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호문
- 감독
- 엽위신
- 제작년도
- 2006
- 출연
- 견자단, 사정봉, 여문락, 원화, 진관태, 동 지에
자, 가렛 에드워즈의 < 고질라 >를 보면서 ‘쇼와 고질라’와 ‘헤이세이 고질라’의 전통을 언급하며 유년기의 추억이 귀환한 듯 기뻐하는 평들이 딱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는 것부터 먼저 언급하며 이 글을 시작해야겠다. 그러니까 말이다. 어째서 고질라가 유년기와 청년기의 추억일 수가 있지? 쇼와든 헤이세이든 내가 극장용 고질라를 처음으로 본 건 2000년대 이후였다. 가만 생각해보니 나에게 진정한 첫 번째 고질라 영화는 롤랜드 에머리히의 < 고질라 >였던 것 같다. 이미 할리우드에서 다시 매만져진 일본인들의 전통을 목격한 뒤, 그걸 토대로 다시 일본인들의 전통을 거슬러 올라 머릿속에 입력시켰다는 이야기다. 문방구의 꽃,「괴수대백과」 만약 고질라가 내 안의 아주 미묘한 덕심을 살짝 건드리긴 했다면, 그건 오로지 80년대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던 「괴수대백과」 덕분이다. 이걸 기억하는 세대가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80년대 문방구에서는 한국에 전혀 소개된 바 없는 일본 애니메이션과 특촬물에 대한 번역본 해설지를 팔았다. 그게 또 어쩐 일인지 모르겠지만 꽤나 인기가 있었다. 나 역시 「괴수대백과」의 열렬한 팬이었다. 고질라와 가메라와 모스라와 킹기도라와 메카 고질라의 사진들을 보면서 언젠가는 저것들을 진짜 스크린 속에서 보고 싶다는 열망을 품었다. 그 열망은 십여 년 뒤에나 겨우 DVD를 통해 이루어졌다. 마치「‘건담대백과」로 접한 <기동전사 Z건담>을 십수 년 뒤에나 카피본으로 겨우 (그것도 중간중간 더 이상 성인에게는 온전히 통하지 않는 과장된 감상주의를 감내해가며) 목도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나에게 ‘괴수물’을 처음으로 스크린에서 본 게 언제냐고 묻는다면, 고질라나 가메라 대신, 입에서 꺼내는 즉시 살짝 웃음이 터지는 제목을 굳이 꺼내야만 한다. 그렇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30대 중후반에서 40대 초반이라면 기억할 < 비천괴수 >라는 제목 말이다. < 비천괴수 >는 60년대 신상옥 , 나봉한 같은 감독의 연출부를 거쳐, 한국과 홍콩 합작영화가 쏟아지던 시절 성룡, 홍금보가 출연한 <용호문>(1975), < 사대철인 >(1977) 등 무협 영화를 만들었던 김정용 감독의 영화다. 합작영화 시절이 막을 내리고 한국영화의 암흑기가 도래한 80년대 초반, 그는 < 소림사 주방장 >(1981)이나 < 무림 걸식도사 >(1982)같은 코믹 무협영화들을 만들었다. 낯설다고? 80년대 토요일 낮에 당신은 TV로 이 영화들을 본 적이 있을 거다. 하여간 그는 90년대 후반까지도 조형기가 임화수를 연기하는 < 충무로 돈키호테 >(1999)같은 싸구려 영화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30여 년 동안 영화를 만든 이 남자의 필모그라피에서 가장 무시무시하게 격정적인 B급 영화가 바로 이 한국형 괴수물 <비천괴수>다. 뭔가 대단한 영화일 것 같다고? 확실히 대단하다. 여러 가지 의미로 말이다. 이야기는 아주 간단하다. 공룡이 여전히 살아있다고 믿는 김 박사(왜 그 시절에는 다 김 박사인가!)가 실종된다. 잡지사에 근무하는 강 기자는 박사를 찾아 어느 작은 해안 도시로 간다. 알고보니 김 박사는 딸과 함께 숨어서 공룡의 존재를 여전히 찾아 헤매고 있다. 강 기자는 이러저러해서 김 박사의 가정부로 취직을 한다(왜? 