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랩스 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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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
스티븐 킹의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접할 때면 근심이 앞선다. 만화식 표현으로, 얼굴에 빗금이 가는 것이다. 이번에는, 괜찮을까? 소설을 영화화면서 원작보다 재밌기는 쉽지 않다고들 하는, 그런 일반론과는 또 다르다. 스티븐 킹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중 한국에서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작품은 < 캐리 >(1976) < 샤이닝 >(1980) < 쇼생크 탈출 >(1994) < 스탠 바이 미 >(1986) < 그린 마일 >(1999) 정도인데, 이 중 스티븐 킹이라는 이름이 독보적인 브랜드로 기능하는 공포 장르에 속한 것은 <캐리>와 <샤이닝> 정도다(참고로 스티븐 킹 소설을 영화화한 중 가장 히트를 기록한 작품은 <그린 마일>이다). 이쯤에서 스티븐 킹의 팬이라면 공포물을 포함한 영화 몇 편은 더 꼽을 수 있으리라. < 미스트 >(2007) <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 Apt Pupil >(1998) < 미져리 >(1990)가 그런 영화들이 될 것이며, < 크리스틴 >(1983) < 쿠조 >(1983) < 공포의 묘지 Pet Sematary >(1989)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 정도면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2017년 8월 현재, IMDb(imdb.com)에 스티븐 킹의 이름이 영상화(애니메이션, 단편, TV 시리즈, 후반 작업 중인 미개봉작, 북미대륙 외의 지역 작품 포함)된 작품 크레디트에 오른 경우는 239편에 이른다. 인터넷 매체 마켓워치(marketwatch.com)는 “왜 큰 예산이 스티븐 킹 영화에는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나- 스티븐 킹은 이전 어느 때보다 할리우드에서 뜨겁다. 다만 그에게 블록버스터 대우는 하지 말 것”이라는 기사를 썼다. 스티븐 킹의 장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61편의 영화와 28편의 TV 영화를 분석한 결과다. < 다크 타워: 희망의 탑 >의 스코어가 결국 예상을 밑돌자 이런 기사가 나온 것이다. “많은 영화들은, <다크 타워: 희망의 탑>처럼, 비평적으로나 상업적으로 기대를 밑돌았다.” 영화 < 그것 >을 비롯해 TV 시리즈 <미스터 메르세데스>와 넷플릭스 영화 <제럴드의 게임> <1922>도 올해 선보인다. 이 기사는 예산이 늘어날수록 상업적 운명은 더 암울하다는 웃지 못할 분석을 곁들인다. 심지어 이런 징크스가 영화 뿐 아니라 TV 시리즈에도 적용된다며 <11/22/63>의 예를 들었다. 스티븐 킹은 2008년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에 기고한 글에서 “나를 정말 겁먹게 한 열 편 남짓한 영화를 떠올려보면, 가장 좋은 공포영화란 누군가의 지하실이나 차고에서 만들어낸 특수효과로 이루어진 저예산 영화들이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는데, 참고로 말하면 스티븐 킹은 같은 매체에 오래 칼럼을 연재하면서 자신이 뽑은 자기 소설 영화판 탑10을 꼽으며 < 캐리 >와 < 샤이닝 >을 제외시켰다. <공포의 묘지>는 포함시켰는데, 이 작품으로 말하면 스티븐 킹 자신이 각본작업에 참여했다. 기대가 컸고 실망도 컸으며 어쨌든 스티븐 킹은 < 공포의 묘지 >를 좋아한다. 빼어나게 재미있는 (인기도 있는) 원작 소설이 있으면 영화로 만들기 더 쉽지 않을까? 물으나 마나인 듯한 이 질문은, 그러나, 답하기 영 쉽지 않다. 한국에서야 스티븐 킹이 베스트셀러 작가는 아니지만 미국에서는 늘 그의 신간이 주요 매체에서 리뷰되고 베스트셀러 목록에도 오른다(참고로 한국에서 가장 인기 높은 스티븐 킹의 책은 소설이 아닌 에세이 「유혹하는 글쓰기」다). “그는 호러의 제왕이 아니었다. 킹은 이야기의 제왕이다”라고 소설가 정유정은 ‘정유정 작가가 소개하는 스티븐 킹- 제왕을 가슴에 안다’라는 글에서 쓴 바 있는데, 스티븐 킹의 공포물이 유독 원작에 비해 박한 평가를 받거나 부족하게 만들어진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그것은 스티븐 킹 특유의 공포가 문학적이기 때문은 아닐까. 