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수의 전성시대
- 감독
- 김사겸
- 제작년도
- 1975
- 출연
- 송재호, 염복순, 최불암, 이순재, 도금봉, 윤영, 최지혜, 지계순, 이영미, 송미림, 이승열, 추봉, 임성포, 김기범, 이예성, 김진태, 이정애, 권일정, 김애라, 석인수, 김신명, 김경란, 장길수, 손전, 박광진, 김승남, 임생출, 김지영
“< 반금련 >에 인육을 먹는 장면이 있지만 30분이 넘게 검열로 삭제되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 < 이어도 >도 검열의 희생양인데 클라이맥스 부분이 무참히 잘려 나갔다.” 영화사에서 종종 덧붙여지는 수식어인 ‘저주받은’ 감독 혹은 걸작이라는 단어와 김기영 은 잘 어울린다. 1919년생인 그는 비록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서울대 의대까지 엘리트 교육의 수혜를 받았으나 그가 영화인으로서 통과한 한국 근현대사는 처절하고 가혹했다. 일제 강점기와 군사독재정권, 특히 그의 영화적 기량이 절정에 올랐던 1960년대부터 자행된 박정희의 유신독재는 한국영화사에 돌이킬 수 없는 상흔과 수치를 남겼다. 그 시대를 통과하면서 김기영은 자칭 영화 기술자이자, 스타일리스트로서 한국영화사에 유례없는 괴작들 혹은 저주받은 걸작들을 만들어냈고, 이후 비평계에서는 그를 ‘검은 마성의 감독’이라고 상찬했다. 한국 영화사의 대표 걸작으로 손꼽히는 < 하녀 >(1960) 이후 김기영은 1960-70년대에 걸쳐 제법 상업적인 성공작들을 만들어냈다. 그러던 1974년 그는 중국 장편소설 [금병매]를 바탕에 둔 영화 <반금련>을 1974년에 연출한다. 김포 일대에 세워진 거대한 오픈 세트장은 물론이고 정일성 촬영감독,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신성일 , 김영애 , 박암 , 박정자 그리고 과감하게 기용된 신인 이화시 까지 이 영화는 상업적 기획력(동아수출공사 제작)과 원작 [금병매]의 주요 캐릭터와 모티브를 과감하게 차용하고 비틀면서 김기영 감독 특유의 에로티시즘과 죽음, 멜로와 인간사에 대한 냉혹한 해부도를 펼쳐낼 작품이었다. 그러나 작업은 순탄치 않았다. 위에 인용한 김기영 감독의 회고처럼, 영화 <반금련>은 외설과 폭력 등의 이유로 수차례 검열당국으로부터 반려되었고, 결국 영화는 7년이 지난 1981년에야 공개된다. 그러나 이때 공개된 버전은 무려 30분 이상 잘려나가며 훼손되었고, 심지어 오리지널 버전은 완전히 소실돼 버렸다. 비운은 김기영 감독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반금련>에서 주인공 금련으로 데뷔했던 배우 이화시는 김기영의 다른 작품인 < 파계 >(1974), <이어도>(1977), < 수녀 >(1979) 등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선보이지만 당시 중앙정보부에 의해 뇌쇄적이고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영화사에서 퇴출당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반금련>은 그녀의 첫 데뷔작이자, 권력에 의해 좌절당한 이후 마지막으로 개봉한 영화가 되었다. 영화 <반금련>은 수년 전, 황무대 일족에 의해 멸문당했던 서문경(신성일)이 지방 현감의 권력을 등에 업고 소금전매업으로 부를 쌓아 복수에 성공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복수극으로 그는 황무대의 재산은 물론이고 그의 두 아내인 반금련(이화시)과 이병아( 염복순 )까지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이병아는 달아나버리고, 늙은 황무대에 성적으로 만족하지 못했던 반금련만이 서문경의 애첩으로 들어가게 된다. 