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헤이즐
- 감독
- 조쉬 분
- 제작년도
- 2014
- 출연
- 쉐일린 우드리, 안셀 엘고트, 냇 울프, 윌렘 데포, 로라 던, 샘 트램멜, 로테 베르빅
“내 몸에 지퍼가 있는 것 같아. 지퍼를 내리면 그 속에 전혀 다른 몸이 있는 것 같아. 이런 내가 괴물 같아?”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한 소녀의 절박한 외침. 스웨덴 영화 < 걸스 로스트 >는 성장의 문턱에서 ‘길을 잃은’ 한 소녀의 외침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로 한, 아주 과감한 영화다. 고민과 망설임의 내면을 따라가는 대신 이 영화가 택한 방식은, 소녀가 그렇게 갑갑해 하던 외피에 메스를 가해, 감추어져 있던 성 정체성을 해부하는 일이다. 바로 몸이 ‘트랜스’되는 마법에 기반을 둔 독특한 판타지물로의 진입이다. < 걸스 로스트 >의 소녀 킴과 벨라, 모모 셋은 소위 말해서 학교의 왕따다. 남학생들로부터 “제 젖꼭지 좀 봐! 젖통” 같은 폭언을 듣고, 폭행으로 인해 입은 체육복이 찢겨 나가도 미약한 힘의 소녀들은 차마 대항하기 힘들다. 도움의 손길 역시 요원해 보인다. 엄마는 상관없는 일에 대해 잔소리나 할 뿐이고, 가까이서 도움을 주어야 할 선생조차 “너도 이제 14살이나 되었으니, 남자아이들처럼 강해져야 한다”는 하나 마나 한 소리를 늘어놓을 뿐이다. 레즈비언이라 놀림을 당하는 킴은 친구인 벨라와 모모가 겪는 부당함에 분개하지만 별다른 해결책 없이 하루하루를 보낸다. 세 친구가 쉴 수 있는 유일한 도피처는 집에 있는 온실이다. 학교가 끝나면 소녀들은 폭언과 폭행, 시선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인 비밀스런 회합의 장으로 모여들어 씨앗을 심고, 미래를 꿈꾼다. 구원의 손길 역시 이곳에 도착한 정체 모를 ‘씨앗’으로부터 시작된다. 불과 하룻밤 사이에 마법의 씨앗은 세포 분열을 거쳐 발아하고 꽃을 틔우게 된다. 마치 금단의 열매를 따 먹듯, 소녀들은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꽃에서 나온 진액을 마셔보기로 한다. 꽃들에 둘러싸인 따뜻한 온실, 그들만이 정한 규칙, 그리고 빈티지한 찻잔에 받아 나누어 먹은 우정의 결의. 여성이 남성이 되는 트랜스젠더의 의식은 그렇게 마법처럼 실행된다. 더스틴 호프만(< 투씨 >)이나 멜 깁슨(< 왓 위민 원트 >)이 여성의 인권을 소재로 한 대중 장르 영화의 틀 안에서 여성의 옷을 입었을 때, 몸을 죄어오는 꽉 끼는 의상과 걸음을 뒤뚱거리게 만드는 하이힐의 시도는 ‘불편’함의 다른 말이었고, 결국 그 부대낌은 큰 웃음이 되어 돌아왔었다. < 걸스 로스트 >에서 여성의 남성으로서의 치환은 정반대다. 이들이 남성성을 획득하는 것은 불편함이 아닌, 오히려 무기가 된다. 하룻밤 사이에 남자가 돼 버린 소녀들은 매끈했던 뺨에 우둘투둘 난 여드름과 팬티 속 거추장스러운 고추를 보고 당황하지만, 이내 환호한다. 소녀를 구속하던 꽉 맞는 지퍼를 내리는 순간, 그녀들의(아니 그 남자들의) 움츠렸던 어깨는 펴지고, 보폭은 당당해진다. 선생의 조언처럼 그들은 ‘남자아이들처럼’ 강한 근육을 가지게 되었고,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안하무인의 영역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이제 더 이상 그녀들이 차별의 시선 속에서 숨죽여 살지 않아도 되었다는 말이다. 