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검
- 감독
- 임권택
- 제작년도
- 1971
- 출연
- 윤양하, 채령, 안길원, 조덕성, 박기택, 임해림, 안일력, 이예민, 윤일주, 최창호, 김기범, 조춘
1967년 홍콩 쇼브라더스의 <대취협>(호금전)이 한국 시장에 처음 등장했을 때 이 새로운 ‘장르’ 영화가 이후 한국에 미칠 막강한 영향력을 예상했던 자는 거의 아무도 없었던 것 같다. 이 낯선 장르영화는 당시 한국 영화시장의 강력한 흥행 장르인 마카로니 웨스턴 풍의 제목을 빌려서야 이 시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셀지오 레오네의 A Fistful of Dollars(1964)가 ‘황야의 무법자’로 개봉, 대히트를 기록하며 불붙기 시작한 이 이탈리안 웨스턴들의 제목은 거개가 원제와 상관없이 황야, 석양, 결투, 무법자를 선호하곤 했다). 그리고 이 영화 <대취협>=< 방랑의 결투 >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파상적 흥행기록’을 세웠다. 곧이어 쇼브라더스산 무협영화 세 편이 이 시장을 강타했다. 1968년 신필름이 수입한 <독비도>(장철, 한국 개봉제목 <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 <변성삼협>(장철, 한국 개봉제목 < 삼인의 협객 >), <금연자>(장철, 한국 개봉제목 < 심야의 결투 >)의 총 관객수는 무려 65만 명에 이르는 것이었다 이 중에서 단연 압권은 <독비도>였다. 홍콩영화 최초로 백만 달러의 수익을 거둬낸 이 영화는 1960년대 중반 ‘무협 신세기’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새로이 무협영화를 일신함으로써(모더나이제이션) 시장을 확대하고자 한(글로벌라이제이션) 쇼브라더스 ‘신파 무협영화’ 전략의 혁혁한 성과이자 1960, 70년대를 풍미한 한국의 수많은 신체상해 히어로의 액션활극이라고 할만한 것들에 강력한 영감의 기원이 되었다.(아마도 이 중 가장 ‘급진적’인 실천의 사례를 들자면 1969년에 발빠르게 만들어진 < 팔없는 검객 >(임원식)이 될 것이다. <독비도>의 내러티브를 고스란히 차용한 이 영화는 한쪽 팔이 아닌 양팔을 모두 잃고 입과 발가락으로 검을 휘두르는 주인공을 선보인다!) 또한 <독비도>의 외팔이 왕우는 한국 관객들을 열광시킨 최초의 홍콩 스타가 되었으며, 한국에서 홍콩영화가 차지하는 독특한 위상과 소비의 방식을 보여주는 첫 번째 이름이 되었다(그리고 알다시피 이 스타를 향한 열광은 홍콩영화의 장르 변천 속에서 이소룡, 성룡, 주윤발 등으로 이어질 터이다). 이 새로운 열광을 자국 내 영화로 흡수하고자 한 것은 당연한 일일 게다. 게다가 당시 ‘중국검객영화’ 혹은 ‘검객활극’이라고 불려졌던 이 장르영화는 자국 시장을 넘어서는 가능성으로 충만한 것이었다. 간단히 말해 이 영화들은 어떤 계층, 어떤 젠더, 어떤 세대, 즉 도시의 젊은 하위계층 남성들에게 강력히 어필하는 것이자 이 지역 공통의 산업화 속에서 발생한 이 관객들은 국경을 넘어 이곳과 저곳에 모두 존재하고 있었다. 곧이어 어떤 한국영화들이 일시에 ‘검’에 사로잡힌 것처럼 보여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 쌍용검 >, < 비호 >, < 대검객 >, < 유랑의 검호 >, <신룡검객>, < 무정검 >, < 3인의 여겸객 >, < 괴도의 검 >, < 단장의 검 >, < 필살의 검 > < 팔도검객 >...... 리스트는 끝없이 이어진다. 임권택은 < 뢰검 >, < 월하의 검 >, < 비검 >, < 요검 >을 만들었다. 어떤 영화들은 단독으로 만들어졌고, 어떤 영화들은 홍콩 혹은 대만과 합작으로 만들어졌으며, 어떤 영화들은 한국 국적의 감독이나 배우를 빌미로 합작을 주장하였다. 어떤 영화들은 재편집과 한국어 더빙을 거쳐 합작영화라고 주장되었다. 이를테면 장철의 < 철수무정 >과 <십삼태보>(한국어 개봉제목 < 13인의 무사 >)는 한국어로 더빙되어 한국-홍콩 합작영화로 공개되었다. 당시 쇼브라더스 전속 감독이었던 정창화가 만든 < 아랑곡의 혈투 >는 그의 국적을 이유로 합작영화라고 소개되었다. 식자들은 근심과 탄식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 누군가는 “한결같이 잔혹성에 의한 쇼킹도”로 극장 가를 석권한 이 “국적도 고증도 없는 검객물”의 홍수를 한탄했으며, 누군가는 “관객들의 양식을 뒤집어 보게끔” 할만한 것이라고 아연실색했다. 누군가는 “한국 배우가 중국식 칼장난이나 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며 “우리의 얼을 모독하는 무의미한 상행위”에 불과하다고 분노하였다. 요컨대 이 영화들은 도저한 내셔널 시네마의 담론 내에서 긍정되기 쉽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너무 폭력적이라는 점에서 문제적이었다.(덧붙이자면 홍콩영화의 폭력성에 대한 이 식자들의 우환은 1990년대 초까지 줄기차게 반복될 터이다.) 1968년의 영화 <쌍용검>은 이 영화의 원작인 『정협지』까지를 포함하여 말하자면 ‘무협’이 어떻게 한국의 남성 하위문화에 기입되고 있는지, 한국영화에 도착한 트랜스내셔널한 실천의 양상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사례이다. 먼저 김광주의 『정협지』. 김광주가 대만 작가 위지문(尉遲文)의 동시기 소설 『검해고홍 劍海孤鴻』을 번안한 이 소설은 1961년 경향신문에 연재된 이래 이 신문의 지가를 올렸으며 1963년 신태양사에서 출판되어 당대의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았다. 소설가이자 루쉰의 한국어 번역자였던 김광주가 어떻게 무협소설을 번안해오고 있는지 그 구체적 경위까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가 무협 장르가 가지고 있는 대중적 파급력에 그 누구보다 민감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김광주는 1920년대 중후반 상하이 문예비평계의 주류에서 활동하였다. 이 시기 상하이는 지난 글에서 다뤘던 바, 무협이 대중문화의 자원으로서 등장한 바로 그 시공간이기도 하다. 쇼브라더스가 그러한 것처럼(이 영화사의 전신인 천일영화사는 1920년대 후반 무협영화를 양산했던 상하이의 주요 프로덕션 중 하나였다) 김광주 또한 이 시기 무협에 대한 대중의 열광, 그 매혹의 한 가운데를 통과해갔다. 즉, 그는 이 장르의 효용성을 그 누구보다도 실감했던 자이다. 『정협지』가 누린 인기를 염두에 둔다면 무협영화의 저 붐 속에서 이 텍스트가 재빨리 불려져 나온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실제로 『정협지』의 영화화를 둘러싼 영화사들 간의 치열한 경합이 벌어졌다. 한국영화사의 이재명과 제일영화사의 홍성칠이 영화화 판권을 둘러싼 공방을 벌였는데, 한국의 김광주와 대만의 위지문, 한국 내 에이전트, 친우 등이 복잡하게 얽힌 이 공방은 흐지부지되었지만 그 와중에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제일영화사였다. 이 영화사는 홍콩의 옥련영화사와 손을 잡고 <쌍용검>과 또 한편의 김광주의 번안 무협소설 『비호』의 동명영화를 동시제작하였다. 이 영화들은 검술영화 열풍으로 달아오른 자국 시장 뿐 아니라 동남아 시장에도 예상대로 어필 가능하였다. 제일영화사는 1969년 한해에만 네 편의 합작 무협영화를 만들었으며, 이 해에 이 영화사의 수출액은 30만불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었다. 1968년의 전체 한국영화 수출액이 8만불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숫자의 크기가 얼마나 놀라운 것이었는지 짐작 가능하리라.(1969년의 한 영화잡지 기사는 대종상에 올해의 수출상이 있다면 이 영화사가 받아야 할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이 사례는 1970년대 횡행하게 될 한국과 홍콩과 대만과 여타 동남아시아 영세 영화제작자들의 합종연횡이라고 할만한 소위 ‘합작’의 계기들이 어떤 식으로 등장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 외화수입 쿼터라는 정책이 마련해놓은 구조, 정기적으로 가해지는 홍콩산 무협영화의 수입규제 하에서 자국 영화로 카운트될 수 있는 합작은 충분히 선호될 만한 것이었다. 종종 그것이 소위 ‘위장합작’의 형태였다고 하더라도. 어쨌건 이제 막 이런 영화들에 호응하는 관객집단이 발견되었으며, 변두리 싸구려 극장에서 환호하는 이들을 통해 무협은 한국 대중문화의 이디엄으로 화려하게 등극할 수 있었다. 무협이란 그리 오래된 단어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단어는 동아시아 근대의 산물이다. 무(武)에 협(俠)이라는 오래된 개념을 조합시킨 최초의 인물은 일본의 초기 모험소설가인 오시카와 슌로로 알려져 있다. 오시카와 슌로는 1903년 『무협의 일본』이라는 소설을 발표하였고, 『무협세계』라는 소년잡지를 만들었다. 이 열렬한 ‘군인칙유’의 신봉자는 무(武)와 이미 무를 포함하고 있는 협(俠)을 겹쳐놓음으로써 근대 일본의 무력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담아내고자 했다. 그러나 이 단어는 일본 내에서 정착되지 못했으며, 일본의 중국인 유학생들에 의해 중국으로 전파되어간 이래 전술한 것처럼 1920년대 중반 상하이라는 장소에서 드디어 강력한 대중문화의 이디엄으로 기입되었다. 일본에서 이 단어는 1970년대 이전까지 거의 쓰이지 않았다. 왜 이 조어는 일본이 아닌 근대 중국에서 정착할 수 있었는가? 무가 말 그대로 무력을 뜻하는 것이라면, 협은 이보다 좀더 복잡한 정의를 필요로 한다. 이 오래된 개념은 한비자에 의해 가장 처음 정식화되었다. 그에 따르면 협(俠)은 무로써 禁(法)을 범하는 것이다(俠以武犯禁). 법가 한비자에게 이 개념은 두 가지 점에서 부정적인 것이었는데, 왜냐하면 협객이란 현존하는 법질서를 깨고 자신들만의 룰로 움직이는 도당의 무리이기 때문에 그렇다(『수호지』의 양산박을 떠올려보라). 이 개념에 의(義)를 개입시킴으로써 정치적 의제로 이동시켜온 것은 사마천이었다. 사마천은 「유협열전」에서 “무로써 법을 범하고 권위를 무시하지만 언신행과(言信行果)의 행동규범에 입각하여 약자와 액곤(厄困)한 자를 도와줌에 있어서는 자신의 생사를 돌보지 않는’ 자의 속성으로 이를 정의내림으로써 협을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개념으로 전화시키고자 했다.(『사기』) 그러나 유협의 유(游)와 자객의 객(客)이라는 명칭이 이미 보여주듯 시스템 바깥의 행위자들에 의한 시스템의 파괴라는 의미에서 여전히 협은 잠재적으로 위험한 개념이다. 즉, 현존 법질서를 초과하는 폭력으로서 협에는 언제나 법정립적 폭력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할 때 제국의 패권적 질서를 위한 강력한 무력을 상정하는 일본이 아닌 반(半)식민지 중국에서 힘(武)을 통해 이 상황을 깰 수 있는 협에 대한 상상은 보다 적극적으로 개진될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무협의 핵심 공간은 현실 세계의 법과 무관한 강호-무림의 세계이다. 이 상상적 세계란 1920년대 근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장이었던 중국에서 발견된 판타지 공간에 다름 아닌 것이다. 아마도 협이 내포하고 있는 어떠 시스템의 파괴, 폭력의 가능성이야말로 무협영화가 1960년대 홍콩에서 홍콩영화 최초의 영컬처로서 재등장하고, 나아가 한국과 같은 장소에서 이제 막 하나의 관객층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젊은 하위계층 남성들에게 그토록 어필할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또한 이 지점이야말로 이 영화들에 쏟아졌던 저 식자들의 우환의 진짜 이유인지도 모른다. 홍콩에서 무협영화는 그 장르적 후신으로 1970년대 초 맨몸의 싸우는 영화, 이후 ‘쿵푸영화’로 이름붙여질 영화로 옮겨갔다. 홍콩영화의 장르 변동과 민감하게 연루되어 있던 한국의 어떤 영화들은 검술영화에서 권격영화, 당시 용어로는 ‘태권도 영화’로 이름붙여질 장르로 넘어갔다. 이제 유신 시대 한국의 변두리 극장에서는 정책과 장사꾼들과 특정 관객들의 욕망이 단단하게 엉킨 채로 소위 위장합작의 복마전이 펼쳐질 터이다. 다음에는 여기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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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영화감독의 명단이 궁금합니다. 이건 영화감독을 만났을 때 꺼내 들기 가장 어려운 질문 중의 하나이다. 이 질문 속에는 취향의 지평을 지나쳐가는 질문 안의 질문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보, 지식, 체험, 감흥, (미적인, 혹은 정치적인, 때로 은밀하게 사적인) 판단, 무엇보다도 수용의 태도. 영화비평가들은 이런 질문을 받아들면 대부분 약간 젠체하면서 새침하고 교활하게 균형을 맞춰가면서 개인적인 척하는 공식적인 대답을 한다. 그런데 감독들은 이 질문 앞에서 이제까지의 자신의 작업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그들의 영화를 잘 알고 있는 이들에게 종종 모순을 일으키거나 혹은 일시적인 행동처럼 보이거나 아니면 때로 심술궂어 보이는 것만 같은 전혀 생각하지도 않은 명단을 꺼내 들면서 개인적인 대답을 한다. 잉그마르 베르이만은 <007 포 유어 아이즈 온리>가 흥미롭다고 대답했다. 홍상수 는 <젊은 날의 링컨>, <이른 여름>, <저항>, <라딸랑뜨>, (등등과 함께) 열 편중의 하나로 뤼미에르 형제의 <항구를 떠나는 배>를 “떠올리는 순간이 좋다”고 대답했다. 봉준호 는 어떤 경우에도 <큐어>과 <조디악>을 빼놓는 법이 없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1931년 판 오리지널 <프랑켄슈타인>을 포함시켰다. 가이 매딘은 (고레-에다의) <애프터 라이프>를 포함시켰다. 몬테 헬만은 열 편 중의 하나로 장 이모우의 <연인>을 뽑아 들었다. 