주변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 않는 금련은 갖은 계략과 성적 도발로 서문경의 사랑을 독차지하지만, 얼마 후 붙들려온 이병아에게 서문경이 마음을 빼앗기며 위기가 시작된다. 질투와 탐욕, 파괴적인 성적 에너지와 암투로 일관하던 반금련은 결국 음모와 계략, 권력과 사회적 제도의 칼날 속에서 비극적인 운명으로 치닫게 된다. 김기영의 <반금련>은 원작인 중국 소설 [금병매]와는 확연히 다른 이야기구조와 캐릭터를 구축해간다. 원작은 오직 모티브로만 작동하며 김기영은 그 자신 특유의 영화적 세계를 펼쳐낸 것이다. 세트 안에 직조된 세계는 인간 세태를 응축하는 권력과 탐욕, 욕구와 공포, 삶과 죽음이 기묘하게 또아리를 튼 미궁과도 같으며, 그 안에 감금된 캐릭터들은 인간 본성의 동물적 에너지와 야만적 이성이 기묘하게 결합된 존재들이다. 남성들은 여느 김기영 영화 속 그들처럼 유약하고 기만적이며, 여성들은 성적 에너지를 자기 생존의 마지막 동아줄인양 처절하게 붙들고 있다. 김기영 감독이 일일이 디자인하고 배치했다는 중국 저택 공간의 복도와 밀실들, 그 공간들을 가로막는 무수한 격자 문양의 문들과 강력한 대비의 조명과 실루엣. 그 속에서 인물들은 경극 배우 혹은 중국 그림자극의 종이 인형처럼 인위적인 제스처의 연기들을 펼쳐 보인다. 특히 이화시가 연기하는 반금련은 남성들을 유혹할 때마다 기이한 손동작을 취하곤 하는데, 이러한 ‘제스처들’은 과히 김기영 모드라고 할만한 영화적 세계의 서명처럼 작동한다. (이러한 배우들의 연기와 움직임들은 그의 다른 영화들에서도 쉬이 발견된다. 가령 이 영화가 제작된 1974년에 공개된 그의 또 다른 작품 <파계>에서 배우 임예진이 연기하는 비구니 ‘묘향’ 역시 매혹적인 외모로 법통을 이어갈 수행 스님 침애를 유혹하게 되는데, 그녀 역시 손의 제스쳐를 통해 성적 욕구를 암시한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 영화의 압권은 금련의 집착과 성욕을 죽음을 넘어서는 사랑으로 완성하는 김기영 감독의 ‘의지’가 반영된 마지막 시퀀스이다. <양산도>(1955), <이어도>(1977) <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1978) 등에서도 강력하게 드러나는 네크로필리아(시체애호증)는 이 영화에서도 에로스와 타나토스(죽음충동)를 넘나드는 멜로적 사랑으로 승화된다. 본처(박정자)의 계략에 의해 목이 잘린 채 살해된 서문경은 훼손된 시신 상태로 석굴묘에 안치되는데, 이때 반금련은 본처의 지위를 그녀가 계승한다는 약속 하에 함께 매장되길 선택한다. 암굴에 시신과 함께 매장된 그녀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서문경에 대한 사랑의 광기 속에서 극기야 목 잘린 시신의 유령과 괴이한 정사를 나눈다. 독보적이고 독창적인 김기영의 영화적 세계와 스타일은 동시대 일본 감독 이마무라 쇼헤이와 비견할만한 지점이 있다. 그러나 이마무라 쇼헤이의 영화가 유기적인 서사구조와 플롯 배치 속에서 인간의 원초적인 성에너지와 욕정을 날것처럼 묘사하는 것이라면, 김기영의 성적 욕구는 타나토스와 마주하는 심리적 궤적이자 동시에 억압적인 사회에 짓눌린 남성성, 혹은 여성성의 권력과 쟁투를 암시하는 은유로서 작동한다. 김기영은 영화를 마치 인간을 해부하듯 세상의 표면을 가르고 그 안에 감추어진 복잡하고 소름끼치는 내면을 조명하는 것이라 말한 바 있다. 그리고 또한 한 번도 영화를 배워본 적 없고, 오직 나만의 방법으로 만든다는 그의 주장처럼 그의 영화는 때로는 모순과 비약, 불균질과 부조화, ‘언캐니(uncanny, 두려운 낯섬)한 불쾌’와 그 이면에 공존하는 ‘낯선 것의 쾌감’이 공존한다. 