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면허
- 감독
- 그렉 비먼
- 제작년도
- 1988
- 출연
- 코리 펠드만, 코리 하임, 캐롤 케인, 리차드 마저, 헤더 그레이엄, 마이클 매너세리, 하비 밀러, 마이클 A. 니클스, 니나 시마스즈코, 그랜트 구드이브, 제임스 아베리
< 난 울지 않아 >(피오트르 도말레프스키, 2020)는 부산국제영화제 이전에 산세바스찬영화제 신인감독 경쟁부문에 선정 됐지만 영화의 가치에 비해 충분히 주목 받지 못한 작품이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를 준비하면서 봤던 수 백 편의 영화 중엔 <난 울지 않아>보다 뛰어난 영화들이 있었지만 <난 울지 않아>만큼 마음을 움직인 영화는 없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단 한번 150명의 관객과 극장 상영하는 것으로 잊히기엔 너무 아까운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설정은 이렇다. 17살 폴란드 소녀는 하반신 장애를 지닌 오빠와 그런 오빠를 돌보느라 애를 먹는 어머니와 살고 있다. 아버지는 오래 전 돈을 벌러 아일랜드로 갔고 소녀에게 자동차를 사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다. 아니 지켜질 수 없다. 노동현장에서 사고가 일어나 죽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시신을 모셔와 장례를 치러야 하는데 아일랜드까지 가서 이런 일을 처리할 사람은 딸 밖에 없다. 어머니는 장애인 아들을 돌봐야 하는데다 영어를 못한다. 딸은 외국인 노동자로 타지에서 살다 갑자기 죽어버린 아버지의 시신을 병원 안치실에서 마주한다. 아버지의 얼굴은 형체를 알아 볼 수 없게 짓눌린 모습이다. 딸은 아버지의 신원을 확인할 수 없다. 망가진 얼굴과 부서진 핸드폰 같은 소지품만으론 아버지가 맞는지 알 수 없다. 소지품을 보여주며 시신이 아버지의 것이 맞는지 확인해달라는 의사의 재촉에 소녀는 말한다. “당신은 아버지의 호주머니에 뭘 넣고 다니는지 아시나요?” 아버지의 죽음을 대면하는 딸의 이런 반응은 당연하다. 돈을 벌러 외국에 가서 수년간 본 적 없는 아버지에 대해 어린 딸이 뭘 얼마나 알 수 있을까? 영화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소녀는 아버지가 일했던 해운회사 현장을 찾아간다. 아버지가 죽었던 그날, 아버지는 작업장에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의 출입카드를 사용해서 대신 일을 하다 사고를 당했고 이런 사고의 경우 보상 받을 길은 없다. 현장 감독관은 말한다. “공식적으로 너희 아버지는 그날 여기서 근무하지 않았다. 무단 침입을 했다 사고를 당한 거라 보상받을 길이 없다.” “그럼 우리 아버지는 공식적으로 아직 살아 있는 거겠네요.” 소녀는 무엇보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남겨둔 돈에 관심이 있었지만 아버지의 죽음을 세 번 대면하면서 돈 이상의 무언가를 찾기 시작한다. 처음은 병원에서 짓이겨진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두 번째는 시신을 화물처럼 취급하는 장의사를 만나고, 세번째는 현장 감독관이 내미는 냉정한 사건 보고서를 읽는다. 여기서 아버지는 참혹한 시체이자 80kg 화물이며 무단 침입하다 재수 없이 죽은 사람이 된다. 자리를 뜨려던 딸이 현장 감독관에게 묻는다. “제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글쎄, 말이 별로 없었고 열심히 일했지. 이렇게 말할 수 있으려나.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고.” 사실 현장 감독관은 아무 것도 모른다. 매일 현장을 찾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해 일일이 깊은 관심을 갖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아버지에 대한 딸의 궁금증도 실은 자동차를 사주겠다는 약속만 아니었으면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의 돈을 찾게 됐을 때 소녀는 시신을 옮기는데 드는 돈을 최소로 하고 남은 돈을 자신의 차를 사는데 쓰기로 결심한다. 소녀는 아일랜드 직업소개소의 소장에게 이런 계획을 얘기한다. “아버지도 제가 차를 사기를 바랐을 거예요.” “아버지가 뭘 바랐는지 니가 어떻게 알지? 아버지의 중간 이름이 세바스찬인지도 몰랐으면서.” <난 울지 않아>는 딸이 아버지를 알아가는 영화이다. 여기서 아버지는 이주 노동자이고 가족에게 매달 송금을 하느라 정작 가족과 함께 살지 못하는 남자이다. 딸도 그의 중간 이름을 모르는 평범한 사내. 남들과 똑같이 묵묵히 일하다 죽어도 변변한 보상을 못 받는 폴란드 노동자이다. 