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판 샤이닝스타:새로운 루나퀸의 탄생!
- 감독
- 박일호, 정지훈
- 제작년도
- 2019
- 출연
- 정혜원, 이명호, 박리나, 이지현, 김은아, 김새해, 엄상현, 홍소영, 신용우, 조한아름
※ 이 글에서는 되도록 < 너의 이름은. >의 스포일을 하지 않고자 신경 썼으나, 작품에 대한 정보를 ‘전혀’ 알고 싶지 않은 사람은 주의하기 바란다. 첫 단락 “‘세카이계’라는 용어”에는 <너의 이름은.> 관련 내용이 전혀 없고, 그다음 단락에서부터 나오기 시작한다. < 너의 이름은. > 한국판 메인 포스터 / <너의 이름은.> 한국판 티저 포스터 ■ ‘세카이계’라는 용어 일본에는 ‘세카이계(セカイ系)’라는 용어가 있다. ‘세카이(セカイ)’는 ‘세계(世界)’를 뜻하는 단어를 일본어의 가타카나로 표기한 것이다. 일본에서 2000년대(00년대, 소위 ‘제로년대’라고 불린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오타쿠 문화에 관한 빈번한 논의의 와중에 자주 사용되었던 용어이다. 한국에도 번역판이 출간된 「세카이계란 무엇인가: 포스트 에바의 오타쿠 역사」(마에지마 사토시 저/2010년 첫 출간, 2014년 문고판 출간, 2016년 한국 번역판 출간/주재명·김현아 번역)에서는, 이 용어의 정의가 불명확하지만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은 요소를 띤 작품을 느슨하게 가리킨다는 식으로 설명되어 있다. - 소년과 소녀의 연애가 세계의 운명과 직결한다. - 소녀만 싸우고 소년은 전장에서 배제된다. - 사회에 대한 묘사가 없다. (「세카이계란 무엇인가」 한국어판에서 인용) 그리고 그 대표작으로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 < 별의 목소리 >, 타카하시 신의 만화 < 최종병기 그녀 >, 아키야마 미즈히토의 라이트노벨 「이리야의 하늘, UFO의 여름」을 들었다. < 별의 목소리 > < 최종병기 그녀 > 「이리야의 하늘, UFO의 여름」 하지만 매우 곤란하게도 이 ‘세카이계 대표작’ 세 작품은 세카이계의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 별의 목소리 >에서는 소년과 소녀의 연애가 세계의 운명과 직결되지 않고, < 최종병기 그녀 >에서는 주인공 소년도 전쟁에 휘말리며, 「이리야의 하늘, UFO의 여름」에서는 등장인물들의 생활을 에워싸고 있는 군대라는 사회적 존재에 대한 묘사가 상세히 나온다. 애초에 이 세 작품은 ‘세카이계’라는 말로 한데 묶어버리기에는 각기 너무나 다른 특징이 있다. (「세카이계란 무엇인가」 한국어판에서 인용) 그래서 세카이계는, 일종의 유행어일 뿐 실체가 없는 용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1995년 TV 방영 이후 1990년대 일본 오타쿠 문화를 규정짓는 작품이 되어버린 애니메이션 < 신세기 에반게리온 > ‘이후’(포스트; post)에 등장한, 어떤 하나의 흐름에 속한다고 일컬어져 온 작품들을 폭넓게 지칭하는 단어로 편리하게 사용되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대략적인 경향에 대한 설명은 존재하는데, 그것은 앞선 「세카이계란 무엇인가」에서 지적한 세 가지 요소이기도 하고, 혹은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과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의 저자 아즈마 히로키가 주도하여 기획한 비평 무크지 「미소녀게임의 임계점」에 정의되어 있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기도 하다. 주인공(나)과 히로인(너)을 중심으로 한 작은 관계성(너와 나)의 문제가, 구체적인 중간항을 사이에 두지 않고 ‘세계의 위기’, ‘이 세상의 마지막’ 등과 같은 추상적인 거대한 문제와 직결하는 작품군.― 「미소녀게임의 임계점」 (「세카이계란 무엇인가」 한국어판에서 인용) 말하자면 배후에 어떤 명확한 (혹은 ‘명확해 보이는’) 세계관이나 설정이 처음부터 존재하거나, 적어도 제작 도중에 도입되었던 작품들, 즉 <기동전사 건담> 같은 애니메이션이 대표적일 것이다. 그런 고전적인 작품들과는 달리 세카이계 작품은 ‘자의식’을 그려내는 부분에 더 중점을 두었다고 설명되는 경우가 많다. 마치 < 신세기 에반게리온 >이 중간 24화까지는 ‘마치 어떤 숨겨진 설정이 있는 것처럼’ 고전적으로 스토리를 그려내는 듯 보였으나, TV판 마지막에 느닷없이 수수께끼를 전혀 설명하지 않은 채 등장인물의 ‘내면’을 그리는 것만으로 완결된 것과도 비슷하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세카이계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에지마 사토시는 이렇게 비유했는데 정말 수긍이 가는 표현이라고 생각하므로 인용해보겠다. 추리소설로 비유하면, 탐정이 갑자기 수수께끼 풀기를 내팽개치고 피해자의 멘탈 케어를 시작하더니 “밀실 트릭은 풀 수 없지만, 피해자가 건강해졌으니 됐죠?” 이렇게 말한 것과 같은 꼴이니, 폭풍같은 비난이 일어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세카이계란 무엇인가」 한국어판에서 인용) 말하자면 스토리 그 자체나 작품에 담긴 ‘설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인공(주로 10대 소년)의 ‘자의식’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카이계란 무엇인가」에는 ‘세카이계의 시조’로서 < 신세기 에반게리온 >만이 아니라 PC용 어덜트 게임인 ‘시즈쿠’, 라이트노벨인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 시리즈도 손꼽고 있다. 물론 < 별의 목소리 > < 최종병기 그녀 > 「이리야의 하늘, UFO의 여름」도 10대 소년의 자의식에 초점을 맞추는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작품들이 오직 인물의 내면이나 자의식을 그려내기 위한 내용인 것만도 아니고, 또 앞에서도 인용했듯이 이런 ‘세카이계’ 작품들이 전부 동일한 성격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제각기 전부 다른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떤 하나로 묶어버리기가 곤란한 측면이 있다. 바로 그래서 ‘세카이계란 용어에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가 힘들지 않은가’, ‘세카이계란 말에서 당초 의도하던 바와는 달리 변질되어 버렸다’는 식의 말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것은 예를 들어 ‘오타쿠’라든지 ‘사이버펑크’ 같은 용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차피 새롭게 정의되기 시작한 용어는 그 역사가 짧으면 짧을수록 ‘아직 논의되고 있는 도중’이기 때문에 모든 이들이 그 정의에 쉽게 동의하기는 어렵기 마련이다. ‘세카이계’는 그중에서도 지극히 짧은 역사(기껏해야 만들어진지 15년,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때로부터 따지면 겨우 10년 정도) 밖에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아직도 ‘논의 중인 단어’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 비평적으로 이 단어 및 이 단어가 가리키는 대상에 대해 연구하고자 하고 있는 서적도 일본에 겨우 몇 권 정도 나와 있을 뿐이니 당연한 상황이기도 하다. 90년대의 아이콘 < 신세기 에반게리온 >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명확한 정의가 존재하지 않으니까’ 무시해도 되는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어쨌거나 일본 애니메이션을 설명할 때에, ‘70년대 야마토, 80년대 건담, 90년대 에반게리온’이라고 각 시대별 대표작을 나열한 다음에 보통 이야기되는 것이 ‘그런데 2000년대 이후로는 대표작이 없다’인데, 거기에서 ‘2000년대는 어떤 하나의 대표작이 아니라 세카이계가 대표적 장르가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참고로, 세카이계가 유행했던 제로(00)년대 이후의 시대, 즉 2010년대에는 어떤 경향성이 존재하는가에 관해 마에지마 사토시는, 2010년대에는 심지어 장르조차도 아니고 니코니코동화(일본의 동영상 투고 사이트)에서 유래한 캐릭터 ‘하츠네 미쿠’를 비롯한 소위 ‘2차 창작’이나, 혹은 온라인게임이라든지 라인 메신저와 같은, ‘커뮤니케이션 그 자체’가 유행한 것 아니겠는가 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애니메이션계에서 각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을 ‘70년대 야마토, 80년대 건담, 90년대 에반게리온’이라고 예시하고, 2000년대에는 “특정 작품을 대표작으로 손꼽기보다는 ‘라이트노벨 원작’이라거나 ‘세카이계’라는 식으로 ‘장르’ 자체가 대표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식의 이야기가 많았는데, 그나마도 201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작품은 물론이고 어떤 장르 자체가 붐이라기보다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행위, 혹은 양식 자체가 붐이었다고 해야 하는 것 아니겠냐는 지적인 것이다. 사실 이것은 그리 엉뚱한 주장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살펴보자면, 미술에 있어서의 ‘아르누보’라든지 영화에 있어서 ‘누벨바그’도 마찬가지로 어떤 특정한 경향성을 통틀어서 설명하는 용어가 아니라는 점과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이다. 예를 들어 지금 진행 중인 ‘알폰스 무하: 모던 그래픽 디자인의 선구자 전’을 공동 주최한 체코 알폰스 무하 재단의 사토 토모코 큐레이터도 그런 말을 한 바 있다. 말하자면 ‘아르누보’라는 것은 어떤 특정한 주의 주장이나 이론적 바탕을 가진 ‘예술 운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그 당대에 유행처럼 번졌던 하나의 스타일, 몇몇 작가들의 작풍을 가리키는 용어일 뿐이지 지금도 어떤 확정된 정의가 학계에 정립되어 있지는 않다고 언급했다. 그것은 ‘아르누보’의 의미가 인상파라든지 사실주의 같은 용어와는 달리 그냥 ‘새로운 예술’이라는 의미라는 점, ‘누벨바그’ 역시도 영어로는 ‘New Wave’, 즉 그 당시 영화계에 있어서 새로운 물결을 형성했던 영화 운동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점을 생각해보아도 알 수 있다. 마치 ‘오타쿠’나 ‘세카이계’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일본 서브컬처계에서의 상황과도 유사한데, 물론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아르누보든 누벨바그든 오타쿠든 세카이계든, 이 용어가 탄생한 지 기껏해야 수십 년, 백 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니 다른 ‘클래식’한 학문적 용어만큼 학계에서의 논의가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이다. 이런 용어들에 대해서는 예를 들어 “만들어졌던 당초에는 주로 이런 의미로 사용되었다”라든지 “이러이러한 비평가들이 그 단어에 관해서 이러이러하게 말했다”, 혹은 “맨 처음 그 단어를 만들어내었던/유행시켰던 사람은 실은 이런 의미로 사용하였다”식의 논의만이 가능할 뿐이지, 학문적인 어떤 정립이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말이다. 또 세상 모든 언어에 있어서 공통적인, 매우 당연한 사실이겠지만, 어떤 단어에 대해 항상 그 단어를 처음 만든 사람이 의도한 바대로 단어가 유포되는 것은 아니므로, ‘맨 처음 만들었던 사람의 의도’에 대해 탐구하는 것은 역사적인 의의는 있을지언정 거기에서 그 단어를 모두가 ‘바로 그 의미’로만 사용해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런 ‘비교적 근래에 유행한 용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이런저런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단계일 뿐이고 어떤 확정적, 이론적인 공통 의견이 구축되어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말이다. 세카이계란 단어 자체도, 「세카이계란 무엇인가」에도 설명되어 있지만 2002년 말에 인터넷의 어떤 이가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던 용어이고, 필자가 일본의 평론가 아즈마 히로키를 만났던 2003년 초까지만 해도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일본의 비평계에서 이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2004년에 접어든 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2016년 지금 돌이켜볼 때 겨우 10년 조금 더 지난 용어라는 말이다. 2016년 10월에 「세카이계란 무엇인가」 한국어판이 출간되었을 때 “세카이계 유행은 이미 흘러가 버렸는데 인제 와서 출간되다니 너무 늦었다”는 식의 말도 나왔는데, 애시당초 이 용어 자체가 ‘겨우 10년 전’에 만들어졌는데 그에 대한 비평서의 외국어판 출간이 이제 되었다는 것을 ‘너무 늦었다’고 말한다는 것은 조금 이상한 일이다. 