아키 카우리스마키는 코스타-가브라스의 <Z>를 넣었다. 이런 명단은 끝이 없다. 물론 여기서 명단의 우열은 아무 의미가 없다. 임권택 감독님에게 망설이던 끝에 같은 질문을 했다. “나는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법이 없어요. 내 영화도 만들고 나면 다시 보지 않아요. 그런데 단 한 편, 펠리니의 <길>은 두 번을 보았어요. 그게 그렇게 쓸쓸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도 마음에 남는 거요” 그러면 어떤 영화감독들을 좋아하십니까? “그때는 영화를 볼 데가 극장밖에 없었으니까, 텔레비전이 나왔을 때는 내가 영화 찍으러 다니느라고 정신이 없을 때였으니까, 존 포드, 빌리 와일더, 윌리엄 와일러, 그렇게 세 명이지, 제일 싫어했던 이름은 힛치콕이지, 그 칼부림 하는 영화를 한 번 보고는 다시는 볼 생각을 안 했으니까” 임권택 감독님은 <사이코>를 말하면서 (비유법이 아니라 정말로) 몸서리를 쳤다. 우선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임권택 세대는 <카비리아의 밤>이 마지막 펠리니 영화였다. 임권택은 <달콤한 생활>부터 펠리니 영화를 보지 못했다. 만일 1963년에 임권택이 <8 1/2>을 보았다면 그 ‘이후’의 영화에서 어떤 영향을 볼 수 있었을까, 라고 상상해보고 싶어진다. (임권택 감독님은 아직도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 이 상상은 단순하게 귀결되지 않을 것이다. 영향이라는 불안.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의 응답이다. 하지만 동시에 거기에는 투쟁의 긍정과 긍정의 투쟁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공식적인 영화사가 개인적인 무대에 등장하는 순간 사이에는 그 무대를 구성하는 여러 가지 다른 종류의 거부와 저항이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 하나의 설명을 덧붙이고 싶다. 충무로의 첫 번째 세대들, 유현목 , 김기영 , 신상옥 , 김수용 은 한국전쟁을 경험하면서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에 완전히 동의하였다. 그러나 이상할 정도로 임권택은 < 자전거 도둑 >이나 < 무방비도시 >에 거의 영향 받지 않았다. 내가 이 영화 제목들을 꺼내 들었을 때 들을 수 있었던 유일한 대답은 무미건조하게 “좋은 영화들이지요”라고 말한 게 전부이다. 임권택을 리얼리즘 영화의 카테고리에 넣고 싶어 하는 비평들은 이 취향의 명단 앞에서 머뭇거릴 것이다. . <아일랜드의 연풍>(존 포드, 1952) 이 명단을 염두에 두고 읽어나가기 바란다. 임권택의 영화를 차례로 보다가 세 편의 영화 앞에서 잠시 멈추게 될 것이다. 하나는 < 남자는 안팔려 >이고 다른 하나는 <바람같은 사나이>이고, 마지막 하나는 < 30년만의 대결 >이다. 아쉽지만 <남자는 안팔려>는 프린트가 유실되어 우리가 볼 수 없다. 나는 이미 < 바람 같은 사나이 >가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를 각색한) 존 스타제스의 <황야의 7형제>를 각색한 영화라는 것을 이미 설명했다. 임권택은 수없이 많은 원작소설을 각색했고, 텔레비전 드라마를 각색했고, 라디오 드라마를 각색했다. 그리고 세 편의 할리우드 영화를 각색했다. <남자는 안팔려>는 빌리 와일더의 <뜨거운 것이 좋아>를 변주한 리메이크 영화이다. 그리고 <30년만의 대결>은 존 포드의 < 아일랜드의 연풍 >(지금은 <말 없는 사나이>라는 원제(The Quite Man)로 잘 알려졌지만 여기서는 국내 개봉제목으로 쓰겠다)의 리메이크이다. 먼저 첫인상을 고백해야겠다. <30년만의 대결>을 처음 보기 전까지 누구도 내게 이 영화가 <아일랜드의 연풍>의 리메이크라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 시작할 때는 무방비 상태였다. 어느 장면부터 처음 보는 이 영화를 어디선가 이미 보았다는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최무룡과 박노식이 김지미를 사이에 두고 동네에서 주먹싸움을 시작할 때 누구라도 <아일랜드의 연풍>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임권택 감독님에게 혹시 이 영화가 존 포드의 <아일랜드의 연풍>을 다시 한 번, 이라고 말을 꺼내자마자 그거를 리메이크 한 거요, 라고 바로 말을 이어받으면서 그 영화를 정말 재미있게 보았거든, 이라고 덧붙였다. “내가 <제17 포로수용소>와 그 영화 두 편이 제일 재미있게 본 영화요” 1955년 11월 15일에 단성사에서 개봉한 이 영화를 임권택은 (아마도) 연출부를 하면서 보았(을 것이)다. 그런 다음 <30년만의 대결>을 제작할 때 누구도 <아일랜드의 연풍>을 다시 꺼내 들어 참고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는 아직 비디오가 발명되지 않았으며, 한국에는 시네마테크가 없었다. 그들은 오로지 기억에 의존해서 작업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난처하게도 자막에 각본 송장배, 각색 박남주라고 되어있다. 누군가 기억을 더듬으며 영화를 제작하기 위한 현장용 각본을 썼겠지만, 각색은 이 과정에서 무슨 역할을 한 것일까. 왜 어디에도 원작을 밝히지 않은 것일까. 그때 한국은 국제 저작권협회에 가입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원하면 비틀즈의 곡도 사운드트랙으로 사용하였으며, 충무로 녹음실에서는 음반 라이브러리에 보관된 음반을 자유롭게 꺼내 들어 자신의 영화에 사용하곤 했다. 하지만 저작권 여부의 진실은 이 글의 목표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 말의 흥미로운 방점. 17년 전에 본 영화의 기억, 그리고 감흥. 무엇이 남고 무엇이 지워졌을까. 그런 다음 기억의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었던 <아일랜드의 연풍>은 어떤 영화였을까. 나는 여기서 존 포드의 <아일랜드의 연풍>에 대해서 쓰지는 않을 생각이다. ( 이 영화에 대해서는 이미 허문영이 ‘존 포드 이야기’ 연재에서 좋은 글을 썼다 .) 대신 임권택은 존 포드 영화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라는 오랜 질문에 질문해볼 생각이다. 나는 대답의 자리에 질문을 잘못 쓴 것이 아니라 두 번 질문이라고 썼다. 여기서 첫 번째 질문이 임권택의 ‘자리에서’ 해보는 것이라면 두 번째 질문은 임권택의 ‘자리에 대해서’ 질문하는 것이다. 우선 1971년이라는 상황을 설명해야 할 것 같다. 그 해에 임권택은 일곱 편의 영화를 찍었다. < 요검 >, <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나린다 >, <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마라 >, < 둘째어머니 >, < 명동 삼국지 >, < 원한의 두 꼽추 >, 그리고 <30년만의 대결>. 이 영화들을 다른 방식으로 소개할 수도 있다. 무국적 무협영화 두 편, ‘다찌마와리’ 액션영화 네 편, 멜로드라마 한 편, 그리고 로맨틱 코미디 한 편. 그저 뒤죽박죽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명단. 여기서는 어떤 일관성도 발견할 수 없다. 그 말은 한 감독으로서 말 그대로 주문을 받아서 찍어내듯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임권택의 고통스러운 시간. 그는 한 편의 영화를 만들고 다음 영화를 준비할 틈도 없이 그렇게 영화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어쩌면 자신이 가장 재미있게 보았다고 기억하는 영화를 떠올리면서 존경하는 존 포드의 영화를 만들었던 시간, 1971년이라는 참혹했던 그 해에 <30년만의 대결>을 만들었던 자리는 임권택의 잠시나마 즐거웠던 시간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라고 가정해본다. 그리고 그것이 이 시기의 이상할 정도로 비참하고, 우울하고, 참담하고, 어둡고, 대부분 비극으로 끝나버린 영화들 속에서 드물게도 명랑하고 쾌활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계기였는지도 모른다. 한 가지 사실을 환기시키겠다. 임권택의 영화에서 이따금 유머를 간직한 장면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시종일관 로맨틱하고, 밝고, 명랑한 영화를 찾는 것은 거의 드문 일이다. 대규와 판수 옥희 먼저 <아일랜드의 연풍>과 <30년만의 대결>의 서사에서 인물들의 배치에 관한 차이를 설명하겠다. <아일랜드의 연풍>은 션 쏘튼이 기차를 타고 미국을 떠나 고향인 아일랜드의 (가상의 마을) 이니스프리에 정착하기 위해 돌아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중에 밝혀지기는 하지만 션 쏘튼은 권투시합에서 그만 상대방이 죽는 결과에 다시는 주먹을 사용하지 않기로 맹세한다. 운명처럼 션 쏘튼 이웃에 사는 메리(모린 오하라)에게 반하고 그녀에게 청혼을 한다. 그러나 메리의 오빠 레드 윌(빅터 맥라글렌)은 지참금을 내놓지 않는다. 션 쏘튼은 그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아일랜드 여자인 메리에게는 모든 것이 달린 자존심의 문제이다. 션 쏘튼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오빠 레드 윌에게 대결을 신청하고 온 마을로 이어지는 주먹 싸움의 장관이 펼쳐진다, 라고 썼지만 사실 5분 동안 이어지는 이 클라이맥스에서 정작 션 쏘튼과 오빠 레드 윌의 싸움 쇼트는 얼마 되지 않는다. 존 포드는 이 시퀀스를 구경꾼들과 이웃 사람들, 동네 주민들이 집단으로 모였다가 흩어지는 동선으로 연결하면서 역동적으로 만든다. 물론 디테일의 아름다움은 다른 데 있고, 존 포드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션 쏘튼과 메리 사이의 보기 드물게 성숙한 사랑의 감정선이다. 게다가 거의 천국처럼 색채 설계된 이니스프리의 테크니컬러는 <아일랜드의 연풍>을 존 포드의 가장 아름다운 영화중의 하나로 끌어올린다. <30년만의 대결>은 대규(최무룡)과 판수(박노식)이 박포장기를 두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두 사람은 (서로의 표현을 빌리면) “죽마고우”지만 30년 전에 한 여자(김지미)를 동시에 사랑했고, 그녀는 다른 남자와 결혼해서 고향을 떠나갔다. 그런 옥희가 남편을 여의고 딸 지향과 함께 고향에 돌아온다. 대규는 상처를 하고 아들 웅(김희라)와 함께 목장을 하고 지내고, 판 수는 아내와 아들 민(윤양하)과 함께 양계장을 하며 지낸다. 이 마을의 두 명의 부자. 옥희가 돌아오자 두 사람은 다시 대결을 시작한다. 문제는 고향에서 농지 제방이 무너지면서 시작한다. 비만 오면 매번 물난리를 겪는 고향에 옥희는 마을 사람들을 위해 저수지를 만들 결심을 하지만 그건 큰돈이 드는 개간사업이다. 여차저차 한 우여곡절 끝에 옥희는 한 달 후까지 돈을 갚지 못하면 판수와 결혼하겠다는 약속어음을 쓰고 돈을 빌린다. 하지만 판수는 속임수를 쓰고 옥희는 결혼을 해야 하는 처지에 빠지자 마음에 끌리는 대규와 도망칠 생각을 한다. 떠나는 그들 앞에 판수의 아들이 나타나 그래도 이건 아버지에게 이야기는 해야 하지 않냐고 가로막는다. 대규는 교회에서 결혼식을 기다리는 판수 앞에 나타나 옥희를 앞에 두고 주먹 대결을 벌인다. 밤이 올 때까지 다투던 두 사람은 대폿집에서 막걸리를 앞에 두고 마지막 주먹을 주고받는다. 그런 다음 판수는 대규를 업고 옥희의 별장에 가서 내려놓은 다음 “나란 놈은 말야, 이제 마누라의 자장가가 그리워졌다구”라고 껄껄 웃으며 그들 곁을 떠난다. “나란 놈은 말야, 이제 마누라의 자장가가 그리워졌다구” <아일랜드의 연풍>은 션 쏘튼을 주인공으로 하여 메리와의 로맨스를 통해서 고향이라는 상상적 공동체를 배워나가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물론 여기서 공동체는 다소 복잡한 이데올로기적 봉쇄 속에 1952년 매카시 냉전 체제하의 미국에 대한 ‘어떤’ 진실을 불편하게 포함하고 있으며, 그 속에서 존 웨인이라는 스타 기호는 하나의 부조리기 되어간다. (잘 알려진 대로 보수주의자이지만 극우파를 혐오했던) 존 포드는 그걸 충분히 의식하고 있으며, 또한 그걸 어떻게 다뤄야하는지도 잘 알고 있다. 나는 1955년 정창화의 연출부를 하던 임권택이 미국의 정치적 상황과 할리우드의 복잡한 네트워크와 그 안에 놓여진 해석들 사이의 상호경쟁적인 모순들을 들여다보면서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라고 <아일랜드의 연풍>을 이해했을 것이라고 상상하기 어렵다. 그때는 한국전쟁이 휴전한 지 채 삼년이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조셉 매카시의 ‘빨갱이 사냥’이라는 말은 오랫동안 한국사회에서 금지된 정치적 용어였다. 임권택이 <아일랜드의 연풍>의 이야기에 이끌린 행복은 특권화된 장소로서의 고향일 것이다. 아마, 아마 그럴 것이다. 그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고향 이야기를 반복해서 했다. 그때 그의 집은 지금 살고 있는 세계 바깥에 놓여있었다. 갈 수 없는 집. 그 집이 놓여있는 고향이라는 장소. 그때 임권택이 가정하는 그 고향은 아직 한국전쟁이 도착하지 않은 곳이다. 거기서 임권택이 유지하려는 역사적 거리는 아직 미학적으로 형식화되지 않았고 여전히 이데올로기적으로 긴장을 잃지 않은 상태로 불안하게 머물러 있었다. 션 쏘튼은 자기가 돌아가고 싶을 때 고향에 돌아왔고 그런 다음 거기서 사랑이라는 시련을 견디면서 받아들여진다. 임권택은 여전히 조심스럽다. 존 포드는 션 쏘튼과 함께 미국을 등지고 고향에 돌아가지만 임권택은 옥희라는 여자가 고향에 돌아오는 날 시작한다. 우리는 옥희가 왜 대규와 판수 두 남자를 외면하고 다른 남자를 선택한 다음 고향을 떠나갔는지 끝까지 알지 못한다.