소녀들이 이렇게 힘을 획득하는 걸 지켜보는 과정 속에는, 앞서 남성이 여성으로 젠더를 바꿀 때 일어나는 웃음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바로 < 걸스 로스트 >에서 성장통을 겪는 소녀들을 지배하는 것은 다른 성을 향한 ‘호기심’보다, 힘을 가지지 못한 데 대한 공포와 절박함이 더 크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 혼란의 시간을, 킴의 파괴적인 선택을 통해서 보여준다. 한번 남성의 힘을 체험한 킴은 다시는 나약한 여성으로 되돌아가기를 거부한다. 그에게 마법의 진액은 이제 다른 삶을 위한 절대적인 것으로, 곧 중독의 것이 된다. 더군다나 남자가 된 킴은 남학생들 사이에서 일인자를 자처하며 거칠기로 소문 난 비행소년 토니에게 사랑을 느끼기 시작한다. 도둑질을 일삼는 토니를 도와주고, 그의 연애를 질투하고, 그의 구타를 감내하기까지 한다. 토니를 향한 킴의 집착을 눈치챈 친구는 그에게 묻는다. “개랑 사랑에 빠진 거야, 아니면 개처럼 되고 싶은 거야?” 과연 킴은 그 질문의 답을 정확하게 알고 있을까? 토니를 향한 킴의 사랑을 비난할 수 있을까? 마법의 진액을 마시기 위한 킴의 집착을 나무랄 수 있을까? 결국 그는 갑갑하다고 외치던 그 지퍼를 올리고 소녀로 다시 돌아갔을까? 알렉산드라-테레세 카이닝 감독은 스웨덴의 영 어덜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성장 판타지 < 걸스 로스트 >를 통해 성차별의 구조 속에서 소녀들의 딜레마에 대해 쉽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킴의 욕망 안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 문제를 꼬이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하나하나 풀어나간다. 특히 그간의 작품을 통해 꾸준하게 성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전개해 온 감독이기도 하다. <걸스 로스트>가 성장기에 그들을 구속하고 있는 억압의 구조를 표현해 낸 것이라면, 전작 < 키스 미 >(2011)를 통해서는 사랑에 빠진 30대 레즈비언 여성이 주변 인물들과 겪는 갈등을 보여 주었다. 또 텅 빈 아파트로 날아 들어온 비둘기와 그 비둘기를 좇으려 하지만 힘을 못 쓰는 여성이 겪는 난처한 상황을 그리는 단편 <엘레지아>(2011)를 통해서 힘의 무게에서 오는 성차별적인 이 사회의 문제점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가면을 쓴 소녀들의 비밀의식 장면, 몽환적인 음악이 주는 미스터리한 분위기 등 < 걸스 로스트 >가 구축한 판타지의 영역은 소박하지만 눈길을 끄는 지점이 많다. 남녀 더블캐스팅으로 자고 나면 소년이 된 소녀들의 이미지를 구현하는데, 각각의 남녀 배우들이 상당히 닮아 있다. 영화의 시작 ‘다르다는 걸 외면하는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는 당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바란다’라는 문구가 나오는데, 영화는 결국 이 문구가 명령조라기보다는 절박한 외침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단단한 설득력을 획득한다.