영화는 아버지를 발견하는 과정을 통해 딸이 성장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시신을 화물로 취급하는 장의사처럼, 노동자를 개별 인간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감독관처럼 딸도 아버지를 그저 매달 들어오는 생활비의 발신자로 여겼다. 아버지의 삶이나 아버지의 취미 같은 것에 아무 관심도 없던 딸은 세상이 아버지에 대한 존중을 걷어찰 때 비로소 아버지를 지켜야 할 의무감을 느낀다. 스스로 세상에 나갈 준비가 안 된 존재로 여겼던 딸은 어머니와 아들을 대신하는 가장이 되려고 한다. 세 번째 운전면허 시험에 떨어져서 분을 참지 못하던 그녀는 이제 어떤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의 길을 운전할 수 있는 어른이 된다. <난 울지 않아>는 폴란드 감독 피오트르 도말레프스키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그는 자신의 가족을 비롯해 주변에서 이주 노동자로 생활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고, 거기서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시대적 차이는 있어도 한국과 상황이 많이 다를 거 같지는 않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 느끼는 호감의 밑바탕에는 한국영화에선 이런 노동자를 다룬 영화를 별로 보지 못했다는 점도 있다. 상업영화에서야 언감생심 노동자를 다룬 영화를 기대하지 않지만 독립영화에서도 노동자의 이야기는 별로 없다. 다큐멘터리에서 다뤄지는 것을 제외하면 < 카트 >처럼 아주 예외적인 영화만이 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인 이란희 감독의 < 휴가 > 역시 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룬 보기 드문 예이다. 반면 유럽 영화에선 노동자의 현실을 다룬 영화를 종종 발견한다. 켄 로치로 대변되는 이런 전통은 <빌리 엘리어트> 같은 대중영화에서도 효과적으로 활용된다. 흠결이 없는 완벽한 영화이거나 굉장한 미학적 성취가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난 울지 않아>의 미덕은 이야기의 전개를 차분히 쫓아가는 디테일에도 있다. 소녀가 병원, 장의사, 아버지의 노동현장을 차례로 방문할 때 그곳의 분위기를 생생히 전달하는 적절한 장면들이 있다. 예를 들어 소녀와 장의사의 대화 장면. 시신의 무게를 묻는 장의사의 질문에 소녀는 장의사의 몸무게를 묻는다. 80kg이라 적어두고 시신을 옮길 가벼운 소재의 관을 소개하는 장의사의 표정은 단순히 사무적인 것을 넘어서 약간 흥분이 된 듯하다. 눈앞에 큰돈을 쓸 고객이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영화는 성실히 디테일을 쌓아간다. 장의사는 시신을 화장하지 않고 옮기려면 3500유로가 들고 화장을 하면 1000유로라고 말한다. 죽음은 무게로 계산되고 다음에 돈으로 환산된다. 철없는 어머니는 화장에 반대하고 딸은 자신의 차를 사기 위해 화장을 서두른다. 정확히 얼마나 필요하고 얼마나 수중에 있는지 얼렁뚱땅 넘어가지 않는 것은 이 영화의 중요한 디테일 중 하나다. 소녀가 아일랜드에 도착해서 담뱃값이 12유로나 한다는 사실에 놀라는 장면처럼 돈의 디테일은 이 영화가 다루는 진실의 실체이다. 돈으로 모든 것이 정리되는 세상에서 아버지의 죽음은 터무니없는 적자였다. 딸은 현장 감독관이 적선하듯 주는 200유로에 감사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이 영화의 엔딩 역시 적절한 돈의 용처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앞서 노동 현실을 다룬 영화가 별로 없다는 지적과 마찬가지로 적지 않은 영화들이 정확한 돈 계산을 하지 않음으로써 현실의 무게를 잊곤 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빚에 쪼들리는 주인공과 빚을 독촉하는 깡패라는 설정을 자주 만나는데 그럴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저 깡패들이 얼마나 잔인한지를 묘사하는데 쓰는 노력으로 저 주인공의 빚의 액수가 얼마이고 그게 얼마나 절박한 돈인지 묘사하는 쪽이 좋을 텐데, 라고. 평소 이런 생각을 하던 터라 <난 울지 않아>의 디테일이 더 마음에 들었는지 모른다. 가난을 그냥 가난이라고 쓰지 않고 가난의 디테일을 만들어내는 것이 영화적 상상력의 요체이다. < 기생충 >처럼 홍수에 휩쓸리는 반지하집이든, 가벼운 유골함의 가격으로 표현을 하든 영화적 개성에 맞는 적절한 디테일이 필요하다. <난 울지 않아>는 돈의 디테일에 충실하고 정확할수록 진실에 가까워지는 영화다. 삶의 실체가 거기 있기 때문이다.