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어디에서도 옥희가 자신과 사별한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볼 수 없다. 심지어 옥희의 딸조차 아버지를 그리워하지 않는다. 옥희는 고향에 돌아와서 자신의 잃어버린 시간을 단 한 순간도 더듬지 않는다. 차라리 잠시 고향에 여행 온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아니, 그렇다 할지라도 옥희는 고향의 목가적 풍경을 조금도 즐기지 않는다. 옥희를 동네 사람들은 설씨네 과수원집 딸이라고 부른다. 옥희는 단 한 번도 과수원을 방문하지 않는다. 정말 고향에 과수원이 있기는 한 것일까. <30년만의 대결>을 보면서 내가 가장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대규와 달아나기로 결심한 장면을 제외하면) 옥희가 외부에 전혀 외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돌아오자마자 선의를 가장하여 다시 떠날 알리바이를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저수지라는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공사. 저수지는 혹시 매거핀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이 영화는 이상할정도로 모든 것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여기서 약간 용기를 내서 인용하고 싶다. “이 방법을 적용하기 위해 첫 걸음을 내디디면 꿈 전체가 아니라 꿈 내용의 일부에만 주의를 기울여도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환자에게 꿈과 관련하여 무슨 생각이 떠오르느냐고 물어보면 대개 정신적으로 아무 것도 포착하지 못한다. 그러나 꿈을 여러 부분으로 분할시켜 제시하면 환자는 각 꿈-부분의 배후 사고라고 부를 수 있는 일련의 생각들을 떠올린다. (중략) 내 방법은 전체적 해석이 아니라 부분적 해석이다.” (프로이트, <꿈의 해석>, 김인순 옮김) 물론 임권택을 환자라고 가정하는 것이 아니다. 사태를 추상적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나는 판수의 마지막 대사에서 어떤 입구를 찾은 것만 같았다. “...(중략) 자장가가 그리워졌다구” 자장가. 잠들기 위해서 부르는 노래. 요점은 <30년만의 대결>을 일종의 백일몽처럼 가정한 다음 그 안으로 들어갈 때 전체와 만나는 대신 부분적으로 분할시켜 이 이상할 정도로 즐거운 영화 내부에서 난처하게 모순을 불러일으키는 대목들만을 향해서 질문한다면 우리는 질문 안의 질문과 대면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무대를 먼저 돌아보자. 이 마을에는 두 명의 부자가 있다. 한 명은 판수이고, 다른 한 명은 대규이다. 한 명은 양계장을 하고 있고, 다른 한 명은 목장을 하고 있다. 영화는 판수의 집과 대규의 집, 양계장과 목장을 오간다. 이 마을 사람들의 가장 큰 걱정은 우기가 다가오고 장마가 지면 제방이 무너져 농사를 망치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에는 단 한 장면도 논밭을 보여준 적이 없다. 더 이상한 것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것처럼 마을 사람들 중에서 양계장이나 목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볼 수 없다. 양계장이나 목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마을 사람들과 한 눈에 구별되는 복장을 하고 있다. 그래서 분주하게 양계장과 목장을 오가는 마을 사람들은 마치 서로 다른 고장에 사는 것처럼 겹치지 않는다. 양계장과 목장, 그리고 농사. 물론 그들은 하나의 공간에서 공존할 수 있다. 하지만 공존의 양식을 우리는 끝내 보지 못한다. <아일랜드의 연풍>에서의 이니스프리가 서로 이질적인 요소들이 매일 매일의 일상의 축제처럼 함께 어우러지는 천국이라면 <30년만의 대결>의 고향은 (끝내 지명이 나오지 않는다) 둘로 분리된 생산양식이 공존하는 가운데 현재의 토대가 보이지 않는 (니코 풀란챠스의 표현을 빌려) 비-장소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일종의 신기루. 임권택의 고향에는 무언가 어긋난 질서가 있다. 옥희는 왜 돌아왔는가. 혹시 이 어긋난 질서를 교정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얼핏 보기에는 매거핀처럼 보이는 저수지가 사실은 가장 강력한 교정수단인 것은 아닐까. 이때 이 고향이 하나로 수렴되지 않고 양쪽으로 찢어져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판수와 대규, 양계장과 목장을 단순히 두 개의 힘이 대립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하나가 과거에로 되돌아가고 있다면 다른 하나는 미래를 약속하는 것처럼 반대 방향으로 잡아당기기 때문이다. 판수는 영화 내내 한복을 입고 동네를 돌아다니고 (서울에서 온) 옥희를 만난다. 그의 집은 전통적인 한옥의 구조를 갖추었고 방안에는 오래된 자개장롱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그의 아내도 부부싸움을 하고 집을 나갈 때까지 내내 한복을 입고 있으며, 아들 민은 가까스로 농촌을 벗어난 것 같은 면바지와 셔츠를 입고 다닌다. (지금의 우리들이 볼 때에는 다소 기괴하게도 민의 의상은 그때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새마을 지도자처럼 보인다) 반면 대규는 마치 도시생활을 하다 돌아온 것처럼 청바지를 입고 때로는 선글라스도 쓰고 다닌다. 그런데 이 마을에는 아무도 청바지를 입은 사람을 볼 수 없다. 청바지와 선글라스는 부의 상징이 아니다. 대규는 양옥의 양식으로 지어진 집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아들 웅은 가죽 바지와 재킷을 입고 오토바이를 몰고 다닌다. 오토바이는 이상할 정도로 이 농촌의 풍경과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시끄러운 오토바이 모터 소리는 등장할 때마다 목가적인 풍경의 고요함을 깨트리곤 한다. 대규가 옥희와 함께 고향에서 달아나기 위해 머플러를 하고 댄디한 감각의 재킷을 입고 나타난 모습은 판수에게서 상상하기 힘든 의상이다. 그 둘은 어느 쪽도 고향에 긍정적인 가치를 제시하지 못한다. 판수는 과도할 정도로 고리타분하고 회고적인 과거로 돌아서고 대규는 무언가 어색하고 종종 불협화음을 불러일으키는 미래가 지나치게 서둘러 도착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그 둘 사이에는 이상한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구두쇠라는 사실이다. 그건 단순히 자신의 재산에 대해서 과도하리만큼 집착한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 둘은 ‘충분히’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여전히’ 빈곤하다고 여긴다. 충분히 부자인데도 여전히 빈곤한 것은 자신의 재산에 채워야 할 공백을 셈에 포함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공백은 재산으로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구두쇠는 그 불가능성을 재산의 물신성으로 환원하기 시작한다. 억압과 부인 사이의 도착적 관계. 신경증적 불안과 현실적 불안이 페티시즘을 매개로 결합한다. 이때 옥희는 그 간극 사이에 끼어들어서 그 물신성을 무효로 만든다. 여기까지는 단순하다. 하지만, 하지만 당신은 이걸 도식적으로 읽으면 안 된다. 물론 이 설정이 지나치게 단순하게 보일 수 있지만 이 장면의 재료들이 반대로 우리들에게 지나칠 정도로 어렵지 않게 대립의 상황에로 데려갈 때 이 백일몽이 의도하는 바를 명백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까지 한다. 옛 것과 새 것. 지나가고 있는 시간과 다가오는 시간. 그 간극을 연결 짓기 위해 옥희가 나타났다. 만일 옥희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고향의 간극은 그냥 찢어져나갔을 지도 모른다. 여기서 이 두 개의 힘이 서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임권택인 것처럼 보인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대규와 판수가 장기를 두고 있고 마을 사람들이 그 주변에 몰려들었다. 판수는 자기가 이겼다고 장 받아라, 라고 외치지만 대규는 멍이야, 라고 하면서 비기는 장기를 만든다. 비김수를 쓰면 한 쪽이 판을 엎거나 포기를 하(거나 양보를 하)기 전에는 밤을 새워도 끝나지 않는 법이다. 장기판을 덮고 판수는 대규에게 그러면 팔씨름으로 승부를 내자고 한다. 이것도 요지부동 박빙의 승부로 이어진다. 이 균형을 깨는 건 누군가 달려와 서울 간 설씨 과수원네 딸이 돌아왔어요, 라는 외침이다. <30년만의 대결>은 정확하게 거기서 시작한다. 끝날 것 같지 않은 두 개의 힘의 긴장관계. 그 사이에 갑자기 끼어들어온 옥희. 나는 이걸 다소 아이러니하게 정식화시키고 싶다. 옥희는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안에 있었는데 바깥에서 나타난 것이다. 임권택은 여기에 완전히 매혹되었음에 틀림없다. 여기서 옥희는 아무 것도 상징하지 않는다. 그렇게 다가가면 <30년만의 대결>이 담고 있는 즐거운 기분을 끝내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여기서 눈 감은 척 지나간 가장 이상한 설정을 건드릴 것이다. 질문 안의 질문. 대규와 판수를 비교하면서 한 쪽은 전통, 다른 한 쪽은 근대, 라는 식으로 도식을 세웠다. 그런데 우리의 가설을 전복시키기라도 하듯 서울에서 내려 온 옥희는 막 도착하자마자 방문한 대규와 판수를 한복을 입고 맞이한다. 마치 옥희가 고향에서 그들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런 다음 우리는 영화를 보는 내내 그녀에게서 서울의 어떤 흔적도 볼 수 없다. 옥희는 줄곧 한복을 입고 생활한다. 심지어 자신의 생일잔치를 하는 자리에서도 촛불을 켠 케이크를 가져다놓고 서양의 생일 축하곡을 부르면서 한복을 입고 앉아있는 어색한 장면을 연출한다. (하지만 이 의상의 일관성이 계산된 연출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옥희는 저수지 공사를 위해서 과수원을 내놓고, 그런데 그걸 사려던 부동산 사업가가 내놓은 약속어음이 부도났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갑자기 도회적인 복장을 하고 문 앞에 나타난다. 그런 다음 옥희는 다시 한복으로 되돌아간다. 그러므로 이 장면을 예외로 하고...) 옥희가 한복을 벗어던지는 건 대규와 함께 고향을 떠나는 장면이 전부이다. 이건 무얼 말하는 것일까. 이 영화가 1971년의 영화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환기시키고 싶다. 나는 여기서 에드아루트 푹스를 떠올리고 있는 중이다. 풍속으로서의 역사. 사생활로서의 유물론. 일상생활의 사소한 디테일들 사이의 변증법. 옥희는 서울에서 어떤 삶을 살았던 것일까. 그때 서울에서 가시적인 풍경 앞에 형상화된 여성성은 두 종류의 여자로 나뉘었다. 사회생활을 하는 여자들. 가정생활을 하는 여자들. 물론 실제의 한국 사회는 그때 청계천과 구로공단에서 ‘공순이’들을 착취하기 시작했고, 유한 부르주아 계급의 상징이었던 ‘여대생’의 이미지를 생산하고 있었고, 정반대의 자리에서 밤의 길거리에서 타락한 요부의 에로틱한 이미지를 도시화로 옮겨놓은 성매매 산업이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풍경 저 너머에 매우 제한적이거나 그림자 아래 숨겨져 있었다. 나는 지금 1971년의 풍경을 말하는 중이다. 이때 사회생활을 하는 여자들은 (경험해보지도 않은) 1950년대 미국 산업사회의 ‘오피스 레이디’의 복장을 마치 자신들의 교복처럼 입었다. 근대의 레디메이드. 혹은 근대화 식민지로서의 지체된 데자뷔. 직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한국 사회에서는 OL(Office Lady)이라고 불렀다. 반대로 직장생활을 하지 않는 여성들은 자신이 직장에서 일하지 않는다는 것을 대신 설명하기라도 하듯 하나의 표시로서 전통적인 한복을 입었다. 나는 근대의 물결, 산업의 세계, 자본의 현장에 있지 않답니다, 라는 걸 의미하는 사회적인 모드의 양식. 복식의 수사학은 (바르뜨가 잘 설명한 것처럼) 은유가 빈곤한 개인적인 시학이자 (부르디외가 설명한 것처럼) 구별의 사회학이기도 하다. 1971년의 여성들은 아직 미혼이었을 때는 한복을 명절에만 입다가 결혼을 하면 마치 그것이 하나의 의무적인 의상인 것처럼 일상에서 입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도시에서 생활하는 여성이 한복을 입은 것은 이중적인 기호가 되었다. 하나는 나는 직장을 다니지 않습니다, 이고 다른 하나는 나는 남편이 있습니다, 라는 이중의 기호. 그때 한복에는 유교적인 가치의 맥락 속에서 전통적인 의미가 더해졌다. 나는 집에서 가정을 지키는 정숙한 아내입니다, 라는 하나의 모델에 자기를 기입하기. 옥희가 고향에 돌아와 대규와 판수 앞에서 전시하는 복장은 정확하게 그 문장이다. 나는 이 문장에 하나의 의미를 더하고 싶다. 옥희의 한복에서 결핍된 것은 무엇인가. 그건 물론 남편의 자리이다. (...그러므로) 옥희가 고향에 돌아와 전시하는 복장은 나는 정숙한 아내가 되고 싶습니다, 라고도 읽힐 수 있다. 누구에게? 대규와 판수에게. 돌아온 옥희에게 대규와 판수는 단 한 마디도 옥희의 전 남편에 대해서 질문하지 않는다. 옥희는 단 한 마디도 전 남편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 마치 그것이 금지의 단어이기라도 한 것처럼. 여기에는 어떤 애도도 없다. 서울을 괄호 친 채 추억과 향수만이 이들을 감싼다. 잃어버린 시간, 되찾은 시간. 