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빈더: 요구없는 사랑
- 감독
- 크리스티안 브라드 톰젠
- 제작년도
- 2015
- 출연
-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이름 허만, 해리 베어, 리로 펨파이트, 크리스티안 브라드 톰젠
<폭설> 중 '실사'에 드리운 한계를 넘으면 비로소 선명해지는, 영화가 낳은(을) 새로운 감각과 지형을 발견합니다. 영화는 태생적으로 기술 발전에 조응하며 미학적, 산업적 변화를 거듭해 온 매체이다. 무성에서 유성으로, 흑백에서 컬러로, 아날로그 필름에서 디지털로 이행하는 기술사적 변곡점마다 영화 창작자들은 새로운 표현 가능성과 방법론적 도전에 직면해왔다. 최근 부상하는 인공지능(AI) 기술 역시 이러한 영화 기술사의 연장선상에서 주목해야 할 중요한 변수로 부상하고 있으며, 이는 영화 제작 방식과 미학 전반에 걸친 또 다른 전환을 예고한다. 최근 필자가 제작한 단편 < 폭설 >(2024)은 AI를 기반으로 전체 제작 과정이 이루어진 코즈믹 호러 영화이다. 전통적인 촬영과 후반 작업 대신 인공지능 생성 기술을 전면적으로 활용함으로써, 기존 영화 제작 방식으로는 구현이 불가능했던 시각 요소들을 구현할 수 있었다. AI 기반 제작 방식은 물리적 세트나 대규모 시각효과팀이 없이도 연출자의 순수한 상상력을 직접적으로 시각화할 수 있는 혁신적 가능성을 열었다. <폭설>은 종말을 앞둔 2009년 겨울, 설국(雪國)을 배경으로 구축된 디지털 세계이다. 주인공 소요는 어릴 적 친구인 유코를 기다린다. 작은 섬마을에서 벌어진 초자연적 현상은 종말로 확대되고, 소요가 유코가 남긴 수취인 없는 유서를 떠올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는 특히 ‘몬사로(漢字道)’라 불리는 초월체. 형이상학적 존재를 시각화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러한 비물질적이고 초월적 존재의 표현은 전통적 시각효과로는 구현하기 어려웠으나, 생성형 AI 파이프라인을 통해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시각적 표현을 달성할 수 있었다. <폭설> 제작에서는 프리 프로덕션부터 포스트 프로덕션까지 AI 기술을 다층적으로 활용했다. 특히 시나리오에서 묘사된 ‘몬사로’라고 하는, 형체가 정확히 드러나지 않는 형이상학적 존재의 시각화 작업은 정교한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을 통해 점진적으로 구체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작업을 안정화하기 위해 대규모 언어 모델인 Claude API를 활용하여 엔지니어링 프로그램을 개발하였고,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AI 프로덕션을 진행할 수 있는 구조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는 시나리오의 핵심 시각 요소와 정서적 톤을 분석하고 이를 이미지 생성 명령어로 변환하는 중간 매개체로 기능했다. 독백으로 전개되는 14분 분량의 이 작품은 대화 장면보다는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와 분위기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한다. 이러한 접근은 AI 영화 제작의 특성을 고려한 의도적 선택이었다. 당시 AI 기술로는 자연스러운 대화 장면과 입술 동기화를 구현하기 어렵기 때문에, 내면의 독백을 통한 서사 전개 방식을 선택하고 시각적 요소에 집중했다. <폭설, 暴雪> 중 전체 설국 시퀀스 제작을 위해 직접 촬영한 눈의 텍스처를 학습시켜 AI로 생성된 설산 배경 이미지를 기본 레이어로 사용하였고, 특히 사실적인 표현과 초현실적 요소 사이의 균형을 세심하게 조정했다. 여기에 ControlNet을 결합한 워크플로우를 구축했다. 기본 배경 이미지에 ComfyUI 노드 기반 워크플로우를 적용해 시네마틱한 로그 프로파일을 구현했다. 이후, 35mm 필름의 할레이션 효과를 재현하고, ControlNet으로 아나모픽 렌즈 플레어와, 얕은 피사계 심도와 대기 원근법을 구축했다. 이후 후반 작업에서는 Film Grain 노드로 Pro-Mist 필터 효과를 시뮬레이션 후, 시네마틱 톤매핑을 완성하여 애너모픽 스퀴즈와 쿨-웜 색상 대비를 정교하게 조절하며 실제 영화의 질감을 구현하기 위해, 본 단계들이 점진적으로 추가되었다. 특히 캐릭터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환경이 서서히 변화하는 과정을 표현하기 위해 이미지 변환 기술을 여러 단계로 적용하며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현상은 AI가 때로 예측하지 못한 창발적 결과물 을 생성한다는 것이었다. 