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중산책
- 감독
- 임순례
- 제작년도
- 1994
- 출연
- 명계남, 서지현, 서영욱, 이정태, 한종남, 김경렬, 김경빈, 유영재, 진봉희, 정선미, 서형환, 최병철
극장이 배경이 나오는 영화들을 좋아한다. 이 영화들 속엔 극장에 가면 으레 마주하게 되는 것들이 ‘비치’되어 있다. 예컨대 오래 된 얼룩을 머금은 카펫, 늘 같은 옷을 입고 시간을 때우는 우울한 얼굴들, 매대에 쌓여있는 오래된 과자들 등 새로운 것은 ‘1’도 없는 이 극장의 이야기는 그럼에도, 혹은 그렇기에 아련하고 뭉클하다. 임권택 감독의 < 하류인생 >, 주세페 토르나토르의 < 시네마 천국 >, 임순례 감독의 < 우중산책 > 이 내겐 그런 영화들이었다. 보고있어도 그리운 영화. 그리고 이 리스트에 전지희 연출의 < 국도극장 >이 추가될 것이다. <국도극장>은 을지로에 있던 그 전설의 국도극장과는 아무 상관 없는 또 다른 국도극장의 이야기다. 영화는 주인공 기태( 이동휘 )가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다가 자신의 고향, 벌교로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고향이라고는 하나, 컴컴한 집에서 기태의 끼니를 챙기는 병든 노모( 신신애 )를 제외하고 그를 반기는 이는 아무도 없다. 기태는 지인의 소개로 초등학교 동창, 영은( 이상희 )의 뒤를 이어 동네 국도극장에서 잡일을 시작한다. 잡일이라고 굳이 표현한 것은 이 극장에서 필요한 모든 일이 누군가의 업무로, 역할로 나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각자도생’을 모토로 수 십년을 버텼던 이 극장의 직원은 간판쟁이 오씨( 이한위 ), 박기사 그리고 앞으로 ‘매표부’ 외 모든 것을 책임 질 기태가 전부다. 국도극장을 채우고 있는 존재들이 기태에겐 초라하고 구태의연하다. 매점 구석에 놓여있는 고장 난 컴퓨터부터 골방에 앉아 허구헌날 소주와 담배로 시간을 때우는 오씨, 그리고 카운터에 턱을 괴고 앉아 가물에 콩나기로 오는 관객을 맞는 자신까지 말이다. 그럼에도 무기력과 우울함으로 숨이 멎을 것 같은 기태에게 서서히 재활의 생기를 불어 넣는 것 역시 이 존재들이다. 어느 때든 서로가 내킬 때, 오씨와 쭈구리고 앉아 담배를 나눠 피는 시간이, 싸구려 비빔밥과 소주 콤보를 사랑하는 영은과의 외식도 기태에겐 기다려지는 일상이 된다. 오씨가 그리는 간판만큼이나 흉물스럽기 짝이 없는 구닥다리 영화들 까지도 말이다. 서울에서 한번도 의미 있지 않았던 것들 혹은 의미 있을 수 없던 것들이 그렇게 영혼의 기력이 되어 가는 것이다. 따라서 서울로 떠나는 영은으로 인해 돌아갈 명분이 생겼을 때, 그리고 회사에 다시 다닐 기회가 찾아 왔을 때, 기태는 국도극장에 남기로 한다. 암에 걸린 오씨가 수술을 받기 위해 잠시 병원으로 떠나야 했을 때도 기태는 생각을 고치지 않는다. 그렇게 국도극장은 기태의, 그리고 앞으로 돌아올 그 누군가의, 터전이 된다. 영화는 ‘아직도’ 극장을 채우고 있는 하릴 없는 ‘로우 라이프(low life)’들의 이야기인 만큼, 특이하지도, 특줄나지도 않지만 배우들의 연기와 공간의 향수가 웃음을 멈추지 못하게 한다. 특히, 배우 이한위의 압도적인 연기는 이 작은 영화의 거대한 스펙타클이다. 그가 이 작품에서 구사하는 호남 사투리는 아마도 지금껏 한국영화에서 등장한 사투리 대사 중 가장 적확한 기능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한 영화 내내 단 한 번도 올곧은 자세와 시선으로 등장하지 않는 그가 보여주는 좁고, 구겨진 뒷모습은 덧 없는 인생의 완전체이자 삼라만상을 품은 인간의 형상이기도 하다. 