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례기
- 감독
- 임권택
- 제작년도
- 1977
- 출연
- 김윤경, 이일웅, 최남현, 한은진, 김기주, 홍동은, 임해림, 이예민, 이정애, 김신재, 추봉, 주상호, 임성포, 이예성, 지방열, 김기범, 박예숙, 박옥초, 조학자, 이은영, 이장미, 최정선, 박미정, 김지환, 이용남, 박용범, 나정옥, 김신명, 김광수, 주일몽
1978년은 모든 것이 나쁜 상태였다. 이미 3년 전 유신헌법이 국민투표로 통과된 다음 긴급조치 9호가 선포되었다. 무언가 위협적인 사건이 계속 벌어졌다. 그 해가 시작되었을 때 영화배우 최은희 가 북한에 납치되었다, 고 발표했다. 3월 1일에 윤보선 전(前)대통령을 비롯하여 민주인사들이 ‘3.1 민주선언’을 했지만 그 해 가을 10월에 정부는 휴전선에서 세 번째 남침 땅굴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그 해 12월 선거에서 박정희는 삼선 대통령이 되었다. 한국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오는 관객은 거의 없었다. 그때 한국 ‘상업’영화 장르는 호스티스 멜로드라마와 하이틴 청춘영화뿐이었다. 그리고 새마을영화, 반공영화, 문예영화라는 이름의 정책영화들이 외국영화 스크린 쿼터를 얻기 위해 그저 의무적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검열은 무자비하게 이루어졌다. 유현목 은 (아마도 그의 마지막 걸작이라고 해야 할) < 장마 >를 완성했지만 거의 아무도 보지 않았다. 김기영 은 <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를 찍은 다음 일 년 동안 개봉을 시키지 못했다. 이 영화를 시네필들이 발견하기까지는 박찬욱 의 열렬한 지지를 기다려야만 했다. 김수용 은 마치 실험영화를 만들기라도 하듯 대사가 없는 영화 < 웃음소리 >를 찍었다. 하지만 비평은 미처 이 영화에 관심을 기울일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침묵을 지켰다. 영화인들을 향해 “피고(被告)”라고 말하길 즐기던 하길종 은 완전히 항복하듯이 물러나서 < 병태와 영자, 속 바보들의 행진 >을 거의 자포자기하듯이 찍은 다음 그 이듬 해 2월 28일에 세상을 떠났다. 임권택 은 그 안에서 묵묵히 영화를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그 해에 네 편의 영화를 찍었다. 임권택을 임권택으로 만든 < 족보 >를 만든 해였다. 그런데 그 해에 임권택의 영화 전체에서 가장 기이한 영화 두 편을 더 찍었다. <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 >와 < 가깝고도 먼 길 >. 나는 지금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먼저 두 편의 영화가 기이하게 여겨지는 것은 두 편 모두 어린 아이가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물론 그 전에 어린 아이가 주인공이었던 전쟁영화 < 울지 않으리 >가 있었다. 전쟁을 일으킨 어른들. 희생당한 아이들, 여기서 반격하기라도 하듯 환상의 서사가 활동을 시작한다. 아이들이 총을 들고 어른들을 대신해서 전쟁을 한다. 상징적인 비유들. 아이러니의 전복. 나는 이미 이 영화에 대해서 설명했다. 하지만 여기서 이 두 편은 완전히 다른 특별한 순간을 담고 있다. 임권택 은 주제에 대한 어떤 탐구나 소재에 대한 어떤 관심도 없이 여기서 오로지 영화가 이런 경우에도 견딜 수 있는지를 질문하는 것만 같다. 이런 경우. 영화는 너무 쉽게 관습에 복종해왔다. 이 예술의 문법은 할리우드 고전영화들의 표본에서 끌어내고 거기서 체계를 만들었다. 문법이 만들어내는 경우. 그것을 따라가면서 만들어진 영화들. 임권택은 그것을 ( 정창화 를 경유하여) 경험으로 배운 다음 그것이 그의 영화 안에서 관습이 되었을 때 그 영화들에 대해서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미 < 왕십리 >에서부터 눈에 보이게 임권택의 영화는 느려지고 있었다. 거기서 멈춰야하는데 그냥 지켜보았고, 주고 받아야하는데 두 사람을 하나의 화면에 놓아두었으며, 이따금 이야기 바깥으로 빠져나와서 아무 상관도 없는 풍경 안에 놓인 그 사람을 멀리서 쳐다보았다. 영화가 무언가를 느껴보는 시간. 임권택은 제제나 소재가 아니라 영화에 대해서 질문하기 시작했다. 아마, 아마 틀림없이 그랬던 것 같다. 영화라는 문제. 영화 안에서의 질문. 종종 이 질문은 공허하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거기서 어떤 대답도 구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영화에서 그 대답을 구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다만 각자의 결론이 있을 뿐이다. 그때 결론은 힘의 방법을 지시하게 될 것이다. 영화의 힘은 거기에 있어요. 아무도 영화에서의 힘을 정의내리지 못할 것이다. 그 대신 그 힘은 이제까지의 관습을 부숴버릴 것이다. 예술에서 형식의 문제는 그 예술의 존재의 문제이다. 여기서 그 예술의 위계질서의 자리를 놓고 다투기 시작할 것이다. 예술의 능력이 형식 속에서 이해될 수 있을까. 임권택은 판단의 순간과 대면하게 된 것이다. 그때 판단은 반성이라고 살짝 말을 바꾸어도 괜찮을 것이다. 무엇을 더 음미해야 할 것인가. 무엇을 포기해야 할 것인가. 전형적인 세계. 자유로운 활동. 이때 조심해야 한다. 자칫하면 영화 자체가 부서질 수도 있다. 임권택은 자신이 위태로운 자리에 왔음을 직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질문한다. 한 번 더 반복하듯이 말하겠다. 이런 경우에도 견딜 수 있을까. 아마도 <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 >를 각자는 자기의 자리에서 서로 다른 영화로 바라보았던 것 같다. 자본과 정치, 예술. 같은 말의 다른 판본. 영화제작자와 검열관과 영화감독. 동아수출공사는 이 영화를 (처음에는 ‘위기 영화(Crisis film)이라고 정의 내려진 다음 하위 자르로 재(再)명명된) 재난영화(Disaster Movie)로 기획했(던 것 같)다. 할리우드는 1973년 < 포세이돈 어드벤처 >의 성공으로 일련의 재난영화들이 만들어졌고 < 타워링 >에서 거의 절정에 이르렀다. 스필버그의 < 죠스 >도 일련의 재난영화 장르로 기획된 영화이다. 예기치 않은 지진으로 발생한 해양해일이 제야의 파티를 벌이는 거대한 관광유람선을 덮친다. 상하가 뒤집힌 배에서 처음 만난 생면부지의 승객들은 시시각각 차오르는 바닷물을 피해 미로 같은 구조물 속에서 위로, 더 위로 올라가야 한다. 동아수출공사는 이 영화를 수입한 회사이다. 물론 그때 한국영화는 할리우드 재난영화 규모의 영화를 제작할 수 없었다. <저 파도 위의 엄마 얼굴이>는 아동 재난영화로 기획되었다. 이 영화를 본 검열관은 먼저 ‘아동’ 주인공 영화라는 사실에 안심했을 것이다. 게다가 마지막 씬에서 중공(그때는 중국을 ‘中共’이라고 불렀다. 물론 ‘中華人民共和國’의 약자이지만 사람들은 ‘中國共産黨’의 약자처럼 읽었다) 화물선에 구출된 주인공 김한 어린이에게 ‘중공’ 선원들이 북한으로 보내줄까, 라는 질문에 완강하게 저항하며 대한민국, 으로 보내달라고 요구하는 장면이 검열관들에게 감명을 주었을 것이다. 이 장면은 1968년 12월 1일 강원도에 침투했던 무장공비들이 마주친 삼척 시골마을의 이승복 어린이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하자 그 일가 전체를 살해한 사건을 연상시켰을 것이다. 이승복 일가 참상은 박정희 정권 내내 반공(反共)교육과 홍보의 이미지로 활용되었다. 그래서 검열관에게는 아동 교육홍보 반공영화로 분류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를 영화로 만든다는 문제와 만나게 되면 완전히 다른 질문이 된다.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는 거대한 배가 뒤집히는 <포세이돈 어드벤처>가 아니며 엄청난 고래 뱃속으로 들어가는 <피노키오>가 아니다. 혹은 하이 테크한 스펙터클 < 라이프 오브 파이 >가 아니다. 영화라는 시스템이 허락하는 조건과 상황. 영화에서 이미지의 생명은 화폐, 라고 고다르가 말했을 때 그 말은 고통스러운 전언이다. 영화에서 어떤 풍경이 있을 때, 거기에 어떤 사물이 나타날 때, 그 사물이 사건이 될 때, 그 사건 안으로 주인공이 들어가야 할 때, 이 모든 관계는 화폐의 연쇄고리이다. 종종 우리들은 이 문제를 지나치게 영화에서 하위 체계에 놓아둔다. 시나리오의 많은 장면들은 쓰기도 전에 삭제된다. 찍을 수 없는 장면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이 문학과 영화의 중요한 차이라고 생각한다. 이 문제는 관념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 시스템이 그 자체로 자본주의의 축소판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풍경은 화폐의 권리이며 결정에 따라야만 한다. 그러므로 이 설명은 둘 사이의 등가성을 인정하고 교환 가치의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 임권택이 찍어야하는 풍경. 진행해야 하는 사건. 그냥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돛단배에 열두 살 소년 김한 어린이가 표류하는 이야기가 그 전부이다. 달리 가족과 연락할 도구도 없으며, 구조를 요청할만한 방법도 없다. 가지고 있던 트랜지스터라디오는 김한 어린이가 국경을 넘었다는 사실을 알려준 다음 (한국방송은 더 이상 잡히지 않고 주파수에는 중국 방송만이 잡힌다) 배터리가 방전된다. 이 소년이 거기서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구조를 기다리며 버티는 것 말고는 달리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게다가 무언가를 하기에는 배가 너무 좁다. 주변의 풍경은 바다가 전부이다. 텅 빈 미장센. <저 파도 위의 엄마 얼굴이>는 <캐스트 어웨이>가 아니다. 게다가 소년을 구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구조대는 허락할 수 있는 제작비를 훨씬 넘어설 것이다. 1978년은 컴퓨터 그래픽이 영화에 도착하기 전이다. 그러므로 여기엔 별다른 사건이 있을 수 없다. 임권택은 그걸 끌어안고 바다로 나아갔다. 물론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에서 서사의 약점을 지적하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다. 돛단배 한 척에 별다른 엔진도 없이 바다로 떠밀려 내려간 다음 라디오 방송에서 관심을 기울이는 전 국민적인 구조 대상이 되었는데도 레이더망과 헬리콥터 수색을 피해서 조류의 흐름을 따라 저 멀리 공해상으로까지 떠밀려갔다는 진행은 아무래도 믿기 어렵다. 게다가 동해 벌섬 근처에서 실종되었다면 동해상에서 떠돌았을 텐데 그 배를 왜 ‘중공’ 화물선이 구했는지도 잘 설명되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왜 이 영화의 설정을 서해로 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게다가 그때 한국은 대만과 수교를 맺고 ‘중공’과는 적대적인 관계였으며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를 맺은 것은 1992년이다. 그런데 아무런 외교적 분쟁 없이 김한 어린이는 (아마도) 인도적 차원에서 돌아온다. 다시 한 번 환기하지만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는 < 족보 >과 같은 해에 찍은 영화이다. 그 이듬 해 임권택은 < 깃발 없는 기수 >와 < 짝코 >를 연달아 연출했다. 그러므로 용기를 내서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임권택의 관심은 서사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그는 영화에서 서사 바깥으로 나가고 있었다. 거의 무의미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의 이야기를 소개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의도적으로 영화의 순서를 무시하고 서사의 순서대로 이야기하겠다. 평화롭게 야구를 하며 놀고 있는 아이들. 그때 공이 멀리 날아가고 김한은 그 공을 주우려다가 나무 위의 새장을 발견한다. 김한은 나무에 올라가 새장에서 새알을 꺼내려다가 새장을 나무에서 떨어트린다. 그때 동네 할아버지가 와서 야단치며 그 새장을 다시 나무 위에 올려놓으려다가 그만 나무에서 떨어진다. 가난한 할아버지는 응급치료만 받고 병원을 떠나자 걱정이 된 아이들은 치료비를 모으기로 결심한다. 여기까지가 영화의 시작이다. (하지만 중간 과정은 김한 어린이가 배에서 표류할 때 플래시백으로 다시 진행된다) 궁리하던 김한은 용돈을 받기 위해 해안가 마을에서 큰 배의 선주인 할아버지를 찾아간다. 거기서 알고 지내던 칠성이형이 돛단배로 낚시를 해서 물고기를 잡아오는 걸 보고 김한은 호기심에 몰래 그 배를 훔쳐 타고 바다로 간다. 물고기가 잡히지 않고 지루해진 김한은 잠깐 낮잠을 자다가 깨어나서 배가 바다 한 복판으로 흘러왔음을 알게 된다. 여기까지가 영화가 시작하고 20분이다. 그런 다음 1시간 10분이 더 진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달리 설명할 내용이 없다. 설명할 드라마가 없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갑자기 배가 나타난다. 누군가 구조 요청을 보낸 것도 아니고 또 무언가 단서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전적으로 우연히 바다 한 복판에서 배를 만난다. 표류하던 김한은 ‘중공’ 화물선에 구조되고 비행기를 타고 귀국한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 반 친구들을 만난다. 영화가 더 이상 진행해야 할 사건이 없는데도 거기 영화가 있을 때 비로소 영화적, 이라는 문제와 만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체자레 자바티니의 정식화 때문이다. 그런 다음 각자는 각자의 방법으로 이 정식을 밀고 나아갔다. 임권택은 1953년에 자바티니가 주장한 ‘영화에 관한 몇 가지 사유’를 읽지 못했다. (이 글은 지금도 한글로 번역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지속적으로 임권택이 영화에서 이론이 정식화시켜놓은 자리를 우회해서 자기 자신의 시행착오를 거친 다음 같은 자리에 도착하는 것을 반복해서 보았다. 결국에는 동일한 결론. 예기치 않게 여기서 임권택은 영화에서 잉여의 시간들이라는 문제와 만나게 되었다. 임권택은 이전에 이런 종류의 영화를 만든 적이 없다. 이 영화가 섬세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여기에는 섬세한 변화가 포함되어 있다.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에서 시련은 드라마가 만들어내는 사건이 아니라 잉여의 시간들을 견디는 것이다. 아마도 대부분 이 영화를 무시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없었다면 < 만다라 >는 없었을 것이다. 잉여의 시간들로 이어지는 만행 길. 달리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마도) <왕십리>에서부터, 그것도 전체가 아니라 아마도 절반으로 나눈 후반부에서, 임권택의 영화 내부는 이상할 정도로 드라마 사이를 연결하는 장치들 사이의 관계가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아주 순간적이긴 하지만 좀 더 거슬러 올라가서 나는 그걸 <둘째 어머니>에서도 보았다. <만다라>(1981) 다소 장황하게 이 문제를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임권택의 영화 전체 안에서 이제까지 잘 설명되지 않은 상태의 형식이 있다. 