물론 ‘당대 비평’이라는 것도 중요하겠으나, 본래 비평은 그런 ‘유행’이 지나간 다음에야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유행’으로서의 ‘세카이계’는 이미 흘러가 버렸다고 해야겠으나, 세카이계가 2000년대 일본의 애니메이션, 게임, 라이트노벨 등 ‘서브컬처계’에 있어서 어떤 의미였는지, 그리고 이후의 작품들(즉 현재 시점의 작품들)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90년대 이전 작품들로부터 어떤 유전자를 이어받았는지 등 ‘세카이계 비평’은 2010년대에 시작되는 것이 자연스럽고, 2016년인 현재 시점에도 일본에 있어 ‘외국’인 한국은 말할 나위도 없고 일본 국내에서도 의미를 갖는 연구 주제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카이계란 무엇인가」란 책이 일본에서 2010년에 첫 출간된 이후, 2014년에 문고판으로 다시 나온 것이 아니겠는가. ‘2010년대에는 무의미한 연구 테마’였다면 2010년도의 첫 출간은 몰라도 2014년도의 문고판은 출간되지 않았을 테니까.) 즉 ‘세카이계’는 ‘1990년대로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문화로서, 2000년대 일본 서브컬처계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가졌던 유행’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 문화 스타일이고, 지금 시점에서 2010년대를 ‘총괄’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는 표현이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된다. 비평 분야에서는 「세카이계란 무엇인가」가 그 하나의 시도인 것이고(일본에서도 ‘세카이계’에 관한 연구나 비평에 있어서 주된 참고자료가 바로 「세카이계란 무엇인가」이다. 아즈마 히로키를 제외하면 세카이계를 비평한 평론가가 일본에도 그다지 많지 않기도 하지만, 본격적인 연구서로서 이 책만큼 넓고 깊게 소개한 평론이 드물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 작품으로서는 바로 이 < 너의 이름은. >에 대해서 ‘세카이계의 총괄’이라는 감상이 일본에서는 개봉 초기부터 이어졌다. < 별의 목소리 > ■ < 너의 이름은. >과 세카이계 < 너의 이름은. >은 분명히 ‘세카이계의 총괄’, ‘세카이계의 종점’, ‘세카이계로부터의 졸업’이란 평가를 받을 만한 내용이다. 작품이 국내에 막 개봉된 시점이니 자세한 내용 설명은 하지 않겠으나, 직접 관람을 하고 나면 이 작품의 줄거리에서 전형적인 ‘세카이계’와의 관련성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신카이 마코토야말로 초기부터 ‘세카이계의 기수’라는 식으로 설명되곤 했다. ‘세카이계’라는 단어 자체를 설명할 때에, 항상 따라붙는 것이 < 별의 목소리 >의 첫 구절이다. “세계(세카이), 란 말이 있다. 나는 중학교 때까지, 세계란 것은 휴대전화의 전파가 닿는 곳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해왔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내 휴대전화는 아무한테도 닿지 않는다.” (< 별의 목소리 > 대사에서 인용·번역) 세카이계를 ‘소년과 소녀의 연애가, 중간 과정을 거치지 않고 세계의 운명을 좌우하는 문제로 바로 직결된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관점에서, < 별의 목소리 >는 (앞서 언급했듯이 약간의 차이점은 존재할지언정) 분명히 ‘세카이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 너의 이름은. >의 경우, 종전과 같은 세카이계 작품인가 하는 질문에 관해서 대부분의 관객은 확답을 주저하는 것처럼 보인다. 굳이 말하자면 ‘세카이계를 바탕에 두고 있지만 새롭게 다시 만들어낸 작품’이라는 말이다. 그것은 일본의 영화사 연구자 와타나베 다이스케(「이미지의 진행형: 소셜 시대의 영화와 영상문화」 저자)가 일본의 인터넷 미디어 「리얼 사운드」에 기고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신카이의 애니메이션 작품을 논할 때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키워드가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세카이계’, 또 한 가지는 ‘미소녀게임’입니다. 나중에 기술하겠지만 이 두 가지는 상호 연관되어 있고, 소위 ‘제로년대(2000년대)’의 오타쿠 계열 컬처의 본질을 탐구하는 데에 있어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즉 신카이 마코토라는 애니메이션 작가의 독창성, 신선함을 이해하기 위해 정말로 중요한 점은 그가 제로년대라는 고유의 시대, 그리고 애니메이션 이외의 오타쿠 계열 콘텐츠라는 고유의 영역이 서로 교차되는 지점에서 출현한 ‘이레귤러(변칙)’적인 재능의 소유자이고, 그렇기 때문에 예를 들어 지브리(미야자키 하야오, 타카하타 이사오)로부터 오시이 마모루, 안노 히데아키를 거쳐 호소다 마모루에 이르는 ‘2차대전 후 일본 애니메이션사(史)의 정통적 문맥이나 유산’을 사실은 거의 공유하지 않는, 말하자면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돌연변이’적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바로 그렇기에 이번 < 너의 이름은. >의 ‘역사적’ 대히트는 한편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사(史)에 있어 커다란 ‘절단’이 될 수도 있는 것이고, (하략) (와타나베 다이스케 「<너의 이름은.>의 대히트는 어째서 ‘사건’인가? 세카이계와 미소녀게임의 문맥에 의거한 독해」(2016.09.08)에서 인용·번역) 이처럼 신카이 마코토를 호소다 마모루 등과 한 묶음으로 ‘포스트 미야자키 하야오’, ‘지브리의 후계자’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일본의 애니메이션 비평계에서 몇 번 나온 이야기인데, 이번 < 너의 이름은. >을 통해 그것은 더더욱 강조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미야자키 하야오나 오시이 마모루, 그리고 최근의 호소다 마모루에 이르기까지의 애니메이션 크리에이터들은 기본적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흐름’ 속에서 나타난 존재라는 것이다. 그들은 전원 종래의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 속에서 이력을 쌓아왔고 애니메이터로서의 경험을 갖고 있다. (호소다 마모루의 경우에도, 대학 졸업 이후 스튜디오 지브리 입사 시험을 치기도 했고 첫 직장으로 입사한 것도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최고 정통 애니메이션 업체라고 할 수 있는 토에이애니메이션이었다.) 하지만 신카이 마코토는 게임 업계 출신이고(첫 직장이 ‘Ys(이스)’ 시리즈, ‘영웅전설’ 시리즈로 유명한 니혼팔콤이었다), 독립한 이후에도 초기부터 미소녀게임의 오프닝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면서 경력을 쌓았다. 그런 의미에서 와타나베 다이스케는 <너의 이름은.>을 보고 난 감상으로서 “이것은 ‘세카이계와 미소녀게임 등 본인의 작가적 출신지에 자각적으로 회귀’한 것임과 동시에 ‘그 이후의 시대의 변화에도 제대로 적응하고 있는’ 작품”(앞선 글에서 인용·번역)이라고 말한 것이다. < 너의 이름은. >에서 몸이 바뀌는 소년 소녀 즉, < 너의 이름은. >의 스토리 구조와 영상 그 자체는 지극히 기존의 신카이 마코토스러움, 즉 세카이계나 미소녀게임적인 일면을 유지하고 있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몸이 바뀐다거나,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타임 트래블’적 내용, 혹은 기억상실이란 모티프는 일본에서 오랫동안 이어진 소위 ‘주브나일’(청소년 대상의 소설, 주로 SF나 판타지 등의 장르문학이 많다. 원래 서구권에서 시작된 청소년 문학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고, 최근 미국에서 유행한 ‘영어덜트픽션’ 장르와도 비교해볼 수 있는 장르이다.) 장르의 전형적인 내용이다. 물론 세카이계 작품이나 미소녀게임에서도 자주 볼 수 있었던 설정이다. 당연히 이 각각은, 세카이계에 속하지 않는 장르에서도 흔한 설정이긴 하다. 하지만 ‘소년 소녀의 몸이 바뀌면서 동시에 타임 트래블도 하면서 기억상실도 하게 되는’ 내용은 의외로 세카이계 작품이나, 혹은 게임이 아니고서는 아주 일반적으로 흔하게 사용되는 것은 아니기도 하다. 반대로 일본 만화나 게임을 쭉 접해온 계층에게는 이것들이 거의 ‘클리셰’인 셈이고, 자세한 설명이나 소개 없이도 즉각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요소가 되고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기존에는 신카이 팬들의 대다수가 ‘10대~30대의 남성 오타쿠’(와타나베 다이스케의 앞선 글)였고 그것은 세카이계와 미소녀게임에 원점을 둔 신카이 감독으로서는 자연스러운 결과였는데, 이번 < 너의 이름은. >은 특히 10대 여성 관객(세카이계나 미소녀게임에 대해 기본적으로는 전혀 모르는)을 중심으로 대히트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어째서일까. 보통 이 정도의 메이저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일본에서도 ‘패밀리 관객층’을 향하지 않고서는 어려운 법이고, 호소다 마모루가 < 늑대 아이 > 등을 통해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포스트 지브리’로 주목받았던 것을 생각해보더라도 <너의 이름은.>의 이런 독특한 지향성은 특이하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이에 관한 와타나베 다이스케의 지적은 매우 시사적이다. 약간 길지만 인용해보겠다. 분명히 < 너의 이름은. >은, 몇 번이고 지적했듯이 스토리적으로나 연출적으로나 지브리나 호소다 애니메이션처럼 ‘국민적 애니메이션’, ‘패밀리 대상’을 명확하게 지향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또한 과거 우리들 젊은 남성 관객이 지지했던 세카이계적 세계관이나 설정을 다분히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너의 이름은.>을 보고 나서 나는 결정적인 위화감도 느꼈습니다.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세카이계적이면서도, 하지만 어딘가 세카이계와는 다릅니다. 그것은 아마도, 주인공 타키가 ‘세카이계적 나약한 소년’(중략)과는 달리, 그야말로 ‘포스트 제로년대적’으로 주체성을 갖고 행동하며 운명을 바꾸고자 하는 ‘현실(리얼)에 충실한’ 캐릭터상으로 바뀌어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러한 변화는 근래의 오타쿠 계열 콘텐츠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략) 구 <에반게리온>의 주인공 이카리 신지와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파>(2009년) 신지의 ‘캐릭터 체인지’도 완벽하게 동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렇기에 <너의 이름은.>은 틀림없는 세카이계적 애니메이션이면서도 어딘가 과거에 봤던 작품들과는 다른, ‘세카이계라고 할 수 없는 애니메이션’이기도 한 것입니다. 아무튼간에 신카이는 이러한 ‘마이너 체인지’(*역주:크지 않은, 소소한 수준에서의 세부 수정)를 세세하게 쌓아올림으로써 이번에, ‘패밀리 대상’으로 만들지 않고서도 ‘국민적’인 규모의 대히트작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 <너의 이름은.>이 갖는 획기성이 있는 것입니다. <너의 이름은.>은 과거 미야자키의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1984) 처럼, 혹은 안노의 < 신세기 에반게리온 >처럼, 일본 애니메이션사(史)의 무언가를 확실하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무언가의 계승이라기보다도, 오히려 결정적인 ‘단절’입니다.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돌연변이’ 신카이가 만든 신작은, 글자 그대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완전한 ‘돌연변이적’ 걸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이 ‘돌연변이’=예외가 ‘오리진(origin)’=기원이 되어, 새로운 일본 애니메이션의 역사가 앞으로 시작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와타나베 다이스케 「<너의 이름은.>의 대히트는 어째서 ‘사건’인가? 세카이계와 미소녀게임의 문맥에 의거한 독해」(2016.09.08)에서 인용·번역) 바로 이런 식의 평론이 2016년 8월 26일 < 너의 이름은. > 개봉 이후 이어졌던 것이다. (위 평론도 개봉일로부터 보름도 채 안 되어 게재되었다. 아무리 인터넷 매체라고 하더라도, 필자가 집필한 것은 개봉일 거의 직후였을 것임을 알 수 있다.) 기존 신카이 감독 작품의 주인공들(특히 남자주인공들)이 기본적으로 ‘오타쿠’적인 성격(외톨이이고 자기완결되어 있는 인격체)이었던 것과 비교할 때, <너의 이름은.>의 주인공들은 기본적으로 현실 속을 살아가고 있는, 사회적인 개체로 묘사되어 있다. 