그의 소설을 영화로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진짜 같은 특수효과나 영상기술이 아닌지 모른다. 스티븐 킹의 소설이 나를 공포에 질리게 만든 가장 큰 이유는 그가 행복/낙관과 불행/공포를 으깨 하나로 뭉쳐놓고는 나머지는 책 읽는 내가 알아서 상상하게 만들어버린다는 사실이었다. 「샤이닝」의 ‘아버지’ 잭은 어린 시절을 이렇게 떠올린다. “아버지와 그의 관계는 아름답게 피어날 수도 있었지만, 다 피고 나니 속이 썩어 있는 꽃과도 같은 것이었다. 일곱 살이 되었을 때까지 잭은 두드려 맞고 멍들고 이따금 눈까지 멍들어도, 키 크고 배 나온 아버지를 아무런 미움 없이 열렬히 사랑했다.” 이 기억은 행복인가 불행인가. 둘 다다. 행복을 소환하면 불행이 따라오고 불행을 억누르면 행복도 억눌린다. 그의 이야기에는 가족 단위의(최소한 가족의 선명한 그림자 안에 있는) 주인공들이 많고, “할은 가슴에 걸리는 뭔가가 느슨해지는 기분이 들었다”(단편집 「스켈레톤 크루」에 수록된 「원숭이」 중에서) 같은 문장이 나오면 이제 진짜 무서운 게 나오리라는 예감에 떨게 된다. 스티븐 킹은 책을 읽는 사람이 적극적으로 상상하게 만드는 공포의 세계를, 읽는 사람이 저마다의 가장 두려운 기억을 소환해 거기에 자신의 무언가를 걸게 만드는 글을 써왔다. “많은 사람들은 내 이야기가 무섭다고 하지만, 이야기의 결론과 상관없이, 나는 조금도 웃음을 유발하지 않는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다.”라고 스티븐 킹은 쓴 적이 있다. 그게 바로 댁이 무서운 이유야 이 양반아, 하고, 춥지도 않은데 팔을 쓸어내리며 그를 타박하게 된다. 이 기분을 영상으로 표현하기, 만만할 리가 없잖나. 그러니 나는 태어나 생일파티에 불러본 적도 없는 피에로를 한평생 무서워하며 살게 되는 것이다. [연관글] #0 칼럼 연재를 시작하며 by 유성관(한국영상자료원) #1 암흑의 탑으로 향하는 머나먼 길 by 장성주(다크 타워 시리즈 번역자) #2 스티븐 킹의 작품을 영상화 하기 힘든 문제에 대하여 by 이다혜 (북칼럼니스트) #3 아무나 좋아하는, 혹은 아무나 좋아할 수 없는 by 조원희 (영화감독)
지난 몇 달간 그야말로 전 세계는 영화 < 아바타 > 열풍으로 들썩거리고 있다. 국내에서도 <아바타> 대박 열풍이 이어져 극장가에서는 연일 관객 동원 상종가를 치며 외화로는 처음으로 천만 관객 대열에 합류하더니, 이젠 < 괴물 >의 기록(1,301만명)을 넘어서고 말았다. (영화관 통합전산망 집계결과 2010년3월10일 현재 13,203,595명) 기존 영화에 비해 두 배 가량 비싼 입장료임에도 개봉 10주차가 넘어가는 시점까지 < 아바타 > 아이맥스관은 여전히 영화표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쉽지가 않았다. 한마디로 <아바타>가 ‘대세’인 셈이다. 이거 꼭 어디서 봤던 판이다. 갑자기 덴젤 워싱톤이 출연했던 < 데자뷰 >처럼 뭔가 익숙한 기분이 들며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다. 1997년 겨울, 그때도 영화 한편이 세상을 들었다 놓을 만큼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전 세계 영화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적이 있었다. 흡사 지금의 아바타 신드롬처럼 그때도 사람들은 이 영화에 열광하며 어딜 가나 이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 중심이 되는 영화는 다름아닌 < 타이타닉 >이었고, 감독은 <아바타>를 만든 바로 그 사람, 제임스 카메론이었다. 그가 꼭 12년 만에 아바타로 돌아와 다시 한 번 영화계의 판도를 바꾸며 본격적인 3D 영화 역사의 새로운 챕터를 쓰고 있는 것이다. 아바타는 CG 혁명을 일으키며 화려한 테크놀로지의 향연을 선사하면서 2D, 3D를 넘어 4D까지 점령하며 세계 최고 흥행 영화로 기록되었다. < 아바타 >의 성공으로 국내 3D 시장도 들썩거리며 활기를 띠고 있다. 정부는 차세대 융합형 콘텐츠 육성 전략을 발표하며 국내 CG산업을 최우선 집중 육성 과제로 선정한 바 있지만, <아바타>를 비롯한 3D 영화의 돌풍에 자극받아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CG산업 육성계획으로 확대하여 서둘러 다시 발표했다. 