표현주의적 스타일의 자의식과 인간 사회에 대한 해부학적 묘사, 에로스와 타나토스처럼 공존하는 양면성을 폭로하는데 가장 탁월했던 김기영의 작품은 그래서 한 쇼트 혹은 시퀀스 또는 캐릭터만으로도 영화 전체를 사로잡는 검은 마성이 매혹을 발산한다. “나는 철두철미한 기술자이지 작가 감독이 아니다. 작가 감독은 유현목이다. 난 영화 만드는 것을 사랑했고, 때로는 작품성이 있든 없든 간에 영화를 대량 생산하는 기술자이다.” 한 인터뷰에서 김기영 감독은 자신을 ‘기술자’라 불렀다. 영화에 관한 애정으로 스스로 모든 것을 터득하고 발명하고, 완성해야만 했던 그러나 끝내 자신의 영화처럼 비극에 삶을 마감해야만 했던 한국 영화계의 독보적 거장의 인상적인 자기소개이자 비애이다. (* 인용된 김기영 감독의 인터뷰는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2007년에 개최한 ‘김기영 특별전’ 카탈로그에 수록된 내용에서 발췌한 것임) >> 반금련 고화질 VOD 보러가기 <<
2010년대 한국 영화에서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하나의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은 여성 서사일 것이다. 어쩌면 애초에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남성 서사에 경도되어 영화를 하리라 마음먹었을지 모르는 나조차 이런 생각을 마땅히 한다. 지금 여성 서사는 우리가 마주한 시대정신이다. 2000년대 이른바 한국 영화 르네상스가 도래하기 이전의 옛날 옛적 20세기에,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우리 방화(邦畫)를 주로 지배한 장르는 ‘에로’였다. 90년대만 해도 나는 한국 영화란 아무 맥락 없이 여자 옷이나 벗기려고 애쓰는 덧없는 이야기가 전부라고 생각했다. 이 한국형 착취 장르의 기원에는 70년대 ‘호스티스’ 영화가 있었고, 그 대중적 효시가 된 한 작품을 오랫동안 원흉으로 생각했다. 나의 이런 편견과 오해가 깨진 것은 미니홈피가 아직 유행하던 시절의 어느 날 밤 EBS에서였다. 영화란 직접 보기 전에 규정하고 떠들면 안 되는 것이었다. 70년대의 밤, 아기 업은 엄마를 조용히 뒤따르는 아이의 뒷모습과 연탄 쌓인 여인숙 골목길을 비추며 영화는 시작한다. 김밥을 파는 행상의 구성진 목소리가 주술같이 들리고, 봉고를 두들기는 재즈 퍼커션 사운드트랙이 깔리면, 어느 여인이 골목에 숨어있다 갑자기 나타나 허연 눈과 이빨과 손톱을 번뜩이며 귀신처럼 화면에 달려든다. 그리곤 경찰들이 어둔 골목의 여성들을 마구잡이로 잡아 끌고 간다. 윤락행위 단속에 걸려 속옷 차림으로 팔다리를 바동거리는 여인들 중에 우리의 주인공이 있다. 볏짚 거적 뒤에 숨었다가 들켜선 “난 잘못한 게 없다”는 그녀에게 경찰은 외친다.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숨어?” 새빨간 비닐 재킷을 입고 경찰을 향해 관객을 향해 세상을 향해 가까이 오지 말라는 듯 손을 뻗는 그녀의 얼굴 위로 주인공의 이름을 담은 빨간색 제목이 뜬다. ‘이젠 그만 가야지, 이젠 정말 가야지, 날이 새기 전에, 미련 없이, 돌아보지 말고 가야지’ 하는 노래와 함께 오프닝 크레딧이 흘러가는 이 영화가 바로 < 영자의 전성시대 >( 김호선 , 1975)다. 영자, 영자, 영자. 영화를 보고 나면 이 이름이 한동안 가슴에 사무친다. 월남 파병을 갔다 온 청년 창수( 송재호 )는 간밤의 일제 단속에 걸려 파출소에 갇힌 영자( 염복순 )와 3년 만에 재회한다. 