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나은 1분 리포트] 욜 부지런한 종로경찰서
- 제작년도
- 2010
(첫 번째 쪽) 가을 학기가 되자 oo일보사에서 주최하는 학생 계몽운동에 참가하였던 대원들이 돌아왔다. 오늘 저녁은 각처에서 모여든 대원들을 위로하는 다과회가 그 신문사 누상에서 열린 것이다. 오륙백 명이나 수용할 수 있는 대강당에는 전 조선의 방방곡곡으로 흩어져서 땀 흘려가며 활동한 남녀대원들로 빈틈없이 들어찼다. 폭양에 그을린 그들의 시커먼 얼굴! 큰 박덩이만큼씩 한 전등이 드문드문하게 달린 천장에서 내리비치는 불빛이 휘황할수록, 흰 벽을 등지고 앉은 그네들의 얼굴은 한층 검어 보였다. 만호장안의 별처럼 깔린 등불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도록 사방의 유리창을 활짝 열어젖혔건만, 건장한 청년들의 코와 몸에서 풍기는 운김이 우거진 콩밭 속에 들어간 것만치나 후끈후끈 끼친다. 정각이 되자, P학당의 취주악대는 코넷, 트럼본 같은 번쩍거리는 악기를 들고 연단 앞줄에 가 벌려 선다. 지휘자가 손을 내젓는 대로 힘차게 연주하는 것은 유명한 독일 사람의 작곡인 ‘쌍두취행진곡(雙頭鷲行進曲)’이다. 그 활발하고 장쾌한 멜로디는 여러 사람의 심장까지 울리면서 장내의 공기를 진동시킨다. 악대의 연주가 끝난 다음에 사회자인 이 신문사의 편집국장이 안경을 번득이며 점잖은 걸음걸이로 단 위에 나타났다. (...) 라고 심훈 이 1935년에 쓴 장편소설 <상록수>는 시작한다. 애플북스 「상록수」 소설가 심훈 은 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그는 내내 경성에 살았으며 그때 거기서는 많은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심훈은 단지 시네필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1926년 (최초의) 영화소설 <탈춤>을 동아일보에 연재하였고, 그런 다음 영화를 배우기 위해서 이듬해 일본에 가서 영화감독 무라타 미노루(村田實) 밑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고 한다. 여기서 공부했다, 는 말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관한 자료가 내게는 없다. 무라타 미노루는 영화학교 선생이 아니라 영화감독이다. 그에게서 배울 수 있는 방법은 연출부를 하는 것인데도 구태여 자료에는 공부를 했다, 고 되어있다. 한국영화에서 도제제도라는 방법이 식민지 시대의 영화현장에서 해방 ‘이후’에 남겨진 일본영화의 전통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다. 약간의 추론. 쇼오치쿠 영화사는 1921년 쇼오치쿠 배우학교를 개조하여 쇼오치쿠 키네마 연구소를 만들었다. 여기에 아직 이십 대였던 무라타 미노루도 가세하였다. 그리고 여기서 그 첫 번째 영화로 니콜라이 고골의 소설 <밑바닥>을 각색하여 <거리의 영혼>을 찍었다. 이 영화는 (다소 놀랍게도 ‘이미’) < 인톨러런스 >의 영향을 받은 평행편집기법으로 연출되었다. 노엘 버치는 이 영화를 본 다음 감격하여 프릿츠 랑의 < M >이나(1930년) 칼 드레이어의 < 잔 다르크의 수난 >의 단계에(1928년) 이미 이르렀다고 썼다. <거리의 영혼>이 두 영화보다 먼저 만들어졌다는 점을 셈에 넣어주기 바란다. 그런 다음 닛카츠 영화사로 옮긴 무라타 미노루는 1924년 요시다 겐지로의 소설을 각색한 <세이사쿠의 아내>를 만들었다. 거의 결정적인 걸작. 이 영화는 마스무라 야스조가 1965년에 훌륭하게 다시 만들었지만 비교는 어림도 없다. 심훈이 1926년에 무라타 미노루 밑에서 ‘영화를 공부했’을 때 그는 <춘희>를 찍고 있었다. 심훈은 왜 무라타 미노루를 선택했을까. 심훈은 그에게서 무엇을 배웠을까. 아쉽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보지 못했고, 그런 다음 돌아와서 심훈은 < 먼동이 틀 때 >를 자신이 각본을 쓰고 연출하였고 이 영화는 단성사에 개봉하였다. 한국영화사가 (프린트가 사라진) 걸작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아마 흥행은 잘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심훈이 이듬해 조선일보에 기자로 입사했을 리 없다. 하지만 심훈은 영화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았다. < 상록수 >를 쓴 이듬해 1936년 심훈은 이 소설을 각색하여 영화로 만들 계획을 세웠다. 이것이 심훈의 마지막 행보이다. 그는 그해 9월 16일 장티푸스로 경성제국대학 부속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1926년 11월 29일 동아일보, 심훈「탈춤」 나는 하스미 시게히코가 아니다. 그는 플로베르에 관한 글을 쓰면서 마치 영화감독을 다루듯이 <마담 보바리>를 바라본다. 물론 ( 심훈 가까이 살았던) 현진건이나 이효석을 읽고 있으면 종종 어떤 문장의 수사들이 마치 이미지를 만지는 것만 같다는 인상을 받지만 그 대목들이 영화적으로까지 옮겨간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마찬가지로 <상록수>를 읽으면서 심훈이 영화감독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나는 무라타 미노루의 영화를 보았고 심훈의 (사라진) 영화는 (당연히) 보지 못했다. 그러므로 심훈이 이 소설을 어떻게 영화로 옮길 계획이었는지를 알 수 없다. 이루지 못한 심훈의 소망을 1961년 신상옥 이 영화로 만들었다. 주연은 최은희 와 신영균 . 두 사람이 채영신과 박동혁을 연기했다. 그런 다음 1978년에 임권택 이 다시 이 소설을 영화로 옮겼다. 새로운 커플. 한혜숙 과 김희라 . 물론 1978년은 이 소설을 다시 만들기에 좋은 시기였다. 나는 이 말을 부정적으로 하는 중이다. 거의 절정에 이른 새마을 운동. 농촌 계몽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소설. 게다가 그때는 영화진흥정책에 따라 반공영화, 새마을영화, 문예영화로 나눈 우수영화에 선정되면 외국영화 수입 쿼터권을 나눠주던 시기였다. 제작자들은 영화가 농촌에 가기를 희망했다. < 삼포가는 길 >을 새마을 영화로 둔갑시킨 마지막 쇼트를 기억하라. 교과서에 올라온 심훈이라는 이름. 누구나 읽어야 하는 소설의 명단. 일제 식민지의 탄압과 싸우면서 한편으로는 농촌 계몽에 온몸을 바친 선남선녀의 이야기. 민족주의와 근대의 (기괴한) 결합. 그해에 임권택은 < 족보 >와 < 상록수 >를 찍었다. 그리고 정말 이상한 두 편의 반공영화(라기보다는 차라리 실험영화처럼 보이는) <가깝고도 먼 길>과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를 만들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 네 편의 영화 중 오직 <상록수>만이 우수영화에 선정되지 않았다. 나는 그 선정과정에 얽힌 우여곡절을 알지 못한다. 아마도 임권택은 몹시 당황했을 것이다. 가장 안전한 선택. <상록수>는 새마을영화이면서 문예영화였다. 양수겸장. 그런데 빗나간 예상. 거기서 느꼈을 어떤 위기를 상상해주기 바란다. 그때 임권택의 영화들은 거의 대부분 개봉되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영화는 간판은 걸려있지만 영화는 상영되지 않았다. 사라져 가는 경력. 외부가 허용되지 않는 상황. 한국영화의 많은 감독들이 그때 자신의 경력을 거기서 끝냈다. 미미해지는 잔존의 영역.