초기에는 이러한 ‘알고리즘적 우연성’을 오류로 인식했으나, 점차 이를 창의적 발견의 기회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접근법을 전환했다. 특히 설산 시퀀스 작업 중 한 번의 생성 과정에서 AI가 만들어낸 모호한 형체가 의도했던 것보다 더 본질적인 불안감을 자아내는 효과를 발견했다. 눈보라 속에서 형체가 완전히 뚜렷하게 드러나는 대신, 눈의 패턴 자체가 미묘하게 얼굴이나 실루엣을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왜곡되는 효과가 우연히 생성되었는데, 이는 결국 최종 장면에 반영되었다. 이 경험은 단순히 계획한 이미지를 기술적으로 재현하는 것을 넘어, AI와의 대화적 창작을 통해 새로운 시각적 가능성을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AI와의 협업을 통한 창발적 발견은 <폭설> 이후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프로젝트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현재 제작 중인 <어령(御靈)>은 <폭설>의 후속 이야기를 다루는 인터랙티브 영화로, 관객의 선택에 따라 서사가 달라지는 새로운 형태의 영상 작품이다. <폭설>에서 구축된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되, 인터랙티브 요소를 통해 관객이 직접 서사에 개입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기존의 AI 영화 제작 기법에 더해 실시간 선택 분기와 동적 서사 생성이라는 새로운 기술적 도전이 추가되었다. 특히 관객의 선택에 따라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시각적 요소들을 AI를 통해 구현하는 것은 전통적인 영화 제작 방식으로는 불가능한 실험적 시도이다. <어령>은 AI 기술이 단순한 제작 도구를 넘어 새로운 형태의 영화적 경험을 창조할 가능성을 탐구하는 프로젝트로 기획되었다. <어령, 御靈> 중 <폭설>과 <어령>의 제작 과정에서 핵심 미학적 도전 중 하나는 등장인물의 얼굴 일관성을 유지하는 문제였다. 이를 위해 포스트 프로덕션 단계에서 ComfyUI 기반의 얼굴 일관성 파이프라인을 구축했다. 특히 AI 생성 영화에서는 동일한 인물이 장면마다 미묘하게 달라지는 현상이 발생하는데, 이는 AI가 매번 새롭게 이미지를 생성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본질적 특성이다. 이러한 일관성 부재는 서사적 몰입을 저해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얼굴 치환 기술을 활용했다. 이 기술은 영화 중반부의 주요 장면에서 특히 중요했다. 이 장면에서 인물의 대화와 표정은 서사적 긴장감 형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 미묘한 변화를 시각화하기 위해, ComfyUI의 얼굴 치환 기능과 함께 감정 표현 보존 알고리즘을 적용했다. 이는 이미지가 지닌 감정적 뉘앙스는 유지하면서도, 얼굴의 미세한 형태적 변형을 통해 내적 변화를 암시하는 효과를 창출했다. 특히 인물의 얼굴이 대화 중에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미묘한 감정 변화를 표현하는 것은 관객들이 인물의 심리적 상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장치로 기능했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해결책이 아닌, 몰입적 요소를 강화하는 서사적 장치로 작용했다. <폭설, 暴雪> 중 공간 구현에 있어서는 Blender와 SketchUp을 기반으로 한 3D 모델링 작업에 더해, NeRF(Neural Radiance Fields) 기반의 공간 캡처 파이프라인을 접목하였다. 이는 AI 생성 영화에서 공간 연속성과 시각적 정합성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적인 기술적 구현 방식이었다. 장면마다 공간의 형태와 구조가 미묘하게 변화할 경우 시청자의 몰입감이 저하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기에, 이 부분은 특히 신경 써야 할 주요 과제로 설정되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먼저 3D 모델링을 통해 기본적인 공간 구조를 구성하고, 이후 NeRF 기반의 신경망 기술을 적용하여 실제 공간의 광학적 특성과 깊이 정보를 정밀하게 재구성하였다. 