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스톤의 킬러
- 감독
- 올리버 스톤
- 제작년도
- 1994
- 출연
- 우디 해럴슨, 줄리엣 루이스, 톰 시즈모어, 자레드 해리스, 러셀 민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커크 발츠, 토미 리 존스, 글렌 친, 스티븐 라이트, 로버트 스완, 제임스 가먼, 로드니 데인저필드, 에디 맥크러그, 오-란 존스, 멜린다 레나
그날도 여느 날과 같았다. 마을 수영장에 간 과체중의 사라를 친구들이 놀린다. 지독한 말로 조롱하고, 물에 들어간 사라를 뜰채로 괴롭힌다. 한때는 가깝게 지냈던 클라우디아도 수동적으로 가담한다. 그들은 옷과 휴대폰이 들어있는 사라의 가방을 가져간다. 사라는 수영복 차림으로 집까지 걸어가야 한다. 그런데 사건이 생긴다. 한적한 도로에 멈춰 있던 밴이 걸어가던 사라를 지나쳐 간다. 밴의 뒷 창문에 누군가의 손이 올라온다. 피묻은 손이 멈추고, 클라우디아의 얼굴이 비친다. 도와달라고 소리 지른다. 사라는 얼어붙는다. 보고만 있다. 밴의 운전석에 앉은 남자는 사라를 지켜보고, 눈이 마주친다. 남자는 사라의 가방을 남겨두고 그대로 가버린다. 여기까지가 카를로타 페레다가 2018년에 연출한 단편 <피기>(Cergita)의 내용이다. 페레다는 2022년, 단편을 각색하여 장편 < 피기 >를 만들었다. 단편의 내용은 심플하지만, 생각할 거리가 넘친다. 사라를 놀리던 아이들은 벌을 받아야 마땅한 것일까? 범죄를 보고도 못 본 척하는 사라는 정당할까? 아마도 남자는, 사라가 괴롭힘 당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이 납치의 이유일 수도 있다. 남자의 범죄는 이해할만한 여지가 있는 것일까? 가방을 집어 든 사라는 범죄자인 남자와 공감대를 형성한 것일까? 아이디어로 충분한 단편과 달리 장편은 캐릭터에도, 사건에도 설명을 해줘야 한다. 장편 <피기>는 사라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정육점 장면으로 시작한다. 고기를 썰고 다지고, 소시지를 만든다. 인간이 먹기 위해 존재하는 동물의 고기들을 다루는 곳이다. 정육점에 앉아 공부를 하는 사라의 시선에는 거리에서 날씬하고 멋진 남녀들이 어울리는 모습이 보인다. 사라는 절대 낄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다. 또래들은 사라를 보면 돼지, 미스 베이컨이라 놀려댄다. 또래에게 사라는 살찌고 못생긴 ‘고기’일 뿐이다. 아이들이 조롱한다는 사실을 안 엄마는 당장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며 사라에게 채식을 강요한다. 모두가 모두를 알고 있는 작은 마을. 그곳에서 사라는 집 밖을 나가는 것조차 두렵다. 눌리고 눌려서, 터져버릴 것만 같다. 혐오가 시대정신이 되어버린 요즘, <피기>의 사라는 폭력의 박스에 갇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온라인도 위험하다. 또래들은 정육점에 있는 사라의 가족을 촬영하고 ‘아기 돼지 삼형제’ 태그를 붙여 온라인에 올린다. SNS는 도피의 공간이 아니라 더욱 지독한 혐오의 난장판이다. 현실에도, 온라인에도 도망칠 곳이 없는 사라에게 낯선 남자의 출현은 일종의 판타지로 작용한다. 남자가 친구들을 납치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사라는 두려워한다. 꼼짝할 수 없고, 소리도 못 지른다. 겁에 질린 사라를 보면서 남자는 고민했을 것이다. 남자의 선택은 일종의 믿음이다. 남자는 친구들이 사라를 괴롭히는 것을 목격했고, 사라가 쉽게 그들의 편을 들지 못할 것이라고 믿었다. 사라의 마음은 한층 복잡하다. 작은 마을에서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친구들. 그러나 한때 친했던 친구조차 지금은 사라를 조롱하는 놀이에 가담한다. 누군가를 괴롭히는 것은, 그들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한쪽 편이 되지 않으면, 누구라도 밀려날 수 있다. 당하는 사라의 입장에서는 세상 자체가 지옥이다. 어디로도 갈 곳이 없다. 막막함 뿐이던 순간에 남자는 사라에게 해방을 안겨주었다. 지독하게 사라를 조롱하는 마카와 친구들을 납치했고, 아마도 죽일 테니까. 낯선 남자도, 사라도 마을의 이방인이다. 외부인이거나, 마을에서 따돌림당하는 존재다. 사라는 헤드폰을 끼고, 이불을 머리 위까지 끌어올리고 핸드폰으로 야한 동영상을 본다. 그 남자를 생각한다. 