할리우드의 열여섯 살 소녀들에게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2012년 < 헝거게임: 판엠의 불꽃 >을 시작으로 3편의 시리즈를 성공시키며 승승장구한 <헝거게임> 시리즈의 여전사 캣니스(제니퍼 로렌스)는 어린 여동생의 이름이 호명되자 동생을 대신해 독재국가 ‘판엠’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든 생존 전쟁 ‘헝거게임’에 참여한다. 군중 속에서 용기 있게 나선 캣니스의 나이가 그때 고작 열여섯 살이었다. 캣니스의 파급력은 제니퍼 로렌스의 인기와 맞물려 급속도로 퍼졌다. 영화 속 전사는 현실에서도 유효했다. 제니퍼 로렌스는 인터뷰에서 “그래, 나 살쪘다. 그렇다고 화면에 잘나오려고 살을 빼지는 않을 거다. 애들이 캣니스처럼 돼야지 하고 밥 안 먹고 생활하는 그런 꼴은 보기 싫다”며 쇼비지니스계의 허상을 똑부러지게 말할 수 있는 ‘똘아이’로 인기를 독식했다. 이렇게 매력덩어리니 안 넘어가고 배길 수 없다. 열여섯 살의 캣니스는 SF 판타지물의 이른바 기준점이 됐다. 디즈니에서 십 대들을 틴에이지 멜로드라마에 활용하느라 열 올리는 동안 패러다임은 바뀌었다. 무장한 전사는 소녀들의 몫이 되었다.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시작된 영 어덜트 소설은 그리하여 초등학생 대신 체력적으로 파워를 가지고, 정신적으로 고뇌를 막 시작한 사춘기의 소녀들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또 다른 캣니스로 각광받은 < 다이버전트 >(2014)의 트리스(쉐일린 우드)도 그렇게 탄생했다. ‘핏줄보다 분파’가 중요한 통제된 사회 모든 구성원이 열여섯 살이 되면 평생 살아가게 될 테스트를 치르게 되는데, 트리스는 그 중 어느 분파에도 속하지 않아 금기시되는, 즉 ‘다이버전트’의 운명을 쥐고 태어난 존재다. 시스템의 제어로 통제할 수 없는 강한 의지를 가진 이단아의 나이는, 역시 사춘기를 통과하는 열여섯 살이다.(이 영화의 헤로인 쉐일린 우드는 청춘 멜로 < 안녕, 헤이즐 >(2014)에서도 암 투병 중인 환자이자 민감한 사춘기 연기로 호응을 얻기도 했다.) < 뷰티풀 크리처스 >(2013)의 소녀 리나 역시 강한 힘으로 세상을 끝낼 수도 시작 할 수도 있는 능력자다. 이 엄청난 파워는 열여섯 살 생일이 되면 그 능력이 발휘되는데, 그녀는 선과 악 중 한 가지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소설, 영화, 그리고 각종 머천다이징까지 더해 소비력이 증가한 십 대 팬들을 겨냥한 할리우드의 전략은 알겠다. 하지만 이 거대한 지구의 운명을 이대로 열여섯 살, 순수하고 순진하며 철모르는 소녀들에게 모두 맡겨도 되는지, 좀 불안하기는 하다만. 하여간 < 하우 아이 리브: 내가 사는 이유 > 역시 <헝거게임>에서 출발한 이 열 여섯살 소녀가 바라본 아포칼립스의 시대다. < 라스트 킹 >(2006)을 연출한 케빈 맥도널드의 연출로 원작은 3권의 성장 소설로 영 어덜트 소설계에 파란을 일으킨 멕 로소프의 작품. 미국에 있는 소녀 데이지(시얼샤 로넌)가 영국의 시골 마을에 있는 사촌 집에 놀러왔다 겪게 되는 세계 핵전쟁의 살벌한 풍경을 그린다. 제작진은 애초 <헝거게임> 시리즈를 의도했다고 한다. < 한나 >(2011)로 어린 나이부터 액션에 재능을 보인 그 시얼샤 로넌이 제니퍼 로렌스의 역할을 해줄 수 있다고 굳건하게 믿었으며 그 전략에 꼭 맞게 원작의 열다섯 살 데이지를 영화에서는 열여섯 살로 수정했다. 더불어 그녀와 사랑을 나누는 사촌 에디(조지 멕케이)의 나이도 맞춤형으로 원작의 열 여덟 살이 아닌 열여섯 살 동갑이 된다. 핵전쟁이 발발한 후 미국으로 떠나는 대신 사랑하는 에디와 함께 남기로 한 데이지는 그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열일곱 살로 사는 건 어떤 기분인지 알고 싶어. 너와 함께 여기 남고 싶어.”라고. 놀랍게도 < 하우 아이 리브: 내가 사는 이유 >의 장르를 결정해 줄 핵전쟁은 열여섯 살 소녀의 머릿속 오만가지 혼란 중 단 하나의 요소가 된다. 그 나이 때는 세계정세나 핵전쟁 말고도 고민할 것도 너무 많고, 그리고 사랑도 처음 시작할 나이라 복잡한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딸이 영국 사촌 집에 가든 말든, 잘 도착했는지조차 전화 한번 하지 않는 무심한 아버지를 ‘피해’ 온 소녀는 자기 밖의 세상에 우호적이지 않다. 