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생존 - 여성 영화인이 말하는 영화
- 감독
- 임순례
- 제작년도
- 2001
- 출연
- 경민호, 임순례, 이희재, 박곡지, 박남옥, 최은희, 황정순, 황혜미, 이경자, 김영희, 이해윤, 오정완, 이미례, 정재은, 김소영, 변영주, 심재명, 이서군, 김윤희, 장희선, 이정향, 김미희, 권미영, 김은미
클릭시 확대 ㅇㅇㅇㅇ ㅇㅇㅇ ㅇㅇㅇㅇ 2 클릭시 확대 ㅇㅇㅇ ㅇㅇㅇ ㅇㅇㅇ 고전 번역의 의의, 『영화. 심리학적 연구』(후고 뮌스터베르크, 1916) (지식을만드는지식) 윤종욱(영화 연구자 및 번역자) 2026년 1월에 후고 뮌스터베르크의 『영화. 심리학적 연구』가 번역, 출간되었다. 1916년에 쓰인 이 책은 영화가 인간의 주의, 기억, 감정을 어떻게 조직하는지 묻는다. 출간된 지 한 세기가 훌쩍 넘은 지금, 영화가 스크린 바깥의 디지털 환경으로 확장된 시대에 나는 번역자로서 이 오래된 질문과 대답을 한국에 소개하고 싶었다. 이 글은 한 권의 고전을 번역하기로 결심한 이유, 110년 전의 낯선 이름들과 장치들 사이에서 길을 찾던 과정, 그리고 무엇보다 번역이 학문 공동체에 남길 수 있는 것에 대한 개인적인 단상이다.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니며 독문학을 전공했던 나는 대학원 수료 후 독일에서 10년 동안 영화학을 공부했다. 독일에서 공부하기로 결심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 중 하나는 발터 벤야민,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 루돌프 아른하임, 벨라 발라즈와 같은 독일어권 출신의 영화이론 선구자들이었다. 1920년대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 활발하게 활동했던 이들의 저작 중 일부는 당시에 이미 한국에도 번역되어 있었고,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1935), 『예술로서의 영화』(1932), 『영화의 이론』(1960) 같은 거대한 제목은 어딘지 모르게 독일의 학문적 전통에 대한 믿음을 부여했다. 영화사 초기부터 영화를 새로운 예술형태로서 진지하게 다룬 저작에 대한 경이로움이라고도 할 수 있다. 독일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책을 통해서만 알던 영화를 일주일에 서너 편씩 보며 영화학의 다양한 분야에 관한 강의와 세미나에 참여했다. 학과에서 대여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영화인들을 초청해서 진행하는 수업을 듣는 일은 특히 즐거웠다. 한 학기 수업을 마치고 학업 평가는 기말 리포트로만 진행한다는 사실은 새로웠다. 매 학기 여러 편의 기말 리포트를 작성하면서 자료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 단과대 도서관에는 영화학 관련 서적만 따로 모아둔 서가가 있었고, 영상자료실에서는 독일에 소개되었던 거의 모든 영화를 비디오테이프와 DVD로 볼 수 있다. 신문, 잡지에 실린 개별 영화평이 필요하면 내가 공부하던 곳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독일영화연구소로 갔다. 그곳에 있는 도서관은 최근 수십 년 동안 대중매체에 실린 영화평을 감독별로 스크랩해서 대여해주기 때문이다. 독일에서의 영화학 공부는 그동안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자료를 찾고, 리포트의 형식으로 답을 구성하는 훈련이었다. 영화 연구에서도 자료는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임을 실감했다. 클릭시 확대 ㅊㅇㅇㅇ ㄴㅌㅌ 구분 내용 비고 항목 1 설명 - 항목 2 설명 - 뮌헨 영화와 텔레비전 대학(Hochschule für Fernsehen und Film München)과 학내 도서관 (사진: 필자 제공) 해결해야 할 질문이 처음에는 아무리 거대하게 보여도 결국 관련한 핵심 자료만 충분히 제공된다면 나름의 답을 낼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핵심 자료란 고전으로 간주되는 단행본과 논문들, 그리고 한 분야의 축적된 지식과 방법론을 집대성한 대형 총서·개론서를 말한다. 이런 자료들이 충분히 번역되어 있다면 많은 경우 유학이 굳이 필요하지 않겠다는 생각도 했다. 긴 시간 동안 외국에서 공부하다 보면 한편으로는 공부를 끝낼 수 있을까 걱정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학업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내가 학계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한국의 영화학이 학문으로서 발전하기 위해서는 독일의 여러 대도시마다 있는 영화연구소처럼 제도적인 지원도 필수적이지만, 개인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기여는 좋은 원서를 번역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원서 읽기가 꼼꼼하고 깊이 있는 독해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은 장점이지만, 한글로 된 글을 읽을 때처럼 많은 정보를 좀 더 쉽고 빠르게 얻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나의 첫 번역서는 토마스 엘새서와 말테 하게너의 『영화 이론: 영화는 육체와 어떤 관계인가』(2012)였다. 아직 독일에 있을 때 번역하고 한국에 돌아와서 출간한 이 책은 저명한 영화학자인 토마스 엘새서와 그의 제자 말테 하게너의 공저인데, 내용도 물론 좋지만 하게너가 마침 내가 재학 중이던 학과의 교수로 부임해온 것도 번역을 결심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저자에게 직접 질문할 수 있었던 경험은 번역이 단순한 언어 변환이 아니라, 원저자·번역자·미래의 독자 사이에 새로운 독해의 통로를 만드는 작업임을 알게 했다. 