이렇게 구축된 3D 공간 데이터는 AI 이미지 생성을 위한 프롬프트의 기준점으로 활용되며, 결과적으로 전체 서사 내 공간의 일관성과 장면 간 구조적 연속성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어령, 御靈> 중 인물 표현에 있어서는 표정과 제스처의 자연스러운 구현이 중요한 도전이기도 했는데, AI가 생성하는 인물의 표정은 종종 부자연스럽거나 과장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OpenPose 모델을 활용하여 인물의 자세와 제스처를 정밀하게 제어했고, 이를 통해 감정 표현의 섬세함을 구현하였다. 특히 대화 장면에서 인물 간의 시선 처리와 반응 표현은 자연스러운 상호작용을 표현하기 위한 핵심 요소였다. 동적 장면 구현을 위해서는 Stable Video Diffusion(SVD)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진행했다. 정적 이미지 사이의 자연스러운 전환과 움직임을 구현하기 위해 키프레임 기반 접근법을 적용했다. 주요 장면의 키프레임을 먼저 생성한 후, 중간 프레임을 보간(Frame interpolation)하는 방식으로 움직임의 연속성을 확보했다. 이는 특히 인물의 미묘한 표정 변화나 환경의 점진적 변형을 표현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AI와의 협업 과정은 ‘대화적 생성’이라는 새로운 창작 모델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계기가 되었다. 초기 단계에서는 명확한 지시에도 불구하고 AI가 생성하는 결과물이 연출자의 세부적인 의도와 괴리되는 현상이 관찰되었다. 하지만 반복적인 프롬프트 엔지니어링과 생성된 결과물에 대한 비판적 피드백 과정을 통해, AI는 점진적으로 연출자가 설정한 시각적 목표치에 수렴하는 결과물을 도출하기 시작했다. 제작 과정에서 미학적으로 가장 도전적이었던 부분은 AI 생성 이미지의 ‘제어 가능성’과 ‘창발적 우연성’ 사이의 균형을 찾는 과정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AI와의 ‘ 대화적 창작 ’ 프로세스를 발전시켰다. 구체적으로는 초기에 다양한 방향성을 탐색하는 ‘발산적 프롬프팅’에서 시작해, 점진적으로 선택된 요소들을 정교화하는 ‘수렴적 프롬프팅’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접근법을 적용했다. AI가 제시하는 예상치 못한 가능성에 열린 상태로 창작 방향을 조정해나가는 쌍방향적 협업으로 프로세스를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기본 기획보다 흥미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AI 생성 요소들이 캐릭터의 심리적 상태를 더욱 효과적으로 시각화할 수 있다는 발견은 제작 과정 자체를 재해석하게 했다. 이 과정은 단순한 도구적 활용을 넘어, AI라는 비인간 행위자와 상호작용하며 결과물을 구축해나가는 독특한 협업 모델을 경험하게 했다. 이는 AI가 창작 과정 자체에 능동적으로 개입하는 변수로서 기능할 수 있음을 시사하며, 향후 영화 제작 패러다임의 변화 가능성을 내포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기술적 전환이 영화계 전반에서 보편적으로 수용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사를 고찰해보면,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늘 기대와 동시에 기존 질서에 대한 불안과 저항을 야기해왔다. 활동사진의 등장부터 유성영화, 컬러영화, 디지털 시네마에 이르기까지, 기술적 전환기에는 어김없이 미학적, 산업적 논쟁이 수반되었다. AI 기술 역시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핵심적인 논점은 기술 자체의 속성보다는, 이를 창작의 도구로서 어떻게 사유하고 활용하는가에 대한 창작 주체 의 문제로 귀결된다. 제작 환경의 제약으로 인해 창작의 기회를 충분히 얻지 못하는 사례는 영화계에서 지속적으로 관찰되어 왔다. AI 기술은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일정 부분 해소하고, 창작자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할 잠재력을 지닌다. 최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국제경쟁 AI 영화 부문의 공식 선정작 감독들이 영화 관련 교육 배경을 가졌거나 현업에 종사하는 인력들이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AI 기술이 창작의 효율성을 높이는 유용한 도구임은 분명하지만, 영화적 서사를 구축하고 미학적 판단을 내리는 핵심적인 역량은 여전히 영화 매체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갖춘 인간 창작자에게 의존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나아가, 기존에 기회를 얻지 못했던 