대규와 웅 부자 판수와 민 부자 옥희와 지향 모녀 세 번째 이상한 설정. 대규와 판수, 그리고 옥희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각자 한 명의 자식이 있다. 그리고 아들은 아버지를 물려받았다기보다는 마치 삶 자체를 ‘카피’한 것처럼 보인다. 아들은 아버지와 대결할 의사가 조금도 없다. 그건 대규의 아들 웅이나 판수의 아들 민 두 사람 모두 동일하다. (아버지가 바람이 나자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난 다음 민이 잠시 판수에게 저항하지만 그건 잠깐 동안 불평을 늘어놓는 수준에 불과하다) 그들은 마치 얌전하게 지내기만 하면 아버지가 재산을 물려주기로 약속한 것처럼 순종적일 뿐만 아니라 종종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설명적으로 반복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무엇보다 서사의 전반부에서 우스꽝스러운 부조리를 연출하는 것은 민과 웅이 옥희 딸 지향을 보자마자 경쟁적으로 구애를 할 때이다. 그들은 아버지 세대의 실패에서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한 것처럼 다시 한번 반복한다. 이때 민과 웅은 그들의 아버지들이 겪지 못한 똑같은 딜레마에 동시에 빠진다. 그들은 한 눈에 자신의 아버지 대규와 판수가 옥희와 재혼을 꿈꾸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챈다. 그렇게 되면 새 어머니 옥희를 모시는 순간 지향을 상대방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사실이 그들을 못 견디게 만든다. 아버지의 이득은 자신의 상실로 이어지기 때문에 차라리 아버지의 상실을 기대하면서 상대방의 아버지의 이득을 기대하게 된다. 말하자면 두 명의 아들은 두 명의 아버지의 이해관계와 동일한 상호 모순의 계산에 빠지게 된다. 이것은 <아일랜드의 연풍>에는 없는 구도이다. 물론 이 문제는 심각하게 진행된다기보다 서사 전체에서 가벼운 기분전환에 가깝다. 갈등은 간단하게 해결된다. 지향은 그녀의 어머니가 그러했던 것처럼 뉴욕에 있는 애인이 갈등의 과정에서 적당한 순간에 나타나 민과 웅의 구애를 무효로 만든다. 지향은 약간의 미련도 없이 그들을 뒤로 하고 떠난다. 그런 다음 지향은 애인과 함께 영화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그런데 잠시만 멈춰보자. 지향은 분명히 자신의 어머니가 저수지 공사를 위해 과수원을 내놓았고 그 과정에서 부도가 난 (거짓) 약속어음 때문에 곤궁에 처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녀는 어머니 곁을 미련 없이 떠난다. 단순한 갈등 속에 포함된 이해하기 힘든 서사 내부의 인과관계 사이의 불연속성들. 하지만 갈등이 단순하다고 해서 그것이 포함하는 의미마저 단순한 것은 아니다. 나는 먼저 갈등을 건드리고 난 다음 지향의 이상한 선택에 대해서 설명하겠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등장할 때 갈등은 이미 예고된 것이다. 이때 갈등은 양쪽 방향으로 향한다. 하나는 아들의 자리에 무언가를 물려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아버지의 자리에서 하나의 시간이 끝나고 하나의 사건이 종료되었음을 알리는 것이다. <30년만의 대결>에서는 기이하게도 어떤 아들도 아버지와 대결하지 않는다. 또한 어떤 아버지도 아들을 위한 자리를 남겨놓지 않는다. 이건 무얼 말하는 것일까. <30년만의 대결>에는 시간이 없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어진다. 임권택은 시간의 진공상태에 들어온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에서 임권택에게 가장 즐거운 것은 고향에 돌아왔지만 거기서 어떤 시간도 경험하지 않는 것이다. 백일몽적인 환상. 시간 없는 장소. 과거에 머물러 있는 판수와 그를 둘러싼 미장센들. 아직 고향에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삶을 살고 있는 것만 같은 대규. 대규와 판수의 공존. 그 둘 사이의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균형의 긴장상태. 임권택이 여기서 즐기는 것은 고향을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고립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30년만의 대결> 속에서의 고향은 고색창연하면서도 (마을사람들의 초가지붕으로 둘러싸인 동네) 이상하게 모던하고 (젖소들이 유유히 노니는 유럽풍의 목장), 종종 퇴행적이면서도 (단 한 대의 버스도 다니지 않는 외진 동네) 때로 급진적이다. (웅은 1960년대 도쿄의 시부야 거리에서 볼 수 있는 모터사이클족(族)들과 어울린다) 이때 지향이 하는 역할은 무엇인가. 나는 이미 웅과 민이 그들의 아버지 대규와 판수의 카피라는 것을 설명했다. 웅과 민은 왜 동시에 지향에게 매혹된 것일까. 고향의 수상한 점. 지향(과 옥희 집에서 일하는 젊은 가정부)를 제외하고 이곳에서는 단 한 명도 젊은 여자를 볼 수 없다. 좀 우스꽝스러운 추론. 그러니 웅과 민이 어떤 여자와도 데이트를 하지 못하면서 지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웅과 민은 어느 쪽도 자신의 고향 애인을 외면하고 지향에게 이끌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외면하는 것은 아내와 이혼하기 위해 애쓰는 판수이다. (물론 대규는 이미 상처(喪妻)했기 때문에 구태여 그런 수고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 하지만 나는 매혹의 요점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향은 여기서 조금도 매력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눈에 웅과 민을 사로잡은 힘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건 지향 자신도 자기가 그걸 갖고 있다고 알지 못하는 그 어떤 힘, 그런데 웅과 민에게만 의미가 있는 그 어떤 것이라고 가정해볼 수 없을까. 혹시 웅과 민이 지향에게 끌리는 것은 그녀가 서울에서 왔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한 번 더 환기하는 1971년의 상황, 서울과 ‘시골’의 격차는 단지 지리적인 것 이상으로 근대의 지체된 시간적 간극의 물화이기도 했다. 나는 구태여 시골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곳은 지방 도시가 아니다. 하루 종일 기다려도 버스 한 대 볼 수 없는 마을. 대규는 옥희와 이 마을에서 도망치려할 때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버스를 이용하는 대신 언덕을 걸어서 읍내까지 갈 생각이었다. 360도로 카메라가 둘러보아도(round_panning) 그저 산과 논밭과 언덕과 가로수가 소실점으로 수렴되는 길만이 보이는 동네. 여기에 갑자기 ‘출현한’ 지향은 웅과 민에게 단지 서울에서 온 것이 아니라 서울이라는 기호 그 자체일 것이다. 그저 풍문으로 전하는 서울. 그때 웅과 민은 지향에게 서울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다가간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지향은 세 개의 가능성을 품고있는 매혹의 근거였던 것은 아닐까. 어떤 세 개의 가능성? 아버지를 떠날 수 있는 가능성. 집을 떠날 수 있는 가능성. 고향을 떠날 수 있는 가능성. <30년만의 대결>은 고향으로 돌아오는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이 모든 설정의 이면에는 고향을 떠날 수 있는 계기로 가득 넘쳐난다. <젊은 날의 링컨>(존 포드, 1939) 당황스러운 말이긴 하지만 <30년만의 대결>은 (미학적인 성취는 일단 제쳐둔 상태에서) <아일랜드의 연풍>에 가까이 가져다놓으면 놓을수록 마치 외면하는 것처럼 보이는 서사의 결들이 점점 더 완강해진다. 그래서 그 둘 사이에서 유사점이라곤 클라이맥스의 순간에 두 사내가 주먹으로 싸우면서 서로의 우정을 나누는 것이 전부가 아닐까, 라는 의문에 빠지게 된다. 나는 맨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고 싶다. 임권택은 존 포드에게서 무엇을 본 것일까. 임권택은 <아일랜드의 연풍>에서 무엇을 즐긴 것일까. 존 포드에 대한 많은 글들은 풍경에 대해서 언급한다. 나는 좀 생각이 다르다. 존 포드는 풍경이 아니라 장소의 영화를 찍고 있다. 그리고 그 장소를 성립시키기 위해 애를 쓰기 시작한다. 하나의 장소라는 문제. 그때 그 장소는 종종 무심하고 도무지 어찌해볼 수 없는 것처럼 거기 있지만 하여튼 거기서 등장인물들은 살아야하고, 견뎌야하고. 배워야하고, 기쁨을 찾아야 한다. 거기서 그들은 매번 결단을 내려야한다. 이 장소에 머물 것인가, 떠날 것인가. 거기서 영화가 시작하고 거기서 영화가 끝난다. 존 포드는 영화에서 드라마가 행위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심리적인 장면을 연출한 적이 없다. 존 포드는 행위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표현하긴 했지만 여기서 애쓰는 과정이 너무 자연스럽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 자체가 너무 훌륭하기 때문에 종종 기적처럼 보인다. 하나의 과정. 존 포드의 방법론은 거기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론이 무엇보다 아름답다. 그런 의미에서 <젊은 날의 링컨>은 성장의 장소를 찍고 있는 중이다. 정확하게 똑같은 의미에서 <아일랜드의 연풍>은 휴식의 장소로서의 이니스프리를 성립시키기 위해 애쓰는 영화이다. 여기서 임권택이 즐긴 것은 휴식이고, 그가 배운 것은 그것을 성립시켜나가는 과정일 것이다. 1971년의 임권택은 지친 몸을 이끌고 이 휴식의 장소에 와서 허송세월을 보내버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막 영화에 도착했던 자신의 젊은 날의 순간에 잠시 머문다. <아일랜드의 연풍>을 보면서 잠시나마 누렸던 꿈결 같은 귀향의 시간. 아마도 그때 전라남도 장성은 아일랜드의 이니스프리만큼이나 먼 곳이었을 것이다. 갈 수 없는 곳. 어린 시절 기억 속의 장성과 한국전쟁 이후의 장성은 얼마나 다른 곳이었을까. 소설 <태백산맥>에서 빨치산들 토벌의 무대에 되었던 곳 중의 하나. 그 피비린내 나는 역사. 물론 비평에서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하지만 <30년만의 대결>을 말하면서 이 영화의 씬들 사이에 묻어나는 정감을 완전히 치워버리면 우리는 해야 할 말이 거의 남아있지 않게 될 것이다. 이 영화는 개념적인 영화가 아니다. 임권택은 열렬한 시네필이 아니다. 아직은 <30년만의 대결>이 성숙하지 않은 임권택을 보여주고 있지만 여기서 옥희가 돌아온 고향이 임권택이 그 자신의 고향에 이끌리기 시작하는 증후라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나는 임권택의 영화(들)에서 은밀한 고향의 선을 탐색해왔다. 그는 아주 느리게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30년만의 대결>은 < 바람 같은 사나이 >와 < 아내들의 행진 > 사이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선을 이어주는 영화이다. 하지만 이 과정은 단순하게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다른 한 편으로 물 쓰듯이 낭비해버렸지만 마음 한 구석에 존 포드라는 위대한 이름을 가슴에 품었던 젊은 날의 청춘에 대한 호소를 담은 그 자신만의 내밀한 예술의 세계가 있다. 영화라는 특수한 세계. 그 세계에서 살아가는 삶. 먹고 산다는 근거. 이 세계는 돈 밖에 모르지만 또 한편으로는 하여튼 여기는 예술의 세계이다. 현실적인 세계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품어야하는 이 세계의 진정성에 대한 의지. 정창화의 연출부를 하면서 품어보았을 어떤 꿈. 틀림없이 수백 번도, 수천 번도 더 가져보았을 꿈. 임권택은 몇 차례이고 내게 말한 적이 있다. “미국영화를 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저런 영화를 만들어야지, 이런 생각을 해보았죠, 그리고 그걸 버리면서 내 영화를 찾아야겠구나, 라는 생각을 비로소 한 거지요” 아마 그것이 또 다른 하나의 선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하나의 선이 더 있을 것이다. 그건 자기 삶의 궁핍함에 대항하는 백일몽과도 같은 환상의 세계였을 것이다. 자신을 지키려는 노력. 몰래 숨어서라도 기쁨을 하여튼 유지하려는 안간힘. 프로이트의 가설. 그런데 마치 임권택은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적 조건을 더 나쁜 방식으로 재생산하는 것만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만들었다. 1971년의 영화들의 목록. 임권택은 고통과 비애로 가득 찬 세계를 그 자리에로 되돌아오듯이 반복해서 다루었다. 그의 주인공들은 비참했고(< 황야의 독수리 >), 더럽혀졌고(<둘째 어머니>), 종종 신체절단의 시련을 이겨내야 했으며(< 애꾸눈 박 >,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나린다>, <원한의 두 꼽추>), 그런 다음 쫓겨나듯이 자기의 세계에서 퇴장해야만 했다.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마라>) 오랫동안 그의 영화 속의 주인공들은 실존적인 현실때문이 아니라 타락한 로맨스가 요구하는 규칙에 따라 그렇게 행동했다. <30년만의 대결>은 마치 거기에 반발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상승하는 로맨틱한 감정에 모든 힘을 집중시킨다. 