영화의 또 다른 스펙타클, ‘극장’ 속 공간은 에드워드 하퍼(Edward Hopper)의 ‘밤의 사람들’에 등장하는 다이너(diner)만큼이나 휑 하지만 감독 전지희는 이 공백을 우리 모두가 그리워하는 극장의 오브제들로 채운다. 가령 기태가 오씨에게 건네 받는 일반티켓과 조조티켓 뭉치, 나무 벽에 걸려있는 거대한 좌석 배치도 등 ‘소싯적’ 극장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작은 존재들 말이다. 결국 <국도극장>은 소멸위기에 있는 극장이라는 공간을 통해 ‘존재’의 재발견을 종용한다. 그것은 기태를 통해 재발견되는 인간들, 물체들 뿐 아니라 이 영화가 수고를 들여 비추는 작고 흔한 자연의 존재들 – 예컨대 극장의 머리 위를 지키고 있던 초승달이나, 가을 직전이 되면 고개를 내 빼는 앞 마당의 작은 들꽃 – 의 재발견을 포함한다. 많은 것들이 사라져가는 이 시대의 ‘미물(美物)’들을 기특한 눈으로, 애정을 눌러 담아 바라보는 이 영화의 시선을 ‘발견’한 것은 매우 필연적이고 다행스런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소중한’ 흥행이었다. 올 초 개봉한 임순례 감독의 < 리틀 포레스트 >의 흥행은 극장가에 고무적인 사건이었다. 남성중심의 장르영화가 각광받는 분위기에서 <리틀 포레스트>의 흥행을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적은 제작비에, 김태리 가 첫주연을 맡은 작품. 도시생활에 지친 혜원이 시골로 돌아와 꾸려가는 일상의 이야기가 전부다 보니 스토리라인도 단조로웠다. 임순례 감독이 < 제보자 >(2014)의 흥행에 실패한 후 꽤 오랜만에 내놓은 신작이니 전작의 흥행이라는 수식어도 없는, 소위 업계의 표현대로라면 ‘총알이 부족한’ 영화였다. 개봉 2주차 흥행 역주행을 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앞서 열거한 모든 흥행 약점들은 <리틀 포레스트>를 관람하는 관객들에게 오히려 강점으로 다가왔고 극장가 비수기임에도 영화는 150만 명이 넘는 관객으로 흥행 반열에 올랐다. 관객들은 남성 캐릭터 위주의 극장가에 등장한 여성 캐릭터에 환호했고, 소소한 이야기로 자극적인 설정의 장르영화에 지친 마음을 달랬다. <리틀 포레스트>의 흥행은 더 이상 남성 캐릭터의 등장과 자극적인 설정, 높은 예산의 영화만 흥행할 수 있다는 투자자들의 변명을 불식시킬 수 있는 선례를 제시했다. 무엇보다도 1996년 장편 < 세친구 >로 데뷔, 올해 22년. 임순례 감독의 저력을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했다. <세상밖으로> 스크립터 시절 이경영, 문성근, 여균동과 숲세권, 슬로우 푸드, 소확행 등의 가치 언어가 통용되는 사회. 일본 원작이 있지만, 혜원의 시골생활은 경쟁사회에서 벗어나 삶의 가치를 찾고자 하는 지금 대한민국 젊은 층의 사고를 여실히 반영한 작품이었다. 2018년의 ‘트렌드’를 담아낸 영화 같지만, 이 이야기가 탄탄하게 힘을 받은데는 임순례 감독이 지난 영화들을 통해 보여준 지향점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경쟁사회의 논리에서 벗어나 소외받는 이 사회의 약자를 향한 마음, 근 10년 간 지속해 온 유기 동물을 보호하는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KARA)의 대표를 역임하며 보여준 동물과 자연에 대한 사랑, 여성영화인 모임의 활동에서 이어진 끈으로 현재 명필름 심재명 대표와 함께 성평등센터 든든의 센터장으로 일하며 여성에 대한 지지를 아끼지 않았던 임순례 감독의 철학이 모두 담긴 결과물이었다. <리틀 포레스트>로 또 한 번 임순례 감독의 건재함을 입증한 현재, 데뷔 초부터 지금까지 임순례 감독의 시간들을 살펴보려한다. 