영화와 자동차에 관해 글을 써보겠다고 달려들긴 했는데 우습게도 나는 운전면허가 없다. 다소 황당한 무면허(?) 칼럼 연재를 감행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방에 뒹굴고 있는 수백 대의 자동차 모형 장난감 때문이다. < 고스트버스터즈 > < 배트맨 > < 빽 투 더 퓨처 > 등의 1980년대 할리우드 영화들을 나이 들어 다시 보면서 그 영화의 감동을 소유(?)할 수 있는 캐릭터 피규어나 장난감 구매에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 모형 자동차 역시 내가 소유할 수 있는 영화 굿즈의 품목 중 하나였다. ‘배트모빌’이나 ‘엑토-1’, ‘범블비’ 같은 가상의 자동차들을 보며 모형을 구매할 생각만 했지 면허를 따야겠다는 생각은 미처 못했다. 아무튼 < 007 >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가 몰던 ‘애스턴 마틴 DB-5’나 < 분노의 질주 > 시리즈에 등장하는 브라이언(폴 워커)의 분신 같은 ‘토요타 수프라’ 등의 실제 자동차 모형을 구매하려면 적어도 제조사와 모델명은 알고 있어야 했다. 나의 자동차에 대한 관심은 그렇게 시작됐다. 가상의 캐릭터 자동차를 제외하고 영화에 등장한 수많은 실제 자동차 가운데 가장 먼저 장난감 모형을 찾아보기 시작한 모델은 1968년 작 < 블리트 >의 포드 머스탱이다. 피터 예이츠 감독이 연출하고 스티브 맥퀸이 출연한 이 영화를 보자마자 배우뿐만 아니라 그가 몰았던 자동차에도 푹 빠져들었다. 해외 쇼핑몰을 뒤져 장난감을 구하는 과정에서 그 차가 영화 제작연도 즈음에 포드사에서 만든 머스탱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1967~8년형 머스탱은 뒷좌석 천장이 짧고 경사져 있는 ‘쿠페’식인데 전체적으로는 날렵한 디자인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당히 묵직하고 위협적으로 생겼다. 차체의 전면은 보닛과 범퍼에 잘못 부딪히기라도 하면 그대로 신체 일부분이 뜯겨져 나갈 것 같은 위압감이 흐른다. ‘패스트백’ 형태의 뒤꽁무니에서 부다다다 울리는 시끄러운 배기음은 마치 제멋대로 사건을 추적하는 영화 속 주인공 형사 프랭크 블리트(스티브 맥퀸)의 성격이나 태도와 닮아 보였다. 혹시 류승완 감독의 영화 < 베테랑 > 개봉 당시 일부 관객들이 조태오( 유아인 )가 ‘포드 머스탱 GT’라는 차를 모는 것에 의문을 제기했던 걸 기억하시는가? 영화의 설정상 조태오 정도의 재력가라면 초고가의 스포츠카 ‘맥라렌’이나 ‘부가티’ 정도의 차는 타고 다닐 것 같은데 왜 상대적으로 저렴한 머스탱을 썼는가? 라는 물음이었다. 류승완 감독은 이에 두 가지 뜻이 있었다고 말했다. 첫 번째는 예산 문제 때문에 비싼 차를 섭외할 수 없었던 탓이 크고, 두 번째는 피터 예이츠 감독의 <블리트>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기왕이면 극 중 스티브 맥퀸이 몰았던 자동차와 같은 차로 선택하고 싶었다고. 류승완 감독다운 선택이었다. 그의 선택에 대해서는 뒤에 가서 또 이야기하도록 하자. < 블리트 >의 1968년형 포드 머스탱, 스티브 맥퀸 피터 예이츠 감독의 < 블리트 >는 카체이스 영화의 흐름을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영화다. 카체이스가 이 영화의 주요 소재는 아니지만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카체이스 촬영과 편집, 거기에 스피드광이었던 스티브 맥퀸이 만나 놀라운 장면을 만들어냈다. 요즘 관객들은 < 분노의 질주 > 시리즈 같은 영화에 나올법한 멋진 할리우드식 카체이스 장면에 익숙해져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영화들의 카체이스 장면은 화려하긴 하지만 <블리트>처럼 거칠고 과감한 박력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 제이슨 본 >(2016)에서 본(맷 데이먼)을 뒤쫓던 킬러(뱅상 카셀)가 탱크에 가까운 거대한 차량을 이끌고 라스베이거스 도로를 질주하며 엄청난 양의 차량을 산산 조각내는 장면이 있다. 