세 개의 선. 고향의 선. 예술의 선. 로맨스의 선. <30년만의 대결>이 내게 흥미로운 것은 이 세 개의 선이 완전히 서로 뒤엉켜버렸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의 연풍>의 이니스프리 처음의 처음 질문으로 되돌아가보자. 존 포드의 이니스프리와 임권택의 고향 사이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인가. 이니스프리는 에덴동산이지만 임권택의 고향은 애당초 가져본 적이 없는 에덴이라는 것이다. <30년만의 대결>에서 옥희는 고향에 돌아오자마자 교회를 찾아가 목사를 자신의 멘토처럼 여기면서 모든 것을 의논하지만 정작 목사는 여기서 가장 무능하고 어떤 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심지어 팔려가듯이 옥희가 판수와 결혼을 해야 할 때조차 속수무책으로 주례를 진행해야하는 입장에 놓이는데도 그걸 그저 운명처럼 받아들인다. 이때 이 영화는 세상에 어떤 믿음도, 기대도, 신념도, 희망도 없음을 부지불식간에 내비친다. 다소 괴이하게도 임권택의 고향은 한 치의 용서도 없이 자본주의적인 거래의 양식 아래 규칙이 집행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협상도 없다. 계약을 맺으면 그것은 지켜져야 한다. 그것이 고향의 법칙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그 안에서 로맨스가 버틴다. <아일랜드의 연풍>에서 지참금을 줄 수 없다고 버티는 약혼녀 메리의 오빠 레드 윌과 주먹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30년만의 대결>은 아주 멀리 떨어져있다. 결혼식을 피해 도망치던 옥희와 대규 앞에 판수의 아들 민이 나타나서 가로 막았을 때 대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을 교회로 되돌아간다. 그런 다음 판수에게 목장 문서를 내민다. 그러자 판수는 그 문서를 불태워버린다.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판수는 여기서 자신에게 돈이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다. 이 제스처는 정반대이다. 판수는 그 돈보다 훨씬 많은 돈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돈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물론 ‘구두쇠’ 판수는 그 돈이 탐날 것이다. 하지만 만일 그 돈을 받으면 판수는 대규와 싸움을 할 수 있는 명분을 잃게 될 것이다. 정확하게 그 돈은 거래이다. 그 돈을 거절함으로써 판수는 대규와 싸울 수 있는 권리를 사는 것이다. 이 로맨스는 거래로 시작해서 거래로 끝난다. 그러므로 대규는 이 권리를 산 판수에게 승리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 우리는 이미 판수의 진정한 목표가 무엇인지 보았다. 집에서 ‘결혼 행진곡’을 틀어놓고 웨딩 마치 연습을 하는 판수를 보고 민이 녹음기를 집어던지면서 아버지는 집을 나간 어머니는 생각도 하지 않느냐, 라고 소리치고 나갈 때 혼자 남은 판수는 중얼거린다. “질 수가 없어, 질 수가 없어” 판수는 30년 동안 사랑한 옥희를 잊을 수가 없어, 포기할 수가 없어, 놓칠 수가 없어, 라고 말하지 않았다. 판수의 목표는 옥희와 결혼하는 것아 아니라 대규가 옥희와 결혼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규가 제공해야 할 대가는 옥희를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판수와의 이 싸움에서 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대규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규는 하루 종일 주먹 싸움 끝에 늦은 저녁 대폿집에서 막걸리 잔을 앞에 두고 판수의 주먹에 결국 나가떨어진다. 정말 대규는 쓰러진 것일까. 판수가 대규를 등에 업고 옥희에게 데려다 준 다음 호기롭게 떠나자 이게 그저 ‘한바탕 쇼’라는 듯이 슬쩍 눈을 뜨고 조용히 지켜보자는 신호를 장난스럽게 보낸다.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이것은 낮의 풍경이 아니라 어두컴컴하고 우울한 밤의 정경이다. 로맨스는 여기서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존 포드를 존경하던 그 예술의 세계도 거의 희미해져서 잘 분별되지 않는다. 그리고 남은 것은 이제 판수와 서로 공존할 수 없는 대규와 옥희가 고향을 떠나가는 일만 남았다. 이 마지막 장면은 둘 중 양자선택 속에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는지 거의 알기 힘들다. <30년만의 대결>은 결국 판수를 아내에게 되돌려 보내는 이야기인가, 아니면 제 발로 돌아온 옥희가 어쩔 수없이 제 발로 다시 고향을 떠나야 하는 이야기인가. 이 명랑한 영화의 이면에서는 서로가 서로의 계획과 목적을 향해서 부산하게 계산한 다음 비밀스러이 상대방을 이용하고 전유하려는 싸움이 펼쳐진다. 그걸 로맨스라고 부를 수 있을까. 임권택은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의 영화에서 로맨스는 항상 근대에 밀려나가면서 애처롭게 뒤돌아보는 것이다. 임권택은 그걸 어디선가 보기는 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라도 한 것처럼 더 이상 경험해볼 수 없는 것처럼 다룬다. 그러므로 나는 약간 대담하게 <30년만의 대결>을 정의 내려 보고 싶다. 이 영화는 조건의 영화이다. 어떤 조건? 자기 자신도 잘 알지 못했던 도약의 자리에로 가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이 무엇인지를 물어보는 영화. 그는 계속해서 질질 끌려가고 있는 것만 같은 이 과정을 어디서 끊을 수 있는 지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직 < 잡초 >를 자기가 제작하고 연출하기 전의 일이다. 여기서는 그걸 영화 안에서 두리번거리고 있다. 미세한 변화들. 하지만 되풀이되는 실패들. 그러면서 어딘가에 기대서라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싶어 하는 장면들. 효과들은 잘 발휘되지 않고 있으며 무언가 의심만이 둘러싸고 어수선하게 활동하는 중이다. 하지만 나는 분명한 변화를 감지하였다. 무엇보다도 이제까지 자기 영화로부터 낯설어지기 시작하는 임권택.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풍경의 쇼트들, 그 낯섦. 그보다 더 분명한 변화의 조짐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므로... (계속)
이 영화는 공포영화가 아니다. 아마 제목을 보고 먼저 그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 원한의 두 꼽추 >는 무협영화이다. 그렇게 부르기는 했지만 그 시절 충무로에서는 일부러 (해서는 안 될 유치한 짓을 하고 있다는 자괴감으로) ‘칼쌈’ 영화라고 부르거나 칼 소리가 부딪친다고 해서 의성어를 빌려 ‘짠짠바라’라고도 불렀다. 물론 이 표현은 일본영화에서 시대활극이나 임협물(任俠物)의 ‘殺陳’ 활극 시퀀스를 부르는 짠바라(チャンバラ)에서 온 말이다. 임권택 의 영화에서 무협영화는 1967년 < 풍운의 검객 >으로 일시적으로 나타났고 그런 다음 < 잡초 > ‘이후’ 그의 목록에서 완전히 사라진 장르이다. 종종 무기력한 방향상실. 나는 지금 < 뇌검 > < 월하의 검 > < 비검 > < 요검 >, 그리고 < 삼국대협 >을 떠올리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이 제목들을 연도별로 순서대로 썼다. 이 영화들이 기괴해 보이는 것은 시행착오를 통해 자기의 세계를 확장시켜나간 임권택의 영화 중에서 유일하게 점점 나빠져 갔다는 것이다. 임권택은 이 영화들에 거의 공감하지 못했다. 그가 아무 거리낌 없이 그 시절 연달아 서울에서 개봉한 호금전의 < 용문의 결투 >와 장철의 <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獨臂刀 )>를 흥미진진하게 보았다고 대답하긴 했지만 영화적으로 아무런 공명을 하지 못했음이 틀림없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임권택은 이 실패들을 이미 준비된 결과처럼 받아들였다.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직업감독으로 그저 제안을 받으면 찍어야 했던 그런 시절이 내게 있었던” 영화들이다. 그렇게 말은 했지만 임권택은 이 영화들을 만들면서 반대로 직업감독으로서 자신의 위치에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여기서 끝나는 것은 아닐까. 이것이 내가 사라져 가는 과정에 놓인 증명은 아닐까. 몰락해가는 영화산업. 참혹한 이중검열. 한국영화에서 1970년 혹은 1971년은 설명하기 까다로운 시간이다. <뇌검> <월하의 검> <삼국대협> 이 영화는 제목이 두 개다. 다른 제목은 <흑룡가의 쌍검>인데 (영진공 시절에 정리한) 예전의 감독 연보에는 두 편의 제목이 마치 다른 영화처럼 각각 등재되어 있었다. 같은 영화사. 같은 감독. 같은 배우, 같은 각본, 같은 촬영. (정리된 문헌에 따르면) 거의 같은 내용. 그래서 처음에는 한 편의 영화 스텝들과 배우들을 이끌고 동시에 두 편의 영화를 만들 줄 알았다. 1970년대에는 종종 그렇게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내가 들은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 감독이 제작자일 때 스텝들과 배우와 한 편의 영화 계약을 한 다음 시침 뚝 떼고 한 편의 영화를 찍는 척하면서 약간씩 대사와 세트를 바꾸면서 두 편의 영화를 찍고 나중에 편집해서 둘로 나누어 개봉했다가 분쟁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다시 정리된 자료에서 <흑룡강의 쌍검>이라는 제목은 사라졌고 영화 자막에 올라오는 대로 < 원한의 두 꼽추 >만 남았다. 그런데 사라진 제목도 잘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우선 이 영화에는 중국 동북부와 내몽고 국경 사이를 흐르는 헤이룽강(黑龍江)은 고사하고 강 자체가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쌍검은 한 명의 무사가 두 자루의 검을 지니고 다니는 것인데 아무도 두 자루의 검을 지니고 다니지 않는다. 그렇다고 두 자루의 검이 각자 나뉘어서 운명을 따라 순환하는 것도 아니다. 이 영화에서 문제가 되는 천검(天劍)은 단 한 자루의 명검이다. 구태여 말하자면 기구한 운명으로 서로 헤어져 자란 두 쌍둥이 형제를 비유하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조롱하듯이 말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좀 기묘한 방식으로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사실도 덧붙여야겠다. 내 관심은 여기에 있다. 한걸음 뒤로 물러난 < 원한의 두 꼽추 >는 마치 물구나무를 선 것처럼 임권택 에 대해서 미처 다른 영화들이 말하지 못한 것을 거의 외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자포자기가 항상 가로막고 있던 어떤 방어선을 일시적으로 치워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떤 방어선? 그렇다. 내가 1960년대 임권택의 영화를 보면서 반복적으로 발견하는 것은 약간 추상화된 할리우드 고전 영화의 문법과 다소 두렵다는 듯이 공동체의 운명에 복종하기라도 하는듯한 굴복 사이의 좁힐 수 없는 공백이다. 서로 비대칭인 둘 사이의 거리는 임권택이 그것을 조선 시대, 혹은 한국전쟁의 전쟁터, 그리고 휴전 이후의 남한 사회에서 할리우드 장르영화들이 요구하는 것을 수행하려는 데서 발생한 것(들)이다. 그런 다음 그 공백을 메우는 과정에서 임권택은 풍경을 발견했고,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가혹한 삶을 보았고, 다시 한 번 그 둘 사이에서 벌어지는 모순의 시간이 근대의 역사라는 것을 발견하는 것으로 밀고 나아갔다. 나는 먼저 임권택이 이상할 정도로 웨스턴 영화들에 대한 열렬한 애호가라는 사실을 일깨우고 싶다. 물론 웨스턴이 일본 시대활극 영화들을 경유하여 홍콩에 도착했고 그런 다음 대만 무협소설과 결합하여 무협영화가 만들어졌지만 임권택은 그런 계보에 관심이 없었다. 분명히 거의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 돌아온 왼손잡이 > < 황야의 독수리 >나 <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나린다 > <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마라 >를 만들었을 때 임권택은 틀림없이 자신이 본 웨스턴 영화들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물론 그의 영화에서 누군가는 안소니 만을 볼 것이고, 누군가는 오토 플레밍거를 찾아낼 것이며, 아마 대부분은 윌리엄 와일러와 조지 스티븐스를 떠올릴 것이다. 이 영화들은 웨스턴 영화들의 거의 끝나가는 종말기에 마주할 수 있었던 거의 모든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악당들은 이제 더 이상 바깥에서 찾아오지 않으며, 주인공은 불안에 떨고 있고, 정의가 지켜지는 것은 종종 서사의 차원 바깥에서 이루어진다. 거기서 계보를 그려보는 것은 좀 더 나중에 할 생각이다. 하지만 임권택에게 좀 이상한 방법으로 할리우드영화의 고전주의가 지닌 우아한 아름다움이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을 뛰어넘어 승리를 거두는 순간을 경험하고 싶어 하는 순간을 목격할 때마다 다소 당혹스러워진다. 