처음 볼 때는 통상적인 설명에 따라 이 상태를 나태한 형식으로만 받아들였다. 내 생각을 바꾼 건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와 < 가깝고도 먼 길 >이었다. 하지만 두 영화는 동일한 문제의식 위에 서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질문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 둘을 분리해서 설명할 것이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자. 임권택은 드라마가 전부라고 결론을 내린 다음 영화는 거기에 복종해야한다는 믿음으로 장치들을 동원하고 그 안에서 시스템을 만들면서 시작했다. < 망부석 >은 이미 그가 이 시스템의 장인이 되었음을 증명했다. 하지만 한국영화는 기이한 방식으로 모더니즘 영화를 끌어들이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할리우드 고전영화를 배우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에서 리얼리즘이라는 질문을 배웠다. 영화에서 리얼리즘은 문학과 다른 경로를 밟아 나아갔다. 귀도 아리스토타르코와 앙드레 바쟁의 논쟁. 사회 안에서의 영화의 리얼리즘이라는 정치적 규정과 영화 안에서 세계의 존재의 형식에 대한 반론. 환상 없는 세상 앞에서 영화는 쇼트가 세계라는 시간 속에 놓여야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 영화는 무엇을 느껴보는가. 대답이 기괴하게도 빈곤의 실체가 아니라 시간의 형식이었다. < 오발탄 >이 리얼리즘 영화이자 이미 모더니즘의 방법론을 따라가고 있었음을 생각해야 한다. 거리에서 무작정 배회하는 실직자들. 그저 거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쇼트들. <오발탄>은 < 자전거 도둑 >이 아니라 < 흔들리는 대지 >이다. 그런 다음 < 만추 >와 만났다. 바람에 흔들리는 펜스. 단지 그것뿐인 쇼트들, 아마도, 아마도 안토니오니의 풍경. 거기서 1974년 세대, 이장호 와 하길종 , 김호선 은 각자의 방법을 배웠다. < 별들의 고향 >, < 바보들의 행진 >, < 영자의 전성시대 >. 물론 거기서만 배운 것은 아니다. 좀 더 복잡하게 잡종 교배된 역사가 있다. 그때는 아무런 설명도 알지 못했다. 1974년 세대는 자신들이 왜 그렇게 아메리칸 뉴 시네마가 친숙한 지 스스로 설명하지 않았다. (혹은 못했다) 단지 변방의 영화 문화에 속하던 그들이 동시대 ‘우드스탁 제너레이션’이 된다는 흥분만이 거기에 있었다. 네오리얼리즘의 방법론을 받아들인 누벨바그를 경유하여 아메리칸 뉴 시네마로 다가온 할리우드가 그 과정에서 새롭게 태어났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이미 그들 세대가 몰락한 다음의 이야기이다. 게다가 임권택은 그들 곁에서 멀리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영화를 지켜보았(을 것이)다. 영화에서 성립이라는 문제. 저렇게 진행해도 괜찮은가. 새로운 시청각 기호들의 배치. 저렇게 촬영해도 괜찮은가. 그것들이 창조해내는 영화적 상황, 저렇게 편집해도 괜찮은가. 그 상황이 만들어내는 감각. 이때 임권택은 그 상황에 적응해야 할 필요는 느꼈(을 것이)다. 물론 한 번에 어떤 단절이 생겨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임권택의 영화에서 종종 나태하다고 비난한 장면들, 사실은 그 순간에 임권택은 그 장면이 사건 안에서 네 것이거나 내 것인지 결정할 수 없는 어떤 개입이 가능한 지를 시험하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실험, 이라는 말을 피했다. 임권택은 영화에서 실험이라는 말을 혐오한다. 시험과 실험은 임권택의 영화에서 커다란 차이를 갖는다. 실험이 그 예술의 존재론에 질문을 던진다면 시험은 그 예술의 능력에 대한 반성적 판단을 요구할 것이다. 임권택은 그 요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무모한 드라마를 끌어안지 못했을 것이다. 무모한 드라마? 무엇보다도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는 자꾸만 균형이 깨져버리고 방향을 상실한다는 인상을 안겨준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배.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말 그대로 표류. 여기서 임권택은 사실상 드라마를 어떻게 해서든지 느슨하게 만들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해야만 개입의 여지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무엇이? 하나의 위기. 드라마의 위기.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를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영화의 어디쯤 온 것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이전에는 임권택의 영화에서 기승전결은 하나의 리듬이었으며, 그 상승과 하강의 곡선을 아름답게 다루는데 거의 모든 영화적 순간들이 바쳐졌다. 여기서는 여기저기서 불협화음의 리듬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차라리 거의 아무 것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 지도 모른다.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이 감정의 어느 지점에 온 것인지 가늠조차 하지 못한다. 가장 이상한 것은 한 쪽은 표류하고 있고 다른 한 쪽은 탐색을 하고 있는데 끝내 둘 사이에서 어떤 끈도 발견하지 못한 채 김한 어린이는 완전히 바깥으로 빠져나간 버린 다음 다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둘 사이에는 아무 드라마도 없다. 물론 임권택은 돛단배를 탄 김한 어린이를 하나의 시퀀스로 놓은 다음 육지에서 걱정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이모, 할아버지와 할머니, 군부대. 돛단배의 주인인 칠성이와 그의 아버지, 분주히 그들 사이를 오가는 월간 신여성 기자 혜미를 또 다른 시퀀스로 놓고 그 둘 사이를 교차편집 한다. 하지만 그 둘은 서로에게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사라진 효과. 그 둘은 각자 활동할 뿐이다. 이때 임권택은 이 둘을 바라볼 수 있는 어떤 객관적인 자리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 자리를 얻으려면 영화 바깥으로 나와서 무능력하게 그저 이쪽과 저쪽을 쳐다보는 도리밖에 없다. 불균질한 상태에서 진행되는 두 개의 시퀀스. 그 어느 쪽이 다른 쪽보다 우위에 있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둘 사이에서 의도적인 어떤 결과를 향해 함께 나아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둘 사이의 차이는 하나는 바다 위에서 진행되고 다른 하나는 육지에 머물러 있는 것뿐이다. 적어도 이 차이를 임권택은 정확하게 의식하고 있다. 김한 어린이를 제외하고 누구도 바다 위로 나가지 못한다. 아버지가 김한 어린이를 직접 탐색하기 위해 배를 빌리기까지 하지만 그런 다음 아버지는 배와 함께 영화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마지막에 김한 어린이가 귀환할 때 공항에서 다시 나타난다) 오직 유일한 예외는 바다 위에 떠 있는 배에서 지친 김한 어린이가 환상을 볼 때 저 멀리서 아버지와 어머니, 이모,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구조선을 타고 나타나는 장면뿐이다. 그런데 마치 누구도 바다 위에 올 수 없다는 걸 환기시키기라도 하듯 그들은 저 멀리서 나타난 다음 갑자기 김한 어린이에게 관심도 없다는 듯, 마치 그들끼리 바다에 관광을 나오기라도 한 듯,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 김한 어린이에게서 고개를 돌린 다음 다른 곳을 보면서 그들끼리 즐겁게 웃는다. 이 장면은 처음부터 환상이라는 것을 알 수밖에 없다. 이 씬은 김한 어린이가 바다 저쪽을 바라보자 화면은 초점이 맞지 않은 상태(out_of_focus)로 시작한다. 어쩌면 원래의 목표는 김한 어린이가 육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헛것이 보일만큼 지쳤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보조적인 설명 씬처럼 시작한다. 그런데 이 주관적인 환상 속에서 김한 어린이가 구조를 받는 대신 버림을 받을 때 이상할 정도로 보는 쪽을 공포에 질리게 만든다. 왜냐하면 문득 여기서 이 영화가 비극으로 끝날 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일이 <가깝고도 먼 길>에서 벌어지고 만다) 이 공포에 질린 환상은 영화 전체에서 마치 오점처럼 작동한다. 오점? 그렇다. 자칫하면 영화에서 오점은 의미의 네트워크 전체에서 오작동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임권택은 그걸 잘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의 영화를 설명할 때마다 거의 반복하듯이 같은 말을 했다. “지엽적인 재미를 따라가다가는 영화 전체를 망치는 거예요” 이 씬이 영화에서 무슨 특별한 장치도 아니고 이야기의 전환을 이루는 것도 아니며 김한 어린이에게 최소의 위기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위협적으로 거기에 있다. 임권택은 여기서 드라마가 수순을 밟아나가는 방법을 중단하고 싶어 한다. 그러므로 그 장면 앞에서 예정된 목표를 향해 나가는 것이 이제 임권택의 영화에서 진부한 것으로 가치를 잃어버리는 결정적인 순간과 마주하고 있다는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어쩌면 거의 집중력이 없어 보이는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는 상투적인 실패작의 전형처럼 보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임권택은 이 영화를 반대편의 극단에 가져다놓고 있는 중이다. 나는 좀 더 이 장면에 머무르고 싶다. 임권택은 아주 가끔 이상한 환상, 혹은 꿈을 갑자기 사사 안에 밀어 넣을 때가 있다. 그게 문제를 일으키게 될 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 게다가 서사에서 오점일 뿐만 아니라 오작동을 일으킬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했다.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 이 전 해에 연출한 < 옥례기 >에는 임권택의 모든 영화중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꿈 장면이 나온다. 옥례는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중매 시집을 간다. 그리고 첫 날 밤 이 남자가 다리를 쓰지 못하는 앉은뱅이인데다가 정신박약이라는 걸 알게 된다. (여기서 이 표현이 ‘멸시’라는 걸 알고 있다. 나는 의도적으로 이 영화가 만들어진 시기의 언어로 서술하는 중이다) 옥례는 꿈에서 이 동네를 도망치는데 마을 사람들이 그녀를 잡으러 몰려온다. 그런데 이 영화의 서사는 사실상 정반대이다. 옥례는 지극정성으로 남편을 내조한다. 어떤 의심도 없이 내내 옥례는 희생을 받아들인다. 이 이야기는 실화이다. 이때 이 환상 혹은 꿈은 단지 그것이 현실인가 아닌가, 혹은 진짜인가 가짜인가, 라는 단순한 진위 판단의 여부를 슬그머니 넘어선다. 여기서 장황한 정신분석의 개념을 전개하려는 것은 아니다. 요점은 서사에 끼어든 꿈, 혹은 환상은 단순하게 서사의 장면과 장면 사이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종종 전체를 전복시킬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알려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김한 어린이는 그것이 꿈이었음을 알고 안도한다는 것이 핵심이 아니다. 부모님과 이모,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이제까지 말썽을 부리면서 개구쟁이로 생활한 자기를 이 기회를 빌려 버릴 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사실은 이 꿈이 말하는 진실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지금 웃는 것은 자기를 보지 못해서가 아니라 정반대로 그들로부터 멀리 떨어져나갔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 외면하면서 기쁨에 차서 웃는 것일 수도 있다. 이 가정은 단지 짓궂은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김한 어린이는 구조된 다음 표류하던 경험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꿈을 꾸다가 깨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공통점은 여전히 표류중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 꿈은 진짜인가, 가짜인가, 라는 질문이 아니라 동일한 상태에 대한 두 가지 해석의 요구이다. 못 찾는 것인가, 버림받은 것인가. 사실로부터 해석에로 옮겨갈 때 영화는 드라마를 고정점으로부터 풀어헤쳐 놓게 된다. 서사 안에서 일어나는 끝없는 교환과 교정, 그 사이에 놓인 선택의 불확정성. <옥례기>(1977) 그렇다면 질문이 떠오를 것이다. 왜 임권택에게 드라마는 참을 수 없는 것이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단지 그걸 진부함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할리우드의 위대한 고전영화들은 드라마 안에서도 결코 진부한 공식 안에 빠져들지 않았다. 그리고 임권택은 그걸 감탄을 하면서 바라보았다. 그게 너무나도 놀라워서 연출부 시절에는 그의 동료들과 프린트를 카피한 다음 프레임 단위로 그걸 경이롭게 지켜보았던 경험이 있다.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는 그 대답의 일부이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배. 여기까지 우리는 그 한 척의 작은 배만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바다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영화를 진행하면서 임권택은 영화 앞에서 요지부동으로 버티고 있는 세계를 마주해야만 했다. 그건 모든 영화의 숙명과 같은 것이다. 그걸 피하고 싶으면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계 앞에서 스튜디오는 얼마나 조잡한가. 종종 세계는 시나리오를 때려 부셨을 것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멈추지 않는 비. 