임순례 감독의 지난 역사를 돌아보는 건 ‘한국에서 그 시절, 여성이 어떻게 영화감독이 되고도 중심을 잃지 않고 꾸준히 차기작을 내놓고 호평 받는가’에 대한 답변과도 같을 것이다. 임순례 감독이 처음 영화계에 뜻을 품고 입문하기까지 90년대 초반의 상황으로 볼때 감독 데뷔까지는 쉽지 않은 굴곡이 있었다. 감독들의 데뷔까지의 과정을 기술한 『데뷔의 순간』(주성철 저)에 보면 “여자라서” 영화감독이 되는 걸 불가능해 보인다는 시선에 처음엔 꿈을 접고 처음엔 영문학과를 택하기도 했으며, 감독을 꿈꾸는 여자들 대부분이 스크립터 역할이 주어지던 때라, 오히려 그 인식을 피하려고 부러 연출부의 다른 포지션을 꿈꾸기도 했다는 일화가 나온다. 어쨌든 감독이 되고자 하는 목표를 정하고 우회로를 탐색하던 끝에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온 그는 여균동 감독의 < 세상 밖으로 >(1994)의 연출부에서 스크립터로 일한다. 그 시기에 임순례 감독이 스스로 만든 영화가 독립단편 영화로 엄청난 호평을 이끌어낸 < 우중산책 >(1994)이었다. 변두리 삼류극장에서 근무하는 매표직원 여성의 이야기를 응시한 작품으로 제1회 서울단편영화제에서 최우수상과 젊은 비평가상을 수상했으며, 영화계가 임순례 감독을 주목하는 계기가 된다. 마침 당시는 삼성영상사업단을 통해 대기업 자본이 충무로에 유입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그전까지 일반적이던 충무로 도제시스템을 통해 입봉을 하려했다면 장벽이 될 요소들이 없지 않았지만, 영화제 수상으로 입증한 재능을 인정받으며, 임순례 감독의 장편 데뷔는 다소 빨리 찾아왔다. 그렇게 2년 후 <세 친구>(1996)가 첫 장편 연출작이 되었다. < 미망인 >(1955)으로 한국 최초의 여성감독으로 수식되는 박남옥 감독 이후 흔치 않은, 한국 여성감독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기록할 만한 등장이었다. <세친구> 주인공들과 함께 <세 친구>와 이후 < 와이키키 브라더스 >(1996)까지, 단편 <우중산책>과 더불어 임순례 감독의 초기작으로 불리는 세 작품은 다르지만, 무력한 청춘의 모습이라는 점에서는 같은 선상에서 바라보게 되는 영화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을 하지 못한 세 친구가 갑작스레 날아온 입영통지서를 받고, 군 면제를 받기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가 청년에게 가하는 압박과 모순을 여실하게 보여준 작품으로 호평 받았으며, <세 친구>에서 묘사된 씁쓸한 청춘의 삶은 차기작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로 이어진다. 나이트클럽에서 연주하는 남성 4인조 밴드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리더 성우( 이얼 )이 떠났던 고향 수안보 와이키키 호텔에 다시 찾아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꿈꾸던 밴드일을 하고 있지만, 생활에 치여 허우적대는 30대 밴드 마스터와 그가 바라보는 친구들의 현재가 씁쓸하게 묘사된다. 