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amwolf82]고자 울다~
- 제작년도
- 2009
조이예환 감독의 < 불빛 아래서 >(2017)는 흔히 ‘홍대’로 불리는 인디 음악 씬에서 활동하는 세 밴드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불빛 아래서>를 ‘인디밴드 생태보고서’ 정도로만 규정하기에는 이 영화가 가진 함의가 상당해 보인다. 무대 위에서는 한없이 멋있게만 보이는 뮤지션들의 허당기 넘치는 일상과 다소 지질해 보이는 모습까지 보여주며, 흡사 리얼 예능 프로그램 같은 재미를 선사하는 <불빛 아래서>에는 크게 세 종류의 밴드가 등장한다. YB(윤도현 밴드) 테크니션 출신으로 갈고 닦은 탄탄한 실력을 바탕으로 독보적인 음악세계를 구축하며 ‘한국대중음악상-올해의 신인상’ 등 굵직한 상을 휩쓸었던 로큰롤라디오와 홍대 밴드로는 드물게 대형 매니저먼트 산하 레이블과 전속 계약을 맺고 공중파 포함 각종 오디션 경연 프로그램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펼친 웨이스티드 쟈니스, 락 스타가 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홍대 인디 씬에 진입한 청년밴드 더 루스터스. 현재 인디 밴드들의 동향과 흐름을 영화에 출연하는 세 밴드로 압축해놓은 것 같은 <불빛 아래서>가 내린 결론은 인디밴드 생태계 내에서 더 주목받던 그렇지 않던 모두가 어렵고 힘들다는 것이다. <불빛 아래서>가 주목한 로큰롤라디오와 웨이스티드 쟈니스는 그들 스스로도 인정한 것처럼 홍대 밴드 중 꽤나 잘 나가는 케이스에 속한다. 로큰롤라디오 같은 경우에는 매년 국내를 대표하는 락 페스티발 메인 스테이지 무대에 꾸준히 오를 정도로 실력과 가능성을 인정받았고 해외에도 진출해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런 그들조차 순수 공연·음악 활동만으로 버는 돈으로 생계를 꾸리고 차기작을 준비하기 위한 창작·연습 활동에 전념하기에는 매우 빠듯해 보인다. 데뷔앨범으로 주목을 받아도 각종 오디션 출연과 아르바이트 활동으로 차기작 발매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심지어 해체로 이어지는 <불빛 아래서> 출연 밴드들의 흥망성쇠는 홍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인디밴드들의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는다. 대형 메이저에서 기획, 제작한 작품만 돈을 벌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기형적인 구조는 비단 음악계에만 해당되는 현상이 아니라 현재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는 대다수 사람들이 처한 현주소다. 올해 초 6년 만에 정규2집 앨범을 발매한 로큰롤라디오는 모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불빛 아래서>가 첫 촬영을 시작한 2013년 당시보다 홍대에서 설 수 있는 무대가 줄어들고 그에 따라 활동하는 밴드 수도 급감하는 현상을 토로한 바 있다. 홍대 클럽들이 계속 문을 닫는 이유는 천정부지로 치솟는 임대료와 젠트리피케이션 영향도 분명 한 몫 하지만, 음악으로 주목을 받고 활발히 공연을 이어간들 인디음악을 수용하고 소비하는 시장의 부재로 다음 활동을 쉽게 기약할 수 없는 현실은 밴드들의 미래를 더욱 어렵게 한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밴드들의 한탄과 자조로 흘러갈 것 같은 영화는 의외로 다른 지점을 향해 나아간다. 돈을 벌기 위해 음악을 하고 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음악밖에 없고 좋아하는 음악을 할 수 있기에 돈 빼고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인디 음악인들의 얼굴에는 자신이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진짜 사랑하고 즐기는 자의 자부심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비록 오늘은 고기가 잘 잡히지 않더라도 내일도 모레도 한결같이 배를 타고 나가 만선을 꿈꾸는 뱃사람처럼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는 뮤지션들의 일상을 가까이서 지켜본 <불빛 아래서>는 이렇게 말한다. 현실 대신 꿈을 좇아 살아가는 뮤지션들의 삶만 힘들까. 무엇을 하던 부모에게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지 않으면 힘든 세상,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며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그 순간을 즐기며 살아가면 그걸 로도 괜찮지 않을까. 무대 위 카리스마를 완전히 걷어낸 뮤지션들의 평범하면서도 재기발랄한 일상에 웃고 울다가 특별해 보일 것 같은 그들의 삶도 보통의 사람들과 다르지 않음을, 나만 힘들게 사는 것이 아니었음을 스스럼없이 위안 받게 되는 영화. 수많은 좌절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제 갈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이 시대 청춘들의 자화상을 다룬 <불빛 아래서>는 인디밴드만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과 꿈, 실낱같지만 선명한 희망이 있었다.