창작자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줄 계기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따라서 AI는 단순한 기술적 진보를 넘어, 영화적 표현의 외연을 확장하는 새로운 매체적 조건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과거 네오리얼리즘이 동시대 현실을 포착하는 새로운 영화 언어를 제시했고, 누벨바그가 기존의 영화 문법에 도전하며 새로운 미학을 추구했듯이, 새로운 기술과 도구의 등장은 늘 새로운 영화 언어와 미학적 탐구의 가능성을 열어왔으니, 현재 우리는 AI 기술이 촉발하는 또 다른 영화사적 변화의 과정에 위치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을 터이다. <폭설, 暴雪> 중 <폭설>의 제작 과정은 AI와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진, 전통적 방식과는 구별되는 연출 실험이었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의 시각화 작업부터 포스트 프로덕션의 특수효과 생성에 이르기까지, AI에게 연출 의도를 명확히 전달하고 생성된 결과물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며, 피드백을 통해 최종 결과물을 구축해나가는 과정은 새로운 형태의 협업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대화적 창작’ 모델은 감독에게 AI라는 새로운 기술적 도구를 효과적으로 운용하고 그 결과와 소통하는 능력을 요구한다. AI 기술의 발전 속도는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다. 단기간 내에 현재보다 훨씬 고도화된 기술이 등장할 것은 자명하다. 이러한 급격한 기술 변화 앞에서 창작자들이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영화의 역사는 본질적으로 이러한 기술적, 미학적 변화를 끊임없이 수용하고 내재화하며 발전해 온 과정이었다. 핵심은 기술의 발전이 영화가 다룰 수 있는 이야기의 폭과 깊이를 확장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새로운 방법론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AI는 창작 도구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것이지, 창작 행위의 본질 자체를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서사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질문하려는 욕구, 인간의 감정과 경험을 미학적으로 형상화하려는 의지, 스크린이라는 매개를 통해 관객과 소통하려는 영화 고유의 시도는 여전히 인간 창작자의 고유한 영역으로 남는다. <폭설>의 제작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AI가 감독의 창조적 비전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데 있어 강력하고 효율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도구를 사용하는 감독의 명확한 비전과 미학적 판단 능력이며, 이는 창작자의 경험, 감수성, 그리고 세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에서 비롯된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창작자는 상상하는 바를 더욱 효과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이것이 AI 시대 영화 창작이 마주한 새로운 가능성이며, 지속적인 탐구가 요구되는 지점이다. 궁극적으로, 매체 환경이 어떻게 변화하든 창작자는 늘 그랬듯이 동시대의 현실과 인간의 삶에 대해 발언하고 질문해야 한다. 사용하는 기술적 언어가 달라진다 해도, 영화를 통해 탐구하고자 하는 근원적인 문제의식과 주제는 지속될 것이다. 영화는 역사적으로 새로운 기술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창조적으로 활용하며 스스로의 미학적, 산업적 지평을 넓혀 온 예술 형태이다. AI 시대 역시 이러한 진화의 과정 속에 있을 것이다. 이야기하려는 우리들의 근원적 욕망이 존재하는 한, 영화는 시대와 기술의 변화에 조응하며 그 형태를 달리하며 지속될 것이다. 도구는 바뀌어도, 우리는 늘 그랬듯이 표현하고자 하니깐. 배준원(영화감독) l 표현자로서의 경계 없음을 안간힘을 다해 믿으며 표현합니다. <몬사로>(2025), < 폭설 >(2024), < 침묵 >(2023) 연출. 인간과 사회를 응시하며, 틈 사이로 비추는 균열들에 대한 영화를 만든다.