창수는 친오빠인 척 영자를 철창에서 꺼내주고, 영자는 창수에게 혀를 메롱 내밀며 살짝 깨무는 시그니처 표정을 지어준다. 헤어지기 전에 창수는 철공소 노동자 막내였고, 영자는 사장 집에 갓 상경한 어린 식모였다. 현재 시점과 교차편집으로 보여주는 둘의 과거 속, 순진무구했던 영자는 비록 식모살이 처지라도 자존감과 자기 주관이 뚜렷한 소녀였다. 반말로 “넌 뭐니? 이름은 뭐니? 고향이 어디니?” 짹짹 물어대는 창수에게 영자는 “서울사람들은 아무한테나 반말하나요?” 하고 받아친다. 창수가 먼저 자기 이름을 밝히고 “나도 시골 놈이야” 고백하고 나서야 영자는 창수 얼굴에 고추장이나 묻혀주며 약간 마음을 연다. 영자가 좋아진 창수는 매번 자기만 꿍해서 “넌 나를 어떻게 생각하니?” 묻지만 영자는 창수가 그냥 귀찮다. 입대를 앞두고 3년만 기다려 달라고 매달리며 낑낑 우는 창수에게 영자는 “나는 서울에 돈 벌려 왔지 연애하러 온 게 아니”라고 똑 부러지게 말한다. 이도저도 안되면 억지로라도 안아보겠다고 달려드는 창수지만 적어도 영자가 싫다고 하면 곧바로 멈출 줄은 알았다. 그러나 피고용인 여자애가 NO라고 한들 멈출 줄도 모르고 멈출 필요도 없는 사장 아들이 영자를 겁탈하고, 이 일로 되레 영자만 쫓겨나면서 영자의 팔자는 기구한 쪽으로 향한다. 영자의 꿈은 돈을 버는 것, “기술을 배워서 평생 혼자 사는 것”이었다.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던 엄혹한 시대에 자신만의 기술을 가지려던 영자의 꿈은 이미 진취적이고 주체적이었다. 문제는 기술을 배우려면 우선 돈이 들고, 아직 세상은 기술을 갖고자 하는 여성의 의지를 비하할 뿐이었다. 서울에서 유일하게 의지할 아는 언니조차 “여자가 기술 가져봐야 팔자만 드셀 뿐, 그저 제일 좋은 기술은 그럴듯한 놈팡이 하나 골라잡는 것”이라며 영자의 꿈을 무시한다. 봉제공장 일용직으로 밤새도록 미싱을 돌리며 매일이 고단한 영자는 언니가 집에 남자를 데려오는 날이면 근처 여인숙에 가서 몇 푼을 내고 주인아주머니네 방구석에서 쪽잠을 자야한다. 온종일 재봉틀을 돌려 번 월급은 외상값을 제하고 나자 동전 몇 푼만 달랑 남는다. 정직한 노동의 대가는 황당하리만큼 적었지만, 이때만 해도 영자는 절망하기보단 깔깔 웃었다. 택시를 모는 여성 기사를 보고 운전을 배우리라 마음먹은 영자는 언니를 따라 홀에 나가지만 곧 그만둔다. 언니 말대로 아무리 “돈이 문제”라지만, 아버지뻘 남자들이 추근거리면서 운전 공부를 한다고 하니 집에 가서 밥이나 지으라고 비웃는 곳에 있기 싫다. 그래서 영자는 버스 안내양이 되지만, 매일 콩나물시루 같이 승객들을 미어터지도록 태운 버스에 위태롭게 매달리다 어느 날 불의의 사고로 왼팔을 잃고 만다. 나는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 충격이 잊히질 않는다. 그녀의 팔은 말 그대로 슝―하고 하늘 저편으로 날아가 버렸다! 70년대 일본의 ‘도에이 핑키 바이올런스’ 영화 따위나 찾아보며 낄낄거렸던 나는 이 한국영화의 표현주의 앞에서 깜짝 놀랐다. 나는 <영자의 전성시대>의 이 씬보다 더 잔인무도한 신체 절단 장면을 알지 못한다. 기술을 배우려던 젊은 여자에게 세상은 팔을 앗아간 값으로 달랑 30만원 보상금을 내어주며 “너무 비관 말고 용기 있게 살아가라”는 헛소리나 지껄인다. “고맙습니다” 말하고 돌아서는 그녀에게 언니는 이 돈으로 미장원을 차리자고 바람을 넣지만 영자는 그 돈을 모두 고향의 늙은 어머니와 동생들에게 보낸다. 자살 시도에 어이없이 실패하고 돌아와서, 없는 팔이 쑤시고 아파 약을 소주에 타 마시는 영자. 그녀가 지금껏 자신을 지탱해온 최소한의 자존과 존엄을 내려놓는 때는, 고통과 슬픔에 지친 나머지 그가 누구든 사람 품에 따뜻하게 안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다. 