<뽕>을 이야기하자면, 1980년대라는 시대를 먼저 말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다. 그런 질문이 나올 법하다. 무릇 대개의 영화는 시대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지 않느냐고. 물론 그렇지만 <뽕>을 비롯해 그 당시 나온 일군의 장르 영화는 1980년대라는 토양 아래 만들어졌고, 놀랍게도 1980년대가 끝나고 1990년대가 시작되면서 곧 사그라졌다. 1920년대 나도향이 쓴 동명의 원작이 1980년대의 관객에게 왜 그렇게 사랑받았는지 이야기하려면, 나는 어쩔 수 없이 1980년대의 영화들과 분위기에 대해 떠올려야만 한다. 혹자는 신군부정권이 국민들을 회유하기 위해 시도했던 ‘3S정책’을 말한다. 즉, 3S 중 ‘섹스’와 ‘스크린’이 만난 결과물이란 것이다. 확인된 문건이나 증거는 없으나, 사실이 그러하다는 것은 그 시대를 거쳐 온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는 바다. 수치적으로도 보아도 1980년대의 영화 문화는 암흑에 가깝다. 한국영화와 외국영화를 막론하고 홍보용 간판에 걸리는 영화 가운데 많은 수는 성애물이었고, 거리에는 언제나 그런 영화들의 포스터가 붙었다 떨어져 나가곤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영화가 어마어마한 흥행 성적을 기록한 것도 아니다. 그나마 극장을 찾는 관객들의 발걸음을 붙잡는 정도, 딱 그 정도의 흥행을 유지하는 수준이었다. 흔히 성애물이라 불리는 영화들 중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라 해봐야 수십만 관객이 다였다. 영화로 치면 정말 암울한 시간이었다. 1980년대의 성애물은 그 안에서 다시 몇 가지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유럽산 성애영화나 스릴러에서 영향을 받은 정체불명의 심리물이었다. <애마부인>(1982)으로 전설을 쓴 이 장르는 여성의 야릇한 심리를 소재 삼아 수많은 아류를 쏟아냈다. 직접적으로 유럽영화의 영향 아래 만들어진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1982) 같은 영화가 있었는가 하면, <무릎과 무릎 사이>(1984), <여자 여자>(1985) 따위의 괴상한 심리드라마도 시도되었다. 둘째는 사회적 메시지에 성애물을 결합한 유였다. <어둠의 자식들>(1981), <백구야 훨훨 날지 마라>(1983) 등으로 명맥을 이어가다 1980년대 후반 <매춘>(1988) 시리즈로 폭발한 장르다. 셋째가 <뽕>이 포함된 토속 성애물이다.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1981),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1981), <어우동>(1985) 등의 엄청난 성공에 힘입어 소소한 흥행세를 이어간 이 장르는 그 아래로 문예물과 해학물로 다시 나뉜다. <반노>(1982), <자녀목>(1984), <씨받이>(1987), <감자>(1987)>가 전자라면, <변강쇠>(1986), <어울렁 더울렁>(1986), <가루지기>(1988),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1993) 등이 후자의 대표작들이다. <뽕>(1985)의 경우는 다소 특이하다. 굳이 분류하자면 전자에 속하겠으나 이 영화의 영향으로 후자의 영화들이 터져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계 정보로는 십여만 명을 동원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이는 당시의 부실한 통계 수준을 입증할 따름이다. 개봉관의 성공에 이어 재개봉관으로 내려간 뒤에도 영화의 흥행은 멈추지 않았고 여주인공을 맡은 이미숙의 얼굴이 간판에 그려지지 않은 군소극장이 드물 정도였다. 그 정도가 오죽하면 모 영화잡지에서 ‘(극장 간판마다 그려진 이미숙의 얼굴 가운데) 과연 어떤 게 진짜 이미숙 얼굴이냐’를 주제로 기사를 냈을까 싶다. <뽕>의 성공이 1980년대를 성애물의 시대로 만드는 데 한 역할을 했지만, 다시 본 <뽕>에는 그 시기의 싸구려 성애물과 구분되는 지점이 있음 또한 분명하다. 1980년대 성애물의 가장 큰 문제는 남성과 여성을, 섹스 외에는 세상사에 별 관심이 없는 짐승처럼 그려놓았다는 데 있다. 