본 게재글은, 17-19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한 한국영화박물관 교육 프로그램 ‘청소년을 위한 영화 글쓰기 키트’의 최종 과제입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영화 자서전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의 서문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영화에 관해서는 망설임이 더했고 지금도 그렇다. 이는 남에게 지적받을 것도 없이 바로 나 스스로 순수한 영화인이 아니라는 자각이 있기 때문이다.” TV 프로그램의 AD와 다큐멘터리 연출자의 시절을 거친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본인의 영화 언어가 텔레비전 방언이 밴 변칙적인 언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그는 스스로를 ‘순수한’ 영화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2018년 5월, 그는 <어느 가족>(2018)으로 제 71회 칸 국제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다. 최고의 권위를 가진 영화제에서 전 세계의 영화인들에게 가족 영화의 대가임을 인정받은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영화 언어의 순도가 아닌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 그가 전하는 밀도 높은 감정일 것이다. 이별 후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는 이야기(<환상의 빛>), 뒤바뀐 가족에 대한 이야기(<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어머니가 다른 가족의 이야기(<바닷마을 다이어리>), 헤어진 가족의 이야기(<태풍이 지나가고>) 등 줄곧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영화 속에 담아낸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어느 가족>에서도 다시 한번 가족의 의미를 재정의한다. 도둑질과 납치 <어느 가족>의 원제는 '만비키 가족'으로, 해석하면 '좀도둑 가족'이라는 뜻이다. 가르칠 것이 도둑질밖에 없다는 오사무(릴리 프랭키)와 세탁 업체에서 일하며 주머니 속 물품들을 빼돌리는 노부요(안도 사쿠라) 부부는 성매매 업소에서 여동생의 이름으로 돈을 버는 가출 청소년 아키(마츠오카 마유), 열 살 정도 되어 보이지만 초등학교에 다니지 않는 쇼타(죠 카이리), 죽은 남편 덕분에 연금을 받는 할머니 하츠에(키키 키린)와 함께 살아간다. 피가 섞이지는 않았지만 좁은 집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이 ‘가족’은 하츠에의 연금과 상습적인 도둑질로 생계를 이어간다. 쇼타는 문득 노부요에게 질문을 던진다. “물건 훔치는 건 나쁜 일이야?” 잠시 고민하던 노부요는 쇼타에게 되묻는다. “아빠(오사무)는 뭐라고 했어?” 쇼타는 답한다. “가게에 진열된 물건은 아직 누구의 것도 아니래.” 한편, 시간이 흘러 취조를 당하는 노부요는 하츠에를 땅에 묻은 사실에 대해 이런 말을 한다. “버린 게 아니라 주운 겁니다. 누군가가 버린 걸 주웠습니다. 버린 사람은 따로 있는 거 아닙니까?” 어쩌면 정말 좀도둑 가족은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이 아니라 주인 없는 것을 가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의 다툼을 피해 밖으로 나와 있던 5살 유리(사사키 미유)는 방치된 아이였고, 이 가족은 그런 유리를 품었을 뿐이니 말이다. 사람에게 버림받은 이들이 뭉쳐 서로를 보듬어주는 가족이 되었다. 누구의 것도 아닌 물건을 가지고서 겨우 겨우, 그렇지만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가게가 안 망할 정도로만, 사회에 커다란 피해를 주지 않을 정도로만 살아가려 했는데 세상은 그것조차 내버려두지 않는다. 상처를 알아봐주는 존재 “팔 좀 보자꾸나. 