출간 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책을 찾는 독자가 있다는 사실은, 학술 번역의 가치는 출간 직후의 판매량만으로 측정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귀국 후에 잠시 강의했던 영상이론 대학원 학생들에게 어떤 책이 번역되면 좋겠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나온 답이 나에게는 좀 놀라웠다. 학생들이 언급한 책은 당시에 주목받고 있던 인지 및 정동이론이나 디스포지티브 등 최신 이론과 관련한 서적이 아니라,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의 『칼리가리에서 히틀러로』(1947)나 『대중의 장식』(1927)과 같은 고전이었다. 영화 공부를 하면서 입문서를 통해서 간접적으로만 접한 작품에 대한 갈증이 있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처음에 언급한 것처럼 나 자신도 1920, 30년대 저술들에 큰 매력을 느꼈던 것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크라카우어의 두 권의 책은 다행히 한국의 독문학자들에 의해 오랜 준비를 거쳐 각각 2022년과 2026년에 출간되었다). 나는 『영화 이론: 영화는 육체와 어떤 관계인가』 다음으로 영화이론의 고전으로 간주되는 『영화. 심리학적 연구』를 번역했는데, 두 번역서 사이에는 14년이라는 긴 시간이 있다. 그 사이에 여러 편의 논문과 두 권의 책을 쓰고, 두 건의 번역에도 참여했지만, 영화서는 번역하지 못했다. 변명하자면 고전의 경우 분량이 많고 내용이 난해해서 긴 호흡으로 작업을 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번역은 연구업적으로 거의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에 선뜻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이 한 가지 이유다. 또 다른 이유로는 최근에 독일에서 나온 책 중에서 번역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지만, 학술적 성격이 강하고 분량도 적지 않아서 출판에 어려움이 있었던 것을 들 수 있다. 클릭시 확대 클릭시 확대 『칼리가리에서 히틀러로(From Caligari to Hitler)』, 『대중의 장식((Das Ornament der Masse)』, 『영화 이론: 영화는 육체와 어떤 관계인가(Film Theory: An Introduction through the Senses)』 (사진: Princeton University Press, 교보문고, Routledge) 클릭시 확대 『칼리가리에서 히틀러로(From Caligari to Hitler)』, 『대중의 장식((Das Ornament der Masse)』, 『영화 이론: 영화는 육체와 어떤 관계인가(Film Theory: An Introduction through the Senses)』 (사진: Princeton University Press, 교보문고, Routledge) ㅇㅇㅇㅇ 규정했다. 그는 클로즈업, 몽타주, 플래시백 등을 지각·기억·주의 같은 심리 과정과 연결 지으며 영화 형식의 고유성을 설명했다. 특히 연극과 달리 영화는 외적 현실의 재현이 아니라 ‘정신적 현실’을 조직하는 매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관점은 이후 형식주의 영화이론과 인지적 영화연구의 중요한 선구로 평가된다. 아마 대부분의 영화학도들은 뮌스터베르크의 유일한 영화책에 대해 이 정도의 지식을 이미 입문서를 통해서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책 ㅇㅇㅇ ㅇㅇㅇㅇ ㅇ ㅇ ㅇ ㅇㅇㅇ 뮌스터베르크의 『영화. 심리학적 연구』는 영화이론사에서 최초의 체계적 이론서 중 하나로 꼽힌다. 그는 이 책에서 영화를 인간 정신의 작용을 반영하는 예술로 규정했다. 그는 클로즈업, 몽타주, 플래시백 등을 지각·기억·주의 같은 심리 과정과 연결 지으며 영화 형식의 고유성을 설명했다. 특히 연극과 달리 영화는 외적 현실의 재현이 아니라 ‘정신적 현실’을 조직하는 매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관점은 이후 형식주의 영화이론과 인지적 영화연구의 중요한 선구로 평가된다. 아마 대부분의 영화학도들은 뮌스터베르크의 유일한 영화책에 대해 이 정도의 지식을 이미 입문서를 통해서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책의 전체를 소개할 필요가 있을까? 이 점에 대해서 확신이 없었던 내가 뮌스터베르크 저작 번역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배경에는 독일 출신의 미디어학자 프리드리히 키틀러가 있었다. 키틀러는 자신의 매체이론을 펼치면서 뮌스터베르크를 인용한다. 특히 뮌스터베르크가 인간의 정신작용과 기술적 매체가 결합하는 지점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키틀러는 영화가 인간의 지각, 기억, 주의 등 정신 작용을 조율하고 시각화하는 방식, 영화관이라는 기술적 공간이 인간의 내면적 의식 구조와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에 대해서 뮌스터베르크의 설명을 언급하며 자신의 매체유물론을 펼친다. 나는 키틀러가 뮌스터베르크를 다시 불러내어 자신의 이론을 정립해간 방식에 주목하게 되었다. 독일 미디어 이론의 역사에서 가장 최근의 거장으로 간주되는 키틀러가 영화이론의 초기 텍스트를 소환해서 자신의 이론을 펼쳐나갔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던 것이다. 키틀러에게 뮌스터베르크는 영화 초기의 낡은 이론가가 아니었다. 기술 매체가 인간의 지각과 기억, 주의를 어떻게 재배치하는지를 사유하기 위해 다시 읽어야 할 동시대인이었다. 이 독해를 통해 나는 고전이 이미 결론 난 과거가 아니라, 후대의 질문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내는 텍스트임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영화. 