마치 <세 친구>의 막막한 청춘의 20년 후를 들여다보는 게 아닐까 싶은 드라마 장치를 통해 임순례 감독은 개개인을 압박하는 사회를 향한 비판적인 화두를 또 한 번 던지고 있다. 잇단 비평적인 호평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임순례 감독의 시장에서의 입지는 미약했다. 호평과 반대로 흥행 성적이 좋지 않았던 임순례 감독은 장편 차기작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가 2000년대 초반 박찬욱 , 봉준호 , 김지운 , 류승완 등의 감독이 대거 출연하며 한국의 장르영화가 ‘뉴웨이브’라는 말로 지칭되며 활황을 맞기 시작할 때 정작 여성감독들의 입지와 여성이 주최가 되는 영화들은 자취를 감추었던 시절이다. 그 사이 임순례 감독은 인권영화 옴니버스 프로젝트 < 여섯 개의 시선 >(2003)중 한 편인 < 그녀의 무게 >를 연출했다. 외모지상주의인 사회에서 한 여성의 극단적 선택을 그린 작품으로, 단편 <우중산책>에서부터, 이후 <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2007), < 날아라 펭귄 >(2009) 등에서 임순례 감독이 표방한 여성 서사와 맥을 잇는 작품이기도 했다. 하지만 장편 연출의 기회는 쉽게 찾질 못했던 휴지기이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임순례 감독의 ‘부활’을 알리는 기회가 찾아온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활약한 여자 핸드볼 선수단의 활약을 그린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은 임순례 감독은 자신이 가진 주제가 대중과의 접점을 획득한 첫 순간이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함께 한 명필름과 함께한 작품으로, 전작으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걸린 6년 만의 신작이었다. <우생순>은 모든 면에서 기록적인 작품이었다. 전작의 흥행을 입증하지 못한 감독이 시장의 기대를 얻지 못한 채 손을 댄 작품이자, 흥행 취약장르인 스포츠 영화라는 우려도 가지고 있었다. 또 여성이 전면에 나선 여성 주연 영화라는 점도 우려의 지점이었다. 기획으로만 보자면 역시 대중의 선택을 벗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애초 ‘여성감독’으로서 의식을 배제한 채 매 작품 임했던 그가 침체된 여성감독의 입지를 마련하겠다는 목표는 아니었으라. 하지만 “이번만은 손익분기점을 맞추겠다”는 감독 자신의 의도에서 시작해, 4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이룬 성공은 당시 충무로 여성감독의 명맥을 환기하는 기록할 만한 성과이기도 했다. 영화 속, 여성으로, 주부로, 비인기종목으로 소외당하고 차별받는 국가대표 여성 핸드볼 선수들의 처우와도 겹쳐지며 묘한 쾌감을 불러일으켰고,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 냈다. <우생순>은 소외받는 핸드볼 선수들의 분투라는 점에서 다분히 상업적인 스포츠영화의 공식을 따르고 있음에도, 임순례 감독의 전작 <세 친구>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씁쓸한 정서를 나눠 갖는 작품이기도 하다. 다소 ‘마이너’하다 칭해졌던 요소들을 탈피하고자, 나현 작가가 시나리오 작업에 합류해 감동이 있는 휴먼드라마의 틀을 완성했으며, 스포츠영화가 줄 수 있는 스펙터클한 촬영과 편집 역시 쾌감을 불러일으켰다. 