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있을 때 거기서 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에서 제외될 때의 사라져가는 존재의 기분. 그 곁의 예. <족보>는 미처 개봉도 하지 못하고 재개봉관으로 향해야만 했다. 하지만 제작사의 관점에서 <족보>는 제 임무를 다했다. 버려진 영화들. 수 없이 많은 1970년대 영화들은 그 과정을 따라갔다. 그 과정에서 허용된 미학적 성취들. <족보>는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을 숨겨놓은 놀라운 미학적 경지에 가 닿았다. 거기에 담겨있는 힘. 거기서 다시 한 번을 원하는 의지. 이 말을 반복해서 하고 싶다. 다시 한 번. 임권택이 1970년대 국책영화의 폭력적인 요구 안에서 가까스로 끌어낸 예, 라는 긍정의 힘과 의지의 새로운 조화. 오직 그의 영화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긍정의 구도. 정확하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상록수>가 또 다른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이렇게 말할 수 있다. 1978년은 임권택에게 모든 점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상록수>의 첫장면 아마, 어쩌면 아마도, 임권택 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계몽의 서사로 따라가는 대신 신파의 감흥으로 가득 찬 비애극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그의 독서 체험은 < 장군의 아들 2 >에서 나온다. 김두한이 출판사 앞을 지나가다 계용묵 선생으로부터 자네 김두한이지, 책 좀 읽고 다녀, 라는 핀잔을 들은 다음 자신이 머무는 종로 운당여관에 두 청춘남녀 학생을 부른다. 문맹이었던 그는 그들에게 심훈 의 <상록수>를 낭독시킨다. 대낮에 시작하여 밤늦은 시간까지 듣던 김두한은 죽어가면서 채영신이 박동혁을 그리워하는 대목에서 눈물을 훔쳐 닦으면서 중얼거린다. 죽여주는구나. 죽을 만큼 슬픈 이야기. 그런데 이상하게도 임권택의 < 상록수 >는 슬프게 찍히지 않았다. 단지 관객의 슬픈 감흥을 불러내는 데 실패했다는 뜻이 아니라 처음부터 이 이야기를 슬프게 접근하지 않았다. 구태여 이 영화의 기분을 설명해야 한다면 차라리 우울하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물론 슬픔과 우울을 엄격하게 나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사이를 우울증이 가로막아 나서고 있고 그 둘은 그 상태로 불투명한 채로 남는다. 슬픔은 종종 자아가 텅 비었는데 주체가 남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 말을 빌려서 우울은 이미 잃어버린 대상 앞에서 즐기는 주체의 외설적 긴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로 다른 두 개의 상실. 임권택은 <상록수>에서 어떤 승리도 거둘 생각이 없다. 그는 일단 이야기를 찌그러트리고 그런 다음 두 주인공의 운명을 따라가는 척하다가 완전히 바꿔놓는 쪽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누구나 알고 있는 데로) 박동혁과 채영신은 교육을 받고 개화한 다음 각자 자신의 고향에 돌아가 개혁에 몰두한다. 그러므로 이야기는 두 사람의 고향 이야기를 오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채영신은 몸이 아파서 그만 먼저 세상을 떠난다. 남은 박동혁은 고인의 뜻을 이어받아 더욱 힘을 모은다. 그래서 “... 오호, 너희들은 기나긴 겨울에, 그 눈바람을 맞구두 싱싱하구나! 저렇게 시푸르구나!” 라고 감탄을 한 다음 상록수 그늘을 향하여 뚜벅뚜벅 걸었다.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 하지만 임권택의 <상록수>에서 박동혁은 일본의 토지개혁정책에 동조하지 않아 음모에 빠진 채 경찰서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완전히 실성한 채 풀려난다. 그러는 동안 채영신은 소설 그대로 점점 몸이 아파 죽어간다. 마지막으로 채영신이 박동혁을 만나지만 그건 아무 의미 없는 작별이다. 채영신은 죽어가고 박동혁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다. 절반은 심훈을 따라가지만 남은 절반은 심훈을 버리는 결정을 내린다. 채영신과 박동혁의 작별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 내가 무언가 소설을 잘못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14개로 나눈 이야기에서 12번째 장(章) ‘천사의 임종’부터 다시 읽었다. 만일 이런 식으로 말해도 괜찮다면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것은 영화였다. 물론 그것이 영화의 잘못은 아니다. 소설을 빌려온 영화가 어느 대목부터 원작을 버리는 예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흔하다. 아니, 차라리 이것이 소설과 영화가 맺어온 우정의 방식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낱말이 이미지 안에서 반대로 활동한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이야기만을 따라간다면 둘 사이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이 비애극적인 연인들이 죽음의 위력 앞에 던져졌을 때 심훈 은 거기서 그것을 뛰어넘고 승리하는 계기를 찾으려고 한다. 반대로 임권택 은 무기력하게 그걸 받아들이면서 움츠러들고 마침내는 견디지 못해 부서져 나가기 시작한다. 좀 더 단순하게 말하고 싶다. 심훈은 슬픔의 충만함에 만족한 다음 그걸 대가로 하여 그 너머에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임권택은 희생의 셈에 실패한 채 아무것도 얻지 못하면서 우울한 상태에 젖어들어 거기에 그냥 머문다. 나는 지금 그 둘 사이의 우열을 논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내가 보는 것은 둘 사이의 운명의 서사적 차이가 아니라 그 운명의 시간적 차이이다. 무엇이 반복을 봉쇄하는가. 나는 그 사이에 어두운 바탕이 있다는 기분이 든다. 채영신과 박동혁이 살았던 시대에 이 소설을 쓴 심훈이 운명 안에서 가까스로 희망을 보려던 신비한 합리화로부터 할 수 있는 한 멀리 떨어져서 임권택은 그들이 살았던 시대를 재현하면서 운명의 윤곽이 어떻게 역사를 대상으로 자신을 유지하는지를 쳐다본다. 이때 영화는 일제 식민지 강점 하를 다루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새마을 운동의 시대를 우울하게 비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반복하는 운명극의 기분. 공허해진 세계. 그들은 어린 상록수를 키워야 한다는 의무감을 맹세하듯이 몇 번이고 말하지만 세계는 여기에 응답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 심훈은 일제 식민지시대에 <상록수>를 그렇게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임권택은 새마을 운동시대에 < 상록수 >를 이렇게 찍을 수밖에 없다. 같은 이야기 안의 차이. 차이 안의 차이. 