여인숙 주인의 은밀한 제안에 결국 응한 영자는 이 가난하고 더러운 골목에서 ‘밀로의 비너스’로 거듭난다. 도시괴담에 나오던 팔 없는 매춘부. 그녀가 바로 영자였다. 전역 후 목욕탕 보일러실 구석에서 숙식하며 세신사로 일하는 창수는 다시 만난 영자를 이렇게 내버려둘 수 없다. 김씨 아저씨(최불암)는 네 장래나 걱정하라지만, 창수는 영자의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한다. 영자의 성병 치료비를 내고 병이 나을 때까지 손님을 안 받고 술도 못 마시도록 일이 끝나면 매일같이 그녀를 찾는다. 영자 말대로 “남자는 절개, 여자는 배짱”이다. 김씨 아저씨의 군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창수는 영자와 같이 살 생각이다. 살림 차릴 최소한의 조건인 전세방 구할 돈은 아직 없지만 창수는 손수 의수를 만들어 영자의 빈 팔에 달아준다. 한쪽의 무조건적인 사랑은 숭고하지만, 받는 쪽은 마지막 남은 자존심과 의리 때문이라도 이 사랑을 마냥 받기만 할 순 없다.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되는 관계도 있지만, 하나 빼기 하나가 0이 되는 관계도 있다”는 김씨 아저씨의 말에 영자는 “마이너스 1”이 아니라 “보태기 1”이 되겠다고 나름대로 발버둥 친다. “두 사람 간신히 같이 끓여먹고 잠 잘 수 있는 방”만이라도 창수 손을 안 빌리고 자기 힘으로 마련하고 싶다. 영자에게 팔 병신 운운하는 녀석에게 주먹을 날린 창수가 구치소에 갇히고, 집행유예를 받아 풀려나기로 한 날. 꼭 오겠다고 한 영자는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창수도 영자가 왜 안 나타나는지 알 것 같아 가슴이 찢어진다. 둘이 다시 헤어지기 전에 영화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면이 있다. 창수가 한밤중 문 열기 전의 목욕탕에 몰래 영자를 불러 씻기고 때를 밀어주는 장면이다. 창수는 “이 때 좀 봐” 하며 영자의 등을 밀고, 창수에게 몸을 내맡긴 영자는 새삼스레 ‘창피함’에 대해 생각한다. 이 세상을 살면서 항상 당당하고 창피한 건 없었던 영자는 창수를 만난 이후 이상하게 모든 게 걸핏하면 창피하다. 창수는 영자에게 또 묻는다. “넌 나를 어떻게 생각하니?” 영자는 “고마운 사람”이라고 답하고, 창수는 바라는 대답이 아니라 조금 실망한다. 나는 이 장면을 다시 볼 때마다 인간에 대한 어떤 예의를 발견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그저 내가 욕망하는 대상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 깨닫는 순간이 있다. 내 옆에서 고단한 숨을 내뱉으며 자는 이 사람이 여자나 남자 따위가 아니라 이 세계를 역시 힘겹게 살아가는 같은 존재일 뿐이라고 깨닫는 순간이다. 그이와 내가 잠시나마 서로 지친 몸을 기댈 수 있다는 것은 그래서 얼마나 기적인가. 조선작의 원작 소설에서 영자는 불에 타죽지만, 김승옥이 각색한 시나리오는 영자를 위한 영화 나름의 다른 결말을 마련했다. 비록 그 시절의 한계가 있는 결말이지만 영화적 진실로서 더할 나위가 없고, 나는 영화가 끝날 때마다 흐르는 눈물을 훔친다. 내가 이 작품의 가치와 아름다움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방법은 이렇게 누군가를 향해 마냥 영화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뿐이지만, 결말만큼은 쓰지 않겠다. ‘두 눈을 꼭 감고 두 손을 맞잡고 하고픈 말들은 너무 많아요’ 마지막 삽입곡의 이 가사처럼, 어떤 이야기는 말이나 글로 전하기엔 한계가 있다. <영자의 전성시대>는 인간을, 여성을 착취하려고 만든 영화가 아니다. 