남성은 여성의 몸만 봐도 흥분하고, 여성은 남성의 육체가 다가오면 달아오른다는 식이다. 그런 까닭에 이야기의 개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남녀의 눈빛을 클로즈업한 뒤 베드신을 연출하면 그만이었다. 싸구려 성애물이 하도 많이 만들어지니까, 그런 장면들만 기대하고 영화를 보러 다니는 관객도 적지 않았다. 예술영화나 독립영화 같은 건 별세상처럼 논의되던 시절이었다. <뽕>의 인물과 이야기는 달랐다. 근대 이전의 남성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편 삼보(이무정 분)나 삼돌(이대근 분)과 달리, 안협집(이미숙 분)으로 불리는 여성은 노동과 재화를 연결 지을 줄 아는, 그리고 그것을 통해 독립적인 삶을 도모하는 근대적인 인물이다. 어쩌면 안협집은 1980년대 성애물에서 육체적 굴레에 얽매이지 않은 유일한 인물일 것이다. 남편 삼보가 역마살을 핑계로 노름에 빠져 허구한 날 바깥을 돌아다니는 탓에, 그녀는 자신의 몸 하나로 세상을 버텨나가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자본이나 도구가 없는 그녀로서는 반반한 얼굴로 몸을 파는 것을 노동으로 치환하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그런 까닭에 그녀는 소위 육체적 매력을 따질 겨를이 없는 터, 재화가 없는 상대방에게는 절대 몸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육체적 관계는 곧 돈이나 쌀에 가늠하는 재화를 의미한다. 머슴살이를 하는 삼돌은 힘과 몸을 이용해 살아간다는 점에서 안협집과 다를 바 없으나, 그는 안협집과 반대로 육체의 힘을 독립적인 삶의 바탕으로 사용하지는 못한다. 힘자랑을 하는 도입부에서 보듯 그는 자신의 힘을 노동에 바치면서도 종속된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극중 안협집이 유독 삼돌을 싫어하는 이유는 밝혀지지 않으나, 그게 논리적으로 맞다. 자신의 힘을 잘 이용하는 안협집이 그것을 자랑 이상으로 쓰지 못하는 삼돌을 바보 천치로 바라보는 게 당연하다. 안협집에 수작을 거는 삼돌의 시도는 매번 실패하기 마련이고, 그러면 그럴수록 안협집은 그를 더욱 하찮게 여기게 된다. <뽕>은 이대근이 섹스의 아이콘으로 도약하게 해준 작품이면서도 극중 그를 쓰는 방식은 정반대라는 게 특징이다. <변강쇠> 같은 이후 작품에서 이대근은 외모와 힘 하나로 수많은 여성의 구애를 받는 남성으로 분했다. 그의 소문을 전해들은 여성들은 그와 잠자리 한 번 해보겠다고 줄을 서는 장면들이 연출된다. 그런 이대근이 분한 삼돌은 <뽕>에서 내내 내쳐지는 신세를 못 면한다. 삼돌이 힘을 주체하지 못해 식식거릴수록 관객들은 더 크게 웃었다. 원작과 다르게 삼보에게 독립운동가의 뉘앙스를 입혀 놓긴 했으나, 기실 그도 무능하기는 마찬가지. 안협집이 준비해둔 노잣돈에 깨끗한 옷을 걸쳐 입고 돌아다니는 거 외에 우리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지 않았나. 삼보가 극 초반에 하는 대사 – 허기사 지금 세상에는 섣부른 사내 녀석보다 기집 편이 살기가 훨씬 나니라 - 는 어쩌면 1980년대라는 시대를 풍자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때는 박정희에 이어 사내들의 대장으로 군림한 전두환의 기세에 눌려 어지간한 사내들이 풀이 죽어 사는 시대였고, 그들의 주체 못한 힘을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풀던 시대 아니던가. <뽕>에는 그런 못난 남자들을 향한 조롱이 가득하다. 인물과 이야기만큼 빼어난 것은 이미지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이두용의 방식이다. 극의 도입부를 돌아보자. 1분25초짜리의 짤막하고 기능적인 오프닝 크레디트가 흐르고 난 다음, 마을 풍경을 배경으로 안협집이 삼보에게 따지는 목소리가 나오고, 마을 사내 두 명이 그들에 대해 말하는 모습이 삽입된다. 