그 차이의 유기적 재현을 한 번 더 만날 때, 그래서 그사이에 놓인 매개의 요구가 반복이라는 복종을 요구할 때 우리는 거절해야 한다. 내가 영화 <상록수>에서 보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의 한 번 더, 라는 반동의 의지이다. 임권택은 심훈의 <상록수> 앞부분을 성큼 건너뛴 다음 70쪽에서부터 시작한다.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어디를 자를 것인가. 장편소설을 만나면 영화는 책장을 이리저리 넘기기 시작한다. 소설은 정월 대보름이 지나고 삼 개월 뒤 긴 가뭄 끝에 비가 내린 다음 날로 되어있지만 영화는 그저 화창한 초여름 어느 날로 시작한다. (소설) 이윽고 파아란 뺑끼칠을 한 똑딱이가, 선체를 들까불며 들어온다. 갑판 위에서 손수건을 흔드는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가 보인다. 동혁은 손을 높직이 들며 허공을 저었다. 조가만 거루는 선객과 짐을 받아 싣고, 선창으로 들어와 닿았다. 동혁은 반가운 웃음을 얼굴 가득히 담고, 영신의 손을 잡아 뭍으로 끌었다. “이번 비, 참 잘 왔죠?” 한 마디가 첫밗에 하는 영신의 인사였다. “잘 오구말구요. 그래 그 동안 얼마나 고생을 허셨에요?” 하며 동혁은 얼굴빛을 살핀다. 상상하던 것보다는 나아도, 어글어글하던 눈이 전보다 커다래 보이는 것은, 그 복성스럽던 얼굴의 살이, 그만큼 빠진 탓일 듯. 드러나 반가운 김에 상기가 되어 그런지, 혈색은 그다지 나쁘지 않은 것을 보고, 위선 안심을 했다. (중략) 소설은 채영신과 박동혁이 만나는 데서 시작해서 그 두 사람이 농촌 계몽운동에 뜻을 모으고 연인으로 발전한다. 영화는 그 두 사람이 연인으로 만나서 자신들의 감정을 확인한 다음 (거기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채) 연인으로 머문다. 임권택 이 심훈 의 원작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지만 그러나 소설 안의 균형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상록수>를 다시 읽어나간다. 이때 임권택은 이 파란만장한 이야기의 굴곡을 거의 없애버린 다음 마치 제자리를 뱅뱅 도는 것만 같은 방식으로 두 연인을 가둔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박동혁의 고향인 한곡리를 하나의 원으로 하고 채영신의 고향인 청석골을 다른 하나의 원으로 한 다음 두 사람이 번갈아 두 개의 원 사이를 오가는 왕복운동만이 반복적으로 진행될 뿐이다. 각자의 원은 각자의 운동을 하면서 지리적 경계를 두고 채영신과 박동혁을 사이에 둔 교집합이 있긴 하지만 어떤 교환도 일어나지 않는다. 한곡리와 청석골은 다소 대조적이긴 하지만 그 둘 사이의 대비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이 두 개의 원의 운동에 대해서 그저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임권택은 이상할 정도로 채영신과 박동혁의 동선을 따라가지 않았다. 한쪽을 진행하다가 잠시 후에는 다시 다른 한쪽이 진행된다. 그래서 마치 두 개의 원이 이질적으로 보일 정도이다. 물론 끝까지 그 둘을 그렇게 내버려둘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순간에 그 둘을 수렴시킬 것인가. 임권택은 여기서 갑자기 두 개의 원을 두 개의 다른 차원으로 옮겨놓는다. 수렴에 관한 거의 결정적인 순간이 마지막에 기다리고 있다. 비애의 순간. 임권택 은 희극의 순간에는 언제나 실패하지만 비애의 순간에는 그것이 품고 있는 병든 감상주의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역사의 고통스러운 상실을 불러낸다. 비유의 시간. 하지만 무엇에 대해서? 대상을 괴상한 의미의 노예로 삼는 시간. 그때마다 임권택의 주인공들의 몸이 부서지거나 기관의 일부가 훼손되거나 때로 감각의 일부를 상실한다는 것을 떠올려주기 바란다. < 상록수 >는 그중에서도 가장 처참하고 아름다운 순간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영화는 소설에 전혀 없는 부분을 찍어나가기 시작한다. 면회 채영신은 병색이 짙은 몸을 끌고 비를 맞으면서 멀리 떨어진 경찰서 지하실에 붙잡힌 채 고문을 받고 있는 박동혁을 만나러 간다. 채영신은 마음을 조리며 그를 만나러 지하실 방에 들어선다, 라고 해야겠지만 영화는 그 반대로 찍혔다. “3분 동안만 면회를 허락하겠소. 증거가 없을 뿐 이 자의 죄과를 잘 알고 있소. 순순히 자백을 하면 가벼운 처벌을 받게 해주겠다는데도 끝내 자백을 않고 우리 취조관 진을 빼놓고 있소. 약혼자 되시는 분이 잘 타일러서 우리도 이 자로부터 손을 털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소”라고 형사가 채영신에게 말하지만 그 말은 화면 바깥에서 (voice_off) 주인 없는 메아리처럼 들려온다. 이때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형사의 언질은 그렇게 장면 위에 내리 누르듯이 놓인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목소리는 어떤 저항도 불가능한 절대적인 권력을 얻게 되고 목소리는 마치 전체의 상황을 요약하는 하나의 지배적인 쇼트(master_shot)처럼 기능한다. 채영신이 고문실에 들어설 때 영화는 채영신이 박동혁을 보는 대신 고문을 받고 지친 박동혁이 고문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지금 막 들어서고 있는 채영신을 발견하는 것으로 이 신scene을 시작한다. 나쁜 시작. 여기서 갑자기 동선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대부분 그런 다음 마치 조건반사적인 기계적인 작동처럼 쇼트들의 순서는 채영신을 따라 고문실에 들어선다. 그런데 갑자기 마치 다시 시작하기라도 하듯이 박동혁에게로 옮겨 들어서는 채영신을 바라보는 자리에로 옮겨간다. 이때 가장 이상한 것은 두 사람을 바라보는 카메라의 기울어진 구도이다. 갑자기 잃어버린 균형. 이제까지 < 상록수 >는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장면을 반듯하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정면과 45도를 번갈아 진행시켰으며 두 사람 사이의 어떤 감정적인 동요도 느끼지 못한다는 듯이 평행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박동혁이 균형을 잃고 앉아있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카메라가 수평을 잃는다. 이 장면은 심리적인 표현주의를 따르고 있지도 않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잃어버린 균형이 아니라면 동선을 일시적으로 중단시킬 수 있었을까. 그 방은 매우 단조롭다. 텅 빈 사각의 방. 길게 줄을 늘어뜨린 채 매달린 전구. 가운데 놓인 책상. 가장 간단한 미장센. 고문실에는 더할 게 없다. 거기에 앉아있는 박동혁. 그저 한눈에 보기에도 그동안 심한 고문을 받았음을 알 수 있는 모습. 물론 어떻게 말문을 꺼내 들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채영신에게 갑자기 박동혁은 돌아가라고 말한다. “빨리 돌아가요, 돌아가서 청석골 학원의 어린나무들을 돌봐요. 긴긴 눈보라를 맞고도 시들지 않는 싱싱한 상록수가 클 때까지 쓰러져선 안 돼요. 이자들은 내가 죄인이 될 때까지 죄인으로 몰고 가고 있는 거요. 이게 모두 나를 빼앗긴 설움이오” 채영신은 그 말을 멈추게 할 방법을 알지 못한다. 