여성 주인공을 통해 자본주의가 파괴하고 소외시킨 인간성을 내밀하게 들여다보는 영화였다. 그러나 이후 이 작품의 대중적 성공을 따라 복제, 재생산하며 유행하기 시작한 호스티스 영화들은 에로 장르로 급속히 변화하면서 도중에 인간과 여성에 대한 예의를 대놓고 빼먹기 시작했다. 나는 이들 장르의 영화 속에서도 날카로운 문제의식과 인간성을 잃지 않았던 몇몇 작품들이 오늘날 따로 불리어지기를 바란다. 여성 서사의 기준과 범위에서도 이러한 작품들이 적극적으로 포용될 수 있길 희망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영자 역할을 한 염복순 배우의 얼굴이 개인적으로 현대 여성의 외모처럼 느껴져 영화를 볼 때마다 매번 새롭다. 그의 얼굴은 (우리가 백치미라고 왜곡하는) 죄가 없는 순백의 표정에서 세상을 향한 환멸까지 변화무쌍하지만, 내내 자신만의 고고함을 잃지 않는다. 그가 아니었더라면 <영자의 전성시대>는 한 시대의 중요한 작품으로 한국 영화에 남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한국 영화 속 여성 서사의 역사에 ‘영자’의 이름이 오래 남아 빛나길 바란다. 그리고 2020년대에는 새로운 여성 화자(들)의 진정한 ‘전성시대’가 도래하길. >> 영자의 전성시대 VOD 보러가기 <<
1978년에 춘원 이광수 의 계몽소설 「흙」이 세 번째로 영화화된다. 「흙」은 1960년(권영순 연출)과 1967년(장일호 연출)에 이미 영화화된 바 있었고, 원작의 명성과 성실한 만듦새에 힘입어 두 번 다 흥행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그리고 ‘이광수 원작’의 ‘계몽적인 주제’라는 요소는 국가가 권장하는 우수영화의 작품성을 담보하는 것이었기에 < 흙 >은 으레 보상을 받고 해외영화제에 출품되기도 했다. 그러니 국책으로 민족계몽이 장려되던 1970년대에 이 소설이 다시 영화화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연출자가 김기영 감독인 것은 의외의 일일 수 있었다. 김기영 감독의 필모그래피로 보건대, 춘원 원작이 지닌 주제의식과 그의 영화 세계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어울리지 않는 만남이 이루어지면서 아주 흥미로운 결과를 낳게 된다. 「상록수」와 더불어 민족계몽소설의 상징과도 같은 「흙」이 김기영 감독의 손을 거치자 오히려 민족계몽을 해체하는 기묘한 애정심리극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근대문학의 문호이자 공산군에게 끌려간 반공지사 춘원의 계몽소설을 원작으로 했음을 내세우며, 당시 정권이 선호하는 농촌계몽을 통한 근대화와 민족의식을 주제로 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프닝의 첫 자막이 “원작 이광수 의 흙”으로 시작하는 것은 그러한 표지이다. 그것은 국책에 부응하는 문예영화이자 계몽영화로 보이는 전형적인 표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영화가 시작되자 민족주의의 핵을 이루는 가부장적 아비부터 부정된다. 허숭이 야학에서 돌아와 유순을 생각하며 정선과 비교해보는 것으로 시작하는 원작과 달리, 영화는 허숭 아버지의 장례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은 그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그것은 33인 중 한 사람이었던 아버지의 나팔을 두고 “나팔을 불든가 형무소 가는 ‘바보짓’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한 어머니의 유언을 허숭이 되뇌는 것을 통해 다시 확인된다. 