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결산
- 감독
- 임권택
- 제작년도
- 1964
- 출연
- 신성일, 김혜정, 이대엽, 장동휘, 최남현, 조항, 이용, 남미리, 한미나, 장민호, 이예민, 추석양, 독고성, 남춘역, 노경희, 장훈, 채랑, 백송, 최성, 이해룡, 지방열, 김왕국, 신소연, 박종훈
사태가 대단히 복잡하지 않은가. 상징적인 것은 직접적인 것이고, 현전은 부재이며, 지연되지 않은 것이 지연되며, 희열은 죽음의 위협이다. 더구나 이런 체계, 대리보충의 이 이상한 경제에 추가되어야 할 특징이 하나 더 있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이미 판독할 수 있었다. 무시무시한 위협인 대리보충은 또한 최초의 가장 확실한 보호라는 점이다. 그 위협 자체에 대해서 말이다. 이 때문에 대리보충을 포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이 말은 내가 아니라 데리다가 「그라마톨로지」의 제2부 두 번째 장 ‘이 위험한 대리보충...’에서 루소의 「참회록」을 설명하며 꺼내 든 것이다. 너무 유명한 문장이라 모두들 이미 잘 알고 있을지 모른다. 나는 구태여 대리보충(la supplement)에 대해서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지 않겠다. 다만 아주 제한적으로 이상하게도 우리를 막아서면서 환원 불가능하게 버티어선 그 흔적을 설명해보고 싶다. 왜냐하면 그 자리는 결정을 가로 막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인가, 저것인가. 결정의 망설임. 그 흔적이 무언가 더해진 잉여의 덧셈에 따라 보충된 것인지(le supplement) 아니면 다른 무언가와 바꿔치기 당한 다음 대리하는 것인지(la suppleance) 그저 하염없이 멈춰 서 있을 수밖에 없는 장소. 물론 루소를 경유하여 데리다가 말하려는 것은 예술과 자연 사이의 대차대조표이다. 나는 거기서 물러나서 단지 이 텍스트 안에서 활동하는 저 텍스트가 왜 항상 환대받지 못하는지를 물어보고 싶다. 왜 스스로 충만하지 못한 채 그 틈새 사이에서 출몰하는 저것은 여기서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저 안의 외침. 바깥이라는 안. 안에 있는 바깥. 무엇이 부족함을 대신하고 그런 다음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일까. 「그라마톨로지」 사태를 좀 단순하게 만들고 싶다. 임권택 의 영화들, 그중에서도 불편한 영화들을 볼 때마다 영화를 구성하고 있는 참조 틀의 어딘가가 부서져 나갔다는 인상을 받는다. 내가 지금 하려는 이야기는 단지 1967년 그 어딘가에서 1977년 어디까지에 한정 지어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 욕망의 결산 >(1963), 혹은 < 달빛 길어 올리기 >(2009), < 신궁 >(1979), 그리고 < 아다다 >(1989). 단지 그 부서져 나간 표면의 범위를 따분하게도 바깥과의 대화라는 식으로 설명하는 것은 충분한 알리바이가 아니다. 여기에는 어떤 과정이 있을 것이다. 각자의 영화는 영화사에 대한 각자의 은유라고 고다르가 말했다. 그걸 단지 어디선가에서 빌려온 영향이라고만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반대로 처음부터 거기 있었기 때문에 안에서 생산되었을 뿐만 아니라 바깥에서 뛰어 들어왔을 것이다. 나는 이 논리를 좀 더 밀고 나아가고 싶다. (스피노자의 표현을 빌리면) 핵심은 안에서 긍정하기 위해 그것은 바깥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전도를 위해서 방법의 전위(轉位)와 그 수순에 따른 재평가의 결과로 나타난 영화에로 다시 되돌아가야 하는 요구를 순순히 따라야 한다. 여기서 왜 내가 까다로운 데리다의 전술적인 용어를 내세웠는지 받아들여 줬으면 좋겠다. 나는 임권택의 영화에서 이 불편함을 말할 때 종종 그 영화에 제한적으로 주어진 데서 설명을 시작하는 것이 잘못된, 아주 잘못된, 그래서 임권택의 진정한 시작의 지점을 놓치는 실패를 항상 가져온 것이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반대로 이것을 최종 결과의 효과라는 데서 시작해보면 안될까. 이유들의 순서에 종속되지 않은 대리, 그사이에 재빨리 끼어드는 보충. 우리는 올바른 시작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만 불편한 실패들 속에서 자기원인의 동어반복 안으로 이끌려 들어가는 악순환을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임권택의 영화 안에서 진화론적인 모델을 거부한다. 그건 그 영화들 사이에 놓인 영향 관계를 과도하게 단순화시킬 뿐만 아니라 자꾸만 그 어딘가에서 어슬렁거리는 목적론적인 설명의 함정에로 이끈다. 나는 영화들 사이의 관계에서 서사를 만들어내고 싶지 않다. 임권택의 영화들은 내게 그런 설명이 결국에는 왜 불가능한지를 알려주는 목록이다. 월하의 검 (1970) < 월하의 검 >을 가장 단순하게 말하면 재난에 가까운 실패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임권택 에게 의미 있는 실패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는 여기서 무언가를 의식하고 있지도 않다. 그 어떤 것을 하려고도 하지 않았으며 그 무언가를 해본 것도 아니다. 1970년은 임권택에게 그런 해이다. 그 해에 임권택은 여덟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 애꾸눈 박 > < 이슬 맞은 백일홍 > < 비내리는 선창가 > < 그 여자를 쫓아라 > < 밤차로 온 사나이 > < 속눈썹이 긴 여자 > < 비검 > 그리고 < 월하의 검 >. 어떤 일관성도 없는 영화들. 하지만 이 실패가 나에게는 의미가 있다. 사태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그것을 임권택의 무능력에로 돌리기에는 그에 앞선 영화들을 생각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그의 첫 번째 영화 < 두만강아 잘 있거라 >의 마지막 시퀀스 전부. 혹은 세 번째 영화 < 망부석 >. 나는 자꾸만 그의 실패한 영화들을 실패한 작품들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실패한 상황이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그 영화들은 실패라는 조건 속에서 자기들의 방법으로 실존하는 중이다. 실패와 부딪쳐서 부서져 나가는 영화의 모습. 나는 그 모습을 지금 바라보는 중이다. 그때 부서져 나가는 참조 틀 사이로 드러나고, 재생산되고, 존재하는 잉여들의 혼란스러운 모방과 마주친다. 잠깐. 모방이라고 했나요? 물론이지요. 그건 다른 무언가가 이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서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니까요. 그때 모방은 나에게 효과라는 최종 결과라는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나는 그것을 거기서 멈춰 세우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결과는 여기서 무엇보다도 과정이기 때문이다. 멈추지 않는 최종이라는 종착지. 임권택 은 공식적으로 자신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감독으로 언제나 정창화 를 이야기한다. 그는 정창화 밑에서 전형적이고 고전적인 의미에서 충무로 도제 수업을 받았다. 영화는 기계군의 활동이며 조직이다. 공장과도 같은 시스템. 그 안에서 개념의 추상화와도 같았던 이미지를 세계 안에서 찍은 다음 배열해야 한다. 여기에는 규칙과 문법이 있다. 그것을 쳐부순다고 말해도 그 안에서 진행되는 부정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임권택이 정창화를 말하는 것은 그 인정의 테두리 안에서이다. 그런 다음 (펠리니의) < 길 >과 네 명의 할리우드 영화감독, 존 포드와 빌리 와일더, 윌리엄 와일러, 조지 스티븐스를 언급했다. 나는 여기 세 명의 이름을 더하고 싶다. 임권택이 언급하지 않는 이름. 그의 영화 전체는 아니지만 우리들이 실패작이라고 부르는 영화들이 만들어지던 시기, 실패의 상황이라고 내가 명명한 조건 아래서 만들어진 영화에서 마주치는 그림자들의 이름. 셀지오 레오네와 끌로드 를루슈, 그리고 장철. 물론 그 이름들은 잠시 후에 임권택의 영화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실패의 상황 속에서 남과 여를 주연으로 한 영화들과 < 남과 여 >, 그리고 쇼 브라더스 영화들은 마치 그림 안의 그림처럼 거기 그림자로 남았다. 영화가 한참을 자신의 서사를 진행하면서 이야기하고 있을 때 나타나는 이미지들. 그것이 다시 나타날 때 종종 지나치게 실패해서 그것을 분간하기 어려워진다는 느낌을 받기조차 한다. 미처 예기치 않았던 출현. 주인공이 자기의 몰락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 때, 그가 놓여진 상황이 다른 영화 안의 반복을 향해 나가기 시작한다. 나는 여기에 약간의 주석을 달고 싶다. 셀지오 레오네는 이탈리안 네오리얼리즘이 끝난 다음, 그것도 거의 끝난 다음, 그래서 펠리니가 그 방법을 버린 다음, 안토니오니가 리얼리즘을 거의 추상에로 밀고 나아간 다음, 황무지에서 할리우드 영화의 장르에 대한 아이러니로 시작하였다. <길>을 자신의 거의 유일한 걸작이라고 말하는 (게다가 전형적인 한국 고전영화문법 안에서 배움을 얻어온) 이 사람은 < 석양의 무법자 >에서 무엇을 본 것일까. 정창화에게서 충무로의 영화문법을 배운 임권택의 영화에서 잠시 동안 <남과 여>에서 무차별하게 사용된 시네마 베리테의 촬영과 누벨바그의 데쿠파주에 대한 키치적인 활용이 홀연히 등장하는 순간을 몇 차례이고 반복해서 마주칠 때 나는 어떤 쇼크를 받았다. 구체적으로 <남과 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시기의 한국영화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하나의 경향이었기 때문이다. <남과 여>는 한 시기의 한국영화들을 거의 쑥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미처 < 히로시마 내 사랑 >과 < 비브르 사비 > < 어느 여름의 연대기 > <사촌형제> < 롤라 > < 활주로 > < 쥘과 짐 > <사자좌> < 5시에서 7시까지의 클레오 > < 파리는 우리의 것 > <아듀, 필리핀> <산타 할아버지는 푸른 눈을 가졌다>를 보지 못했다. 그저 < 네 멋대로 해라 >와 <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를 보았을 뿐이었다. 그런 다음 그들의 경험은 중단되었다. 아마도 오직 김기영 만이 영화‘歷’사의 시간을 좇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김기영은 (인터뷰에 따르면) 1960년대 그 부근 언젠가부터 기회가 닿을 때마다 오로지 영화를 보기 위해서 도쿄에 방문했다. 풍문으로 누벨바그의 이야기를 듣기는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은 일본을 경유하여 각색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시기의 글 자료들을 읽은 내 독후감은 그렇다. 그들은 말 그대로 무방비 상태였고, <남과 여>가 굉장한 영화라고 믿고 있었다. 왜냐하면 거의 법칙과도 같았던 고전영화 문법을 무시하면서 그저 그렇게 떠오르는대로 찍고, 연출하고, 편집하고, 그래도 괜찮은 영화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임권택은 거기서 어떤 자유를 느꼈을 지도 모른다. 자신을 지배했던 도제제도로부터의 해방. 그때 임권택은 모던 시네마의 방법에 가까이 다가갔다. 실패한 상황. 예기치 않은 보충, 혹은 무엇이 무엇을 대리하기 시작했을까. 이 위험한 대리보충. 어쩌면, 정말 어쩌면, 여기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면 그의 영화가 모두 부서졌을지도 모른다. 임권택은 재빨리 다시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런 다음에도 방법의 흔적은 완전히 소멸되지 않고 다소 기형적인 양태로 분산되고 분할되어 머물렀다. 우리는 임권택 안에 들어서기 위해서 방법을 잘 따라야 한다. 무엇이 멈추자 무엇이 활동하기 시작했을까. 거기서 우리는 영화의 어떤 역량이 표현되기 시작했는지를 관찰해야 한다. 때로는 긍정적인 역량. 때로는 실패해버린 표현. 거기에 적합한 개념. 거기서 멈춰버린 기능. (위) 정창화 와 <길>, (아래)셀지오 레오네, 끌로드 를루슈, 장철 나는 여기서 세 번째 이름에 대해서 길게 설명할 생각이다. 장철. 張徹. 1968년 5월 23일 서울 파라마운트 극장에서 <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가 개봉하였다. 처음에는 이 영화가 그렇게 큰 대중적인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홍콩 쇼 브라더스 무협영화는 한국 영화문화 안에서 하위 장르의 하위 장르이면서 동시에 재개봉관을 중심으로 컬트영화가 되었다. 임권택 은 이 이름에 대해서 단 한 번도 길게 언급하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그저 스쳐 지나갔다. 내 질문은 왜 그것을 받아들인 다음 버렸느냐는 것이다. 나는 이 시기의 임권택을 이야기하면서 그의 영화 안에서 장철을 수 없이 다시, 거듭해서 다시, 호명할 것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셀지오 레오네와 < 남과 여 >를 불러낼 것이다) 이것이 단지 불균등한 위계적 관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임권택은 장철과 셀지오 레오네, 그리고 <남과 여> 없이 더 나아갈 수 없었고, 아니, 차라리 그것들의 대리보충 없이 참조 틀을 부술 수 없었고, 그런 다음 거의 불순물과 다름없는 그것들을 버리지 않고서는 다시 나아갈 수 없게 되었다. 