정반대로 아무리 기다려도 내리지 않는 비. 무한정 기다릴 수 있는 영화라는 것은 없다. 더군다나 그것이 시스템의 영화라면 그냥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임권택은 속수무책인 바다로 영화를 가져다 놓았다. 평면의 공간. 미장센 제로의 장소. 단 한 명의 등장인물, 열 두 살의 어린 아이. 아주 작은 배. 영화는 여기서 다가가는 것과 멀리 물러나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다. 거기서는 레일을 깔아놓고 카메라를 수직으로 이동할 수도 없으며, 그렇다고 크레인을 세워서 상하로 움직일 수도 없다. 단조로운 망원렌즈. 흔들리는 배 위에서의 힘겨운 자세로 바라보는 클로즈업의 단편들. 나는 어떤 장면의 구도에서 이석기가 무거운 35미리 카메라를 들고 그 작은 배 위에서 위태롭게 찍을 수밖에 없었을 자세를 떠올리면서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보다 삼년 전인 1975년,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스필버그는 <죠스>를 찍은 다음 두 번 다시 바다로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 영화를 보러가는 것은 상어와의 바다에서의 쫓고 쫓기는 추적극을 보러가는 것이다. 스필버그는 할 수 있는 한 바다에 가지 않으려고 버티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계속해서 해변에서만 머물다가 영화가 시작하고 1시간 11분이 되어서야 비로소 바다로 나간다. 임권택은 어촌에 도착하자마자 바다로 먼저 나간다. 아니, 나가버린다, 라고 말하고 싶다. 바다에는 김한 어린이가 대결해야 할 대상이 없다. 구태여 그것이 있다면 바다 위에서의 시간이다. 임권택이 바다로 간 것은 거기서 바다를 음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거기서 마주하는 것은 바다가 주는 공포이다. 이때 그것은 드라마로서 주어진 공포라는 장치가 아니라 영화 앞에 마주하고 있는 바다가 주는 공포이다. 그걸 영화가 견뎌볼 수 있을까. 세 개의 질문, 첫 번째 질문. 그걸 견뎌야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도 대부분 이 영화에 대해서 실망한 사람들은 이 대답에서 멈추었기 때문이다. 물론 실망스럽다. 임권택은 아직은 드라마의 장치 안에 머물면서 교차편집을 하면서 여전히 망설인다. 하지만 두 번째 질문, 그걸 견뎌야 한다면 영화는 어떻게 될까. 여기서 임권택은 바다가 어떻게 출현하는지를 영화가 감당해야하는 순간들과 마주한다. 그 해에 임권택은 <족보>를 찍으면서 설진영 노인이 일렬로 늘어선 커다란 포플러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그 사이를 걸어오는 장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 위대한 장면에 대해서 나는 이미 설명했다) 여기는 도호 스튜디오가 아니다. 이 바람은 <요진보>의 거대한 선풍기 바람이 아니다. 그저 그 시간에 부는 바람. 영화가 그때 거기에 있다는 문제. 지금 바다는 화면 앞에서 명백하게 과잉하고 있다. 그러므로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만일 영화가 드라마를 포기하고 그 과잉에 몰두하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 여기서 세 번째 질문이 나왔을 것이다. 그걸 견뎌야 한다면 영화는 무엇을 찍고 있는 것일까. 분명히 임권택은 여기서 만족할만한 대답을 얻지 못했다. 다만 몇 가지 사실이 <저 파도 위의 엄마 얼굴이>에 기록되어 있다. 그때 바다는 어떤 은유도 상징도 아니다. 그런데 그 공포가 종종 아름답다는 것이다. 이 말을 주의 깊게 읽어주기 바란다. 나는 바다, 라고 써야 할 자리에 공포, 라고 말했다. 방치될 수밖에 없는 환경. 바다는 그저 거기에 있다. 마치 재난과도 같은 그것. 이제까지는 그냥 놓아두면 영화의 장치들을 닥치는 대로 망가트려버릴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그것. 그런데 거기에 장치들을 대신하는 세계의 체험이 들어서기 시작하는 것을 임권택은 몇몇 순간에 경이롭게 바라보면서 그냥 내버려둔다. 영화에서 상실이란 없다. 하나가 자리를 비우면 다른 하나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물러날 이유가 없어졌다. 같은 말의 다른 판본. 영화에서 충분히 실망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지금 독도에서 <저 파도 위의 엄마 얼굴이>를 찍으면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임권택의 표정을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그 장면들이 증명하는 기이한 선물, 바다라는 영도(零度)를 깨달았을 때 그는 어떤 얼굴이었을까. (계속)
종종 임권택 을 공격하기 위해서 ‘따분한 계몽영화’라는 표현을 동원한다. 이 단정적인 범주와 싸우는 것은 꽤 까다로운 일이다. 그건 공격적인 지시어를 꺼내 든 쪽도 마찬가지이다. 계몽은 매우 긴 철학적 토론의 역사를 지닌 개념이기 때문이다. 계몽은 두 갈래 길의 교차로에 서 있다. 하나는 합리주의 프로그램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다른 하나는 국가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지식 사이에 스며든 권력 장치의 작동방식이다. 물론 여기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칸트이다. 잘 알려진 대로 칸트는 1784년 계몽주의란 무엇인가, 라고 물어본 다음 1798년 다시 한 번 약간 질문을 바꾸어 혁명이란 무엇인가, 라고 물어보았다. 그사이에 놓여있는 것은 프랑스 대혁명이다. 논제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나치를 피해 망명길에 쓴 「계몽의 개념」에서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계몽의 방식에 몸서리쳤다. 계몽이라는 이름의 후퇴. 이 역설적인 패배. 우리들이 계몽이라는 말을 부정적으로 꺼내 들 때 대부분은 이 책에 의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잘 알려진 대로 이 글은 다른 단상들과 함께 1969년 4월 「계몽의 변증법」이라는 책으로 묶였다) 하지만 푸코는 이 말을 재치 있게 뒤틀었다. 그는 계몽주의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계몽이라는 사건은 무엇입니까, 라고 되물었다. 이 질문(을 빌린 대답)을 읽은 사람들은 그런 다음 푸코와 하버마스 사이에 있었던 지적인 불화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자리는 이 논쟁을 다루기에 적절치 않다. 하지만 나는 ‘계몽영화’라는 개념 속에 서로 완전히 대립적인 두 갈래 길이 놓여있다는 것만은 환기시키고 싶다. 종종 이 논제를 쉽게 만들고 싶어 하는 게으른 비평가들은 일련의 영화들에 대해서 (미처 정의내리지 못한) ‘계몽영화’라고 부른 다음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그 영화들이 국가에 의해서 산업에 부과된 강제적인 수행인 것처럼 부른다. 사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도시는 매우 빠른 속도로 근대의 과정을 밟아나갔고 농촌은 여전히 전근대적인 형태에 머물러 있는 단계가 장기적으로 지속되었다. 이 과정에 존재하는 (약간 따분한 표현이지만) 둘 사이의 간극에는 어떤 지체가 존재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 단계가 있다. 여기에는 지주와 소작농 사이의 관계를 일시에 와해시키고 경작자의 농작물에 대한 노동의 결과를 자본주의 노동지대로 전화시키는 과정에는 토지의 소유라는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차액지대라는 다소 까다로운 잉여가치의 모순이라는 계산법이 기다리고 있다. 그 계산은 내 몫이 아니다. 이 과정에 국가가 폭력적으로 개입했을 때 예술이 항상 국가를 비판한 것은 아니다. 도브첸코는 이 개입을 시적으로 옹호했다. (< 대지 Zemlya >(1930)) 부뉴엘은 처음에는 다소 에매한 입장을 취했다. (< 빵 없는 대지Las Hurdes >(1933)) 반대로 누군가는 이 개입을 필요한 악이라고 옹호하기도 하였다. 물론 필요한 악이 얼마나 위험한 말인지 잘 알고 있다. 한나 아렌트는 평범한 악이 어디서 출발했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계몽의 변증법Dialektik der Aufklarung」 이 시기에 임권택 은 근심스럽게 그 폭력을 바라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 강제적인 과정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일시적이긴 하지만 임권택은 (아주 직접적인 의미에서) 계몽교훈극 영화에 가담했다. 그건 사실이다. 아마 그 첫 영화가 < 아내들의 행진 >일 것이다. 1974년은 새마을 운동이 국가주도로 진행되고 있었던 해이다. 하지만 그런 다음 < 아내 >와 < 옥례기 >를 찍고 나서 새마을 영화를 더 이상 만들지 않았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그 ‘이후’이다. 임권택은 자발적으로 계몽 교훈극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사태가 기묘한 것은 이 첫 번째 교훈극이라고 부르고 싶은 영화가 <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이다. 이때 임권택은 단순하게 계몽에 합류하는 이상으로 사회 안의 사람이 가져야 할 도덕에 대해서 선악을 구별한 다음 가혹하게 비판하기 시작한다. 이때 공동체의 도덕은 다소간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한다. 임권택의 도덕은 지나가 버린 공동체와 도래할 (혹은 해야 할?) 공동체 사이에서 진자운동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분명히 지금은 틀렸지만 그 비판이 어느 쪽을 향하는지 종종 모호하다. 그래서 다소 따분하게 여겨지는 훈고주의적 향수처럼 느껴지던 설교가 어떤 때는 갑자기 공허할 정도로 원칙적인 자리에 창백하게 머물면서 현실 안에서 거의 불가능한 비판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 둘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임권택의 일관성은 거의 무조건적인 충실함이다. 무엇에 대한? 여기에 이상한 대답이 기다리고 있다. 이웃에 대한 충실함. 이때 자기 자신의 주인의 자리를 잃지 않으면서 이웃의 자리에 대한 충실함이 지켜져야 할 때 여기에는 자기와 이웃 사이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지속되어야 하는 전체선이라는 불길한 구름이 떠오른다. 우리를 내려다보는 구름. 그것이 무엇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불투명한 덩어리. 건드릴 수 없는 자리에 떠 있는 저 그 무엇. 나는 여기서 구름이라는 표현을 단지 문학적 수사로 사용한 것은 아니다. 붙잡을 수도 없고 건드릴 수도 없는 저 모호함이 종종 공허하게 여겨지지만 그럼에도 저것이 마치 (이 말을 피하고 싶지만) 큰 타자처럼 아주 분명하게 머물고 있음을 환기시키고 싶다. 이 세계에는 어떤 권리도 없고 오직 의무와 책임만이 있다. 어떤 의무? 그것을 쳐다보아야 할 의무. 어떤 책임? 그 의무를 지켜야 할 책임. 그것이 이 세계에 머무는 방법이다. 임권택은 이 방법에 대해서 반복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문제는 종종 그 구름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말하고 싶어 할 때 생긴다. 그때 임권택은 그 자리를 법정에 넘기거나(< 법창을 울린 옥이 >) 혹은 왕의 자리에서 명령하는(< 망부석 >과 < 십년세도 >) 형식을 취했다. 그런 다음에도 그의 영화 전체에서 지속적으로 이 자리를 구태여 남겨 놓았다. 종종 임권택이 절제와 단호한 결정에 따른 결말을 마련했다고 설명하는 후기 영화들에서조차 그 자리는 좀 더 세련되고 때로 뒤로 물러나 보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존재한다.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는 데도 김두한이 어린 시절의 친구 김동회가 혼마치깡의 일본 야쿠자 하야시 패의 앞잡이가 되어 대결을 청할 때 갑자기 지식인이었지만 거지패로 전락한 사내가 끼어들어 상대방의 민족의 도리를 외마디처럼 따져 묻는다. (< 장군의 아들 >) 나는 임권택의 영화 전편을 놓고 이 자리에 관한 긴 목록을 작성할 수도 있다. 여기서 내가 제기하는 질문은 큰 타자의 자리를 가장한 국가의 요구와 임권택 스스로 자발적으로 나서서 그 자리를 채우려는 노력 사이에서 1970년대 혹은 80년대 초의 영화들이 겹치면서 사태를 까다롭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거의 이야기되지 않는 < 복부인 >은 임권택 의 모든 영화 중에서 가장 직접적이고 노골적이며 그래서 심지어 순수하다고까지 말하고 싶은 계몽교훈극이다. 좀 이상한 것은 이 영화가 1979년 10월 26일 이후에 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유신을 국가의 이념으로 내세우고 새마을운동을 근대화의 정책으로 집행했던 장기집권 독재자인 대통령이 부마항쟁에 이어진 요정에서의 총격으로 사망한 다음에 만들어진 이 영화에는 아주 잠깐 있었던 80년의 봄의 기운이 전혀 없다. 그건 그해 만든 다른 영화 < 짝코 >에서 그나마 희미하게 느껴지던 그런 열린 숨통의 약한 기운조차 없다는 점에서 더 이상하다. 언제나 그렇지만 임권택은 정치적인 담론들 사이에 가까이 다가간 적이 없다. 물론 <복부인>은 우수영화에 선정되었다. 하지만 이 시기의 임권택의 영화는 우수영화에 선정되지 않은 영화를 찾기 힘들다. 심지어 반공영화에 대한 반(反)영화라고 부르고 싶은 <짝코>도 반공 우수영화로 선정되었다. 그러던 시절이 있었다. <복부인>을 보고 난 다음 잠시 멈추게 되는 것은 부의 축적과정에 대한 분노에 가까운 경멸감이다. 그것이 이야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과정 자체에 대한 분노라는 점에서 정치경제학적인 계몽의 관점에 선다는 사실에 당황스럽고 그럼에도 여기에 그 과정에 대한 분석적 비판이 전혀 없다는 것이 어리둥절하다. 임권택의 새마을 운동 계보 임권택 은 돈을 종종 징그럽게 쳐다본다는 인상을 준다. 내가 임권택의 영화를 보면서 반복적으로 마주친 것은 돈에 대한 그의 태도이다. 마치 임권택은 돈이 자본주의의 형식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전염병인 것처럼 대하면서 돈을 다루는 등장인물들의 관계 사이에서 그 누군가의 악에 의해 다른 누군가가, 혹은 그 전체가, 붕괴되는 대신 아무 문제 없었던 관계에 돈이라는 불순물이 끼어들어서 생겨난 새로운 관계 사이의 잉여가치에 의해 타락하는 것처럼 다루었다. 여기서 이 설명을 경제적인 관점으로 문제 제기하는 것은 요점이 아니다. 물론 자본주의는 잉여가치의 형식 자체의 비밀이다. 하지만 임권택은 그 잉여가치의 이면에 숨겨진 그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다룬다. 미처 보지 못했지만 형식 뒤에 숨져진 돈의 이면이 만들어내는 물신숭배 속에서 붕괴되어가는 과정을 다룬 첫 번째 영화는 < 잡초 >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가정한다. 