이것이 바로 진정한 기자정신이다!). 그리고 이러저러한 끝에 괴수가 부활해 인간들을 침공하기 시작한다(공룡이라더니 왜 괴수냐고? 그걸 나에게 물어봐야......). < 비천괴수 > 스틸 홍보물 당대의 국민학생들에게, 아니 적어도 내가 살던 지방 항구도시의 유년들에게, < 비천괴수 >는 센세이셔널한 블록버스터였다. 소문이 퍼지자 거의 주변 모든 학교의 아이들이 이 영화를 보러 갔다. 거기에는 「괴수대백과」에 나올 법한 괴수들이 정유시설을 파괴하고, 도시를 파괴하고, 쓰나미를 일으키고(태풍이었던가? 어쨌든.....), 하여간 모든 걸 파괴했다. 그건 그야말로 당대 한국 영화의 어떤 괴수적 절정에 다름 없었다. “「괴수대백과」 괴수들이 다 나와!” 나는 친구들에게 소리를 빽빽 질러가며 <비천괴수>를 보라고 권했다. 그렇다. 「괴수대백과」의 괴수들이 이 영화에 다 나오는 이유가 있었다. 왜냐면 이건, 알라바마주의 할매가 옆 동네 천을 하나씩 훔쳐다가 기워낸 퀼트 같은 영화였으니까. < 비천괴수 >는 80년대 한국 영화계가 얼마나 카피라이트에 대한 개념이 희박했는지에 대한 근사한 역사적 사료다. 사실상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괴수의 스펙터클은 < 울트라맨 > 시리즈의 괴수 장면들을 불법으로 가져온 것이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건 <돌아온 울트라맨>의 시고라스, 벰스타 등이고, 초기 울트라맨의 페스타도 등장한다. 그러니까 이걸 어떻게 만들었는지 한번 상상해보시라. 한국형 괴수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제작자와 감독은 아무리 원화를 팍팍 투자해도 엔화로 만든 특촬물의 퀄러티를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니 유일한 방법은 어차피 한국에 전혀 들어오지 않은 일본 특촬물의 괴수 장면들을 조금씩 떼어다가 영화 속에 삽입하는 것이었을 게다. “자, 영화의 줄거리는 코난 도일의 「잃어버린 세계」에서 따오는 거야. 공룡을 발견한 학자 이야기를 넣으면 근사하잖아? 응? 공룡이 아니고 괴수물 아니냐고? 한국 사람들은 괴수 이런 단어 잘 모르니까 일단 공룡으로 시작해. 그리고 그냥 해변 마을에 가서 배우들 데리고 도망치고 이런 거 찍은 다음에 편집하면 되는 거야. 괴수랑 사람이랑 직접적으로 컨택트하는 장면이 하나 쯤 있어 하지 않냐고? 그러면 발만 하나 만들어! 발만!” 발만! 당연히 괴수가 나오는 장면들과 실제로 찍은 인간들의 장면들은 도대체 붙을 리가 없다. 아마도 김정용 감독은 거의 제대로 된 대본도 없이 이 영화를 촬영했을 것이다. 이를테면, 괴수가 도시를 파괴하는 장면 뒤에는 옅게 미소 짓거나 좋아서 박수를 쳐대는 인간의 리액션 씬이 등장한다. 아, 혹시 이것은 지구 종말의 날을 맞이한 인간들의 광증을 표현한 몽타주인가? < 비천괴수 > 최대의 명장면은 배우 김을동 이 마을에서 아기를 둘러업고 산으로 피신을 갔다가, 둘러업고 온 것이 아기가 아니라 베개라는 사실을 깨닫고 슬프게 오열하는 장면이다. 공포에 질려서 산으로 도망쳤던 김 박사의 딸은 그 모습을 보고는 너무나도 기쁘게 웃어젖힌다. 나중에 <비천괴수>를 다시 봤더니, 이 영화의 진정한 괴수는 괴수가 아니라 김 박사의 딸이었다. 그러고보니 왜 한국형 괴수영화 속 아이들은 이토록 인간미 없는 사이코패스인가에 대한 논문을 누가 하나 써볼 법도 하다. 전설적인 < 대괴수 용가리 >에서 용가리와 춤을 추는 소년의 캐릭터와 함께 묶어서 말이다. < 비천괴수 >는 < 대괴수 용가리 >(1967), < 우주괴인 왕마귀 >(1967)로부터 시작된, 가난한 한국 B급 괴수영화의 계보도에서도 결코 진골은 될 수 없는 영화다. 