심리학적 연구』를 번역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분량이나 난이도 면에서 접근하기 쉬웠던 것도 번역 결정에 도움이 되었다. 후고 뮌스터베르크(Hugo Münsterberg)와 『영화. 심리학적 연구(The Photoplay: A Psychological Study)』 (사진: Harvard University, Internet Archive) 번역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뮌스터베르크가 인용하는 많은 낯선 고유명사들보다, 그것이 당대 독자에게는 상식이었을 맥락을 오늘의 독자에게 어느 정도까지 설명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뮌스터베르크는 초기 영화의 장치와 상영 환경, 당대에 널리 알려진 배우와 영화들을 설명 없이 호출한다. 이를 모두 본문 안에서 풀어 쓰면 저자의 논지가 흐려지고, 아무 설명 없이 두면 책은 지나치게 멀어진다. 나는 가능한 한 본문의 호흡을 보존하되, 독해의 문턱이 될 만한 지점에는 각주를 두는 방식을 택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90개의 각주로 1916년의 영화 관객과 2026년의 한국 독자를 연결하고자 했다. 또한 오늘날의 영화 용어와 당시의 용어가 완전히 겹치지 않는 문제와 뮌스터베르크의 문체(단정적이거나 반복적이며, 때로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시대의 문체적 특징이 드러나는 문장)를 어디까지 보존할지의 문제 역시 꽤나 고민한 부분이다. 책에 덧붙인 해설에는 이런 고민에 대해 내가 내린 나름의 답을 설명했다. 번역이 실제로 완성되는 순간은 책이 출간될 때가 아니라, 누군가가 그 책에서 자기 질문을 발견할 때일 것이다. 영화가 우리의 주의와 기억, 감정을 어떻게 이끌어 왔는지 묻는 이 책이, 오늘날 스크린과 플랫폼, 영상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연구자와 학생, 그리고 영화 관객에게도 새로운 질문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키틀러가 한 세기 전의 뮌스터베르크에게서 자신의 문제를 발견했듯, 이 한국어 번역본 또한 누군가에게 다음 사유를 시작하게 하는 자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총서와 같이 상업성이 없는 학술서도 많이 번역될 수 있도록 한국연구재단과 공공도서관의 적극적인 역할도 꿈꾸어본다. 버튼 영상 ㄹㄹ ㅇㅇㅇㅇㅇㅇ 클릭시 확대 클릭시 확대 클릭시 확대 클릭시 확대 클릭시 확대 ㅇㅇㅇ 클릭시 확대 ㅇㅇㅇ ㄹㄹㄹㄹ번역이 실제로 완성되는 순간은 책이 출간될 때가 아니라, 누군가가 그 책에서 자기 질문을 발견할 때일 것이다. 영화가 우리의 주의와 기억, 감정을 어떻게 이끌어 왔는지 묻는 이 책이, 오늘날 스크린과 플랫폼, 영상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연구자와 학생, 그리고 영화 관객에게도 새로운 질문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키틀러가 한 세기 전의 뮌스터베르크에게서 자신의 문제를 발견했듯, 이 한국어 번역본 또한 누군가에게 다음 사유를 시작하게 하는 자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총서와 같이 상업성이 없는 학술서도 많이 번역될 수 있도록 한국연구재단과 공공도서관의 적극적인 역할도 꿈꾸어본다.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 ㄹㄹㄹ 번역이 실제로 완성되는 순간은 책이 출간될 때가 아니라, 누군가가 그 책에서 자기 질문을 발견할 때일 것이다. 영화가 우리의 주의와 기억, 감정을 어떻게 이끌어 왔는지 묻는 이 책이, 오늘날 스크린과 플랫폼, 영상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연구자와 학생, 그리고 영화 관객에게도 새로운 질문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키틀러가 한 세기 전의 뮌스터베르크에게서 자신의 문제를 발견했듯, 이 한국어 번역본 또한 누군가에게 다음 사유를 시작하게 하는 자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총서와 같이 상업성이 없는 학술서도 많이 번역될 수 있도록 한국연구재단과 공공도서관의 적극적인 역할도 꿈꾸어본다. 번역이 실제로 완성되는 순간은 책이 출간될 때가 아니라, 누군가가 그 책에서 자기 질문을 발견할 때일 것이다. 영화가 우리의 주의와 기억, 감정을 어떻게 이끌어 왔는지 묻는 이 책이, 오늘날 스크린과 플랫폼, 영상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연구자와 학생, 그리고 영화 관객에게도 새로운 질문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키틀러가 한 세기 전의 뮌스터베르크에게서 자신의 문제를 발견했듯, 이 한국어 번역본 또한 누군가에게 다음 사유를 시작하게 하는 자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총서와 같이 상업성이 없는 학술서도 많이 번역될 수 있도록 한국연구재단과 공공도서관의 적극적인 역할도 꿈꾸어본다. 번역이 실제로 완성되는 순간은 책이 출간될 때가 아니라, 누군가가 그 책에서 자기 질문을 발견할 때일 것이다. 영화가 우리의 주의와 기억, 감정을 어떻게 이끌어 왔는지 묻는 이 책이, 오늘날 스크린과 플랫폼, 영상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연구자와 학생, 그리고 영화 관객에게도 새로운 질문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키틀러가 한 세기 전의 뮌스터베르크에게서 자신의 문제를 발견했듯, 이 한국어 번역본 또한 누군가에게 다음 사유를 시작하게 하는 자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총서와 같이 상업성이 없는 학술서도 많이 번역될 수 있도록 한국연구재단과 공공도서관의 적극적인 역할도 꿈꾸어본다. 윤종욱(영화 연구자 및 번역자) l 독일에서 영화학을 공부하고, 한국의 독문과에서 일하고 있다. 토마스 엘새서·말테 하게너의 『영화 이론: 영화는 육체와 어떤 관계인가』와 후고 뮌스터베르크의 『영화. 심리학적 연구』를 한국어로 옮겼다. 최근에는 켄 로치 영화와 독일영화사를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1 클릭시 확대 1) 각주