본격적인 디지털 시대를 맞아 방송을 비롯한 영화, 애니메이션, 광고, 게임 등 디지털 콘텐츠 분야에 핵심 기반으로 떠오른 CG를 차세대 융합콘텐츠 육성전략의 후속조치로 국가적 차원에서 향후 4년간 총 2천억원의 자금 지원을 팍팍 해주면서 CG 산업의 글로벌 진출을 통한 콘텐츠강국으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다져 나가겠다는 계산인 셈이다. 최근 몇 년간 국내 CG산업은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IT 기반의 첨단 디지털 기술력을 근간으로 세계 시장의 높은 벽을 두드리며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이루고 있다. 영화 < 괴물 >을 비롯해 < 해운대 >, < 전우치 > 등 한국 영화에서도 CG기술은 이제 필수 불가결한 성공의 요소로 대두되었고, < 불멸의 이순신 >을 비롯하여 한국형 블록버스터 드라마를 표방했던 < 아이리스 > 같은 방송 드라마에서도 이젠 수준 높은 CG기술을 심심찮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국내 CG 산업은 컴퓨터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기술의 급속한 발전을 통해 2D에서 3D 기반으로 그 무게 중심이 빠르게 옮겨가고 있는 추세이며, 실제로 이런 변화를 가장 빠르고 활발하게 수용하고 있는 것이 애니메이션과 영화 분야일 것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CG 기술이 적용된 초기의 애니메이션과 영화들은 지나치게 화려한 볼거리에만 치중한 나머지 스토리를 간과하는 실수를 범하며 침체기를 이끌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시도들은 기술적 관점에서 영상기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며 그 가능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이제 한국 CG산업은 본격적인 제2의 CG기술 발전 모드로의 변환을 꾀하고 있는 시점에 서있다. 해외 기관들과 관련분야 최고의 대학들과 연계하여 CG분야의 고급 인력들을 양상하고 국내 교육기관을 통해 CG분야의 전문가를 길러낸다는 비전도 세우고 있어, 이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인력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정부의 자금지원과 인력육성 정책이 마냥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한국 애니메이션의 발전을 위해 당시 정부는 관련 학과 설립과 더불어 연관 산업에 어마어마한 지원금을 투자하며 애니메이션의 부흥기를 꾀했으나 연이어 개봉한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흥행실패로 정부의 지원정책은 급속히 감소하고, 수요에 비해 과잉 공급된 애니메이션 전문 인력들은 갈 곳을 잃고 뿔뿔이 흩어지거나 다른 분야로 유입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렇게 한때 잘나가던 애니메이션 산업이 빙하기를 맞게 된 쓰라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런 전철을 다시 밟지 않았으면 하는 기우에서 하는 소리이다. 프론티어 정신도 좋고, 흥행대박도 좋다. 그런데 몇 년 안에 CG 혁명을 일으켜 세계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단기 전략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뭐 하나 뻥 터지면 부화뇌동하여 무한 질주 본능으로 무작정 뛰고 보는 자세는 버려야 할 것 이다. 기술력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도 좋지만 자칫하면 현란한 기술은 단지 기술로만 난무하게 될 수 있다. 2008년 시그래프 아시아 컨러퍼스에서 PIXAR의 롭 쿡이 연설 내내 강조한 말이 있다. 예술은 기술에 도전하고, 기술은 예술에 영감을 주는 영원한 동반자의 관계이다. 인간의 상상만으로 끝났을 아이디어들이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의해 실제처럼 화면에서 구현되고 있다. 이것이 단순히 기술적인 진보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술과 기술이 정서적 교감을 나눌 수 있는 하이브드리(Hybrid)적 사고가 앞으로 우리가 고민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숙제가 아닐까 싶다.