이후 윤 참판 집으로 들어가 그 집 사위까지 되는 허숭( 김정철 )의 행보는 원작의 내용을 그대로 따르는 듯하다. 그러나 허숭의 동기와 내면에 대한 해석 면에서 영화는 원작이 표방하는 것과는 완연히 다르다. 사실 원작에서 허숭은 모순이 많은 인물이다. 특히 정선과 유순에 대한 태도에서 그의 이중성과 위선이 잘 드러난다. 그런데 그러한 허숭을 끊임없이 변호하고 합리화하는 것은 원작의 서술자이다. 그리고 그러한 서술자의 태도는 결국 모든 인물들이 허숭을 숭상하며 그가 지향하는 방향으로 교화되는 ‘계몽적인’ 결말을 이끌어낸다. 이와 달리 영화에서는 허숭의 욕망이 날것 그대로 노출되면서 허숭은 야심만만한 ‘촌놈’으로 표상된다. 윤 참판 집 문간방에서 고시공부를 시작한 허숭은 “고시에 합격해서 변호사가 되어 억울한 사람들을 위해 변호하고 싶다”고 피력하면서 한편으로는 ‘문간방에서 안방까지’ 올라가기로 결심한다. 두 가지 목표는 모순이나 위선이 아니라 ‘촌놈’의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순치될 수 있는 야망이다. 그래서 영화 속 허숭은 원작에서보다 오히려 일관성 있고 생동감 있는 캐릭터가 된다. 이는 허숭이 여자들과 맺는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영화에서 허숭은 유순( 염복순 )에 대해 오해받을 행동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허숭에게 첩으로라도 삼아달라고 매달리는 것은 당돌한 유순이다. 그리고 그녀가 허숭의 첩이 되고자 하는 것도 연심(戀心)에서라기보다는 배고픔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원초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속 허숭은 유순에게 별다른 관심 없이 데면데면한 것이기도 하다. ‘촌놈’으로서 야망을 향한 의지가 강한 허숭의 지향은 ‘서울 여자’에게 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윤 참판 집 주인이 되겠다는 애초의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는 이미 ‘서울 여자 정선’이 들어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는 촌놈 허숭과 서울 여자 정선의 처절한 멜로드라마가 전면화된다. 그런데 허숭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정선 캐릭터이다. 영화 속 정선은 소설에서처럼 허숭에 의해 정복되고 교화되는 대상이 아니다. 그녀는 ‘아무 일도 안 해도 좋으니 일생동안 붙어서 자신을 즐겁게 해줄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하고, 친일파를 일러 “그거 다 뛰어난 사람들”이라며 자신은 이념이나 가치를 따지기 이전에 잘 살고 싶다고 외친다. 그녀는 김갑진의 아이를 배고도 허숭 앞에서 당당하게 이혼을 요구하고, 오히려 이혼해주지 않는 허숭과 이혼하기 위해 친구에게 남편을 유혹해달라고 제의한다. 그녀는 서울 귀족으로서의 우월감이 대단한 데다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데 거침이 없는 인물이다. 영화에서 그녀가 원래 가진 욕망과 성격은 ‘플루트’로 상징된다. 허숭이 결혼하자마자 정선이 플루트 연주하는 것을 금하는 것은 그녀의 욕망과 성격이 허숭의 가부장적 권위에 반하는 것임을 말해준다. 이 영화의 갈등구조는 이러한 ‘정선의 플루트’와, 앞서 언급한 ‘허숭 아버지의 나팔’이 함축하고 있다. 