실패해버린 상황 속에서 다시 한 번 실패하기. 더 잘 실패하기. 위험한 명제. 임권택에게 그가 실패하고 있는 상황에서 충무로는 참을 수 없는 문법이었고, 그런 다음 부서져 가는 그의 영화 안에서 셀지오 레오네와 <남과 여>, 장철은 다시 견딜 수 없는 대가가 되었다, 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이 설명을 따분하게 변증법적 통일이라는 방식으로 도식화시키지는 말아주기 바란다. 내가 신기하게 생각하는 대목은 바로 여기이다. 갑자기 여기서 새로운 쟁점이 나타난 것이다. 임권택은 오류 안에 자기가 찾고 있는 진정한 목표가 있는 것처럼 다가가기 시작했다. 아니, 이렇게까지 말하고 싶어진다. 임권택은 오류 안에서만 견딜 수 있는 형식을 찾고 있는 중이(었을 것이)다. 그때 장철이 단지 쇼 브라더스 무협영화를 찍었다는 사실에서 멈추지 말고 그 영화들이 광동오페라의 영향 아래 만들어진 감상적인 멜로드라마의 판본 위에서 시작했다는 사실 안의 사실까지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임권택과 장철이 공유하는 것은 무협활극이라는 표면적인 약속의 장르 사이에서의 트랜스 내셔널 네트워크가 아니라 피와 시체들, 복수의 정념과 의리의 도덕 뒤에 수줍게 숨어있는 감상적인 멜로드라마의 비극적 운명에 대한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매혹이다. 더도 덜도 아닌 매혹. 그 속에서 그들이 즐기는 기쁨. 바로 거기서, 마치 그것을 쥐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것을 참조했다기보다는 차라리 그것에 대한 참조라고 할 정도로 < 월하의 검 >은 장철의 영화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그것도 아주 구체적으로 < 대협객(大刺客) >과 (부분적으로) < 심야의 결투(金燕子) >의 영향을 받았다. 심지어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몇몇 장면에서는 거의 같은 구도, 같은 활극동작을 빌려온 살진(殺陣)이 등장하기까지 한다. 여기서는 단지 오마주라거나 두 영화 사이에서의 상호 텍스트성이랄까, 이런 설명과는 완전히 다른 교차가 나타난다. 나는 실패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실패한 오마주라고 말해버리면 어떨까. 이 말을 잘 음미해주기 바란다. 오마주를 실패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효과로서 나타나 버린 오류라는 실패한 오마주, 그 안에서 이행의 대리보충을 붙잡아야 한다. 무언가 저 영화가 이 영화에 구멍을 내고 그 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은 단지 거기에 동의한다거나 혹은 이미 해놓은 것에 대해 가질 수밖에 없었던 감흥의 복종과는 다른 것이다. < 대협객 >(1967) < 심야의 결투 >(1967) < 대협객 >은 쇼 브라더스에서 장철이 왕우를 주연으로 하여 1967년에 만든 홍콩영화이다. 무협영화 팬들 사이에서도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영화이다. 아마도 이 영화가 다른 장철 영화들과 달리 긴 드라마가 장황하게 이어진 다음 아주 잠깐, 그래서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하지만 몹시 인상적인 무협활극 장면이 나오는 절정의 클라이맥스를 맞이하고 나면 서둘러 끝나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에서는 1969년 10월 4일 종로 3가에 있었던 파라마운트 극장에서 개봉하였다. 이 이야기는 사마천의 <사기>에도 등장하는 자객열전 중의 하나이다.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백성이었던 섭정은 출중한 무인이었다. 그러나 그 재능을 시기한 동문 서식의 음모로 인해 스승은 당시 제나라와 적대관계에 놓인 나라의 첩자로 몰리고 무술 도장은 쑥밭이 된다. 이에 섭정과 그의 친구 두파는 복수를 한 다음 섭정은 모든 걸 포기하고 백정이 되고 두파는 옆 나라인 한나라로 피신하여 거기서 한나라의 충신 엄중자의 자식 무술 사범이 된다. 그런데 엄중자는 재상 한괴가 끊임없이 그를 음해하고 임금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보며 몹시 괴로워한다. 그러다 보다 못한 엄중자가 두파에게 도움을 청하자 그는 자기보다 훨씬 무술이 훌륭한 섭정을 추천한다. 제나라까지 찾아온 엄중자의 마음을 알고 그와 의형제까지 맺은 섭정은 다만 자기에게는 아직 병상에 누운 어머니가 살아계시고 누이가 있으니 기다려달라고 말한다. 몇 해 후, 어머니 상을 치루고 누이가 시집을 가자 섭정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혈혈단신으로 엄중자를 찾아온다. 그리고 하얀 백의에 백마를 타고 귀공자로 분장하여 혼자 수백 명의 병사들의 호위를 받는 한괴를 찾아가 그를 처단하고 자결한다. 나는 주변에 있는 섭정과 그의 연인, 그리고 누이와의 이야기는 모두 그냥 지나쳤다. 그런 다음 < 월하의 검 >. 이 이상할 정도로 기괴한 우울함으로 가득 찬 이야기가 임권택 이 직접 쓴 시나리오라는 점을 먼저 염두에 두고 읽어주기 바란다. 물론 임권택은 첫 영화를 만들 때부터 끊임없이 영화를 찍으면서 시나리오를 고쳤다. 그건 ( 송길한 이 시나리오를 쓴) < 만다라 >를 찍을 때도 그러했고 ( 이청준 이 시나리오를 쓴) < 서편제 >를 찍을 때도 그러했다. < 취화선 >을 찍을 때는 심지어 시나리오를 탈고한 다음에도 계속해서 매일 아침에 새로운 대사를 쓴 시나리오를 나누어주었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다시 고치는 것과 처음부터 쓰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여기서 임권택은 무얼 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야기에 뒤 이어 와서 그것을 닮은 다른 이야기가 이미 앞에서 포위하고 있을 때 그는 무얼 하고 있는 것일까. 하나가 다른 하나의 대리보충이 될 때 어느 쪽이 앞에 있고 무엇이 뒤에 있는지 그렇게 쉽게 분간할 수 있을까. 후렴구. 나는 지금 실패에 대해서 말하는 중이다. 아마도 조선 시대. 하지만 그런 다음 더 이상 어떤 것도 분명한 지표가 없는 사극의 무대. 유감스럽게도 당신은 < 월하의 검 >을 볼 방법이 없고 잘 정리된 줄거리도 없기 때문에 이 글을 먼저 읽을 수밖에 없다. (...) 임금은 무능하기 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연화당 최씨의 미모에 빠져 헤어 나오지를 못한다. 그러는 동안 나라의 권세를 포도대장 최걸에게 모두 넘겨준다. 최걸은 자신을 비방하는 충신들을 모두 척살하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 그래서 빼어난 무술을 지닌 장무력을 고용하여 마치 연화당 최씨를 암살하기 위해 잠입한 것처럼 꾸민 다음 최씨를 지키는 호위무사 박필에게 붙들리는 계교를 꾸민다. 임금 앞에 잡혀간 장무력은 자신을 고용한 자들의 명단으로 충신들의 이름을 차례로 열거하고 곁에서 통곡을 하며 연화당 최씨는 그들을 모두 참해달라고 간곡하게 호소한다. (여기가 영화의 시작이다) 무자비한 탄압이 시작되고 이에 가까스로 살아남은 충신들은 심산유곡에 자리한 절로 피신하여 이제 남은 방법으로 연화당 최씨보다 더 빼어난 미모를 지닌 여인을 궁궐로 보내 임금의 총애를 받은 다음 진실을 알리고 간신배들을 벌할 것을 상소하자는 계획을 세운다. 그런 다음 이들은 이미 참수당한 충신의 딸 향아가 이에 적합한 미모를 가졌으며 그녀의 효성이 이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데 합의한다. 문제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행방이 묘연한 향아를 찾는 것인데 우연히도 위험에 처한 그녀를 연화당 최씨의 호위무사 박필이 구하게 된다. 박필은 천애 고아로 어려서부터 최걸이 돌보면서 무술을 배우고 그 아래서 최걸의 자객이자 누이인 연화당 최씨의 호위무사가 된 몸이었지만 자신의 신세에 대해 처량함을 느끼며 그저 시간 날 때마다 조선팔도를 이리저리 떠돌며 그림을 그리면서 허송세월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무술만은 조선 최고라 부를 만한 것이었다. 박필은 향아의 정체도 모른 채 그녀를 보자마자 한눈에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변장을 하고 궁에 잠입한 향아를 보고 모든 계획을 깨달은 박필은 부디 이 위험하고 허망한 복수를 중단하고 자신과 멀리 떠나자고 말하지만 향아는 반대로 자신을 도와 복수를 이룬 다음 함께 멀리 떠나자고 부탁한다. 우여곡절 끝에 향아는 임금의 처소에 들고 그의 마음에 들지만 (여기서 나는 그사이에 향아의 정체가 탄로 나고 연화당 최씨의 인두질로 얼굴이 망가져 궁궐 바깥으로 내쳐지지만 심산유곡 절의 주지스님이 지극정성으로 치료한 묘약으로 미모의 얼굴을 고친 다음 다시 궁궐에 입궐한 사연을 둘러싼 대목을 건너뛰었다) 하룻밤 정사를 치르고 나서 증거가 없으니 연화당 최씨와 그 오빠를 벌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한편 최걸은 이제 유일하게 증언할 수 있는 장무력을 제거하면 모든 것을 용서하겠다고 박필에게 제안한다. 박필은 장무력을 찾아가 일대 결전을 벌이지만 막상막하의 실력을 갖춘 두 사람은 결국 승패를 가리지 못한다. 지친 두 사람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자신과 대결을 하면서도 결정적인 한 수를 쓰지 않는 박필의 마음속 진심을 본 장무력은 기꺼이 그를 위해 임금 앞에 가서 진실에 관한 증언을 하기로 마음을 바꾼다. 하지만 박필은 그 증언이 모두 끝날 때까지 바깥에서 임금의 처소를 향해 수 없이 몰려드는 병사들과 홀로 싸워야만 한다. 장무력이 모든 증언을 마쳤을 때 박필은 수백 명의 병사들의 시체 곁에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가는 중이다. 그 곁에 온 향아는 그를 비로소 여보, 라고 부르며 품에 넣어둔 극약을 먹고 그와 같은 운명의 선택을 한다. 그 시간에 연화당 최씨는 모든 비밀이 밝혀지자 자결을 한다. 무능하기 짝이 없는 임금은 홀로 남겨진다. 이 이야기를 읽고 난 다음 포스터에 있는 주연배우들의 명단을 보면서 당신은 포도대장 최걸을 허장강이 연기할 것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배역의 컨벤션이라는 약속. 하지만 김지미 는 향아가 아니라 악독하기 짝이 없는 연화당 최씨를 연기한다. 향아는 김명진 이 연기한다. 물론 배역은 일종의 수건돌리기 게임이다. 영화 바깥의 여러 가지 복잡한 변수가 있긴 하지만 누구든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 내가 여기서 하려는 질문은 이야기 안에서 이들 사이의 오류를 불편하게 만드는 문턱에 관한 것이다. 먼저 이 영화에는 어떤 카타르시스도 없다는 사실을 지적해야겠다. 아마 이 말이 당신을 당황시킬지 모른다. 그렇다고 무언가 정의가 실현되었다는 결말을 주지도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마지막 순간은 결말이 다가왔다기보다 무언가 종말을 맞이했다는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투명하고 선악이 분명하며 우리가 누구 편에 서야 할지 따분할 정도로 잘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점점 그 경계는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그런 다음 마지막 시퀀스 전체는 우리를 혼란에 빠트린다. 무언가를 주장하기는커녕 오히려 우리를 비웃으면서 보편적인 믿음을 우스꽝스럽게 처리해버린다. 여기서 이 모든 등장인물들의 정박지인 임금은 단지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과도하리만큼 색욕에 빠져 있다. 그 역을 연기하는 김순철 은 다른 배우들과 전혀 달리 의도적으로 과장되고 어색한 코미디의 연기를 한다. 김순철은 단 한 장면에서도 다른 배우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심지어 김명진 과 침소에서 운우지정을 나눌 때조차 그러하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는 홀로 존재한다. 불편한 고정점. 나는 당신에게 임권택 이 영화 연출을 할 때 언제나 연기를 교정하는 것에서 그 인물의 형상화를 시작한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다. “ 정창화 감독은 나를 카메라 옆에 앉혀놓고 배우를 보라고 시키는 거예요, 어떤 배우도 유심히 들여다보면 약점이 보이는 거예요, 그게 내가 시나리오와 인물 사이의 오차 범위를 줄이는 방법이었어요.” (「임권택, 임권택을 말하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해야겠다. 임금은 만월이 뜨는 밤이면 내시 한 명을 데리고 홀로 비원에 행차해서 그 달을 보면서 술을 마신다. 이건 궁중의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며 그래서 향아는 임금이 혼자가 되는 그 시간에 그를 만나게 해달라고 박필에게 애원한다. < 월하의 검 >이라는 제목은 달빛 아래서 대결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시간에 거기에 가야만 하는 향아와 그녀를 거기에 보내야 하는 박필의 애처로운 사연의 알레고리이다. 하나의 시간. 만월의 밤. 세 개의 선. 임금과 향아와 박필. 서로 맞지 않는 정념들 사이에서 운명적으로 짜 맞춰져야 하는 매듭 사이로 벌어진 틈. 