또한 주인공만이 아니라 다른 인물들에 대한 묘사도, 기존 작품에서는 ‘전형적인 일본 만화적 캐릭터’였던 것과 비교해볼 때 차이가 크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작품에선 심지어 ‘정치’(정치적이란 의미에서의 ‘정치’가 아니라, 말뜻 그대로의 ‘정치=사회나 조직에서 상호 간의 이해 조정’)까지도 그려져 있는 것이다. 즉 외계인이라든지 ‘닫혀진 세계’ 속에서의 ‘오타쿠적 세카이(세계)’에서 벗어난, 그야말로 ‘포스트 에반게리온’으로서 ‘제로년대의 시작을 알렸던 세카이계의 기수가 세카이계에 종지부를 찍은’ 작품으로서 <너의 이름은.>은 초기부터 (대중적인 히트와는 별개로) 일본의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놀라움을 안겼다. 그 부분을 한국에서도 확실하게 알리고 싶어서 필자는 이 글을 쓰려고 생각했던 것이다. ■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와 < 너의 이름은. > 또 한 가지, 필자가 < 너의 이름은. >에 관해서 이 글을 쓰고자 생각한 두 번째 이유는 바로 그 작법론에 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너의 이름은.>의 극장용 팸플릿 제2탄(2016년 12월 9일/토호 영상사업부 발행)에 수록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직접 풀어낸, 영화 <너의 이름은.>」이란 글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 글은 신카이 감독이 11월 5일 나가노 현의 도서관에서 개최한 강연 「<너의 이름은.>의 이야기 ~현대 이야기의 역할~」을 글로 옮긴 것인데,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스토리텔링 작법에 관해 스스로의 방법론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이야기를 만들 때에는 스토리의 콘셉트를 몇 줄 정도로 표현하는 ‘로그라인’이란 것을 맨 처음 생각하는 법입니다만, < 너의 이름은. >의 로그라인은 ‘꿈에서 만난 소년과 소녀가, 나중에 결국 현실에서도 만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소년과 소녀가 만남을 가지고, 한때 헤어지기도 하지만 또다시 만나게 된다는. 그런 보이 미츠 걸(Boy Meets Girl)의 이야기는 보편적인 구조로서, 강력한 스토리라인을 가진 로맨틱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너의 이름은.> 극장용 팸플릿 vol.2 Collection of interview」에서 인용·번역) 여기에서 신카이 감독이 말한 ‘로그라인(log-line)’이나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에 관해서는, 일본의 평론가이자 만화 스토리작가인 오쓰카 에이지가 쓴 스토리텔링 작법서 「스토리 메이커」와 「캐릭터 메이커」 그리고 「이야기 체조」 「이야기의 명제」(한국어판 2013~2015년/북바이북 발행) 등에 자세히 실려 있다. 우선 오쓰카 에이지는 로그라인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처럼 플롯을 한 줄로 요약하는 것을 프레미스 혹은 로그라인이라고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부르는데, 좋은 시나리오는 명확한 로그라인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식으로 보통 일컫습니다. 어째서 그런가 하면 로그라인은 시나리오의 근본을 규정하기 때문인데, 그 정리 방식에 따라 플롯이 펼쳐져 갈 방향이나 작품의 테마가 크게 바뀌는 것입니다. (「스토리 메이커」에서 인용) 그렇다고는 하나 이 워크숍이, “우정을 테마로 삼아 스토리를 만들어봐라”는 식으로 단순한 것은 아니다. 과거에 만화잡지 「소년 점프」 에서는 독자 앙케이트를 통해 선정된 ‘우정’, ‘노력’, ‘승리’라는 3가지 키워드를 테마로 삼아 작품을 만든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주인공이 목적을 향해 ‘노력’하고, ‘우정’의 도움을 얻어 ‘승리’한다”는 스토리를 지탱하는 원리 원칙일 뿐이다. 블라디미르 프로프식으로 말하자면 ‘캐릭터의 행위의 3연속’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는 지극히 단순화시킨 이야기의 구조임과 동시에, 구체적인 캐릭터 조형이나 스토리라인 만들기의 지침이기도 하다. 「소년 점프」의 이 3가지 키워드를 통해 유도되는 문장은, 영화 업계에서 ‘프레미스’라고 부르는 용어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유의어로 ‘로그라인’, ‘콘셉트’, 그리고 ‘테마’가 있는데, 시나리오 입문서에서도 실제 현장에서도 혼동되어 사용된다는 인상이다. 이런 식의 ‘정의’가 있기는 있는 듯하다. 프레미스, 테마, 콘셉트, 로그라인 등과 같은 용어는 보통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다. 보통은 중심이 되는 아이디어(착상)이나 토픽(사건), 2~3행으로 표현할 수 있는 스토리라인의 뼈대를 가리킨다. 그러나 혼동하기 쉽지만 ‘프레미스’와 ‘테마’는 스토리 속 깊은 곳에 있는,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란 의미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정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콘셉트’는 스토리의 중심이 되는 아이디어나 토픽을 의미하고, ‘로그라인’은 하나 혹은 두 문장으로 ‘콘셉트’의 요점을 표현한 것이라고 정하겠다. ‘프레미스’와 ‘테마’는 스토리의 내부 깊숙히 담겨진 메시지를 의미한다. (「이야기의 명제」에서 인용) 그다음,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의 구조에 대해서는 신카이 마코토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중략) 여기에는 사실 커다란 의미가 있는데, 경계를 넘어서 갔다가 돌아온다고 하는 것은 이야기의 기본입니다. 예를 들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도, 소녀가 이계(異界; 다른 세계)에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이죠. 경계를 넘어 다른 세계에 갔다가 돌아온 다음, 무언가가 약간 변화되어 있다는 것. 거기에서 제가 연상하는 것은 어린 시절 경험했던 담력 시험입니다. 담력 시험을 끝낸 다음에, 스스로가 무언가를 뛰어넘어서 강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있습니다. 갔다가 돌아올 때마다 사람은 변화하는 법이죠. < 너의 이름은. >은 그 모티프를 반복해서 집어넣음으로써 타키와 미츠하가 조금씩 성장해 갑니다. (중략) 사람이 태어난 다음에 처음 겪게 되는 놀이 ‘이나이 이나이 바아(엄마 없다 놀이)’도 말 그대로 갔다가 돌아오는 구조입니다. 눈앞에서 어머니가 사라짐으로써 다른 세계에 빠져든 것 같은 느낌을 받고, 다음 순간에 어머니 얼굴이 다시 나타나면서 현실로 돌아옵니다. 그때 이미 그 놀이를 한 아기의 내면에서는 무언가가 변화되어 있죠. 그것이 성장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만들고 있는 영화라는 존재의 구조 그 자체이기도 한데, 관객들은 어떤 꿈을 보기 위해서, 특별한 꿈의 계시를 얻기 위해 영화관에 가고, 변화되어서 돌아옵니다.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는 우리들의 생활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너의 이름은.> 극장용 팸플릿 vol.2 Collection of interview」에서 인용·번역) ‘이나이 이나이 바아’란 것은 일본에서 ‘엄마 없다’ 놀이를 지칭하는 명칭인데, 아이 앞에서 본인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추고 ‘없다 없다(이나이 이나이)’라고 말한 다음 ‘바아’라는 말과 함께 얼굴을 드러내어 아이한테 보여주는 행위이다. 영어권에서 말하는 ‘Peek-a-boo’이고, 한국에서는 ‘얼레리 까꿍’에 해당한다고 보면 되겠다. 이 ‘엄마 없다’ 놀이를 통해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를 설명하고 있는 점(「스토리 메이커」 참조),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을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의 전형적인 사례로서 예를 들고 있는 것도 오쓰카 에이지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너의 이름은.> 일본판 팸플릿 1편 / <너의 이름은.> 일본판 팸플릿 2편 제 1장 이야기의 기본 중 기본은 ‘갔다가 돌아오기’다 이야기의 문법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두 가지 있다고 생각해주십시오. 하나는 ‘결락된 것이 회복된다’는 패턴. 또 하나는 ‘갔다가 돌아온다’는 패턴입니다. 전자에 대해서는 다른 장에서 살펴보도록 하고, 이 장에서는 가장 대표적인 ‘이야기의 문법’인 ‘갔다가 돌아온다’에 관해 이해해두고자 합니다. ‘갔다가 돌아온다’는 구성이 이야기의 가장 기본적인 패턴이라는 점을 지적한 것은, 영화 「반지의 제왕」 원작으로 유명한 J.R.R. 톨킨 저 「반지의 제왕」의 번역자로 알려져 있는 아동문학자 고 세타 데이지입니다. 세타는 갔다가 돌아오는 구성을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라고도 불렀습니다만, 「반지의 제왕」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톨킨 작품 「호빗」의 본래 타이틀 「The Hobbit or There and Back Again」에서 이미 확인할 수 있다고 썼습니다. (중략) 톨킨의 대학 동료였던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에서도 주인공 소년과 소녀는 옷장 안에 있는 나니아국에 ‘갔다가 돌아오는’ 내용이 기본 줄거리입니다.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갔다가 돌아온다’는 패턴에 있어서, 주인공은 반드시 원래 있던 장소에 그저 돌아오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원래 있던 장소와는 다른 장소로 돌아가는 경우도 자주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갔다가 돌아온다고 하는 문법이 대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중략) 세타는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가 우선 “어린 아이들에게 있어서 발달 과정에 있는 그 두뇌와 감정에 따르는, 가장 받아들이기 쉬운 형태”라고 지적하고서, (중략)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경계선을 넘어 저쪽 편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경계선은 작중에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는 경우도 있는가 하면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경계선일 때도 있습니다. 구체적인 사례는 앞으로 계속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작품세계 안에 하나의 경계선이 있고, 그 선을 넘어 주인공이 ‘저쪽 편’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에 ‘이야기’의 가장 기본이 존재한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단순한 이야기의 한 형태라고 생각하면 틀림없습니다. (「스토리 메이커」에서 인용) 그런 의미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 갔다가 돌아온다고 하는 문법을 교묘하게 사용한 작품이 많은 것에도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에서는 터널 저쪽 편, 그리고 다리를 건넌 다음에 있는(물론 터널과 다리가 경계선이라는 점은 언급할 필요도 없겠다) 저쪽 편 세계의 여관에 치히로가 가는 것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또한 저쪽 편 세계에 간 후에도 하쿠를 구하기 위해 가오나시와 물 위를 달리는 열차를 타고 제니바가 있는 곳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스토리 메이커」에서 인용) 「스토리 메이커」(오쓰카 에이지/북바이북) / 「이야기의 명제」(오쓰카 에이지/북바이북) 사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법론이 오쓰카 에이지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은 필자의 상상만은 아니다. 실제로 필자는 과거, 오쓰카 에이지 본인에게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스토리 메이커」 등을 읽고서 작법론을 배웠다고 말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카이 마코토가 처음으로 오쓰카 에이지의 스토리텔링 이론을 도입했던 작품은, 실은 < 너의 이름은. >이 아니라 2011년도 작품 < 별을 쫓는 아이: 아가르타의 전설 >이었다. 