엄청난 물량 공세에 감탄이 나올 법도 한데 별 맥락도 없이 액션에 힘을 주니 아무런 박력이 느껴지지 않은 실패한 장면이 되어버렸다. 단지 많은 수의 차가 부서지는 것만이 카체이스 액션 영화의 전부가 아니다. 카체이스 장면의 생명은 화려함보다는 박력이고 그 박력의 대부분은 어떤 차를 선택하는지에 따라 좌우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블리트>는 카체이스 영화, 더 깊게는 머슬카의 매력을 처음으로 느끼게 해준 영화였다. 머슬카는 8기통(VB) 엔진과 같은 강력한 성능을 자랑하는 고성능 자동차를 일컫는 말이다. 195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서 유행하던 경주에 적합한 고성능 엔진을 장착한 자동차 모델로 페라리, 람보르기니 등의 유럽형 슈퍼카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머슬카는 가격 면에서 대중적인 차는 아니었다. 당시 미국 자동차 회사 포드사의 부사장이었던 아이아코카는 1960년대 초에 미국 자동차 시장 경제를 주도하던 베이비붐 세대를 겨냥해서 ‘포드 팔콘’이란 차를 새로운 스타일로 재창조하는 작업에 돌입한다. 그렇게 당시 급변했던 소비자 구미에 맞는 차를 만들어 대성공을 거두는데 그 차가 바로 포드 머스탱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활약했던 전투기 ‘P-51 머스탱’의 이름과 야생마라는 의미가 담긴 로고를 박고 등장한 포드 머스탱은 1964년 첫 모델을 본격적으로 출시한다. 웬만한 자동차 애호가는 다 알만한 개념이겠지만, 포니카라는 용어가 있다. 일반 소비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머슬카 즉 작은 차체에도 고성능 배기량을 가진 차를 뜻하는데 포드 머스탱은 시장 변화를 제대로 내다본 아이아코카가 만들어낸 작은 머슬카, 포니카였다. 이른바 ‘포니카’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 블리트 >에 등장하는 1968년형 포드 머스탱은 여러 머스탱 시리즈 중에서 성능보다는 디자인을 중요시했던 머스탱 라인의 초창기 1세대 모델이다. 피터 예이츠 감독은 머스탱의 매력을 영화에 담기 위해서 10분이 넘는 카체이스 장면에 엔진과 타이어 소리 외에는 어떤 음악도 삽입하지 않았다. 당시로써는 무모한 카체이싱 장면에 도전한 것인데 일단 이 장면 자체가 대본에도 없이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장면이었다. 대본의 도시 배경은 로스앤젤레스였으나 갑자기 배경이 샌프란시스코로 바뀌면서 주택가 언덕 추격 장면을 찍을 여건이 마련된 것. 예이츠 감독은 또 스티브 맥퀸이 평소 ‘과속 촬영(운전)’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는 촬영을 밀어붙였다. 영화에 등장하는 스티브 맥퀸의 모든 운전 장면은 배우 자신이 직접 운전했다. 예이츠 감독에 따르면 그는 예전부터 운전할 때는 대역을 쓰지 않는다는 연기 철칙을 가지고 있었다고. 참고로 극 중 블리트 형사(스티브 맥퀸)의 머스탱과 경쟁하듯 질주하다 전소되고 마는 ‘닷지 차저’를 운전한 배우는 빌 힉맨이란 사람인데 그는 당시 카체이스 전문 스턴트맨이기도 했다. 스티브 맥퀸과 함께 빌 힉맨의 멋진 스턴트 주행이 없었다면 <블리트>는 만들어질 수 없었다. < 블리트 >의 카체이싱 당시에는 또 이런 카체이싱 촬영을 해본 적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장소 대여 관계로 2주라는 짧은 촬영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예이츠 감독은 이 기간 안에 10여 분 넘는 장면을 모두 찍어야 했기 때문에 두 대의 카메라를 뻗쳐놓고 찍는 방법을 고안했다. 