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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세계 No 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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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세계 No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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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 속 째즈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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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작과정속에서의 콘티의 역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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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작과정속에서의 콘티의 역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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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의 베토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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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의 라흐마니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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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의 소프라노 아리아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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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과거 속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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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과거 속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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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포스터 속 한국과 체코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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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뉴욕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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續 映畵と批評(속 영화와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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續 映畵と批評(속 영화와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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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로 아뢰리다
오페라 영화 < 춘향뎐 >(2000)은 한국의 예술적 유산인 판소리와 시네마의 형식을 병합하고자 한 거대한 야심의 소산이다. 임권택 영화 세계의 큰 성취 중 하나인 이 영화는 서구 오페라 영화의 표준 관행에서 벗어나 한국의 토착적 오페라인 판소리의 특징에 의해 그 독창성이 발현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판소리는 완전히 드라마틱한 장르가 아니라 사설이 포함된 내러티브와 배우들의 가상 연기로 구성된 드라마 장르의 경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판소리는 임권택의 다른 영화 < 서편제 >(1993)의 주제였으나 <춘향뎐>에서 그의 관심은 소리에 통달하기 위해 시력을 희생한 여인의 삶을 묘사하는 것과는 근원적으로 다르다. 판소리가 등장인물들의 연기를 통해 영화에 통합되는 <서편제>와 달리 <춘향뎐>에서는 판소리의 형식이 서사를 추진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춘향뎐>의 서사는 영화 속 영화의 형식으로 미장 아빔의 구조를 형성한다. 임권택은 판소리 설화의 시각적 삽화에 의해 중단, 중첩, 교차하는 모의 무대 공연을 겹쳐둔다. 즉, 내러티브 공간은 단일화되지 않고 서로 다른 두 층위로 나뉘며 영화의 이미지는 판소리 공연 연출과 춘향 이야기의 시각화라는 이중적 기능을 갖는다. 구체적으로 그 양상을 살펴보자. 소리꾼 조상현의 노래와 사설은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의 기능을 하고 용의주도하게 계산된 배치에 따라 내레이션과 영화 속 배우들의 대사가 교차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무대 공연은 내러티브 전개의 중요한 길목에서 다섯 번 등장한다. 몽룡(조승우)과 춘향(이효정)이 만난 직후, 몽룡이 춘향을 떠난 이별 직후, 몽룡의 장원급제 직후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안과 바깥을 나누는 액자구조로 출발하여 액자의 프레임이 점점 그 경계를 지워버리는 구성은 이미지와 사운드라는 영화의 언어를 판소리의 언어와 병합하려는 예술적 작의의 산물이다. 다섯 개의 공연 장면 사이에 끼워 넣어진 삽화는 판소리의 서사 전개 방식과 영화적 어휘의 조화를 곳곳에서 연출한다. 특별히 임권택은 소리꾼의 입을 통한 구술 전개와 시각적 재현을 절묘하게 겹쳐놓음으로써 그 속성에 있어서 상이한 두 예술 매체(판소리와 영화)의 공감각적 합일을 이루고 있다. 소리꾼의 노래와 사설이 흘러갈 때의 리듬과 음율, 호흡의 고저/강약, 정서의 기복은 쇼트의 형태, 길이, 편집, 배우의 연기로 적확하게 번안된다. <춘향뎐>의 정신분열적인 디제시스는 이 영화가 서양 오페라 영화의 전통과 변별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잉마르 베리만의 <마술피리>(1975)나 조셉 로지의 <돈 지오반니>(1976) 같은 오페라 영화들에 무대 공연과 오페라 서사의 영화적 시각화 사이에 위반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는 뚜렷이 대비된다. <춘향뎐>의 정신분열적 디제시스 구성에서 흥미로운 점은 연극 무대 가창자들의 목소리와 영화 속 영화에서 배우들의 목소리가 춘향 이야기 안에 공존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말하는 목소리는 그것이 속한 디제시스에 국한되는 반면 노래하는 목소리는 두 디제시스를 초월한다. 즉, 노래하는 목소리는 노래의 시각적 삽화를 동반하는 보이스오버로 자주 사용된다. 예를 들어 판소리 연주자의 노래 내용이 이몽용과 춘향이 만나는 곳의 풍경을 묘사할 때, 이미지 트랙은 오페라 무대에서 그 풍경의 사실적인 영화적 이미지로 이동한다. 이때 노래하는 목소리는 보이스오버로 계속된다. 판소리 연주자들은 노래 하는 것이 아니라 가끔 말하는 목소리를 가진 화자가 된다는 점에서 서양 오페라 영화와 구별된다. 판소리에서 노래하는 부분을 ‘소리’로, 말하는 부분을 ‘아니리’로 구분하는데, 가창자가 등장인물과 화자의 이중 역할을 하는 것은 서양 오페라의 전통에 존재하지 않는 판소리만의 특징이다. 이러한 이중적 역할은 영화적 이미지와 오페라 가창의 상호작용 측면에서 판소리의 영화적 제작을 서양 오페라보다 더 복잡하고 정교하게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을 창출한다. <춘향뎐>에서 이미지와 음악의 관계를 살펴보면 이러한 잠재력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춘향뎐>에서 판소리 가수가 연극 무대에서 공연하는 이미지는 영화의 메타 내러티브에서 따온 것이며, 이러한 다중 내러티브는 음악과 이미지의 관계를 보다 복잡하고 다양하게 만든다. 