지금의 <리틀 포레스트>가 그랬듯, 약점이라고 지적된 <우생순>의 모든 요소들이 오히려 극장가에 신선한 환기를 시켜주는 요소로 다가온 결과다. 임순례, 이미례, 박남옥, 이정향 이후 임순례 감독은 기존 약자를 돌아보던 시선을 확장해 우리 사회의 모순을 짚어보는데 관심을 기울여 왔다. 사교육 열풍, 기러기 아빠 문제와 식성과 취향 등에 인색한 우리사회의 풍경을 모자이크 한 <날아라 펭귄>을 거쳐, 시골로 내려간 아나키스트 최해갑 가족의 충돌을 통해 자본주의, 환경 파괴, 국가, 교육의 문제를 되새김질 하는 < 남쪽으로 튀어 >(2012), 2005년 있었던 황우석 사건을 모티브로 줄기세포 조작 사건을 다룬 <제보자>(2014)등에서 보여준 일련의 흐름은 임순례 감독의 색깔로 다가왔다. 또한 그 사이 상업영화의 사이즈에 머물지 않고 작은 영화의 기획과 연출로도 활동을 이어왔다. 우시장에 몰래 소를 팔러 갔다가 소와 여행을 하며, 자아를 찾는 한 남자의 내적 성장을 그린 작품 <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2010)을 연출하며 자신의 삶의 철학을 견지해 왔으며, 연출가의 역할을 하는 그 시기, 동물보호를 위한 옴니버스영화 < 미안해, 고마워 >( 송일곤 , 오점균 , 박흥식 , 임순례, 2011)의 제작 총지휘와 연출을 하는 등의 활동으로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영화로 실천해 오기도 했다. 가장 최근 임순례 감독을 만난 건 영화계 성폭력 예방, 피해자 지원을 모색하는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의 센터장으로서였다. 『씨네21』과 든든이 함께 모색할 수 있는 지점들을 찾아보자는 생각에 함께 센터장으로 역임된 명필름 심재명 센터와 회의를 가지기도 했는데, 영화계에서 소외된 ‘여성’의 인권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임순례 감독은 그 존재감만으로도 든든함을 안겨준다. 지난 3월 열린 개소식에서 임순례 감독은 “미세먼지가 많다고 활동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지 않냐”며 미투운동은 “권력을 가진 남자의 횡포와 이에 공적으로 보호할 장치를 갖추지 못한 한국 사회 전체의 구조적 문제이자 어둠이라고 생각한다”는 말로, 각종 편견에 찬 시선으로 위축됐던 미투운동에 대한 지지운동을 전달하며, 미투운동의 선봉에 나서고 있다. 임순례 감독이 개진해 온 필모그래피 자체에 충무로가 가진 구조적 문제와 해결 방법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순례 감독은 그런 면에서 배급과 투자가 규모가 큰 영화로만 몰리”는 상황에서 여성감독의 약세를 몸소 겪고 지켜보면서, 영화계 수직계열화의 흐름에서도 설 자리를 잃지 않고 지금의 성과를 거둔 대한민국 대표 감독이다. 인터뷰에서 그가 한 발언 중 “자주 영화를 그만둘까”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소통하는 매개체로서 영화의 매력”을 놓지 못하게 되었다는 말을 곱씹게 된다. 지난 22년 그가 내놓은 작품들을 통해서 우리는 그가 소통하고자 하는 캐릭터가 이 사회의 힘없는 청년, 여성, 소외된 자, 그리고 보호받아야 할 동물들이라는 점을 알게 됐다. 그렇기에 그 소통의 창구를 지속적으로 열어준 임순례 감독의 자리가 지금의 극장가에 얼마나 소중하고 필요한지 절실히 깨닫게 된다. 다시 한 번 <리틀 포레스트>의 성공 이후 임순례 감독의 행보가 기대되고 또 매번 응원하게 되는 이유다.