원래 이름대신, 아예 사촌들에게 “데이지라고 불러줘”라며 자신이 원하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사용한다. 모든 이들에게 까칠하고, 말은 아끼는 데이지가 유일하게 소통하는 것은 세상과 그녀를 단절시켜줄 헤드폰 속 록음악과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는 환청뿐이다. 뱅 헤어와 진한 마스카라, 요즘 스트리트 패션의 일부인 일부러 구멍 낸 스타킹 차림을 한 미국 십 대, 데이지가 화면에 등장할 때는 쾅쾅 울리는 ‘Do It With a Rockstar''같은 음악과 ‘하루에 8잔 이상의 물을 마셔라’ ‘죽었으면 좋겠어’ ‘인생의 목표를 찾아라’같은 온갖 정체성이 뒤범벅된 사운드가 혼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브루클린 거리나 클럽에서 맞닥뜨릴 것 같은 이 불량한 십 대가 도착한 곳이 바로, 제인 오스틴 소설 속에서나 볼법한 영국의 목가적 전원이라는 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진짜 시작이다. 창밖은 초록이 우거지고, 아침 햇살이 창문을 통해서 살포시 들어오는 이런 환경에서 블랙 마스카라를 짙게, 더 짙게, 가능한 한 더 두껍게 그리고 있는 데이지의 모습은 그래서 초장부터 상당히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삐딱한 데이지는 어떻게 마스카라를 지우고 영국 목가의 풍경과 어우러지게 되었나로 상당 부분 이 영화의 정체성이 확보된다. 열여섯 살 데이지가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게 된 사건이 있는데, 바로 사촌 에디의 존재였다. 매를 다룰 줄 아는 에디는 소 떼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는 데이지를 위해 동물과 교감을 시도하고 그들을 물러나게 해주는 능력을 발휘한다. 에디가 울타리에 걸려 손에 피가 난 데이지의 피를 빨아주는 순간, 데이지의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동물과 교감할 수 있는 에디는 결정적으로 데이지를 향해 “모든 규칙을 다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해? 내 머릿속의 소음들”이라며, 그녀가 가진 혼란을 읽어 낸다. 그런데 진짜의 혼란은 데이지의 첫사랑과 함께 시작된 핵전쟁에 있었다. 조그만 소녀 파이퍼가 여름날 하늘에서 떨어지는 낙진을 보며 “눈이 와”하고 소리치는 이 서정적인 장면이, 핵전쟁 발발을 알려주는 신호다. 세상에 이런 전쟁의 시작 장면이라니 좀 반칙이다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 첫사랑의 충만함을 알게 된 데이지는 결국 미국 시민의 보호받을 권리를 포기하고, 사랑하는 에드먼드와 남는 걸 택한다. 그들이 처음으로 섹스를 하고 사랑을 나누는 동안, 중요한 건 완벽하게 어른의 존재가 배제되어 있다는 점이다. 데이지의 아버지는 무관심했고, 영국에 있는 데이지의 이모이자 에디의 엄마는 데이지의 도착 이후 ‘평화협정’ 건으로 바쁘게 뛰어다니며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더니, 결국 스위스 바젤 출장 건으로 떠나 완벽하게 아이들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이후 영화 속 잠깐 등장하는 어른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최악이다. 군인들은 데이지와 사촌들을 남자와 여자로 나눠 격리시켜 결국 이들을 헤어지게 만들며, 데이지가 피난의 과정에서 만나는 남자 어른들은 여성들을 겁탈하고 폭행하는 악인으로 묘사된다. 전쟁의 시작과 진행 상황은 TV와 라디오로만 전달되는 정보일 뿐, 원인이나 주체 역시 불분명하다. 에디와 떨어져 파이퍼와 끌려간 데이지는 이제 부역에 동원되며, 방사선에 오염된 물을 마시기 위해 정제약을 타 먹는 생활을 하다가, 죽음의 공포를 피해 에드먼드와 헤어지기 전에 한 ‘다시 집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린 파이퍼를 데리고 탈출을 시도한다. 