© 지식을만드는지식 2026년 1월에 후고 뮌스터베르크의 『영화. 심리학적 연구』가 번역, 출간되었다. 1916년에 쓰인 이 책은 영화가 인간의 주의, 기억, 감정을 어떻게 조직하는지 묻는다. 출간된 지 한 세기가 훌쩍 넘은 지금, 영화가 스크린 바깥의 디지털 환경으로 확장된 시대에 나는 번역자로서 이 오래된 질문과 대답을 한국에 소개하고 싶었다. 이 글은 한 권의 고전을 번역하기로 결심한 이유, 110년 전의 낯선 이름들과 장치들 사이에서 길을 찾던 과정, 그리고 무엇보다 번역이 학문 공동체에 남길 수 있는 것에 대한 개인적인 단상이다.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니며 독문학을 전공했던 나는 대학원 수료 후 독일에서 10년 동안 영화학을 공부했다. 독일에서 공부하기로 결심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 중 하나는 발터 벤야민,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 루돌프 아른하임, 벨라 발라즈와 같은 독일어권 출신의 영화이론 선구자들이었다. 1920년대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 활발하게 활동했던 이들의 저작 중 일부는 당시에 이미 한국에도 번역되어 있었고,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 )」(1935), 『예술로서의 영화( Film als Kunst )』(1932), 『영화의 이론( Theory of Film: The Redemption of Physical Reality )』(1960) 같은 거대한 제목은 어딘지 모르게 독일의 학문적 전통에 대한 믿음을 부여했다. 영화사 초기부터 영화를 새로운 예술형태로서 진지하게 다룬 저작에 대한 경이로움이라고도 할 수 있다. 독일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책을 통해서만 알던 영화를 일주일에 서너 편씩 보며 영화학의 다양한 분야에 관한 강의와 세미나에 참여했다. 학과에서 대여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영화인들을 초청해서 진행하는 수업을 듣는 일은 특히 즐거웠다. 한 학기 수업을 마치고 학업 평가는 기말 리포트로만 진행한다는 사실은 새로웠다. 매 학기 여러 편의 기말 리포트를 작성하면서 자료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 단과대 도서관에는 영화학 관련 서적만 따로 모아둔 서가가 있었고, 영상자료실에서는 독일에 소개되었던 거의 모든 영화를 비디오테이프와 DVD로 볼 수 있다. 신문, 잡지에 실린 개별 영화평이 필요하면 내가 공부하던 곳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독일영화연구소로 갔다. 그곳에 있는 도서관은 최근 수십 년 동안 대중매체에 실린 영화평을 감독별로 스크랩해서 대여해주기 때문이다. 독일에서의 영화학 공부는 그동안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자료를 찾고, 리포트의 형식으로 답을 구성하는 훈련이었다. 영화 연구에서도 자료는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임을 실감했다. 뮌헨 영화와 텔레비전 대학(Hochschule für Fernsehen und Film München)과 학내 도서관 (사진: 필자 제공) 해결해야 할 질문이 처음에는 아무리 거대하게 보여도 결국 관련한 핵심 자료만 충분히 제공된다면 나름의 답을 낼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핵심 자료란 고전으로 간주되는 단행본과 논문들, 그리고 한 분야의 축적된 지식과 방법론을 집대성한 대형 총서·개론서를 말한다. 이런 자료들이 충분히 번역되어 있다면 많은 경우 유학이 굳이 필요하지 않겠다는 생각도 했다. 긴 시간 동안 외국에서 공부하다 보면 한편으로는 공부를 끝낼 수 있을까 걱정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학업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내가 학계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한국의 영화학이 학문으로서 발전하기 위해서는 독일의 여러 대도시마다 있는 영화연구소처럼 제도적인 지원도 필수적이지만, 개인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기여는 좋은 원서를 번역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원서 읽기가 꼼꼼하고 깊이 있는 독해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은 장점이지만, 한글로 된 글을 읽을 때처럼 많은 정보를 좀 더 쉽고 빠르게 얻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나의 첫 번역서는 토마스 엘새서와 말테 하게너의 『영화 이론: 영화는 육체와 어떤 관계인가( Filmtheorie zur Einführung )』(2007)였다. 아직 독일에 있을 때 번역하고 한국에 돌아와서 출간한 이 책은 저명한 영화학자인 토마스 엘새서와 그의 제자 말테 하게너의 공저인데, 내용도 물론 좋지만 하게너가 마침 내가 재학 중이던 학과의 교수로 부임해온 것도 번역을 결심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저자에게 직접 질문할 수 있었던 경험은 번역이 단순한 언어 변환이 아니라, 원저자·번역자·미래의 독자 사이에 새로운 독해의 통로를 만드는 작업임을 알게 했다. 출간 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책을 찾는 독자가 있다는 사실은, 학술 번역의 가치는 출간 직후의 판매량만으로 측정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귀국 후에 잠시 강의했던 영상이론 대학원 학생들에게 어떤 책이 번역되면 좋겠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나온 답이 나에게는 좀 놀라웠다. 