어쩌면 그는 나를 구원해줄 왕자님일지도 몰라. <피기>는 동화적 은유로 사라와 남자의 미묘한 관계를 드러낸다. 사악한 약탈자이지만, 뒤틀린 시스템을 부숴버릴지도 모르는 이방인. 한밤에 가방을 찾으러 숲으로 간 사라는 남자와 마주친다. 아이들을 찾으러 온 부모들이 숲을 헤매자, 사라와 남자는 구석진 곳에 몸을 피한다. 남자와 사라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숨을 죽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혹시 키스라도 하는 것이 아닐까, 두려워진다. 남자는 정말로 사라를 폭력적인 공동체에서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일까? 마을 사람들은 사라에게 아무 관심이 없었다. 어른들은 무시하며 방관하고, 아이들은 조롱하고 폭력을 가했다. 사라가 수영장에 갔다는 것을 안 경찰과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도움을 요청한다. 클라우디아의 남자친구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의심을 풀기 위해, 사라가 증언해달라고 부탁한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존재는, 그들이 필요할 때만 인식된다. 무사히 아이들이 돌아온다면, 모든 상황은 똑같아질 것이다. 무시하고, 조롱하고, 폭력을 가할 것이다. 그러니 피기의 마음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남자는 사라의 주변을 맴돈다. 사라가 좋아하는 사탕을 사서 침대에 올려놓는다. 사라를 조롱하는 남자들을 차로 밀어버린다. 남자의 본성이 무엇이건, 지금 남자는 사라를 바라보고, 무엇인가를 주고 있다. <피기>의 후반부, 피폐한 건물에서 벌어지는 장면들은 1970년대 유럽풍 그라인드하우스 영화를 연상시킨다. 거칠고 잔인한 폭력은 그대로 노출된다. 사라의 액션이 대단하지 않을 것임은 예상할 수 있었지만, 상상 이상으로 후반부 <피기>의 긴장감이 탁월했다. 학교와 가정에서 끔찍한 조롱과 폭력을 당하던 캐리, 스티븐 킹 원작이고 브라이언 드 팔마가 연출한 < 캐리 >(Carrie, 1976)의 주인공은 초자연적인 힘으로 조롱하던 친구들을 모두 죽여버린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시나리오를 올리버 스톤 스타일로 연출한 < 내츄럴 본 킬러 >(Natural Born Killers, 1995)에서 맬로리는 폭력에서 자신을 구원해준 범죄자 믹키의 폭력에 기꺼이 동참한다. 밤중에 벌어진 사라와 남자의 기묘한 행각을 보고 나면, 궁금해진다. 사라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만약에 복수를 한다면, 누구에게 할 것인가. 일상의 폭력을 저지른 친구들과 마을 사람들? 사람을 몇 명이나 죽인 낯선 남자? 무엇을 택하건, 딜레마다, <피기>의 포스터는 온몸에 피가 잔뜩 묻은 사라가 길 위에 서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과체중의 사라는 포스터를 가득 메우고 있다. 압박감이 느껴진다. 사라의 과체중 때문일까? 피 묻은 사라의 모습이 낯설기 때문일까? 사라는 슬래셔영화의 공식인 ‘최후의 그녀’와는 많이 다른 캐릭터다. 최후에 살아남은 것은 사라 혼자가 아닐뿐더러 사라는 어쩌면 공범일 수도 있다. 처음부터 범죄를 같이 하지는 않았지만, 방조하고 은폐했다. 사라의 도덕적 딜레마는 최후의 최후까지 그녀를 괴롭힌다. <피기>는 쉽지 않은 질문을 마지막까지 유지한다. 페레다는 사라가 근본적으로 공동체를 거부하거나 파괴하는 지점으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결국 <피기>는 안전한 선택을 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사라의 입장에서 본다면 당연한 선택이기도 하다. < X >와 < 펄 >의 주인공 펄은 욕망이 좌절되면서 모든 것을 파괴하는 선택을 한다. 펄은 되찾아야 할 것이 있었고, 살인을 통해서 대리만족한다. 사라에게는 판타지적 욕망이 존재할 뿐이다. 완벽하게 망상에 빠지기에 <피기>의 세계는 상식적이다. <피기>에서 그려지는 마을과 주변 사람들의 행동은 평이하다. 애초에 <피기>는 아주 극단적인 상황으로 사라를 몰아가지 않는다. 현실적인 고난을 겪고, 상식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다. <피기>는 영리하면서, 꽤나 파괴적인 영화다.