이 영화에서 음악-이미지 관계는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가장 단순한 형태는 무대에서 이루어지는 판소리 가수의 공연이다. 즉, 이미지는 극장에서 노래를 부르든 말을 하든 판소리 공연을 보여준다. 둘째, 앞서 언급했듯이 판소리 가수의 내레이션이 노래를 부르든 말을 하든 그 내레이션의 내용을 시각적으로 설명하는 보이스오버가 되는 것이다. 목소리는 메타 디제시스 세계에서, 이미지는 판소리 서사의 디제시스에서 유래하여 두 가지 차원의 디제시스가 결합되는 순간이다. 셋째, 이미지와 사운드 모두 판소리 무대의 메타 디제시스를 떠나 영화 속 춘향 이야기의 디제시스로 이동한다. 판소리 사설과 노래과 영화로 만들어진 것처럼 완전히 영화적이 되는 순간이다. 가장 흥미롭게도 네 번째 형태의 음악-이미지 구성에서는 영화에서 말하는 대사와 무대에서 판소리 가수가 부르는 가창이 동시에 제시되는, 일종의 ‘더블 보이싱’이라고 부를 수 있는 형태이다. 변학도가 춘향을 고문하는 신은 이 네 가지 형태의 음악-이미지 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들을 제공한다. 고문 신은 위에서 설명한 네 가지 유형 중 세 번째 유형인 판소리 내러티브의 영화적 시각화로 시작됩니다. 판소리 공연에서 고문 현장으로 이미지가 이동할 때 노래하는 목소리가 멈추고 판소리의 말하는 목소리로 대체된다. 변학도가 춘향을 고문할 준비를 지시한 후 변학도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무대에서의 가창이 보이스오버 사운드 트랙으로 돌아온다. 판소리 보이스오버는 집장사령이 고문을 위해 이동하는 거동과 움직임, 형장을 들고 와 땅바닥에 흩뿌리고 그중 하나의 형장을 선택하여 들어 올리는 행위를 설명한다. 음성과 이미지의 이러한 구성은 위에서 이야기한 음성-이미지 유형의 두 번째 범주를 보여준다. 다음은 세 번째 범주로 돌아가는 것인데, 이번에는 가창의 보이스오버가 아니라 집장사령의 말과 겹쳐지는 대사가 보이스오버 역할을 하여 고문당하는 춘향의 마음과 몸의 움직임을 사설로 묘사한다. 고문 장면의 극적이고 음악적인 클라이맥스에서 춘향은 일자 포악으로 변학도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단을 말로, 그 위에 겹쳐지는 판소리 가창은 노래로 분리된다. 일종의 아리아라고 볼 수 있는 이 장면에 대한 임권택의 영화적 표현은 ‘더블 보이싱’의 사례를 제공한다. 화면에서 춘향의 목소리와 보이지 않는 무대에서 노래하는 가창자의 소리는 동일한 가사를 각각 말과 노래로 발음한다. 그리고 춘향의 고문 이미지 위에서 서로 다른 층위의 두 목소리가 동시에 들린다. 춘향의 저항과 변학도의 명령, 집장사령의 타격이 교차하는 매질 현장에서 무대의 메타 디제시스 세계로 이미지 트랙이 이동함에 따라 춘향의 말하는 목소리가 이중 보이스에서 빠져나간다. 그리고 판소리 가수의 목소리가 최종적인 형태로 구현된다. 즉, 위에서 언급한 첫 번째 유형, 극장에서 춘향을 공연하는 판소리 가수의 노래를 화면에서 듣고 본다. 고문 신은 원천 판소리처럼 음악적 정교함과 감정적 강렬함 면에서 가장 흥미롭다. 이 장면을 통해 임권택은 연극 무대에서 노래로 이야기를 표현한다는 넓은 의미의 오페라라고 할 수 있는 영화적 연출을 완벽히 실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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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사랑한다면 그때는 우리 이러지 말아요
< 극장전 >(2005)은 타임라인의 재구성을 혼란에 빠트리는 홍상수 의 평판작들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선택적 경로의 내러티브를 보여준다. 서사는 두 개의 분리된 라인을 따르는데 플로팅은 그들을 교차커팅하지 않고 나란히 배열한다. 두 개의 내러티브 가닥은 서로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두 부분의 왜곡된 대칭은 추상적 사고를 독려하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형식적으로 격정적이고 유머러스한 톤을 가진 이 영화는 젊은 청년의 이야기와 그의 이야기를 묵상하며 하루를 보내는 영화감독의 스토리를 병치시키는데 둘은 영화 속 영화, 내지는 영화에 대한 구조로 엮인다. 