파이퍼를 독려하며 쉬지 않고 걷고 또 걷고, 파이퍼를 해하려는 어른들을 제압하고, 여우가 시체의 사지를 뜯어먹는 시쳇더미에서 사촌을 찾으려 발버둥 치는 소녀의 모습은, 이미 열여섯 살 순진한 소녀에게서 한발 벗어나 있다. 데이지가 겪는 대재앙, 종말의 참상은 < 투모로우 >(2004) 같은 블록버스터에서 묘사하는 종말의 풍경과 조금 다르다. 소녀에게는 이 종말을 끝낼 파워가 아닌, 안전한 곳으로 묵묵히 달려나갈 의지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분위기는 오히려 종말의 세상, 식량이 바닥난 잿빛 풍경 속에서 필사적으로 남쪽을 향해 가던 아버지(비고 모르텐슨)과 어린 아들(코디 스미스 맥피)의 탈주에 더 가까워 보인다. 데이지는 결국 전쟁 전, 자신을 소모하게 만들었던 마음속의 혼란을 접고 온전히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다. < 하우 아이 리브: 내가 사는 이유 >를 보면서 과연 많은 사람들이 핵전쟁을 묘사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데이지의 첫사랑, 그리고 성장담에 접목된 이야기를 과연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핵전쟁을 묘사한 후반부에 앞서 영화의 전반부를 지배하는 서정적 정서와 표현력은 상당한 수준이다. 더불어 시얼샤 로넌의 활약을 보는 건 이 영화에서 빠뜨릴 수 없는 매력 요소다. 그녀가 이 영화로 제니퍼 로렌스의 영역을 이어받으리라는 제작진의 기대는 너무 과했다 싶지만 CIA 첩보원 아버지에 의해 16살 살인무기 소녀로 길러진 한나(< 한나 >)를 통해 봤던 가능성은 여전히 놓지 않고 싶다. 벌써 몇 년 지난 이야기를 꺼내자면 그녀가 <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의 헤로인 ‘레이’역에 탈락했다는 소식을 들은 기억이 난다. J.J. 에이브럼스가 그 역을 시얼샤 로넌에게 맡겼더라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
- 일본의 애니메이션 잡지 <애니메쥬> 1986년도에 실린 독자 인기 캐릭터 순위. 1위는 해당 잡지에 만화판이 연재되고 있던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의 주인공 나우시카가 엄청난 격차로 압도적인 수위를 차지했지만, 2위와 6위에 < 천공의 성 라퓨타 >의 두 주인공 시타와 파즈가 올라 1986년 개봉 당시의 <라퓨타>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케 한다. 필자는 지금까지 이 추천애니 코너에서 쭉 한국 애니메이션만을 다뤄왔다. 이번에는 일본의 고전 명작 애니메이션인데,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기에 일본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작품이 있어서 처음으로 일본 작품을 다뤄볼까 한다. 애니메이션 영화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를 연출한 키타쿠보 히로유키 감독이, 미야자키 하야오의 초기 대표작 중 하나인 < 천공의 성 라퓨타 >(이하 <라퓨타>)를 미야자키 감독 스스로는 ‘실패작’이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밝혔다가 애니메이션 팬들 사이에서 논쟁이 벌어진 것이다. ■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 라퓨타 >를 실패작이라고 말했다? 지난 5월 중순,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키타쿠보 히로유키씨가 트위터에서 발언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 천공의 성 라퓨타 >를 실패작이라고 생각한다”는 발언이 일본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했다. 키타쿠보 히로유키씨는 1979년 15살 때에 <기동전사 건담>의 원화를 담당하면서 애니메이터로 데뷔한 감독으로, 1985년 첫 감독작품인 (< 크림 레몬 > 시리즈) 이후 옴니버스 작품 <로보트 카니발>에서 <메이지 기계문명 기담 ∼홍모인 습래지권∼>의 감독과 시나리오를 맡았다. 