이를테면 드라마를 따라가다가 갑자기 한순간 그 신을 어떻게 찍을 것인지를 몰두하는 것만 같은 시간과 마주하게 된다. 그때 예상치 않은 상황이 나타난다. 임권택은 고전적인 가치들에 대해서 어떤 두려움을 가진 것처럼 보존하고 싶어 한다. 단지 이것은 권선징악이라든가 아니면 비극을 수행하기 위하여 하여튼 결말을 맺어야 한다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오히려 그의 비극은 다른 데서 온다. 임권택은 어떤 경우에도 차라리 주인공이 희생될지언정 세상이 몰락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물러난다. 어쩌면 이것이 그의 영화에서 기쁜 엔딩이 드문 이유인지도 모른다. 약간 과도할 정도로 단순하게 말하고 싶다. 임권택의 영화에서 보여주는 시각적인 아름다움이 가끔 기이하게 보이는 것은 그가 이미 바로크 시대에 접어든 웨스턴 영화에서 자기 자신도 모르게 감명받은 데서 오는 흔적일 지도 모른다. 그런 다음 이 바로크적 미장센들은 1969년 혹은 1972년을 통과하면서 대부분 망가져 버렸다. 장기적인 과정에서 그 자신의 탈색과정, 하지만 일시적으로 그것이 이 시기의 임권택을 우울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원한의 두 꼽추>는 이 시기에 놓인 영화이다. 첫번째 시간: 약을 탄 술을 마시는 지원필 두번째 시간: 꼽추가 된 지원필 다음 질문은 그렇다면 여기서 산산조각 났다고 생각한 파편 속에서 무엇을 물구나무 세울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영화의 줄거리를 설명하는 것은 몹시 번잡한 작업이 될 것이기 때문에 다소 따분하지만 도식적으로 분류하는 방식을 택할 생각이다. 우선 세 개의 시간. 첫 번째 시간은 이야기 속의 이야기이다. (이 장면은 이야기 도중에 흑백으로 되돌아간 다음 (flash_back) 진행된다) 검술의 한 유파에서 다음 장문을 가리는 자리인데 사형인 지원필은 가장 무술이 뛰어나지만 장문의 딸인 달래는 그의 경쟁자인 진수왕을 사랑한다. 그래서 장문을 가리는 자리에서 진수왕이 이길 수 있게 음모를 꾸며 지원필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척하면서 정신이 혼미해지는 약을 탄 술을 권한다. 지원필은 대결을 하다 쓰러지고 진수왕은 그의 등을 내리쳐 꼽추로 만든다. 뛰어난 무술을 가진 남자의 약한 마음을 파고든 사악한 계획을 가진 아름다운 여인. 그 여인의 비열한 애인. 공모 앞에서 좌절한 미래의 시간. 그러므로 이 남자는 이제 미래의 시간을 되찾고자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불구가 되어버린 이야기. 두 번째 시간은 첫 번째 시간으로부터 일정한 간격을 벌려놓은 다음 다시 이어진다. (그리고 여기가 영화의 첫 장면이다) 꼽추가 된 지원필이 돌아와 진수왕에게 대결을 신청한다. 무술로는 지원필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진수왕에게 그의 아내가 된 달래가 그의 친구인 정태성을 찾아가 모든 검을 잘라버리는 명검 천검(天劍)을 빌려오면 된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그렇게 아끼는 검을 빌려 줄 리가 없다고 하자 그러면 빼앗아오면 되지 않느냐고 재촉한다. 새로운 음모. 새로운 적. 새로운 복수의 계열이 여기서 생겨난다. 진수왕은 그의 친구를 죽이고 후환이 두려워 마침 절에서 아이를 낳은 그의 아내까지 참하려 한다. 그의 아내는 쌍둥이 청과 용을 낳았는데 진수왕의 부하들이 절에까지 찾아오자 자신은 청을 감싸 안고, 그리고 하인은 용을 안고 도망친다. 낳자마자 헤어진 형제, 그들의 기구한 사연. 그들은 성장한 다음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해결하기 위해 돌아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두 번째 시간의 복권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그들은 둘로 나뉜 그들 사이를 확인하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어야 할 것이다. 하나를 둘로 나누고 그런 다음 이중으로 동여맨 세 개의 이야기. 아내는 부하들에게 쫓기다가 청을 절에 숨겨놓은 채 자신의 몸만 피신하고, 하인은 용을 나무에 숨겨놓고 부하들의 눈을 자신에 돌린 다음 죽음을 맞는다. 마침 진수왕과 대결을 하러 가던 지원필은 숲에 숨은 진수왕의 부하들과 싸우다가 그만 나무에 숨겨놓은 아이를 적으로 오해하는 바람에 상처를 입히고 급히 달려간 의원으로부터 이 아이가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꼽추가 되었다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 미처 계산에 포함되어있지 않았던 실수. 자신의 원수에게 꼽추가 된 이 남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를 이번에는 자신이 꼽추로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야만 하는 운명에 떨어진다. 무엇이 무엇을 삼켜버리고 있는 것일까. 비극 안의 비극. 참극 속의 참극. 죄 값을 받기 위해 찾아간 자가 새로운 죄 값을 치르는 자리에 간다. 지원필은 진수왕과의 대결에서 천검에 그의 칼이 잘리자 몸을 피신한 다음 꼽추가 된 아이와 함께 산에 묻혀 살아간다. 여기까지 영화가 시작된 지 17분 동안의 이야기이다. 세번째 시간: 꼽추가 된 용 그런 다음 세 번째 시간이 시작한다. 마치 이제까지의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될 이야기의 서론이기라도 한 것처럼 여기서 갑자기 긴 시간을 건너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벌어질 사건들은 시간의 기호들을 놓고 다투는 해독의 능력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꼽추가 된 용은 어른이 되었고 지원필을 아버지로 삼아 산속 오두막에서 살아간다. 청은 산사의 절에서 스님으로부터 무술을 전수받고 속세로 돌아온다. 당신이 상상하는 다음 이야기는 이렇게 진행될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청과 용은 형제임을 알게 될 것이고 그리하여 여기에 지원필이 가세해서 진수왕에게 복수를 할 것이다. 그렇게 풀려나간다면 < 원한의 두 꼽추 >가 당신을 안심시키기는 하겠지만 너무 진부해서 더 이상 볼 이유를 찾지 못할 것이다. 물론 이 세 번째 시간이 복수의 활극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임권택 은 차례로 우리의 기대를 차단시킨다. 우선 지원필은 용에게 복수하기를 원치 않는다. 그러면서 그 자신도 진수왕에게 복수를 포기하고 살아간다. 그는 그냥 주어진 세계 자체를 인정한다. 그는 마치 복수 대신 다른 어떤 것을 하면서 살 수도 있는 것 같은 태도를 취한다. 어떤 것? 아버지의 자리. 단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자리. 그는 용이 자기 품에 안겨 꼽추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게 자신의 진정한 운명인 것처럼 받아들인다. 그래서 용은 지원필로부터 어떤 무술도 전수받지 못했다. 청은 (아마도 과거를 알고 있는 것만 같은 태도를 취하는) 스승으로부터 자신의 부모가 일찍 돌아가셨으며 속세에 나가서도 자신보다 뛰어난 무술을 지닌 고수들이 있으니 함부로 나서지 말라는 충고를 듣는다. 그러므로 청은 자신의 부모뿐만 아니라 동생에 관한 어떤 정보도 얻지 못한다. 그 둘이 쌍둥이이기는 하지만 둘 사이를 오간 재빠른 이미지의 교환을 통해서(parallel_editing) 서로 전혀 닮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좀 더 중요한 순간은 스승의 교훈이다. 늙은 노승은 청이 지닌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지만 그에게 복수 따위란 처음부터 청이 해야 할 의무가 아니라는 기회를 준다. 의무로부터 풀려난 자유. 하지만 영화가 이제부터 할 일은 당연히 청의 자유를 다시 의무로 되돌리는 것이다. 그때 여기에는 정말 그 의무가 자유를 포기하고서라도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라는 질문이 뒤따라 올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두 사람을 셈에서 빼놓으면 안 된다. 한 사람은 물론 복수를 하기 위해 두 번째 시간에 돌아온 지원필이다. 만일 그가 돌아오지 않았다면 진수왕은 친구 정태성의 명검 천검을 빼앗을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청과 용은 헤어질 이유가 없으며, 그렇게 되면 용은 꼽추가 될 이유가 없으며, ...으로 이어질 연쇄적인 사건들. 그런데 세 번째 시간이 되자 용을 키운 지원필은 정반대로 복수를 완전히 포기한다. 그는 용에게 마을로 내려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그 이유는 다시는 진수왕과 다시 얽히는 순간을 피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고 용이 모피를 팔기 위해 마을에 내려가 진수왕의 아들과 만나면서 마찰이 벌어지고 지원필은 자기 발로 진수왕을 찾아가게 된다. 여기서 그 둘 사이의 멋진 대결의 순간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지원필은 이미 대결할 수 없는 자신의 육체를 드러내기라도 하듯 지팡이에 의지하고 몸을 불균형하게 뒤뚱거리면서 가까스로 진수왕의 성에 이른 다음 보자마자 무릎을 꿇고 용을 풀어달라고 하소연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복수를 포기한 지 오래이며 이미 그럴 수도 없는 처지임을 몇 번이고 호소한다. 여기엔 나중의 결정적 장면을 위한 카타르시스를 상승시키기 위해 무언가 우리를 괴롭히면서 준비된 어떤 카드도 없다. 정말 그는 복수할 의사가 없으며 또한 그 순간을 위해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다. 오로지 감옥에 갇혀있는 용을 구하겠다는 생각뿐이다. 말하자면 지원필은 여기서 완전히 아버지가 되어있다. 그가 겉보기에는 비루해졌지만 오히려 지원필만이 유일하게 복수의 의무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그 새로운 의미에 누구보다도 충실해진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지원필만이 유일하게 두 번째 시간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원한의 두 꼽추 >가 몹시 우스꽝스러워 보이긴 하지만 여기에는 원인이 있자 그 결과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전통적인 주인공으로부터 벗어나 자기에게 부여된 의무를 위해 희생할 준비가 된 고전적인 주인공에로의 어떤 점핑이 있다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임권택 은 분명 여기서 카타르시스와 냉소적으로 대결하고 있다. 청과 용의 어머니 두 번째 인물은 아마도 당신이 잠시 잊었을 청과 용의 어머니이다. 그녀는 두 번째 시간에서 청을 버리고 무사히 도망쳤으며, 그런 다음 의미심장하게도 용과 청이 진수왕의 마을에 들어섰을 때 그녀도 마을의 주막을 찾아온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설명해야겠다. 그녀는 청과 함께 마을에 들어선다. 물론 아직 그 둘은 서로 모르는 사이지만 마치 거기에 모성의 직감이 작동하기라도 한 것처럼 갑작스러이 그녀 얼굴로 다가간 카메라(zoom_in)를 통해 드러난 약간의 놀라움을 담은 표정이 말없이 그것을 설명하고 있다. 그런 다음에야 용이 빼앗긴 모피를 찾기 위해 주막에 찾아오면서 세 사람은 처음 한자리에 모인다. 여기서 이상한 것은 두 쌍둥이의 어머니는 청을 보자마자 한 눈에 알아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용을 볼 때에는 그저 사태를 구경하듯이 쳐다본다. 이 장면만을 떼어놓고 보면 잘 설명이 안 된다. 그런데 한참을 더 지난 다음 이 영화에서 가장 이상한 롱 테이크와 마주하게 된다. 문제의 신. 마침내 지원필과 용의 어머니이자 정태성의 아내를 만났을 때의 장면은 내가 알고 있는 한 임권택 의 모든 영화중에서 가장 이상한 장면 중의 하나이다. 다소 길긴 하지만 이 장면의 대사는 전부를 인용할만한 가치가 있다. 임권택은 수없이 잘게 쪼갠 이 영화에서 이 장면을 끊지 않고(long_take) 한 번에 찍었다. 지원필은 그녀의 주변을 빙빙 돌면서 대사를 하고 두 번 마치 심리적인 마음의 동요를 찍는다는 듯이 그녀의 얼굴에 다가간(zoom_in) 다음 다시 물러난다(out). 01:06:59 ~ 01:08:18 롱테이크 _ “용을 어디다 숨겼나?” _ “당신이 가진 검법을 용에게 전수해준다는 약속을 해주면 만나게 해드리죠” _ “그래서 어쩌자는 거지?” _ “용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야 합니다. 진수왕을 죽여서 억울한 죽음을 당하신 남편의 원혼을 위로해드려야죠” _ “용은 그 사실을 알고 있소?” _ “아직은...” _ “댁이 어머니라는 사실도?” _ “물론...” _ “댁은 내가 용을 어떻게 키웠는지 잘 모르실 겁니다. 핏덩이 어린 것을 그저 안고 비바람 눈보라 치는 긴긴 세월 헤매면서 이집 저집 돌며 동냥젖을 빌어 먹이며...” _ “말씀을 안 하셔도 짐작은 갑니다. 하지만 용은 아버지 원수를 갚아야 합니다” _ “어린 것을, 그 불쌍한 어린 것을 죽음 속에 몰아넣을 수는 없지 않소” _ “그게 자식 된 도리입니다” _ “내가 대신 원수를 갚아 드린다면?” _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용을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 _ “당신이 어머니라는 사실도 비밀에 부칠 수 있겠소?” _ “...