이때 현장에서 맥퀸이 탄 머스탱이 언덕 위에서 질주하며 내려오다가 사거리 코너에 설치해놓은 카메라와 부딪쳐 카메라가 박살이 나기도 했는데 해당 장면은 영화에 그대로 삽입됐다. 카메라와 부딪친 이후에 이어서 멈춘 차를 돌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맥퀸이 후진을 하면서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후방을 살핀다. 예이츠 감독에 따르면 맥퀸이 현장에서 촬영을 구경하는 일반인들에게 차를 운전하는 배우가 자신이라는 걸 알리기 위해 일부러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더라는 거다. 스티브 맥퀸의 여유롭고 허세 섞인 열연에 힘입어 포드 머스탱은 영화의 두 번째 주인공으로서 카체이싱 영화의 새로운 장을 열어젖히는 데 일조했다. 영화 매체를 통해 미디어 마케팅의 재미를 톡톡히 보게 된 포드사는 바로 이어서 애스턴 마틴 DB5를 상징적으로 몰던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에게도 포드 머스탱을 안겨준다. 1971년 작 < 007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는 악당 블로펠드(찰스 그레이)가 다이아몬드로 무시무시한 무기를 만든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가 잠입해있는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향하는 이야기다. 제임스 본드는 영화의 주요 배경인 라스베이거스에서 본드걸 티파니(질 세인트 존)가 몰던 차를 대신 몰고 다니는데 이 차가 바로 새빨간 색상의 ‘머스탱 마하1’이다. 이 모델은 기존 68년형 머스탱의 성능을 업그레이드시킨 모델이다. 극 중 본드가 경찰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네 바퀴로 가는 자동차를 옆으로 세워서는 두 바퀴로 달리는 곡예를 선사하는 명장면도 탄생시켰다. 1960년대와 70년대 당시 한국 최고의 스타였던 배우 신성일은 국내 수입차 1세대인데 그가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리무진과 함께 고속도로를 달릴 때 탔던 수입차가 인디언 레드 컬러의 ‘머스탱 마하1’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식스티 세컨드>의 쉘비 GT 500 1960년대 후반 머스탱을 만들어 1년 사이에 60만대가 넘는 차를 팔아 치웠던 포드사는 당시 1세대 모델보다 성능이 더 좋은 스포츠카 형태를 원하는 소비자들의 의견을 수용해 유명 레이서였던 캐럴 쉘비와 협업해서 제품 개발을 진행했다. 이때 1세대 모델에는 없던 8기통(V8) 엔진을 튜닝해서 성능을 업그레이드시킨 ‘쉘비 GT350’, ‘코브라 G.T.500’ 등의 모델이 만들어졌다.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스포츠카 절도단 이야기를 다룬 액션 영화 < 식스티 세컨드 >는 전설적인 머슬카 ‘쉘비 GT 500’을 스포츠카의 끝판왕처럼 묘사한다. 영화 내내 유럽산 슈퍼카들이 쏟아지듯 등장하지만 주인공인 절도단들은 ‘쉘비 GT 500’을 훔치는 것을 자신들의 최종 목표라고 말한다. 미국산 머슬카의 아름다움 혹은 위대함을 널리 알릴 목적이 너무 노골적으로 보였다고 해야 할까. 조지 밀러 감독의 1973년 작 < 매드맥스 >는 또 어떤가. 주인공 맥스(멜 깁슨)의 차는 머슬카의 상징과도 같은 고성능을 탑재한 ‘8기통(V8) 인터셉터’로, 1970년대 초반에 개발된 ‘팔콘 XB GT 쿠페 1973‘가 실제 모델이다. 황량한 허허벌판 대륙을 질주하며 횡단하기에 더할 나의 없이 좋은 성능을 지닌 차들이다. 또 1969년에는 포드사가 머스탱을 업그레이드한 ‘보스’라는 제품을 출시해 모터스포츠 계에서 활약하는데 이 모델은 ‘보스 302’, ‘보스 429’ 등의 모델로 나뉘어 제작된다. 특히 보스 429 엔진은 표기된 출력보다 성능이 뛰어나다고 알려져 유명해졌다. 