그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이야기가 흘러가기 시작한다. 애초부터 그 자신들이 짓지도 않은 죄를 짊어진 상태란 무엇일까. 말하자면 비극의 수순. 그런 다음 매듭을 자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임권택은 (장철과 마찬가지로) 결국에는 이 이야기가 죽음에로 귀결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박필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면서 역설적으로 스스로 운명 앞에서 수동적인 태도를 취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그녀의 간절한 소원. 하지만 그 소원이 이루어지면 내가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한 저 사람은 임금의 침소에 들어 육욕의 대상이 될 것이며 그에게 벌거벗은 살을 내주어야 할 것이다. 임권택은 거의 기술적으로 감당이 안 되는 1970년의 한국영화 촬영기술을 바탕으로 무리할 정도로 반복해서 몇 번이고 만월(滿月)의 밤을 찍는다. 미첼 카메라의 둔중함과 값싼 아그파 필름, 그리고 조악한 조명은 한밤중에 만월을 찍는 것이 불가능한 장비들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모든 만월의 밤은 한낮에 밤 장면을 찍었다. (day_for_night) 종종 잘못 색 보정된 다음 무성의하게 현상된 필름들은 이 만월의 밤 장면들이 낮에 촬영되었음을 잔인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월하의 검>은 기술적으로 거의 재난에 가깝다. 그걸 임권택이 모를 리가 없다. 그는 자신이 여기서 실패할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면서도 그냥 그걸 지금 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그걸 의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일 그것이 의도라면 그건 나쁜 의도이다. 여기에는 처음부터 그래도 상관없다, 는 자포자기가 무겁게 내려앉는다. 나는 임권택의 심리적인 상태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그걸 설명하는 것은 전기 작가의 몫이지 내가 할 임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임권택은 여기서 무엇을 따라가고 있는 것일까. <월하의 검>은 미학적 기준으로 무자비하게 설명하기를 단 한 순간도 망설일 필요 없는 영화이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을 하려다가 실패하기는커녕 그걸 먼저 알아차리고 실패라는 조건을 받아들인 다음 거기서 더 밀고 나아가기 시작할 때 우리는 기묘한 실패의 정식화를 끌어낼 수 있다. 그건 실패가 외재적 조건일 때 이미 내재적으로 존재하는 부정에 대한 긍정이라는 역설이다. 이때 영화는 임권택에게 일종의 자기 심문과 같은 것이 되어간다. 마치 영화가 자기의 속살을 내보이듯이, 정말 부끄럽게, 필름의 한계와, 촬영의 제한적인 조건과, 제작의 무성의한 진행에 관한 모든 과정을 적나라하게 노출하기 시작한다. 얼마나 끔찍할까. 속수무책으로 그것을 수수방관해야만 할 때, 그때 거기서 할 수 있는 방어의 기술이 전혀 없을 때, 임권택은 반대로 그냥 내버려두고 있다. 바로 거기서 위험천만한 상실이라고 할까, 그 자신의 영화의 내부적인 멜랑콜리가 불연속적인 질문을 반복해서 던지기 시작한다. 영화 안의 질문. 지금 이것은 그래도 성립되고 있습니까. <월하의 검>은 거의 부서진 영화이다. 그런데도 가까스로 버티고 선 무언가가 이 영화에 이상할 정도로 집요하게 그것을 방어하면서 성립시키고 있다. 재앙을 피해야만 해. 폭력으로부터 보호해야만 해. 여기서 나는 그럴 때마다 아무 상관도 없는 장철의 < 대협객 >이 유령처럼 출몰하는 것을 쳐다보게 된다. 그때 그건 영화라기보다 차라리 제도 바깥에서 나타난 부정성이다. 몹시 사악하고 거의 지켜지지 않는 규칙들. 강제적인 영화의 속도. 쇼 브라더스 영화의 처음 보는 기이한 문법. 거기서 섭정의 삶은 자유자재로 스튜디오 속을 거닐며 자기의 목표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 다음 마지막 순간 중력을 무시하고 날아오른다. 그렇게 사람이 날아가도 상관없는 것일까. 새로운 동선. 영화에서의 새로운 선, 하지만 아주 특별하고 예외적인 선. 그 자신의 학습을 통해 얻어낸 경험을 앞지르는 건너편의 방법이 나타나서 부서져 가는 참조 틀 사이로 대리하고 보충하는 시간은 이 영화가 발작하는 순간들이다. 상감,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옵니다. 사실이옵니다. < 월하의 검 >을 보다가 누구라도 멈춰 서게 될 두 장면, 그런데 거의 마지막 장면, 그래서 이야기가 멈추는 두 장면을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여기서 임권택 은 장르 안에서의 연쇄를 갑자기 끊어버린다. 그런 다음 이야기를 밀어내고 어떤 대체의 구조를 찾기라도 하듯이 인물에서 그것을 보충하려 든다. 어떤 절단. 그런 다음 그것을 떠안아야 하는 부담을 감수하기라도 한 듯한 결정. 장무력이 임금의 앞에 가서 진실을 고하고 나자 포도대장 최걸과 연화당 최씨를 불러 그 말이 모두 사실이냐, 라고 묻는다. 그러자 최걸은 그 모두가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로 시작하는 사극에서의 마지막 장면에서 만나는 상투적인 대사를 시작한다. 물론 악인들이 사악할 뿐만 아니라 비겁하기 짝이 없다는 강조할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사약을 내리기에 조금도 자비심이 필요 없다는 것을 확인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그때 최걸 의 말을 자르면서 연화당 최씨가 조금도 뉘우치지 않는 표정으로 모두 사실이옵니다, 라고 대답한다. 임금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본다. 왜냐하면 자기에게 생명을 구걸하는 요구를 거절하는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권리를 되찾는 동시에 권리와 정의를 일치시키는 제스처를 취하려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임금과 국가의 (상투적인) 변증법. 하지만 연화당 최씨는 이 일련의 자동적인 연쇄를 중단시킨다. 그런 다음 임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질문한다. 저년과 저, 둘 중에 누가 더 예쁜가요? 목숨이 걸려있는 순간에 이 질문은 적절치 않은 내기이다. 왜냐하면 임금의 대답은 어느 쪽을 선택해도 그녀의 목숨에 대한 결정을 바꾸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자신의 생명에 무관심한 듯한 질문. 하지만 이때 임금은 여기서 그 자신의 대답이 결정의 이해관계로부터 바깥에 놓이기 때문에 연화당 최씨의 질문은 임금의 자리로부터 그녀의 침소에서 몸을 탐했던 한 남자에로 임금을 추락시켜버린다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그런 다음 연화당 최씨는 임금으로부터 그건 물론 네가 더 예쁘긴 하지만, 이라는 대답을 듣자 거기서, 바로 그 대답의 거기서, 만족한 듯한 웃음을 짓고 옆에 서 있던 신하의 칼을 빼 들어 그 자리에서 자결한다. 대답이라는 패배. 대답을 통한 권리의 상실. 정의의 연쇄적인 추락. 자기 목숨에 대한 연화당 최씨의 스스로의 결정. 임금은 순식간에 결정에 대한 자기의 권리를 빼앗긴다. 그러므로 거기서 임금의 명령이 대상을 놓칠 때 그렇게 많은 희생을 요구하고 얻어낸 진실은 끝내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다. <월하의 검>에는 표면적인 결론과 달리 드라마의 효과가 만들어내는 사필귀정의 카타르시스가 없다. 주인은 자기의 권리를 빼앗기고 주인의 주인은 그 권리를 죽음으로 돌려준다. 바로 그 순간, 그러니까 연화당 최씨가 자살을 할 때 향아는 임금께 고하는 장무력의 고백을 위한 시간을 지키기 위해 수없이 밀려드는 병사들을 상대로 희망 없는 칼부림 끝에 죽어가는 박필에게 달려온다. 물론 이 장면은 장철의 < 대협객 >의 마지막 장면의 변주이다. 혹은 < 심야의 결투 >의 마지막의 마지막 장면, 그러니까 대결을 끝낸 다음에도 여전히 남아서 피를 흘려가며 끝없이 밀려드는 무사들과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필사적인 결투를 계속하는 은봉황이 어쩔 수 없이 떠오른다. 박필은 너무 많은 상처를 입었고 그가 입은 옷은 피로 범벅이 되어 계단에 쓰러진 채 죽어가는 중이다. 달려온 향아는 그를 껴안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를 여보, 라고 부르며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자고 말한다. 박필은 향아에게 이제는 만족하느냐고 묻는다. 그는 반복해서 향아의 복수를 말렸고 그녀의 희생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설득했으며 단 한 번도 그녀의 결심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그녀를 도와 지금 이렇게 죽어가는 중이다. 그리고 향아는 복수에 성공했고 그녀는 마침내 원하는 것을 얻었다. 그때 향아는 박필의 질문에 대답한다. 저 탐욕한 무리들을 떠나 당신과 함께 떠나겠어요. 연화당 최씨의 대답과 마찬가지로 여기까지 향아의 동선을 쫓아온 당신은 갑자기 멈춰 설 것이다. 탐욕한 무리들. 그 대답에서 가리키는 탐욕한 무리들은 최걸과 연화당 최씨가 아니라 그들에게 희생당한 충신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향아를 궁궐에 보내 자신들의 억울함을 탄원해달라는 명령을 내렸던 아버지의 친구들. 대의를 위한 희생. 향아는 그 충신들을 최걸과 연화당 최씨 남매와 별 차이가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단지 그들은 서로 권력을 잡은 자와 잃은 자의 반대의 자리에 놓여있을 뿐이다. 향아는 자기가 바라는 것을 얻었고, 그런 다음 연화당 최씨가 자살을 한 그 빈자리, 임금의 옆자리에 가면 된다. 하지만 그녀는 그 말을 한 다음 품에서 언제나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만일의 경우를 준비한 독약을 아낌없이 자기 입에 털어 넣는다. 두 개의 자살. 즐비한 시체. 여기서 자살은 어느 쪽도 자포자기가 아니다. 그녀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살을 선택하면서 무언가를 항의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임권택 의 영화에서 가장 반복적으로 대하는 행위는 자살이라는 것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길고 긴 영화의 목록 끝에 자신의 영화에 대한 철학적 정식화가 인본주의(人本主義)라고 말한 이 사람의 영화에서 끈질기게 자살이 반복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심지어 그 자신의 자서전이라고 부를만한 < 취화선 >에서조차 마지막 장면에서 오원 장승업은 그 자신의 예술에 대한 결론으로 자살을 선택한다. (그런데 장승업에 관한 전기에 따르면 그는 말년에 그저 실종되었다고만 기록되어 있다.) 임권택의 영화에서는 각자의 이야기에서 살고 있는 각자의 주인공들이 살아온 삶의 결론에 이르러 각자의 죽음을 선택한다기보다는 그들이 어디서 시작했건 결국에는 자살이라는 어떤 (텅 빈 상태의 공허한) 중심에로 이끌려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을 가까스로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자기의 책임을 누군가에게 떠넘기는 것뿐이다. 이를테면 역사 그 자체. 나는 <취화선>에서 바로 이어지는 또 한편의 전기인 < 하류인생 >의 마지막 장면을 유심히 바라본다. 여기서 자기의 자리를 텅 빈 구멍으로 만들어버리는 행위는 무엇을 목표로 한 것일까. 나는 임권택에 관한 논의를 더 멀리 밀고 나아가기 위해서 실패한 선택으로서의 장철의 쇼 브라더스 영화를 경유할 필요를 느낀다. 거기서 시작했고, 거기 머물지 않기 위해서 비극적인 것에서 진정한 비극에로 점핑하면서 도약하는 과정이, 오로지 그 과정이, 임권택의 목록을 쫓아가는 내게 감동을 준다. 방법론으로서의 소용돌이의 심연. 무한정한 회의. 그 안에서 탄식하는 부자연스러운 매혹. 먼저 덧셈을 한 다음, 보충한 다음, 그다음은 빼내는 것이다. 거기서 원래의 자리를 차지해버린 대리를 다시 바꿔야한다. 대리보충에 대한 대리. (데리다의 표현을 빌려) 이중의 세션. 물론 모든 문제 안에는 대답이 포함되어 있다. 그때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미 얼마나 주어져 있는가. 이제까지 나는 < 월하의 검 >에 대해서 불만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에서 모든 장면들이 보고 난 다음 내곁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임권택 은 내가 보고 있는 이야기 안에서 어떤 장면을 종종 바늘처럼 찌르듯이 불쑥 내밀 때가 있다. 이건 바르뜨가 말하는 푼크툼과 전혀 다른 것이다. 나는 이야기 안에서, 라고 말했다. 그 장면을 따로 이야기에서 때어놓고 보면 별로 대단하지 않을뿐더러 이미지 자체가 훌륭한 것도 아닌데 정말 갑자기 그 장면이 이야기 앞으로 나올 때가 있다. 그때 이 장면을 이야기에 놀랍도록 적절하게 조응한다거나 혹은 이야기를 압도하면서, 라고 설명하는 것은 사태를 완전히 오해하는 것이다. 여기서 장면은 이야기에 대해 몹시 불길하고 축축한 외설성을 갑자기 드러내듯이 출현한다. 