<한국최초의 키네스타시스 애니메이션- 성웅 이순신 ( 김용환 화백-1958년 추정)-ⓒ Kim YongHwan> 한국 애니메이션의 역사는 거의 50년이 되었으며, 그 최초의 작품으로 인정되는 김용환 화백의 ‘ 성웅 이순신 (1958년 추정)’ 삽화가 키네스타시스(kinestasis-정지된 그림, 사진 등을 카메라 워크를 사용하여 촬영한 다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애니메이션 제작방식의 일종) 방식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 ‘TV쇼-진품명품(KBS1-TV-2007.11.25일 방송분)’-제작진은 “코주부 김용환 선생이 이순신 장군 서거 360주년인 1958년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전 KBS 아나운서 박종세 가 내레이션을 맡은 이 작품은 이순신 장군의 어린 시절부터 임진왜란 상황까지 충무공의 일대기를 30분 분량으로 담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애니메이션 형식을 갖춘 작품은 문달부 화백의 럭키치약 CF광고 (1957년 -HLKZ-TV), 또한 정도빈 화백의 단편 애니메이션 ‘ 개미와 베짱이 (1962년-국립영화제작소)’, 그리고 신동헌 감독, 신동우 화백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 홍길동 (1967년-세기상사)’이 한국 애니메이션의 시작을 알리는 실제적인 신호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최초의 CF광고- 럭키치약 ( 문달부 -1957년) -ⓒ Moon DalBu> <한국최초의 총천연색 창작단편 애니메이션- 개미와 베짱이 (1962)-ⓒCheong DoBin> <한국최초의 총천연색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홍길동 (1967) -ⓒSegi SangSa/Shin DongWoo /Shin DongHun> 이처럼 초창기 한국 애니메이션은 지극히 한국적인 창작애니메이션(Creative Animation) 작품들로 시작되었다. 이것은 외국의 캐릭터나 스토리에 어떠한 영향도 없는 순수 한국적인 작품들 이었다. 특히 캐릭터 디자인은 한국의 주변국인 일본이나 중국 캐릭터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모습이나 형태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이처럼 좋은 출발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것’이라고 할 만한 제대로 된 작품 몇 개도 없으며, 심지어 표절과 모방의 치욕까지 안고있는 것이 현재 한국 애니메이션이 직면한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들의 발단은 한국 창작애니메이션이 최초로 시도되던 초창기인 1962년~1967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당시에 국내 창작물의 제작비는 매우 심각할 저렴하여 지속적인 제작환경에 많은 어려움을 가져 다 주었고 그에 따라 애니메이션 종사자들의 생계도 치명적일 정도로 어려워졌다. 이러한 문제점이 있던 차에, 제작 단가가 매우 높은 해외용역 작품들이 국내로 유입되었고, 애니메이터들이 그 쪽으로 눈을 돌리면서, 국내창작 보다는 국외용역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애니메이션-용역 측면에서의 문제> 제일 먼저 삼성의 동양TV(TBC TV/1966년 황금박쥐 , 요괴인간 )가 일본 작품들을 들여오고, 국제아트(1968년)가 미국 보세 작품들을 국내에 들여 오면서, 창작보다는 용역, 보세 작품들에 전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국내 창작보다 보세가공(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 주문자상표 부착방식)이 경제적으로 더 윤택해 질 수 있는 길이었으며,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약 10년간 진행된 일본과 미국 등지의 해외용역(OEM)은 2D애니메이션 제작을 통하여 국내에 외화를 벌어들이는 효자역할을 하였다. <삼성의 동양TV(TBC-TV)가 일본 작품들( 황금박쥐 , 요괴인간 -1966년)을 들여오면서, OEM 작품들의 제작이 봇물을 이루었다.-ⓒ일본 제일동화/NHK-TV> 그러나 그 초반부터 일본은 제작방식의 노하우를 쉽게 전수하여 주지 않은 반면, 미국은 과감하게 제작방식의 노하우를 전수하여 주었다. 