한 독립 다큐멘터리스트에게 1월과 2월은 보릿고개다. 그나마 안정적인 수입원인 대학 강의료는 방학과 함께 사라지고, 계절 탓인지 영화 관련 아르바이트도 다소 뜸해지기 때문이다. 바닥을 드러낸 보릿고개 시기의 통장은 외풍으로 서늘하다. 그런데 2012년의 보릿고개는 서늘하다못해 다소 싸늘하다. 아무런 일감이 없는 것이다! 원인을 곰곰 따져보니 아무래도 내 위치의 변화 때문인 것 같다. 작년 < 종로의 기적 >을 개봉하며 얻게 된 ‘감독’이라는 직함 때문에 편하게 일을 맡기기엔 부담스러운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몇몇 사람들에게 다짜고짜 물어보았다. 혹시 예전에 하던 알바거리 없냐고. 역시나 돌아오는 대답들이 한결 같다. “어휴, 감독님께 어떻게 그런 알바를 시켜요?” 나는 겸손한 마음으로 일의 품격 따지지 않고 열심히 벌어서 정승 같이 쓸 수 있는데, 어느새 정승 나리처럼 일을 부탁하는 것조차 부담스런 사람이 된 것인가. 그렇다고 사람들마다 붙잡고 ‘저는 꽤 저렴한 사람이랍니다’라며 광고를 하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니 답답하다. 나와 함께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는 연분홍치마의 다른 감독들도 아마 비슷한 처지일 것이다. 이런 와중에 연분홍치마는 용산 참사에 관한 다큐멘터리 < 두 개의 문 >의 극장 개봉을 결정했다. 곧바로 우리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어마어마한 지출 항목들. 통장의 잔고가 줄어들수록 빚더미와 다크 써클만 늘어간다. 늘 개탄스러워하던 영화계의 임금 체불과 외상 거래를 우리 스스로가 자행하며 한숨은 더더욱 깊어진다. 고개를 넘으면 또 고개가 있으니, 이 정도면 참으로 혹독한 보릿고개가 아닐 수 없다. 이쯤되면 ‘대체 우리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러고 있나?’라는 회한이 밀려온다. 춥고 배고픈데 수중에 돈은 없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그러다보니 꿈꾸게 된다. ‘내가 만든 다큐로 수익을 창출해 생계를 해결하고 차기작 제작비를 확보’하는 지당한 과정을. 그러나, 꿈은 이루어지긴 개뿔, 전설이나 신화처럼 아득하기만 하다. 대체 생존과 다큐 제작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기나 할까. 결국 안정적인 제작 예산 확보가 가장 시급할 텐데, 비빌 언덕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영화진흥위원회의 독립영화 제작 지원 정도다. 하지만 정권의 눈치를 보셔야 하는 그 분들께 무언가 기대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정부를 비판하는 입장의 다큐멘터리라면 더더욱. 영화진흥위원회가 운영하는 독립영화전용관에서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담은 이 한동안 상영되지 못했던 사건은, 정부를 향해 날을 세우는 독립영화에 대한 그들의 입장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기회였다. 게다가 이후 새롭게 들어설 정권이 더 나으리란 보장도 없으니, 정부 지원 덕분에 보릿고개를 넘기는 건 로또 맞을 확률과 비슷할 수도 있겠다. 물론 각종 영상 관련 단체와 영화제 등에서도 다양한 제작 지원 사업을 시행하고 있지만, 이런 경우일수록 주최측이 요구하는 조건이 더욱 까다로워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게다가 요즘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피칭’은 멋진 그림이 필요한 주최측의 장단에 맞춰 재주만 부리다 팽 당하게 되는 야속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래, 어디 남의 돈으로 먹고 사는 게 쉬운 일이겠냐만은, 참으로 구차한 삶이다. 그래서 나와 연분홍치마는 2012년의 모토를 ‘자력갱생’으로 정했다. 비록 정부 비판적인 다큐이지만, 그래서 무슨 불이익을 당할 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 두 개의 문 >의 개봉에 총력을 기울일 참이다. 개봉 과정을 통해 용산참사와 공권력에 대한 우리의 고민을 더 많은 대중과 함께 나누며, 동시에 경제적 자립을 도모하는 기회를 만들어내고 싶다. 물론 이미 많은 독립 다큐인들이 앞서 걸었던 길이다. 실패담은 차고 넘친다. 예산 규모는 너무나 초라하여 출발부터 불리하다. 쓸 돈은 없으니 마케팅에는 결국 몸을 써야할 것이다. 하지만 결국 자력갱생, 이게 가장 확실한 방법 같다. 되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보자. 시도때도 없이 엄습하는 가파른 보릿고개, 이제는 수월하게 넘고픈 이 뜨거운 욕망을 승화시켜 그럴듯한 자력갱생의 사례를 만들어보고 싶다. 하지만 도박 같은 개봉, 어찌될 지 모르는 일이니 보험 삼아 한 마디만 덧붙여야겠다. “여러분, 저는 꽤 저렴한 사람이랍니다. 무슨 일이든 일단 맡겨만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