여기서 방점은 갑자기, 에 놓여있다. 그건 무언가 더 이상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는 것만 같은 불만에 빠졌을 때 그 이면에 감추어져 있던 장면이 앞에서 상연되는 것이다. 나는 상연, 이라고 말했다. 무언가를 의도적인 장면으로 보여주는 것. 누구에게? 우리에게. 왜 그런 상연이 필요해진 것일까. 그건 이야기의 표면만으로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박필과 향아의 이야기는 어느 지점에 이르자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제 자리를 맴돈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마침내 박필은 향아를 그녀의 원대로 한밤중에 비원으로 데려다준다. 비원에 깊은 밤이 오면 임금이 내시 한 명만을 대동하고 술을 마시며 이 시간을 홀로 즐기기 위해 나들이를 한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아직 향아는 그 밤이 만월의 밤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녀는 한밤중의 비원에 홀로 앉아 오지 않을 임금을 기다리며, 아무도 듣는 이 없는 장소에서, 그 누구도 들을 리 없는 피리를 거기 없는 임금을 향해 불기 시작한다. 물론 여기까지는 이야기 안에서 오인의 청각 기호가 작동하는 중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밤은 깊어가고 아무리 기다려도 임금이 나타나지 않자 향아는 피리 불기를 중단한다. 이때 화면에서 향아가 중단을 했는데도 영화는 계속해서 피리를 분다. 그때 이 피리는 향아의 몸과 분리되어 이야기 바깥으로 나가버린다. 그런 다음 마치 장면의 사운드 트랙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거기 홀로 남은 향아를 위해서 영화가 불어주는 풍경으로서의 청각 기호가 된다. 이 이행의 순간은 순식간에 벌어져서 단지 실수가 아니라 마치 이야기 전체가 어떤 오작동을 일으킨 것만 같은 인상을 만들어낸다. 여기서 임권택은 텍스트라고 정의 내려진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거기에 마치 어떤 맹점(blind_spot)이 존재하기라도 한 것처럼 이야기의 가시성이 만들어내는 한계 가장 가까이에 다가간다. 우리는 이걸 단지 속임수라고 지나쳐버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는 갑자기 이야기 바깥에서 운명이 찾아온 것만 같은 인상을 준다. 이야기 바깥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 이야기를 조정하는 끈. 이때 운명은 비극을 상연하기 시작한다. 왜 그런 장면이 필요해진 것일까. 임권택은 자신이 다루는 이야기에서 역사를 삭제하는 대신 역사 안의 실재적인 질서가 작동시키는 운명이 비극이라는 것을 고스란히 남겨놓는다. 여기서 조선 시대의 구체적인 배경은 알 수 없지만, 아니 차라리 그런 임금의 존재를 역대 왕조에서 누구로부터도 유추할 수 없지만, 이 이야기는 조선 시대가 아니라면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된다. 대리된 가상의 임금. 그 안에서의 광동 멜로드라마의 보충. 이때 임권택은 거의 초현실주의적인 상황에서 다시 이야기의 현실 안으로 되돌아올 때 소름 끼치게 무서운 장면을 준비해놓고 있다. 향아는 아무리 기다려도 비원에 임금이 나타나지 않자 실망하여 자기 방으로 돌아온다. 이때 향아가 방에 앉는 장면은 무언가 이상한 구도로 잡혀있다. 지나치게 멀리 물러난 카메라와 향아의 거리. 그녀를 둘러싼 어둠. 그런 다음 호롱불을 켜자 방 안이 밝아지면서 이제까지 그 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연화당 최씨와 그녀의 궁녀들, 그리고 야경을 돌며 궁궐 안을 순찰하던 포졸들이 마치 유령처럼, 그림자처럼, 병풍처럼 향아를 둘러싸면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 장면이 우리를 경악(驚愕)이라는 공포의 상태로 몰아넣는 것은 세 가지 이유에서이다. 하나는 여기가 궁궐 안에서의 향아의 유일하게 사적인 공간이자 그 어떤 위험으로부터도 안전한 것처럼 여겨진 그녀의 방이기 때문이다. 임권택은 이 방을 마치 향아에게만 개인적으로 허락된 장소처럼 다루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여기를 향아의 안전한 피난처처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연화당 최씨가 여기에 나타났을 때는 습격을 당했다기보다 갑자기 피난처의 베일이 찢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다른 또 하나의 이유는 여기에 이를 때까지 연화당 최씨는 향아의 행동반경에 대해서 거의 관심이 없거나 마치 그 둘 사이에 교집합이 없는 것처럼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두 개의 원. 각자의 운동. 그런데 가장 이상한 세 번째 이유가 남아있다. 여기까지 이야기의 진행이 향아와 연화당 최씨 두 인물에 대해서 거의 대부분의 진지함을 상실한 채 지나치게 나태했기 때문에 하나가 다른 하나의 동선 안으로 개입할 것이라고 거의 생각할 수 없었다. 이 순간이 의도된 연출이라는 가정을 하는 것은 이후의 진행을 생각하면 거의 희박한 가능성으로 남는다. 아니,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이 장면에서 깜짝 놀란 우리들은 그만 이 순간에 불쑥 찾아온 예기치 않은 방문객을 맞이한 심정이 되어 버렸을 것이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임권택은 그 효과를 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여기가 이 시기의 임권택의 마지막 방어선이었을 것이다. 그런 다음 영화는 다시 참혹한 기술적 수준의 장면들과 진부한 이야기에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이야기는 두 개의 자살을 향해서 앞으로 나아간다. 그 둘이 자살을 맞이할 때까지 다시 마주칠 일은 없을 것이다. < 월하의 검 >에서 그 두 사람의 죽음이 애처롭게 느껴지는 까닭은 이 영화가 ‘끝난 다음’의 이야기 속의 요지부동의 세상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수많은 죽음 끝에 정의가 이루어진 이후에도 사실상 이 영화의 무대가 된 존재한 적이 없는 조선 시대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다. 여전히 임금은 새로운 여자를 찾을 것이며, 그는 정사에 관심이 없으며, 충신들의 무리는 자신들의 복권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이루어진 다음에는 어떤 변화도 요구하지 않을 것이며, 세월은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임권택 은 그의 세 번째 영화 < 망부석 >에서 (각색을 거치긴 했지만)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그런 다음 계속해서 조선 시대를 무대로 하여 사극을 만들었다. 구체적인 왕조와 역사적인 실록은 이야기에 개입하였으며, 실존했던 인물들은 자기의 자리를 버티고 앉았으며, 외세는 이 시대를 수수방관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임권택은 역사 안에서 자기의 이야기를 발전시켜야만 했다. 그때 그는 우아한 화면과 그 안에서 살아가야 했던 그 자신의 할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연출하였다. 우리는 임권택이 1934년에 전라남도 끝자락 아직 조선 시대의 향취가 남아있던 시대에 자라났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마도 1965년에 만든 < 왕과 상노 > 혹은 그 무렵부터 실록 바깥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이 시기부터 임권택의 영화가 부서지기 시작했다. 거기에 남은 것은 시대의 조건과 역사라는 이름으로 부여한 최소의 이치였다. 제도와 계급. 의상과 호칭. 마치 게임의 규칙처럼 되어버린 역사의 매트릭스. 역사는 형식이 되었으며, 그 안에서 임권택이 누린 것은 자유가 아니라 절망적으로 고립된 상황과 공허한 유교에 바탕을 둔 감상적인 남녀 사이의 희생과 반복적으로 마주하는 전근대적 향수의 눈물이었다. “그때 그 영화들을 만들면서 내 영혼이 다 부서지고 무언가 잘못되어간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내가 살아본 시대는 아니지만 이게 무어가 진짜고 무어가 가짜인지는 집안 어른들로부터 다 들어본 세상 이야기란 말이에요. 그리고 그런 어른들에게서 법도와 예절을 배웠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걸 내가 내 손으로 좋았던 유산을 다 부수고 있으니 만들면서 내내 참 몹쓸 짓을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임권택, 임권택을 말하다」) < 월하의 검 >은 정확하게 그 말에 대한 대답이다. 임권택은 먼 길을 돌아와야 했으며 다시 역사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서 자기에게 강요된 조건을 수락해야만 했다. 그러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참으로 참혹하게도 임권택이 다시 역사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 증언 >을 경유하여 그해 여름 한국전쟁을 마주 보면서, 다 부서져 버린 고향을 바라보면서, 흩어진 친척들을 찾아다니면서, 서로 총을 쏘고, 고발하고 신고하고, 죽고 죽이는 세상을 보면서, 그렇게 돌아왔다. 하지만 잠시만, 아직은, 아직은 좀 더, 나는 임권택의 그 시간에 머무를 생각이다. 그러므로... (계속) 1970년 108분 컬러 2.35 감독 임권택 제일영화주식회사 각본 임권택 촬영 최호진 조명 윤창화 편집 장현수 음악 황문평 김지미 윤양하 김명진
아, 명동! 일본 야쿠자 영화에 신주쿠가 있고 홍콩 누아르 영화에 침사추이가 있다면 한국 다찌마리 영화에는 명동이 있다. 고영남 의 < 명동44번지 >(1965)와 < 명동의 12 사나이 >(1971), 김효천 의 < 명동출신 >(1969)과 < 명동노신사 >(1970)와 < 명동사나이와 남포동사나이 >(1970), 김기덕 의 < 명동부르스 >(1970) 등 당대 다찌마리 영화의 대부분은 종로가 아닌 명동 중심이었다. <김두한> 혹은 < 장군의 아들 > 시리즈를 통해 종로가 건달들의 주 무대로 떠올랐을지 모르지만, 과거 다찌마리 영화의 본고장은 바로 홍콩의 밤거리만큼이나 별들이 소곤대던 금융과 패션의 중심지 명동이었던 것. 영상자료원에서 통계를 내주면 좋을 것 같다. <명동> 시리즈, <김두한> 시리즈, <왼손잡이> 시리즈, <용팔이> 시리즈 중 과연 어떤 제목이 가장 많은지... 당시 명동의 모습 아무튼 명동은 왠지 ‘명치정’이라 불러야 그 살벌한 다찌마리의 느낌이 살 것 같다. 일제 강점기 명치정(명동), 황금정(을지로), 본정(충무로) 등 일본인들이 자기 식대로 정(町)을 갖다 붙인 곳들이 주로 일본인 거주 지역이었고, 조선인들은 종로와 동대문을 중심으로 한 경성 북쪽에 거주했다. 바로 그 명치정에 대한 허장강 의 간략한 소개로 시작하는(카메라를 정면으로 보고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투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 명동잔혹사 >는 변장호 , 최인현 , 임권택 감독의 옴니버스 영화다. 서로 다른 감독과 배우들이 시대별로 명동 뒷골목 주먹의 역사를 훑어 내려가는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허장강만이 역사의 산증인처럼 세 편 모두 출연한다. 변장호 감독의 1화 <시끄러울 것잉께>는 일제 강점 말기 명동 뒷골목을 주름잡던 친일파 황두식( 황해 )과 감옥에서 막 나온 박민( 박노식 )의 대결을 그리고, 최인현 감독의 2화 <갖고 싶은 여자>는 암흑가 생활을 청산하려고 마음먹은 현( 최무룡 )이 숙( 윤정희 )과 결혼을 앞두고 보스의 계략에 빠져 감옥살이를 하고 나온 뒤 복수를 꿈꾼다는 얘기다. 가장 힘주어 얘기하고 싶은 임권택 감독의 3화 <대결>은 상( 김희라 )이 자신을 돌봐준 보스( 장동휘 )의 복수를 실행에 옮기며 명동의 오랜 폭력의 역사를 마무리하는 작품이다. 변장호, 임권택 감독은 물론 당대 최고 액션 스타들이 총출동했는데, 당시 영화제작 실패로 힘들어하던 최인현 감독을 돕기 위해 무보수로 나선 것이라 한다. 그 우정에 감동했는지 영화의 포스터에는 대문짝만하게 이렇게 쓰여 있었다. “한국영화사상 전무후무한 ‘영화인전체’가 참가한 우정영화! 쇽크 초대작!” 1. 박노식 , 황해 / 2. 최무룡 , 윤정희 , 3. 장동휘 , 김희라 내용보다 참여하는 사람들의 일정이 더 중요한 이런 ‘품앗이’ 영화는 감독과 배우는 물론, 시나리오 작가까지 ‘시간 되는대로’ 급조해서 뭉치는 B급 기획영화의 일종이다. 더구나 ‘누군가를 도와야 한다’ ‘성금을 모아야 한다’는 명확한 목표가 있기 때문에 상업적일 수밖에 없다. 함께 참여한 변장호 , 임권택 감독 중 누군가 괜히 ‘예술’을 하려 했다면, 급전이 필요한 최인현 감독으로서는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갈 것은 빤한 이치다. 게다가 이런 영화가 가능하려면 그 나라의 영화계가 잘 돌아가고 있어야 한다. 한가한 ‘듣보잡’ 영화인들이 뭉쳐봤자 관객들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을 것이다. 잘 나가고 바쁜 사람들이 품앗이를 해야 돈벌이가 될 것이다. 