그런 다음 그는 긍정의 계열과 부정의 계열 양쪽으로 나누어 진행했다. 전자의 계열이 ‘새마을 영화’인 < 아내들의 행진 > < 아내 > < 옥례기 >로 이어진다면 후자는 < 맨발의 눈길 > < 내일 또 내일 > < 복부인 > < 오염된 자식들 > 그리고 < 티켓 >에서 정점에 이른다. 그런 다음 마치 이것이 돈에 대한 이론적 실수인 것처럼 양쪽의 계열 모두 갑자기 사라졌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임권택이 함께 계몽교훈극의 양식을 버린 것은 아니다. 그리고 돈의 문제가 완전히 이야기에서 쫓겨난 것도 아니다. 다만 돈의 운동이 관계 사이에서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관찰을 중단했을 뿐이다. 이 두 개의 계열에서 이상한 것은 한쪽에서 긍정적인 가치로 다루었던 부의 축적이 다른 한쪽에서는 수수께끼처럼 악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두 개의 계열은 거의 공존하듯이 동시에 진행되었으며 마치 임권택은 둘 사이에 아무 모순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이 번갈아 두 계열 사이를 오갔다. 여기에 단순하게 시골과 도시의 대립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아내>는 서울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이다. 반대로 <티켓>은 이전의 영화들이 무대로 삼았던 서울로부터 강원도의 작은 항구도시로 물러난다. 물론 둘 사이에 약간의 차이는 있다. 하나는 부의 축적을 향한 ‘선한’ 의지가 있다. 다른 하나는 부의 효과에 의해 ‘나쁜’ 선택을 한다. 물론 그 둘이 결국 도달하는 차이는 정반대의 자리이기는 하지만 문득 그 결과를 바라보면서 그 둘이 서로에 대한 외설적 버전이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의심을 품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 둘의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 복부인 >은 그 점에서도 좀 괴상해 보인다. 임권택 은 망설이지 않고 자신이 희극에는 자신이 없다고 공개적으로 약점을 고백하곤 했다. 그의 영화는 대부분 무겁고 종종 어두우며 희극적인 요소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건 처음부터 그러했다. 나는 임권택의 영화를 보면서 내내 낭만적인 기분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이따금 희극영화를 만들긴 했지만 1969년에 만든 시인 천상병의 기행에 관한 희극 < 신세 좀 지자구요 > 이후 임권택은 이 장르를 완전히 잊은 것처럼 보였다. <복부인>은 거의 대부분의 장면이 조금도 우습진 않지만 임권택은 그녀들의 행동을 다소 과장된 톤으로 우스꽝스럽게 다룬다는 점에서 희극에 가깝다. 이 영화는 이미 제목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 한혜숙이 연기하는 한 여사가 달동네에서 살다가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 복부인이 되어 처음에는 아파트 투기를 하다가 땅 투기에 나서고 그녀들을 상대로 커미션을 받던 부동산 업자가 사기를 치고 해외로 달아나려던 순간 경찰이 이들을 덮쳐 모두 감옥으로 간다. 희한하게도 이 영화에서 고등학교 동창으로 나오는 세 여자는 이름을 부르는 대신 서로에게 ‘여사’라는 호칭으로 부르면서 끝내 우리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한다. 말하자면 익명의 존재. 그녀들은 누구나 그 자리에 불려갈 수 있는 자리에 있으며 또한 누구도 그 자리에 가면 안 된다는 경고가 거기에 있다. 한 컷으로 촬영된 들고찍기 두 번째 괴상한 점. < 복부인 >은 임권택 의 영화에서 가장 난폭한 카메라의 움직임을 지닌 영화이다. 임권택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카메라를 들고 찍는 것을(hand_held) 선호하지 않는다. 그는 정교한 구도를 선호하며 종종 그 자리에 멈춰 서서(fixed) 등장인물을 바라보거나 때로는 그냥 내버려두는 것만 같은 거리를 선택한다. 더군다나 임권택은 <복부인>을 찍은 이듬해 그의 가장 명상적인 영화 중의 한편인 < 만다라 >를 그렇게 멈춰 선 채 망원렌즈로 멀리서 바라보면서(long_shot) 찍었다. 그는 그때 자신의 촬영 스타일의 변화를 찾고 있지 않았다. 임권택은 사실상 < 족보 >에서 자기 스타일을 찾았고 그런 다음 그걸 밀고 나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복부인>은 거의 예외적으로 인물을 따라 카메라를 들고 찍으면서 몹시 흔들리거나 때로 인물 동선이 어지러워지는 것을 그냥 내버려두었다. 당신은 이때 가벼운 경량 디지털카메라가 아니라 무시무시하게 무거운 미첼 필름 카메라로 영화를 찍던 시절이라는 것을 셈에 포함시켜야 한다. 임권택이 여기서 서정민에게 요구했을 카메라의 스타일은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뉴스를 찍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그는 지금 복부인의 생태를 고발한다는 심정으로 따라가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그래서일지 모르지만 <복부인>은 드물게도 (그리고 아마 거의 마지막으로) 1.33 사이즈로 찍은 영화이다. 그래서 어딘지 모르게 이 영화의 화면을 보고 있으면 고전적인 4대 3 비율의 텔레비전 모니터가 떠오른다. 만일 스타일로 설명한다면 <복부인>은 <족보> 이후 이어지는 일련의 나중에 나타날 것의 준비라는 과정의 바깥에 놓여있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하게 불순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영화에 담긴 분노가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혹은 보는 내내 그걸 느낀다. 그래서 그 과정 자체를 중단하고서라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 그 어떤 대상이 여기에 있다. 이때 해야 할 그 무엇이 나중에 나타날 그 무엇을 방해하고 있다. 내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대목은 여기에 있다. < 복부인 >은 나중에 나타날 그 무엇과 타협할 수 없는 과정에 대한 부정적 계기인 것이다. 우리가 이걸 완전히 역전시켜서 물어볼 수 있는 가능성이 여기에 있다. <복부인>에서 임권택 이 한 것은 이 일련의 과정에서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걸 해야만 했다. <복부인>은 이야기 안에서 보기에는 도덕적이지만 형식적으로 이 영화는 임권택에게 윤리적인 결정이다. 그걸 해야만 하기 때문에 할 수 있다. 그리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그걸 한다. 나는 지금 <복부인>의 미학적 결정을 물어보는 중이 아니다. 이 영화를 형식적인 아름다움으로 다가간다면 너무 빈곤하고 앙상해서 누구라도 그냥 빨리 지나쳐가고 싶을지 모른다. 하지만 왠지 여기에는 임권택이 이건 그렇게 해야만 한다, 는 어떤 태도가 있다. 다시 말하지만 <복부인>은 < 짝코 >가 만들어지던 해에 거의 동시에 만들어졌고 < 깃발 없는 기수 >와 < 만다라 > 사이에서 만들어졌다. 물론 다른 계열이 여기에 공존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복부인>은 < 내일 또 내일 >에서 < 오염된 자식들 >로 가는 그사이에 놓여있다. 여기에는 다루어야 할 그 무엇에 대한 충동과 그것이 불러일으킨 진동의 목표는 형식 안에 통합될 수 없다는 어떤 두려움이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내가 임권택의 내면을 말할 수는 없다. 그건 비평의 자리를 훨씬 벗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설명할 수는 있다. 임권택에게 돈은 미학적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관계에서 더 있는 그 무엇이다. 후렴구 같은 반복. 더 있는 그 무엇. 그래서 때로 임권택의 계몽교훈극들은 마치 자본주의 바깥에 놓인 것처럼 시작한 다음 거기에 돈이 침입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다소 따분하게 설명하면 임권택은 고전경제학에 머무르는 것처럼 보이고 그 잉여의 형식을 분석하는 자리로 밀고 나가지는 않기 때문에 그가 보수주의적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임권택이 단지 국책영화의 요구에 따라 만들어진 수동적인 영화들을 추월해서 자발적으로 그 과정의 불행과 경제적 행위 뒤에 놓여있는 도덕적 타락을 공격하기 시작할 때 그는 무언가 효과적인 방법을 선택해야만 한다면 심지어 자신의 영화 안에서 나타나야 할 과정의 형식조차 포기한다. <복부인>이 취한 다소 보수적(일 뿐만 아니라 이론적으로 부정확해서 종종 도덕 교과서적)인 관점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섬뜩해지는 순간은 그때 나타난다. 내내 돈의 교환관계에서 계약의 사법적 테두리 안에 머물면서 위법의 행위에 대해서 반감을 표시하던 이야기에서 비교적 주변에 놓여있던 인물들이 한 여사와 함께 계급적 상승을 하는 동안 이따금씩 등장하다가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주인과 노예의 전도된 관계로 도약을 시도할 때 임권택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차가운 경멸의 태도를 취한다. 이를테면 한 여사의 어머니. 그녀는 영화에서 아주 가끔 등장해서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 다음 이야기는 한 여사를 따라가기 때문에 우리는 그녀의 변화를 과정 안에서 보면서 동의하지는 않지만 이해한다. 하지만 아주 이따금 등장하는 어머니는 마치 그녀의 인격이 집의 크기와 비례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으로 이 신에서 저 신으로 옮겨갈 때 점프한다. 아니, 차라리 돈이 만들어낸 재산과 그에 따른 부의 축적이 가져온 새로운 관계에서 두 명의 다른 어머니가 있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여기에는 중요한 논점이 있다. 돈은 인물과 사회 사이의 매개가 아니다. 돈이 가져오는 가장 큰 효과는 그 인물에 대한 타자로서의 또 다른 그 인물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그때 그 인물은 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인물이 된다. 좀 더 명료한 설명. 그 인물에 돈이 플러스 될 때 그 인물은 +a가 아니라 a라는 인물이 되는 것이다. 혹은 이동하는 것이다. 이게 왜 중요한가? 임권택은 모순이 발생할 때 그 안에서 어떤 종합도 시도하지 않는다. 반대로 모순이 점점 더 확장되면서 전체가 붕괴되어 간다. 다만 그는 그 과정에서 한 가지 사실을 알고 있다. 몹시 무서운 사실. 아무리 모순이 확장되어도 세계가 붕괴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그건 그의 경험주의적 진술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확장되어도 세계가 몰락하지 않을 때 세계는 끝이 없는 지옥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인물은 간신히 견디면서 점점 더 찌그러진다. 그때 항상 임권택이 선택하는 방법은 둘 중 한 가지이다. 그 과정에서 견딜 수 없는 지경까지 갔을 때 이야기의 고정점이 되었던 인물을 삭제하거나 아니면 이야기 바깥으로 떠나보내는 것이다. 혹은 내보내는 것이다. 어쩌면 그런 의미에서 <복부인>은 <짝코>와 동일한 결말을 맞는다고 말하고 싶어지는 것인지도 모르다. 혹은 <만다라>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있으면 참선의 세계에서조차 그런 결정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나면 세계가 남는다. 혹은 지옥이 기다린다. 세 번째 괴상한 점, 혹은 맨 처음의 질문. < 복부인 >이 계몽교훈극의 형식을 지니고 있긴 하지만 이 영화의 교훈은 어딘가 당혹스럽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는 긴 설교가 나온다. 한 여사를 비롯한 세 명의 복부인은 토지 사기를 당하기 직전 현장을 덮친 형사들에게 체포되어 구조받듯이 경찰서에 잡혀 온다. 이때 마침 그녀들이 땅 투기에 치마 바람으로 바깥으로 나도는 동안 내기 화투에 빠진 남편들이 타짜들의 짜고 치는 도박에 걸려들기 직전 마찬가지로 현장을 덮친 형사들에게 구조받듯이 경찰서에 잡혀 온다. 나는 일부러 복부인과 그녀들의 남편을 거의 반복하듯이 썼다. 그런 다음 그 둘은 우연히도 운 나쁘게 같은 경찰서에서 서로 마주치게 된다. 복부인과 남편의 대면, 그리고 남편의 일장연설 양쪽을 번갈아 본 다음 “지금이 어느 땐데 정신 못 차리고 이래?”라고 야단치는 형사에게 한 여사의 남편이 자기 자신을 비판하는 형식을 빌려서 긴 설교를 한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사기를 해서 얼마의 돈을 땄든 원망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 사람들은 저기 앉아있는 복부인들에 비하면 훨씬 나은 사람들입니다. 노름판에서의 희생자들은 그 판에 끼어든 사람들로 끝나지만 저들 복부인들의 투기는 사기 도박꾼들보다도 훨씬 반사회적인 해악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저 여자들 때문에 주택과 땅값은 천장을 모르고 뛰고 결국 그 대가를 마지막으로 치르는 것은 저 여자들의 투기와는 하등 관계없는 영세민이요, 실수요자들입니다. 저들이야말로 참으로 용서할 수 없는 자들인 것입니다” 이 장면은 단순하게 찍혔고 그러면서 필요 이상으로 길게 이어진다. 영화는 이 대사를 하는 동안 마치 경청이라도 하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 약간 웅변을 하는 것처럼 하는 이 설교는 < 복부인 >이 일종의 교육극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환기시킨다. 그들은 교훈을 얻기 위해서 시련을 겪었고 이제 설교를 들어야 할 시간이다. 이 대사가 끝나면 암울한 감옥이 보여지고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영화는 끝난다. 대사는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설명으로 이어진다. 이 대사 안에서 땅 투기와 도박 중에 어느 쪽이 더 “반사회적 해악”인지를 따지거나 남편이 아내에게 그렇게 잘못을 따져 물을 자격이 있느냐고 바보같이 반문하는 것은 논점을 벗어난 것이다. 이 대사는 <복부인>이라는 계몽교훈극이 주는 교훈이라는 것이 요지이다. 그런데 이때 이 대사에는 어떤 교훈도 없다. 한 여사를 비롯한 세 명의 복부인이 경찰서에 온 것은 경찰의 부동산 사기단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그녀들의 투기 과정이 드러나 함께 검거된 것이지 그녀들의 땅 투기 과정에서 “투기와 아무 상관 없는 영세민들이요, 실수요자들의” 고발 때문에 여기에 온 것이 아니다. 또한 이야기에서 세 명의 복부인은 서울 인근 지역의 재개발 지구의 농토를 소유하던 할아버지를 속이긴 했지만 그녀들은 그 과정에서 영세민들과 거의 어떤 불화도 겪지 않았다. 