전상원(이기우)의 스토리 A와 김동수(김상경)를 주인공으로 한 스토리 B는 명확하게 규정된 대조 또는 편집된 병치 안에서가 아니라 모호하고 추상적으로 서로를 가리킨다. 서로를 희롱하는 앞과 뒤를 쫓는 두 개의 단락의 잇는 것은 여주인공 최영실(엄지원)이다. 서사적으로 A와 B는 각자 생명이 위중한 영화감독 이형수가 만든 단편영화 스토리와 영화를 보고 나온 그의 후배 동수의 허허로운 여정으로 설정된다. 느슨한 구조는 캐릭터와 플롯에 새로운 차원을 덧붙일 뿐 아니라 두 단락의 절정부에 놓은 죽음의 그림자처럼 장난기가 묻은 거울구조가 작동한다. A에서 B로 이행하면서 인물들은 말과 제스처, 대사 또는 감정의 경련을 반복하거나 부인하면서 행위의 동기와 결정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조금씩 말해준다. ‘극장전’이라는 제목은 극장(영화)에 관한 이야기라는 표층적 의미의 단순함 아래 이 영화가 홍상수의 가장 급진적이고 복합적인, 전환기적 문제작 중 하나라는 사실을 숨긴다. 그의 초기작들과 구별되는 특성으로 거론되었던 줌과 보이스오버가 최초로 나타났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대다수의 장면 안에서 이 둘은 병합되어 등장한다. 이러한 계시적 형식을 초월하여 각 장면들은 활성화된 카메라 워킹을 구사한다. 한편으로 미장센은 바깥 이야기의 시선이라는 상대적인 외부성으로부터 뻣뻣하고 신속한 좁은 범위의 팬을 통해 신중한 프레임 구성과 분석적인 카메라 움직임을 보여준다. 이는 관계의 체계를 시각적으로 묘사하는 반면 빈번하고 폭력적이며 갑작스러운 줌의 확대/축소를 사용함으로써 보이스오버와 운을 맞춘다. 스타일의 변절이라는 의미에서 이러한 장치들을 만나는 것은 후속작들에서는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게 되었지만 그제까지 홍상수 영화의 엄격한 형식미에 비추어 파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전반부에 보이스오버의 상대적인 우위에도 불구하고, <극장전>의 라스트 신은 홍상수 영화에서 첫 번째로 나타난 논-디제틱(Non-Digetic) 보이스오버로 꼽을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주의를 요한다. 모든 여정을 마친 후 거리를 걷는 동수의 보이스오버 나레이션은 다음과 같다. ”인제 생각을 해야겠다. 정말 생각이 중요한 거 같애. 끝까지 생각하면 뭐든지 고칠 수 있어. 담배도 끊을 수 있어. 생각을 더 해야 돼. 생각만이 나를 살릴 수 있어. 죽지 않고 오래 살 수 있도록.” 이 장면의 재현 방식은 동수의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이 스토리 세계의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다시 말해 인물의 실제 생각이 아니라 인물에 대한 하나의 메모로서 읽힌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동수의 보이스오버는 스토리 A에서 빈번하게 나타난 상원의 그것과 구별된다. “돌아다닐 맘이 꽉 차서 처음으로 돈을 막 쓸 생각이었다”거나 “괜히 담배를 피우고 싶어서 담배 한 갑을 샀다”는 말, “이러다 우리 사고내겠다”는 상원의 진술은 스토리 세계 안(단편영화)에 속한다. 이렇듯 영화에서 보이스오버란 작중 인물의 내면의 목소리로 개입하여 상황과 심리, 전개에 대한 기술(記述)로 쓰인다. 하지만 라스트 신에서 동수의 보이스오버는 내러티브 기능에 종사하거나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는다. 허다한 디테일들이 축적된 이후에 그것의 중요성은 뚜렷해진다. 영화의 말미에 영실은 병원 앞에서 바로 전날 밤 차가운 섹스를 나눈 동수를 우연히 만난다. 이 장면에서 영실은 동수의 의도를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는데 그것은 관계를 계속할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탐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욕망 없는 섹스에 대한 씁쓰레한 기억을 털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인물들을 당혹과 무력, 환멸 속으로 밀어넣음으로써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 홍상수는 관객들에 대한 대담한 믿음을 가지고 의미와 구조를 조립하는데 있어서 엄청나게 많은 책임을 그들에게 지운다. 