여긴 왜 이러니?” 유리를 처음 만난 날, 하츠에는 유독 말라 있는 유리를 걱정하며 온몸에 난 상처를 살핀다. 상처에 꼼꼼하게 약을 바르는 하츠에의 행동은 애정을 표현하는 그의 방식이다. 무심해 보이던 쇼타 또한 유리의 상처를 발견한다. “그 상처 왜 났어?” “넘어졌어.” “그거 화상자국이잖아.” 쇼타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유리에게 “나한테 애써 거짓말하지 않아도 돼.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유리의 상처는 외적인 것뿐만 아니라 이제껏 겪은 내면의 상처까지 포함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하츠에와 쇼타의 관심 덕분에 유리는 신체의 상처와 함께 마음의 상처도 거의 회복한 것처럼 보인다. 치유 받는 입장에 처해 있던 유리는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난다. 유리는 샤워하는 노부요의 팔을 보고 묻는다. “거기 왜 그랬어?” 그리고는 이내 자신의 팔을 내밀며 자신에게도 같은 위치에 상처가 있음을 보여준다. 얼굴이나 성격은 달라도 흉터의 모양이 꼭 닮은 둘은 정말이지 ‘모녀’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유리가 노부요의 팔을 쓰다듬는 이 장면은 결이 비슷한 단편영화 <손님>(2011)을 떠올리게 만든다. 특히 <손님>은 한국의 고레에다 히로카즈로도 불리는 윤가은 감독의 초기작이라는 점에서 흥미를 끈다. <손님>의 주인공 자경(정연주)은 잔뜩 화가 난 채로 아빠의 불륜녀가 살고 있는 집에 찾아간다. 하지만 그곳에는 죄 없는 어린 남매만이 있을 뿐이다. 남매 중 동생인 기림(송예림)은 이마에 밴드를 붙여주는 자경의 눈썹에 흉터가 있음을 발견한다. “언니 왜 그래. 아파?” 밴드를 붙이는 자경과 눈썹의 흉터를 만지작거리는 기림은 오늘 처음 만났지만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고 공감하는 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손님>과 <어느 가족>에서 ‘상처를 알아보는’ 행위는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한편 영화의 후반부, 원래의 집으로 돌아가게 된 유리는 친엄마의 상처를 발견한다. 유리가 상처를 만지자 친엄마는 “만지지 말랬잖아.”라며 짜증 섞인 말을 내뱉는다. 친엄마와 노부요의 차이는 여기에서 나타난다. 만지면 아플 정도의, 그러니까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래서 아이의 위로를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 물론 아이의 상처 또한 보듬어주지 못한다는 것. 홀로서기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이 각자 다른 프레임 속에서 취조 당하는 이 영화의 후반부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초기작 <원더풀 라이프>(1998)의 장면과도 닮아있다. 화면을 꽉 채우던 가족들은 온데간데없이, ‘혼자’가 된 사람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가족의 분리를 보여주려는 감독의 의도는 면회 씬에서도 적확하게 드러난다. 투명 유리를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는 쇼타와 노부요는 사실상 같은 장소에 있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이들을 철저하게 떼어놓는다. 동그란 대화 구멍의 은색 테두리라는 또 하나의 프레임을 만들고 노부요의 얼굴을 가두어버린다. ‘집에서 공부할 수 없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거 아닌가요?’라는 쇼타의 질문은 이제껏 쇼타의 세상이 얼마나 좁았는지 말해주고 있다. 양쪽 손끝을 맞대고 검지를 빙글빙글 돌리다가 주먹을 쥐어 얼굴에 콩. 훔친 물건을 숨기던 파란 가방 대신 책이 들어 있는 새 가방을 멘 쇼타는 이제 학교에 다닌다. 오사무 또한 “아빠는 이제 아저씨로 돌아갈게.”