즉 일본은 자체 기술을 어렵게 전수시킴으로서 하청국가를 장기간 손안에 가지고 있겠다는 속셈이었고, 미국이 초반부터 기꺼이 기술을 전수한 이유는, 자신들은 자국에서 편안한 정신적 노동부분(프리 프로덕션-창작 및 기획)을 담당하고, 힘든 육체적 노동부분(메인 프로덕션 전체와 포스트 프로덕션 일부)은 해외용역으로 해소하고자 한 점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 당시 선진국들(일본, 미국 등)은 2D 애니메이션 제작부분 가운데서 주로 고급 두뇌 산업(기획부분)에만 주력하면서, 고되고 힘든 육체적 노동 부분인 소위 막일 (노가다-일본어)에 해당하는 제작부분은 하청방식으로 개발도상국과 중진국들(한국, 대만 등)을 그야말로 스마트하게 이용하였다. 그것도 ‘한국이 세계적인 제작 능력을 가졌다’는 입에 발린(?) 찬사(very good!, wonderful!, fantastic, best 등)와 심지어 한국이 자신들 보다 ‘더 잘 만들고 세계적 첨단기술을 가졌다’는 착각 속에 빠져들게 할 정도의 극찬을 아끼지 않으면서 장기간 활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밀월 관계는 당시에 10여년을 넘기지 못하고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즉 하청방식의 제작비가 초기와는 달리 시간이 흐르면서 감당하기 어려운 천정부지로까지 올라갔기 때문이다. 이에 수익에서 짭짤한(?) 재미를 볼 수 없었던 미국, 일본은 2D애니메이션 제작기술이 약간 떨어지기는 하지만, 제작이 어느 정도는 가능하면서도 하청 제작비가 보다 저렴한 베트남, 필리핀, 북한, 중국등지로 대부분 하청의 물꼬를 돌렸다. 하지만 이러한 악순환과 연쇄고리는 현재 또다시 3D 산업에서 똑 같은 방식으로 재현되고 있다. 이는 소위 선진국이 일부 합작을 제외하고, 다시 첨단 3D 애니메이션 제작부분 가운데 두뇌 산업인 창작, 기획은 그들의 자국에서 대부분 해소하고, 소위 막노동에 해당할 수 있는 메인 프로덕션과 포스트 프로덕션은 또다시 해외의 하청 국가들에게 떠 넘기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예전과 마찬가지로 ‘당신들 기술은 세계적이다.’, ‘당신들은 첨단기술을 가졌다’ 등의 찬사를 아끼지 않으면서… 물론 기술적인 측면에서 한국이 잘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 기술은 첨단일지 모르겠지만, 새로운 것을 기획, 창작해내는 콘텐츠(contents) 부면에서는 너무나도 빈약함을 금할 길이 없다는 난제를 여전히 안고 있는 것이다. <애니메이션-인식 측면에서의 문제> 한국에서 애니메이션 제작은 국민적인 관심을 받는 분야인 것 같다. 이러한 관심이 30여년 이상 애니메이션 분야에 있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반갑기는 하지만, 그에 대한 국민의 올바른 인식이 부족하다는 점에서는 안타까울 수 밖에 없다.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열광적이기 까지 하다. 하지만 흔히들, “나는 어려 서부터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너무너무 좋아한다.” “나는 그림이나 만화 그리기를 좋아한다.” 즉 ‘나(성인이라면 대다수)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고, 그것들은 주로 아이들이 보는 것이니, 나(성인이라면 대다수)도 만들 수 있다’라는 착각에 쉽게 빠질 수 있는 분야가 애니메이션이다. 오랜 세월 동안 애니메이션은 주로 아동들이 보는 것으로 인식되어 오면서, 그것을 제작하는 것도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아주 간단한 작업이나 직업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만연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애니메이션 속의 인물인 캐릭터는 누구나 쉽게 취급되는 만화적인 2D그림이거나 3D모델일 수는 있지만, 그 가상 공간 속의 인물들도 실사영화 속의 노련하고 경험이 풍부한 연기자(배우)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애니메이션이 대부분 만화적인 요소가 있기는 하지만, 머리 속의 생각이나 상상 혹은 꿈을 애니메이션 적으로 표현하거나 현실화 시키는 것은 그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영상을 동작만이 아니라 감동적인 연기로까지 발전시키는 일은 더 더욱 쉬운 일이 아니다. <애니메이션-교육 측면에서의 문제> 애니메이션 교육 측면에서 우리는 심각할 정도의 문제를 안고있다. 