그러나 텍스트의 요구를 만날 수 있는 관객들은 그들 자신과 그들을 둘러싼 세계, 예술 그 자체를 바라보는 방식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 이는 관습적인 영화가 결코 제공할 수 없는 형태의 보상으로 반복의 환영을 조성하는 전략에 의해 뒷받침된다. 위 의제와 관련하여 <극장전>에서 상호 반향하는 거울구조의 기하학적 형상은 음악적 단서에 의해 신호된다. 장엄하게 동수의 이어폰을 울리는 ‘라데츠키 행진곡’, 음주에 곁들인 채 영화의 안과 바깥을 타고 흐르는 노래들은 분리된 두 개의 스토리 주변을 감싼 압력을 형상화한다. 예를 들어보자. 스토리 A에서 영실과 상원이 저녁을 대신하여 호프집에 갔을 때 ‘다시 사랑한다면’이라는 대중가요가 흘러나온다. 공간의 배경을 장악한 반주는 후속하는 노래방 신으로 이어져 영실이 같은 노래를 부르도록 만든다. 스토리 B에서 ‘다시 사랑한다면’은 남산타워로 향하는 오르막길을 걷는 동수의 핸드폰에서 흘러나와 동수의 흥얼거림으로 연결되고 곧바로 지인들의 회합이 열리는 한식당 ’남문정‘의 노래방 기계 앞에서 영실이 부르는 노래로 이어진다. 일련의 노래의 흐름은 평행구조에 대한 홍상수의 독특한 접근 방식을 예시한다. <극장전>은 인간 지각의 본성, 반향효과 및 기타 영화적 전략을 통해 하나의 시청각적 기표가 동일한 방식으로 교호하는 평행주의(Parallelism)의 전통적인 구성을 문제화한다. 그의 내러티브 전략은 병렬성을 실제로 평행한 것으로 인식하여 관객들이 그 안에서 내포적 의미를 찾도록 하는 관습을 대담하게 파괴한다. 전체 구조 안에서 이러한 전개와 종결 방식은 탁월하게 작동한다. 대표적으로 “함께 죽자”는 말의 반복은 서사의 앞부분을 이루는 단편영화의 중심부에서 극중 상원의 대사로 등장한다. 그러나 삶이 예술을 모방한다고 단순하게 말하는 것을 넘어 이 이야기는 영화가 우리들의 정신의 근간이 되는 방식을 보여주려고 한다. 인물들의 불가사의한 열정은 종종 기이하고 기괴한 방식으로 영화와 뒤얽힌다. 이전에 홍상수 영화에서 나타난 적이 없었던 극적 줌인과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이라는 단편영화의 형식적 스타일은 그와 평행하게 놓인 실재 부분에서 반복된다. 홍상수는 이러한 형식적 장치들이 영화 속 영화의 특징이라고 생각하도록 관객들을 현혹하고, 정적인 침묵의 영역으로 돌아갔다고 생각했을 때 이 기교들을 반복함으로써 사실과 허구 사이의 선을 흐린다. 여기에는 개별 영화(들) 사이의 반향도 존재한다. 일례로 롱테이크로 찍힌 떠들썩한 음주 장면들과 음주의 결과로서 이어지는 견실하고 정적인, 그러나 김빠진 섹스에 대한 묘사를 들 수 있다. 음주는 굴욕의 미장센을 이끌면서 개별 신 사이의 대결을 위한 촉매를 제공하고, 영화의 안과 바깥에서 서로를 마주보는 섹스 신은 미세한 차이를 두고 반복되는 카메라 셋업으로 찍혔다. 죽어가는 감독 이형수(김명수)의 영화와 홍상수의 영화를 구별하기 위해 가상과 실재를 거의 동일한 스타일로 촬영하기로 선택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솜씨 좋은 유희는 우리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만든다. 함께한 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영실은 동수에게 “영화를 정말 잘못 보신 것 같아요”라고 일갈한다. 이 진술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스토리 안에서 실패한 관계의 반복을 완성한다. 반복되는 삶 속에서 어떻게 실패하지 않을 수 있는가? 이런 류의 영화가 지닌 참된 가치가 한 번이 아니라 거듭하여 숙의할 때 드러나는 것처럼 죽어서 다시 태어난다면, 그래서 다시 사랑한다면 그때는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으리라는 다짐이 필요하다. (관련글) 1. 2000년 1월 1일 0시, 거꾸로 가는 기차 - <박하사탕>(1999), 2021.04.16. 2. 넥타이로 총을 겨누었을 때 - <올드보이>(2003), 2021.05.14. 3. 요리사는 어디로 가는가? - <오!수정>(2000), 2021.06.04. 4. 고반장은 이렇게 말했다 - <논픽션 다이어리>(2013), 2021.07.09. 5. 머리를 자르고 새 옷을 입는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 <무산일기>(2010), 2021.08.10. 