그러니까 < 명동잔혹사 >는 당시 한국영화계의 전성기를 방증하는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 명동잔혹사 >와 비슷한 예, < 흑전사 > 포스터 가까운 예로 과거 1990년대 초반까지 화려한 전성기를 구가한 홍콩영화계를 돌아볼 수 있다. 중국 수재민들을 돕기 위한 성금 모금을 목적으로 < 호문야연 >(1991)이 만들어졌고, 역시 홍콩감독협회에서 자선기금을 모으기 위해 < 쌍룡회 >(1992)를 만들었으며, < 동사서독 >(1994)의 제작이 지연되자 추가 제작비도 마련할 겸 그 배우들이 그대로 출연해 만들어진 B급 코미디 < 동성서취 >(1993)도 있었다. 이들 영화가 정말 변변한 시나리오도 없이 그저 배우들의 개인기에 기대 말 그대로 속전속결로 만들어진 영화라면, 아마도 < 명동잔혹사 >와 가장 비슷한 예가 될 만한 영화가 바로 나름의 선 굵은 서사를 갖췄던 < 흑전사 >(1987)일 것이다. 홍콩 무협영화의 전설 장철 감독의 말년 살림살이를 풍족하게 해줄 요량으로 후배 영화인들이 똘똘 뭉쳤던(오우삼이 연출을 맡고 강대위, 이수현, 주성치 등이 출연했다) 영화로, 오우삼 감독 특유의 거침없는 액션 연출을 엿볼 수 있다. 흥미롭게도 준비나 촬영 기간이 짧다보니 두서없는 아이디어들을 마구잡이로 뒤섞었는데, 그것이 뜻하지 않게 묘한 B급 쾌감을 불러일으켰던 것. 혹시나 오우삼 감독의 마음속에는 ‘내가 바쁜 시간 쪼개서 도와주는데, 뭐 좀 어설프다고 설마 나한테 항의라도 하겠어?’ 하는(그러니까 정작 자기 영화 연출할 때는 별로 가져보지 못했던) 여유로운 마음이 생기진 않았을까. 그리고 그런 태도가 오히려 뒷걸음질치다 쥐 밟는 격으로 명장면을 만들어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명동잔혹사>가 주는 의외의 쾌감도 그와 멀지 않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사실 임권택 의 다찌마리 영화는 주로 < 장군의 아들 > 3부작(1990-1992)으로 기억되지만, 그는 과거 꽤 많은 ‘주먹’ 영화를 만들었다. 실제로 태흥영화사의 이태원 대표는 과거 그의 다찌마리 영화들에 깊이 매료돼 있었고, “요즘은 사내다운 사내가 없는 세상 아닙니까. 진짜 사내를 보여 줍시다”라며 <장군의 아들>을 제안한 것은 유명한 일이다. 그 제안을 듣고 임권택 감독이 ‘왜 또 그런 영화를 만들라고 허는 거요’라며 버럭 화를 낸 일도 유명하다. 그는 같은 해 < 명동잔혹사 >에 참여하고 < 돌아온 자와 떠나야 할 자 >(1972)를 만들며 그 세계를 완전히 떠났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흥미로운 것은 그가 다찌마리 장르를 다루며 언제나 ‘손 씻고 떠나려는’ 주인공을 내세웠다는 사실이다. 존 포드가 그러하듯 보통 한 장르의 달인이 되어가면서 그런 성찰적 주인공에 이끌리는 법인데, 그는 아예 처음부터 주먹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주인공을 그렸다. '(허걱 형님...)' / '똘마니가 건방지게 법률공부냐' '형님, 쉽게 살겠어요.' / '재주가 있는 놈들은 다 빠져 나가란 말이야.' - < 돌아온 자와 떠나야 할 자 > 중에서 그런데 그런 지나친 강박이 B급 상상력으로까지 느껴지는 순간도 종종 있었다. ‘엽기적’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압권의 장면은 (당시로선) 그의 마지막 다찌마리 영화 < 돌아온 자와 떠나야 할 자 >에 있다. 모범수로 출소한 민수( 신성일) 는 대학 진학에 실패해 어머니 볼 면목이 없어 조직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인물이라(그러고 보면 2004년 작 < 하류인생 >에서 영화 속 조승우 가 모시는 선배 상필도 의대를 다니다 한국전쟁을 겪으며 조직에 몸담은 인물이다), 부하들을 닥치는 대로 대학에 보내려 한다. 법대 출신 건달 준( 윤양하 )이 관리하는 나이트클럽에서 법률 책을 펴놓고 고시 공부를 하고 있자, 민수는 재주가 있으면 이 습한 곳에서 다 빠져 나가라고 독려한다. 문득 ‘개구쟁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라는 CF 카피가 떠올랐다. 나와바리를 뺏기고 수금을 못 해와도 좋으니 공부만 잘 하면 된다는 조폭 보스가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그래서 감독님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당시 만들기 싫은 다찌마리 영화를 억지로 만들게 하는 제작자를 ‘맥일려고’ 그런 장면을 넣은 것은 아닌가, 하는 몹쓸 생각까지 살짝 해봤다. 바꿔 말해 다찌마리 장르를 떠나고자 하는 그의 마음은 너무나 간절했다. 이후 < 잡초 >(1973)와 < 족보 >(1978) 등을 만들며 그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렇게 그의 결심은 성공한 것이다. 그의 첫 번째 다찌마리 영화 < 욕망의 결산 >(1964)에서 밀수꾼들에 의해 비극적 최후를 맞았던 신성일이 <돌아온 자와 떠나야 할 자>에서는 새사람이 되어 출소하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시작과 끝인가. 그런데 같은 해 만들어진 < 명동잔혹사 > 속 <대결>을 보고 있으면 참으로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그가 또 다른 다찌마리 걸작 < 사나이 삼대 >(1969)와 <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나린다 >(1971)를 만들며 터득한 장인의 세공술이 만개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마치 장현수 감독의 < 게임의 법칙 >(1994)처럼 복수를 끝낸 박노식 이 젊은 송재호 에 의해 죽음을 맞는 1화 <시끄러울 것잉께>도 흥미로웠지만, 역시 <대결>이 주는 팽팽한 긴장감과 놀라운 액션 연출은 앞의 두 작품을 압도한다. 당시 장동휘와 박노식을 잇는 다찌마리 장르의 ‘젊은 피’였던 김희라 는 라스트에 이르러 적들을 궤멸시키려고 작정한다. 장례식에 온갖 조폭 떨거지들이 모일 것을 알기에 다이너마이트까지 준비한다. 선글라스를 끼고 단신으로 장례식장을 찾아간 그의 카리스마가 진정으로 멋지다. 장동휘나 박노식이 보여준 어딘가 ‘구수한’ 멋과는 확실히 다른 세련된 느낌이다. 선글라스 카리스마 바로 여기서 오우삼의 < 흑전사 >가 떠올랐다. 임권택 은 돈을 벌어야 하는 영화의 기획의도에 맞게, 철저하게 관객들을 현혹하는 가공할 라스트 액션신을 마련한 것이다. 그는 평소 자신의 다찌마리 영화보다 더 나가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정작 자신의 단독 연출 장편영화에서는 보지 못한 액션들이 속출한다. 김희라 는 수적 열세에 몰려 총상을 입으면서도 거의 전성기 홍콩 누아르 영화의 주인공처럼 옆으로 몸을 날려 총을 쏘아댄다. 당시 이처럼 총기류를 액션영화에 사용한 한국영화가 있었나 싶다. 결국 다이너마이트까지 동원해 그야말로 적들을 싹쓸이하는데, 임권택 감독이 이후 총기류를 다루는 대규모 액션영화를 연출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 정도다. ‘외인묘지에서 주인공이 일당백으로 싸운다’는 설정만 두고 그는 그렇게 막무가내로 신나게 연출했을 것이다. 다이너마이트에 불 붙이고, 몸을 날려 총 쏘고 그런데 그 무대는 바로 (지금도 쉽게 찾아갈 수 있는) 합정동 외국인묘지다. 천주교 성지라 불리는 절두산순교성지 바로 옆인 그곳은 좋은 일 많이 하신 외국인 선교사들이 묻혀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그래서 뭔가 주인공의 종교적 속죄를 위해(바로 오우삼 영화의 성당 같은 그런!) 그런 곳을 택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그는 그 엄청난 라스트신을 미련 없이 이 지긋지긋한 다찌마리 장르와의 성대한 작별인사라고 여겼을 것이다. “오늘의 명동에는 사랑과 낭만 우정이 있을 뿐, 지난날의 악몽은 가신지가 오래다. 명동이여 영광 있으라”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이제는 너무나 늦은 얘기겠지만, 진정으로 <대결>의 장편 확장판을 보고 싶다. / 글: 주성철 (씨네21 기자) PS.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회고전의 ‘임권택 전작전’은 이례적으로 영화제 개막일보다 열흘 앞선 9월 23일(월)에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시작해 영화제 기간까지 계속됩니다. 위에서 언급한 다찌마리 영화들도 당연히 포함돼 있으며, 9월 28일(토) 오후 4시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나린다> 상영 후에는 오승욱 감독, 주성철 기자의 GV가 있습니다. 박노식 황해 최무룡 윤정희 김희라 장동휘 감독 변장호 , 최인현 , 임권택 개봉극장 아세아극장 개봉일 1972-06-04 관람인원 37,200(서울)명
고백. 내가 영화에 홀린 까닭은 단순하다. 영화가 활동사진이기 때문이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직접적으로 말하고 싶다. 사진이 활동하기 시작하는 시간, 거기서 더 이상 사진이기를 중단하고 갑자기 새로운 시간이 시작하는 순간, 내 눈앞에 있는 모든 현실이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이 그 무언가의 힘 안으로 들어가 버린 다음 거기서 시침 뚝 떼고 다시 세상이 시작할 때, 거기서 나는 새로운 세상의 일부가 되어 그 안에서 살아갈 수 있었다. 거기서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나는 몇 번이고 거기서, 라고 썼다. 거기서, 라는 지칭. 오랫동안 영화에서 내가 정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았다. 루이 푀이야드의 <뱀파이어들>을 보았을 때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거기서 내가 왜 그렇게 영화에 홀렸는지를 보았다. 똑같은 이유로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 스트롬볼리 >를 보았을 때 그걸 확인하게 되었다. 영화는 현실을 재현하는 예술이 아니다. 그와 똑같은 의미로 꿈을 구성하는 예술이 아니다. 영화는 현실과 나 사이에 놓여진 간격의 세상을 창조하는 예술이다. 영화를 보는 나는 그 간격 안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영화를 향해서 질문을 던질 때 그것은 그 간격의 구성 방법에 대해서 물어보는 것이다. 그때 영화는 둘 사이의 매개가 아니다. 그건 그 자체로 하나의 활동하는 형상을 만들어내는 시간이다. 우리는 영화를 담론 안에 살게 하면 안 된다. 이 기나긴 싸움. 담론과 형상. 물론 언어는 침식하듯이 다가와서 형상적인 것들을 잡아먹으면서 분절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언어가 그것을 자기의 체계 안으로 내재화시켜도 끝내 바깥에 머무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중단된 이행. 그 사이의 침묵. 말하자면 침묵은 언어 바깥에 머물 것이다. 그때 나는 침묵에 시선을 돌릴 것이다. 침묵을 보는 일. 그게 영화를 지키려는 내가 할 일이다. 그 침묵을 통해서 비로소 영화가 언어에 의해서 상실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침묵의 가장자리에 놓여진 입구로서의 액션이라는 활동을 보게 된다. 이때 액션은 이미지이자 동선이며 시간이자 감각이고 무엇보다도 활동하는 형상이다. 아니, 차라리 나는 그걸 시네마틱 센스의 제 일 법칙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 말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나는 이 법칙을 앞으로 좀 더 발전시킬 것이다. 영화적, 이라는 능력의 첫 번째 의미. 영화를 부정하려는 모든 이미지의 위협으로부터 이겨낼 수 있는 우리들의 투쟁을 위한 첫 번째 방어선. 여기엔 다소 긴 서문이 필요하다. 나는 지금 여기서 두 편의 영화를 오가게 될 것이다. 임권택 의 < 장군의 아들 >과 왕가위의 < 일대종사 >. 1990년과 2013년. 종로 우미관(優美館) 앞과 광저우의 불산(佛山, Foshan) 금루(金樓). 일본 제국주의. 김두한과 엽문. 그 둘 사이에는 아무 관계도 없다. 대신 그 둘은 서로를 보충하고 있다. 그 둘이 서로에게 무언가가 부족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그 자체로는 아무 문제도 없다, 내가 여기서 하려는 것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 둘 사이에 놓여진 간격을 경유하여 이것을 저것의 자리에서 서로 각자 자기의 것으로 끌어당기려는 것, 바로 그 힘을 발견하려는 노력이다. 거기에 놓인 유일한 교집합. 액션이라는 동선. 액션이라는 설계. 액션이라는 이미지. 액션을 둘러싼 시청각 기호들. 액션이라는 감각. 그리고 액션이라는 시네마토그래프. 활동하는 사진. 하지만 활동을 시작하자 사라져버린 사진. 서로 다른 카메라의 능력. 거기서 무엇을 얻으려는 것인가. 두 개의 활동하는 힘. 나는 둘 사이를 과도하게 도식적으로 묶지 않을 생각이다. 나는 지금 액션만을 생각하고 있다. 이 위험한 생각. 내게 조언을 하고 싶을 것이다. 그건 스펙터클의 문제에요. 나는 지금 황홀, 이라는 개념을 떠올리고 있다. 그 말을 파토스에 국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화에서 액션은 동물적인 것이 아니다. 나는 거기서 영화의 수학을 본다. 왜 그렇게 영화에서 액션은 기술(記述)하기 어려운 기술(技術)일까. 나는 여기서 설명하는 대신 단지 기술할 것이다. 그때 이 기술은 선과 속도, 점과 위치, 그리고 방향과 강도의 문제가 될 것이다. 한 가지 더. 이 둘을 놓고 아무것도 이것을 저것에로, 혹은 저것에서 이것으로 환원하지 않을 것이다. 액션은 접촉이라는 문제라는 걸 생각해주기 바란다. 