라고 말하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선다. 영화 초반부의 쇼타는 유리에게 밀개떡을 사준다. 천국에 있는 유리 할머니의 존재를 알고 “그러면 이제 잊도록 해.”라고 말한다. 이제는 쇼타와 유리가 노부요와 오사무, 그리고 야키와 하츠에를 잊어야 할 차례가 되었다. 버스 창문 너머의 오사무가 사라지고 나서야 마침내 ‘아빠’라는 말을 내뱉는 쇼타, 쇼타네 가족들과 부르던 노래를 아파트 복도에서 홀로 부르는 유리. 이름을 숨기고 살아가는 이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름이나 호칭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이 가족들은 서로가 함께였던 순간들을 쉽게 잊지 못할 듯하다. 사실 <어느 가족>을 따뜻한 영화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렇지만 마냥 슬프고 비극적인 영화로 해석하기에도 적합하지 않다. 보통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 가족은 마음뿐만 아니라 돈 문제로도 얽혀있는 보통 가족이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서로를 ‘선택한’ 사람들이기도 했다. 이제는 홀로 서야 할 때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비혈연 가족의 이야기가 아닌 모여 있는 가족과 흩어진 가족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90년대생 감독이 쓸쓸한 유년의 기억을 담아내는 방식 처음 이 영화의 포스터를 보며 신기해 했다. 포스터엔 2층 양옥집에 가족들이 밥을 먹고 있는데, 집은 아주 크게, 사람들은 작게 배치돼있다. 영화를 보니 역시 주인공이 집이었다. 아름답고 넓은 마음으로 가족들을 받아 준 할아버지를 닮은 낡은 2층 양옥집. 고1 옥주는 아빠 병기( 양흥주 )와 남동생 동주(박승준)와 함께 철거되는 동네를 뒤로 하고 할아버지(김상동) 댁으로 거처를 옮긴다. 손주들의 인사에도 별 대답 없던 할아버지는 “애들 방학 동안만 지낼게요” 라는 아빠의 말에 처음으로 입을 연다. “좋을 대로 해.” 곧이어 이혼을 앞두고 있는 고모 미정(박현영)도 이 집에 들어 온다. 할아버지와 낡은 집, 두 쌍의 남매가 함께 하는 시간. 이 영화는 집의 시점에서 4명의 남매가 겪는 여름을 지긋이 바라보듯 담는다. 나이든 남매(병기와 미정)는 이혼이나 사업 실패 같은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 미정은 “날 괴롭히려고 태어난 요괴” 같은 남편을 떠나려 하고, 병기는 두 아이의 생계를 위해 가짜 브랜드 운동화를 팔며 새로운 직업을 가지려 노력 중이다. 어린 남매(옥주와 동주)은 헤어진 엄마를 향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 부딪친다. 옥주는 첫사랑의 생채기도 안고 있다. < 남매의 여름밤 >은 각자의 폭풍 같은 시기를 잔잔하게 풀어낸다. 힘든 일이 있어도 식구끼리 콩국수, 잡채, 비빔국수 같은 요리를 해 먹으며 덤덤히 살아내는 시간. 각자 삶의 다음 구절로 옮겨가는 여름의 시간. 이 영화의 영제는 <Moving on>이다. 이러한 ‘성장의 기억’이라 주제는 최근 약진하는 젊은 여성 감독 영화에서 자주 발견된다. 김보라 감독의 < 벌새 >, 윤가은 감독의 < 우리집 >, 윤단비 감독의 <남매의 여름밤>까지 각자 다른 방식으로 훌쩍 커버린 한 시절을 영화에 박제한다. 이를 시대적 감수성 혹은 노스탤지어를 경유해 묘사하는 경향을 두고 송경원 평론가는 “이 기억들을 반영하는 형태에 구체성이 결여돼 있어 결과적으로 안전한 방식, 그러니까 추억으로 환원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평했다. <남매의 여름밤>을 두고 파생된 여러 질문 중 나를 사로잡은 건 ‘기억과 추억을 가르는 것은 무엇인가’ 였다. 시공간의 구체성과 통찰의 메시지를 담은 건 기억이고, 구체성을 뭉개고 예쁜 필터를 넣어 보정한 건 추억인가? 그렇다면 추억은 아름답고 아스라한 미장센으로 만들어지는 것인가? 혹은 에드워드 양이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오즈 야스지로 같은 동아시아의 걸출한 영화 작가의 영향이 느껴지는 연출에서 오는 것인가? 