왠지 이름이 낯익은 모델이라고?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 존윅 >에서 동네 건달들의 자존심에 금을 가게 해준 차가 바로 존 윅이 애지중지하던 1969년형 ‘머스탱 보스 429’다. < 존윅 >의 1969년형 머스탱 보스 429 포드 머스탱으로 대표되는 미국산 포니카는 천둥소리 같은 배기음을 쏟아내는 8기통의 박력이 다른 모든 자질구레한 성능의 장단점을 잊게 만든다. 사실 이 머스탱은 한국 실정에 비추어 보면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차다. 가장 현실적으로는 엄청난 연비를 자랑하는 통에 기름값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베테랑 >의 조태오는 왜 포드 머스탱을 몰았을까? 머슬카 특유의 가오 때문이 아니었을까. 명동 한복판 8차선 도로를 꽉 막은 차들 사이로 육중한 차체를 들이밀며 홍해 가르듯 부수고 지나갈 수 있는 힘 좋은 자동차로 포드 머스탱만 한 차가 또 있을까? 설정상 조태오가 벤츠나 아우디를 몰았다면 재벌의 리얼리티 정도는 살려줬을지라도 후반부 명동 카체이스 장면에서의 머스탱 전용 박력은 사라져 버렸을지 모를 일이다. < 베테랑 >의 포드 머스탱 GT, 조태오 최근에 포드 머스탱과 관련한 흥미로운 뉴스가 공개됐다. 얼마 전 포드사가 전 세계 기자들을 말리부 해안가로 불러모아 2018년형 신모델의 시승식을 가졌는데 이때 많은 기자들이 한 가지 사실 때문에 당황했다고 한다. 8기통 5.0L의 가솔린 엔진에 회전 한계를 7500rpm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새롭게 업그레이드된 엔진 성능 때문이 아니라 머스탱 역사상 최초로 반자율주행 기능을 탑재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고. 포드사는 긴급제동 보조 시스템(ASBS), 차선이탈 경고시스템(LDWS), 차선이탈 방지 시스템(LKAS) 등을 통해 그 어느 때보다도 안전을 중시한 모델임을 강조했다. 물론 세계적인 흐름을 따른 당연한 결과이자 반드시 필요한 기능이지만 미국인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던 ‘머스탱 정신’과는 조금 다른 행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가지 소식은 지구에서 사라져 자취를 찾아볼 수 없었던 < 블리트 >의 실제 촬영모델 머스탱을 발견했다는 소식이다. <블리트>에서 스티브 맥퀸이 직접 몰았던 차량 소품 머스탱은 총 2대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한 대는 개인 소유 차량이고, 나머지 한 대는 자취를 감춘 채 사라져버려 찾을 수 없었다. 스티브 맥퀸이 죽기 직전까지 평생 동안 이 차를 수소문했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사연은 자동차 애호가 사이에서 유명하다. 멕시코에서 발견된 < 블리트 >의 머스탱(기사 보기) 그런데 최근 멕시코의 바하칼리포르니아주의 어느 폐차장에서 자동차 커스텀이나 복구를 취미로 즐기던 두 남자가 녹슬어 폐차된 머스탱 잔해를 찾아냈다. 그들은 이 잔해를 가지고 < 식스티 세컨드 >의 쉘비 GT 500으로 커스텀 제작을 하려고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들이 남아있던 원본 부품을 포드사에 문의한 결과, 이 망가진 차의 잔해가 실제 < 블리트 > 촬영에 썼던 머스탱임이 밝혀진 것이다. 결국 이들은 <식스티 세컨드> 대신 <블리트>에 등장했던 원래의 모습 그대로 차를 복구하는 데 성공했다. 시대의 흐름에 따르는 최신식 머스탱 모델의 변화 소식과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음을 몸소 보여준 유물 머스탱의 발굴 소식이 기가 막히게 대비된다. 