학생들이 언급한 책은 당시에 주목받고 있던 인지 및 정동이론이나 디스포지티브 등 최신 이론과 관련한 서적이 아니라,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의 『칼리가리에서 히틀러로( Von Caligari zu Hitler )』(1947)나 『대중의 장식( Das Ornament der Masse) 』(1927)과 같은 고전이었다. 영화 공부를 하면서 입문서를 통해서 간접적으로만 접한 작품에 대한 갈증이 있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처음에 언급한 것처럼 나 자신도 1920, 30년대 저술들에 큰 매력을 느꼈던 것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크라카우어의 두 권의 책은 다행히 한국의 독문학자들에 의해 오랜 준비를 거쳐 각각 2022년과 2026년에 출간되었다). 나는 『영화 이론: 영화는 육체와 어떤 관계인가』 다음으로 영화이론의 고전으로 간주되는 『영화. 심리학적 연구』를 번역했는데, 두 번역서 사이에는 14년이라는 긴 시간이 있다. 그 사이에 여러 편의 논문과 두 권의 책을 쓰고, 두 건의 번역에도 참여했지만, 영화서는 번역하지 못했다. 변명하자면 고전의 경우 분량이 많고 내용이 난해해서 긴 호흡으로 작업을 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번역은 연구업적으로 거의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에 선뜻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이 한 가지 이유다. 또 다른 이유로는 최근에 독일에서 나온 책 중에서 번역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지만, 학술적 성격이 강하고 분량도 적지 않아서 출판에 어려움이 있었던 것을 들 수 있다. 『칼리가리에서 히틀러로』, 『대중의 장식』, 『영화 이론: 영화는 육체와 어떤 관계인가』 (사진: Princeton University Press , 교보문고 , Routledge ) 뮌스터베르크의 『영화. 심리학적 연구』는 영화이론사에서 최초의 체계적 이론서 중 하나로 꼽힌다. 그는 이 책에서 영화를 인간 정신의 작용을 반영하는 예술로 규정했다. 그는 클로즈업, 몽타주, 플래시백 등을 지각·기억·주의 같은 심리 과정과 연결 지으며 영화 형식의 고유성을 설명했다. 특히 연극과 달리 영화는 외적 현실의 재현이 아니라 ‘정신적 현실’을 조직하는 매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관점은 이후 형식주의 영화이론과 인지적 영화연구의 중요한 선구로 평가된다. 아마 대부분의 영화학도들은 뮌스터베르크의 유일한 영화책에 대해 이 정도의 지식을 이미 입문서를 통해서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책의 전체를 소개할 필요가 있을까? 이 점에 대해서 확신이 없었던 내가 뮌스터베르크 저작 번역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배경에는 독일 출신의 미디어학자 프리드리히 키틀러가 있었다. 키틀러는 자신의 매체이론을 펼치면서 뮌스터베르크를 인용한다. 특히 뮌스터베르크가 인간의 정신작용과 기술적 매체가 결합하는 지점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키틀러는 영화가 인간의 지각, 기억, 주의 등 정신 작용을 조율하고 시각화하는 방식, 영화관이라는 기술적 공간이 인간의 내면적 의식 구조와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에 대해서 뮌스터베르크의 설명을 언급하며 자신의 매체유물론을 펼친다. 나는 키틀러가 뮌스터베르크를 다시 불러내어 자신의 이론을 정립해간 방식에 주목하게 되었다. 독일 미디어 이론의 역사에서 가장 최근의 거장으로 간주되는 키틀러가 영화이론의 초기 텍스트를 소환해서 자신의 이론을 펼쳐나갔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던 것이다. 키틀러에게 뮌스터베르크는 영화 초기의 낡은 이론가가 아니었다. 기술 매체가 인간의 지각과 기억, 주의를 어떻게 재배치하는지를 사유하기 위해 다시 읽어야 할 동시대인이었다. 이 독해를 통해 나는 고전이 이미 결론 난 과거가 아니라, 후대의 질문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내는 텍스트임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영화. 심리학적 연구』를 번역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분량이나 난이도 면에서 접근하기 쉬웠던 것도 번역 결정에 도움이 되었다. 후고 뮌스터베르크(Hugo Münsterberg)와 『영화. 심리학적 연구(The Photoplay: A Psychological Study)』 (사진: Harvard University , Internet Archive ) 번역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뮌스터베르크가 인용하는 많은 낯선 고유명사들보다, 그것이 당대 독자에게는 상식이었을 맥락을 오늘의 독자에게 어느 정도까지 설명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뮌스터베르크는 초기 영화의 장치와 상영 환경, 당대에 널리 알려진 배우와 영화들을 설명 없이 호출한다. 이를 모두 본문 안에서 풀어 쓰면 저자의 논지가 흐려지고, 아무 설명 없이 두면 책은 지나치게 멀어진다. 나는 가능한 한 본문의 호흡을 보존하되, 독해의 문턱이 될 만한 지점에는 각주를 두는 방식을 택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90개의 각주로 1916년의 영화 관객과 2026년의 한국 독자를 연결하고자 했다. 