그런데 이 작품에 대해서는, 국내에서나 일본에서나 검색만 조금 해보더라도 비판적인 관객 평가가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 이전까지 어느 쪽인가 하면 SF와 ‘세카이계’에 기반을 둔 작품이 많았던 신카이 마코토가, 갑자기 미야자키 하야오 + 스튜디오 지브리 풍의 ‘판타지’를 그렸다는 점, 게다가 그 내용에 있어서도 인물이나 스토리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신카이 감독 자신은 이 작품에 대해 ‘어느 정도 자각적으로’ 지브리 풍을 연상케 되는 내용으로 만들었다고 밝힌 바 있고, 또 오쓰카 에이지에게도 자신이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라는 작법론을 공부하고서 시나리오를 만들었다고 직접 전달했으니만큼, ‘일부러’ 그런 내용으로 만든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왜 갑자기 그때 작법론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 것일까? 우선, 신카이 감독 자신이 나름대로 그 시점에 작품적인 고민이 많았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2002년 < 별의 목소리 >(25분), 2004년 <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91분), 2007년 < 초속 5센티미터 >(63분)까지, 장편을 만들기 시작한 후로도 적은 수의 스태프만으로 만든 것 치고는 나름대로 빠른 속도로 작품을 제작하던 신카이 마코토가 4번째 장편인 < 별을 쫓는 아이 >(116분)는 2011년, 전작으로부터 4년 후에 발표한 것만 보더라도 알 수가 있다. 작품 제작에만도 2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다음이 다시 46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의 2013년 < 언어의 정원 >, 그리고 2016년도에 다시금 107분의 장편인 < 너의 이름은. >에 이르렀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본인도 여러 번 말하고 있듯이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창작론을 배경으로 갖고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초기에 만들었던 <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를 비롯한 단편 작품에서 화제를 모았고, 처음 만들었던 극장용 애니메이션 < 별의 목소리 >가 세계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게 되면서, 어떻게 보면 상당히 ‘갑작스럽게’ 작품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기 때문에 나름대로는 그런 ‘밑바탕’이 없다는 것에 대해 걱정을 하는 마음도 있었던 것이 아닐까 유추한다. 그런데 오쓰카 에이지는 일본에서 상당히 초기부터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을 호평했던 평론가였고, 그런 평론가가 작법 이론서를 여러 권 출판했으니 관심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스토리 메이커」를 비롯한 스토리텔링 이론서를 읽으면서 그 작법론에 수긍을 하고, 본격적으로 자신의 작품 속에 이론적 바탕을 도입하고자 시도했던 것이다. 하지만 < 별을 쫓는 아이 >의 내용은, 일본신화의 이자나기·이자나미 신화나 그리스로마 신화의 오르페우스와 아내 에우리디케 이야기 등, 그야말로 오쓰카 에이지가 「스토리 메이커」 등 작법서에서 여러 번 이야기했던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와 세계의 민담·신화를 거의 그대로 도입한 내용이었다. 판타지적인 스토리 역시도 앞서 「스토리 메이커」에서 예시되어 있는 「반지의 제왕」이나 「호빗」 「나니아 연대기」와의 연계성도 엿보이지 않는가. 말하자면 이 시점에 신카이 마코토는, ‘본인의 스토리텔링 능력에 불안감을 느끼고 그에 대한 보완책으로서 이론적 바탕을 공부하고자 노력’했고, 그에 따라 전 세계의 민담과 신화에서 가장 기본이 되어 있는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라는 기초 이론과 할리우드 영화 등에서 보편적인 ‘로그라인을 바탕으로 한 시나리오 작법’에 맞춰서 작품을 만들고자 시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 첫 번째 시도였다 보니, 아직 제대로 본인의 스타일로 제대로 ‘체화(體化)’시키지 못한 결과로서 그처럼 관객들의 비판을 받았던 것 아닌가 싶다. 그러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앞선 < 너의 이름은. > 팸플릿의 문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 이론에 확신을 갖고 있었고, 따라서 그 작법론을 금방 포기하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가 이번 <너의 이름은.>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너의 이름은.>은, 본인도 직접 언급하고 있듯이 작품 전체의 스토리 구조가 기본적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적인 구성이다. 거기에 < 별의 목소리 >로부터 이어져 온 세카이계로서의 콘셉트 역시도 (앞에서 기술했듯 그 내용에 있어서는 중요한 변화를 거치면서도) 계승하고 있다. 말하자면 본인의 지금까지의 작품 활동 전체가 녹아들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그냥 그대로 표출한 것이 아니라, < 별을 쫓는 아이 >로부터 한발 더 나아간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로, 기존의 세카이계에 종지부를 찍는 듯한 또 다른 작품 세계로, 새롭게 완성해낸 것이 바로 <너의 이름은.>이라고 하면 될 것 같다. < 너의 이름은. > 한국판 런칭포스터 ■신카이 마코토 감독과 ‘1인제작 애니메이션’이라는 신화 마지막으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여전히 소위 ‘1인 제작 애니메이션’이란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소개되고 있는 국내의 현실에 대해 몇 가지만 첨언하고 싶다. 필자는 지금까지 신카이 마코토 감독과 두 번 인터뷰를 했는데, 그 첫 번째는 「콘텐츠 코리아」 2001년 9월호에 기고하기 위해 행했던 것이었다. 이 시점은 그가 < 별의 목소리 >(2002년 2월 2일 개봉)를 완성하기도 전이었는데, 이후 오쓰카 에이지나 아즈마 히로키 등의 평론가와, 일본의 각종 애니메이션 잡지와 매스컴이 신카이 마코토를 주목하면서 국내에도 ‘1인 애니메이션’이라는 형태에 대해 초기부터 크게 주목받았다. 무엇보다도 필자부터가 당시 2001년 9월호에서 신카이 마코토에 대해 가장 먼저 설명한 문장이 ‘배경 음악과 여주인공 성우를 제외한 나머지를 완전히 혼자서 만들어낸 4분 46초짜리 단편 애니메이션’의 제작자라는 것이었다. 지금은 실사 영화 < 부산행 >으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크리에이터가 된 연상호 감독이, 당시 < 지옥 > 등의 애니메이션 작품을 만들면서 신카이 마코토의 제작 방식에 크게 관심을 가졌던 것이 기억난다. (그때 당시 「CG랜드」 등의 잡지나 서울애니메이션센터 등을 통해 연상호 감독과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신카이 마코토가 1인 제작으로 4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 <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를 만들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25분짜리 < 별의 목소리 >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계약’을 해서 ‘소속 회사’(지금도 소속되어 있는 주식회사 코믹스웨이브)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요즘 식으로 알기 쉽게 말하자면 ‘아이돌 지망생이 프로덕션과 계약해서 연습생으로 활동하며 데뷔를 목표’로 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는 말이다. 물론 신카이 감독의 경우 이미 회사원으로서의 경력이 있었고, 소속사에서 그의 단편 작품을 보고 계약했던 것이니만큼 소속사가 직접적인 경제적 지원금(생활비나 교육비 등)을 주었다기보다는 그에게 작업 의뢰를 받아주면서 일이 끊기지 않도록 했던 것에 가까웠다. 그렇게 보면 그 당시 신카이 감독의 경우 소속사를 굳이 둘 필요 없이 프리랜서로 일했어도 상관이 없었던 것인데, 신카이 감독은 CG 관련 수주를 받아 프리랜서 직업인으로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자신만의 오리지널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으므로, 굳이 소속사에 소속되는 것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바로 그런 점에서 당시 한국의 독립애니메이션 계열과는 조금 사정이 달랐고, 직접적인 참고가 되기 어려웠던 것이다. 예를 들어 신카이 감독과 같은 길을 걸으려면, 우선 소위 작가주의적인 지향성을 버릴 수도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는 말이니까. 물론 이 말은 작가주의적 지향성을 버려야만 신카이 감독처럼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신카이 감독은 장편을 만들면서 쭉 본인의 작가적 지향성을 놓지 않아 왔고,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해왔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미소녀게임 오프닝 애니메이션이라든지 기업의 CF애니메이션도 수주받았고, 소속사와 계약하는 등 (그것은 즉, 작가 본인의 수입을 소속사와 분할해서 나눠 가져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소속사와 계약하고 매니저를 두는 연예인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한국식 상황에서 보자면 지극히 상업주의적이라고 여겨지게 될 시스템에 속하는 것을 신카이 감독은 선택했다는 말이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그런 상황을 쭉 지켜보아 온 입장에서, 신카이 감독과 같은 선택을 하지 않으면서 신카이 감독과 같은 길을 걷기는 어렵지 않나 하는 실감이 드는 일도 많았기에, 그 당시 한국의 독립애니메이션 쪽 상황에서 ‘한국의 신카이 감독’의 등장을 바라기는 쉽지 않았다고 생각했었다. 한국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다른 길을 찾는 크리에이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실제로 연상호 감독은 실사영화와 애니메이션 양쪽 분야에서 새로운 시도를 이어나가며 그런 길을 찾아낸 것 같아,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더더욱 높이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지적해왔던 바이지만, 한국에서는 일본의 만화나 애니메이션 업계의 상황을, 갖가지 소식과 뉴스를 통해 바로바로 접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잘 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실제로 많다. 하지만 일본과 한국은 기본적인 시스템도 거쳐 온 역사도 업계의 온갖 상황도 전부 다 다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이해가 없이 표면적인 뉴스만으로는 알 수 없는 부분도 많다. 심지어는 직접 일본 업체로부터 수주를 받아 일러스트 작업을 하거나 만화 작품을 연재하는 경험을 갖고서도, 일본 업계에 대해 잘못된 정보나 편향된 경험담을 말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정작 일본 업계에서 더 오래, 더 폭넓게 활동해왔을 ‘일본의 작가들’과 상반되는 이야기를 ‘일본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는 한국인 작가’가 말하는 케이스가 있다는 뜻이다.) 개인적 경험담을 단순히 말하는 것이라면 문제가 없겠으나, “일본 업계는 이렇다”는 식으로 업계 전체를 논하는 정보로서는 주의가 필요한 경우도 많을 텐데, 개인적 경험담을 일반론으로 너무 쉽게 치환하면 위험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 당시 국내에서 유행했던 ‘신카이 마코토의 1인 제작 애니메이션’이란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앞서 언급했듯 실제로는 신카이 감독이 꼭 1인 제작 애니메이션을 고집하지도 않았고, 또 1인 제작을 했던 때에도 여러 가지 상황에서 국내와는 차이점이 존재했다. 그 부분에 관해서는, 신카이 마코토를 1인 제작 애니메이션이란 측면에 포커스를 맞춰 국내에 소개했던 적이 있는 한 사람으로서, 다시 한번 꼭 확실하게 언급해두려고 쭉 생각해왔다.) 아무튼 이런저런 논점들이 많았는데, 어쨌거나 이번에 < 너의 이름은. >을 보고 ‘일견 대중적이지 못하고 마니아 취향이기 쉬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이 새로운 단계에 도달했고, 또 그 도달점이 이처럼 전 세계의 수많은 관객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 대해 개인적으로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2017년 개봉 이후 관객들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모르겠으나, 한국 관객들 역시도 오랫동안 신카이 감독의 작품을 높이 평가해왔으니만큼 좋은 반응이 있기를 기대해본다.