두려움 없는 저작권의 테러라는 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대괴수 용가리>를 극장에서 보기에는 너무 어렸고, 레이 해리하우젠의 몬스터들은 ‘괴수’라기보다는 뭔가 좀 다른 존재였다(그리고 심형래의 < 용가리 >를 온전히 즐기기에는 지나치게 나이가 들었다). 지금 삼사십대의 한국 몬스터 영화광들에게는 <비천괴수>가 주는 어떤 미묘한 향수를 도저히 거부할 길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건 마치, < 고질라 >를 보고 싶었으나 정작 알라바마주 동네 극장에서 상영하는 샘 커츠만의 거대 ‘칠면조 괴수물’ <자이언트 클로 The Giant Claw>(1957)가 생애 첫 괴수영화가 되어버린, 지금은 예순이 넘은 미국의 어떤 괴수광 노인이 느끼는 향수 같은 것과도 비슷한 것이리라. 뭐, 그런 느낌적 느낌일 거란 소리다. 김기주 남혜경 김다혜 문태선 감독: 김정용 각본: 이문웅 개봉극장: 오스카(서울) 관람인원: 2,741명(서울)
견자단의 전성기는 뒤늦게 찾아왔다. 이연걸과 동년배이고, 유덕화나 양조위, 주성치보다 한두 살 정도 어린 편이니, 그들이 90년대 초부터 정상에 있었던 걸 감안해보면 그가 지금의 자리에 올라서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데뷔가 늦었던 건 아니다. 원화평 눈에 띄어 1984년 <소태극>으로 데뷔한 그는 < 특경도룡 >이나 < 철마류 >같은 자신만의 인지도를 쌓은 작품도 만났다. 조연이든 악역이든 마다하지 않고 출연했으며, < 황비홍 2 >에서 이연걸과 마지막 액션을 장식한 것도, < 신용문객잔 >의 카리스마 넘치는 악당도 바로 그였다. 무도가 집안에서 태어나 정통 무예를 익힌 배우 출신답게 자연스레 여러 격투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 노호광 >, < 영춘권 >의 무술감독은 물론 < 전랑전설 >에선 감독 데뷔에, < 블레이드 2 >, < 상하이 나이츠 > 등으로 할리우드까지 진출해 착실히 자신만의 경력을 쌓아나갔다. 대중에게 그렇게 조금씩 친숙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갔을 무렵 바야흐로 시대가 변했다. 성룡과 홍금보는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예전 같지 않고, 이연걸 또한 액션보단 연기를 원했다. 지금도 쌩쌩하니 주먹과 발차기를 현란하게 구사하며 몸을 아끼지 않고 마샬아트를 시연할 배우는 견자단 말고 없었다. 그의 전성기는 그렇게 도래했다. 견자단 그 중 엽위신 감독과 함께한 2000년대 중후반 일련의 액션영화들은 전설의 핵심이었다. < 살파랑 >과 < 용호문 >, < 도화선 > 삼부작은 견자단을 정점에 올려놓은 작품들로 스피디하고 강렬한 액션과 화려한 연출로 높은 인기를 누렸다. 극단까지 밀어붙이는 다양한 격투기의 향연에, 뛰어난 아이디어가 결합된 이 무술백화점 같은 영화들은 단순하지만 폭발적이었고, 견자단 스타일의 완성을 만천하에 공인시켰다. 더욱 강하고 더없이 빠른 영화가 이어질 거라 예상했지만, 그러나 그들의 차기작은 조금 다른 선택이었다. 실존 인물 ‘엽문’에 관한 영화였기 때문이다. 영춘권의 대가이자 이소룡의 스승이기도 했던 엽문은 생애가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게다가 이미 왕가위와 양조위가 < 일대종사 >라는 같은 ‘엽문’ 영화를 준비 중에 있었다.(결국 이 작품은 세 편의 엽문 영화가 나오고 나서야 개봉되었다!) 하지만 엽위신과 견자단은 그 도전과 모험을 기꺼이 감수했고, 홍콩 박스오피스와 금상장영화제을 뒤흔든 < 엽문 >은 그들의 가장 성공한 영화이자 대표작이 되었다. 