여기서 이상한 장면이 갑자기 나타난다. 쇼트는 말하고 있는 박동혁과 듣고 있는 채영신 둘 사이를 단순하게 등 뒤에서 오간다. (over_the_shoulder_shot) 그러다가 갑자기 박동혁을 바라보는 채영신의 얼굴을 왼쪽 구석으로 몰아넣은 다음 마치 카메라의 오른쪽이 주저앉은 것만 같은 구도의 쇼트가 이 일련의 연쇄 속에 침입한다. 이 쇼트는 박동혁과의 물리적 거리와 둘 사이의 심리적 거리 양쪽 모두로부터 탈구되어 있다. 얼핏 보면 단지 박동혁의 등 뒤에 찍던 채영신의 얼굴을 좀 더 자세하게 보기 위해 다가간 것처럼(close_up) 보이지만 이때 상상선의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만일 그렇게 진행하고 싶었다면 채영신의 얼굴은 오른쪽에 있어야만 했다. 그런데 프레임에서 왼쪽으로 온 그 얼굴은 심지어 거의 화면 바깥으로 빠져나갈 것만 같을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다. 차라리 영화 바깥으로 나가고 싶다고 요구하듯이 그렇게 가까스로 거기 그렇게 잠시 머물 때 나는 이 쇼트를 침입이라고 불렀다. 새로운 힘. 복종하기를 거절하는 반동적인 힘. 파졸리니라면 훨씬 잘 설명했을 그 힘. 어떻게 반동적인가. 여기에는 세 가지 서로 다른 표현의 속성을 지닌 상태가 생겨난다. 우선 첫째, 이 쇼트는 문법적으로 빠져나왔기 때문에 그 자체로 존재한다. 그 순간 채영신의 얼굴은 이 신 안에서 갑자기 하나의 고정점 같은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빠져나온 쇼트가 연쇄망 안에서 이미지가 된다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나는 지금 쇼트가 아니라 이미지라고 말했다. 쇼트에서 이미지로의 후퇴. 연쇄망 바깥에서 일어나는 작용. 말하자면 이 신 전체의 작동방식에 마치 채영신의 얼굴의 이미지가 침입하는 것처럼 이루어질 때 그건 단지 하나의 쇼트가 아니라 이 신의 얼룩이 된다. 두 번째, 서로 교환하던 두 사람 사이의 연쇄적인 쇼트에서 이 난데없는 쇼트는 채영신을 갑자기 박동혁으로부터 빼내듯이 관계의 바깥으로 데려간다. 주고받던 쇼트가 연속성을 중단하는 순간 박동혁의 계열의 쇼트와 채영신의 계열의 쇼트는 서로 분리된다. 이때 이 분리는 이제까지 진행되어 온 이야기의 계열과 이제부터 다시 시작하는 이미지의 계열이라고 불러보고 싶어진다. 처음에는 이 둘 사이의 차이가 분명하지 않았지만 여기서부터 마치 두 개의 서로 다른 차원이 존재하는 것처럼 서로 평행하게 서로 분리된 두 개의 계열이 공존하기 시작한다. 세 번째, 여기서 갑자기 이루어진 파괴는 그것을 대가로 하여 이야기가 불러일으키는 감정을 영화가 감상하고 있다는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먼저 감정과 감상의 차이를 충분히 음미해주기 바란다. 박동혁의 진지한 표정, 웅변적인 대사에 어울릴법한 채영신의 경청하는 쇼트 대신 그 말을 조금도 귀 기울여 듣지 않는 듯한 카메라의 태도는 마치 그 둘 사이에 다른 무언가가 개입하고 있는 것만 같은 틈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갑자기 그 둘 사이가 묶이지 않는 것을 한데 묶어놓은 것 같은 어긋남을 보여준다. 이때 그 틈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두 개의 쇼트가 단지 문법적으로 어긋났을 뿐만 아니라 그 둘 사이에 어떤 시간적인 진공상태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둘이 동시적으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박동혁을 채영신이 사후적으로 보고 있는 것만 같은 착시가 벌어진다. 암전의 반복 하지만 이 순간이 길어지면 영화는 부서질 것이다. 그 둘을 다시 강제적으로 하나로 묶기 위해서 하나의 통일된 행위가 필요해진다. 지켜보던 일본 형사는 그런 박동혁을 채영신의 눈앞에서 무자비하게 때라고 걷어차기 시작한다. 임권택 은 이 장면을 단순하게 찍었다. 하지만 이 단순한 장면 단순한 공간에서 형사가 박동혁을 때리기 시작할 때 매달려있는 전구를 건드리고 그 전구가 좌우로 진자운동을 시작하자 빛과 그림자가 번갈아 나타나고 사라지면서 갑자기 이 공간 전체가 바로크적인 미장센으로 바뀐다. 일그러진 공간. 어둠 속의 사라짐과 나타남. 이때 핵심은 이 장면이 채영신의 눈앞에서 연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형사가 채영신에게 면회를 허락한 것은 어떤 호의를 베풀기 위해서가 아니라 박동혁과 함께 일본의 조선반도 식민지 정책에 반대하면서 계몽운동을 하는 채영신에게 고문을 전시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채영신 앞에서 박동혁은 나타나고 사라진다. 연속된 행위 안에서 이미지의 비연속성. 그녀 앞에서 박동혁은 마치 포르-다 게임을 하는 것처럼 보여 진다. 면회 후 새로운 계열은 새로운 장면을 출현시킨다. 박동혁을 면회하고 돌아오는 채영신을 영화가 멀리서 물끄러미 쳐다보는 장면은 너무 이상해서 어떤 감정을 느끼기는커녕 그 장면 자체가 마치 그 무언가에 대한 표현처럼 보인다. 단순하게 이 장면을 상징의 예술적 표현이라거나 알레고리의 기술적 압축이라고 부르기에 망설여지는 그 어떤 것이 거의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것만 같은 이 신 안에서 작동하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설명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장면이 무언가를 환기시키고 그 안에 이미 운명을 예고하는 것만 같은 인상을 단번에 붙잡아낸다. 채영신은 언덕에서 걸어 내려오고 그 오른쪽 곁에 나무 몇 그루가 무심하게 서 있을 뿐이다. 카메라는 휘청거리면서 그 언덕길을 걸어 내려오는 채영신을 돌볼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다. 마치 그녀가 쓰러져도 할 수 없다는 듯한 거리. 멈추어선 카메라. 그 언덕길을 채영신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저 보지 않고도 발걸음을 옮길 수 있는 길. 이때 구도는 화면 대부분을 하늘이 차지하고 있다. 구름 낀 사이로 조금 드러난 파란 하늘. 그렇게 언덕길을 내려오던 채영신은 그만 지쳐 쓰러지고 만다. 아무도 없는 들판과도 같은 언덕. 쓰러진 채영신이 고개를 들어 보는 것은 구름 낀 하늘이다.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박동혁의 목소리가 그녀를 일으켜 세운다. 마치 (구슬픈) 합창처럼 그 목소리 뒤에서 들려오는 (박동혁이 작곡한) ‘애향가(愛鄕歌)’. 채영신의 희미한 미소. 하지만 이 노래가 그녀에게 새로운 힘을 주기는커녕 생명을 앗아가는 듯한 기분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가까이 다가온 죽음. 몰락해가는 기운 속에서 잠시 동안 바라보는 구원의 빛은 죽음의 표정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말하자면 어떤 약속. 이제 당신은 할 만큼 했어요. 그러니 부디 짐을 내려놓아 주세요. 카메라가 채영신을 도와주는 대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저 멀리서 지켜볼 때 내가 느껴보는 것은 이 소설을 이미 읽은 자의 측은지심이다. 여기서 결정적으로 결여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이 장면을 그렇게 쇠락하게 만드는 것일까. 