단편이나 실험 애니메이션은 새로운 영상예술의 세계를 표현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주요 과정이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교육과정이 실험이나 기획, 혹은 툴 위주의 우선순위에 머물러서는 산업적으로 활개를 펼 수가 없다. 대학에서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실험 애니메이션)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그 이상으로 그라운드(ground-상업 애니메이션)도 활발해지도록 교과과정의 많은 부분에서 현장 맞춤교육에 초점을 맞추어야만 할 것이다. 미술에도 순수미술이 있다면, 상업미술도 있지 않은가! 대학이 순수 애니메이션 제작 교과과정에 대부분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졸업작품의 수준은 좋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교과과정이 현장 맞춤교육이 아닌 관계로 졸업 후 취업이 대부분 불가능한 경우가 허다하다. 재학 시절 졸업작품 한편 잘 만들었다고 해서, 곧바로 전문 감독이 되는 것이 아니며, 애니메이션 산업현장에 곧바로 적응할 수 있는 것은 더 더욱 절대 아니다. 또한 전국에 걸쳐 대학내의 애니메이션 전공 교수들 대부분이 실제로는 미술이나 디자인 계열 전공자가 대부분이다 보니 애니메이션 제작현장에서의 실제 경험이 전혀 없거나, 짧은 경험 만으로 비전공 상태에서 애니메이션 전공 교수가 되어 실제 교육과정은 빈 상자 속과 같이 텅 비어있는 경우가 허다하며, 맡겨진 수업도 수치화(numerical)할 수 없는 기획이나 툴(tool) 사용 위주의 손 쉬운 교육 쪽으로 슬그머니 피해가고 있는 것이 현 실정이다. 이성을 가지고 살펴보자면, 미술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실제 미술경험도 전혀 없는 사람을 미술전공 교수로 채용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애니메이션 전공에 있어서는 그 순수함이 엄연히 침해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와 같은 환경 아래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전공 학생들이 떠 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빈약한 교육환경 아래서 학생 각자는 그들이 선택한 애니메이션 전공분야에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원하는 만큼 흡족하게 얻을 수 없다는 의미가 된다. 한편 한국의 교육은 아직까지도 암기위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만인이 다 아는 사실이다. 설상가상으로 이러한 정답 암기 교육방식은 무한한 상상력의 결과물인 소프트웨어적 콘텐츠 생산에 제약을 가할 수 밖에 없다. 우리의 생각은 무한한 상상(unlimited imagination, infinite imagination)의 나래를 펼칠 수 있어야 하는 영역이지, 단지 정답만을 저장하는 제한된 틀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창작, 기획을 진행할 때, 우리의 암기교육 경험이 우주보다 넓은 우리의 무한한 상상력을 가로막고 방해하지 못하도록 분투하여야 할 것이다. <애니메이션 산업이 활발해질 수 있도록 학교에서의 교과과정도 많은 부분 현장 맞춤과정으로 현실적인 초점이 맞추어져야만 할 것이다.> 또 다른 불리한 환경여건은 미주나 아시아, 유럽 등지의 젊은이들이 그들의 자유롭고 뛰어난 교육환경 속에서 수많은 독서생활을 즐기고, 그들 인생의 산 경험인 살아있는 여행문학(travel literature)을 즐기며, 상상력의 나래(wings of imagination)를 펼쳐가는 사이에, 우리는 아직까지도 정답을 맞추거나, 수치화되고 정량화 된 빈약한 교육환경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상상력이 부재한 작품들에 오늘도 혼신을 다하고 있을지 모른다. 한국애니메이션 기술이 주변국인 중국이나 일본에 결코 뒤지지 않는 기술적, 예술적인 표현력을 가지고 있고, 또한 국가적으로 어느 한 나라에도 전례가 없는 약150 여개 대학이 ‘애니메이션’을 하나의 교과과정으로 가르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국을 대표하는 제대로 된 작품하나 없어 국제적으로 망신스럽고 창피스러운 현실에 대해 우리 모두가 책임을 느껴야 하겠다. 