스피디하고 파워풀한 액션은 여전하지만 기존의 공격적이고 진취적인 모습의 ‘열혈’ 견자단 대신, 방어적이고 내면적인 ‘고수’ 견자단의 품격이 묻어난 작품이었다. 그 품격을 더욱 고양시키는 건 바로 웅장하고 숭고한 음악의 몫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중화민족의 색채가 강하게 묻어난 선율을 매만진 건 일본인 작곡가 카와이 켄지였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이 ‘귀여운’ 이름의 작곡가 카와이 켄지는 오시이 마모루의 음악적 파트너로도 더 잘 알려져 있는데, 1957년 동경 태생으로 토카이 대학 원자력 공학부에 다니다 마즈다 대학 사운드 페스티벌에서 우승한 걸 계기로 미련 없이 학업을 포기하고 전업음악가의 길로 들어섰다. 밴드활동 및 CM 음악을 담당하다 유명 성우이자 배우인 마츠야 유지의 연극 음악을 맡게 된 걸 계기로 각종 사운드트랙에 참여하게 된다. 초기에 맡은 애니메이션 <메존일각>의 놀라운 성공과 <붉은 안경>으로 인연을 맺게 된 오시이 마모루와의 협업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이후 <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의 모든 시리즈와 <란마 1/2>, <무책임함장 테일러>, < 공각기동대 > 등 90년대 히트작 애니메이션 음악들을 담당하며 정상의 자리에 올라섰다. 이와 동시에 세기말 나카다 히데오와 손을 잡은 <링> 의 폭발적인 히트로 상업영화로 분야를 넓혔으며, 2005년엔 임필성 감독의 < 남극일기 >를 필두로 중국의 < 묵공 >, 프랑스의 TV다큐 <아포칼립스, 제 2차 세계대전> 등의 음악을 맡아 무대를 세계로 확장했다. 카와이 켄지의 장점이라면 매체나 장르, 국적을 가리지 않고 다각적으로 시도하고 모험하는 확장성과 놀라울 정도의 꾸준한 생산력인데, 애니, 게임, TV, 영화, 다큐멘터리, 대중음악은 물론 호러, 드라마, 코미디, SF와 판타지, 시대극에 이르기까지 편식 없이 모든 스타일을 구사할 수 있는 그의 사운드에서 사실 한계를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시간과 조건만 맞으면 어떤 작품이라도 한다는 프로페셔널한 자세로, 아티스트란 생각을 배제한 채 자신의 음악관을 고수하기보단 철저히 감독이 요구하는 대로 작업한다는 방식이 오히려 카와이 켄지만의 고유 스타일을 만들어낸 게 아닌가 싶다. 카와이 켄지와 그의 작품들 <엽문>은 그의 프로의식과 실력을 유감없이 접할 수 있는 사운드트랙으로, 이미 <용호문>에서 한번 호흡을 맞췄던 엽위신, 견자단 콤비와 함께 박진감 넘치는 액션 스코어의 진수를 선사한다. 빠르고 강력한 타격기를 갖춘 견자단의 액션 스타일에 맞춰 카와이 켄지는 약동하는 퍼커션을 전면에 배치해 청각적인 액션 쾌감을 노리고 있는데, 거기에 한번 들으면 쉽게 잊을 수 없는 탁월한 테마(‘一代宗师 Maestro’)를 얹어 듣는 순간 영화의 숙명적인 분위기를 짐작케 만든다. 만화를 원작으로 삼아 국적불명의 판타지스러웠던 <용호문>이 기존에 카와이 켄지가 작업했던 여타 유수의 일본 아니메 사운드트랙들을 떠올리게 했다면, 얼후와 코러스를 사용해 예의 멋스러운 중국색이 강하게 묻어나는 <엽문>의 스코어는 고전적이고, 위엄에 가득 차있다. 특히나 엽문이 구사하는 영춘권 자체가 여성에 의해 만들어진 권법인 만큼 부드럽고 우아한 품격이 느껴져야 하는데, 카와이 켄지는 얼후의 나긋나긋한 음색과 강렬한 타악의 대비로 부드러움과 강함을 동시에 잡았다. 거기에 밑받침되는 두터운 보이스와 스트링의 조화는 휴머니즘을 극대화시키는데, 액션 스코어가 놓치기 쉬운 감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해준다. 