허숭은 아버지처럼 되지 말라는 어머니의 유언을 새기면서도 결국 아버지처럼 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가부장으로서 정선도 장악하고 농촌도 계몽하려고 했으며 일본 검사 마사키와의 대결에서도 이기려고 했다. 그 결과 그는 아내와 거리가 멀어졌고, 농촌에 머물지 못하고 피고가 되어 법정에 서야 했으며, 형무소에 가야 했다. 마찬가지로 정선은 촌놈 허숭에게 호기심과 더불어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매혹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느끼는 자기 자신을 불쾌해 하며 인정하지 못했다. 처음 만난 허숭에게 “결혼하시면 부인을 행복하게 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나, 교회에서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로 ‘사탄, 마귀’라고 과도하게 힐난하는 것은 그녀의 이중적 욕망을 잘 보여준다. 정선이 다리를 잃게 되는 것은 자신의 모순된 욕망을 주체하지 못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나팔과 플루트의 갈등이 허숭과 정선의 애증으로 드러나며 극단적으로 치닫는 과정에서 심리적 긴장과 기묘한 박진감을 자아낸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는 데에서 다시 한 번 결정적으로 원작과 달라질 뿐만 아니라 김기영 식 전유가 발생한다. 형무소에서 피폐해진 몸으로 출감한 허숭은 나팔을 가리켜 “이것 때문에 5년을 살았다”며 과거 자신의 ‘영웅적’ 행동을 후회하고 부정한다. 그리고 정선에게 이혼을 승낙하고 떠나려 한다. 이때 정선이 “3년 이상 별거하면 이혼이 성립되는 것”이니 이미 이혼 승낙은 의미 없다고 말하고는, 나팔로 ‘올드 랭 사인’을 불어 허숭을 돌아오게 한다. 이로써 < 흙 >은 전통적 가부장의식과 근대적 자유주의를 내세우는 남녀가 부부로서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성장한 인간의 행동에는 남녀 개인의 자존과 상호 존중에 입각한 협의가 들어있다. 허숭이 자신의 핏줄이 아닌 정선의 딸을 업고 집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장면이 해피엔딩을 넘어 1970년대 영화로서 매우 남다른 것은 그 때문이다. 김기영 의 < 흙 >이 제작된 1970년대 말은 가부장적 권력의 전횡과 부패 속에서 이미 가부장적 권위는 무너진 시대이자 여성의 순결에 집착하면서 한편으로는 그 순결의 훼손을 관음하는 것을 통해 못난 남성성을 위로하는 ‘방화’가 판치던 시기였다. 이때 그 모순된 남성성의 원조라고도 할 수 있는 춘원의 민족계몽소설이 김기영 감독의 손을 거치며 관념적이고 위선적인 계몽의 외피가 벗겨진 채 시골 남자와 서울 여자의 적나라한 욕망과 개인의식의 치열한 각성을 보여주는 멜로드라마로 거듭난 것은 의미가 깊다. 여기에 1970년대 영화의 반어적 수사학과 그로 인한 의외성의 의의가 있기도 하다. 요컨대 <흙>은 정부가 권장하는 ‘문예’와 ‘민족계몽’을 외피로 삼고 있지만, 그 이면에서는 오히려 그것에 반하여 그것을 해체하는 구조로 이루어진 영화이다. 그러한 점에서 ‘청년의 명랑’을 표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어떤 영화보다도 우울했던 < 바보들의 행진 >( 하길종 , 1975)이나 < 어제 내린 비 >( 이장호 , 1974)와 동궤를 이루는 영화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