나는 두 영화를 가져다 놓은 다음 조망하려는 것이 아니다. 접촉의 방법을 확인하고 거기서 교차하는 영화적 경험을 보고 싶다. 단순하게 말하자. 여기서는 하나의 장면을 절단한 다음 저기에 올리고 저기의 것을 끌어다가 여기에 연결시켜서 하나의 집처럼 만든 다음 두 개의 층을 번갈아 오가게 될 것이다. 각각의 층. 나는 서로의 층이 각자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 동시에 그 둘 사이에서 마치 하나의 활동처럼 연결 지어져 있는 선을 따라가 볼 것이다. 왜 그럴 필요가 생겼는가. 하나를 본 다음 다른 하나가 즉각적으로 떠올랐다. 아니, 차라리 하나가 다른 하나를 요청하고 있었다. 나는 그 둘을 분리하는 대신 하나 안에서 출현하는 다른 하나를 겹쳐놓아 보기로 하였다. 말 그대로 배치. 그 배후에는 아무 것도 없다. 당신을 설득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당신이 현재라는 시간을 바탕으로 이끌어낸 내 기억의 발견과 그 안에서 진행되는 미래의 배움을 공감해주었으면 좋겠다. 인상에 대한 믿음. 거기서 시작된 감각. 나는 순진한 시선으로 그 둘 사이를 따라가 볼 것이다. 그때 서로에게 부여하는 다양한 힘의 방향들, 서로 다른 간격의 문턱들, 편집의 층위들, 동선의 단층들을 둘러볼 것이다. 단지 둘러보기. 그 말을 당신이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두한. 엽문 물론 좀 더 친절한 유사성이 있긴 하다. 먼저 < 장군의 아들 >. 청계천 수표교 다리 밑에서 자란 김두한은 우연한 기회에 싸움에 말려들어 종로 주먹패들 안에 들어가게 된다. 종로패는 혼마치깡(지금의 충무로)를 점령한 일본인 하야시패와 서로 긴장관계를 이루고 있다. 김두한은 차례로 아래서부터 자신과 맞서는 상대를 무릎 꿇게 만들면서 위로 올라간다. 종로패 우두머리 김기환은 김두한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위기에 처한 학생패 신마적 엄동욱을 구하기 위해 달려가 하야시와 그가 고용한 (김두한의 어린 시절의 인연이자 유일한 싸움 경쟁자인) 김동회를 물리친다. 엄동욱은 김두한에게 종로를 넘겨주면서 그를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라고 부른다. (그런 다음 2편으로 이어진다.) < 일대종사 >. 궁보삼은 북방 무술과 남방 무술이 서로 교류하는 장을 만들고 자신의 은퇴 이후에 ‘일대종사’라는 명예를 넘겨줄 무술가를 찾기 위해 불산 금루에서 대결의 연회를 연다. 여기에 영춘권을 익힌 엽문이 양광 국술계를 대표하여 차례로 아래서부터 물리치고 올라선다. 궁보삼의 제자 마삼도 그 자리를 탐내지만 궁보삼은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 마삼은 스승에게 반기를 들고 궁보삼은 대결의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난다. 딸 궁이는 정혼을 파기하고 마삼과 대결하여 그룰 굴복시킨다. 엽문은 ‘일대종사’가 되지만 홍콩으로 건너가 쓸쓸한 말년을 보낸다. 모두가 그렇게 역사 속에서 잊혀져간다. 둘의 공통점, 아래서부터 위로 올라간다. 그리고 그 둘은 (영화 제목이 부여하는) 명예의 자리에 오른다. 그런 다음 엽문과 그 모든 인물들은 위에서 아래로 역사의 힘에 의해서 추락한다. 세 편의 이야기 끝에 김두한은 김동회의 부축을 받으면서 종로를 떠난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둘 사이의 줄거리의 유사성을 다루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당신은 단지 장면 안의 인물들의 동선을 설명하기 위해서 지칭하는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서만 이 줄거리를 이용하기 바란다. 임권택 그리고 약간의 사연. < 장군의 아들 >은 임권택 이 이어나가던 창작의 선 안에서 일종의 만곡처럼 보인다. 1972년 < 돌아온 자와 떠나야 할 자 >를 만들고 난 다음 임권택은 두 번 다시 다찌마와리 영화를 연출하지 않았다. 나는 이상하리만큼 이 영화의 제목이 그 자신의 선언처럼 읽힌다. 그런 다음 < 잡초 >를 만들었다. 새마을영화, 전쟁영화, 반공영화를 만들었지만 다찌마와리에 대해서는 마치 돌아보기도 싫다는 듯이 건드리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이 장르의 영화가 몰락한 것도 아니다. 그런 다음 < 족보 >를 만들었다. 차례로 자기의 탐구를 이어갔다. < 만다라 >는 하나의 지표가 되었다. < 길소뜸 >과 < 티켓 >은 서로 다른 자리에서 이어지면서 임권택의 영화 안에서 새로운 미학적 형식의 기준이 세워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사건과 인물, 형식은 새로운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 씨받이 >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 개벽 >. 천도교 2대 교주인 해월 최시형의 전기. 더 높이 더 멀리 뛰면서 이 땅의 개벽을 소망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그런 다음 갑자기 <장군의 아들>을 찍었다. 장르영화에로의 복귀. 물론 누군가는 <개벽>에서 <장군의 아들>로 이어지는 인물의 전기에 대해서 설명할지 모른다. 하나의 선. 나는 가능한 (모델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장군의 아들>은 초상화와 같은 탐구가 없다. 여기서 김두한은 캐리커처처럼 단순해졌고, 종종 배경은 평면적이거나 흐릿해져서 공간적인 설정이 아니라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물론 나는 이 영화에서 그런 단순함을 사랑한다. 하지만 거기서 인물의 가시성이라는 문제를 생각한다. 가시성의 형상. 가시성의 장소. 가시성의 방법. 방법의 배열. 인물에게 비치는 빛과 그림자. 불투명성과 투명성 사이의 긴장. 보이는 것과 볼 수 없는 것 사이의 분배. 우리는 영화에서 그려내는 초상화가 가시성의 체계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임권택은 좀 더 직접적으로 대답했다. “나는 다시 돌아갈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당시 < 아제아제 바라아제 > 이후 < 하류인생 >까지 영화를 제작했던 태흥영화사의) 이태원 사장이 나한테 자꾸만 한번 하자는 거예요. 처음엔 화를 냈다니까. 그런데 자꾸만 마음속 한 구석에서 이걸 해보고 싶은 거예요. 내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그게 보고 싶어진 거지요” <장군의 아들>은 임권택 자신에게 (그의 첫 번째 다찌마와리 영화인) 1964년 < 욕망의 결산 >에서 1972년 <떠나야 할 자와 돌아와야 할 자>에 이르는 (<잡초> 이전까지의) 영화와 다시 대면하는 영화이다. 하지만 임권택은 여기서 배수의 진을 쳤다. “압구정 거리를 걸어가다 보면 참 사내답지 않은 아이들이 지천인 거예요. 그 아이들을 데리고 1930년대 경성 거리에서 살아간 사내들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던 거죠” <장군의 아들>에서 ‘협객’으로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들은 처음 영화에 출연하는 신인들이었다. 남자 배우도 그렇고 여자배우도 그렇다. 한 번도 연기 경험이 없는 배우들. 그 ‘아이’들은 종종 발성이 되지 않았으며, 연기의 동선을 알지 못했고, 씬의 연결에 대해서 현장에 와서 처음 구경했다. “내가 영화를 찍다 중간에 겁이 덜컥 나보기는 처음이에요. 어쩌려고 내가 이런 건가, 라는 순간을 매번 촬영 때마다 마주친 거요. 그래도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의 활기라는 게 있잖아요, 내가 그걸 놓치면 안 된다, 라는 심정으로 찍어나간 거죠” (아직은 시인이었던 영화감독) 유하 가 양귀자 의 소설 제목 <바람 부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를 패러디해서 <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를 막 발표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이 시인을 문학과 지성사는 104번째 시집으로 초대하였다. 압구정 거리와 경성 종로통. 두 시대의 ‘모던 뽀이’들. 왕가위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왕가위는 < 화양연화 >와 < 2046 >을 만들고 난 다음 잠시 멈추었다. 물론 캘리포니아에 잠시 다녀온 짧은 바캉스와도 같은 <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가 추신처럼 그 뒤에 달려있다. 나는 <화양연화>의 월드 프리미어 시사를 2000년 9월 18일 오후 7시에 홍콩에서 보았다. (그해 5월 칸 영화제에서는 워크 프린트가 상영되었다) 영화를 보고 난 다음 만찬회장으로 가는 차를 함께 타고 갔다. 왕가위는 이제야 끝났다는 약간 지친 표정으로, 다소 상기된 얼굴로, 언제나처럼 호화찬란한 홍콩의 야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화양연화>를 지금 막 본 다음이었기 때문에 출렁이는 내 마음을 가다듬을 수가 없었다. 이 영화는 이제까지 당신이 만든 모든 영화들보다 더 훌륭합니다. 왕가위는 선글라스는 벗으면서 고마워요, 라고 대답했다. 그러더니 문득 나를 돌아보고 말했다. 이제는 집에 돌아가야 할 시간이에요. 이 수상한 첨언.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냥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말처럼 들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그 말은 수수께끼처럼 내게 머물렀다. 그때는 그 말을 할 타이밍이 아니었다. 왕가위의 타이밍. 기다리고 있는 배우들. 양조위, 장만옥. 그의 스텝들, 장숙평. 박수소리. 예술적 승리. 술과 요리들. 나는 그 말을 곧 잊었다. 그날 밤새도록 술을 마셨다. 그리고 한참 뒤에, 그러니까 5년이 지난 다음, <2046>을 보다가 문득 극장에서 그 말을 떠올렸다. 집(home)은 그가 살고 있는 집(house)이 아니라 그의 고향을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왕가위를 처음 만났을 때 질문했다. 홍콩은 당신에게 어떤 곳인가요. 왕가위는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나는 홍콩 사람이 아니에요. 나는 상하이에서 태어났고 단지 홍콩에는 아버지를 따라와서 잠시 머물고 있는 것뿐입니다. 나는 잠시 멍해졌다. 왕가위는 다섯 살에 상하이를 떠나 홍콩에 왔다. 다섯 살의 어린 아이. 그 아이는 홍콩에서 살면서 그 후로 한 번도 여기가 집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계속 떠돌고 있는 주인공들. 발 없는 새. (< 아비정전 >)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무사들. (< 동사서독 >) 홍콩에서 캘리포니아까지는 얼마나 걸릴까. (< 중경삼림 >) 불면증에 시달리는 킬러. 홍콩의 밤. (< 타락천사 >) 세상 끝에 가보고 싶어요. (< 해피 투게더 >) 앙코르와트. 내게 만일 표가 두 장 있다면 함께 떠나주실래요. (<화양연화>, 혹은 <2046>) 그리고 이번에는 캘리포니아에서 다시 한 번 홍콩을 반복한다.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1997년을 지난 지 10년도 넘게 지났다. 1936년 광저우 불산. 왕가위는 (이소룡의 스승으로 알려진) 엽문의 전기를 만들기로 결심하였다. 오랜 동안 < 상하이에서 온 여인 >을 찍으려던 계획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엽문은 북방무술과 남방무술의 교차로인 불산에서 ‘일대종사’가 되지만 일본 제국주의 군대와 공산당의 전쟁 중에 홍콩으로 거취를 옮긴다. 거기서 어린 이소룡에게 영춘권을 전수하지만 영화는 그 전에 끝난다. < 일대종사 >는 이제까지 홍콩을 떠나거나 떠나지 못하는 이야기를 만들었던 왕가위의 영화와 반대의 지리적 방향으로 진행된다. 혹은 역사적 수순을 따른다. 왕가위는 < 일대종사 >를 만들겠다고 결심하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중국 전역에 흩어져있는 무술 명가의 일대종사들을 차례로 방문하는 것이었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무술을 ‘감상’하고, 그들의 안무를 촬영하고, 그런 다음 조언을 구했다. “<일대종사>는 내게 중국의 정신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중국에서는 과거의 유산이 많이 사라졌거나 아니면 바뀌어버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치도 버리거나 부서져버렸습니다. 아직 유산을 담고 있는 무언가를 잡아야만 했습니다. 나는 무술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정신의 방법을 알고 있는 스승(Master, 一代宗師)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왕가위는 마오쩌둥의 노선에 대한 비판을 조심스럽게 피하고 있다. 해방 이후 유교전통과의 투쟁. 1950년대 근대화 과정에서의 분서갱유. 문화혁명과 조반유리(造反有理). 일부 수정주의 노선에 따라 자본주의 시장을 표면적으로 개방했지만 여기는 지금 중국 사회주의 한복판이다. 나는 좀 더 < 일대종사 >의 배경을 설명하고 싶다. <일대종사>는 왕가위의 첫 번째 무술영화이다. 이 영화는 두 번째 무협영화가 아니다. 물론 왕가위는 자신만의 무협영화를 만들었다. < 동사서독 >. 명백히 호금전의 그림자 아래 놓인 영화, 후 샤오시엔을 감탄시킨 사막의 풍경화. 