정성일 _ 먼저 책 소개부터 해야 할 것 같습니다.「영화에 대하여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한울), 이 책은 1990년 5월부터 1991년 5월까지, 한 번을 쉬고 12달 동안 (지금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잡지 「로드쇼」에서 ‘도시에(dossier)’라는 이름으로 연재된 내용을 이듬해에 한 권으로 묶은 것입니다. 올해로 어느덧 책이 나온 지 25주년이 되었는데, 이 책을 지금 돌아보면서 어떤 느낌이 가장 먼저 들게 됩니까? 사실 이 글이 연재되는 동안에는 제가 이 잡지의 편집장이었기 때문에 저도 이상한 추억에 잠기게 됩니다. 김홍준 _ 개인적으로는 ‘도시에’를 연재하는 일 년 동안은 ‘도시에’를 쓰는 것이 내 삶의 전부였습니다. 먹고, 자고, ‘도시에’ 쓰고. 그게 다였습니다. (웃음) 난 이전까지 영화를 좋아했고, 8미리 영화도 찍어봤고, (서울대 영화동아리) ‘얄라성’에서도 있어 봤고, 서울영상집단에도 있었고, 심지어는 유학을 가서 영상인류학을 공부하기도 했지만, 내가 직업으로서 영화를 택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도시에’를 쓰면서 일로서 영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가장 처음 떠오르는 생각은 ‘도시에’를 쓰면서 비로소 내가 영화인이 되었구나, 라는 것입니다. 정성일 _ 25주년이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저는 이 책의 판매 부수(한울 출판사 집계 2016년 1월 현재, 초판 30쇄 44,000부)보다 더 큰 의미는 25년이라는 시간을 견뎠다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홍준 _ (단호하게) 난 동의하지 않습니다. 정성일 _ 아니, 이 의미는 필자의 동의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저 객관적으로도 이 책이 만약에 그렇지 않았다면, 애초에 출판사 한울에서 절판시켰을 테고, 인쇄를 하고 창고에 두는 것이 다 돈이기 때문에 실용적인 의미에서 봤을 때에도 이 책을 남겨놓을 이유가 없습니다. “동의하지 않는다”가 주관적인 대답이었다면, 객관적인 사실로서 이 책이 오래 견딜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혹은 왜 이 질문을 부정하고 싶은지요? 김홍준 _ 왜냐하면, (잠시 생각) 책이 절판 안 되고 고맙게도 계속 나오긴 했지만, 이 책이 영향을 미칠 만큼 사람들에게 팔리고, 읽히는 부수는 굉장히 미미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이 책은 책이라기보다는 영화라는 세계로 나서기 위한 문 앞에서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이끌어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책과 정보가 필요했던 시절에 운 좋게도 내가 이 역할을 맡았던 것이고, 그래서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에게 반응을 일으키고 팔렸던 것입니다. 이 책이 감당했던 역할과 반응들은 어느 시점에선가는 거창하게 말하면, 역사적인 시효가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그 뒤에 이 책을 본다는 것은 한 시대의 기록으로서 혹은 하나의 복고 취미로서 호기심의 대상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책 자체의 의미로서 (현재까지 유효한 정보라는 것을)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 책의 가치가 있다면, 이 책은 당시 90년대 초의 나 자신의 기록이자, 한국 영화 청년들의 공통된 문화 기록이라 생각합니다. 「영화의 이해」 「세계 영화사」 「영화에 대하여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1992년 판 정성일 _ 거기에 대해서 나는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이 책이 나올 당시 이미 한국에는 영화에 대해 알고 싶다면, 훨씬 더 체계적으로 잘 정리된 루이스 자네티의 「영화의 이해」가 번역되어 있었고, 세계 영화사에 대해 알고 싶다면 잭 C. 엘리스의 「세계 영화사」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책이 나왔을 때,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그런 다음 25년이라는 세월이 짧은 시간은 아닌데 그 시간 동안 이 책이 견딜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주변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책이 교과서들이었다면, 이 책이 유일한 시네필 입문서였다는 점에서 저는 이 책이 갖는 매우 독특한 자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네필들에게 교과서를 보고 영화의 사랑을 일깨우라고 말하는 건 이상한 일입니다. 그래서 단지 정보의 문제가 아니라 인터넷과 SNS가 없었던 시절에 영화를 좋아하기 시작한, 심지어 시네필이라는 단어가 ‘수입’되기도 전의 시네필들, 그 사람들이 이 책을 보면서 거의 고립되어 있다시피 한 외로운 시네필들이 아아, 한반도에도 나와 같은 피를 가진 사람이 있구나, 내가 그렇게 이상한 사람이 아니었구나, 나에게는 시네필 선배가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 아닐까, 라는 연대감이랄까 공감의 공명이 반응을 불러 일으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홍준 _ 그렇다면 시네필 커밍아웃을 한 책인 건가....(웃음) 정성일 _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대한민국 시네필의 영년(零年, zero year)이라는 자리, 그 시간의 기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홍준 _ 그 말을 들으니, 자생적 공산주의라는 말이 있었듯 일종의 자생적 시네필이었다고 말하고 싶어지는군요(웃음). 시네마테크가 있어서 선배들이 야, 저기 가서 영화 좀 봐라, 해서 가 봤더니 비슷한 동료들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러고 보니 내가 이 책을 쓸 때 영화판에 들어와 있는 조감독이었다거나 영화비평을 하고 있는 평론가였던 것도 아니고, 정말 영화계와는 공식적으로 아무 관계가 없는 아마추어이자 시네필이었습니다. 이 책을 쓰고 나서 충무로에 들어갔던 것이지, 영화 현장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 이 책을 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것이 나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이 책의 바닥에 깔린 목소리는, 위에서 옆에서 간섭을 하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앞에서 말을 걸어오는 목소리였던 것 같습니다. 내가 영화 일을 하게 되었을 때, 이 책을 쓸 때와 가장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 때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 일을 할 때였습니다. 나는 프로그래머의 여러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고 영화제 프로그래머가 가져야 할 태도는, 내가 어떤 영화를 보자마자 그 영화가 너무 좋아서 흥분한 상태로 돌아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친구를 흔들며 방금 어떤 영화를 보고 왔는데 그 영화 죽인다고, 그러니 그 영화를 보러 가라고 설득하면서 막 그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런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 책도 그런 의미에서 소통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방금 깨달은 건데, 이 책이 아직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라 사람들이 영화에 대한 정보는 갈급한데, 그걸 채워줄 길이 없었고, 기존의 영화 잡지도 없었고, 「로드쇼」「스크린」이 있었지만 팬덤 잡지에 가까웠고, 종이 매체들도 영화를 포함한 대중문화에 대해 진지하게 다루지 않았습니다. 내가 어디 가서 자랑하는 게 있는데, 왕가위의 < 열혈남아 >(1988) 한글리뷰를 처음 썼다는 것입니다. (웃음) 이런 것이 ‘도시에’가 했던 일이고. 나는 단순히 정보가 부족했던 시절에 나름대로 정보를 집약했던 책이라 사람들이 좋아했나 보다, 그리고 지금은 낡은 정보이고 틀린 정보도 있을 수 있고, 손쉽게 정보를 구할 수 있으니 시효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정성일 평론가가 말한 그 점에 있어서처럼 시네필의 목소리로, 그래서 시네필의 정체성을 드러낸 채로, 친구에게 동료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느낌을 사람들이 받을 수 있다면, 이 책의 가치가 있다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령 이 책에 거짓말과 틀린 정보가 있더라도 적어도 이 책을 쓴 저자의 태도는 의심할 수 없는 것이니까. 정성일 _ 이 책이 처음에 열렬히 받아들여지고 긴 시간 버틸 수 있었다는 것은 정보와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책을 읽는 동안 전달되었던 태도와 감정적인 공감의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2016년에 와서 보면 이 책에 있는 많은 정보는 교양이 되었습니다. 1995년 「키노」를 처음 만들면서 독자엽서를 받았을 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미장센이란 무엇인가요’ 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는 ‘미장센’ 샴푸가 나오더라구요(웃음). 그런 이후에도 이 책은 여전히 살아남았습니다. 이 질문이 어쩔 수 없이 뒤따라 쫓아 나오는데, 25년의 시간이면 「영화에 대하여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개정판이 나오기 충분한 시간인데, 심지어 2편이 나올 수도 있는 시간이었을 텐데, 이 책의 어떤 것도 건드리지 않은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김홍준 _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아까 이야기했던 것과 겹치는데, 쉽게 말해 구회영은 김홍준이 아닌 것입니다. 이 책을 세상에 내보낸 후로, 내가 영화계로 나간 후로는 구회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스스로 생각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아니 그때도 말할 수는 있었는데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던 것인데(웃음), 이 책은 정확히 말하면 나 혼자 쓴 것이 아닙니다. 두 가지 의미에서. 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있지만 책은 구회영이 쓴 거로 되어있는데 로드쇼에 연재된 ‘도시에’는 세 사람의 이름으로 되어있습니다. 구회영, 김주현, 오윤평. 그래서 한때 이 세 사람에 대한 루머가 누구다, 라는 말이 돌곤 했는데 (웃음) 그런데 내가 지금 생각해봐도, 그게 한 달에 원고지 150매 분량이었습니다. 도비라(특집의 표지) 빼고 10개 꼭지(items), 꼭지마다 들어가는 박스 기사까지. 어마어마한 분량인데, 그걸 한 명이 매달 써낸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원고 매수였습니다. 학교를 다닌다든가, 다른 직업이 있다든가 그랬다면(웃음)... 완전히 먹고 자고 사우나 가고 ‘도시에’만 쓴 일 년이었습니다. 이쯤에서 플래시백으로 가보십니다(웃음). “그럼 ‘도시에’, 어떻게 쓰여졌나. 세상에 나오기까지” 자 일단, 첫 회는 생략하고 두 번째 회부터. 로드쇼가 서점에 깔리고 나서 반응이 오기 시작합니다. 독자들이 “이번 달 ‘도시에’ 좋았어요”, “미장센이 뭔가요” 등등의 엽서가 도착합니다. 「로드쇼」의 도시에(dossier) 지면 정성일 _ 인서트를 하자면, 당시 구회영 필자는 편집부에 뻔질나게 드나들면서 “독자엽서 다 가지고 와보죠”, 이러고는 ‘도시에’에 대한 엽서만 읽었습니다(웃음). 김홍준 _ 「로드쇼」사무실이 홍대 앞에 있었는데, 그때 거기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심지어 사장은 나를 직원인 줄 알았을 정도였으니까요. 늘 책상에 앉아있으니까. 일단 책이 나오면 일주일은 휴식 시간을 갖습니다. 그러면서 다음 달 ‘도시에’를 뭘 쓸까를 고민하는 건데, 그때 정성일 편집장과 계속 대화를 했습니다. 반응이 어떻고, 요즘 영화가 어떻게 돌아가고, 다음 달이 칸 영화제인데 올해는 코엔이 받을 것 같다는 둥(< 바톤 핑크 >), 데이빗 린치가 받을 것 같다는 둥(< 광란의 사랑 >), 그러면서 거의 다 맞혔습니다. 그렇지 않았나요, 우리가 예상한 게 거의 다 맞았어요. 정성일 _ 아, 맞아요, 그랬죠(웃음). 김홍준 _ 그래서 일주일간은 지난 한 달간 도시에를 쓰면서 피폐해진 몸과 마음을 다스리며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사우나도 가고 하면서 다음 달 아이템을 고민합니다. 그 일주일이 지나면 정성일 편집장과 아이템을 정합니다. 이를테면 ‘이번에는 80년대 할리우드를 다뤄보자’, 그때는 인터넷도 없고, 컴퓨터도 없던 시절이었어요. 당시 난 ‘도시에’를 모두 원고지에 썼었습니다. 원고를 쓰려면 자료가 필요한데,「로드쇼」에 「카이에 뒤 시네마」「사이트 앤 사운드」「필름 코멘트」등이 매달 도착했습니다. 일본어를 못하는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영어는 어느 정도 됐고, 불어도 사전 찾아가며 읽을 수 있는 정도였는데, 일본어까지 알았다면 읽을 게 너무 많아서 ‘도시에’를 쓰지 못했을 것입니다. 「로드쇼」에 있는 영어와 불어로 된 자료를 모두 읽는데 열흘이 걸리고, 그다음 열흘 동안 쓰는 겁니다. 그런데 그 쓰는 방식이 다 같은 건 아니었습니다. 어떤 꼭지는 150매를 한 자리에서 다 쓰고 쓰러진 적이 있습니다. 어찌 보면 이 책에 있는 열두 꼭지는 제작방식이 다 다른 단편영화라고 봐도 됩니다. 어떤 것은 잘 풀려서 자료 정리 수준으로 빨리빨리 써서 띵까띵까 했던 것도 있고, 어떤 것은 끝내 안 풀려서..(잠시 생각) ‘제3세계 영화’ 같은 꼭지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일단 자료가 없었으니까요. 