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愛
- 감독
- 김태일
- 제작년도
- 2010
- 출연
- 양동남, 주로미
어렸을 때부터 나는 공동체나 신념을 위해 헌신하는 비장한 남성들에 매혹되곤 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난 대학을 졸업할 무렵까지 영화광도 아니었고 심지어 관심도 없었지만, 그러한 남성들에 대한 첫 번째 매혹에 대한 기억은 영화였다. 언제쯤이었을까? 아마 내가 열 살 즈음이었을까? TV에서 방영되는 < 새벽의 7인 >을 보았다. 레지스탕스라는 어려운 용어는 물론이고 나치나 유태인이 뭔지도 몰랐을 그 시절,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나치에 포위된 두 명의 청년이 어느 건물 지하실에서 최후의 저항을 하자, 나치는 지하실로 물을 채워 넣기 시작한다. 그 물이 거의 천장까지 차오르자 이 두 청년은 서로를 끌어안고 각자의 머리에 총을 겨눠 자살을 하고만다. 이 숨막히는 마지막을 지켜보면서, 나는 그들이 살아남기를 정말이지 간절히 소망했다. 그들이 투항하기를 바랐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그들이 최대한 머리를 지하천장 가까이 치켜들면 익사하지 않으리라는 응원을 열심히 했었다. 그리고 대학시절, 정규 수업은 거의 출석하지 않았고, 사회과학 동아리였던 세미나에 더 열중했었다. 그러던 중 누군가 가져온 <칠레에 관한 모든 기억>을 보게 됐다. 내가 다큐멘터리에 관심을 가지게 한 첫 번째 영화였다. 선거를 통해 집권한 사회주의자 살바로드 아옌데의 혁명과 이에 대한 피노체트 반혁명(쿠데타), 그리고 민중 학살에 관한 작품이었다. 공군 전투기가 산티아고의 대통령궁을 폭격하는 장면이 등장하고, 채 스무명이 안 되는 동지들과 달랑 권총 한 자루 들고 저항하는 아옌데의 마지막 모습, 그리고 그의 육성 라디오 메시지는 내 넋이 다 나갈 정도로 소름끼쳤다. 비장한 남성들에 대한 매혹은 자연스레 운동으로 연결됐고, 그 다음은 영화였다. 그 순간 처음으로 나도 ‘다큐멘터리 운동’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정말로 나는 다큐멘터리 진영에 기웃거렸다. 대학 4학년 즈음에 벌어진 노동계 총파업때(노동법 날치기 통과 반대 투쟁) 학교 영화패 선배를 쫓아 명동 향린교회에 꾸려진 ‘총파업공동영상제작단’을 찾아가 그곳에서 내게 주어진 아주 사소한 심부름을 하면서도 뿌듯해 했다. 이후 대학을 졸업하고 1년 정도는 노동자뉴스제작단에서 꾸린 이론분과에 참여했다. 선배들에게 거창하게 내 포부를 드러내진 못했으나, 나 홀로 각종 다큐멘터리 이론 책들과 논문들을 읽으며(주고 다큐멘터리의 형식주의 관련 논문들) 내가 만들고 싶은 작품을 상상하곤 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내가 결정적으로 ‘운동’ 혹은 ‘다큐멘터리’와 멀어진 것은 영화에 대한 매혹과 지식이 더 커져가면서였다. 얼마 후 ‘씨네21’을 통해 평론가로 등단했고, 이후 다시 ‘영화는 예술이며, 감독은 작가다’를 죽어라 외쳐대는 KINO에서 기자 생활을 하게 됐다. 그 즈음 우연히 만난 노동자뉴스제작단의 이론분과 선배는 내게 농담처럼 ‘배신자’라고 했다. 그냥 웃고 말았지만 쓰리기도 했다. 몇 년 전 모 영상위원회의 ‘독립영화 DVD 제작지원’ 분야 심사에 참여했다. 이번에 < 오월애 >를 연출하신 김태일 감독님 역시 심사에 참여하셨다. 난 그때 심사장에서 그분께 했던 내 질문을 아직도 후회한다. “요즘 다큐멘터리들은 왜 이리 나이브한가요? 형식에 대한 고민들이 없는 것 같아요” 당시 나는 취지와 메시지에는 공감하나 만듦새와 형식이 너무도 불만이었던 한 작품에 대한 선정 여부를 두고 갈등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 질문은 걸작과 작가에 경도된 지금의 영화취향에서 가능한 질문이었고, 한국에서 독립다큐멘터리를 한다는 것이 수반하는 무수한 싸움과 한계들을 외면한 질문이었다. 