물론 <남매의 여름밤>에선 위의 언급한 작가 감독들의 영향이 짙게 보인다. 인물의 클로즈업을 지양하고 인물의 움직임을 고요히 응시하는 촬영, 인물이 프레임을 나가도 당장 끊지 않은 편집 등등. 하지만 이 영화의 이런 연출은 그저 감독 개인이 좋아해온 고전영화를 흉내내거나, 그런 영화들을 그리워하는 감상으로 쓰인 것 같진 않다. 그보다는 대사나 연기 조율 같은 1차적인 연출 외의, 그 이상의 고전영화의 영화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는 인상을 준다. <남매의 여름밤>은 그 문법을 차용해 영화의 시선을 쉼없이 양옥집으로 돌려놓는다. 양옥집이 보고 있는 두 쌍의 남매를 관객도 보게 하는 것이다. 이 영화의 중심은 ‘양옥집’이고 관객도 이 공간을 향유하길 바란다고, <남매의 여름밤>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양옥집의 존재감은 포스터에서 보이던 것만큼 대단하다. 윤 감독이 오랜 시간을 쏟아 인천에서 찾아냈다는 이 집은 원래 한 노부부가 살던 곳이다. 말하자면 너무도 현실적인 ‘남의 집’이다. 내부 인테리어도 그대로 썼다. 오래된 옥색 시계, 하회탈이 담긴 액자, 무심히 걸린 달마도까지. 현실에서 곧장 튀어나온 것 같은 이 곳은 극영화의 배경이라기엔 이질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이 영화가 실재와 재현 사이를 오가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사이에 있는 듯 느껴지는 이유다. 병기와 미정을 연기한 양흥주와 박현영의 놀랄 만큼 뛰어난 일상 연기도 여기에 힘을 보탠다. 그런 이유에서 이 영화가 가장 관심있는 지점이자, 궁극적으로 달려 가는 지점은 양옥집의 소멸과 집 주인인 할아버지의 죽음이다. 이 나른한 영화가 관객의 마음을 가장 덜컥하게 하는 순간은 할아버지가 바지에 똥을 쌌을 때와 아빠와 고모가 할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신 후 집을 팔려고 할 때다. 어쩌면 이 영화를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정서는 잃어버린 것의 그리움이 아니라, 곧 잃어버릴 것에 대한 슬픔일 것이다. 그 슬픔이 <남매의 여름밤> 전체를 관통한다. 첫 장면, 옥주가 살던 반지하 집의 동네 자체가 철거되는 상황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우리는 좋아했던 것을 부단히 잃어버리고 또 다른 소중한 것을 만들면서 성장한다. 옥주는 이미 엄마와 반지하 집을 잃었다. 그리고 다시 생긴 소중한 것은 할아버지와 바로 이 집이다. 엄마와의 재회를 두고 옥주와 동주가 크게 다투던 순간, 할아버지가 처음으로 2층으로 올라온다. 그리고 꺼이꺼이 우는 동주를 아무 말 없이 데리고 내려간다. 아이들이 겪는 상실의 상처를 조용하고 따뜻하게 보듬는 어른. 이 존재의 소중함이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순간, 관객은 그 역시 사라질 것임을 직감한다. 다시 양옥집 얘기로 돌아가보자. 자신의 정서적 기억을 영화에 풀어내려던 젊은 감독은 영화의 핵심 요소로 왜 ‘남의 집’을 선택했을까? 인천에 오래 살았던 한 노부부의 손때 묻은 이 집은 지금은 실재하지만, 멀지 않은 어느 시기에 곧 사라질 것 같은 느낌 때문은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영화의 상상력과 실재하는 공간이 만나 이뤄낸 새로운 파동. 정리하면 <남매의 여름밤>은 타인의 공간을 빌려와, 소중한 것들을 잃으며 자란 쓸쓸한 기억을, 고전 영화의 문법을 능숙하게 구사해 말한다. 솔직하고 자유롭고 대담한 선택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들 세대에게 고전영화는 너무 소중히 여기며 승계할 게 아니라, 감독 개인이 좋아하고 친숙한 여러 영화 언어 중 하나인 듯 싶다. 이렇게 21세기 영화라는 매체 안에서 개인이 기억을 구체화하는 방식은 유연하고 자유로워 지고 있다. 이 흥미로운 변화의 흐름이 달갑지 않을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