또한 오늘날의 영화 용어와 당시의 용어가 완전히 겹치지 않는 문제와 뮌스터베르크의 문체(단정적이거나 반복적이며, 때로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시대의 문체적 특징이 드러나는 문장)를 어디까지 보존할지의 문제 역시 꽤나 고민한 부분이다. 책에 덧붙인 해설에는 이런 고민에 대해 내가 내린 나름의 답을 설명했다. 번역이 실제로 완성되는 순간은 책이 출간될 때가 아니라, 누군가가 그 책에서 자기 질문을 발견할 때일 것이다. 영화가 우리의 주의와 기억, 감정을 어떻게 이끌어 왔는지 묻는 이 책이, 오늘날 스크린과 플랫폼, 영상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연구자와 학생, 그리고 영화 관객에게도 새로운 질문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키틀러가 한 세기 전의 뮌스터베르크에게서 자신의 문제를 발견했듯, 이 한국어 번역본 또한 누군가에게 다음 사유를 시작하게 하는 자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총서와 같이 상업성이 없는 학술서도 많이 번역될 수 있도록 한국연구재단과 공공도서관의 적극적인 역할도 꿈꾸어본다. 윤종욱(영화 연구자 및 번역자) l 독일에서 영화학을 공부하고, 한국의 독문과에서 일하고 있다. 토마스 엘새서·말테 하게너의 『영화 이론: 영화는 육체와 어떤 관계인가』와 후고 뮌스터베르크의 『영화. 심리학적 연구』를 한국어로 옮겼다. 최근에는 켄 로치 영화와 독일영화사를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1. 시네마테크 파사주 여정의 시작: 영화관의 문 시네마테크 여행기 프로젝트의 제목을 ‘시네마테크로 가는 통로(길목)’라는 의미를 담아 ‘시네마테크 파사주(Cinematheque Passage)’로 결정했던 날이었다. 나는 그 늦은 새벽 시간에 인터넷에서 우연히 찾은 베를린 프렌츨라우어 베르크 지구(Prenzlauer Berg), 카스탄니엔알레 77번가(Kastanienallee 77, Berlin)에 위치한 32석 규모의 단관극장, ‘희망의 빛 영화관(Lichtblick Kino)’의 정면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베를린 프렌츨라우어 베르크 지구 카스탄니엔알레 77번가에 위치한 32석 규모의 단관극장 ‘희망의 빛 영화관(Lichtblick Kino).’ (사진: LICHTBLICK KINO ) 나는 분명 이 영화관의 출입문에 매료가 되었던 것 같다. 영화관을 세상과 연결하는 문은 영화를 보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이지만, 상당히 오래전부터 이 문은 접촉할 수 없는 사물이 되었다. 대부분의 복합상영관, 영화를 소비문화로 바꾼 이곳에는 문이 없기도 하다. 보통 쇼핑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드넓게 매표소와 팝콘과 음료 판매대가 보인다. 영화관 입장 시간이 되면 입구는 이미 열려 있다. 건물 입구부터 영화관에 들어갈 때까지 모든 문은 자동으로 열리기도 한다. 수많은 유동 인구를 위해 모든 통로는 최대한 개방되고, 자동으로 여닫힌다. 하지만 ‘희망의 빛 영화관’의 문은 영화만을 위한 통로를 지키듯이, 영화관에서 영화 보기를 고수하는 파수꾼과도 같이 서 있다. 문 옆 창문에는 아마도 현재 상영 중인 듯 보이는 장-뤽 고다르의 < 네 멋대로 해라 >(1960), 제베타 스틸이 부른 ‘Calling You’가 떠오르는 퍼시 아들론의 < 바그다드 카페 >(1987),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 지옥의 묵시록 > (1979) 포스터가 붙어 있다. 다음 사진에서는 좁은 직사각형 모양의 극장 내부가 보였다. 한 열에 2~4석 정도밖에 없는 좁고 길쭉한 아주 작은 영화관이다. 내부는 흰색 벽에 몬드리안풍의 단색의 장식이 군데군데 걸려 있다. 이 화려하지 않은 영화관 내부는 어딘지 모르게 창백한 배우의 얼굴과 같이 보였지만, 어떤 소박한 아름다움을 숨기고 있는 듯했다. 그건 내 시선을 빼앗긴 스크린 앞에 놓인 참나무색 피아노 때문이었다. 음악 공연이 열리기도 하고, 때로는 무성영화 반주용으로 사용되리라 생각했다. 2. 시네마의 유토피아 파리 드골 공항에서 파리 13구에 있는 오스떼를리츠(Gare d’Austerlitz)역으로 이동해 첫 번째 시네마테크 파사주 목적지이자, NECS(European Network for Cinema and Media Studies, 유럽 영화미디어학 네트워크) 학회가 열리는 몽펠리에로 가는 야간열차를 탔다. 출발이 지연되어 열차는 11시 가까이 되어 출발했다. 열차 출발과 동시에 거의 잠이 들었다. 시차로 인해 잠에서 깼을 때 새벽 4시가 조금 지났다. 생각보다 깊은 잠을 잤다. 열차 침대가 생각보다 편안하다는 생각에 앞으로의 여정에 대한 걱정이 사라졌다. 새벽을 달리는 기차, 창밖을 볼 수는 없었지만, 잠시 어느 역에 정차했다. 내리는 이는 없을 것 같은 그런 기차역. 아마 기차도 잠들 시간이었나 보다. 다시 잠들 수도 있는, 잠의 통로에서 난 이 여정에 대해 생각했다. 시네마테크 파사주는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서 끝나는지 등 이 영화관 기행문을 구상하면서, 찾았던 정보들을 떠올렸다. 이미지를 역사 개입의 도구로 사용하는 존 아캄프라(John Akomfrah) 감독이 어느 인터뷰에서 남긴 말을 영화관의 설립 취지에 넣은 시애틀 컬럼비아 시티(Columbia City, Seattle)에 있는 예술영화 전용관 ‘비콘 시네마(the Beacon Cinema)’를 알게 되었을 때 다른 무엇인가 새로운 생각으로 진입할 수 있는 통로에 들어선 느낌을 받았다. 특히 영상 아카이브와 같은 곳은 야누스 얼굴의 가능성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한다. ‘난 한 곳에 있으면서 다르게 존재할 수가 있지.’ 여러분들이 요청하는 좀 더 다른, 아카이브에는 없는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는, 그것은 몽타주 철학이어야 합니다. 몽타주는 재개입의 가능성과 새롭게 재설정된 목적을 가지고, 즉 다른 야망을 지니고 이미지로 되돌아가는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1] 그렇다. 영화관은 이미지의 낙원이어야 한다. 