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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정보
소림사 3탄 남북소림
- 감독
- 유가량
- 제작년도
- 1988
- 출연
- 이연걸, 황추연, 천해
웰컴 프레지던트
- 감독
- 도날드 페트리
- 제작년도
- 2004
- 출연
- 진 해크만, 레이 로마노, 마샤 게이 하든, 마우라 티어니, 크리스틴 바란스키, 프레드 세비지, 립 톤, 준 스큅, 웨인 롭스, 존 로스먼
수집자료
[newstapa]뉴스타파 24회 최용익 칼럼 - 김재우 이사장 연임의 속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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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이용관 BIFF 위원장 해촉 ‘꼼수’…영화계 “독립성 위협”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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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귀향' 열연 손숙, 마포문화재단 이사장 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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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일 부산일보 선임기자, 한국영화기자협회 회장 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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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청룡영화제 최우수 남우조연 연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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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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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초이스]동물원 인터뷰
지난 4월, 철의 여인이라 불리던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총리의 타계 소식을 접했을 때, 문득 아드만 스튜디오의 1989년작 단편 < 동물원 인터뷰 Creature Comforts > 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동물원에 (갇혀) 사는 동물들이 삶의 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작품은 대처가 총리직을 그만두기 1년전에 제작, 발표된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나는 개인적으로 당시 집권 보수당의 정책과 영국인들의 삶을 결부시키려는 집착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평론가의 가장 나태하고도 안일한 태도는 특정 작품을 제작 당시의 시대 상황이나 민족성/국민성과 같은 상상적 본질로 환원시키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마도 현실 삶과 작품의 연관 고리를 거두기 어려운 까닭은 인터뷰 형식이 깔고 있는 ‘목소리’ 때문일 테다. 남녀노소, 토박이, 이방인을 아우르는 등장 목소리들은 방금 전에 거리에서 인터뷰를 따온 듯한 생생함을 전달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로 분류되기도 한다. 눈을 감고 그들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분명 ‘자신의 삶’에 대해 면전에서 말하는 것 같은 착각이 여전히 든다. 이전에도 아드만은 ‘대화’ 시리즈 (Animated Conversations 시리즈와 Conversation Pieces 시리즈)를 만들면서 목소리의 현장성을 살린 선녹음 방식을 취했는데, 닉 파크의 합류 후 립싱크는 아드만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한층 강화되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 월레스 앤 그로밋 >의 그로밋은 말을 하지 않는다.) 현실과 연결된 또 하나의 장치는 카메라/스크린의 사각 틀이 만들어내는 프레이밍(framing)이다. 카메라는 이미 동물원 우리 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그 속의 동물과 바깥의 관람객을 구분하는 쇠창살이나 유리창은 사라진다. 그리고 마이크를 쥔 ‘사람’의 손이 프레임에 걸쳐있다. 인터뷰 중간에 프레임 바깥에서 프레임 안으로 공이 날아 들어오기도 하고, 물벼락이 들이치기도 한다. 이처럼 카메라가 잘라낸 프레임의 위, 아래, 양옆, 앞, 뒤로 끊임없이 개입하고 확장하면서 동물원 속 동물과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의 거리를 좁혀간다. 이들 동물원 속 동물이 말하는 안락함은 영국이라는 국가체에서 흥미로운 쌍곡선을 그린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로 대변되는 복지는 영국 근대 자본주의의 고안물이었고, 그러한 복지는 인류를 뛰어넘어 근대적 동물원의 효시격인 런던 동물원에서 보듯 동물의 안식처(라는 여전히 논쟁이 잦아들지 않는 주장)까지 확장되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이 작품이 만들어진 때는 신자유주의의 논리 속에서 공공 복지 부문이 처참히 파괴된 시기였다. 