이전에 <란마 1/2>을 작업하며 의도적인(다분히 희극적인) 중화풍의 컨벤셔널한 사운드를 들려준 바 있지만, <엽문>에선 전통적인 색채에 집착하지 않고 일렉트릭 사운드를 병행하며 상처 입은 시대상의 암울한 분위기를 엄숙하고 장중하게 담아낸다. 전체적으로 곡들은 그리 길지 않다. 1분 미만의 짧은 큐도 다수 존재한다. 하지만 이를 꼼꼼히 영화의 순서대로 30트랙에 걸쳐 모두 담아낸 <엽문> 사운드트랙은 그야말로 완벽하다. 보통은 빠질법한 예고편용으로 작곡된 음악까지 맨 마지막 트랙에 포함돼있다. 아쉬운 건 홍콩 워너에서 발매된 이 앨범이 너무나도 빠르게 절판이 되어버리고 말았다는 것, 그리고 다른 판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체적으로 호쾌하고 장렬한 사운드의 쾌감은 이전의 <용호문>에 비해 덜 할 수 있지만, 심장 박동처럼 시종일관 두근거리는 퍼커션과 일본점령하의 불안하고 참담한 기운을 간직한 스트링, 불길하고 비애감 넘치는 신디가 직조해내는 선율의 깊은 울림은 기존의 단순하고 명료한 액션 스코어와는 차별화된 질감을 가지고 있다. 료사부의 죽음에 열 받아 무도장에서 엽문이 일본군을 상대로 1:10의 싸움을 벌일 때 흐르던 ‘死而後已 Dic For It’나 마지막 일본인 장교 미우라와 대결하던 장면에 깔린 대곡 ‘仁义之战 Battle For Righteousness’이 그렇다. 개인으로선 누구보다 강하지만 총과 군대를 가진 국가 앞에서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 고수의 암담한 심정을 오롯이 토해내는 건 카와이 켄지의 이 두근거리는, 두 주먹 불끈 쥐게 만드는 음악 덕분이다. 이미 수많은 아니메와 영화에서 갈고닦은 실력으로 액션 큐에 있어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운드를 선사하는 장인답게 그는 액션에 감성을 실었고, 능숙하게 퍼커션의 강약과 속도를 조율하며 극의 흐름을 고조시킨다. 딱히 장면에 맞춘 미키마우징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전율을 불러일으키는 솜씨가 놀랍다. 마지막 결투 카와이 켄지는 2010년 엽위신과 견자단이 다시 한 번 뭉친 < 엽문 2 >에서도 여전히 음악을 맡아 속편의 법칙에 충실하게 더 빨라지고 더 강력하며 더욱 애잔하고 장엄한 스코어를 만들어냈다. 여전히 그 중심에는 ‘一代宗师 Maestro’ 테마가 자리 잡아 심금을 울린다. 마치 어느 인터뷰에서 예술가보단 장인이 되고 싶다고 밝힌 카와이 켄지 자신에게 바치는 사운드트랙 같기도 하다. Track List 01. 一代宗师 Maestro 02. 融乐 Harmony 03. 切磋 Wanna To Fight 04. 嚣 Arrogance 05. 傲 Insolence 06. 泰然自若 Take Thing Easy 07. 悲城 City Of Sadness 08. 惘然 At A Loss 09. 徒然 In Vain 10. 腐 Decayed 11. 困 Stuck In A Moment 12. 代价 Pay For It 13. 战 Fight 14. 死而後已 Dic For It 15. 叶问 Ip Man 16. 涅盘 "Nirvana" 17. 亡命之徒 Desperado 18. 小念头 "Siu Lim Tau" 19. 纠缠 Entanglement 20. 无惧 Fearless 21. 赴汤蹈火 Going Under 22. 本觉 "Rigpa" 23. 危境 In Danger 24. 沉 Sinking 25. 剑拔弩张 Ready To Fight 26. 仁义之战 Battle For Righteousness 27. 岁月 Remembrance 28. 断 "Harakiri" 29. 圆 Completion 30. 一代宗师—贰 Maestro II 31. 预告 The Trai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