조용한 기사 “처음 그를 보았을 때 그는 매우 점잖고 조용한 사람이었어요. 매력적이었지만 눈에 띄지 않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이런 의구심이 들더군요. 그가 과연 이 스태프들을 지휘할 수 있을까?“ 배우 가브리엘 번이 켄 로치를 처음 만난 건 1987년에 상연될 예정이었던 연극 <퍼디션>의 리허설 현장이었다. 주로 올리버 스톤처럼 패기와 카리스마 넘치는 감독들과 함께했던 그에게 켄 로치는 감독의 역량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차분하고 조용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인상이 ‘경이로움’으로 바뀌게 된 건 연극 <퍼디션>이 논란에 휩싸이면서부터였다. 켄 로치와 오랫동안 함께 작업했던 사회주의 극작가 짐 알렌의 대본을 바탕으로 연출된 이 작품은 유대인 시오니스트 지도부가 나치의 아이히만과 협력 관계였음을 폭로하고 논쟁하는 재판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연극이 무대에 오르기도 전부터 언론과 예술계 일각에서는 켄 로치와 짐 알렌을 반유대주의자로 몰아세우기 시작했고 작품의 정치성을 문제 삼았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제작자와 극장 측은 첫 공연을 불과 30여 시간 앞둔 상황에서 제작 철회를 선언해 버린다. 가브리엘 번이 켄 로치를 다시금 인식하게 된 것은 엄청난 비난과 여론 압박, 제작자와의 격론에 대응하는 그를 지켜보는 과정에서였다. 연극을 둘러싸고 많은 이들이 비겁한 겁쟁이가 되거나 배신자가 되었다. 결국 연극이 제작자들에 의해 철회되는 상황에 이르렀지만 켄 로치는 침착하고 조용하되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그는 조용한 기사와도 같았다. Versus “위대한 투사 vs 혐오스러운 영화를 만드는 감독” “리얼리즘의 대가 vs 미친 맑시스트” “천재 vs 비열한 자” 영국 사회에서 켄 로치는 언제나 논란의 대상이었다. 60년대 BBC에 입사해 방송용 드라마와 다큐멘터리를 연출하던 시기에서부터 그는 혁신가였다. 부르주아 드라마와 관습적인 세트 촬영이 관행이었던 당시 그는 BBC 내에서 유일하게 영화적인 기법(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정신과 방법 그리고 브레히트적인 스타일의 거리 두기와 관찰)을 방송 드라마에 적용한 감독이었다. 무엇보다도 누구도 관심두지 않았고 묘사하거나 재현하지 않았던 노동계급의 삶과 사랑, 노동과 현실을 카메라에 포착하기 시작했다. 노동계급 여성의 출산과 육아, 홈리스 문제를 다큐멘터리 적인 방식으로 극화한 <캐시 컴 홈 Cathy Come Home>(1966)은 방영과 함께 논란을 일으켰다. 영국 노동계급이 직면한 사회적인 이슈를 BBC에서 직접 화법으로 다뤘다는 사실 그 자체와 그로 인한 놀라운 시청률 및 여론은 결국 한 편의 드라마가 영국 사회의 제도와 정책에 개입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켄 로치의 초창기 작품들을 도맡아 제작한 제작자 토니 가넷이 그를 만난 것도 이 시기 즈음이었다. 토니 가넷도 처음엔 켄 로치의 작품에 출현하는 배우였다. 가브리엘 번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토니 가넷에게도 켄 로치의 첫인상은 지루했다. “마치 은행원 같았다. 별로 인상적이지 않았다는 것이 그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그러나 몹시 수줍고 조용하며 겸손한 이 사람은 매번 논쟁과 파란을 일으켰고, 영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노동계급 출신이었던 켄 로치의 아버지는 명민하고 공부 잘하는 아들이 옥스퍼드 법학과를 졸업했으니 엘리트 법조인이 되길 바랐으나 그는 이미 청소년기부터 연극과 연기에 매료되어 있었다. 대학 시절부터 직접 무대에 올라 연기를 했고, 졸업 후에는 방송국 연출자로 시작해 BBC의 부르주아적 관행과 제도 그리고 영국 사회의 검열 및 보수주의와 맞서 싸워야 했다. 1979년 신자유주의의 화신, 대처가 장기 집권을 시작하면서 그는 더욱 궁지로 몰렸다. 토니 가넷 및 짐 알렌과 함께 했던 일련의 다큐멘터리들이 검열 및 정치적 편향성 논쟁에 휘말리면서 방영 금지에 처하곤 하였다. 