거의 19년 만에 < 세친구 >(1996)를 다시 보았다. <세친구>를 떠올릴 때면 자동적으로 임순례 의 단편 < 우중산책 >(1994)과 박찬옥 의 단편 < 느린 여름 >(1998)을 연결하는 버릇이 있었다. 몇 번인가 글에도 썼던 것 같다. 그런데 다시 본 <세친구>는 기억과 많이 달랐다. 호흡이나 느낌에서 다른 부분이 많이 보였다. <우중산책>의 길게 찍기는 <세친구>에 와서 줄었고, 단편의 멜랑콜리한 부분은 장편에 와 거의 다 제거되어 있다. <느린 여름>처럼 한 시기를 보내는 남자아이들의 기운을 담고는 있으나, <세친구>는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따라간다기보다 툭툭 던지는 식이다. 나는 왜 <세친구>가 테이크를 길게 가면서 감정의 전달에 충실을 기한 작품이라고 기억했던 것일까. 알 수는 없다. 전작이 그랬으니까 그 인상을 연장했을 수도 있고, 당시 나의 심리 상태가 세 인물의 처지에 격하게 반응했을 수도 있다. 대충 세 봐도 < 세친구 >의 신scene 수는 예순 개를 훨씬 넘는다. 상영 시간은 90분 정도다. 졸업식을 치르는 학교와 변두리 중국집에 이어 등장하는 공간은 비디오방이다. 티브이 앞에 나란히 앉은 삼겹, 무소속, 섬세는 연극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보인다. 새까만 무대에서 얼굴 주변으로만 조명을 받으며 앉아 있는 모습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또한, 삼겹 역할을 맡은 이정원의 특이한 대사 연기도 그런 느낌에 일조한다. <세친구>는 조금 멍청한 세 인물이 어떤 상황과 마주했을 때 벌어지는 소극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연결해놓은 작품 같다. 전혀 다른 장르의 영화인 막스 형제의 영화와 오히려 인척지간인 것 같은. 이것은 <세친구>를 우스갯거리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시간이 흘러 거리를 두고 보게 된 작품이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거다. 기실 무소속, 섬세, 삼겹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많이 슬픈 것들이다. 만화가가 꿈인 무소속은 이런저런 공모전에 출품을 해보지만 매번 떨어진다. 기껏 들어온 일자리라고 해봐야 일본 만화를 베끼는 것이나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잔심부름을 하는 게 다다. 어느 날, 그는 공모전에 냈던 만화의 내용이 살짝 바뀌어 잡지에 실린 걸 보게 된다. 단숨에 따지러 갔으나 법적으로 해볼 테면 해보라는 말을 듣고 무기력하게 돌아선다. 섬세는 미용사가 자기 적성이라고 생각한다. 재수를 해서라도 섬세가 대학에 가기를 원하는 엄마는 아들이 미장원 근처에 얼씬 못하게 한다. 몰래 미용 학원에 다니며 밤에는 미장원에서 연습하던 그는 동네 건달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자신을 방구석에 가둔다. 삼겹은 누가 뭐라고 하든 잠자는 것과 먹는 것에 충실하다. 막 이웃 여자들의 냄새에 유혹당해 뒤를 따라다니지만, 그녀들에게 그는 놀림감에 불과하다. 군에 가기 싫어 살을 찌워 면제를 받아내는 것까진 좋았으나, 사우나에서 아무리 버텨도 몸에 붙은 살은 떠날 줄을 모른다. 한 번쯤은 극에 뛰어들어 함께 울 법한데, 임순례 는 토닥이고 싶은 손길을 용케 꼭꼭 몸 안으로 숨겨둔다. < 우중산책 >처럼 < 세친구 >에서도 울컥하게 하는 장면은 비가 내릴 때 나온다. 엄마의 정이 그리운 무소속은 꽃집 여인을 사모한다. 그녀의 얼굴을 그린 그림과 우산을 손에 든 채 그는 골목 어귀에 서 있다. 누군가를 기다리던 그녀는 남편이 오자 꽃집 문을 닫고 귀가한다. 무소속은 말없이 돌아서고, 이병우의 기타 음악이 짧게 흐른다. 그림이 빗속에 떨어지고 그는 빗속 너머로 사라진다. 그게 다다. 상처를 입은 청춘의 연정이 빗속에서 우는데, 임순례의 카메라가 취하는 태도는 냉정할 정도다. 그 시기에 그런 통증은 있기 마련이고 곧 잊힐 거라고 말하려는 듯이 카메라는 좀처럼 거리를 좁히지 않는다. 30분께에 나오는 22초짜리 쇼트는, 그런 점에서 < 세친구 >를 대표하는 것이다. 