6. 엄마의 침통은 죄를 기억한다 - <마더>(2009), 2021.09.03. 7. 수인동성동형론(獸人同性同形論)에 따르면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2021.10.15. 8. 유능한 이야기꾼은 진실이 거기 없다는 것을 잊도록 하는 이야기를 지어낸다 - <버닝>(2018), 2021.11.12. 9. 죽음의 한 연구(硏究) - <파산의 기술>(2006), 2021.12.10. 10. 사마귀가 사마귀를 먹다 - <춘천, 춘천>(2016), 2022.01.07. 11.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사랑한다면 그때는 우리 이러지 말아요 - <극장전>(2005), 2022.03.08. 12. 철없는 엄마와 파란만장한 남자들, 그리고 엔카 가수 - <그때 그사람들>(2004), 2022.04.06. 13. 도무지 집중이 안 되는 이야기 - <형사 Duelist>(2005), 2022.05.24. 14. 철의 신이 수장(水葬)시킨 고래의 추억 - <철의 꿈>(2013), 2022.06.16. 15. 골목길을 저절로 움직이는 자전거 - <풍경>(2013), 2022.07.14. 16. 일자로 아뢰리다 - <춘향뎐>(2000), 2022.08.11. 17. 연결연결, 믿음의 벨트 - <기생충>(2019), 2022.09.08. 18. 아마도 악마가 - <곡성>(2016), 2022.10.20. 19. 말도 안돼 기분 나쁜 그 제목은 나쁜 영화 - <나쁜 영화>(1997), 2022.11.25. 20. 황야의 울부짖는 개 - <복수는 나의 것>(2002), 2022.12.14. 21. 숟가락을 구부리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죠. 하지만 그러한 힘을 가지고 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 <88/18>(2018), 2023.01.04. 22. 완전하고, 만족스러운 진실은 없다 - <파수꾼>(2010), 2023.03.03. 23. 이미지의 확실성과 증거력에 대한 회의 - <김군>(2018), 2023.04.05. 24. 범죄의 요소 - <괴물>(2006), 2023.05.17. 25. 투명인간이 되는 법 - <빈집>(2004), 2023.07.05. 26. 어차피 우리는 유령이 될 거예요 - <후쿠오카>(2019), 2023.08.30. 27. 생라면, 참치 통조림, 라이터, 휴지, 그리고 사시미칼 - <넘버3>(1997), 2023.10.05. 28. 풍등(風燈)은 날아가고 - <해피엔드>(1999), 2023.10.18. 29. 504호, 고아, 사라진 애, 시체... 이제 마지막 남은 얘기 하나 - <소름>(2001), 2023.11.07. 30. 열여덟, 바람의 색깔 - <회오리 바람>(2009), 2023.11.20. 31. 가면고(假面考) - <반칙왕>(2000), 2023.12.11. 32. 문은 두 방향으로 나 있다 - <두 개의 문>(2012), 2023.12.28. 33. 지옥의 복도 - <아수라>(2016), 2024.01.08. 34. 삼(3)의 몰락 - <성적표의 김민영>(2021), 2024.02.05.
[칼럼]알모도바르의 영화 속 연극
알모도바르의 1997년 작 < 라이브 플래쉬 >에서 빅토르(리베르토 라발 扮)와 엘레나(프란체스카 네리 扮)가 싸울 때 텔레비전 화면에는 루이스 브뉘엘 감독의 <범죄의 리허설>이 나온다. 그런데 영화 <라이브 플래쉬>의 내러티브와 영화 속 영화 <범죄의 리허설>의 장면이 묘하게 중첩된다. 엘레나가 떨어뜨린 총이 발사되자 <범죄의 리허설>의 여자가 총에 맞아 쓰러진다. <범죄의 리허설>에는 다리가 떨어져 나간 마네킹이 나오는데 <라이브 플래쉬>에서는 다비드가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된다. <범죄의 리허설>에서 마네킹이 불타는데 <라이브 플래쉬>에서는 클라라(안젤라 몰리나 扮)가 빅토르로부터 결별을 통보받는 순간 불길에 갇힌다. 감독은 ‘범죄의 리허설’이 그 장면의 제목이기도 하다고 밝힌 바 있다. 알모도바르는 <라이프 플래쉬>처럼 영화 속에 다른 영화를 삽입하여 내러티브를 중첩시키고 강조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이야기를 예견하게 하는 방식을 즐겨 쓴다. 이는 미장아빔(mise en abyme) 기법을 활용한 것이다. 미장아빔은 ‘이야기 속의 이야기’를 의미하는 문학 기법으로 잘 알려져 있다. 