외국에서는 책을 내는 데 편집자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 라는 말을 그 전에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편집자가 다 간섭하고, 의심나면 빨간 줄을 긋고, 하지만 이런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예술을 간섭하는 건 아니지 않나 했는데, 「로드쇼」의 ‘도시에’는 책으로 나오기 전 잡지에서, 편집자와 작가가 한국에서는 처음이자 어쩌면 마지막으로, 가장 이상적인 의미로 서로의 입장에서 최선의 것을 뽑아내는 협업을 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이 주제를 감당할 수 있을까 했을 때 편집자가 끄집어내주고, 반면 잡지쟁이로 하루하루를 보내야했던 편집자가 가지지 못했던 감각, 혹은 아까 말한 시네필적인 순수함을 편집자에게 보호받으면서 쓸 수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로드쇼」는 정신 분열적인 잡지였습니다. (웃음) 표지에는 유덕화가 나오면서 속에는 누리끼리한 종이로 ‘도시에’ 라는 제목아래 ‘제3세계’, < 불타는 시간의 연대기 >, (<칠레 전투>의) 파트리시오 구스만, 이게 도대체 뭐야(웃음). 그래서 이 글은 편집자와 나의 공저입니다. 혹은 진정한 의미에서 편집자는 편집자의 역할을 했고 필자는 필자의 역할을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정성일이라는 편집자와 그 당시 ‘도시에’를 썼던 그런 식의 관계와 작업조건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이 작업은 내가 더 이상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내가 구회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그런 조건이 필요한 것이지요. 그래서 못한 것입니다. 정성일 _ 쓰면서 가장 재미있었던 특집은 무엇이었습니까? 김홍준 _ 물어보나마나 ‘홍콩영화’입니다. (웃음) 첫 ‘도시에’이기도 했고. 정성일 _ 만일 개정증보판이 나온다면 남겨져야 할 것 중에서 가장 먼저 2016년 버전으로 다시 쓰고 싶은 챕터는 무엇입니까? 김홍준 _ 우선 빼고 싶은 것을 말하자면, ‘할리우드’에 대한 두 챕터입니다. 이건 통째로 빠지거나, 아니면 90년대 이후로 더 쓰여 시리즈로 가거나. 그게 아니라 다시 쓰는 거라면, 그건 원본을 보존하고 남겨야 할 가치가 있다는 거니까. 1번 ‘영화용어’는 워낙 일반적이고 굉장히 핵심적인 이야기들이라 영화가 존재하는 한 크게 만질 것 없을 것 같고, 2번 ‘영화의 역사’는 역사니까, 여기서 기록된 80년 이후가 첨가되면 첨가되겠지만 크게 바뀔 건 없다. 어려운 질문인데... (한참 생각 후) 3번 ‘우리 시대의 영화작가’를 다시 쓰고 싶습니다. 자비에 돌란 같은 감독들을 포함해서 새롭게 더 공부를 해서 써보고 싶습니다. 사실 지금은 영화감독을 발견하는 것도 힘든 시대가 되었습니다. 영화경력이 20년에 가까웠던 키에슬로프스키가 <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 >(1988)으로 비로소 주목받았는데. 그런 시절은 이제 지나갔습니다. 지금은 기획사들이 초등학생들을 데리고 아이돌 연습생으로 키우듯, 영화제들이 완성된 영화를 기다리는 수준이 아니라 탤런트 캠퍼스를 만들어서 끌어들이고, 거기서 점점 내려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심하게 말하면 사육된다고 할까, 물론 나쁘게 말하는 건 아닙니다. 영화학교에서 만든 단편영화가 단편영화제에 나가는 순간 이미 그들의 레이더에 걸리는 시대가 되어버렸달까요. 정성일 _ 사실 저는 다시 써야 할 수정 버전에 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오히려 첫 장으로 배치한 ‘영화용어’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을 쓰던 시절은 영화를 필름으로 찍던 시절이었고 우리들에게 디지털 영화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사실 지난 25년간 영화의 가장 큰 변화라면 필름에서 디지털로의 이행이었습니다. 이러한 이행을 지켜보면서 한 명의 감독으로서, 한 명의 영화선생으로서, 한 시절 영화제 프로그래머로서, 필름 시대에 시작한 시네필로서, 디지털 영화 시대의 ‘영화에 대하여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이라면, 어떤 것들을 더 첨언하고 싶지 않을까, 했습니다. 필름의 많은 것들이 남겨져 있지만 동시에 디지털 시대이기 때문에 새로이 첨언하거나 수정해야 할 항목들이 생겨나지 않았습니가? 김홍준 _ (잠시 생각)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우리가 오늘날 영화라고 부르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존속될 것입니다. 영화라는 것도 예전 동굴 벽화에서 시작한 것이라 볼 수 있듯이. 우리 세대가 몰랐던 것은, 마치 르네상스의 프레스코가 그랬고, 건판사진이 그랬듯, 알고 보니 영화 말고 ‘필름’이란 것은 단기간 존재하는 포맷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철썩 같이 뻗어 나갈 것이라 생각했던, 적어도 물리적 재료로서의 필름은 단기간 존재하는 포맷이었던 것입니다. 이 생각이 굉장히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10여 년 전에 동경 FIAF 총회에 다녀왔었는데, 당시 주제는 단명한 필름 포맷(short-lived film format)이었습니다. 각 나라의 연구자들이 한때 존재했다 없어졌던 포맷을 발표했는데, 일본에서는 9.5mm 필름을 소개했습니다. 이는 무성영화 시절, 그러니까 비디오가 없던 시절이니 1시간 반짜리 35mm 필름의 장편영화를 9.5mm 필름으로 만들면서, 10분짜리 축약본으로 제작해 개인적으로 소장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집에서 보고, 아버지가 변사를 했던, 그렇게 집에서 틀어서 봤던, 지금 짤막짤막하게 남아있는 무성영화들은 그런 게 많다고 합니다. 원본 영화는 사라졌는데, 가정용 축약본은 남아있는 그런 단명한 포맷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 길게 보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필름이 그런 겁니다. 쿠엔틴 타란티노와 크리스토퍼 놀란이 필름으로 찍고 코닥을 살려야 한다는 운동도 있고, 필름의 장점을 이야기하지만 그런 것이 벌어지는 자체가 오늘날에도 프레스코화를 그리는 사람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디지털을 기술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시각 매체의 진화의 역사로 보는 것입니다. 여기서 진화를 오해하지 말 것은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발전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환경에 적응해가면서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우연한 방향으로 바뀐다는 의미의 진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영화라고 부르는 것, 영화 속에 필름과 디지털이 있지만, 뒤집어 말하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분화해가는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 영화라고 부르는 것은 필름으로 상영하건 디지털로 상영하건 극장에서 보고 극장 개봉이 끝나면 집에서 혼자 보거나 소장하거나,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게 아닌, 지금의 YouTube로 대변되는, 말하자면 랜덤 억세스(random access)가 되는, 전체를 볼 수도 있고 부분을 볼 수도 있는, 쌍방이 소통할 수 있는. 디지털과 무관하게 영화라는 것이 아직 우리가 모르는 다른 것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100년 후 영화박물관에서는 영화에 대한 것을 소장하고 전시를 하고 있는 것뿐 아니라 거기 가면 옛날 방식으로 영화를 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단순히 똑같은 영화를 필름 프린트로 본다는 차원이 아니라 역시 거기서도 디지털로 상영하긴 하나, 그 시기에는 정해진 시간에 사람들이 모여 영화를 본다는 그 경험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런 영화를 보는 방식까지도 영화박물관에 보존되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게 나의 생각입니다. 디지털은 사회문화적인 영화라는 매체 자체가 생산되고 소비되고 관객과 만나는 이러한 시스템 자체를 진화시키는 동인으로 작용하지, 단순히 필름과 디지털을 테크놀로지의 차이로 보는 것은 착시 현상이 아닐까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얼마 전에 코닥이 수퍼 8 필름을 다시 내놓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일반인들이 필름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영사기와 카메라들까지 시리즈로 내놓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벌써 부자들의 호사스러운 취미용이라는 비난도 들리고 있습니다. 표1: 영화 100선 중 상위 10편의 영화 정성일 _ 다음 장으로 넘어가볼까요. (웃음)「영화에 대하여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이 갖는 시대적인 한계 안에서 반대로 동시대적인 통찰력(contemporary insight)라고 할까요. 아마 그것을 보여주는 대목이 100선의 챕터일 것입니다. 이 책에서 1990년에 뽑은 영화사상 베스트 10 목록과 2012년 영국 영화잡지「사이트 앤 사운드」가 전 세계의 평론가들에게 앙케이트 한 베스트 10 목록을 비교해보았습니다. 긴장되죠? (웃음) 구회영 버전에서는 1위 < 시민 케인 >(1941), 2위 < 잔 다르크의 수난 >(1928,) 3위 < 전함 포템킨 >(1925), 4위 < 수색자 >(1956), 5위 < 대지 >(1930), 6위 < 게임의 규칙 >(1939), 7위 <칠레 전투>(1975~79,) 8위 < 거미집의 성 >(1957), 9위 < 현기증 >(1958), 10위 < 비정성시 >(1989) 였습니다. 가장 놀라운 건 2012년 「사이트 앤 사운드」에서는 1위가 < 현기증 >입니다. 사실 <현기증>이 <시민 케인>을 제치고 1위로 올라온 것이 2012년이 처음이었고, 10위 안에 들어온 것도 2002년이 처음이었습니다. 김홍준 _ (다소 흥분한 어조로) 그러니까 우리가 이보다도 10년 전에 먼저 한 것입니다. 정성일 _ 2위가 < 시민 케인 >, 3위 < 동경 이야기 >(1953), 4위 < 게임의 규칙 >, 5위 < 선라이즈 >(1927), 6위 <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1968), 7위 < 수색자 >(1956), 8위 < 카메라를 든 사나이 >(1929), 9위 < 잔 다르크의 수난 >, 10위 < 8과 1/2 >(1963)이었습니다. (10위 안에 없는) < 동경 이야기 >는 구회영의 목록에서는 13위에 랭크되어 있고, <카메라를 든 사나이>는 15위에, <8과 1/2>은 32위에 올라와 있습니다. 이 목록이 이미... 김홍준 _ 신들린 목록이구만. (웃음) 정성일 _ (웃음) 다소 거만하게 말하자면 이미 25년전에 ‘컨템포러리’한 목록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2016년 버전으로 이 목록을 만든다면 어떤 영화가 베스트 1이 될 수 있을까요? 김홍준 _ 대세로 간다면 < 현기증 >이여야겠지만, (한참 생각한 후) 지금이라면 < 동경 이야기 >인 것 같아요. 정성일 _ 그 영화가 1위가 된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김홍준 _ < 시민 케인 >을 1위로 뽑았던 30대 중반의, 아직 직업적 영화인 전의 시네필이었던 어떤 사람이 25년의 세월 동안에 영화를 직업으로 택했고, 운이 좋아서 어쩌면 한 사람의 일생 속에서 영화에 대한 정말 다양한 일을 하고, 25년 후 리스트를 다시 볼 때, 그 사이에 내가 어떻게 변했는지, 한 명의 인간으로서, 또 영화에 대한 생각과 태도, 그걸 표현하는 방법이 있다면, 25년 전에는 <시민 케인>인데, 지금은 < 동경 이야기 >라는 결론을 내린 거죠. (잠시 생각) 이렇게 스스로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거기에 대해서는 각자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환갑이 되더니 정신을 차렸나 보다, 복고적인 가족주의로 회귀하는 수구파가 됐나 보다 등등. (웃음) 표2: 1980년대 영화 10편 정성일 _ 「사이트 앤 사운드」에서 재미있는 것은 이 목록을 연대별로 다시 정리를 했다는 것입니다. 「영화에 대하여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에서도 80년대 영화 100편을 뽑기도 했죠 김홍준 _ 그때가 제일 신나고 재미있었죠! 정성일 _ 그래서 「사이트 앤 사운드」에서 2012년에 평론가들이 뽑은 80년대 영화들과 80년대가 막 지난 일 년 후 1990년에 「영화에 대하여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에서 뽑은 목록을 다시 비교해보았습니다. 이쪽이 훨씬 흥미롭습니다. (웃음) 김홍준 _ 여기엔 전제가 있습니다. 이게 구회영이니까 가능했던 것이 여기 있는 80년대 100편 중 80퍼센트는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영화들이었습니다. 내가 예술전용관도 있었던 필라델피아에서 유학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리고 80년대부터 아트하우스 영화들이 미국에서 비디오로 출시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빔 벤더스의 초기작이니 파스빈더 영화들이니 하는 이런 영화들을 내가 보고 와서 이 목록을 채울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나도 당시에 자막이 없는 영화를 보고 나중에 다시 보고 아, 이런 이야기였구나, 이런 창피한 비화도 있습니다.(웃음) 정성일 _ 당시 구회영이 뽑았던 80년대 100편의 1위는 < 비정성시 >... 김홍준 _ 그 작품에 대해서는 현재도 이의가 없습니다. 정성일 _ 2위가 <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 거야 >(1989), 3위 < 나쁜 피 >(1986), 4위 < 성난 황소 >(1980), 5위 < 집시의 시간 >(1989), 6위 < 쇼아 >(1985), 7위 < 베를린 천사의 시 >(1987), 8위 < 메이트원 >(1987), 9위 < 똑바로 살아라 >(1989), 10위 < 희생 >(1986). 김홍준 _ 리스트를 듣는데 왜 눈물이 나려고 하지. (웃음) 정성일 _ 「사이트 앤 사운드」가 뽑은 목록은 1위가 < 쇼아 >, 2위 < 성난 황소 >, 3위가 공동순위 3편입니다. < 블레이드 러너 >(1982), < 태양 없이 >(1983), < 블루 벨벳 >(1986). 6위 < 화니와 알렉산더 >(1982), 7위 < 비정성시 >, 8위가 공동 순위 두 편입니다. < 돈 >(1983)과 < 똑바로 살아라 >. 