특히 <리더십의 문제 A Question of Leadership>(1981)에서 노동자 계급을 배신한 노조 간부들의 문제를 다루면서 좌파 진영 내에서도 격렬한 토론을 벌였다. 대처가 검열을 강화하면서 BBC는 더욱 보수화되었고 그는 대처가 물러난 90년까지 제작에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더구나 87년에 준비했던 연극 <퍼디션>이 제작 중단되면서 그는 암묵적 실업자가 되고 말았다. 아무도 그와 작업하려 하지 않았다. 이 시기 그는 가족을 위해 맥도날드 햄버거를 비롯한 몇 편의 상업 광고를 찍게 된다. 켄 로치는 이 시기를 “사회주의 이념에 대한 배신행위”라고 소회를 밝힌다. 그가 극영화로 복귀한 것은 대처가 물러난 90년이었다. 영국과 아일랜드의 오랜 지배 종속의 문제, 정치적 계략의 문제를 인권 변호사 주인공을 통해 풀어낸 < 숨겨진 계략 Hidden Agenda >이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게 되지만 정작 영국 내 여론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다시금 아일랜드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 <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으로 2006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그리고 은퇴작인 < 지미스 홀 >이 또다시 아일랜드 문제를 지배자의 관점이 아니라 피지배자의 저항과 사회주의자의 관점으로 풀어냈을 때 영국 언론은 그를 자기 조국을 증오하는 미친 맑시스트로 폄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6년, 영국 복지제도의 허점을 다룬 < 나, 다니엘 블레이크 >가 칸 영화제에서 또다시 황금종려상을 받자 영국 보수당은 의회에서 그를 영국 사회에 먹칠하는 반역자로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영화와 정치 그리고 켄 로치 “누군가의 삶을 영화로 만든다는 것의 핵심은 정치학입니다. 사람들의 삶의 드라마와 갈등의 핵심에는 언제나 정치가 존재합니다.” BBC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 켄 로치의 삶과 영화 >(2016)는 그의 개인사와 영화 역사를 교차편집하는 방식으로 인간 켄 로치를 조명한다. 영화계 일각에서 그는 세계적인 거장으로 추앙받지만 영국 사회 내에서, 심지어 좌파 진영 내에서조차 그는 언제나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조국의 문제(영국인으로서 아일랜드 문제를 다루는 방식), 계급의 문제, 신자유주의와 복지제도의 문제. 그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논란과 논쟁을 기꺼이 감내하면서 50년이 넘는 영화 인생을 버텨왔다. 영국 미디어 연구자 존 힐은 그의 모든 작품이 논란의 대상이 된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영국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그러나 이 다큐멘터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켄 로치의 작품활동과 영화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지만은 않는다. 이 영화는 그의 지난한 영화적 삶 속에 공존하는 인간 켄 로치의 모습을 포착한다. 노동계급의 아들로 태어나 그 명민함으로 인해 상류층의 주된 교육기관인 옥스퍼드 법대에 진학하기까지, 젠틀하고 조용하지만 그가 어떻게 굴복하지 않고 후퇴하지 않는 고결한 사회주의 액티비스트 감독으로 존재해 왔는지, 무엇보다도 자식을 잃어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슬픈 아버지였는지, 이 영화는 그의 오랜 동료와 가족들의 입을 빌려 들려준다. 이 작품은 켄 로치가 영화 < 나, 다니엘 블레이크 >를 연출하던 그 무렵에 촬영되기 시작하였다. 2014년작 < 지미스 홀 >로 은퇴선언을 한지 2년 만이었다. 영화 현장에 들어설 때마다 거대한 산을 넘어야 하는 압박감을 느낀다는 그가, 다시금 은퇴를 번복하고 추운 현장으로 복귀한 것이다. 