그리고 <블랙매직 M-66>(감독·캐릭터디자인), <죠죠의 기묘한 모험>(감독), (감독) 등의 작품에 참여했으며, 극장애니메이션인 <노인Z>(1991년/감독), (2000년/감독) 등을 연출한 바 있다. 그런 베테랑 감독이 한 발언인 관계로 일본의 애니메이션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는데, 정확한 발언 내용을 인용하자면 아래와 같다. (트위터에서 한 발언인 관계로 구어체로 써있는 것을, 필자가 어느 정도 의역해서 문장으로 만들었다.) 2012년 5월 18일 23시 29분 19초∼5월 19일 00시 20분 30초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을 말해보자→ ‘대디’ 미야자키 감독 자신은 < 천공의 성 라퓨타 >를 실패작이라고 싫어한다.” “대디 미야자키 감독이 아니더라도, 창작자라면 < 라퓨타 >가 ‘실패작으로 보여야’ 하는 것이 상식. Boy meets Girl로 시작되는 스토리에서 ‘주인공은 파즈’, 즉 구조상 주브나일로 성립시켜야 하는데도 설정은 물론이고 가치관까지 전부 부자연스럽게 밸런스가 무너져 있다.” “주브나일, 즉 모험소년이야기로서 성립되지 못하고 있다. 우선 탄광부스러운 일을 하면서 미트볼 하나 덤으로 받은 것 가지고 좋아하던 소년이, 부모님도 없이 그렇게 많은 비둘기를 어떻게 키우고 있는가? 정보부가 시타를 잡아가면서 넘겨준 금화를 버리지도 못할 정도이면서.” “스토리의 고조점이 클라이맥스가 아니라 시타 구출 장면이 되면서 본래 가장 중요한 모티베이션인 ‘아버지가 발견한 천공의 성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단순한 통과점이 되어버렸다는 점.” “게다가 모험 이야기의 왕도인 ‘주인공의 성장과 활약으로 곤란을 극복하여 카타르시스를 얻’어야 하는데도, 사실상의 최종 결정은 파즈가 아니라 시타가 이미 결심을 하고 있었고, 파즈의 선택도 마찬가지로 멸망의 주문을 외치는 할복 자살 만세 공격일 뿐. (중략)” “가장 가치관이 붕괴했다고 보이는 상징적인 부분으로는, 라퓨타에 도착한 병사들이 보물을 꺼내는 지극히 당연한 행동에 대해서 ‘정말 나쁜 짓을 하네’라고 시타한테 말해놓고서, 라스트에서는 도라 일행이 몰래 숨겨온 보물을 보며 미소짓는 황당함. 세세한 부분까지 예를 들자면 끝이 없으니까 이 정도로 멈추겠다.” (※주브나일(juvenile) - 소설 장르의 하나로, 영미권에서는 ‘영 어덜트 픽션(young adult fiction)’이라고 한다. 틴에이저(10대 청소년)를 대상으로 하는 소설을 말하는데, 1802년 영국 작가 사라 트리머(Sarah Trimmer)가 14세부터 21세까지의 독자를 ‘영 어덜트후드(young adulthood)’로 구분지은 데에 유래한다. 19세기에 발표된 작품 중 <올리버 트위스트> <몽테 크리스토 백작> <톰 소여의 모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보물섬> <정글 북> 등을 주브나일로 구분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는 1970~80년대에 ‘영어덜트소설’보다 ‘주브나일’이란 단어가 주로 사용되었는데, 1990년대 이후 ‘라이트노벨’이란 신조어에 밀려 이제는 잘 사용되지 않는 일종의 역사적 단어이다.) ■ “< 라퓨타 >는 실패작” 발언에 대한 반발과 키타쿠보 감독의 본의 물론 키타쿠보 감독의 이 발언에는 여러 가지 이견과 반발이 일어났고, 그에 대해 추가로 이런 발언도 남기고 있다. “가치관이 무너져 있지만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은 성공적이었습니다.” “또한 < 라퓨타 >의 실패가 없었다면 < 이웃집 토토로 >의 대성공도 없었을 것이기에, 플러스 마이너스로 따져본다면 약간 플러스겠죠.” “작품으로서 감독 본인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관계없이 좋아하는 관객 분들이 계시고, 흥행적으로도 물론 성공했습니다. 그와 유사한 사례라면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사랑·기억하고 있습니까>가 있겠죠.” 