10위가 공동 순위 5편인데 < 컴 앤 씨 >(1985), < 먼 목소리, 정지된 삶 >(1988), < 이웃집 토토로 >(1988), <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1984), < 샤이닝 >(1980)입니다. 이 목록이 구회영의 100편 안에서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가 12위, <컴 앤 씨>가 20위, <블레이드 러너>가 17위, <블루 벨벳>가 31위, <태양 없이>가 36위, <화니와 알렉산더>가 46위, 브레송의 <돈>이 86위, <먼 목소리, 정지된 삶>이 96위, <샤이닝>이 97위입니다.「사이트 앤 사운드」가 뽑은 14편 중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웃집 토토로>, 단 한 편만 빠졌습니다. 80년대가 끝난 지 일 년 후, 1990년에 뽑은 100편 안에, 22년 후에 뽑을 목록의 14편 중 한 편을 제외하고 모두 다 목록에 있었다는 것은,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동시대성의 안목’이라고 믿습니다. 원래 질문은 두 가지였습니다. 지금도 1위는 <비정성시>라고 이야기했으니, 남은 질문을 하겠습니다. 지금 다시 80년대 영화를 뽑는다면 열편 중에서 빼고 싶은 영화는 무엇입니까? 김홍준 _ 카네프스키의 <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 거야 >. 정성일 _ 이유가 궁금합니다. 김홍준 _ 당시 소련영화에 대한 환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영화 자체가 가지고 있는 한계, 그것이 나쁜 정치적인 계산이 있었던 것을 당시에는 못 봤던 것 같습니다. 감독의 이후 행보가 역설적으로 증명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 10편중에 시간의 흐름을 견디지 못한 영화는 그 영화인 것 같습니다. 다른 영화들은 시간의 흐름을 견디거나 가치가 올라간 면이 있는 반면에... 표3: 김홍준의 21세기 영화 10편 정성일 _ 21세기 영화 10편을 부탁했습니다. 이 열편은 어떤 기준으로 뽑았는지 궁금합니다. 여기서 궁금한 건 평가의 척도가 아닌 맥락입니다. 김홍준 _ 목록은 제작연도순입니다. 내가 이 영화들을 처음 만났던 순간에 어느 정도까지 매혹되었는지, 그 매혹이 기준입니다. 영화는 물론 복제된 것이지만 누구와 봤는지, 어디에서 봤는지, 언제 봤는지, 내가 어떤 상태에서 봤는지, 실연당한 직후에 < 나쁜 피 >를 볼 때와 한참 사랑에 빠질 때 <나쁜 피>를 볼 때 전혀 다른 영화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2000년대에는 내가 이미 직업 영화인으로 살고 있었기 때문에 각각의 영화를 볼 때, 어떤 영화는 프로그래머로서 만났고, 어떤 때는 시네필로 만났고, 어떤 때는 교수로서 만났고. 하지만 이 목록은 나의 자리와 무관하게, 말 그대로 보는 순간 나를 시네필의 자리로 돌려보낸 영화들입니다. 그냥 영화에 빠지고 매혹되고, 그냥 너무 좋았던 영화들입니다. 그러니까 더 찾으면 더 있을 것입니다. 우선 떠오르는 대로 10편을 찾아본 것입니다. 때로는 매혹이란 것이 끝난 후에는 뒤끝이 찝찝할 때도 있고, 때로는 당장 그 당시에는 어리둥절하지만 다시 볼 때 아, 비로소 이해하게 되고, 그런 영화가 있었고. 말 그대로 척도가 아닌 영화를 보는 맥락과 적어도 그 순간에 영화를 보는 나를 매혹시켰던 영화들입니다. 그리고 지금 다시 본다고 해서 그 매혹이 돌아온다는 보장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뽑은 건 어제 뽑았지만, 그 기준은 내가 그 영화를 처음 봤던 그 순간의 매혹입니다. 가령 < 엘리펀트 >를 처음 본 것은 로테르담 영화제에서였는데, 이미 그때 칸에서 상을 받았기 때문에 이름은 알려져 있었지만 못 보고 있었습니다. 사실 로테르담에 가서 이렇게 유명한 영화를 본다는 것은 약간의 직무유기지만 너무 궁금해서, 그리고 본 다음에는 아, 이런 거였구나. 전혀 내가 생각했던 영화와 다르구나,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정성일 _ 「영화에 대하여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의 12개의 챕터 중에서 한 사람의 감독에게 바친 것은… 김홍준 _ 빔 벤더스. 정성일 _ 네, 빔 벤더스입니다. 사실 벤더스에 대한 사랑은 25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하구나, 라고 생각한 건 이번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하는 ‘2016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빔 벤더스의 <이 세상 끝까지>를 추천한 것을 보고 일편단심에 약간 감동을 받았습니다. (웃음) (영화제에서는 < 이 세상 끝까지 >의 수급이 어려워 <패널티킥을 맞이한 골키퍼의 불안>으로 대체하였다.) 김홍준 _ 고백하자면, 벤더스의 영화는 2000년 이후의 영화들은 보지 않습니다. 안 보는 게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웃음) 정성일 _ 물론 빔 벤더스가 처음 나타났을 때, 가장 눈 밝은 비평가일 세르주 다네와 하스미 시게히코가 지구 정 반대편에서 가장 기대하는 영화감독으로 주목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선 이후 거의 모든 영화 비평가들, 혹은 영화제들, 시네필들의 관심에서 멀어져버렸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발견했다고 그렇게 자랑하는 하스미 시게히코의 흑역사인 셈인데(웃음), 김홍준에게 빔 벤더스는 어떤 감독입니까? 김홍준 _ 간단합니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 실제 만나본 감독입니다. 약간 과장하자면 감독도 살아있는 사람이구나, 를 알게 해준 감독이랄까, 그전까지 난 감독이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고 뭔가 신과 같은 존재인 줄 알았습니다. 감히 인간이 영화를 만들 수 있나 싶었습니다. 가까이에서 본 건 아니고 멀리 있는 빔 벤더스에게 손을 들어 질문을 한 것이었지만. (웃음) 정성일 _ 그 후 어느 지점까지는 계속 벤더스 영화에 관심을 갖고 본 셈이군요. 김홍준 _ 계속 감탄을 금치 못하고 봤습니다. 빔 벤더스 정성일 _ 빔 벤더스의 어떤 면이 김홍준을 매혹시켰습니까? 김홍준 _ 일단 나이로 치면 11살 차이가 나는데, (웃음) 벤더스가 유년기를 보냈던 곳이 50년대의 분단 독일이었습니다. 벤더스라는 내성적이고 머리는 좋고, 의대 들어갔다가 때려치우고 오직 영화를 보러 파리에 간, 그리고 열심히 록큰롤을 듣던 청년. 벤더스가 50년대 록큰롤을 들을 때 난 딱 10년 후에 태어나서 60년대 한국에서 팝송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벤더스가 의대 공부를 때려치우고 파리 시네마테크에서 죽치고 앉아 영화를 보고 있었을 때, 그때 벤더스는 일 년에 천편을 봤다고 합니다, 그때 난 서울대를 가서 8mm 카메라를 들고, 과외로 번 돈을 열심히 탕진하고 있었습니다. 뭐랄까, 이상한 평행의 간극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런 거장과 나를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이지만, 그래서 급(急) 친밀함을 느꼈던 게 아닐까 합니다. (웃음) 내가 벤더스의 영화를 처음 본 것이 < 도시의 알리스 >였는데, 뭐랄까 나를 보라고 만든 영화인가, 이거 내가 만든 거 아냐,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작년에 유럽 여행을 갔었는데, 바쁜 투어 일정 중에 <도시의 알리스>에 나오는 모노레일을 코스에 넣기도 했습니다. 거기서 모노레일을 탔는데 좋더라고요. 이런 것들이 그의 초기작을 볼 때 테크니션이나 프로페셔널로서가 아니라 시네필로서 영화 만들기라는 것이 첫 영화부터 느껴졌습니다. <패널티킥을 맞이한 골키퍼의 불안>(1972), <도시의 알리스>(1974), < 빗나간 동작 >(1974), < 시간이 흐르면 >(1976), < 미국인 친구 >(1977), <룸 666>(1982), <물 위의 번개>(1980), < 도쿄가 >(1985) 여기까지가 내가 생각하는 벤더스의 영화입니다. < 파리 텍사스 >(1984)부터는 내가 좋아하는 벤더스의 영화가 아닙니다. 정성일 _ 만약 2016년 개정판을 만든다면 벤더스의 자리에 누구를 넣고 싶습니까? 김홍준 _ 너무 진부해서 말하면 화낼 것 같은데, 한 번 맞혀본다면? 정성일 _ 허우 샤오시엔? 김홍준 _ 허우 샤오시엔입니다. < 자객 섭은낭 >(2015)을 본 순간, 이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면 에드워드 양. 어쩌면 100년 뒤의 사람들은 허우 샤오시엔 보다는 에드워드 양을 기억하고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정성일 _ 저는 이미 그런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크라이테리언 출시) 김홍준 _ 이번 크라이테리언에서 에드워드 양의 <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1991) 블루레이가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까? 난 21세기 크라이테리언 최대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이 영화를 본 사람이 지구상에 다 합쳐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근데 이제는 이론적으로 수십 수백만이 볼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또 하나, 벤더스를 쓸 수 있었던 조건 중 하나가 벤더스를 사심 없이, 편견 없이 그 사람이 거장이기 전에 우연찮게 내가 꼬마였을 때 봤던 행운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허우 샤오시엔과 에드워드 양도 마찬가지입니다. < 장미빛 인생 >(1994)을 찍고 그 영화가 영화제에 불려갈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는데, 기술 시사 때 우연히 토니 레인즈가 보고 밴쿠버 영화제에 초청했습니다. 그해 밴쿠버에 대만 감독웰옘섯?초청받았습니다. 에드워드 양, 차이밍량, 우닌지엔. 각각 <독립시대>(1994), < 애정만세 >(1994) 그리고 <다상>(1994)을 들고 왔습니다. 난 그때 그 우닌지엔이 < 비정성시 >의 (각본을 쓴) 오념진인 줄도 몰랐습니다. 거기서 에드워드 양을 처음 만났었는데, 형처럼 너무 잘해줬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 낭뜨에 초청을 받아서 갔더니 거기에도 그 팀들이 또 와있었습니다. 그 후에 칸에서도 보고. 에드워드 양에 대해 생각하면 그래서인지 많이 애틋합니다. 에드워드 양은 나를 기억하려나 모르겠지만. 임권택 감독님과 함께 < 춘향뎐 >(2000)을 가지고 텔루라이드 영화제에 갔었을 때 에드워드 양은 < 하나 그리고 둘 >(2000)을 가지고 왔었습니다. 이 영화를 나와 임권택 감독님이 같이 봤는데, 영화가 너무 길고 영어자막밖에 없어서 혹시 감독님이 지루해하시는 건 아닌가했는데, 영화를 보시더니 “잘 만들었구만” 하시더니 “감독이 어디 있나” 해서 소개해드렸습니다. 그런 추억들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에드워드 양... 아아, 허우 샤오시엔 취소! 에드워드 양은 또 딱 7편입니다. (웃음) 정성일 _ 이 책을 읽다가 느껴지는 또 하나의 쓸쓸함 중 하나는 영화가 시간 안에서 얼마나 연약한가, 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영화들, 감독들이 25년이 지난 후에, 심지어 어떤 감독은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가, 이 책을 들쳐보면서 아, 그때는 참 주목받았었지, 이런 이름들도 있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제목들이 문득, 아 그때 그런 영화가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구회영에게 이 책을 쓸 때로부터 객관적으로나 마음속으로 가장 추락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꼭 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김홍준 _ 거기까지 깊게 생각은 안 해 봤습니다. 정성일 _ 나에게 있어… 이 책이 열광하고 있는 이름 중에 가장 극적으로 추락한 사람은 첸 카이거였습니다. 김홍준 _ 아, 근데 첸 카이거는 이미 그때부터 조짐은 있었습니다. 정성일 _ 그래도 1990년까지는… 김홍준 _ (잠시 생각) 첸 카이거, 그렇죠. 기대치에 비해서. 그리고 어떤 감독은 우리가 오해했구나, 원래부터 아니었구나 싶은데, 첸 카이거는 원래부터 아니었던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뭐가 그렇게 그 사람을 망가뜨렸을까 라는 점에서 좋은 예가 될 것 같아요. 정성일 _ 또 다른 의미에서 오해했던 사람이 뤽 베송이었던 것 같습니다. 미학적인 뭔가를 블록버스터와 연결시키면서 뭐랄까, 프랑스의 스필버그 같은 감독이 될 줄 알았는데 이런 지경이 될 줄이야... 김홍준 _ 프랑스의 하비 와인스타인이 된 거지.(웃음) 그때는 < 니키타 >(1990)가 워낙 좋았으니까. 뤽 베송을 더 주목했던 것에 비해, 장 자끄 베넥스를 좀 우습게 봤던 것 같아요. 지금 보면 오히려 베넥스가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합니다. 거기에 비하면 뤽 베송은 그냥 장사꾼이었던 거죠. 정성일 _ 이 책이 쓸 즈음에 우리에게 가장 운이 나빴던 것은 스티븐 스필버그가 슬럼프였던 게 결정적이었습니다. 김홍준 _ 아, 맞다.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죠. 반면 이 책에서 예언처럼 주목했던 미국의 인디작가들은 거의 100 퍼센트 성공했습니다. (웃음) 정성일 _ 대표적으로 코엔 형제가 있죠 김홍준 _ 그때는 감독으로서 애였죠! 완전! 이 책을 쓰고 있을 때 < 밀러스 크로싱 >을 찍고 있었으니까. 정성일 _ ‘도시에’를 쓸 당시 코엔형제의 이름은 어디서도 볼 수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이 책이 열렬하게 지지했음에도 시간을 못 견딘 또 하나의 사람은 스파이크 리인 것 같습니다. 김홍준 _ 근데 스파이크 리는 문화 현상으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 똑바로 살아라 >까지는 괜찮았습니다. 컬드영화 10계명(「로드쇼」 도시에) 정성일 _ 이 책에서 한편 가장 견디지 못한 챕터 중의 하나가 컬트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역설적으로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가장 열광적인 반응을 부른 챕터가 또 컬트영화였습니다. 김홍준 _ 뜨거웠죠! 지금도 기억나는 게 독자엽서에 이달에 가장 좋았던 기사, 이런 게 있었는데 그 달에는 압도적으로 컬트영화에 대한 거였습니다. 