싸돌아다니는 남편을 흉보면서도 보약을 달이는 안협집의 날렵한 몸짓을, 갓 일어난 삼돌이 유머러스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강원도, 황해도, 평안도(안협(安峽)은 강원, 평안, 황해 삼도 품에 있는 고읍(古邑)의 이름이다.) 투전판을 놀다온 남편은 묵묵히 화투를 만지다 화투 패로 묘기를 보여준다. 새침하던 안협집은 어느새 남편의 손놀림에 빠져 신기함을 연발한다. 이번에는 철원 쪽 화투판으로 떠나려는 남편의 입놀림에 속아 그녀는 울다가도 새 옷과 노잣돈을 스스로 꺼내 놓는다. 옷을 입혀달라며 바지춤을 내린 삼보는 슬며시 아내의 얼굴을 더듬는데, 카메라는 관객을 놀리기라도 하려는 듯 마을 남자들의 힘자랑 풍경으로 훌쩍 넘어가버린다. 절구 옮기기로 힘이 세다는 걸 증명한 사람에게 식량을 내준다는 말에 마을 아낙과 남정네들의 입담이 오가고, 모두가 나자빠진 자리에 힘 센 삼돌이 엉큼하게 일어난다. 그는 한 손가락으로 코를 휭 푼 뒤 절구를 번쩍 들어 기운을 뽐낸다. 술잔치를 벌이려 흥이 난 사람들 사이로 삼보가 새 옷으로 차려입고 마을을 떠난다. 누군가 어디 가냐고 묻자 그는 “뽕 따러 가네”라고 답한다. 그 말에 사람들은 한 열로 줄 지어 “뽕 따러 가세”를 연창하며 춤을 추고, 삼보는 어느새 고개를 넘어간다. 흥겹던 사람들은 일본 순사의 등장에 일순간 수그러들고, 일을 치른 차림으로 방에 앉은 안협집은 텅 빈 고개를 멍하니 바라본다. 음악은 어느새 구슬픈 피리 가락으로 변한다. 그것이 <뽕>의 초반 10여 분 풍경이다. 스르륵 인물을 소개하고 안팎의 공간을 넘나드는 장면 아래로 분위기를 조율하는 솜씨가 과연 이두용답다. 이두용은 <뽕>의 결말부에서 도입부를 거의 정확하게 반복하며 끝을 맺는다. <뽕>을 다시 보며 깨달은 중요한 사실은, 나도향의 소설이 그런 것처럼 영화의 생명력이 전혀 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생명은 삶의 에너지에서 나오는데, <뽕>은 많은 에너지를 ‘해학’에서 찾을 수 있는 작품이다. 해학의 사전적 의미가 ‘익살스럽고도 품위가 있는 말이나 행동’인 바, <뽕>의 해학은 구수한 대사에서 나온다. 나는 한국의 판소리보다 해학이 넘치는 예술을 본 적이 없다. 서구의 오페라가 아무리 멋지다 한들, 판소리 언어의 리듬과 힘이 뿜어내는 매력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근대 이후 예술의 형태에서 사라진 판소리 언어의 매력을 그나마 느낄 수 있는 장르가 시대물이다. 1980년대 해학 시대물은 리드미컬한 언어의 맛을 충실하게 전달하곤 한다. <뽕>의 대사 연기야 두말할 것도 없다. 예를 들어 나도향의 원작에서 삼돌이가 삼보에게 안협집의 행실을 일러바치면서 했던 대사들 - "요놈의 자식아! 내 말을 좀 들어 보고 말을 해! 네 계집 험절을 모르고 댐비기만 하면 강산이냐? 이 동리 반반한 사내양반 쳐놓고 네 계집 건드리지 않은 놈이 없다. 이놈! 꼭 집어 말을 하라면 위에서 아래로 내리섬기마. 이놈, 너도 계집 덕분에 노자냥 노름밑천 푼 좋이 얻어 썼지. 그래 집이라고 오면서 볼받은 것이나마 옥양목 버선 벌이나 얻어 가지고 가는 것은 모두 어디서 나온 것으로 아니? 요 땅딸보 오리궁둥아! 아무리 속이 밴댕이 같기로. 그리고 또 들어 봐라. 나중에는 주워먹다 못해서 뽕지기까지 주워먹었다." - 도 거의 다 살아남았다. 특히 안협집과 삼돌이가 다투는 대사는 압권이다. 삼돌: 포도밭에는 왜 갔었소 그려? 안협: 남이야 어디 가고 안 가고 임자가 알아 뭐할 게여. 나 참 별 꼴사나운 소리 다 듣겠네 원. 삼돌: 아 그리 성낼 거 뭐 입습나, 아 임자 잔등에 포도가 뭉개져 있으니까두루 해보는 말이지. 어디 가서 누워 있다 왔습나. 안협: 아 남이야 어디 가 누워 있다 오든 말든 니가 상관할 게 뭐야, 어이구 참 어이구 비켜. 삼돌: 혼자 먹는 밥이 왜 이렇게 많누 그래. 누가 오기로 했나? 안협: 또 횡설수설하고 있네. 삼돌: 아이고 거 밥 냄새 좋다. 아이 그 뜸이 잘 들었나? 안협: 어이구 비켜, 이 망나니 같으니. 두 사람의 대사 연기 외에도, 양택조 같은 조연배우들이 쏟아내는 대사들은 영화 전체에 리듬과 힘을 제공한다. 