그래서 제도가 보장하는 삶의 안락함은 이미 인간의 세상에서는 사라졌고 (시장의 역할이 강화되면서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정글 세계로 내던져졌다), 동물원 울타리 속 동물들에게나 그럭저럭 허용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다보니 5분남짓의 짤막한 이 작품을 보다보면, 동물원이라는 전시 공간 속 전시물이었던 동물과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 관객의 처지가 어느 순간 역전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을 전적으로 철의 여인에게 헌정할 필요는 없다. ‘당신의 삶은 안녕하십니까’ 라는 인터뷰어의 질문은 그때나 지금이나, 영국이나 한국이나, 동물원이나 그 바깥이나 늘 그렇듯이 여전히 유효한 민생 관련 현안이지 않은가? 다만 어떠한 삶이 만족할 만한 삶인가에 대한 대답은 적어도 애니메이션 속 동물들의 목소리를 빌자면 단지 ‘밥 먹여주는’ 수준에 머물지는 않는다. 그리고 분문보다 더 긴 사족들 # 1. 브라질에서 건너온 사자는 아마존을 꿈꾼다. 실제 브라질 이주 남성의 목소리를 따온 이 동물을 사자라고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갈기 없는 수사자이거나, 고양이과의 다른 맹수이거나 하는 식으로 모호함을 남긴다. 2005년, 7/7 테러 직후 영국 경찰은 테러 용의자로 한 청년을 추적, 현장 사살하였다. 아랍계로 오인된 이 청년은 브라질에서 왔다. 인종적, 문화적으로도 이슬람권과는 연관이 없었다. 모호함과 선입견이 낳은 비극이었다. # 2. 이 작품을 지금 리메이크한다면 폴란드 억양이 추가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폴란드 이주 노동자의 대거 유입과 그들이 처한 현실을 다룬 한 시사 프로그램은 애니메이션 시리즈 를 패러디하여 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다. # 3. 막내 북극곰의 이름은 ‘앤드류’인데 (그렇다면 첫째 북극곰 이름은 찰스, 아빠 북극곰은 필립이라고 추정해볼 수 있다), 요즘 리메이크한다면 두 어린 북극곰의 이름도 윌리엄과 해리(헨리)라고 부를 법하다. 아드만은 장편 < 치킨 런 > 속에서 탈출을 꿈꾸는 암탉 진저를 질주의 속도감 속에서 다루었는데, 나는 다이애너 전 왕세자비와의 오버랩을 지우기 힘들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윌리엄이 득남을 하였는데, 아이를 돌보면서 자신도 흥얼대며 ‘곰 세 마리’ 노래를 불러주지 않을까. (익히 잘 알고 있듯이 동물의 세계를 Animal Kingdom, 영국을 United Kingdom이라고 한다.) # 4. 대처의 타계 소식을 전하는 영국의 언론 매체들은 이미 입을 맞춘듯 하나의 헤드라인을 손쉽게 뽑아냈다. “영국을 둘로 쪼갠 인물.” 이 분할비율이 5:5 가르마를 뜻하지는 않는다. 대처의 발자취를 기리는 다큐멘터리를 한국의 TV에서 방송했다는 사실을 영국인들이 안다면 자못 뜨아해 할 것이다. 혹자는 대처의 오랜 재임 기간이 영국인의 지지를 반영한다고 주장하고 싶을 테지만, 대서양 건너 그녀의 소울 메이트인 레이건의 연임과 결부시키면 당시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한결 손쉬울 것이다. 신자유주의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에서 이들이 침체에 빠져있던 당시의 경제 상황을 단숨에 끌어올린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경제 지표의 상승 뒤에는 공통적으로 전쟁이 놓여있고 (내전이 아닌, 자국 영토 밖에서 이루어지는 전쟁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서는 좀더 자세한 데이터가 필요할 테다. 다만 ‘20세기의 전쟁은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에 발생한다’는 에릭 홉스봄의 혜안에 기대보고자 한다), 이 전시 상황은 유권자의 표심을 끌어모으기에 가장 효과적인 방편이었으니까. 대처 시대의 트라우마는 그녀의 집권 기간 이상으로 오래갔다. 일례로, 2005년 선거에서 세번째 연임을 노리는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은 자신들이 등장하지 않는 선거 영상을 하나 만들었다. 주인공은 대처 정권에서 중책을 맡았던 마이클 하워드 보수당 당수였고, 영상은 대처와 메이저 전 총리로 이어지는 보수당 정권 시절에 이루어진 대량 해고와 공장 폐쇄, 노동자들의 항의와 이를 진압하는 경찰력, 단호한 정책 실행의지를 피력하는 보수당 정치인의 모습 등의 보도 사진들을 엮은 것이었다. 그 이미지들에 “Memories~”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노래를 얹는 것으로 게임 끝이었다. 이 선거 영상물의 제목은 ‘기억하는가?Remember?’였다. 당시 보수당은 조금 더 자극적인 선거 캠페인을 벌였다. ‘도대체 병원은 왜 이다지도 불결한 건가?’, ‘어째서 경찰들은 안 보이는가?’와 같은 도발적 문구를 낙서체로 휘갈긴 대형 포스터를 곳곳에 붙였는데, 유권자들은 친절히 그 포스터들 위에 보수당의 질문에 답을 달아주었다. ‘그러니까 병원 청소부를 자른 건 누군데?’, ‘경찰인력을 축소한 게 누구였을까?’라는 문구를 진짜 낙서 글씨로 말이다.