제작자 토니 가넷은 그가 분노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영국 사회의 신자유주의, 긴축 재정과 복지제도 축소가 영국 노동계급의 삶을 나락으로 몰아넣는 상황 속에서 그는 분노하고 있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공감과 연민, 잘못된 제도와 위정자들에 대한 분노. 그것이 그를 현장으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그와 최근 20년 동안 함께 작업해온 시나리오 작가 폴 라버티는 그를 이렇게 비유한다. “지난 50년의 영화 인생에서 그에게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요소는 정치의 문제였다. 피상적인 문제로서가 아니라 현실의 이슈로서 그러하다. 그의 작고 마른 몸 안에서 불타오르는 열정과 에너지가 그것을 이끌었다. 그는 그 열정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 그에게 던져진 마지막 질문.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투쟁하는 삶의 한 가운데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마치 무수하게 커다란 목소리들 사이에서 작은 목소리를 내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그것이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를 질문한다면,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자신에게 부여된 ‘작가주의’ 타이틀을 거부하며, 영화는 집단 노동의 결실이라 말하는 그는 자신의 영화가 어떠한 성취를 해 왔는가에 대해서도 겸손하게 응답한다. 그러나 토니 가넷과 폴 라버티, 그리고 그의 가족들이 증언하는 것처럼, 그리고 무엇보다 기나긴 그의 필모그라피가 직접 보여주는 것처럼, 그는 타협하거나 멈춰서지 않으며, 굴복하지 않는다. 그의 모든 영화들 속 주인공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특히 그의 은퇴작으로 소개됐던 < 지미스 홀 >의 주인공 지미 그랄튼이 그러했던 것처럼, 가난한 노동자들을 연민하고 연대할 줄 아는 예술가이자 액티비스트인채로 말이다.
1986년 제임스 호너는 이제 막 영화음악가로서 한창 꽃을 피우고 있는 시기였다. 70년대 전반에 걸쳐 UCLA에서 영화음악을 가르치던 그는 종종 미국영화협회의 의뢰를 받아 독립영화들의 음악을 작곡하며 이론보단 실제 작업에 더 큰 매력을 느꼈는데, 결국 가르치던 것을 그만두고 로저 코만의 도움을 얻어 B급 영화 <심해의 공포 Humanoids from the Deep>와 <우주의 7인 Battle Beyond The Stars>을 통해 상업영화에 데뷔하게 된다. 두 영화에서 각각 그 시절 유행하던 두 스타일, 조르지오 모르도와 반젤리스로 압축되던 전자음악과 존 윌리엄스와 제리 골드스미스로 대표되던 대규모 관현악 사운드, 모두 훌륭하게 들려준 바 있는 이 늦깎이 신인을 주목한 건 당연지사. 웨스 크레이븐의 초기작 <악령의 리사>와 올리버 스톤의 <악마의 손> <늑대인간의 습격> 등 다양한 저예산 장르물들을 통해 노련한 감각과 대담한 시도들을 펼쳐 보이며 실력을 인정받는다. 메이저의 발판에 올라서게 된 건 프랜차이즈 SF < 스타트렉 >의 속편과 월터 힐 감독의 액션 코미디 < 48시간 >이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하면서부터. 디즈니는 베테랑 영화음악가 조르쥬 들르뤼와 앨머 번스타인이 음악을 맡았던(그러나 해고된) <이상한 실종 Something Wicked This Way Comes>과 <머나먼 시애틀>에 제임스 호너를 대타로 내세우며 그의 실력에 깊은 신뢰감을 보냈고, 이후 < 코쿤 >과 < 코만도 > 등 잇따른 흥행작들을 담당하며 주가가 오르기 시작한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처음으로 제작한 애니메이션 < 피블의 모험 An American Tail >과 세계적인 지성 움베르토 에코의 베스트셀러를 기반으로 제작된 다국적 프로젝트 < 장미의 이름 >을 앞둔 1986년은 제임스 호너에게 분명 또 다른 분기점이 될 것이 분명했다. 아, 그리고 또 한 작품. 20세기폭스가 7년 만에 속편 제작에 나선 < 에이리언 2 >의 음악도 그의 몫이었다. 