서극은 <동사서독>을 보고 난 다음 탄식을 했다. 나는 이제 더 빨리 찍을 수 밖에 없어요, 왕가위는 가장 느린 무협영화를 만들었어요. 명백히 서극은 < 칼 >을 찍으면서 왕가위를 의식하고 있다. (게다가 이 영화의 미술은 장숙평이다) 장르 안에서의 경쟁. 말하자면 장르라는 경기장. <일대종사>를 만들었을 때 왕가위는 무술 영화의 전통 안에 처음 들어서고 있는 중이다. 이건 그가 해본 적이 없는 장르이다. 물론 왕가위는 재치 있게 대답했다. “<일대종사>는 쿵푸영화가 아니에요. 이 영화는 쿵푸에 관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결국은 같은 말이다. 그때 왕가위는 이번에는 장철의 영화 안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장철은 < 복수 >를 전환점으로 해서 무협영화에서 무술영화에로 옮겨갔다. 새로운 동작들. 검(劍)은 권(拳)이 되었고, 피아노 줄은 수명을 다했으며, 트램펄린과 편집의 이음새는 좀 더 정교해졌고, 대결의 거리는 좁아졌으며, 더 많은 피를 흘리는 대신 뼈가 부러지는 사운드가 가세하였으며, 몸은 새로운 형태의 도면이 되었다. 피와 살. 신경조직들. 그때 새로이 몸에 자리한 것은 무엇일까. 새로운 시지각의 관계 안에서 몸이 불러일으키는 반응. 때로 타격을 받아 산산이 부서져버리는 몸. 그 안에서 흩어져버리는 생명. 각자의 고유한 몸. 살과 고기. 액션의 대상으로서의 육체라는 물(物). 쇼 브라더스의 시대는 막을 내렸고 골든 하베스트는 홍콩 액션영화를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시켰다. 결정적인 새로운 스타 이소룡, 그의 죽음 ‘이후’ 성룡. 비극에서 희극에로. 정창화 (가운데) 나는 여기서 희미하게, 거의 지워질 듯 하면서도, 그 사이에서 가까스로 그 둘 사이를 연결하는 이름을 호명하고 싶다. 정창화 . 임권택 에게는 (그 스스로) 영화를 가르쳐준 스승이라고 부르는 사람. 그는 정창화 이외의 감독에게서 연출부를 한 적이 없다. “내가 만일 < 장군의 아들 >에서 해낸 액션 장면들이 인상적인 것이라면 대부분은 정창화 감독의 연출에서 가져온 경험들인 거예요” 정창화는 1968년 홍콩 쇼 브라더스에 가서 액션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 천면마녀 >는 홍콩에서 만든 다음 서울에서 개봉하였다. (그리고 유럽에 개봉하였다) 나는 그 영화를 파라마운트 극장에서 보았다. < 아랑곡의 혈투 >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 철인(天下第一拳) >을 연출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 영화는 미국에 <5 fingers of Death>로 개봉하여 주말 박스 오피스 1위에 오르기도 하였다. 타란티노는 2002년 영국 영화잡지 「사이트 앤 사운드」 투표에서 자신의 10 베스트 영화중의 한 편으로 선정하였으며, 마치 증명이라도 하듯이 사운드트랙을 < 킬빌 >에 인용하였다. 정창화가 홍콩 쇼 브라더스에서 연출할 때 장철은 같은 스튜디오의 경쟁자였다. 그리고 오우삼은 장철의 연출부였다. 물론 오우삼은 정창화를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걸 오우삼이 < 첩혈가두 >를 찍을 때 물어보았다. “정창화의 연출은 하나의 전통이 되었지요. 그 전에는 드라마와 액션 장면을 서로 다른 것으로 여겼어요. 하지만 정창화는 드라마 없는 액션은 감정이 없다고 생각 했어요” 정창화의 시간은 짧았다. 그는 한국에 돌아왔고 1981년 홍콩 뉴 웨이브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오우삼은 파토스가 충만한 액션 활극을 연출했다. 그게 전적으로 정창화의 영향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종종 주윤발의 코트자락, 적룡의 표정, 장국영의 노래 부르는 것만 같은 제스처들에서 그림자가 묻어난다. 임영동은 두 번째 새로운 물결이 되었다. 임영동은 오우삼의 전통에 저항했다. “난 장르 안의 리얼리즘을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왕가위는 그를 위해서 시나리오를 썼다. 약간 소설처럼 쓰고 싶다. 그는 저 멀리 잠시 동안 머문 다음 떠나간 한국인을 쳐다보았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정창화의 영화들은 홍콩영화의 고전이 되었다. 그때 정창화는 무협에서 무술영화에로 이행하는 (혹은 접합하는?) 시기에 잠시 걸쳐 서 있었다. 나는 둘 사이에 있을 지도 모르는 영화적 진동판을 건드려보고 싶다. 영화라는 커뮤니티. 영화사라는 시간적인 울림. 배움의 전이. 경험의 공집합. 방법의 정식화. 자기의 유한 세계 안에서조차 자신이 포함된 세계의 법칙들에 따라 움직이는 방법을 완전하게 무시하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하지만 이건 위험한 가설이다. 여기서 왕가위 영화의 뿌리는 1960년대 쇼브라더스 무협영화가 아니라 1950년대 광동 오페라양식의 멜로드라마라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그는 몇 차례이고 광동 오페라에 대한 자신의 매혹을 반복해서 고백했다. 그리고 그 고백을 < 동사서독 >, < 화양연화 >, < 2046 >, 여기에 그 어떤 영화보다도 < 일대종사 >에서 메아리처럼 듣는다. 일그러진 균형. 계속해서 사라지는 등장인물들. 군무와 아리아. 사람들은 이 영화를 대부분 오해했다. 경극과 오페라의 기기묘묘한 착종. 이 무대로부터 영향을 받은 1950년대 홍콩영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영화들은 (이 장르의 호사가들을 제외하면) 우리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 다음 왕가위는 1950년대 할리우드영화와 1960년대 유럽 영화들에 이끌렸다. 그는 십대 소년시절을 영화관에서 보냈다. 왕가위는 그만큼 임권택과 멀리 있다. 왕가위가 그의 첫 번째 영화 < 열혈남아 >를 만들었을 때 임권택은 < 아제아제 바라아제 >를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 아비정전 >을 촬영하고 있을 때 <장군의 아들>이 제작되었다. 나는 좀 더 밀고 나가고 싶다. 이미 말했지만 강제로 임권택 과 왕가위의 선을 연결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둘을 하나로 묶는 것은 내게 방법에 관한 전략의 문제이다. 영화에서 액션은 결국 과정을 보는 기술이다. 그때 우리는 방법의 절차가 어떻게 진행되는 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그것을 보는 지식에 대한 일련의 질문을 위치지어야 한다. 액션의 성질, 동선의 출발. 이 선이 연결하는 변주들. 그 사이의 법칙과 목표 사이의 긴장. 물론 우리는 상황을 놓치면 안 된다. 나는 액션의 시퀀스란 결국 집합의 문제틀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움직이는가. 거기서 집합은 어떻게 분산되고 다시 하나로 모이는가. 누가 장소를 채우는가. 그 장소를 어떻게 채우는가. 동시적인 질문. 말하자면 영화적 순간들의 활용이라는 문제와 우리는 여기서 정면으로 대면하게 된다. 이때 왜 그 둘이 필요해졌는가. 나는 여기서 임권택을 임권택이라는 집합으로부터 빼내오고 싶다. 우리는 자칫하면 잘못된 운동의 가능성에로 휘말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세 편의 < 장군의 아들 >은 이 영화들을 둘러싼 < 개벽 >과 < 서편제 >로부터도 이상한 방식으로 떨어져 나와 있으며, 동시에 1960년대 임권택의 다찌마와리로부터도 달아나있다. 그러므로 나는 같은 방법을 따르고 싶은 것이다. 차이와 반복은 여기서 우선적으로 피해야 할 방법이다. <장군의 아들>을 보면서 이 주변을 둘러싼 영화들과 연결 지어 동일하게 다루는 관점을 먼저 피한 다음 모든 것이 뒤에 남겨진 다른 모든 영화들로부터 만들어진 연결과의 차이로부터도 나와야 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바르뜨의 말을 흉내 내서 말하자면) 나에게는 가시적인 것의 가시성과 가시성의 가시적인 것 사이에서 <장군의 아들>에서 내가 본 것을 < 일대종사 >가 (마치) 설명하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우리가 보는 것은 결국 보는 것 속에 위치 지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Ceci n´est pas une pipe 내게 약간의 유머를 허락해주었으면 좋겠다. 말하자면 르네 마그리뜨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 파이프라는 형상. 그때 그 곁에 애매하게 달려있는 언표. 그 설명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푸코는 간명하게 대답했다. 이제부터 상사(相似)는 자신에게로 되돌아갑니다. 자신으로부터 출발해 펼쳐졌다가 다시 자신 위로 접히는 것입니다. 나는 같은 방법으로 설명을 흉내 내고 싶다. 그 둘을 동일한 운동 안에 집어넣은 다음 그 둘이 동일하지는 않지만 그 안에서 서로가 동시에 활동하는 영화적 법칙에 대해서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나는 그때 한 쪽이 다른 한 쪽에게 형상에 대한 언표의 역할을 하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이다. 말하자면 형상으로서의 언표. 언표로서의 형상. 그때 여기서는 어느 쪽에도 우선권을 주지 않을 것이다. 핵심은 둘 사이의 성격과 형질, 그리고 동선과 과정이 다르더라도 그 안에서 법칙은 언제나 영화라는 과정 안에서의 결정이 행사하는 방식에서 출발하고 그런 다음 귀결된다는 것이다. 나는 결정을 보고 싶은 것이다. 임권택 의 결정. 왕가위의 결정. 대부분 영화에서 그 결정은 과정 안에 신비롭게 숨어있다. 나는 그걸 끌어내서 가시성의 할 수 있는 한 가장 순수한 이것임, 을 설명할 수 있는 긍정의 아니다, 에로 데려가려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액션의 방법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방법이 어떻게 활동하는지를 보려는 것이다. 첫 번째 활동. < 장군의 아들 >에서 김두한의 첫 번째 대결은 영화가 시작한 다음 24분 55초, 그러니까 영화가 시작하고 4분의 1이 거의 다 되었을 때 처음 나온다. 이 씬 앞에 김두한이 종로패에 들어가는 계기가 된 싸움, 신마적 엄동욱과 구마적의 우미관 앞에서의 대결, 그리고 전라도에서 올라온 망치와 김두한의 싸움이 있지만 여기까지는 싸움의 규칙, 인물들 사이의 관계, 지리적인 이동의 체계, 종로와 충무로, 무대로서의 공간의 소개를 위한 것이며 사실상 <장군의 아들>에서 액션 장면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이 씬은 양적으로 매우 짧다. 고작해야 1분이고 그리고 조금 넘은 다음 몇 초 정도를 더한다. <장군의 아들>에서 액션 씬들은 예외 없이 모두 짧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화를 보고 나면 내내 액션 장면들만을 보고 나온 기분이 든다. “액션은 결국 분위기인 거예요, 거기다가 몰아넣기까지가 힘든 거요, 그러고 나면 그다음에는 빨리 거기서 빠져나올 궁리를 해야만 되요. 이게 길어지기 시작하면 허점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거요. 그러니까 이제 억지를 부리게 되는 건데, 싸움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기예를 익힌 선수들의 시합을 보아도 정말 잘하는 게 무언지는 그 세계를 아는 사람들의 눈이 아니면 보이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 거기서 내가 무엇을 찍으려는 건지를 먼저 정한 다음 그걸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방법을 찾아야 되는 거예요.” 이 장면은 김두한이 종로패에 막 들어가고 난 다음 거리에서 조선 학생 깡패들과 일본학생 깡패들의 싸움에 휘말려 드는 대목이다. 약간의 설명. 1930년대 경성에서는 조선학생들과 일본학생들이 종종 싸움이 붙었으며, 이 싸움은 민족주의적 파토스가 거기 함께 담겨있어서, 일종의 자존심 대결 같은 양상을 보였다. 물론 이 설명은 역사적인 배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후일 이 시대를 다시 재각색하면서 만들어진 일종의 신화일 것이다. 홍성유의 원작소설에서 김두한과 그의 종로 깡패들을 협객이라고 불렀으며, 그들은 싸움에서도 예와 의를 지키면서 승패를 겨루었다. 그건 일본 혼마치깡패도 마찬가지이다. 말하자면 이들은 현실 세계 안에 공존하는 일종의 상상적인 또 하나의 질서 안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장르의 규칙이라는 이름 아래 보호받는 또 하나의 세계. 김두한은 여기서 현실세계로부터 장르 안의 세계 질서 안으로 옮겨간다. “거 주먹세계, 거 별거 아니더라구” S#_1 S#_2 S#_3 S#_4 S#_5 S#_6 S#_7 S#_8 S#_9 S#_10 S#_11 S#_12 S#_13 S#_14 S#_15 상황의 설명. 풍미당 빵집에서 지금 막 큰 형님으로부터 가죽 잠바를 물려 입고 배부르게 빵을 먹고 있는 김두한을 청계천 수표교 다리 밑 움막에서 함께 지내는 친구 진영이 찾아온다. 진영에게 우쭐해진 김두한은 그에게 주머니에 있는 돈을 모두 꺼내주면서 책을 사보라고 한 다음 자기는 돈이 필요 없는 자리에 갔다고 큰소리친다. “거 주먹세계, 거 별거 아니더라구”라고 하자 진영은 “너 그러다 종로 휘어잡겠다”라고 말한다. 그러자 그 말에 문득 김두한은 자세를 고치면서 “잡지, 잡고 말고”라고 대답한다. 말하자면 종로패의 우두머리를 위한 첫 걸음. 이제 그 자리를 향한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상승이라는 선. 