그 땅은 내놓은 물건이었으며 그녀들은 중개업자로부터 그 땅을 사들인 다음 되팔았다. 여기에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진 거래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한 여사는 자신의 남편이 장황하게 늘어놓는 설교에 설득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거시적인 경제적 관점을 도입한다면 그녀들은 시차 간 차액을 이용하여 부당한 착취를 한 것이긴 하지만 <복부인>은 그런 관점과는 멀리 있다. 그녀들이 부동산 중개업자 송 사장을 통해 그 정보를 미리 취득하기는 했지만 여기는 지금 1980년이고, 그때 서울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투기는 행정과 자본 사이의 부의 재편과정의 일부였다. 몹시 끔찍한 이야기지만 정확하게 이 시기부터 대통령들도 부동산에 뛰어들어 친인척을 동원하여 부를 축적하기 시작했다. 물론 예외의 명단이 있지만 나는 논제를 단순하게 만들고 싶다. 이제 막 한강 이남에서 강남이 세워지기 시작하던 바로 그때는 야만의 시간이 시작하던 영년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 설교는 교훈의 형식을 빌려 무엇을 건드리고 있는 것일까. 만일 이 대답을 구하기 위해 그저 마지막 장면을 반복해서 본다면 끝내 대답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는 비밀이 있다. < 복부인 >은 영화가 시작하면 공항에 남편이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남편은 돈을 벌기 위해서 중동에서 (아마도) 장기간 일을 한 다음 지금 막 귀국하는 길이다. 그런 다음 장모를 만나 호언장담하면서 그동안 600만 원이나 벌었으니 이제 집도 사서 이런 달동네를 벗어나자고 말한다. 그가 되돌려 받는 말은 그 돈으로 어떻게 집을 살 수 있느냐는 대답이다. 600만 원이나 벌었다는 가치의 평가와, 600만 원밖에 벌지 못했다는 대답 사이의 간극. 단순하게 말하면 남편의 노동에 대한 임금의 가치가 느리게 축적되는 동안 재빠르게 상승한 사회 자본의 가치가 추월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꿈은 즉각적으로 좌절된다. 그건 이미 그가 아내와 함께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왔을 때 예고된 일이다. 그의 집은 마치 등산을 하는 것만 같은 계단을 따라 올라간 달동네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곳엔 택시도 가지 못한다. 아내는 택시비를 낸 다음 잔돈을 받기 위해 운전기사와 승강이를 벌이고 그런 다음 남편으로부터 ‘쪼순이’라는 핀잔을 듣는다. 한 여사는 주택 청약금을 든 아파트를 보기 위해 나갔다가 거기서 복부인으로 나선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고 얼떨결에 그녀들에게 당첨 순위인 아파트 청약번호를 넘긴 다음 며칠 후에 600만 원을 번다. 동일한 액수. 당연한 말이지만 돈은 질적으로 다른 모든 대상을 동일한 가치의 척도로 환원시키기 때문에 그 앞에서 남편이 중동에서 그 돈을 벌기 위해 팔아야 했던 노동력의 양과 시간은 한 여사가 단 며칠 동안 별다른 노력 없이 아파트를 환매한 차액과 동일한 교환가치의 수치가 된다.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있는 방법은 둘 중 하나이다. 그 하나는 자본주의의 법칙을 부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화폐로 전화된 노동의 형식을 내용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물론 영화에서 문제를 쉽게 해결하는 방법은 전자이다. 대부분의 마르크스주의 영화들은 과격한 정치적 해결을 제시하지만 대답은 진부하기 짝이 없다. 켄 로치는 매번 도식의 덫에 걸려든다. 후자를 선택하고 이 문제의 핵심으로 인물을 끌어당긴 다음 그 심연까지 들여다본 영화는 로베르 브레송의 < 소매치기 >이다. 물론 임권택 이 브레송의 방법을 따른 것은 아니다. 브레송은 그 간극 자체를 영화의 형식으로 만들어서 먼저 돈과 손의 운동을 보여준 다음 그 운동을 감옥으로 이동시킨다. 미셀은 마지막 순간 안타깝게 독백하듯이 말한다. “당신에게 이르는 길은 왜 이다지도 어려운 것이었을까” 두 영화가 모두 감옥에서 끝났다는 점을 환기시키고 싶다. 하지만 <복부인>은 <소매치기>가 아니다. 임권택은 이 계보의 한쪽 끝을 건드리고 있기는 하지만 형식과 내용 사이의 매듭이 어떻게 사회적 네트워크 안에서 실재적 추상이라고 부르는 수수께끼에 이르는지를 다루지는 않는다. <복부인>은 다만 형식의 효과 안에서 내용에로 되돌아가기 위해 애를 쓸 뿐이다. 하지만 여기서 형식을 다시 내용으로 전도시키는 과정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 과정에 관해서 약간 도식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한 여사가 자신의 동창인 박 여사와 정 여사와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남편은 이야기의 뒤편으로 물러난다. 한 여사의 어머니만큼은 아니지만 남편은 이따금 등장하며 그때마다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바뀐다. 이때 임권택 은 < 복부인 >의 이야기를 사회로 확장하는 대신 가족 안에 머물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시피 한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다. <복부인>은 근본적으로 홈드라마이다. 이것이 맨 마지막 장면에서 남편의 장황한 설교가 영화 자신과 조응하지 않는 이유이다. 그래서 이 장면은 두 사람 사이에서 거의 바깥으로 나간 남편이 자기의 원래의 자리에로 되돌아오려는 재귀적 주체의 자리에 대한 변명처럼 들린다. 마치 이 마지막 장면은 <복부인>이 설교의 신과 나머지 영화 전체 둘로 나뉘어 있으며 이 신에서 다른 부분 전체가 미처 말하지 않은 영역을 포함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반대로 이 설교에 포함되지 않은 부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반문이 거기 고스란히 따라온다. 임권택은 이 설교를 단지 아내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집으로 돌아와야 하며 남편은 (다시 한 번 같은 표현을 반복하면서) 가정을 지키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가부장적 주체의 정립을 위한 헛소리에 가까운 설교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다. 이미 그 이전에 임권택의 많은 영화들은 집을 지키기 위해 아내가 나서야 했으며 그녀들은 남편과 역할을 바꾸거나 자식들 앞에서 어머니로서 아버지의 역할을 하거나 때로 그녀 혼자 자립해야만 했다. 남편의 설교가 목표로 하는 것은 다른 데 있다. 다시 한 번 영화의 맨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중동에서 돌아온 남편과 그의 아내 한 여사(와 딸과 장모)가 살고 있는 집은 영세민들의 동네였으며 한 여사가 복부인 동창들을 만나게 되는 아파트 분양 현장에 간 것은 그녀 가족의 실수요 때문이었다. 여기에는 집(home)과 집(house) 사이의 간극이 있다. 그런 다음 이 둘은 내용으로서의 집과 형식으로서의 집으로 분리되기 시작한다. 여기서 그 둘이 조응하는 대신 형식으로서의 집은 갑자기 내용에 구멍을 뚫은 다음 새로운 네트워크로 빠져나가면서 자기의 형식에 조응하는 새로운 참조틀로서의 내용을 찾기 시작한다. 이 공식은 여러 차례 임권택의 영화에서 반복되었다. 이제 서로 다른 두 개의 내용을 갖게 된 형식으로의 집은 자신의 (확대) 재생산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내용에 집중하면서 낡은 내용을 형식에 대한 형식으로 전도시키기 시작한다. 간단하게 한 여사와 남편 사이의 부부관계는 형식에 지나지 않게 된다. <복부인>은 기이할 정도로 남편과 한 여사 사이에서 부부관계를 보여주는 그들만의 아주 사소하거나 은밀한 장면이 없다. 그런 장면이 비어있어도 될 만큼의 알리바이를 제공할 수 있는 (다소 상투적이라 할지라도) 남편이 한 여사에게 이 관계에서 실패하거나 무심하게 대하는 어떤 순간도 없다.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남편이 중동에서 벌어온 600만 원이 집을 사는데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 곧장 부동산의 네트워크 안으로 뛰어든다. 임권택은 이 간극이 심화되어가는 과정을 난장판이라고 파악한다. 그는 여기에 어떤 영화적 형식을 부여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임권택에게 영화에서 형식이란 절대적으로 그 인물의 외재적 내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설교는 오로지 재귀적으로 경청할 때만 의미를 갖는다. 그렇게 들어야만 <복부인>이 지닌 계몽교훈극으로서의 진정한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여기에는 내용이 형식의 타락에 대한 방어선이라는 교훈이 담겨있다. 만일 그걸 지키지 못하면 내용 자체가 소외의 모습으로 형식에 대한 형식으로 전락해가는 과정이 시작될 것이다. 그러므로 임권택의 도덕은 여기서 나온다. 그는 대상이 자신이 지닌 내용을 포기하고 형식이 압도할 때 타락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이때 형식으로부터 내용으로 다시 되돌아오는 과정은 둘 중 하나이다. 대가를 치러야 하거나 아니면 무언가를 희생해야 한다. 그때 내용은 자기에게 가장 소중한 그 무엇을 잃어야만 이 셈은 비로소 성립된다. 임권택의 도덕이 처음 시작할 때는 항상 보수적인 자리에서 시작하거나 때로는 국책 홍보의 일부처럼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그 자리를 추월해서 자신의 도덕을 집행하기 시작할 때 섬뜩해지기 시작하는 것은 바로 이 시간이다. 갑작스러운 ‘끝’ 네 번째 괴상한 점, 혹은 영화 이후의 시간. < 복부인 >의 마지막 설교의 장면에서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어떤 화해의 시간이 없다. 그뿐만 아니라 그 둘은 서로에 대한 자기 자신을 위한 반성의 시간이 없다. 설교의 마지막 말을 이렇게 끝난다. “저들이야말로 참으로 용서할 수 없는 자들인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저들, 이라고 부른 다음 용서할 수 없는 자들, 이라고 단호하게 판결을 내린다. 남편은 아내를 용서할 생각이 없으며 아마 이 영화가 끝난 다음에도 그럴 것이다. 남편은 사기도박의 피해자이고 아내는 부동산 투기의 사기조작에 일부 가담했지만 동시에 피해자의 신분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약간의 벌금을 내고 경찰서에서 풀려날 것이다. 이 부부는 함께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런 다음 남편은 “참으로 용서할 수 없는 자”와 함께 살 수 있을까. 한 가지 더. 아내의 반론은 여기에 없다. 계모가 되어 남의 자식에게 애정을 베풀면서 자기 자식을 홀대하며 평생을 살아야 했던 어머니가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이 낳은 자식과 마주해서 서로의 입장을 길게 논쟁하다시피 전개했던 < 둘째어머니 >를 생각해보면 의외라고 생각할 정도로 여기에는 형평성을 잃고 있다. 누가 보기에도 여기에는 남편의 오만이 있다. 이 설교의 앞부분.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사기를 해서 얼마의 돈을 땄든 원망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 사람들은 저기 앉아있는 복부인들에 비하면 훨씬 나은 사람들입니다. 노름판에서의 희생자들은 그 판에 끼어든 사람들로 끝나지만...(중략)” 남편은 자기의 자리를 희생자의 자리에 가져다 놓은 다음 복부인을 비판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다소 까다로운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복부인의 “반사회적 해악”을 비판하기 위해서 왜 이 자리에 와야만 하느냐는 것이다. 그 말은 그 전에도 언제든지 할 수 있었다. 한 여사는 종종 집에 늦게 돌아오긴 했지만 언제나 귀가를 했으며 그녀는 자신의 가정을 파괴할 생각이 없었다. 언제나 딸을 걱정했으며 남편이 속을 썩인다고 말을 하면서 여전히 관심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가 잠시 동안 춤바람이 나긴 했지만 다른 남자들과 성적인 교제를 하고 다닌 것은 아니다. 약간 조롱을 섞어 말하자면 그녀가 부동산 투기를 하고 다니는 동안 남편이 사회경제적인 운동 단체에서 활동을 하면서 갑자기 세상의 모순을 깨닫게 된 것도 아니다. 그동안 남편이 한 것이라곤 화투밖에 없다. 그런데 그 말을 하기 위해서 왜 이 자리가 필요해진 것일까. 나는 이 장소가 경찰서라는 것을 환기시키고 싶다. 임권택 은 교훈의 순간 종종 법정이나 경찰서, 혹은 교실과 같은 제도 기구의 장소를 선택한다. 그런 다음 그 설교를 제도의 담론처럼 환유시킨다. 임권택이 이루어낸 환유의 설교를 하는 장면에서 미학적으로도 가장 무시무시할 정도로 어떤 한계까지 밀고 나아간 순간이 < 티켓 >에서 정신병원에서 진행되는 마지막 대화일 것이다. <복부인>에서 순서는 이렇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결국 타락한 형식이 마지막에 도착할 장소는 경찰서일 것이다. 한 여사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거나(< 맨발의 눈길 >) 혹은 미쳐버리는(<티켓>) 것은 여기에 올바르지 않은 목적지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영화는 계몽교훈극이다. 이때 이 장소에 형식의 외곽으로 물러나면서 형식이 되어버린 남편이 같은 장소에 도착해야 한다. 여기서 남편이 한 여사에게 설교를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관점이 필요하다. 하나는 둘 모두를 사법의 무대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다른 하나는 그 형식을 바라볼 수 있는 내용의 일그러진 시선이 필요해진다. 남편은 우월한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여사의 자리에 대한 은유인 것이다. 노름판과 부동산 투기. 타짜들에게 속아 판에 앉아있는 도박 화투의 희생자들. 부동산 투기 전문가들에게 속아 판에 앉아있는 부동산 복부인들. 이 둘 사이에 비스듬히 세워진 거울이 그 둘을 마주 보게 만든다. 회화에서의 관점의 이동에 의한 잉여지식의 자리. 이때 내용은 형식을 내면화하고 주관화시키지 않으면 그 형식이 본래적으로 출발했던 내용의 도착적인 욕망을 읽어낼 수 없는 것이다. 남편이 재귀적 주체의 자리에로 돌아가기 위해 이 말을 할 때 그 설교는 고스란히 그 자신에게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한 여사의 반론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만일 구태여 그 말을 해야 한다면 동일한 내용을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임권택은 그 반복을 찍지 않았다. 혹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직 중요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계몽교훈극의 대답은 언제 와야 하는가. 영화가 끝난 이후로 미루어 놓아쐽옳求짙옛틈句옜덫옛호옰颱督쳐杞옳求짙? 임권택 은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그 자리를 영화 안에 남겨놓았다. 이때 이 대답이 구조 안의 일부가 되는 것이 옳은가, 라는 반문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교훈이 목적론적이 되는 것은 옳은가. 그래서 많은 계몽교훈극들은 이 대답을 사후적으로 남겨놓기 위해 그 자리를 영화 바깥에 포함시켜 왔다. 임권택은 그 자리가 가진 불편함을 뻔히 알면서도 그 안에 끌어들이고 있는 중이다. 이것은 그의 영화 전체에 걸쳐서 일관되게 유지된 거의 유일한 태도이다. 종종 임권택의 영화를 본 다음 설명적이라고 불평을 늘어놓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도 이 불평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아니, 잘 아는 정도가 아니라 여기에 대해서 물어볼 때마다 다소 몸서리를 치듯이 끄덕이며 대답한다. 잘 아는 것 같죠, 그런데 그걸 정말 알아채는 사람이 거의 없는 거예요. 그러니 그걸 말할 수밖에 없는 거죠. 여기에는 어떤 화해도 없다. 그는 이 화해가 심지어 굴복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 말을 다시 한 번 반복하겠다. 그러니 그걸 말할 수밖에 없는 거죠. 나는 이 말에 대해서 오fot동안 생각해왔다. 그런 다음 비로소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임권택의 영화는 그 말이 영화 전체의 활동 자체를 통해서만 제대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그 말이 올바른가는 내가 해야 할 질문이 아니다. 내가 할 일은 그 활동을 설명하는 것이다. (계속) 1980년 95분 컬러 2.35 감독 임권택 세경흥업 각본 윤삼육 촬영 서정민 조명 김강일 편집 김희수 음악 정민섭