물론” 나는 처음에 이 장면 앞에서 몹시 당황한 나머지 이제까지 영화를 보면서 이들 사이의 인물 관계를 잘못 파악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라는 생각마저 했다. 대사를 따라가면서 차례대로 열거해보자. 우선 첫 번째, 어머니는 지원필을 만난 다음 용을 그동안 길러준 것에 대해서 단 한마디도 감사의 표시를 하지 않는다. 두 번째, 용을 납치한 사람은 그를 낳은 어머니이다. 그런 다음 기른 아버지를 협박하고 있다. 그녀는 용에게 단 한 번도 자신이 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히거나 혹은 따뜻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세 번째, 어머니는 지원필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용에게 검술을 가르쳐줄 것을 요구한다. 누구라도 반대의 판본을 떠올릴 것이다. 만일 여기서 지원필이 이제 생모가 나타났으니 내가 할 일은 다 했으며 내 갈 길을 가야겠소, 그러니 나머지 일은 당신들이 서로 알아서 처리하시오, 난 이미 복수를 포기했소, 라고 해도 사실 그를 붙잡을 명분이 없다. 그런데도 용의 어머니는 용을 볼모로 삼으면 지원필이 반드시 자신의 요구를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문장의 이상한 주술관계를 유심히 들여다보기 바란다. 여기서 마치 그 두 사람은 부모의 자리가 바뀐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넷째, 용의 어머니는 용이 아버지의 복수를 해야 한다면서 그에게 출생의 비밀을 이야기할 생각이 없다. 그렇다면 용은 왜 복수를 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 차라리 그의 행위는 복수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일까. 게다가 용의 어머니는 자신의 정체를 밝힐 생각조차 없다. 그렇다면 용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다섯 번째, 더 이상한 것은 지원필의 반응이다. 그는 생모가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버지 역할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심지어 두 사람의 대화에서 용의 부모는 그를 낳은 어머니가 아니라 그를 키운 지원필인 것처럼 보인다. 여섯 번째, 가장 이상한 대화는 마지막 순간에 벌어진다. 지원필은 차마 용이 피를 보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내가 대신 원수를 갚아준다면?”이라고 말을 한다. 잠깐만. 그런데 진수왕은 동시에 지원필의 원수가 아니었던가. 그는 자신이 꼽추가 된 사연을 완전히 잊은 것처럼 행동한다. 이렇게 말하겠다. 여기서 지원필에게 첫 번째 시간의 계열은 완전히 삭제되었다. 이제부터 지원필은 그 자신이 아니라 오로지 용을 위해서 진수왕과 “죽음 속에 몰아넣는” 대결로 뛰어든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용의 어머니이다. “그 불쌍한 것을 죽음 속에 몰아넣을 수는 없지 않소”라고 물을 때 그 질문은 복수에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그 행위는 사실상 자살적 몸짓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단호하게 “그게 자식 된 도리입니다”라고 대답한다. 나는 이 대답을 계산해보고 싶다. 지원필은 복수가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고 경고하는 데 그래도 그걸 해야 한다고 말할 때 용의 어머니는 만일 그걸 할 수 없다면 자식으로서 차라리 죽는 편이 나은 선택이라는 말을 하는 중이다. 그런데 그 죽음이 어머니로서의 그녀뿐만 아니라 죽은 남편의 아내로서의 그녀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런 다음 가장 이상한 질문과 대답이 등장한다. 지원필은 그래서 자신이 대신 복수를 하겠다는 질문을 하자 용의 어머니는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용을 당신께 드리겠습니다”라고 대답한다. 나는 이 대답 앞에 약간 멍해졌다. 용은 물건이 아니다. 혹은 금은보화가 아니다. 용은 사람이다. 사람일 뿐만 아니라 그녀의 아들이다. 그런데 그녀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심지어 그런 제안을 한 것도 아닌데, 자신이 먼저 지원필의 뜻을 잘 알기라도 하듯, 그가 차마 꺼내지 못한 말을 대신하기라도 하듯, (한 번 더 반복하자면)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용을 당신께 드리겠습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심지어 지원필은 그 대답을 받아 “당신이 어머니라는 사실도 비밀에 부칠 수 있겠소?”라고 다시 묻는다. 용의 어머니는 약간 망설이는 표정을 지은 다음(zoom_in) “...물론”이라고 대답한다. 물론, 이라고 했나요? 그 질문에 대해서 용의 어머니의 올바른 대답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이라는 일망의 망설임이 거기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도대체 그 요구에 대해서 “...물론”이라는 대답이 가져오는 의미의 반사적인 메아리는 얼마나 이상한가. 그 대답에는 만일 당신이 아들을 대신해서 남편의 복수를 수행한다면 나는 기꺼이 아들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라는 말이 압축되어 있다. 그건 남편의 복수가 아들의 의미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뜻인지, 아니면 용의 존재가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인지, 잠시 동안 그 둘 사이에서 어리둥절해진다. 지금 이 두 사람의 거래는 얼핏 보기에는 장르의 규칙을 철저하게 따르고 있는 것 같으면서 한편으로는 완전히 벗어나 있다. 서로의 대사를 따라가면서 이런 거래를 보는 영화는 무협영화가 아니라 멜로드라마이다. 그때 이 두 사람은 언제나 아이를 사이에 놓고 낳은 어머니와 기른 어머니의 만남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아이가 보고 싶어서 낳은 어머니가 찾아오고 기른 어머니는 차마 기른 정 때문에 아이를 떠나보내지 못한다. 이 장면을 보면서 다소 아이러니한 심정으로, 희미하게라도, 하지만 누구라도, 정소영 의 < 미워도 다시 한 번 >을 떠올렸을 것이다. 1968년 7월 16일에 개봉한 다음 가장 유명한 멜로드라마 중의 한편이 된 영화. 어린 아들 김정훈을 사이에 둔 두 엄마 문희와 전계현. 물론 둘의 거래는 여기서 갈라선다. 가난한 형편의 낳은 어머니는 부잣집 기른 어머니를 만난 다음 그녀가 착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아이를 부탁하고 돌아선다. 아이를 낳지 못해 기른 엄마는 낳은 엄마에게 그 아이를 잘 기르겠다고 맹세한다. 물론 그다음 다시 우여곡절이 있다. 하지만 지원필과 용의 어머니는 기른 아버지와 낳은 어머니라는 비대칭을 사이에 둔 다음 고통스럽게 대중들에게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공감의 감상적인 눈물을 냉소적으로 뒤틀기 시작한다. 낳은 어머니는 기른 아버지에게 그 정을 미끼로 하여 자기의 목표를 이루려고 한다. 얼핏 보면 그녀는 아내로서 충실하기 위해 어머니의 자리를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은 이 비대칭을 좀 더 심층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죽은 남편은 아내가 자신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포기하는 것과 이제 돌이킬 수 없게 이미 죽은 자신의 헛된 복수를 하는 것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느 쪽을 권했을까. 지금 지원필이 빼앗으려는 것은 사실상 용의 아버지의 자리, 그러니까 용의 어머니의 남편의 자리인 것이다. 차라리 그녀는 용을 지원필로부터 빼앗아 강제로 삭제된 남편의 자리에 돌려보내서 가문을 잇게 만드는 것이 진정해야 할 일이 아닌가. 좀 더 도식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유령이 되어버린 남편의 빈자리를 메울 수 있는 사람은 그의 아들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 아들인 용이 가문으로 돌아와 공백을 메울 때 비로소 그녀의 진정한 역할을 다하는 것이 아닐까. <미워도 다시 한 번>(1968) <마더>(2009) 그러나 우리를 좀 더 복잡한 심경으로 이끄는 것은 그 둘의 자리 그 자체이다. 우리들에게 모성애는 거의 신성불가침의 영역처럼 문화의 거의 모든 코드에서 가장 보수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자식에게 희생적이며, 자애롭고, 언제든지 자신을 바칠 준비가 되어있는 가족 안의 희생양. 이 사랑의 과잉을 실재의 자리에서 가까스로 다룬 영화가 봉준호 의 < 마더 >이다. 그러나 임권택 은 이 자리에 아버지를 가져다 놓은 다음, 그것도 낳은 아버지가 아니라 기른 아버지를 가져다 놓은 다음, 그 자리에서 낳은 어머니를 대립시킨다. 그런데 그 대립은 성립하는 것일까. 누구라도 여기서 멈칫 한 다음 그 둘 사이에 어떤 비밀이 담긴 서사가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의심을 가질지 모른다. 그런 건 없다. 이 설명을 위해서 여기에 미처 등장하지 않았지만 셈에 포함시켜야 할 세 번째 등장인물을 생각할 차례이다. 그건 이 자리에 없는 다른 한 명의 쌍둥이 청이다. 내가 영화를 다 본 다음 다소 의아하게 여긴 것은 청과 용 둘 사이에 누가 형이고 누가 동생인지 단 한 번도 구분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 장면에 이르기까지는 물론이고 이 순간을 지난 다음 마지막 장면까지 그들은 서로를 부른 적이 없다. 더 이상한 것은 이 형제는 끝내 힘을 합쳐 아버지의 원수 진수왕과 싸우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 지원필이 힘겹게 진수왕과 그의 아내 달래와 그의 아들과 싸우는 동안에도 청은 자신의 원수를 위해 용과 싸우다가 (이미 그럴 필요가 지난 서사의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팔목 하나를 잘라버리기까지 한다. 청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을 하면서 어떤 때는 지원필과 용을 돕고, 어떤 때는 진수왕의 식객으로 머물면서 그의 편을 든다. 마침내 청이 용의 칼에 찔려 숨지면서 그의 옷 속에 숨겨져 있는 형제임을 밝히는 문신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 둘은 비로소 포옹한다. 그리고 둘 중 하나만 살아남는다. 여기서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 중인 것일까. 임권택 에게는 기이한 계산법이 있다. 너무나 이상한 계산법. 누군가는 이걸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공감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당신이 어느 쪽에 서서 바라보건 계산법 자체를 무시한다면 그 이후를 더 이상 따라오기 힘들지 모른다. 마지막 장면에서 내가 신기하게 바라본 것은 청과 용이 힘을 합치는 대신 죽을 때까지、장르의 컨벤션 따위는 완전히 무시하고 정말 죽을 때까지, 그 둘이 마주 싸운다는 사실이다. 마치 하나만 남아야 한다는 듯한 칼부림. 이때 이 장면을 거슬러 올라가서 물어보고 싶어진다. 혹시 처음부터 둘 중 하나만 남아야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표현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어머니는 용에 대해서 별다른 욕심이 없다. 그녀는 두 명의 쌍둥이 중에 청은 알아보면서 용은 알아보지 못한다. 그런 다음 용이 자기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그 사실을 숨기는 것은 지원필이 아니라 그녀 자신이다. 심지어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 아들을 담보로 하여 지원필을 협박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자신의 아들이라는 걸 알아본 청에게는 단 한 번도 복수를 요구한 적이 없으며 그걸 전달하기 위한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다. 마치 지금으로 충분하고 앞으로도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어달라는 것만 같은 태도. 자식과 어머니 사이에 벌어진 이 이상한 채무관계. 이와 비슷한 관계를 임권택 의 영화에서 십 년 후에 다시 보게 된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다. 그 영화는 < 길소뜸 >이다. 물론 <길소뜸>과 < 원한의 두 꼽추 > 사이에는 단순하게 시간적인 간극 이상의 복잡한 설명을 요구하는 차이가 존재한다. 하지만 나는 요점에 도달하기 위해서 사태를 단순하게 만들고 싶다. 줄거리의 환기. 낳은 어머니 화영은 한국전쟁 때문에 그만 아들을 피난통에 잃어버린다. 그런 다음 그녀는 재혼을 하고 다른 자식들을 낳는다. 그 아이의 아버지 동진은 그녀를 오랜 시간 찾아 헤매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다른 여자를 만나 결혼하고 역시 그녀와의 사이에서 자식을 낳는다. 그런 다음 KBS 방송국이 벌인 이벤트인 ‘이산가족 찾기’를 위해 여의도에 펼쳐놓은 만남의 광장에서 우연히 (필연적으로?) 다시 만난다. 