애니메이션 산업이 활발하지 않으면 그에 종사하는 전문인들의 수가 줄어들고, 관련산업도 위축될 것이다. 실험 애니메이션이나 컴퓨터 위주의 교육으로는 애니메이션 산업을 살려낼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실험 애니메이션도 살고 상업 애니메이션도 함께 사는 윈윈전략(win-win strategy)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은 말로만 될 일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친 전략을 수립하고 실제로 실행시켜야만 가까스로 성취할 수 있는 부분이다. <애니메이션-기술 측면에서의 문제> 최근의 3D 입체 영상기술(아바타)의 성공도 주로 기술적인 문제에만 관심을 보여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이미 다 알고 있듯이‘컴퓨터는 단지 도구(tool)에 불과할 뿐이다.’ <제임스 캐머론 감독의 ` 아바타 ` -ⓒ이십세기 폭스> 픽사의 토이 스토리 (Toy Story) 감독인 존 라세터(John Lasseter)는 '펜슬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게 연필이 아니듯이,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도 컴퓨터가 아닙니다.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창조자는 아티스트입니다.' 라는 그의 주장에서 볼 수 있듯이, 픽사의 오늘은 그들의 제작 시스템 이상으로 아티스트들을 중시하는 전통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이 기술(technology) 강국이라는 주장만큼,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중요한 것은 콘텐츠(contents) 강국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컴퓨터라는 하드웨어만 있고 프로그램이라는 소프트웨어가 부실하다면 고급, 첨단장비도 무용지물이 되지 않겠는가! <픽사의 감독인 존 라세터는, '예술은 기술의 발전을 부르고, 기술은 예술에 영감을 준다'라고 함으로서,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강조하였다.> 존 라세터(John Lasseter)는 '예술은 기술의 발전을 부르고, 기술은 예술에 영감을 준다(The art Challenges technology and technology inspires the art.)' 라고 함으로서,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강조하였다. 픽사의 뛰어난 지적 결과물들은 예술적 창조력과 첨단 기술력이 상호간에 친밀함을 유지하면서, 예술가 각 개인에 대한 역량을 중시하는 분위기 아래서 이룩한 결과이다. 그러나 우선순위를 두자면, 그들에게 예술은 창조적인 면에서 1차(primary)이고 기술은 표현적인 측면에서 2차(secondary)인 것이다. 반면에 한국의 현실풍토는 기술의 비중이 1차(primary)이고 예술은 2차(secondary)인 듯이 보여진다. 하지만 전통예술과 첨단기술의 융합(convergence)은 현대에 필연적인 관계가 되어야만 할 것이다. <애니메이션-가치 측면에서의 문제> 스토리의 질적인 면에 있어서나, 상하계급이 없는 제작진의 인간적인 존중이라는 상호관계에 있어서나, 애니메이션 아티스트에게는 휴머니즘, 생명의 존중, 자연친화, 선의 가치, 감동 등도 생활화 되어야 하겠다. 단지 기술적인 제작이라는 틀 속에만 있거나, 상하 계급적인 제작환경에 휘둘리다가 보면, 결국 한국 애니메이션은 인간적인 감동이 없는 기술적인 결과 물로만 남을지 모른다. 기술적 소산물(technical product)을 생산해내는 재주가 있다고 해서 지적 소산물(intellectual product)도 덩달아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 그들의 지적가치를 세계적으로 대표하는 캐릭터들이 많고, 애니메이션 작품에서도 그들의 정신 세계를 담고있는 차원 높은 작품들이 양산되고 있다. 반면에 한국은 무국적 캐릭터나 작품들은 많은데, 한국의 정신을 대표하는 저작물들은 빈약한 것이 현 실정이다. 겉으로는 ‘우리 것, 우리 소재’ 하면서, 정작 결과물들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무국적의 두루뭉실한 결과물들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겨우 만들어진 결과물들도 소재나 표현방식이 조악하고 빈약하기 그지없는 3류나 4류 애니메이션들이 대부분이다. 