또한 키타쿠보 감독은 팬들의 반발에 대해 “내가 언제 < 라퓨타 >가 재미없다고 했느냐”, “제작자와 관객은 같은 사고 루틴을 가질 수는 없는 법”, “제작자에겐 좌절이 있기 때문에 다음 번에 꼭 만회하겠다는 강한 모티베이션으로 이어지는 것”, “설령 흥행에 성공하더라도, 자기자신이 느낀 반성점을 회피하는 태도로는 작품의 질이 향상되기를 기대할 수 없게 된다”는 발언도 추가하고 있다. 그 말을 받아들인다면, 키타쿠보 감독 역시 관객으로서 < 라퓨타 >를 싫어한다거나 개인적으로 재미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발언을 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다만 창작자, 크리에이터로서의 입장에서, <라퓨타>란 작품이 설정된 캐릭터를 올바르게 스토리로서 구성해내지 못한 작품, 즉 ‘실패작’이라고 생각하는 미야자키 감독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겠다. 참고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 라퓨타 >를 실패작으로 손꼽고 있다는 근거에 대해서는 키타쿠보 감독은 “미야자키 감독이 직접 실패였다고 발언한 것을 들은 스태프가 여러 명 존재한다. 다만 팬의 심경을 고려해서 공공연하게는 발언하지 않을 뿐”이라고 말했다. ■ 창작자와 관객의 입장 문제는 실제로 < 라퓨타 >가 실패작인지 아닌지 하는 문제가 아니다. 작가가 본인의 작품을 어떻게 생각하든, 수용자가 그것을 신경쓸 필요는 없다는 점은 이번 트위터 논쟁에서도 많은 일본인들이 발언하고 있다. 당연히 <라퓨타>는 재미있는 작품이고, 지금까지 일본에서도 TV방송을 여러 번 하면서 매번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2011년 12월에도 일본 TV에서 방송되었는데, 작중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주인공 파즈와 시타가 하는 대사 “바르스!”는 당시 트위터 상에서 1초당 2만5천개의 글이 올라오면서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2011년 12월 14일의 트위터 공식 발표에 따르면, 12월 9일 일본에서 TV 방영된 <라퓨타>의 방송 중에 1초당 25088건의 투고가 이루어져 당시까지의 트위터 신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 라퓨타 >는 1980년대부터 일본 애니메이션 마니아들 사이에서 유명한 작품이었다. < 미래소년 코난 >이란 TV애니메이션이 국내에서도 80년대를 대표하는 인기작으로 자리잡았는데, 그 감독이었던 미야자키 하야오가 내놓은 극장용 애니메이션이라는 소개에 <라퓨타>를 접했던 이들이 <코난>을 연상케 하면서도 또 다른 스타일에 반했던 것이다. 필자 역시 1980년대에 이 작품을 처음 접하고서 일본 애니메이션의 ‘재미’를 다시금 느꼈으니만큼, 당연히 이 작품이 주는 재미를 의심하지 않는다. 물론 키타쿠보 히로유키 감독 역시 앞서 말했듯이 <라퓨타>가 재미없다는 말이 아니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기 때문에, 관객으로서 <라퓨타>를 재미있게 본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한 것은 아니다. 다만 <라퓨타>가 본래 좀 더 긴 작품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었다는 설이 있는 등, 아직 오리지널 장편 극장 애니메이션을 처음 만들던 당시의 미야자키 감독으로서는 스스로 부족한 점을 느꼈을 가능성은 높다. 대부분의 창작자가 특히 본인의 초기작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기에 더더욱 그렇다. 자기반성이 없는 창작자는 발전이 없을 테니, 거장으로 평가받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라면 본인의 초기작인 <라퓨타>를 실패라고 생각하는 것 역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겠다. 다만 이처럼 ‘고전 명작’으로 자리잡은 작품에 대해서도 크리에이터의 입장에서는 또 다른 판단을 해야할 수 있다는 점을 키타쿠보 감독은 지적하고자 했던 듯 하다. 