처음 나의 계획은 각 국가의 대표적 시네마테크에 방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리히트블릭크 키노와 비콘 시네마(모두 빛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처럼 도시 곳곳에 흩어져서 자생하는 보통 아트하우스 시네마라 불리는, 예술영화 전용관에 관해 알게 되면서(이렇게 무작정 표를 끊고 의자에 앉아 스크린에 펼쳐지는 영화를 보고 싶은 영화관은 찾을수록 나왔다), 나는 시네마테크의 범위를 국립 영화 아카이브에서 유럽 전역의 예술영화관으로 넓혀야 한다고 나 자신을 설득했다. 시네마(cinéma)와 도서관(bibliothèque)의 합성어인 시네마테크는 영화와 영화 관련 자료를 수집, 보존, 상영하는 장소다. 나는 이 ‘시네마테크’에 영화를 보러 가는 곳의 의미를 더 확대하고 강조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아무도 찾지 않는 서점이 문을 닫듯이 영화관도 그럴 운명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영화를 보러 가야 보존과 수집도 의미가 있고, 그 반대로 계속해서 상영되기 위해서 수집하고, 보관하고, 보존하는 등의 수고롭고, 때로는 시간을 다투는 영화적 실천을 누군가는 하는 것이 아닌가? 앞으로 시네마테크에 수집될 영화들이 이 수많은 예술영화 전용관에서 상영되고 있다. 시네마테크에 보관된 영화들은 이 영화관들에서 빛의 이미지가 되어 새로운 관객을 만난다. 스위스 바젤에 위치한 예술영화 전용관 키노 쿨트(Kult Kino)로 가는 길에 놓인, ‘THEATERPASSAGE’라는 이름의 굴다리. AI를 이용해 ‘CINEMATHEQUE PASSAGE’로 수정. ‘시네마테크 파사주’ 프로젝트를 떠올렸던 시점에 내게 많은 예술영화관 정보의 원천이 되었던 곳은 유럽의 예술영화 전용관 협의체인 유로파 시네마(Europa Cinemas)에서 구축한 ‘유로파 시네마 지도’였다. 이 온라인 지도 에는 소속 예술영화관들의 좌표가 붉은색 점으로 표시되어 있다. 나는 지구본 형태의 유럽 대륙 지도에 붉은 점으로 환원된 예술영화관을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서, 한 나라의 영화문화를 상징하는 거대한 시네마테크 집합체를 구상했다. 프랑스에는 총 107개 지역에, 208개의 예술영화관이 곳곳에 퍼져있다. 총 스크린은 440개이다. 아마 유로파 시네마에 속하지 않은 예술영화관을 포함하면 그 이상의 거대한 시네마테크를 떠올려야 할 것이다. 특히 이곳에서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시네마테크에서 보기 어려운 다양한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는 지금의 영화들을 만날 수가 있다. 이탈리아에는 208개의 영화관이 있고, 스크린 수는 254개이며, 총 116개 지역에 고르게 흩어져 있다. 이들 예술영화 전용관은 모두 독특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대체로 그해의 대표적 예술영화, 독립영화를 상영하지만, 각 영화만의 고유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이 정체성은 영화관 이름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특히 프랑스에는 영화 종주국답게 감독의 이름을 딴 영화관이 많다. 여러분이 떠올릴 수 있는 감독은 대체로 있다. ‘시네마 장 비고’, ‘자크 타티 시네마’, ‘시네 막스 린더’, ‘마르셀 파뇰 시네마’. 시네마테크의 창립자 앙리 랑글루아의 이름을 딴 극장도 물론 있다(‘시네 앙리 랑글루아즈’). 배우의 이름을 딴 ‘장-폴 벨몽도 시네마’, 그리고 아마 이즈음에 여러분들이 기대할 장-뤽 고다르의 이름을 딴 영화관은 프랑스가 아닌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어 아쉽지만, 누벨바그를 함께 이끌었던 프랑수아 트뤼포의 이름을 딴 영화관(Cinéma François Truffaut)과 그의 영화 제목을 딴 ‘400번의 구타 영화관’이 있다. 이탈리아에는 당연하게도 문학가의 이름을 딴 ‘시네마 단테’가 있다. 특히 문학 또는 예술 사조를 딴 영화관들이 특히 눈에 들어온다. 작은 도시 카스텔 볼로네제에 있는 ‘시네마 모데르노(Cinema Moderno)’와, 페루지아에 있는 ‘포스트모데르니시모 시네마(PostModernissimo Cinema)’다. 아마도 포스트모데르니시모 시네마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은 곳, 가장 출입구가 아름다운 곳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탈리아 페루지아에 있는 '포스트모데르니시모 시네마'로 들어가는 문. (사진: POSTMODERNISSIMO ) 유럽 전역에는 총 779개 지역에 1,246개의 예술영화 전용관이 있다. 총 스크린은 2,921개다. 이렇게 전 세계 곳곳에 자리 잡은 예술영화관을 모아 거대한 시네마테크 집합체를 이룬다면 그것은 아마 오직 ‘세계의 영화관’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영화(시네마)의 유토피아이지 않을까? 어쩌면 시네마테크와 예술영화 전용관은 하나의 건물이 아닐지도 모른다.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보관된 필름과 자료들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어딘가에서는 오래된 영화가 다시 상영되고, 누군가는 작은 극장의 문을 열고, 다른 누군가는 어둠 속에 앉아 스크린을 바라본다. 이 모든 장소와 시간과 영화가 연결될 때,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시네마테크라 말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곳으로 가는 통로를 걷고 이어서, 지도책을 만들고 싶었다. 시네마테크 파사주. 영화관을 찾아가는 길. 영화관의 문으로 이어지는 통로. 3. 6월 20일 밤의 기억: 시네마 유토피아 나는 오늘, 시네마 유토피아(Cinema Utopia) 체인 중 하나인 몽펠리에 시네마 유토피아 (Cinema Utopia Montpellier) 문 앞에 서 있다. 