[초이스]보물섬
< 보물섬 >은 지금까지도 데자키 오사무가 연출한 역대 최고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는 TV 애니메이션으로, 당시 후지 TV의 경쟁 프로(똑같이 매주 일요일 저녁 시간대에 방영)였던 `니폰세계명작극장` 시리즈가 원작을 충실히 옮겨냈던 경우라면 데자키 오사무의 <보물섬>은 감독에 의해 원작이 얼마나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지를 제시했던 작품이었다. 일찍이 데자키 오사무가 생명력을 부여했던 캐릭터들은 만화(혹은 소설)가 만화영화화 되면서 보여지는 단순히 움직인다는 개념의 애니메이션이 아닌, 그 이상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스스로의 의지까지 함께 불어 넣어왔다. < 에이스를 노려라!> 의 오카 히로미, < 내일의 죠 >의 야부키 죠, < 집 없는 아이 >의 비탈리스 할아버지, 그리고 < 베르사이유의 장미 >의 오스칼. 이들은 모두 자신들의 운명을 거슬러 스스로의 삶의 이유를 찾으려 했던 캐릭터들로 원작에서 보여진 이미지들이 몇배는 증폭되어 애니메이션 속에서 더욱 강한 잔상을 남겨 놓게 된다. 데자키 오사무의 다음 타겟은 존 실버라는 남자였다. 스티븐슨 원작의 < 보물섬 >에는 단지 해적의 신분을 숨기고 배후에서 음모를 꾸미는 전형적이고 악당스런 이미지의 실버가 등장한다. 하지만 데자키 오사무는 이 캐릭터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다. 그리고는 악역이지만 카리스마가 살아있고 해적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인간적인 캐릭터로 실버를 재창조해 낸다. 그 결과 일본 애니메이션사에 어쩌면 가장 특별한 유형의 캐릭터가 창조되게 되는데, 이전까지 애니메이션들의 주인공은 하나 같이 어린이였다. 심지어 단순히 상상해 봐도 아무나 조작할 수 없어 보이는 그 복잡한 거대 로봇의 조종사들 조차 대부분 어린이이거나 청소년 연령 이상을 넘지 못했다. 그렇다면 어린이에게 주인공을 빼앗긴 애니메이션 속 어른들의 모습은 어땠을까? 비중적으로도 조연의 범주를 넘지 못하고 있었지만 애니메이션 속 어린이 주인공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모습은 대개 사욕에 눈이 먼 추악한 얼굴들로 묘사된 경우들이 많았다. 심지어 가장 현실적인 애니메이션 속 어른상을 보여주었다는 <기동전사 건담>의 브라이트 노아 조차 아무로 레이의 눈에는 한심한 기성세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어쩌면 이러한 어른들의 모습들 때문에 애니메이션에 대한 사회적 편견(어린이들만의 전유물)의 벽이 오랜 기간 허물어지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는데, <보물섬>의 외다리 해적 존 실버라는 캐릭터는 너무나도 달랐다. 물론 그 역시 껍질 안에는 악을 품고 있는 캐릭터였지만, 적어도 짐 호킨스의 눈에 실버는 동경의 대상이자 나중에 커서 자신이 되고 싶은 남자의 모습으로 비춰 진다. 주인공 짐의 그러한 바람은 시청자들에게도 똑같이 전달 되었고 이는 이전까지 어린이 주인공에게만 거의 일방적으로 할애되었던 캐릭터의 성격 배분 판도를 뒤집어 엎는 매우 의미있는 표본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데자키 오사무의 캐릭터 성격 배분은 실버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보물섬>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캐릭터들에게 하나하나 성격을 만들어 나누어 준다. 리브시 선생과 스몰렛 선장과 같은 인물들은 물론 해적이었지만 변심해 아군이 되는 그레이 같은 캐릭터는 조연임에도 방영 당시 실버 만큼의 지지를 받게 되며, 그밖에 검둥개, 키잡이 한스, 앤더슨 갑판장, 갈매기 빠삐 등 어느 한명도 잊을 수 없을 만큼 이들은 분명한 성격을 부여 받은 캐릭터들이었고 이에 자극을 받은 성우들의 호연까지 더해져 데자키 오사무의 <보물섬>은 진정한 명작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작품의 영상미를 담보해 주고 있는 것은 데자키 오사무 특유의 스타일쉬한 연출과 그의 명콤비 스기노 아키오의 작화력. 결정적인 순간에 화면이 정지 화면으로 바뀌는 하모니 기법의 완성자 미술감독 코바야시 시치로, 그리고 하모니와 함께 데자키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인 입사광 기법의 창시자 촬영감독 타카하시 히로카타의 황금 조합에 의해서 TV 시리즈임에도 매우 높은 퀄리티를 유지해 냈다.) 데자키 오사무의 < 보물섬 >에 대한 재해석은 최종회에서 최고의 빛을 발한다. 원작에는 없는 10년 후의 짐과 실버의 재회 장면을 에필로그로 추가한 것이다. 성인이 된 짐을 모른 척 외면하며 술집을 나가 버리는 실버. 더이상 그의 눈에는 꿈이나 미래의 빛을 찾아 볼 수 없는, 그저 늙고 병약한(짐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다. 하지만 실버는 기합을 넣어가며 힘차게 말한다. 마치 뒤에서 자신을 보고 있는 짐에게 말하듯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늙은 앵무새 플린트에게 다시 한번 날아 보라고 힘주어 말한다. 어디에 가더라도 어떤 일과 맞부딪치더라도 그런 마음만 있으면 우린 아직 얼마든지 날 수 있다고 의연하게 웃으며 실버는 마지막에 짐을 돌아 본다. 마치 저 마지막 한 커트를 보여주기 위해 이 작품을 만든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엄청난 감동의 잔상. 변하지 않았어. 나의, 나의 실버는! 제목: 보물섬 제작년도: 1978년 감독: 데자키 오사무 목소리출연: 와카야마 겐조( 박상일 ), 시미즈 마리( 김순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