이때 여기서 보는 것은 어린 상록수들에 대한 희망이 아니라 쇠락해가는 역사 안에서의 수난의 시간이다. 채영신은 청석골에 돌아와 박동혁의 말을 전하고 그냥 쓰러진다. 그날 밤 박동혁은 고문으로 인해 완전히 실성한 채로 풀려난다. 그런 다음 영화는 박동혁이 실성해서 머물고 있는 한곡리와 채영신이 몸져누워있는 청석골을 단순하게 오간다. 채영신은 의사로부터 “알릴 데가 있으면 기별하시오”라는 마지막 통보를 받는다. 하지만 박동혁은 여전히 고문 후유증을 벗어나지 못한다. 채영신은 마지막 가는 길에 박동혁을 보고 싶어 하고 그래서 먼 길 제자인 원재 청년이 달려가 청석골 마을 사람 한 명과 함께 박동혁을 데려온다. 소설은 채영신이 도망치듯이 일본에로 떠났다가 심신이 더 쇠약해져서 청석골로 돌아와 다시 농촌계몽사업을 하지만 각기에 맹장염이 도져 미처 아직 경찰서에서 풀려나지 못한 박동혁을 보지 못하고 숨지는 것으로 다한다. 그런 다음 오일장을 치르는 가운데 사흘째에야 박동혁은 옥에서 풀려난다. 그가 소식을 듣고 청석골로 달려와 마주치는 것은 학교 ‘교단 위에 검정 보를 덮고 가로누운 영구’이다. 소설과 반대로 영화에서 채영신과 박동혁은 만난다. 하지만 채영신은 죽어가고 박동혁은 실성한 채로 만난다. 나는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할 것이다. 여기에는 원작과의 대결관계나 반대로 가까스로 해피엔딩을 만들겠다는 의도 따위는 없다. 그래서 반대, 라는 표현 대신 소설과 상관없이, 라고 설명하고 싶다. 상관없다는 말. 임권택 은 원작에서 무얼 꺼내 들어서 이야기의 어떤 진실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대신 거기까지 따라온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어 한다. 나는 이미 경찰서 고문실에서부터 이 영화가 두 개의 계열로 진행된다는 말을 했다. 쇼트의 계열과 이미지의 계열은 서로 만날 수 있을까. 하나가 만나고 싶어 할 때 다른 하나가 그걸 알지 못한다. 하나가 보고 싶어 할 때 다른 하나가 그걸 알지 못한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잡아당길 때 다른 하나가 그걸 알지 못한다. 여기서 채영신과 박동혁의 만남이 그 두 사람의 만남이 아니라 채영신과 채영신이 만나보고 싶어 하는 박동혁과 자신이 박동혁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고문에 의하여) 잃어버린 박동혁 이 세 사람이 함께 만나는 자리라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너무 쇠약해져서 이제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채영신은 자기 앞에 도착한 사람이 박동혁이라는 건 알아보지만 지금 그가 실성해버렸다는 건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자기 앞에 와 있는 이 사람이 눈앞에 몸만 와 있을 뿐이지 텅 빈 대상이라는 것을 모른다. 마치 인형과도 같은 박동혁은 자발적인 의지로 아무 것도 못하고, 아무런 판단도 내리지 못하고, 아무런 태도도 보여주지 못한다. 임권택은 이 장면을 단순하게 찍었다. 박동혁은 마을 사람의 손에 이끌려 방에 들어와 앉는다. 채영신은 방에 들어서는 박동혁을 바라본다. 하지만 박동혁은 실성한 채 초점 없이 허공을 응시할 뿐이다. 그래서 이 신에는 박동혁의 시선 쇼트(point_of_view_shot)가 없다. 반면 박동혁이 실성한 것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깊은 병색인 채영신의 죽어가는 시선 안에서 세상은 점점 희미해져 갈 것이다. 하지만 임권택은 채영신의 시선에 별다른 기술적 조작을 가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이 두 시선의 교환은 단지 기계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며 박동혁과 채영신 두 사람 사이는 일종의 부등가 교환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중이다. 박동혁은 이 방에 들어서서 이 자리에 앉았지만 채영신을 그저 알아보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녀를 바라보지도 않는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다. 박동혁의 쇼트는 채영신의 쇼트를 마주 보지 않는다. 아니,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다. 채영신은 박동혁을 알아보지만 쇠약해진 그녀의 시선이 고문 후유증으로 실성해버린 박동혁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저 간절하게 박동혁의 쇼트에 말을 걸고, 또 걸고, 또 걸 뿐이다. 대답해주세요, 제발 대답해주세요. 그러므로 이 둘 사이는 한쪽의 오해를 기반으로 한 관계만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때 박동혁의 계열은 완전히 중단된다. 혹은 쇼트의 진행이 더 이상 안 된다. 반대로 채영신의 계열은 완전히 고립된 것이 되어버린다. 그녀가 말을 걸지만 박동혁은 그 말을 한마디도 듣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녀가 하는 말은 사실상 그녀 자신에게 돌아오는 말이다. 이때 쇼트의 성질로 말하면 채영신은 일종의 재귀 대명사의 반복처럼 보인다. 그래서 신 안에서 박동혁과 채영신이 함께 만나지만 그 둘의 쇼트는 각자의 계열을 따라가기만 할 뿐이다. 임권택은 그 사실을 잘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저 단순하게 반복적으로 둘 사이의 쇼트를 오고 간 다음(shot_reverse_shot) 채영신이 대사를 시작하자 그저 그녀를 바라본다. 아니, 그저 그녀에게 머문다. 이때 수수께끼 같은 시선은 채영신이 박동혁의 손을 붙잡고 긴 대사를 시작할 때 그녀를 박동혁이 바라보는 대신 박동혁의 등 뒤에서 바라본다는(over_the_shoulder-shot) 것이다. 누워있는 그녀를 그렇게 찍으면 그녀 쪽에서는 다시 마주 볼 방법이 없다. 그런데도 그렇게 했다. 두 개의 쇼트는 그렇게 마주 볼 수 없는 불가능의 자리에 가야만 하는 것일까. 그녀가 애처롭게 대사를 낭독하기 시작했을 때 무언가 이 쇼트는 그렇게 등에 걸린 채 느리게 다가가는 렌즈의 운동 때문에(zoom_in) 무언가 머뭇거리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것은 영화의 대답이 아니다. 채영신이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 “아이들을 부탁해요”라고 한 다음 “약속해주세요”라고 반복한다. 하지만 박동혁의 대꾸는(reverse_shot) 아무 말 없이 허공을 응시하는 무표정한 침묵뿐이다. 알지 못하는 채영신은 다시 한 번 “약속해주세요”라고 거의 꺼져가는 목소리로 힘겹게 요구한다. 이때 갑자기 다시 한 번 박동혁의 얼굴로 돌아가는 대신 박동혁의 뒤로 가서 앉아있는 그의 등 전체를 보여준다. 그리고 마치 쇼트의 구도 안에 침입하기라도 하듯이 (옆에 앉아있던 박동혁의 마을 친구의) 왼손이 그 등을 따라서 조심스럽게, 행여 들킬세라. 느리게 박동혁의 뒤통수를 향해 거슬러 올라간다. 손은 지금 무엇과 결합하려는 것인가. 누구라도 이 손이 지금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운동. 이 갑작스러운 손의 운동은 누구라도 깜짝 놀랄 만큼 아름답고 슬프다. 그렇게밖에 달리 말할 수 없다. 