먼저 상황을 설명해야 할 것이다. 아마 그래야 할 것이다. 1970년 4월 22일 박정희 대통령은 이듬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전국 지방장관회의에서 ‘새마을 가꾸기 운동’을 제안하였다. 1969년 9월 14일 다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3선 개헌안을 변칙 통과시킨 다음 7개월 만의 일이다. 그 해는 모든 것이 싸늘하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시인 김지하가 당시 재벌, 국회의원, 고위 공무원, 군 장성, 장차관을 (을사보호조약 당시의 매국노에 비유하며) 담시(譚詩) 형식을 빌려 풍자한 시 <五賊>을 발표하자 이 시가 실린 문학지 ‘사상계’ 시판을 중단시켰다. 하지만 야당 기관지인 ‘민주전선’ 6월 1일 자에 이 시를 다시 게재하자 미리 정보를 입수한 기관원들이 6월 2일 (통행금지가 있던 그 시절) 새벽 1시 50분에 중앙정보부 요원들과 종로경찰서 경찰이 인쇄소에 난입하여 인쇄한 10만 부 전량을 강제 회수하였으며, 6월 20일 시인 김지하와 사상계 대표, 편집장을 “계급의식을 조장하고 북한 선전 선동물 자료로 활용되었다”는 이유를 들어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기소 하였다. 7월에 경부 고속도로가 개통되었지만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미싱 시다공’ 전태일은 “우리들은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친 다음 분신을 하였다. 그는 그날 저녁 숨을 거두었다. 이듬해 4월 27일 제7대 대통령으로 박정희가 3선 되었다. 선거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김대중과의 득표 경쟁에서 이 과정은 몹시 힘겨웠다. 독재를 위한 확고한 지지 세력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 경제적 기반이 취약한 농촌을 중심으로 산업간 소득격차를 줄여야 할 필요가 대두되었으며, 다른 한편으로 정치적 감시의 외곽지역에 놓여있었던 지방을 조직적으로 관리해야 할 필요 속에서 새마을 운동은 유신 정권의 행정체계 안에서 정부의 지원을 받는 대규모 사업이 되었다. 아마도, 아마도 이 시기부터 이미 시작된 감시하의 문화예술과 학계에 대대적이고 적극적인 국책지지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대중들과의 전선에서 영화는 아이러니하게도 한편으로 버림받고 다른 한편으로 유혹당했다. 1973년 영화 진흥조합에서 영화진흥공사로 기구 개편을 한 다음 공사는 정부 지시에 따라 “한국영화 진흥을 위한 개선책”이라는 명분 아래 국책영화를 지원하기 위한 우수영화 보상 제도를 부활시켰다. 여기서 우수영화는 반공영화와 새마을 영화, 문예영화로 다시 분류되었다. 한국영화는 (시나리오 사전검열과 제작 검열이라는) 이중검열과 텔레비전 방송국 개국으로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거의 상실하고 있었다. (매우 제한적인) 외화 수입으로 영화산업을 가까스로 이끌던 국면이었지만 그 와중에조차 정부는 외화수입이 외환을 보유해야 하는 국가 경제적 차원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영화사들의 수입권을 제한하였다. 그런 다음 내세운 당근인 우수영화 제도는 ‘우수영화로 선정된 작품에 한해 제작사에 외화 수입쿼터 권리 1편’을 보상으로 내세웠다. 이 과정은 물론 한국영화의 산업적 몰락을 부추겼다. 영화사들은 ‘쿼터’에만(!) 관심이 있었으며 ‘우수영화’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영화감독들은 (좀 더 정확하게는) ‘쿼터를 따기 위한 우수영화’에 동원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국책지원을 하는) 우수영화를 만들었다는 말은 이면의 외설적 진실을 놓친 절반의 사실이다. 그들은 이데올로기적으로 동원된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이유로 착취당한 것이다. 그걸 도대체 누가 본다고? 여기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감독들은 ‘흥행 감독’들이었다. 왜냐하면 ‘우수영화’는 반드시 그 사실을 (문화부의 권고에 따라 ‘강제적으로’) 광고에 표기해야 했으며 관객들에게 ‘우수영화’는 재미없는 ‘국책영화’와 이음동의어였기 때문이다. 반복된 학습의 결과. 거리의 포스터와 신문 기사, 라디오에서 시간마다 울려 퍼지는 (베트남 파월장병들을 위한) 군가, 학교에서 암기해야 했던 국민교육헌장, 새마을 노래, 국민들은 국가정책에 관한 선전에 극도로 피로해져 있었다. 그런데 그걸 극장에 가서 다시 확인해야 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학생들과 공무원들에게 의무적으로 단체관람을 시켰다. 좀 더 우스꽝스럽게 말할 수 있다. ‘흥행 감독’들은 돈을 벌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 했으며, ‘우수영화 감독’들은 (제작사를 대신해서) 우수 영화에 선정되어 외화 스크린 쿼터를 받아야만 했다. 그렇게 쓰긴 했지만 그러나 당신께서는 이걸 비웃으면 안 된다. 이건 먹고 사는 문제이다. 그리고 다른 선택이 없었던 상황의 이야기이다. 물론 영화를 그만 두면 된다. 하지만 그런 다음 영화산업 바깥에서 어떤 영화도 만들 수 없는 기술적 산업적 조건 아래에서 영화를 만드는 기술밖에 없던 사람에게 어떤 다른 선택이 남아있었을까. 여기는 물샐 틈 없는 감시망으로 이루어진 경찰국가였고, 피비린내 나는 독재정치가 시작되고 있었으며, 한국전쟁의 창백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여전히 세상의 중심에 있었다. 여기에는 어떤 미래도 없었다. 박정희는 영원히 살 것만 같았고, 민주주의는 숨을 죽였으며, 사람들은 정신없이 진행되는 근대화의 과정 속에서 경제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일상생활 속의 투쟁을 해야만 했다. 이제 막 독점재벌의 맹아가 싹트고 있었으며, 그 안에서 새로운 비전이 제시되었다. 잠시만, 잠시만 멈추어야 한다. 당신은 이 부정적인 연쇄 망 속에서 문득 긍정적인 수사가 출현했을 때 당황스러울 것이다. 나는 지금 거짓 긍정을 말하는 중이다. 자, 여기서부터 조심스럽게 읽어야 한다. 새마을 운동이 정권연장을 위한 경제적인 속임수였으며 사실상 실패한 국가주도의 경제계획이었다는 것을 지금 주장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이미 파국의 계획에 대해서는 1980년대에 전두환이 이 국가사업을 물려받으면서 새마을 운동연합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러나 1970년대에 벌어진 이 기괴한 부의 재분배를 둘러싼 국가사업의 소용돌이 속에서 당신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있었습니까, 라고 물어본다면 대답은 간단치 않아진다. 나는 지금 외면, 이라는 태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중이다. 자본주의 새로운 단계. 당신에게 부자라는 (허구적) 타자로부터 (거짓된) 주체에로의 전환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시간의 기회가 도래했다. 나는 선명하게 기억한다. 당신도 부자가 될 수 있어요. 아니, 우리 모두 부자가 될 수 있어요. 금융자본과 결탁한 (거짓된) 부의 증식. 하늘에서 떨어질 것만 같은 잉여가치. 그걸 국가가 보장하겠다고 나섰을 때 온 사회가 들뜨고 있었다. 아마 정확하게 바란 것은 그 (정치경제학적인) 혼수상태였을 것이다. 박정희의 슬로건이 자본주의를 밑바닥부터 전복시키는 아이러니로 가득 찬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큰 타자의 황당무계한 약속을 사람들은 믿었다. 그들은 믿는 척한 것이 아니다. 그때 국가는 실체였으며, 어떤 부(富)도 국가보다 작은, 아주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지금 객관적 정세에 기반을 둔 한국 사회구성체 논쟁의 중심부로 들어서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러한 논쟁은 이 글의 성격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다) 반대로 그 안에 휘말려 들어간 국민들에게 새마을 운동의 유혹이 무엇이었을 지를 생각하는 것은 오늘날에(조차, 아니 어쩌면 더) 중요한 질문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박정희의 정책과 결과. 그 효과로서의 박근혜의 (유예받은 환상의) 프레임. 반문하고 싶어진다. 새마을 운동을 단순하게 거짓 사기극이었다고만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박정희 자신조차 이 근대화 프로젝트를 진심으로 믿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정치적인 동시에 역사적인 논점을 여기서 재빨리 멈추고 영화에로 돌아갈 생각이다. 하지만 여기서 건드린 논점을 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지금 혼수상태 안으로 멈추지 않고 들어가는 중이다. 여기서 영화라는 제도는 단순하게 국가 정책을 반영하거나 복제하는 기계가 아니다. 혹은 제도라는 기계는 그렇게 단순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일단 제도가 역사 안으로 들어오면 어떤 식으로건 구체적인 정치사회적인 조건이 그 안에서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때 그 조건은 단지 영화를 둘러싸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영화 안에서도 스스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이 말을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 단순하게 영화 안에서 제도가 요구하는 검열의 방식으로 활동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의 역사와 역사 안의 영화 사이의 관계는 종종 경계로 옮겨간다. 그 사이에서 어떻게 해서든 교집합을 만들어내는 둘 사이의 흔적은 서로 각자 다른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둘은 서로에게 역사의 이름으로 기억의 내러티브가 된다. 그때 우리는 말하자면 기억을 다루는 기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방법을 먼저 익혀야 한다. 이를테면 볼셰비키 혁명과 쿨레쇼프 공장은 1943년 직후 로마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과 얼마나 서로 같으면서 다른가. 1919년 표현주의 영화와 1962년 오버하우젠 선언 ‘직후’의 영화는 또한 얼마나 멀리 있는가. 여기서 우리가 보는 것은 영화 안에서 자기의 역사, 자기의 조건, 자기의 상황, 자기의 존재를 증명해내는 힘이 능동적으로 세워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자의 시대에 영화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사실상 각자의 조건과 상황에 대한 존재론적인 대답이다. 대답으로서의 질문. 이때 질문이 대답으로 이동하는 자리를 둘러싼 상황과 조건이 영화 안에서 형식이 될 정도의 특이한 사건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다. 내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사건의 모습으로서의 형식이다. < 아내들의 행진 >(1974), < 아내 >(1976), < 옥례기 >(1977) 임권택 은 (이 시기의) 다른 한국영화 감독들과 마찬가지로 우수영화에 동원되었으며 세 편의 새마을 영화를 찍었다. 물론 반공영화를 포함하면 그 숫자가 훨씬 많아진다. (그리고 문예영화들이 또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 다른 범주의 난점이 있다. 이를테면 < 증언 >과 < 짝코 >가 모두 반공 우수영화라는 제도적인 분류와 그 사이에서 얻게 된 행운이자 위험으로서의 미결정성. 여기서 우리는 제도가 처리하는 방식과 비평이 가져야 할 해석 사이에서 서로 공유하기 힘든 그늘을 본다. 우리의 괄호로 돌아오자. < 아내들의 행진 >과 < 아내 >, 그리고 < 옥례기 >. 신기하게 여겨지는 것은 예외 없이 세 편 모두 새마을 운동에 자발적으로 헌신한 세 명의 여자에 관한 실화를 찍었으며, 좀 더 구체적으로 세 명 모두 아내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물론 이 인물의 선택이 임권택의 결정이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내가 질문을 할 때마다 매번 잘 기억나지가 않아요, 라는 대답으로 돌아왔다) <아내들의 행진>은 영화진흥공사 제작이고 <아내>와 <옥례기>는 우진필름 제작이다. 여기서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두 가지이다. 아내의 실화. 우리는 임권택이 그 자신의 영화를 시작했다고 스스로 말한 < 잡초 >가 아내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필요하다면 좀 더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임권택은 아내에 관한 영화를 줄기차게 찍었다. 