당신은 이 방향을 유심히 보아야 한다. 물론 선과 함께 활동을 시작하는 드라마의 운동. 김두한은 자기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혹은 운명이 그를 그 자리에로 이끈다. 마치 그 대답에 대답이라도 하듯이 (두 개의 대답의 차이) 그때 종로패 한명이 뛰어 들어와 김두한에게 다급하게 말한다. “두한이 형, 일본 학생하고 조선 학생하고 한판 붙었는데, 그 왜 있잖아, 오찌아이라는 깡패 두목 그 놈한테 걸린 모양이야” 여기서 주의 깊게 보아야 할 선. 이때 풍미당 바깥으로 나가면서 김두한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나간다. 동선이라는 문제. ( S#_1) 두 가지 설명. 이 대결에 김두한이 가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런데도 김두한이 달려간다. 효과의 이유. 김두한은 의협심이 있으며, 게다가 일본인에게 조선인이 맞는 상황을 참지 않는다. 말하자면 장군의 아들. 아버지 김좌진의 피. 하지만 이 효과는 심리적으로 김두한을 다르게 설명할 수도 있게 허락한다. 김두한은 즉흥적이며 행동의 결과에 대해서 미처 계산하지 못한다. 종종 김두한이 (전체 안에서) 수동적인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능동성에 이끌리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행동의 결정은 시종일관 반복된다. 그리고 이 결정이 종종 사건을 만들어낸다. 또 하나의 설명. 김두한은 운명에 대답해야 한다. 그리고 그 대답의 자리에서 자신의 말을 증명해야 한다. < 장군의 아들 >은 먼저 말한 다음 거기에 대해서 사건이 다가오고 그것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때 마치 김두한은 자기의 운명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이중적인 반어법. 김두한은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 지 항상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자기가 어떻게 될 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때 그래도 김두한이 하는 것은 언제나 대결이다. 우리는 이 대결의 성격을 설명하지 않으면, 임권택 의 말을 빌리면, 싸움의 분위기 안으로 들어서지 못할 것이다. 항상 이미 거기에 있었던 대결. 그 자리에 불려가는 김두한. 우리는 이 대결이 일종의 소급효과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운명의 벡터. 김두한이 달려간 장소는 좁은 골목 안이다. ( S#_2) 김두한과 그를 부르러 온 종로패 사내를 뒤따라 카메라는 그 안으로 약간 흥분한 듯이 함께 안으로 흔들리며 직진한다. 이때 보는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그 흔들림의 신호와 음악의 청각적 기호이다. 이 영화는 대부분 카메라를 레일 위에 올려놓았거나 안전하게 크레인으로 움직였다. 그래서 마치 들고 찍은 것처럼 움직일 때 그 흔들림이 육체적이면서 동시에 감정적인 신호처럼 가시화된다. 물론 이 장면은 장소의 힘이 불러일으키는 구도의 긴장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두 개의 사선으로 이어진 깊이 안으로 우리를 이끌 때 여기에는 두 개의 운동이 있다. 하나는 카메라가 김두한과 종로패 사내와 함께 우리를 이끌고 들어가는 전진의 인력이지만 다른 하나는 사선의 깊이 안으로 이어지는 두 개의 가상선의 교차점에 서 있는 오찌아이의 존재감이다. 이 골목에는 오로지 직선밖에 없다. 그리고 그 선은 양쪽으로 교차하듯이 가운데를 향하고 있다. 거기서 김두한은 자기의 첫 번째 대결을 치러야 한다. 이때 이 골목이 단지 수평 직선이 아니라 아래서 위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이어지는 상승의 방향으로 저 뒤쪽 배경이 이어지고 있는 것을 유심히 보아야 한다. 여기서부터 올라서야 하는 계단. 그 첫 번째 대결의 장소. 일종의 장면을 설정하는 쇼트(master shot). 김두한의 자리에서 멀리 있던 카메라가 단숨에 대결 장소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임권택은 오찌아이에게 얻어맞는 조선학생이 땅바닥에 뒹구는 모습으로 바로 뛰어 들어간다. ( S#_3) 이 쇼트는 앞의 쇼트에서 이어져야 할 두 개의 다이어그램에서 김두한을 안으로 들여보내기 위해 시선의 교차점을 잘라낸 것이다. 시선의 교환 사이의 데쿠파주. 김두한은 구경꾼의 자리에 있으며 오찌아이를 바라보고 있지만 오찌아이가 그를 바라보는 것(reverse_shot)은 아니다. 하지만 이 시선을 성립시키지 않으면 그 둘을 대결의 관계로 이어붙일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그 둘 사이의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 두 개의 집합 중에 바깥의 블록으로부터 내부의 블록 안으로 시선의 고정점을 들여보내야 한다. 오찌아이를 찍은 다음 장면( S#_4)에서 그는 손가락을 들고 화면 정면을 향하여 “다음 놈은 나와라”라고 소리친다. 물론 그 손가락은 조선 학생들을 향한 것이지만 ( S#_5) 앞의 장면과 마주보는(reverse_shot) 다음 쇼트의 9명의 인물 중 가장 가운데에 서 있는 사람은 김두한이다. 이때 임권택(과 정일성 )은 오찌아이와 김두한 사이를 오가면서 두 인물의 크기를 거의 동일하게 맞춰놓았다. 이 장면은 순식간에 지나가지만 9명을 세워 놓으면서 아무도 인물들 사이에서 겹쳐 세워진 사람이 없다. 그래서 이 9명은 좁은 골목 안에서 반대로 수평으로 길게 늘어서 있는 느낌을 준다. 여기에 김두한을 제외한 모든 인물에게 학생복을 입혔기 때문에 짧은 쇼트지만 시선은 김두한을 꼭짓점으로 하여 옆으로 벌어져 보인다. 임권택은 골목의 사선과 면 사이에 인물을 세워놓을 때 반복적으로 수평 구도로 늘여놓는다. 패배감에 조선학생들이 등을 돌려 돌아가려 할 때 김두한은 그들과 함께 등을 돌리면서 슬그머니 가죽 잠바를 벗는다. 등 뒤에서 오찌아이가 “이제 없는가?” 라고 물어볼 때 ( S#_6) 김두한이 돌아서면서 “여기 또 있다”라고 대답한다. 이 쇼트는 하나의 행동을 둘로 나눈 것이지만(double_action) 동시에 방향을 바꾸면서 상대방에로 시선을 돌리는 매우 간단한 방법이다. 이때 임권택은 동시에 9명 속에 섞여있었던 김두한을 그들로부터 떼어내는 효과를 동시에 활용하고 있다. 김두한이라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때 이 골목은 너무 좁아서 45도로 비틀기에 적절한 위치가 없다. 어쩌면 벽면의 붉은 색 벽돌은 이 골목의 연속성으로부터 인물의 행동을 고립시킬 수도 있다. 임권택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돌아보는 김두한과 그 시선을 따라가면서 벽면과 사선으로 평행이 되도록 세워 놓았다. 김두한의 대답이 오찌아이가 돌아보는 쇼트(reverse_shot)를 성립시킨다. ( S#_7) 구경꾼들이 배경으로 수평으로 늘어서 있고, 돌아가려는 일본학생들이 멈칫 할 때 오찌아이만이 마치 조건반사처럼 정확하게 돌아본다. 그들 사이에서 최고의 싸움꾼. 김두한과 겨뤄야 할 첫 번째 상대. 그가 보여주는 예민한 신경. 그 힘을 다시 이쪽으로 옮겨오기 위해서 거기에 먼저 힘을 실어야 한다. 오찌아이는 일본학생들 사이를 걸어 나온다. 정면으로 직진하는 오찌아이를 바라보며 그 앞으로 나서는 김두한의 얼굴을 가까이 다가갈 때(close_up) 거기서 보는 것은 얼굴이 아니라 표정 속의 눈이다. 마치 상대방을 반사하는 것만 같은 눈 안의 빛. 얼굴 위에 덧 쓰여진 표정. 그 위에 상대방을 향하는 시선, 그 시선의 방향을 따라 김두한이 화면 바깥으로 이동할 때(out_of_frame) 그는 마침내 오찌아이의 프레임 안으로(into_frame) 들어서는 것이다. 이제 두 개의 다른 블록이 하나가 된다. 혹은 여기서 저 안으로 이동한다. ( S#_8) 이때 김두한과 오찌아이는 먼저 서로를 마주보면서 상대방을 가늠한다. 물론 김두한이 블록 안으로 들어온 것이기 때문에 먼저 김두한의 등 뒤에서 오찌아이를 바라보고 ( S#_9) 그런 다음 (reverse_shot) 오찌아이의 등 뒤에서 김두한을 쳐다본다. ( S#_10) 여기서 오찌아이가 김두한을 바라보면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할 때 그를 마주보는 김두한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하는 것은 당연한 동선의 일치이다. 탐색전을 벌이던 두 사람을 동일하게 한 프레임으로 잡을 때 갑자기 카메라가 그들의 머리 위로 올라간 다음 수직으로 내려다본다. ( S#_11) 그들을 구별할 수 있는 것은 의상밖에 없다. 이 프레임의 구도는 오찌아이를 왼쪽에 세우고 김두한을 오른쪽에 세운 다음 골목을 마치 경사 앵글처럼 비스듬하게 세운다. 이 구도가 이들의 대결을 역동적으로 만든다고 설명하는 것은 상투적인 것이다. (물론 그것이 사실이기는 하다) 이 쇼트는 독립적인 프레임이 아니라 리듬 안에 놓여진 것이다. 김두한과 오찌아이가 서로를 마주볼 때 이 좁은 골목에서조차 오찌아아는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내려왔고( S#_9) 김두한은 아래서 위로 오찌아이를 올려다보면서 올라간다. ( S#_10) 결합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위와 아래. 이 높낮이를 만들면서 동시에 이 균형관계를 무너트리기 위해서 카메라는 구태여 왼쪽과 오른쪽으로 조금씩 이동해서 중앙 소실점의 성립을 피하고 있다. 그런 다음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볼 때 수직으로 내려다보이면서 동시에 경사진 구도에서 오찌아이가 왼쪽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움직일 때 김두한은 오른쪽 아래서 올려다보는 것처럼 움직인다. 물론 이 시선은 영화를 보는 쪽에서만 성립되는 높낮이이다. 그러나 임권택은 두 인물을 각자의 동선을 따라 독립적으로 움직이면서 동시에 이 둘을 하나로 만드는 블록 안에서 높이의 배치를 한다. 엄격하게 말하면 이 둘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S#_12) 갑자기 구경꾼들 바깥으로까지 빠져나간 다음(long_shot) 위에서 내려다보듯이, 좀 더 비유적으로 말한다면, 내리 누르듯이, 찍은 구도에서 오찌아이가 저 멀리 보이고 그 앞에 금방이라도 달려들 자세를 취하는 김두한의 위치는 잘못된 배치이다. 영화 문법적으로 이 두 사람의 배치는 김두한과 오찌아이의 상상선이 맞지 않는다. 약간 에매하지만 둘 중의 하나가 맞지 않거나 혹은 위치가 바뀌었다. 하지만 수직으로 내려다본 카메라의 위치가 완전히 이 시선 바깥으로 나갔기 때문에 마치 이 쇼트는( S#_11) 일종의 인서트처럼 쇼트 사이를 그냥 건너간다. 물론 이 쇼트 자체는 인서트가 아니다. 간단한 설명. 이 쇼트를 삭제하면 두 개의 쇼트는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 ( S#10_ S#_12) 여기서 갑자기 이상한 쇼트의 교환이 일어난다. 완전히 구경꾼 바깥으로 빠져나갔다가 김두한이 결정적인 일격을 가할 때( S#_13) 카메라는 두 사람 사이 안으로 가깝게 들어와서 순간적인 디테일을 보여준다. 단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액션의 속도 자체에 변화를 주어서 스텝 프린팅의 방법으로 다시 변속하였다. 그런 다음 다시 재빨리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 S#_14) 이때 앞의 디테일의 쇼트와 다음 장면을 연결시키는 것은 스텝 프린팅의 변속으로 이어지는 액션의 리듬이다. 이 효과는 우리에게 클로즈 업 다음에 바로 뒤이어 완전히 뒤로 물러난 롱 쇼트로 찍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그 디테일의 전부를 하나의 연속된 장면으로 본 것만 같은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그런 다음 김두한의 발아래 땅바닥에 쓰러진 오찌아이를 다시 가까이 다가가서 보여준다. ( S#_15) 이 4개의 쇼트는 단순하게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까다로운 질문을 던진다. 이 쇼트는 실용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진 것인지 아니면 힘의 역량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선택된 것인지 그도 아니면 어떤 미학적 원칙에 따른 것인지 간단하게 대답하기 어렵다. 여기에는 무언가 각 쇼트마다 서로 다른 결정을 내린 것처럼 보이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종합적으로 어떤 판단을 내리게 만든 다음 서로 유기적인 체계를 형성하는 하나의 그룹이라고 대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쉽게 동의할 수 없다. 자, 나는 같은 질문을 왕가위의 < 일대종사 >를 보면서 다시 던져볼 것이다. 물론 그런 다음 다시 < 장군의 아들 >로 재빨리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일대종사>를 돌아볼 것이다. 궁가 64수의 창안자인 궁보삼은 최고의 필살기 노원괘인을 마삼에게 설명한다. “이 초식의 정수는 고개를 돌려보는 것이다. 타격이 아니라 돌아보는 것이지” 나는 그 말을 믿어볼 참이다. (첫 번째 이야기 끝, 두 번째 이야기 계속) 장군의 아들 1990년 108분 컬러 1.85 감독 임권택 제작 태흥영화㈜ 각색 윤삼육 촬영 정일성 조명 차정남 편집 박순덕 음악 신병하 박상민 김두한 신현준 하야시 이일재 김동희 방은희 화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