프랑스의 소설가 앙드레 지드가 그의 1893년의 일기에서 가문의 문장(紋章, blason) 가운데에 문장의 축소판 혹은 비슷한 아빔(en abyme)을 새겨넣는 것과 같은 작법을 선호한다고 밝힌 것에서 착안, 60여년 뒤 비평가 매그니가 이 용어를 창안했다. 그리고 누보로망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론가들의 논의를 거쳐 오늘날 예술 전반에 사용하게 되었다. 오늘날 미장아빔 기법은 작품 속에 다른 작품을 삽입하여 심연에 빠지는 효과를 주거나 상호텍스트성 혹은 자기반영성을 통해 작품의 형식을 확장할 때 주로 사용한다. 알모도바르는 <라이브 플레쉬>처럼, 영화 속에 텔레비전 화면을 비추는 미장아빔을 선호한다. 이는 프레임 속에 프레임이 생성되어 영화적 심연으로 빠지는 듯한 느낌을 주므로 다른 감독들도 종종 사용하는 낯설지 않은 기법이다. 그러나 알모도바르 영화가 다른 영화보다 더 개성적인 이유는 연극을 삽입하여 미장아빔을 구현하기 때문이다. 영화 안에 이질적이고 낯선 연극 장르를 삽입하면 관객 사고를 영화 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환기시키며 독특하고 예술적인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다. 알모도바르는 고등학교 졸업 후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기 전까지 극단에서 단원으로 활동했다. 때문에 그의 영화에서는 연극 혹은 연극적 요소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 내 어머니의 모든 것 >의 테네시 윌리암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 그녀에게 >의 티나 바우쉬의 탄츠테아터, < 페인 앤 글로리 >의 《중독》은 영화 속에 연극 장면이 직접적으로 삽입된 예다. 또한, <욕망의 법칙>, <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들 >은 연극적 세트에서 연극적 대사를 기반으로 제작되었고, < 휴먼 보이스 >는 장콕도의 《휴먼 보이스》를 각색한 작품이다. 감독의 정체성에 연극이라는 프레임이 자리하고 있는 바, 그의 작품은 영화와 연극이라는 이질적 타 장르가 혼재하며 그만의 개성으로 확립된다. <그녀에게>의 오프닝과 앤딩 장면에는 독일의 저명한 무용가 (故)피나 바우쉬의 탄츠테아터(춤연극)가 미장아빔으로 삽입되었다. 오프닝에 배치된 《카페 밀러》에서는 눈을 감고 있는 여인이 검정색 의자와 원탁, 회색 벽으로 가로막힌 무대에서 고통으로 가득 찬 춤을 춘다. 같은 공간에 있는 한 남자는 여인이 달릴 때마다 필사적으로 의자와 원탁을 치우며 여인이 부딪치지 않게 보호하려고 애쓴다. 《카페 밀러》 공연장면의 롱테이크에 이어, 나란히 관람하고 있는 베니그노와 마르코의 미디움 쇼트가 연결된다. 눈을 감은 여인과 그녀를 보호하는 남성의 탄츠테아터는 코마상태에 빠진 알리시아(레오노르 와틀링 扮)와 리디아(로사리오 플로레스 扮)를 돌보는 베니그노(하비에르 카마라 扮)와 마르코(다리오 그란디네티 扮)의 모티프적 형상인 셈이다. 그리고 앤딩의 배경은 남겨진 알리시아와 마르코가 관람하러 간 바우쉬의 《마주르카 포고》의 공연장이다. 무대 위의 초록색 풀과 그 사이로 낙하하는 물방울 그리고 무용수들의 꽃무늬 의상은 생명력 넘치는 태초의 에덴동산을 연상시킨다. 남녀 커플로 구성된 무용수들의 춤은 오프닝과는 정반대의 경쾌한 분위기다. 새로운 만남을 시작하는 듯한 두 남녀 무용수의 모습에서 관객은 알리시아와 마르코가 연인으로 발전할 것을 짐작하게 된다. 이처럼 <그녀에게>의 오프닝과 앤딩의 탄츠테아터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압축적으로 암시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카페밀러》 -눈감은 무용수의 길을 터주는 남성 《마주르카 포고》 -커플들의 경쾌한 춤 <내 어머니의 모든 것>에는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영화의 관통선을 갖는 중요한 연극으로 삽입되었다. 주인공 마뉴엘라(세실라 로스 扮)가 젊은 시절 이 연극을 하며 남편을 만났고, 남편이 떠나고 홀로 키워 장성한 아들과 함께 연극을 본 후 교통사고로 아들이 죽는다. 그리고 마뉴엘라는 연극의 스텔라를 다시 연기하며 조금씩 긍정적으로 변화한다. 영화에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마뉴엘라에게 만남과 이별을 주는 애증의 매개이다. 