얼마 전 지인과 < 오월애 >를 보러갔다. 관객은 우리뿐이었다. 덕분에 아무 거리낌 없이 영화가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들에 대해 즉각적으로, 큰소리로 토론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영화 초반부 시민군이었던 남자가 뱉어내는 내래이션은 묘하게도 내 가슴을 쳤다. “30년 동안 기억의 감옥으로부터 한번도 자유로운 적 없었다. 해마다 5월이 되면 몸의 감각이 되살아난다,” 소름끼쳤다. 망각에 대한 죄의식, 도청에 대한 논쟁들, 죽은 자에 대한 예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 학살과 위정자들. 그 모든 공포들을 상기시키는 작품이었다. 며칠 후, 모 영화과 교수님과 이야기하던 중 < 오월애 > 이야기가 나왔다. 그는 <오월애>의 나이브함이 아쉽다 했다. 정말로 이 작품이 나이브한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가 그 용어를 어떤 의미로 썼는지는 알 것 같다. 30년이 지나도록 미완인 역사, 그것도 망각 속에 봉인되려는 역사에 대한 총체적 시각이나 해석을 제공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증언자들의 진술이 주관적이고 감정적이며, 선택된 인물들은 당시 광주를 상상하기엔 다소 느슨해 보인다. 이 영화엔 여백이 많다. 그러나, 만일 이것이 나이브함이라 한다면 나는 그것을 오히려 <오월애>의 미덕으로 간직하려 한다. 이 영화는 정말이지 오랜만에, 걸작과 작가주의에 경도된 나의 영화적 취향을 너머, 지난 시기 운동과 다큐에 대한 매혹과 열정을 일깨운 작품이다. 80년 광주는 조직화나 체계화된 운동이 아니라, 철저하게 억업받고 빈곤했던 시민들의 삶의 몸부림이었다. 이후 진행된 약간의 민주화니 보상이니, 역사적 재평가니 하는 것들도 어쩌면 지식인인양 하는 자들 혹은 정치인들의 포장되고 왜곡된 언술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 오월애 >의 힘은 당시 광주에, 그날 그곳에서 목숨 걸고 싸웠던 사람들이 직접 이야기한다는 점에 있다. 기층민중의 역사를 지식인들이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날의 역사를 그들 스스로 발언하게 하고, 그들을 역사적 주역으로 내세운다는 점에 있다. 영웅화된 몇몇 열사가 아니라, 그곳에서 이름조차 없이 죽어간 무수한 목숨들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의 힘겨운 기억들. 구두닦이, 식당주인, 노점상, 과일행상, 고등학생... <오월애>는 그들의 투쟁과 그들에게 남겨진 상처를 상기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작품인 것이다.(광주나 칠레를 비롯하여 잔혹한 학살을 경험한 희생자들은 이후 수십년 동안 발언을 금지 당한다. 발언 그 자체가 고통이거니와 더 큰 문제는 그것이 또 다른 억압과 처벌로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내 유년기에서부터 나를 사로잡았던 영화 속 비장한 남성들, 레지스탕스에서부터 아옌데까지. 그러나 <오월애>는 그 비장한 영웅들의 현실 속 주체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운동으로서의 영화’,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정성’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상기시켰다. <오월애>의 사람들, 그날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의 존재 자체가, 그 어떤 압도적 형식미학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오월애>는 ‘저항’과 기층민중의 힘을 믿는 작품이다. 그래서 훌륭하다.