애니메이션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영화이다. 이러한 영화가 초보 연기자의 단순 동작과 같이 동작으로만 마무리가 된 작품들이 90퍼센트 이상이다. 그러나 영화 연기자의 동작(action)이 진정한 의미를 담는 가치 있는 연기(acting)로까지 표현되지 않으면 안 되듯이, 애니메이션도 동작(action)만이 아닌 살아있고 가치 있는 연기(acting)로까지 승화되어져야만 할 것이다. <애니메이션-전반적인 인식의 제고> 전세계 애니메이션 업계에는, ‘애니메이션은 입(말만 하는)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손(정신을 반영하는 표현력)으로 만드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오래 전부터 품어 온 애니메이션에 대한 뛰어난 관심, 혹은 사회적으로 높은 신분, 지위, 유명세가 있고 든든한 재정이 뒷받침된다고 해도, 애니메이션 제작은 어느 날 갑자기 번쩍하고 이룩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님을 진정으로 인식해야 하겠다. 자신이 하고싶다고 해서 누구나 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직업이거나 아동 대상이라는 가벼운 영역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예술, 과학, 수학, 기하학, 공학, 물리학 등이 수반되는 종합적(overall)인 첨단(cutting-edge) 분야이자 독특한(unique) 영역임을 인정하고, 겸손히 전문인들에게 맡겨 주어야 하겠다. 또한 대학에서 애니메이션 전공교수 채용도 오랜 현장 경험이 있는 전문인들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져야 하겠다. 왜냐하면 애니메이션은 미술이나 조각, 음악과 마찬가지로 오랜 세월에 걸친 작업과 훈련의 고뇌라는 힘겨운 과정으로 이룩한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저 전공교수라는 겉 모습만으로 애니메이션을 가르칠 수는 없는 것이다. 모든 미술전공 교수가 그러하듯이, 애니메이션 전공교수도 오랜 숙련과정을 경험한 교육자들만이 양심의 떳떳함과 자유함으로 맡겨진 직무를 다하게 되지 않겠는가! 또한 3D에서 외국의 하청을 할지라도 외국의 칭찬은 냉혹하게 뒤로하고, 그와 동시에 우리만의 고유하고 차원 높은 지적재산이라는 애니메이션 콘텐츠를 생산하는데 혼신을 다해 주력하여야 할 것이다. 진정한 애니메이션 예술작품의 제작은 단지 수년간의 경험으로 될 일이 아니고, 진실로 오랜 세월에 걸친 아마도 수년, 10년, 혹은 그 이상의 오랜 경험의 결과물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 애니메이션의 내일은 한국의 역사 초기부터 그 맥을 이어 온 전문인들을 선두로 해서, 그 유산을 함께 할 신진 애니메이션 아티스트들에게 겸허하게 맡겨져야 하겠다. 언제 어디서나 전면에 나서는 일에 익숙하지 못하고, 제작지원을 받는 일 등에서도 그다지 계산적이거나 발 빠르지도 못한, 그렇지만 조용히 뛰어난 장인정신(spirit of artisanship)을 가진 애니메이션 아티스트들을 극진히 대우하는 풍토를 조성하여 줌으로서 상업 애니메이션의 성공을 가속화 시킬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한국 애니메이션이 기술 선진국으로 도약하면서, 동사에 지적 재산, 또는 지식 재산 (intellectual property)의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일에 모두가 전심전력 할 뿐만 아니라, 한국 애니메이션이 세계 애니메이션의 르네상스 (Renaissance-문예부흥) 반열에 오를 수 있도록 애니메이션 전문 예술인들을 극진한 애정과 함께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어야 하겠다. 겸허한 마음과 함께! 부가적으로 창작 TV애니메이션 제작과 관련하여, 현재 한국의 국산 창작 TV애니메이션 제작이 활성화 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각 방송사들이 수익이 안 된다는 이유로 제작비를 터무니 없이 낮추고, 그나마도 만들어진 작품을 방영할 방송시간 부여도 제대로 지원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다음 기사에서 논의하기로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