여자로부터 아내에로의 이행. 딸로부터 아내에로의 치환. 그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영역과 그 안에서 펼쳐지는 또 다른 전망. 좀 이상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임권택은 여자보다 아내에 훨씬 관심이 많다. 여기에는 그 자리에 대한 몹시 강력하고도 집요한 요구가 있다. 새로운 가족. 아무 혈연관계가 없는 가족 안으로의 편입. 그런 다음 그 자리의 책임이라는 문제, 한국 사회 안에서의 그 자리의 독특한 부름과 응답. 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삶의 형국. 그런 다음 임권택 영화 전체 속에서 드문드문 그러나 계속해서 실화를 다룬 영화들이 돌아오고 있다는 것을 계산에 포함해야 한다. 어쩌면 임권택은 점점 더 허구의 이야기, 그 안의 인물을 믿지 않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스스로 그렇게 자책하듯이 혐오해오던 장르영화(들)를 빠져나오는 방법을 어쩌면 실화에서 구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그렇게 멀리 떠나온 다음 다시 “자신을 점검하기 위해서” 되돌아온 <장군의 아들>에서 조차 김두한이라는 실존 인물을 거의 마지막 방어선처럼 거기 그렇게 배치해놓은 것처럼 보인다. 홍순혜 김진호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 아내 >의 첫 장면에는 “이 영화는 도시 새마을 운동의 기수 홍순혜 여사의 성공사례를 소재로 한 것이다”는 자막이 뜬다. 홍순혜 씨의 이야기는 「억새풀은 시들지 않는다」라는 자서전으로 출판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KBS에서 <억새풀>이라는 제목의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그리고 <아내>가 만들어진 이듬해 홍순혜 씨는 도시 새마을운동 전진대회에서 대통령상 표창을 받기도 하였다. (실화이지만 여기서는 영화로 쫓아간) 홍순혜 씨의 전기의 요약. <아내>가 영화의 무대로 삼은 시간은 그녀의 삶 거의 전부이다. 이야기가 홍순혜의 22살에서 시작하지만 금방 영화는 그녀의 목소리를 타고 과거로 넘어간 다음(flash_back) 태어난 집에서부터 시작한다. 극장 매표직원으로 일하는 홍순혜. 그녀는 지금 막 자신에게 구혼한 남자 김진호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을 설명하는 중이다. 무대화된 영화 안에서의 수행과 행위. 서자의 자식으로 태어나 호적에도 오르지 못했고 배우지도 못해서 학교에서 창문 너머 배우던 시절. 담임선생님의 도움으로 점심 도시락을 먹으며 겨우 손에 쥔 초등학교 졸업장, 끝. 그런 다음 단 한 차례도 물러나지 않고 앞으로(만) 진행되는 이야기. 마치 홍순혜의 삶의 태도에 대한 반영과도 같은 시간의 질서. 김진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녀를 아내로 맞이한다. 김진호는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오는 물건으로 장사를 하고 홍순혜는 쌍둥이 아들과 그 아래로 두 딸을 낳고 어머니와 남동생을 부양하면서 저택에서 마님 소리를 들으며 행복하게 산다. 하지만 김진호는 미군 부대 사업을 그만둔 다음 사기를 당하고 바닥으로 주저앉는다. 하루아침에 시골 달동네로 이사 가야 하는 온 가족. 여전히 큰소리치는 김진호는 집안 살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지 못한다. 홍순혜는 산꼭대기 달동네에서 지게를 지고 물동이를 나르며 동네방네 돌면서 물장사를 시작한다. 그런 다음 구들장을 고치고, 떡 장사를 하고, 공사장에 나가서 남자 인부들처럼 벽돌을 나르고, 그런 와중에 허세의 잘못을 깨우친 남편이 택시 운전기사를 시작하고, 홍순혜는 재봉 학원에서 새롭게 공부한다. 나는 의도적으로 한 문장으로 썼다. 영화는 그렇게 일사천리로 나아간다. 그런 다음 약간의 일시적 정지. 후일담처럼 덧붙여진 우수영화 제도를 위한 이야기 안의 이야기. 거기서 배운 기술과 타고난 근면으로 사업에 성공한 그녀는 옛 달동네에 찾아가 신세타령만 하면서 화투로 소일하는 부인들에게 새로운 일자리의 기회를 열어준다. 말하자면 착한 이야기. 약간의 (사회적) 설명을 덧붙이면 홍순혜의 새마을 사업은 하나의 모델이 되어 1980년대에 가정 파출부 직업으로 발전되었다고 한다. (그런 다음 이 직업은 연변 중국인들, 혹은 필리핀에서 온 외국인 여성노동자들로 다시 대체 되어갔다) 변수는 거의 개입하지 않으며 홍순혜는 앞으로만 나아갈 뿐 실패를 알지 못한다. (우)박동룡 임권택 은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가장 경제적인 방식을 택한다. 디테일은 대부분 홍순혜가 상황이나 내면의 감정을 설명하고 있으며(voice_over_narration) 시퀀스를 대부분 씬으로 압축한 다음 전개하는 대신 배치한다. 물론 이것은 긍정적인 시간의 분배 안에 부정적인 제한을 부여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그 순간 범주들이 도식적으로 제한받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멈추어선 운동. 치워진 흔적. 거기서 우리는 무엇을 보충해야 할까. 게다가 가끔 이 경제성은 < 아내 >에서 의심스러워 보일 때가 있다. 바닥까지 추락한 남편 김진호가 “한탕을 위해서 옛 친구들을 만나”자 친구들이 은밀하게 말을 건넨다. “흑인 존이랑 어디 한번 해보자” 하지만 그런 다음 이 제안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길이 없게 그냥 영화 안에서 사라진다. 이 영화 안에서의 수많은 불안정한 스타 기호의 출몰과 소멸의 한 예. 박동룡 은 (아마도) 오직 이 씬을 위해서 김진호의 생일잔치에 초대받은 친구들 중의 한 사람으로 등장한 다음 내내 영화에서 보이지 않다가 여기서 다시 출연한 다음 마치 영화가 그를 잊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아무런 사건도 없이 또다시 사라진다. 아마도 이 이름이 낯선 당신에게 약간의 소개. 박동룡은 < 돌아온 팔도 사나이 >로 처음 한국영화에 출연한 다음 단 한 번도 조연조차 하지 못하면서 거의 내내 ‘다찌마와리’ 영화와 공포영화에서 자기에게 맡겨진 악한 배역을 떠맡다시피 했다. (박동룡 자신은 인터뷰에서 악역 배우라는 표현 대신 ‘성격파’ 배우라고 불렀다) 그가 남겨놓은 인상은 지나치게 결정적이어서 첫 삼 년 동안 35편의 영화에 악역으로만 출연할 정도였다. (아주 이따금 그가 착한 배역을 맡을 때는, 착하면 착할수록 더욱더, 배신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끝까지 불길하게 남겨 놓았다) 그래서 한국영화에서 박동룡은 등장 자체가 장르적 약속에 따라 악한 기호처럼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하나의 표지. 임권택은 한국영화사 전체에서 달리 예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이야기의 경제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연출자이다. 하지만 일직선으로 진행하고 있는 홍순혜의 이야기 전체로부터 김진호가 탈선할지도 모르는 이 장면을 찍은 다음 만일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왜 (말 그대로) 삭제하지 않고 편집에서 남겨두었는지 알 수 없게 이 에피소드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스스로 소멸해버린다. 무언가 하나의 행위가 어떤 반응을 기대하고 활동했음이 분명한데도 어디에서도 반응이 오지 않고 그저 거기서 마치 우발적인 실수인 것처럼 머물 때 자꾸만 영화 안의 대차대조표를 만들어보게 된다. 설명하기 힘든 잉여. 아무런 반향도 없는 진동. 이런 불균형이 <아내>에는 이상할 정도로 사방에 남아있다. < 서학일대녀 > 하지만 불균형이 < 아내 >에서 부정적인 표시로만 남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서 재표시의 순간과 마주할 때 임권택 안에서 다른 임권택이 시작되는 순간과 마주할 수 있다. 처음에는 그 순간이 너무 갑자기 나타나서 약간 멍한 상태가 된다. 홍순혜가 김진호를 만나서 결혼을 한 다음, 그러니까 홍순혜의 긴 고백이 끝난 다음 다시 한 번 김진호가 청혼을 하자, 그다음 장면은 결혼식 장면 없이, 이미 네 아이를 낳고 다복한 가정을 누리고 있는 씬이다. 임권택은 마치 홍순혜의 행복한 시절에 거의 관심이 없기라도 한 듯 스쳐 지나가 버린다. 그런 다음 김진호가 사기를 당하고 몰락할 때까지 거의 특징 없이 홍순혜의 실화를 장르처럼 다루면서 진행될 때 약간 우스꽝스러워 보이기조차 한다. 그런데 홍순혜가 후암동 저택을 팔고 성북구 송천동 달동네로 이사 온 날, 그날 아침 홍순혜는 물을 동네 저 아래서부터 길어오기 위해 양동이를 들고 주인댁이 있는 이웃집에 간다. 거의 이제까지 진행되었던 방법을 무효로 만들기라도 하듯이 갑자기 카메라는 약간 뒤로 물러난 다음 홍순혜가 부엌에서 나오는 것을 내려다본다. 처음에는 그저 홍순혜와 그의 가족이 살게 될 이 집의 가난한 풍경을 보여주기 위한 장면(master_shot)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녀가 부엌문을 열고 나와서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녀를 따라 카메라가 옆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옆집 아줌마에게 주인댁이 어디 계시냐고 물어본 다음 이웃집에서 다른 아줌마들과 함께 화투를 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언가 생각하다가 대문을 열고 그 집을 나서서 골목 계단 길을 따라 올라간다. 두 개의 선. 홍순혜의 동선과 카메라의 시선. 홍순혜를 놓치지 않기 위해 동선을 따라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면서(pan) 때로는 가상 수평선 위에서 아래로 움직이면서 다가갔다가 다시 물러서면서(zoom_in_and_out) 두 개의 선은 하나가 된다. 그런 다음 그 집 안의 방문을 여는 장면(end_point)까지 따라간다. 느린 팬과 재빠른 줌, 약간의 달리, 조심스러운 틸트의 결합을 통해 이루어낸 이 롱 테이크 장면은 단지 임권택 안의 임권택의 새로운 발견일 뿐만 아니라 임권택 영화 전체 속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쇼트 중의 하나이다. 그 위에 다시 덧쓰기로서의 방법. 그 순간 즉각적인 영화사적인 연상. 명백히 이 장면은 < 서학일대녀 >의 어떤 쇼트를 떠올리게 만든다. 하지만 이때 임권택은 아직 미조구치 겐지의 어떤 영화도 보기 전의 일이다. 나는 어느 순간 임권택이 미조구치 겐지와 거의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결론의 교집합을 이루는 시간은 < 개벽 >에서 끝났다) 그가 언제 이러한 미학에로 이끌렸는지, 그리고 어떤 계기를 통해 이런 방법을 발견했는지는 단정 지어 말하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그런 다음 다시 왜 이 방법을 중단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하기 어렵다) 게다가 <아내>의 첫 시작부터 이 순간에 이를 때까지 이상하게도 전혀 그런 내색을 하지 않는다. 왜 이 영화에 미학적 일관성을 부여하지 않았는지는 누구도 설명하기 어렵다. 혹은 이 동네에 들어서야만 그러한 방법이 가능한 것만 같은 태도를 취한다. S#_1 S#_2 S#_3 S#_4 나는 이 장면을 좀 더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싶다. 홍순혜의 가족이 머무는 이 단칸방 집을 다른 씬의 다른 쇼트에서 방문을 등으로 하여 맞은편을 보면(reverse_shot) 거기엔 마당 말고 다른 것이 없다. 임권택 과 (이 영화를 촬영한) 이석기 는 이 좁은 마당에 짧은 레일을 놓은 다음 줌을 단 카메라를 올려놓고 몇 차례이고 반복해서 홍순혜와 카메라 사이의 동선과 이동을 서로 맞추었을 것이다. 홍순혜는 약속된 선을 따라 움직였겠지만 종종 재빠르게 달리고 있었으며 줌의 범위를 빠져나가기 쉬운 난처한 장소의 블랙홀들이 사방 도처에 자리 잡고 있다. 게다가 가로막은 나뭇가지들. 유감스럽게도 마당이 좁아서 카메라를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 쇼트는 부엌문에서 나온 홍순혜( S#_1), 둘러본 다음 이웃집 아줌마에게 물어보는 홍순혜( S#_2), 무언가 생각하는 홍순혜( S#_3), 대문을 나서서 계단을 따라 올라가서 이웃집에 들어서는 홍순혜( S#_4)를 하나의 쇼트로 찍은 것이다. 물론 디테일을 더 세분해서 나눌 수 있으며 방향과 동선을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인서트가 필요해질 것이다. 혹은 좀 더 단순하게 찍는 방법이 있다. 이 영화는 1.66 비스타비전 사이즈이다. 그러므로 단지 좀 더 물러나면 된다. 그러면 더 넓은 화면을 얻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내 질문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왜 이 장면을 하나의 쇼트로 찍을 필요가 생긴 것일까. 여기서 임권택은 홍순혜를 유심히 바라보고 싶어 한다. 그때 홍순혜의 가장 중요한 순간은 영화적 시간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그래서 마치 방향을 돌아서기 위한 일종의 전환처럼 보이는 잉여로서의 순간인, 그러니까 내가 S#_3이라고 지적한,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하자면, 잠시 멈춰선 홍순혜의 생각의 시간이다. 얼핏 보면 이 장면은 그저 생략해도 괜찮은 순간(dead_time)처럼 보이지만, 혹은 기술적으로만 말하면 동선의 방향을 틀어보기 위한 하나의 전환점으로 보이지만, 만일 그렇게 생각했다면 단순하게 나눠 찍어도 괜찮을 이 장면을 그렇게 공들여서 하나의 쇼트(안의 쇼트)로 만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생각한다, 는 동사의 쇼트. 비가시적인 생각의 행동. 이 순간은 일시적인 정지이며 그런 의미에서 동선 안에서 찍어야 할 필요가 생긴 잉여의 시간(dead_time)이다. 말하자면 임권택은 (그의 영화 전체 안에서) 이 부근 어딘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이 부근 어딘가에서부터 데드 타임을 찍을 필요를 느끼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때 그는 데드 타임의 쇼트를 인서트로 삽입하는 대신 쇼트의 진행 안에서 일종의 푼크툼 같은 효과를 만들어내면서 거기 그렇게 존재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었다. 노엘 버치의 충고. 모든 쇼트는 언제나 맞은편의 쇼트(reverse_shot)와 어떻게 이음매를 만들 것인가(raccord)라는 문제입니다. 그런 다음 그는 좀 더 단정적인 충고를 보충한다. 쇼트 사이의 접합을 논증하는 건 영화에서 진실의 문제입니다.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홍순혜가 이웃집에 도착해서 방문을 열었을 때 두 개의 공간이 만나게 될 것이다. 안과 바깥. 그 사이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아니, 차라리 어떻게 접속시킬 것인가. 하나로 귀속시키는 조형력, 서로 간의 사이에서 도식적이지는 않지만 하나의 통일된 힘.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피하려는 원칙. 