이제 포드 머스탱은 8기통 엔진을 마음껏 돌려도 석유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았던 호황기의 유물로서 DVD와 장난감 모형 속에 영원히 갇혀 버렸지만 그 끝내주는 ‘가오’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장난감을 사게 만들 것이다. “우리가 돈이 없어 못 사지, 가오가 없어 못 사나?”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가혹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참고 견디는 것이 더 고결한 정신인가, 아니면 무기를 들고 고난의 바다에 대항하여 끝장을 내는 것이 더 고결한 정신인가?” 영화가 시작되면 「햄릿」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익숙할 그 구절이 흐른다. 그런데 이상하다. 셰익스피어의 명대사가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으로 흐르는 가운데, 스크린에선 다소 묘한 교차 편집이 이뤄지고 있다. 주인공 저지 본(워커 헤인스)은 무대 위에서 햄릿이 되어 연기를 하고 있지만, 교차되는 신에서 그는 옛날 스타일의 옷을 입고 숲길을 달린다. 도대체 이 두 시공간은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 영화 < 햄릿 고스트 >는 이 도입부의 궁금증을 풀기 위한 거대한 퍼즐이다. 설마… 눈치채셨나? 맞다. < 햄릿 고스트 >는 시간 여행을 다룬 SF다. 햄릿의 아버지 유령이 주인공인 「햄릿」의 새로운 버전은 아닐까 싶은 문학적 제목과는 무관하게, <햄릿 고스트>는 셰익스피어 연극을 전문으로 하는 배우 저지 본이 겪는 갑작스러운 시공간 이동이다. 그날도 연극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교통사고 때문에 정신을 잃었던 저지 본이 눈을 떴을 때 그는 낯선 사람에게 이상한 그 무엇을 주입 당한다. 그리고 3년 후, 그는 무대에서 이상한 경험을 한다. 그는 「햄릿」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연극 무대에 서는데, 갑자기 그의 눈앞에 고전적 스타일의 「햄릿」 공연이 펼쳐진다. 환상을 본 것일까? 아니다. 그는 그 시공간 안으로 들어간다. 이즈음, 그에게 보 호킨스(글렌 맥)라는 경찰 한 명이 다가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자신의 증조부가 살인죄의 누명을 쓰고, 증거도 목격자도 심지어 살해된 시체도 없는데도, 억울하게 사형을 당했다는 것이다. 1920년에 일어난 그 사건이 주인공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이때부터 영화는 시간을 넘나드는 SF에서 범죄 미스터리로 변하기 시작한다. 증조부는 쪽지를 남기며, 어느 강가 근처 땅을 파 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곳을 팠을 때 나온 건 운전면허증. 1920년에 플라스틱 운전면허증이 땅에 묻혔다는 것도 미스터리지만, 면허증의 주인공은 바로 ‘저지 본’이다. 이로써 오프닝 신의 궁금증에 대한 한 조각이 맞춰진다. 그렇다면 100년 전의 저지 본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저지 본의 전생일까? 다행히(?) 영화는 그런 무리수를 두진 않지만, 대신 ‘황당수’를 쓴다. 저지 본은 시간 여행을 통해 1920년에도 셰익스피어 배우로 활동했으며 「햄릿」 무대에 섰다는 것이다. 그는 그 시간대로 흘러들어 가고, 그곳에서 오디션을 거쳐 배역을 따내고, 저지 본 때문에 대니얼 브라운(대니얼 토머스 메이)라는 배우는 햄릿 역에서 밀려난다. 이후 이야기는 급격히 복잡해진다. 경찰의 증조부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의 간수가 등장하고, 현재 시간대에선 그 간수의 증손자를 만나고, 주인공은 과거로 돌아가 잘못을 바로잡으려 하고,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긴다. < 햄릿 고스트 >는 결코, 적정 수준 이상의 제작비를 쓴 웰메이드 장르 영화가 아니다. 