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암
- 감독
- 박철수
- 제작년도
- 1990
- 출연
- 김혜수, 심재림, 서예진, 조상건, 최종원, 김용림, 남포동, 조형기, 송옥숙, 천호진, 안병경, 오세장, 조주미, 박용팔, 김애라, 유명순, 전숙, 최성관, 이설산, 이석구, 정영국, 홍충길, 김현진, 황병훈, 안용남, 김석빈
한 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장편 작품을 보고 있었다. 피와 폭력, 욕설 등 표현의 수위가 제법 높은 작품이었는데 두 그룹의 가족 관객이 눈에 띄었다. 감독이 상영 전 가벼운 경고(?)를 했지만 작품이 중반에 이르도록 요지부동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한쪽의 아이들은 잠시 극장을 나간 듯했으나 이내 다시 돌아왔고, 다른 가족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두 가족 모두 상영의 중간에 자리를 떠나긴 했지만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른이 보기에도 자극적인 내용이 담긴 작품임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이들의 입장을 제지하지 않은 주최 측이나 한참 동안 아이들과 영화를 감상한 부모들이 너무 무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나 보는 움직이는 그림이 잔인해 봤자 얼마나 잔인할까 싶었던 걸까. 이것이 현재 애니메이션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각을 보여주는 한 예가 아닐까 싶다. 애니메이션은 자유로운 소재와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는 영상의 한 장르로 어린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러나 국내 TV, 극장에서 상영되는 애니메이션만 봐도 대부분 어린이를 타깃으로 하고 있다. 더군다나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경우 할리우드 유명 스튜디오의 작품이 아니고서는 오후 시간에 보기조차 쉽지 않다. 그러나 정작 해외에서는 다양한 장르, 타깃층을 대상으로 한 한국 작가들의 장, 단편 애니메이션들이 호평을 받고 있다. 단편은 이미 2000년대부터 한국 작가들의 작품들이 주목을 받아 왔다. 올해만 해도 세계 5대 애니메이션 중 하나인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과 자그레브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정다희 감독의 < 의자 위의 남자 >와 정유미 감독의 < 연애놀이 >가 각각 대상을 수상하며 독창적 예술성을 지닌 작품으로 세계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장편 역시 이성강 감독의 < 마리 이야기 >와 성백엽 감독의 < 오세암 >이 안시에서 2002년, 2004년 대상을 거머쥔 바 있다. 최근에는 연상호 감독의 < 돼지의 왕 >, 안재훈 , 한혜진 감독의 < 소중한 날의 꿈 >, 이대희 감독의 < 파닥파닥 >, 장형윤 감독의 <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 등이 국산 장편 애니메이션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 국산 애니메이션이 꾸준하게 그리고 묵묵히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단편은 영화제라는 특정한 공간에서만 즐길 수 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고 장편은 < 블루시걸 > < 아마게돈 > < 원더풀 데이즈 > 등 과거의 예에서 알 수 있듯 화제성에 비해 부진한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이는 철저히 상업 논리에 따르는 국내 거대 배급사들이 아동을 타깃 삼지 않은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 돼지의 왕 >은 첫선을 보인 부산국제영화제에서 3관왕을 차지하며 매진 행렬을 기록하고 언론의 집중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극장 확보의 한계에 부딪히며 손익 분기점을 넘지 못했고, <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는 청소년, 여성 타깃의 감성적인 작품임에도 흥행을 위해 국내 시장의 애니메이션 주요 수요층인 가족 관객 중심의 홍보를 선택해야 했다.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한 해외 애니메이션들도 픽사나 드림웍스, 디즈니 등의 작품 외에는 관객들의 관심을 모으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다양한 장르를 자랑하는 일본 애니메이션도 수요가 일부 마니아에 국한돼 있는 형편이다. 반면 할리우드의 대형 스튜디오들은 <겨울왕국> 처럼 막대한 자본의 힘을 바탕으로 가족 관객을 타깃으로 한 뛰어난 퀄리티의 영상과 어른들까지 사로잡을 수 있는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으로 자신의 브랜드를 확실히 각인시키며 전 세계 관객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물론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한 디즈니, 픽사의 작품 퀄리티를 따라잡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전형성을 지닌 할리우드의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더욱 폭넓은 관객층이 즐길 수 있는 힘 있는 스토리와 개성으로 자신만의 매력과 울림을 가지고 있는 국산 창작 작품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을 즐기고 그 진가를 느낄 수 있는 기회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 앞에서 편견의 벽은 높기만 하다. 