문은 닫혀있다. 몽펠리에를 떠나기 전날 밤, 난 시네마 유토피아로 갔다. 마지막 상영작 중 하나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안고 숙소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정류소에서 몽펠리에 폴 발레리 대학(Université Paul-Valéry Montpellier)으로 가는 5번 트램을 탔다. 지난 18일부터 오늘 20일 오후까지 내가 참석했던 NECS 학회가 이 대학에서 열렸다. 몽펠리에 도착 후 학회 일정과 예기치 못한 일들로 인해 저녁 시간에 이곳에 가는 것을 연일 놓쳤기에, 오늘 밤이 마지막 기회였다. 시네마 유토피아는 학회장에 가는 길에 항상 지나쳤던 곳이기에 익숙한 발걸음으로, 이미 마지막 영화가 시작했기에 조급한 마음으로 1층 높이의 계단을 올라, 마호가니색의 닫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미 가와세 나오미(Kawase Naomi) 감독의 <야큐시마의 환상>은 시작한지 40분이 지났고, 히치콕이 아닌 캉탱 뒤피외(Quentin Dupieux) 감독의 공상과학 미스터리 코미디 애니메이션 <현기증(Le Vertige)>은 곧 있으면 끌날 시간이었다. 내가 희망을 품고 뛰어온 영화인 마르코 응웬(Marco Nguyen)과 니콜 아타네(Nicolas Athané) 감독의 애니메이션 <짐 퀸(Jim Queen)>은 시작한 지 10분이 지났다. 회색빛의 머리카락을 가진 매표소 직원이 먼저 눈짓과 손짓과 말로 들어갈 수 없다고 알려 주었다. 마치 오늘의 막차를 놓친 마음으로 난 포스터가 걸린 벽에 놓인 붉은색 벨벳 의자에 앉았다. 의자 옆으로 영화관 1, 2관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길게 이어졌다. 물론 영화관에 들어갈 수 없었다. 차단기 앞으로 지나가는 열차의 속도 사이로 새어 나오는, 건너편 내가 가야 할 곳의 풍경의 빛줄기처럼, 영화관의 닫힌 문 틈새로 이미지의 소리가 새어 나왔다. 내가 돌아서 떠나야지만 사라지는 빛의 소리였다. 시네마 유토피아는 일종의 예술영화 전용관 체인으로, 프랑스 남부 및 북부 지역의 주요 도시에 흩어져 공동의 영화 프로그램으로 연결되어 있다. 몽펠리에에서 동쪽으로 기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아비뇽(Avignon)’에, 서쪽으로 3시간 거리에는 ‘툴루즈(Toulouse)’에, 그리고 거기서 북서부 방향으로 더 2시간 30분을 기차로 가면 도착하는 ‘보르도(Bordeaux)’에 시네마 유토피아가 있다. 북쪽 지역에는 트루와(Troyes)에서 멀지 않은 마을인 ‘퐁생트마리(Pont-Saint-Marie)’와 파리 북서부 발도와즈 주 생투앙라우몬(Saint-Ouen l’Aumône)에 다른 2곳의 시네마 유토피아가 있다. 시네마 유토피아는 모두 유럽 예술영화관 협의체인 유로파 시네마 회원관이다. 특히 시네마 유토피아의 독특함은 자체 프로그램에도 있지만, 이 영화관이 추구하는 영화를 알리기 위해 사용한 광고 문구에서 드러난다. “Cinéma garanti sans 3D.” 직역하자면, “3D가 없는 영화임을 보장합니다.” 다소 프랑스식 또는 시네마 유토피아식의 유머로 이해하자면, ‘겉모습만 화려하거나 속임수 같은 효과가 가미된 영화가 아님을 보장한다’는 의미이다. 일종의 식품이나 농산물에 유전자 조작이 아님을 알리는 ‘GMO-Free’ 표시와 같은 것이다. 오로지 조작되지 않은 현실의 기록으로서의 영화를 추구하는 이 영화관만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문구이다. 시네마 유토피아를 수호하는 존재는 그래서 천사인지도 모른다. 프랑스 예술영화 전용관 체인 ‘시네마 유토피아’의 로고. (사진: Utopia Montpellier ) 나에게 영화관에 들어갈 수 없다는 수신호를 알린 점원이 물과 음료는 원하는 금액을 내고 자유롭게 마실 수 있다고 알려 주었다. 지갑에 있던 1유로를 음료 테이블에 놓인 돼지 저금통에 넣고 시원한 물을 한 컵 따랐다. 매표소와 관객 대기 장소는 마치 가정집 응접실처럼 아담했고, 이 공간의 주인인 것처럼 고풍스러운 의자와 커다란 괘종시계가 우아하게 놓여있었다. 매표소 옆 계단을 통해 3관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얼마 있지 않아 <현기증>이 끝나고, 관객들이 나왔다. 나는 그 틈을 이용해 살짝 영화관 내부로 들어갔다. 마치 예배당과 같이 고요한 침묵이 흐르는 분위의 영화관이었다. 스크린 오른쪽에 걸린 회화 때문에 더 그러한 인상을 받은 듯하다. 회화 속에는 촛불 앞에서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하는 여인의 고요하고 평온한 몸짓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성경책이 놓여있을 법한 나무로 만들어진 스탠드 위에, 이달 몽펠리에 시네마 유토피아 영화 프로그램 책자가 놓여있다. 마치 우리가 잃어버린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을 찾아 떠난, 아니면 영화의 본질을 찾아 떠난 순례자를 위한 안내서라도 되는 듯이 그렇게 놓여있다. 에필로그: 밤이 오면, 우리는 시네마테크에 간다. 세실리아: “오늘 밤에 새 영화를 개봉한대” - < 카이로의 붉은 장미 >(우디 앨런, 1985) © Orion Pictures Corporation 여러분은 어떤 날에 시네마테크에 가시나요? ‘시네마테크 파사주, Episode 2&3’부터 뤼미에르 영화박물관, 판테온 시네마, 로잔 시네마테크, 그리고 룩셈부르크 시네마테크 방문기가 펼쳐집니다. *** [1] Haley Weiss, “ John Akomfrah and the Image as Intervention ,” Interview Magazine , June 27, 2016. (접속일: 2026. 8. 2) 정찬철(영화미디어학 연구자) l 국립부경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영화와 미디어에 관한 논문과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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