따지고 보면 참 신기한 일이다. 1985년이면 전두환 정권이 살벌하던 시절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우울하지 않았던 시간이 별로 없겠지만, 전두환 시절은 특히 끔찍했던 때다. 그 시절에 <뽕> 같은 영화는 흡사 평범한 민초가 죽지 않았음을 방증했던 것처럼 느껴진다. 내 말이 과하다 싶으면 영화를 먼저 보면 될 일이다. <뽕>은 시시한 성애물이 아니다. 힘과 웃음이 살아 숨 쉬는 작품이다. # 이 장면은 꼭! <뽕>에는 많은 사랑스러운 장면이 있으나 그중 유독 좋아하는 게 하나 있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오랜만에 집을 찾아온 삼보가 안협집과 말다툼을 벌이다 손찌검을 하게 된다. 소설과 다르게 영화에서 삼보는 평소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인물이 아니라서 안협집은 코피를 흘리며 실신해 버린다. 놀란 삼보는 의사를 불러 오는데, 안협집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방을 닦다 미소를 짓는다. 그날 밤, 안협집은 흰 종이로 코를 막은 채 누워 있다. 삼보는 돌아 누운 안협집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장만 보고 누웠다. 안협집은 피로 물든 종이를 코에서 빼낸 다음 흰 문풍지를 찟어 동그랗게 말아 새로 코피를 막는다. 요즘 같으면 솜이나 티슈를 쓸 텐데, 보는 사람의 마음이 짠하다. 여리면서도 강인한 여성이 느껴지는 덕분에 나는 <뽕>에서 이 장면을 제일 좋아한다. 몇 마디로 설명을 해놓았지만 정말 말로 설명하기가 힘든 정서가 깃든 장면이다. 눈으로 직접 확인하길 바란다.
숲은 빛이 춤추는 사원이자 대성당이다. -제인구달 어느 날, 아이를 재우며 제인 구달의 책 <내가 사랑한 침팬지>를 읽게 되었다. 아이는 일찌감치 잠이 들고, 책장을 덮으려는 순간 한 구절이 다가왔다. ‘숲은 빛이 춤추는 사원이자 대성당이다’ 성미산 마을 연작다큐멘터리 첫 번째 작품의 제목이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 춤추는 숲 >은 우리 가족이 성미산 마을에 터를 잡은 지 5년째 되던 해, 강석필 감독(마을별명 맥가이버)이 마을 다큐를 기획하면서 시작되었다. 도시에서 아이를 키울 수 밖에 없다면, 아이에게는 믿을만한 안전한 울타리가 필요했고, 우리에게는 동네 친구 몇 명쯤은 사귈 수 있는 곳이었으면 했다. 서울을 조금이라도 떠나고 싶은 마음에 수도권 일대의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찾아다니다가, 결국 홍피디가 살던 지금의 성미산 마을에 깃들게 되었다. 이후 아이가 어린이집을 졸업할 무렵, 맥가이버(줄여서 맥)와 호호는 비로소 ‘마을’이라는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안녕, 맥가이버!” 도시의 어떤 곳에서 이런 인사가 가능할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물처럼 흐르는 따뜻함.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좋은 관계이고, 그런 관계가 생활에서 확장된 것이 마을이다. 바로 그 마을에서 성미산 사람들은 질문을 던진다. 여기에 성미산 마을에는 한가지 특별한 매력이 더해진다. ‘모두에게 꼭 필요한, 더 나은 길은 없을까?’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결과가 실패든 성공이든 용감하게 길을 찾아간다. 그렇다면, 이렇게 ‘사람을 춤추게 하는 마을의 힘은 무엇일까?’ < 춤추는 숲 >은 바로 이 질문으로부터 시작된 다큐멘터리다. 물론 이 질문에는 다큐멘터리 감독의 시선과 더불어, 마을의 일원인 내부자의 시선이 동반되는 독특한 입장이 담겨있다. 지금이야 한국사회 전역에서 ‘마을’이 화두지만, 6년 전 맥이 <춤추는 숲>을 기획할 때만 해도,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서 20여 년 전 한 줌의 부모들이 전국에서 처음으로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세우고 성미산 마을의 씨앗을 뿌릴 때만 해도, 한국사회에서 ‘마을’은 죽은 말이었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한국형 마을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성미산 마을이 시작된 것이다. 