오히려 낮은 퀄리티와 비슷비슷한 내용의 아동 타깃의 애니메이션이 쏟아지고 있는 극장가에서 동급으로 취급되기에 십상이다. 이러한 현실에서도 국내 감독들은 변화를 위한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홍덕표 감독의 성인을 위한 국내 최초의 VOD 전용 애니메이션 < 발광하는 현대사 >, 현대 문학을 애니메이션으로 오롯이 옮겨낸 안재훈 감독의 <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 > 등 최근 선보이고 있는 작품을 통해 본 한국 애니메이션은 작품들의 실패를 딛고 다양성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최근 한국 애니메이션이 두 편이나 연달아 개봉을 했다. < 소중한 날의 꿈 >과 < 마당을 나온 암탉 >이 그 작품들. 한국 애니메이션의 제작 상황을 생각했을 때 웬만해선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그중 <마당을 나온 암탉>이 황선미 작가의 베스트셀러 동화가 원작이라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걸 본 계기로 한국아동문학에 관심이 가고, 나아가 유명 애니메이션 작가들이 사랑해온 걸작 동화들이 새삼 궁금해졌다. 가장 먼저 로알드 달의 원작들이 떠오른다. 헨리 셀릭이 연출한 < 제임스와 거대한 복숭아 >와 웨스 앤더슨의 <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 >가 달에게 거대한 빚을 지고 있다. <제임스와 거대한 복숭아>에서 갈매기들에게 매달려 푸른 밤바다 위를 날아가는 거대한 복숭아의 모습이 얼마나 환상적인지. 한밤중 거대한 복숭아 위에서 듣는 지네 아저씨의 바이올린 연주는 또 얼마나 가슴 설레는지. < 스티브 지소와 해저생활 > < 다즐링 주식회사 >를 연출한 전방위 아티스트 웨스 앤더슨이 자신의 색깔을 한껏 살린 첫 애니메이션 <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 >도 나무랄 데 없다. 닭장을 털고 농장을 습격하는 미스터 폭스를 통해 보여준 로알드 달의 유머 감각이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에도 그대로 적용돼 황홀했던 기억이 있다. 달이 생각해낸 미스터 폭스의 캐릭터나 미스터 폭스 식구들, 그리고 악질 농장주 삼인방은 어느 영화에서도 보기 힘든 캐릭터. 나무 밑 여우굴의 이미지나 농장주들에게 쫓기던 미스터 폭스가 대반전을 꾀하는 결말도 유쾌하고 발랄한 여운을 남긴다. 어른들의 규범과 관습에 어긋날지라도 아이들이 원하는 반전을 그려냈던 로알드 달의 비틀린 유머 감각은 단연 최고다. 그의 원작으로 애니메이션이 나올 때마다 그의 동화가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 새삼 놀라곤 한다. 감독 스파이크 존즈가 모리스 샌닥의 동명 그림동화를 꿈같은 화면으로 되살려낸 < 괴물들이 사는 나라 >도 빼놓을 수 없다. 몇 페이지 안 되는 원작 속에 ‘괴물처럼 아우성치며 외로워하는 어린이’에 대한 철학을 담아놓은 샌닥의 심오한 상상력이 없었다면 절대 나올 수 없었던 작품이다. 스파이크 존즈도 그만큼 원작에 경의를 표하고 있다. 지브리 스튜디오가 건드린 동화들도 빼놓을 수 없다. 영국 작가 다이애나 윈 존스의 <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이나 어슐러 르 귄의 <게드 전기>이나 메리 워튼의 동화 <마루 밑 소인들>. 오리지널 스토리가 바탕이 된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들보다는 파급력이 덜했지만, 지브리에 새로운 상상력을 수혈해준 동화들이었음은 사실이다. < 백설공주 >에서 < 라푼젤 >에 이르기까지 디즈니가 숱하게 작업해온 클래식 애니메이션을 통해서도 수많은 동화 원작을 입체적으로 만나왔고, 윌리엄 스테이그가 쓴 동화 <슈렉>이 애니메이션으로 4편까지 장수하는 것을 목격했다. 우리에게도 물론 정채봉의 <오세암>이나 권정생의 <강아지똥>이 있다. 판매부수 100만부가 넘은 한국아동문학의 베스트셀러 <마당을 나온 암탉>까지 애니메이션이 됐다. 그러나 개인적으론 여전히 충분치 않다고 생각한다. 애니메이션 < 마당을 나온 암탉 >의 완성도에도 이견이 있는 상황에서, 더 다양한 색깔의 한국 동화를 많이 발굴할 필요가 있다. 오리지널 스토리의 중요성도 크지만, 이미 이야기와 캐릭터의 완성도를 갖춘 동화 한 편이 주는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모르긴 몰라도 한국 아동문학을 샅샅이 뒤져본 애니메이션 관계자들이 적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 아동문학의 조류나 성향도 잘 모르고,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되기 적합한 이야기들이 어느 정도 되는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아동문학에 살을 붙이고 가지를 칠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콘텐츠도 없을 듯하다. 개인적으로 골라보라면 요즘 한국 아동문학의 ‘핫 이슈’라 할 백희나 작가의 <달 샤베트>를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보고 싶다. 일면식도 없지만 작가가 직접 그리고 세트를 지어 사진 촬영한 입체 일러스트가 대형 아이맥스 화면에서 살아 움직이는 걸 보고 싶다. 그녀의 전작 <구름빵>이 이미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된 바 있다. 하지만 더운 여름밤 잠 못 이루는 아파트 주민들을 위해 반장인 여우 할머니가 달로 샤베트를 만들어준다는 <달 샤베트>의 그림과 이야기는 왠지 더 시네마틱하다. ‘한국의 웨스 앤더슨’ ‘한국의 헨리 셀릭’이 혜성같이 등장해 원작의 색감과 질감을 살려 스크린에 옮겨주길 괜히 기대해본다.