제임스 호너 녹음을 위해 영국 땅에 내렸을 때만 해도 호너는 부푼 꿈과 희망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영국은 유년시절 왕립음악학교에 다니며 음악을 배우던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었고, 이미 1983년 <브레인스톰>과 < 혹성의 위기 >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SO)와 협연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딱히 어려울 것도 없었다. 더욱이 제임스 카메론과는 앞서 로저 코만이 제작한 영화 <우주의 7인>에서 미술과 음악으로 만난 바 있기에 소통에도 문제가 없으리라 여겼다. 이는 호너의 오판이었다. <에이리언 2>의 작업은 지옥과도 같았으며, 일생일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을 치욕과도 같은 환경이었다. 영화의 개봉일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지만 그에게 전달된 촬영분은 전무했다. 작업에 6주면 충분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3주가 지나도 촬영은 끝나지 않았고, 편집도 이뤄지지 않았다. 제작자인 게일 앤 허드는 어쩔 수 없이 오케스트라를 먼저 섭외했다. 기다리는 동안 호너는 촬영장과 편집실을 다니며 분위기를 익혀 곡을 쓰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편집이 덜 끝나 전체적으로 화면 분량에 정확히 맞추는 게 불가능했다. 더군다나 녹음이 이뤄질 애비로드 스튜디오는 당시 워낙 노후된 장비들로 차 있어서 전자음마저 제대로 구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시간에 쫓긴 호너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곡을 쓰고 연주해야 한다고 성토했고, 녹음 하루 전날엔 한 시퀀스가 통째로 편집이 바뀌어 36시간 동안 다시 작업을 해야 했다. 곡에 대한 의견 차이로 호너와 카메론은 수없이 다퉜고, 더 완벽한 사람을 찾아보겠다는 감독의 말에 그만두겠다며 강경하게 응수했다. 결국 호너의 곡은 의도와 상관없이 누더기로 마구 재단되고 반려당하며 삭제되었고, 그는 두 번 다시 제임스 카메론과 작업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호너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음악상에 처음 노미네이트되었지만,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에이리언 2 여러모로 제임스 호너의 <에일리언 2>는 제리 골드스미스가 음악을 맡은 전편 < 에이리언 >과 닮았다. 고딕적인 호러 분위기를 물씬 풍겼던 1편과 달리 밀리터리 액션 음악에 가까웠던 후속편이지만, 두 작품 다 영화상에서 스코어가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다. 1편의 감독이었던 리들리 스콧과 편집자인 테리 로링스는 제리의 스코어가 너무 빽빽하다고 생각했고, 좀 더 미니멀한 사운드를 찾다 결국 제리의 다른 스코어였던 <프로이드>에서 여러 곡을 골라 배치했다. 엔드 크레딧엔 하워드 핸슨의 ‘Symphony No. 2, Romantic’을 삽입했다. 제리 골드스미스는 이를 두고 죽을 때까지 두 사람을 미워(?)했다. 제임스 호너가 음악을 맡은 속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제임스 카메론은 호너의 다른 스코어였던 < 스타트렉 2 >과 3편의 요소(정확히는 클링곤 테마)가 묻어나기를 요구했고, 오프닝과 엔딩 테마에선 아람 하차투리안의 ‘가야네 발렛 슈트’의 곡조를 인용하기를 바랐다. <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에서 잠깐 동안의 평화와 안식을 보여줄 때 흘러나왔던 곡으로, <에일리언 2>에서도 모든 상황이 시작하기 직전의 평화스러운 모습과 모든 것이 종료된 이후 안식을 나타내듯 상징적으로 쓰이길 원했다. 호너가 만든 많은 곡들이 빠졌고, 원래 장면과 다르게 잘려져 부분적으로만 사용되거나 또는 다른 곡으로 대체되었다. 편집상에서 아주 드러내 감독판에서만 들을 수 있는 ‘Dark Discovery / Newt’s Horror’를 비롯해 착륙선을 타고 비행할 때 흐르는 ‘Combat Drop’이나 뉴트가 등장하던 장면에 쓰일 ‘Newt’, 그리고 여왕과 리플리가 대면하던 씬의 ‘The Queen’도 생략되었다. 