여기서 임권택 은 공간을 펼쳐놓은 다음 홍순혜로 하여금 그 안의 굴곡 사이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지나쳐서 목표에 가 닿도록 이끈 다음 방안에 들어서면 그녀가 바라보는 거기 앉아있는 사람들은 화면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약간의 원을 이루면서 수평으로 앉아있다. 이때 이들이 원형으로 보이는 것은 몸과 머리를 분리한 다음 앉아있는 자세와 시선을 두 개의 방향으로 서로 다르게 연결시켜 놓은 일종의 착시효과이다. 물론 여기서 그렇게 펼쳐놓은 인물의 미장센을 처음 사용한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는 이 구도를 < 망부석 >에서도 보았다. 그리고 임권택은 이 방법을 (아마도 유일한 스승인) 정창화에게서 가져왔(을 것이)다. 방점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때 여기까지 홍순혜를 이끈 바로 그 힘, 우리들이 방금 바라보았던 갑작스러운 일시적인 정지라는 반응에 대해서, 롱 테이크를 통해서 이 모든 것을 성립시킬 수밖에 없었던 데드 타임 안의 동작에 대해서, 다음 씬에서는 대사에 의해서건, 제스처를 통해서건, 드라마를 이용해서건, 이웃집 방문을 열고 나면 반응해야 한다. 그런데 그때 홍순혜는 어떤 방법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미소를(close_up) 짓는다. 임권택은 이 장면을 그저 지나쳐가도 되는데도 불구하고 구태여 커다란 얼굴의 쇼트로 다시 보여준다. 별다른 동작도 없이 그저 얼굴 가득히 소리 없는 웃음을 짓는 표정만이 그 전부이다. 편집의 기술이라는 관점에서만 다가간다면 여기서 시간은 잠시 중단되고 일종의 과잉된 여백의 상태가 된다. 이 장면이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앞으로, 단 한 순간도 물러나지 않고, 잠시의 틈도 없이, 진행되던 리듬 바깥으로 빠져나오면서 더 인상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그건 결코 이웃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가 아니며, 그렇다고 (부자 동네로부터 가난한 달동네로 추락한 다음 여전히 마님처럼 보이는 그녀를 향해서 이웃들이 보이던 적대감에 대해서) 그녀가 내보이는 (항복하는 것만 같은) 위장의 표시는 더더욱 아니며, 그녀 자신이 짓는 (일시적인) 만족의 표현도 아니다. 이 표정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통과할 수 없는 불투명성. 그리고 그것이 핵심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렵게 초등학교를 마치고 극장 매표원이 된 다음 지금의 남편을 만나 일시적으로 안정된 경제적 환경에서 살았지만 여기까지 홍순혜는 아직까지 (네 아이의 엄마이자 김진호의 아내) 홍순혜일 뿐이다. 그러나 달동네에 온 첫날 홍순혜는 마치 새마을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갑자기 새로운 태도를 획득한다. 나는 당신에게 이 장면이 홍순혜가 달동네로 온 첫날이라는 사실을 한 번 더 일깨우고 싶다. 첫날, 새 아침. 여기에 도착하자 문득 그녀는 새로운 주체가 된다. 여기에는 홍순혜에게 던져지는 어떤 질문도 없었다. 조건이 주어지자 그렇게 된다. 그런 다음 그냥 그 자리가 비어있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 간다는 듯이 홍순혜는 새마을 지도자로 가는 길의 첫걸음을 아무 망설임 없이 받아들인다. 거기에 없는 전체 안의 과정. 그러므로 그녀가 왜 이런 깨달음을 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원인을 우리는 알 수 없다. 마치 실존적 깨달음처럼 주어진 새마을 지도자로서의 새로운 삶. 이 결정적인 첫날의 첫 번째 깨달음을 보여주는 것만 같은 일시적인 정지의 생각하는 순간이라는 시간을 찍은 다음 그 공명현상처럼 자리한 쇼트의 자리에서 홍순혜의 커다란 표정으로 짓는 웃음을 찍을 때 임권택은 새마을 운동의 지도자라는 자리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만큼 뒤로 물러난다. 왜 당신은 그렇게 희생적인 자리에 가려고 하나요? 무엇이 당신을 불렀나요? 거기서 무엇을 얻으려 하는 것인가요? 그런데 그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요? 그런 다음 이렇게 기괴한 웃음을 짓는 홍순혜의 표정을 몇 차례이고 반복해서 보여준다. 거의 마지못해 임권택은 웃음 짓는 홍순혜가 작은 부처님의 상을 모시는 장면을 찍기는 하지만, 그래서 그녀의 얼굴에서 부처님의 얼굴을 보는 것만 같은 알리바이를 전시하지만, 홍순혜의 이어지는 행위는 불가의 가르침에 따르는 그 어떤 연상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그러면 그럴수록 더 기괴해 보일 뿐이다. 이야기는 투명한 데 인물의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주체의 과정은 정반대로 그만큼 불투명하다. 좀 이상한 말이긴 하지만 임권택 과 홍순혜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어떤 간극의 심연이 존재하고 있다. 이때 < 아내 >는 드라마이긴 하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이 영화를 임권택이 찍고 있었을 때 새마을 지도자로서의 홍순혜의 활동은 현재진행형이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이 영화가 개봉한 이듬해 홍순혜는 대통령상을 표창받았다) <아내>가 다루는 이야기는 홍순혜가 새마을 지도자가 된다, 라는 단 하나의 진술로 환원되지만 여기에는 임권택의 어떤 포기가 있다. 포기? 그렇다. 그래서 이 영화는 임권택의 모든 영화 중에서 가장 밝은 톤을 유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거기서 마주치는 간극 안에서 점점 더 음울한 희생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기 시작한다. 네 명의 아이들은 어려서 시작해서 십 대를 지나도록 어머니 홍순혜의 활동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그녀의 성공에 어떤 한순간에도 방해가 되기를 원치 않기라도 하듯이 행동한다. 심지어 이 아이들이 십 대에 들어선 이후에는 영화에서 거의 사라져버린 다음 이따금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라는 인사를 아침마다 씩씩하게 하기 위해서 등장할 뿐이다. 남편 김진호는 홍순혜가 자기 몰래 공사장에서 벽돌 나르는 모습을 본 이후 개과천선을 한다. 드라마의 상투적인 반전. 그런데 그런 다음 김진호는 이야기에서 완전히 외곽으로 밀려나기 시작한다. 단지 이것을 가정에서 (경제적) 힘의 새로운 분배에 따른 재배치라고 설명하기에는 이상할 정도로 남편은 거의 사라진다. 홍순혜의 가정이 몹시 행복해 보이기는 하지만 이 평면적인 외양은 내게 홍순혜의 알 수 없는 미소처럼 보인다. 아마 임권택 도 같은 생각을 한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래서 이따금 이 단조로운 평면을 뚫고 나오는 흔적들은 여기에 종종 왜상(anamorphosis)의 순간들과 마주치게 만든다. 이야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남편은 힘든 하루 일과를 끝내고 집에 돌아온다. 집은 아줌마들로 가득 차 넘치면서 재봉틀과 씨름을 하며 넘쳐나는 일감에 돈 버는 재미로 밤 깊은 줄 모른다. 이때 임권택의 관심은 오랜만에 남편에게로 향한다. 그때 김진호는 마치 남의 집에 오기라도 한 것처럼 장모가 열어주는 대문 사이로 들어선 다음 거의 조심스러운 자세로 들어선다. 여기서 내가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남편 김진호가 마루에 들어섰을 때 일하는 아줌마들 중에서 아무도 그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위계질서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매일처럼 마주쳤을 그들 사이에서 왜 아무런 인사가 없을까. 그건 김진호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많은 그녀들. 차라리 우글거린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넘쳐나는 아줌마들. 그녀들은 깔깔대고 웃으면서 신바람이 나 있지만 정확하게 그만큼 김진호는 그녀들 바깥에 놓여있다. 이 층에 올라서서 눈이 마주쳤을 때야 비로소 이 층의 그녀들은 그에게 인사를 하지만 곧 시선을 돌리고 일감에 매달린다. 김진호는 구태여 계단을 따라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가 홍순혜를 구석으로 부른 다음 이제 우리들의 가정생활을 가질 때도 되지 않았냐고 말한다. 하지만 홍순혜는 더 기다려달라고 대답한다. 둘 사이의 대화는 너무 상투적이어서 거의 귀 기울이지 않게 된다. 그러나 이 장면은 완전히 대화 바깥으로 빠져나와서 상투성 자체를 동요하게 만든다. 동시적인 두 개의 장면. 먼저 홍순혜가 김진호의 요구에 대답하는 장면. 분명히 김진호가 질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홍순혜는 대답하는 순간 마주 보던 몸을 돌린 다음 자신의 대답이 끝날 때까지 마치 그의 요구에 대한 거절을 몸으로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그렇게 약간 웅변하는 것처럼 말한다. 여기에는 어떤 이해도 없다. 또한 둘 사이에서 가능한 일말의 해결도 없다. 홍순혜의 선택은 그렇게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여기서 홍순혜가 대화를 시작하는 순간을 독백으로 바꿔칠 때 여기에는 임권택의 포기가 있다. 그러나 이 장면을 도착적으로 읽는 방법이 가능하다. 이상하게도 이 장면은 홍순혜와 김진호를 벽 옆에 세워 놓은 다음 카메라를 마름모꼴로 세웠다. 물론 이 위치는 홍순혜가 김진호에게 대답(하는 척하면서 독백을)하기 위해 몸을 돌리는 순간 얼굴을 보기 위한 자리이다. 하지만 동시에 여기서 홍순혜와 김진호의 그림자가 마치 정말 보여주고 싶은 진짜 모습이기라도 한 것처럼 벽에 비쳐 보인다. 이때 이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포옹을 하고 키스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것은 위험한 해석이다. 과잉진술에는 언제나 어딘가 외설적인 느낌이 든다. 그러므로 나는 이 말을 몇 번이고 망설였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임권택이 바라는 두 사람 사이의 진실한 행위가 아닐까. 전체의 배치 속에서 괄호를 치는 것은 내기를 하는 것이다. 나는 임권택 의 영화 중에서 새마을 영화들이 (볼 때마다 점점 더) 매우 이상한 위치에 속해 있다는 생각을 참을 수 없게 된다. 단지 제도에 한정 지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 ‘거장’ 임권택을 이야기하다 말고 이 자리에 오면 슬그머니 피해버린다. (아마 본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 아내 >가 < 왕십리 >와 같은 해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비평을 불편하게 만든다. 지레짐작을 하고 ‘이 시기의’ 임권택은 어쩔 수 없이 이 영화(들)를 만들었을 것이라고 미리 방어선을치기도한다. < 족보 >와 < 짝코 >가 우수영화였다는 사실을 떠올려주기 바란다. 임권택 자신은 “우수영화로만 선정되면 되니까 그저 제작자 눈치 보지 않고 관객들 신경 쓸 필요도 없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해볼 수 있었던 좋은 시절”이었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 아내 >에서는 “하고 싶은” 무엇을 “해 본” 것일까. 그 무엇이라는 모순의 미지수.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이 세 편의 영화, < 아내들의 행진 >과 < 옥례기 >, 그리고 <아내>를 보고 있으면 그 안에서 거의 와해 직전까지 간 다음 불화를 무릅쓰고 갑자기 거기서 무언가 환상의 쾌락을 누리려는 듯한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나는 이게 볼 때마다 몹시 이상하게 보인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잠시만 <아내>의 소재를 옆으로 치운다면, 그래서 그저 하나의 드라마로써 다가가 본다면, 아아, 라고 탄식할 정도로 이 영화에는 임권택 영화로서 보기 드물게 행복한 순간들이 과도할 정도로 끊임없이 이어져 나온다. 그게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어서 그 자체를 임권택이 잠시라도 망치기를 원치 않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물론 (이미 우리가 본 것처럼)임권택은 결코 홍순혜에게 단 한 순간도 동일화의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그렇다면 거기서 무얼 얻고 싶어 하는 것일까. 나는 용기를 내서 말하고 싶다. 여기에는 행복에 대한 도착적 기쁨의 왕국이 기다리고 있다. 만일 그걸 내어줄 수 있다면 모든 고난을 감수해야 할 지도 모르는 희생을 치를 용의가 있다는 대답이 거기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쳐다보아도 괜찮은 것일까. 임권택은 이 순간 두 개의 시선 사이의 간극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다. 아니 차라리 찢어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여기에는 이야기 안에서 오가는 시선과 이야기를 쳐다보는 시선이 완전히 다른 차원에 서로를 내맡기고 각자의 시선을 갖기 시작한다. 여기서 희생하는 이야기의 주인공은 주체로서의 자기의 자리를 잃고 불투명한 타자의 질서에로 밀려나는 반면 주인공의 행동을 쳐다보는 시선은 우리를 위해 봉사하는 대신 마치 그것이 자기의 기쁨이기라도 한 양 반대로 타자의 질서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척한다. 그때 기쁨과 희생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임권택의 새마을 영화(들)는 그렇게 매번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 무엇을 위해서? 어디를 향해서?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임권택은 여기서 비로소 임권택이 된다. 그렇지만 여기 머물고 있는 두 명의 임권택. 영화 안에서 무언가 서로 다른 목소리가 웅성거릴 때 우리는 어느 쪽도 포기하면 안 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핵심을 찾으려면 안 된다. 반대로 우리를 무질서에 내맡겨야 한다. 어디선가 중얼거리는 속삭임들이 들려온다. 여러 명의 소리. 기꺼이 질문의 카오스 속에서 부서질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 나는 재난을 환대한다. (계속) 1976년 99분 컬러 1.66 감독 임권택 우진필림 각본 문상훈 , 박철민 촬영 이석기 조명 차정남 편집 김창순 음악 정인섭 태현실 ... 홍순혜 박근형 ... 김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