그리고 동시에 고통에서 극복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알모도바르는 연극을 활용한 미장아빔 외에도, 연극적 형식을 차용하여 영화의 분위기를 반전시키기도 한다. 비극적 전개 속에서 발리우드식 뮤지컬이 난데없이 난입하는 < 나쁜 버릇 >이나 < 하이힐 >을 보면 당혹스럽기도 하다. 알모도바르 초기 영화가 키치의 영역에 있다고 평가받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장면이 없다면 알모도바르 영화가 아니다. 비일상적인 장면을 삽입함으로써 가지게 되는 묘한 흥분과 긴장감은 알모도바르 영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색이기 때문이다. <하이힐> 여성 수감소에서의 뮤지컬 댄스 또한, 감독은 공연이란 형식으로써 구현되는 배우와 관객, 다시 말해 보여주는 자와 보는자로의 이분법을 연출에 활용한 것이다. <나쁜 버릇>에서 센터에 있는 키큰 금발 수감자를 뮤지컬 댄스를 통해 주목받게 하고 구경꾼들에게 그녀에 대한 뒷담화를 나누게 함으로써 갑자기 내러티브에 끼어들 수 있도록 장치했다. 또한 < 귀향 >에서 라이문다(페넬로페 크루즈 扮)가 부르는 《귀향》은 라이문다의 상처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응축한 노래이지만, 동시에 차에 숨어 입을 틀어막고 울면서 딸의 노래를 듣는 어머니의 모습이 강조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녀에게>에서 카에타노 벨로조가 부르는 《쿠쿠루쿠쿠 팔로마》 역시 영화 전반을 반영하는 슬픈 사랑 노래이면서 동시에 노래를 듣고 눈물 흘리는 마르코를 위한 장면이기도 하다. 이처럼 알모도바르는 보여주는 자와 보는 자를 모두 강조하기 위해 공연 장면을 종종 활용한다. 나아가, 감독은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 집단의 전경을 비추며 마치 공연장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페인 앤 글로리>의 극중극인 《중독》 공연장면에서 객석의 전경을 비추는가 하면, <그녀에게>의 《마주르카 포고》 공연장면에서 관람 중인 객석을 비춘다. 그밖에도 감독은 크고 작은 이벤트를 관람하는 집단의 모습을 영화에 삽입하곤 한다. <페인 앤 글로리>- 《중독》의 관객 <그녀에게>- 야외공연의 관객 감독은 관객 집단 쇼트에서 오히려 공연하고 있는 퍼포머를 측면에 위치시키고 관객의 모습을 전면에 배치한다. 영화를 관람하던 나는 관객들의 모습을 나와 동일시하며 별안간 공연장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따라서 이 쇼트의 주인공은 퍼포머가 아니라 관객 그리고 나다. 감독의 시선만을 쫓아야 하는 고독한 개인이었던 영화의 관객은 공연장의 관객 집단 쇼트로 인해 역동성과 시점의 자유를 제공받게 된다. 퍼포머에게 맞추어져 있던 포커스가 아웃 되고 확장된 시선을 따라 다른 관객들을 자유롭게 관찰하다 보면 어느새 매체적 제약은 파괴된다. 보여주는 자와 보는자가 결코 실제로 만날 수 없는 영화라는 매체에서 이들이 만나는 장면을 삽입함으로써 연극적 현장성을 고조시키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장르를 모호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연극을 잘 알고 쓰는 알모도바르의 연출력이라 할 수 있다. 영화라는 단일 장르만 사용하지 않고 연극과 연극적 형식을 활용하여 종합예술로서의 영화를 선보이는 알모도바르의 다음 작품이 궁금해진다. 혹여 그의 신작에 낯선 연극이 삽입되었다면 지나치지 말고 어떻게 미장아빔으로 활용했는지 그 연극을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 영화와 연극의 레이어를 통해 스스로 의미의 퍼즐을 맞추며 영화를 200%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연극적 형식이 나타나 나를 당황하게 한다면 그저 이질적인 느낌 그대로를 새기는 것이 어떨까? 이것이 알모도바르 유니버스를 즐겁게 탐험하는 방법일테니 말이다. 다음 편은 "알모도바르 유니버스"의 마지막 편 「알모도바르의 영화와 현실의 순환」이 연재된다. 많은 관심 바란다. (관련글) 1. 알모도바르 영화의 연결된 세계 - 2021.10.20. 2. 알모도바르의 영화 속 연극 - 2021.10.21. 3. 알모도바르 영화와 현실의 순환 - 2021.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