그런 다음 이 손이 박동혁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이때 이 긍정은 단지 채영신을 만족시키려는 목표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긍정의 힘은 이제까지 두 개의 계열로 나뉘어 진행되어 온 이미지의 계열의 부름에 쇼트의 계열이 응답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다. 임권택이 여기서 힘들 사이의 관계를 정확하게 구분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신 안에서 서로 다른 차원을 공존시키면서 파토스를 끌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기서 그의 모든 영화 중에서도 가장 성공적인 한순간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런 의미에서 < 상록수 >를 언제나 < 족보 >와 함께 보아야 한다. 두 편의 영화가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했거나, 혹은 원작소설을 각색했거나, 또는 같은 해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아무 관계가 없다. 두 영화가 같은 여배우 한혜숙 을 주연으로 해서 만들었다거나 두 영화가 농촌을 무대로 진행된다는 사실도 아무 상관이 없다. 이때 임권택 은 두 편의 영화에서 조심스럽게 쇼트의 성질에 대해서 탐구하기 시작했다. 나를 감동시킨 두 가지 예. 박동혁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그 손. (<족보>에서) 어느 초여름 날 무심하게도 포풀라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길을 따라 걸어오는 설진영 노인을 바라보는 쇼트. 나는 약간 망설이면서 이렇게 설명하고 싶어진다. 이제까지 임권택은 쇼트가 결합하여 신이 어떻게 하나의 사건을 만드는지를 물었다. 그 사이의 조화. 그들 사이의 화음. 하지만 하나의 차원. 여기서부터 하나의 신이 두 개의 차원을 얻기 시작했다. 이때 쇼트는 종종 신 안에 침입해 들어오는 불순물을 허락하거나 혹은 쇼트 자체가 갑자기 세상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므로 신 안에서 쇼트는 어떤 원근법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여기엔 쇼트가 바라보는 영화와 영화가 바라보는 이미지 사이의 간극이 생겨났다. 임권택은 그 간극을 그냥 내버려둔 채 자기의 방법을 밀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벤야민은 내게 간명하게 충고한다. 인식에 있어서 방법이란 영유대상을 획득하는 길이지만, 진리에 있어서 방법이란 제시 자신의 제시이다. 방법의 대가들. 어쩌면 영호욜뇩예疫萱?역사이다. 좀더 단순하게 말하겠다. 방법이 결과이다. 간단한 예. 오즈의 방법. < 오차즈케의 맛 >. 로셀리니의 방법. < 유럽 51 >. 혹스의 방법. < 몽키 비즈니스 >. 1952년의 세 개의 방법. 이때 지성은 방법을 통해서만 영화를 구성하는 표현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며, 표현이라는 쇼트가 그때 방법의 속성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방법을 정식화시키기 위해서 먼저 방법을 작동시키는 장면을 만나야 한다. 나는 임권택의 방법으로부터 임권택이라는 방법에로 옮겨가야 할 필요를 느낀다. 이것이 목표이다. (계속) 추신_ 인용한 대목은 애플 북스에서 ‘한국문학을 권하다’ 전집 중 다섯 번째로 2014년 6월 16일에 나온 판본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사용된 쪽수는 모두 이 판본에 따른다. 또한 인용 판본에 따라 1936년에 쓰인 일부 당시 문장을 2014년에 독자를 고려하여 고친 대목도 역시 그에 따랐다. 그러나 문단 나누기는 임의로 이어 붙였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로 명기하지 않았다. 1978년 105분 컬러 1.66 감독 임권택 화천공사 각본 김강윤 촬영 이석기 조명 정덕규 편집 김희수 음악 정민섭 한혜숙 채영신 김희라 박동혁 이일웅 김형자
당연한 말이지만 여기에는 작년 영화들이 포함되어 있다. 여기는 파리가 아니며, 런던이 아니며, 뉴욕이 아니며, 동경이 아니다. 서울에서 영화를 보는 건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우리들은 언제나 한발 늦게 그 영화를 보아야 한다. 할 수 없는 일이다. 더 곤란한 건 그렇게 볼 수 있는 영화들조차 서울 시내에서 그 영화를 보려면 그 시간에 맞춰 한참을 떨어진 극장에 보러 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 영화를 하루에 단 한 번 밤 12시 40분에 상영할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텅 빈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건 미안한 일이긴 하지만 기분 좋은 일이다. 하지만 새벽 2시 반에 극장 문을 나선 다음 한적한 거리에서 택시를 잡아타기 위해 망연자실하게 두리번거릴 때는 약간 처량해지기까지 한다. 시네필은 보헤미안들이 아니다. 아직 올해가 끝난 건 아니지만 지난 열 달간 본 영화 중 지금 내 두뇌의 스크린에서 가장 맹렬하게 상영되고 있는 영화는 유셴수의 < 인조공간 >이다. 도시의 명멸하는 이미지들. 이미지들의 반복되는 기호. 기호 안에 자리 잡은 시간. 시간 안에서 활동하는 모호한 세계, 세계라는 수수께끼의 이미지. 그 이미지 안에 이따금 바람이 불 때 갑자기 이미지에 구멍을 만들어내고 세계가 침입한다는 기묘한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세계의 기기묘묘한 질서를 영화는 붙잡을 수 있을까. 어쩌면 지가 베르토프의 < 카메라를 든 사나이 >와 요리스 이벤스의 <비>의 중간 어디쯤에 자리 잡고 있을 이 영화는 수없이 본 이미지들을 불현듯 새롭게 반짝거리게 만든다. 여기에는 영화가 원래 갖고 있었을 힘을 잡아당기면서(attraction) 그 자리에로 우리를 되돌려 보낸다. 우리들이 처한 이 신기한 영화‘歷’사의 자리. 정확하게 그런 의미에서 지금 가장 흥미로운 이름(중의 한 명)은 라브 디아즈이다. 처음 본 라브 디아즈의 영화는 < 필리핀 가족의 진화 >였다. 10시간 43분에 이른 이 영화를 본 다음 좀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영화를 보는 우리들의 경험이 시간을 보는 것뿐만 아니라 그 시간을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기의 방법을 밀고 나아갔다. (내가 본) 두 번째 영화 < 엘칸토에서의 죽음 >은 다시 한 번 9시간 동안 계속 된다. 태풍이 지나가고 난 다음 고통스러운 고백의 여정이 이어진다. 그러고 나서 < 멜랑콜리아 >를 보았다. 7시간 30분이라는 상영시간은 이제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내가 라브 디아즈를 처음 만난 것은 이 무렵이다. (이제는 더 이상 세상에 없는) 시네마디지털서울 영화제 첫 회의 심사위원으로 기꺼이 마닐라에서 서울까지 먼 초청에 응했다. 라브 디아즈는 쾌활하고 자기 의견을 말하는데 망설임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때 그에게 물어보았다. “당신의 영화가 그렇게 긴 상영시간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은 없나요?” 