해병대가 연구실에서 에일리언 숙주를 발견하는 장면에 쓰일 ‘Med. Lab’은 거의 음악 없이 진행되는 바람에 아주 적은 부분만 인용되었고, 대기정화시설에서 흐르던 ‘Atmosphere Station’ 역시 작은 레벨로 분위기를 자아내는 용도로만 사용되었다. 반면 여러 번 반복돼 사용된 큐도 있다. ‘Queen To Bishop’과 ‘Bishop’s Countdown’이 바로 그 곡들로 특히 후자 경우 녹음 당시 한 곡이 비었다는 걸 깨닫고 호너가 단 하루 만에 모든 작업을 마무리한 큐였다. 파워풀하고 아주 강렬한 액션 큐로 지금껏 북미 예고편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곡으로도 유명하다. 진정한 지옥도를 맛보고 싶다면 ‘Futile Escape’가 제격이다. 이미 앞서 얘기한 ‘Bishop’s Countdown’과 리플리가 해병대들을 구하러 장갑차를 끌고 갈 때 흐르는 ‘Ripley’s Rescue’로 변주되긴 했지만, 진정한 묘미는 8분 30초에 이르는 이 대곡에 있다. 제임스 호너가 작업 중에 받았던 모든 스트레스와 고통, 분노, 좌절과 실망을 한데 뭉쳐 격정적으로 쏟아낸 것과 같은 이 악곡은 영화상 가장 긴 탈출 (액션) 시퀀스에 쓰인 트랙으로 가히 세상의 모든 아비규환과 절규, 광기와 공포가 흉포하게 담겨있다. 천지개벽이 일어나듯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총공세를 펼쳐대는 관현악의 놀랄만한 비명은 강렬하고도 무시무시하다. 여기가 바로 지옥이구나! 를 깨우치게 할 만큼 모든 혼이 울부짖고 브라스가 포효하며 스트링이 빠르게 활강하고 약동한다. 세상의 모든 악기가 내지르는 공포의 처절한 소리들은 너무도 실감 나게 그리고 절절하게 이 악몽을 묘사한다. 어디에도 없는 출구와 뚫려버린 피난처를 찾아 헤매게 되는 심경을 담아낸 아우성은 극도로 강한 아드레날린을 분비시킨다. 그럼에도 결국 호너는 카메론을 100% 만족시키지 못했다. 카메론은 여전히 전편의 영향력이 남아있기(연장되기)를 바랬고, 그 분위기를 위해 골드스미스의 큐들을 몇 곡 골라 2편에서 그대로 사용했다. 1편 사운드트랙에 있는 ‘Parker’s Death’와 ‘Sleepy Alien’ 등이 그러한 트랙들이다. 2001년에야 이 모든 (생략, 변형된) 큐들을 온전하게 담아낸 디럭스 에디션 버전의 사운드트랙이 출반되었다. 타이타닉, 아바타 두 명의 제임스가 화해하기까지 대략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카메론과 호너는 각각 자신의 분야에서 거장이 되어 있었고, 시간은 완벽주의자인 그 둘을 조금 느긋하고 여유롭게 만들어주었다. 호너는 카메론이 구상한 < 타이타닉 >의 이야기를 맘에 들어 했고, 카메론은 바로 전 해 작업한 호너의 < 브레이브 하트 >를 만족해했다. 둘은 첫 만남에서 5분 만에 화해하고 3시간 동안 <타이타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카메론과 호너는 이 영화로 처음 아카데미상을 거머쥐었다. 다행히도 이야기의 끝은 해피엔딩이다. 이후 둘은 다시 10 여년이 지나 < 아바타 >의 작업을 함께했으며 세상의 모든 영화의 수익에 관련된 기록을 싹 다 갈아치웠다. 그들은 다시 2016년 이후 <아바타> 후속편들로 세상을 지배할 계획 중에 있다. Track List 1. Main Title 2. Bad Dreams 3. Dark Discovery / Newt's Horror 4. LV-426 5. Combat Drop 6. The Complex 7. Atmosphere Station 8. Med. Lab. 9. Newt 10. Sub-Level 3 11. Ripley's Rescue 12. FaceHuggers 13. Futile Escape 14. Newt Is Taken 15. Going After Newt 16. The Queen 17. Bishop's Countdown 18. Queen To Bishop 19. Resolution And Hyperscape 20. Bad Dreams (Alternate) 21. Ripley's Rescue (Percussion Only) 22. LV-426 (Alternate Edit - Film Version) 23. Combat Drop (Percussion Only) 24. Hyperspace (Alternate En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