세 친구가 담벼락 앞에 서 있다. 삼겹은 하품하고 무소속은 담배를 피우고 섬세는 팔짱을 끼고 섰다. 카메라는 다가서지도 않고 뒤로 빠지지도 않는 태도로 우두커니 바라본다. 카메라의 거리만큼 눈에 띄는 것은 세 인물의 배치다. 그들은 붙어 있는 것도 아니고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친밀한 친구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평소 실없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그냥 함께 외로움을 푸는 사이로 비친다. 따져보면, 그들은 한 번도 절실한 감정을 나누지 못한다. 각각의 인물에 균등하게 시간을 할애하던 영화는 엔딩에서도 세 인물의 모습을 따로 나눠 보여준다. 삼겹은 사우나에서 살을 빼다 지쳐 쓰러지고, 섬세는 삼류극장에서 게이의 접촉에 망설이며, 무소속은 빛 바깥으로 사라진다. (제목이 ‘세 친구’가 아니라 ‘세친구’임에도) 그들에겐 함께 뭉쳐 대항할 힘이 없다. 영화는, 쉽게 물거품처럼 꺼지는 몇 개의 시도만을 보여줄 따름이다. 그들의 통증을 씨실로 연결해 보여주는 것은 무소속의 귓병이다. 빗길을 걸어 귀가한 무소속은 수건으로 귀를 닦다 이상을 알아차린다. 티슈로 닦아보니 고름이 묻어 나온다. 극 중 드물게 나오는 플래시백은 염증의 시작을 밝힌다. 졸업 전, 군대 시절 이야기로 일장 연설하던 선생은 귀를 기울이지 않는 무소속을 끌어내 얼굴과 귀와 몸을 마구잡이로 때렸다. 무소속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린다. 얼마 후, 입영 신체검사를 맡은 의무장교( 임상수 감독이 연기했다)는 무소속에게 귓병이 염려스럽다고 말한다. 군에서 고문관 취급을 받는 무소속은 선임병으로부터 구타를 당하다 귀를 맞고 쓰러진다. 다음 장면에서 의가사제대를 한 그가 마을로 돌아온다. 귀가 들리지 않는 무소속은 어딘가 혼을 뺏긴 아이 같다. 카메라는, 절룩거리는 걸음으로 시장통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는 그를 오랫동안 바라본다. 임순례 가 한 청춘에게 가해진 일련의 폭력을 기록하는 방식은 그렇다. 나서서 드러내지 않으면서 한 아이의 귓속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들리지 않는 한숨으로 아파한다. <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과 < 악어 >가 나온 1996년, 임순례 는 < 세친구 >로 데뷔했다. <세친구>는 1980년대 밑바닥 청춘의 기록인 < 바람 불어 좋은 날 >의 1990년대 버전이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간은 지나고 바야흐로 계급의 간격이 아가리를 쩍 벌리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그 시간에 내던져진 아이들은 스물로 진입하기도 전에 소외를 맛본다. 한편, 1980년대와 다를 바 없는 1990년대의 산동네 풍경을 보면서 혹시 시간을 잘못 찾아간 게 아닌지 질문하게 된다. 경제 성장의 정체와 별개로, 성장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 동네는 어둡고 초라하다. <세친구>가 나오고 꼭 1년 뒤, 한국의 거품 성장은 붕괴하고 만다. 나른하고 건조하면서 서늘한 <세친구>는 그런 낌새를 눈치 챈 것일까.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청춘의 시간을 함부로 이용하거나 착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작가의 태도를 믿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19년의 시간이 흘렀고, 세 명의 예쁜 남자 아이들이 등장하는 < 스물 >이라는 영화가 올해 개봉돼 인기를 끌었다. 외형적인 건 차치하고 <세친구>와 <스물> 사이에서 제일 드러나는 건 태도다. 시간의 경과와 함께 인상이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세친구>를 지지하고 싶은 것은 그 태도가 지금도 의심스럽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