그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아뇨, 그런 것 따위는 걱정할 겨를이 없어요. 나는 영화를 볼 때 닥쳐올 시간만을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영화를 볼 거라고 믿습니다. 그 믿음에 대답하는 사람들이 제 영화를 보러 올 것입니다” 영화에서 닥쳐올 시간, 이라는 말. 나는 영화의 시간에 대해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처음 만났다. 그런 의미에서 라브 디아즈는 내게 영화를 보는 새로운 방법을 가르쳐준 사람이다. 그런 다음 그는 계속해서 걸작을 찍었다. < 북쪽, 역사의 끝 >은 비교적 짧은 상영시간이지만(이라고 말했지만 그래도 4시간 10분이다) 이 영화는 라브 디아즈가 새로운 경지로 들어서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올해 로카르노에서 (이 이상한 제목을 <아프리오리>로 번역한다고 유운성 씨가 내게 일러주었다)로 작품상인 황금 표범상을 받았다. (그런데 나는 아직 이 영화를 보지 못했다) 그 대신 DMZ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라브 디아즈가 현재 진행 중인 < 폭풍의 아이들, 제1권 >을 볼 수 있었다. (이하 <폭풍의 아이들>) 라브 디아즈의 말에 따르면 앞으로 같은 제목 아래 세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게 될 예정이라고 했다. 더 좋은 일은 이 영화 상영을 마치고 난 다음 라브 디아즈와 관객과의 대화를 내가 진행하게 되었다. <폭풍의 아이들>이 배경으로 삼고 있는 사건은 2013년 11월 필리핀을 강타한 태풍 욜란다 ‘이후’의 풍경이다. 뉴스에 따르면 욜란다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태풍이었다고 한다. 라브 디아즈의 설명에 따르면 매년 필리핀은 평균 28개의 태풍을 맞이하고 그중 몇 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강풍과 폭우를 동반한다고 한다. 하지만 욜란다는 이제까지의 태풍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로 찾아왔다. 재해가 지나가면서 6,293명이 사망했고, 1,061명이 실종됐고, 28,689명이 심각한 부상을 당했으며, 1,140,332채의 건물이 부서졌고, 1,300만 그루의 나무가 뽑히거나 부러졌다. 라브 디아즈도 태풍이 지나가는 동안에는 규모가 너무 심각해서 미처 촬영을 시작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교통이 두절되어서 이동할 수 없었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영화의 첫 장면은 한밤중에 하염없이 비가 내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마치 칠흑 같은 밤. 아마도 그건 이 영화를 흑백으로 찍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여기엔 별다른 설명도 없이 그렇게 비가 내리는 장면이 전부이다. 아니, 그 말은 정확하지 않다. 여기엔 비가 내리는 소리가 우리를 압도한다. 저 멀리 도시의 불빛이 어른거리고 그 화면을 지워버릴 것처럼 그렇게 비가 내린다. 그렇게 아침이 밝아오면 강가로 수없이 많은 재해의 흔적들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흘러내려 간다. 이미 도심은 물에 잠겼고, 사람들은 거의 무릎까지 물이 차오른 도로 위로 자전거의 페달을 열심히 밟으면서 힘겹게 이동하고, 마치 허우적거리듯이 삶의 리듬이 다시 시작한다. 라브 디아즈의 카메라가 멈춘 곳은 다리 위에서 강물 위로 쏜살같이 흘러내려 가는 재해의 흔적들을 건지는 아이들이다. 거기서 이제는 주인을 알 수 없게 된 물건들이 흘러내려 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그래도 무언가 쓸 만한 것이 있을까, 그렇게 지켜보며 안간힘을 써서 건지는 중이다. 하지만 라브 디아즈는 이 아이들에게 말을 걸 생각이 추호도 없다. 그의 카메라는 말을 걸기에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아이들은 자기 일에 바빠서 라브 디아즈의 카메라에 관심을 쓸 겨를이 없다. 이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닥쳐온 것일까, 그리고 이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닥쳐올까. 닥쳐올 시간. 그걸 바라보는 영화의 시간. 라브 디아즈의 카메라는 그 시간의 사이 안으로 들어간다. 오늘날의 영화에서 지아장커, 아핏차퐁 위라세타쿨, 차이밍량에 이어 라브 디아즈가 앙드레 바쟁의 계보 안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사진적 이미지의 존재론. 거기 영화가 있어야 한다. 이 절대적인 호소. 그 안에 놓여진 시간. 거기 버티고 있는 세상. 내가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은 21세기 아시아 영화들이 디지털을 선택하면서 일제히 바쟁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라브 디아즈는 마치 그 강물에 떠밀리듯 바다까지 흘러온다. 그리고 거기서 태풍에 밀려온 거대한 선박이 마을을 덮친 다음 그냥 거기 괴물처럼 놓여있는 모습을 바라본다. 이제 태풍은 지나갔지만 그 흔적이 남겨놓은 삶은 피폐하기 짝이 없다. 거의 쓰러져가는 집들. 그렇다고 해서 라브 디아즈가 그들의 사연에 귀 기울일 생각은 추호도 없다. 아주 가끔 그들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그들이 라브 디아즈에게 말하기도 하지만 구구절절한 사연을 담는 것이 그의 목표는 아니다. 그의 카메라는 여전히 멀리 떨어져서, 혹은 가끔 지나칠 정도로 가까이 다가와서, 살아남은 자들을 바라본다. 여기서 영화가 말하려는 것은 내가 여기에 있다, 는 도착이다. 그게 아니라면 영화가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이때 이 영화는 손으로 들고 찍은 쇼트와 고정시켜 놓고 찍은 쇼트 두 종류가 있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두 종류의 촬영이라는 노동 사이를 오간다. 대부분의 촬영은 라브 디아즈 혼자서 소니 알파 NEX 알파 3로 진행했다. 작고 기동성이 있으며 동시에 노출에 대한 보정력도 뛰어나지만 결정적으로 장시간 촬영의 경우 배터리 충전이라는 문제와 부딪치게 되는 이 카메라를 들고 다큐멘터리를 혼자서 찍는 것은 좀 특별한 결정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장면들은 롱 테이크로 찍혔다. 전적으로 운에 맡긴 장면들. 게다가 단 한 장면도 예외 없이 야외장면이고 여기는 거의 전력 공급이 중단된 어촌 마을이다. 말하자면 충전이라는 절대적인 요구와 그 불가능성. 여기서 내가 보는 것은 라브 디아즈가 카메라에 주어진 생명의 시간을 고스란히 존중하고 싶다는 결정이다. 점점 영화에서 카메라는 하나의 결정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에게 무엇이 닥쳐올까. 죽음은 우리의 소재가 아니다. 거기 카메라가 있을 때 몸은 시간을 위해 살아낼 것이다. 거기서 우리의 사건이 시작된다. 그러므로 영화. 그걸 선택할 때 그건 그 카메라에게 주어진 생명을 받아들이겠다는 하나의 태도이다. 우리는 영화를 보는 동안 그 안에 들어가서 살아야 한다. 