오래도록 꼭 기억해야 할 우리 애니메이션 수작(秀作) ‘ 오세암 ’ 한참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는 연령의 자녀에게 애니메이션을 보여준다면 어떤 애니메이션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부모의 입장에서 본다면 바로 디즈니의 명작들이 떠오릅니다. 90대를 장식한 < 인어공주 >나 < 라이언 킹 >, < 미녀와 야수 > 등은 물론이거니와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있는 < 피터팬 >이나 < 신데렐라 > 등 고전들도 있겠죠. 헌데 이런 디즈니 작품이 아닌 우리 애니메이션을 보여준다면 어떤 작품이 있을까요? 불행히도 이것은 선택이라기보다 기억해내야 하는 수준입니다. 우리 손으로 만든 장편 애니메이션이 숫자도 적고, 또한 오래 기억되는 작품이 드물기 때문이죠. 하지만 2003년에 개봉한 < 오세암 > 만큼은 절대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니, 그 수준이 아니라 우리 자녀들의 감성을 위해 DVD 등으로 꾸준히 이어지길 바랍니다. < 오세암 >은 2003년 개봉 당시 관람한 관객들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열악한 마케팅과 국내 애니메이션에 대한 극장측의 몰이해로 인해 소규모 개봉관과 짧은 상영기간 동안 관객들을 맞이하고 막을 내렸습니다. 지금 시점에선 매우 안타깝기 그지없는 성적으로요. 특히 지난 수년간 여러 애니메이션이 극장에서 나름의 성적을 거두면서 극장가에서도 애니메이션으로 인한 가족관객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기에 더더욱 안타깝습니다. <오세암>은 국내 흥행 실패 이후 이듬해 제28회 안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장편부문 그랑프리를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국내에서는 잊혀져가고 있었죠. 고 정채봉 선생의 동화원작으로 만든 < 오세암 >은 내용 면에서 일반적인 흥행성을 갖춘 작품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 < 슈렉 >처럼 기발한 아이디어로 성인들까지 환호하는 작품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슬픈 동화 애니메이션은 부모와 자녀가 함께 보고 삶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좋은 소재입니다. <오세암>에는 남매 간의 애틋한 정, 부모가 없지만 꿋꿋한 아이들의 의지, 세대를 뛰어넘는 우정, 그리고 너무나 눈물나는 죽음까지 많은 드라마 요소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 애니메이션을 가족이 함께 봤다면 아이는 부모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을 것이고, 부모 또한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많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 자연의 모습을 정말 맛깔스러운 색감으로 표현하여 외국의 애니메이션과 차별화된 영상을 보여주는 것 또한 매우 가치가 있죠. 작품의 배경은 설악산 백담사와 관음암인데 작품을 감상하고 가족여행을 통해 실제 배경을 방문하는 것은 그야말로 산교육이 되리라 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 애니메이션’ 만이 할 수 있는 힘이겠죠. 인터넷서점을 뒤져보니 아직 < 오세암 > DVD가 판매 중입니다. 어지간한 책 한권 가격보다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더군요. 자녀들에게 권할 동화책을 주문할 때 <오세암>도 같이 장바구니에 넣으시는 센스 있는 부모님이 되어 보시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