미래의 영화란 무엇일까? 실험적인 표현과 수사법으로 당대의 예술적 한계를 넘나드는 작품? 아니면 테크놀로지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이른바 대박을 치는 상품?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30년이 훨씬 지난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낡은 형식의 대표격인 인터뷰가 깨알같이 이어지는 김태일 감독의 < 오월愛 >에서 미래의 영화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518 광주민중항쟁(이하 518)은 이미 보훈처가 기념일을 관리하는 국경일이 되었다. 불의에 저항하고 공동체를 창조했던 민중들의 치열한 역사는 탈각시킨 상태이지만 말이다. 학살자 전두환과 그 일가족은 온갖 탈법, 위법으로 남부럽지 않은 호사로운 삶을 영위하며 뻔뻔하게도 여전히 광주 민중들의 항거를 폭도였다 떠들고 다니지만 말이다. 또 어떤가? 먼저 간 영혼을 위로하며 산자들의 부채감을 투쟁의 의지로 승화시켰던 ‘임을 위한 행진곡’보다는 ‘방아타령’이 기념식장에서 울려 퍼지는 헐~(?) 스러운 상황이지만 말이다. 이렇듯 518은 30년이 지난 오래된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들의 모순을 치열하게 반영하는 거울로 남아있다. 이 거울 앞에 당신은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 이 역사의 거울 앞에 김태일 감독은 어설픈 양비론과 어쩔 수 없음의 현실인식을 버리고 < 오월愛 >를 시작한다. 거대한 국가폭력의 잔인함 앞에 하나의 물방울에 불구했던 민초들을 통해 잊을 수 없는 과거와 그 거울의 속내를 들추어낸다. 난 당신들 편이고 내가 바로 당신들이라며… ‘맛있는 참외 오천원 어치만 주세요’. 시장 어귀 참외 파는 할머니에겐 오월만 되면 나타나 잊고 싶은 과거의 기억을 들쑤셔 넣고 총총이 사라지는 카메라가 참으로 귀찮은 존재였을 것이다. 김태일 감독은 이런 빛고을 광주시민들에게 조심스럽지만 참으로 집요하게 그들의 일상으로 침투해 들어간다. 도매시장에 나가 과일을 떼어오고 리어커를 정리하며 시장 속으로 들어가 큰 소리로 자신이 왔음을 알리는 대인시장 과일 행상 할머니처럼 김태일 감독은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배터리를 충전시키고 방대한 양의 책을 읽으며 카메라를 들고 그들 한 가운데에 들어가 누구도 귀 기울려 주지 않았던 ‘민중들의 518’을 기록하는 일을 담담이 이어나갔다. 아침마다 들리는 커피행상의 아주머니들 사이로, 대인시장에 자리잡은 광주지역 예술가들 사이로, 도청 별관 안과 밖의 갈라진 5월 단체들 사이로 때로는 듣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들어가며 그들의 속내를 눈치채고 드러낼 수 있게 지켜보고 기다리며 말이다. < 오월愛 > 안에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평화반점 주인 부부, 양동시장 참외와 귤을 파는 노점 할머니, 대인시장 과일행상 할머니, 5월 화원 주인부부, 구두딱이 아저씨, 버섯농장을 하시는 아주머니, 대안학교 선생님,,, 이들은 518 당시 어떤 일을 했었을까. 계엄군도 있었고, 주먹밥을 만들어 나눠줬으며, 총을 든 시민군에게 밥을 해주면서, 시민들에게 518을 알려내는 역할들을 했던 인물들이다. 30년이라는 시간 만이 놓여 있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 없이 공동체의 한 일원으로 묵묵히 이 세상을 건너온 사람들인 것이다.(이중 계엄군/대안학교 선생님은 이질적인 변화를 겪은 듯 보이지만 그 역시 국가폭력의 희생자인건 자명하지 않은가) 이들을 묶어주는 역할은 김태일 감독의 분신과도 같은(실제로도 부부 관계인) 주로미 조감독과 지금은 전세버스 운전기사인 518 당시 기동타격대원인 양동남씨가 맡는다. 