그리고 그가 지적한 스토리상의, 설정상의 문제점은 창작자로서 충분히 지적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문제는 이러한 창작자 입장에서의 발언에 대해 대부분 관객 입장일 다수의 일본 트위터 이용자들이 반발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트위터라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사이트 자체가 일종의 ‘채팅’과도 같은 형식으로, 140자라는 짧은 분량으로 제한적인 발언이 가능한 공간이다 보니 키타쿠보 감독이 표현에 있어서 부족했던 면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명백히 창작자의 입장에서 < 라퓨타 >란 작품에 이러이러한 면이 설정상 모순이고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는 이러이러한 부분에서 설명 부족인 채 건너뛰었다는 지적은 비단 창작자만이 아니라 평론가이든 누구든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물며 이번 사건에서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본인이 자신의 작품에 대해 그렇게 발언했다는 것임에야…. 그 부분에 대해서는 창작자, 표현자의 SNS 이용 방법에 관한 문제라든지 대중의 리터러시(literacy) 등 다양한 논의점이 존재할 수 있겠으나 본고에서는 생략하고자 한다. ■ <천공의 성 라퓨타 >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간단히 < 라퓨타 >란 작품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 글을 마치겠다. <천공의 성 라퓨타>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1986년 작품으로, 원작이 없이 처음으로 원작·각본·감독을 전부 미야자키 하야오 본인이 맡은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이다. 프로듀서로는 타카하타 이사오(< 반딧불의 묘 > <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 감독), 음악은 전작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에 이어 히사이시 죠가 이어서 맡았다. (히사이시 죠는 이후 최신작 < 벼랑 위의 포뇨 >까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작품 전부의 음악을 맡았다. 그 외에는 한국영화 < 웰컴 투 동막골 >의 음악도 담당.) 참여 애니메이터를 살펴보면, 일본의 ‘스타 애니메이터’인 카나다 요시노리가 ‘원화 팀장(原畵頭)’이라는 독특한 직책명으로 참가하고 있다. (보통 일본의 다른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직책명을 카나다 요시노리만을 위해 따로 만든 것.) 카나다는 < 나우시카 >부터 < 모노노케 히메 >까지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에 쭉 원화로 참가했고, <무적초인 잠보트3> <무적강인 다이탄3> 등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의 로봇 애니메이션에도 참가하여 주목받은 바 있다. 그 외에도 원화 애니메이터로 마에다 마히로(<청의 6호> <암굴왕> 감독), 코사카 키타로(<가지(나스): 안달루시아의 여름> 감독), 콘도 카츠야(< 바다가 들린다 > < 코쿠리코 언덕에서 > 캐릭터디자이너), 나쿠라 야스히로(<천사의 알> 작화감독, < 메트로폴리스 > 캐릭터디자이너·총작화감독), 나베시마 오사무(< 괴도 세인트 테일 >=한국 제목 <천사소녀 네티> 감독), 토모나가 카즈히데(< 명탐정 홈즈 >=한국 제목 <명탐정 번개> <루팡 3세 후마 일족의 음모> <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 작화감독) 등,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쟁쟁한 인물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 라퓨타 >는 그 내용은 물론이고 제작 스태프 측면에서도 일본 애니메이션계에 중요한 역할을 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