낙지가 달려오고, 굼벵이가 실려가다. 마을의 일상을 다루고 싶었던 마을연작 중 1부는, 2010년 성미산 개발이라는 돌발상황을 맞으며 방향을 선회하게 되었다. < 춤추는 숲 >에서 성미산 개발을 둘러싼 상황은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개발 그 자체가 작품의 화두는 아니다. 마을로서는 특별한 위기의 순간을 맞았으나, 제작진의 관심사는 그것을 풀어가는 마을과 사람들에 있었기 때문이다. 흔히 한국사회에서 개발의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곧바로 환경다큐멘터리로 규정하거나 머리띠와 구호를 상상하게 된다. 그러나 <춤추는 숲>은 다른 맥락에 기대어 있다. 영화에는 낡은 가치를 뒤집는 성미산 사람들만의 유쾌한 해법이 두드러진다. 그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즐겁되, 함께 행복한 방법’을 찾아가는 마을 사람들의 가치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런 유쾌한 반전은 파란만장한 싸움의 과정에서도 늘 숨어있었다. 어느 날 새벽, 용역들이 대거 투입돼서 성미산 지킴이 텐트를 부수는 상황이 끝나고 기자회견이 있었다. 상황을 보고하는 기자회견에서 진행자 멘트가 압권이었다. “굼벵이가 쓰러지자, 낙지가 달려오고, 토끼가 몸싸움을 했습니다!” 푸하하! 눈물겨운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잠시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맥가이버와 호호처럼 마을에서는 별명을 쓴다. 그런데 그날 산에 있었던 사람들이 ‘굼벵이와 낙지, 토끼’였던 것이다. 이런 기막힌 순간은 촬영되었지만, 영화의 흐름상 아쉽게도 쓰이지는 않았다. 쟁이와 꽃다지 부산국제영화제에 가다. 6년 동안 공들인 < 춤추는 숲 >이 부산국제영화제에 상영되면서, 영화의 주연배우들인 주민들이 동행하게 되었다. 영화제에 배우로 참석하는 특별한 경험을 나누고 싶기도 했고, 제3자인 관객들로부터 자신들이 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확인하는 자리라 설레고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는 3분 동안 끊이지 않고 박수가 이어졌다. 객석에서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커플이 첫 번째 포문이 열었다. “가슴 아픈 상황이라 보는 내내 대성통곡했습니다. 동시에 너무나 행복해 보여서 울다가 웃다가 정말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그날 저녁 진하게 뒤풀이를 하고 서울로 가는 쟁이가 감독에게 문자를 보냈다. “맥가이버와 호호! 영화를 만들어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가장 치열하게 싸웠던 쟁이와 꽃다지는 여전히 마음의 상처를 돌보는 중이다. 행복한 영화, 마을이 움직인다. ‘한 아이가 자라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의 오랜 속담이 있다. 아이가 많은 사람들의 애정과 돌봄 속에 자라듯, < 춤추는 숲 > 역시 비단 제작진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품을 거쳐 마을에서 나고 자란 특별한 영화다. 이 행복하고 감사한 영화가 만들어낼 의미 있는 기적을 예감하면서, <춤추는 숲>이 많은 사람들의 인생에 유쾌한 바람이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사진설명_ 1. 상단사진: .< 춤추는 숲 > 청소년 홍보팀과 홍형숙 PD 2. 중간사진 (좌) 강석필 감독과 홍형숙 PD (사진 김성곤) (우상) < 춤추는 숲 > 예고편 촬영한 김우영 촬영감독과 연출한 자경 감독 (사진 가림토) (우하) < 춤추는 숲 > 예고편에 출연한 마을 주민 배우 고창석 님의 가족 (사진 가림토)