작품은 518의 ‘연대기’와 증언자의 ‘지금’이 부드럽게 오고 간다. 억지로 끼워 맞추듯 오디오와 비디오를 분리하여 시간을 ‘압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은 어차피 ‘하나’ 였음을 암시하듯 물 흐르듯 시간을 ‘해체’하여 현재하는 아픔 속에 과거를 바라보도록 우리들을 인도하는 것이다. 하나의 단락은 이야기의 재미를 쌓는 기능보다 작가가 선사한 주제의식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기름기 하나 없는 스테이크 같다. 한 덩어리 천천히 씹어 제 맛이 날 때를 기다리면 다음 덩어리가 이어받아 결국에는 오랫동안 입 속에서 떠나지 않는 육즙의 향기가 진하게 남듯이 말이다. 여기서 오랜 기간 역사와 민중을 다루어 왔던 김태일 감독만의 완숙미를 확인 할 수 있다. 재미와 밀도라는 스토리텔링의 스킬에서 벗어나 익숙한 이야기를 바라보는 작각의 주제의식이 다큐멘터리에서는 더 힘이 세다는 것을 김태일 감독의 <오월愛>에서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이다. 이 작품을 관통하는 작가의 주제의식은 무엇인가? 기록하기 위한 투쟁의 과정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었던 민중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는 것이며 피곤한 삶을 건너가는 그 진짜 주인공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 다시 돌아가 이 역사를 만들어 가는 기록의 투쟁에서 518은 다시금 읽혀야 한다는 흔들리지 않는 선언이다. 5월만 되면 나타나는 당신들의 안락한 역사의식에 정면으로 문제제기 하는 것이다. 이른바 독립다큐멘터리는 이 사회에서 ‘영화’로서의 자기 지위만을 찾지 않는다.(이것을 포기한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오해다) 누구도 지켜보지 않았던 비정규직 노동자의 차별의 문제를, 로드킬 당하는 뭇 생명들의 처절한 현실을, 국책사업에서 밀려나는 이들의 생존권을, 최소한의 인권마저 짓밟히는 소수자들의 눈빛을...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세상사람들에게 부담스럽고 무거운 이야기라 일컬어졌던 이 이야기들은 지금 방송과 주류미디어에선 당장 해결해야 할 사회적 의제로 부각되어 소통되어 가고 있다. 시장 속에 상품으로서 규정되는 ‘영화’로서의 자기 결정이 아니라 현실 운동의 변화와 함께 가야 할 자기원칙들을 점검하고 실행에 옮겼던 독립다큐멘터리의 역사가 보여준 결과인 것이다. 그 속에서 독립다큐멘터리스트는 변화의 주체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교감해 오면서 그 이슈와 거리가 먼 대중들과의 영화적 교감을 얻는 덴 실패했어도 주체들의 언어들을 남기고 근거를 기록하는 데에 성공한다. 이로서 그 이슈는 보편적인 문제로 사회와 소통하며 실질적인 변화에 한걸음 나아가는데 일조하게 된다. 이렇듯 난 ‘오월愛’가 몇 년 후, 518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논쟁에 어떤 식으로든 자기 역할을 할 것임을 장담한다. 미래의 가능성보다 당장의 살아남기에 급급한 독립영화의 풍토에서 미래의 영화란 어찌 보면 이렇게 발견될 수 있는 건 아닐까? 미래의 영화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지난 역사에서 자기 역할을 해왔던 독립다큐멘터리에서, 그리고 바로 < 오월愛 >에서 증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