잃어버린 자식을 함께 찾던 두 사람은 어쩌면 아들일 지도 모르는 석필이라는 사내를 만나러 춘천에 간다. 석필도 결혼을 했고 자식이 있다. 그런데 그동안 석필은 고아로 함부로 자랐으며, 교양도 없이 거칠고, 사사건건 화영과 부딪친다. 아니, 그보다 화영은 석필을 보자마자 자기 아들이라는 사실을 느끼면서도 이 사내가 자기에게 다가오는 것을 거부한다. 단지 세월이 이 두 사람을 낯설게 만든 것이 아니라 그 둘 사이에 놓인 계급이 어머니와 아들을 갈라놓는다. 그 둘 사이엔 어떤 정도 없다. 석필에게는 어느 날 갑자기 돈 많은 여자가 나타난 것이며 자신을 어떤 조건도 없이 단지 아들이라는 이유로 경제적인 도움을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한다. 화영은 그걸 느낀다. 이 사내가 지금 자기에게 필요로 하는 것은 어머니(와 자식이라는 관계의 복원 혹은 화해)가 아니라 돈이라는 사실을 본다. 화영은 유전자 검사를 요구해서 그걸 구실로 하여 석필이 아들이라는 사실을 부정한 다음 현재의 가족들을 만나러 떠난다. <원한의 두 꼽추>의 아들과 어머니 <길소뜸>의 아들과 어머니 두 어머니는 거의 동일한 이유로 자기가 낳은 아들을 부정한다. 그것은 그 아들의 사회적으로 추락한 지위이다. 그리고 그 추락의 과정을 통해 학습된 행동이 즉각적으로 거부의 태도를 불러일으킨 다음 그 둘 사이의 간극은 점점 더 멀어지기 시작한다. 좀 더 괴상할 정도의 유사한 장면을 지적할 수 있다. (< 원한의 두 꼽추 >에서) 용은 죽은 동물의 껍질을 벗긴 모피를 들고 와 진수왕의 아들과 흥정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어머니와의 첫 번째 대면이다. 좀 더 정확하게 용은 어머니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고, 어머니는 그가 용이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한 채 쳐다본다. 서로에 대한 지식의 바깥에 놓여있지만 총체적인 국면의 지식 속에 놓인 그들. (< 길소뜸 >에서) 화영과 동진, 그리고 석필은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길을 지나가던 개를 그만 치어 죽인다. 석필은 피 흘리며 죽은 개를 안고 횡재를 한 표정으로 보신탕을 해먹자고 할 때 화영은 그 모습을 보고 치를 떨며 내다 버리라고 소리 지른다. 여기서 단지 두 사람 사이의 차이만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그 사이에는 세월의 간극이 이 둘 사이에서 공백의 정치학을 작동시키고 있는 중이다. 물론 임권택 은 그 과정을 사회학적으로 설명하거나 역사적인 인과관계로 환원시키지 않는다. 그 대신 현존재의 시간이 자기 앞에 놓인 공백의 간극과 마주쳤을 때 그 앞에 놓인 가늠할 수 없게 깊은 심연의 무시무시한 재난을 임권택은 영화라는 방법을 동원해서 그 두 개의 시간을 오간 다음 몸서리치게 쳐다본다. 내 질문은 여기에 있다. 한쪽은 논리적으로 완전하게 설명되는데(< 길소뜸 >) 다른 한쪽은 어떻게 해서도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 두 개의 장면에서 작동하는 모성애의 기계는 완전하게 동일하게 작동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여기서 기계라는 말은 다소 부담스럽긴 하지만 완전하게 (캉길렘에서 출발하여 푸코를 경유한 다음 가타리를 거쳐 흘러들어 간) 들뢰즈에게서 빌려온 개념이다. 무언가 잘못 배치된 것 같은 이 장치들은 얼핏 보면 오작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임권택 의 영화 안에서 그것은 제대로 활동하고 있는 중임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같은 순간에 전혀 다른 맥락 안에서 동일하게 작동할 리가 없지 않은가. 나는 이 대답을 임권택의 전기로 덮어쓰고 싶지 않다. 그건 아무 해결도 아닐 것이다.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그러므로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기괴해 보이기까지 한다. 물론 복수는 성공적이었다. 지원필은 진수왕이 여전히 천검을 지니고 있는데도 대결 끝에 죽이는 데 성공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고 진수왕과 결혼한 달래를 죽이는 데도 성공한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낳은 아들을 죽이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청이 죽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때 청은 이 대결 끝에 죽은 것이 아니라 용과의 싸움에서 죽은 것이다. 그는 죽기 전 끔찍하게도 용의 한쪽 손을 자르는 데 성공한다. 용은 이기기는 했지만 미처 알지 못했던 그의 다른 형제로부터 한쪽 손을 잃는다. 이제부터 용은 마음으로는 자신의 형제를 죽였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 할 것이며, 다른 한 편으로 그 형제로부터 자신의 한쪽 손을 잃었다는 분노를 안고 살아갈 것이다. 그런데 청은 지원필과는 아무 사이가 아니다. 그러므로 청이 죽은 것은 지원필에게 어떤 감정도 끌어내지 않는다. 남은 또 한 사람. 쌍둥이의 어머니는 자신의 소원대로 복수에 성공하긴 하지만 자신이 한눈에 알아본 아들 청을 잃고 기꺼이 지원필에게 양보하기로 약속한 용은 살아남는다. 그녀는 분명히 지원필에게 약속했다. 만일 지원필이 대신 복수를 한다면, 그녀 자신의 입으로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용을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다음 “당신이 어머니라는 사실도 비밀에 부칠 수 있겠소?”라는 지원필의 요구를 지키지 못했다. 그만 대결 중에 자신이 어머니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영화가 끝난 다음이다. 용을 볼모로 지원필을 협박했을 뿐만 아니라 복수를 해준다면 자신이 용을 포기할 의사가 있음을 알게 된다면 용은 어떤 태도를 취할까. 지원필과 용, 그리고 용의 어머니가 무수한 시체를 뒤로하고 떠나가는 뒷모습이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긴 하지만 이 장면 ‘이후’에 기다리는 것은 유사 가족의 성립이 아니라 이들 사이의 완전한 파국이다. 마지막 장면, 은실의 시선, 참혹한 쇼트들 아직 설명이 끝나지 않았다. 이 마지막 신에서 가장 이상한 점은 그들의 행위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pont_of_view)에 있다. 나는 아직까지 거의 이 영화의 서사에서 얼룩에 가까운 한 인물을 소개하지 않았다. 그건 진수왕과 달래 사이의 딸 은실이다. 은실은 지원필이 용을 풀어달라고 호소하기 위해 성을 찾아왔을 때 갑자기 등장한다. 그런 다음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저 영화에 의지해서만 이야기한다면 오로지 인도적인 차원에서, 지원필과 용의 편을 들면서 아버지에게 자비를 요구한다. 나는 이런 장르에서 적의 딸이 갑자기 주인공 혹은 그이 아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순간을 수없이 알고 있다. 다만 이 서사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새로운 계열의 탄생. 거기에는 예상치 않게 두 사람 사이에, 혹은 둘 중 한 사람에게, 사랑이라는 변수가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괴이하게도 여기엔 그런 코드가 발생하지 않는다. 은실은 용에게 사랑의 감정을 전하는 어떤 기호도 제공하지 않으며, 용은 그녀의 호의에 대해서 단 한 순간도 의심의 제스처를 보이지 않는다. 마치 그 둘 사이는 어떤 감정의 계산도 없이 휴머니즘이 요구하는 희생만이 있는 것만 같은 윤리적 행동을 한다. 그러므로 지원필과 용과 그의 어머니가 은실웰염≠랜옇泉飴句옅개ぐ?#영?사이에서 나눌 감정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임권택 은 사실상 이 서사에서 완전히 외곽에 놓여있는 은실의 시선으로 어느 순간부터 이 마지막 신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이 시선의 논리에 아주 엄격하게 대응하듯이 차례로 쇼트를 소개한다. 그래서 구태여 서사의 관점으로나 혹은 감정선의 흐름에서나 아니면 리듬의 화음에서 무언가 불균질 하거나 불편해지는데도 불구하고 갑자기 죽은 진수왕과 그의 아내 달래와 그 둘 사이의 아들의 시체를 은실의 시선으로 차례대로 보여준다. 세 개의 참혹한 쇼트. 딸이 바라보는 부모의 시체. 여동생이 바라보는 오빠의 시체. 그런 다음 떠나가는 지원필과 용과 그의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은실을 보여준다. 그때 우리는 은실이 어떤 마음인지 전혀 가늠할 수 없다. 그녀는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그녀의 호의는 가장 나쁜 형식으로 돌려받은 것인가. 이 마지막 신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은실이라는 점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가장 불쌍한 사람의 시선.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그녀의 가족 모두를 잃었으며 뿐만 아니라 성의 태수의 딸로서 안락하게 살아가던 삶 전체를 상실한 것이다. 만일 그녀가 이 결말 ‘이후’에 복수를 맹세한다 할지라도 아무도 그녀를 탓할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 더 밀고 나아가면 즉각적으로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 원한의 두 꼽추 >는 아직 충분한 대답을 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그러므로 표면의 설명에 머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임권택 의 이상한 계산법에는 어떤 메타 서사가 있거나 아니면 반대로 아주 은밀하게 감춰진 네트워크가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이 계산법 아래 숨겨진 침묵은 무엇일까. 대부분 숨은 듯이 가려져 있다가 때가 되면 갑자기 나타나 셈을 치르기 시작한다. 나는 수없이 예를 들 수 있다. 이 계산법은 < 화장 >의 마지막 시퀀스에까지 이어진다. 김훈 작가가 미처 쓰지 않은 오상무와 추은주 사이의 마지막 작별인사. 그 이상한 작별의 방식, 이때 거의 대립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선택의 전도가 있다. 여기에 감정의 카타르시스가 있는가? 없다. 그러기는커녕 이야기를 더 이상 진행하는 것이 위태로울 정도로 어리둥절해진다. 기른 아버지 지원필은 용을 위해서 모든 희생적인 요구를 받아들인다. 그는 용이 자기의 충고를 듣지 않고 마을에 내려와 소동을 벌인 끝에 진수왕에게 붙잡히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옛 원수 앞에 와서 무릎을 꿇고 용서해달라고 빈다. 달래가 황금불상을 훔쳐오면 교환하겠다는 제안을 하자 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도둑질을 오로지 용을 위해서 한다. 하지만 황금불상을 훔쳐오는 데 성공을 했음에도 진수왕은 교활하게 지원필이 그 과정에서 무공을 되찾은 것임을 걱정한 나머지 그의 한쪽 팔마저 잘라버린다. 하지만 꼽추에 한쪽 팔마저 잃은 지원필은 이 지경이 되어도 단 한 번도 용을 원망하지 않는다. 당신은 임권택의 계산법이 이 모든 우여곡절을 치르고 난 다음에 낳은 어머니에게서 나온 제안이라는 것을 셈에 포함시켜야 한다. 이 계산법은 어떤 법칙에 근거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간극 사이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환상이 침입하는 과정처럼 보인다. 이때 이 말을 오해하면 안 된다. 여기서 환상이란 말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 계산법이 현실에서는 맞지 않는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현실에서 모든 계산법은 하나의 이데올로기의 수식화이다. 핵심은 이 계산법이 어떤 이득을 취하느냐가 아니라 이 이득을 취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드러내고 있느냐는 것이다. 임권택은 자신의 계산 과정에 진실이 있다고 믿는다. 그때 진실이란 실재의 일부가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계산속에서 우리는 임권택이 드러내는 진실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는 대신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실재의 형상이 무엇인지를 보아야 한다. 영화의 방법이란 자신의 계산에 충실해지는 것이다. 임권택은 여기서 힘겹게 그 셈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용은 꼽추가 되고 한쪽 손이 잘려나가면서 기꺼이 그 계산의 미끼가 되었다. 나는 <원한의 두 꼽추>를 가혹한 영화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임권택은 점점 더 가혹해질 것이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이 영화는 공포영화가 맞을지도 모른다. 감정의 공포. 진실이라는 네트워크의 공포. 찢어진 네트워크 사이의 실재의 공포. 무엇보다도 방법의 공포. (계속) 1971년 78분 컬러 2.35 감독 임권택 태창영화 각본 박철민 촬영 구문석 안길원 김택수 한숙 김청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