배우 출신인 워커 헤인스의 첫 장편 연출작인 <햄릿 고스트>의 만듦새는 아슬아슬한 경계 위에 있다. 컴퓨터 그래픽에선 ‘야매’ 느낌이 나고, 배우들의 연기엔 뭔가 빈 구석이 있고, 이야기의 깊이가 있다고 볼 수도 없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스토리텔링은, 관객을 붙잡고 끝까지 보게 하는 힘이 있다. 서서히 불가해한 일들이 펼쳐지면서 하나둘씩 단서가 주어지는데, 이상하게 그럴수록 이야기는 더욱 불가해해진다. 이건 결코 이 영화의 플롯이 엉망이라고 빈정대는 말이 아니다. < 햄릿 고스트 >는 저예산 영화이기에 가능한 반칙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타임머신을 소재로 하는 SF 장르는 일반적으로 큰 예산을 쓰기 마련이고, 그런 이유로 상업영화의 관습적 스토리를 지니기 마련이다. 어떤 식으로든 해피엔딩이어야 하고, 집이 있는 시공간으로 돌아와야 하고, 그 과정에서 악당은 처치되어야 한다. 그런데 <햄릿 고스트>엔 이런 ‘이야기의 강박’이 없다. 더 나아가 저지 본이 시간 여행을 하게 되는 ‘과학적’(?) 이유도 한참 뒤에 등장한다. 마치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듯 말이다. 그리고 엔딩에 가도 그다지 뭔가 해결되었다는 느낌을 주지 않으며, 앞에서 언급한 ‘불가해한 느낌’은 정점에 달한다. 적극적으로 추천할 만한 영화는 아니지만, 타임머신이나 루프를 소재로 하는 SF의 팬이라면 < 햄릿 고스트 >는 꼭 챙겨볼 만하다. TV 시리즈 < 엑스파일 >이나 < 닥터 후 >의 한 에피소드 같기도 하고, 존 그리샴 소설에 셰익스피어를 섞어놓은 것 같기도 한 이 영화는 SF적 설정에 범죄 미스터리를 결합하고,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드로리안을 보내라구!” 같은 썰렁한 유머를 한두 방울 떨어트린 유니크한 소품이다(잘 아시겠지만 드로리안은 < 백 투 더 퓨처 > 시리즈에 나오는 타임머신 자동차다). 시간 여행 영화로서 < 햄릿 고스트 >가 가장 독특한 점 중 하나는, 과거에 대한 태도다. 대부분의 SF가 과거를 바꾸는 것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취한다. 그럼으로써 현재의 물리적 세계가 바뀌기 때문이다. 그런데 <햄릿 고스트>는 그런 걱정은 하지 않는다. 차라리 그런 인과 관계에 관심 없다고 해야 할까? 그렇다면 이 영화가 관심 있는 부분은… 의외로 심오하다. 이 영화는 실존에 대해 이야기하며, 한편으론 종교적이다. 기독교에서 던지는 질문들, 즉 인간은 어디에서 오며, 나는 왜 여기에 있으며, 결국 어디로 가게 되는 것이며,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런 테마들이 <햄릿 고스트>에 말 그대로 ‘고스트’처럼 떠다닌다. 이 영화가 시간 여행에 대해 관점은 이것이다. 만약 내가 시간 여행을 한다면, 내 실존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것은 “죽느냐 사느냐”를 고민했던 햄릿의 고민이기도 하다. < 햄릿 고스트 >는 틀어놓고 잠깐 한눈만 팔아도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 전개 스타일이 과격한 영화다. 이것은 감독의 의도이면서 동시에 약간의 어설픔일 수 있고, 이런 미숙함은 영화 전반에 걸쳐 있다. 그럼에도 일종의 퍼즐로서 이 영화는 꽤 흥미롭다. 나름 정성 들여 준비한 반전도 있으며, 장르적 관습에 대한 뒤틀기도 흥미롭다. 혹시 영화 속 연극에서 거트루드 역을 맡은 여배우가 낯익다면… 맞다. 당신은 TV 시리즈 <레밍턴 스틸>(1982~87)의 열성 팬이었던, 아마도 40~50대 관객일 것이며, 그 여배우는 ‘로라 홀트’로 등장했던 스테파니 짐발리스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