라브 디아즈는 관객과의 대화를 하는 내내 그게 아무렇지도 않은 양,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것처럼, 그저 거기에 자신은 단지 카메라를 가져갔을 뿐이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거기에 카메라를 가지고 갔을 때 누구나 그렇게 찍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그걸 알겠다. 그렇게 욜란다 태풍이 지나간 다음 살아남은 아이들을 영화가 바라볼 때 그건 하나의 선언이다. 어떤 선언? 살아남았다. 그리고 이제부터 살아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소녀들은 신 나게 (당신이 알고 있는 바로 그 노래) ‘Let it go’를 부른다. 소년은 담담하게 지난 태풍이 오던 날 밤에 아버지가 휩쓸려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말을 한다. 그 말을 하면서 아이는 아무 원망도 담지 않은 채 바다를 바라본다. 라브 디아즈는 이 소년을 한참을 바라본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 자신들을 덮친 괴물 같은 배에 아이들이 기어 올라가 마치 휴가를 즐기기라도 하듯이 다이빙을 하기 위해 뛰어내린다. 이 순간은 그저 아이들의 여름방학처럼 보일 만큼 아름답게 찍혔다. 운동하는 이미지의 슬로우 모션. 삶의 슬로우 모션. 라브 디아즈는 그렇게 지금 생명을 찍는 중이다. 나는 어서 빨리 라브 디아즈의 다음 영화가 보고 싶다. 그는 우리가 이 힘겨운 세기를 함께 건너갈 수 있는 힘을 주는 이름(중의 한 명)이다. 올해가 막 지나가고 있다.
‘여전히 우리에게는 해야 할 말과 행동이 있다’ 이 영화를 보고 난 첫 느낌이 그러했다. 액티비즘과 일상의 경계에서 새로움에 대한 갈증으로 주관적 다큐, 성찰적 다큐, 모큐멘터리 등... 다양한 이름들로 채워지고 있는 현 다큐영역의 변화도 안에서 ‘종로의 기적’은 여전히 우리들에게 아직도 해야 할 말들과 행동이 있음을 묵묵히 게이들, 그들의 목소리에 올곧이 귀 기울인 영화다 영화는 영화를 통해 공식적으로 커밍아웃한 당당한 5명(영화감독 소준문 , 인권운동가 장병권, 요리사 최영수, 직장인이자 인권운동가 정욜 그리고 감독 이혁상 )의 게이들의 삶과 사랑 이야기다. 어찌 보면 일상적 로맨스로 상큼하게만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들이 게이이기에 아직은 특별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로 영화는 채워져 있다 대규모 영어 학원가이자 밤늦도록 취할 수 있는 직장인들의 술자리, 혹은 노인들의 휴식처로만 익숙한 ‘종로’가 게이들에게는 자신들의 삶을 사랑할 수 있도록 ‘동지’를 만날 수 있는 치유의 공간이기도 하다. 영화제목 그대로 종로는 5명의 주인들에게 ‘기적’으로 자신들의 인생의 황금기를 만들어 나가는 장으로서 역할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첫막은 소준문 감독에서 시작한다. 단편영화 감독으로 자신의 입지를 굳히고 있던 소준문 감독은 영화 현장 안에서 감독이라는 위치에서 강요되는 권력이 못내 부담스럽다. 이는 소준문 스스로가 이야기 했듯이 감독이 아닌 게이로서 영화 현장 안에서 자신을 매순간 공식적으로 게이임을 커밍아웃해야 되는 현실이 버겁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감독만이 아니라 일상의 현장에서 소통의 단절이 항상 이반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매 순간 강요시키게 되는 모습임을 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영화가 중간에 엎어지기도 하지만 소준문은 끝내 다시 영화 현장으로 돌아오고 새롭게 영화를 시작한다. ‘끝나지 않은 숙제’라는 영화 소제목처럼 영화제작이 그에게는 자신의 예술적 표현만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시키고 일반과 소통하는 숙제임을 받아들이는 과정이기도 했다. 소준문 감독과 더불어 이 영화에서는 4명의 주인공이 각 주인공간의 개연성을 갖기 보다는 각 파트별로 영화가 전개되는데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온 주인공이 3번째 막의 주인공인 최영수라는 인물이다. 인권운동가로 영화감독으로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는 다른 주인공들과 달리 최영수는 자그마한 식당을 운영하는 요리사로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이다. 20살에 경북 영주에서 서울로 상경하여 십여년 동안 이반 친구 하나 없었던 그에게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 것은 바로 종로의 기적처럼 종로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사이’ 선배를 통해서다. 30대 중반의 최영수는 G보이스 합창단을 통해 주말 저녁 영업까지 포기하며 노래 연습에 매진하고 술과 춤을 즐긴다. 말 그대로 인생의 황금기를 맘껏 만끽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맞춰지는 촬영에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귀여운 욕들을 퍼부으며 머쓱해 하는 그가 문득문득 진중하게 때로는 열정적으로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있는 모습이 보는이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미소를 머금게 한다. 영화의 후반부, 뜻밖에 소식으로 관객들에게 놀라움을 선사 하는데 감독은 죽음이라는 파장보다는 최영수 인생의 황금기에 더욱 집중하며 안타까움이 아니라 행복했던 그의 모습의 더 많이 각인되길 원하는 듯하다. 영화는 주인공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간 감독의 긴 기다림과 소통이 있 있었기에 조금은 대상화 되거나 선정적으로 비춰질 수 있었던 게이들의 이야기가 삶의 평범함으로 다가올 수 있게 만들었던 거 같다. 중간 중간 밥도 같이 먹으며 챙겨주는 김밥도 먹어가며.. 이들의 삶의 친구처럼 함께한 감독과 주인공들의 유대감이 틈틈이 엿보인다.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 이후의 주인공들의 삶이 더욱 궁금해졌다. 아직은 직장 내에서 자신을 커밍아웃하지 못한 정욜이 공식적으로 영화를 통해 커밍아웃한 이후의 모습들.. 그리고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어떠한 깨달음과 변화들을 가져갈지도.... 그만큼 5명의 주인공들이 자신의 안정된 공간을 너머 영화를 통해 대중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용기와 의지.. 또 그 안에서 겪어야 될 다름이라 포장된 차별을 어떻게 부서내고 당당하게 커밍아웃할지가 그 행보가 더욱 중요해지는 영화다. 그러하기에 6월 개봉을 앞두고 종로의 기적 앞에 붙여진 ‘최초의 게이 커밍아웃 다큐멘터리’라는 화두는 다름이 아니라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소통하기 위한 첫 액션일지 모른다. 일상이 아닌 기적으로 게이들에게 종로가 다가오듯이 ‘다름’이 일상이 아닌 ‘차별’로 비쳐지는 한, 이 영화는 여전히 우리에게 아니 우리들은 해야 할 말과 행동이 있음을 이야기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