다들 이 영화가 컬트영화야, 이러면서도 막상 그게 뭔지 물어보면 아무도 몰랐던, 그런 시절에 이 책이 ‘십계명’ 이러니까... (웃음) 정성일 _ 한편으로 컬트영화라는 현상이 한국에서 가능했던 까닭은 정확하게 그 시기에 마치 신흥종교처럼 번져나갔던 비디오테이프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이 특집은 제 시간에 도착했다 할까요. 하지만 인터넷이 시작되고, 온갖 경로를 통해 한국에서 온갖 영화를 볼 수 있는 관람환경이 만들어지자 토렌트나 YouTube를 통해 접하지 못하는 영화가 없어지다 보니까 컬트영화라는 현상 자체가 사라져 버린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영화현상이라는 측면에서 그 당시의 기이하고 특별한 컬트영화라는 현상이 있었다면 지금 이 세기에는 어떤 현상이 그 자리에 있다고 생각합니까? 김홍준 _ (단호하게) 일단 영화학교에 시네필이 없습니다. 정성일 _ 그건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김홍준 _ 가장 기이한 현상은 영화학교에 다니면서 본인이 시네필이라는 것 때문에 굉장히 고민하고 고생하는 학생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진짜 마이너리티들. 얘네들이 구축하고 있는 독특한 세계가 있는데 굉장히 기이해요. 정성일 _ 영화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이 학생은 어떻게 하다가 영화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을까 궁금한 학생들이 많습니다. 영화를 전혀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화 보는 것도 전혀 좋아하지 않습니다. 영화 수업 시간에 영화를 설명하기 위해 영화를 보라고 하면 너무 괴로워할 때 사실 당황하게 됩니다. 말하자면 영화를 만드는 것과 영화를 보는 행위가 완전히 분리되었다고 할까요. 김홍준 _ 영화과 학생들의 새로운 경향은 YouTube에서 명장면만 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유튜브에 대해 명대사를 날린 적이 있어요. (웃음) 요즘 학생들에게 < 펄프 픽션 >(1994) 봤냐고 하면 “어떤 장면이요?” 라고 물어봅니다. 그래서 도입부에 이런저런 장면이 있잖아, 라고 설명하면 “YouTube에서 봤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우리 시대는 영화를 문화원에서 봤고, 하다못해 DVD로 빌려서라도 봤는데, 요즘 영화캠프 등에 다녀온 영화에 관심 있는 어린 친구들은 그냥 검색으로 시작해서 검색으로 끝냅니다. YouTube에서 ‘펄프 픽션’을 검색하면 주르륵 짤막한 ‘유명 장면’ 동영상이 나옵니다. 그것만 보는 겁니다. 영화를 본 것도 안 본 것도 아닌 상태가 되는 거죠. 결국은 자기가 좋아하는 이미지만 취하는 것입니다. 그걸 보고 내가 하도 딱해서 한마디 했어요. “인생을 YouTube로 채우지 마라.” 정성일 _ 영화를 찍는 것만이 관심이고 영화를 보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김홍준 _ 가령 내가 도자기를 만드는 것은 좋아하는데, 남의 도자기를 보러 가는 것은 싫어하는 거죠. 그런데 그런 학생들 중에 재능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뭐랄까, 그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건 그들 자신이 굉장히 파편화되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들 사이에서 (영화학교의 시네필들은) 자기들이 영화를 좋아하는 방식이 동시대의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들 사이에서는 웃음거리가 되는데, 오히려 나나 정성일을 보면서 자기들은 선배의 시대에 더 맞는 것이라 생각하는 거죠. 영화학교 안에서조차 굉장히 고통스러워한다는 것입니다. 구태여 비교하자면 각 대학에 있는 운동권 학생들과도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다고 할까요. 애들이 걔들을 비웃진 않습니다. 굉장히 진지하니까. 하지만 이상한 취급을 하고 약간은 웃음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영화를 보기 위해서 서울아트시네마를 쫓아다니고, 이런 게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되어버린 거죠. 이런 건 꼰대들이나 하는 구린 것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나는 너무 좋은데 남들은 나를 왜 구리다고 할까. 그것도 같이 영화 공부하는 동료들이. 영화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하여튼 내 입장에서는 이게 몹시 기이하게 보입니다. 정성일 _ 우리의 이야기가 끝이 안날 것만 같습니다. 그러니 무리하게 마지막 질문을 하겠습니다. 이 책의 독특한 관점 중의 하나는 시네필로서 드물게 영화기술 변화에 대해 기울이는 관심입니다. 영화 바깥에 있다가 그런 다음 감독으로 영화를 만들고, 영화제 프로그래머를 하며, 또 영화학교 선생님을 하면서, 그렇게 지난 25년을 지켜보면서 가장 흥미롭게 생각한 영화기술의 등장은 무엇입니까?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디지털, 이렇게 대답하는 대신 그 무언가를 주목했고 그것이 등장했을 때 그건 하나의 특집이었다, 라는 혁신이 있습니까? 김홍준 _ 최근 흥미롭게 보고 있는 것은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를 허무는 테크놀로지, 하이-테크놀로지와 로-테크놀로지의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지는 현상입니다. 그 중에서 내게는 드론이 그렇습니다. YouTube만 들어가도 드론으로 찍은 별별 영상이 다 있습니다. 얼마 전 세그웨이 동호회가 자신들의 정모로 미사리 가는 걸 드론으로 찍은 걸 봤는데 말 그대로 ‘끝내준다’고 밖에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예전에 항공촬영이란 것은 영화 선진국에서의 특권이었습니다. 내가 < 정글스토리 >(1996)의 첫 장면을 헬기로 찍을 때 농약 뿌리는 헬기에 카메라 달고 어떻게 하면 안 흔들리게 찍을까 고민했는데, 이젠 그런 걸 드론에 고프로 카메라 달고 찍으면 되는 겁니다. 지금은 < 샤이닝 >의 도입부를 아무나 다 찍게 된 것입니다. 이게 어떤 의미가 있는냐, 고 자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히치콕이 자랑하던, 혹은 < 악의 손길 >(1958)의 도입부처럼 너네 이런 거 할 줄 알아? 하던 마지막 보루가 항공촬영이었습니다. 드론이 나오면서 마지막 보루가 무너진 것입니다. 쇼 프로그램이나 드라마를 보면 관객들이 아직 혹하니까 쓰는데, 이제 좀 있으면 관객들이 지루해할 거예요. 도 닦는 티벳 승려가 산속에 있는 우리 절의 모습을 알리기 위해 드론을 구해서 찍어 YouTube에 올리고 있는 시대입니다. 어마어마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이젠 테크놀로지는 아무도 독점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악한 타란티노가 그것을 수퍼 파나비전 70mm로 찍을 아무런 이유가 없는 < 헤이트풀 8 >(2015)을 찍어서 이벤트화 하는 것입니다. 그 줄거리에 블랙을 더 살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어차피 한 편의 소동극인데. 70mm로 찍을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영화 외적으로, 이런 건 아직 너네들이 흉내 내지 못할 테크놀로지다, 라고 내세울 수밖에 없게끔, 거기까지 지금 몰려있는 것입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영화 공부하는 학생들은 YouTube로 인생을 채우고 있고. 그러니까 약간 탄식하듯이 말하자면 우리가 알던 영화의 시대는 끝난 것입니다. 정성일 _ 「영화에 대하여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은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전달될까요? 김홍준 _ 이 자리에 오면서 그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 책의 내용을 새로운 매체로 다시 표현하거나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지 않을까. 5년 후, 그러니까 2021년 8월에 학교에서 은퇴를 하게 되는데, 그때는 이 책이 나온 지 정확히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약간 멋대로 상상을 해보고 싶어집니다. 내 생일, 8월 4일에 개국하는 거로 해봅시다. 그때는 YouTube도 없어질지 모르고 SNS도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뭔가 다른 것이 대체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로썬 팟 캐스트겠지만, 이 이야기를 현재에 멈춰 서서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은 무엇일지 알 수 없지만 5년 후의 가장 적합한 매체로「영화에 대하여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의 2편을 만들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미 말했지만 그러기위해서는 편집장으로서 정성일의 역할은 필수적입니다. (웃음) 인터뷰_ 2016년 1월 13일 날씨 흐리다가 갑자기 눈이 내림 참석자_ 김홍준 (영상원교수, 영화감독) 정성일 (영화평론가, 영화감독) 진행_ 유성관, 김홍윤 사진_ 김하영
2011년은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 소중한 날의 꿈 >, < 마당을 나온 암탉 >, < 돼지의 왕 >의 잇따른 개봉과 애니메이션 최초로 200만 관객 돌파, 부산국제영화제 수상소식 등 그동안 메말라있던 애니메이션계에 단비와 같은 소식들로 가득했던 한 해였다. 그리고 봄바람결이었는지, 저예산 장편애니메이션 제작지원제도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동안 독립단편을 꾸준히 만들어왔던 감독들의 기대도 높았다. 그러나 2012년 콘텐츠진흥원과 영화진흥위원회 사업계획에는 저예산 극장용 장편 사업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지난해 개봉했던 장편은 어느 날 갑자기 나온 작품이 아니다. 신화니 스타니 영웅이니 애니메이션의 시대가 오기를 바라는 많은 이들이 바래마지않는 것이겠지만, 아쉽게도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게 현실이다. 게다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과정은 우연히 좋은 작품이 나오기란 쉽지 않은 엄청난 끈기와 많은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다. 혹자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좋은 작품은 창조력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엉덩이에서 나온다’라고 할 정도로 오랜 시간에 걸친 꾸준한 작업이 애니메이션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즉 신화니, 스타니, 영웅이니 하는 것은 어느 날 벼락을 맞아서 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꾸준히 자신의 작업세계를 만들어온 이들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다. 홍길동도 어느 날 갑자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게 된 것이 아니다. 고된 수련의 과정이 필요했다. 요즘에 한류니 뭐니 하는 아이돌 스타들도 어릴 때부터 오랜 연습생 시절은 필수처럼 되어 있다. 애니메이션이라고 다르겠는가. 지난해 화제가 되었던 3편의 작품 역시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작품이 아니다. 각 작품의 감독들은 오랫동안 자신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작업들을 해왔다. < 돼지의 왕 >의 연상호 감독은 단편과 중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경험이 있고,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장편을 제작하였고 영화계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 소중한 날의 꿈 >을 만든 안재훈 감독 역시 단편, 중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하였고, 이외에도 다양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면서 11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동안 꾸준한 작업을 통해 장편을 완성하였고, 지금까지도 다양한 형태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관객 200만을 돌파한 < 마당을 나온 암탉 > 역시 국내 창작 애니메이션의 끈을 놓지 않고 고민해왔던 스튜디오 오돌또기의 작품이다. 즉, 어떤 작품도 혜성처럼 나타난 것이 아니라 오랜 경험과 독자적인 기획력을 가진 감독과 스튜디오가 만들어낸 결실이라는 점이다. 필자는 이들 작품이 신화가 되거나 전설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우리는 늘상 일어나는 일을 신화라고 부르지 않는다. 필자는 이들을 시작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들이 제작되어 관객들을 만나고, 평가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작품이 필요하다. 물론, 좋은 작품도 있겠지만, 때로는 비판을 받거나, 잊혀지는 작품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다양한 작품들이 나오지 않는다면, 애니메이션에 대한 어떠한 담론도, 그에 따른 관심도 그리고 계속해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자하는 이도 사라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예산 장편은 한국의 현실에서 새로운 애니메이션 시대를 여는 중요한 도전이고, 실험이다. 또한, 독립단편의 제작경험과 기획 창작력을 가지고 있는 독립작가 또는 스튜디오의 장편 제작의 길을 여는 밑받침이기도 하다. 그동안 정부는 단편 제작지원을 통해 한국에 애니메이션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밑바탕을 만들어왔다. 이제, 이러한 뿌리를 바탕으로 다양하게 뻗어나가고 있는 줄기가 튼튼하게 자랄 수 있는 발판을 만드는 지원이 함께 이루어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튼튼한 뿌리와 줄기가 피어내는 꽃이 바로 한국 애니메이션의 밝은 미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